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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쯤 잘 살게 될까?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12
조회
192

이광조/ CBS PD



1970년대 중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 뒷벽에는 1980년대의 장밋빛 미래를 그린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활짝 웃고 있는 단란한 가족 옆에 자동차가 서 있는 포스터였던 것 같다. 몇 년 만 있으면 ‘마이카 시대’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자동차라고는 마을 근처에 있는 군부대를 드나드는 지프차밖에 못 봤던 터라 현실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포스터 속 이미지는 정말 근사했다.

하지만 농번기가 되면 집안일 돕느라 며칠씩 결석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포스터 속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장밋빛 환상일 뿐이었다. 어른들이 월사금이라고 말하던 수업료를 제 때 못내 선생님께 혼나고 땅콩잼이 든 식빵과 비닐에 든 우유를 주던 급식을 먹지 못해 기가 죽던 아이들에게 마이카 시대라는 게 현실감이 있었겠는가. 그래서인지 그 포스터에 대해 선생님도 특별하게 뭘 설명해준 것 같지 않다.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포스터에 담긴 가족의 모습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이미지였다.

잘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초등학교 뒷벽에 붙어 있던 그 포스터는 당시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권력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된 선전물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나라가 잘 살게 되고 난 뒤에나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지금은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해라,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저렇게 잘 살 수 있다.’ 아마 이런 논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터가 말한 대로 1980년대가 되어도 마이카 시대는 오지 않았고 그 때문이었는지 자유와 민주주의는 여전히 유예되었다. 그러다가 모두가 알다시피 87년 6월 민주항쟁이 벌어졌고, 뒤를 이어 7, 8, 9월에는 노동자 대투쟁이라 불린 파업사태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 결과, 개헌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결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도 두둑한 월급봉투도 국민들이 직접 싸워서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87년 7월부터 시작되었던 노동자 대투쟁이 없었던들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대중소비 시대, 마이카 시대가 가능했을까 싶다. 독재자들의 말을 믿고 묵묵히 일을 했더라도 시간의 문제일 뿐 마이카 시대도 오고 이제 먹고 살만해졌으니 독재자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40년 전 초등학교 뒷벽의 포스터가 생각난 건 최근 일고 있는 학교급식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경상남도에서는 도지사가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라며 무상급식을 중단했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감이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의 식당 출입을 통제하면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돈 있는 집안 아이들까지 공짜로 밥을 먹이는 건 낭비라는 주장이 나오는 다른 한편에서 돈이 없어 급식비를 제 때 내지 못한 아이들이 식당에서 쫓겨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의무교육의 ‘의무’가 부모의 ‘의무’를 말하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수업료를 제 때 못 내거나 급식비를 내지 못해 빵과 우유를 못 먹을 땐 가끔씩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의무교육의 ‘의무’가 국가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정책으로 실현된 무상급식, 보육 지원 등을 보면서 ‘드디어 우리사회도 조금씩 변하는구나’ 하는 희망을 품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불거진 급식논란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우리사회가 그동안 도대체 변하기는 한 걸까 하는 회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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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지 밥 먹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 교육을 입신출세의 수단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보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학교급식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지역의 농업과 환경, 생태를 교육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한다. 이게 교육이 아니라는 건가? 더구나 친환경 급식은 아이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농업의 건강한 발전과 환경을 보호하는 중요한 공적인 기능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주의가 뿌리 깊은 미국에서조차 친환경급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무상급식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지금도 ‘아직은 우리가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좀 더 잘 살게 되면 그 때 가서 하자는 얘기다. 우리는 언제쯤 아무런 논란 없이 아이들 밥 먹일 정도로 잘 살게 될까? 재벌가들의 자산이 지금보다 한 백배쯤 늘어나고 세계 백대 부호 명단에 한국인이 한 50명 정도 들어가면 그 때가 무상급식을 할 수 있을 때일까? 글쎄, 각자 지나온 역사를 한 번 돌이켜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