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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동정은 싫다! (정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11
조회
400

정지영/ 전) 서울DPI 회장



KBS에서 17년간 방영되며 약 864억 원을 모금하여 4만 6천여 명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랑의 리퀘스트”가 폐지가 되었습니다. 폐지가 된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가는 데, 폐지가 된 사실은 최근에 알았습니다. 모 단체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대체프로그램도 없이 폐지한 이유를 KBS는 밝혀라 라는 취지의 성명서를 낸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기사들을 살펴보니 ‘모금방식이 낡아 새로운 모금 방식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라는 취지로 폐지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살펴보았습니다. 간단한 ARS 전화참여로 할 수 있는 기부활동과 나눔의 문화를 전파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엔 공영방송인 KBS도 시청률에 따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의견도 있고, 시청자들의 눈물을 억지로 짜내어 기부를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했었는데 아이스버킷챌린지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모금방송으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작년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아이스버킷챌린지’와 같은 기부방식은 기부의 진정성 보단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사실 보고 있기가 불편한 프로그램입니다. 같은 어린아이라도 안타깝고 불행한 아이가 나오는 프로그램보다 요즘 예능에 많이 나오는 밝고 행복해 보이는 아이가 출연하는 것이 시청률이 더 많이 나오겠죠. 또 한쪽에서는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도 극단적인 행복으로 포장되어 우리의 아이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불행한 아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도움의 수단인 모금방송이 시청률 때문에 폐지가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결국 TV에 나오는 서로 다른 아이들은 ‘포장’된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요.

어찌되었든 저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당장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하는 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냥 내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서는 이 프로그램이 이제라도 폐지가 되었다니 그저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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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KBS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사람들이 가진 장애인의 이미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만한 사연으로 사람들의 선행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가진 신체적조건과 환경을 극복하여 타인의 귀감이 될 정도로 성공한 ‘슈퍼장애인’이거나. 두 가지 극과 극의 이미지는 결코 장애인 스스로가 원한 삶은 아닙니다. TV라는 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장애인은 또 한 번 ‘슈퍼장애인’이 되길 강요받고 시청자 또한 왜곡된 장애인의 이미지만을 볼 수밖에 없어 현실에서는 서로 동떨어진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에 장애인만 그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을 불행하고 암울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퍼트리는 상징적인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장애운동의 역사를 담은 <동정은 싫다(No Pity)>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동정은 싫다’ 일까요? 미국에서 발행되던 장애 잡지 <메인스트림> 발행인 겸 편집자였던 신디 존스는 ‘동정은 억압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신디 존스는 1956년 다섯 살 때 세인트루이스에서 ‘동전모으기 운동’의 포스터로 뽑힌 적이 있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온 사진기자가 예쁜 드레스도 입혀주고 씩씩하게 웃으며 목발을 짚고 서있는 신디 존스의 사진은 시내 중심가 대형 광고판에도 실리게 되고, TV 모금방송에도 출연하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신디 존스는 마치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 생각은 소아마비예방접종안내 포스터에 자신의 사진이 쓰인 것을 본 순간 깨지고 맙니다. 건강한 아이의 사진 밑에는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 쓰여 있는 반면 자신의 사진 밑에는 ‘이것은 아닙니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죠. 목발을 짚고 우울한 표정을 지은 자신의 사진을 보며 “나는 쓸모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죠. 이런 식으로 매체에 활용된 ‘포스터 아이’들과 미국 장애인운동가들은 장애인을 동정하게 만들어 모금을 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운동을 하였고, 한국의 장애인활동가들도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리퀘스트를 비판해 왔습니다.

모금활동의 단골 멘트인 ‘여러분의 작은 도움이 이 분들에게는 큰 희망이 된다’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요. 잠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라도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함께 변하지 않으면 ‘희망’이라는 단어는 ‘모금’을 위해 시민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도구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있다’라는 영국의 속담이 있습니다. ‘선’이라는 미덕은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파괴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 리퀘스트나 여러 분야의 모금 활동하는 분들의 선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모두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어떤 ‘집단’이 있는 것은 아닌 가 의심할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도록 두고 싶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을 외면하고,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와의 통합을 거부하고 싶은. 분명 책임 있는 곳은 따로 있는 데 사람들의 죄책감을 부추겨 ‘선의’로 해결하고 싶은.

사랑의 리퀘스트를 폐지한 공영방송 KBS에서 대체프로그램으로 밝혀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