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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은폐를 위한 현 정권의 조직적인 개입이 더 문제다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08
조회
23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전 국가정보원장 원세훈이 국가기관을 이용하여 불법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죄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재판부(재판장 김상환)는 판결문에서 “대선 개입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왜곡하고,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부여한 평등한 자유 경쟁의 기회를 침해한 것이다. 이로써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하였다.”라고 했고,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은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야 할 정보기관이 존립 근거를 스스로 훼손하고 최고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하는 행위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재판부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에게 엄중하고 심중한 것으로 받아들여 마땅하다.

한국의 현실 정치, 특히 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검찰과 이에 부응하는 법원의 행태들을 보면서, 마치 뱃속에 암 덩어리가 자라나고 있는 양 도무지 온몸이 평안하지 못해 그저 입에서 욕만 나오던 암울한 상황에 이번 판결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판결로, 현 정권이 부정 선거를 통해 태어난 것임이 법적으로 여실하게 되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비록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다고 할지라도 대통령으로의 자신의 존재근거가 현저히 박약한 것임이 드러났는데도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두 후보의 득표차는 108만 표(2.6%)였다.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면, 만약 55만 표가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로 바뀌었다고 한다면, 문재인 후보가 현재 대통령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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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55만 표와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의 관계가 중요한 것 같다. 선거에 관한 국정원의 댓글이 13만 6,017개로 집계되었다. 주로 상대방 후보를 최대한 흠집 내고자 하는 이러한 엄청난 수의 댓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지후보를 변경했는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렇게 변경한 사람들이 다수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선거 직전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경찰 수사발표를 함으로써, 그 전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을 주장한 문재인 후보 쪽에 대해, “만약 그런 일이 없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 박근혜 후보가 어느 정도인지는 역시 파악할 수 없지만 득표에 있어서 크게 이득을 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에 의해 과연 55만 표의 이동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요컨대 부정 선거에 힘입어 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정 선거를 은폐하기 위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및 검찰 등의 정부의 핵심 기구들이 조직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상식에 의거하여 심지어 법원까지 이를 위해 동원되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을 정도다.

왜 현 정권이 공권력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검찰총장마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맞지 않다고 하여 갖은 수법을 다 동원해 쫓아낼 수밖에 없었겠는가.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 법적으로 처리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이 치명적으로 훼손되면서 불법 정권임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민들을 위한 정권이 아니라 그야말로 그들만을 위한 정권인 것으로 확정되고, 그 결과 대통령 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거나 포기에 준하는 급박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부정선거 은폐를 조직적으로 획책한 것은 현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반증한다. 만약 현 정권이 처음부터 부정 선거를 철저히 밝혀내고자 하는 의지를 감연히 실천했더라면, 설사 부정 선거가 기정사실로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현 정권이 그 나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굳건하다는 평가를 국민들로부터 받게 되었을 것이고, 설사 그 결과 정권의 정당성에 흠결이 남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국민들은 현 정권을 그래도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사건을 덮어 은폐하고자 하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말하자면 현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 관련해서 현 정권은 국민들로부터 전혀 신뢰받을 수 없는 정권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해서 재선거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하고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대통령의 사과 및 책임을 요구하는 발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문재인 대표는 선거 당시 “만약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이 사실이 아닐 경우 문재인 후보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한 대통령 박근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우리는 일찍이, 대선 당시 그러한 박근혜 후보의 발언에 대해 만약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설사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할지라도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있음을 시사 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이제 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부정선거도 부정선거이거니와 무엇보다도 당선된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책임을 진 대통령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에, 그 책임을 지고서 물러나야 마땅한 것이다.

따라서 당장이라도 적극적으로 정권의 불법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심화시켜나가는 시민운동을 펼쳐야 하겠지만, 만약 대법원에서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난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이라는 막중한 범죄로서 확정될 경우, 현 정권의 불법 부당성을 철저하게 제기할 뿐만 아니라, 재선거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민실천운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이 난국을 근본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