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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완득이’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살아갈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전국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0:29
조회
215


- 연극 ‘완득이’를 관람하며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신종플루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학교행사가 취소되고, 학급단위로 체험학습을 하기로 결정된 순간 선생님은 지난 여름 가족들과 함께 봤던 연극 ‘완득이’를 떠올렸단다. 지방공연 중이라는 극단 측과 협의 끝에 결국 우리 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공연을 약속받았고, 너희들의 의견은 한 마디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덜컥 예약까지 마쳐 버렸다. 놀이공원 타령을 하며 입이 한 뼘이나 나와 있던 너희들의 불만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이렇게 대학로에 입성하게 되었더랬지.

공연 예약을 해놓고도 걱정이 많았단다. 대부분 유복한 집안에서 왕자님 공주님으로 자라온 너희들이 협소하고 어두침침한 지하의 소극장 연극을 잘 감상할 수 있을까? 너희와는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삶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염려를 뒤집어 보면, 사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이 연극관람을 굳이 밀어붙인 이유였단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거의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천진한 너희들, ‘글로벌 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 세계지도를 가슴에 품고 교과공부 외에도 텝스와 토플을 공부하느라 주변을 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너희들에게 도심 한 구석 가난한 달동네 옥탑방에 사는 우리 이웃의 삶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지하철에서 단속원을 피해가며 천 원짜리 스타킹을 파는 난쟁이 아버지와, 가난한 외국인에게 인심 사나운 한국 땅에서 ‘그 짝 사람’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식당 종업원으로 살아가는 베트남인 엄마의 일상을 통해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의 팍팍한 삶과 우리 사회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던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과 좌충우돌하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은, 상황은 다르겠지만 가족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아픔(성장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을 겪고 있을 너희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완득이는 친구들의 놀림감인 난쟁이 아버지를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또 ‘쪽팔리고 창피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베트남 엄마의 존재도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 킥복싱에서도 3전 3패를 당하지만, ‘아유, 쪽팔려!’하고는 금세 다시 일어선다. 완득이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자신을 움츠려들게 했던 비루한 현실과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실망하고 아파하지만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건강함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당당하고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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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완득이> 스틸 모음. 완득이는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는 건강한 청소년의 표상이다.
사진 출처 - 김동수 컴퍼니


이 세상에 혼자 커가는 사람은 없단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상처 난 가슴을 보듬어 주고 온정을 나누어 주는 가족과 친구, 이웃이 있기에 우리는 삶을 지탱하고, 꿈도 가꿀 수 있는 것이란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완득이의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은, 조폭선생처럼 굴지만 가슴가득 완득이를 사랑하는 담임 ‘똥주’와 베트남 엄마, 난쟁이 아버지의 진정어린 노력, 또 여자친구 윤하의 관심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것은 ‘똥주’선생님처럼 자신의 안락과 풍요로운 삶은 접어둔 채, 어려운 이웃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꽃보다 아름다운’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끝으로, 어찌 보면 초라할 수도 있는 소극장에서 혼신의 연기로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배우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단다. 물질적인 안락함과 풍요와는 상관없이, 각기 다른 자신들의 ‘꿈’을 가꾸기 위해 땀을 흘리면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이런 바람이 과한 욕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것들 중 하나만이라도 들어맞았다면 선생님은 대만족이란다.

막상 연극이 시작되면서 너희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려 들어갔지. 열정적인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었겠지만, 관람하는 내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암전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도 많이 행복했다. 연극이 끝나고, 재잘거리며 극장을 나오는 너희들 얼굴마다에 피어오른 환한 미소는 가을햇살보다 더 눈부시고 예뻤단다. 애초에 가졌던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확인하면서 너희들이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편협함을 잠시 반성해 본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좀 더 가지게 된다면 학업에 대한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너희들의 몸과 마음도 크게 기지개를 켤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우리가 대학로 소극장에서 만났던 완득이를 세상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거든, 친구 윤하처럼 믿어주고 좋아해 줄 수 있겠지? 그리고 너희가 가는 길에 무수히 맞닥뜨리게 될 장애물 앞에서 완득이처럼 잠시 동안 무릎이 꺾일지언정 영영 엎어지지는 않을 거지? 금세 털고 일어날 거지? 누가 뭐래도 너희 스스로를 사랑하며 당당할 수 있겠지? 주변의 이웃과 벗들의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속 깊은 어른으로 자라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