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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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김새봄/ 객원 칼럼니스트 이럴 수가. 너무도 선정적이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벌건 대낮의 지상파 방송, 그것도 모자라 신문 1면의 거대한 사진으로 이 자극적인 장면이 실렸다. 이렇게 선정적이고 유해한 장면으로부터 청소년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온갖 나쁜 영향을 끼칠까 두려웠다. 그들의 몸싸움, 말이다. 몸싸움 너머로 뽀얀 눈물마저 흐른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유해했다. 바로 한-미 FTA 국회비준안 통과 때의 국회 모습이다. 바로 의회정치에 19금을 붙여라. 한국 의회정치에는 19금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보기에 한국 의회정치는 매우 유해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이상적 정치가 바로 눈앞에서 배신된다면, 그만큼 유해한 것이 있을까. 술 권하는 대중가요보다도 더욱 유해할 것이다. 교육은 말 뿐이 될 것이다. 정치인은 최루탄을 던지며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깡패가 아니다. 반대자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걸어잠그며 막아세우는 조직깡패는 더더욱 아니다. 몸싸움의 승자가, 주먹질의 위력이, 고성의 높이로 정치행위를 결정짓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인은 왜 국민들이 FTA에 반대하는지 귀기울여야 하고, 끝장토론을 벌여야 하며, 미국보다 한국의 국민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그게 진짜 정치다. 정치가 깡패조직간의 세력다툼의 터가 되어서야 진짜 정치의 정의가 실현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한-미 FTA 국회몸싸움만을 보고 한국국회 전체에 19금을 붙이자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뿐만이 아니다. 국회의 역사는 싸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1970년 12월 7일 비 내리는 아침,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사진 출처 - 독일역사박물관 홈페이지   BBK 특검법 처리 때는 전기톱이 등장했고, 한미 FTA 상임위 상정때는 대형 해머가 등장했다. 소통과 토론과 화합의 장이어야 할 국회본회의장은 그렇게 수시로 특정 지지 세력에 의해 걸어잠기거나 굳게 닫혔다. 급기야 이번엔 최루탄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전기톱과 대형 해머, 그리고 최루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는 국회의원들이 소지하고 발휘하기엔 다소 거칠고 또 폭력적이다. 그렇기에 한국 국회에 19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의 무릎정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국회 몸싸움에 19금 딱지를 떼길 원한다면 말이다. 더 이상 청소년의 유해물이 되지 않기를 진정 바란다면 말이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와의 회담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겨울비 내리는 차가운 바닥 아래에 무릎 꿇었다. 그곳은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였다. 그는 “수백만 명의 희생자 앞에서, 단순히 머리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독일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죄였다. 다들 놀랐다. 그만큼 감동했다. 그가 사용한 무릎정치에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통렬한 죄의식과 이를 진정으로 사죄하기 위한 진심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무릎이란 이럴때 꿇는 것이다. 한국의 19금 딱지가 붙은 한국 정치여! 몸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정치란 이런 것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추석연휴에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선배를 만났다. 명절 때면 꼬박꼬박 부산에 있는 집을 찾던 선배였다. 귀향이 왜 이리 늦었냐고 물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번 추석엔 집에 안 내려갈 거야.” 선배는 23살부터 7년 동안 행정고시에 매달렸다. 1차에는 여러 번 합격했지만, 아직 2차 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선배는 나이만 잔뜩 먹은 채로 아직도 대학에 남아있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래서 차마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오늘 도서관에 나와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나랑 처지가 비슷할 거다.” 선배가 내뿜은 담배연기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미안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매년 3대 고시라 불리는 사법·행정·외무고시를 합쳐 3000명 정도가 합격의 영예를 누린다. 이 3000명 안에 들기 위해 7만 명(2011년 5월, 통계청)의 젊은이들이 시험문제 하나하나에 사투를 벌인다. 1명이 성공하면 22명이 낙오하는 싸움. 그러나 떨어져도 재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서, 고시생 숫자는 줄어들 줄 모른다. 왜 이렇게 많은 청춘들이 가능성 낮은 싸움에 뛰어들까. 고시생 생활을 해 본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대부분이 말한 답은 ‘인생역전.’ 로또 복권의 광고 문구와 같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빈곤의 사슬을 단박에 끊고 상위 계층으로 편입할 수 있는 방법은 ‘고시패스’뿐이라는 것이다. 계층 상승의 통로가 막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 빵빵한 부모를 두지 못한 청춘이 노릴 수 있는 인생의 반전은 ‘로또’와 ‘고시’ 뿐이다. 그나마 고시생들은 요행이 아닌 노력으로 반전을 꿈꾸는 순수한 영혼들인 셈이다.   서울 시내의 한 고시학원에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의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이들의 꿈은 점점 이루기 어려워진다. 몇 년 동안 사법고시를 하다 포기하고 최근 취업시장에 뛰어든 선배가 말했다. “고시도 돈으로 하는 거더라. 돈 많은 집 애들, 부모가 법조인인 집 애들은 쾌적한 원룸에 살면서 일 년에 천만 원 하는 과외 받고 합격 하던데.”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선배는 학비와 생활비를 대느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선배는 “서른 가까이 될 동안 스펙 쌓아놓은 것도 없으니, 이력서에 내세울 게 없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취업 경쟁에 뛰어들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1조.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여기서 ‘능력’은 결코 부모의 재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경제적 능력이 진실한 노력을 압도하고 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 아니다. ‘노력’이라는 거름으로 ‘성공’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는 사회. 그런 아름다운 사회에서 청춘을 꽃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11월의 캠퍼스는 소란스럽다. 총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시판마다 선거 포스터가 즐비하다. 추운날씨에도 후보들의 선거운동은 뜨겁다. 그들이 나눠준 전단에는 공약들이 빼곡하다. 곳곳에 선거운동본부의 캠프가 설치되었다. 후보자들의 목소리는 교내 방송으로 울려 퍼진다. 강의실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홍보를 계속한다. 당차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하지만 항상 새롭게 느껴진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화두는 단연 등록금 문제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제1의 공약으로 내세운다. 복지 관련 공약도 증가하였다. 이처럼 총학생회 선거를 통해 그 해의 정치를 볼 수 있다. 선거 운동은 캠퍼스에 활기를 더한다. 하지만 감춰진 이면들도 존재한다. 등록금 감액, 학생식당 개선, 휴게시설 확충... 학생 모두가 원하는 공약들을 부르짖는다. 이는 몇 년째 공약으로만 존재했다. 더욱 큰 문제는 선심성 공약의 남발이다. 한 대학 학생회 후보의 공약은 큰 논란이 되었다. 공약의 내용은 다름 아닌 성형수술비 지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네일아트숍 할인, ATM 수수료 면제 등 퍼주기 경쟁이 치열하다. 학생들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대학 선거의 공약이라는 점은 씁쓸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추진계획의 부재이다. 당선 후의 구체적 계획은 어디에도 없다. ‘당선되면 생각해보자’는 식의 사고가 드러난다. 이는 학생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버렸다. 서울 시내의 한 사립대 학생들이 총학생회 선거 포스터를 지켜보고 있다. 총학생회의 선거는 대학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지만 그에 따른 복잡한 문제들 또한 얽혀 있다. 사진 출처 - 주간경향   후보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표하는 입장인 학생들도 한 몫 한다. 학생증만 있으면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투표이다. 그러나 투표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장투표는 기본, 비상대책위는 선택’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후보자들이 투표를 구걸해야하는 판국이다. ‘찍을 후보가 없다, 기권도 하나의 의사표시다.’ 등의 변명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투표의 이유 또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공약 실천 능력에 대한 판단은 뒷전이다. 친구들의 ‘카더라 통신’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같은 단과대라는 이유로 투표하기도 한다. 학연, 지연은 역시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후보자들의 외모를 보는 이들도 있다. 마치 초등학교의 반장 선거를 보는 듯하다. 누가 되어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의 공약 이행률은 저조하다. 학생들의 무관심은 여기서 비롯된다. 참여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자기 효능감’은 제로에 가깝다. 학생회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한 역량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인기영합적인 공약에 의존하게 된다. 총학생회 또한 반값등록금을 원한다. 누구보다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학교 측에 의견을 전달하는 정도이다. 학교는 이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총학생회에 ‘힘’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매번 되풀이된다. 만약 총장을 투표로 선출한다면 어떠할까? 아마 대다수가 진지하게 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 밖의 총학생회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에 충격적인 글이 게시되었다. 한 사업자가 총학생회의 비리를 공개한 것이다. 영수증 조작을 당연하듯 요구하였다. 계속적 거래를 수단으로 협박까지 일삼았다. 이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기에 사업자들은 선택권이 없다. 이 글을 본 대학생들은 분노했다. 이러한 자금은 우리들의 학생회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뿐이다. 다시 선거 기간이 되면 무관심은 반복된다. 이러니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학생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리도 만무하다. 학생들만의 탓이라 볼 순 없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을 터이다. 총학생회의 무능함과 학생들의 무관심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무엇보다 총학생회 역할의 봉쇄에 있을 것이다. 80년대 이후 대학 총학생회의 역할은 확대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와 대학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인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능력도 요구할 의사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엔 시간이 부족해졌다. 신입생 때부터 취업을 걱정해야한다. 등록금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도 필수이다. 학점 및 영어 점수 관리할 시간도 필요하다. 자연스레 대학은 사회와 분리되었다. 하지만 이는 사회문제를 더욱 가중시켰다. 총학생회의 파행은 사회문제와 직결된다. 등록금 폭등, 청년 실업 심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나 또한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투표에만 형식적으로 참여해왔을 뿐이다. 힘든 현재 사정을 탓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현실에 순응하며 지내왔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바꿔나가 보자. 어떤 식으로든 총학생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들을 적절히 감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소통통로를 구축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외치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작은 변화가 ‘제도와 리더십’을 바꿀 수 있다. 그들을 300만 대학생의 대표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대학생들이 뭉칠수록 정부는 두려워한다. 그리고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로 이를 똑똑히 확인하였다. ‘실천’을 통해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고립’에서 벗어난 ‘관심과 실천’이 다시 한 번 필요한 때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어머, 이거 얼마에요?" 첫 손님은 예상치 못한 아주머니 세 분이었다. 학교 자원봉사센터에서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기금을 모을 때였다. 나와 친구들은 스포츠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동문이 기증한 물품을 팔고 있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중앙도서관 앞에 천막을 치고 물품들을 꺼내놓았다. ‘따뜻한 중도 라이프!’ 자취생과 복학생을 유혹하는 문구가 적힌 A4용지가 나부끼고 있었다. 뜻밖에도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번째 손님은 학내 환경미화원 어머님이었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시면서도 꼼꼼하게 색상과 디자인을 살피셨다. 미화원 어머님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는지, 그날 하루 종일 학생들 사이로 어머님들이 찾아와 기금 모금에 동참해주셨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천막을 정리하면서 나와 친구들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한 가지였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학교 구성원이 많다는 것. 기껏해야 학생과 교수, 교직원이 학내 구성원의 전부라고 생각했을 때, 얼마나 많은 미화원 어머님과 경비 아저씨, 주차요원 분들이 수고해주시는지 처음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대다수의 학내 구성원들의 시선 밖에서 이 분들은 우리를 위해 장시간 동안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일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 순간이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난 자리가 크다고 했던가. 우리 학교 학생 대다수가 미화원 어머님의 존재를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부끄럽게도 지난 3월이었다.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연대 파업을 벌이며 어머님들이 잠시 학교를 떠난 사이였다. 학교 화장실에선 냄새가 진동하고, 쓰레기통엔 쓰레기가 넘쳐났다. 불평의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그러나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지에 대한 대다수 학생의 고민은 적은 듯했다. 누군가가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좁은 공간에서 밥 먹을 틈도 없이 이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닦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여전히 관심 밖이었다. 불편할 뿐이었다. 물론 몇몇 학생들은 직접 힘을 싣기 위한 행동에 동참했고, 일부는 학내 청소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전화를 학교 당국에 걸며 큰 힘을 보탰다. 한 달이 지나서야 학교 측은 임금 인상을 비롯해 휴게 공간 확충 등 전반적인 노동 환경과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자와 용역업체 사이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어머님들과 학생들은 축배를 들었고 다시 학교는 고요해졌다. 지난 3월,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한 달여의 파업을 끝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연세춘추   그러던 9월의 어느 날, 어머님들이 또다시 천막으로 모여야 했다. 용역업체에서 한 청소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쌀쌀한 가을 날씨, 연세대학교 본관 앞에는 파란 천막이 한동안 걷힐 줄 몰랐다. 사측은 부당해고와 더불어 지난 4월 맺었던 협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사측으로부터 청소 노동자들이 노조 탈퇴를 강요당한다는 정황도 알려졌다. 탈퇴서를 돌리는 식이었다. 학교 당국은 3월에 그랬던 것처럼 노사가 해결해야할 일이라며 발뺌하기 바빴다. 용역업체는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학교가 10월 1일 수시 논술고사를 앞두고 천막을 철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져 학내에 분노가 일었다. 이 사태는 50일이나 이어졌다. 다행히 그 후 해고는 취소됐고 부당행위를 저지른 용업업체 담당자는 발령처리를 받았다. 학내 구성원들은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내 미화원 어머님들의 불안한 고용과 노동환경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월 파업, 10월 천막 농성의 산은 넘었지만, 여전히 실고용주인 학교당국은 방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용역업체는 우려했던 대로 복수노조를 설립하려 든다. 3월 파업 당시 합의했던 사항도 다 지켜지지 않은 채 말이다. 직접 고용은 힘든 것을 인정한다며, 학교 측이 용역업체의 관리에만 소홀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한 미화원 어머니의 인터뷰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학교에 있다. 갈수록 꼼수를 부리는 용역업체를 압박할 수 있는 권력도 학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권력'을 압박할 수 있는 힘은 여전히 우리 학생사회에 있다. 지난 사태에서도 총학생회를 비롯한 각 단과대와 학생단체, 지역단체의 힘이 컸음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낮은 보수로 장시간 근무하며, 좁은 공간에서 잠깐의 휴식만 허락되는 어머님들을 위한 관심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 대한 인식이 잠깐이 아닌 삶 속으로 스며들고, 그 삶이 작은 행동으로 전환된다면 어떨까. 올겨울이 그렇게 춥지만은 않을 것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6 | 추천: 0
김미영/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10월 27일, 동국대학교 본관 앞. 대낮부터 때 아닌 시체놀이가 펼쳐졌다. 몇몇 학생들이 목에 큰 칼을 차고 앞으로 나섰다. 칼을 쥔 망나니가 그들의 목을 쳤다. 학생들은 칼을 찬 채로 바닥에 쓰러진다. 곁에 있던 친구들도 쓰러진 동료 옆에 나란히 누웠다. 한 편의 처형식이 연출됐다. 이 날 학생들이 보여준 것은 곧 문을 닫게 될 동국대 기초 학문 분야의 현실이다. 최근 학교당국은 기초 학문분야를 대폭 구조조정 하는 학문 구조 개편안을 마련했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떤 학과는 살아남고, 또 다른 어떤 학과는 문을 닫게 된다. 교육부 지원을 얻기 위한 구조조정 동국대는 지난 4월 학술부총장 산하에 학문구조개편위원회를 만들었다. 모두 11개의 학과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했고, 3개월 뒤 해당 학과에 공문으로 통지했다. 하지만 해당 학과 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구조조정이라며 반발했다. 재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문구조개편위원회의 회의록도 공개해 현재 진행 상황을 소상히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학교 당국과 학생들은 팽팽한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사실 동국대의 학문구조개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에는 독어독문학과, 윤리문화학과, 철학과를 철학·윤리·문화학부로 통합했다. 또한 북한학과의 정원을 20명 감축한 것을 비롯해 12개의 학과를 대상으로 총 110명의 정원을 감축했다. 결국 독어독문학과는 2009년 사실상 폐과됐고, 가장 많은 정원이 줄어든 북한학과는 현재 학문구조개편안에서 폐과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 같은 동국대의 학부 구조조정은 교육부의 대학 구조 개혁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다.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학과 인원을 감축하는 이유는 교육부의 '구조 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 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추진중인 학문구조개편안 역시 2011년도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과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 사업' 의 영향을 받았다. 교육부는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율 구조조정을 하는 학교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학교는 이에 따라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통섭과 융합은 고식지계일 뿐 개편안에 대해 학교 측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맞춰 학문과 교육의 틀을 개혁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미래 사회흐름 및 요구에 부합하는 학문구조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학교가 내세우는 논리는 ‘학문간·학제간 융합’ 추세이다. 기존 학문 간에 활발한 교류와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학문을 만들고, 새로운 인재들을 양성해 나간다는 의미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분야의 융합연구를 통해 지식서비스 기술을 높이거나 복잡하게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학문의 흐름에 맞춰 대학 역시 학문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학문구조개편위원회는 학부 전공교육과정 중 중복되거나 분류체계상 지나치게 세부적인 학문은 통폐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 정치외교학과와 북한학과, 윤리문화학과 등이 학문구조 개편 대상이 됐다. 하지만 학제간 융합, 통섭을 논하려면 먼저 각 학문분야가 세부적으로 깊이 뿌리내려야 하지 않을까? 통섭학은 각 학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가 이뤄져왔고, 세부 학문에까지 두터운 전문가 층이 있어야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 게다가 통섭학이 처음 대두된 미국과 달리 우리 대학의 역사는 짧다. 더욱이 각 학과 내에서도 전문분야가 다양하지 못하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매번 달라지는 학문구조개편 방침 또한, 학교의 학부 구조조정 방침은 명분만 경쟁력 강화일 뿐 계속 오락가락했다. 1996년부터 학부제 모집을 하다가 2000년 폐지했고, 다시 2002년 학부제 모집을 부활시켰다가 2004년에는 학과제로 다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도 미래를 위한 현재 학문의 흐름에 맞추기 위한 것이 학과구조조정의 근거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바뀌는 학제 개편과 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문예창작학과는 1996년 국어국문학과가 학부제로 확대 개편되는 과정에서 신설되었다. 그 후 1999년 문과대학 문예창작학과로 분리되었다가, 2001년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로 독립하였다. 학교 측이 밝혔듯, 문예창작학과가 독립된 이유는 국가의 입학생 광역모집조치에 따라 문과대학의 신입생 모집 때 문예창작 특기생 선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에 따라 학문구조를 개편했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다. 통섭과 융합이라는 근거로 폐과될 북한학과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는 "학문분류체계상 북한학은 정치/행정의 세부 분야 중 하나로 현재의 입학정원으로는 독립적인 학과운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학부의 경우 연계전공으로 전환하고, 대학원에 개설하여 전문성 있게 운영할 것이라 한다. 앞서 말했듯, 북한학과는 학교의 꾸준한 학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2007년 20명, 2010년 2명씩 정원이 감축된 경우다. 윤리문화학과 역시 현재 입학정원으로는 독립적인 학과운영이 불가능한 실정이므로 학과 내에서 자율적으로 타 학문과 융합을 모색한다고 한다. 북한학과와 윤리문화학과의 경우 2007년부터 꾸준히 정원이 감축되어 왔다. 매년 근거만 달라질 뿐 정원 감축을 통해 통폐합의 수순을 밝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학과 학생들이 자신의 학과와 학문 선택은 제대로 보장되지 못 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나름의 꿈과 비전을 갖고 대학과 학과를 결정한다. 학문구조 개편을 통해서 학교가 발전한다면, 입결과 취업률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취업만을 평가기준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학문과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개편인가 학교는 학문구조 개편이 대학의 미래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나면, 미래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재를 길러내면 학교는 발전할 것이고, 학교가 발전하면 학생들의 취업은 쉬워질 것이라 말한다. 지난 9월 5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정부 재정 지원 제한 대학 평가 결과 및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항목 중 취업률은 매우 중요한 평가 수단이기 때문에, 순수예술에 꿈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육성하는 추계예대가 부실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마다 유수 기관에서 대학을 평가해 그 결과를 공개한다. 대학은 이러한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 평가가 긍정적이라면 대서특필하여 외부에 알린다. 대학과 교육, 그리고 학문이 모두 '평가'와 그 '순위'라는 도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평가와 순위 나열 작업은 각 대학의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어디에도 없다.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실질적 대상은 학생들이다. 끊임없는 학문구조조정과 대학평가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학생들은 어디에서도 교육의 주체로서 있을 수가 없다. 문예창작학, 북한학, 윤리문화학을 선택하여 대학에 입학한 꿈은 저마다 다르다. 그 꿈을 더 폭넓게 꿀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대학이다. 학문구조조정이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해당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최우선순위가 되었어야 했다. 같은 학문을 할 동기와 후배들이 떠나가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학과가 사라진다면, 이런 불이익과 선택권 침해 역시 학교 발전을 통해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3 | 추천: 0
김한빛/ 객원 칼럼니스트 몇 달 전 기숙사 홈페이지와 기숙사 입구에는 CCTV설치에 관한 글이 게시 되었다. 학생들의 기숙사 내에서의 흡연과 쓰레기 투기에 대한 단속을 위해 설치한다는 글 이었다. 기숙사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에는 안전과 방범 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CCTV가 설치되고 있다. 대한 변협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개인의 정보를 해당 개인의 승낙이나 동의 없이 수집 저장하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하였다. 즉 대학을 다니는 동안 대학은 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대학생들의 사생활을 침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생활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CCTV가 설치 목적인 범죄 예방 등 안전에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도서관에는 복도를 비롯하여 열람실 그리고 휴게실 등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도서관 곳곳에서 범인의 얼굴이 캡처된 사진과 함께 도난 내용이 적힌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기숙사의 경우에도 방범용 CCTV가 엘리베이터, 복도, 주차장 등 학생들의 방을 제외한 모든 곳에 설치되어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이다. 후배 한명은 기숙사에서 비싼 신발, 옷 등을 도난당했다. 녹화된 영상을 통하여 범인의 모습을 알 수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CSI처럼 범인의 얼굴을 프로파일링 한다거나 할 수 없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어도 범인은 설치되기 전처럼 자연스럽게 물건을 훔쳤고 촬영된 영상을 통하여 범인을 검거할 수도 없었다. 또한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CCTV 최다 운용지역과 최소 운용지역을 비교한 결과 CCTV를 최다 운용한 지역이 오히려 범죄 발생률이 높았다고 한다. 방범등 안전효과가 미지수인 CCTV가 설치될수록 사생활 침해 우려는 더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스터디를 같이 하는 후배 한명이 내게 “오빠 이제 정문 앞에서 여자 친구랑 조심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유인 즉은 한 대학생 커플이 저녁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정문 앞에서 스킨십을 하였는데, 이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리는 것을 나에게 귀띔 해준 것이었다. 학생들의 스킨십을 감시 하는 것이 CCTV의 설치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우리의 사생활은 누군가에 감시되고 아무런 제약 없이 노출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CCTV에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을 인권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들만의 프라이버시가 있다. 하지만 CCTV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앞의 대학생 커플은 자신들의 스킨십을 누군가가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리자는 그것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였다. 그들만의 추억은 산산조각 난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공공기관의 건물의 경우 행정안전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CCTV 설치 목적, 촬영시간, 관리자의 연락처 등을 게시 하여야 한다. 하지만 대학의 어디에도 이러한 내용이 부착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부착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인지할 수 없는 곳에 부착 되어있다. 만약 대학이 행안부의 가이드라인에 맞게 설치하였다면 대학생 커플은 CCTV를 인식하고 그곳을 피했을 것이다. 따라서 안전 효과가 미비하고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큰 CCTV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CCTV에 무감각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도서관 자치 위원회는 학생 97%의 찬성의견을 근거로 도서관에 CCTV를 설치하였다. 많은 학생들은 CCTV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과 마찬 가지로 CCTV에 찍힌 모든 사람은 주인공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나의 동의 없이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고 재생될 수 있다. 만약 학생들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다음 설문조사를 하였다면 97%라는 찬성을 얻긴 힘들 것이다. 안전 효과를 위해서는 CCTV를 설치하기 보단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 더욱더 효과적이다. 집회를 막는데 열중인 경찰인력의 일부분을 활용하여 도보 순찰을 한다면 캠퍼스는 좀 더 안전하고 방범에 효과적일 것이다. 학문의 상아탑인 대학에 무차별적으로 CCTV를 설치해야할 정도로 도난과 안전이 심각한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대학은 CCTV설치를 통하여 안전 문제에 있어서 책임을 회피하기 보단 좀 더 덜 인권침해 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하여 실용적인 정권을 부르짖는 현 정권의 외침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5 | 추천: 0
김새봄/ 객원 칼럼니스트   Intro. 돈, 스물 청춘에게 묻다 올해 반값 등록금을 외치던 청춘들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대학생 신분으로 고액의 등록금에 빚쟁이가 되어버린 청춘들은 연대와 화합을 통해 거리로 나와 함께 외쳤다. 거대한 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자. 그들 개개인의 삶이 꿈틀댄다. 개개인의 청춘이 반짝거린다. 달콤한 청춘의 시기를 보낼 그네들의 삶이 돈의 무게감에 못 이겨 거리로 뛰쳐나오기까지 얼마나 쓰디썼을까. 여기, 한 대학생이 있다. 그 수많은 무리 중에 한 명이다. 나의 학보사 후배이기도 한 이 대학생은 이번 등록금 투쟁의 선두에 섰다. 단식을 하며 친구들의 마음을 한데 모았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게재해 자신의 솔직한 그러나 처절한 삶을 보여줌으로서 사회를 흔들어놓았다. 그런 그에게도 반짝이는 청춘이 있다. 자신만의 삶이 있다. 그를 만나면서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과연 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일었다. 그의 삶에서 돈이 청춘을 어떻게 괴롭혀왔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인터뷰다. 하지만 인터뷰는 한 청년의 삶의 이야기다. 때문에 에세이로 쓰였다. 이 에세이는 돈이 뒤흔든 청춘보고서다. 이 청춘보고서는 그의 이야기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뒤흔들린 내 삶의 고뇌가 문장 곳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와 5년 동안 3번을 만났다. 숱한 만남들이 더 빈번했지만, 그에게 솔직하게 ‘네 청춘의 시기에 돈이 대체 뭐였냐’라고 불편하게 묻기 위해 만났던 것은 세 번이다. 이 세 번의 과정을 솔직하게 엮는다. 나와 그의 만남이 이 청춘들에 대한 변호를 위해 쓰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기에 만남의 기록은 우리시대의 청춘을 위한 혁명 제안서이기도 하다. 첫 번째 만남. 2007년, 소주 3000원 “사내 녀석이 그깟 일로 지 성질 하나 못 죽여서 어쩌려고 그러냐.” 대뜸, 위로를 바라고 토로했을 후배 녀석의 하소연을 난 묵살해 버리고 있었다. 장마가 오려고 해서인지 며칠 동안 하늘은 꿉꿉했고 바람은 습기를 잔뜩 머금었다. 우울한 어느 날이었다. 마주본 소주잔의 절반은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고 철렁거렸다. 녀석은 많이 취해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그 녀석은 울었다. 대구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밑으로 여동생 둘을 더 둔 후배네 집은 늘 어려웠다. 과외 2개를 뛰고 새벽 편의점 알바를 뛰어야만 자기 생활비를 벌고 남은 돈을 집으로 부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작은 페인트 가게를 하시지만, 온 식구가 먹고 살기엔 버거웠으리라 쉽게 짐작이 간다. 그게 더 상황이 좋지 않게 되어 어머니가 전화를 넣었던 모양이다. 후배 녀석은 학보사를 하고 싶어 했다, 휴학을 해서라도 신문을 만들고 싶어 했다. 생활비 부쳐줄 여유는 없으니 군대를 가던지 휴학을 해서 돈을 벌어 스스로 쓰라고 했다. 녀석은 결국 서울에서 생활하는 돈도 아까워 대구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돈을 벌러 말이다. 여름방학에는 어쩔 수 없이 학보사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2년의 군복무를 미루고, 어머니의 욕지거리까지 들으며 기약 없이 새벽까지 돈을 벌어야만 하지만 신문만은 만들고 싶었던 게다. 그런 그의 동기가 여름방학동안 유럽여행을 가겠노라고, 신문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후배는 거기에다 대고 욕지거리를 던지며 뛰쳐나갔다. 그리고 3000원 짜리 소주를 마시며 이렇게 내 앞에서 토로했다. 돈이 대체 뭐냐, 아직 스물인 우리 앞에서 이 물음은 자못 무겁고 껄끄러웠다. 동갑내기 동기의 유럽여행과, 자신의 대구행은 같은 떠남이라 하기엔 너무도 큰 괴리다. 같이 신문을 만들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을 동기에게, 한 번도 싫은 소리 하지 못한 후배 녀석이 욕지거리를 던지면서 느꼈을 그 감정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대학에 와서 너무도 쉽게 돈을 쓰는 사람들과는 어울리기도 버거웠다. 끊임없이 소비가 필요한 하루 동안 덜 가진 우리가 더 많이 가진 타인과 함께 친구가 되는 일은 참 어려웠다. 돈이 감정을 붙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한 강의실에 모여 함께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저마다 제 분수에 맞는 소비를 치렀고 우리는 끊임없이 어느 만큼의 규모로 소비하는 소비자인가 매일매일 비교당해야만 했다. 스무 살 우리에게 돈은 대체 뭐였을까. 후배 녀석은 흐느끼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남. 2011년, 고료 100만원 “뭐 100만원?” 정확히 97만 1천원이었다. 만날 저녁과 커피까지 사줘야 했던 후배가 갑자기 고기 집으로 날 부르더니 오늘은 자신이 모두 내겠다는 선언 아닌 선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100만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그간 돌봐줘서 고맙다며 낄낄댄다. 대체 뭘 했냐고 재차 따져물었다. 그랬더니 ‘글’ 때문이란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썼는데 원고료가 그만큼 들어왔다는 거다. “대체 뭘 썼냐”라고 재차 따져 물으니 멋쩍게 웃으며 “읽어보면 안다”고 허허 거린다. 즐겁게 고기를 먹고 술 한 잔 기분 좋게 걸친 뒤 집에 들어와 가장 먼저 후배의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를 클릭한 순간, 난 무너져버렸다. 후배의 절절한 사연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이 좋질 않아 몇 번씩 휴학을 하고, 새벽알바를 뛰고, 학보사를 그만두면서 군대를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어있을 줄은 몰랐다. 항상 밝게 웃고 다니는 후배였기에 짐작조차 못했다. 작은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시던 아버지 사업은 부도가 나 집이 빚더미에 앉게 되어있다고 쓰여 있었다. 어머니는 위궤양에 걸리셨지만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약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쓰여 있었고 자신은 학비를 벌기위해 3일을 아르바이트에 쓰고 남은 3일에 수업을 몰아서 듣는다고 쓰여 있었다. 결국 후배는 밥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학교 게시판에 단식 선언서를 내걸었다. 열흘 넘게 단식하며 반값 등록금을 위해 친구들의 연대 손길을 기다렸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학교와 협상을 벌였다. 거리에 나가 더 큰 목소리로, 여기 대학생들이 있다고 사회에 소리쳤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게재했다. “죽어라 모아도 등록금은 만들 수 없어서”라며 웃었지만, 자신 뿐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느끼기 때문이란 것을 안다. 자신의 문제가 버거울 만도 한데 이런 선택을 한 후배의 진심과 결정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후, 몇 번의 단식을 감행했고, 몇 번의 집회에 나갔고, 몇 번의 인터뷰에 응했다. 언론은 후배의 처절한 현실을 담고자 했다. 유력 일간지와 유력 방송사에서도 후배와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수차례 연락이 왔다. 가난을 팔기를 요청했고, 처절한 현실을 들려주길 요청받았다. 부모님의 인터뷰를 가장 원했다. 거기서 후배는 멈췄다. 거부했다. 부모님에게 자기 가난에 대한 책임을 거꾸로 되물으려는 언론의 행태를 가만둘 수 없었다. “부모님이 죄인도 아니고” 언뜻 후배의 눈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그가 가리키던 사립대학의 문제와 방관한 정부 그리고 무책임했던 사회를 되묻지 않고, 대신 그의 처절하고 안쓰럽고 고통스러운 삶만을 눈여겨보았다. 누추한 손가락만을 자꾸만 궁금해 했다. 청춘과 돈의 문제는 대체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다시 스물 무렵의 고민이 가슴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둘 다 나이를 먹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물음에 답해주지 못하는 못난 선배였고, 그는 스스로의 해법을 찾아 실천하는 후배였다. 나는 청춘의 시기를 적잖이 벗어난, 그들의 문제로 지칭해도 좋을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지독한 청춘, 청춘의 시기를 살아내는 중이었다. 그런 그는 이미 정답을 아는 듯 했다. 나는 궁금했다. 그가 택한 정답과 그 행함은 어떤 고통 속에서 결정된 것이냐는 것. 여전히 청춘은 아름답고, 여전히 돈은 청춘에게 무거운 그것이지 않느냐는 바로 그 물음이 남겨졌다.   지난 10월 2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세 번째 만남. 2011년, 고등어백반 5천 700원 “그 친구, 밉지 않아?” 순간, 밥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던 그의 손이 멈춘다. 빗소리가 강하게 탕탕 내리꽂는다. 비릿한 비 내음과 고등어백반의 냄새가 어우러진다. 무거운 정적이 감돈다. 멋쩍어진 내가 먼저 책상위의 아무런 책이나 집어 들고는 “요즘 애들은 이런 책만 보나봐” 라며 혼잣말 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학보사 책상 위에는 경제학 개론과 토익책,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 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 녀석, 피식 웃는다. “밉긴요.” 피식 웃는다. 나도 웃는다. 사실은 알고 싶었다. 너에게 돈이 무엇이었는지. 꿈 많던 우리 청춘에게 대체 돈이 무엇이었는지. 대구에 가야했던 그에게 유럽여행을 가겠노라고 선언하던 동기가 아직 밉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등록금 문제가 연일 신문지상과 방송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 때, 그 한 가운데서 외치던 그 후배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원망스럽진 않았는지. 왜 더 많이 울지 않았는지. 솔직히 후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병에 몸저 누워계시고, 아버지의 빚은 집안을 좀먹고 있는 상황에서, 왜 단식을 하고 깃발을 들며 거리에 나서야 하는 것이 바로 너여야만 했냐는 물음. 여동생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선택하는 대신 4년 장학금이 나오는 학교에 가야만 했고, 남동생은 대학보다 앞서 군대에 가야만 했던 현실 앞에, 왜 하필 가장 힘겨운 네가 깨지지 않는 유리벽에 대고 긴 투쟁을 시작해야 했냐는 물음은, 결국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목울대가 아파왔다. 몇 번씩 선배랍시고 그 녀석을 말렸다. 현실을 보라고 주제넘은 소리를 해댔다.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투쟁이 아니라, 빨리 졸업하고 남들처럼 연봉 높은 직장에 갈 수 있도록 서둘러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고 몇 번씩 말했다. 학보사 시절, 사회부였던 후배에게 사회의 부조리를 침 튀기며 말해주고, 투쟁의 중요성과 대학운동의 필요성을, 집회 끌고 다니며 설파했던 내가, 그러던 선배라는 내가, 그 녀석에게 지금 해주던 말은 너무도 옹졸했다. 청춘의 돈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던 때에, 나는 책에 답이 있으리라 믿고 정치경제학을 배우러 뚜벅뚜벅 대학원으로 도망쳤다. 후배는 돈을 해결할 길이 없어 군대로 도망쳐야만 했다. 그랬던 우리가 비오는 2011년 여름, 이렇게 다시 마주보고 앉았다. 그런 후배에게도 평범한 꿈이 있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에 닿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법학과인 후배는 군대를 다녀온 뒤 사법고시를 준비하겠노라고 누차 말해왔던 터다. 그리고 농담처럼, 가난한 학생들이 돈 없이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군대에 가면서 사법고시에 필요한 책들을 싸들고, 필요한 자격시험 몇 개를 따면서 후배의 길은 정해진 듯 했다. 하지만 2007년, 로스쿨 법안이 통과됐다. 더 이상 가난한 학생들이 치를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대학 등록금의 3배를 웃도는 로스쿨 등록금은 후배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수천만 원의 등록금을 어떻게 벌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해 등록금 500만원을 한 학기 휴학으로 겨우 벌었으니, 한해 수천만 원은 대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전화를 해야 했을까. 군대에서 녀석도 뉴스를 들었겠지. 이제 돈 없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공정한 시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돼버렸다는 것을. 끝내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만 했을까, 아니 할 수나 있었을까. 그의 소박한 식사는 계속된다. 문득 그가 생선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의 찬에는 고등어가 올라와 있다. “생선, 먹지 않았잖아?” 오랜 기억일지라도 습관처럼 남아있는 식사의 기억 때문이었다. 고등어 한 점 베어 물던 후배가 답한다. “그러게요. 그렇게 싫어하던 생선이었는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게 되었네요.” 그에게 가난은 열두 살 때 뒷목을 내리치는 것이었다. 그의 가난에서는 생선냄새가 났다. 겨우 12살 때,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집안 곳곳에 붉은색 차압 딱지가 나붙었다. 대전 둔산동에서 쫓기듯 도망쳐 변두리 신탄지로 왔다. 5식구가 한 방에 살기 시작했던 때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홀로 처절히 깨달았기 때문에 좋은 학교에 가고자 하는 욕심이 그 누구보다도 컸다. 중학교를 집에서 2시간 걸리는 곳으로 배정받고, 왕복 4시간에 걸려 학교를 다녔다. 그때 학교까지 한 번에 가던 좌석버스 1천 500원이 너무 비싸 2시간에 1대씩 오는 시내버스를 탔다. 학교 앞까지 당도하지 않아 15분은 족히 더 걸어야 했지만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어쩌다 버스를 놓치면 수산물 시장 앞에서 1시간 반 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때 생선냄새를 맡으며 많이 울었다. 가난은 후배에게 생선냄새처럼 고약한 것이었고, 1시간 반 동안 기다려도 올지 모를 기약 없는 싸움이었다. 연애도 쉬울 리 없었다. 처음으로 가슴 설레던 동갑내기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 주기위해 주머니를 뒤지니 겨우 1만 5천원만 수중에 남아있었다. 여자 친구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막차를 놓친 뒤라, 일단 여자 친구네 집까지 택시를 타고 함께 갔다. 택시 값을 치르고, 여자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니 갈 길이 막막했다. 늦은 밤이었다. 기약 없이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잠시 쉬고 걷다가 또 쉬었다. 그러다 정류장 벤치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첫차를 기다렸다. 후배에게 돈은 새벽밤길, 기약 없이 걷고 또 걸어도 집으로 갈수 없을 만큼 막막하고 무거운 것이었을 게다. 청춘의 시기의 돈이 너를, 나의 후배를, 우리의 청춘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현실의 벽에 내모는 시기에 후배는 나름의 답을 찾은 듯 보였다. 예전처럼 울지 않았고, 예전처럼 따져묻지 않았다. 나름의 방식으로 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등록금 투쟁은 시작이었다. 포이동에 찾아갔다. 학보사 시절, 포이동 기사취재의 연을 계속 잇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닮은 아이들을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었다. 취재 이후에도 몇 번씩 귤이며 사과를 사갖고 만나러 가기도 했다. 어떤 날은 수학을 가르쳐줬고 또 어떤 날은 영어를 가르쳐줬다. 그냥 가서 수다만 떨고 오는 일도 잦았다. 후배는 포이동 아이들에게 가난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가난이 자신의 탓이거나 부모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믿도록 해주고 싶다고 했다. 가난을 받아들이는 일이 설득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후배는 그저 자신의 겪은 삶을 들려주고 포이동 그네들의 삶을 들어주고, 서로 이해하고 공감해준다고 했다. 그것이 청춘을 처절하게 만드는 돈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을 덧붙인다. 후배는 이 믿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하며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를, 흔들고 있다. Conclusion. 만남 이후, 작은 혁명을 꿈꾸며 울던 후배를 위로하지 못했던 못난 선배는 자라서 별 볼일 없이 꿈만 커다란 백수가 되었다. 가난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여렸던 후배는 자라서 자신을 괴롭히던, 역시나 자신뿐이 아니었던 청춘을 위해 돈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선두에 섰다. 등록금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그런 후배가 더 이상 나의 후배일 수 없었고, 난 더 이상 그의 자랑스러운 선배가 될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의 부름 앞에 붙는 '선배' 라는 호칭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그 녀석과 만나는 매 순간마다 느꼈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날 믿고 따라는 후배 앞에 부끄럽지 않는 선배가 되는 꿈, 진짜 선배가 되는 꿈이다. 언론인이 되어 후배의 값진 선택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지지자 말이다. 후배와 같은 낮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힘 있게 지지해주는 진짜 언론인의 꿈이 꿈틀거렸다. 소주 잔 기울이면서, 이번엔 내가 먼저 후배에게 말을 걸겠다. 내가 고민한 새로운 작은 혁명이 무엇인지, 말해줄 것이다. 내가 쥔 펜으로 어떤 혁명을 기록해 나갈 것인지, 가장 먼저 들려줄 것이다. 소주 한잔과 후배의 꿈과 나의 꿈만으로 더 이상 가난이 우리의 청춘을 잠식하지 않아도 좋을 그런 실천에 대해 말할 것이다. 우리 다시 만날 그날, 어김없이 비가 내리겠지. 하지만 더 이상 빗소리에 잠식당하지 않을,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2 | 추천: 0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개강이다. 전공과목인 생물분자공학의 수강 인원은 여덟 명. 50명이 들어가는 공간의 앞 줄만 간신히 채웠다. 식품저장학, 식품분석실험 등 다른 전공과목도 수강생이 열 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사라져 간다. 늦은 밤 함께 실험실을 지키던 그 많은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주변을 보면 약대 진학 열풍으로 짐작된다. 식품공학 전공 강의를 듣는 대신 약대 준비를 위한 입시과목으로 몰려간 듯하다. 3년 전 230명 정원의 일반화학 강의는 약대 준비생들로 인해 수강생이 400명을 넘겼다. 콩나물시루 속에서 강의를 듣다보니 강의의 질도 떨어져 간다. 이공계 출신 여학생들이 약대 입시 열풍을 이끌고 있다. 한국약학교육협의회 통계를 보니 2012학년도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응시자는 1만3077명인데, 이중 여성이 8638명이다. 66.1%다. 전체 약대 합격률을 보면 남녀 비율이 3:7이다. 대부분 이공계 출신자들이 이 시험을 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대에서 약대 열풍이 더 두드러진다. 의치약학 입시전문 교육기관의 신입생 분석 자료를 보면 으뜸이 이화여대 출신이란다. 실제 지난해 12월 이화여대 자연과학대학 3학년 학생의 29.3%인 88명이 자퇴했다. 경제적 사정 같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약대 진학을 목표로 했을 의도적 자퇴란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떠돈다. 이화여대 공대에 다니는 김모(23)씨도 지난해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약대 진학을 결심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과도한 취업 경쟁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요즘에 대학만 졸업해서는 전공 살려서 취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공대니까 취업이 쉽겠다고 하지만 취업도 취업 나름이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평생직장은 꿈도 못 꿔요. 대학원가서 석․박사를 하면 괜찮을까 생각했는데 선배들 말을 들어보니까 오히려 취업문이 더 좁아진대요. 거기다 들어가는 돈하고 시간은 오죽한가요? 따지고 보면 약대를 가는 게 훨씬 낫죠.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울 때도 안정적인 직업이 있으니 안심이잖아요.” 김씨는 자신의 여동생 역시 함께 약대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씨의 동생은 모 사립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 후 바로 약대 준비를 시작했다. 자연대에 진학한 이유 역시 약대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주변 친구들 중에 생물학, 화학 같은 순수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들 보면 경영이나 경제학 복수 전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예요. 대학원 진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구요. 아마도 동생이 약대 준비를 할 계획이 없었더라면 아마 다른 전공을 선택 하라고 했을 거예요. 돈 잘 벌고 취업 잘되는 쪽으로요.” 김씨의 고민은 이공계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2010년 여성과학기술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여성 비율은 10.6%였다.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31.1%로 약 3배정도 더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정규직 여성 신규채용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1.7% 감소한 15.3%로 나타났다. 취업도 힘들다.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는 더 힘들다. 약대 입시 설명회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면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가장 활발히 연구를 해야 하는 시기에 출산과 육아로 공백 기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연구 중단으로 기술 개발이나 논문과 같은 연구 실적을 내기도 힘들다. 성과가 부족하면 연구책임자로의 승진도 연구비 지원도 어려워진다. 엄마 과학자로 살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이제 곧 졸업이다. 내년 2월이면 4년간의 대학생활도 끝난다. 함께 졸업을 앞 둔 08학번 동기는 단 한 명. 나머지 26명의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졸업을 연기했다. 그리고 일부는 약대로 떠났다. 4년간 등록금으로 4000만원이 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탓에 매 달 집세와 생활비로 100만 원 정도를 꼬박꼬박 쓰고 있다. 명절이나 주말에 고향집에 내려가 부모님을 뵐 때면 반가움보다는 죄송한 마음이 앞선 지 오래다. 실험실에서 늦은 밤까지 청춘을 바쳤다. 그러나 남는 것은 졸업장 하나다. 취업 준비는 별개다. 하고 싶은 일만을 꿈꾸며 살기에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전문직만이 대우받는 현실. 전공과 취업이 따로 노는 현실. 여자 공대생에게 약대 진학만이 유일한 해법처럼 보이는 이 현실을 바꾸어 볼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오늘도 답답함만 커져간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5 | 추천: 0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의 미니홈피에 방문했다. 홈페이지 방명록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갖 비난과 욕설로 도배가 돼 있었다. 원인은 웹상의 한 동영상에 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지하철 막말남’이었다. 한 청년이 지하철 내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상대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이를 목격한 시민이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 후 이 영상은 인터넷에 던져졌다. 한 트위터 글은 수없이 리트윗되었다. 글의 내용은 ‘지하철 막말남은 OO대학교 OOO’였다. ‘막말남’의 신상을 공개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동명이인들의 미니홈피는 테러를 당했다. 내 친구도 그 중 한명이었다. 해당 학교의 게시판 또한 그러했다. 잠시 뒤 학교는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동명의 재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한 네티즌의 작은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동명의 학생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순식간에 ‘패륜남’이 되었을 것이다. 네티즌들의 공공의 적이 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허위 정보 유포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여자 아나운서가 투신자살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SNS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건은 미니홈피의 게시 글에서 시작됐다. 아나운서 본인이 직접 올린 글이었다. 글은 현직 야구선수와의 성적관계를 담고 있었다. 잠시 후 최초의 글은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수습은 불가능했다. 아나운서의 사생활은 전달에 전달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SNS라는 확성기가 이용됐다. SNS 사용자들은 각기 한마디씩 보탰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루머와 추측이 더해졌다. ‘소셜이 아닌 소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끝내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개개인에게는 짧은 글 한마디에 불과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한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는 SNS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 주었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정보교환이 가능하다. 가족, 친구들과 언제든 안부를 주고받는다. 정치인, 연예인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SNS가 계층 간의 소통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목적 지향적인 참여행위가 유도된다. 최근의 반값 등록금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한 곳에 모은 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였다. 이처럼 SNS는 우리사회에 많은 순기능을 한다. 이미 대세가 돼버린 상황 또한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부작용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의식과 가치관 형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로썬 충분치 않다. 인터넷 전반의 문제 또한 개선돼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하나의 중요한 권력이다. 이를 이용해 ‘개인 대 집단’의 구도에 놓일 땐 폭력이 될 수 있다. SNS를 통해 개인용 마이크를 하나씩 갖게 되었다. SNS는 자신만의 일기장이 아닌 것이다. 의사표현을 지나치게 축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글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 고려해봐야 한다. SNS의 발전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기성언론의 ‘색깔사냥’, ‘마녀사냥’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면서 그들의 ‘여론 사냥’에 염증을 느껴왔다. SNS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우리가 비판해 온 기성언론의 행보를 따라가선 아니 된다. ‘신상 털기’에 이은 인신공격은 ‘여론 사냥’과 다를 바가 없다. 양자 모두 ‘무차별, 무책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인 전국 트위터 강정당 회원들이 지난 7월 2일 제주시청 앞에 모여 강정마을 “절대보존지역해제”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처럼 최근 사회적 이슈에 대중이 참여를 유도하는 힘으로 SNS가 활약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최근 포털사이트의 신상정보유출이 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개인정보가 개인의 것이 아니 게 된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신상 털기’에 힘을 보탠다. SNS의 빠른 정보 교류는 이에 날개를 달아준다. ‘신상 털기’는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한다. 이 과정에서 법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허위 정보일 경우의 구제수단도 없다. 포털 사이트들의 레이아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들은 SNS의 글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글의 위치는 뉴스와 인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SNS의 글은 뉴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 더해져 있다. 필터링도 전혀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공공 혹은 전문가의 의견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들도 주의해야 할 상황이 있다. SNS에서 드러난 사실이나 주장을 기사화할 때이다. 해당 주장이 극히 일부분일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론을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접하는 시간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문이나 이메일을 접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SNS 신뢰도 조사의 결과도 주목해볼만하다. SNS의 정보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0%나 되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12.3%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였다(출처 - 에스코토스 컨설팅 '2011년 소셜미디어 참여 연구'). 기성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의 수는 상당하다. 이들에게 SNS는 ‘개인 언론’이 되었다. 기성언론이 무관심한 영역에 대한 ‘대안 언론’이기도 하다. 기성 언론의 권력자들은 SNS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SNS의 심각한 부작용을 이유로 든다. 우리 스스로가 정화하여 방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렵사리 만든 ‘민주주의의 통로’를 확고히 할 수 있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학기,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중앙도서관에서 전철역까지 운행하는 학교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지 5분 남짓.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곳이 한국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이어폰 사이로 오고가는 수많은 중국어의 행방이 궁금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버스 뒤편을 바라봤다. 버스 한 쪽에는 10여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중국의 대학교인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옆에 앉아 있던 히잡을 두른 여학생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나는 2년 전 지도 교수님과 함께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3일만 시간을 내달라는 교수님의 부탁에 나는 흔쾌히 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오리엔테이션은 교수님이 사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해마다 대학 당국이 뽑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증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교수님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신 것이었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 지인을 따라 혹은 자국에서 입시에 실패한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여느 유학생처럼 서툰 외국어(한국어) 실력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 문화와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빠르게 3일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 2년 동안 통 연락이 없던 이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의 한국 생활이 어땠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쉴 새 없이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언어 장벽이나 문화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초라며 한 발짝 물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대학 당국과 한국 학생에 대한 비판은 그칠 줄 몰랐다. 해외에 지사까지 두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때 대우와 한국에서의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의 Y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중국인 장OO씨(25)는 "각 대학별로 유학생 지원 담당자가 있긴 하지만 증가하는 유학생의 수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의 수강이나 언어, 학교생활 등에 대한 사후 관리가 부족하다" 고 털어놓으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유학생에게 친절한 교수님도 있지만, 외국인 학생을 한국 학생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정OO씨(23,여)는 "일부 유학생이 대리출석을 하거나 학기 내내 결석을 하고 시험만 보는 경우도 있어 우려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0년 Y대를 졸업하고 취업한 중국인 루OO씨(26)는 "미국이나 일본 등의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엄격한 외국어(영어나 일본어) 실력이 요구되지만 일부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학 입학에 있어서는 그 기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대학 입학 기준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는 후문을 들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이중적인 시각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백인 유학생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비롯되는 인종차별적 대우는 대부분의 학생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바였다. 대다수 한국 학생이 자신의 학교가 외국인 학생이 많은 '글로벌' 캠퍼스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작 강의실에서는 유학생을 외면하기 십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학점 경쟁이 심한 오늘날, 함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하는 경우라면 함께 과제를 풀어나가는 기쁨을 얻기보다 다른 팀원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로 서울의 S 사립대를 다니는 한국인 유란희(23,여)씨는 "중국어나 일본어 강의가 개설되면 한국 학생의 상당수가 자신들의 강의 선택권이 줄어들었다는 피해의식을 느낀다"는 경험담도 털어놨다. 일부 동아리나 언어교환 프로그램, 몇몇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면 대다수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과 어울리기는 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의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캠퍼스 내에는 그 어떤 제도적, 인식적 차원의 개선도 일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캠퍼스 내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학과 단위의 자치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에서 어눌한 말투를 가진 외국인 유학생의 자기소개를 듣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강의실에서도 팀별 과제를 위해 팀을 짜다보면 외국인 학생 한두 명쯤은 함께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3700여 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2003년 1만 명을 넘어서더니 2010년에는 8만 3000여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전체 대학생 중 0.1%에 불과하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은 이제 2.3%까지 증가하게 된 것이다. 양적인 캠퍼스 글로벌화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내실은 어떠한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차적인 성찰은 외국인 유학생의 학생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한 대학 당국에게 필요하다. 대학 당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대학의 '글로벌화'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많은 외국인 학생을 유치해 한국 학생과 유학생 모두의 학업과 연구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수만을 늘려 각종 대학 평가의 국제화 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얻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일부 지방 사립대는 부족한 대학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정원 외 선발이 가능한 외국인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선발해왔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방관한 채 쉽게 입학 승인을 해주었다. 유학생의 양적 증가에만 몰두한 나머지 학생 관리 서비스가 부실함은 물론 한국 학생들의 인식 개선도 이뤄지지 못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얼마 전 외국인 유학생의 중도탈락이나 불법취업이나 불법체류 등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세계화' '다문화'가 오늘날 우리사회의 화두다. 대학도 앞장서서 이 트렌드에 맞추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수적인 증가와는 반대로 질적인 차원의 '글로벌화'에 대한 의문을 감출 수가 없다. 적절한 제도와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는 자세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면 이는 사실상의 '폭력'과도 같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오는 길,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한 친구가 자신은 언제쯤 교내에서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