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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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내가 믿사오며’... 공포와 전율 한 때 열렬한 종교적 신앙 속에서 ‘내가 믿사오며’라는 고백을 할 때의 공포와 전율을 기억한다. 믿는다는 것을 입으로 고백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면, 힘들게 입을 열어 고백하고 그 말을 따라 살 때 닥쳐올지 모르는 고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살아가는 데 어떠한 문제도 느끼지 못한다면 별문제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하는 말과 고백에 걸맞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 마디 말을 뱉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고백을 따르고 지키는 건 별도로 하고 입술만 딸싹거려 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렵느냐고 한다면 종교적 고백의 진지함을 모르는 소치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아직도 계속되어야 하나 최근 국기법을 제정한 데 이어 그 시행령을 만들면서 그 동안 이어져 온 ‘국기에 대한 맹세’문안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맹세문이 가진 엄청난 의미에 대해서는 박정희 시대의 충성맹세문이라느니,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것이라느니, 일제의 황국신민의 서사를 연상시키느니 등등이 비판이 있어 왔다. 필자도 몇 차례 이 국기에 대한 맹세가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적한 바 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 국민 모두가 추구하는 바인가 우선 이 맹세문의 문제는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궁극의 목표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라는 데 있다. 조국과 민족의 명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지만, 이 막연한 목표를 위하여 과연 어느 누구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맹세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직업 자체가 몸과 마음을 바쳐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추구하는 데 상당히 관련이 있는 군인이나 공무원의 경우에 해당되는 경우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요구되는 이 맹세는 국민 모두의 삶의 궁극적 가치이길 요구하고 있다. 수많은 가치 가운데 특정한, 아니 그 내용조차 불명확한 이 가치를 위하여 모든 국민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요구할 수 있는가? 진심으로 그렇게 맹세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도 나름의 보람과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 각기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게 권리인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특정한 가치가 나의 궁극의 가치이길 요구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헌법에 어긋난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무궁한 영광도 이와 조화될 수 없는 소수자에게는 결코 영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종교적 고백을 요구하는데... 둘째, 몸과 마음을 바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기독교의 경우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 것이다. 말 그대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럴 각오 없이는 할 수 없는 고백이어야 마땅하다.   인권·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없애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러나 이러한 맹세는 우리에게 진심으로 그럴 의사도 없으면서 입술만 움직여 어마어마한 고백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거의 종교적 차원의 고백이라고 봐도 무방할 내용인데... 더구나 하느님을 믿으면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맹세한다면 조국과 민족의 영광이 하느님의 뜻 자체란 말인가?   거짓말을 ‘짜연스럽게’... 셋째, 이렇게 입술로 하는 말 따로, 마음 속의 본 뜻 따로일 경우, 이러한 맹세나 고백을 요구하고 또 자연스럽게 이러한 고백이 이뤄질 수 있다면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일상화시킨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인들 자기 자식에게, 또 학생에게, 친구에게 거짓말을 잘했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력한 요구에 저항할 수 없어 입술로만 하는 고백일수록 더욱 자연스러운 거짓말을 요구하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몸과 마음을 바쳐 추구하는 대상이 분명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 아니고 또 이것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맹세문에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욱 문제라고 생각된다. 거짓말에 둔감해졌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맹세문 수정안의 등장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논란을 빚자 지난 5월 31일 행정자치부가 맹세문의 수정안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세 가지 안이 제시되었다. 제1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제2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사랑과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제3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세 가지 안 모두 현재의 맹세문보다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안 역시 지금의 맹세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권리행사는 나쁜가? 첫째, 책임과 의무의 이행이 강하게 부각된다는 것이다. 수정안은 권리의 행사가 부정적으로 인식된 전제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거나,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공동체의 삶에서 권리의 행사는 결코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적극적인 권리의 행사를 통하여 공동체가 발전하고 인간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 온 점을 애써 부인하려 하는 것은 아닐지... 과도한 권리의 행사나 남용이 경계되어야 하는 점은 옳지만, 권리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제되어 만들어진 수정안은 아닌지 의문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대한민국의 발전, 무궁한 영광, 번영은 무엇인가? 둘째, 여전히 대한민국의 발전, 모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조국의 통일과 번영이 최고는 아니지만 국가생활에서의 매우 높은 가치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사실 매우 공허하고 그 내용에 대해 쉽게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충성을 다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대상이 대한민국의 발전과 영광이거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라지만, 그 내용은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파병을 두고 이게 대한민국 국력신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입장도 있지만 오히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파병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있지 않는가? 애매모호하고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기도 어려운 목표를 두고 언제까지 국민에게 입술만 움직이는 맹세를 요구할 것인가? 사랑, 자유, 평등, 정의, 진실의 다짐... 너무 심하지 않은가? 셋째, 수정안에 등장하는 사랑, 자유, 평등, 정의, 진실이라는 단어의 뜻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삶에서 매우 숭고한 가치를 가지는 이들 개념을 사용하여 조국과 민족에 대한 맹세를 요구하는 것은 이 맹세문을 통하여 국가가 인간의 내면에 깊이 관여하고자 하는 것인가? 순박한 사람은 그런 마음으로 조국과 민족을 대할 것이고, 약은 사람은 맹세를 하면서 숭고한 의미를 가지는 ‘사랑, 자유, 평등, 정의, 진실’이라는 단어의 뜻을 마음 속에서 왜곡하게 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매번 맹세문을 읊을 때마다 거짓말임을 의식하면서 하는 수밖에... 올바른 국가관의 형성 국가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올바른 국가관은 필요하다. 함께 국가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삶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민족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은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구성원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자 와 권리가 강조되고 국가는 이러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아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보다 더욱 절실한 과제이다. 남용되지 않는 권리의 행사야말로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힘이며 진정으로 봉사하고 싶은 공동체를 만드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마음의 소리는 강제될 수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이제 폐지되어야 한다 진실한 마음의 고백은 강제될 것이 아니다. 진지한 양심의 소리는 스스로 울려나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의 소리가 강제되는 순간, 그 마음은 이제 왜곡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국기와 국가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어떤 수정안도 맹세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이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폐지하여야 한다. 국민의 70%가 폐지에 반대한다는 조사도 있다지만, 이런 문제는 합의하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57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상상력이 막혀버린 사회에 살다 -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시우 작가의 석방을 기원하며...   국가보안법은 1948. 12. 1. 제정된 법률이다. 헌법이 제정된 때가 1948. 7. 17. 이고, 구형법이 제정된 때가 1953. 9. 18, 민법이 제정된 때가 1958. 2. 22. 이니 국가보안법은 형법이나 민법과 같은 기본 법률보다 훨씬 오랫동안 대한민국과 함께 했고 조만간 환갑을 맞게 되는 장수법률이다. 참여정부의 출범 초기에 나는 이 법률이 곧 폐지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이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한 이후에는 드디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해 연말 국가보안법 폐지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도 그저 허울만 남아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남과 북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는 세상에서 50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법으로 인해 더 이상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47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이시우 작가의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이상실” 그 자체였다. 문제된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비무장지대와 미군기지, 한미연합훈련을 담은 사진들인데 아무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그것이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미군기지와 비무장지대를 찍은 사진이 왜 선전. 선동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그러한 사진이 북측의 선전. 선동에 사용되었다면, 이용당한 우리의 현실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나라의 영토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영토에 일본이나 중국의 군대가 주둔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지난 달 평양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김책 공업종합대학 도서실이다. 서가의 앞쪽에는 두툼한 표지로 된 김일성, 김정일 저작선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서가의 뒤쪽으로 들어가보니 2-30쪽의 팜플렛만도 못한 조잡한 책들만 꽂혀 있었다.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진작가 이시우씨. 사진 출처 - 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   모두 주체사상이나 맑스레닌주의와 관련된 책들. 혹시 다른 종류의 책이 있는가 살펴보니 과학 기술과 관련된 책 이외에 인문학이나 예술과 관련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호머, 일리아드, 오딧세이 등 몇 권의 서양고전이 전부였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이곳은 상상력이 막혀있는 곳이다”라고 적었다.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진 사회라 하더라도, 하나의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조차 없도록 정보와 지식을 통제한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곳은 결코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북한에서 주체사상 이외의 다른 책을 읽지 못하도록 정보와 지식을 통제하는 것만큼이나. 남한에서 미군기지의 문제를 다룬 사진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그 사진작가를 구속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란 타인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다름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대화와 토론을 지향하는 이념인데, 타인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대뜸 구속부터 해버리다니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보안법 남용 실태 보고회 옆에 전시된 이시우 씨의 사진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이시우 작가의 구속은 국가권력이 자의적인 잣대로 개인의 사상과 창작의 자유를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북을 잇는 철도길이 열리고 대통령 후보들의 방북이 이어지는 세상에,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법률의 잣대를 들이대 사진작가를 구속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훌륭한 성과가 있었다”는 코미디 같은 자화자찬은 집어치우고, 남은 임기동안만이라도 국가보안법이 악용되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사법부는 더 늦기 전에 이시우 작가를 석방하여야 할 것이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48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춘천이 삶터가 아닌 사람들은 대개 춘천을 첫사랑 추억을 만든 곳으로 기억하곤 한다. 춘천은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와 순임이 품었던 풋풋한 사랑빛깔 같은 색조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사실 춘천은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 춘천 근교에서 군 생활을 한 이에게는 다시 돌아보기 싫은 동네일테고, 의암호 주변을 거닐었던 아련한 기억이 있는 이에게 춘천은 문득 그리운 고장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춘천이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다가가는 것은 호수와 산, 그리고 왠지 편안한 시가지등이 주는 아늑함이다. 춘천에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기는 1983년 이라고 한다. 대한주택공사가 처음 전파한 아파트는 이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으로 들어오는 입구부터 긴말뚝을 거꾸로 박아놓은 것처럼 촘촘히 들어섰고 그 주변은 밤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그래서 여느 중소도시들처럼 춘천의 구도심도 텅 비어버렸다. 봉의산 자락을 타고 오르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주거지들도 몇 군데를 빼고 낡고 열악해 이미 오래전부터 개발요구가 있었다. 춘천시가 얼마 전 춘천 구도심지 70여만평에 ‘뉴타운’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에서 출발하고 유력한 대선후보인 이명박씨가 서울시장 재직시 밀어붙여 성공작으로 회자되는 ‘뉴타운’사업이 드디어 춘천에 까지 상륙한 것이다. 청계천, 대중교통체계 변경, 뉴타운 조성 - 이 세가지는 이명박 성공신화를 일군 동력으로 그를 ‘능력있는’ CEO형 대권주자로 격상시킨 밑천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를 경영하는 단체장이 이명박 신화를 따라잡으려는 것을 흉보기에는 단체장들이 여유롭지 못하다. 정치인이자 행정가인 단체장이 주민에게 편익을 제공하면서 정치적 성공도 보장된다면 그 길을 마다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이명박씨가 서울시장 재직시 밀어붙여 성공작으로 회자되는 ‘뉴타운’사업이 드디어 춘천에 까지 상륙하였다. 사진은 지난 2005년 3차 뉴타운 예정지인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 붙은 플래카드.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나 이명박씨의 한계로 지적되는 것이 불도저형 사업 스타일이라면 단체장의 실력이 진가를 발휘 하는 것은 밀어붙이기 보다는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어떤가 이다. 그리고 묻지마 개발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어떤 개발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씨의 뉴타운 사업을 놓고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점은 사회통합형 개발과 정비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강남북 균형발전을 내걸고 진행된 뉴타운 사업이 오히려 원주민 복귀율이 낮으며 ‘한양주택’ 같이 경관가치가 높은 지역도 밀어내고 아파트를 올렸다는 지적이 많다. 근래에는 뉴타운 사업이 수도권 집값을 흔드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시민이 참가하는 마을 만들기 춘천의 ‘뉴타운’이 이명박의 길로 갈지 다른 길로 갈지는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서울의 뉴타운 사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점은 많다. 먼저, 재정비 촉진지역의 주민들이 개발 뒤 재산상의 피해를 입거나 주거권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주민들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낳는다면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주민의 의사를 묻고 개발형태나 공간구조를 결정하는 과정에 주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춘천은 서울과는 다른 도시다. 인구학적인 구성이 다르고 도시발전 형태도 다르며 도시경쟁력을 형성하는 기본 방향이 다르다. 춘천의 공간적 특성을 보면 도심지에 용적율 높은 아파트를 올리는 것은 춘천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파괴하는 미련한 짓이다. 주거환경개선에 대한 주민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춘천 구도심지가 가지고 있는 장소의 강점을 살리고 경관의 우수성을 높일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역을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주민들의 아이디어와 요구가 충실히 반영되어야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이 참가하는 마을 만들기를 춘천시가 적극 지원 하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얼마 전 정부는 수도권에 ‘분당급 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밖에도 이미 수도권은 약 20여개의 신도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른바 ‘명품도시’로 불리는 고급주거단지도 몇 군데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춘천은 2009년이면 수도권과 1시간거리로 좁혀진다. 이처럼 접근성이 개선되면 춘천은 어떤 방식으로든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수도권 부동산시장의 수요와 공급, 소비자의 욕구, 정부정책의 변화 등을 면밀히 분석해서 대응해야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 계획과 상충되지 않게 진행되어야 한다. 춘천시는 이미 2005년 의암호 수변지역과 중도를 세계적인 친수공간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춘천의 구도심지는 이 지역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뉴타운 계획이 기존 계획과 조화롭게 진행되어야 공간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춘천의 도시빛깔은 오랜 기간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자연환경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진 역사적인 산물이다. 그 빛깔을 살리고 키워가는 춘천만의 ‘뉴타운’을 기대해 본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50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5월 5일), 어버이날(5월 8일), 스승의 날(5월 15일), 성년의 날(5월 21일)과 둘이 하나가 된다는 부부의 날(5월 21일) 등이 5월에 몰려 있어서 나온 말인 듯 싶다. 이상의 여러 가지 기념일 중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해 마다 달라지는 ‘스승의 날’에 대한 기억들이 “아이 둘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자식들의 스승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하는 생각”, “나를 가르치고 지도해 주신 스승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스승의 날에 대한 생각” 등이 서로 교차되어 떠오른다. 우선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선생님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와 관련해서는 특별하게 얘기할 만한 내용이 없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다만,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생님께 감사의 뜻을 표하려는 것이 혹시라도 내 아이만 잘 봐달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서 주저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러나 조그마한 기쁨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은 1992년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물질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아내의 주선으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스승의 날을 전후해서 5년 가까이 스승의 날 일일교사를 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을 1시간 정도 가르치면서 5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배움을 주시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노고가 이런 것이구나 하며, 선생님들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점이다. 나를 가르치고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을 모시는 제자로서의 도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등에서 나를 가르치시고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들 증에서 기억에 떠오르는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시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중학교 때 수학을 가르쳐 주시던 교장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작고하실 때까지 늘 연락을 드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교장 생님과 대학교의 은사 선생님들께만 연락을 드리는 반푼이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제자로서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 온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들이 나에게 베풀어 주는 기쁨은 부끄럽게도 말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계명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마련하여 스승들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었던 기억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그러면서 내가 내 스승들도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서 제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몸둘 바를 모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제자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불러주는 “스승의 은혜”란 노래를 듣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빨리 행사가 끝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내 스승들을 잘 모시고, 제자들을 잘 가르쳐야 되겠구나 다짐하게 된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지난 2005년부터 '스승의 날'을 5월 15일이 아닌 2월말로 옮기자는 운동을 벌였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가끔 언론보도를 통해 학생 또는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이라든가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으로 사제지간(師弟之間)이 각박해지는 현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스승의 날이 되면 학생과 학부모는 촌지 또는 선물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오고, 묵묵히 사랑으로 교단을 지켜온 대다수의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가르친 ‘대가(代價)를 바란다’는 오해를 받는 날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스승의 날이 갈수록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려는 날에서 촌지를 주고받는 날로 변질되거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행사를 위한 날로 변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심지어는 촌지 수수가 두려워 휴교까지 감행하는 학교가 생길 정도니 더 말할 나위 없다. 1964년 5월 16일 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가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에 감사하며, 애정과 깊은 신뢰로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올바른 인간관계가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스승의 날이 길이길이 계승발전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 제자로서 스승님을 잘 모실 것을 다짐해 본다. 아울러 학생들이 가진 특성을 적극 계발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그들 모두가 개성 있는 인격체로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조그마한 밀알이 되기를 약속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8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시민권 획득과 입국에 관한 법(the Citizenship and Entry into Israel Law)’이 2003년 7월 31일에 제정되어 2007년 현재 실행되고 있다.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에 기초한 이 법은 점령지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10년 동안 유지해온 가족 관계조차도 파괴한다. 이 법은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과 가자 지역 출신의 팔레스타인인들과 결혼한 아랍계 이스라엘인 가족이 이스라엘에서 함께 사는 것을 금지하며, 점령지 출신의 배우자뿐만 아니라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도 시민권과 영주권을 주지 않는다. 결국 이 법은 아랍계 이스라엘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며, 수천 가족들을 체포, 추방, 별거 등의 위협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 유엔 인종 차별 철폐 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는 이 법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 조약을 위반하였다고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스라엘 의회 아랍 정당인 발라드 당(Balad Party) 소속 의원 자말 자할카는 이 법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신화가 폭로되었다. 이 법은 가장 야만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법이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베테누(Israel Beytenu, 이스라엘 우리 고향)당의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당수는 2006년 의회 선거 직전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 국가’ 특성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모르도바 이민자 출신인 리베르만은 구소련 출신 이민자들 사이에서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적의에 찬 그의 주장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호소력을 발휘하였다. 이 당은 2006년 3월 의회 선거에서 2003년 의석보다 8석이 증가하여 11석을 획득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정당으로 등장하였다. 전임 총리였으며 현재 리쿠드(Likud)당수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2003년 12월 “아랍인들이 증가해서 35-40%를 차지한다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유대 국가도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유대계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아랍 인구 위협(인구 폭탄)’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을 ‘유대국가의 특성과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잠재적인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아랍계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야만적인 인종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유대계 이스라엘 정치인들과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라크 내 시리아 접경도시의 난민촌에서 지쳐 보이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 이들은 50도에 가까운 살인적 열파와 식수난, 의료지원 부족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스라엘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 인구는 2020년에 이스라엘 전체 주민의 21-24% 정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베두인(10%)을 포함한 무슬림 82%, 드루즈 9%, 기독교인 9% 등으로 구성된다. 베두인과 드루즈는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는 등 이들의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충성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the Israeli Democracy Institute)가 2006년 10월에 수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75%는 “이스라엘 헌법이 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한 유대국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박탈당할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창설된다하더라도 이스라엘 시민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단순한 아랍계 이스라엘인 증가 숫자에 토대를 둔 네타냐후의 ‘아랍 인구 위협’ 주장은 과장되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007년 현재 약 142만 명으로 이스라엘 주민의 20%를 구성한다. 이들은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권자들과 아랍계 이스라엘 영주권자들로 구성된다. 1948년에 이스라엘 영역이 된 지역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1967년 점령지인 동예루살렘에 거주해온 아랍인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각각 이스라엘 시민권과 영주권 박탈 위협의 공포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주권을 박탈당한다.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동예루살렘 거주 이스라엘 영주권자들의 투표 참가율이 매우 저조했다. 그 주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영주권자들이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 참가했을 경우, 영주권이 박탈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500만 명 정도의 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이주민들이거나 그들의 후손이다. 실제로 19세기 후반에 팔레스타인 거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3%를 넘지 않았다. 유대 이주민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에 이주민들을 위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후 이스라엘 국가는 지속적으로 최대한 이주민들을 끌어들이고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토지를 강탈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2007년 현재 주요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점령지를 최대한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시키고, 이스라엘 영토내의 아랍계 인구를 최소화함으로써 ‘유대 국가’와 ‘민주주의’를 둘 다 성취해야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인종차별에 토대를 둔 ‘유대 국가’ 이념과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민주주의’ 정치 이념은 현실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이광조/ CBS PD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보면서 두개의 이미지가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재벌그룹 회장이 폭행 현장에 쓰고 있었다는 별 두개 달린 모자와 금장식이 달린 권총이 그것이다(회장님으로부터 다짜고짜 뺨을 얻어맞았다고 증언하고 있는 업소 사장은 ‘회장님이 금장식이 달린 권총으로 자신을 위협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에서는 총기 소지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군대에 가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대장이니 중장, 소장, 준장이라고 하는 계급에 별이 각각 몇 개나 달렸는지, 중장이 높은 건지 소장이 높은 건지,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군대에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별의 개수와 서열 정도는 훤히 꿰고 있을 것이다. 회장님이 머리에 쓰고 있었다는 별 두개는 소장에 해당된다. 대장이 별 네 개, 중장이 별 세 개, 그 다음이 소장이다. 이왕 ‘가라’로 쓰고 다니려면 별 네 개짜리 대장 모자를 쓰지, 왜 별 두개짜리 소장 모자를 썼을까? 요즘 군대 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경우에는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60년대와 70년대, 아니 80년대와 90년대에 군대에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들은 회장님이 소장 모자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슷한 연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정희 소장과 전두환 소장. 군 계급 상으로는 별 네 개인 대장이 최고지만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들은 모두 별 두개짜리 소장이었다. 군대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예비역들은 여기에 이런 해설을 붙인다. ‘사단장은 휘하에 자신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군에서는 소장이 실권자다.’ 회장님은 왜 소장 모자를 썼을까. 두 전직 대통령을 흠모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사단장 급으로 생각해서 그랬을까. 그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가죽점퍼에 소장 모자, 그리고 손에 든 권총.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요즘은 사정이 다르겠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군 사단장은 군대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에서 엄청난 권세를 누리던 실력자였다. 사단이라는 독립된 왕국에서는 ‘제왕’ 비슷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3, 40대 남성들의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가 나올라치면 ‘제왕’들의 권세에 관한 갖가지 증언이 줄을 잇는다. 똑똑한 사병을 자식의 가정교사로 쓰는가하면 부인에게도 병사를 비서로 붙이고 갖가지 개인적인 용무에 병사들을 종 부리듯 부려먹었다는 고발부터 각종 군 장비를 사적으로 전용했다는 얘기까지. 누가 그런 일로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군 고위 장교들의 이 같은 행태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했다.   보복 폭행 사건에 연루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 출처 - 한겨레21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복종’의 논리 술자리에서 군대생활을 회고하며 때로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던 별 볼일 없는 사병 출신들은 이런 불의한 상식과 현실에 순응해야만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군대에 대한 비판은 오랫동안 술자리의 ‘뒷담화’에서만 허용되던 ‘레퍼토리’였다. 그렇게라도 배설하지 않으면 어떻게 제 정신으로 이 땅에서 살 수 있었겠는가. 오랫동안 이 땅의 남성들은 얼차례와 군사정권의 치세를 통해 복종의 미덕을 몸으로 익혔다. 더럽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그런데.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하고 항거에 대한 응징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가 명령과 복종, 폭력이라는 단순한 원리에 의해 작동되던 시기에 ‘복종’은 생존과 밥벌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을 것이다. 가진 사람들이 자식 군대 보내기 싫어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대한민국 군대도 우리사회도 많이 변했다. 군사 쿠데타를 걱정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했던 북한의 위협도 요즘엔 통 먹히질 않으니 말이다. 군 복무 기간도 많이 줄었고 군 출신들이 떵떵거린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는 2007년, 불과 20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어떨 땐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대통령을 인격적으로 모독해도 아무 탈이 없는 세상 아닌가.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건 아닌 듯 하다. 상명하복과 저항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 그리고 폭력. 군사독재 시절, 군대는 물론 우리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이 힘의 논리가 최근 재벌그룹 회장의 한밤 활극을 통해 불쾌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제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거대 기업과 회장님들이 혹시 과거의 사단과 사단장 같은 존재가 돼 버린 건 아닌지. 북한의 남침위협이 허물어진 자리에 무한경쟁의 논리가 들어서고 국가경제를 위해 회장님들이 회사의 자원을 사적으로 전용하거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복종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혹시 회장님에게 조인트를 까이는 중역들은 안 계신지. 갖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의 이런 생각들이 시대착오적인 망상이기를.
2017-06-19 | hrights | 조회: 50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장애에 대한 장애물 - 사회의 가장 약한 자에게도 편리한 것이 모든 이들에게도 편한 법 장애인들에게는 세상살이가 편치 않다. 신체적 조건에서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사회제도와 시설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경우에도 상대방이 일단은 능력을 의심하고 함께 지내면서 겪어야 할 부담을 걱정하여 배제하기 일쑤이다. 그래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장애인들의 오랜 싸움의 결과 점차 삶의 환경은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편견과 배제의 논리와 현실이 존재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법제를 정비하여 장애 유무에 의하여 불합리한 차별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장애인에 대한 고용과 사회진출을 장려하는 정책도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성할 것은 같은 돈을 지출하면서도 지금보다 환경을 더욱 낫게 할 가능성은 없는가이다. 필자가 경험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진 1 전북대 대형 강의실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첫째는 전북대 대형 강의실의 모습(사진 1)이다. 몇 십억의 예산이 들어간 건물을 지으면서 엘리베이터나 여러 가지 편의시설을 둔 점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학생에게 가장 중요할 시설인 강의실의 맨 뒷좌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의실의 통로가 모두 계단이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뒷자리에마저 앉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학생이 필자의 강의 중에 맨 뒤에 앉아 듣길래 시설을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중간고사를 보던 날 이 학생은 늦게까지 답안을 작성하고 나가려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어 맨 뒷자리의 계단 하나를 넘지 못하고 휠체어가 뒤로 후퇴하려는 것이었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런 시설이 만들어진 것은 예산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시설을 누가 사용하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또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인권상황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도로에 설치된 장애인 유도블럭이다. 요즘 도로 곳곳에 이런 블록이 깔려 있다. 실제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수와 상관없이 이런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은 장애인정책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애인 유도블록이 무슨 의미인지를 읽지 못하고 그 위에 자동차 진입금지 말뚝을 박아 놓은 곳이 적지 않다(사진 2, 3). 이걸 설치한 사람이 얼마나 무감각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약간 비켜서 말뚝을 세운 것에 위로를 받아야 할지......) 사진 4에서 보듯이 장애인을 위한다고 이동 턱을 없앤 것은 좋은데 그 길목에 말뚝이라니......   사진 2(위), 사진 3(아래) 장애인 유도블럭 옆에 자동차 진입금지 말뚝을 박아 놓은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사진 4 이동을 방해하는 턱 대신에 말뚝이 박혀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셋째, 지하도 문제이다. 지하도는 보행에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다니기가 쉽지 않은 길이다. 지상으로는 차들이 질주하고 사람은 지하의 어두운 길을 걸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마땅치 않지만, 보행마저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지하도만 설치한 곳도 무척 많은 것이 현실이다(사진 5). 과연 지상으로 보행통로를 만든다고 얼마나 교통이 혼잡해질까? 보행용 지하도보다는 지하차량통로를 만드는 것을 먼저 고려하지 못하는가? 그게 과연 비용 때문 만일까? 서울 거리에 몇 년 사이에 지하도를 두고도 보행자 횡단보도가 늘어난 것을 보면 예산문제라기보다는 정책방향의 문제라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진 5 지하도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런 사례는 심심찮게 겪는 문제이다. 필자는 위 사진의 모습을 몇 년 전에 보았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기억을 되살려 그 장소에 갔는데 전혀 변함이 없이 그대로였다. 일단 처음에 시설이 설치되면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장애인들에게 편한 것은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도 편한 법이다. 강의실에서 적어도 한 통로라도 계단을 없애고, 길 가운데 박혀 있는 말뚝을 뽑으면 누구에게나 걷고 이동하기 편한 길이 될 것이다. 차량을 막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습에서 인권이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는 민감하게 느끼고 그 구제를 위해서 어떠한 방안이 택하여져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무원이기에 공무원들의 인권의식 또는 인권감수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공무원마다 그러한 감수성과 의식의 차이가 있으므로 최대한의 기준을 업무 매뉴얼로 만들어 모든 공무원이 업무를 수행할 때 따르도록 한다면 상당 부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돈을 들여도 엄청나게 좋은 건물을 지어 다른 학교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준공하고 나서 줄곧 부실공사와 불편만 나타나는 곳도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설물은 제발 사회의 가장 약한 자에게도 편리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지 예산의 부족만은 아니다. 근본적인 사고의 방향과 애정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55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이현령비현령식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 중국, 러시아 동포도 마땅한 한국인   1. 미셀 위가 천재 골프소녀로 이름을 날리자 국내 언론은 미셀위의 모든 경기를 시시콜콜하게 보도하면서, 미셀위의 한국이름이 위성미이고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그녀가 떡볶이 같은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것도 기사거리가 되었다.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하인스 워드가 MVP에 오르자 모든 언론은 워드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고, 헌신적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고생한 그의 어머니를 취재하기에 바빴다. 미셀 위와 하인스 워드는 한국인인가? 2. 버지니아공대의 충격적인 총기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범인이 중국계라는 뉴스가 나오자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그러던 중 범인이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은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1.5세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혹시라도 불똥이 한국에게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였다. 심지어 미국 언론에서 그의 이름을 ‘조승희’가 아닌 미국식으로 ‘승희 조’라고 표기하였다는 것도 기사거리가 되었다. 조승희는 한국인인가? 3. 조선족 여성 김 모씨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다. 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김씨는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기에 소지하고 있던 중국여권과 신분증 등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결혼을 주선한 브로커가 위장결혼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구속이 되자, 김씨 역시도 위장결혼을 하였다는 이유로 국적취득이 무효가 되어버렸다. 김씨는 더 이상 합법적으로 체류를 할 수 없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중국에서 국적회복을 인정해주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에 놓여있다. 설상가상으로 중병에 걸렸는데도 아무런 의료혜택도 받을 수가 없다. 김씨는 한국인인가?   우리는 미셀 위와 하인즈 워드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조승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스포츠칸, 한겨레, 연합뉴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의 선택과 배제 국적법에 따르면 미셀위와 김모씨는 한국인이 아니고, 조승희는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적과 무관하게 미셀위가 한민족이라며 자랑스러워 하고, 조승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하나의 핏줄, 언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35개 이상의 혈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절대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하나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은 그 단일민족의 개념속에 중국이나 몽골, 러시아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셀위는 기꺼이 한민족이고, 조승희는 어쩔 수 없이 한민족이지만, 조선족 여성 김모씨는 한민족이 아니라 그저 조선족일 뿐이다. 이처럼 이중적인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조선족은 대부분 일제 치하에서 항일 투쟁을 하기 위해, 또는 먹고 살기 어려워 부득이 한국을 떠난 사람들의 자손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건너온 조선족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에 대한 호칭부터가 다르다. 중국동포가 아니라 조선족인 것이다. 이들을 조선족으로 부르는 밑바닥에는 이들이 우리와 한 핏줄이 아닌 다른 족속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구분 지으려 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그래서 차별적이다. 명칭뿐만이 아니다. 단순 노무활동에 종사할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재외동포는 재외동포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국, 러시아 동포들은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가 차별적 예외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취업관리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국내에 친인척이 있는 자 등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으며, 입국한 후에도 복잡한 고용절차와 수많은 제한규정들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불법체류자가 되기 십상이다. 국내에 친인척이 없는 동포들은 아예 취업비자를 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국이나 러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 동포들이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부득이 불법체류를 하고 있거나 입국·출국에 규제를 받고 있는 중국동포들에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불법체류 상태에 있더라도 이들이 최소한의 의료와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반도를 떠나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한민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중국동포들을 한민족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의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셀위와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면 조선족 여성 김씨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한국인이다.
2017-06-13 | hrights | 조회: 70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며칠 전 ‘우아한 세계’란 영화를 관람하였다. 평소 영화 관람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시간에 쫓겨 영화 보기가 쉽지는 않다. 영화 관람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주말에 방송되는 ‘영화특급’ 이나 ‘명화극장’ 등을 보며 영화보기의 아쉬움을 달래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예전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방송3사의 주말영화가 한결같이 심야에 시작되기 때문에 밀려오는 잠으로 한 편의 영화를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일요일에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이나 ‘SBS TV 박스 오피스’를 즐겨 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그러면서 새롭게 개봉되는 영화 중에 범죄라든가 경찰 분야를 다룬 영화가 있을 경우 관심을 갖게 되고, 가끔은 직접 영화관에 가서 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학과 사무실로 영화 무료시사회 초청권이 들어와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인터뷰에 응하기도 한다. 이번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학원 수업이 계기가 되었다.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는 대한민국 40대 가장들의 피곤한 삶을 ‘조폭의 이야기’를 통해 그렸다는 홍보에 영화를 통한 전공 공부를 하자는 취지에서 보게 되었다. 영화 관람 후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호프를 마시면서 서로의 ‘영화평’을 듣게 되었다. 다양하게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단연 주제가 되었던 것은 ‘조폭의 세계’와 ‘왜 아버지는 딸에게 약한가’였다. 딸이 없이 아들 둘만 있는 필자로서는 후자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조폭의 세계’만큼은 몇 가지 거들고 싶었다. ‘들개파 넘버 3’으로 등장하는 강인구(송강호)는 건축공사장이나 유흥업소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이권을 챙기는 전통적인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렇게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더라도 집에서는 부인 허미령(박지영)과 딸 김소은(강희순)에게는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감독의 창작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몇 가지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우선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건 아니잖아’를 연발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들개파의 두목인 노회장(최일화)과 노상무(윤제문)를 죽이고 교도소에 구금되었다가 정당방위로 풀려나는 장면이라든가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이국적인 집을 사서 이사 간 후 집들이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평소 조직폭력은 사회악으로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편의점에서 다른 조직원에 의해서 강인구가 살해되거나, 아니면 자기를 죽이려는 노회장과 노상무를 어쩔 수 없이 죽였더라도 그동안의 전과사실과 조직폭력 활동에 비추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평생을 보내야 되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사진 출처 - 영화 '우아한세계'   이런 생각을 한 후 인터넷으로 ‘우아한 세계’의 영화평을 보니 이 영화는 ‘연애의 목적’에 이은 한재림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서 대한민국 40대 가장들의 피곤한 삶을 ‘누아르’라는 장르로 요리한 영화란다. 어두운 범죄세계를 다룬 누아르의 관습상 주인공이 죽는 일이 많은 데 이 영화는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식상한 누아르를 교묘히 비틀고 있다는 평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아들과 딸의 유학을 위해 부인까지 캐나다로 떠난 후 자장면을 먹으며 강인구가 가족들의 캐다나 생활을 촬영한 VTR을 시청하며 기러기 아빠의 한심하고 처량한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서도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리고 영어가 아무리 중요한들 가족관계를 파괴할 만큼 의미가 있는가 되돌아보게 했다. 하기야 2007년 4월 14일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호텔에서 치러진 부산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두목의 아들 결혼식장에 1천 100여명에 달하는 하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보도를 접하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일반시민들에게는 씁쓸하고 석연치 않다. 감독이 이 영화를 송강호가 나오는 재미있는 코미디, 액션영화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전적으로 감독의 전유물인 것은 사실이다. 타르드(G. Tarde)의 모방법칙이나 매스미디어의 모방효과로 인하여 조직폭력의 세계가 잘못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영화 내용 중 일부라도 권선징악적인 면도 가미되었으면 하는 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를 기원해 본다.
2017-06-13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이광조/ CBS PD ‘제 2의 개국’이라고 칭송되는 한미 FTA 협상 타결 소식이 모든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던 바로 그 주에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기후변화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인류가 지금까지의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할 경우 2080년쯤이면 평균 기온이 3.5도 이상 상승해 지구촌의 주요 생물 대부분이 멸종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겨져 있다. 물 부족과 식량난, 전염병의 확산, 홍수와 해수면 상승 등 헐리우드 재난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접했던 대재앙이 현실로 닥칠 거라는 얘기다. 한미 FTA 협상타결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듣기 싫은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 2,500명이 6년간의 연구조사를 거쳐 발표한 보고서라고 하니 쉽게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한반도가 지구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20개 국가에 포함된다고 하니 우리에게도 보통 심각한 뉴스가 아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10위권,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속도가 세계 최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책임도 그만큼 크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교토의정서가 공식 발효된 2005년 2월 16일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 앞에서 환경단체들이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미국을 규탄하고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9위인 한국 정부의 적극 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인류가 ‘멸종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아니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과학자들이 대재앙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게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국 등 강대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 정부관계자들이 보고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해 발표시간이 연기됐다고 하니 우리사회와 정부만을 탓하는 건 일종의 ‘자학’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대해 우리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를 보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4월 10일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보면 우리 협상단은 자동차 분야에서 배기량 기준 세제를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산 자동차에 대해 배출가스 자가진단장치 장착 의무를 2년 간 유예하고 배출가스 허용치도 2009년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보다 완화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환경기준이 후퇴한 것’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협상대표들, 정부관계자들의 생각은 좀 다른 듯 하다. 우리 협상대표들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동차의 배기량과 유해물질 배출은 관계가 없다’는 얘기를 되풀이해 왔다(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는 배출가스 자가진단 장치 장착의무 유예와 배출가스 허용치 기준 완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정부 관계자의 입장을 듣지 못했다). 큰 차라고 해서 모두 유해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건 아니고 작은 차라고 해서 모두 유해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맞는 얘기다. 품질 나쁜 작은 차가 큰 차보다 더 유해한 물질을 내뿜을 수 있다. 하지만 유해물질의 독성은 차치하고 연료를 많이 쓰는 대형차가 이산화탄소도 많이 배출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독성이 덜한 배출가스가 나온다고 해서 온실가스 총량이 늘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가 중심적이고 민족 중심적인 FTA 협상 미국 자동차가 들어오면 얼마나 들어오겠느냐. 뭐 그 정도 가지고 당장 큰 문제가 되겠느냐.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 단점도 있지만 FTA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다 등등. 여러 가지 반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세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비슷한 시각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가 온실가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내 13개 환경운동단체와 12개 주 정부가 연방 환경보호국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판결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환경보호국이 온실가스 규제에 소극적일 경우 각 주 정부가 환경보호국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고 환경보호국은 자동차 배출가스를 규제할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소극적인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심판한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협상단이 관철시킨 배출가스 규제 완화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 취지대로라면 문제가 있는 내용이 아닐까?   그림출처 - 경향신문 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히고 각국이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자유무역협정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각 국가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만 사로잡혀 인류에게 다가오는 재앙은 보지 못하고 국가간 경쟁에 매몰되는 자유무역이라면 눈앞의 파멸을 보지 못하고 질주하는 무모한 ‘치킨게임’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FTA가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FTA 협상은 너무나 국가 중심적이고 민족 중심적이다. 그 무한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또는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기 위해 각 국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게 아닌지. 파국이 임박했다는 얘기를 믿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 아니 수백 년 뒤도 아니고 금세기 안에, 다시 말해 우리 자식들이 살아 있는 동안 지구상의 생물 대부분이 멸종할 수 있다는데, 지금 우리는 너무 태평하지 않은가.
2017-06-13 | hrights | 조회: 4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