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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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통진당 사태로 절정에 달했던 ‘종북론’에 입각한 광적인 매카시즘은 노년층뿐 아니라, 중장년 층, 그리고 청년층에게도 깊게 스며들어 일베와 같은 온라인상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 조롱 폭식, 서북청년단 재건, 차별금지법 제정 무산, 그리고 사제 폭탄 투척에 이르는 일련의 오프라인에서의 물리적 행동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문제는 통일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러한 의식 하에 사회변혁 운동을 하려는 집단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공격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진짜 친북적인 태도에서 기인했든, 어쩔 수 없는 상대 인정이든 분명 민족주의 좌파 혹은 통일 운동 진영 자체의 운동 방식이 대중에게 호소력은커녕 반감을 사 왔던 면도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일 그 자체에만 목적을 두는 현재의 운동은 다른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 지금과 같은 남한의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뜯어 고쳐 바꾸지 않는 한, 통일 후 시장 경제에 익숙하지 못한 북한 주민의 상당수는 빈곤층이 되거나 저임금 노동자화 될 것이고, 작금의 한국 자본의 기업 문화가 유지된다면 기존의 사무직/생산직 차별,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지독한 잔업 문화에 더해 북한 출신에 대한 차별과 같은 다층적 착취 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지금도 이주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과 차별에 고통 받고 있는 일정 규모 이하의 영세 사업장이나 공장, 각종 자영업, 건설 현장 등에서 현재 이상의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남한의 건설족과 토건족, 투기꾼, 가진 자들, 지배자들, 그리고 각종 기득권 세력들은 북한의 구석구석까지도 개발과 시설 현대화, 경제의 자본주의화라는 명목 하에 부동산 소유, 땅 투기 전쟁을 벌이며 추악한 남한의 소유 구조를 더욱 천박하게 전이시키려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 특유하게 구조화된 국가의 책임회피적 고용 구조인 자영업 중심 발전 계획은 사적 소유와 시장에 낯설은 상태로 자영업에 뛰어들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수많은 사기와 남한의 대 영세 자영업 착취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헐값으로 북한의 기업들을 사들이고 북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놓고 착취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무엇보다도 기업들에 의한 개발과 투자의 현장들에는 반드시 성매매 접대 유흥업소가 넘쳐 날 것이고, 시장 경제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더욱 부족한 수많은 북한 여성들은 이들 업소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갈 것이다. 미국과 미군이 만들어 놓은 엄청난 여성 모멸적, 민족 모멸적 구조와 그 장소들에서의 미군 남성들의 범죄행위를 전혀 건드리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 정도로 한국 남성들에 의한 여성 착취 구조는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재앙을 막는 길은 언뜻 보기에 통일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남한에서의 이주 노동자, 여성 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며, 복지 체제 확립을 위한 각종 투쟁(성접대비 복지비 전환 투쟁, 토지 및 택지 국유화 투쟁, 부유세 신설 투쟁 등)이자,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위한 고소득층, 재벌들의 소득의 상당 부분을 복지로 강제하는 법의 제정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이 길이 통일 운동이 진정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인 것이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천박한 기업이나 부동산 투기자들, 기득권 세력들, 가진 자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네 노동 대중의 의식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이주 노동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의 문제에 있어서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우리는 뚜렷이 목도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아직 한국 노동 시장의 극소수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적개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현재 대량 실업 상황이나 경제 대공황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포에게조차 적대적인 상황으로 보아 만일 북한 동포들이 대규모로 노동 시장에 유입될 경우 그 사태는 가히 공포 그 자체이다. 정말이지, 이제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통일 이후의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깨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표라는 것을 인식할 때이다. 기존의 계급 차별 뿐 아니라, 이제야 조금씩 문제 제기되고 있는 여성, 학벌, 학력, 지연, 나이, 직업, 장애 등등에 의거한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차별과 배제와 불평등 문제 해결도 후퇴될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 속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서구 사회의 오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인 타민족 혐오증까지 노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경고는 일정 정도 타당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기업과 국가에 의한 착취와 억압과 동시에 일반 노동 대중 내에서조차 갈등과 차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 없는 사회 체제 실험은 소련에서나 북한에서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시장의 폭력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며 그것이야말로 특권적 기득권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 이후 북녘 사회마저 시장 경제라는 이름하에 남한식 천민자본주의가 이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연방 코리아를 주장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북한 인민들의 저임금 노동자화, 도시 빈민화, 그리고 북한 여성의 성매매 여성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근본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현재로서는 단 한 가지다. 북구와 서구 복지 국가에서 실행하고 있으며, 일부 제도는 우리보다 못한 국가에서조차 실행하고 있는 사회 민주주의적 변혁을 위해 싸워야 한다. 통일과 반미 투쟁의 열정을 주택, 토지의 공공성 확보, 교육, 의료의 무상 실시, 그리고 이를 위한 부유세 채택 및 공정 과세, 탈세 철저 징수 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싸우는 데로 전환해야 한다. 일 년에도 수십 개의 점포가 생기고 사라지는 극도로 불안정한 자영업 종사자 비율을 유럽 수준으로 줄일 수 있도록 국가가 고소득층 증세를 강제해 전 세계적으로 최하 수준인 사회 서비스업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그리고 자영업 중 고소득 전문직 및 유흥업소의 대규모 탈세 처벌, 교회 등 종교 시설의 세제 혜택 철폐, 그리고 수 조 원에 달하는 기업의 성접대 비용의 복지비로의 전환, 150만 명의 여성들이 옭아 메어져 있는 GDP 5%에 이르는 각종 성산업의 축소 등으로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는 어마어마한 비공식 경제를 줄여 재원을 크게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흥업소 등지에 기생하며 노동 대중의 주변화를 야기하고, 용역 폭력의 온상이 되고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각종 폭력배들의 축소를 위한 싸움이야말로 북한 인민들을 현재의 야만적 남한 자본주의의 음지로 빠져들지 않게 할 진정한 '통일 운동'이다. 지금과 같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유지된다면, 통일의 기쁨은 그 순간뿐일 것이다. 통일 운동이 종북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야 할 시점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80 | 추천: 0
박현도/ 종교학자 “당장 연락해서 비행기 세워, 나 이 비행기 못 가게 할 거야.” 지난 10여 일 동안 언론매체를 뒤덮은 소위 ‘땅콩(마카다미아)회항’의 주인공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미국 뉴욕발 인천행 대한항공 KE086 항공기 일등석에서 사무장에게 내뱉은 말이다. ‘갑(甲)질’도 이정도면 상상초월 슈퍼급이다. 비행기에 오르면 그 누구라도 기장 외에는 운항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어야 할 부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대한항공 사주의 딸이기에 “이 비행기는 아빠 것이자 내 것”이라는 유치찬란한 생각을 늘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사주의 딸이라는 이 하나로 고속 승진을 하고 대우를 받다보면 안하무인 성품이 없어도 생길 판. 갑질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온다. 본능적으로. 그런데, 이런 갑질이 어디 사주 딸에만 한정될 일이랴! 사회 곳곳에 갑질이 오징어처럼 널려 있다. 오징어는 맛있기라도 하지. 우리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갑질공화국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간혹 자문하고 싶을 정도다. “내가 책임자로 있는 한 너를 가만 두지 않겠어!”라는 갑질 표어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잔인한 인간이 되었을까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 사진)이 지난 12일 서울 김포공항에 있는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조사위원회로 들어서기 전 ‘땅콩회항’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앞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이날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조 전 부사장 행동을 사과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갑질이 이토록 극성을 부리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결국 초보적인 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가르쳐야 할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다. 자식을 예뻐하는 마음이 지나쳐 도대체 타인과 바르게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 집안 안 좋은 아이, 가난한 집 아이와 놀지 말라고 대놓고 가르치는 부모가 가장 많은 나라가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일 것이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용인하다 보니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남을 배려하는 삶’을 알지 못하고 자란다. 공부 잘해서 돈 많이 벌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지상 최대 목표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에서 난리치는 아이들은 볼 것도 없이 한국 아이라는 미국이나 캐나다 교포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동방예의지국은 그냥 말뿐이다. 조현아 부사장의 부친이자 대한항공 회장인 조양호 씨가 딸을 잘 못 키운 자신을 질책해달라고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맞다.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조부사장이 미성년자도 아닌데, 아비에게 잘못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스스로를 성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는 단순히 부모의 교육 문제만은 아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내 새끼라는 이유만으로 부사장 자리에 앉힌 것은 아비가 지은 큰 죄다. 그리고 이를 알고도 제어하지 못한 대한항공 임원진의 잘못이다. 임원진이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도록 회사 분위기를 만든 것은 조회장의 잘못이다. 돈이 많기에 힘을 마구 휘두른 조회장, 돈이 없기에 굴복한 임원진. 이런 문화를 지닌 회사가 대한항공이었고, 이는 곧 우리 사회의 압축판이다. 머리 아프게 복잡하지만, 아주 단순히 말해서, 제대로 인성교육이 안 된 사람이 돈을 많이 가졌을 때 생길 수 있는 모든 부조리를 조현아 부사장이 몸소 국민 모두에게 보여 준 사건이 바로 ‘땅콩회항’이다. 배려하는 삶을 가르치지 않고,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 높은 사람이 되라는 데에 우리 교육의 초점이 맞추어진 이상 ‘땅콩회항’은 끊임없이 이 땅에서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다시 개선해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진실로 배려하는 삶이 절실하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285 | 추천: 0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어머니, 일단 요기 짧은 선을 엄지랑 검지로 잡으시고...” “응, 이렇게?” “네, 그렇게 잡고 귀에 요 방향으로 넣으시면 돼요.” 역시, 이번에도 귀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벌써 열 번도 넘게 나는 같은 얘기를 하고 시어머니는 같은 동작을 따라해 봤지만, 한 차례 뇌출혈을 앓고 난 노인의 손가락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질 않았다. 밤새 엄마에게 보청기 끼는 법을 가르치다가 결국 화를 내고 포기했다는 시누이의 말이 떠올랐다. 친정엄마였다면 나 역시 똑같은 얘기를 다섯 번도 하기 전에 버럭 화를 내며 “그것도 못하느냐”고 면박을 줬을지 모른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약간은 객관적인 거리가 있는 관계라 열 번을 반복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그 상황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팔십 년을 사용해온 몸의 부분들이 하나씩 저렇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순간을, 어느 날 갑자기 맞게 된다는 걸 누가 미리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여든이 넘어 보청기를 맞춘 시어머니는 두 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신경이 무뎌진 손가락으로 보청기를 귀에 제대로 끼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보청기를 낀 상태에서는 주위의 소음이 너무 크게 들려서 괴로워하셨다. 집 바깥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셨다. 처음엔 왜 그러시나 했는데, 보청기를 직접 귀에 꽂고 소리를 들어보니 무슨 말인지 십분 이해가 됐다. 옆 사람 말소리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소리, 먼 데서 가까이로 오는 오토바이 소리 등 갖가지 주변 소리들이 한 번에 크게 들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러 소리 중에 앞 사람의 말소리에 집중할 수 있기까지 꽤 긴 적응기간이 필요해 보였다. 어쩌면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대다수 어머니들은 본인 몸 어딘가가 아주 크게 아프거나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지경이 되기 전엔 자식들의 치료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시어머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틀니는 보청기보다 한 해 전에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청기와 마찬가지로 적기를 놓친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이가 좋지 않은데도 틀니를 하자는 자식들의 권유를 미루다 결국 제대로 씹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게 되자 틀니를 했다. 그러다 보니 살릴 수 있는 성한 이가 하나도 남지 않아 이를 전부 다 뽑고 아랫니 윗니 전부를 틀니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틀니를 본 적도 없는 나였으니 부분 틀니가 아닌, 전체 틀니를 끼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 틀니를 끼면 아프다고 했고, 낀 상태에서 틀니가 움직인다며 힘들어했다. 전체 틀니를 했을 때는 성한 이가 한두 개라도 지탱해주는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잇몸 형태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틀니가 잇몸에 조금씩 맞지 않게 된다고. 의사 말이 가능하다면 성한 이를 몇 개라도 살릴 수 있을 때 틀니를 해야 제대로 틀니를 한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나머지 이까지 좀 더 길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틀니를 붙이는 접착제도 사다 드리고 입안이 건조해 틀니를 끼우기 힘든 점을 완화시키는 인공 침 같은 것도 사다 드렸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보청기와 틀니는 누구라도 직접 접하기 전에는 무척 생소한 물건이다. 게다가 팔십이 넘어 인체의 일부를 대신할 새로운 기구의 사용을 익힌다는 것은 아주 힘든 과정일 것이다. 노환으로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도 쇠퇴하고 반사 신경도 둔해지고 근력도 줄어들고 있는 노인에게는 사는 집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조금만 새롭고 낯설어져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손발에 익숙한 것들 외에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운동신경이 살아있어 새로운 작동법을 몸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때 틀니든 보청기든 하는 것이 좋다. 자식을 하나만 키울 때 모든 과정이 첫 경험이라 판단도 어렵고 힘든 것처럼, 나이 들고 병든 부모와 관련한 모든 과정 역시 짐작도 되지 않을뿐더러 예습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한다. 남편이 막내라 시부모가 친정 부모보다 10년 정도 연세가 많은데, 그분들을 통해 나는 친정 부모에게 앞으로 닥칠 미래를 짐작해 본다. 시어머니의 틀니와 보청기가 내게 준 가슴 아픈 충고라고 생각한다. 요즘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틀니와 보청기 얘기를 꺼내며 당부한다. 부모들이 안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라도 그냥 무심코 넘어가지 말라고, 새로운 작동법을 익혀 자연스레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그 두 가지라고.
2017-08-07 | hrights | 조회: 278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집에 돌아가도 어머니, 아버지가 없어 자정 가까운 늦은 밤까지 불빛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심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200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힘겹게 폐지를 수집하러 다니는 노인들이 170만 명이 넘는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범죄 청소년이 10만 명에 이르는데, 그 중에서 5범 이상의 범죄 청소년이 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OECD 34개국 중에서 자살률이 1위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요. 게다가 용산 참사에 이어, 밀양과 제주도 강정마을의 갈등, 세월호 참사, 윤일병 살해를 비롯한 군부대의 불안 등이 민심을 요동치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304명의 목숨이 생중계되는 TV화면을 통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터무니없이 사라졌습니다. 예사로 목숨을 걸고서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자들의 처절한 사회를 향한 호소가 줄을 잇습니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에 따른 폭력적인 노사갈등과 강압적인 진압이 있은 뒤 해고 노동자들 2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시피 했지만, 최근 대법원에서는 고등법원에서 위법해고라고 판결한 것을 뒤집고서 합법해고라고 최종 판결하여 회사의 입장을 두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복직의 기회를 박탈해 절망과 분노의 눈물을 삼키게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유명 재벌회사의 공모주 행사로 누군가는 업적과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수조 원의 재산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육박하여 확실하게 중진국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국가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유아 보육지원이냐, 초·중·고등학교의 무상급식이냐를 놓고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그나마 겨우 복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기초적인 복지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를 보면, 동아시아가 새로운 경제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한·중·일을 둘러싼 영토분쟁과 역사분쟁으로 외교 군사의 긴장이 한껏 높아지는 가운데 남북분단으로 인한 한반도의 갈등과 긴장이 중첩된 채 도무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 세계에서 제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갖지 않은 나라가 부탄과 우리 한국뿐이라고 하는데, 그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지 않겠다고 통사정을 해서 언제 돌려받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국무총리 후보들을 비롯해 장관직 후보로 지명된 인물들이 예사로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인물들임이 드러나 심지어 국회청문회도 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하는 등의 인사 난맥이 줄을 잇더니, 알고 보니 비선 조직의 라인이 배후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식으로 되지도 않은 사적인 권력을 휘둘렀다는 신문기사가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비정상의 비극적인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면서 바탕에서부터 사회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다는 징후와 증거들이 속출하는 데도 어느 하나 정상적으로 해결되는 일이 없습니다. 검찰을 위시한 이른바 공권력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권력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이게 민주공화국입니까? 민주공화국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정치권력이 자신의 본분을 알아야 합니다. 정치권력은 흔히 말하는 권력과 다릅니다. 흔히 말하는 권력은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인간관계를 배타적인 방향으로 주인과 노예로 가르는 것입니다. 진짜 권력은 철학자 미셀 푸코가 말한 것처럼 그물처럼 촘촘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배타적인 사회적 권력입니다. 배타적인 사회적 권력은 배타적인 부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짜 권력은 나의 사회적인 생명을 위해 남들의 자연적 생명과 사회적 생명 그리고 문화적 생명마저도 수단으로 삼아 지배하고 조절하고 훈육해서 그 남들을 노예로 길들여 거기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최대한 배타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자본주의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배타적인 부가 그 핵심적인 수단으로 결합되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은 이러한 배타적인 사회 권력과 그 바탕의 수단이 되는 부에 법을 통해 재갈을 물려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권력입니다. 정치권력은 권력에 대한 권력, 즉 메타 권력입니다. 말하자면, 정치권력은 권력을 없애기 위한, 권력 아닌 권력인 것입니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회 권력과 부가 함부로 약육강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일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력의 본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능하면 최소한의 노예 상태라 할지라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력입니다. 그 결과, 함께 즐기지 않으면 안 되는 문학과 예술, 축제와 스포츠 등을 비롯해서 학문과 종교 등의 영역을 통해 구현되는 문화적 생명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껏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정치권력입니다. 요컨대 정치권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민주적이면서도 공화적인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몽테스키외의 탁월한 선구적인 주장에 따라 현대 민주사회의 정치권력이 입법과 행정과 사법이라는 이른바 삼권으로 분립되어 작동한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적과 동지로 나뉘는 집단적인 대립 관계로 봄으로써 배타성을 정치의 근본 성격으로 본 칼 슈미트의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왜곡된 마키아벨리즘적인 사유 방식 역시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배타적인 사회 권력과 부의 수단으로 전락된다는 것이 어느 한쪽에서라도 확인된다면, 그런 만큼 그 정치권력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배타적인 집단 또는 개인의 사유물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만큼 그 정치권력을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권력 아닌 정치권력입니다. 뻔히 힘든 현실을 알면서도 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해 온갖 유혹의 공약들을 내 거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권력을 개인 또는 기껏해야 몇몇 소수의 사유물로 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는 한 번 태어나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간이 과연 어떻게 자신의 삶을 최대한 긍정할 수 있는가를 과제로 삼아 이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정치야말로 근본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도덕적이고 동시에 철학적인 것입니다. 정치는, 첫째로 어떻게 하면 한 사회 내에서 생산되는 온갖 재화와 용역들을 최대한 평등하게 그리고 정의롭게 배분함으로써 공화적인 전체의 삶을 추구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로, 정치는 한 사회 내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용역들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닌 내용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셋째로 결국 정치는 한 사회 내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함께 향유하면 할수록 더욱 그 의미와 가치가 높아지는 내용들을 생산하는 쪽으로 힘을 모을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정치권력, 즉 입법과 행정과 사법의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합니다. 현실이 가혹하게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고 해서 이를 핑계로 본분과 이상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그것으로 정치는 이미 제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서 기어들어간 꼴이고, 진정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정치권력은 이미 최고도의 악행을 저지를 준비를 끝마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①항의 근본정신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장관들, 여의도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법부의 판사들이 처음부터 다시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78 | 추천: 0
이광조/ CBS PD 기분 좋은 뉴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요즘 같은 상황에서 ‘나라가 운이 좋다’는 말은 참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욕먹기 딱 좋은 얘기다. 하지만 나는 요즘 우리나라가 정말 억세게 운이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비꼬는 게 아니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요즘 시중에서 유행어가 된 이른바 ‘4자방 비리’에 관한 것이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22조 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은 보수 ㆍ 유지비용으로 해마다 7천억 원대가 넘는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으로 해마다 녹조가 생겨나고 수질오염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분통이 터질 노릇인데, 앞으로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 모른단다.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는 ‘VIP 자원외교’에만 양해각서 45건에 1조 4천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자됐는데,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약서 서명, 수정에 대한 대가로 상대방에게 수천억 원을 건넸다고 한다. 자원외교에 동원된 공기업들의 부채가 늘어나면서 부채에 딸린 이자 비용만 한 해에 1조 5천억 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자원개발 전체를 보면 대통령이 직접 챙기거나 인척과 측근들이 자원외교 특사로 나서서 41조 원을 투자했고 이중 5조 원만을 회수하고 나머지는 사라졌다고 한다. 방위산업 비리는 또 어떤가? 1만 원짜리 USB를 95만 원에 사들인 건 애교에 가깝다.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구조함이 제 역할을 못한 데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조한 통영함이 거대한 부실덩어리로 밝혀졌다. 2억 원짜리 음파탐지기를 41억 원에 구매했단다. 그나마 고기잡이용 어군탐지기라 군함에서는 못쓴단다. 중고 엔진과 불량 부품이 사용된 해군고속단정은 훈련 중 수시로 불이 나 장병들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렸다고 한다. 굵직한 것 몇 가지만 꼽더라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비리의 사슬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지 짐작이 간다. 이른바 ‘4자방’ 비리로 인해 낭비된 세금이 100조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이 정치공세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거대한 부정부패가 저질러지고 그 속에서 천문학적인 세금이 낭비됐지만, 아직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고 그런 대로 굴러가고 있다. 기적이다. 억세게 운이 좋은 거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국민안전처가 공룡부처로 출범했다는 뉴스를 보면 정부가 어디에 화수분이라도 숨겨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대한민국의 기가 막힌 운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어쩌면 앞서 얘기한 사례들보다 훨씬 더 운이 좋은 경우다. 그건 바로 캐도 캐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원전비리와 부실한 관리 문제다. 우선 최근에 밝혀진 몇 가지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지난 10월 국감자료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현재 가동 중인 23기의 원전과 건설 중인 5기의 원전에서 사용하는 부품 중 시험성적서와 기기검증서가 위조됐거나 진위 여부를 판명할 수 없는 부품이 모두 3,812건이나 됐다고 한다. 불량부품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여기에 협력업체 직원들이 한수원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방사성폐기물을 직접 반출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뤄졌는가 하면,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에 발생한 화재를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발견해 진화한 아찔한 사건도 있었다.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원전비리로 인한 피해액만 2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는데, 그 2조 원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방사능이 대규모로 유출되는 대형 사고는 없었다. 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경우인가. 이 끝내주는 운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좋으련만 우리의 경험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일깨운다. 철근을 빼먹은 아파트와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두 동강이 난 믿기지 않는 장면을 실제로 목격하지 않았는가.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 계속 가동하겠다는 배짱에 겁이 덜컥 난다. 수십조를 퍼부어 아름다운 강들을 망가뜨린 4대강 사업, 제대로 된 타당성 조사도 없이 수십조를 날려버린 자원외교, 제대로 작동하는 무기가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의 방위산업 비리, 여기에 원전비리까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다. 억세게 좋은 운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2017-08-07 | hrights | 조회: 167 | 추천: 0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과 IS의 주장 2014년 10월 13일(월)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이스탄불대학 연설에서 “역내의 모든 갈등은 100년 전(제1차 세계대전)에 이미 기획되었다. 이 갈등을 종식시키는 것이 나의 의무다. 서구인들은 자유언론, 독립전쟁, 지하드 뒤에 숨어서 사이크스-피코(1916) 협정을 다시 만들고 있다. 현재 터키에서 활동하는 변장한 21세기의 아라비아 로렌스(T.E. 로렌스)들이 있다. 그들은 저널리스트, 종교인, 저술가, 테러리스트들이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에르도안의 주장은 IS(이슬람국가, 2014.06.29-현재)의 주장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S는 2014년 6월 29일 ‘칼리파 국가’를 선언하면서,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종식, The End of Sykes-Picot’을 창설목표로 내세웠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저널리스트들을 참수하였다. □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란?: 국가 정체성 위기와 재설정되는 국경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란 제1차 세계대전과정에서 오스만제국 영역을 해체하여 영국 통치영역과 프랑스 통치영역으로 나누어 분할통치 하기 위한 안이었다. 1916년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다음 지도에서 보듯이 오스만제국이 통치하던 레반트와 아라비아반도 일부지역을 영국 통치영역과 프랑스 통치영역으로 분할하면서, 팔레스타인지역을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공동 통치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림 출처 - http://www.passia.org/ 1920년 국제연맹은 이 지역에 사이크스-피코 협정과 거의 일치하는 영국과 프랑스 위임통치를 부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 지역에서 영국과 프랑스 위임통치가 종결되었고, 독립 국가들이 건설되었다. 이 독립국가를 통치하는 자들은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 위임통치 당국과 동맹을 맺고 협력하던 세력들이었다. 독립 국가를 건설한 세력들 중 획정된 경계 안에서 새로 건설된 중동국가들은 새로운 통치방식을 채택하고 독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유럽열강들이 정한 한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유럽열강들은 중동국가 간 경계를 획정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고, 서로 경쟁관계이긴 했지만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중동 역내 문제에 깊이 개입해왔다. 그런데 2011년 아랍 봉기 이후 내전과 쿠데타 등을 거치면서 IS와 같은 초국가적인 단체가 등장하고, 이슬람 세력들이 국경을 넘어 활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간의 경계뿐만 아니라, 각 국가 내부에서도 종파, 지역, 사회 집단 간의 경계들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기존의 국가 정체성이 위기 상황에 직면하였다. □ 오늘날 아라비아 로렌스는 누구인가?: ‘칼리파 국가’ 약속, 결과는 모자이크 공국 영국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영국과 프랑스 통치)’과 충돌하는 ‘아랍인이 통치하는 칼리파 국가 건설’을 하심가의 후세인에게 이미 제안하였다. 1915년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이 오스만제국의 지방정부로서 메카와 메디나를 통치하던 하심가(아랍인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알려짐)의 후세인에게 ‘영국정부는 아랍인들이 칼리파직을 수행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맥마흔은 후세인에게 다음 지도에서 보이는 지역을 ‘아랍인이 통치하는 칼리파국가 영역’으로 후세인에게 약속하였다. 그림 출처 - http://www.passia.org/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현장에서 직접 하심가를 이끌어 오스만제국(투르크인 칼리파)에 대항하는 아랍인들의 전쟁(아랍반란)을 주도한 로렌스 대령은 1916년 1월 정보용 메모에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밝혔다. 아랍반란은 우리(영국)의 당면 목표와 부합하고 이슬람 블록의 붕괴와 오스만제국의 패배와 붕괴로 이끌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익이다. 오스만제국을 여러 아랍 국가들로 분할하는 것은 우리에게 해롭지 않다. 아랍인들은 투르크인들보다 훨씬 덜 안정적이다. 적당히 다루어진다면, 그들은 정치적인 분열 상태, 결집할 수 없는 서로 분쟁하는 매우 작은 모자이크 공국들의 집합체로 남을 것이다. 전쟁 결과 맥마흔이 후세인에게 한 약속 ‘아랍인이 통치하는 칼리파 국가 건설안’은 사라지고, 로렌스의 메모 내용대로 ‘작은 모자이크 공국들의 집합체’가 실현되었다. 맥마흔이 하심가의 후세인에게 약속했던 칼리파국가 영역은 영국과 프랑스의 위임통치와 간접통치를 거친 이후, 이스라엘,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카타르, 바레인, UAE, 오만으로 분할되었다. 맥마흔의 ‘칼리파국가 건설’ 약속을 믿은 하심가는 로렌스가 이끄는 오스만제국 해체 작전에 열정적으로 참가했으나, 결국 후세인의 하심가는 영국 통치 아래 하위협력 토후로서 요르단과 이라크 통치자로 만족해야만 했다. 영국은 오스만제국을 해체시키기 위해서 하심가를 활용하기 위한 유용한 명분으로 ‘칼리파국가 창설’을 제안하고, 아랍반란을 주도하였고, 오스만제국 영역을 여러 국가들로 분할 해체시킴으로써 결국 그 목표를 성취했다. 그렇다면, 21세기 아라비아 로렌스는 누구이며, 그의 협력자는 누구인가?
2017-08-07 | hrights | 조회: 693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4대강 공사의 담합이 또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9~2010년 사이 수자원공사가 발주한 4대강 2차 턴키공사의 6개 공구 중에서 낙동강 17공구, 금강 1공구, 한강 17공구 등 3개 입찰에서 7개 건설사들이 사전에 투찰가격과 들러리 참여 등을 담합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이 건설사들에 모두 15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4대강 공사의 담합 적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12년 6월에 공정거래위원회는 4대강 1차 턴키공사 입찰담합 조사 결과에서, 상위 6개 건설사가 담합을 주도했으며 19개 건설업자가 공동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때에도 공정위는 마찬가지로 이들 건설사에 모두 1천115억 원의 과징금을 부담하도록 했다. 그런데, 담합사실 자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묵인 내지는 조장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데 있다. 즉, 1차 담합 적발로 인해 과징금을 부과 받은 삼성물산은 정부를 상대로 그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 재판과정에서 “(정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내에 4대강 공사를 마칠 수 있도록 다수 공구를 동시 발주하면서 건설사들이 공동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거나 묵인했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후에 삼성물산은 이러한 주장은 자신들이 직접 한 것이 아니며,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측에서 정부자료를 인용하여 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사실 4대강 사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정부의 묵인과 방조가 아니라 강요에 의해 참여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이익을 내지도 못했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까지 때렸으니 속이 터질 것 같다”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SBS 사실 4대강 공사에서 건설사들의 담합, 그리고 정부의 묵인의혹은 이미 공사초기에서부터 의심이 제기된 대목이다. 즉, 사업이 시작될 무렵인 2009년 11월 당시 민주통합당은 4대강 사업 구간 중 낙동강 공구에 참여한 중소기업의 20%가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또 정호열 당시 공정거래위원장도 공개적으로 4대강 사업 턴키공사의 담합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그런데 이와 같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은 불과 1달여 이후 업체들의 자진신고나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조사에 진척이 없다는 것으로 바뀌고 만다). 이러한 정부의 방조는 결국 후에 사실로 밝혀지는데, 감사원이 2013년 4대강 사업 담합 의혹과 입찰 부조리를 집중 점검한 이후 “건설사들의 호텔 회동 등 담합 정황이 포착됐는데도 국토부는 별다른 제재 없이 2011년 말까지 준공하기 위해 사업비 4조 1,000억 원 규모의 1차 턴키공사를 한꺼번에 발주해 담합을 사실상 방조했다”고 밝히기에 이른 것이다. 이쯤 되면 4대강 담합은 사기업체들의 비리 수준을 넘어 국가범죄의 차원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이번에 적발된 담합으로 인한 국가 예산의 손실규모가 1,4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거니와, (이를 과징금과 비교할 때, 그 제재액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공정위는 이에 대해 과징금 액수는 건설사들의 경영난(!)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예산낭비가 어디 이뿐인가. 잘 알려진 대로, 4대강 사업의 총사업비는 22조 2,269억 원이다. 또 공사 이후의 유지관리비는 정부 추산 매년 2,500억 원이다. 사업의 일부를 담당했던 수자원공사는 여기에 투자한 8조 원 때문에 4년 동안 이자 비용만 6천 7백억 원을 물어야 한다. 정부는 이 가운데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3천 250억 원을, 2012년에는 3천 558억 원의 빚을 대신 부담해 주었다. 이런 막대한 예산투여에도 불구하고, 생태계 혼란을 비롯한 엄청난 환경침해와 수질악화, 홍수피해 등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2천억 원을 들여 모든 보를 해체하고 4대강을 공사 이전으로 되돌리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지자체 예산의 부담을 이유로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무상급식의 축소를 옹호한 바 있다. 불요불급한 예산의 쓰임새가 어디 이뿐일까. 노인복지, 비정규직 지원 등 긴급하고 절실한 사회적 필요는 도처에 있을 것이고, 그래서 한 푼의 예산이라도 아껴서 꼭 필요한 곳에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22조원 이상이 들어간 4대강 사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지난 정부의 일이었다고, 정책 판단에 착오가 있었다고 어물쩍 넘어가도 되는 일인가. 이제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예산 낭비의 책임자들을 국정조사의 증언대에, 아니 법정에 세워야 한다. 그 진실을 밝혀야 하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것은 정부의 의무이고, 국민의 권리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61 | 추천: 0
정지영/ 서울DPI 회장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그 후로 휠체어를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되기 전 비장애인이었던 학창 시절에 유독 달리기에 재능이 없어 운동회라는 것에 별로 좋은 기억은 없습니다. 가을운동회. 축제. 그런 단어는 저에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달리기대회에서 일등부터 삼등까지 찍어주던 도장 때문입니다. 달리기에서는 늘 꼴등이었던 저는 운동회하면 꼴등에게는 찍어주지 않는 도장만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팔뚝이 부끄러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긴팔을 입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깟 달리기 하나로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나,라고 생각하실 수 도 있겠지만 달리기를 잘하지 못하는 것 하나로 운동회 전체에 대한 기억이 나빠진 것은, 아마도 개인에게 찍어주던 ‘도장’으로 상징되는 분리와 낙인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장을 받은 아이와 못 받은 아이 사이에서 저는 항상 도장을 못 받은 아이였지만, 비장애인었던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일등이 될 수 있는 기회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한 초등학교에서 늘 꼴등만 하는 친구를 위해 학생들이 손을 잡고 똑같이 결승선에 들어와 모두가 일등이었다는 기사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접하고 제 마음만큼은 훈훈해지지 않았습니다. 달리기를 못하던 삐쩍 마르고, 힘없는 아이였던 저의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그 입장이 되어봤습니다.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고마웠겠지만, 누구의 양보와 배려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인생을 예감하며 슬펐을지도 모릅니다. 장애인부모가 아이를 가질 때, 내 아이가 장애아이면 어떻게 될까라는 두려움이 더 큽니다. 양수검사에서 장애아일 확률이 높을 경우에 낙태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장애인도 많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왔던 인생에서 차별받고, 소외되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몇 십 배의 노력이 필요했던 경험을 자식이 똑같이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일 것입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스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장애인이어도 괜찮아. 내가 너를 이해해줄게.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장애인이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면 긍정적으로 세상을 개척할 수 있다’라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사회에서 장애는 긍정적이지 않은데 ‘장애는 개성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다’라는 주장은 사회의 불평등을 편견 없는 태도로만 해결하겠다는 위선일 뿐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할 몫을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친구의 상황을 잘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일등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기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천했습니다. 약자를 배려하고 그 마음을 몸소 보여준 아이들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제는 어른들의 몫이 남아있습니다. 어른들은 왜 운동회를 모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남기지 못하게 하는지. 어른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종목을 만들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의 룰을, 1등이 아니어도 행복할 권리를 사회의 룰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선함이 어른이 되어서는 ‘약자에 대한 우월한 태도’에서 나오는 ‘시혜’로 만들고, 배려심을 동정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기 때문이고, 인권은 가진 자가 조금 양보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42 | 추천: 0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기억이 뇌의 어딘가 저장되어 필요할 때 끄집어 쓸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 정설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억이 뇌라는 저장매체에 응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 같은 경험을 한 집단에서도 어떤 이는 사건의 이러한 면을, 다른 어떤 이는 사건의 또 다른 면을 기억하게 되는 걸까? 아마도 이것은 사건이나 경험이 각각의 사람이 처해있는 특수한 맥락과 상황 속에서 다르게 해석되어지거나, 혹은 개인적 차원에서 재구성되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렇게 기억이 구성 내지 재구성되어지는 것이라면, 집단으로서의 기억은 그 자체로 권력쟁투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불리한 집단은 그 기억을 통째로 지우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각색하려 할 것이다. 반대로 그 기억이 진실로 인정받고 역사 속에 존속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집단은 그 기억을 보존하고 나아가 각인되길 바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간은 자신(들)의 입장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기억을 둘러싼 보존이냐 물타기냐를 두고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역사를 둘러싼 해석 및 재해석은 이러한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 역시 마찬가지이고, 박정희 시절에 대한 평가와 해석도 결국 경험 그대로의 날 것이 아니라 해석과 분석이 덧칠해진 과거의 기억에 대한 투쟁으로 볼 수 있다. 현재에 와서는 대표적으로 세월호 사건이 있다. ‘대형교통사고...’, ‘항공사고와의 비교발언’, ‘보상금정치’, ‘이제는 다시 생활로 돌아갈 때...’라는 세월호사건을 둘러싼 담론들은 대표적으로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고 시도하거나 각색을 통해 물을 흐리고 싶은 대표적인 현상들이다. 그래서 ‘집합적 기억’을 둘러싼 투쟁은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투쟁이기도 하고, 진실을 둘러싼 투쟁이기도 하다. 기억이란 오감을 통한 경험에서 출발해서 감정을 거쳐 이성의 단계라는 과정을 통해 걸러지고 정화되어 미래에 대한 대안이 되기도 하지만, 감정이나 오감의 단계에 머물러 버리기도 한다. 미래의 대안으로서의 기억은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삶의 힘과 활력, 성찰의 토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 혹은 나아가 오감의 단계에 머물러 있게 되는 기억은 가볍게 잊혀 지거나, 증폭된 감정으로 잔류할 수 있다. 그것이 희극이 아니라 비극일 경우 증폭의 폭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고 이는 희망이거나 대안이거나 성찰이기보다 슬픔 그 자체, 상처로 남게 된다. 상처 입은 개인의 삶이 개인과 그를 둘러싼 이들까지 왜곡되게 만드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상처가 분노로, 분노가 폭력으로 돌연변이 하는 것도 보게 된다. 현재 발생된 군대폭력은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억압당한 며느리 시절을 보낸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그 억압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처는 제대로 치료되기 전에 봉합되면 안 된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감정을 충분히 나누고 공감하라는 말일 것이다. 누구와? 이웃과, 공동체와 나아가 사회와. 개인의 경험도 이렇듯 주변과의 충분한 공감과 교감을 통해 확장할 것은 확장하고 축소할 것은 축소하라는 지혜가 있는데, 하물며 집단적 경험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지금 어떠한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는 대형 안전사고는 어느 순간엔가 ‘피해자 책임론’으로 화살이 되어 날아오고 있다. 책임의 주체를 확장해도,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라 지불한 세금으로 존재하는 집단인 정부, 그를 감시할 국회나 지방의회 등에 대한 책임은 직접적이 아니라고 비껴내고 있다. 그리하여 대통령이하 여당대표 앞에서 바닥에 무릎 꿇은 피해자 가족의 호소-이미 벌어진 일을 책임지라는 것도 아니고 향후 발생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를 버젓이 자가용 안에 앉아서 일별하고 외면해버리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법과 질서는 진실과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건만, 진실과 사실을 호도하고 덮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기억을 진단하고 미래를 처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이제 기억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로 넘어온 듯하다. 그것은 개인의 상처와 경험으로부터 이 집단적 상처에 공감하고 이를 나누고 진단함으로써 처방전을 내오고자 하는 권력이 없는 개인들, 시민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또한 기억의 왜곡과 삭제를 주장하는 편으로 기울고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 권력은 많은 자원들을 보유하고 또한 이를 기억과의 투쟁에 동원함으로써 막대한 힘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는 맞설 수 있을 것인가? 기억을 재생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 기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집단적 의례나 제도, 상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의 모든 프로필을 노란리본으로 다시 바꾼다. 상징으로서. 그리고 인천의 모 여성단체는 개인의 이름으로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노란리본 현수막을 거리에 달았다. 상징이자 집단적인 의례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이는 ‘잊지 않는 모임’을 지인들과 만들었다고 한다. 모임과정이 의례의 과정이 된다. 집회에 가면 우리는 그 집회의 성격에 맞는 역사적 사실과 그 역사적 사실을 살아간 분들을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이 역시도 기억을 위한 의례의 과정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아픈 과거는 되도록 잊어버리자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자, 지나간 것은 버리고 새것을 탐닉하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에 “잊지 않기!”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은 국가가 지정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그 개인들의 집단의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는 나의 기억마저 조종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 기억을 기억하게 하라! 현재 우리가 당면한 과제이자 투쟁의 방향이기도 하다. 각자 선 자리에서 기억을 위해 투쟁할 방안을 마련하고, 기억이 왜곡되지 않도록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지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활동을 통해 자신을 정립, 재정립해가는 존재이다. 생각도 활동이고 그 생각을 실천하는 것도 활동이라고 한다면, 슬픔과 분노와 비난을 넘어 기억할 동지들을 확장할 방안부터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2017-08-07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0
박현도/ 종교학자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무슬림 무장 단체인 소위 자칭 ‘이슬람국가’가 자신들이 이교도라고 정의내린 타종교인들을 노예로 삼는 것을 이슬람법, 즉 샤리아에 부합한 바른 행동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공식 온라인 잡지 ‘다비끄(Dabiq)’ 4호에서 이들은 ‘그 시간이 오기 전 노예제의 부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이교도인 야지디인을 노예로 간주하여 매매하였고, 여성은 첩으로 삼아 전사들에게 분배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이슬람국가’ 전사들이 인신매매한 야지디인 여성이 무려 300명에 육박한다. 이가 갈리고 피가 솟구치는 천인공노할 범죄다. 지난 9월 19일 전 세계 무슬림 지도층 지식인 126인은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전통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이슬람국가’의 행위가 왜 이슬람적이 아닌지 구구절절 날카롭게 지적하며 ‘이슬람국가’ 괴수 알-바그다디에게 A4용지로 무려 15장에 이르는 장문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무슬림 지식인들은 자격을 갖춘 법학자가 법해석을 하여 판결문을 내놓아야하고, 꾸란과 예언자의 전승을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꾸란을 해석해서는 안 되며, 무장전사들이 죽이고 노예로 삼은 야지디인은 이교도가 아니라고 밝혔다. 또 노예제는 모두의 동의하에 폐지된 것으로 재도입을 금지하는 것이 전 세계 무슬림들의 합의사항임을 강조하였다. 한마디로 자칭 ‘이슬람국가’ 무장전사들은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라 이슬람을 빙자해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과격분자로, 이슬람도, 국가도 아닌 ‘이슬람국가’의 살인마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비무슬림인 내가 굳이 ‘이슬람국가’가 왜 비정상적인 종교 집단임을 구구절절 밝힐 필요조차 없이 공개서한은 조목조목 이들의 야만성, 비인간성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금수와 같은 이들은 꾸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적 문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 해석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컨텍스트(context)는 완전히 도외시하고 숭배하듯 텍스트(text)만 떠받드니 인간이 할 수 없는 만행을 저리도 쉽게 저지르는 것이다. 불가의 지혜를 빌자면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느라 정신을 놓은 것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경전에 적힌 말씀이 발화된 상황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채, 종교인들이 문자 그대로 기록된 말씀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왔다면 아마도 오늘날 인류는 멸종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성서, 특히 구약성서라고 부르는 히브리성서만 보더라도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죽이라는 구절이 얼마나 많은가! 야훼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와 그의 온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부쳤다.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왕 시혼을 해치웠듯이 그도 해치워라.” (신명기 3:3)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넘겨주는 민족을 전멸시켜야 한다. 그들을 가엾게 보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마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가미가 되리라. (신명기 7:16) 지금 그리스도교인들은 그 누구도 위에 인용한 성서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오랫동안 다듬어 온 역사해석의 힘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계몽된 신앙이라고 부른다. 잔인의 극치를 달리는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면 오늘날 유럽인이 과연 제대로 남아있을까? 마찬가지로 꾸란에도 역시 불신자에 대한 공격을 승인하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꾸란을 제대로 읽는 사람들은 말씀의 역사적 문맥을 제대로 짚어 해석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무슬림 문화권에 이슬람 외에도 다른 신앙인들이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이 나온 문맥을 이해하는 힘이 왜 중요한지, 손가락보다 달이 왜 중요한지, 무슬림 지식인들이 자의적인 꾸란 해석을 하지 말라고 ‘이슬람국가’ 전사들에게 왜 가르쳤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계몽된 신앙! 미치광이 ‘이슬람국가’ 전사들의 믿음과는 달리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은 종교간 대화를 가르친다. “사람들이여, 너희를 남자와 여자, 민족과 부족으로 만들었나니, 서로 서로를 알도록 하라.”(49:13) 서로가 서로를 알려면 대화와 친교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나와 신앙이 다른 이교도라고 무조건 죽이고 보는 극단주의자의 잔악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꾸란은 신이 사람들 모두에게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었다고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파-스타비꿀 카이라트! (5:48 바른 일을 하도록 서로서로 노력하라!) 전 세계 깨어 있는 무슬림들이 이슬람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라고 한 자칭 ‘이슬람국가’ 살인마들이여, 보편적 인권의 이름으로, 진정한 무슬림들이 보여주는 관용의 이름으로, 다채로운 삶과 선행에 대해 가르치는 꾸란 구절을 들려주니 총을 들기 전에 곱씹어보라. 신이 주신 징표 중 하나는 천지창조와 다양한 언어와 색. 보라, 그 속에 배운 이들을 위한 가르침이 담겨 있으니. (30:22) 파-스타비꿀 카이라트! (5:48 바른 일을 하도록 서로서로 노력하라!)
2017-08-07 | hrights | 조회: 21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