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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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 조카가 인사차 찾아왔다. 이 조카는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안정된 직장(특급호텔 외식사업부)의 정규직을 그만두고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언니네 부부는 반대했지만 사표는 수리된 뒤였고 조카는 이미 서울에 있는 직장 두 군데서 오퍼를 받은 상태였다. 낯선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에 애가 적응하기 힘들까봐 내게 몇 달 동안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20대 중반의 조카는 중학교 때부터 바텐더를 꿈꾸어왔고 국내에서 경력을 쌓아 싱가포르나 대만에서 바텐더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꿈을 갖고 키워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해 보였고 나는 그 꿈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카는 오후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힘든 업무를 자신의 꿈과 경력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그야말로 버틴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교대근무도 아니라 매일 야간 시간에 일을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야간 근무는 낮과 밤을 구분해서 살아온 신체의 생체리듬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오래한다고 해서 적응이 돼 밤에 일하는 게 덜 힘들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조카는 어느 날 갑자기 잘렸다. 업소가 무리하게 확장을 한 탓인지 불경기 때문인지 사장이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직원들을 내보낸 것이다. 몇 달 후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부르겠다는 얘기만 남기고. 다른 업소에 취직을 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던 한 달을 보내고 조카는 다시 그 업소로 돌아가 1년 가까이 일을 했다. 채 일 년이 되기 전에 이미 그 업소에선 가장 고참이 되었다 한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자 작년 이맘때 벌어졌던 구조조정 분위기가 다시 조성되었다. 작년 일을 경험한 직원은 조카뿐이었다. 조카는 매해 사장이 경력이 짧은 직원들을 구조 조정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같은 경우를 당하고 싶지 않아 사표를 냈다. 사표를 수리하면서 사측은 ‘우리 회사는 퇴직금을 퇴사 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준다’고 했단다. 이미 사표를 내기 전에 월급도 밀린 적이 있어서 신용교통카드가 정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모한테 연락하지 그랬어? 라고 말했지만 중요한 건 당장의 차비 얼마가 아닌 걸 조카도 나도 안다. 그녀가 바텐더로서의 경력을 무사히 국내에서 쌓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어야 할까?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쉽게 격려할 수 있을까? 조카를 보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같은 업계의 후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들이 아직 위에 많이 있으니 제 또래에는 관리자로서의 비전을 갖기 힘들어요.”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는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IMF 이후인 것 같은데) 신입보다는 경력자를 주로 고용해오고 있다. 알고 보니 꼭 이 업계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꾸리고 있는 대다수 70년대 학번 사장들은 출판이 호황일 때 회사를 차렸고 그나마 대부분 내 나이 때거나 더 젊을 때 사장이 되었는데, 앞으로 후배들이 그렇게 사장으로 기반을 가지거나 사내에서 임원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고. “여러분들도 열심히 하면 이 자리에 올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발언은 정말 무책임한 거라고. 나는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50대들을 보고 얘기한 것이었고 30대인 후배는 여전히 회사에서 윗사람인 40대 선배를 두고 한 얘기이다. 조카 얘기를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후배 얘기를 들었을 때도 할 말이 없었다. 조카에게 무슨 근거로 노동조건이 그야말로 후진 그 바닥에도 볕 들 날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겠나. 후배에게 그래도 너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20대들보단 나은 처지 아니냐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이를 불문하고 세대를 불문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처지에 모두들 놓여 있는 것 같다. 둘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 개개인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정말이지 혼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 많다. 말이 연대지 불법해고에 맞서 같이 나서자고 하기엔 개인적으로 처해 있는 조건이 너무 다양하다. 어쩌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뭔가 상식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건일 때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에 아는 분이 회사의 비상식적인 고용조건을 거부하고 퇴사한 뒤에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맞습니다. 배부른 선택입니다. 저는 당분간 사직을 해도 먹고사는 데는 당장 큰 걱정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배고프고 힘들 땐, 원칙적인 선택을 하기 힘듭니다. 아니 더 순종해야 합니다. 최근 국회 청소노동자 한 분이 비정규직에게 노동 3권 보장하면 나라가 어찌되겠냐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자근자근 짓이겨버린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봤습니다. 배고파서 원칙 못 지키는 것도 서러운데 그나마 배부른 상태에서조차 원칙을 못 지키면 그 땐, 원칙은 없는 겁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432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불안의 검은 피로 쓴 젊음의 대자보들이 거리에 나붙는다 저런 철없는 망나니들이 있나 일일이 조사 보고토록! 충성 경쟁 드높은 목소리 손발들이 분주하다 머리에 맨 붉은 정의의 띠들 가족들의 생계 눈에 선연한데도 더 이상 배부른 자들의 놀음에 장단을 맞출 수 없다는 철도노조 파업의 거룩한 포효 개 같은 새끼들 누가 내린 명령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먹던 그릇 발로 차 뒤집어엎고 다 잡아들여! 사방에서 들리는 몽둥이 호루라기 소리 요란하다 부정 선거 방조하는 대통령은 사퇴하라 현실을 비켜난 광야의 곳곳에서 무거운 침묵의 돌들이 입을 열어 순교의 각오를 외친다 저 미친 늙은 놈의 선동을 봤나 뼈 속 깊이 새겨진 종북주의의 유전자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으니 이 어쩌면 좋으냐!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 편 궁민(窮民)이 있지 않습니까. 수 만 킬로볼트의 전기에 감전될 수 없다 성스러운 생명의 날카로운 몸들 부르짖는 아우성이 넘쳐나더니 아뿔싸! 결국 사람들이 제 스스로의 목숨마저 끊는구나 저런 바보 멍청이들이 있나 누가 죽으라고 했나! 살라고 했지 언제 적 빨갱이 놀음을 아직도 하다니, 뭐 하고 있어! 배후를 더욱 철저히 조사해! 지당하신 말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자칫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기댄 노예로 자랄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 다함께 백년대계 참 된 교육을 천직으로 삼아 움직이는 전국교사노동조합 종북 빨갱이 새끼들이 무슨 교육을 한다는 거야 아니, 눈엣 가시를 빼지 못하고 뭐하는 거야! 어떻게든 해체시켜! 옙! 좌우당간 없애버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다 검찰총장, 특별수사팀장 국정원 부정한 대선 개입을 향한 발본색원의 기미, 정의의 한 줄기 실마리 보인다 했더니 아니, 저 놈 누구 애비야? 아니, 저 놈 지가 누구 새끼인지 모르나? 찍어내 버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혹시 후폭풍이 일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 들어봤어!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주현우씨(고대 경영학과)가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학내 게시판에 붙여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 오후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학우들의 연이은 지지하는 대자보들이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과거가 돌아오고 있다. 잔인한 기억의 무덤이 열리고 독재자의 망령,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도열한 군복 단추들이 광채를 뽐내는 환상이 어른거린다 “나를 살해한 너희들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지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리라.” 독재자의 망령이 아귀의 입을 열고서 원한과 복수를 명했던가 왜 갑자기 어둠이 내렸을까 왜 민주 자유의 대낮이 불현듯 착각이었을까 우리 모두들 푹 팬 눈, 웅크린 돌이 되어 터질 듯 짓눌리는 가슴팍 겨우 두 손으로 거머쥐고서 독재타도! 독재타도! 수도 없이 외치고 또 외치고 나무토막처럼 퍽퍽 위대하게 넘어지고 잘리고 천신만고 수 십 년 민주 자유의 대낮을 열었다고 했건만 아뿔싸! 또 다시 푹 팬 눈, 흥건한 불안 미래에서 과거로 뒤집혀 내리 덮쳐누르는 망령의 시간이라니 아름다운 낱말들마저 빼앗겨 하나하나 추악해지고 모두의 생명을 보호하겠노라고 모두의 삶을 의미 있게 하겠노라고 모두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겠노라고 새빨간 거짓말 그들 빨간 옷을 입은 이유였구나 그 새빨간 거짓말 말고는 그 누구도 주지 않은 권력이 아닌가 불법으로 빼앗아 간 권력이 아닌가 용케도 권력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그 손들의 뼈마디 돌아오고 있다 아니 벌써 돌아왔다 확인사살의 총성으로 무장한 망령이 머리 위를 선회하며 날고 있다 움푹 팬 눈을 부릅뜨고서 망령을 내려다보아야 한다 불안의 검은 피로 쓴 젊은이들의 대자보 정확한 인식, 분노의 붉은 피 한 두 번이던가 더없는 민주 자유의 무기로 되살아나 망령을 짓눌러 원한과 복수, 어둠의 목소리를 짓눌러 망령에 씐 분주한 수족들을 함께 묶어 심연의 무덤으로 내려 보내야 한다 허위의 입술과 혀도 위장의 옷차림과 미소도 뒤집어진 허구의 시간과 함께 저 심연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민주 자유의 시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2017-08-07 | hrights | 조회: 142 | 추천: 0
이은규/ 인권연대 '숨' 일꾼 주말 아침이었다. 커튼을 여니 모처럼 겨울 하늘이 맑았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져 오는 햇빛, 눈이 부셨다. 오랜만에 멀쩡한 아침 기분을 만끽하며 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속이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부엌에서 아내의 소리가 들린다. “그런 노래 부르지 마. 종북이라며 욕할지도 몰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노래까지도 눈치 보아야 하는 2013년 겨울. “그러거나 말거나.”아내의 농담을 받아 더 큰 소리로 흥얼거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속이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불렀다. 그랬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 순간 나는 이십대였으며 1990년대를 숨 쉬고 있었다.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금요일, 토요일마다 공사다망한(연애?) 큰 아들을 제외하고 열아홉 살 큰 딸부터 다섯 살 막내딸까지 우리 가족은 함께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아 있다. 각자의 취향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함께 감상하며 수다를 떤다. 물론 감상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다. 아이들은 쓰레기와 나정이, 그리고 칠봉이의 사랑이야기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삼천포와 윤진이, 해태와 빙그레 그리고 성동일, 이일화 부부의 에피소드에 웃고 쓰러지고 한다. 1994년을 거쳐 1995년이 배경인 까닭으로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다. 드라마에서 인용되는 신문기사와 뉴스들에 대한 내용을 묻고는 한다. 삐삐 같은 이제는 보기 힘든 물건들과 시사적인 것도 있지만 주로 스포츠와 연예에 관련된 궁금증이다. 이를테면 이상민이 누구냐?, 서태지와 아이들하고 EXO하고 비교하면 누가 더 인기가 클 것인가, 삼풍백화점 사건이 무엇이냐 등등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런 저런 문의들을 하고는 한다. 문의가 폭주할라치면 드라마 끝나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라 권고한다. 그럴 때 마다 생각한다. ‘허 참 별일도 다 있네. 드라마를 보며 아이들하고 수다를 다 떨고...’ 무튼 이 드라마를 나도 좋아한다. 다 큰 아이들이 불타는 금요일 밤 밖에 나가지 않고 나와 놀아주니 좋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가족 모습이 좋고 무엇보다 추억할 수 있어 좋다. ‘그래 추억할 수 있어 좋다.’ ‘응답하라 1994’를 보면 까맣게 잊고 있던 당시 일상의 기억들이 부실 부실 눈 비비며 일어나고 있다. 1994년 여름은 매우 더웠고 첫아이 민주가 탄생했으며 목 넘김이 부드러운 하이트 캔 맥주를 원 샷 한 해이다. 그리고 그해 출범한 고(故) 김근태 선배가 이끌었던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충북지부 조직국장으로 일하던 때이기도 하다. 빠르게 순간 이동하던 기억들이 숨을 고른다. ‘따뜻했던 사람, 민주주의자 김근태...’ 송송 눈발이 내리듯 많은 기억들이 가만 가만 내려앉는다.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떴고 그들의 꿈은 현실이 되거나 여전한 꿈으로 지체되고 있다. 그들이 꾸었던 꿈의 동기는 사랑이었으리라. 형제에 대한 사랑,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있지만 너무 가까워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있는 자들은 눈먼 길 위에서 서로 분노의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응답하라 1994’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노래들은 추억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015B, 김민종, 이문세, 김광석의 노래는 오십을 앞둔 심장을 이십년 전으로 거슬러 요동치게 한다. 특별히 김광석은 아련하고 그 여운이 길다. 명치 아래쪽이 스르르 하니 모래성 내려앉듯 하고는 한다. 미소 짓는 슬픔이라니...“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고(故) 김광석 노래 그날들) ‘응답하라 1994’에는 이 노래도 나온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 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삼천포와 해태 그리고 나정이가 삼천포 주민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을 보며 곁에 있는 아내를 흘끗 바라보았다. 왕년에 총여학생회장을 했던 아내는 나정이보다 더 앳되고 이~뻣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슬그머니 웃었다. 아내는 텔레비전에 응답하느라 이런 나를 보지 못한다.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 따뜻해지는 시간을 ‘응답하라 1994’가 선물하고 있다. 오래된 노래들의 위로와 격려가 참 좋은 시절이 왔다. 사진 출처 - 티브이데일리 아날로그한 추억을 가만 가만 쓰다듬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린다. “어휴 요새 박근혜 때문에 자꾸 분노하게 되네. 지가 뭐라고 내 심사를 이렇게 뒤흔들어.” 지난여름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은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영규 형님 이다. 나는 당뇨에, 혈압에, 건강이 좋지 않은 형이 걱정되어 말씀 드렸다. “분노하지 마세요. 분노할 힘이 있다면 사랑하는데 힘쓰자고요. 분노할 대상은 적고 사랑할 대상은 전부니까요.” “그래 그래야겠지...” 통화를 마친 후 무의식적으로 한 말을 되새김질 하며 짐짓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그래 사랑하는데 힘쓰자. 사랑할 대상은 전부다.’ 내 오래된 노래는 오래된 미래를 희망한다. 그래서 힘이 있고 단순하다. 현재 우리의 삶이 노래가 되어 미래의 희망이기를 바란다. 햇빛 환하게 밝은 지금, 나도 모르게 또 흥얼거린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기쁨의 그날 위해 함께 할 친구들이 있잖아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나의 친구랍니다...” 얼~쑤
2017-08-07 | hrights | 조회: 199 | 추천: 0
박현도/ 종교학자 솔직히 나는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지 알지 못할뿐더러, 세상을 둘로 쫙 나누어보는 언론의 이분법적 시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꼴보수’니, ‘입진보’니 하는 별칭에 까지 이르면 할 말이 더 없어진다. 도대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 지키는 것과 나아가자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어쩜 그리 명확하게들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북한의 인권이나 민주화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로 꼽힌다. 그런데 막말로 인권, 민주화는 진보의 대명사 아닌가? 보편적 인권과 보편적 민주화를 이야기하면 아름다운 진보고, 꼭 집어서 북한인권, 북한민주화를 이야기하면 호전적인 보수인가? 초등학생이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어른들이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민감한 정치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더하다. 보수와 진보 이분법은 양반이다. 급기야 홍어까지 등장해서 우리 코가 아니라 가슴을 찌른다. 5·18 광주민주항쟁 희생자 관을 두고 “홍어 택배 대기중”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초특급 “호로자식”이다. 차라리 “절라도(전라도) 깽깽이”가 더 인간적이다. 망자를 두고 “홍어 택배”라니,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패륜아다. 말끝마다 홍어 운운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한다. 그들은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이들은 종북이라고 부른다. 특히 종북 민주당을 지지하는 깽깽이들을 이제는 대놓고 종북홍어라고 부른다. 지극히 창조적인 국어사용이라고 상이라도 주어야할까 보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홍어라고 부르는 것이 보수인가? 그게 보수라면 나는 보수 안 할란다. 나는 북한인권, 북한민주화에 우리가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권이나 민주화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폭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못 본체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동포가 아니라도 도와야할 사람들이다. 이들의 고통을 모른 체 하면서 진보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으로 간주되는 세력도 싫다. 그래서 나는 진보도 안 할란다. 지난 6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진보(왼쪽)와 보수단체가 마주 보며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상반된 내용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나는 세간에서 정해준 진보도, 보수도 모두 안 할란다. 종북홍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쓰는 싸가지 없는 자칭 보수도 싫고, 인권, 민주를 줄기차게 외치다가도 북한인권, 북한민주화라는 말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인양 입을 꽉 다물어버리는 자칭 진보도 싫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보수고, 진보란 말인가. 보수니 진보니 편을 가르는 현실을 보면 정신분열증이 올 판이다. 보편적 정의나 기준도 없이 정파끼리 짝을 지어 내 편, 네 편 나누어 보수니, 진보니 하며 마구 이름을 갖다 붙이니 말이다. 상대방을 독재자 “다까끼 마사오”의 딸이라 부르면서 친일행적 비판에 열 올리던 소위 진보들은 자기 조상들의 친일전력은 애써 외면하고 숨겼다. 연좌제는 유신의 산물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부친의 죄를 딸에게 묻는 연좌제를 정적에게 적용하고는 속 시원한 말 했다면서 자화자찬이다. 어디 그뿐이랴. 보수만 논문 표절하는 것처럼 떠들었는데, 진보도 장난 아니게 베꼈다. 얼굴 들기 어렵도록 친일, 표절 소동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는 확인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적어도 친일과 논문 표절에는 보수와 진보 편 가르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그만하자. 보수와 진보로 나눠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말인가. 어차피 둘 다 보편적 정의나 인권에는 눈을 감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에게나 “너 보수지?” “너 진보지?” 하며 다그치듯 묻는 것도 모자라 보수니 진보니 엿장수 마음대로 줄 세우는 짓을 이제는 제발 “쫌” 그만 하자. 이러다간 노예 사회를 해방시키지 못한 예수는 보수, 여성에게 더 많은 계율을 내린 부처도 보수라는 말이 나올까 두렵다. 말도 안 되는 보수·진보 노름 그만하고 보편적 정의, 인권, 민주에 대해 이야기하자. 보편 말이다, 보편! * 뱀꼬리: 제가 보수를 진보보다 먼저 쓴 이유는 한글 자모에서 ‘ㅂ’이 ‘ㅈ’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미리 밝히지 않아 괜히 쓸 데 없이 추리들 하시느라 애쓰게 해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정말 그러셨다면... 오~메, 어짜스까라이~
2017-08-07 | hrights | 조회: 214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최근 새마을 운동의 본격적인 해외 보급이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의 대외 원조 혹은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2010년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이후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사업은 정부와 산업계는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관심 영역으로 대두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그 어떤 분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의 정부 각 부처는 물론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대규모로 관여하고 참여하고 있지만, 현재의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의제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자세로 임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제 진부한 주제로 여겨질 정도로 전 지구적인 담론이 되어 있지만, 막상 전 세계가 연관되어 있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요 선도 기관들이 금액을 지원하는 등 이러한 세계화가 실질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소위 국제개발협력 영역에는 개발 관련 정부 기관들과 관련 학자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나마 외형적으로는 서구 사민 주의적 의제들이 크게 반영되어 있는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방향과는 정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현재 국제개발협력의 선구자인 양 활동하는 한국의 주요 관련자들이 국내적으로는 복지를 포퓰리즘 등으로 왜곡하는 데 앞장서 온 수구적 관료들과 학자들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은 기이하게도 한국적 개발협력 모델을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을 재현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새마을 운동과 같은 한국의 개발 개념은 한국의 발전사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시공을 초월해 재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러한 모델을 보급, 전수하는 방식의 국제개발협력 지원은 지양해야 하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에 앞서 지금까지 개도국을 지원하는 미명 하에 논의되어 온 개발 개념이 사실은 중심부 서구 선진국들의 이익이 명백히 반영된 결과라는 사실, 즉 개발 개념이 지닌 본질과 그에 따른 명암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막대한 개발협력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저발전국가들에서 국부가 외채 등으로 빠져 나가는 부분이 더 큰 현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끔찍한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국제 원조 혹은 국제개발협력이 완전히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난 2월 르완다 수도 키갈리 외곽 무심바 마을의 한국국제협력단 사업현장에서 현지 주민들이 수로를 파고 있다. 이 마을은 한국국제협력단이 새마을운동 사업지로 선정한 마을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 하지만, 몇 가지 대안적인 개발협력의 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개발 이슈 외에도 다양한 이슈가 제기될 향후, 수원국들의 경제자립 및 내발적 발전 등 저발전 수원국들의 자생력을 증강하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아울러 수원국의 필요에 입각한다는 의제는 수원국의 중앙과 지역의 권력 엘리트들이 아닌 원조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 지역 대중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그 대중들의 직접적 참여를 통해 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원조 효과성의 제고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개발협력 의제들은 중장기적으로는 수원국들의 빈곤 퇴치를 넘어 복지 사회 건설, 그리고 사회경제적 실질적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양성평등 등의 향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 세계적 경제위기, 탄소 가스 배출 등으로 인한 기후 변화, 식량 및 식수 위기, 부국과 빈국 간 양극화, 국내 빈곤 및 양극화 등의 지구적인 문제를 고려한 협력 사업이 발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생태계와 인간발전의 조화를 파괴하는 개발과 성장 모델을 지양하고, 생태적 사고에 입각한 협동경제발전, 인간복지향상에 입각한 개발 모델을 추구, 빈곤퇴치를 넘어 자조와 자립, 그리고 자치능력을 고양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소득창출과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국제협력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향후에는 저탄소 대안경제적 관점에서의 협력이 중요하게 대두될 것으로 생각되는 바, 이러한 분야 중 태양열, 조력, 풍력 등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 협력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 협력 분야 중 중 폐기물 에너지 산업의 경우 이미 유럽에서 폐기물 처리와 재생에너지 생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도시 및 농촌의 정비 및 현대화, 개발 사업 분야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정책과 연계된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즉 빈곤 퇴치, 건강 및 가족계획, 위기 예방, 환경정책 및 환경보호, 지속 가능한 경제 개발, 식량 안전과 농업, 식수 및 쓰레기 처리, 공공관리, 이주 노동자, 길거리 아동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공공서비스 관련 분야 중심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 보건의료, 주택 등의 분야 협력은 해당 국가의 의무 및 무상, 공공성 개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질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주택의 경우 난방 시설 현대화 등을 통한 에너지 효율화, 그리고 서민 주택 건설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주택이 재산과 투기의 수단이 되고, 사회적 불평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 분야 협력의 경우에도 현지에서의 중장기적인 플랜 하 지속가능한 사업들을 제안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실질적인 무상 초등기초교육 확대, 양성평등 교육 강화 등을 위한 사업들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 분야 협력도 소수에게 혜택을 주는 분야 중심의 의료 현대화 사업보다는 무상 의료 시스템 구축과 질적 제고를 위한 협력이 위주가 되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분야들은 단기간에 큰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이나 일반 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국가적인 대단위 성장보다는 지역 단위의 자립경제 발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공동체나 협동조합 등 시민사회의 대안적 경제가 실현되도록 원조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자원 확보 중심적 정책을 지양하고, 노동 집약적 공해산업의 이전이나 한국 기업들의 하청 중심의 협력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새마을 운동의 해외 확산 정책을 한국형 개발협력모델로 만들려는 것은 인류의 진보에 정면으로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57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Mahdi Abdul Hadi, Head of PASSIA, http://www.passia.org)   현재 팔레스타인 정치 상황은 다음 세 개의 화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계속할 것인가, 둘째, 서안을 통치하는 파타와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화해를 할 것인가, 셋째, 팔레스타인에서 선거가 실시될 것인가 등이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팔레스타인 대통령 압바스가 개인적으로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헌신하고 있으며, 협상을 유일한 해결책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대통령 직위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아랍 연맹 외무장관들을 이용해서 이 협상에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의 임기가 2009년에 이미 만료되었기 때문에 그의 합법성은 매우 약화되었다. 따라서 합법성의 문제는 그에게 매우 중요할 수 있다(그는 2005년에 선출되어 2009년에 권한이 만료되었다). 요르단 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 매우 깊게 관여하고 있으며, 파트너로서 워싱턴(미국), 텔아비브(이스라엘) 그리고 라말라(팔레스타인 자치정부-파타-)의 모든 정보와 연락망을 공유하고 있다 (요르단은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협상 내용을 파악한다). 하마스는 파타와 압바스의 가장 주요한 적수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마스 운동은 현재 정치적으로 완전히 약화되었으며, 시리아, 헤즈볼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모든 동맹자들을 잃었다. 그러나 10월 6일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샬은 공개 성명과 터키 총리 에르도간과의 만남에서 압바스에게 화해를 요청했다. 이러한 행위는 하마스의 동맹국인 이란 (특히 새로운 대통령 루하니의 선출과 함께 찾아온 변화된 분위기의)과 미국, 유럽연합과의 관계회복을 긍정적으로 인지한 결과다. 동시에 미국의 국무장관 존 케리는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에 대한 40억 달러 ‘경제 정책’을 제시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주변지역과 통합시키려는 노력의 일부다 (이스라엘과 그 이웃들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역내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게토’ 의지를 종결시키려는 조치다) 위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음을 이해해야한다. 미국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특사인 마르틱 인디크(Martik Indyk, 주 이스라엘 미국대사)가 경우에 따라 동석한 채, 예루살렘에서 치피 리브니(이스라엘)와 에레카트(팔레스타인)가 예루살렘에서 9회 회담을 가졌다. 다른 한편으로, 제네바에서의 에피소드가 제2의 제네바를 목표로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베드 라보와 이스라엘의 우리 사비르가 미국의 데니스 로스(Dennis Ross)의 지휘를 받는 또 하나의 협상 팀을 함께 꾸렸다. 하지만 라말라는 제네바 대화가 진퇴양난이며 내용이 없고, 치피 리브니와의 대화를 위한 과정만이 중요하다고 밝힘으로써, 기존 9개월간의 치피 리브니와의 대화를 무기한 연장할 것을 암시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회 (NGO와 좌파 단체)는 이러한 처사를 비난하고, 치피 리브니와의 협상연장은 단지 네타냐후 정권에게 정착촌을 확장하고 예루살렘을 유대화를 은폐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며 협상중지를 촉구하고 있다. ▲ 마흐디 압둘 하디(Mahdi Abdul Hadi)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 소장   □ 파타와 하마스의 화해 하마스와 파타의 지속되는 균열로 보아, 최근의 진행과정은 화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이란 대통령 루하니는 이란과 하마스의 관계를 재확립하여 미국과 유럽연합과의 대화에서 정치적 카드로 사용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터키 총리 에르도간은 하마스에 힘을 부여함으로써 그가 최근에 잃어버린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두 양상을 반영하여 물러난 하마스의 가자 통치자 이스마엘 하니야가 파타와 다른 당파들이 정치권력을 공유할 것을 제안하였다(이는 거절당했다). 이스마엘 하니야는 라파 국경을 개방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유럽연합이 지키게 하자는 이집트의 제안을 승낙했고, 이것은 2005년부터 이미 시행되어 왔다. 하지만 파타 중앙 위원회 위원인 지브릴 라주브는 “우리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병사의 안전과 안보를 보장하리라고 믿지 않으며, 라파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리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아주 짧게 열렸던 기회의 문이 다시 닫혔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압바스 대통령은 이 제안을 승낙하거나 거절하겠다는 공식적인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분간 파타와 하마스 간에 화해 노력이 사실상 끝났음을 의미한다.   □ 팔레스타인 선거 가까운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선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지난달에 파타 혁명 위원회에서 일어난 진행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파타 혁명 위원회의 의원들은 압바스에게 오래 전에 약속했듯이 가까운 미래에 대리인을 임명하라고 제안했다. 다시 한 번 제안된 이름은 마르완 바르구티(이스라엘 감옥에 수감 중)였는데, 그가 임명되면 감옥에서 석방될 수도 있으며, 파타 중앙 위원회 출신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이 에서였다. 압바스는 혼란된 감정을 경험했고, 대부분의 주장들이 자신이 반대하고 있는 다흘란 캠프에서부터 나왔으므로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가자 지구(하마스 통치)에서의 선거 없이, 서안(팔레스타인 자치정부-파타 통치) 에서의 선거는 계획대로 진행될 것임을 암시했다. 이는 진행되고 있는 협상과 유럽연합과 미국의 지속적인 지지에 달려있다. 내재해 있는, 네 번째 중요한 점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도전하고 있는 경제적, 금융적, 정치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갇힌 거리에 나선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와 좌절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안보협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특수부대는 제닌 난민캠프와 나블루스 발라타 난민캠프에서의 시위를 비롯한 모든 팔레스타인 시위를 과도하게 진압하고 있다. 하람 알-샤리프(예루살렘 소재 이슬람 성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무력을 이용해 성지를 공유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 증가하는 청년 체포 등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팔레스타인 내에서 더욱 더 많은 영토를 지배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려는 이스라엘의 열정적인 노력을 나타낸다. * 영문 원고 번역은 김해서 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90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분노의 범죄학’이라는 것이 있다. 일찍이 수십 년 전,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Merton)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풍요를 보면서 이것이 미국인들에게 물질적 성공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제시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다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합법적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불법적인 수단, 즉 범죄를 저지르게 할 유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사회가 제시하는 목표와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현실 사이의 갈등을 머튼은 ‘긴장’이라고 불렀거니와, 이러한 긴장이 일상화된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긴장의 범죄학’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 분노의 범죄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장밋빛 환상과 열악한 현실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격은 만성적인 긴장을 넘어 좌절과 우울,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쌓이게 되고, 마침내 이것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과 같은 범죄행위로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개인이 느끼는 분노는 반드시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것만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자존감의 상처, 즉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하는 것과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또 만약 이 사회가 나름대로 공평한 경쟁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실패한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요즘은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택시의 불친절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택시요금이 지나치게 낮다거나 운전기사들이 과도하게 오랜 시간 동안 노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적인 문제들은 결국 이를 감당해야 하는 개인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으로 쌓이게 된다. 피곤하고 힘든데 웃어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아니 웃기는커녕 작은 말 한마디에도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어디 택시뿐인가. 새벽부터 밤까지 오직 시험만을 생각해야 하는 학교에서, 아무리 갖은 방법을 써 보아도 계속해서 탈락하는 입사면접에서, 분명히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차별과 해고의 불안에 늘 시달려야 하는 노동현장에서, 퇴직 후 느껴야 하는 경제적 곤궁과 가족 간의 갈등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분노한다. 분노는 때로 적당한 정도를 넘어 주위의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며,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는 냉정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의 범죄율은 그러나,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다. 범죄율은 보통 인구 10만 명당 범죄인수로 측정하는데 한국의 경우 대개 120에서 130정도로 북유럽이나 서유럽에 비하면 다소 높지만, 일반적으로 치안이 불안하다고 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참고로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미국은 이 수치가 700을 넘어선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아시아의 범죄율이 전반적으로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관의 권력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준법의식이 잘 발달한 것이 주요한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천년도 더 넘게 개인보다는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유학의 세계관에 의해 지배되어온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나라에서 정한 법은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것이라는 잠재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분노의 범죄학’의 설명이 틀린 것일까. 우리가 잘 아는 다른 통계 하나는 자살률에 대한 것인데, 이것은 문제에 대한 또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수년간 10만명당 30명 선을 육박하고 있는데, 이것은 OECD 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위의 범죄율과 비교해 보더라도 상대적으로 약 1/4에 해당하니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범죄율 가운데에서 살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높지 않으리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지만,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살인 범죄로 인한 그것 보다 훨씬 많으리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모든 자살이 분노나 좌절에 의한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적어도 상당수의 자살이 그러한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자살은 전이된 살인이며, 약화된 살인”일 수 있다. 터져나오는 분노를 공공의식의 압력으로 표출할 수 없을 때, 이것은 방향을 바꾸어 자기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와 좌절은 그 대부분이 사회적 조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래서 우리는 보통 자살의 문제를 개인적인 병리현상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았을까. 우리는 여기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범죄에 대해서도 이런 생각이 적용될 수 있을까.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을 포함하여 4대악을 척결해야 한다고 한다. 폭력이 좋다는 것도 아니고, 폭력이 자살과 같다는 것도 아니지만, 문제의 원인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때로 폭력으로 밖에는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그렇게 깊은 분노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분노의 범죄학’의 이런 해석이 맞다면 두려울 뿐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 정도를 낮추는 쪽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노력할 밖에.
2017-08-07 | hrights | 조회: 163 | 추천: 0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야야 저기 저, 생물 선생 아이가?” “아 미쳐... 어어 우리 봤는갑다, 일루 온다!” “모르겠다, 일단 택시 타고 보자.” 그날은 여름방학 보충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여름방학 중 학교에 나오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나는 아침에 학교가 아니라 마산역으로 걸어갔다. 도착할 즈음 내 눈에 보이는 건 이리 저리 흩어져서 학생들을 찾는 분주한 선생들 모습이었다. 아차. 선생들이 알았구나. 심장이 쿵쾅쿵쾅. 마침 만난 친구와 버스 정류장 앞으로 급히 갔다. 내리는 여학생들마다 붙들고 “성지여고 학생? 선생들 깔렸으니까 남성동 성당으로 바로 가라.”고 낮게 소리쳤다. 그러던 중 우리를 발견한 생물 선생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급하게 걸어오는 것을 본 것이다. 생물 선생은 교련 과목과 학생 주임을 맡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서 좀 걷다 뛰다 하다 결국 택시 잡아타고 남성동 성당으로 갔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해직 결정이 그 날 마산 남성동 성당에서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일단 마산역에 모여서 단체로 그 성당을 찾아가 항의하기로 했다. 1987년을 마산에서 보낸 고3이라면 뭔가 부당한 것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건지 이미 체험했다. 고1 때 평소보다 일찍 하교하는 버스 안으로 선전 유인물을 던지는 수출자유지역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눈, 코를 찌르는 최루탄 가스의 잔해들을 맡으면서. 1989년 5월28일 역사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대회가 정권의 전방위 탄압과 경찰의 철통봉쇄망을 뚫고 연세대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고3이던 1989년 봄. 나는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등교해 그 전날 쓴 대자보를 교문 옆 담벼락과 교내 게시판에 붙였고, 빈 교실 책상 서랍들 속에 전교조에서 만든 유인물을 하나씩 넣곤 했다. 지금은 정확히 왜, 어떻게, 어떤 계기로 전교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민중가요를 방학 때마다 가르쳐준 대학생 언니가 있었고, 평교사협의회에 가입했다고 유치원에서 잘린 언니도 있었다. 그리고 친한 한 학년 위 고교 선배 언니들이 대학생이 되어서 보낸 편지들에 적힌 글들을 읽고 뭔가 세상이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내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던 것은 전교조에 가입한 선생들을 대하는 나이 든 간부선생들과 교장 수녀의 폭력적인 언행이었다. 학생들이 버젓이 바라보는 교정에서 교장 수녀는 젊은 여선생의 뺨을 날렸고, 그 학교에 20년 근속을 자랑하던 수학 선생은 복도에서 전교조 가입 선생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런 인간들을 선생이라고 여기고 학교를 다녔다는 데 심한 회의와 분노를 느꼈다. 결국 마지막까지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은 국사 선생과 윤리 선생은 해직을 앞두게 되었고, 이 모든 처사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던 우리들은 해직 결정을 성당에서 한다는 정보를 듣고 항의집회를 하기로 모의하였다. 주동자들은 고3 반장들과 학생회장과, 간부가 아니었던 나와 역시 간부가 아니었던 같은 반 친구 1명. 학생회장도 같은 반이었으니 이 반에서만 주동자가 4명이었다. 물론 그날 학교에 나와서 자습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반장들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단 모의 사실을 선생님한테 고자질은 하지 말라며. 정말 순진한 집회 모의였다. 택시를 타고 성당에 도착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성당 앞마당에 줄을 맞춰 앉아 있는 거였다. 먼저 도착한 선생들이 운집하는 학생들을 줄 세워 앉히고 있었다. 아마도 마산 MBC 방송 카메라가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폭력적인 해산을 종용하기엔 늦었다는 판단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주동자들끼리 집회를 모의하면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가 구호를 적은 피켓을 몇 장 만들어오는 거였다. 뒤쪽에 서 있던 나랑 친구는 그 피켓을 가방에서 꺼내 옆의 학생들에게도 주고 우리도 들고 있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이거 누가 한기고? 누가 만들었어?” 하는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누군가 피켓을 낚아채갔다. 학생 주임의 씩씩거리는 콧소리와 쌍심지에 불을 킨 것 같은 눈동자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알았다. 피켓이나 대자보 같이 글로 적힌 문구가 방송화면으로 나가면 선전 효과가 아주 크다는 것을. 그래서 반드시 시위를 할 때는 피켓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쉽게도 그 날 집회는 아무런 성과 없이 해산했다. 학교가 소속된 천주교재단에서 그날 하기로 한 해직 결정을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그 이상 계획한 집단행동도 없고 (지금 같으면 피켓 들고 행진이라도 하자고 했겠지만 ) 아침부터 돌아다닌 피로감에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집에서 피켓을 만들어온 친구와 나는 학교에 들렀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학생 주임과 부딪혔다. 주임은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나와 친구를 향해 엄청난 협박성 발언들을 날렸다. 특히 그 친구가 피켓 만들어온 것을 아버지에게 알리겠다며 협박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안기부 직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집회를 모의할 때도 대자보를 쓸 때도 친구는 자기가 하는 일을 아버지가 알면 큰일 난다고 여러 번 걱정했었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어떻게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저런 식으로 협박하고 위협하고 욕을 할 수가 있나. 설마 진짜 아버지에게 이르겠냐며, 아닐 거라고, 길에 서서 우는 친구를 위로하면서 치밀어오는 분노로 손이 부들거렸다. 아마 내 인생 최고로 긴 여름날일 것이다. 더 황당한 사건은 2학기 개학 후에 벌어졌다. 그 날 이후 일주일 만에 간 학교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해직 결정은 개학 전에 내려졌던 것 같다. 집회 주동자로 찍힌 우리들은 텅 빈 교실에 띄엄띄엄 앉아서 봄부터 무슨 일을 했고 그날 집회는 어떻게 하게 됐는지 시간 순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적으라는, 이른바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경찰이 조사하듯 진술서를 작성시켰다. 그 전에 우리들은 모여서 당시는 전교조에서 탈퇴했던 젊은 사회선생님 이름은 절대 써서는 안 된다 등 몇 가지 입을 맞췄다. 진술서를 쓰고 나자 교장실에 불려갔다. 회의실 탁자를 둘러싸고 서 있던 우리에게 던진 교장 수녀의 첫 마디는 쌍욕이었다. 아, 절대 잊을 수 없으리. 이런 말도 했다. “성지가 정말 너희들 것인 줄 알았냐, 웃기고 있네.” (운동장에 ‘성지의 주인은 우리’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그 후 담임이 불러 ‘나는 뭔가 나쁜 짓을 했는데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류의 글귀가 적힌 종이를 주면서 부모님 도장을 받아오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도 않았고 몰래 도장을 찍어갔다. 며칠 뒤, 담임은 이 정도로는 안 될 것 같다며, 부모님 한분을 학교에 모시고 오라고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얘기를 듣고 난 엄마의 첫 마디.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부모더러 학교에 오라 가라 하냐? 난 못 가겠다.” 이미 개학 후 일주일 정도를 공부도 못하고 선생들에게 시달리던 나는 정신적으로 지친데다 계속 이러다간 대학도 못 가겠다는 위기감에 몸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결국 엄마 대신 같은 여고를 나온, 유치원에서 잘려서 집에서 쉬고 있던 셋째 언니가 와서 담임을 면담하고 갔다. 교무실에서 면담을 끝내고 교실에 찾아온 언니는 밝게 웃으며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공부하면 된다. 걱정 마라.’ 하고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갔다. 그렇게 고3의 가을이 흘러갔고 대입시험을 보고 겨울이 됐다. 공교롭게도 내가 가는 대학의 신입 오리엔테이션 일정과 고등학교 졸업식 일정이 겹쳤다. 몇몇 신입생들은 하루만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고 졸업식에 갔다. 나는 부모님에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것이라며 거짓말을 했고 결국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엄마가 대신 가서 졸업장과 졸업 앨범을 받아오고 친구와 사진도 찍었다. 졸업식도 가기 싫을 만큼 학교의 그 선생들 얼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교장 수녀의 그 욕을 들었어도 가톨릭이 무조건 싫다거나 하는 편견은 없다. 다만 모든 종교인들이 상상 속의 천사들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해직 교사 중 한분이 1학년 담임이었는데 떠나는 날 통곡하던 그 반 아이들 울음소리. 자신들의 담임이 왜 갑자기 해직된 건지 그들은 알았을까. 아마 나처럼 그 반 아이들도 전교조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살면서 어떤 자리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전교조와 함께한 고3의 기억은, 오래된 조직이 갖는 보수성, 장기근속 선생들이 보여주는 기득권자들의 모습, 나이 많은 것을 무조건적인 권위로 내세우는 한국적 정서... 이 모든 것들에 환멸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만약 사회가 이런 식으로 약자들을 못 살게 구는 거라면 비판하고 맞서 싸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교 신입생이 된 나는 전교조 1세대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09 | 추천: 0
신하영옥/ 광명시민인권센터장   오늘 신문을 통해 정부는 2014년도 성인지 예산을 올해보다 약 70%정도 늘어난 액수로 제출했다는 것을 보았다. 성인지 예산이란 양성평등을 정책 및 예산에 투영한 개념으로, 정책과 예산이 남녀의 차이에 기반하여 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고려하는 정책과 사업에 드는 예산을 말한다. 즉, 정책이나 예산이 성별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그 결과 어느 한 성이 다른 성에 비해 차별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면 이의 개 을 위한 사업예산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예산에 비례해서 사업과 참여기관도 늘어났다고 한다. 반가운 얘기다. 조금 구체적으로 사업내용들을 보면 ‘여성의 경제적 역량강화’, ‘돌봄 지원과 일/가정 양립기반 구축’, ‘폭력근절과 인권보장’, ‘복지와 건강권’이고 이 중 많은 예산이 책정된 분야는 ‘돌봄지원’으로 가정양육수당과 공공형 어린이집, 영유아 보육료 지원예산분야라고 한다. 그 외 여성정치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연수예산으로 1억6800만원도 있다. 물론 근절해야 할 4대악에 포함되는 성폭력예산이 증액된 것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과연 어떤 방지대책인지가 관건이지만. 뭐 여튼 성별격차가 10%이상 나는 분야를 중점으로 예산 기획을 했다고 한다. 한편, 다른 기사에서는 중증장애인연금 공약이 파기되었다고 한다. 모든 중증장애인에게 월2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던 공약은 소득수준에 따라 하위 70%의 중증장애인에게만 지급하기로 했다. 얼마 전 기초연금 공약파기의 기억이 되풀이 된다.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복지예산이 당초 약속에 비해 줄어드는 반면 여성관련 예산은 예년에 비해 훨씬 증가했다는 것을 여성인 나로서 반가워하고, 여성대통령이 되니까 여성들이 대접받는다고 좋아만 하기엔 석연치 않은 현 정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포착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여성문제는 여성과 남성의 위계적 권력관계에 응축되어 있고, 이로부터 여성들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결정자로 살아가기엔 많은 걸림돌들이 파생된다는 것이다. 권력은 반드시 권력을 부리는 자와 따르는 자로 양분되게 마련이고, 성불평등은 성에 기반 하여 어느 한 성이 어느 한 성에 대한 권력행사를 통해 의사결정과 실행을 통제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즉 성별위계를 해체하지 않는 이상 여성의 문제를 예산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에서 ‘남성적인 국가’로 예속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산의 분배가 여성들을 사회정책 결정의 참여자로 보는 정책보다는 국가유지의 수단 혹은 도구적 관점의 사업에 훨씬 많이 배분된 것 때문이다. 양육과 건강권을 중심으로 한 예산이 엄청나게 증액되었음에 비해 여성의 주류화 전략으로서의 여성정치참여지원금은 딸랑 1억 6000여 만 원이 전부이다. 나는 이 예산을 보면서 ‘돈 줄게 건강한 애들 많이 낳아줘!’ 라고 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 공보육과 공교육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보육의 공공성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이는 ‘성인지’ 예산이 아닌 교육이나 일반 복지 예산으로 편성되었어야 한다. 성인지 예산에 보육 예산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양육’을 여성의 몫으로 보는 ‘반 성인지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는 ‘성역할 고착화의 조장’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성인지’ 예산은 ‘성차별’예산이다. 한편, 여성의 ‘돌봄영역’은 ‘아이’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의 돌봄은 전체 가족을 그 대상으로 하며, 따라서 가족 중 누군가 병이라도 나거나 사고를 당하면 그 ‘사건’은 곧 ‘여성의 일’ 이자 ‘여성문제’가 된다. 이런 점에서 노인과 장애인은 여성들의 돌봄에서 핵심적인 대상들인 것이다. 가족 중 장애인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인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의 문제이고 이는 곧 여성의 문제가 된다. 노인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노인을 돌볼 수 없을 때 그 책임은 고스란히 여성들이 짊어지게 마련이고 그래왔다. 때문에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및 예산은 여성과 직결되는 사업이자 예산이 되는 것이다. 기존의 성 역할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성인지적’ 예산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의 책임-예산을 축소하고 성차별 및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이상한 예산을 ‘성인지’적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들의 차별적 현실에 대한 반영도 아니고 성인지적인 미래를 반영한 정책도 아니다. 여성문제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는 이러한 양립 불가능한- 한 쪽에선 돌봄에서의 해방과 한쪽에선 강화라는- 정책을 만들어 낸다. 나아가 양육에서의 해방과 사회참여-경제 및 정치-사이에 놓여진 수많은 기제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많다고 여성이 해방되는가? 양육비가 덜 든다고 여성의 예속이 해소되는가? 문제는 시간과 돈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여성들이 무엇을 통해 참여의 주체로 나서게 되는가?’의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집중되어야 할 정책과 예산은 이 분야가 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중 있는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렇지....’다. 양육비에 대한 예산을 양성평등예산으로 둔갑하고 여성의 부담이 되는 노인과 장애인의 복지예산은 삭감하면서 친여성적인 정책들을 전개하는 듯이 포장하는 것 같아 나는 이번 ‘성인지 예산’이 달갑지 않을 뿐 아니라 한심하다. 무지에서 출발하는 책임감을 누가 말릴 것인가? 혹시나 ‘여성’대통령으로서의 부담감을 갖고 있다면 나는 부탁하고 싶다. 제발, 그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라고.
2017-08-07 | hrights | 조회: 167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지난 10월 8일 한겨레신문의 <싱크탱크 광장> 란에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이, “세계적인 석학”으로서 지난 7월에 서울에서 열린 ‘정전협정 60돌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하기도 했던 미셀 초서도브스키 교수와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관련해서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김보근 소장의 말처럼 우리가 사회 내부에서 알지 못해서 발언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자기 검열에 의해 함부로 발언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초서도브스키 교수가 명쾌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 내용들을 최대한 왜곡하지 않고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하는 선에서 그의 견해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논의의 편의상 ①, ② 등의 원문자로 표기한다.) ① 소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의회 안의 정적을 대상으로 한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인 복수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적인 정부라고 표현할 수 없다. ‘민주라는 가면을 쓴 전체주의’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과거의 정치, 즉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② 나는 이석기 의원이 한 말을 3만7천명의 미군이 남한 땅에 주둔하고 있고 한국군은 미군의 명령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③ 반역이라는 말은 한국 사람의 이익에 반하여 외국 권력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정말 반역을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전작권 환수를 위한 책임도 의무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④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지도자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사회 구성원에게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석기의 관점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는 그의 관점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사상의 자유 역시 현대사회의 절대적인 기초다.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하는 남한 사회는 표현의 자유도 사상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 것 같다. ⑤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근본적인 권리를 침해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상․하원 의원 중 누구도 정부를 비판했다고 체포되지 않는다. ⑥ 미국은 북한을 핵무기로 50년 이상 위협해왔다. 미국은 2013년 5월 현재 5113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필연적으로 한반도 전역을 황폐화할 것이다. ⑦ 남한에서 국가보안법으로써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북한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까지 범죄 행위가 된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오직 부정적인 것들만 얘기하는 것이 허용된다. 국가보안법은 민주 사회에 걸맞지 않으며 명백하게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라고 생각한다. ⑧ 국가보안법은 자기검열의 형태로 박 대통령에게 반대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위축 효과’를 발휘한다. 이석기 의원 관련자에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진보적 요소에 대해 국정원이 의도한 효과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미군의 주둔을 받아들이고, 역사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결과 진보진영마저 이석기 의원 사건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활용하는 체제는 진실로 전체주의적 시스템이다. ⑨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라는 이석기 의원의 말은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반도의 한국인들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추정한다. 미군 주둔은 1997년 미국 정부의 지시에 의해 한국 재무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가 해임되도록 하는 데 배경으로 작동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면, ‘우리가 정치적 • 군사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라고 한 것은 남한이 미군을 배제한 독자적인 무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곁들여 말하면, 한국이 미국한테서 무기를 사는 것은 한국인의 세금으로 미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과 관련된 소위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세계적 석학인 미셸 초서도브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명예교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건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남한 사회가 민주 사회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정전협정 60돌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나는 그동안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한겨레신문이 한동안 균형 잡힌 시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와중에 이 같은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견해를 한 면 전체를 할애해서 ‘대서특필’한 것이다. 다행이라 여긴다. 초서도브스키 교수 나름의 시각으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의 일단을 제시함으로써 물밑에 숨겨져 있는 핵심 주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건은 그저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사실이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의미가 부가되어야 한다. 의미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일련의 사실을 일정하게 묶어 ‘사건’으로, 더욱이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최고도로 폭과 깊이를 갖춘 해석을 필요로 한다. 물론 사법적으로는 관련되는 현행법을 바탕으로 법적인 해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법적인 해석을 넘어서서 해석의 기반을 향해 자꾸 치고 내려가면, 맨 밑바닥에서 한 인간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들이 부각된다. 그 조건은 해석학에서 말하는 체험-표현-이해의 순조로운 사회적 순환이다. 나는 초서도브스키 교수가 위에 요약한 ④와 ⑦의 발언, 즉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발언을 이 같은 인간됨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된 ⑦과 ⑧의 그의 발언은 우리 남한의 현행법인 국가보안법이 남한 사회의 구성원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을 전혀 만족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철폐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나 역시 이러한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입장에 동의한다. 심지어 사상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 않은 우리의 헌법도 수정하여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이석기 사건’은 수 천 년 간 한반도에 거주해 온 우리의 역사가 당면하고 있는 질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말처럼, 수만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전시에 미국의 4성 장군이 우리 한국군 전체의 실질적인 최고사령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역사적인 상황을 질곡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민족과 국가를 위한 최선책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이고 그러한 생각을 공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그런 생각과 표현을 얼마든지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생각과 표현도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초서도브스키 교수가 주장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한이 당면한 역사를 질곡으로 볼 수도 있음에 대한 근거로서 ⑥과 ⑨의 일부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그 외 ②와 ⑨로 요약된, 이석기 의원의 발언들에 대한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소프트한 방향’으로의 해석은 그 나름의 입장에 의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그의 해석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현재 나의 미흡한 관련 정보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심지어 ‘이석기 중심의 정치집단’이 철학자 크리스테바가 말하는바 ‘기이한 믿음’에 해당하는 반(反)믿음의 맹목적 추종을 수행하는 집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초서도브스키의 이석기 의원의 발언들에 대한 소프트한 해석이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와 그에 따른 여러 심각한 부작용을 연출하고 있는 현대의 세계사적인 맥락에 입각해서 폭넓게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사회 정치적인 성찰과 실천을 수행하는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역사의 시간이 우리의 각종 오염된 생각들을 정리해서 씻어낼 수 있는 날이 도래하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지금 우리의 대처와 반응이, 특히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해서 얼마나 성마르고 사회 정치적인 관용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허약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현실에 대한 이해의 협애함을 역이용한 권력 지향적인 세력들이 얼마나 방약무인의 패도를 휘둘렀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북쪽은 물론이고 한반도를 둘러싸고서 자행되는바,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무시․강탈하는 그 어떤 세력도 용납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셀 초서도브스키의 이번 이메일 대담은 그 나름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이름으로 한국사회의 현행의 역사를 점검하도록 독려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이 어떻게든 실천적으로 반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2017-08-07 | hrights | 조회: 20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