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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야구돔구장 건설 반대한다 (허창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0:36
조회
231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나는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다. 지금은 기아 타이거즈가 됐지만, 그 이전인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팬이었다. 순천이 고향인 탓이 크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이거즈 소속 야구선수들은 늘 우상으로 존재해왔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호남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던 시절 타이거즈는 전성기를 누렸으니 더 그랬을 법도 하다. 해태 타이거즈를 5월 광주와 연관 짓는 묵시록적 경향은 비단 황지우 시인 세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열광하게 하는 무언의 힘이 분명 존재했다.

야구장에서 타이거즈 선수들이 날리던 한방은 그야말로 카타르시스였다. 그러던 타이거즈의 야구가 기아로 넘어가면서 영 맥을 못 추었으니 팬들은 무언가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정치적으로는 해빙기가 아니었던가. 때문에 타이거즈 팬들에게 올해는 최고의 해였다. 그토록 열망하던 열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V10’을 기어코 달성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지완의 역전 홈런이 있고 나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은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해태 시절부터 선수로 뛰었던 이종범의 눈물은 팬들의 가슴 속에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하필 또 다시 정치적 상황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광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터라 올해 야구장을 여러 번 찾았다. 기억 속 저편에 자리 잡고 있던 카타르시스의 열망도 있었다. 올해 유난히 잘 나가는 타이거즈의 야구를 보며 소주 한 잔 하는 즐거움은 서거정국의 암울함을 잊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내 정치적 지향과는 거리가 있는 얘기지만 ‘야당이 되니까 타이거즈 야구가 살아난다’는 말은 올해 내내 술자리의 좋은 안주였다. 다만 이러한 흥겨움 속에서도 늘 불만이었던 것은 타이거즈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무등야구장의 형편없는 열악함이었다. 만 5,000석밖에 안 되는 관중석은 너무 비좁고 불편하다. 좁은 복도에 편의시설도 제대로 없다. 그라운드 사정은 최악이고 선수들은 부상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지은 지 40년이 넘는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열 번의 우승이라는 대단한 역사를 썼으니 그저 신기한 일이다.

이런 타이거즈의 선수와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는 박광태 시장의 약속이다. 타이거즈가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부터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니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실시되자 기정사실처럼 소문이 흘러나왔다. 급기야 한국시리즈 우승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나왔다. 포스코와의 돔구장 건설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광주 시민들과 타이거즈의 팬들도 소원하는 것이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돔구장’이어야 하는 것일까?

새로운 야구장이 돔구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이는 내년에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 둔 ‘정치쇼’라는 지적들이 일고 있다. 3선을 노리는 박광태 시장과 새롭게 출사표를 준비 중인 인사들과의 정치적 공방은 분명 가열될 것이다. 어찌 선거와 관련성이 없겠는가마는 사실 이는 정치권의 관심사일 뿐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돔구장이 합리적인 결정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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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가 포스코 건설측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돔야구장 신축문제가 지역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낡고 오래돼 원성을 사고 있는 무등경기장 야구장.
사진 출처 - 광주드림


우선 결정과정에서 광주 시민들과 타이거즈의 팬들, 구단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양해각서가 체결되기까지 광주시의 일방적인 결정이 있었을 뿐 사업설명회나 공청회는 있지도 않았다. 그 흔한 여론조사조차 없었다. 시민들의 염원, 팬들의 하소연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업이 철저한 밀실행정에서 이루어졌다. 새로운 야구장에 대한 소문에서 돔구장으로의 확정까지 걸린 시간은 검토조차 이루어졌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러한 행태는 야당이 그렇게도 비난하던 현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꼭 닮았다.

또한 돔구장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일반구장이 1,000억이면 가능하지만, 돔구장은 4,000억 정도가 소요된다. 물론 민간에 의한 기부체납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구장으로 지을 경우 광주시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3-400억의 재정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단순 계산일뿐이다. 개발업체는 ‘공’으로 기부체납을 하는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대형 상업시설의 입주와 주변 상권에 대한 권리행사로 광주시의 소상공인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연간 100억 원의 유지비도 문제다. 그런데도 시, 시민, 지역기업, 소상공인 공동출자 등 다른 방식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개발방식도 문제다. 돔구장 주변을 스포츠·레저 중심의 신도시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또 부대시설을 짓고 경기장에서 일 년 내내 문화이벤트를 해서 관광자원으로 쓰겠다고 한다. 인구 140만에 불과한 광주시는 이미 주택공급이 넘쳐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 지역의 미분양 사례는 속출하고 있고, 지난해는 아파트 분양시장이 최악의 불황을 겪어야 했다.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돔구장을 위한 신도시라니 이것 또한 ‘삽질’하고 보자는 현 정부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또 인구 규모나, 야구장이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 들어서 접근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수익성에도 의문이다. 외곽도 아닌 광주월드컵경기장과 일본 돔구장의 적자운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야구장을 환경과 바꾸어야 하는지도 회의적이다. 시민들의 숙원이었고, 나를 포함한 타이거즈 팬들의 염원이지만 자연녹지를 훼손하면서까지 추진할 일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광주에 야구돔구장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인천 문학구장 정도의 일반야구장이면 훌륭하다. 좀 더 나은 환경의 야구장에서 타이거즈 팬임을 긍지로 느끼며 야구를 즐기고 싶다는 광주 시민들과 팬들의 소박한 꿈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양해각서라는 것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오히려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정치쇼’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이지 도시락이나 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