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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안 뽑음, 집 없음, 안 모임, 입 다물 (김원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31
조회
269

김원진/ 청년 칼럼니스트


* 언어는 현실을 반영한다. “나, 취뽀했어!”의 취뽀는 취업 뽀개기의 줄임말이다. 취업을 뽀갰다는 것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비정규직 내지 계약직으로 취업했다고 취업 뽀개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잠정적 취업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통계는 얼추 현실을 드러낸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20대는 취업(48.3%)에 가장 집착한다. 1998년 300인 이상 기업 취업자 가운데 청년층 비중(15세~29세)은 30.0%였지만 2013년에는 18.0%에 불과하다. 20대 대기업 중 11곳은 매출이 10억 원 늘 때, 고용은 1명도 늘지 않았다. 산업의 파이는 커졌는데 고용현실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취소, 불투명, 수시채용 대체, 공채 소극적 자세,이공계열로 축소, 채용 축소.

올 상반기 공채 기상도다. 물론 기준은 ‘대기업’이다. 누군가 트위터에 이렇게 표현했다.

“2014년 상반기 취업 트렌드: 안 뽑음”

*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이 권리는 도시에서 편익을 누릴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 권리 등을 포함한다. 허나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현실 속 도시의 주거 문제는 고약하다. 대학가 고시원, 원룸은 한 달에 4, 50만원을 훌쩍 넘는다. 겉만 번드르르할 뿐, 옆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매일 밤 들려오기도 한다. 2012년, 대학생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공공 기숙사 건립사업'이 시작됐다. 그러자 학교 주변 원룸, 하숙집 주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값싼 공공 기숙사가 들어서면 건물 업주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이냐는 하소연이다. 드잡이가 일어난 사이, 서울의 평균 전세가격은 더 올랐다. 서울 25개구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평당 1000만원을 넘어섰다. 도시에서의 삶은 값비싼 사치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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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 경향신문


* 얼마 전, 서울대에선 총학회의가 열렸다. 참가자에겐 5만원 씩 지급됐다. 교통비 명목이었다. 100여명이 참석했으니 500만원이 살짝 넘었다. 논란이 일자 총학생회는 다음의 답변을 내놓았다. “새벽에 회의가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을 벗어나면 택시비 만해도 엄청나다.” 이번엔 학교 학생회에 오래 몸담았던 선배에게 물었다. “돈이라도 안 주면 참석을 안 하니까.” 선배는 좋지 않은 관행이라고 하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을 피력했다. 지난주 서강대에서는 전체학생총회가 있었다. 정족수 미달로 회의를 열지 못했다. 회의 개최에 무려 2000여명이 모자랐다. 회의는 웅성거림으로 어수선했다. 보다 못한 총학생회장의 집중해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 비민주적인 학칙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학생들이 모였다.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종 행정적인 절차를 들며 교직원이 감시 및 방해에 나섰다. 학생들과 기자들이 신분 확인을 요구하자 끝까지 거절했다고 한다. 2012년 대선 직전, 서강대 페이스북 커뮤티니에선 논쟁이 붙었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주장과 자유로운 공론장에선 어떤 주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섰다. 누군가 소위 ‘정치적’인 게시물을 올리면 곧바로 지워졌다. 익명의 관리자 두, 세 명의 소행이었다. 그 후 정치적인 것의 ‘바깥’이라는 누군가의 기준이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정치적’인 얘기는 거의 오가지 않는다. 분실물을 찾아주거나 홍보용으로 쓰인다. 간혹 미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 세대론은 더 이상 화두가 아니다. 다시 20대 문제는 잠잠해졌다. 더 이상 반값등록금은 주목 받지 못한다. 고용창출은 대부분 생색내기다. 인턴과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점철된다. 이것은 현상이다. 어쩌면 다행이다. 세대론의 수명은 다했다. 세대론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세대문제는 사회문제가 되어버렸다. 20대의 문제가 곧 10대와 30대의 문제다. 10년 후 노동시장에 뛰어들 10대에게도 일자리는 넉넉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 은퇴한 50대가 맞닥뜨린 문제와도 유사하다. 평균 수명 80세 시대에 재취업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고로 20대 문제는 곧 한국사회의 문제다.

* 일자리는 줄어들거나 정체한다. 이리저리 매달려도 양질의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쉽지 않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고 자동화한다. 기업가 입장에서 사람은 미래이기보다 그 자체로 돈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부모 내지 조부모의 재력 없이 불가능하다. 집값은 점점 더 터무니없어지고, 정부는 터무니없음을 부추긴다. 공론을 나눌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바쁘기도 하거니와 헤쳐모여 식의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다. 의견은 공유하되 파편화된다. 연대의 경험은 없다. 이렇게 안 뽑음, 집 없음, 안 모임이 모이면 결국 ‘입 다물’이 형성된다.

* 이상향을 꿈꿨던 플라톤은 ‘정치적’인 것의 범주를 축소하려 했다. 그 방법은 사회에서 갈등을 없애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갈등이 사라지면 이데아에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틀렸다. ‘입 다물’은 갈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은폐한다. ‘입 다물’ 앞에는 대개 괄호가 숨어 있다. (나와 다른 생각 하는 사람들은) ‘입 다물’! 결국 그럴수록 입을 열어야 한다. 말, 말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서 입을 다물면, 시간 흐른 뒤 입만 뻥긋해도 누군가 검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버릴지도 모른다.

* 나는 그런 사회가 두렵다.

김원진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팀에서 활동 중인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