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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시간을 선물해 준 2014년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02
조회
165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한 해가 간다. 누군가 심장박동수와 시간이 반비례하는 거라며, 나이가 들면 심장박동수가 느려지므로 어릴 때와 비교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심장박동수를 빠르게 하면?” “죽지!” 한다. 어쨌거나 시간이 한 해, 한 해, 그야말로 쏘아버린 화살과도 같다. 그런데 2014년도는 그 박진감(?) 넘침으로 심장박동수를 빠르게 해 준 한 해였다. 사건과 사고, 사태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놀라움과 분노를 멈추게 하지 않는 한 해 였으니... 그리고 이 모든 사태로부터 오는 어이없음, 그로인한 빠른 심장박동은 정부의 놀라울 정도의 무능함과 일방통행 덕분에 가중되었다. ‘세월호’, ‘청와대 문건’, ‘땅콩회항’, ‘통진당 해산’, ‘비정규직대책’까지. 어린학생부터 노동자, 정당까지 생물학적, 정치적 죽음이 연일 줄을 이었다. 그 와중에 청와대는 그늘에서 권력놀음이나 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땅콩회항 현장에 있던 국토부 직원은 국민보다 재벌 3세를 ‘이해’ 했다. 청와대 권력비리는 결국 경찰 한 명과 전직비서 한 명으로 사건이 종결될 듯하고, 땅콩항공은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되지 않을까? 세월호는 그나마 특별법이 발효되어 내년에 진상조사를 한다니 일단은 두고 보자고 하면서도, 실상 ‘새정치연합’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해 왔던 동지이자 채찍이던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아 별 기대가 가지는 않는다. 야당이 진보적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를 지지해 주고 견인해 줄 파트너가 있을 때 가능하다. 여당과 적대를 형성할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이 있을 때 핵심야당이 그나마 진보적일 수 있는 것임에도 이들은 스스로 진보의 진정성을 버린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여당을 반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모두 대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지금도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의 폭이 좁아 정치외면 현상이 팽배하다고 걱정하는 와중에 이번 ‘통진당’ 해산으로 인해 정치적 선택의 폭은 더 협소해지고, 정치는 더 많은 불신을 양산할 것이다. ‘새정연’이 단단히 한몫했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선택이 가능한 사회이다. 그리고 민주적 정치는 이러한 다양한 사회를 반영해서 다양한 정치집단들이 존재하는 장이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민주주의를 버렸다. 삼권분립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삼위일체라는 전체주의적 원칙으로 대체함으로써 국민들을, 그리고 그의 선택을 무시해버렸다. 그래서 심장박동은 더 빨라진다. 무시당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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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로인한 분노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정부는 또다시 심장박동을 춤추게 한다.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파견업종을 확대하여 55세 이상의 비정규직화도 가능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선물을 통해서. 기륭전자 직원들이 5일간 오체투지를 하며 비정규직 대책을 요구해왔고, 정규직만을 꿈꾸던 여성노동자가 결국 24개월을 꽉 채우던 날, 해고 통지를 받고 자살을 하고,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들의 대우를 못 견디어 분신하고, 쌍용자동차 문제가 다시 탑으로 올라가고, 삼성전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살을 하는 그 와중에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이런 짓거리를 했다. 가뜩이나 몸도 맘도 시린 연말에. 대체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 ‘자본가’들이 존재하기에 모두가 한 편이 되어 ‘자본가’의 편을 드는가? 우리 모두는 노동자이다. 자신의 노동을 팔아 삶을 생산, 재생산하고, 사회를 생산, 재생산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들이다. 세금을 먹고 사는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이나 모두 국민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경제부총리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상황에서, 정년이 60세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습니까?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정규직은 한번 뽑았다 그러면 평생 먹여 살려야 되고. 이렇게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는 따위의 소리나 운운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노동자들이기도 하단 걸 모르는 후안무치한 행위로 밖에는 못 보겠다. 기껏해야 자본가들의 돈에 의존하는 주제들이, 자신들이 자본가인줄 착각하는 현상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삼권과 경제를 장악한 엘리트들의 지적, 심리적 수준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민주는 이들만의, 이들 엘리트연합만을 위한 자유이고, 이들 간의 자리다툼이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가 된다. 되묻고 싶다.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나?”

이들 집단에게 국민은 ‘정치적 수사’일뿐이다. 대선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확실하게 보호하겠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차별을 해소하고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화물운송기사 등 특수 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겠습니다.”라고 언설한 바 있다. 그 약속의 결과가 지금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심장박동수가 또 다시 빨라진다. 개무시당했기 때문이다.

하루 남았다. 이 밤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면 새해다. 그런데 왠지 내년은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 같다. 심장박동수가 많이 빨라진 덕분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에 ‘히죽’ 웃음이 나온다. 시간이 길다?! 그것은 심장박동이 빨라진, 현재 궁지에 내던져진 우리들의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된다. 우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저들은 덜 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내몰릴 곳도 없음으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우리들’을 저들이 더 많이 자꾸 만들어줌으로 인해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런고로 히죽이 웃을 수 있게 된다. 고마운 일이다. 개인의 절망과 연대 속의 절망은 다르다. 절망이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 되길 바랄지 모르지만 결코 아니다. 연대하는 이들의 절망은 ‘죽음 속에서 삶을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 남은 2014년을 긴장감 속에서, 기대감 속에서 보낼 수 있게 된다.

‘밤아 깊어라! 그래야 새벽이 더 찬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