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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일과 놀이 (이한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41
조회
323

이한솔/ 청년 칼럼니스트


생태주의자 볼프강 작스가 전한 이야기다. 한 관광객이 해변에 갔다가 어부가 고깃배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고는, 왜 이렇게 누워서 빈둥거리느냐고 물었다. 어부는 자신이 오늘 아침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고기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관광객이 말했다.

“이걸 한번 상상해보시오. 만약 당신이 하루에 서너 차례 바다에 출항한다면 서너 배는 더 많은 고기를 잡아올 수 있소. 한 일 년쯤이면 당신은 통통배 한 척을 살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면 작은 선박 한두 척을 살 수 있게 될 테고. 언젠가는 당신 소유의 냉동 공장을 지을 수 있겠지요. 결국에는 당신 소유의 여러 척의 어선들을 지휘하여 물고기를 추적할 헬기를 장만하게 되거나, 아니면 당신이 잡은 고기를 대도시까지 싣고 갈 트럭을 여러 대 사겠지요.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당신은 조용히 멋진 해변에 앉아 햇볕아래 꾸벅꾸벅 졸면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게 될 겁니다.”

그러자 어부가 황당하단 표정으로 관광객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그게 바로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거잖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노동에 열중하는 것과 삶을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일화이다. 솔직히 노동과 관련된 단어 치고 과연 좋은 어원을 갖는 게 있을까. 프랑스어의 ‘travail’은 고문 도구를 의미했던 라틴어 ‘tripalium’에서 나왔고, 독일어 ‘arbeit’ 역시 고통, 수고 등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크세노폰은 시민 중에 노동에 종사한 사람을 공직에 써서는 안 된다고 했고, 성경에서조차 신은 아담에게 노동을 형벌로써 부과하였다. 그래서인지 인류학의 다양한 민족지는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죽자 살자 일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남미의 투피-과라니족(族)은 4~6년마다 경작지를 옮겨 다녔다. 지력이 고갈되었거나 제거하기 어려운 기생식물이 자라서다. 돌도끼로 새로운 경작지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부족의 남자들은 1~2개월가량 이 작업에 집중한다. 이들 부족의 남성은 평균 4년에 2달만 일한 것이다! 그럼 여성은? 씨뿌리기, 추수하기와 같은 농사의 나머지 부분을 담당한 여성도 많아야 하루 2시간미만 일했다.

다른 부족도 마찬가지, 인류학자 클라스트르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안헴 지역 수렵 채집인들은 하루에 3~4시간 일했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 거주하는 부시먼은 하루나 이틀 일하고 일주일을 쉬었고, 아마존의 야노마미족은 성별과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일주일에 평균 1.85일 일했다. 그래서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의 투이아비 추장이 20세기 초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와, 빠빠라기(유럽인, 백인)들은 생존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에 바친다고 했을 때, 고향사람들은 경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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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성격을 띠는 음식물의 대분배인 사갈리,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 도민들의 생활이 선물체계에 ‘물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그들의 생활은 끊임없는 ‘주고받기’다.
사진 출처 - 한겨레(한길사 제공)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이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였다. 가령 철도끼는 돌도끼보다 10배 더 효율적이다. 즉 같은 시간에 10배를 생산하거나, 같은 일을 10분의 1의 시간동안 마칠 수 있다.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 인디언에게 철도끼를 주었을 때, 이들은 열배 더 생산했을까. 그러지 않았다. 레비-스트로스의 관찰은 이들이 더 생산하는 대신, 더 적게 일하는 쪽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인디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굶어죽지 않았다. 원주민의 삶을 상상할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기아에 허덕이며 먹을 것을 찾아 정글을 헤매는 모습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의 필요노동만을 행했고, 그 외의 시간은 인생을 즐기는데 사용했다. 하루 21시간을 문자 그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낮잠, 목욕, 논쟁, 마약, 음주, 섹스와 같은 오락을 하는데 보냈으며, 때때로 벌어지는 사냥과 그들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전쟁에 지루할 겨를도 없었다.

중세 유럽 사람들도 언제나 놀고 싶어 했다. 공휴일은 150일이 넘었기에, 실제 노동 일수는 절반이 채 안되었다. 그마저도 노동 시간은 극히 불규칙했고, 축제(축일)와 전야제에 묻혀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이것도 모자랐는지 일요일에 놀았으므로 예의상 쉬어주는 ‘성 월요일(Saint Monday)’을 엄수했고, 이는 빈번히 ‘성 화요일’로까지 이어지곤 했다. 돈을 미끼로 사용하는 것도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차라리 일을 덜하고 돈도 덜 받는 것을 택했기 때문. 사람들은 항상 일보다는 노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반면 2012년 한국인들은 일주일 평균 44.6시간 일했다(OECD 구조개혁평가보고서). 하루 8시간이 좀 넘는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생산해내고, 다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 최대 4시간만 일하고 줄곧 즐겁게 놀았던 이전 사회와, 최소한 8시간을 일해도 돈 때문에 놀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 그렇다고 행복지수(만족도)는 그들의 발끝도 쫓아가지도 못하는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쉬엄쉬엄 일하며 삶을 즐겼던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볼 때가 아닐까.

 

이한솔씨는 중등대안학교인 마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