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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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현재 우리는 한미FTA 비준을 통해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모든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나름으로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불안해하면서 알게 모르게 고민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인 위기는 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잠재성을 지니고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수동적인 미온적 태도 탓에 구렁텅이에 빠져 퇴락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벼랑에 선 결연한 태도로써 그동안의 엉거주춤한 입장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향한 정신적 무장과 실천을 수행해 나갈 것인가. 현존하는 모든 것들은 양 방향의 벡터적인 힘을 발휘한다. 한쪽은 수렴·응축의 방향이고, 다른 한쪽은 확산· 분절의 방향이다. 이 두 방향은 동시에 작동하면서 현존하는 모든 것들의 성격을 규정한다. 수렴·응축의 방향은 자성(自性)을 향한 방향이고, 확산·분절의 방향은 대타성(對他性)을 향한 방향이다. 그런데 이 두 방향의 힘들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작용과 반작용처럼 서로 맞물려 작동한다. 자성은 스스로의 존재가 지닌 강도와 밀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대타성은 자기 아닌 것들과의 뭇 관계들을 관통·포섭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다. 이 두 방향의 힘은 서로를 규정한다.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열림의 폭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수렴·응축에 의한 자성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그 반대로 수렴·응축에 의한 자성의 위력이 크면 클수록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열림의 폭이 커진다. 현존하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의 자성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대타성을 향한 열림의 폭을 넓혀야 한다. 즉 대타성을 향한 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그 반대로 대타성을 향한 열림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자성의 위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자성은 대타성을 통해 열림의 성격을 갖고, 대타성은 자성을 통해 능동의 성격을 갖는다. 한 국가도 현존한다. 말하자면, 국가도 벡터적인 방식으로 현존한다. 그러니까 국가도 수렴·응축을 통한 자성의 위력을 갖추면서 확산·분절을 통한 대타성의 위력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말하자면 확산·분절을 통한 대타성의 위력을 갖추면서 수렴·응축을 통한 자성의 위력을 동시에 갖추지 않으면 한 국가의 운명은 그만큼 위태로운 지경으로 치닫는 셈이다. 지금 한미FTA 비준과 대통령 서명이 임박한 한국의 상황은 이 같은 위태로운 지경으로 치닫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말기 이른바 서세동점에 의해 서양 세력들이 침범해 들어올 때, 조선의 위정자들은 기존의 확산·분절의 장인 청나라만을 믿고서 그 장을 바탕으로 하면 얼마든지 그동안 형성해 온 수렴·응축의 국가적인 자성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른바 대원군의 쇄국 정책은 기존의 자성과 대타성의 영역을 고집함으로써 새롭게 열리는 대타성과 자성의 가능성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자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렴·응축의 방향으로 나아가되 새롭게 열리는 대타성의 영역으로 향한 확산·분절의 위력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제대로 된 자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 제국주의에 넘김으로써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자성마저 완전히 상실하고 만 것이다.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사후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결과론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다만, 그러한 역사가 언제든지 현재 속의 미래를 통해 그 구조와 형식을 반복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서 말하면, 조선(혹은 대한제국)이 나라를 빼앗기고 만 것은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다양한 열림을 조율해 나가고자 하는 정신과 그럴만한 역량을 구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닫혀버린 지 오랜 탓에 이미 그 스스로의 자성마저 갖출 수 없었던 청나라라고 하는 허울뿐인 대타성의 장만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엇비슷하다. 그동안 한국은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한정된 장을 주로 미국을 통해 확보해 왔다. 경제도 그러했지만 특히 군사·외교·정치 방면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지극히 한정된(한정되었다고 해서 작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지 않다고 해서 미국이 지닌 일방적인 규정력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타성의 장을 바탕으로 해서 국가적 자성의 삶을 꾸려왔다. 그런 까닭에 한국이 일구어온 ‘국가적인 자성(自性)’ 역시 미국이라는 장에 의거해 규정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 왔다. 이를 일컬어 우리는 ‘기생적인 자성(自性)’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외교·정치를 제외한 경제 분야에 있어서 그동안 한국은 확산·분절에 의한 대타성의 장을 폭넓게 다변화하면서 구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이제 미국과의 교역량보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더 많아진 것을 그 분명한 증거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교역 관계를 보자면,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한국이라는 국가적인 현존 벡터가 가능한 많은 관계들을 관통·포섭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이루어지는바 수렴·응축에 의한 한국의 자성은 상당 정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경제에서 ‘독자적인 자성(自性)’의 폭을 넓혀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군사·외교·정치에 있어서의 ‘기생적인 자성’과 경제에 있어서의 ‘독자적인 자성’이 모순·충돌을 일으키면서 우리 한국인의 삶을 기묘한 방식으로 비틀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경제적인 독자적 자성만 주어진다면 군사·외교·정치적인 기생적인 자성쯤은 충분히 감내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하는 주권적인 굴복을 체화해 온 측면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럴 때 경제적인 독자적 자성마저도 근본적으로 기생적인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음을, 혹은 기껏해야 상대적인 독자적 자성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하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 이제 미국은 경제에서의 한국의 독자적인 자성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독자적인 자성이 군사·외교·정치적인 기생적인 자성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러, 자칫 반세기 이상 너무나도 유용하게 지배·활용해 온 한국이 미국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는 징후를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징후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관계의 종속성을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 대 국가로서의 관계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 바탕은 그동안 크게 신장한 한국의 경제적인 독자적 자성임을 눈치 챈 미국은 무디스라고 하는 미국의 국가신용평가 기관을 내세워 한국의 국가 신용도를 낮추겠다고 위협하자 주식 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환율이 치솟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거기에는 정치와 경제의 얽힘에 대한 통념을 악용하고자 한 전략이 숨어 있다. 한국이 그나마 경제에서 독자적인 자성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대미종속적인 군사·외교·정치에서의 기생적인 자성이 바탕으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 후자가 흔들리면 전자도 당연히 흔들린다는 터무니없는 통념을 악용함으로써 무디스가 제시한 위협이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는 것인 양 통용되고 만 것이다. 국가 내부에서조차 다국적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국내 굴지의 재벌 대기업들이 위기론을 조장한다. 노무현은 이에 굴복하고 만다. 그 결과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 한미FTA다. 다른 모든 현존 벡터들도 그러하지만, 특히 한 국가라고 하는 현존 벡터는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방향이 다양해야 한다. 그 다양한 열림을 통하지 않으면, 그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자성을 향한 수렴·응축의 위력은 대단히 폭이 좁고 그만큼 투명해져 타자에 의해 파악되기가 쉽고 그 결과 언제든지 대타적인 관계에 있어서 더 이상 확산·분절의 운동을 해 나갈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한미 FTA 국회 비준 무효화' 촉구 촛불집회가 지난 11월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미FTA는 그동안 한국이 형성해 온 경제 영역에서의 대타성의 장의 다변적인 열림과 그에 따른 (비록 군사 ·외교·정치적인 기생적인 자성에 의해 상대적이긴 하나) 그 나름대로 확보한 경제적인 독자적 자성, 그 두 가지를 크게 약화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꾸리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미국 자체의 일극체제에 의거한 전방위적인 자성, 즉 통상적인 국가의 독자성을 넘어서서 일방적 대타성인 제국주의적인 성격을 띤 초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자성이 약화된 것에 대한 위기의식에 의거한 것이다. 요컨대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운동에서 초독자적인 자성의 상태로부터 독자적인 자성의 상태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에 의거한 것이다. EU의 형성과 중국의 강력한 부상이 그 핵심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중국의 강력한 부상이 핵심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아시아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다 알다시피 중국의 대타성을 향한 강력한 확산·분절의 위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옮기고, 제주도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만들어 항공모함의 기착지로 활용하겠다고 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그동안 유지해 온 미국의 초독자적인 자성을 끝내 유지하겠다는 각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로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유독 미국만은 초독자적인 자성을 지녀야 하는가? 70억 지구촌 인구 중에서 2억5천에 불과한 국민을 지닌 나라가 유독 초독자적인 자성을 지니고서 다른 모든 나라들의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다양한 길목을 규정하고 막아야 하는가? 그 정당성과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전혀 그런 역사적인 사실들이 없지만, 미국이 이른바 민주와 자유를 전 세계에 확산시킨다는 명목으로 내세워 그러한 정당성과 권리의 기반으로 삼으려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 국가의 초독자적인 자성에 의해, 즉 제국주의적인 자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른 나라들의 대타성과 그에 따른 자성의 형성에서 민주와 자유는 결코 진정성을 지닐 수 없다. 그저 기생적인 자성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민주와 자유를 제대로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한반도가 해방되었지만, 미국과 소련이라는 제3자에 의한 것이었기에, 결국에는 분단과 혹독한 내전을 겪고 지금까지도 민주와 자유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역진 방지 장치가 조약처럼 명기되어 있는 한미FTA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많은 세월이 흐르면 어떤 일들이 전개될 것인가? 정확한 예측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다만, 그동안 형성해 온 한국 경제의 독자적인 자성이 크게 훼손될 경우, 경제적인 영역에서나마 나름의 독자적인 자성을 통해 그나마 민족공동체로서의 위신과 자존심을 유지해 온 한국 민중들의 의식/무의식이 ‘반미’ 쪽으로 자연스럽게 흐를 것이다. 아울러 미국이라는 초독자적 자성을 지닌 나라를 만들어 이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하는 거대 자본에 대한 혐오, 즉 ‘반자본’ 쪽으로 한국 민중의 의식/무의식이 자연스럽게 흐를 것이다. 물론 이를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전에 비해 그 강도가 훨씬 더 높아질 것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로서는 ‘반미’를 통한 민족공동체의 독자적 자성(自性)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고, 아울러 ‘반자본’을 통한 민중공동체의 독자적 자성(自性)에 대한 요구가 암암리에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진단코자 한다. 이 두 요구는 따로 분리될 수 없을 터인즉, ‘반미·반자본’ 일찍부터 국내의 선진적인 운동세력들이 외쳐온 ‘반제반자’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아 그 구체적인 현실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한반도에서 민족민중공동체의 독자적 자성을 향한 각성이 일고, 그 수렴·응축의 위력을 통해 동시에 바람직한 대타성을 향한 확산·분절의 다양성이 열릴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면, 이는 오히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의 기회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돌이켜 보면, 이전의 ‘반제반자’의 운동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독자적인 자성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시되었기 때문에, 의식주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전반적인 현실을 반영해 내지 못한 상태에서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온 엘리트적인 일종의 외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오히려 기생적인 파쇼 군사독재정권이 나서서 이른바 경제개발을 통해 의식주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 근본적인 모순을 적발해 내고자 하는 다른 한 편에서의 민중 대변인들의 요구는 수도 없이 심각한 희생 제물을 바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제 나름의 경제적인 독자적 자성을 형성한 경험과 더불어 강력한 독재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룬 경험이 있는 민중들로서는 ‘반미·반자본’이 현실적인 생활 속에 의식/무의식적으로 스며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가 되었다. 이미 ‘월가점령시위’의 세계적인 확산에 의해 99%에 의한 1%의 자본에 대한 투쟁이 상식이 되고 있다는 것도 우리 민중들의 의식에 각인되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국가와 정부가 자본의 첨병 역할을 한다는 것도 이제 점점 더 민중적인 상식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접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힘겨운 삶이 세계 전체의 왜곡된 구조에 원인을 두고 있다는 것을 각자 나름으로 몸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전반적인 정세를 누구보다도 미국의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물론적인 관점을 노동자 계급보다 자본가 계급이 더 확실하게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여전히 상당히 강력한 초독자적인 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세계 최대의 국가총생산량을 자랑하면서 전반적으로 당당한 ‘거대 독자적 자성’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마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최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훨씬 더 극복하기 힘든 현실적인 모순에 처해 있다. 앞으로 그 모순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최대한 독자적인 자성을 갖춘 민족민중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는 가운데, 이를 제대로 형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들은 더욱 열악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이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최대한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우리 모두가 공유하면서 몸 전체로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사상이다. 민족민중공동체의 전반적인 독자적 자성을 구축하기 위한 구심점으로서의 사상이 필요한 것이다. (철학과 사상은 다르다. 철학이 엘리트적인 상층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수렴·응축되는 것이라면, 사상은 민중적인 하층의 기반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면서 확산·분절되는 것이다. 철학과 사상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철학은 사상의 원리를 형성하는 논리적인 바탕이고, 사상은 민중적 삶의 전반적인 현실에서부터 존재 근거를 확보하는 것으로서 철학의 실질을 이루는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간략하게 그 윤곽만을 제시한다면, 민족민중공동체를 위한 사상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최대한 열린 대타적인 민족민중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결코 폐쇄적이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대타적인 열림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민족민중공동체는 형성되어서도 안 되고, 설사 형성된다고 할지라도 민족민중공동체의 성원들에게 매력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기에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열림의 일차적인 대상이 분단된 민족구성원들의 거주지인 북한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동시에 대자적인 민족민중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대자적인 성찰과 그에 따른 각 부문에서의 공동체의 잠정적인 위력의 개발은 전반적인 독자적 자성을 지닌 민족민중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다. 대자적인 성찰의 기반은 민족 개념과 민중 개념의 상호규정적인 관계에서 확보할 수 있다. 민중적이지 않은 민족은 참다운 민족이 아니다. 민중적이라는 말은 여러모로 결코 터무니없는 삶의 격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적이지 않은 민중은 역사성을 띨 수가 없기에 참다운 위력을 지닌 민중일 수가 없다. 민족적이라고 하는 말에는 수많은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다함께 고루 잘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들어 있다. 이 당위야말로 민중적이라는 말과 직결된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모든 역량들에 의거한 삶의 내용들을 가능한 한 다함께 고루 누리자는 것이야말로 민족민중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대자적인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다양한 삶의 내용으로 열려있는 민족민중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어느 특정 종파의 종교적 이념이나 어느 특정 윤리적 이념, 혹은 어느 특정한 문화 예술의 이념만을 내세우는 민족민중공동체는 있을 수 없다. 특히 의식주 중심의 경제에 집중된 민족민중공동체는 지양해야 마땅하다. 경제는 민족민중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사다리이자 발판일 뿐, 그 자체로 결코 삶의 내용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사다리이자 발판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형성해 온 독자적 자성의 긴요한 영역이기에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타고난 창조적인 기지를 총동원해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경제활동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목적의식을 유지하는 데 한시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사회역사적으로 축적된 민족적인 다양한 삶의 가치와 더불어 인류 전체가 형성해 온 다양한 삶의 가치를 가능한 넓고 깊게 최대한 다 같이 고루 향유할 수 있는 민족민중공동체를 목적으로 삼아 지향해야 한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 탐사보도팀장 나의 기억 속에서 80년대 한국 주요 도시의 대기는 차량 배기가스가 아니라 최루탄 가스로 오염됐다. 1960년대 4·19 혁명 시기에 이미 등장했던 한국의 최루탄은 1980년대 들어 ‘더 가공할 성능’을 갖췄다. 80년 광주항쟁에 놀란 전두환 정권이 시위진압용으로 더 치명적인 최루탄을 수입했다. 최루탄의 주 성분은 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C10H5ClN2)이다. 이것의 화학식을 풀어 그 성분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 너머의 일이다. 그것은 상온에서 고체(가루)로 존재하는데, 가루 상태의 그것을 뿌려봐야 바람에 날려 목표물 조준에 효과가 없다. 그래서 용매제인 디클로로메탄에 녹인 뒤 기체(근접거리에선 액체) 형태로 방사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CS 가스라는 간단한 이름도 생겼다. CS는 1928년 이를 개발한 미국인 벤 코손(Corson)·로저 스토턴(Stoughton)의 성씨 첫 글자다. 액체건 기체건 멀리 날아갈 수 없으니 일련의 탄두에 남아 날려 보내는 기술도 발전했다. 우리는 ‘최루 가스’보다 ‘최루탄’에 더 익숙하다. CS 가스는 살상용이 확실히 아니다. 최루액·최루가스·최루가루에 노출됐다 하여 현장에서 죽지는 않는다. (곧바로 죽음에 이르진 않지만, 그 성분이 치명적 발암물질이라는 분석은 오래 전에 나와 있다. 그 즉각적 고통이 너무 강력하므로 ‘언젠가 이것 때문에 암에 걸릴지도 몰라’ 따위의 걱정을 하는 이가 드물었을 뿐이다.) 다만 그것은 인간의 오감을 마비시킨다. 우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떠도 아프고 눈을 감아도 아프다. ‘아프다’는 말로 그 고통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코와 목에 대바늘 수백 개를 집어넣어 함부로 쑤셔대는 고통과 함께 폐 전체를 먹물로 채운 듯 숨을 쉴 수가 없다. 노출된 피부 전체, 즉 얼굴·목·팔·다리가 불에 데인 듯 따갑고 뜨겁다. 최루탄에 노출된 손으로 사타구니라도 만지면 종족 번식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최루탄은 사람을 완전히 무릎 꿇린다. 개가 되라면 기꺼이 개가 된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상의 설명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최루탄은 ‘하나의 최루탄’이 아니라 ‘일련의 폭력체계’로 구성된다. 우선 그것은 실제로 ‘탄환’의 구실을 했다. 경찰은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지 않고, 정면을 조준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그것을 맞으면 최루 가스와 상관없이 그 충격 때문에 죽는다. 1987년 연세대생 이한열이 그렇게 죽었다. 최루탄이 등장하면, ‘직격탄’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부터 시작된다. 설령 그것이 ‘곡사포’의 형태로 발사된다 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탄환은 중력가속도의 레일을 따라 언제든지 시위대의 정수리를 타격할 수 있다. 최루가스·최루액·최루가루에 노출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무기력이 곧 죽음은 아니다. 그러나 ‘백골단’으로 불리던 무장경찰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은빛 투구에 날렵한 청재킷을 입은 그들은 군화와 곤봉과 주먹으로 시위대를 무차별 가격했다. 태권도·유도·합기도 등으로 단련된 그들의 육체는 치명적 흉기다. 그들에게 얻어맞다가 죽을 수 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와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그렇게 죽었다. 그들의 모진 매질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체포·구금·구속의 공포가 남아 있다. 최루탄을 마시고 널브러져 시위 현장에서 잡히면 그들의 마음대로(그들은 ‘법대로’라고 주장하지만) 인신을 요리한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몇 년씩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정신, 양심, 육신에 대한 한시적 사망선고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러한 일련의 공포 체계를 종합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탄환’이 아니라 ‘거대하고 무자비하고 체계적인 폭력’이다. 과거 시위현장에 단골로 등장했던 것은 ‘지랄탄’이다. ‘페퍼포그’(Pepper Fog)로 불리는 장갑차의 정수리에서 다연발로 발사돼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지랄탄’은 먼 거리에서 시위대를 무력화시키는 경찰의 무기였다. 일단 땅에 떨어지면 반경 수십 미터를 미친x 지랄하듯 요동치며 노란 최루가스를 끝없이 게워냈다. 아스팔트 위를 쏜살같이,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튀어다니는 그것에 맞아 발목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아 전경에 되던지려다가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지랄탄이 쏟아지면 그것으로 그날의 시위는 끝장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더 공포스러워 했던 것은 ‘사과탄’이었다. 한 주먹에 잡히는 사과탄은 오직 가까운 거리에서만 사용됐다. 그들은 시위대를 ‘토끼몰이’ 방식으로 거리 구석에 몰아놓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사과탄을 툭툭 까 넣었다. 땅에 엎드려 개처럼 기면서 두 손으로 머리와 목덜미를 감싸 쥐는 것이 시위대가 취할 수 있는 방어의 전부였다. 백골단은 우리의 어깨와 허리와 머리를 지근지근 군화발로 밟으며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듯 툭, 툭, 툭 끝도 없이 사과탄을 까서 아비규환의 틈바구니에 굴려 넣었다. 눈에 파편이 박히고, 고막이 터지고, 얼굴에 화상을 입는 이들이 있었으나, 심지어 죽어 나가기도 하는 시절에 그들의 희생은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나는 어떤 논쟁에 격렬히 가담한 적이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쇠파이프·화염병 등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리 싸움이 붙었다. 나는 ‘비폭력투쟁’은 말도 안 된다는 쪽이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피가 뜨겁다 못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무모했다. 집회·시위의 목적은 우리의 뜻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인데, 경찰의 폭력으로 집회·시위 자체가 원천 봉쇄되는 상황에서 ‘비폭력’을 고집하다 고스란히 잡혀 들여가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나는 떠들었다. 시민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공간을 확보하고, 시위대의 핵심역량을 공권력의 폭력에서 지켜내려면,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 필요하다고, 나는 떠벌렸다. 실은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 대의명분은 나중의 일이고, 나는 시위를 하다가 직격탄, 지랄탄, 사과탄, 그리고 곤봉과 군화에 맞아 죽을까봐 무서웠다. 그것이 개죽음인 것 같아 더욱 두려웠다. 나중에 ‘물대포’가 등장했을 때, 나는 ‘최소한의 자위 수단’에 대한 주장을 거둬들였다. 노즐을 조정해 자유자재로 직사·곡사를 넘나들고, 형광액을 묻혀 시위참가자를 색출하며, 한번 맞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무기력해지는 그 가공할 장갑차의 최루액 살포를 맞닥뜨린 뒤, 나는 우리의 무기가 사소한 자위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내려놓고, 그저 책만 읽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는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지난 22일 밤 서울 중구 명동 남대문세무서 앞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서자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011년 11월은 최루탄 역사의 대단원 또는 또 하나의 절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찰은 국내 등장 20년이 지난 CS 최루액을 “내년 중에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만약에 있을지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보관하던 것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염두에 뒀던 ‘비상사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비상사태’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했다. 경찰 발표 이튿날인 11월22일, 김 의원은 FTA 날치기 처리 현장에 최루가루를 뿌렸다. 기자 출입까지 봉쇄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태이므로 그가 사과탄을 터뜨렸는지, 그냥 최루가루를 뿌렸는지는 아직 정확치 않다. 어쨌건 그것은 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이 공개 장소에서 사용된 마지막 사건이 될 것이다. 같은 날 저녁, FTA 날치기 통과 반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다. 그 물대포에 최루액이 포함됐는지, 그것이 구래의 CS 가스인지, 덜 유해하다는 ‘켑사이신’ 성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일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최루탄은 맞아봐야 안다. 국회 날치기 현장에서 터진 사과탄 또는 최루가루에 대해 조중동은 일제히 ‘테러’라고 1면 머릿기사를 썼다. <위키백과> 한국어판은 테러에 대해 “정치·종교·사상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한테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국회의원은 민간인인가? 민간인은 대대손손 국민 모두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FTA를 날치기 통과시킬 권능이 없다. 미국·유럽의 정치인들은 종종 토마토·계란·오물·신발·밀가루·쓰레기 등을 끼얹는 시민들에게 곤욕을 치른다. 그것은 모욕이고 아마도 폭력이겠지만, 그렇다고 테러는 아니다. 김 의원은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날치기를 시도하는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특수 집단’을 겨냥했다. (겨냥이 정확치 않아 제 몸에 더 많은 최루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자폭 테러’인 것인가?) 그것은 분명 폭력이겠지만, 자신이 위해를 당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가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날치기 의원들은 위협을 분명히 인지하여 경호권을 발동하고 언론을 봉쇄하고 야당 의원의 단상 진입을 봉쇄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욕설과 드잡이를 포함한 ‘어떤 폭력’이 자행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게 최루탄일 줄은 몰랐겠지만, 그게 토마토이건 쓰레기이건 똥물이건 예상치 못한 수단이 동원됐다 하여 폭력이 곧 테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진화는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입각해 발전해왔다. 이젠 누구도 사사로이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합법적인 폭력은 오직 ‘정당 방위’와 ‘국가의 폭력’에 국한된다. 현대 문명은 이제 ‘국가의 폭력’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발전해 나갈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 때,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를 ‘정권’으로 가격한 것은 (먼저 맞았다고 주장하는 김 의원의 말처럼) 정당방위인가 그저 사사로운 폭력인가 국회 질서를 해치는 테러인가. 수많은 폭력이 난무한 예산안 날치기 통과 이후, 김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청와대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물리력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으니 김 의원의 행동이 폭력인 것은 맞지만, 그건 ‘테러’가 아니다. 테러가 현대 인류 문명 최대의 적인 이유가 있다. 테러는 분노와 적개의 대상이 아닌 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에서 9·11 사건이 일어났지만, 실제로 희생당한 것은 미국에서도 가장 리버럴한 뉴욕 시민들이었다. 테러는 나찌 인종청소의 연장선에 있는 폭력이다. 명분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죽인다.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의 품격은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해 날아갔던 어느 이라크 기자의 신발과 같다. 당시 미국 어느 언론도 그 신발이 ‘대통령 암살 시도’라고 선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폭력이었으나 정치권력을 향한 공공의 모욕을 대변하는 개인의 행위였고, 그는 그 폭력에 어울리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김 의원의 의도가 무엇이건, 덕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최루탄의 맛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맛본 것은 겨우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직격탄, 지랄탄, 토끼몰이, 사과탄, 구타, 체포, 구속, 전과자의 낙인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폭력체계를 모두 겪어봐야, “아, 이래서 최루탄 최루탄 하는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경까지 겪지 못하였으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그날 저녁 명동 성당 앞에서 물대포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도 FTA 반대를 외치던 3천여 명의 시위대를 끝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과탄에도 불구하고 날치기 하는 국회의원과 물대포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를 규탄하는 시민 사이에 아직 공감을 위한 경험의 공유가 부족하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최루탄 맞아봐서 아는데” 국회 의사당에 지랄탄 몇 개쯤 터져야 힘없는 이들이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광장으로 광장으로 밀려나오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분노 없는 폭력이야말로 비인간화의 전형”이라고 설파했다. 국가 권력이 폭력을 휘두를 때, 그것은 비록 합법을 가장할지언정 비인간의 편에 서있다. 권력을 향해 분노하는 이들이 불복종·항의·위력시위 등을 벌일 때, 그것은 인간의 편에 선 폭력을 향한다. 물론 아렌트는 “폭력으로 권력을 창출할 수는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국회 의사당에 사과탄을 터뜨리는 폭력으로 의회 독재를 무너뜨리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폭력은 날치기를 위한 경호권이나 명동성당 앞 물대포보다 ‘정의롭다’. 적어도 경호권과 물대포를 앞세운 이들이 까짓 사과탄에 호들갑 떨 일은 결코 아니다.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지랄탄 몇 개 한달음에 흡입해 보시던가.
2017-07-20 | hrights | 조회: 201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스마트폰 2,000만 시대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다. 그 이유를 대라면 곧바로 열 가지쯤은 줄줄이 나오겠지만 굳이 밝힐 이유는 없겠다. 스마트폰의 효용이나 효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투표율을 올린 공신 중의 하나가 스마트폰이라는 것에 토를 달 생각도 없고, 스마트폰이 성장을 주도하고 삶을 바꾼다는 이야기에 감히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원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어제 오전에 전화가 왔다. 공짜 이벤트가 있으니 이번에 구닥다리 핸드폰을 바꾸라는 것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콜센터나 서비스 센터의 전화를 잘 끊지 못한다. 2분에 1콜을 받거나, 콜 수와 성사 건수에 따라 급여가 매겨지는 고된 노동을 하는, 그것도 젊은 목소리를 매몰차게 자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 노동이 얼마나 심각한가 말이다. 하지만 이번 전화는 정말 이상했다.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몇 번이나 응답을 했는데도 전화를 끊지 않고 다시 걸어 바꾸라고 권유한다. 연말로 2G 서비스가 끝나 기존의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 이야기에는 조금 놀랐고 그래서 안내를 받아보라는 것에 응했다. 바뀐 담당자가 설명을 하는 와중에 다시 물어보았다. “제 핸드폰에 대한 서비스가 끝나나요?” 그것은 아니란다. 그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더니 그래도 설명을 이어간다. 조금 강하게 말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 와중에 같은 사람으로부터 세 번이나 더 전화가 왔다. “고객님, 도대체 왜 그러시나요?”에서부터 “사용료 부담이 저렴해요”에 이르기까지. 구구절절 전화를 계속 걸어댄다. 결국 담당자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고객님, 그 전화 계~속 쓰세요”. 이번에는 정말 놀랐다. 소비자 보호원에 고발하라는 동료의 이야기에 응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궁금해졌다. 정말 왜 이러는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을 해야 하는 연말에, 자판기 수준으로 폭풍글쓰기를 해야 하는 연말에, 결국 억지로 시간을 내서 인터넷에 올라온 온갖 기사를 검색하고 나서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KT가 이달 말 2G 서비스 종료를 재천명하였고,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KT 전체 가입자 1600만 명 중에서 2G 가입자가 1% 수준이 됐을 때 서비스 종료를 허가해 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며 "현재 KT는 이 같은 기준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필자 같은 가입자를 없애야 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유사한 시달림을 겪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KT의 노동자들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죽음의 기업 KT-계열사 책임 촉구 및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가 지난 10월 12일 서울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참세상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지난 10월 10일 매일노동뉴스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6일 KT대전 NSC논산운용팀에서 일하는 전씨(50세)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8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하려니 힘에 부친다", "팀끼리 경쟁을 붙여 성과급을 지급하는 바람에 너무 힘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한 5일 경기남부NSC 윤씨(50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7월에는 NSC에서 고객컨설팅 업무로 전환 배치된 강씨(50세)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에 의하면 ”KT 재직자 중 숨진 노동자가 올해만 14명이고, 2009년 12월 KT의 특별 명예퇴직 이후 사망자가 폭증했다”고 한다. 2G 가입자를 없애기 위해 이 정도로 집중하는데 그 내부에 있는 노동자에게는 어떤 대우를 할까? 게다가 경영상의 문제를 왜 노동자와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는가 말이다. 노동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해고할 수 있는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서 이윤하락은 왜 경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2G 가입자나 소비자의 책임인가? KT 민영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93년부터 96년까지 정부 지분 28.9%를 시장에 팔았고 2002년 드디어 정부 지분 0%의 민영KT로의 전환을 마무리했다. 2008년 외국인 지분이 47.5%, 자사주 25.6%, 국내주주 18.3%이며 국민연금 투자분도 2.3%이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제외하면 의결권이 있는 주식 중 외국인 소유 지분이 50%가 넘어 주주들은 더 높은 배당을 받을 수 있으며 외국인 주주가 매년 가져가는 이익 만 해도 천문학적 숫자이다. 노동은 정반대이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구조조정으로 8,968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고 2003년에는 노사합의에 의해 약 5,500명이 다시 회사를 나가 고용 규모는 끊임없이 줄었다. 남아 있는 사람의 노동 강도 강화는 불을 보듯 뻔 하여 이것이 연이은 자살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2006년 평균임금도 타 통신업체 대비 약 10% 수준 적고 1999년 임시직과 사내하도급 노동자 수가 7,419명 늘어난 이래로 현재까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2001년에 500여일 동안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마 필자를 괴롭힌 사람은 회사의 의뢰를 받은 협력사 혹은 하청회사의 직원일 것이다.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고 기필코 성사 건수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일 것이다. 일선에 선 노동자와 소비자 간에 전쟁 치르듯 전화로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익은 전혀 딴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가 가져간다는 속담이 가슴 아프게 떠오른다. 2G 서비스 중단 압력만큼이나, 삶을 바꾼다는 스마트폰 광고비만큼이나 노동자를, 그리고 노동자이기도 한 소비자를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고 사람이며 휴대폰 가입자는 없애야 할 휴대폰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제발 사람을 상품으로 처리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1944년 “노동자가 상품이 아니다”고 선언한 필라델피아 정신이 너무 그립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28 | 추천: 0
이광조/ CBS PD 며칠 전이다. 온라인상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 2007년 라디오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됐다. 제목이 낯익어 들여다봤더니 당시 내가 제작하고 있던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2007년 5월 28일)에서 인터뷰했던 내용이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이뤄진 인터뷰였다. 방송 후 활자화된 인터뷰 전문에는 “한미 FTA,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인터뷰 전문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며 정치인 홍준표에게 가졌던 막연한 호감의 뿌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몇 년간 주한미군과 관련된 협상을 지켜봤는데, 방위비 협정을 보면 주한미군은 줄어드는데 방위비는 올라가고 있다”며 “우리도 미국에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당시에도 이미 많은 논란이 되고 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관련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라고 비판하며, “FTA가 세계적 추세이므로 따라가야 하지만 따라가는 방법이 자기 임기 중에 실적을 남겨야겠다는 조급한 생각 때문에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이 없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과거의 발언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자는 게 아니다. 홍준표 대표의 과거 발언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외교관계, 특히 한미관계와 관련해 대한민국 보수가 보여주는 맹목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던 한 정치인에게 느꼈던 호감과 기대가 허물어져 내린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다른 것 다 떠나서 보수에게 국가주권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점에서 한미FTA는 비단 투자자-국가소송제도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누구보다 이 땅의 보수 세력이 그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개선을 요구해야 했을 사안이다. 하지만 그의 표현대로 시간에 쫓겨서 졸속으로 추진된 한미 FTA, 그것도 미국 산업계와 정치권의 반대로 재협상을 통해 미국에 많은 것을 양보해 준 한미 FTA가 국회비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이런 문제의식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가. 더구나 그는 지금 대통령과 대등한 국정운영의 파트너인 여당 대표가 아닌가.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당시에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다는 야당 지도자들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래서 예전과 같은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되는 건지, 국민에게 설명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한미 FTA와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관해서는 참여정부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러 가지 해석과 전망이 엇갈린다. 미래를 누가 정확하게 예측하겠는가. 하지만 지구상의 초강대국 미국과 체결하는 한미 FTA, 더구나 우리사회의 법과 제도, 관행을 미국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한미 FTA는 ‘우리도 미국과 1대 1로 경쟁할 수 있다’거나 해보고 나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홍준표 대표가 지적했던 신중한 접근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사족. 한미 FTA, 특히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논란과 진실게임을 보면 노무현 정부 초기 장안의 화제가 됐던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 발단이 되어 마련됐던 대통령과 검사들과의 만남은 말이 ‘대화’였지 검사들의 집단시위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했던 검사들의 그 기개란. 그런데 말이다, 2006년에 대한민국 법무부가 사법주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외교통상부에 삭제를 요구했었다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관련해서는 이 땅의 검사 중 누구 하나 우려를 표명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너무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일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 밥그릇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2017-07-20 | hrights | 조회: 128 | 추천: 0
홍미정/ 건국대학교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2011년 9월 뉴욕에서 개최된 제 66차 유엔총회의 주요한 주제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문제였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는 동예루살렘과 서안 지역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의 완전한 중지를 요구했다. 그 대답으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 대규모의 새로운 정착촌 건설 계획을 밝혔으며, 동예루살렘과 서안 지역에 건설된 불법적인 정착촌 전초기지를 합법화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유엔 총회에서 특히 중요한 안건이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분쟁이며, 이것은 미국 외교정책의 시험대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질 가치가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수십 년 동안 계속돼 온 분쟁을 끝내는 지름길은 없다. 평화는 유엔 결의들이나 연설을 통해서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아니라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경계, 안보, 난민 예루살렘 등의 문제들에 관하여 협정을 체결해야만 한다.” 오바마의 연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유엔과 국제 사회의 책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으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의 연설내용과 전면적으로 충돌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을 강조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주장과 일치한다. 사실,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협상은 1993년 이후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이 협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점령지에 대한 실효적인 지배권을 확장 강화시키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되풀이되는 재앙에 직면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 해결을 위한 유엔의 역할을 부정하는 미국이 과연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유엔 총회 연설 서두에 팔레스타인 문제는 유엔 결의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밝히면서 유엔 결의들에 토대를 둔 팔레스타인인들의 양도할 수 없는 합법적인 민족의 권리를 역설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1967년 6월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과 가자 전역에서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 1948년 11월에 결의된 유엔 총회 결의 194호와 2002년 아랍 국가들이 결의한 아랍 평화안에 따른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해결,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팔레스타인 정치범 석방”을 확언하였다. 특히 여기서 압바스는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리즘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에게 정착촌 활동을 완전히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내용은 전임자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PLO 대표로서 1988년에 선언한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만, 오슬로 협상 과정에서 압바스 수반 본인이 이스라엘과 직접 협상해온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연설에 대해서 한 팔레스타인 친구는 “오늘 처음으로 압바스는 내 이름으로 유엔에서 연설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곧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유엔 정식 회원국 가입 신청을 보도하는 AP통신 반면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관련 27개의 유엔 총회 결의 중 21개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결의였고, 유엔을 불합리한 기구라고 비난하면서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 242호는 6일(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장악한 영토 전역이 아니라, 그 영토의 일부에서 철수하기를 요구하였다. 이스라엘은 서안을 제외하면, 그 폭이 매우 좁아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서안 지역에 오랜 기간 동안 주둔해야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한 이후에 국가 건설을 해야 한다. 정착촌 건설은 분쟁의 핵심이 아니다. 1917년 밸푸어와 로이드 조지·1948년 트루만 대통령·2009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밝혔듯이, 팔레스타인 지도부도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인정해야한다.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은 미국에게 워싱턴, 영국에게 런던과 마찬가지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는 안보상의 이유로 서안 지역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양도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을 체결한 이후에 비로소 국가 건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1967년 서안을 장악한 이후 이스라엘이 일관되게 실행시켜온 정책이며 새로운 내용이 없다. 그가 밝힌 대로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영국과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유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인정해 온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영토에 대한 권리와 정치적 주권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끝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반대로 팔레스타인은 유엔 정식 회원국가로 승인받지 못할 것이다. 확실한 경계를 갖는 영토 획정과 관계없이,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투표권이 없는 비회원 국가의 지위를 확보한다할지라도, 그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당면한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책이 변화되지 않는 한 ‘명목상 존재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영토에 대한 실효적인 지배권과 정치적 주권을 갖지 못한 채 문서상으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44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한 쪽은 주었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수년간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면,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만난 적도 없다고 한다. 이 쯤 되면 수사 과정에서 잘 쓰인다는 거짓말탐지기라도 동원해서 어느 편이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인데, 뇌물사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수사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하긴 수사와는 달리 형사재판에서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는 거의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경찰은 피의자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압박수단으로 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하는 셈인데, 그렇다면 고위 공직자가 대상인 뇌물사건에서도 이것을 이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SLS 조선이라는 기업의 이국철 회장이라는 분이 요즘 연일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그 내용이란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번 들어본 줄거리인데, 잘 나가는 기업의 회장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해 왔으며, 정권이 바뀐 이후 이 기업인에 대한 보복성 수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그의 기업은 파산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마지막 저항으로 이 기업인은 현 정권의 고위 공직자 가운데에서 자신이 관리(?)해 온 사람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공직자들은 이 기업인의 주장을 부인하였는데, 관련자에 포함된 현직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믿을 수 없다던 이 사건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로운 변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현직 검사장 등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11일 오후 서울 신사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그 하나는,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일부 언론과 야당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애초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던 검찰이 적어도 겉으로는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이른바 ‘측근비리’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라는 청와대의 입장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일부의 추측대로, 정권의 입장에서 임기 말 연이은 비리의 폭로로 인한 권력의 누수를 방지하고, 특히 다른 문제들, 예컨대 소위 ‘자원외교’에 묻혀있는 주가조작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번 폭로의 대상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대로 간다면 신재민 전 차관이나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임재현 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 등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일부 혹은 전부에 대한 사법처리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국철 회장이 지금까지의 폭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비망록’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군사정부 시절보다 더하’게 ‘(권력자가 국민을) 숨기고 속이고 등쳐먹’었다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광주의 어느 학교에서는 십 수 년에 걸쳐 선생님들이 가녀린 학생들을 성추행해왔고, 서민들을 위한다던 저축은행들은 부실공사의 시공기업에 수십억, 수백억의 돈을 대출해줘 결국 소액 예금자들에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넘기는 일보다도 더 충격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 비망록에는 현 정권 이후 검찰과 정치인, 경제인들의 권력비리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권력의 반응은 무엇일까? 그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문제가 심각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법적 처리를 진행하는 것, 아니면 다른 관심사를 찾아내거나 혹은 그에게 어떤 다른 대가를 지불하는 등 그의 폭로를 무력화시킬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도저도 아니라면 시간을 끌면서 그의 약점을 찾아내어 철저하게 응징하는 것? 이 회장은 자신의 폭로에 검찰의 비리가 담겨있는 만큼 검찰을 믿을 수는 없고, 결국 특검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미진한 검찰의 수사를 대신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특검 또한 그 한계를 보여준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언론에 대한 폭로에 의존한다. 이것은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특별히 정당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뒤에는 국민,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구별하여 부정의한 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골리앗의 급소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윗은 신의 도움이 있을 때에만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더욱 진실하고 겸손한 태도로 국민의 공분을 얻는 것, 이것만이 이 회장이 국가권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62 | 추천: 0
신하영옥/ 주부, 전 여성단체 활동가 6월말로 그간 약 18년간을 몸담고 있던 단체 활동을 접었다. 그리고 벌써 3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 급식문제로 인한 서울시장 재보선문제로 정치바람이 불고, 희망버스의 희망이 불거지고, 고대 의대생들이 출교되고, 이소선 어머님이 아드님 곁으로 가시는 등 세상은 여전히 수많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난 이 모든 것을 소식으로만 접하고 있을 뿐이다. 그저 아침에 강아지와 산책을 가고, 집안을 정돈하고 음식을 만들며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남편과도 함께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다. 사람이 익숙한 것이 무섭다. 처음 한 달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안절부절. 내일도 모레도 그날이 그날인 것에 대한 조급증과 갑갑함으로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두 달 째는 이런저런 집안일들로 남편 및 나의 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져 그럭저럭 흘려보냈다. 세달 째는 점점 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실은 이 글도 2주나 밀려서 쓰게 되는 것이다. 익숙한 생활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약 세달 정도가 소요되는 것 같다. 요즘은 아주 가끔이나마 ‘행복’, ‘평화’ 이런 것들을 느낀다. 고요함이랄까. 그동안 나의 삶이 얼마나 긴장으로 뭉쳐진 것이었나를 들여다보면서, 그리고 얼마나 이기적이었나를 살펴보면서. 어쩌면 이것은 나란 인간 개인의 특성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여성운동 나아가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일 어느 땐 하루에도 수 건의 사회문제들이 터지는 사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빠르게 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매 순간을 긴장하면서 살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있기 마련인 긴장은 그 자체로 삶의 스트레스가 된다. 이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일/ 운동은 삶의 1순위가 되고, 특히 여성운동을 하는 나의 경우엔 가족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가족은 항상 짐이었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이를 독립적으로 기른다는 명분으로 외롭게 두었을 뿐이고, 남편의 나에 대한 비판을 무조건 가부장적인 구속과 몰지각으로 몰아갔던 적들이 있지 싶다. 명절에 시집으로 가야만 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으로 남편의 부모와 형제자매, 친척들조차도 별로 달갑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은 시어머니도 어렵게 한 시대를 보낸 시골여성노인이고 시누이들도 어렵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으로 다가온다. 농활도 하는데 시어머니 노동에 숟가락 얹는 일을 왜 못하랴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명절문화가 마땅하지는 않다. 여전히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제도나 문화,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에 따라 달리 접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실은 좀 심심하고 외롭기도 했다. 갑자기 너무나 길어진 하루, 매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할 지 막연할 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너무 반갑고, 같이 놀아주는 남편이 반갑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 무엇보다 당분간(?) 실업자의 삶을 선택하고자 할 때 힘이 되어준 것은 남편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막연한 불안함이나 우울이나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가장 든든한 빽은 아이와 남편이다. 이러한 대책 없는 외로움, 스산함 들이 이유 없이 뼈 속까지 느껴지면서 거의 매일 늦게 들어오는 엄마 덕에 혼자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냈을 아이의 느낌, 아이와 내가 떠나온 자리를 혼자 지켰을 남편의 심정이 이해되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내 감정과 느낌들을 중심으로 남들의 감정과 느낌들을 잔소리라 치부하는 나를 보면서 이기적 혹은 유아적임을 본다. 사진 출처 - 여성신문 흔히 가정은 여성운동에서 가부장의 온상으로 치부되면서 가족 내 남성과 여성간의 권력문제에 직면하면서 여성주의의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내게도 결혼이후 내내 그러한 가부장제도와 문화속의 남녀위계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는 장소였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한편에선 해체만이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길이 아닐까... 가지 못한 길을 꿈꾸게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금씩 갈등들이 진정되면서 문제는 단순히 가정 내의 가부장성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가정 내 구성원들의 성격, 삶의 가치, 소통방식, 노력정도 등 많은 것들이 가족 간 불화 혹은 문제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이다.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되었음에도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강제도 문제이나 그 강제를 진지한 고민 없이 수용하고서 마치 그 강제의 피해자화 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진정한 피해자는 일과 양육의 양립을 지원하지 않는 사회제도와 대책 없이 일과 양육을 병행하고자 한 엄마의 선택으로 인한 아이였을 것이다. 임신을 한 후에 여러 가지 여건상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당시 한 여성운동 선배는 ‘당분간 양육에 전념하고 일을 해도 좋을 듯.’ 하다는 제안을 했었으나 일이 너무 하고 싶었던 나는 일을 선택했다. 단체를 막 만들던 시기이기도 하였지만 거기서 그만두면 영원히 그만둘 것 같은 조바심이었다. 일 속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공/사 이분법적 원리, 공적영역에 있어야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발현한다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의 원리에 동승한 것에 다름 아니다. 폭력과 위계로 얼룩진 가정, 나아가 가족이기주의는 극복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가족은 어떤 이에게는 성찰과 위안과 평화의 장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성장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느끼고 볼 수 있는 것들을 왜 그 때는 볼 수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도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세대를 넘어 공감하고 확산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는 모른다. 다만 여성주의를 지향하면서 사는 것이 좀 더 여유롭고 ‘여성’을 넘어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뿐이다. 진정한 힘은 분노와 거부가 아니라 수용과 인정에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건이든 사물이든 간에. 수용과 인정 자체가 힘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결핍감이 아니라 연민으로, 기존의 누군가의 권력을 얻어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권력질서를 만들어내는 것, 상처가 아닌 희망으로 운동하고 살아내는 방식으로서의 운동,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에 중심을 두는 운동, 편협이 아니라 포괄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26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칼 폴라니의 관점 최근 이제야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홍기빈 옮김, 책세상)을 읽었다. 폴라니는 1940년대에 쓴 글들을 통해, 19세기 말 시장이 정치적으로 규제를 받는 상태에서 아예 정치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자기 조정을 바탕으로 한 시장이 생겨난 것이 인류의 재앙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자기 조정 시장이 생겨나 사회를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으로 제도적으로 분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해서 분리된 경제 영역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던 시장이 경제활동 전반을 지배·규정하는 것으로 격상되고, 무수히 많은 시장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총체적 시장을 형성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모든 사회적인 가치의 생산을 판매와 구매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게 됨으로써 상품이 될 수 없는 노동·토지·화폐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인간 삶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노동을 제반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하고, 토지는 자연 전체를 일컫는 다른 이름일 뿐이며,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기 때문에 본질상 상품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현실의 시장에서 노동·토지·화폐가 상품으로 묘사되고 실제로 거래되는데, 실은 이 세 가지 상품은 전적으로 허구적인 상품이라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시장이 자기 조정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품 허구의 체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 이후 사회는 상품 허구가 사회 전체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조직 원리를 제공하고, 그 조직 원리가 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에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쳐 시장 메커니즘이 현실 세계에서 상품 허구의 원칙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폴라니는 이러한 자기 조정의 시장에 내재된 재난에 맞서 사회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폴라니는 19세기가 끝날 무렵 보통선거가 보편화됨으로써 노동 계급이 국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도 그 일환으로 본다. 그래서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한쪽에서는 정부와 국가를 권력 거점으로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경제와 산업을 권력의 거점으로 만듦으로써 권력을 둘러싸고서 사회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2. 21세기 악마의 맷돌의 위기 폴라니는 상품 허구의 원칙에 입각한 자기 조정 시장을 그 속에 모든 인간의 삶과 가치를 집어넣어 분쇄해 버리는 ‘악마의 맷돌’이라고 말한다.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오늘날 전 세계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탈규제’, ‘자유무역’ 등을 내세운 가운데 폴라니가 말하는 ‘악마의 맷돌’을 인터넷을 통한 전 세계 동일 실시간이라는 어처구니를 통해 훨씬 더 높은 속도로 돌리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21세기 ‘악마의 맷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자가 엔진을 달아 현기증 나게 돌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를 담당하는 ‘영웅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은 물론이고, 개별 기업이나 국민국가나 정부마저 이 ‘악마의 맷돌’ 속에서 갈아엎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된 악마의 맷돌’이라 할 수밖에 없는 21세기 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목도하면서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1930년대에 진행된 파시즘과 전쟁이 그 귀결로서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 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더블 딥의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악마의 맷돌’이 크게 삐거덕거리면서 전체가 와해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폴라니에 따르면, 자기 조정 시장을 통해 경제 영역이 정치 영역과 분리되면서 동시에 경제 영역이 정치 영역을 장악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는 시장이 사회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악마의 맷돌’이 갑자기 멈추면서 와해된다는 것은 세계 전체의 사회적 삶의 영역 전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대적인 공포, 마치 일본의 원전 폭파와 같은 직접적인 공포를 훨씬 능가하는 대대적인 공포가 세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8년의 위기에 이어 계속되어 온 경기부양책으로도 그다지 큰 효과가 없자 이번 9월 9일에 또 4천50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는 자기 조정 시장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허구인가를 여실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한번 속도를 내기 시작한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이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어떻게 정치를 비롯한 사회의 전 영역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가를 확연하게 드러낸다. 3. 악마의 맷돌 속 한반도 문제는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이 ‘세계화 된 악마의 맷돌’이 묘하게도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거센 파찰음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외적으로 이 파찰음은 분명 한반도의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의 정치에서 ‘복지’가 사회정치적인 이슈로 정확하게 자리매김 된다는 것이 과연 더 이상 자기 조정 시장에만 삶을 맡겨놓을 수 없다고 하는 근본적인 성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조선일보에서 연재하는 ‘자본주의 4.0’처럼 자기 조정 시장의 ‘악마의 맷돌’이 크게 삐걱거리는 것에 대한 기계적인 수리에 의한 것인지를 지금으로서는 그 귀결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세계 전반적인 추세를 볼 때,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자기 조정 시장은 이미 마치 절대적인 존재인 양 자리를 잡고 있어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만큼이나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역시 ‘절대적인 진리’인 양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 ‘복지 이슈화’의 기회를 자기 조정 시장의 ‘악마의 맷돌’에 저항하는 강력한 장치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으로부터의 인간 삶의 해방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우리가 ‘시장으로부터의 인간 삶의 해방구’를 확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여실히 확인했다. 이 청문회에서 특히 조남호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비인격적인 기계성을 통해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세계화된 악마의 맷돌’이 얼마나 강고하고 무서운가를, 그 ‘악마의 맷돌’이 돌아가는 데 노동에 관련된 법률들이 얼마나 크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그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사라지고 없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 스스로 돌아가는 ‘악마의 맷돌’에 삶을 의존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복지 이슈화’를 어떻게든 인간 삶의 해방구를 마련하는 쪽으로 끌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그런데 ‘복지 이슈화’를 정확하게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기에는 주변 상황이 너무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에 대한 찬반의 논의 틀이 ‘절대적 존재인 악마의 맷돌’을 근본적으로 문제로 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찬성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중국 중 누가 이 ‘악마의 맷돌’의 어처구니를 장악할 것인가를 놓고서 대대적인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한반도 내의 남북의 분단 문제가 이명박 정권 들어 크게 교착됨으로써 미중 간의 어처구니 장악 신경전을 위한 일종의 돌쩌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한 일본은 묘하게도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에 대해 영토 분쟁을 계속 재생산해 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평화헌법 9조를 어떻게든 폐지 내지는 대폭 개정하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이 역시 동아시아 권역에서의 자기 조정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투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군사력을 내세운 영토적인 제국주의에서 경제력을 내세운 순수 시장적인 제국주의로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래서 법적·형식적으로는 제국주의적 대외관계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실질에 있어서는 자국의 경제 영역의 확대를 위해 여전히 정치군사력에 입각한 무력경쟁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특히 한반도의 남북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격발되고 있는 것이다. 4.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대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무슨 마술적인 해법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철저히 상식에 입각한 ‘이상 아닌 이상’을 모든 정책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경제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활동하기 위해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격을 갖추는 것은 즉 인격을 갖추는 것은 의식주의 욕구를 더 많이 더 과시적으로 경쟁적으로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적일 수밖에 없는 의식주의 욕구를 넘어서서 장구한 세월을 통해 인류가 남겨놓은 사회문화적·인문예술적인 가치들을 함께 향유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유토피아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 비록 억압된 형태긴 하나 이미 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 하버마스(Ürgen Habermas, 1929- )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이는 생활세계를 사회적 삶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고, 폴라니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이는 전인격적인 사회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버마스의 관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하버마스는 폴라니의 위 글보다 약 40년 뒤 80년대에 쓴 『의사소통행위이론: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장춘익 옮김, 나남)에서 나름의 사회역사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하버마스는 흔히 말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를 체계이자 동시에 생활세계로 파악한다. 그러면서 하버마스는 체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시장과 국가를 들고, 시장은 화폐를 매체로 해서 작동하고 국가는 권력을 매체로 해서 작동한다고 말한다. 그런 반면, 생활세계를 상호이해에 입각한 의사소통적인 것으로 보면서 그 상징적인 구조들로 비축된 지식으로서의 문화, 소속과 연대를 가능케 하는 질서인 사회 그리고 언어와 행위 능력을 갖춘 인간성 등 세 가지를 든다. 중요한 것은 하버마스가 제시하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관계이다. 시장과 국가라고 하는 체계가 그것들이 생겨날 수 있는 바탕인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는 것이 요체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생활세계를 화폐와 권력을 매체로 작동하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상호이해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공의 장을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가 시장과 국가를 대립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단계에서 글을 썼다면, 하버마스는 시장의 자본을 중심으로 국가가 결합된 역사적인 단계에서 글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는 것은 폴라니가 자기 조정 시장이 ‘악마의 맷돌’이 되어 일체의 인간 삶을 갈아엎어 상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더욱 철학적인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하버마스가 국가기관들이 폴라니가 말한 ‘악마의 맷돌’을 돌리는 데 대거 동원된다는 것을 더욱 심각하게 표현함으로써 폴라니에 비해 더 비관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할 것이다. 폴라니는 인간의 사회적 삶이 결코 ‘악마의 맷돌’ 속으로 순응적으로 완전히 포섭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보고, 그것에 저항하는 계급적인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국가와 정부에 대한 계급적인 장악 여부에 따라 나름의 해방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볼 때, 그동안 국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근대화 극복에 관한 사회이론이라든가 이와 맞물려 있으면서 동아시아의 연대와 평화를 추구하는 동아시아론이 갖는 함의는 크다 할 것이다. 다만, 동아시아론이 동아시아 중심의 자기 조정 시장이라고 하는 ‘악마의 맷돌’을 전제로 한 것일 경우에는 연대도 평화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말하자면, 지역주의에 의거한 블록화라고 하는 세계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세계화 된 악마의 맷돌’이 결정적인 위기에 처할 때,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과 그에 따른 전쟁이 예고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대대적인 재난을 피하기 위한 국가적인 정책을 도모하는 데 국내외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강정 마을의 투쟁은 분명히 한미일 연합의 ‘악마의 맷돌’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전략에 대한 투쟁이다. 이에 대한 투쟁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철저히 억압되는 광경을 보면서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우려를 금치 못하는 까닭이 결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에 우리는 이미 시작된 내년의 선거 국면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정말이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왜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어떤 근본적인 정책들을 마련해 실천해야 하는가를 잘 느끼고 알고 있는 지혜롭고 탁월한 지도자, ‘악마의 맷돌’을 더 잘 돌리고자 하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악마의 맷돌’이 낳는 재난을 벗어나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평화를 위한 연대, 연대를 통한 공감의 모듬살이를 구축해 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53 | 추천: 1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나는 지금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귀포경찰서는 지난 1일 나를 포함한 9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해놓은 상태다.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고 경찰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다. 현재 정부당국과 해군은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을 철조망 펜스와 경찰병력으로 봉쇄중이다. 이로써 400여 년 동안 이 마을 주민들의 삶의 배경이 되어왔던 구럼비의 바다는 처음으로 주민과 마을로부터 단절되었다. 대검찰청은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이른바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체포 작전과 공권력을 통한 강제진압에 나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강정마을이 제주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된 지난 2007년 5월 이래, 주민들과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단 한 차례도 불법적인 집회나 시위 등을 계획해 본 적도, 실행해 본 적도 없다. 오직 해군기지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바로잡을 합리적 해결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해왔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여론은, 기지 유치결정이 이뤄진 2007년 5월을 기점으로 더욱 확대되어왔다. 이는 당시 결정의 부당성과 해군기지 사업 추진이 정당성을 결여되어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2007년 이후 도내 언론사들에 의한 매시기별 여론조사 결과는 최소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을 넘어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음을 공히 지적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해군기지 건설계획 자체의 폐기 여론도 급격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 구럼비 해안의 아름다움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국가적 사안으로까지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올레7코스를 찾는 탐방객들의 구전효과와 생명평화결사와 같은 시민단체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의 비폭력저항에 대한 신념과 노력,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반대를 앞세운 무리한 주장과 폭력적 방식의 저항으로 임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당국이 ‘폭력시위’, ‘공권력 도전’ 운운하며 이 문제를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진압을 통해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은, 국민적 저항만 더욱 키우는 일이다. 지난 9월 3일, 평화비행기․평화버스 행사에는 바로 전날 이뤄진 공권력 작전의 삼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2천여 명 이상의 시민이 모였다. 이 수치는 섬이라는 제주의 지리적 특성을 생각할 때 2만명 이상의 효과를 갖는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무력화를 위해 사람들을 구속하고 손해배상청구와 같은 방법으로 발을 묶으려하고, 구럼비 해안을 물리력으로 통제한다고 한들, 평화에 대한 열망과 부정의에 대한 저항의 흐름을 잠재울 수 있을까? 강정마을 구럼비의 자연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400여년 계속돼 온 이곳 주민들의 삶을 반영한다. 구럼비 자체는 이 마을 공동체의 역사이자 축적된 삶의 양식인 것이다. 구럼비 해안의 자연 그대로의 정경은 이곳 주민들 또한 이곳의 자연과 얼마나 평화적으로 관계해왔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들을 쏟아 붓고, 6만평 이상을 매립하는 기지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백보 양보해 설령, 해군기지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아홉 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연산호 군락지과 붉은발말똥게와 같은 다양한 생명의 보물창고이자 아름다운 경관지인 이곳을 잘 보전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경쟁력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구속 중인 고유기 선생의 편지를 제주참여환경연대에서 보내주셨습니다. 강정마을에 추진되는 해군기지 건설문제는 새만금-부안-평택에 이어서, 국가사업의 정당성과 추진방식의 문제를 또다시 제기한다. 설득과 대화의 노력보다는 오직 국가사업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추진에 나서고, 이에 대한 반대는 ‘종북좌파’로 매도하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하는 것이, 이른바 국책사업 추진과정이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의 엄호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공안논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지금처럼 열려진 세상에서는 국가논리가 권위로서 작동할 공간은 협소하다. 이제, ‘국책사업’도 ‘국가안보’도 국민들의 광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반대와 이견(異見)을 감내하며 소통에 나서야한다. 그것이 진짜 효율성 있는 국가사업을 하는 방법이다. 무리한 추진논리와 방식으로 벌써 10년째 표류하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느 가을 오후, 높은 하늘을 배 위에 올려놓고 구럼비 바위에 팔베개하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가을의 파란하늘과 맞닿은 바다 지평선 아래로 산호들은 날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실은 수백 년 동안의 진실이었는데, 해군기지라는 거대한 괴물은 이 엄청난 진실을 기억과 그것으로부터 상상의 감옥으로 밀어넣으려 하고 있다. 그 수백년의 진실을, 다가올 가을 어느 날의 오후의 현실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 감옥의 창살쯤이야 차라리 함께 산길을 넘는 벗일 뿐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22 | 추천: 0
이광조/ CBS PD 최근 중국의 포털 사이트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박근혜 의원이 2002년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부부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소를 자아내는 이 해프닝을 보도한 국내 한 언론사의 기사는 “김 위원장 부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중국 온라인 매체나 네티즌들은 김 위원장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박 전 대표를 제대로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김정일의 부인’이라고 소개하며 유포한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했다. 기사는 이어서 “현재 이 같은 황당한 사진에는 각양각색의 황당한 설명도 붙었다. ‘김정일의 4번째 부인’이라는 설명이 가장 많지만 ‘김정일의 절세미녀 4번째 부인’ ‘김정일의 2번째 부인’ ‘좀 오래된 사진이지만 김정일의 부인’ 등과 같은 설명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박근혜 의원이나 그를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웃고 넘어갈 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런데 단순히 개인의 신상에 관한 엉터리 정보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와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사안이, 위에서 인용한 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제대로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보도된다면 어떨까? 지난 8월 10일 중앙일보는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김관진 국방장관을 암살하려는 특수임무조가 국내에 잠입해 활동을 시작했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 암살조가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의 군·정보 당국이 파악하고 암살조 색출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라 김 장관 암살조가 움직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와 경색된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국방장관을 암살한다는 것이 곧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정말 현실성이 있는지, ‘정부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 신뢰할만한 건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 보도를 필두로 중앙일보를 포함해 여러 언론에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김관진 국방장관의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 예비군 부대가 김정일, 김정은 부자 표적지를 사용한 것이 암살조 파견의 배경으로 제시됐고 급기야 북한 내부 기관 사이의 충성 경쟁까지 거론됐다. 어느새 북한 암살조의 암약이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 뒤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국방부 장관의 의연한 자세가 화제가 되었다. 그의 하루 일과가 지면을 장식하는가 하면 “나와 함께 다니면 큰 일 날지 모른다”는 장관의 쿨 한 농담이 기사가 되고 김관진 국방장관의 강경하고 의연한 태도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고 있어 미 국방부에서 이를 ‘김관진 이펙트’라고 부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뿐인가 또 다른 신문은 김 장관이 장관 취임 이후 지휘 서신 1호에서 인용한 이순신 장군 결의를 인용하기도 했다.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여기에 장관이 트위터에 올렸다는 ‘저는 건재합니다’라는 발언까지. 총성 없는 전쟁이긴 하지만 국민들은 의연한 장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편의 장엄한 드라마를 지켜본 셈이다. 그런데 장엄한 드라마는 꼭 여기까지였다. 결말은 ‘이 모든 것이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라는 것이었다. 온갖 극적인 반전 끝에 ‘이 모든 건 주인공의 꿈이었어’라고 마무리는 드라마처럼 8월 10일부터 근 열흘간 긴박하게 진행되던 드라마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것도 주인공의 입을 통해. 국민들이 느꼈을 허탈감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었는지 한 여당의원은 김 장관에게 “북한 암살조 첩보가 허위라면 유표한 기자를 처벌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럼 정보를 흘린 정부 고위 관계자는 어떻게 하며, 언론이 불어대는 가락에 장단을 맞춘 우리의 주인공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중국 포털 사이트의 ‘박근혜, 김정일 4번째 부인’ 보도에 혀를 차는 한 신문 기사를 보며 ‘썩소’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 누굴 나무라겠는가.
2017-07-20 | hrights | 조회: 14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