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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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범죄현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범죄인 연령의 저하, 즉 소년범죄의 증가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수십 년 간 소년범죄는 꾸준히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2000년 이후에는 매년 약 3만5천 건이 넘는 소년보호사건이 법원에 접수되고 있다(사실 이 숫자는 소년형사사건, 그러니까 소년범죄가 정식의 형사사건으로 처리되는 사건 수는 제외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 소년범죄 건수는 이보다 조금 더 많을 것이라고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범죄의 내용도 예전보다 더 안 좋아졌을 것이다. 폭력이나 현금 갈취, 친구에 대한 괴롭힘 등은 예사고 잔인한 상해나 살인 사건도 가끔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몇몇 청소년들이 온라인에서 만난 대학생을 집단으로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범죄와 같은 사회현상은 여러 차원의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 원인을 단순히 어떤 하나에서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의 소년범죄와 관련해서 이것이 교육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책상에 붙들려 있어야 하고, 한 달이 멀다하고 시험에 대한 부담에 시달려야 하며, 또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냉대에 가까운 무관심과 장래에 대한 엄혹한 불안을 오롯이 혼자서 견뎌야만 하는 현실에서,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범죄와 같은 비정상적인 일탈행위로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교육부와 같은 관련기관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거니와, 이와 함께 증가하는 범죄에 대한 단기적인 대책으로 늘 제시되는 것이 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미 법무부와 검찰도 일정 수준이상의 소년범죄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사실 이러한 엄격처벌주의 또는 강성의 형사정책은 비단 소년범죄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수년 전에 몇 차례 발생한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를 배경으로 해서 우리 형법은 이미 자유형의 상한을 30년으로(가중하는 경우에는 50년까지) 늘린 바 있고, 부가적인 대책으로 전자발찌의 착용과 성충동을 감소시키는 강제 약물복용조치(이른바 ‘화학적 거세’)까지 도입하였다. 또 상습범죄에 대해서는 이미 폐지된 ‘보호감호’제도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다. 소년법의 경우에도 이 법률이 적용되는 소년의 연령을 10 세로 낮추고, 관련 보호처분을 다양화하는 내용의 개정이 이미 지난 2007년에 이루어진 바 있다. ▲ 사진 출처 -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그런데 이렇게 형벌을 강화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과연 범죄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을까? 전통적인 형법이론은 인간을 이기적이고 자기 행동을 철저히 계산할 수 있는 합리적인 존재로 보았다. 이와 같은 전제에서 범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초과하는 형벌을 부과한다면 그러한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후 생물학이나 심리학, 심지어 사회학과 같은 지식의 발전은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쏟아내게 된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명백히 불이익이 초래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형벌을 설정함으로써 인간의 범죄에 대한 충동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전통적인 형법의 가설은 틀린 것일까? 지금도 이러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우리 형법체계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전제가 적용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한데, 육체적·정신적인 어떤 결함으로 말미암아 범죄와 같은 일탈행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 즉 정신이상 범죄자와 상습범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여기에 사회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나아가게 되는 성격 결함자들을 추가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이 범주에 소년범죄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범죄와 같은 해악을 이보다 더 큰 해악으로 제압하는 것은 최선의 형사대책은 아니다. 가능한 완화된 방법으로 범죄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이 더욱 효과적인 것일테니 말이다. 형법이론이 범죄자의 ‘책임’으로 형벌의 양을 제한하려고 하는 것도, 특별한 범죄자들에 대해 형벌 이외에 다른 처분들을 마련해 놓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소년 범죄인들에 대해 엄격한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이 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소년범죄에 대해 엄격한 형벌을 부과하면 어떻게 될까? 단기적인 범죄감소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평생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업 범죄인’을 양산하는 길은 아닐까?
2017-07-21 | hrights | 조회: 113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건을 계기로 ‘사상 검증 논란’이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인 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인 역량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위기적인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비례대표 부정 선거’를 계기로 기본 인권 중 하나인 사상의 자유를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허용 혹은 제한할 수 있는가가 정치사회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이 의제가 공적으로 설립된 것은 MBC의 <100분 토론>에서였다. 시민논객 중 한 사람이 패널로 나온 통합민주당의 ‘구 당권파’에 속하는 이상규 당시 지역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상규 씨가 그 물음 자체가 사상 검증의 의도가 함축되어 있고 사상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상대 진영의 패널인 진중권 씨가 이상규 씨에 대해 ‘일반 개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정치인은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정확히 밝혀 투표권을 지닌 시민들이 나름의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이른바 대표적인 진보 논객으로 손꼽히는 인물이 텔레비전 생방송 현장에서 정치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과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어떻게 받아들이고 혹은 어떻게 비판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과연 현실적으로 어떤 사회정치적인 귀결들이 나올 것인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직감적으로 <100분 토론>의 이 일련의 과정을 목격하면서 우리 사회가 대단히 위험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의원들이나 고위 관료들에게 불법적인 재산 형성을 방지하고 검증하기 위해 재산 등록을 하듯이, 만약 이들의 사상 형성의 과정에 대해 일일이 고백하도록 하여 ‘사상 등록’을 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유엔인권선언과는 달리 우리나라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유엔인권선언 제18조는 “모든 사람은 사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자신의 종교와 신념을 바꿀 자유를 포함하며, 혼자이건 다른 사람들과 공동적으로건 공적이건 사적이건 간에 교육, 관습, 예배 및 의식에 있어서 자신의 종교 혹은 신념을 표현할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되어 있고, 제19조에는 “모든 사람은 견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방해받지 않고 견해를 주장할 자유를 포함하며, 어떤 매체건 제한 없이 정보와 생각들을 찾고 받고 나누는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되어 있다.(강조 표시는 필자가)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이와 달리 제19조에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를, 그리고 제20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리고 제21조의 ①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그리고 ②항에서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제37조 ②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물론 헌법에 정확하게 명기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헌법 제37조 ①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고 했을 때, 열거되지 않은 자유와 권리에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이러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하는 조항은 전혀 없다. 모르긴 하지만, 이에 관련된 법률도 없을 것이고, 만약 그런 법률이 있다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 위헌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중에서 중요한 기준 한 가지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얼마만큼 보장 확대해 왔는가일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헌법 제37조 ②항에서 특별한 경우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한편으로 보면 일종의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다. 이 조항이 독소조항이 되지 않으려면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는 단서를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현저히 침해되는 경우가 아닌 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라는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상의 자유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기 자신의 내면적인 존재의 자율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이고, 각자의 이러한 내면적인 존재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해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내지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라는 주장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대단히 긴요하다. <100분 토론> 이후 계속 통합진보당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飛火)가 되면서 이미 벌써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 사이에 국회의원의 사상 검증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문제가 상당히 심중한 사회정치적인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진중권 씨의 “일반 국민 개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이라는 주장을 “일반 국민 개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치인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라는 그의 주장을 “국민 개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자가 바로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자신의 사상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국민 개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보호할 수 없다.”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진중권 씨가 그런 취지로 말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저 앞에서 말한 것을 원용해서 말하면,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이 국회의원 후보자가 지닌 사상이 자신의 사상과 일치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자신의 사상을 밝혀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진중권 씨의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게재되어 있다. 첫째, 사상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하는 일종의 관념론적인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다. 둘째, 투표권을 행사하는 국민들이 이러한 관념론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셋째, 무엇보다도 투표를 포함한 정치적인 행위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행동에 의거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윤리적인 판단의 대상도 당사자가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했는가인데, 정치적 · 법적 판단의 대상은 말할 것도 없다. 사상의 자유는 한편으로 객관적으로 드러난 행동 외에 내면적인 주관적 상태를 대상으로 삼아 법적 · 정치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20조 ②항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에 근거한 것이다. 종교만큼 이른바 사상성이 강한 것은 없지만, 누구든지 간에 종교적인 사상을 근거로 정치적인 판단이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종북논란, 양심의 자유 논쟁으로' 지난 22일 방송된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어디로’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치인의 사상을 검증해서 정치 영역에서 배제하려고 하는 것은 그 정치인이 향후 정치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가를 미리 예측해서 그런 행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싹 자체를 잘라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책략은 특히 대적하고 있는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에 더없이 좋은 수단인 것처럼 비치면서 파당의 정치를 일삼는 자들에게는 대단히 현혹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인 역량이 얼마나 협소하며 한편으로 파시즘적인 폭력성을 지닌 것인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상의 자유는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내면적인 자율적 존재를 떠받치는 핵심이기에 이를 미연에 검증하고자 하는 것은 아예 개인성 자체를 삭제해버리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실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김일성이라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주체사상을 인민들의 뼛속깊이 새겨 예외 없이 일사 분란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고 그 결과 심지어 ‘김일성 민족’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잘 모르긴 하지만,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전 인민에 대해 국가적으로 사상 검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역사적인 조건을 제시할지라도 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 변명은 북한 사회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진중권 씨의 ‘정치인의 사상적 자유 불가론’은 이같이 말도 안 되는 체제 자체를 동조 내지는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 짐작된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슬기로운 판단을 했어야 하지 않은가 싶다. 좁게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대북 불안감을 한층 고조시켜 왜곡된 형태로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수구 보수 진영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넓게는 자칫 우리 사회 전체를 내면적인 사상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파시즘적인 고백 사회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누군가가 나와 특히 첨예한 부분에 대해 사상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러한 불편함을 견디면서 서로의 입장에 따른 객관적인 결과를 최대한 조율해 내고자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나와 사상이 다른 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아예 정치적인 영역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자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정치 사상적인 입장이 일정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인 행위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논쟁을 불러일으킬 때, 왜 그런 정치적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그야말로 합리적으로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엄격하게 말하면 사상의 자유가 실현될 수 없다. 사상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의 잠재태라면,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물론 여기에는 현실의 권력 관계와 그 결과를 염두에 둔 여러 고려가 따를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되어 있지 않고, 자신의 사상적 이질성을 합리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고백하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폭력적이다. 그러고 보면, <피로 사회>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가 부정성을 바탕으로 한 억압과 배제의 규율사회가 아니라 긍정성을 바탕으로 한 성과사회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고 하는 재독 학자 한병철 씨의 주장은 적어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집단 무의식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우리사회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글의 모두에서 나는 현재 통합진보당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현실 정치에 불어 닥치고 있는 ‘사상 검증 논란’의 상황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인 역량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위기적인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사상적인 차원에서만큼은 다양한 이질성을 수용함으로써 누구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대신 그에 따른 정치적 행동의 결과에 있어서는 그러한 이질적인 입장들이 지닌 나름의 장점을 합리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만약 그 반대로 현재의 상황을 빌미로 파시즘적인 고백 문화가 사회적으로 크게 똬리를 틀게 된다면 비극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69조에 나와 있는 대통령 취임 선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내용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미래지향적으로 해석하여 다양하면서도 균형 잡힌 합리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모든 정치인들이 노력하기를 바란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01 | 추천: 0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제 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완득이』(김려령 작)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책이다. 최근 영화화돼서도 좋은 호응을 얻었다고 들었다. 우연히 출간 전 한글 문서를 인쇄한 그대로 『완득이』를 처음 만났었는데, 독자를 혹하기 마련인 허튼 유명세나 화려한 표지나 말끔한 편집이 없었는데도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 한번 집어든 후엔 낄낄거리며 한달음에 읽어치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님,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사실 진정으로 품은 살의라면 이런 식으로 발설할 리 없다. 무력한 어린아이도 아니고 짱짱한 10대 고등학생인데 말이다. 『완득이』는 주인공 도완득이 유독 자기만 괴롭히는 담임 ‘똥주’를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담임 다니는 교회에 담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오고, “안 들어주면 다음 주에 또” 온다고 협박하는 이 10대의 초상은 무섭기는커녕 마냥 흥겹다. 이놈은 적어도, 말 한 마디 없이 불온한 눈빛만 보내다 뒷골목에서 나를 겨냥할 재목은 아닌 것이다. 겉으로야 불량하지만 속으론 한없이 순량한, 첫 대사만 들어도 정이 가는 녀석 완득이. 녀석과 정 들이고, 난쟁이 아비며 핏줄 아닌 ‘삼촌’이며 알고 보니 속 깊은 ‘똥주’하고까지 낯을 익히고 있는데, 『완득이』가 갑자기 어리둥절한 제안을 건네 온다. 자, 이렇게 정들인 완득이가 베트남 여인의 자식이라면 어떻겠느냐고. 아마 초대면에서부터 완득이가 “저희 엄마는 베트남 사람입니다.” 이렇게 시작했더라면 반응이 전혀 달랐을지 모르겠다. 똑같은 완득이, 똑같이 불량한 듯 깊이 순량한 완득이였더라도 더디 정들이거나 달리 정들이지 않았을까. 적어도 ‘다문화’를 깊이 접한 적 없는 나로선 그러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지라 거리에서 자주 부딪히긴 한다. 애들 다니는 학교며 어린이집에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있다. 이주민 밴드를 만난 적도 있고, 어쭙잖게도 사진전이며 강연회를 개최해야 했던 때도 있다. 그러나 ‘옆집 사는 완득이, 내 안의 완득이’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해야 할까. 사진전을 주관했던 친구는 “그게, 다문화 가정 애들이라면 좀 달라 보여야 할 텐데요, 외모론 별로 분간이 안 되는데요, 사진전으론 글쎄….”라며 머리를 긁적거렸었다. 그러니 말이다. 이미 분간 안 될 만큼 ‘우리’이기도 한 사람들을 굳이 딱지 붙여 추려내고 싶어 했으니. ▲ 영화 『완득이』 사진 출처 - 씨네21 소설로서 『완득이』가 그러하듯, 인식론으로서 ‘그들은 이미 우리’라는 접근도 문제가 적진 않을 것이다. 『완득이』는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함직한 순간에도 우회만 하고 마는지 모른다. 보급품 햇반을 뺏어먹고 자율학습 시간에 드르렁 코 고는 ‘똥주’는 빈곤층 지원책이며 고교 교육의 문제에 딴지걸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점이 깊이 드러나진 않고, 인물들의 유쾌한 건달기와 진지한 사회적 현안이 어떻게 통합 수 있을지 또한 속속들이 탐색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우리’이며 그들의 자산이 우리 자산이듯 그들의 문제 또한 우리 문제여야 한다는 접근법도, 어떤 점에선, 인정해야만 할 이질성을 해소시키고 사회․국가적 통합을 우선시하는 허점투성이 방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 한 편에 대해 세상 모든 문제의 해결을 요구할 수 없듯, ‘그들은 이미 우리’라는 생각이 지금 내 발판이 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살고 성장해 가는 사람들 중 일부를 ‘밖’으로 따로 밀쳐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들’이란 지칭이 우스울 정도로 완득이 들은 이미 이 사회에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을 ‘착하고 인간적인’ 존재로 그리려는 선의나 외국인 범죄율이 결코 높지 않다는 사실을 강변하려는 의분은 그것대로 값이 있을 것이나, 『완득이』는 ‘그들이 누구든’ 이미 같은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새삼 일깨워 준다. 완득이의 생모가 베트남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정들인 완득이에 등 돌릴 수 없듯이, 설혹 ‘그들이 문제적인 존재일지라도’ 그 문제는 이미 ‘우리’ 공동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렷한 한국어에 익숙한 감성에― 완득이는 적어도 ‘이주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초기값 설정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다. 이주 노동의 역사가 20년을 넘고 ‘다문화 가정’의 2세들이 성년을 향해 자라나고 있는 오늘날, 상황은 ‘차이에 대한 관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을 멀리 넘어서고 있다. 외국인 ‘며느리’들을 시부모다운 아량으로 품어주고 한국어와 한국 음식을 가르쳐 준다는 동화의 정책으로 과연 이 세월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공동의 삶 속에 처해 있으며 공동의 미래를 향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 가야 할 길이 있겠지만 지금 나로선 『완득이』만도 좋은 참고서다. ‘다문화 가정’의 자식이기 전에 그냥 도완득이었던 완득이를 먼저 만났던 경험이 상기 새삼스러우니 말이다. 모쪼록 각색의 완득이를 만날 때 이 경험을 기억할 수 있기를. 나를 만나는 사람들 또한 성과 인종과 출신 이전에 나를 먼저 만나줄 수 있기를.
2017-07-21 | hrights | 조회: 131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Head of PASSIA ‘팔레스타인 사례 : 무한 궤도 2012’ 삽화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파벌과 시민사회가 사용하는 여섯 가지 궤도(경로)를 보여준다. 해당 궤도는 국가기구 건설, 화해, UN 청원, 협상 (요르단 주관), 선거(수반 및 의회), 그리고 대중저항 궤도이다. 위 궤도의 대부분은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나 일부 궤도는 변화하는 상황과 외부 요인들로 인해 보류되고 있다. 1. 국가 기구건설 궤도 2009년 8월 25일, 살람파야드 총리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3번째 정부의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 점령 종식과 국가건설>이라는 제목의 이번 2년짜리 프로그램은 <점령 상태에도 불구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강력한 국가 기구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이 프로그램의 진행 상황을 면밀하게 조사해서, 6개월마다 원조국의 포럼인 AHLC(특별 교섭 위원회)에 보고할 책임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막바지인 2011년 9월에 세계은행은 중요한 진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강력한 국가 기구건설이라는 목표를 내세운 이 프로그램이 목적과 정책을 실행하는데 있어 상당한 진전이 있다. 정부의 실효성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분야인, 안보와 사법, 수익과 지출 관리, 경제 발전, 서비스 전달에서 팔레스타인 공공기관은 해당 지역과 그 이외 다른 국가의 그것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과정을 더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민간 부문의 경제성장을 억압하는 이스라엘의 조치를 해제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조치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천연 자원과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민간 부문의 성장은 원조의 감소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재정 위기에 따른 팔레스타인 경제의 취약성을 완화시킬 것이고, 여태껏 이루어진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노력들을 강화시킬 것이다. 안보와 부패는 인적 자원이라는 문제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당면한 또 하나의 문제다. 2. 파타와 하마스의 화해 궤도 2012년 2월 6일 도하에서 팔레스타인 수반이자 파타의 수장인 마흐무드압바스와 하마스 정치국장인 칼리드마샬은 경쟁 파벌인 양측이 이미 2011년 4월과 5월 화해 협정을 체결했지만, 실행되지 못했던 화해 과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합의에 서명하였다. 이 새로운 합의는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마흐무드압바스가 임시 합의 정부를 이끌며, 가자 지구의 재건과 함께 2012년까지 선거를 실시한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이 합의가 실행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하마스 대표들과 다른 이들은 마흐무드압바스가 대통령과 총리 역할을 축적하기 전에, 팔레스타인 입법부가 먼저 기본법을 수정하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마스와 파타 양측의 움직임을 막는 다음의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2011 화해 협정이 규정한대부분의 조항들이 실행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하마스와 파타 양측의 보안 부대의 통합이나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개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3. UN 국가 지위 획득청원 궤도 2011년 9월 23일,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압바스는 팔레스타인을 UN 회원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팔레스타인 측의 정식 요청을 UN 사무총장에게 제출하였다. 2011년 12월에 129개 UN 회원국들이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아직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 유엔 청원이 받아 들여지기 위해서는 상임 이사국의 거부권 행사 없이 안전보장위원회 15개 국가 중 9개 국가의 지지가 필요하다. 안전보장위원회의 상임 이사국으로서 미국은 안전보장위원회의 9개국이 팔레스타인의 가입에 찬성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여러 번에 걸쳐 단언하였다. 미국의 입장은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이 UN 결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2년 10월 31일, UNESCO가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UNESCO에 대한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빠르게 응답하였다. 4. 협상 궤도 – 요르단 2012년 1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표단은 UN 국가 지위 획득청원의 대안으로 평화 과정을 재활성화 시키기 위한 마지막 돌파구를 찾기 위하여 요르단에서 회의를 시작하였다. 마흐무드압바스 수반은 요르단이 중재한 이스라엘과의 회담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평화 협상을 재개함으로써 희망을 되살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마지못해 정착촌 건설 사업 중단을 10개월 연장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회담이 중단된 지 16개월만에 회담이 재개되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후원으로 압둘라 요르단 국왕이 이 회담을 주관하였다. “압둘라 국왕은 1967년 휴전선을 경계로,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준비하면서 모든 최종 지위 문제(국가 지위, 예루살렘 지위 등)를 포함하는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요르단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대표단으로부터 ‘협상’보다는 1월 초부터 암만에서 열린 이전 회담의 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진 ‘예비적 회의’라고 여겨졌다. 팔레스타인측 최고 협상가인 사에브에레카트는 이스라엘 대표단에 안보 전문가가 포함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회의장에 들어가길 거부하면서 회의는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정착촌 건설을 동결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1월 26일 이후의 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요르단의 특별한 관심사 5가지는 : 안보, 국경, 난민, 물, 그리고 예루살렘의 지위이다. 5. 선거 궤도 2011년 11월 중순, 파타와 하마스는 계속 진행돼 온 화해 회담의 일부분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위한 선거(수반 및 의회)를 2012년 5월에 실시하기로 동의했다. 선거 실시는 민족통합정부의 구성,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구조조정, 선거 법정의 창설 보안대의 개혁에 달려있다. 2012년 3월, 하마스-파타 화해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팔레스타인 중앙선거위원회가 선거를 실시할 수 없게 되었다. 중앙선관위의 최고 선거 책임자인 히삼쿠하일에 따르면, 최대한 빠른 선거일은 2012년 6월 이후일 것이라고 하였다.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는 중앙선관위가 선거를 실시하기 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인 가자 지구유권자 등록을 업데이트하는 것을 막았다(가장 최근의 업데이트는 2007년). 2012년 2월 중앙선관위 팀은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총리인 이스마일하니야 보좌관들과 회의에서 유권자 등록 업데이트를 거부당했다. 6. 대중 저항 궤도 국가기구들과 파벌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진척시키지 못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대중들의 양측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하락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중 행동(특히 비폭력적 행동주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곤경에 대해서 국내 및 국제적 주목을 끄는 수단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대중행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팔레스타인과 국제적 운동가들은 비폭력적 시위와 세금 파업을 대중저항운동으로 사용하였다. 5월 15일에 실시된 나크바(재앙의 날) 행사는 점령에 대항하는 국가가 후원하는 평화적 시위의 좋은 예이다. 2011년 11월 16일, 마흐무드압바스 수반은 팔레스타인 비폭력적 저항에 대한 자신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약속하였다. 그는 “우리는 대중저항 등을 통해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안다. 나는 이 대중저항에 가능한 한 폭넓게 참가하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대중저항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식 투쟁이었다. 이는 국제적 헤드라인을 오래도록 지배했던 무력 투쟁에서 팔레스타인이 돌아서고 있는 것으로, 팔레스타인 대중저항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2011년 말 행해진 여론 조사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의 61%가 고착된 협상에 반대하여 비폭력적 대중저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데르아드난은 이스라엘 사법 제도내에서 만연한 불법적인 행정 구금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목을 이끌어낸 첫 팔레스타인 재소자였다. 행정 구금이란 구금된 자가 아무런 기소나 재판 없이 6개월까지 구금될 수 있는 관행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무기한으로 연장될 수 있다. 이 관행은 국제 인권 기준, 기본적인 인신 보호법과 제4차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카데르아드난은 어떤 범죄로도 기소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안보를 위협하는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는 체포된 후 2012년 4월 18일 석방까지 66일 동안 계속 단식 투쟁을 하였다. 그의 투쟁은 이스라엘 교도소 내 만연한 불법 행위와 상태에 국제적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4월 17일,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약 2,500명의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은 '수감자에게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킨다'라는 매우 심플한 목적을 가지고 무기한 단식 투쟁을 시작하였다. 이들 중 몇몇은 13년 동안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들은 또한 재판 없는 구금의 종결과 가족 방문의 복원, 교육적 자료와 언론에의 접근, 독방 감금 종결 등을 요구하였다. 단식 투쟁자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은 66일의 단식 투쟁 이후 1981년에 죽은 아일랜드 반체제 인사 바비샌드가 아니고, 2011년 1월 국가 공무원의 괴롭힘과 수치심에 항의하며 분신 자살한 튀니지 시위자 무함마드 부아지지다. 이 단식 투쟁자 중에는 두드러지는 두 인물이 있다. 타에르할라흘라와 빌랄 디압이다. 이 두 사람 모두 70일 이상 단식 투쟁을 하였다 (기네스북은 가장 긴 이 단식 투쟁을 인정하지 않는다). 2012년 5월 15일자로 두 남자는 위독한 상태로 이스라엘 병원에 있다. 이스라엘의 상황 2012년 5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네타냐후는 야당인 카디마에게리쿠드 연립정부 내각을 할당함으로써 연립 정부의 폭을 넓혀 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하마스를 짓밟거나 헤즈볼라 및 시리아에 대항한 새로운 군사 행동을 준비하면서, 가자 지구에 대한 새로운 군사 작전을 하기 위한 ‘전쟁 정부’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선제 공격을 개시하기 위해 ‘이란의 위협’을 계속 사용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전선에서는, 이 새로운 연립정부는 두 국가 해결을 위한 1967년 경계에 대하여 여전히 어떤 합의도 하지 않을 것이고, 서안과 점령된 예루살렘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500,000 이스라엘 정착민)을 계속해서 확장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인종차별적인 분리장벽 뒤에서 살고 있는 한, 이스라엘인들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거나 상대하지 않는 것에 만족한다. 여섯 가지 궤도는 개방형이며,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무력화’된 상태로 존재한다. * 영문 원고 번역은 신영지(회원)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12 | 추천: 0
이은규/ 인권연대 '숨' 사무국장 . ? ?? . . . . . . !! 사무실 창문을 열었습니다. 5월의 따뜻한 숨이 후우욱 쏟아져 들어오며 환기를 시켜줍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기 이 공간에서 이렇듯 나른한 온도를 느낄 줄은 몰랐거든요. 그만큼 한겨울의 추위는 대단했으며 아직도 틈만 나면 그 한기가 되살아나고는 합니다. 따뜻한 햇볕, 잔잔히 일렁이는 바람. “여기 나의 5월이면 충분해.”호기롭게 널뛰기하는 마음을 가만히 다독이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때 내 눈에 느닷없이(!) 선명하게 나타난 물체! “저것은 뭘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횡으로 흐르면서 가만 가만 바닥으로 내려앉는 하얀 것. 천장을 올려다 보기도하고 창가 쪽을 바라보기도 하며 도대체 저 하얀 것이 어디에서 출현했는지를 분주히 추적했습니다. “뭐지? 먼지일까?” 다시 그 정체불명의 하얀 것에 집중했습니다. 모든 것이 일순간 정지된 가운데 침묵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허공을 흐르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 궤적이 참 유려했습니다. “아 저 확실한 존재감... 멋진걸.” 궁금증은 곧 감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엔 이것의 정체가 작은 거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낡은 천장에서 하강하는. 그런데 거미는 나름 직선으로 내려오잖아요. 해서 다시 유심히 그것을 보았는데 아! 민들레 씨앗... “아 깜짝이야!” 바닥에 내려앉을 때쯤에야 녀석의 정체를 알고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더라고요. 왜 놀랐을까요? 여기 이 공간에 혼자 인줄 알았는데 다른 존재의 발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전혀 의외의 것에서 깊은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분명한 것은 흐름을 타며 유유히 지상으로 낙하하는 민들레 씨앗의 위엄에 압도당했다는 것입니다.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너머로 목을 길게 뻗어 녀석의 낙하지점을 확인했습니다. 아주 느긋하게 누어버렸더라고요. 한참을 신기해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여기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할텐데...” 손으로 집어서 창밖으로 날려 보낼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그 자리에 놔두기로 했습니다. 녀석은 또 흐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지 정하지 않고 바람에, 공간에, 그리고 시간에 온전히 내어 맡기고서는 말이지요. “아! 저 미친 존재감! 나 너한테 반했다.” 가만히 누워있는 민들레 씨앗을 보고 고백을 했습니다. 깊고도 고요한 파문... 아마도 녀석은 이미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듯합니다. 머지않아 내 몸 어디에선가 민들레꽃이 피어나겠지요. 상상을 해 봅니다. 입을 열어 말을 할라치면 민들레 씨앗이 풀풀 날리지 아닐까 하고. 생각만 해도 즐겁고 재미있네요. 그러고 보니 내 마음의 영토가 새삼 넓어진 것 같습니다. 이미 드러나 번다한 곳이 아니라 존재했으나 미처 몰랐던 혹은 버려두었던 미지의 영토가 말입니다. 민들레 씨앗은 그곳에 정착한 것 같습니다. 이 팽팽하고 뿌듯한 느낌대로라면 심장을 뚫고 금세 싹이 올라올 것 같습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래요 지금 여기 5월은 민들레 홀씨를 품기에 참 알맞은 계절입니다. 한순간 한호흡이 경이롭습니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26 | 추천: 0
신하영옥/ 전 여성단체 활동가 총선의 후폭풍이 가라앉고 있지 않은 듯하다. 소위 진보나 보수나 총선과정의 민주성을 문제 삼아 내홍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이니 말이다. 한심할 따름이다. 광우병이며, FTA며, 여당의 밀어붙이기식의 부자정책이며, 산적한 정치적 과제를 앞에 두고 내분이라니, 더욱이 총선의 결과는 야당들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성은커녕 내부 권력다툼에 연연해하는 모습이 불편하기만 하다. 원래 정치가 그런 것이라고? 그렇다면 앞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요구하는 일체의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정치란 선거철에만 반짝 국민 앞에 출현하는 것에 불과한 당신네들의 밥상 뺏기 놀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후보공천과정의 비민주적 절차에 관한 얘기는 좀 들은바가 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총선의 결과에 실망했던 마음이 절망하다 못해 허망해졌다. 여성운동의 선배인 분이 야당의 예비경선후보로 출마했다. 여성운동을 통해 다져진 정책적 기반과 조직화의 노하우를 기반삼아 차근차근 지역에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기대를 모아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지역의 수많은 여성들이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여성의원을 만들어 새롭고 가치 있는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똘똘 뭉쳐 신나게 예비후보선거운동을 조직해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가면 공천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아니, 최소한 예비후보들의 경선이라도 기대하면서... 그러나 여성할당제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후보를 배려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선의 과정도 없이 위에서 내려꽂듯이 지역구후보를 선정하였다고 한다. 그의 그동안의 활동 방식과 내용을 보면 나로서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지역민들을 조직하고 가치를 만드는 정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후보공천을 받았다면 당선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것은 함께 활동했던 그 지역의 여성운동원들의 말이기도 했다. 여튼 짐작은 금물. 그동안 아무런 낌새도 없다가 총선이 임박해 다른 후보를 갑작스레 등장시켜 배신감도 들었으나 경선을 기대하면서 묵묵히 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경선의 과정 없는 후보선정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총선에서 패배했다.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후보였던 선배와 선거운동원들은 상처를 입었다. 정치의 실체란 것이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 권력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일 뿐이라는 현실정치의 알몸을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의 희망에 찬 활동과 노력은 권력의 끈이 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한 여성은 그 과정을 똥통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총선의 결과에 대한 실망보다 현실정치의 추악함에 더 절망했다. 그래도 그 선배는 차라리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풀뿌리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더욱 더 확신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같이 했던 지역여성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꿈꾸고 일구어나가고 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정치에 대한 희망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확산하고자 한 경험은 그 여성들을 다시 그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미련으로 작용했고 현실정치의 냉혹함 혹은 추악함을 본 경험은 정치를 정말로 변하게 해야겠다는 오기나 각오로 변화시켜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의 자기 삶으로 돌아가기보다 무엇이든 선거운동기간동안 설레었던 그 느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무언가 해보자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선배를 추동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새로운 정치, 여성들의 경험과 처지를 반영한 정치이면서 결과보다 과정이 깨끗한 양심적인 정치를 해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가 정치후보로 성장하고자 하며 나아가 지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과 더불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정치에 대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자 하고 있다. 작은 공간을 만들어 지역민들의 소통의 장소로 만들고 자신들의 훈련의 장소로 만들며 무엇보다 즐거운 정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총선결과와 상관없이 그 지역여성들에게 좋은 경험이다. 이는 사적인 존재로만 살아왔던 여성들이 정치활동을 통해 사적인 것들이 결코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그 정치란 것이 여성들의 경험의 장인 사적인 것들에 대해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사적공간의 질서가 통하지 않는 곳임을 경험함으로써 정치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변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사적존재였으나 선거활동을 통해 공적존재로서의 자신을 경험함으로써 공적존재로서의 자존감의 경험이 있어서 사적인 존재로만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생활정치는 운동권으로부터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된 구호였다. 그러나 생활정치는 생활의 장을 담당하는 이들의 경험이 반영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정치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소위 공적영역에서 일어나는 거대담론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삶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정책으로 입안되고 그 문제들이 거대담론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해결이 가능한지를 사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자, 생활자들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FTA는 경제논리나 정의의 문제로 접근하기 전에 삶의 문제, 생존권의 문제로 접근해야한다. 선거는 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이전에 생활자들의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통로이자 소통의 과정, 민주적 정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다만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선거과정이 엉망이라면, 그 논리는 약육강식의 논리 외에 다름 아니며, 결국 우리생활을 어렵게 하는 경쟁과 1% 신화논리의 답습일 뿐이다. 1%를 넘자는 작자들이 그런 행태를 해서야 그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사적공간의 여성들이 그 경험을 가지고 공적공간으로 진입하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풀뿌리들, 지역민들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과 기술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활동이 좋은 결과를 맺는다면, 남성주도의 공적담론에 사적공간의 담지자인 여성들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다. 이는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가 정치인들만의 말잔치나 진흙싸움이 아닌 생활의 문제를 다양한 입장에서 조율하고 희망을 논의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경험을 통해 여성할당제가 지켜야 할 정의가 아니라 구색이었음이 확실해졌다. 할당제를 통해서는 남성정치를 바꾸어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성적인 정치문화를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꾸어낼 수 있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세력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현실정치 안에서 그리고 정치변화를 실현하기 위한 세력이 됨으로 해서. 그래서 그 선배와 여성들의 시도가 가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공=남, 사=여라는 공식이 해체되고 여성들의 많은 경험들이 공론의 장을 이루고, 이로 하여 정치적 담론이 변화하고 정치까지 변화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진다. 어쩌면 이번선거는 실망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 정치권은 내분이 아니라 반성을 할 때이고 절망에도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이 여성들에게서 배워야 할 때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06 | 추천: 0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거리를 걷다가 거리에서 걸인과 마주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지갑을 열 것인가? 도심 거리에서 쉽게 마주하는 이 풍경에 서게 되면 나는 늘 망설인다. 비단 거리의 걸인만이 아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저녁 술집에 앉아 있노라면, 비싼 가격의 껌 한통을 들이미는 손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성과는 그리 변변치 않은 듯하다. 늦은 밤거리에 놓인 바구니에 얼마간의 동전과 천원 지폐 몇 장이 전부인 것만 봐도 그렇다. ‘무관심’ 혹은 ‘무시’의 결과다. 그런데 이 무관심과 무시의 뒤에는 ‘합리적’이라 붙여진 ‘의심’이 동반된다. ‘구걸 하는 저이는 정말 배가 고파 구걸할까?’ ‘저와 같은 이들이 정작 잘산다는데’, ‘지하철에서 껌을 파는 저 아이의 뒤에는 그를 사주하는 배후가 있다던데’ 와 같은 의심의 결과다. 물론, 사실인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우리의 행동은 사실에 주목해 이뤄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확인하지 않고 푼돈이라도 얹어주는 행위는 동정심이든 연민이든 옳다. 눈앞의 곤란에 의심을 접어두고 자신을 내어 주는 것, 눈앞의 잘못에 계산 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 아쉬운 시대다. 한 개인의 곤란에 의심하는 ‘합리적 개인’들의 사회는 냉혹함이 집단화된 사회다. 그 집단의 냉혹은 곧바로 혹시 스스로가 될지 모르는 ‘작고 약한 개인’을 방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고 약한 개인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방관하는 사회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국민들을 참회와 화해로 이끈 대변자로서 알려진 마르틴 뇌밀러의 이 유명한 시를 어느 네티즌(러버)은 오늘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대체한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 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재일 조선인 학자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일본 어느 대학의 수업풍경을 소개햇다. ‘교육 현장 지도법’이라 이름 붙여진 수업에서 강사는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간략히 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자, 여러분이 그 시대의 독일인이었고 유대인을 벗으로 사귀고 있었다면 그 벗과의 관계를 유지하겠습니까, 아니면 끊겠습니까? 이 수업장면을 제자로부터 전해들은 서경식은 학생의 다수가 유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답변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는 그 ‘교과서적인 정답’의 실천이 실제로는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를, 인간이란 존재의 허약함과 어리석음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그 강사가 얘기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곧 스스로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제자가 얘기해 준 학생들의 반응은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이수 학생 서른한 명 가운데 열아홉 명이 “내가 당시 독일인이었다면 유대인과의 교우 관계를 끊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월가를 점령하라’에서 ‘99%의 저항’으로 그들은 차례로 일어나서 당당하게 그 이유를 밝혔는데, “그런 상황에서 굳이 교우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자신과 유대인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그때 교우 관계를 다시 맺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학생들에게 2차대전 당시 죽음에 몰린 유대인은 ‘타자’의 처지일 뿐이다. 나아가 효율과 능력, 유불리에 대한 기준이 판단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곤란에 처한 개인과의 관계의 단절을 ‘옳은 일’로 당당히 밝히는 ‘냉혹’이 강의실의 지배적인 ‘이론’이 된 것이다. 이를 서경식 선생은 ‘보통 존재들의 폭력성’이라고 진단한다. ‘교과서적인 정의’조차 혹시 자신에게 도래할지 모르는 피해를 의식해 포기, 혹은 보류하는 사회의 그 개인들의 방관이 차별과 폭력의 재생산을 방치한다는 것이다. 걸인은 어느 시대나 존재해왔던 ‘타자’의 극단화된 상징이다. 그러나 그 ‘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풍요한 오늘 날에 더욱 예리한 형태로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하루에도 최소한 한 명의 노인이 자살하고 있다. 사는 게 어려워 30명이 매일같이 목숨을 놓고 있다. “살아서 공장 돌아가자”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사회적 학살’이다. 하지만, 이른바 생계형 자살은 사회현상으로 치부되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것이 매년 이어져도 22명이라는 숫자로만 표상화되는 느낌이다. 강정문제는 고통에 대한 관심보다는 단지 해결이 필요한 ‘사안’으로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고, 정작 타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강정마을로 달려온 개인들은 ‘외부세력’이 되고 만다. 7미터의 테트라포트 시멘트더미 아래로 추락했던 문정현 신부는 “누가 밀쳤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여, 왜 그 곳에 경찰들과 내가 있어야 했는지가 문제인 것이지”라고 말한다. 국가인권위조차 추락사건을 조사한답시고, 상황론을 따지더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추락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강정의 현재다. 문신부는 퇴원 당일, 병실로 찾아온 해양경찰 관계자에게 "내가 떨어지길 천만 다행이야, 경찰이 추락했으면 어찌할 뻔했어?"라고 반문 한다. 문제의 근본을 볼 것을 다시 한 번 지적했던 것이다. 종교인다운 언행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 타자를 양산하는 구조를 알아차릴 때,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실은 모두가 타자이며 동시에 모두가 주체임을 일깨우는, 실로 오랜 세월을 고통의 현장에 섰던 노사제의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작년 미국 월가를 달궜던 시위대의 표어는 ‘점령하라!’였다. 이 시위는 단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월가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양극화를 넘어 1% 대 99%라는 부의 집중을 양산한 ‘구조’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들은 “높은 생활수준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다 좀 더 나은 생활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사상가 슬라보예 지젝은 이 시위의 연설에서 "지치고 피로한 노동자들과 사랑에 빠지라“면서도, ”월 스트리트 사람들과 그들의 태도를 비난하지 말자.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라 사람들을 부패하게 하는 시스템이다“라고 일갈했다. 문제는 ”왜 그들과 내가 그 곳에 있어야 했는지“라던 문신부의 이야기와 철저히 닮아 있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든지 ‘추락할 수 있는 그 곳’에 서 있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해고 노동자가 될 수 있고, 강정마을의 고통이 될 수 있고, 누구든지 타자가 될 수 있다. 거리의 걸인을 그냥 지나쳐야 하는 ‘합리적 의심’이 옳은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또한, 동시대의 강정과 월가를 통해 현대의 합리적 개인들의 의심은 시스템(구조)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젝의 연설은 이어진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 우리는 여기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날입니다.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지요. 저는 여러분이 지금의 나날을 ‘아, 우리는 젊었고 그때는 좋았지’ 이렇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본 메시지가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월가의 시위 이전, 한국은 이미 수많은 ‘촛불’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작고 약한 개인’들의 반란이었다. 그러나 삶과 사회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각자가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왜 거리에 촛불을 밝혔었는지. 여전히 거리의 걸인을 의심하며 지나치는지. 혹시 점령해야 할 것은 작고 약하기만한 변명이나 합리성을 가장한 의심 따위는 아닌지를 말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22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또 터졌다. 이번에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다. 탄생 때부터 이 정권의 도덕성에 어떠한 기대도 걸기는 어려웠지만, 이렇게 실정법은 물론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적인 가치까지 침해하는 이 정도 사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찰이 문제되었던 것은 이미 1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고, 그 내용은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충분히 알려졌으니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그 이후 정권의 대응이다. 증거인멸, 그리고 그 지시가 폭로되자 관련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 검찰을 동원한 사건의 축소․은폐, 이마저도 드러나자 이젠 민간인 사찰은 전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강변하고 나선다. 가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이런 일들이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서글픈 것은 청와대의 이런 정치적 전술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여론의 악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역공으로 보이는 청와대의 폭로 이후,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반감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여론 조사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러면 그렇지,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었구만,’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지. 힘없는 사람들이 조심해야지, 뭐.’ 이런 식의 반응이랄까. 총선은 이제 며칠 앞이고, 아무리 몇몇 언론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가지고 있었다는 이전 정권에서 작성된 80%의 문건은 정상적인 경찰의 감찰활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명을 해도 이런 인상을 다시 지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선 결과를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청와대의 전략은 멋지게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고양이 가면 쓴 시민들, 민간인 불법사찰 규탄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하지만, 선거의 결과와 현 정권의 불법행위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안이다. 물론 선거결과에 따라서 이 문제를 조사할 국회의 청문회가 열릴 수 있는지, 또 특검은 진행될 수 있는지, 나아가 설령 어떤 식의 조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얼마나 충실하게 될 것인지 하는 문제들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만 조사의 방법론일 뿐, 이와 같이 중요한 사안을 반드시 조사해야 하고 책임을 밝혀야 하며 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국회에서 하지 못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아니면 그 다음 국회에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감시는 권력의 한 속성이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내고 그의 생각과 행적을 밝혀내며, 나아가 혹 있을 수 있는 그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은 대단히 달콤한 유혹일 것이다. 이런 모든 정보를 통해 정치적 비판의사를 통제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시를 당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자 공포이다. 보통 누군가가 얼마 전에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을 때에도 뭔가 묘한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하물며 그 주체가 권력이라면 심정이 어떨까. 언제 어디서 불쑥 내 앞에 나타나, 혹은 내 뒤에서 갑자기 뒤통수라도 후려칠지 모르는 일이다. ‘당신, 언제 어디서 감히 어떤 분에 대해 이런 말을 했지’ 하면서 말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했다는 동향보고 사례를 보면 이런 일이 전혀 있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불법 사찰이 정치적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를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학생도 알 것같은 명백한 불법행위를 해 놓고도 이 정부는 ‘사죄’는 커녕 ‘사과’ 한 마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지난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큰 소리를 친다. 하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자신들도 ‘불법’사찰임을 알았다는 것 아닌가. 하기는 그랬으니 그렇게 대포폰까지 동원해서 증거를 인멸하고 관련자에 대한 입막음을 위해 현금과 직장까지 제공하려 했을 것이다. 원전에서 사고가 나도 담당자는 우선 사건을 은폐시키려 한다. 경찰이 초동 수사를 잘못해도 상급자에게 보고는 며칠이 지나 이루어진다. 아무리 현대가 ‘위험 사회’라지만, 이 정도면 가히 ‘위험 은폐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이렇게 위험과 잘못을 은폐하고 슬쩍 넘어가는 것이 자기 몸보신에 좋다는 것은 그 동안의 권력자들에게서 배운 것일까. 여당의 한 비대위원은 “이 사안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사과 정도로 끝날 수 있겠지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이 비대위원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것이 다만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몰랐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과 ‘동향’인 몇몇 탐관들이 조직의 기강도 무시하고 상급 수석실을 넘어 누군가에게 ‘직보’를 해댔으니 말이다. 만에 하나 알고 있었다면,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을 감시하는, 나아가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00 | 추천: 0
조광제/ 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그녀는 도대체 ‘어떤 비상한 일’에 대해 대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비상대책위원장인가? 국가와 국민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면 한나라당(=새누리당)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 혹은 아니면 그녀 스스로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인가? 적어도 국가와 국민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불법 민간사찰이 현 정권의 강력한 비선조직의 네트워크에 의해 대대적으로 저질러진 것임이 폭로되면서 사회 정치적인 초미의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촛불정국을 기점으로 사찰과 감시라고 하는 파시즘적인 정치 수단을 악용하는 것이 암암리에 계속 문제가 되어 왔는데, 결국 기정사실로 정식화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절체절명의 국가적인 사태를 적법/불법의 잣대도 없이 이른바 ‘물타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신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하고 있다. 이것이 그녀가 국가와 국민이 비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이명박 정권이 연이은 실정으로 국민들로부터 크게 외면을 받자, 정권을 도와 함께 영달을 누렸던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이라 이름을 바꾸고서는 정권을 순식간에, 사실은 겉으로만 배신했다. 대통령 이명박을 아예 희생양으로 삼아 모든 죄를 뒤집어 씌어 허허벌판의 사막으로 내쫓는 일종의 눈요기 제사를 지낸 셈이다. 실질적으로 이는 그녀의 추종자들 혹은 적어도 그녀 자신만큼은 이명박 정권의 대대적인 실정에 대해 원죄가 없음을 가상적으로 강변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범한 실정의 대강(大綱)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야만 적어도 99% 대다수의 국민들이 최대한 현실의 삶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는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99%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권을 강제적으로 혹은 마지못해서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인가에 골몰했다는 것이다. 언론을 장악하여 선전을 해 대면 될 것 아닌가, 4대강 사업처럼 대대적인 전시 행정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과의 군사적인 동맹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동맹마저 더욱 공고히 하면 될 것 아닌가, 정신적이거나 사상적인 이념 영역의 불필요한 확대를 원천봉쇄하면 될 것 아닌가, 세계적인 한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을 최대한 지원함으로써 금융팽창이든 뭐든 국내에 자본이 넘쳐나도록 하면 될 것 아닌가, 가능한 한 세계 수뇌부들이 모이는 회의를 많이 유치해서 겉으로 보기에 정권의 위신을 높이면 될 것 아닌가, 기타 등등. 말하자면, 기본 관점에서부터 전제 오류를 범한 것이다. 'MB정권보다도 더 후퇴할 위기 처한 경제민주화. 위장된 복지 공약과 이미지의 정치를 벗겨내야'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명박 정권이 이렇게 기본 관점에서부터 전제 오류를 범하면서도 정치권력의 지형에서 자신감을 넘어서서 철저히 오만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 여당이 그들의 정권을 튼튼하게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사안들이 거대 여당의 일방적인 독주에 의해 형식적인 법 절차를 거쳐 마무리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정착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거대 여당의 중심에 바로 박근혜 위원장이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명박 정권이 비상한 상황을 돌파하여 원하는 바대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할 때마다 그 지지 기반의 중심에 바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있었던 것이다. 99% 대다수의 국민들이 최대한 현실의 삶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국가 통치에서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이념이다. 현실과 이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이념을 함부로 폄하하는 인물은 통치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이념은 공염불에 불과하지만, 이념이 없는 현실 위주의 정치는 권력일변도일 수밖에 없고, 임기응변적일 수밖에 없고, 집단이기주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념은 곧 현실의 삶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대다수 국민들이 삶의 이념을 잃고서 방황한다면, 그 국민들에게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가능하면 서로가 평등하게 소통을 하면서 사회 정치적인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를 일러주어야 한다. 왜 가능하면 개인적인 삶이나 국가적인 삶이 최대한 자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일러주어야 한다. 왜 가능하면 재벌 대기업들의 이윤일변도의 행태를 국가적으로 강력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일러주어야 한다. 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 않는지를 원리적으로 설명하고 그 근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파악하여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어떤 정치적인 불이익이 있더라도 대국민적인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의 각 영역의 지배층들이 설사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형성한다고 할지라도, 그 지배층들의 본능적인 이기심들을 법적 ‧ 제도적으로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이념의 문제고 이념의 현실화의 문제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명함에서 ‘비상대책’에 과연 이러한 이념과 이념의 현실화에 대한 진정성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정치 및 통치의 이러한 이념에 대한 진정성에 있어서 그녀는 대통령 이명박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는가? 비단 ‘이념을 좇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라고 운운하는 것을 증거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서 이러한 진정성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치 민주화에 이은 경제 민주화, 경제 민주화에 의거한 사회적 삶의 민주화, 사회적 삶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적 삶의 자주화 등이 그녀에게는 모두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허무는 이른바 이념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14 | 추천: 0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근심 마오. 인민의 조국 소비에트 앞에 나는 아무 죄진 일이 없소.”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가 1937년 비밀경찰에 끌려갈 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개척자로 활약했던 조명희가 소련으로 망명한 것은 1928년, 그러니까 「낙동강」을 발표하고 일 년여 후다. 어렸을 적 해방된 북녘의 교과서에서 처음 「낙동강」을 배웠다는 소설가 최인훈은 장편소설 『화두』에서 조명희와 「낙동강」을 계속 씨줄 삼아 쓴다. 중학 시절 독후감 과제였던 「낙동강」, 문학에의 첫 걸음이었던 조명희, 스탈린문학상 수상자였던 그를 둘러싸고 북녘에서 떠돌던 소문 등― 그러나 러시아로까지 최인훈을 끌고 간 것은 1990년대 초에야 전해졌던 조명희의 최후에 대한 기록이다. 1940년대 초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던 조명희가 실은 1938년 5월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알려졌기 때문이다. 조명희가 남긴 “근심 마오.”를 전하면서 최인훈은 익숙한 기시감 또한 전달한다. 조명희는 망명 후 “인민이 자유롭게 호흡하는 소련에 들어온 감개무량한 기쁨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소련작가동맹의 맹원으로 원동작가동맹위원회 조선문학부를 책임지고 있었고, 체포될 당시 조선인 학교인 육성농민청년학교 조선어문학 담당 교사로 있었다. 식민지 조국을 벗어나 자유와 보람의 나날을 살던 조명희에게 소련은 굳건한 신뢰의 대상이었을 것이며, 그것은 일반적인 정조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명희가 진심으로 “근심 마오.”라며 아내를 위로했듯 처형당하는 그 순간까지 소비에트의 이상을 믿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터이다. 최인훈은 조명희가 처형당할 무렵 있었던 ‘모스크바 재판’을 떠올리면서 소리 높여 유죄를 인정했던 피고들과 재판을 지지했던 지식인들을 상기한다. 전(前) 혁명 전사들이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제 죄를 고백했고, 고리끼와 솔로호프, 로맹 롤랑과 루이 아라공 같은 국내외 작가들이 고발과 단죄에 앞장섰었다는 사실을. 단편집<낙동강>의 작가 조명희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는 모스크바 재판이 조작된 것이었다고 폭로한다. 스탈린을 암살하고 소련 체제를 전복하려 기도했다고 고발당했던 피고들 대부분은 고문을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피고들이 마치 사형을 청원하는 듯했던 장면은 조작만으론 해명되지 않는다. 그들, 재판의 연루자들은 자기 자신의 희생을 목도하면서도 소비에트의 정당성을 믿었다. 그것이 최인훈의 해석이다. 국외자들로선 말할 나위도 없다. “설사 피고들에게 억울한 점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밝히는 것은, 더 큰 대의, 역사 자신의 큰 줄기의 이익에 대해 해가 될 염려가 있었다.” 소비에트는 악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는 나라였으므로. 악이 너무나 명백하고 위력적이어서, 그에 맞서는 축을 정당화하고도 남았으므로. 조명희의 죽음이나 모스크바 재판은 멀리는 제 1차 대전 이후, 가까이는 제 2차 대전 이후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진영 논리’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적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이편의 도덕성이 절로 보장되던 시절을. 옳은 편을 지켜야 한다는 동기가 다급하여 ‘정의’나 ‘정당성’ 같은 말을 무지나 한가의 소산으로 치부케 했던 시대를. 소련과 미국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탈린주의와 매카시즘으로 경쟁했던 체제의 중심으로 보는 건, 너무 많은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겠지만, 차라리 그런 단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인권’을 앞세운 제국의 개입은 뿌리부터 의심스럽다. 같은 제국이 남미의 독재 정권을 후원하고 민중 봉기를 짓밟았으므로. ‘인권’을 내세워 북조선 체제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미심쩍긴 마찬가지다. 그 목소리가 과연 동등하게 내부의 인권을 향하는지. 보편적 주제를 다룰 때조차 속내를 헤아려야 하는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보편 자체를, 그 용법을 의심했던 습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절은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자주 떠오르곤 한다. 타도해야 할 적이 있고, 상대의 불의가 내 정당성을 보장하며, 그 밖의 문제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론 ‘숙청’의 고리를 끊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조명희는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소비에트를 신뢰했고, 어쩌면 처형장에서조차 제 목숨보다 소비에트의 빛나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더 큰 대의, 역사 자신의 큰 줄기의 이익”이 어쩔 수 없이 억울한 희생도 수반하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그런 숭고가 다시 빛나기 위해서라도 ‘인류의’, ‘보편적인’ 정의를 쌓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2017-07-21 | hrights | 조회: 17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