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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이현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40
조회
281

이현정/ 청년 칼럼니스트



쌍용차 분향소 철거
지난 4월 4일 화요일, 아침 9시부터 수업이 있던 나는 나갈 채비를 마치자마자 강의실로 향했다. 다행히 늦지 않아 한 숨 돌릴 겸 늘 그랬던 것처럼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하며 내가 누른 기사는 ‘서울 중구청의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습격’이었다. 새벽에, 그것도 5시 30분에, 공무원들이 출동하여 자는 사람들을 깨워 내쫓다 저항하면 연행하고, 천막을 없애고 그 위에 화단을 만들었다는, 아침의 평화를 깨는 소식이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곧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정보공개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이 날 집행된 불법시설물 정비 및 화단 조성은 최창식 구청장이 당일 결재한 것으로 나온다. 구청장이 결재를 위해 새벽잠도 마다하고 일어나 결재를 하고, 결재를 하자마자 공무원들이 집행에 나선 것일까. 뭐가 그리 급했는지, 계획안에는 예정 날짜도, 시간도 미정이다. 비밀 첩보 작전도 아닌데 날짜는 D-day로, 시간은 H시로 기재 되어 있다. 화단 조성에 든 비용은 총 87만원. 꽃을 사는 데만 87만원이 들었다. 87만원 어치의 꽃으로 24명의 넋을 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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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당일 저녁,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철거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4월이었지만 저녁 날씨는 쌀쌀했다. 사람들의 마음도 쌀쌀했다.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들의 마음도 쌀쌀했을 터. 8시 경, 천막 재설치를 위해 차가 들어오자 경찰들이 달려들었다. 시민들도 달려들었다. 서로 천막을 쥐고 놓지 않았다. 아니, 놓지를 못했다. 대한문 앞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밀고 밀리는 몸싸움 속에서 또 누군가는 끌려갔다. 한 쪽의 폭력은 또 다른 쪽의 폭력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그들에게는 인식되기 때문이었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모두가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였다. 시민들은 화단을 빼앗고 다시 분향소를 지키려고 했고, 경찰은 천막을 빼앗고 화단을 지키려고 했다.
잠시 휴전 상태로 돌아가 다시 자리를 잡을 때,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한 뼘 남짓 떨어진 차도에서 버스와 승용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멀리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어떻게 보면 두 공간은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한 뼘을 사이에 두고 한 쪽은 일상의 평화를 누리고 있고, 한 쪽은 누군가의 삶 또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조금은 지쳐 보였다. 순간 ‘왜 다른 사람들은 공감해 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들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타인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 어떤 이가 나에게 말했다. 그들의 상황과 처지, 그리고 그 슬픔과 분노에 대해 공감하고는 있지만 내가 나서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나는 생각했다. 공감하지 않는 행동이 있을까, 공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공감일까?

진주의료원 폐업
2월 말에는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쇄를 결정했다. 적자와 부채 등으로 인해서 운영 중지가 불가피 하다고 했다. 많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공공의료의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 왔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전문가들이 진주의료원의 부채가 폐업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의 부채가 너무 많다고 한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그러자 다른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전국 의료원 중에서 흑자인 의료원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렇다. ‘공공의료’라는 것을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4월 12일, 경남도 의회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조례안이 날치기 처리 되었다. 4월 13일, 창원으로 전국 각지에서 버스들이 향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를 촉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당일 아침, 나도 그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대한문 앞에서 출발했다. 대한문을 지나며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모였을까. 창원에 도착하니 엄청난 인파가 창원 만남의 광장에 모여 있었다. 하는 일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그날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모였다는 게 참 신기했다. 그것은 분노와 공감의 힘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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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만남의 광장에서 경남도청까지 약 3km 정도 되는 구간을 거리행진 했다. 거리행진을 하려면 교통 통제가 필요했고, 차선 세 개 정도를 이용했다. 폴리스라인 안으로 모여 걸었다. 누구는 구호를 외치고, 누구는 피켓을 들고, 누구는 차에서 방송을 했다. 이 진주의료원 사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달라고, 폐업은 당치도 않다고. 지나가는 창원 시민들이 사진을 찍었다. 어떤 운전자는 거리행진 때문에 차가 막힌다며 경찰에게 화를 냈다. 똑같았다. 4월 4일의 저녁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공감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경남도청 앞에 도착하니 도청은 잘 보이지 않았다. 경찰 버스와 바리케이드가 사람들을 열렬히 반기고 있었다.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바리케이드는 말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바리케이드 안에 있는, 그 사람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와 나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세계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6월이 된 지금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약 아홉 차례의 노사교섭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없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너, 그리고 우리
몇 달 전에도 '공감'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 때 공감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은, 친구의 처지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마냥 서운해 하는 나에 대한 한탄과 반성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공감을 하려면 '철저하게 타인이 되어야 한다'고. 듣고 보니 그랬다. 나를 타자화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공감이지 않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성어도 있지 않던가.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했다고 믿는 '공감'들은 철저하게 나를 타자화 하지 못한, 허울뿐인 공감일 수도 있다. 내가 쌍용차 분향소 앞에 갔던 것,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며 길을 걸었던 것은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감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공감을 하려는 '시도'나 '노력'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냥 나의 곁을, 우리의 곁을 지나치던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그런 공감을 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번쯤 주변을 둘러보고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다면, 주저 말고 대화의 몸짓이나 눈빛을 보내는 것, 그게 바로 공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 처음에 '나, 너, 우리'라는 것을 먼저 배운다. 물론 여기서도 내가 먼저이긴 하다. 그렇지만 나와 너는 결국 우리가 된다. 길을 지나치는 우리 모두가 진짜 '우리'가 되는 것은, 너를 알아가려는, 너를 공감하려고 해보는 작은 몸짓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현정씨는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학과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