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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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태양은 뜨거웠다. 일병 계급장을 막 달았다. 행정반 사무실에 앉았어도 사병의 여름은 더웠다.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는 뉴스가 실렸다. 법대를 다니던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로스쿨이 도입된다고 했다.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입학의 어려움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보초를 서면서도, 행군을 하면서도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마음껏 놀았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스펙 관리를 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많은 법대 학생들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사법시험 폐지 년도는 목전으로 다가왔다. 고시반이 위치한 인문사회관 4층은 황량하다. 신규 수험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장 수험생들만이 텅 빈 고시반을 지키고 있다. 법대 자체는 존치 논쟁에 휩싸였다. 학교에서는 고시반을 대체할 로스쿨 준비반을 계획하였다. 일종의 자구책을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저물어져가는 고시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로스쿨의 입학 요건과 관련이 있다. 로스쿨 입학을 위해서는 학점, 공인 영어점수, 법학적성시험(LEET) 점수가 필요하다. 즉, 취업시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점관리를 열심히 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면 그만이다. 법학적성시험도 이름만 그러할 뿐이다. 실질적인 평가요소는 속독과 추리, 그리고 작문 능력이다. 굳이 준비반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사법시험은 50년 가까이 법조인 선발을 담당해왔다. 그간 훌륭한 법조인들도 많이 배출시켰다. 그러나 심각한 사회적 병폐 또한 야기하였다. 법조계는 배타적 독점으로 점점 더 폐쇄화되었다. 한때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사법시험은 개인의 노력만으론 합격하기 힘들다. 수험서와 강의, 심지어 공부법까지 정형화되어 버렸다. 이를 갖추기 위해 만만치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월 평균 12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한다. 합격까지는 적어도 3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즉, 합격을 위해선 가정 형편상의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 3명 중 1명은 강남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사법시험을 통해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부는 로스쿨 도입이 많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폐쇄적인 법조계의 개방이다. 로스쿨 입시 과정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입학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대학의 학생들이 입학하진 못하였다. 로스쿨 측의 평가기준을 충족하였다 해도 입학을 보장할 수 없다. 명문대 졸업이란 묵시적 요건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다. 로스쿨의 연간 등록금은 평균 1,500만원이다. 이는 웬만한 ‘중산층’에게도 부담되는 금액이다. 등록금이 입학의 실질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로스쿨이 오히려 법조계의 폐쇄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이는 특권층의 재생산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사법시험의 사회적 문제가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6일, 3000여명의 로스쿨 재학생들이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50%로 제한하자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주장에 반발하여 단체로 자퇴서를 제출하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도입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로스쿨 제도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로스쿨의 미래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물론, 로스쿨의 긍정적 측면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로스쿨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예견한다.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압도적이다. 법조종사자 중 79%가 로스쿨 폐지를 주장한다. 이들 중 42%는 사회계층의 단절을 우려한다. 제도 자체가 상위계층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선발과정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혈연, 지연, 학연이 개입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로스쿨의 ‘현대판 음서제’라는 별명과 관련성이 크다. ‘한국형 로스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초기이니만큼 많은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변화 과정에서 사법시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법조계가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아니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로스쿨이었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봐야한다. 자칫하면 ‘사다리 걷어차기’식 제도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교육학을 공부한다. 4년 전 수능을 마치고 한참 원서를 작성하던 그 시절, 부모님은 내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에 진학하길 원하셨다. 대학 4년 내내 꼬박 3천만 원 가까운 돈을 대학에 헌납해도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일자리 하나 얻을까 말까한 현실 앞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한민국 부모의 심리였다. 하지만 나는 인문학부에 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2007년 아직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부제가 운영되었던 시절, 우리 학교의 단과대학 구분에 따르면 '교육학과'는 인문학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교육 사회학 분야에 관심이 많던 나였다. 그럴 바에야 임용고시에 유리한 사범대나 교대에 가라는 부모님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없는' 고집을 부렸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세 질을 한 달 만에 읽어 내려가면서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며 사학과 진학도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4년 후, 지금 나는 집과 취업스터디를 오가는 변변치 않은 휴학생에 불과하다. 그때 교대를 갔다면 나는 '최고 신부감'이 될 수 있었을까. 대학 동기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윤동주의 감성적인 시어에 푹 빠져 그 후예가 되겠다며 국문학과에 입학한 친구가 있다. 그는 지금 최소한의 효도는 해야겠다며 신림동의 한 원룸에서 행정학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불교철학에 심취했던 또 다른 친구는 4학년이 되자 대학원에 갈 집안 형편도, 기업에 취업하기도 여의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가 '장관'이 아님을 한탄하며 고시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는 기쁨도 잠시, 대한민국 20대의 혹독한 현실에 정면으로 부닥치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입학 이후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경영학이나 경제학으로 전과해 자신의 학적에서 인문학을 지웠다. 또 다른 이들은 가까스로 이중전공을 할 수 있게 되어 취업시장에 턱걸이했다. 남아있는 몇 명만이, 수강생이 10명 남짓으로 준 전공 수업 강의실의 분위기를 전할 뿐이다.   지난 해 중앙대는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ㆍ학부로 통폐합하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물론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자면 한없이 개인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시절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높은 수능배치표에 안착하지 못했음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지 않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예 자본의 논리가 넘실대는 대학의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했음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 대고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같은 이라면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호통 칠지도 모를 일이다. 인문학을 홀대하는 대학과 사회 분위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피부로 느끼는 장벽은 높았다. 사회는 철저하게 '기업화된' 인재만을 원했다. 대학은 이에 장단을 맞출 뿐이다. 상경계열 전공자가 아니면 지원조차 할 수 없는 회사가 수두룩하고 그마저도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이들의 피 튀기는 전쟁이다.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없는 학과와 학생들은 사회는 물론, 대학 내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해가 갈수록 하는 수없이 전공을 바꾸거나 고시로 발을 돌리는 후배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90%가 대학을 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학이 학생들을 기업에 진출할 산업인력만으로 취급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진리와 자유의 전당이라 자부하는 대학의 첫 번째 임무다. 하지만 지금 4년의 대학생활은 개인들의 서로 다른 개성과 창의성을 단 하나의 논리로 획일화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폭력에 가까운 처사다. 대학은 자율화가 추진하지만 그 '자율'은 학문과 학생을 위한 자율이 아닌 시장과 자본으로 향하는 자율뿐이다. 빠르게 회계장부를 읽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만 급급한 대학교육 속에서 왜 우리에게는 '스티브 잡스'가 없냐는 하소연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같은 회사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숨지고 자살을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사는 것은 힘들다. ‘인문대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더욱 팍팍한 일이다. 시장논리에 빠르게 편입하는 대학구조 속에서 인간의 역사와 철학, 문학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앙대 등 일부 대학들은 학과 구조조정으로 인문학과를 통·폐합해 실용학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국문학을 공부하든 철학을 공부하든, 회계학이 대학생으로서 꼭 갖추어야 할 ‘필수교양’이 되었다는 소식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직 내가 다니는 대학의 인문학과는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점점 후배받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많다. 9월이면 나는 복학해야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1950년대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증축된 이후, 현재 교육대학 건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 곧 철거될 예정이다. 역사적 의미와 함께 '우리'에게는 유일한 터전이었던 건물이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지하 3층 지상 9층의 최신식 경영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최신식 인프라를 갖춘 건물에서 공부하게 된다는 소식은 분명 반갑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 공청회는 소리 소문 없이 치러졌다. 그리고 우리는 전교생의 교양수업이 이루어지는 '종합관' 언저리에 2개 층만을 빌려 사용할 것이라는 발표만이 있었다. 씁쓸하다. 학교 안에서도, 또 학교 밖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한 이 느낌은 우리를 인문대와 경영대 사이 그 어딘가를 서성이게 만든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8 | 추천: 0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이화여대(이하 이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박모(23)씨는 지난 1월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졌다. 박씨가 구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5만원의 방은 창문이 없었다. 주방 바로 옆에 있어 음식 냄새와 각종 소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박씨는 “월세와 생활비를 고려했을 때 구할 수 있는 집은 그것뿐이었다”며 “창문 있는 방을 알아봤지만 매 달 10만원을 더 내야 해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옛 말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에게는 자취삼천지교(自炊三遷之敎)가 더 다가온다. 적어도 세 번은 집을 옮겨봐야 좋은 환경을 가진 방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졸업 전까지 같은 방세를 지출하고 싶다면, 물가 상승으로 세 번 정도는 방을 옮기게 된다는 뜻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자취생과 하숙생이 배우는 세 가지 교훈. 집 없는 설움, 혼자 살면 다 돈이고,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신촌 대학가 하숙비는 지난해와 비교해 최대 10%, 자취는 30% 이상씩 올랐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한 달 생활비는 최소 30~40만원이다. 줄일 수 있는 건 방세뿐이다. 집에서 누리는 안정감, 편안함은 사치다.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방, 빛 한 줌 없는 방 안에서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 청춘이 어떤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올해 들어서는 하숙집에서 주던 밥도 줄어간다. 주말과 평일 점심에는 편의점의 삼각 김밥이나 컵라면이 당연한 일상이 됐다. 신촌 대학가에선 공동 행동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총학생회 중심이다. 심지어 학생회 선거 때 공약집에서도 학생 주거권 문제는 점점 발견하기 힘들다. 올 봄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에는 5년 만에 2001명이 모인 학생 총회가 열렸다. 반면 주거문제는 일부 지역 출신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보는 것 같다. 관심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대만 봐도 수도권 이외 출신 학생이 40% 이상이다. 수도권에 살더라도 거리가 멀어 통학 대신 하숙이나 자취를 선택한다. 대학가에서 주거 문제로 고민 하는 학생은 늘어간다. 주거는 곧 복지다. 누구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학생 스스로 나서야 한다.   반지하 자취방에서 바라본 창문 밖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대는 대학원생을 제외하고 학부생을 위해 2개 동의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수용 비율은 2010년 기준 7.8%로 신입생은 615명, 2~4학년 재학생은 98명만 받을 수 있다. 기숙사 입주를 위한 경쟁률은 신입생 1.7:1, 재학생은 7:1 이상이다. 지방 학생들에게 기숙사 입주는 로또가 된지 오래다. 이대 국제 기숙사가 2012년 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에 있다. 외국인 학생과 교원들에게 안정적인 기숙 시설을 제공하겠다는 배려가 느껴진다. 학생기숙사 증축은 아직도 계획 중에 있다. 재학생들에게 안정적인 기숙 시설과 학교의 배려는 먼 이야기이다. 공간점거운동, 빈집점거운동, 주택점거운동 등으로 불리는 스쾃(squat) 운동은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공공성과 권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미국의 주택점거운동, 브라질의 땅 없는 사람들의 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머지않아 이대생들의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점거운동, 신촌 대학가의 집 없는 젊은이들의 운동도 일어날 법하다. 계획만 있고 해결은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말이다. 자취 첫날밤이 떠오른다. 잠도 밥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은 잠깐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시텔 월세 57만원과 생활비 30만원을 내주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이 큰 도시 안에 돈 걱정 없이 발 뻗고 편하게 잘 공간이 없다는 서러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푸른 꿈을 꾸면서 사는 것이 청춘이라고 한다. 하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 핀 곰팡이가 내게는 현실이다. 방세 걱정에 파랗게 멍든 가슴이 우리의 청춘이다. 자취삼천지교를 통해 얻게 된 진정한 교훈.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진리. 싼 방을 구하려 발품을 팔던 그 시간과 노력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보았다면, 조금 더 일찍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적극적으로 요구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자취 생활 3년차, 졸업을 앞둔 학생의 뒤늦은 후회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2 | 추천: 0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올 초에 친구의 소개로 한 대형마트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합쳐 450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책값이라도 벌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자는 생각이었다. 스무 살에 맞은 생애 첫 직장생활이기에 더욱 들뜬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일은 설 명절 선물세트 박스를 나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무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 꾸지람을 들었다. 다른 파트 판매원 아주머니의 일을 거들었다는 이유였다. 그때 비로소 나는 마트 소속 직원이 아니라 마트에서 한 파트를 맡은 A업체의 파견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트는 각 파트 별로 담당 파견업체를 쪼개놓고 있었다. 같은 매장에서 일해도 업체가 다르면 경쟁자였다. 자기 파트 물품을 조금이라도 팔기 위해 묘한 신경전이 계속됐다. 과도한 경쟁 탓에 동료애는 느껴지지 않았다. 노동여건도 열악했다. 5일에 한 번 쉰다는 약속과 달리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그에 따른 수당은 받지 못했다. 출근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했지만 퇴근 시간은 마트의 담당 직원 마음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물류창고에서 박스를 나르다가 가까이 있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친구의 파트를 총괄하는 직원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으며 “네가 직접 하라”고 했다. 자기 파트 직원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혼자 일을 했다. 그러나 그 직원은 “대답이 건방지다”며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내 머리를 때리고 박스더미에 나를 내팽개쳤다. 그로 인해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뽑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난 당장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에게 사법처리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들은 “가해자가 마트 소속 직원이니 파견업체 소속인 네가 참으라”고 다독였다. 마트 간부는 “A업체는 앞으로 행사에 참여할 수 없을 줄 알라”고 협박했다. 그 간부는 내게 “억울하면 고시를 보든 해서 성공해라. 넌 지금 하찮은 아르바이트생일 뿐”이라고 무시했다. 다른 직원들도 “남들은 다 참고 넘어가는데 왜 너만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느냐”면서 나를 사회부적응자로 몰아갔다. 잠시 뒤 내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는 “사건을 덮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며 “제발 사건을 덮어달라”고 했다. 고민이 됐다. 잘못한 건 마트 직원인데, 내 친구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나와 친구의 사이도 틀어질 위험이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요청을 거절했다. 부당한 대우를 그냥 참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녁 시간이 됐다. 친구들은 멈칫멈칫하더니 나와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밥 먹으러 갈 때 뭉쳐 다니지 말라더라’고 했다. 돌려 말했지만 나와 함께 다니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한 뒤 혼자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데, 서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고등학생 때 접한 노동인권 강의에서 자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놓고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고 분열시킨다는 얘길 들었다. 언제 해고될 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로 뭉치는 데 장애가 된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직접 겪은 대형마트의 노동현실은 강의에서 듣던 것보다 심각했다. 수직적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의 구분이 마치 봉건시대 귀족과 평민처럼 뚜렷했다. 수평적으로도 파트별로 다른 업체가 경쟁하도록 만들어 놓아 노동자는 말 그대로 파편화된 존재였다. 기대했던 노동의 보람이나 협동의 가치는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기계 같았다. 그날 저녁 난 바로 해고됐다. 마트는 고작 파견 직원을 해고하면서 사유를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진 않았다. 설렘으로 시작한 스무 살의 첫 직장생활은 이렇게 사회의 어두운 면만 또렷이 각인한 채 20여일 만에 끝이 났다. 작업복을 벗고 마트를 나서는데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간부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실제로 난 억울했다. 다시는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래서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다짐을 선뜻 할 순 없었다. 앞으로 대학생활에서 고시에 합격하거나 경쟁자에 비해 학점과 토익·자격증 등에서 앞선다면 그 간부가 말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 대다수 대학생이 꿈꾸는 성공이고, 나 역시 그러한 성공에 대한 갈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성공하더라도 어느 마트 직원은 스무 살 아르바이트생을 때리고도 면죄부를 받고, 맞은 아르바이트생은 참기를 강요받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난 과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내가 겪은 억울함이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애 첫 해고를 당한 날 밤은 이런 저런 고민으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4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