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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콘돔 쓰면 안전하다고? 이거 말도 안 된다. 자궁 내 루프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4월6일) 16년간 지속된 인기 강의의 한 대목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이번 1학기에만 400명의 학생이 이 강의를 수강했다. 인기는 높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문제 강의다. 바로 한양대 ‘성의 이해’다. 강사의 말은 교재에 견주면 애교 수준이다. 교재는 <성 과학의 이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주 그냥 가관이다. “성폭력은 남성에게 내재하고 있는 고유한 본능이다. 만일 미개한 곳에서 억제되지 않고 산다면 성적인 욕구가 만족되지 못할 때는 언제나 강간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p.234) “완전한 질외사정인 경우는 정자의 존재가 부정되므로 원칙적으로 임신이 될 수 없다.”(p.88) 이 수업은 남학생만 듣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남성 중심의 시각만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 설사 남학생만 듣더라도 여성을 이렇게 비하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성의 이해’는 단순한 음담패설을 넘어 잘못된 성 지식을 제공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을 확산시킨다. 서울의 명문대에서 지금껏 이 강의가 16년째 계속됐다는 것 자체가 뉴스다.   성의 이해 수업이 진행된 강의실 앞에 붙여진 대자보 이런 돌출적 강의는 사실 대학 일상의 성차별이 배경으로 자리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 이 대학에 다니는 여성 오모(21)씨는 축제 때 경험을 털어놨다. 동아리 주점을 하면 거리에서 손님을 끌어오거나 테이블을 돌며 술을 나르는 일은 모두 여학생에게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자들이 해야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선배들이 시켜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는 게 낫다고. 억지로 할 수 밖에 없죠. 삐끼짓 할 때 예쁜 애들이 많다고 해야 주점 인기도 올라간대요.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오라고 말하기도 하죠.” 오 씨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냥 남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조금 문제의식을 느끼는 공대생일 뿐이다. 축제는 축제니까 참고 넘어가려 했지만, 강의 시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눈이 뒤집힌다고 말했다. “전공 수업이었죠. 교수가 학생들끼리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해보라고 했어요. 근데 여학생이 나서면 1점씩 더 가산점을 준다고 하더군요. 여자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점수를 따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불쾌했죠. 점수 더 준다는 건 여학생들한테 더 이익을 주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여성을 깔 본 거죠. 여자란 이유 그 하나로.” 오 씨가 불만을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괜히 말꼬투리 잡는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냐. 그 정도도 못 받아주면서 사회생활은 하겠니. 심지어 ‘꼴페미’라고 조롱받는다. 꼴통 페미니스트의 줄임말이란다. 함께 고민해 보자고 작은 목소리를 낸 건데, 너그럽지 못한 개인의 성격 탓으로 몰아간다. 이건 성차별에 이은 두 번째 폭력이다. 친구들은 그나마 낫다.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교수 선배로부터 “넌 왜 이렇게 예민하니” 이런 말을 들어보라. 불만은 곧 반항으로, 그 대가는 불이익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자꾸 이러니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참고 감춘다. 괴롭고 또 무서우니까. ‘성의 이해’ 강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찍부터 있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B+~A다. 우수 강의란 뜻이다.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대학의 양성평등센터라는 곳이 내놓은 대답은 더 웃긴다.    교재 <성 과학의 이해> 중에서 성폭력에 대한 언급 부분 “현재 사안은 강의 내용이나 강사 스타일에 관련된 것이어서, 센터에서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명백한 성희롱 언행이라고 판단된 경우가 아니면 센터에서 개입하기 어렵습니다.” 이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바쁘다”였다. 반론을 듣고 싶었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먼저 나선 건 학생들이다. 지난 4월 인터넷에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이란 카페가 개설됐다. 이들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강의 내용과 교재에 대해 반박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나와 함께 대자보를 쓰고 학교 곳곳에 게재하기도 했다. 언니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단체들도 성명서를 발표하며 힘을 보탰다. 7월에는 해당 강사에게 질의서를 보내는 것은 물론 총장과 학장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의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노력은 다시 한 번 짓밟혔다. 강의의 잘못을 지적한 대자보는 강제로 철거됐다. 일부는 대자보를 붙이는 학생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찍기도 했다. 이들은 강의 반대 활동과 그에 따른 언론 보도가 학교 망신을 불러왔다고 했다. 묻자. 잘못된 성지식을 주입시키고 성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태도. 그걸 가르치는 수업이 버젓이 이뤄지는 망신보다 더한 망신이 있을까. 1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 한양대 ‘성의 이해’는 학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한양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도 과연 성 지식과 성 차별 항목에서 낙제를 면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성의 이해’가 또다시 6월 28일부터 진행되는 여름계절학기 과목으로 개설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정말 누가 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   * 사진 및 내용 출처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 모임인 cafe.daum.net/realsex와 해당 카페 운영자와의 인터뷰입니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0 | 추천: 0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5년 전,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모든 것이 새로워 눈이 휘둥그레진 나. 그 중에서도 교양 영어 시간은 유독 즐거웠다. 영문법을 기계적으로 외우고 몇 가지 문제유형에 맞추어 답을 골라내는 연습이 전부였던 고등학교 영어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게 영어는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학은 달랐다.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직접 영어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매주 A4 반쪽 분량의 영어 에세이도 썼다. '어젯밤 내가 꾼 꿈'과 같은 사소한 주제부터 '이랜드 파업, 대선, 탈레반에 대한 생각'까지. 한국말로도 쉽게 쓰지 않던 글을 영어로 꾹꾹 눌러 썼다. 주어와 동사 목적어가 전부인 꽤나 단출한 문장이었지만 열심히 썼다. 글을 쓰고 나면 교수님은 내 생각에 동의를 하거나 반박하는 내용을 담아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점점 재밌어졌다. 내 생각을 좀 더 정교하게 표현하고 싶었고, 더 정확한 단어를 쓰고 싶었다. 열심히 사전을 뒤지고 교수님께 질문했다. 하루는 교수님께서 좋아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프랑스어가 좋아 꾸준히 공부해왔던 나였다. 프랑스어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교수님께서는 자신도 프랑스어를 잘 할 줄 안다고 반가워했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들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내게 제안했다. 함께 언어를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교수님께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나는 교수님께 프랑스어를 배우는 방식이었다. 공통언어는 영어였다. 그렇게 나는 매주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았다.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영어와 한국어, 프랑스어가 튀어나왔다. 우리의 공부는 자유로웠다. 교수님은 나를 위해 헌 책방에서 시몬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원본을 구해왔다. 하루 한 페이지 남짓이었지만 함께 책을 읽고 질문을 주고받다. 가끔은 샹송을 듣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으셨던 교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료들에 대해 물어왔다. 내가 미처 몰랐던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또박또박 한국어 단어들을 MP3 파일로 녹음하는 긴장의 순간도 찾아왔다. 즐거웠다. 비록 나의 영어 실력과 프랑스어 실력은 교수님의 한국어 실력에 비해 더디게 늘었지만, 매 순간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1년 간 함께 하며 '아, 대학에서는 이렇게 공부하는 구나' 싶었다. '영어'를 매개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또 다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맛 봤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 내가 만난 또 다른 대학의 영어는 '영어 강의'가 주는 스트레스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 곳에는 제대로 된 '영어'도, 제대로 된 '배움'도 없었다. 수업의 80% 가량만을 영어로 설명하고 한국말로 설명하는 교수님의 수업이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의 80%는 딴 짓을 하다가 마지막 20% 시간에만 집중을 했다. 원서 내용을 그대로 파워포인트에 옮겨 수업시간 내내 읽는 것이 한 학기 강의의 전부인 수업도 있었다. 어쨌든 강의실에선 영어가 흘러나왔다. 시험도 파워포인트 그대로였다. 영어강의가 절대평가임을 감안했을 때, 학생들에겐 최고의 인기 과목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수학문제풀이가 많은 경제학 수업으로 몰려갔다. 한 학기 동안 필요한 영어는 제한된 경제학 용어와 필수 동사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칠판에 적힌 교수님의 풀이와 교과서만 있다면 한 학기는 웬만큼 버틸 수 있었다. 영어 실력과 전공 실력, 어느 하나 향상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뭐하는 짓이냐'며 푸념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라는 형식에 치우쳐, 교육의 내용과 본질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제대로 영어를 배우기도 전 강의실에서 영어는 하나의 콤플렉스요, 스트레스일 뿐인 것이었다.   올해 초 카이스트에서는 4명의 학생이 자살해 큰 논란이 됐다. 징벌적 등록금제와 함께 100% 영어강의는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상 대부분의 4년제 대학에서는 영어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대학 영어 강의의 명분은 '글로벌 캠퍼스'의 실현이다. 전공을 영어로 설명하며 영어 원서 책을 보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과 학생의 경쟁력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의문이다. 몇몇 대학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실질적인 경쟁력의 강화일까. 이해하기 힘든 영어 강의 내용으로 학생들에게 부담감만을 가중시키는 것이 경쟁력의 향상인지 말이다. 실제로 내가 들었던 영어 강의들도 대학 당국이 주장하는 '경쟁력'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영어교육과 대학 교양영어 강의와 연계되지 않은 영어강의의 무리한 도입은 학생들의 좌절감만을 키웠다. 수능과 내신에서 고득점을 했던 친구들도 강의내용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며 매번 고민을 늘어놓았다. 고액의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 과외를 받았던 친구들은 조금 수월한 눈치였다. 그리고 수업의 흐름은 아버지의 직장에 따라 혹은 조기 유학으로 해외 연수의 기회가 있었던 친구들 위주로 돌아갔다. 교육 불평등의 한 양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강의실을 벗어난다고 해서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취업을 위한 스펙의 또 한 축엔 '토익 점수'가 버티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미 '토익 점수=영어 실력'이라는 공식이 깨진지 오래지만 우리는 또다시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YMCA의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이 영어시험 응시료와 강좌 수강료를 위해 연 평균 65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의 절반가량이 영어를 위해 해외연수를 떠나는 것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영어 사교육에 쓰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대학생과 학부모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학에서 '영어 교육'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대학평가를 위한 '영어강의'와 토익점수를 위한 '영어와의 사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대학은 '글로벌 캠퍼스'를 주창하며 영어강의는 대폭 늘려놓았지만 강의 내용과 운용은 부실했다. 사회에서는 '글로벌 인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누구 하나 영어를 가르쳐주는 이 없었다. 또다시 고등학교 시절처럼 스타강사와 족집게 강의를 따라 사설 학원으로 내몰릴 뿐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이란 없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영어는 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장과 같은 것이다. 맹목적으로 영어를 권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함께 올바른 영어교육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제 막 시작된 대학가의 여름방학. 즐거움이 사라진지 오래다. 해외연수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태우고, 토익학원으로 향하는 청춘들의 발걸음이 또다시 무거워지는 계절이 시작됐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손정원/ 객원 칼럼니스트 ‘베이비붐 세대’, ‘386 세대’ 등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닉네임이 있다. 필자처럼 청년실업 100만 시대의 청년들은 ‘88만원 세대’로 불린다. 미취업 또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지금의 젊은 세대를 표현하는 핵심어인 셈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가 ‘청년인턴제’이다. 미취업 청년에게 현장 경험과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단다. 2009년 3월, 정부 산하 청소년 활동기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10개월 계약직인 줄 알고 일을 시작했는데 공식 명칭은 ‘청년인턴’이었다. 당시 채용 담당자는 “부처에서 일반 계약직 T/O를 주지 않는다”며 “신분만 청년인턴일 뿐 급여는 일반 계약직과 다를 바 없다”는 친절한 설명을 해줬다. 기관 전체 직원 40명 중 절반인 20명이 비정규직이었는데, 청년인턴은 그 중 일부였던 셈이다. 10개월짜리 비정규직 ‘청년인턴’ 애초 ‘청소년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라는 업무를 보고 지원했기에, 신분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열심히 하면 될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할수록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다가왔다. 어느새 연말이 왔다. 계약직에게 12월이란 마치 ‘선고일’과도 같다. 그 해 겨울, 비정규직 20명 가운데 정규직을 선고 받은 이는 단 1명도 없었다. 12개월 단위로 계약한 보통의 비정규직들은 계약기간을 12개월 더 연장했고, 이미 24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일한 이들은 하는 수 없이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나야 했다. 계약기간이 10개월이던 청년인턴은 딱 한 달 만 연장이 가능했다. 한 달의 추가계약 기간이 지난 뒤 담당 직원이 조용히 불렀다. “더 이상 계약 연장이 안 된다.” 이어지는 설명. “11개월 경력으로는 어딜 가도 쓸모가 없으니, 한 달 만 쉬었다 나오면 돼.” 다시 청년인턴 채용공고가 날 것이니 그때 지원하면 재고용이 된다는 얘기였다. 반드시 1달 간의 공백을 거친 뒤 다시 10개월짜리 계약을 새로 맺어야 하는 이유는, 12개월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 번째 계약만이라도 12개월을 단위로 했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청년인턴으로서는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는 1년 단위 계약직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일선 현장에서 청년인턴은 ‘더욱 질 나쁜 비정규직’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다시 구직자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지난 2009년 5월 1일 119주년 노동절을 맞아 울산대공원 동문에서 지역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민생민주 살리기 울산대회'를 연 가운데 대회 관계자들이 피켓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 청년은 청년대로 불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동안 취업시장의 문은 더욱 좁아져 있었다. 전 직장의 직원 말처럼 11개월짜리 청년인턴 경력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다. ‘T/O가 없어 청년인턴이라는 이름만 빌렸다’는 설명을 누가 들어주겠는가. 당장 생계부터 문제였고, 시간을 갖고 ‘제 자리’를 찾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헤매길 두 달, 결국 다시 청년인턴이 됐다. 이번엔 금융 관련 공기업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봤다. 여기서의 청년인턴은 정말 잉여 인간에 가까웠다. 초기 몇 달은 일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인턴 동기 몇몇이 모이면 하나같이 ‘일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책상에 앉아 다른 일을 하자니 민망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 청년인턴 기간 동안 다른 구직활동을 했다. 기관에서도 면접 등에 대비하라며 3일 간 무급휴가도 줬다. 부서 직원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그는 청년인턴에게 정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언제 떠날지 몰라 일을 가르쳐 주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으로 일하는 공기업 직원에게 청년인턴은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결국 정은 못 주되 업무시간에 취업 공부를 하거나 이력서를 작성하는 등 ‘딴짓’을 해도 눈감아주었다.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 찾아왔건만, 그리고 여기서 잘 배워 정규직이 되기를 희망했건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다시 연말이 되었다. 이번엔 청년인턴 90명 중 4명이 정규직이 됐다. 나머지는 각자 제 갈 길을 준비했다. 담당한 직원이 조용히 불렀다. “사회공헌 업무에 사회복지사가 있으면 좋겠다. 파견직으로 전환해 일해 보는 것은 어떠냐”는 얘기를 했다. ‘한 달 쉬었다 나오라’는 제안보다는 인간적이긴 했다. 그러나 파견직은 파견업체 소속으로 월급도 더 박했다. 청년인턴으로 일하면서 세금을 포함해 120만원 가량 받았는데, 파견직이 되면 파견업체에서 떼는 몫이 있어 급여가 100만원에도 못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2년 뒤엔 또다시 갈 곳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인턴 하지마! 다쳐! 조심해! 결국 두 번째 청년인턴직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공언한대로 청년인턴이 취업의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었으며, 되레 다른 구직 활동에 손해가 됐다. 어떤 곳에서도 1년 미만의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성공사례가 있다. 정부는 이들을 가리키며 청년인턴이 돼보라고 권유한다. 일단 채용인원을 늘려 취업률을 높이고자하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에게 청년인턴은 ‘잠깐 일자리’였으며, 되레 직업 선택의 폭을 좁게 하는 효과만 가져왔다. 청년인턴을 염두에 둔 청년에게, 또 청년인턴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정부에 말하고 싶다. ‘청년인턴 하지마! 다쳐! 조심해!
2017-06-27 | hrights | 조회: 21 | 추천: 0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은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쓰신 옥중 서간집「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구절이다. 암울한 현재를 살아가며 자유의 날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이보다 잘 표현한 글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입시 스트레스에 찌들어있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이 구절을 되뇌며 해방의 수능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넉 달을 궁극의 자유 속에서 보냈다. ‘내일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왔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통기타 치며 노래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시국을 논하는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에는 더 이상 그런 풍경이 남아있지 않았다. 캠퍼스를 누비며 청춘의 낭만을 불태워야할 대학생들은 반 평도 안 되는 도서관 책상에 앉아 대기업 직무적성검사, 공무원 시험 기출문제집과 씨름하고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기다릴 내일이라도 있지만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겐 기다릴 내일이 없다.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과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실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서관에 앉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한다.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학기당 4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꼬박꼬박 마련할 수 있는 가정은 드물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4500원 하는 시급으로 한 학기에 약 450만 원 가량 하는 등록금을 내려면 1000시간을 일해야 한다. 학기 중에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이 돈을 대려면 하루에 10시간을 일해도 부족하다. 게다가 방값과 생활비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학생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때문에 대학생들은 독서와 여행을 하며 보내야할 방학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내고 있다. 학자금 대출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생들은 복리로 이자가 붙는 이 돈에 미래를 저당 잡힌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학자금 대출액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학생이 2만5366명이다. 불과 3년 사이에 7배(2007년 말 3785명)가까이 늘어났다. 이들은 20대 중반에 이미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안고 사회로 나서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한 선배는 휴학을 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돈을 벌고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복학을 했다가 학비와 생활비로 번 돈을 다 쓰고 나면 다시 휴학을 하고 일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 다른 선배는 과외만 4개를 하고 있는데, '대학에 배우려고 들어온 건지 가르치려고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고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떤 선배는 “한 번에 목돈 벌어서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니겠다.”며 원양어선 승선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비싼 등록금과 심각한 청년실업은 대학생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지난 10년 동안 자취방에 연탄불을 피우거나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생이 2300명에 이른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꽃다운 청춘의 생명이 스러져가는데도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분들은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10일,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무기력해졌다.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더 많이 일해서 등록금을 채우려고만 하거나 장학금을 받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으면 등록금 문제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스펙 열심히 쌓아서 취업 잘 하면 청년실업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열망은 촛불과 함께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내일을 희망의 날로 만들기 위해 대학생들이 직접 거리로 나섰다. 3월에 등록금 동결을 내걸고 학교를 상대로 잠깐 싸우던 ‘개나리 투쟁’에서 벗어났다. 지난 5월29일 서울 광화문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후 연일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연행과 집회 불허로 맞섰다. 첫날 대학생 73명을 연행한 데 이어, 다음날 집회에서도 학생들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처럼 커질 것을 우려했는지, 청계광장에서의 집회는 무조건 불허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촛불을 끄려고 탄압할수록 촛불은 더 커졌다. 200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고등학생과 대학 졸업생, 학부모 등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하며 점점 참가 인원이 늘어나더니 지난 6월 10일에는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내가 다니고 있는 아주대학교 내에도 몇몇 학생이 매일 저녁 촛불을 들고 있고, 셋이서 들던 촛불을 지금은 열한 명이 함께 들게 되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였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선배도 함께 촛불을 들었다. “나는 이제 등록금 다 냈지만, 그 비싼 등록금을 몇 년은 더 내야할 너희와, 미래의 내 아이를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청춘들에게 ‘내일’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꿈과 희망의 말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청춘들은 내일을 두려워한다. 내일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살아가야할 청춘들이 이처럼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2011년의 대학생들은 그 어느 시대의 대학생보다도 가혹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어두운 현실을 환히 밝히려는 청춘들의 촛불은 전경으로도, 살수차로도 막을 수 없다. 60년대 군사 정권의 탄압도 신영복 선생처럼 내일의 자유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망을 꺾진 못했다. 나는 오늘도 내일의 희망을 위해 촛불을 들러 나간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의 한 구절처럼 작은 힘 하나하나가 모여 언젠가 현실의 벽을 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5 | 추천: 0
김한빛/ 객원 칼럼니스트 학교 후배 형범이는 편의점에서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형범이가 시급으로 받는 돈은 4000원이다. 법에서 규정한 시간당 최저임금인 4320원보다 낮다. 그런데도 형범이는 다른 편의점에 비해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만족해한다. 사실 형범이가 말한 대로 시급 4000원은 다른 편의점보다 많이 받는 편에 속한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80% 이상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비단 편의점만이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편의점이나 마트와 같은 체인점의 경우엔 최저임금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에 근접한 시급을 받는다. 하지만 피시방·주점 같이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사업장에선 4000원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학교 근처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후배의 경우, 시급 3500원을 받고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있다. 8개월을 일하는 동안 보너스 지급이나 임금 인상은커녕 야간 수당도 생각할 수 없었다.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겨울방학에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다른 후배의 경우 저녁 8시부터 업무 종료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 마감시간까지 일했다. 월급은 시간과 관계없이 고정된 80만원. 최저임금 4320원으로 계산하면 휴일 수당과 야간 수당을 제외한다 해도 1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아야 하지만 8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이들이 최저임금을 몰라서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후배들은 법학을 전공하고 있고 노동법도 잘 알고 있다. 다른 어떤 아르바이트생보다 최저임금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을 알고 있다 하여도 낮은 임금을 이유로 업주에게 항의하면 바로 해고당하기 쉽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에도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면 업주는 고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실제로 한 후배의 경우 편의점에서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다가 채용이 거부된 적이 있다. 그 후로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88만원세대 노조’라는 이름을 걸고 지난해 3월에 출범한 국내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지난해 4월 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정부에 청년실업 해결과 노동조합 설립 허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러한 최저임금 문제는 정부의 강력한 관리 감독도 필요하겠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더 요구된다. 고용주와 동등한 입장에 있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 혼자의 힘으론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혼자의 힘이 아닌 단체나 노조를 통해 고용주에게 노동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세대별 노조를 표방하는 청년유니온이 탄생하였다. 청년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기업별 노조나 산별 노조를 초월한 ‘세대별’ 노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는 아직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또한 노조가 법적으로 인정된다 할지라도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생들은 등록금이나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에 임금을 받게 되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노동부가 이를 보전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노동부에 최저임금 위반 신고를 하면, 받지 못한 임금을 노동부가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업주로부터 받아내는 방식이다. 몇몇 사람들은 예산 문제를 이유로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겠지만, 4대강 사업 예산의 일부분만 삭감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 말고 학교 차원의 노력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학교와 주변 상인 간에 협약을 맺어 업주는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학교는 성실한 학생들을 상인들에게 소개시켜주는 방안이다. 그렇게 하면 학생은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상인들은 안심하고 종업원을 고용할 수 있다. 또 협약에 가입한 업소들에게 최저임금 준수 업소 스티커를 부착하게 한다면 가게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에도 수만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40년 전 과거형이 아니라 2011년 현재형이다. 이러한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노동의 시계를 전태일 열사가 생존해있던 1960년대로 되돌리는 일이다. 더구나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열악한 아르바이트 환경에서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젊은 서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리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2 | 추천: 0
김한빛/ 객원 칼럼니스트 학교 후배 형범이는 편의점에서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형범이가 시급으로 받는 돈은 4000원이다. 법에서 규정한 시간당 최저임금인 4320원보다 낮다. 그런데도 형범이는 다른 편의점에 비해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만족해한다. 사실 형범이가 말한 대로 시급 4000원은 다른 편의점보다 많이 받는 편에 속한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80% 이상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비단 편의점만이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편의점이나 마트와 같은 체인점의 경우엔 최저임금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에 근접한 시급을 받는다. 하지만 피시방·주점 같이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사업장에선 4000원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학교 근처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후배의 경우, 시급 3500원을 받고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있다. 8개월을 일하는 동안 보너스 지급이나 임금 인상은커녕 야간 수당도 생각할 수 없었다.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겨울방학에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다른 후배의 경우 저녁 8시부터 업무 종료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 마감시간까지 일했다. 월급은 시간과 관계없이 고정된 80만원. 최저임금 4320원으로 계산하면 휴일 수당과 야간 수당을 제외한다 해도 1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아야 하지만 8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이들이 최저임금을 몰라서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후배들은 법학을 전공하고 있고 노동법도 잘 알고 있다. 다른 어떤 아르바이트생보다 최저임금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을 알고 있다 하여도 낮은 임금을 이유로 업주에게 항의하면 바로 해고당하기 쉽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에도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면 업주는 고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실제로 한 후배의 경우 편의점에서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다가 채용이 거부된 적이 있다. 그 후로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88만원세대 노조’라는 이름을 걸고 지난해 3월에 출범한 국내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지난해 4월 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정부에 청년실업 해결과 노동조합 설립 허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러한 최저임금 문제는 정부의 강력한 관리 감독도 필요하겠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더 요구된다. 고용주와 동등한 입장에 있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 혼자의 힘으론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혼자의 힘이 아닌 단체나 노조를 통해 고용주에게 노동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세대별 노조를 표방하는 청년유니온이 탄생하였다. 청년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기업별 노조나 산별 노조를 초월한 ‘세대별’ 노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는 아직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또한 노조가 법적으로 인정된다 할지라도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생들은 등록금이나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에 임금을 받게 되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노동부가 이를 보전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노동부에 최저임금 위반 신고를 하면, 받지 못한 임금을 노동부가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업주로부터 받아내는 방식이다. 몇몇 사람들은 예산 문제를 이유로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겠지만, 4대강 사업 예산의 일부분만 삭감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 말고 학교 차원의 노력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학교와 주변 상인 간에 협약을 맺어 업주는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학교는 성실한 학생들을 상인들에게 소개시켜주는 방안이다. 그렇게 하면 학생은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상인들은 안심하고 종업원을 고용할 수 있다. 또 협약에 가입한 업소들에게 최저임금 준수 업소 스티커를 부착하게 한다면 가게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에도 수만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40년 전 과거형이 아니라 2011년 현재형이다. 이러한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노동의 시계를 전태일 열사가 생존해있던 1960년대로 되돌리는 일이다. 더구나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열악한 아르바이트 환경에서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젊은 서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리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0 | 추천: 0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태양은 뜨거웠다. 일병 계급장을 막 달았다. 행정반 사무실에 앉았어도 사병의 여름은 더웠다.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는 뉴스가 실렸다. 법대를 다니던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로스쿨이 도입된다고 했다.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입학의 어려움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보초를 서면서도, 행군을 하면서도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마음껏 놀았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스펙 관리를 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많은 법대 학생들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사법시험 폐지 년도는 목전으로 다가왔다. 고시반이 위치한 인문사회관 4층은 황량하다. 신규 수험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장 수험생들만이 텅 빈 고시반을 지키고 있다. 법대 자체는 존치 논쟁에 휩싸였다. 학교에서는 고시반을 대체할 로스쿨 준비반을 계획하였다. 일종의 자구책을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저물어져가는 고시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로스쿨의 입학 요건과 관련이 있다. 로스쿨 입학을 위해서는 학점, 공인 영어점수, 법학적성시험(LEET) 점수가 필요하다. 즉, 취업시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점관리를 열심히 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면 그만이다. 법학적성시험도 이름만 그러할 뿐이다. 실질적인 평가요소는 속독과 추리, 그리고 작문 능력이다. 굳이 준비반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사법시험은 50년 가까이 법조인 선발을 담당해왔다. 그간 훌륭한 법조인들도 많이 배출시켰다. 그러나 심각한 사회적 병폐 또한 야기하였다. 법조계는 배타적 독점으로 점점 더 폐쇄화되었다. 한때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사법시험은 개인의 노력만으론 합격하기 힘들다. 수험서와 강의, 심지어 공부법까지 정형화되어 버렸다. 이를 갖추기 위해 만만치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월 평균 12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한다. 합격까지는 적어도 3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즉, 합격을 위해선 가정 형편상의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 3명 중 1명은 강남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사법시험을 통해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부는 로스쿨 도입이 많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폐쇄적인 법조계의 개방이다. 로스쿨 입시 과정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입학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대학의 학생들이 입학하진 못하였다. 로스쿨 측의 평가기준을 충족하였다 해도 입학을 보장할 수 없다. 명문대 졸업이란 묵시적 요건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다. 로스쿨의 연간 등록금은 평균 1,500만원이다. 이는 웬만한 ‘중산층’에게도 부담되는 금액이다. 등록금이 입학의 실질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로스쿨이 오히려 법조계의 폐쇄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이는 특권층의 재생산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사법시험의 사회적 문제가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6일, 3000여명의 로스쿨 재학생들이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50%로 제한하자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주장에 반발하여 단체로 자퇴서를 제출하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도입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로스쿨 제도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로스쿨의 미래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물론, 로스쿨의 긍정적 측면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로스쿨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예견한다.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압도적이다. 법조종사자 중 79%가 로스쿨 폐지를 주장한다. 이들 중 42%는 사회계층의 단절을 우려한다. 제도 자체가 상위계층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선발과정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혈연, 지연, 학연이 개입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로스쿨의 ‘현대판 음서제’라는 별명과 관련성이 크다. ‘한국형 로스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초기이니만큼 많은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변화 과정에서 사법시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법조계가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아니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로스쿨이었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봐야한다. 자칫하면 ‘사다리 걷어차기’식 제도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2 | 추천: 0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교육학을 공부한다. 4년 전 수능을 마치고 한참 원서를 작성하던 그 시절, 부모님은 내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에 진학하길 원하셨다. 대학 4년 내내 꼬박 3천만 원 가까운 돈을 대학에 헌납해도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일자리 하나 얻을까 말까한 현실 앞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한민국 부모의 심리였다. 하지만 나는 인문학부에 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2007년 아직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부제가 운영되었던 시절, 우리 학교의 단과대학 구분에 따르면 '교육학과'는 인문학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교육 사회학 분야에 관심이 많던 나였다. 그럴 바에야 임용고시에 유리한 사범대나 교대에 가라는 부모님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없는' 고집을 부렸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세 질을 한 달 만에 읽어 내려가면서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며 사학과 진학도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4년 후, 지금 나는 집과 취업스터디를 오가는 변변치 않은 휴학생에 불과하다. 그때 교대를 갔다면 나는 '최고 신부감'이 될 수 있었을까. 대학 동기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윤동주의 감성적인 시어에 푹 빠져 그 후예가 되겠다며 국문학과에 입학한 친구가 있다. 그는 지금 최소한의 효도는 해야겠다며 신림동의 한 원룸에서 행정학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불교철학에 심취했던 또 다른 친구는 4학년이 되자 대학원에 갈 집안 형편도, 기업에 취업하기도 여의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가 '장관'이 아님을 한탄하며 고시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는 기쁨도 잠시, 대한민국 20대의 혹독한 현실에 정면으로 부닥치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입학 이후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경영학이나 경제학으로 전과해 자신의 학적에서 인문학을 지웠다. 또 다른 이들은 가까스로 이중전공을 할 수 있게 되어 취업시장에 턱걸이했다. 남아있는 몇 명만이, 수강생이 10명 남짓으로 준 전공 수업 강의실의 분위기를 전할 뿐이다.   지난 해 중앙대는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ㆍ학부로 통폐합하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물론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자면 한없이 개인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시절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높은 수능배치표에 안착하지 못했음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지 않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예 자본의 논리가 넘실대는 대학의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했음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 대고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같은 이라면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호통 칠지도 모를 일이다. 인문학을 홀대하는 대학과 사회 분위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피부로 느끼는 장벽은 높았다. 사회는 철저하게 '기업화된' 인재만을 원했다. 대학은 이에 장단을 맞출 뿐이다. 상경계열 전공자가 아니면 지원조차 할 수 없는 회사가 수두룩하고 그마저도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이들의 피 튀기는 전쟁이다.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없는 학과와 학생들은 사회는 물론, 대학 내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해가 갈수록 하는 수없이 전공을 바꾸거나 고시로 발을 돌리는 후배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90%가 대학을 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학이 학생들을 기업에 진출할 산업인력만으로 취급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진리와 자유의 전당이라 자부하는 대학의 첫 번째 임무다. 하지만 지금 4년의 대학생활은 개인들의 서로 다른 개성과 창의성을 단 하나의 논리로 획일화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폭력에 가까운 처사다. 대학은 자율화가 추진하지만 그 '자율'은 학문과 학생을 위한 자율이 아닌 시장과 자본으로 향하는 자율뿐이다. 빠르게 회계장부를 읽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만 급급한 대학교육 속에서 왜 우리에게는 '스티브 잡스'가 없냐는 하소연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같은 회사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숨지고 자살을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사는 것은 힘들다. ‘인문대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더욱 팍팍한 일이다. 시장논리에 빠르게 편입하는 대학구조 속에서 인간의 역사와 철학, 문학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앙대 등 일부 대학들은 학과 구조조정으로 인문학과를 통·폐합해 실용학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국문학을 공부하든 철학을 공부하든, 회계학이 대학생으로서 꼭 갖추어야 할 ‘필수교양’이 되었다는 소식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직 내가 다니는 대학의 인문학과는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점점 후배받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많다. 9월이면 나는 복학해야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1950년대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증축된 이후, 현재 교육대학 건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 곧 철거될 예정이다. 역사적 의미와 함께 '우리'에게는 유일한 터전이었던 건물이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지하 3층 지상 9층의 최신식 경영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최신식 인프라를 갖춘 건물에서 공부하게 된다는 소식은 분명 반갑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 공청회는 소리 소문 없이 치러졌다. 그리고 우리는 전교생의 교양수업이 이루어지는 '종합관' 언저리에 2개 층만을 빌려 사용할 것이라는 발표만이 있었다. 씁쓸하다. 학교 안에서도, 또 학교 밖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한 이 느낌은 우리를 인문대와 경영대 사이 그 어딘가를 서성이게 만든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이화여대(이하 이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박모(23)씨는 지난 1월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졌다. 박씨가 구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5만원의 방은 창문이 없었다. 주방 바로 옆에 있어 음식 냄새와 각종 소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박씨는 “월세와 생활비를 고려했을 때 구할 수 있는 집은 그것뿐이었다”며 “창문 있는 방을 알아봤지만 매 달 10만원을 더 내야 해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옛 말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에게는 자취삼천지교(自炊三遷之敎)가 더 다가온다. 적어도 세 번은 집을 옮겨봐야 좋은 환경을 가진 방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졸업 전까지 같은 방세를 지출하고 싶다면, 물가 상승으로 세 번 정도는 방을 옮기게 된다는 뜻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자취생과 하숙생이 배우는 세 가지 교훈. 집 없는 설움, 혼자 살면 다 돈이고,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신촌 대학가 하숙비는 지난해와 비교해 최대 10%, 자취는 30% 이상씩 올랐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한 달 생활비는 최소 30~40만원이다. 줄일 수 있는 건 방세뿐이다. 집에서 누리는 안정감, 편안함은 사치다.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방, 빛 한 줌 없는 방 안에서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 청춘이 어떤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올해 들어서는 하숙집에서 주던 밥도 줄어간다. 주말과 평일 점심에는 편의점의 삼각 김밥이나 컵라면이 당연한 일상이 됐다. 신촌 대학가에선 공동 행동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총학생회 중심이다. 심지어 학생회 선거 때 공약집에서도 학생 주거권 문제는 점점 발견하기 힘들다. 올 봄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에는 5년 만에 2001명이 모인 학생 총회가 열렸다. 반면 주거문제는 일부 지역 출신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보는 것 같다. 관심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대만 봐도 수도권 이외 출신 학생이 40% 이상이다. 수도권에 살더라도 거리가 멀어 통학 대신 하숙이나 자취를 선택한다. 대학가에서 주거 문제로 고민 하는 학생은 늘어간다. 주거는 곧 복지다. 누구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학생 스스로 나서야 한다.   반지하 자취방에서 바라본 창문 밖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대는 대학원생을 제외하고 학부생을 위해 2개 동의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수용 비율은 2010년 기준 7.8%로 신입생은 615명, 2~4학년 재학생은 98명만 받을 수 있다. 기숙사 입주를 위한 경쟁률은 신입생 1.7:1, 재학생은 7:1 이상이다. 지방 학생들에게 기숙사 입주는 로또가 된지 오래다. 이대 국제 기숙사가 2012년 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에 있다. 외국인 학생과 교원들에게 안정적인 기숙 시설을 제공하겠다는 배려가 느껴진다. 학생기숙사 증축은 아직도 계획 중에 있다. 재학생들에게 안정적인 기숙 시설과 학교의 배려는 먼 이야기이다. 공간점거운동, 빈집점거운동, 주택점거운동 등으로 불리는 스쾃(squat) 운동은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공공성과 권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미국의 주택점거운동, 브라질의 땅 없는 사람들의 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머지않아 이대생들의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점거운동, 신촌 대학가의 집 없는 젊은이들의 운동도 일어날 법하다. 계획만 있고 해결은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말이다. 자취 첫날밤이 떠오른다. 잠도 밥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은 잠깐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시텔 월세 57만원과 생활비 30만원을 내주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이 큰 도시 안에 돈 걱정 없이 발 뻗고 편하게 잘 공간이 없다는 서러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푸른 꿈을 꾸면서 사는 것이 청춘이라고 한다. 하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 핀 곰팡이가 내게는 현실이다. 방세 걱정에 파랗게 멍든 가슴이 우리의 청춘이다. 자취삼천지교를 통해 얻게 된 진정한 교훈.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진리. 싼 방을 구하려 발품을 팔던 그 시간과 노력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보았다면, 조금 더 일찍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적극적으로 요구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자취 생활 3년차, 졸업을 앞둔 학생의 뒤늦은 후회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올 초에 친구의 소개로 한 대형마트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합쳐 450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책값이라도 벌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자는 생각이었다. 스무 살에 맞은 생애 첫 직장생활이기에 더욱 들뜬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일은 설 명절 선물세트 박스를 나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무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 꾸지람을 들었다. 다른 파트 판매원 아주머니의 일을 거들었다는 이유였다. 그때 비로소 나는 마트 소속 직원이 아니라 마트에서 한 파트를 맡은 A업체의 파견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트는 각 파트 별로 담당 파견업체를 쪼개놓고 있었다. 같은 매장에서 일해도 업체가 다르면 경쟁자였다. 자기 파트 물품을 조금이라도 팔기 위해 묘한 신경전이 계속됐다. 과도한 경쟁 탓에 동료애는 느껴지지 않았다. 노동여건도 열악했다. 5일에 한 번 쉰다는 약속과 달리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그에 따른 수당은 받지 못했다. 출근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했지만 퇴근 시간은 마트의 담당 직원 마음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물류창고에서 박스를 나르다가 가까이 있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친구의 파트를 총괄하는 직원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으며 “네가 직접 하라”고 했다. 자기 파트 직원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혼자 일을 했다. 그러나 그 직원은 “대답이 건방지다”며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내 머리를 때리고 박스더미에 나를 내팽개쳤다. 그로 인해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뽑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난 당장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에게 사법처리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들은 “가해자가 마트 소속 직원이니 파견업체 소속인 네가 참으라”고 다독였다. 마트 간부는 “A업체는 앞으로 행사에 참여할 수 없을 줄 알라”고 협박했다. 그 간부는 내게 “억울하면 고시를 보든 해서 성공해라. 넌 지금 하찮은 아르바이트생일 뿐”이라고 무시했다. 다른 직원들도 “남들은 다 참고 넘어가는데 왜 너만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느냐”면서 나를 사회부적응자로 몰아갔다. 잠시 뒤 내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는 “사건을 덮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며 “제발 사건을 덮어달라”고 했다. 고민이 됐다. 잘못한 건 마트 직원인데, 내 친구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나와 친구의 사이도 틀어질 위험이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요청을 거절했다. 부당한 대우를 그냥 참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녁 시간이 됐다. 친구들은 멈칫멈칫하더니 나와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밥 먹으러 갈 때 뭉쳐 다니지 말라더라’고 했다. 돌려 말했지만 나와 함께 다니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한 뒤 혼자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데, 서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고등학생 때 접한 노동인권 강의에서 자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놓고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고 분열시킨다는 얘길 들었다. 언제 해고될 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로 뭉치는 데 장애가 된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직접 겪은 대형마트의 노동현실은 강의에서 듣던 것보다 심각했다. 수직적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의 구분이 마치 봉건시대 귀족과 평민처럼 뚜렷했다. 수평적으로도 파트별로 다른 업체가 경쟁하도록 만들어 놓아 노동자는 말 그대로 파편화된 존재였다. 기대했던 노동의 보람이나 협동의 가치는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기계 같았다. 그날 저녁 난 바로 해고됐다. 마트는 고작 파견 직원을 해고하면서 사유를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진 않았다. 설렘으로 시작한 스무 살의 첫 직장생활은 이렇게 사회의 어두운 면만 또렷이 각인한 채 20여일 만에 끝이 났다. 작업복을 벗고 마트를 나서는데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간부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실제로 난 억울했다. 다시는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래서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다짐을 선뜻 할 순 없었다. 앞으로 대학생활에서 고시에 합격하거나 경쟁자에 비해 학점과 토익·자격증 등에서 앞선다면 그 간부가 말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 대다수 대학생이 꿈꾸는 성공이고, 나 역시 그러한 성공에 대한 갈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성공하더라도 어느 마트 직원은 스무 살 아르바이트생을 때리고도 면죄부를 받고, 맞은 아르바이트생은 참기를 강요받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난 과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내가 겪은 억울함이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애 첫 해고를 당한 날 밤은 이런 저런 고민으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