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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서사를 고문하는 계절 (김원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27
조회
352
- 기억의 습작

김원진/ 청년 칼럼니스트

때 이른 한파 덕분에 방에 틀어 박혀있기 안성맞춤인 요즘, 알게 모르게 캠퍼스엔 전운이 감돌아요. 남을 수밖에 없는 자와 떠나려는 자 그리고 떠난 자 사이엔 간극이 느껴져요. 1차, 2차, 3차. 술자리가 아니에요. 관문이에요. 좁아요. 몸을 좌우로 잘 비틀어 통과해야 해요.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1차', 그러니까 서류전형도 이젠 제법 까다로운 통과의례가 되었다고들 하네요.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승부수를 던져요. 그게 자기소개서예요. 예쁘장한 자기소개서 말이에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이 있데요. 본인만의 스토리, 제한된 분량 안에서 풍부한 이야기, 원론은 금물, 군대 일화 금지, 경험과 과정, 느낌을 구체적으로, 두괄식, 본인'만'의 생각, 팩트 중심과 논리 그리고 정확한 표현. 헉헉, 숨이 차네요.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거 없어요. 글쓰기 대원칙 따위와 유사하죠.

우리 시대에 가장 절박한 문학의 양식이 있다면? <잉여사회>의 저자 최태섭씨는 자기소개서를 문학에 비유하더라고요. 비유가 아니라 비꼬는 거죠. 영희는 작년 이맘때쯤 처음 자기소개서를 써봤어요. 인턴을 쓰기 위해서였어요. 기억과의 전쟁, 그 서막이었어요. 소크라테스는 그랬다죠. 질문은 망각하고 있던 걸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무던히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영희는 자기서사의 토대를 단단히 구축하려 했어요. 기억을 회고하며 재배치하고, 그리곤 지원하는 부서 담당자들의 입맛에 맞을지 다시 한 번 고민했죠. 이 치열한 분류와 배제의 정치학을 거듭하고 나서야 나쁘지 않은 작품이 나왔어요. 적어도 영희 생각엔 그랬어요. 친구들은 아니라고 했어요. 네가 아무리 기업의 사회공헌(CSR)팀에 지원한다고 해도 기업은 기업이니 몇 개 항목은 갈아엎으라고 했어요.

영희는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말이죠. 사실 기억은 어떤 수식어 없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소중한' 기억, '씁쓸한' 기억, '자질구레한' 기억, '지우고 싶은' 기억. 그때 영희는 '사회공헌팀이 원할 만한' 기억을 나름대로 선별했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본인의 개성도 드러냈죠. 평소에 인간과 사회의 총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은근슬쩍 티내면서 어필했어요.

틈틈이 메모해놨던 인생의 순간순간들을 자기소개서에 쏟아 부었어요. 왜 이런 말 있잖아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첫사랑이라거나 가장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이 첫사랑이란 말들 하잖아요. 기억은 보험처럼 갱신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영희는 몇 개의 '최초의 기억'을 끄집어낸 거죠. 마치 류현진이 1회와 2회에는 직구 위주의 피칭을 하고, 경기 중반엔 체인지업과 커브를 골고루 섞어 던지는 것처럼 기억의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짰어요.

때마침 취업시즌을 맞아 학교에서 취업박람회가 열렸어요. 자기소개서 무료 컨섵팅을 하더라고요. 영희는 써놓은 자기소개서를 하나 들고 일단 찾아갔죠. "영희씨는" 2:8 가르마의 신사분이 말씀하셨어요. "아직 기업마인드가 충만하지 않고만."

항변까지는 아니고 변명이랄 것까지도 없는 해명 정도를 했어요. 처음 써본 거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끌어내 쓴 자소서다. 그런데 그렇게 보잘 것 없나? 알아요. 원래 그런 거. 필자(취업준비생)과 독자(인사담당자)사이엔 어마어마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거 잘 알아요. 어디 이뿐이겠어요. 세상의 모든 필자와 독자는 오해로 점철된 관계라죠. 필자에겐 '최초의', '신선한', '깜짝 놀랄만한' 인식론적 충격의 기억이겠지만, 독자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스윽 읽어버리죠. 이건 쓰는 이와 읽는 이의 필연적 갈등이자 비극이라고 영희는 배웠어요.

OO씨는 시민단체나 사회복지관으로 가셔야겠어요. 취업컨설턴트라는 명찰을 단 여성분이 영희에게 말을 건넸어요. "이것은" 취업컨설턴트가 말했어요. "에세이가 아니에요. 좀 더 기업과 관련 있게 끌어 당겨 써야 해요." 안데요, 영희도. 마음에 쥐뿔만큼도 없는 소리, 어차피 해봤자 들통날까봐 적지 않은 거라고요. 참, 다들 영희 마음을 몰라주네요. 그래도 영희는 서랍 속에서 일기장(물론 타인을 의식한)을 꺼내놓은 거였는데.

사실 거창한 목표도 있었어요.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 <베를린의 유년시절>은 유년 시절의 개인적 기억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려요. 사회적, 역사적 차원으로 말이죠. 영희도 자기소개서에 본인이 기록해 놓은 '최초의 기억'에 보편성을 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사 담당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싶었죠. 물론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요.

공짜로 컨설팅 한 번 받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어요. 집으로 돌아와 다시 기억을 쥐어짰고 서사를 마사지했어요. 결국은 왜곡된 사실이 나열되고 떠먹기 좋게 편집됐지요. 기업의 '니즈'에 맞춰서요. 어쩔 수 없었어요. 키워드 하나하나 섬세하게 바꿨어요. '성실하고 근면한'(하기 싫은 건 일단 안하고 봐요), '친구가 많은'(저는 제 결혼식에 과연 몇 명이나 올까 벌써부터 고민합니다), '긍정적이고 밝은'(매사에 삐딱하고요) 따위의 매력적인 수사를 집어넣었어요.

처음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영희는 있는 그대로 말했어요. "인간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두루 고민하는 사원이 되고 싶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형용사를 동원할 수 있게 됐어요. "근면성실함을 바탕으로 저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기업 가치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달 뒤에는 문장의 리듬도 탔어요. "부지런합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 곁에서 OO기업의 마스코트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최종 응모작이 되었어요. 처음에 썼던 자기소개서는 습작쯤이라 해두죠. '내 문서'에 저장되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습작.

그럼에도 영희는 다 떨어졌어요. 주위에선 지인들이 낙방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기업 친화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지인들의 '다수설'이었어요. 삼성직무적성검사에서 월등한 성적을 기록했다는 선배는 '장광설'을 내놓았어요. 기업 자기소개서에 너무 공을 들여 많은 썰을 늘어놓은 게 아니냐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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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21


 

이렇게 설이 분분한 가운데 변하지 않는 사실은 영희가 넣은 기업에서 떨어졌다는 거겠죠. 이렇게 떨어질 바엔 차라리 습작을 넣는 게 어땠을까요. 하드디스크 한 구석에서 21.4킬로바이트라는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이 녀석이 측은하다고 영희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희는 파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줬어요. '습작1 자기소개서.hwp'

1. 입사지원 동기를 상세하게 기술하여 주십시오.(본인의 차별화된 장점과 그 동안의 준비 과정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제목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시각장애인 복지관, 이곳은 저의 대체복무지였습니다. 훈련소를 나온 다음날, 저는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복지관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그 꿈이 깨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이었습니다. 조직은 경직돼 있었고 복지재단의 친인척들은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었으며, 일반 직원들은 업무에 시달렸습니다. 꾸역꾸역 사회의 복지체계를 거들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시발점을 찾았습니다. OO기업의 사회 공헌팀을 만난 건 행운이었습니다. 근무한 지 일 년 정도 지났던 어느 날, OO기업 사회공헌팀은 제가 근무하던 복지관에 찾아왔습니다. 활력이 넘쳤습니다. 물론 기업 활동의 일환이었지만 그래도 진정성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저에겐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모종의 답을 찾았던 셈이죠.

그날 이후 ... (후략)

(나쁘지 않으나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 첫 부분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
2.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도전적이고, 어렵다고 느껴졌던 경험에 대해 기술하여 주십시오.(일의 배경, 그때 느꼈던 감정, 어려웠던 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 일의 결과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제목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습니다. 사회봉사 동아리의 회장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음악'이라는 소재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팀원들이 모두 모여 일 주일 정도 생각을 내고 다시 엎고 또 다시 결정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혁신', '혁신'을 외쳤습니다. 닦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새로움을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던 동아리 부원이 저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청해왔습니다.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는 내게 어떤 예술사조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언제나 새로움, 파격만을 추구하던 일군의 예술집단이 있었는데 결국 그들은 어떤 극단에까지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한 순간까지 갔다는 새드엔딩이 그가 건네준 일화의 결말이었습니다. 뭔가 아차 싶었습니다. 새 것, 혁신적인 것에 집착하느라 그간 놓친 구성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 (후략)

(다소 추상적인 비유와 논쟁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표현이나 비유로 대체할 필요가 ... )
3. 자신의 소신, 원칙이나 기준을 지키려 하지만 상황적으로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갈등을 겪었던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주십시오.(그때 상황, 느꼈던 생각과 감정, 일의 결과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제목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친구는 발표를 시작했고 저는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기사를 요약, 정리하고 한국 언론의 동향과 비교하는 발표였습니다. 성범죄라는 선정적이기 십상인 기사를 독자의 시선은 사로잡으면서도 건조한 어조를 잃지 않았다고 평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도 넣고, 친구의 능글맞은 성격 덕에 발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질문과 답변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고갔습니다.

그 때 한 분이 손을 번쩍 드시더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라고 운을 띄우며 그는 자신은 이 기사가 선정적이지 않다는 데 자신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반인권적이라고 했습니다. 몇몇 정보만 조합해보면 피해자의 지인들은 충분히 기사에 등장하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흔들렸습니다. 비판은 언제나 겸허히 수용한다는 평소 저의 신념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되도 않는 반론을 펼쳤습니다.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인권'이라는 가치에 집착했습니다. 제가 가진 '인권 감수성'에 대한 근거 없는 자만이 화를 불렀던 것이었습니다. ... (후략)

(인권은 참 착하고 좋은 얘기지요.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런 자기소개서를 원하진 않습니다 ...)

기업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서사를 갈아치운 영희는, 지금 어딘가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을 피디가 떠올랐어요. 작가에게서 내려온 대본을 받았겠죠. 제작자나 방송국에서는 간접광고를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도록 장면을 잘 각색하라고 요구하겠죠. 위에서, 기업이, 자본이 요구하는 걸 어찌 묵살할 수 있겠어요. 영희는 비판을 즐겨 들으려고 해요. 물론 불편하죠. 마음도 아프고, 자신감, 자존감이 동시에 뒤흔들릴 때도 많죠. 그런데 영희가 진한 글씨의 첨삭을 받은 날, 영희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인생에서 가장 불편하고 어딘가 찝찝한 비판을 받은 날로 기억해요. 이 또한 최초의 기억이겠죠.

자본은 속수무책이죠. '기억', '최초의 기억'마저도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무턱대고 비판하려는 건 아니에요. 자가 번식의 최고봉 자본주의에게 '기억' 따위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죠. 다만 기억은 나만의 고유한 것이고, 그래서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에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기억에 대한 해석이 바뀌기도 하죠. 첫사랑을 여우였다고 비난했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어렸음을 남자들은 깨닫기도 해요.

내년이면 영희는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할 거예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앞, 뒤 맥락 자르고 질문에 알맞은 기억만 쓰겠죠. 누군가의 최초의 기억들은 휘발되어 날아가겠죠. 정확히는 기억이 의미를 잃어버리겠죠. 영희는 '나'를 결코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음에도 마치 제 3자 입장에서 나를 들여다 본 양 서술하겠죠. '자기'이야기를 쓰면서 기억이 왜곡되고 '자아'가 분열되는 아이러니라고 해도 될까요. 의미가 배제된 자리엔 계량화가 들어차 있어요. 대기업 인사개발팀에서 근무는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엑셀로 돌려. 그래서 중요한 키워드 안 들어가 있는 애들은 걸러 버려."

철학자 아리마 미치코는 이렇게 말해요. "시간을 지각하기 위해 특수화된 감각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오감은 '시간'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거예요. 시간에 대한 지각이란 다양한 감각이 지닌 지속-계속-변화의 측면을 추출하고, 이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그때서야 비로소 시간성을 지닌 '기억'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거죠.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살아온 시간, 그러니까 자기서사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나'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총체인 '자아' 역시 존립할 수 없는 거죠.

영희는 자기소개서가 무서워요. 다들 꾸역꾸역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것 같지만, '최초의 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 강렬한 기억들은 저 밑으로 밀려나요. '기억' 저편으로 기억이 사라지겠죠. 전자가 자기소개서 아이템이라면 후자는 '최초의 기억'일 거예요. '최초의 기억'으로 구성되는 시간은 '가치 없음'으로 둔갑해 버리는 거겠죠. 영희는 이것을 '자기 서사'없는 자아라고 표현하고 싶대요. 자기서사가 없는 자아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니까 형용모순이지만 영희는 쓴다고 하네요.

그런데, 영희는 누구십니까? 영희는 제 친구입니까? 학교 선배입니까? 아니면 엄마 친구 아들/딸입니까? 마지막으로 영희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저일 수도 있고, 제 친구일 수도 있는 제가 시 한 편 남기고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이력서 쓰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무엇이 필요한가?
신청서를 쓱,
이력서를 첨부해야지.

살아온 세월에 상관없이
이력서는 짧아야 하는 법.

간결함과 적절한 경력 발췌는 이력서의 의무조항.
풍경은 주소로 대체하고,
불완전한 기억은 확고한 날짜로 탈바꿈시킬 것.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만 사랑으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만 자식으로 인정할 것.

네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누가 널 아느냐가 더 중요한 법.
여행은 오직 해외여행만 기입할 것.
가입 동기는 생략하고, 무슨 협회 소속인지만 적을 것.
업적은 제외하고, 표창 받은 사실만 기록할 것.

이렇게 쓰는 거야. 마치 자기 자신과 단 한 번도 대화한 적 없고,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해왔던 것처럼.

개와 고양이, 새, 추억의 기념품들, 친구,
그리고 꿈에 대해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가치보다는 가격이,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중요하고,
네가 행세하는 '너'라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보다는
네 신발의 치수가 더 중요한 법이야.
게다가 한쪽 귀가 잘 보이도록 찍은 선명한 증명사진은 필수.
그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보다는
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
이런, 서류 분쇄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잖아.

김원진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팀에서 활동 중인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