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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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은규/ 인권연대 '숨' 사무국장 여백은 끔찍하다. 무슨 말이냐고? 원고 마감이 코앞에 닥쳐서야 노트북 앞에 앉아 있노라니 빈 문서의 여백이 끔찍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하다. 점 하나만 찍어볼까? 참으로 난감하다. 한자 한자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두서없는 생각들이 주저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뭉게뭉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이 마구 밀려드는 시간이다. 애시 당초 거절했어야 했다. 글보다 말이 앞서는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형벌이다. 재미있는 것은 말은 앞서지만 행동은 글보다 더디다는 것이다. 생각이 앞서고 말이 그를 따르고 어찌 어찌 쥐어짜다보면 글이 말을 따르지만 행동은 참으로 더디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데 미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말과 글들이 참으로 많다. “거봐 내 이럴 줄 알았어. 또 자기고백으로 흘러가잖아. 뭐 어쩌겠어 이것이 내 세계인 것을.” 나는 민주적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생각과 말, 그리고 글 따위들로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민주주의가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실현되어야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확신범이지만 나는 민주적이지 않다. 특별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들은 무조건 나의 말과 행동, 생각을 지지하여야만 하는 사람들이며 그렇지 않을 때 나는 가차 없이 그들을 심판한다. 경험에 따르면 심판은 때에 따라 수위가 다르다. 삐침이 있고 냉정한 침묵이 있고 그리고 결별 따위의 수순을 밟는 것 같다. 하지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민주주의자이다. 사진 출처 - NAVER 나는 인권적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감수성만으로는 최고의 인권적 감성을 가졌다 자부하지만 삶을 통해 맺어진 관계 안에서 차별과 배제는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이 또한 특별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아빠니까, 가장이니까, 아들이니까 그리고 친하니까 적당하게 둘러대고 을러대며 나만의 방식을 지혜롭게 구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담장 안에서 일어나는 가정사를 알리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감수성이 철철 넘쳐흐르는 인권적 사람이다. 나는 진보적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진보! 진보! 저마다 진보임을 자처하는 이 세태를 두고 참 지랄 맞다 여기며 진보를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지만 삶의 방식은 구태의연한 자본주의와 권력의 프레임에 갇혀 사는 사십 육세의 소심한 국민(!)일 뿐이다. “아 나는 커서 우리 아빠 같은 꼰대가 되지 않게 해주소서”라는 기도를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독재자들은 데모하는 젊은이들을 탄압했을까? 그냥 그들이 나이가 들기를 바라면 되었을 것을. 아무튼 굳이 행세를 하지 않지만 말과 글로는 진보적인 사람이다.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의 삼위일체가 사람됨의 삶이라 가정한다면 아직 나는 사람됨이 부족하다. 아주 허약한 체질인 셈이다. 일상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매우 친밀한 사람들에게조차 민주적이지도 인권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 그가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듯 허약한 체질을 가졌음에도 민주주의와 인권과 진보적 가치들을 포기 하지 않았다. 더디게 진전되고 한순간에 거꾸로 퇴행하는 현실들에 실망하지만 나의 삶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현되어지는 흐뭇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의 보이지 않는 혹은 알려지지 않은 삶의 여백에 사람됨의 가치들이 촘촘히 채워질 때 그것이야말로 흐뭇한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웃음이 머무는 시간이다. 어찌 어찌 주절이다 보니 여백이 나름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군데군데 숭숭 구멍이 나있지만 뭐 어쩌랴. 나는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삶에서 많은 억지를 부리고 사는 사람이다. 해서 노력할게 많은 참 부족한 사람이다. 행복하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23 | 추천: 0
신하영옥/ 전 여성단체 활동가 내일은 엄마의 팔십 몇 번 째 생신이다. 올 초 갑자기 몸이 많이 안 좋아져 자녀들을 초 긴장상태에 몰아넣으셨던 엄마는 다행히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해 몇 년 간 떨어져 지내던 내 가족(남편과 나와 딸)이 살림살이와 구성원을 합치게 돼 집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집도 옮겼겠다, 그동안 무던히도 엄마 속 긁어놓았던 딸이 딸을 낳고 키워 형성된 엄마에 대한 아주 조금의 이해가 원인이었는지 엄마 생신을 내 집에서 내 손으로 차려드리고 싶었다. 그보다는 집도 이사했으니 한 번 놀러오시라는 말이 생신을 치르는 것으로 와전 혹은 확대된 것이라 하겠다. 여튼 걸음이 불편하신 엄마를 고향에서 모시고 올라오니 좀 지친다. 솔직히 많이...그래서 저녁을 나가서 먹고 싶었다. 가족들이 나가서 먹는 사이 얼른 이 글도 마치고, 홀가분하게 술도 한잔하고, 무엇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씻는 것이 귀찮아서였다. 그러나 엄마는 거절하신다. 아무래도 외식비용에 부담이 크신 듯하다. 자녀들이 얼마씩 부담하여 그 정도 외식은 충분히 가능함에도 그러하다. 자신을 위해 돈 한 푼 쓰는 것이 아까웠던 엄마는,-그러한 엄마의 모습이 궁상스럽고 때론 지겹기까지 했던 우리들이건만- 여전히 아끼고 아끼는 엄마는 여전히 우리를 약간 질리게 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당신을 위해 소비되어야 할 돈에 대한 미련, 내일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어려운가보다. 이는 살아있는 자로서의 당연한 본성일지도 모른다. 항구적인 삶에 대한 희망과 불안은.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그 희망과 불안의 대상이 돈임은 당연할지 모른다. 엄마를 모시고 같이 올라온 언니는 50대 중반이다. 안정적이고 비교적 실력을 인정받던 교사생활을 청산하고 야인처럼 살아온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교사직을 그만두고자 할 때 많은 이들이 걱정 혹은 반대했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직장까지 그만두면 ‘무엇을 해 먹고 살 것’ 이며, ‘누가 데려가느냐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여성일수록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돈은 단지 필요조건일뿐이고, 자율과 정당함을 충분조건이라 여겼던 언니는 과감히 교사직과 더불어 부당함과 차별, 권위를 버렸다. 그 뒤로 제도와 비제도 혹은 탈제도 교육을 넘나들면서 생계와 자유를 꾸리고 누리고 있다. 때로 결혼제도 밖의 언니는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훌쩍 떠나고, 훌쩍 돌아오고, 자신의 해방을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그러한 시간과 에너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움이었다. 한꺼번에 수 개의 일을 동시 처리해야하고, 오늘처럼 하루 종일 운전하고 녹초가 되어서도 집에 와선 다시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서둘러야 하고, 또 이처럼 원고도 마감해보내야 하는 나로서는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언니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이는 대개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가지는 부러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성과 언니의 다른 점은 대체로 남성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우미가 곁에 있다. 엄마든, 아내이든, 딸이든 아니면 공적인 가사노동서비스를 소비하든... 그리고 그것이 항상 여성보다 우월한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당연히 그러한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싸우고, 요구하고, 혹은 더러워서 죽자고 혼자 감당해내는 그런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살바도르 달리 作,1945 언니에 대한 부러움 뒤에는 비혼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구조적인 억압와 소외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돌보기 위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돌파해내야 했다. 생물하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선 가끔 훌쩍 떠나고 돌아오는 자유는 그렇게 치열하게 생존하는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이자 휴식, 즉 그 또한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언니는 당당하다. 그리고 여전히 치열하다. 그리고 넉넉하다. 그럼에도 노년을 앞두고 건강에 불안해한다. 그동안 주변의 말처럼, 돈도 빽도 없는 비혼여성을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라는 걱정이 현실로 닥치면 어쩔까 하는 불안감이다. 그래도 언니는 말한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들춰내고 그것을 철폐할 것을 주장하는 것도 옳지만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돈을 넘어서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보는 것, 즉 자본주의적 불안을 인정은 하지만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이 필요치 않을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나의 노년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 ‘정말 100세까지 살면 어떡하지?’ 그렇다 100세까지 사는 것은 누군가에겐 대책 없는 희망이다. 딸아이도 요즘 몇 달간 불안을 말하며 때론 집을 ‘귀곡산장’으로 만들고 있다. 어젯밤도 그랬다. 긴 방학 끝에 개학 후 첫 등교한 날이었던지라 안 그래도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학교생활이 어땠을까 살짝 묻기도 하고 눈치로 때려잡기도 하던 중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 불안에 젖어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낯빛으로 때 아닌 산책을 간다고 하여 간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화...불안의 실체를 모르는 불안감이다. 실체를 모르는 불안감은 온종일 아이를 넋 잃은 사람처럼 만들고 일상에 전념치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게 하고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사춘기 탓이라고만 하기엔 그 불안감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작년 하반기부터 그 불안이 시작되었다. 그 때의 불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미래를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타협한 듯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오로지 공부만 요구하고 공부에 순종하는 아이들을 대면함으로써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을 선택했으나 그 선택이 완벽히 내 맘을 그리고 학교가 원하는 대답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혼자있을 때는 1% 부족한 것 같이 보이던 결정이 학교라는 현실로 돌아가자 99% 모자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뭔가 뒤로 밀리는 불안감이다. 누구는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20시간씩 공부해도 불안해하는데 자신은 더 불안해야 정상인 듯한 것이다. 그저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을 더 불안으로 빠뜨리는 것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은 그렇게 청춘을 시작하는 아이의 삶도 불안으로 빠뜨리고 있다. 요즘 백수생활로 인해 TV를 자주 보게 된다. 다양한 광고가 나오지만 단연 으뜸은 보험상품이다. 누구나 다 암과 뇌질환에 걸릴 것이라는 암시, 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어쩔 거냐는 협박, 죽음마저 상품화하여 상조회라도 가입하지 않으면 자식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라는 단죄, 이 모든 보험상품광고들을 보면서 ‘정말 100세까지 살면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존엄성보다는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느냐로 가치를 가지는 세상, 내가 사는 옷이 나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세상, 보고싶지 않고 쓰고 싶지 않아도 보고 써야만 하는 소수재벌들의 상품들... 이 모든 것들은 끊임없는 소비의 가치를 강조하고, 그리고 그 소비의 가치를 가지라고 유혹한다. 그리하여 그렇지 못한 자는 도태될 것이라 경고하면서 항구적으로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 사회이다. 그리하여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불안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잠시라도 일상에서 이러한 불안을 내려놓고 맘껏 먹고, 마시고, 나누고, 떠나고 즐길 수 있기 위해 내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개인의 내공이 사회의 구조와 긍정적으로 조우할 수 있을 때 선한 사회가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생산수단이자 소비의 수단의 되지 않는 사회, 다음 선거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이다. 누가 이러한 비전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해낼 수 있으려나? 난 그러나 아직은 뉴스를 안 보고 싶다. 당분간 안 볼란다. 사회와 조우할 내안의 공과 더 많이 놀란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06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 탐사보도팀장 나는 김어준을 좋아한다. 특히 그가 만든 <딴지일보>를 좋아한다. <딴지일보> 최고의 기사는 ‘허경영 연쇄 인터뷰’다. 줄기차게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허경영은 ‘정신나간 군소 대선후보’였다. 기성 언론의 엄숙주의·엄밀주의에 입각하면, 이런 정치인은 아예 보도하지 않고 무시해야 옳다. 그래야 독자들의 합리적 판단에 혼란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딴지일보>는 줄기차게 허경영에 매달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허경영의 과대망상과 박정희의 독재정치 사이에 가공할 친연성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진지한 얼굴로 정치를 말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허경영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은근히 비꼬며 질문했다. 박정희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허경영의 과대망상은 현대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파토스이자 로고스다. 그 실정을 우리는 2012년에도 목도하고 있다. <나꼼수>는 <딴지일보>의 어떤 진화다. 김어준의 2000년대 프로젝트가 <딴지일보>라면 2010년대 프로젝트가 <나꼼수>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나꼼수>를 청취한 적이 없다.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딴지일보>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곤 했던 나에게 왜 <나꼼수>는 매력적이지 않은가. 비유하자면, <나꼼수>는 정치전문지다. 올해 총선·대선 일정과 맞물리는 특수매체다. 한국의 종합일간지는 삼라만상을 종합하는 게 아니라, 주로 청와대·정당·기업·법조 등 권력기관의 동향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즉 ’종합뉴스’를 내걸지만, 실제로는 ‘권력자 관련 전문 뉴스’를 다뤄왔다. <나꼼수>의 영역과 기성 언론의 영역은 서로 겹친다. <나꼼수> 애청자로부터 간간이 “이런 이야기를 <나꼼수>가 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대부분은 현직 기자인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금세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반면 <딴지일보> 콘텐츠의 거의 전부는 현직 기자인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이었다. <나꼼수> 열풍은 바로 이 상황에서 비롯한다. 기자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꼼수>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로 잡았다. <나꼼수>에 대한 기성 언론의 불편한 심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 <딴지일보>를 경계하거나 냉소한 기성 언론은 없었다. 반면 <나꼼수>는 끊임없이 기성 언론을 성가시게 한다. 기성 언론이 독점적으로 다뤄온 이슈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정치 뉴스가 과잉 생산되고 있다”고 기자들은 오해 또는 착각한다.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40대 이상 중산층 남성에게만 정치 뉴스는 과잉 공급된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권력자·명망가·권위자를 만나는 뉴스 생산자, 즉 기자들은 최고 권력 사이에 벌어지는 ‘파워 게임’의 구도로 기사를 써왔다. 매일 아침 신문 들고 화장실 가는 사람, 밤 9시만 되면 꼬박꼬박 뉴스를 챙겨보는 사람이 그런 기사를 소비한다. 이들은 연령대로는 40~60대, 계급적으로는 중산층 이상 집단이다. 이들은 분명 정치 뉴스를 과잉소비한다.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30대 이하로 내려가면 사태가 달라진다. 10~30대에 이르는 청년층은 아침마다 신문 들고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이들은 인터넷에 기초한 정보습득에 길들여졌다. 또한 그들은 생존경쟁에 몰입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화두는 정치 담론이 아니라 스펙 관리다. 취향·기호는 학습·경험에 기초한다.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기를 즐긴다. 한국의 청년 세대는 신문을 정독한 적이 없고, 방송뉴스를 챙겨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한국은 ‘정치 뉴스의 과잉’이 아니라 ‘정치 뉴스의 부재’가 지배하는 시공간이다. 이로부터 <나꼼수>가 착안한 시장이 생겨났다. 엄숙주의에 “똥침을 날리겠다”며 등장한 <딴지일보>가 기성 언론의 틈새 시장을 노린 반면, <나꼼수>는 본격 정치 뉴스·논평·비평의 주류에 뛰어들었다. 정치 뉴스에 제대로 노출된 적 없는 10~30대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한국 정치에 대해 궁금하다면 <나꼼수>를 봐야 한다는 평판이야말로 그들이 정확히 의도한 목표다. <나꼼수> 열풍의 핵심은 그들이 본격 정치 뉴스를 다룬다는 사실에 있다. 30대 이하에게 <나꼼수>는 <월간조선>이다. <월간조선>은 ‘탐사·심층 보도’라는 기치를 내걸고, 실제로는 맥락, 배후, 욕망, 그리고 강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사건의 주인공들이 어떤 연관을 서로 맺어 어떤 욕망을 위해 무슨 일을 벌였는지 폭로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생산해왔다. <월간조선>을 읽고 나면, “신문·방송 보도에 나오지 않은 더 큰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쾌감을 위해 지속적으로 월간지를 소비하게 된다. 지루하고 복잡한 정치 뉴스를 주무기 삼은 월간지가 그토록 오랫동안 충성독자를 거느린 ‘장수 매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나꼼수>가 극우 월간지와 똑같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월간조선>과 <나꼼수> 모두, 기성언론의 기계적·중립적 정치보도에 기갈난 대중에게 △뒷이야기 △주요 (배후)인물 △사건 사이의 큰 맥락 △맥락을 파악할 비평적 관점 △더 나아가 진위, 선악, 흑백을 분명히 하는 ‘정파적 관점’까지 제공하면서 독창적인 정치 보도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두 프로젝트는 보수와 개혁, 노년층과 청년층, 두꺼운 활자매체와 기동력있는 팟캐스트 등으로 구분되지만, 각각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확인이 미흡하여 정치 선동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두 매체(<나꼼수>와 <월간조선>)의 한계와 위험은 엄연하다. 실제로 <월간조선>은 맥락을 드러내는 일 대신 정치 선동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변화(또는 퇴화)해왔다. <나꼼수> 역시 그 위험한 유혹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치보도의 정수는 주요 행위자를 잇는 복잡한 고리를 규명하여 풍부한 맥락과 함께 날카로운 비평을 함께 제공하는 데 있다는 점을 두 매체는 반세기를 격차로 하여 거듭 입증해 보였다. 그 목표를 ‘완벽하고도 탁월하게’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보도 방식이 신문·방송에 비해 깊은 울림을 준다는 점만큼은 웅변해 보였다. 특히 기성 매체가 “신문은커녕 책도 안 읽는다”며 가볍게 여겼던 30대 이하 청년 세대에게도 이런 본격 정치보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꼼수>는 완벽하게 입증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정치적 잠재의식을 꿰뚫어보면서, 이면·맥락·관점을 동시에 제공하는 역동적 정치 보도를 내놓았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취재하는 기성 언론의 기자는 ‘권력자의 눈으로’ 사건을 본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권력자의 ‘음험한 욕망’을 눈치채지만, 기성 언론에서 훈련받은 바, 이른바 ‘객관보도’의 규준에 따라 ‘이 권력자와 저 권력자’를 동등하게 배치하여 뉴스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짜 맥락은 종종 자취를 감추고, 비평적 관점이 형성될만한 핵심 사실은 희미해진다. 독자·시청자가 기성 언론에서 갈증을 느끼는 것의 핵심은 “뉴스를 읽고(보고) 나서도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반면 <나꼼수>는 누구의 무슨 잘못인지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그 뒤에 작동하는 권력의 숨은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어 비꼰다. 뉴스 소비의 ‘쾌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꼼수> 열풍에 대해 기성 언론 기자들 사이에 냉담과 냉소가 번져 있다. “‘객관보도의 규준’에서 한참 빗나간, 기초적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함부로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다”는 평판이 없지 않다. 여기서 한국 기자들이 신봉하는 ‘객관보도 규준’의 한계에 대해 상술하진 않겠다. 그들이 과연 ‘객관보도의 규준’이나마 충실했는지도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객관보도의 규준은 어디까지나 기자들 사이의 암묵적 규칙일 뿐, 뉴스 소비자에겐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점을 짚어야겠다. 독자가 보기에는 ‘객관보도의 규준에 충실했기 때문에 좋은 기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어떤 규준이 놓여있건, 하나의 텍스트가 온전히 진실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혀지는(보여지는) 것이 좋은 기사’다. <나꼼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김어준은 ‘(기계적) 객관보도 규준’에 묶여 어떤 카타르시스도 제공하지 못하는 기성 언론의 한계를 꿰뚫어 보았고, 자신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매스미디어가 바로 그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직했다. <나꼼수>를 향해 언론의 규준, 윤리의 잣대 등을 들이대는 것에 대해 김어준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객관보도가 필요하다면 신문을 봐라, 윤리적 취재·보도가 아쉽다면 방송을 봐라. 우리는 정치권력을 속시원하게 비판할 때 생성되는 카타르시스만 제공한다.…” 아마 김어준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꼼수>의 영향력이 앞으로 쇠퇴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 ‘쇠퇴’를 계획했다. 총선·대선까지 운영하다 접겠다는 것이 김어준의 뜻이다. 다만 그것이 제공하는 ‘카타르시스’의 강도가 앞으로 어찌 변할지는 지켜봐야 하겠다. 카타르시스는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폭로’를 내놓거나, 더 강력한 ‘비평의 레토릭’을 활용해야 할텐데, 더 강한 카타르시스를 의도할수록 위험도 커질 것이다. 이 점에 한해 <나꼼수> 열풍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나의 이슈, 하나의 관점을 밀고 나가면 밀도 높은 정치적 대중을 거느릴 수 있다. 다만 그 이슈와 관점이 붕괴하면, 그 대중은 쉽게 흩어지거나 고립감에 기초한 광기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를 우리는 황우석 사태에서 확인했다. 과학·의학·윤리의 문제를 뭉뚱그려 황우석 개인에게 열광했던 한국의 대중은 일체의 관심을 모두 잃어버렸다. 극소수만 남아 지금까지도 황우석을 지지하고 있다. 정치 뉴스는 감정적·정서적으로만 소비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이성과 감성이 혼융된 영역이다. 좋은 정치를 위해선 직관-열광과 함께 분석-냉정이 필요하다. 정치를 ‘카타르시스’의 도구로만 활용하는 대중은 정치냉소-광기정치의 양 극단을 오갈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한가지 덧붙일 일이 남았다. 앞서 밝혔듯이 <나꼼수>는 길어야 1년 정도 유지되다가 스스로 퇴장할, 기성 언론 외곽의 해적 미디어다. 그 미디어가 모든 중대 사안이 아닌 특정 사안에 몰입하고, 모든 관점이 아닌 특정 관점을 제공하며, 냉철한 공중이 아닌 열광적 대중을 잠시 동안 생산한다고 하여, 과연 그것이 그토록 잘못일까. 정파적 이익에 입각한 왜곡 보도,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편향적 비평으로 해방 이후 한국 사회 기성 언론을 지배한 <조선일보>가 엄연히 ‘엄숙한 언론’을 대표하고, 정권이 바뀔때마다 부침을 거듭하며 나팔수 방송만 거듭하는 <KBS>가 (사실상) 국내 유일의 공영방송인 현실에서, <나꼼수>가 한 1년쯤 난장을 벌인다고 하여, 과연 그것이 한국 언론에 그토록 창피한 일일까. 아마도 그 반대일 것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29 | 추천: 0
이광조/ CBS PD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지구 온난화가 발생한다는 것은 허구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광합성이 증대되고 결과적으로 농업생산성이 향상된다. 흡연으로 인해 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것은 비이성적인 태도다. 자연환경은 결코 발암물질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의 산소조차도 방사선 유발 암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 한 사람이 허위 경보를 울린 탓에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고통스럽고 종종 치명적인 말라리아로 고생하고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레이첼 카슨이다.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저) 때문에 DDT 사용이 금지되어 수백만의 아프리카인이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위에서 인용한 주장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과학적 연구와 역사적 경험을 통해 구축된 상식에 반하는 생뚱맞은 주장 같은가, 아니면 우리의 상식에 도전하는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 같은가. 최근에 읽은 아주 흥미진진한 책, <의혹을 팝니다, 담배 산업에서 지구 온난화까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나오미 오레스케스, 에릭 M. 콘웨이 저, 유강은 역, 미지북스)에는 미국의 핵개발에 참여하면서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소수의 과학자들이 기업과 보수적인 정치집단, 언론과의 연계 속에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포함한 여러 환경 이슈들에서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흠집을 내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직적으로 확산시켜온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과학에 수반되는 어쩔 수 없는 불확실성을 파고들어 회의론을 유포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지금처럼 계속 개발해도 별 문제 없다, 담배 핀다고 다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다, 이런 논리다. 과학의 불확실성과 관련해서는 담배의 예를 들면 쉬울 것 같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는 담배에 수많은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으며 담배가 폐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모두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다. 그럼 결국 모든 게 개개인의 운에 달린 건가? 흡연자들은 이런 논리에 유혹을 느낄 법도 하다. 담배가 건강에 해로운 건 사실이지만, 나는 운 좋게도 별 탈 없이 천수를 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흡연자들의 이런 기대 섞인 생각과는 별개로 담배의 유해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며, 요즘은 업계도 이를 받아들여 담배 갑에 섬뜩한 경고문구와 사진을 넣고 있다. 문제는 담배의 이런 유해성이 이미 오래전에 입증되고 담배회사들도 내부적으로 이런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담배업계와 그들의 지원을 받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해 줄기차게 물 타기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와 DDT 사용 금지 등 다양한 환경 이슈들과 관련해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저자들은 과학자들의 공동체가 합의에 이른 이런 사안들에 대한 공격이 여론에 호소력을 지니고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로 국가의 규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불신, 업계와 보수적인 정치권력의 지원, 그리고 균형 보도라는 명목으로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주장을 비중 있게 다뤄주는 언론의 관행을 꼽고 있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부의 환경규제를 공격하는 이들은 기업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 시장 근본주의자들이며, 이들은 환경론자들을 기업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려는 ‘뿌리가 뻘건 초록나무’로 여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책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우리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한창 논란일 때에는 방조제를 쌓아도 시간이 지나면 방조제 바깥에 새로운 갯벌이 형성될 거라고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흐르는 물을 가두어서 수질이 좋아지겠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에 대해 수량이 많아지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단순한 논리부터 배가 다니면 산소가 발생해 수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기발한 논리까지 동원되었고 이제 사업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와중에 4대강 사업 현장에서 강물이 맑아지고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4대강 추진본부 관계자의 글을 둘러싸고 진실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개선될 거라는 주장에는 여전히 쉽게 수긍이 안 되지만 본류 사업 준공을 눈앞에 둔 지금 나는 4대강 사업을 지지했던 분들의 예측과 논리가 사실로 입증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4대강 사업을 지지하고 추진했던 사람들이나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던 사람들이나, 이유는 다르겠지만 각자가 져야할 책임이 너무 무겁고 크지 않겠는가.
2017-07-21 | hrights | 조회: 119 | 추천: 0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제주의 세계 7대 경관 선정과 관련한 논란이 한창이다. 이를 주관한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 재단 실체에 대한 신뢰성 문제, 재단과 제주도와의 불공정 계약 문제, 7대 경관 선정을 위해 투입된 예산 씀씀이의 문제, 선정 추진 과정의 공무원 동원 문제 등이 그것이다. 제주도내의 시민단체들은 의혹들을 밝히기 위해 정보공개운동을 벌여오다, 지난 주 감사원 감사청구와 더불어 법률적 대응을 천명했다. 7대 경관 선정을 위한 릴레이 광고운동까지 벌이던 제주도내 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비판기사 실기에 주력하는 인상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지난 2월 3일 제주세계7대경관범국민추진위 위원장을 맡았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논란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급기야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1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7대 경관을 둘러싼 논란이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이의 중단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공무원 동원문제에 대해 “과도한 것"이라고 유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입장은 “문제없다"이다. 제주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는 프로젝트가가 필요했다"며 나름 의도의 순수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보다 앞선 9일, 도내 행정시를 돌며 펼쳐 놓은 언사에는 이 논란의 확산으로 인한 위기감 또한 역력히 읽힌다. “아주 끝내주는 일을 했다"며 강력한 어조의 자찬을 내놓는가 하면, “저를 싫어하는 몇 명이 잡음을 내고 있다"며 “도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권력자의 경고’도 거침없이 구사한다. 그러나 80억대의 예비비 사용 논란이나 전화투표를 위해 쓰여진 200억대의 행정예산의 타당성 문제 등은 분명히 가려져야 할 대목으로 논란의 확산을 부추길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12일 오전 제주아트센터에서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실시한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음을 선포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7대 경관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얼마나 진실을 길어 올릴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정작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왜 7대 경관이어야 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세계 7대 경관 도전, 그 이면에 자리하는 ‘발상’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7대 경관 선정 추진은 제주자연에 대한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꼭 세계 7대 경관이라는 서열구조 안에서야 제주의 풍경은 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 제주의 아름다움이 외국 어느 기업의 이벤트에 돈 주고 참여해야 인정되는 것인지, 제주 자연의 고유성과 독자성은 투표참여를 위한 동원 정도가 결정하는 것인지 자괴감마저 찾아들었다. 수많은 제주의 주민들은 어땠을까? 하루에 30통, 100통 하는 투표 전화에 매달려야 했던 공무원들의 마음속에 제주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으로 각인되었을까? 그 전화 한 통, 한 통에 성실과 열의는 실제로 얼마나 작동되고 있었던 걸까?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봤을 것이다. 해안 언덕 너머로 멀리 보이는 수평선의 아득함을, 저녁노을이 번지는 바다 위의 반짝이는 것들을. 중산간 어느 오름 기슭 작은 길을 따라 번지던 들꽃들의 반짝임을. 제주의 어느 곳이든, 오름이든, 곶자왈이든, 심지어 한라산이든,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모두가 반짝이는 제주만의 풍경이다. 아니, 제주 자체가 반짝이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지 않았던가. 그것을 꼭 수백억 돈 들이며, 왜 그들에게 확인받으려 했을까? 유네스코에 의한 세계생물권보전지역(2002), 세계자연유산(2007), 람사르습지지역(2006, 2008), 세계지질공원(2010)이라는 그 어떤 것보다 공인된 브랜드가 있는데, 또 어떤 글로벌 브랜드가 필요했던 걸까? 200억대의 행정비용이라면, 오히려 세계자연유산, 지질공원 등이 제대로 관리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하는데 쓰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7대 경관 투표참여를 위한 홍보비로 20억이 책정될 때, 지질공원 관리비로 고작 3천만 원이 예정됐던 것이 벌써 작년 초의 이야기다. 필자 또한 지정 신청 실무위원으로 참여했던 생물권보전지역만 하더라도, 스페인이나 다른 나라의 앞선 사례처럼 이를 브랜드로 활용하자는 전략까지 세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 그 계획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들어간 전화비의 1/3만 거기에 쓰였어도 굳이 7대 경관이니 하는 ‘생소한 도전'에 나서야 했을까? 아니, 세간에 떠도는 말처럼, 그 돈을 가지고 뉴욕 메디슨 스퀘어 광장에 제주를 알리는 홍보판을 개설하고, 국제 유력지나 관광 매거진 편집진들을 대거 초청했으면 제주를 제대로 설명하고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생물권보전지역 되더니, 이의 관리는 제쳐놓고 세계자연유산 도전하고, 또 다시 세계지질 공원이란 타이틀을 얻으면서 ‘트리플 크라운', ‘3관왕' 운운하던 도정. 이후 새로운 도정은 다시 7대 경관이란 새로운 타이틀을 따냈다. 이제 또 어떤 타이틀을 따내야만 할까? 7대 경관이란, 혹시 골프장과 같은 각종 개발 -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 - 국제자유도시 개발 등을 잇는 신종의 정치적 실적주의의 산물은 아닐까?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지난 해 초겨울의 아침, ‘제주, 세계인의 보물 됐다!’, ‘제주, 세계의 보물로 우뚝 서다’와 같은 환호의 문구들이 그 날 도내 모든 언론들의 머리글로 굵게 새겨졌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혹시 ‘보물’이란, 이름도 생소하고 국적도 생소한 어느 상업회사의 ‘마케팅'이 빚어낸 ‘헛것’은 아닌지. 그 추상의 ‘보물’이, 7대 경관이라는 그 이름이, 지금껏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짝여왔던 제주의 자연들, 풍경들에게 혹시 또 다른 상처가 되었던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기지건설 공사에도 아직 살아 있다면, 그래서 돌아올 봄에 다시 피어난다면, 생물권보전지역 강정마을 구럼비 작은 오솔길에 반짝이고 있었던 하얀 찔레꽃에게 물어보고 싶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지난달 19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제1심 선고가 이루어졌다. 잘 알려진 대로 재판의 결과는 벌금 3천만 원. 함께 기소되었던 강경선 교수와 박명기 교수에게는 각각 벌금 2천만원과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피고인 간에 다소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는 이런 선고결과는, 아마도 박명기 교수가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직을 사퇴하는 대가로 처음부터 금전을 요구하고 또 이후에 계속해서 대화를 녹음하는 등 위법한 방법으로 급부의 이행을 압박해온 행위들이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더욱 불법의 정도가 높은 것으로(즉, 책임이 큰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현 교육감은 일단 업무에 복귀하였다. 교육행정의 현안이 간단치 않은 마당에 교육감의 복귀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이 판결이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결국 교육감의 당선은 무효가 되고 말 것이다. 재판의 쟁점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 후보직 사퇴의 대가로 돈을 주기로 한 ‘사전합의’가 있었는가. 그리고 둘째, 지급된 2억 원의 돈은 이러한 사퇴의 대가로 지급된 것인가, 아니면 곽노현과 강경선, 두 피고인의 주장대로 ‘선의의 부조’였는가. 나는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공판정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언론의 보도로 그 과정에서 진술된 증언들의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얼개나마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10년 6월 지방 선거가 있기 약 1달 전인 5월 중순경 당시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의 회계책임자가 서로 만나 단일화 협상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박명기 후보의 사퇴에 대한 대가로 5억 원을 건네기로 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사실은 박명기 후보에게는 즉각 보고가 된 반면, 곽노현 후보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곽 후보측의 보증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시 선거본부장이었던 최 모교수가, 어차피 곽 후보는 이를 승인하지 않을 테니 비밀로 하도록 지시한 때문이었다. 여하튼 합의 다음날 박 후보는 사퇴하고 곽 후보는 마침내 선거에서 승리하여 교육감이 되었지만, 금액을 지급하기로 한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2010년 10월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과도한 빚에 시달리던 박 교수의 사정을 알게 된 교육감이 그의 오랜 동료이던 강 교수에게 박 교수를 만나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 과정에서 그의 딱한 처지를 알게된 강 교수는 교육감에게 사전합의와는 별개로 박 교수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 때까지 이미 여러차례 박 교수에 대한 부조를 거절했던 교육감은 평소 그 인품을 잘 알고 있던 강 교수의 말에 따라 마침내 2억 원을 건네기로 하였고, 이를 강 교수가 박 교수에게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석방된 뒤 업무에 복귀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재판부는 이러한 증언들에 의해 ‘사전합의’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좀 더 정확히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교육감이 알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해당 조항, 그러니까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의 위반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위 조항의 제1호와의 관계에 비추어 제2호의 경우에도 사전에 금품제공의 약속과 같은 부정행위를 한 경우에만 적용이 된다는 변호인들과 몇몇 법학교수들의 주장을 충분한 설명 없이 부인한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재판부는 재판이 시작될 무렵,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 이러한 해석(즉, 사전합의의 존재여부는 제2호와 무관하다)이 있다는 점을 공지하면서 그러나 법원이 반드시 이러한 입장을 따르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여, 이 조항의 전향적인 해석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판결문에 나타난 재판부의 생각에 따르면, 결국 쟁점은 1가지로 좁혀진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지급된 돈에 ‘대가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 재판부는 우선 후보직의 사퇴와 금전의 지급 사이에는 사퇴한 후보와 금품제공자와의 관계, 사퇴로 인해 금품제공자가 이익을 얻었는지 여부, 금품의 다과, 금품제공의 시기와 경위 등에 비추어 객관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대가성을 피고인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했었는가 하는 점인데,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진술과 여러 정황을 들어 세 피고인이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재판부는 곽노현, 강경선, 두 피고인에 대해서는 ‘대가의 지급’ 이외에 다른 행위의 동기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사퇴한 박명기 교수가 겪고 있었던 극심한 경제적 곤궁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 내지 진보진영의 유력한 교육계 인사의 어려움을 못 본채 할 수 없다는 ‘이타적 동기’가 그것이다. 사실 이것은 이 사건이 문제되었던 맨 처음부터 교육감 측의 일관된 주장이었는데, “건네진 2억원은 ‘선의’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것이 없고, 이에 대한 국민과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겠”노라고 한 교육감의 말은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을 터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모두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러한 동기와 함께 지급된 돈의 대가성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범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본 것이다. 물론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적인 상급법원의 성격을 고려하면 유죄의 판단을 번복시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 아니 대한민국의 교육행정은 여전히 위기 상태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77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보편자 논의의 시발점  요즈음 (사)철학아카데미에서 <대결로 본 서양철학사>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 1월 27일 금요일 저녁에는 ‘중세의 보편 논쟁’에 관한 강의를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논쟁은 11세기 초에 안셀무스(Anselmus of Canterbury, 1033~1109)의 실재론에 이어 아벨라르두스(Petrus Abelardus, 1079~1142)의 명목론이 제출됨으로써 격화된 것이다. 플라톤이 이데아가 현실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 인간의 정신과는 별도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 이데아는 개별적인 사물들에 대해 보편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이러한 플라톤의 입장을 계승한 것이 안셀무스의 실재론이다. 그런데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낱말들밖에 없고, 흔히 말하는 사물의 실체나 본질을 보편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자란 이름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 셈이어서 명목론이라 부른다.  이 보편 논쟁이 심각한 의미를 가진 것은 기독교의 전통에 있어서 신을 절대적인 보편자로 여겼다는 사실 때문이다. 신이 절대적인 보편자라는 것은 신은 결코 현실의 개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된다는 전제 하에서,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는 이른바 신의 ‘편재성’ 내지는 ‘무소부재’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시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강의를 통해 이 같은 신의 절대적 보편성을 설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근대의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피노자는 ‘신=자연=실체’를 제시하면서 모든 개별자들 하나하나는 신의 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신이 보편자임을 염두에 두고서 이를 재해석하면, 보편자인 신은 개별자들로 분화되어 나타나면서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체의 것들을 무한히 망라해서 포섭하는 데서 성립한다. 개별자들이 없이는 결코 보편자가 성립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힘을 발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경외해마지 않은 인물이 바로 헤겔(G.W.F. Hegel, 1770~1831)이다. 헤겔은 그 유명한 자신의 변증법을 통해 결코 유한자와 대립되지 않는 무한자를 제시하면서 이를 진정한 무한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무한자를 존재론적으로 실현한 것이 절대정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헤겔은 이를 ‘구체적 보편자’라고 하면서, 현실에서의 그 실질적으로 구현된 형태로서 국가를 지목한다.  헤겔이 말하는 ‘구체적 보편자’는 개별자들의 공통점만을 추상적으로 끌어내어 성립하는 보편자도 아니고, 개별자들과 독립해서 따로 실재하는 보편자도 아니다. 거칠게 간추려 말하면, 그가 말하는 ‘구체적 보편자’는 첫째, 개별자들을 통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둘째, 개별자들이 갖는 부정적인 한계를 부정함으로써 개별자들을 넘어서고, 셋째, 개별자들이 갖는 긍정적인 위력들을 자신의 위력으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헤겔은 스피노자의 존재론에서 제시하는 ‘신=자연=실체’를 구체적 보편자의 모델로 본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의 변증법은 한편으로 스피노자의 현실의 개별자들이 무한한 보편자인 신과 갖는 관계를 생성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보편적인 하나의 몸이다. 이 ‘교회=몸’에서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외 몸의 지체들은 신도들이다. 그리고 그 활동성의 원리는 ‘코이노니아’, 즉 친교이다. 이 ‘코이노니아’는 오늘날 많이 언급되는 소통의 어원이지 싶다. ‘교회=몸’에서 드러나는 구조는 그야말로 실제의 인간의 몸에서 확보될 수 있는 유기체성이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한편으로 성부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적용하게 되면, 신과 인간들이 한 몸을 이루는 셈이다. 게다가 만약 ‘코이노니아’의 근원을 성령으로 보면서 아울러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적용하게 되면, ‘교회=몸’은 곧 스피노자가 본 ‘신=자연=실체’와 거의 유사한 존재론적인 구조를 띠게 된다. 이는 유대교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론이다. 그러고 보면, 유대인이었던 스피노자가 자신의 신론 때문에 유대교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것은 스피노자가 기독교적인 교회론에 입각한 신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에서 수령은 머리이고 당은 가슴이고 인민은 온 몸의 지체라고 해서 수령이 인민의 고통과 행복의 방향을 모를 수 없다고 하는 이른바 주체사상의 수령론이 기독교적인 ‘교회=몸’ 이론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편으로 스피노자-헤겔의 노선을 따른 이른바 구체적 보편자에 관한 존재론을 활용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종교와 정치는 근본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근대 서구의 사상에 입각해서 보면, 북한의 주체사상의 수령론과 그에 따른 정치 체제가 워낙 종교적인 방식으로 교리화 되기 때문에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종교와 정치가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특히 ‘교회=몸’을 강력하게 현실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가톨릭의 체제는 비난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정치 체제를 비난한다는 것은 다소 불균형한 태도이다. 더욱이 교황이 통치하는 바티칸과 같은 종교국가의 정치 체제를 아울러 생각하면 북한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정치 체제를 그 이유만으로 비난한다는 것은 더욱 불균형한 태도이다.  북한의 주체사상 특히 수령론에 입각한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 핵심은 인민들이 없이는 도대체 국가라고 하는 보편자가 성립할 수 없는데, 그 보편자의 지위와 위력을 특정 개별자인 수령에게 부여함으로써 인민들의 고유한 정치사회적인 인권과 자율적인 주권을 찬탈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지어 무오하다는 교황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비록 종교적인 차원에서 보편자를 대신하는 특정 개별자라고 하지만, 혹은 특별한 신적인 신비에 의해 머리인 그리스도를 현실에서 대변하는 자라고 하지만, 교황이 특정 개별자인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바티칸이라고 하는 특수한 종교국가에서는 현실 정치적으로 수령의 역할을 하고, 종교적으로는 수없이 많은 전 세계의 가톨릭 신도들에 대해 정신 정치적으로 수령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실제 서구의 역사에 있어서 교황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정치적인 힘겨루기를 얼마나 강력하게 수행했는가. 지금의 교황이 그런 역사적인 교황의 형태를 온존시키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신교가 생겨나면서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 정치 체제를 버리게 되었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엄청난 개혁을 이룬 것이지만, 그 원리에 있어서는 가톨릭과 동일하다. 예수라고 하는 특정 개별자를 절대적인 보편자로서의 신적인 위치에 올려놓고서 이른 ‘교회=몸’이라고 하는 보편자를 존재론적인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 구체적 보편자와 추상적 보편자의 구분   어쩌면 이 모두를 일단 구체적 보편자의 다양한 형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보편자에서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엄격하게 말하면, 정확하게 그것도 일종의 절대적인 형태로 머리를 갖추고 있는 구체적 보편자는 구체적 보편자가 아니라 추상적 보편자이다.  스피노자나 헤겔이 그러한 머리를 제시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맞아 그러한 머리를 잘라버린, 이른바 ‘아케팔로스’(akephalos)를 단행한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아케팔로스’는 아니다. 스피노자가 신적인 필연성을 주장한다거나 헤겔이 절대지를 바탕으로 한 절대정신을 주장한 것 등은 그들이 정말 머리를 절단함으로써 ‘머리 없는 몸’으로서의 구체적 보편자를 주장했다기보다는 ‘머리를 몸속에 집어넣은 몸’으로서의 구체적 보편자를 주장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이한 몸의 형태를 띤 구체적 보편자를 스피노자와는 달리 세속적으로 표현해 낸 인물은 철학자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이다. 루소는 인민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룬다고 보았고, 그 하나로 통일된 몸을 ‘정치적 몸’으로 보고, 그 몸에서 ‘일반 의지’가 발휘된다고 보았다. 이 일반 의지에 개별 인민들이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루소의 ‘정치적 몸’과 ‘일반 의지’에 관한 이론은 스피노자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구체적 보편자의 사상적 노선에서 핵심 매개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현대 철학으로 들어와 흥미로운 두 철학자가 있다. 한 사람은 질 들뢰즈(Gille Deleuze, 1925~1995)이고, 또 한 사람은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1949~)이다. 들뢰즈는 '기관들 없는 몸'(corps sans organes)을 주장하고, 지젝은 ‘몸들 없는 기관들’(organs without bodies)를 주장한다.  기관들이란 통일된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을 전제로 한다. 각 기관마다 통일된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을 유지 확대 강화하기 위한 역할이 배당되어 있다는 것이 기관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기관들 없는 몸’의 핵심적인 특징은 이른바 ‘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구체적 보편자에서 ‘아케팔로스’, 즉 ‘머리 잘라버리기’를 이론적으로 확실하게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구체적 보편자에서 아예 머리를 잘라버림으로써 몸의 유기체성을 아울러 파기했다. 머리가 있는 한, 몸의 기관들이 자신에게 고유하게 할당된 그 나름의 특정한 기능들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고, 머리의 현존을 통해 유기체성이 유지되는 한, 몸의 기관들이 자신의 존재 방식과 그에 따른 기능들을 횡단적인 방식으로 바꾸어 갈아 낄 수 있는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몸은 국가이고 기관들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이다. 들뢰즈는 수령이나 교황과 같은 혹은 그리스도와 같은 머리를 잘라 내버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스피노자에서 루소를 거쳐 헤겔에 이르는 구체적 보편자로서의 몸 내부적인 머리마저 잘라버림으로써 인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횡단적인 방식으로 각기 기능들을 다각화하고 또 서로 교환함으로써 그 나름의 특이성(단독성 혹은 유일성, singularité)을 갖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런데도 몸인 국가는 그 몸에서 인민들이 특이하게 발휘하는 온갖 주름들과 횡단선들로 넘쳐나는, 그 자체로 하나의 통일된 몸을 이루는 것으로 본 셈이다. 그러나 이때 들뢰즈가 말하는 국가인 몸은 그야말로 명목적이 보편자에 불과하다. 들뢰즈는 아벨라르두스의 명목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지젝은 ‘몸들 없는 기관들’을 내세운다. 이는 지젝이 들뢰즈를 정치사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이론적인 기획에 따른 것이다. 방금 제시한 들뢰즈에 대한 국가론적인 해석을 원용해서 말하면, 지젝이 말하는 '몸들 없는 기관들'은 국가가 없이도 개개 인민들의 완전한 자발성에 의해 사회체로서의 유기적인 조직이 성립한다고 본 셈이다. 비록 국가는 없지만, 기관들이 작동한다는 것은 인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유기적 조직인 사회에서 그 나름의 특정한 기능을 수행한다고(혹은 수행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국가 소멸론을 담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발상이다. 말하자면, 국가 없는 구체적 보편자로서의 사회를 겨냥한 셈이다.    이러한 지젝의 입장을 들뢰즈의 입장에서 보면, 지젝이 몸을 없애면서 머리를 남겨놓은 기형을 안출한 것으로 된다. 몸의 비유에 있어서, 적어도 머리가 없이는 기관들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젝은 이에 대해 얼마든지 응수할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이나 하등동물처럼 뇌가 없는 유기적 조직이 얼마든지 있고 또 거기에서 기관들이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머리를 베어버린 탓에 유기적 조직이 소멸되고 아울러 기관들이 소멸된 상태에서의 국가란 그야말로 국가도 아닌 국가에 불과하기에 철저히 무정부주의적인 상태를 거쳐 결국에는 어디에선가 수령이나 교황과 같은 머리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띤 것이라고 응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젝의 들뢰즈에 대한 공격은 들뢰즈 역시 그가 비판해 마지않는 헤겔처럼 ‘머리를 몸속에 집어넣은 몸’을 주장한 것으로 된다.      지젝이 들뢰즈를 후기자본주의의 이데올로그라고 비난하고, 또 "파시즘은 오로지 흩어진 요소들이 '다함께 공명할 때'에만 출현한다."라고 말하면서 들뢰즈가 '비합리적인 생기론적인 파시즘'을 은닉하고 있다는 바디우(Alain Badiou, 1937~)의 주장에 선뜻 편을 든 것은 바로 이러한 논리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래저래 대단히 복잡하다. 들뢰즈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체계를 대단히 싫어한다. 그러면서 그런 헤겔에게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친 스피노자는 높게 평가한다. 그것은 들뢰즈가 스피노자 식의 ‘구체적 보편자’에게는 머리가 없는데, 헤겔이 그 ‘구체적 보편자’에 머리를 만들어 붙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스피노자가 신적인 필연성을 제시한 것은 구체적 보편자의 몸속에 일종의 머리를 숨겨 넣은 것이라 할 수 있고, 이 스피노자의 신적인 필연성이 루소가 말한 ‘정치적 몸’의 ‘일반 의지’를 거쳐 헤겔에 와서 절대지를 인륜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국가로 변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들뢰즈가 헤겔을 부정한다면 스피노자도 함께 부정해야 한다. 스피노자를 부정하기는커녕 높이 떠받들듯이 상찬한 것은 그 자신이 제시하는 ‘기관들 없는 몸’ 역시 암암리에 그 속에 머리를 감추고 있는 몸임을 그의 의사와는 달리 인정하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또 다른 기묘한 사안이 있다. 들뢰즈가 ‘기관들 없는 몸’은 완전한 감각 자체의 몸이다. 이는 헤겔이 변증법의 출발점으로 삼은 ‘감각적 확실성’을 실체적으로 바꾸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들뢰즈는 헤겔의 변증법을 거꾸로 세우고자 한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물질 개념을 사회역사적으로 확대시킨 레닌을 존중해 마지않는 지젝이 또한 들뢰즈를 비판해마지 않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 3. 구체적 보편자인 국가와 추상적 보편자인 자본  플라톤이 말하는 보편자로서의 이데아는 현실의 개별적인 사물들이 그러그러한 사물이게끔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보편자인 책상의 이데아가 내가 쓰고 있는 개별자인 책상에 대해 위력을 발휘하고 내가 쓰고 있는 개별자인 책상은 보편자인 책상의 이데아를 최대한 닮고자 함으로써 바로 책상으로서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모습(Image of God)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개별적인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일 수 있기 위해서는 최대한 절대적 보편자인 신을 닮으려 하고 또 보편자인 신의 은총에 의해 그러한 닮으려고 하는 개별적인 인간이 인도받아야만 한다.  근대 국가에 있어서 국가는 보편적인 법과 제도를 갖추고서 자신에게 속한 개개 인민들을 이른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포섭해서 규정-지배한다. 그럴 수 있는 국가의 위력이 인민들 개개인의 천부적인 인권과 자율적인 주권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하는 것이 근대 국가의 본질이다. 결국 국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개개 인민들이 현실적으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대단히 중요한 것은 사회계약론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국가에서는 원칙상 이전의 군주와 같은 현실적인 머리 내지는 수령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신민으로부터 평등한 인민으로 전환되었다고 하는 것이 근대 정치로의 전환에 있어서 핵심 사안이다.  근대 정치에 대한 이러한 진단이 그 자체로 옳다면, 근대 국가는 플라톤이 말하는 최고의 이데아, 즉 최고의 보편자인 선의 이데아나 기독교가 말하는 절대적 보편자로서의 신 혹은 절대적 보편자로서의 신과 동일시되는 그리스도나 그러한 그리스도를 현실에서 대리하는 교황과 같은 존재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루소-헤겔의 존재론적인 노선에 따라 말하면, ‘돌출된 머리’를 완전히 제거해버리고서 오로지 인민들로만 구성된 정치사회적인 몸인 구체적 보편자로서의 국가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돌출된 머리’를 완전히 제거해버린 구체적 보편자로서의 국가가 성립할 수 있는가? 이른바 전 인민의 계약에 의거해서 대의적인 방식으로 임시적인 형태로나마 머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현실에서 보면, 개개 인민들이 직접 스스로를 제어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구체적 보편자로서의 국가를 형성함에 있어서 그리고 그 국가가 법과 제도를 통해 위력을 발휘함에 있어서 그 근본적인 원천이 되는 개개 인민들의 위력이 직접 발휘될 수 있는 길은 현실적으로 보아 그 폭이 상당히 좁다.  물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투표를 통해 대표 인물들을 정하는 데에 1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각종 시민사회를 형성해서 활동하고, 그 시민사회를 통해 공공성의 영역을 확장 심화해서 참여하고, 정당 활동에 참여하고,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는 데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인민들에게 열려 있는 여러 정치적인 행위의 기회들은 비록 임시적인 형태로나마 현존하는 머리(수령)가 갖는 일방적인 지배력을 가능한 한 제한하고 그럼으로써 구체적 보편자인 국가가 그야말로 ‘머리 없는 몸’으로서 개별자인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더 원활하게 진작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결코 통제 불가능한 또 하나의 거대 보편자인 자본의 위력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머리 없는 몸’으로서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왜곡되기 십상이다. 자본은 분명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과 그 노동의 산물들에 의해 결과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자본은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가 『거대한 전환』에서 말한 것처럼, 시장이라고 하는 이른바 자기 조정 기구를 통해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토지, 노동, 화폐를 상품화하고, 그럼으로써 자연, 인간, 사회관계를 상품화한다. 그렇게 상품화해서 결국에는 모든 가치들을, 그래서 심지어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자인 인민의 삶의 위력마저도 하나의 상품으로서 객관적이면서 탈색된 화폐량으로 표시되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은 보편자로서 그야말로 구체적으로 보편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체성은 진정한 의미의 구체성이 결코 아니다. 중세 기독교에서 절대적 보편자인 신이 그야말로 구체적으로 인민들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위력을 발휘하지만, 그 본래의 성격은 추상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은 엄격하게 말하면 추상적인 보편자이다.  개별자들의 위력을 바탕으로 하되 그 위력을 오로지 개별자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총괄적으로 끌어 모아 표현하는 보편자는 구체적 보편자이다. 그 반면에, 개별자들의 위력을 바탕으로 하되 그 위력을 총괄적으로 찬탈하여 오히려 개별자들을 일방적으로 규정·억압·지배하는 보편자는 구체적 보편자가 아니라 추상적 보편자이다. 물론 이 둘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본이라는 이 추상적인 보편자는 반드시 배타적인 소유자를 필요로 하고, 그러한 소유자에게 원칙상 무한한 소유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말하자면, 자본이라는 거대한 추상적 보편자의 경우, 근대 정치에서의 국가라고 하는 구체적 보편자와는 달리 원리상 얼마든지 최고의 머리(수령)를 지닐 수 있고 또 반드시 지녀야 하는 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체를 이루는 몸의 모든 부분들은 오로지 머리의 지배와 명령에 의거해서만 존재할 수 있고 기능할 수 있는 보편자, 즉 추상적 보편자이다. 자본이야말로 그 근본 성격에 있어서 파시즘적이다. 자본은 아예 개별자들의 주권적인 위력을 찬탈하여 역이용하기만 하려 할 뿐 그 자체의 가치 보존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그럴 때라야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보편자는 근본적으로 항상 파시즘적이다.      국가라고 하는 구체적 보편자와 자본이라고 하는 추상적 보편자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 원리적인 성격으로 보면, 둘은 상충하기 마련이다. 구체적 보편자로서의 국가는 자본이 개별 인민으로부터 찬탈해 간 위력을 다시 개별 인민들에게 되돌려 주고자 하는 본성을 갖는다. 그 반면, 추상적 보편자로서의 자본은 국가를 이용하고자 한다. 개별 인민들이 자신들의 위력을 총괄적으로 끌어 모아 표현하는 보편자인 국가를 승인한다. 자본이 그렇게 개별 인민들이 승인한 구체적 보편자로서의 국가가 갖는 위력을 찬탈하면 굳이 개별 인민들로부터 저항이나 오해를 받지 않고서도, 그러니까 최대한 합법적으로 자본은 개별 인민들의 위력을 찬탈하여 규정·억압·지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자본은 원리상 상충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구도에서 보면, 둘은 언제든지 통일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 어느 경우이건, 문제는 양자의 관계에서 어느 쪽이 더 주도권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자본은 최대한 국가를 하위 보편자로 만들어 수단으로써 활용하고자 하고, 국가 역시 최대한 자본을 하위 보편자로 만들어 수단으로써 활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원리상의 적대적인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자본의 보편적인 위력과 국가의 보편적인 위력이 어떻게 서로 조화 혹은 충돌하면서 어떤 결과들을 낳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어쩌면 세계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고갱이가 될 것이다. 자본이 국가를 하위 보편자로 만들어 수단으로써 활용하고자 하는 일이 대성공을 거두고 그럼으로써 경제활동이 정치활동을 완전한 수단으로 삼을 경우, 그리고 그러한 일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생겨난 파시즘 국가들의 형성과 그로 인한 파멸적인 결과들을 보아 잘 알 수 있다.  자본의 위력이 한 국가의 위력 안에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은 자본이 오로지 잉여가치인 이윤을 매개로 자기 확대 재생산을 기한다고 하는 원리로 보아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자본은 국가 간의 관계를 포섭하기까지 하면서 최대한 국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자 한다. 자본은 근본적으로 자유무역을 지향한다. 대단히 상식적이지만, 보호무역은 그만큼 국가가 자본을 규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세계화에서 근본이 되는 것은 바로 자본의 초국적화이다. 그에 따라 초국적의 금융 산업과 제조 기업들이 등장하는 것을 필연적인 과정이다. 하나의 초국적의 제조 기업이 국가의 법과 제도를 항상 규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임무는 자국의 인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위력을 그 자체의 가치로서 최대한 확대 심화시켜 되돌려 주는 데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자본을 수단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국가가 초국적의 자본을 길들여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국가 간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제국주의적인 거대 국가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국가가 초국적의 자본을 길들여 활용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국가들의 인민들이 노동을 통해 생산되는 자본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럴 때, 초국적의 자본 입장에서 보면, 제국주의적인 거대 국가가 존립하는 것이 ‘평등한’ 자립적 국가들만으로 국제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평등한’ 자립적 국가들은 그 나름의 경계를 만들어 그 경계 내에서만 자본이 활동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인 거대 국가와 초국적의 자본은 마치 샴쌍둥이처럼 한 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말하자면 거대한 구체적 보편자인 제국주의 국가와 거대한 추상적 보편자인 초국적의 자본이 한데 결합해서 한 몸을 이루는 셈인데, 이럴 때 과연 어떤 형태의 보편자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네그리와 하트가 말한 ‘제국’으로서의 추상적 보편자 중의 추상적 보편자라고 해야 할까? 왜 하필이면 여기에 근대화를 통해 이미 소멸되었다고 하는 기독교적인 추상적인 절대적 보편자가 현대 국제정치에서 쉽게 거론되는가? 추상적인, 그것도 절대적이면서 추상적인 신은 당연히 초국적이고, 또한 철저히 ‘제국주의적’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파시즘적이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초국적의 거대한 추상적 보편자인 자본의 위기이다. 추상적 보편자는 규모가 거대해지면 질수록 그리고 위력이 강화되면 될수록 종말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 자체 개별자들의 위력들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인데, 규모와 위력이 강화되면 될수록 개별자들로부터 위력을 찬탈하는 폭과 깊이가 강화·심화되면서 제 스스로의 기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면서 제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편자란 근본적으로 이름에 불과하다는 아벨라르두스의 명목론이 한껏 귓전을 울리는 이유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52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78년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읽고 난 이후였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현실이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심한 멀미를 하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빛의 화가 모네는 ‘건초더미’나 ‘루앙 대성당’ 연작을 통해 날씨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익숙한 자연이나 사물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표현한 바 있다. 난쏘공 역시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비추어 보인 작품이겠지만 중학교 3학년생이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마치 다른 나라의 이야기 혹은 꿈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현실일리 없어, 믿을 수 없어, 소설일 뿐이야”라면서 책을 덮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 작품을 다시 꺼내든 것은 1982년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잦은 거주지 이전 때문에 책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난쏘공이 던진 충격은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혹 루앙 대성당 연작 중 햇빛 강한 오후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2000년대 초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 그림을 보았을 때 기울기 직전의 따가운 햇살을 정면으로 바라 본 듯 눈이 부셔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그림을 보다가 다시 돌아가고 또 돌아가서 보기를 반복했다. 뜨겁고 나른하고 환한 그 오후의 햇살을 난쏘공에서도 본 듯 한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노동이 뜨겁고 나른하고 환하게 다가든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햇빛 강한 여름 오후나 여린 풀잎이 돋아나는 다정한 봄날의 오후에도 노동은 칼날 같거나 답답하거나 무겁다. 이 때문에 노동자인 대다수 시민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난장이 가족의 꿈과 희망이 좌절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오롯이 보여준다. 연극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한겨레21 201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하는 사람의 71.8%가 임금근로자 즉 노동자이다. 일하는 사람 10명 중 7명이 노동자이니 10명 중 8, 9명꼴인 다른 국가보다는 그 비중이 적지만 상당수가 노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제가 노동자인가요?”라고 되묻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노동관련 서적을 산 적이 있어요?”라고 하면 눈이 동그래진다. 사실 교보나 영풍문고, 알라딘이나 예스24 등에서 주, 월, 분기, 연도별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에 노동관련 서적이 명함을 내미는 경우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경영이나 자기관리 서적에는 선뜻 손이 가지만 노동이라는 제목이 달린 책은 불편하다. 그래서 작년 김진숙과 희망버스가 놀랍다. 정리해고를 한진중공업에서만 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 없던 것도 아니다. 2012년 1월 부진 인력퇴출시스템과 사망자수 증가로 언론에 오르내린 KT만 해도 민영화가 시작되고 IMF를 거친 후 2009년까지 구조조정 인원이 26,555명이다. 당사자들의 개인적 혹은 집단적 저항이 없지 않았지만 빨간 머리띠 노동자의 밥그릇 지키는 행위로 치부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한 해 동안 10조 이상 이익을 올린 4대 은행을 포함하여 일부 대기업에서 경기하락을 이유로 명예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일”이라는 관계자의 발언은 명예이든 희망이든 그 앞에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노동자 본인의 잘못이 아니지만 회사를 위해 퇴직을 해야 하는 것이 일상의 관행임을 뜻한다. 여기에 비정규직까지 고려하면 그 일상의 냉혹함은 상상을 넘어선다. 그러다보니 일상인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저항한 김진숙이 희망버스라는 사회적 동의의 아이콘이 된 현실은 창문을 열자마자 서쪽에서 뜬 해와 맞닥뜨린 기분이다. 다른 빛과 그림자로 노동이 그려지고 있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노동자, 노동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일까? 질문을 바꾸어 촛불시위가 광화문 거리를 수놓았던 2008년으로 되돌아가보자. 그 해 다양한 이유로 총 143건의 파업 혹은 농성이 있었고 짧게는 하루, 길게는 365일을 넘겼다. 혹 하나라도 기억하는 것이 있는가? 2008년이 너무 멀다면 2011년은 어떤가. 한진중공업 말고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아웃소싱에 반대한 뉴코아와 이랜드리테일(홈에버) 투쟁을 주도했던 당시 수석부위원장 이남신은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촛불은 끝내 홈에버 매장으로 오지 않았다. 10년 후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쇠고기 수입반대에는 그렇게 열정적인 시민들이 당장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의외로 차가웠다. 촛불은 아름다웠지만 계급적 문제에 대해선 무력했고 둔감했다.” 이 상황이 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르세에 걸린 모네의 그림 그 이상의 긴 시간동안 다양한 형태로 동일한 물음이 반복되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1월부터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막론하고 계약종료나 해고가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각종 집회와 시위, 노동 쟁의 역시 함께 터진다. 굳이 해고문제만이 아니다. 임금 및 근로조건의 개선, 고용승계나 불법파견, 일자리나 청년실업, 조직민주화와 공공성 강화에 이르기까지 이슈 역시 다양하다.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국가는 적정한 임금 및 근로조건을 보장할 의무가 있으며 대다수의 시민이 노동자이니 이와 같은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때문에 노동을 비추는 빛의 각도에 따라 노동은 어떤 모습을 띠는가. 노동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해가 바뀌어도 필자의 질문 역시 여전하다. 항상 노동을 연구나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마도 운명인가 보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며 새해를 맞는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117 | 추천: 0
홍미정/ 건국대학교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3년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 메디나 순례객 수가 1,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1년 11월에는 하지 순례자 약 250만 명이 메카를 다녀갔다. 이 중 180만 명은 외국인들이며, 70-80만 명은 사우디 거주민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국가별로 무슬림 100만 명 당 1천명의 하지 순례 쿼터를 할당한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무슬림 인구밀도가 높은 남아시아 출신의 가난한 순례객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메카 순례객들을 충분히 수용하기 위한 시설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그랜드 모스크 확장사업과 최고급 쇼핑몰, 최고급 시계탑 호텔 건물을 포함하는 초고층 복합빌딩 단지 건설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우디 당국의 메카 관광인프라 구축 사업과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1천년이상 존재해온 이슬람 문화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메카 그랜드 모스크 확장과 초고층 복합 빌딩 단지 건설 메카 태생의 유명한 이슬람 건축 전문가인 사미 안가위(Sami Angawi)는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개발정책은 이슬람 성지라는 메카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메카와 메디나는 역사적으로 거의 끝났다. 여러분들은 메카와 메디나에서 초고층 빌딩 이외에 어떤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메카와 메디나 개발 정책에 반대하면서 현재 메카를 떠나 이집트에 머물고 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인디펜던트지는 2011년 9월 24일자에서 “메카 소재 1천년 이상 된 건물의 95%가 지난 20년 동안에 파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유네스코에 등록한 두 개의 문화유산 목록에는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포함되지 않았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하나는 이슬람 문명 이전에 존재했던 나바티야 왕국(BC.1-AD.1)의 유적이고, 다른 하나는 사우디 제1왕국(1744-1818)의 수도였던 아라비아 반도 중앙에 위치한 디리야 유적이다. 디리야 유적은 사우디 제1왕국의 궁궐들과 유적들을 다수 포함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슬람 문화 유적들이 우상숭배, 다신교 신봉 등과 같은 죄를 고무시키기 때문에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주장은 사우디 제1왕국 시절 이슬람 정화를 내세운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이라는 이슬람 학자의 해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제1사우디 왕국은 알 사우드 가문과 압둘 와합 가문 사이의 결혼 동맹을 통하여 창설되었다. 이후 압둘 와합의 이슬람 해석은 우상숭배자와 다신교 신봉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우디 왕가의 공세적인 영토 확장정책을 종교적으로 합리화시켰다. 압둘 와합의 이슬람 해석을 기반으로, 제1사우디 왕국은 아라비아반도 내에서 이슬람 문화 유적을 파괴하고, 이라크에 있는 이슬람 성소들을 공격하였다. 예를 들면, 1802년 제1사우디 왕국은 나자프에 있는 시아파의 시조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 빈 아부 탈립의 무덤과 카르발라에 있는 알리의 아들인 후세인 빈 알리의 무덤을 파괴하였고, 메카와 메디나의 이슬람 초기 유적들을 공격하였다. 대다수 다른 무슬림들은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문화 유적 파괴 행위들을 극단적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하였다. 그러나 압둘 와합의 이슬람 해석은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들과 시아파를 비롯한 다른 무슬림들을 우상숭배자 혹은 다신교도 등으로 낙인찍고, 이슬람 문화 유적들을 파괴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통치 영역을 공격하여 사우디 왕가의 지배영역 확장을 위한 공세적인 정책을 강화시켰다.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사우디 왕가는 1915년 12월 영국과 앵글로-네즈드 협정을 체결하고 보호령(1915-1927)의 지위를 수락하였다. 이 협정에서 영국과 동맹한 사우디 왕가는 영국제 무기와 매달 5천 파운드의 군사원조 등을 영국 정부로부터 지원 받아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전쟁과 메카와 메디나(히자즈) 지역에서 하심가를 몰아내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927년 5월 20일 사우디 왕가와 영국이 체결한 제다 협정에서, 영국이 히자즈와 네즈드 지역을 통치하는 사우디 왕국의 독립을 승인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창설되었다. 결국 사우디 왕가는 영국과 동맹을 체결하여 상대 무슬림들을 공격하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압둘 와합이 제시한 와하비즘은 공격의 대상인 무슬림들을 우상 숭배자 내지는 다신교도로 규정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설을 위한 강력한 민족주의 이념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1924년까지 메카와 메디나 지역은 지역 패권자인 오스만 제국의 영역에 속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지방 통치자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가문이 700년 이상 메카와 메디나 지역을 통치해왔다. 영국의 후원을 받은 중앙아라비아 출신의 사우드 가문이 1924년 메카를 공략하여 점령하였을 때, 이들이 가장 먼저 한 행위는 이슬람 역사상 중요한 인물들의 묘지를 훼손시키고 유적들을 파괴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생가는 소시장으로 바뀌었다가 주민들의 항의로 도서관으로 변경되었고, 그랜드 모스크 확장 공사로 이 도서관조차도 파괴 위험에 직면하였다.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20세기 초까지 수 백 년 동안 이 지역 패권자이던 오스만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방 통치자이며 예언자 무함마드 후손인 하심 가문을 격퇴하고 창설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메카와 메디나에 존재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유적을 포함하는 이슬람 초기 문화 유적과 오스만 제국의 문화유산 일소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439 | 추천: -1
신하영옥/ 주부, 전 여성단체 활동가 비혼모들에 대한 교육의 기회가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였는데, 워낙 처음의 경험에서 진땀을 뺏는지라, 고사하다가 그간의 활동과 고민에 대한 끈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했고, 두 번째이니 좀 더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역시 마찬가지, 아니 처음 때보다 더 많은 섬세함과 인내를 필요로 하였다. 그동안 경험한 교육은 대체로 성인들이자 듣고 싶어서 참가한 ‘준비된’ 교육생들이였다. 그리고 여성문제를 알고 싶거나 현실에서 문제를 겪음으로서 고민 중에 있는, 문제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대체로 고등학교 이상의 가방끈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여성주의와 사회문제에 대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비전을 꿈꾸는 것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혼모들에 대한 그것은 그동안의 내 경험을 깡그리 뒤집는,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자괴감을 느끼도록 하는 과정이자 나의 훈련의 과정이었다. 먼저, 첫 번째 수업의 주제는 ‘여성주의’ 였는데 나는 사전에 잠재적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수업하였으면 좋겠는지 설문을 하였고, 연령대와 관심분야, 인원 수 등을 사전 조사하여 나름 그에 맞게 교육프로그램을 들고 갔다. 그러나... 첫 뚜껑을 열자마자 ‘쎄~한’ 분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며 진땀깨나 흘리다 마칠 수밖에 없었다. 여성문제를 알고 싶고, 여성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욕구, 즐겁고 재미있게 해 달라는 그들의 욕망에 대한 나의 판단은 어긋나도 한 참 어긋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왜? 그들은 일단 이 교육에 관심이 없었다. 기관에서 들으라니 듣고는 있지만 수업이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은 듯했다. 다음으로 그들이 장장 4시간이라는 교육을 듣고 있기에는 임산부라는 몸이 받쳐주기엔 명백한 한계가 존재했다. 셋째로 그들이 즐겁게 한다는 것은 그들의 용어로 그들의 놀이 방식으로 참여식의 수업을 전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림그리기, 게임, 영화보기 등... 그러나 나의 참여방식은 워크숍에서 쓰는 작업형식- 토론하고 발표하고 코멘트하기 -이었고 내용은 활동가들이나 여성주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즉 적당히 지적욕구가 있는 이들이나 이해할 만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욕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혼모지만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었던 것이다. 여튼 그 다음부터 용어와 방식을 대폭 수정하긴 했지만 5회를 하는 내내 미안하고, 나의 계급적, 문화적 한계를 절실히 통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실 두 번째 요청엔 겁이 났던 거다. 그리고 이번엔 주제가 ‘성적자기결정권’이었다. 두 번째 역시 쉽지 않았다. 아주 적은 인원이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약점이 되어 한 두 명이 분위기를 흐리면 전체가 흐트러지게 되었고 이번에는 아주 강적을 만났는데 참가자들 중 누구도 그 친구의 ‘포스’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 친구의 기분에 수업분위기가 좌우되는 상황을 처음엔 최대한 큰소리와 재미있는 말들로 집중을 유도하려했으나 결국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여 폭발하고 말았다. ‘나가!’... 돌아온 말은? ‘내가 왜 나가요?’ + ‘선생님 왜 화를 내요?’ + ‘내 말도 못해요?’... 아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일선학교 교사들의 비애로구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어찌어찌 썰을 풀어 잠재우긴 했지만... 그 이후 내내 어떻게 해야 할 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제압할 수 있을지 뭐 이런 생각으로 흘려보내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자괴감에 빠져야 했다. 대체 난 이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그동안 난 뭘 했을까? 내가 떠들어 온 여성주체들의 연대는 뭐냐? 여성주의의 확장을 말해 온 나는 대체 현실을 얼마나 알았는가? 라는... 그래서 나의 자괴감과 열등감을 해소 할 겸 그 기관의 활동가분들에게 사건들을 일러바치고 내 고민을 말하곤 하였다. 그 때마다 그 분들은 그 친구들이 자라온 가족환경, 입은 상처, 탈학교 경력 등에 자신들이 겪은 그들과의 생활에 대한 느낌을 더불어 털어놓곤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그들의 삶의 궤적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가족 내에서, 학교에서, 탈학교 후 길거리에서, 어른에서 또래까지 신체적 폭력에서 성적 폭력까지. 그들이 경험하는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말보다 주먹’으로 상대를 제압했을 때만 가능했다. 자신에 대한 존중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의 경험과 마음 안에 나는 ‘여성주의와 성적인 자기결정권’이 씨앗처럼 이미 자리 잡고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이다. 아니 적어도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의 경험과 상처, 그에 대한 극복과 수용과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없이 나의 언어와 나의 경험 속에서 말이다. 비혼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비혼여성축제 사진 출처 - 주간경향 그들과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은 결국 마지막 수업이었다. 마지막이 주는 안도감, 편안함이 아마도 주된 이유가 될 거라 믿지만 그래도 그간의 여러 과정과 시간이 만들어낸 약간의 공감과 이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까이 갈수록 나는 교육하는 자 라는 위선을 떨쳐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나이 때로 되돌아가서 탈선(?)하고 싶었던 또는 탈선해봤던 경험들을 가지고 그들과 그냥 수다를 떨었다. 때로는 욕설 섞은 농담도 하고, 종주먹을 들어 협박과 위협도 하는 폭력적 상황을 연출도 하고, 나의 여성폭력 경험도 나누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들과 내가 다른 시대이나 비슷한 경험과 비슷한 언어와 망가지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는 공감인 듯하다. 그리고 하나 더 느낀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서로 책임지고 수업의 분위기를 이어가도록 역할들을 맡겨 주는 것이다. 한 친구는 다른 친구가 책임지고 또 다른 친구는 또 다른 친구가... 이렇게 하자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서로를 챙기면 즐겁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여간 역할과 책임을 주는 것이 주체적,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되는 듯하다. 아마 다음에 다시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시민사회운동이 시민들에게 다가가가지 못하는 이유, 여성운동이 여성폭력피해여성들을 주체화하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본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내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던 욕망, 그들의 욕망을 나의 욕망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오류,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는 그들의 경험을 무색하게 하는 주장과 전달, 상처받은 이들은 무조건 지지하고 공감, 수용, 위로해야 한다는 담론과 그로인한 그들의 비주체화와 피해자와, 대상화의 오류, 일차적 욕망의 함의를 읽어내지 못하는 근시안적 분석 등등... 내가 그들과 하나 될 수 없었던 문제점은 너무나 많다. 딸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현재 딸의 경험과 처한 맥락을 읽어내지 않고 나의 경험과 현재적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규명하고 위로를 주려고 한다. 안타까워 우는 자식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도 내가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이미 나와 딸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플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고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딸, 당사자이다. 다만 나는 그와 함께 슬픔과 아픔의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 그의 처지에서 말할 줄 알고 그의 언어로 위로할 줄 알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나의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사회문제로 환원하는 역할을 스스로에게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문제/여성문제는 문제의 당사자들이 주체로 나서야 정확한 의미와 내용, 힘을 가진다. 그 당사자들을 만나서 지원하는 것이 활동하는 이들의 몫이라고 할 때 과연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이번 교육들을 통해 아주 조금 배운 듯하다. 전면적으로! 기대도 나의 맥락도 다 내려놓은 채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만 내가 이미 가진 것이 있을 때 그것을 편안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어렵다.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비혼모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그들을 볼 것이 아니라, 딸이자 엄마, 여자친구, 또래친구, 짱 등 다양한 그들의 정체성을 통해 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지을 때 그 사람은 그것만으로 나와 소통하게 되고 그 소통은 당연히 한계와 일면성을 가지며 전부를 알지 못하게 하게 마련이다. 전면적인 소통, 다면적인, 삶의 총체적인 소통을 통해 다양한 시민, 여성들이 사회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새로운 사회, 혹은 새로운 정치형성의 주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면 이러한 개인들의 ‘발견’ 혹은 ‘드러남’은 정치를 확장하고 재구성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이 고맙고 보고 싶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접어둔 채 엄마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고 해맑게 웃던 그 ‘포스’있던 친구가...
2017-07-21 | hrights | 조회: 12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