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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05
조회
173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애초에는 여야 합의로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어 마침내 입법될 것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시간의 부족’을 이유로 심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또 몇 개월은 뒤로 밀리게 됐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김영란법의 내용은 공직자의 금품수수, 그러니까 뇌물을 강력하게 처벌하려는 것이다. 현행 형법에도 뇌물죄가 있지만, 이 조항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뇌물과 공직자의 직무간에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뇌물이 구체적인 직무행위와 급부와 반대급부, 즉 ‘대가관계’에 있어야 한다. 그동안 많은 경우에 바로 이 대가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뇌물죄로 인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했거니와, 새로운 법률은 바로 이 점을 보완하려는 데에 그 입법취지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번에 정무위를 통과한 제정안은 공직자가 한 번에 같은 사람으로부터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직무관련성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되도록 했다. 100만 원 이하의 경우에는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더불어 공직자의 가족이 금품을 수수하는 것도 금지된다. 즉, 공직자의 배우자나 직계혈족 등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하여 1회에 100만 원이 넘거나 연간 총액이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한 때에는 당해 공직자 본인이 처벌된다. 이외에 ‘인허가 부정처리’, ‘공직자 인사개입’, ‘직무상 비밀누설’, ‘계약이나 보조금 차별’ 등과 같이 부정청탁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규정하고, 이러한 청탁을 받고 직무를 수행한 공직자도 역시 엄격하게 처벌되도록 하였다.

이상의 법률 제정안 내용은 애초 2012년 처음 제시된 김영란법의 초안보다는 다소 후퇴한 것이고, 2013년 나온 정부의 수정안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것이다. 수정안에 비해볼 때, 공직자의 범위가 넓어지는 등 약간 진전된 내용도 담고 있지만, 공직자의 금품수수에 관해서 100만 원을 기준으로 형사처벌여부를 결정하는 원안과의 절충은 이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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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서울신문


하지만, 몇 가지의 쟁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첫째, 이 법이 적용되는 ‘공직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정무위는 입법, 사법, 행정 및 정부가 출자하는 공공기관 종사자, 국공립학교 교직원 외에도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기관 종사자까지 여기에 포함시킴으로써 대상자의 수를 크게 늘려 놓았다. 벌써 직접 적용대상이 약 180만 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약 1,800만 명에 대해 이 법률이 적용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학교나 언론과 같이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기관에 대해 공직과 같은 정도의 청렴함을 요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의 시행은 그 실효성을 떨어뜨리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적절하고 현실성있는 범위의 설정과 그 단계적인 확대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 구체적으로 규정된 부정청탁의 내용은 명백하고 충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애초 정부는 수정안에서 공무원과 국민간의 정상적인 의사소통, 말하자면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민원까지도 방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부정청탁의 내용을 축소하고 그 예외사유를 확대하려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허용되는 민원제기이고 어떤 것이 금지되는 청탁인지를 이참에 분명히 밝혀주어야 한다. 또 혹시 여기에 빠져있는 청탁행위는 없는지도 세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것은 법률이 적용되는 대상자 사이에 형평을 기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기왕 만들어지는 법률에 실효를 더하기 위함이다.

셋째, 원래 원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규정, 즉 공직자가 자신이나 혹은 자신의 가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은 이번 제정안에는 들어있지 않다. 어떤 이유로 이 내용이 보류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꼭 그래야 할 사정이 아니라면 원안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재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렇게 법안이 국회를 표류하는 사이에 성남시와 광주시는 자체적으로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앞서간 것이다. 사실, 김영란법에 대해 보기드물게 여야가 합의한 것은 아마도 이 법에 대한 전국민의 높은 지지를 반영한 탓일 것이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반대할 수 없는 법. 국회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조속히 이 법을 제정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