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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의 가치와 우려 지점, 그리고 우리의 자세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10
조회
226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관피아’ 등 우리 사회의 각종 기득권 집단들의 결탁으로 인한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변협 등 수많은 단체들에서 헌법 소원을 내거나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등 논란이 여전하다. 마침내 김영란 법의 당사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직접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부분을 제외하는 등 원안에서 후퇴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표명하면서도 그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해충돌방지규정이 빠진 부분, 100만 원 이하 금품 수수시 직무관련성을 요구한 부분,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축소한 부분, 가족 금품 수수시 직무관련성을 요구한 부분, 부정청탁의 개념이 축소된 부분, 선출직 공직자들의 제3자 고충민원 전달을 부정청탁의 예외로 규정한 부분, 시행일을 1년 6개월 후로 규정한 부분 등이 원안인 입법예고안에서 후퇴했다고 말했다. 반면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의외라면서도 이들 역시 포함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양자 모두 민간 영역의 행위자이면서도 한국사회에서는 공공 영역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안 적용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국회의원들은 물론, 법무부, 안전행정부 등 다른 부처의 반발로 처벌요건이 완화된 정부안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된 이 법안은 누더기가 됐는데도 10개월여 동안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적 요구에 따라 마지못해 국회에서 논의가 된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기득권 세력에 의한 유무형의 노골적인 방해로 인해 하마터면 다른 법안들처럼 통과 자체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법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까지 포함되면서 이를 이용한 기득권 세력의 반대는 노골적이었다. 법안 내용의 왜곡과 과장, 그리고 억지 논리로 무장한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의 공격이 거세졌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물론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주문한 바 있었던 대통령까지도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법안 수정을 요구하는 등 법에 대한 공격은 실로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긴 하지만, 한겨레 등 일부 진보 언론조차 검찰과 경찰 권력의 강화와 적용 범위의 광대함 등을 우려하며 이 법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폐해를 국민에게 전가해서 사회를 파탄으로 이끌어 온 탐욕과 부패로 점철된 지배 블록 연합에게 일정정도의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매우 중요한 법안이다. 정당 정치, 선거 정치의 게임에 빠져 진보세력조차 철저하게 외면해 왔던 우리 사회의 실제 지배 세력들의 부패한 특권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과 경찰 권력의 강화 등 국가 권력의 법 악용 가능성, 법 적용 대상의 문제 등은 충분히 우려되는 지점이기에 시민사회의 적극적 개입과 통제권 확보를 통해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등의 보완책이 마련될 필요는 분명히 있지만, 그 어떤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자본은 물론, 이들과 얽혀 있는 각종 관료 마피아 뿐 아니라, 핵, 토건, 의료, 교육, 종교, 언론, 성산업 등등 우리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강고한 연대체를 형성,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모든 폐해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는 지배 블록 연합 구조에 파열을 내고 복지 국가로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물론 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 법안의 집행자 자신이 그 적용 대상자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단죄하고 지금까지 누려왔던 범죄적 수익과 무한 권력을 스스로 포기할리 없다. 따라서 검경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도 진보적 정치세력,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개입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법안은 단지 부패와 탐욕, 관피아 등의 척결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즉 접대 관행 중 가장 추악한 반인권적 부분, 즉 뇌물과 부패 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성접대 관행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고급술과 음식, 골프와 현금만으로는 접대를 통한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 격렬한 논의들에서 철저하게 빠져 있던 부분이 바로 여성, 인간적 요소에 대한 논의였다. 부패의 추악한 현장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승진과 성공과 특권을 도모하기 위해 바치는 ‘물건’으로 취급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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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지난 3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91.5%)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동안 우리는 성매매 방지법이나 사학법,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법, 세모녀 법,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등등 수많은 법들이 어떻게 관료와 정치인, 기업인들과 언론들, 그리고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발악하는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누더기가 되거나 통과되지 못 하거나, 아니면 논의조차 없이 그냥 폐기되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다시 법 집행 단위의 문제가 은폐된 채, 향후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편법으로 추악한 관행이 이어질 경우 마치 법 자체가 문제가 있는 식으로 총체적 무력화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진보적 정치 세력과 시민사회의 안정적 개입의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