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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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광조/ CBS PD 1970년대 중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 뒷벽에는 1980년대의 장밋빛 미래를 그린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활짝 웃고 있는 단란한 가족 옆에 자동차가 서 있는 포스터였던 것 같다. 몇 년 만 있으면 ‘마이카 시대’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자동차라고는 마을 근처에 있는 군부대를 드나드는 지프차밖에 못 봤던 터라 현실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포스터 속 이미지는 정말 근사했다. 하지만 농번기가 되면 집안일 돕느라 며칠씩 결석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포스터 속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장밋빛 환상일 뿐이었다. 어른들이 월사금이라고 말하던 수업료를 제 때 못내 선생님께 혼나고 땅콩잼이 든 식빵과 비닐에 든 우유를 주던 급식을 먹지 못해 기가 죽던 아이들에게 마이카 시대라는 게 현실감이 있었겠는가. 그래서인지 그 포스터에 대해 선생님도 특별하게 뭘 설명해준 것 같지 않다.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포스터에 담긴 가족의 모습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이미지였다. 잘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초등학교 뒷벽에 붙어 있던 그 포스터는 당시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권력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된 선전물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나라가 잘 살게 되고 난 뒤에나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지금은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해라,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저렇게 잘 살 수 있다.’ 아마 이런 논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터가 말한 대로 1980년대가 되어도 마이카 시대는 오지 않았고 그 때문이었는지 자유와 민주주의는 여전히 유예되었다. 그러다가 모두가 알다시피 87년 6월 민주항쟁이 벌어졌고, 뒤를 이어 7, 8, 9월에는 노동자 대투쟁이라 불린 파업사태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 결과, 개헌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결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도 두둑한 월급봉투도 국민들이 직접 싸워서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87년 7월부터 시작되었던 노동자 대투쟁이 없었던들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대중소비 시대, 마이카 시대가 가능했을까 싶다. 독재자들의 말을 믿고 묵묵히 일을 했더라도 시간의 문제일 뿐 마이카 시대도 오고 이제 먹고 살만해졌으니 독재자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40년 전 초등학교 뒷벽의 포스터가 생각난 건 최근 일고 있는 학교급식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경상남도에서는 도지사가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라며 무상급식을 중단했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감이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의 식당 출입을 통제하면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돈 있는 집안 아이들까지 공짜로 밥을 먹이는 건 낭비라는 주장이 나오는 다른 한편에서 돈이 없어 급식비를 제 때 내지 못한 아이들이 식당에서 쫓겨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의무교육의 ‘의무’가 부모의 ‘의무’를 말하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수업료를 제 때 못 내거나 급식비를 내지 못해 빵과 우유를 못 먹을 땐 가끔씩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의무교육의 ‘의무’가 국가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정책으로 실현된 무상급식, 보육 지원 등을 보면서 ‘드디어 우리사회도 조금씩 변하는구나’ 하는 희망을 품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불거진 급식논란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우리사회가 그동안 도대체 변하기는 한 걸까 하는 회의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지 밥 먹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 교육을 입신출세의 수단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보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학교급식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지역의 농업과 환경, 생태를 교육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한다. 이게 교육이 아니라는 건가? 더구나 친환경 급식은 아이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농업의 건강한 발전과 환경을 보호하는 중요한 공적인 기능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주의가 뿌리 깊은 미국에서조차 친환경급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무상급식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지금도 ‘아직은 우리가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좀 더 잘 살게 되면 그 때 가서 하자는 얘기다. 우리는 언제쯤 아무런 논란 없이 아이들 밥 먹일 정도로 잘 살게 될까? 재벌가들의 자산이 지금보다 한 백배쯤 늘어나고 세계 백대 부호 명단에 한국인이 한 50명 정도 들어가면 그 때가 무상급식을 할 수 있을 때일까? 글쎄, 각자 지나온 역사를 한 번 돌이켜 보시라.
2017-08-07 | hrights | 조회: 188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혐의는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이다. 이미 언론에 몇 차례 보도된 만큼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대강의 사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14년 5월 교육감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당시 조희연 후보는 고승덕 후보에 대해 후보 본인 및 그의 두 자녀가 미국 시민권 혹은 영주권자인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러한 의혹제기는 공영 방송사 출신의 한 유명기자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후 고 후보 측의 반론과 조 후보의 재반론이 이어졌지만, 결국 고 후보 자신의 미국 영주권 보유여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선거가 끝나고 만다(그의 두 자녀는 미국 시민권자임이 밝혀졌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실 고승덕 후보의 영주권 보유 여부는 아직까지도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미 대사관 측에서 이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고 있는 탓인데, 앞으로 재판과정에서라도 이 점이 분명하게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재판대상인 범죄의 핵심사실이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니만큼, 문제된 사안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은 재판의 당연한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공소권 남용 여하튼 검찰은 조 후보의 이러한 의혹제기에 대해서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기소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 사안은 본래 당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후보 쌍방에 대한 주의경고조치로 마무리된 것이었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당시 선거과정에서 후보들 서로 간에 대한 다소 무리한 의혹제기가 계속되었고(예컨대, 고 후보는 조 후보가 통진당과 연루되어 있다거나 또 그의 아들이 병역특혜를 받았다거나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쌍방의 고발을 접수한 선관위는 지나친 선거과열을 이유로 양자 모두에게 경고조치를 하였으며, 이후 후보들이 서로 화해함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선거가 끝난지 4개월여 지난 시점에서 한 보수단체가 조 후보를 고발함으로써 이 사건이 다시 문제되었지만, 경찰은 이를 이미 선관위 단계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혐의 없음” 결정을 하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검찰이 이 결정을 번복하여 이를 다시 기소한 것이다. 이쯤 되면 검찰의 의도가 적이 의심스러워진다. 시효 하루 전까지 망설였다는 것은 검찰 수뇌부가 이 사안의 득실을 여러 차례 계산했음을 드러내 준다. 요컨대, 진상은 단순한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흔히 있어왔던 상대후보에 대한 의혹제기, 설령 과장이나 확대된 허위의 사실이 다소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큰 문제없이 이해되어 오던 정치적 표현을, 새삼스럽게 ‘진보교육감’을 상대로 범죄로 낙인찍는 것이다. 죄판결이 나오면 당연히 개가를 올리는 것일 테고, 무죄판결이 된다 하더라도 큰 손해는 없을 것이다. 검찰이 정치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진보교육감은 어느 정도 상처를 입을 테니 말이다. 피디수첩 사건에서도, 미네르바의 부엉이 사건에서도 그랬다. 목표는 정당한 처벌을 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을 겁먹게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당사자, 그리고 많은 일반 시민의 의사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검찰이 혹은 권력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생각과 표현말이다. 허위사실공표죄의 취지 그러나, 혹자는 조 교육감의 행위가 공직선거법 제250조가 규정하는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선거법이 규정하는 선거범죄 전체, 그리고 해당 조항의 의미를 찬찬히 되새겨 보아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란 가장 많은 정치적 자유,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고 실현되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선거법이란 이와 같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한 가능한 모든 정보를 알게 하고, 이로부터 충분한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선거법이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헌법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때에 규제가 필요한 것일까. 선거 공간에서 허용된 정치적 자유가 일방에 과도하게, 즉 공정하게 행사되지 않아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했을 때이다. 즉, 선거법의 규제는, 더욱이 선거범죄는 해당 행위가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했을 때에만 성립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선거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선거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구체적으로 허위사실공표죄는 어떨까. 사실 이 범죄에 대해서는 폐지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상대후보의 악의적 공격에 대해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는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며 웃어넘기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사실과 허위사실의 구분, 그리고 이를 통한 정치적 득실은 다만 유권자가 판단할 몫일 뿐, 굳이 이를 법으로 규제할 필요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바람직한 정치문화, 선거문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묘하게 계산된 허위사실공표의 경우이다. 선거를 하루 앞둔 날 저녁,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과 함께 그의 검증되지 않은 전력이 기재된 전단지가 살포되는 경험을 우리는 잊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특정한 주장에 대해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일방적인 공격과 비난을 당한 상태로 선거운동을 마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이야 좀 덜한다고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상당한 제한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이런 흑색선전은 선거막판에 흔히 이용되던 단골메뉴였다. 이런 탓으로 우리 선거법에서 허위사실공표죄를 없애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이 조항이 적용되어야 하는 때는 바로 이런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는, 그리하여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국면을 이끌어 가는, 간단히 말해 위에서 보았듯이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때에만 이 범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충분한 반박의 기회를 보장하는 (허위)사실의 공표는 후보를 검증하기 위한 정당한 정치적 표현의 하나로서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바람직한 기능을 하는 탓이다. 사진 출처 - 뉴스1 해석의 문제 이런 관점에서 이 사건을 판단한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아무리 보아도 조 교육감의 행위가 선거의 공정을 해할 정도로 심각하게 부당한 허위사실의 공표로는 보이지 않는다. 상대후보는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개진했고, 모든 과정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사안에 대해 경고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고, 경찰 또한 별다른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한 것일 터이다. 요컨대, 이 사건의 행위는 허위사실공표라기 보다는 상대후보에 대한 정치적 의혹제기에 가깝다. 혹 그러한 표현 가운데, 허위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반론과 재반론, 검증과 토론의 과정에서 진실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엄격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만 정치적 표현의 대상으로 허용한다면, 선거과정에서 필요한 충분한 정보의 제공이나 후보의 자질에 대한 문제제기, 광범위한 토론의 기회 등은 상당부분 봉쇄되고 말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조항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미필적 고의’의 문제가 있다. 고의란 범죄의 구성요건을 인식하고 결과의 발생을 원하는 것인데, 이 때 미필적 고의는 그 인식이나 결과의욕의 정도가 약한 경우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이 범죄에서는 ‘허위사실’의 인식여부가 문제로 된다. 즉, 어떤 사실을 공표하거나 의혹을 제기할 때 그 사실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때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이 조항의 처벌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해 미필적 고의라는 수단이 동원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 조항의 처벌범위를 넓히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정치적 표현자유 보장이라는 이 법률의 취지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같은 사실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소송에서 우리 대법원이 취하고 있는 이른바 ‘현실적 악의의 법리’와도 비교된다. 현실적 악의의 법리란 공인, 특히 공직자나 정치인에 대해서는 그 공공적․사회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이들에 대한 비판이 넓게 허용되어야 하고, 따라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뚜렷한 악의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말한다. 통상 민사소송의 경우보다 형사소송이 더욱 엄격하게 범죄 성립의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일반적인 경우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물론 문제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진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할 경우가 많을 것이고 이러한 때에 행위자로서는 대부분 ‘몰랐다’고 변명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처벌의 공백을 피하려 하는 법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처벌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역시 이 조항의 목적이나 취지를 생각하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필적 고의를 보완하는 추가적인 요건을 요구하는 방법, 예컨대 ‘비방의 목적’을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법률이 바뀌지 않는 한, 현재의 조항에 대한 해석으로는 무리가 있다. 나는 오히려 위에서 살펴본 ‘선거의 공정성 침해’를 기준으로 하는 제한으로 많은 경우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행위자가 허위사실 여부를 알았든 몰랐든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하지 않은 때에는 굳이 처벌할 이유가 없고, 반대로 공정성이 침해되었을 때에는 행위자에게 사실의 허위여부를 잘 알아보아야 할 높은 의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재판은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시민들의 건전한 법감정이 이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자못 기대도 되지만, 그러나 우리의 시민배심원들의 평결은 아직 법관에 대한 구속력이 없고, 또 재판을 진행하고 법리를 설명하는 재판부의 영향력은 배심원에 대해서도 결코 작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일반 국민들은 물론 법관을 포함한 법률가들의 이 조항에 대한 관심을 바라마지 않는다. 선거범죄, 특히 허위사실공표죄는 이제 그 범위를 좀 더 좁혀 해석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흑색선전과 색깔 비방이 난무하던 선거문화도 이제 좀 달라졌다고 봐도 될 것 같으니 말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75 | 추천: 1
정지영/ 전) 서울DPI 회장 KBS에서 17년간 방영되며 약 864억 원을 모금하여 4만 6천여 명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랑의 리퀘스트”가 폐지가 되었습니다. 폐지가 된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가는 데, 폐지가 된 사실은 최근에 알았습니다. 모 단체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대체프로그램도 없이 폐지한 이유를 KBS는 밝혀라 라는 취지의 성명서를 낸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기사들을 살펴보니 ‘모금방식이 낡아 새로운 모금 방식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라는 취지로 폐지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살펴보았습니다. 간단한 ARS 전화참여로 할 수 있는 기부활동과 나눔의 문화를 전파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엔 공영방송인 KBS도 시청률에 따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의견도 있고, 시청자들의 눈물을 억지로 짜내어 기부를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했었는데 아이스버킷챌린지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모금방송으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작년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아이스버킷챌린지’와 같은 기부방식은 기부의 진정성 보단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사실 보고 있기가 불편한 프로그램입니다. 같은 어린아이라도 안타깝고 불행한 아이가 나오는 프로그램보다 요즘 예능에 많이 나오는 밝고 행복해 보이는 아이가 출연하는 것이 시청률이 더 많이 나오겠죠. 또 한쪽에서는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도 극단적인 행복으로 포장되어 우리의 아이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불행한 아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도움의 수단인 모금방송이 시청률 때문에 폐지가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결국 TV에 나오는 서로 다른 아이들은 ‘포장’된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요. 어찌되었든 저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당장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하는 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냥 내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서는 이 프로그램이 이제라도 폐지가 되었다니 그저 기쁩니다. 사진 출처 - KBS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사람들이 가진 장애인의 이미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만한 사연으로 사람들의 선행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가진 신체적조건과 환경을 극복하여 타인의 귀감이 될 정도로 성공한 ‘슈퍼장애인’이거나. 두 가지 극과 극의 이미지는 결코 장애인 스스로가 원한 삶은 아닙니다. TV라는 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장애인은 또 한 번 ‘슈퍼장애인’이 되길 강요받고 시청자 또한 왜곡된 장애인의 이미지만을 볼 수밖에 없어 현실에서는 서로 동떨어진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에 장애인만 그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을 불행하고 암울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퍼트리는 상징적인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장애운동의 역사를 담은 <동정은 싫다(No Pity)>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동정은 싫다’ 일까요? 미국에서 발행되던 장애 잡지 <메인스트림> 발행인 겸 편집자였던 신디 존스는 ‘동정은 억압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신디 존스는 1956년 다섯 살 때 세인트루이스에서 ‘동전모으기 운동’의 포스터로 뽑힌 적이 있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온 사진기자가 예쁜 드레스도 입혀주고 씩씩하게 웃으며 목발을 짚고 서있는 신디 존스의 사진은 시내 중심가 대형 광고판에도 실리게 되고, TV 모금방송에도 출연하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신디 존스는 마치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 생각은 소아마비예방접종안내 포스터에 자신의 사진이 쓰인 것을 본 순간 깨지고 맙니다. 건강한 아이의 사진 밑에는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 쓰여 있는 반면 자신의 사진 밑에는 ‘이것은 아닙니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죠. 목발을 짚고 우울한 표정을 지은 자신의 사진을 보며 “나는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죠. 이런 식으로 매체에 활용된 ‘포스터 아이’들과 미국 장애인운동가들은 장애인을 동정하게 만들어 모금을 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운동을 하였고, 한국의 장애인활동가들도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리퀘스트를 비판해 왔습니다. 모금활동의 단골 멘트인 ‘여러분의 작은 도움이 이 분들에게는 큰 희망이 된다’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요. 잠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라도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함께 변하지 않으면 ‘희망’이라는 단어는 ‘모금’을 위해 시민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도구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있다’라는 영국의 속담이 있습니다. ‘선’이라는 미덕은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파괴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 리퀘스트나 여러 분야의 모금 활동하는 분들의 선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모두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어떤 ‘집단’이 있는 것은 아닌 가 의심할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도록 두고 싶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을 외면하고,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와의 통합을 거부하고 싶은. 분명 책임 있는 곳은 따로 있는 데 사람들의 죄책감을 부추겨 ‘선의’로 해결하고 싶은. 사랑의 리퀘스트를 폐지한 공영방송 KBS에서 대체프로그램으로 밝혀주길 바랍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92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관피아’ 등 우리 사회의 각종 기득권 집단들의 결탁으로 인한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변협 등 수많은 단체들에서 헌법 소원을 내거나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등 논란이 여전하다. 마침내 김영란 법의 당사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직접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부분을 제외하는 등 원안에서 후퇴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표명하면서도 그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해충돌방지규정이 빠진 부분, 100만 원 이하 금품 수수시 직무관련성을 요구한 부분,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축소한 부분, 가족 금품 수수시 직무관련성을 요구한 부분, 부정청탁의 개념이 축소된 부분, 선출직 공직자들의 제3자 고충민원 전달을 부정청탁의 예외로 규정한 부분, 시행일을 1년 6개월 후로 규정한 부분 등이 원안인 입법예고안에서 후퇴했다고 말했다. 반면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의외라면서도 이들 역시 포함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양자 모두 민간 영역의 행위자이면서도 한국사회에서는 공공 영역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안 적용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국회의원들은 물론, 법무부, 안전행정부 등 다른 부처의 반발로 처벌요건이 완화된 정부안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된 이 법안은 누더기가 됐는데도 10개월여 동안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적 요구에 따라 마지못해 국회에서 논의가 된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기득권 세력에 의한 유무형의 노골적인 방해로 인해 하마터면 다른 법안들처럼 통과 자체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법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까지 포함되면서 이를 이용한 기득권 세력의 반대는 노골적이었다. 법안 내용의 왜곡과 과장, 그리고 억지 논리로 무장한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의 공격이 거세졌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물론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주문한 바 있었던 대통령까지도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법안 수정을 요구하는 등 법에 대한 공격은 실로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긴 하지만, 한겨레 등 일부 진보 언론조차 검찰과 경찰 권력의 강화와 적용 범위의 광대함 등을 우려하며 이 법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폐해를 국민에게 전가해서 사회를 파탄으로 이끌어 온 탐욕과 부패로 점철된 지배 블록 연합에게 일정정도의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매우 중요한 법안이다. 정당 정치, 선거 정치의 게임에 빠져 진보세력조차 철저하게 외면해 왔던 우리 사회의 실제 지배 세력들의 부패한 특권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과 경찰 권력의 강화 등 국가 권력의 법 악용 가능성, 법 적용 대상의 문제 등은 충분히 우려되는 지점이기에 시민사회의 적극적 개입과 통제권 확보를 통해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등의 보완책이 마련될 필요는 분명히 있지만, 그 어떤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자본은 물론, 이들과 얽혀 있는 각종 관료 마피아 뿐 아니라, 핵, 토건, 의료, 교육, 종교, 언론, 성산업 등등 우리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강고한 연대체를 형성,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모든 폐해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는 지배 블록 연합 구조에 파열을 내고 복지 국가로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물론 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 법안의 집행자 자신이 그 적용 대상자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단죄하고 지금까지 누려왔던 범죄적 수익과 무한 권력을 스스로 포기할리 없다. 따라서 검경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도 진보적 정치세력,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개입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법안은 단지 부패와 탐욕, 관피아 등의 척결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즉 접대 관행 중 가장 추악한 반인권적 부분, 즉 뇌물과 부패 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성접대 관행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고급술과 음식, 골프와 현금만으로는 접대를 통한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 격렬한 논의들에서 철저하게 빠져 있던 부분이 바로 여성, 인간적 요소에 대한 논의였다. 부패의 추악한 현장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승진과 성공과 특권을 도모하기 위해 바치는 ‘물건’으로 취급되어 왔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지난 3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91.5%)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동안 우리는 성매매 방지법이나 사학법,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법, 세모녀 법,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등등 수많은 법들이 어떻게 관료와 정치인, 기업인들과 언론들, 그리고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발악하는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누더기가 되거나 통과되지 못 하거나, 아니면 논의조차 없이 그냥 폐기되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다시 법 집행 단위의 문제가 은폐된 채, 향후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편법으로 추악한 관행이 이어질 경우 마치 법 자체가 문제가 있는 식으로 총체적 무력화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진보적 정치 세력과 시민사회의 안정적 개입의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221 | 추천: 0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첫날은 언제 어디든 누구나 어느 정도 낯설고 긴장한다. 먼저 그 환경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누구에게 말을 붙여야 할지 도무지 감도 없어서 앉은 자리가 편치 않다. 오늘도 그랬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연신 날리고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아랫입술을 자꾸 깨물면서 몸을 비비꼰다. 딸아이는 작년 1년 동안 아파트 단지에 있는 사립 어린이집에 다녔고, 오늘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오늘은 첫날이라 두 시간 정도 엄마와 같이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방 아이들과 눈도 마주치고 소극적이지만 놀이에 반응도 하고 선생님에게 같이 색칠하자고 하는 걸 보니 앞으로 잘 적응할 것 같아 한숨 놓인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5세가 되면 어린이집을 떠나 유치원 과정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작년부터 그 흐름이 강해져서 작년 이 일대 어린이집에서 5세반을 만들지 못할 정도였다. 딸애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신청자가 적어 올해도 5세반을 만들지 못했다. 4세반 친구들은 좋든 싫든 다니던 어린이집을 떠나 다른 기관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내년에 아이를 어느 기관으로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다 최종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친구가 아들을 공동육아에 보내려고 대기신청해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그녀가 지원을 포기하면서 내가 대신 그 어린이집 설명회에 참석하고 등원 신청을 했다. 이후 공동육아 지원서와 자기소개 등을 써서 보내고 부모 면접을 거쳐 아이의 등원이 결정되었다. 조합원 교육 차원에서 공동육아와 관련된 책의 독후감을 쓰면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공동육아, 이웃이 있는 가족 이야기>는 가족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공동육아에서 가족의 대안 모델을 발견하고, 실제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10개월 가까이 현장연구를 한 결과물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공동육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조합원들의 인터뷰 등을 읽으면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먼저, 아주 자세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동육아가 시작하게 된 배경과 처음 공동육아를 시작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쓰여진 10년 전보다 지금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수도 늘었을 테고 사회적인 관심이나 참여하는 사람들도 질적 양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여전히 공동육아에 대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그들만의 집합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여러 보육기관 중 하나라거나 여러 양육방식 중의 하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확실히 커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여러 개가 있는 마포구에 사는 덕분에, 여러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신청도 하고 설명회도 들을 수 있었다. 위 책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지만, 이미 영구터전까지 만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면 꽤 긴 세월 여러 조합원들이 무척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았을 것이라는 것. 아무리 아이들 교육에 대해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다 해도 서로 다른 사람들과 아이들이 만나 얼마나 사소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갈등하고 했을까. 그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어린이집에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내겐 행운이기도 하고, 또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감이랄까 부담감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경기 하남 미사리 경정공원에서 열린 ‘제8회 공동육아 한마당’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제공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 아무런 기대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친구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가 가능한 아이의 친구와 부모의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취학 전 인지교육에 휩쓸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 매일 바깥공기와 사물을 접할 수 있는 건강한 나들이를 할 수 있다는 기대... 중요한 건 이런 기대를 단지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만 하면 충족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 인식 혹은 자세라고 여겨진다. 낯선 조직과 문화에 부모도 아이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기간 동안에는 성급한 판단은 가능한 자제할 생각이다. 사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공동육아의 양육지침이나 운영방침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모든 점을 100퍼센트 동의한다고 하긴 어렵다. 이미 이십 년 가까운 공동육아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것들이라 일단은 그렇게 정해진 데 이유가 있다고 본다. 평말을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면, 평등한 관계 구조를 체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이해된다. 가정 내 성평등, 어른과 아이의 평등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당장 평말 사용이 문제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내겐 그 문화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연구 주제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책으로 먼저 보게 되었다. 두려움도 들고 기대감이 커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 당장 시우와 우리 부부에게 일어날 어떤 것을 상상하기보단, 공동육아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 독서였다. 공동육아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양육 형식이 될 수는 없을까, 조합원들끼리만 아니라 사는 동네에서도 이웃과 어떻게 교류가 가능할까 등등. 물론 당장은 맞벌이로 조합 활동을 잘해내야 하는 게 더 큰 문제지만.
2017-08-07 | hrights | 조회: 221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전 국가정보원장 원세훈이 국가기관을 이용하여 불법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죄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재판부(재판장 김상환)는 판결문에서 “대선 개입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왜곡하고,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부여한 평등한 자유 경쟁의 기회를 침해한 것이다. 이로써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하였다.”라고 했고,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은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야 할 정보기관이 존립 근거를 스스로 훼손하고 최고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하는 행위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재판부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에게 엄중하고 심중한 것으로 받아들여 마땅하다. 한국의 현실 정치, 특히 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검찰과 이에 부응하는 법원의 행태들을 보면서, 마치 뱃속에 암 덩어리가 자라나고 있는 양 도무지 온몸이 평안하지 못해 그저 입에서 욕만 나오던 암울한 상황에 이번 판결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판결로, 현 정권이 부정 선거를 통해 태어난 것임이 법적으로 여실하게 되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비록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다고 할지라도 대통령으로의 자신의 존재근거가 현저히 박약한 것임이 드러났는데도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두 후보의 득표차는 108만 표(2.6%)였다.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면, 만약 55만 표가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로 바뀌었다고 한다면, 문재인 후보가 현재 대통령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55만 표와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의 관계가 중요한 것 같다. 선거에 관한 국정원의 댓글이 13만 6,017개로 집계되었다. 주로 상대방 후보를 최대한 흠집 내고자 하는 이러한 엄청난 수의 댓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지후보를 변경했는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렇게 변경한 사람들이 다수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선거 직전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경찰 수사발표를 함으로써, 그 전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을 주장한 문재인 후보 쪽에 대해, “만약 그런 일이 없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 박근혜 후보가 어느 정도인지는 역시 파악할 수 없지만 득표에 있어서 크게 이득을 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에 의해 과연 55만 표의 이동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요컨대 부정 선거에 힘입어 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정 선거를 은폐하기 위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및 검찰 등의 정부의 핵심 기구들이 조직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상식에 의거하여 심지어 법원까지 이를 위해 동원되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을 정도다. 왜 현 정권이 공권력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검찰총장마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맞지 않다고 하여 갖은 수법을 다 동원해 쫓아낼 수밖에 없었겠는가.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 법적으로 처리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이 치명적으로 훼손되면서 불법 정권임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민들을 위한 정권이 아니라 그야말로 그들만을 위한 정권인 것으로 확정되고, 그 결과 대통령 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거나 포기에 준하는 급박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부정선거 은폐를 조직적으로 획책한 것은 현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반증한다. 만약 현 정권이 처음부터 부정 선거를 철저히 밝혀내고자 하는 의지를 감연히 실천했더라면, 설사 부정 선거가 기정사실로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현 정권이 그 나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굳건하다는 평가를 국민들로부터 받게 되었을 것이고, 설사 그 결과 정권의 정당성에 흠결이 남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국민들은 현 정권을 그래도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사건을 덮어 은폐하고자 하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말하자면 현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 관련해서 현 정권은 국민들로부터 전혀 신뢰받을 수 없는 정권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해서 재선거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하고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대통령의 사과 및 책임을 요구하는 발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문재인 대표는 선거 당시 “만약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이 사실이 아닐 경우 문재인 후보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한 대통령 박근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우리는 일찍이, 대선 당시 그러한 박근혜 후보의 발언에 대해 만약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설사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할지라도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있음을 시사 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이제 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부정선거도 부정선거이거니와 무엇보다도 당선된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책임을 진 대통령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에, 그 책임을 지고서 물러나야 마땅한 것이다. 따라서 당장이라도 적극적으로 정권의 불법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심화시켜나가는 시민운동을 펼쳐야 하겠지만, 만약 대법원에서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난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이라는 막중한 범죄로서 확정될 경우, 현 정권의 불법 부당성을 철저하게 제기할 뿐만 아니라, 재선거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민실천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이 난국을 근본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225 | 추천: 0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 2011년 아랍 봉기 발발과 시리아내전에 앞서, 2006년부터 이미 미국에서 새로운 중동지도들이 출현하였다. 이 지도들이 의미하는 바는 시리아내전 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중동 역내 정치・군사 행위자들에게는 없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이 새로운 지도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아랍 국가들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동부국가, 북부국가, 서부국가, 동남부국가, 중앙부국가 등 5개 국가들로 해체한다. 둘째, 2009년 이후 역내 석유・가스 파이프라인의 허부를 구상했던 시리아를 알라위국가, 수니국가, 쿠르드국가 등으로 해체한다. 셋째, 막대한 석유매장 국가인 이라크를 수니국가, 쿠르드국가, 시아국가 등으로 해체한다. 넷째, 시리아의 수니국가와 이라크의 수니국가를 통합하여 하나의 국가로, 시리아의 쿠르드국가와 이라크의 쿠르드국가를 통합하여 또 하나의 국가로 만든다. 다섯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가 해체되면서 새롭게 창출된 아랍 ‘시아국가’는 이라크남부를 기반으로 사우디 석유 매장지 동부지역을 통합함으로써 사우드왕가의 석유지배권을 박탈한다. 2006년 미국 군사전략가인 랄프 피터는 권위있는 미군사저널(Armed Forces Journal, 1863년 창간)에 “중동지도 다시 그리기”를 게재하였다. 이 지도에 따르면, 주변 아랍국들의 국경이 사우디아라비아 내부로 확장되어 사우디아라비아가 해체된다. 사우디 북부지역은 대 요르단으로, 남부지역은 예멘으로, 동부지역은 이라크에 기반을 둔 아랍 시아지역으로 통합되고,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서부지역에는 이슬람국가가 독립적으로 창설되며, 나즈드를 포함한 중앙부 지역만이 사우드왕가가 통치하는 독립국으로 존재한다. 2006년 랄프 피터의 “중동지도 다시 그리기” 2013년 9월 뉴욕 타임즈에 실린 로빈 라이트가 만든 “5개 국가를 14개 국가로 만들기” 지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국가, 북부국가, 서부국가, 남부국가, 중부 와하비 국가 등 5개의 독립국가로 분할된다. 시리아는 알라위국가, 수니국가, 쿠르드국가, 드루즈 도시국가, 이라크는 수니국가, 쿠르드국가, 시아국가, 바그다드 도시국가 등 몇 몇 국가로 해체된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제프리 골드버그는 “새로운 중동 지도”를 2008년 처음 내놓았고, 2014년 6월 재차 내놓았다. 랄프 피터와 로빈 라이트 지도와 마찬가지로, 제프리 골드버그 지도에서도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서부에 독립적인 이슬람국가가 건설된다. 이라크에 기반을 둔 아랍 시아국가는 사우디 동부유전 지대를 통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서남부 지역은 대 예멘으로 통합된다. 특별히, 제프리 골드버그 지도는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서안지역을 통합함으로써 창출되는 대 요르단을 제시하였다. 3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서안지역이 새롭게 요르단 영토로 통합될 경우, 요르단 왕가는 치명적인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지도들이 제시한 가설이 실행된다면, 중동지역은 불가피하게 외국세력들과 연계된 너무나 많은 정치・군사행위자들이 경합하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사우드왕가와 시리아의 아사드가 지배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473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애초에는 여야 합의로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어 마침내 입법될 것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시간의 부족’을 이유로 심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또 몇 개월은 뒤로 밀리게 됐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김영란법의 내용은 공직자의 금품수수, 그러니까 뇌물을 강력하게 처벌하려는 것이다. 현행 형법에도 뇌물죄가 있지만, 이 조항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뇌물과 공직자의 직무간에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뇌물이 구체적인 직무행위와 급부와 반대급부, 즉 ‘대가관계’에 있어야 한다. 그동안 많은 경우에 바로 이 대가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뇌물죄로 인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했거니와, 새로운 법률은 바로 이 점을 보완하려는 데에 그 입법취지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번에 정무위를 통과한 제정안은 공직자가 한 번에 같은 사람으로부터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직무관련성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되도록 했다. 100만 원 이하의 경우에는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더불어 공직자의 가족이 금품을 수수하는 것도 금지된다. 즉, 공직자의 배우자나 직계혈족 등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하여 1회에 100만 원이 넘거나 연간 총액이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한 때에는 당해 공직자 본인이 처벌된다. 이외에 ‘인허가 부정처리’, ‘공직자 인사개입’, ‘직무상 비밀누설’, ‘계약이나 보조금 차별’ 등과 같이 부정청탁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규정하고, 이러한 청탁을 받고 직무를 수행한 공직자도 역시 엄격하게 처벌되도록 하였다. 이상의 법률 제정안 내용은 애초 2012년 처음 제시된 김영란법의 초안보다는 다소 후퇴한 것이고, 2013년 나온 정부의 수정안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것이다. 수정안에 비해볼 때, 공직자의 범위가 넓어지는 등 약간 진전된 내용도 담고 있지만, 공직자의 금품수수에 관해서 100만 원을 기준으로 형사처벌여부를 결정하는 원안과의 절충은 이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하지만, 몇 가지의 쟁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첫째, 이 법이 적용되는 ‘공직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정무위는 입법, 사법, 행정 및 정부가 출자하는 공공기관 종사자, 국공립학교 교직원 외에도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기관 종사자까지 여기에 포함시킴으로써 대상자의 수를 크게 늘려 놓았다. 벌써 직접 적용대상이 약 180만 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약 1,800만 명에 대해 이 법률이 적용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학교나 언론과 같이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기관에 대해 공직과 같은 정도의 청렴함을 요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의 시행은 그 실효성을 떨어뜨리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적절하고 현실성있는 범위의 설정과 그 단계적인 확대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 구체적으로 규정된 부정청탁의 내용은 명백하고 충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애초 정부는 수정안에서 공무원과 국민간의 정상적인 의사소통, 말하자면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민원까지도 방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부정청탁의 내용을 축소하고 그 예외사유를 확대하려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허용되는 민원제기이고 어떤 것이 금지되는 청탁인지를 이참에 분명히 밝혀주어야 한다. 또 혹시 여기에 빠져있는 청탁행위는 없는지도 세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것은 법률이 적용되는 대상자 사이에 형평을 기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기왕 만들어지는 법률에 실효를 더하기 위함이다. 셋째, 원래 원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규정, 즉 공직자가 자신이나 혹은 자신의 가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은 이번 제정안에는 들어있지 않다. 어떤 이유로 이 내용이 보류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꼭 그래야 할 사정이 아니라면 원안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재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렇게 법안이 국회를 표류하는 사이에 성남시와 광주시는 자체적으로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앞서간 것이다. 사실, 김영란법에 대해 보기드물게 여야가 합의한 것은 아마도 이 법에 대한 전국민의 높은 지지를 반영한 탓일 것이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반대할 수 없는 법. 국회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조속히 이 법을 제정하여야 할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68 | 추천: 0
정지영/ 서울DPI 회장 2014년을 돌아본 사자성어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의 ‘지록위마’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거짓과 기만이 판친 2014년이 지나고 2015년이 왔습니다. 으레 이때쯤이면 묵은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의 계획을 세웠던 것 같은 데 유독 올해는 새해가 아닌 2014년 13월 같은 마음입니다. 매듭지어진 것은 없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2014년에 가장 많이 쓴 말은 ‘진실’입니다. 이 모든 일의 진실을 진심으로 알고 싶다는 것. 단순한 호기심도 아니고 누구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기 위함도 아닌 단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올바른 대안이 나오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래서 2015년의 신년계획은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하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장애인조차도 속고 있는, 비장애인은 더더욱 모를 수밖에 없는 장애인정책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일 큰 오해는 장애인이 되면(?) 나라에서 많은 금전적 지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권감수성이 높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누가 그런 오해를 하냐고 하시겠지만,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일반시민들은 그렇게들 생각하십니다. 매년 연초가 되면 TV에서 ‘올해부터 장애수당 2만원 인상 지급’ 등의 뉴스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것인데, 보도에 생략된 부분이 많습니다. 모든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대상자와 차상위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만 해당됩니다. 장애인연금(월 최대 200,000원)은 1,2급 장애인 중 소득인정액이 1인 가구 일 경우 870,000원 이하인 장애인에게만 해당됩니다. 매월 일정 소득을 지원받는 장애인이 있다면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연금이나 보훈대상자 일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체 장애인 중에 극히 일부이죠. 그리고 할인정책.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할인정책이 더 확대되어야한다는 주장과 할인보다 경제활동지원이나 소득보장, 그리고 접근권 확대가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당장에 소득이 없다보니 비용할인이 절박한 것은 이해되지만 지하철 무료승차는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이런 할인들은 비교적 소액의 비용에만 적용될 뿐, 정부에서는 저비용으로 큰 생색을 낼 수 있는 국가만 좋고 일반국민들은 오해하기 딱 좋을 뿐입니다. 두 번째는 장애인도 ‘시설’에서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사는 것을 원한다 입니다. 혹은 장애인도 시설에서 사는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인권침해, 보조금 횡령 등은 극히 일부이며 국가에서 잘 관리하고 현대식으로 편리하게 기능을 보강하여 좋은 시설에서 살면 좋지않겠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우리나라 장애인복지예산의 약 70%가 이러한 장애인복지시설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선택권’이라는 것은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선택지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상한 음식과 상하지 않은 음식 중에서 상하지 않은 음식을 선택한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2015년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 계획 중에 “장애인돌봄가족 휴가제 실시”가 포함됩니다. 전국 최초입니다. 장애인당사자 뿐 아니라 장애인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을 전적으로 지고 있는 장애인가족지원정책의 일환입니다. 굉장히 멋져 보이지만! 장애인가족에게 주는 휴가 기간동안 ‘장애인당사자는 장애인보호시설에서 보호’됩니다. 진정한 장애인가족지원정책이란 장애인당사자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24시간 활동보조인 지원, 주거지원, 소득보장, 발달장애인서포터 지원 등으로 장애인가족이 지고 있는 부양의 책임을 국가가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요.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그나마 가장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서울시 장애인정책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꾸로 가고 있는 서울시의 이동권정책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1월 6일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보행자전거과 서울시설공단 장애인콜택시운영처에서 보도 자료가 나왔습니다. 제목은 “휠체어 2대 타는 장애인콜택시로 교통약자 이동편리해져”입니다. 서울시는 현재 장애인전용개인택시 50대를 포함하여 총 410대의 특별교통수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같은 목적지로 이동하는 휠체어 이용자들이 따로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하여 2대가 동시에 탈 수 있는 차량 도입을 포함하여 특별교통수단 446대, 장애인 전용 개인택시 50대를 운행 하는 등 차량 종류를 다양화하고 운영방법을 개선하여 이용편의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환영할 만한 내용인 줄 알았으나.... 현재 사전접수제를 즉시콜로 바꾸고 1인 1일 4회, 1인 월 80회 이내로 이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제 많은 시민들도 아시다시피 장애인콜택시는 기존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과 사회활동참여지원을 위해 도입”된 것입니다. 특히 전동휠체어와 같은 보장구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현재까지 한계가 많아 장애인콜택시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월 이용횟수를 제한하게 된 배경으로는 ‘일부 특정인이 영업활동 등 개인용도로 연간 1,384회를 이용하는 등 과다 이용하고 있어 병원진료 등 긴급한 이용자가 차량을 배차 받을 수 있게’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이용통계를 보면 연간 1,000회 이상 이용하는 이용자는 ‘4명’입니다. 이 4명의 이용평균은 하루 3.1회 입니다. 하루 1.86회를 이용하는 이용자는 ‘35명’입니다. 2013년 전체 이용자 19,155중 0.2%에 불과합니다. 과다이용자(?)의 이용횟수도 전체 이용회수의 3%에 불과한데 이 분들의 이용이 장애인콜택시의 가장 큰 불만인 배차시간 지연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19일 모 인터넷신문의 기사로 의문은 풀립니다. <자가용 아닌데, 장애인콜택시 남용에 서울시 골머리>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일부 무분별한 이용자들로 인해 병원 방문 등 긴급히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들이 오랜 시간 대기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라는 서울시의 속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장애인콜택시를 여가생활 등 기타목적으로 사용한 경우는 전체 이용자 중 22.4%로 장애인 콜택시 도입 목적인 진료 및 치료 목적 이용자(25.8%)와 맞먹는 수치‘라는(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장애인의 이동권보장을 위해 도입된 것이 명백한 장애인콜택시를 ‘장애인들의 병원 및 시설 이동을 돕기 위해 시행’되었다고 왜곡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장애인콜택시의 대기시간이 긴 이유는 근본적으로 차량이 부족해서 이고, 접수순서대로 배차하는 배차시스 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저상버스와 같은 대체교통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콜택시와 저상버스도입을 위한 예산확대보다 ‘몰지각한 장애인들 탓’으로 ‘권리를 제한’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장애인단체와 당사자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새로운 운영지침을 철회할 마음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도 똑같이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버스나, 택시나, 전철을 타실 때 목적지를 밝히고 타시나요? 하루에 3번 버스타면 대중교통을 남용하는 것일까요? 사진 출처 - 필자 <장애인콜택시는 장애인들의 병원 및 시설 이동을 돕기 위해 시행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권보장과 사회활동참여지원을 위해 도입되었다고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에 친절히 설명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개편된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에서는 이 문구가 어디에도 기재되어있지 않습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73 | 추천: 0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한 해가 간다. 누군가 심장박동수와 시간이 반비례하는 거라며, 나이가 들면 심장박동수가 느려지므로 어릴 때와 비교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심장박동수를 빠르게 하면?” “죽지!” 한다. 어쨌거나 시간이 한 해, 한 해, 그야말로 쏘아버린 화살과도 같다. 그런데 2014년도는 그 박진감(?) 넘침으로 심장박동수를 빠르게 해 준 한 해였다. 사건과 사고, 사태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놀라움과 분노를 멈추게 하지 않는 한 해 였으니... 그리고 이 모든 사태로부터 오는 어이없음, 그로인한 빠른 심장박동은 정부의 놀라울 정도의 무능함과 일방통행 덕분에 가중되었다. ‘세월호’, ‘청와대 문건’, ‘땅콩회항’, ‘통진당 해산’, ‘비정규직대책’까지. 어린학생부터 노동자, 정당까지 생물학적, 정치적 죽음이 연일 줄을 이었다. 그 와중에 청와대는 그늘에서 권력놀음이나 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땅콩회항 현장에 있던 국토부 직원은 국민보다 재벌 3세를 ‘이해’ 했다. 청와대 권력비리는 결국 경찰 한 명과 전직비서 한 명으로 사건이 종결될 듯하고, 땅콩항공은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되지 않을까? 세월호는 그나마 특별법이 발효되어 내년에 진상조사를 한다니 일단은 두고 보자고 하면서도, 실상 ‘새정치연합’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해 왔던 동지이자 채찍이던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아 별 기대가 가지는 않는다. 야당이 진보적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를 지지해 주고 견인해 줄 파트너가 있을 때 가능하다. 여당과 적대를 형성할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이 있을 때 핵심야당이 그나마 진보적일 수 있는 것임에도 이들은 스스로 진보의 진정성을 버린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여당을 반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모두 대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지금도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의 폭이 좁아 정치외면 현상이 팽배하다고 걱정하는 와중에 이번 ‘통진당’ 해산으로 인해 정치적 선택의 폭은 더 협소해지고, 정치는 더 많은 불신을 양산할 것이다. ‘새정연’이 단단히 한몫했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선택이 가능한 사회이다. 그리고 민주적 정치는 이러한 다양한 사회를 반영해서 다양한 정치집단들이 존재하는 장이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민주주의를 버렸다. 삼권분립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삼위일체라는 전체주의적 원칙으로 대체함으로써 국민들을, 그리고 그의 선택을 무시해버렸다. 그래서 심장박동은 더 빨라진다. 무시당했음으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로인한 분노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정부는 또다시 심장박동을 춤추게 한다.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파견업종을 확대하여 55세 이상의 비정규직화도 가능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선물을 통해서. 기륭전자 직원들이 5일간 오체투지를 하며 비정규직 대책을 요구해왔고, 정규직만을 꿈꾸던 여성노동자가 결국 24개월을 꽉 채우던 날, 해고 통지를 받고 자살을 하고,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들의 대우를 못 견디어 분신하고, 쌍용자동차 문제가 다시 탑으로 올라가고, 삼성전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살을 하는 그 와중에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이런 짓거리를 했다. 가뜩이나 몸도 맘도 시린 연말에. 대체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 ‘자본가’들이 존재하기에 모두가 한 편이 되어 ‘자본가’의 편을 드는가? 우리 모두는 노동자이다. 자신의 노동을 팔아 삶을 생산, 재생산하고, 사회를 생산, 재생산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들이다. 세금을 먹고 사는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이나 모두 국민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경제부총리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상황에서, 정년이 60세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습니까?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정규직은 한번 뽑았다 그러면 평생 먹여 살려야 되고. 이렇게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는 따위의 소리나 운운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노동자들이기도 하단 걸 모르는 후안무치한 행위로 밖에는 못 보겠다. 기껏해야 자본가들의 돈에 의존하는 주제들이, 자신들이 자본가인줄 착각하는 현상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삼권과 경제를 장악한 엘리트들의 지적, 심리적 수준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민주는 이들만의, 이들 엘리트연합만을 위한 자유이고, 이들 간의 자리다툼이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가 된다. 되묻고 싶다.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나?” 이들 집단에게 국민은 ‘정치적 수사’일뿐이다. 대선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확실하게 보호하겠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차별을 해소하고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화물운송기사 등 특수 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겠습니다.”라고 언설한 바 있다. 그 약속의 결과가 지금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심장박동수가 또 다시 빨라진다. 개무시당했기 때문이다. 하루 남았다. 이 밤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면 새해다. 그런데 왠지 내년은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 같다. 심장박동수가 많이 빨라진 덕분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에 ‘히죽’ 웃음이 나온다. 시간이 길다?! 그것은 심장박동이 빨라진, 현재 궁지에 내던져진 우리들의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된다. 우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저들은 덜 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내몰릴 곳도 없음으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우리들’을 저들이 더 많이 자꾸 만들어줌으로 인해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런고로 히죽이 웃을 수 있게 된다. 고마운 일이다. 개인의 절망과 연대 속의 절망은 다르다. 절망이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 되길 바랄지 모르지만 결코 아니다. 연대하는 이들의 절망은 ‘죽음 속에서 삶을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 남은 2014년을 긴장감 속에서, 기대감 속에서 보낼 수 있게 된다. ‘밤아 깊어라! 그래야 새벽이 더 찬란하리라!’
2017-08-07 | hrights | 조회: 16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