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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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석미화(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일본에 사나다 요시아키(眞田芳憲)라는 법학자가 계시다. 내가 일본에서 일 년간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일본에 머무는 동안에도 이리저리 큰 도움을 주고 계신 분이다. 일본의 주오대학(中央大學) 법대(한국으로 치면 고려대 법대)에서 은퇴하신 뒤, 지금은 WCRP평화연구소 소장으로 봉사하고 계신다. 로마법과 이슬람법 권위자시면서, 한국 종교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마치 옛 일본이 조선통신사를 고대하던 마음으로 나를 기다렸으며, 이제는 나를 한국 종교 선생으로 모시겠다고 진담 섞인 농담을 던지시기도 한다. 한국의 젊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를 낮출 만큼 인격적인 분이시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나이를 뛰어넘는 열정도 동시에 느껴지는 분이시다. 나는 요즘 매월 한국종교에 대한 논문을 준비해 그분을 비롯한 몇몇 일본 학자들과 함께 한국 종교 및 종교간 대화론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한 번은 종교의 역기능에 관한 논의 중에 사나다 선생이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평생 바쳐 일 해온 법률학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았다. 일본 법조계 주요 인물의 절반가량이 자신의 제자이지만, 일본 사회는 더욱 실망스러워지고 있으며, 자신이 평생 바쳐 연구하고 가르친 법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개탄스러워하셨다. 본래 정신과는 달리 현실에서의 법은 사회 정의 내지 인류의 평화와 거리가 멀다는 그분의 짧지만 강렬한 고백 속에서 내가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비슷한 상황이 중첩되어 떠올랐다. 이미 좀 알려지기도 했거니와, 나는 기독교계 강남대학교에서 기독교를 가르치다가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 교육부에서 나에 대한 재임용 거부는 객관적 사유에 근거하지 않은 부당한 처사이니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리자, 학교는 다시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에서도 동일한 결론을 내리자 이번에는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물론 학교 내 이런 강경파는 극소수이지만, 사태는 언제나 힘 있는 극소수의 목소리대로 흘러간다. 어쨌든 그로 인해 학교 측 변호사가 작성한, 이른바 항소용 준비서면이라는 것을 올 연말 동경에서 받을 수 있었다.   강남대학교 항소이유와 내용을 표현 그대로 요약하면, 기독교 시간에 기독교를 비판하고 타종교를 찬양하는 사람을 기독교 학교가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교육부, 행정법원을 거치면서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는지, 이제는 내가 아예 기독교를 비판하고 타종교만을 찬양하는 반기독교인처럼 둔갑시키고 있었다. 항소장은 사건의 근본 맥락을 벗어난, 말 그대로 침소봉대 자체였다. 이전 내용보다도 더 유치해진 듯 했다. 동일한 내용과 이유로 연달아 패소했던 탓인지, 거짓에 가까운 자료들도 동원되었다. 어떤 것은 한심하기까지 했다. 몇 년 전인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대학 후배가 자신의 직장 일이라며 원고를 요청하기에 ‘심볼리안’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사이비종교’에 관한 글을 보낸 적이 있었다. 동서양의 신비주의, 신화 등의 자료를 소개하는 사이트였다는 기억만 하고 하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를 구했는지, 항소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비기독교적인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비기독교적인 사람이라는 증거자료라며 내 글과 함께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상세한 소개서를 제출했다. 내가 쓴 글의 내용은 사이비 종교를 비난만 하지 말고 자신의 ‘사이비성’ - 겉으로는 진리와 비슷해 보이지만(似) 속으로는 아닌(非) – 도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비교적 교훈적인 글이었는데, 우스운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그 사이트에 글을 싣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며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출된 다른 증거자료들도 그런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긴 가만 보면 변호사가 그 내용까지 문제 삼을 능력은 없었던 것 같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정도의 글이라면 지금까지 족히 수백 편은 썼을 텐데, 겨우 그 중에 한두 개를, 그것도 내용 핵심도 파악하지 못한 채 결정적인 증거자료나 되는 듯 제시하는 변호사의 수준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더 뒤져서 내가 신문, 잡지, 인터넷 언론 등 기독교와 관계없는 수많은 곳에 기고하고 올린 글들은 왜 문제 삼지 않았는지 우스웠다. 이런 수준으로 무엇을 어떻게 변호하겠다는 것인지 웃음이 다 나왔다. 변호사가 종교에 문외한이라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항소장의 전체적 수준도 의심스러웠다. 객관적이지 않은 학교 측의 처사를 문제 삼은 교육부와 행정법원의 결정에 대해, 대학에는 자율성이 있어야 하며, 또 그 자율성에 따라 이루어진 재임용 심사에 심사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로 글이 전개되었다. 마치 중학생 수준의 논리와 작문 실력을 보는 느낌이었다. 별 말을 다 끌어내는구나 싶었다. 그 논리는 결국 자가당착에 빠져, 강남대의 결정이 주관적, 자의적이라는 것을 대신 입증해주는 것 같았다. 한숨이 또 나왔다. 그저 즐기며 편안히 대응해야지 싶다가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나로서는 또 한 번 이 유치한 논쟁 속에 긴 시간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법이란 무엇인가, 변호사는 무얼 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들도 법학도를 꿈꾸고 법조인을 희망하던 시절에는 정의의 편에서 어려운 이를 돕겠노라는 순수한 열망에 불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률 지식이 그저 하나의 직업이 되고 축재와 출세의 수단이 되는 순간, 변호사라는 직업은 수임료와 실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신숭배자’가 될 가능성이 무엇보다도 커진다. 진리라는 것이 있다고 할 때, 동일한 진리의 이름으로 쌍방이 싸워야 하는 변호사들은 둘 중 하나는 잘못된 편에 설 수 밖에 없을 테니, 변호사는 태생적으로 진리와 정의를 온전히 실천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자기편 의뢰인에게는 기쁨을 줄 수 있겠지만, 상대방에게는 아픔을 줄 수밖에 없는 잔인한 직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사건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걸리다시피 중요한 문제를 단 며칠 만에 다 파악하고 또 판단할 만한 능력이라도 있는 냥, 남의 인생 전체를 쉽사리 규정하는 직업적 분위기 역시 가당치 않게 느껴졌다. 나의 월권이고 오만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변호사가 이러한 근원적 오류를 범하지 않고 법 본연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건을 맡을 때 절대로 돈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받지 않아야 할 아픔과 상처를 받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품어야 한다. 사건 자체가 사회적 정의에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먼저 두루 진지하게 탐색한 뒤, 정의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그 때 양심을 걸고 정의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것이 변호사이다. 그 때 생긴 수임료는 정당하고 떳떳한 대가가 될 것이다. 거꾸로 정의롭지 않다고 판단되면 변호를 맡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정의롭지 않은 일들은 법정에 설 일이 줄어들 테고 결국 자연 도태되고 말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변호사는 가난해지거나 적어도 부자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풍요로운 가난의 길을 가는 것이 법조인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들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고 법 본연의 정신을 사회 속에 ‘구체화’시켜 주지 않겠는가. 나는 변호사도 아니고 법률 공부를 한 적도 없지만, 법원 서류 한 두 번 받아보고는 대번에 느꼈다. 법조인의 현실적인 한계라는 것을……. 수십 년 법학을 연구하고 가르친 일본 법학계의 권위자 사나다 선생의 절망과 한탄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변호사들에게도 정말 묻고 싶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느냐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냐고… 물론 언제나 정의 편에 서려는 존경스러운 변호사들도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가능한 한 불의 편에 서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양심을 지닌 법조인도 못지않게 많을 것이다. 그래서 가난할 수밖에 없는 변호사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법조인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이라면 알 것이다.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돈과 권력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 편에 서고자 하는 이라야 진짜 법조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한 때 유행하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정말 유치원 시절에 배운 삶의 이치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와 희망은 품어도 되는 것일까. 하늘의 뜻을 실천하겠다며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이들도 어느 순간 직업형, 사업형 목사로 전락하고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룩한 하늘의 이름을 팔아 이웃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상이니, 법률의 세계에선들 무엇이 다르겠으며 무엇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실종된 정의와 양심을 회복하기는커녕 현실이라는 미명 하에 정의와 인권의 본질을 전도시키는 일도 다반사니 말이다. 철학자 가다머가 자신의 책 <진리와 방법>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방법’이 ‘진리’를 압도하는 세상 속에서 그 세상의 방조자로 산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이 음성적으로 더 그렇게 되도록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니 법조인과 교회가 그렇게 많아도 사회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아니 법조인과 교회의 숫자는 인간답지 못한 세상의 척도로까지 쓰이기도 한다. 그런들 어쩌랴.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정의와 인간의 근본 가치가 회복되기를 희망하며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독교인의 팔자이기에, 나는 그저 내 식대로 기독교적인 길을 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그 말이 다소 거창하다면, 최소한 나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받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진리는 죽임이 아니라, 이웃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생명을 살리는 아주 작고 단순한 데 있다는 사실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38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솔직히 이번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는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누구 하나 마음에 드는 후보도 없을뿐더러, 그마나 정책대결의 시늉이라도 하던 과거 대선과 달리 후보들의 정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진흙탕 싸움만 구경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우울해서 신문도 보지 않았다. 친 재벌 정책을 옹호하는 후보가 서민경제를 살리겠다고 하고 노동단체가 지지성명을 발표하지 않나, 좌파정부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좌파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좌파정부라는 비난이 근거 없는 오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집권여당의 후보가 세금폭탄 없는 나라(세금폭탄은 부동산 가격이 갑자기 올라서 재산이 엄청 늘어난 사람이나 맞는 폭탄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나 온통 뒤범벅이 되어 도무지 정체성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다보니 내 주변에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고, 후보자 12명 이름 위에 모두 도장을 찍고 나온다는 사람도 있고, 투표하러 가는 대신에 여행이나 가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본래 민주주의란 국민의 참여에 의해 그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 그 핵심이고, 5년에 한번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는 모든 국민이 투표를 통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날이기 때문에 축제일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공약이나 정책은 아예 뒷전이고, 어떤 후보가 국민의 의사를 잘 대변할 수 있는가하는 고려도 완전히 무시된 채 선두를 달리는 후보의 범죄혐의와 거짓말을 둘러싼 첨예한 공방만 계속되었고, 그 후보는 당선이 된 이후에도 특검에서 조사를 받고 최악의 경우 당선무효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게 생겼으니,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선거가 축제일이 될 리 만무하다. 이처럼 유권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선거에서 뽑힌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어차피 국민들은 “그 놈이 그 놈”이고 “어디 깨끗한 놈이 있나”라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반감에 젖어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 선거였다.   대선개표현장 사진 출처 - 뉴시스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어찌되든 민주화 세력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런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지 뼈아프게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과 대안 없이 열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상대적으로 도덕적이라는 점만으로 모든 잘못이 용서되리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누린 기득권에 취해 자만한 것은 아닌지. 수구 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구호를 내세우고 집결하는 동안 소위 민주화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마음을 얻고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선거의 결과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적인 기대를 저버린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일 뿐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포기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기대가 더 큰 회의와 실망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한탄하거나 선거결과에 실망할 때가 아니라,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시작할 때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노동시장의 위기, 빈곤층의 문제, 환경위기, 부패한 재벌의 문제 등 경제. 사회적 기득권층과 그 나머지 국민들의 이해가 대립되는 중요한 의제들이 수없이 널려 있다. 민주화세력은 이러한 의제들 속에서 누구의 입장을 대변할 것인가를 명확히 정하고 그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10년 동안의 집권 경험은 유익한 자산이 될 것이다. 현 정부가 그런 것처럼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 아니라, 몸을 낮추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일상의 삶을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가 끝나도 삶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에,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지금까지 꽤 먼 길을 걸어 왔는데 실망하거나 포기하고 주저앉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2017-06-22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농산물 수입개방과 한ㆍ미 FTA 협상의 타결로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울상 짓게 만들더니, 이제는 기승을 부리는 도둑들로 인해 잠까지 설치게 만들고 있다. 범행수법도 집 근처를 노리는 ‘토착형 절도’보다는 차량을 이용하여 전국을 무대로 뛰는 ‘여행성 절도’가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예전같이 먹고살기가 어려워 먹을 것을 훔치던 생계형 범죄자는 점차 없어져 가고 있지만,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기범이나 농촌의 농산물을 훔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힘들여 재배한 인삼, 쌀, 참깨, 고추 등 농산물을 송두리째 훔쳐 가거나 소, 돼지, 개 등 가축까지도 절취해 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년에서 길게는 5년 이상 피와 땀을 흘려 가꾼 자식 같은 농산물을 한 순간에 송두리째 도난당한 농부들의 참담한 심정은 삶의 의욕마저 잃게 만들고 있다. 농산물절도는 물론이고 비닐하우스 파이프, 농기구, 구리전선 등 돈이 되는 것이면 닥치는 대로 훔쳐가고 있다. 더욱이 농사용 전깃줄 절도는 겨울철 시설하우스의 전력공급 중단을 초래하게 되어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에 냉해까지 발생케 하고 있다. 흔히 범죄자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몇 가지 원칙에 의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한다. 그 첫 번째는 범죄를 통하여 얻게 되는 이익이 범행 후 체포되어 받게 되는 고통이나 처벌보다 클 때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범죄를 사전 예방하기 위하여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 있을 만한 형벌을 부과하는 법률을 두고 있다. 두 번째는 감시가 허술하고 보호능력이 약한 대상을 범죄대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소위 상황적 범죄예방이론으로 범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을 통제하여 범죄를 예방하려는 것이다. 농촌지역의 절도는 도시에 비해 범죄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쉽게 제공되기 때문에 범죄가 자행되는 면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범죄기회의 제공을 차단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기범이나 농촌의 농산물을 훔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림 출처 - 국민일보   우선 농번기에는 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낯선 사람을 예의 주시하는 게 상책이다. 농촌지역을 돌아다니며 절도행각을 벌이는 절도범들은 빈집처럼 보이는 집에 들어가 인기척을 한 후 반응이 없으면 도둑질을 하고, 누군가 있으면 집을 잘못 찾은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빈집털이범들은 농촌지역의 대부분 집들이 출입문이 잠기지 않아 도둑질하기가 수월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아울러 예금통장의 비밀번호도 집 전화번호, 자동차번호 등 쉬운 번호를 쓰거나 통장에 기재해 놓아 쉽게 예금이 인출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할 일이다. 두 번째는 농촌주민들이 자율방범대를 결성하여 순찰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경찰에서도 농촌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농ㆍ축산물 도난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취약시간과 장소를 선정하여 현장검거 체제를 구축하여 활동하고 있다. 또한 관서별 실정에 맞는 기획수사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관서별 농ㆍ축산물 절도사건 수사 자료의 공유 등 공조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신속한 검거와 피해품의 회수를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그러나 넓은 농촌의 관할구역 때문에 경찰의 순찰에는 한계가 있어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자율방범을 활성화하고, 경찰과 합동 순찰을 도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셋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CCTV를 설치하는 것도 농촌 절도를 예방하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김장철을 맞아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배추와 무 등 가격이 급등한 채소류를 노린 절도범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절도범들은 주로 국도변 등 인적이 드문 소규모 텃밭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곳과 마을 입구나 큰 도로로 이어지는 곳에 CCTV를 설치해 나가는 것이 범죄예방을 위해 서둘러야 할 일이다. 끝으로 범행을 목격하거나 사건이 발생하면 즉시 신고하는 것이 제2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농촌지역 범죄예방대책들을 서둘러 마련하여 농민들을 두 번 울리는 농ㆍ축산물 절도가 뿌리 뽑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2007년 11월 26일부터 부시 대통령의 중재로 미국의 아나폴리스에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은 내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들 중의 하나로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에 대한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2007년 현재, 1949년 12월 수립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UNRWA)에 등록된 약 450만 명을 포함하여 745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존재한다. 이 중 45만 명은 이스라엘 국내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시민이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이다. 난민은 전 세계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총인구 1천 10만 명 중 약 70퍼센트를 차지한다. 난민들 대부분은 주변 아랍 국가에서 ‘거주 외국인’으로 취급을 받으면서 정치적인 권리는 물론이고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 선택과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 추방 위협에 시달리면서 불안정하고 열악한 생활을 계속해 오고 있다. 1947년 11월 29일은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하여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설하도록 요구하는 결의를 함으로써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계속되는 대참사가 시작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설 과정에서 이스라엘 영역이 될 지역에 거주하던 총 원주민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으로부터 추방되었다. 1967년 전쟁을 유발한 이스라엘은 동 예루살렘, 서안, 가자를 점령하였고, 이 지역 총 원주민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40만 명의 난민이 다시 발생하였다.   지난 11월 2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수천명의 하마스 지지자들이 미국 아나폴리스에서 열리는 중동평화회의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난민은 2007년 현재에도 이스라엘 군사 점령지와 이스라엘 본토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06년 여름에 이스라엘 군사 작전으로 가자 지역에서 5천 1백 명의 점령지 내부 난민이 발생했다. 2002년 이후 동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서안 지역에서 분리 장벽 건설과 군사 통치와 관련된 사업으로 주민의 17퍼센트가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했고, 요르단 계곡에서 폐쇄와 주택 파괴, 강제 퇴거 등으로 수 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서안의 다른 지역으로 추방당했다. 2006년 이스라엘 정부는 네게브와 갈릴리에서 유대 공동체의 독점적인 이익을 위한 도시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토착의 팔레스타인 공동체들을 파괴하고 추방하였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주변 아랍 국가들에서도 이 난민들의 2차, 3차에 이르는 대규모 축출은 현재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06년 여름(7월 12일, 8월 14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으로 레바논 소재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난민들이 축출되었다. 이 난민 캠프들이 직접적인 목표물은 아니었으나 캠프 근처에 빈번하게 폭탄이 투하되었다. 약 1만 6천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 내 다른 지역과 그 이웃 국가들로 축출되었다. 2003년 이후 2007년까지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점령으로 이라크에 거주하던 약 3만 4천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 중 50퍼센트 이상이 이라크로부터 추방을 당했다. 1994년에 리비아 정부는 오슬로 협상에 불만족하다는 표시로 당시에 리비아에 거주하던 약 3만 5천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 대부분을 추방하였다. 1990년-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당시에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이라크와 동맹을 맺었다는 이유로, 쿠웨이트와 걸프 아랍 왕국들은 4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대거 추방하였다. 이렇듯 중동에서 발생하는 분쟁 중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휘둘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연맹 소속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으면서도,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을 위한 현실적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거류 외국인으로 간주하면서 이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소유한 땅의 2/3를 유대인을 위하여 몰수했다. 1948년 이전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현 이스라엘 국가 영역을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전체 땅의 90퍼센트 가까이 소유했었지만, 오늘날은 오직 10퍼센트의 땅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추방과 몰수가 처음 시작된 1948년 이후 60년이 경과하고 있지만, 주변 아랍 국가들로 추방된 난민들과 이스라엘 국내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은 여전히 계속되는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2차, 3차 추방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난민들의 대참사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유엔은 총회 결의와 안보리 결의 등을 통해 ‘난민 귀환권’을 되풀이해서 보장하였다. 1948년 12월 11일자, 유엔 총회 결의 194호, 이후 1967년 7월 4일자, 유엔 총회 결의 2252호, 1981년 12월 16일 유엔 총회 결의 36/146호 등과 1967년 6월 14일 유엔 안보리 결의 237호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유엔은 ‘귀환권 보장’이라는 같은 내용의 결의만 되풀이할 뿐, 이 결의를 현실적으로 실행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이스라엘은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뿌리를 근거로 1948년 난민들이 이스라엘 본토로 귀환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후 군사 점령 상태에 있는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지역으로부터 추방된 난민들이 이들 점령지로 귀환하는 것도 역시 가로막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와 관련된 유엔 결의와 국제법에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난민의 귀환 문제는 1990년 이후 계속돼 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의 주제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 난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과 이 지역의 평화 정착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한국인에게 일본은 물가가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특히 여행자에게는 대중교통비가 다소 비싸게 느껴지고, 공부하는 이에게는 책값이 부담스럽다. 일본에서 읽어야 할 책이 많은 내게도 책값은 적잖은 부담이 된다. 그런데 책을 사고 값을 지불하면서도 뿌듯할 때가 있는데, 바로 중고서점에서이다. 남들 손에 머물렀던 것이기는 하지만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 책을 정가의 십분의 일 이하로 살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에 온 지 두 달여 만에 읽고 싶은 책을 백여 권 남짓 샀다. 일본 책 백여 권이라니, 정상적인 가격대로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인데, 중고책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세히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전체 금액은 아마도 한국 돈 이십만 원을 한참 밑돌았던 것 같다. 중고서점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곳들은 대학가 근처나 시내에 한국의 옛 청계천변에 있던 소규모 중고서점 같은 곳들이다. 하지만 그런 데서는 아무래도 책 찾기가 여의치 않고 또 규모도 크지 않아 구경만 했지 직접 살 기회는 없었다. 그런 곳과는 달리, 중고서점이지만 제법 많은 서적들을 주제별로 또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전문서점들도 있다. 중형급 서점의 형식을 갖추고서 약간 철지났거나 남들 손에 있던 책 - 물론 보기에 문제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은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다 - 을 한 권에 105엔(800원 가량) 정도에 파는 곳이 있다. 내가 종종 들르는 Book·Off라는 서점이다. 105엔짜리 책도 팔고, 정가의 절반 가격 되는 책이나 잡지도 팔고, 영화 DVD나 음악 CD도 판다. 잠깐 서서 책만 읽다 가는 사람들도 많다. 중간 중간 50권 이상이면 직접 매입하러 가겠다는 안내문구도 붙여놓았다. 이 서점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어 일본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자전거로 5-10분 정도면 갈 거리에 세 군데가 있다. 저녁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자전거로 씽씽 이 서점까지 한 바퀴 돌아오는 게 나의 소박한 일상 중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거의 헐값에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고서점이니만큼 원하던 제목의 책을 쏙 뽑아들긴 힘들지만, 그와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우연히 만나는 기분은 썩 괜찮다. 이곳에서 책을 제일 많이 샀다.   약간 철지났거나 남들 손에 있던 책을 한 권에 105엔(800원 가량) 정도에 파는 Book·Off라는 서점 사진 출처 - 필자 동경에 최근 Book Bank Club이라는 서점이 생겼는데, 깨끗하게 차려놓고 잔잔한 음악도 흘러나온다. 여기서는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책들을 반값 정도에 살 수 있다. 여기서도 대여섯 권정도 샀나 보다. 이와 비슷한 서점은 물론 더 있다. 그리고 약간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내가 머무는 숙소 근처에 구세군교회가 있는데, 그곳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2시까지 바자회를 연다. 주로 의류, 가전제품, 식기류, 가구류 등 중고 생활용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물건도 제법 많다. 나도 여기서 방석과 전기장판 등 생필품을 헐값에 사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주로 찾는 것은 역시 책이다. 전형적인 중고 책들인데, 그 대신 정가의 십분의 일 이하로 살 수 있다. 전문 서점이 아니라 규모는 작지만, 여기서도 괜찮은 책들을 모두 서른 권 가량 샀다. 내가 이 책들의 새 주인이다 싶어 뿌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른 권 가량 사고도 한국 돈 이만 원 약간 넘는 정도로 해결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바자회의 수익금으로는 사회사업을 한다니, 경제적 여유는 별로 없어도, 책을 사면서 생겨나는 마음의 여유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 한가했던 책꽂이가 이렇게 값싸고 좋은 책들로 채워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제목만 보고 다 넘겨보지 않아도 제목 속에서 마치 영화를 감상하는 것 못지않은 상상력도 생겨난다. 그것도 좋은 경험이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한국의 중고서점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매년 쏟아져 나오는 그 엄청난 책들이 사람의 손에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닐 테고, 또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가도 다시 쓸모없어지는 책도 부지기수일 텐데, 그 많은 책들이 그냥 폐지가 되고 만단 말인가. 하긴 나도 오래된 책들을 그저 폐지함에 버린 적도 있다. 재활용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도 했지만, 달리 처분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일본 중고서점을 보면서 더 안타까워진다. 책들의 활자가 인쇄되기까지 들어간 모든 자원과 노력들을 생각해보니 제대로 읽히지도 않은 채 쓰레기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한국 책의 소모적인 현실이 안타까웠다. 책한테도 미안했다. 나도 책을 몇 권 썼지만, 내 책도 저렇게 버려질지 모른다 생각하니, 내가 버렸던 책의 저자한테도 미안했다. 지구한테도 몹쓸 짓을 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한테 미안하지 않고, 저자한테 미안하지 않고, 지구한테 미안하지 않으려면 역시 필요한 여러 사람 손에 책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을 일본 중고서점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돈 없어도 책을 거저, 적어도 싸게라도 사볼 수 있어야 좋은 사회 아닌가. 그만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에게도 권리가 있지만, 책에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일본 중고서점에서 느꼈다. 여러 사람에게 오랫동안 두루두루 읽힐 권리.
2017-06-22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교수 1. 얼마 전 졸업한 지 30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이 모였다. 느지막이 참석한 자리에서 옛일을 돌아보고 웃음꽃을 피웠다.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담담히 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조금씩 나이의 무게를 느낀다. 물레를 돌려 ‘청(靑)5번’을 뽑고 그날 5시 라디오에 귀 기울여 어느 사립중학교에 배정된 후, 빗물 흐르던 계곡(?)이 뚜렷하고 비 오는 날이면 운동화에 흙이 떡처럼 달라붙던 운동장에서 자갈을 줍고, 건물 증축공사를 할 때 벽돌을 나르던 일, 겨울인데도 깨진 유리창을 한 달이 넘도록 갈아 끼워주지 않던 무심함을 탓하던 마음도 이젠 그저 그렇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공금횡령사건과 교장선생님의 구속... 조회시간에 이 사건을 해명하던 교장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말았던 기억이 스친다. 교실방화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울하게 당한 친구의 이야기... 그때도 지금도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 잘 알고 있었다. 횡령은 누가 했으며, 교장선생님만 억울하게 됐다는 것, 불 지른 범인이라던 친구는 진짜 불 지른 아이를 ‘불지 않고’ 매를 맞아낸 참 멋있는 놈이었다는 것 등 그때도 지금처럼 친구들은 이미 성숙해 있었다. 어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니들이 나이 들면 이 모든 일들이 뭐가 문제였는지를 다 알게 될 거라고... 돌아보면 그 때도 알 건 다 알았다 싶다. 그러고도 학교 잘 졸업하고 공부 열심히 한 게 신통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세월의 무게와 학생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쳐주시던 몇 분 선생님들의 사랑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2. 김포외고 시험문제를 교사가 밖으로 빼돌려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문제를 빼내 학생들에게 제공한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의 합격이 취소되었다. 세세한 사실관계까지 알 수는 없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그 학원에 다니고 있다 또는 다녔다는 사실 때문에 합격이 취소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송을 제기하면 뻔할 뻔자로 학생들이 승소할 사건으로 보이는데 학교는 합격을 취소하였다. 일반계 고등학교 시험을 보게 하려면 빨리 취소할수록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못은 영문도 모르고 문제지 받아서 읽고 우연히 읽은 문제가 나와서 정답을 골랐든, 주는 문제 읽어보니 쉽게 풀 수 있는 것이어서 시험에는 더는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합격하고야 만 수험생들에게 있지 않다. 시험문제를 빼돌린 교사와 문제유출을 막지 못한 학교, 그리고 돈을 주고 문제를 빼낸 학원 말고 이게 학생이 책임을 질 문제인가? 설사 학원에서 나눠준 문제를 보고 도움을 받아 합격했다 손쳐도 이게 합격을 취소할 일인가? 그걸 준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걸 받고 합격한 학생도 평생 동안 그 일은 분명 떳떳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이상의 비난이나 불이익을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부인할까? 학교에 다니든 다니지 못하든 이 사건에 얽혀든 학생들은 평생 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갈 텐데 어른 아니 선생이란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더 큰 상처만 주고 있다. 사건의 본질이 뭔지는 모를 아이들이 아니잖은가? 문제 학원에 다니던 수험생들의 합격을 취소하는 것도 교육자들이 걸을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넉넉하게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선생으로서 참 미안하고 안타깝다.   김포외국어고등학교 사진 출처 - 김포외국어고등학교 홈페이지   3. 로스쿨 광풍이 불고 있다. 말 그대로 미친바람(狂風)이다. 로스쿨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계획에 그럴싸한 실적 만들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예를 들자면, 로스쿨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에게는 5년 동안 논문 800%가 요구된다. 쉽게 말하자면 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술지에 논문 한 편을 단독으로 실으면 100% 실적이 인정되니 5년 동안 8편을 쓰면 로스쿨 교원으로 적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출판해도 마찬가지이다. 로스쿨법이 통과된 이후 9월에서 10월중에 법학논문과 서적이 엄청나게 출간되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책을 나눠서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 필요한 양만큼만 찍어내기도 한다. 5년간 논문 한 편 안 쓰던 분이 갑자기 논문과 책을 합하여 800% 요건을 맞춰내니 신기에 가깝다. 어느 출판사직원은 이런 모습을 두고 2007년 9월과 10월중에 출판된 법학 책은 아예 인용을 할 가치조차 없다고까지 독설을 퍼붓는다. 교원이 강의중인 10월 중에 학교를 옮기고 갑자기 시간강사 신분이 되기도 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또 다른 학교에서 그렇게 교원을 ‘모셔’오기도 한다. 학기 중인데도 주저함이 없다. 로스쿨이 된다 해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보다도 더 세상물정을 알 만큼은 다 아는 법학전문대학원생들에게 정의와 공평을 어떻게 가르칠지 걱정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정신이 몽롱하다. 날밤을 새웠기 때문이다. 어제 밤도 로스쿨신청서를 만들다가 아침을 맞고야 말았다. 선생 탓을 할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 된 지금 나는 이제 이런 꼴을 만드는 제도와 극심한 경쟁만을 탓하여야 할까. 마음이 무겁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이광조/ CBS PD 현직 국세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사상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강변하던 사람이 구속된 뒤에는 ‘혐의사실을 인정하면 형량을 줄여줄 수 있냐’고 협상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짜증 지대로다. 그런데 이 분은 취임 첫날부터 집무실에서 공공연히 상납을 받았다고 한다. 가증스럽다. 전군표 국세청장의 소식을 접하며 어릴 적 어른들에게서 듣던 얘기가 떠올랐다. 세무서 다니는 사람들은 장판 바닥에 지폐를 깔고 베개에 지폐를 넣고 잔다고 하더라, 결재 서류를 올릴 때 돈을 끼우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고 하더라... 세무공무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군표 국세청장이 취임첫날부터 집무실에서 공공연히 상납을 받았다면 그가 특별하게 돈을 밝히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짐작이 자연스레 생긴다. 대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공무원이랑 화투 쳐서 돈 잃어주는 게 내 일’이라고 푸념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열불 나는 차에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불법승계, 정관계 로비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졌던 문제라 새로울 건 없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파장이 큰 건 한 때 삼성그룹의 고위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 이사를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대한민국 최고 기업’, ‘세계 일류 기업’ 삼성의 행태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기업범죄를 다스려야할 검찰을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뇌물을 먹이며 관리했고 정치권은 물론 국세청을 포함한 국가기관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관리해왔다고 한다. ‘떡값’이라는 훈훈한 표현 덕분이었을까. 자신이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공직자 중에는 자신이 삼성의 관리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다고 하고 몇몇 모자란 사람은 ‘나한테는 왜 안주냐’고 볼 멘 소리를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16일 오후 삼성 본관 앞 도보에서 열린 '삼성그룹 불법비자금 규탄 및 처벌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이건희 회장의 탈을 쓰고 나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조직을 위해 국가조직을 관리대상으로 삼았던 삼성. 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보여준 관리방식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차별화된 관리 기준에 있는 듯 하다. 검사라고 다 똑 같은 검사냐. 학벌 좋고 성적 좋고 보직경로가 좋은 사람이 관리대상이란다. 뭐 이 정도야 어떻게 보면 상식에 속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같은 무지렁이를 감탄하게 만든 건 국세청 등 돈과 직결된 국가기관에 들어가는 뇌물의 규모가 검찰보다 훨씬 크다는 김 변호사의 증언이다. 어차피 법의 심판을 받을 일은 별로 없으니 세금 덜 내고 돈을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국세청이 검찰보다 한 단계 높은 로비 대상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듯 하다. 생각이 이 쯤 미치고 보면 검찰, 법원, 정치권, 국세청, 재경부, 건교부, 언론사 등 삼성이 관리대상으로 삼은 기관들의 순위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검찰수사에서 이런 궁금증도 해결되려나? 로비 대상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옵션이 있다는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현금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줘라. 여기에 등장하는 와인은 요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칠레 산 와인은 아닐 테고 아는 사람만 아는 고급 와인일 게다. 이 밖에 고급 골프채, 호텔 숙박권 등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게 만드는 맞춤형 뇌물을 공급해왔다는 점에서 투철한 관리정신이 엿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이런 세세한 대목까지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도 대단히 흥미롭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업계 최고 조직의 1인자, 조직 안에서뿐만 아니라 조직 밖에서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평가되는 회장님이 힘 꽤나 쓴다는 정관계의 유력인사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챙겼다는 얘기 아닌가. 이 대목에서 영화 ‘대부’의 ‘돈 꼴레오네’를 떠올린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이게 나라야?’ 국세청장의 구속과 삼성 비자금 조성, 로비 의혹을 보면서 입버릇처럼 한탄이 터져 나온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이 연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 시간에 삼성그룹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명예훼손죄로 구속된 한 노동자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다.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 씨. 국제사면위원회는 그를 양심수로 선정했다. 한국에서 노동자가 양심수로 선정된 건 김성환 씨가 처음이란다.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는 번번이 법의 심판을 모면하고 삼성에서 노조를 설립하려던 김성환 위원장은 감옥에 있는 현실, 이것이 삼성의 정관계 로비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 삼성 휴대폰을 보면 괜히 반갑고 첼시 선수들이 삼성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고객에 대한 기업의 예의가 아니다. 삼성의 관리대상이었던 자랑스러운 공직자들이여, ‘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 해라.’
2017-06-22 | hrights | 조회: 33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전국이 지방의원 의정비 인상 문제로 시끄럽다. 강원도에서도 과도한 의정비 인상에 대해 시민들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고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강원도 지방의원의 의정비는 40% ~ 90% 인상되었고, 재정자립도가 20% 안팎을 왔다 갔다 하는 인제군의원 의정비가 무려 90% 인상되어 인제군의원들은 한해 4380만원을 받으며 의정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방재정 상태가 열악한 강원도 지방의회의 인상률이 전국 최고라는 지적도 있다. 지방의원들의 의정비 인상에 대해서는 이른바 보수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좌우합작’이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의정비 인상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주장을 보면 주민을 설득하기에는 명분이 없고 무엇보다 의정활동 성적이 변변치 않은데 ‘생존권’주장만 하는 듯해 보기에 민망 할 정도다. 지방의원들은 대부분 생업을 가지고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의정활동 과정에서 이해가 상충될 수 있고 그래서 겸직금지제도가 없는 상황에서는 유급제가 표류할 수 있다. 또한 지방의원들이 선량이 아니라 토호라는 비아냥거림이 근거가 없지 만은 않기 때문에 의정비 인상 주장이 반대여론에 부딪히는 것은 자업자득인 면이 있다. 이렇게 의정비 인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대되면서 지방의회와 주민간의 갈등으로 발전하고 있고 마침내 중앙정부인 행정자치부가 개입을 선언하고 나섰다.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을 위해 도입한 유급제가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짧고 시민들이 지방자치에 대해 크게 애착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보면 의정비 인상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견제하고 입법권, 감사권, 예산심의권을 가지고 있는 주민의 대표 기관이기 때문에 지방자치가 자리 잡고 단체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단체다. 또한 지방의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할 수가 있다.   강원도의회 본회의 모습 사진 출처 - 강원도의회 홈페이지   따라서 이 문제를 의정비 인상 여부에만 국한해서 다룰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를 성숙시키기 위해 각 주체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제도정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논의해서 민주주의 꽃인 지방자치가 자라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처럼 정당공천제와 유급제를 지속시키려면 의원정수를 더 줄이고 비례를 최대 50%까지 늘려 책임정치가 구현 될 수 있는 여건을 확산,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제도를 고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아니면 의원들이 주민들의 생활에 더욱 다가갈 수 있도록 의원들의 숫자를 대폭 늘리고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며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회의 권한을 늘려 정책생산 능력을 높이고 집행부에 대한 독립성도 키워 의회의 견제기능을 강화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의정직에 대한 인사권을 의회에 주어 집행부에서 조직을 분리하고 전문위원을 늘려 의원들에 대한 정책 지원기능을 강화 시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지금 현실은 의원들에게 정책생산능력은 요구하면서 의원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고, 예산 편성권과 집행권을 가지고 있는 집행부가 의정직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도 가지고 있어 의회가 단체장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법률의 범위 내에서” 조례를 제정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지방자치법도 빨리 개정해서 지방의원의 입법권한을 넓혀주고 지방의회가 주민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의정비 인상을 둘러싸고 해마다 벌어지는 논란을 막기 위해 시행령에 자치단체의 재정형편이나 규모에 따른 차별화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의정비 심의위원회는 그 범위 안에서 심의 하도록 하는 방법도 검토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방자치를 도입 한 역사가 짧다. 그래서 지방자치에 익숙하지 않고 지방자치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이 충분 하지 못한 면이 있다. 어찌 보면 의정비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공론도 성숙한 지방자치를 위한 성장통일 수 있다. 의정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지방자치를 성숙시키는 방향으로 발전 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의 긍정적인 시선이 필요한 때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37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요즘 대학가에서는 “인권” “윤리” “정치”등의 이름이 들어간 강의는 별로 인기가 없고, 그 대신 “문화” “성” “건강”과 같은 이름이 붙은 강의는 인기가 높아서 수강신청이 몰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과목을 수강하겠다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지만, 갈수록 삶의 근본적인 문제, 가치, 공동체 등에 관한 문제는 외면한 채 “실용적이고, 재미있고, 돈 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번 학기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으로 맡은 과목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교양과목이었다. 제목이 그럴 듯해서 수강인원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책도 몇 권 새로 구입하고, 강의계획표도 만드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수강신청변경기간이 끝난 후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수강인원이 적어서 폐강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최고 인기강좌 중의 하나였다고 들었는데... 하기야 요즘 대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역사책에서 접하고, 87년 민주화운동 역시 유아기에 겪은 세대이니 민주주의와 인권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그야말로 대학가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몰락”(?)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클레멘트 코스라고 불리는 빈곤층과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통상 국가는 사회복지 정책으로 “교육”이 아닌 “훈련”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적능력이 부족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등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반면 인문학 교육은 삶과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찰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주어 가난한 사람들도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라는 것이 가난 그 자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 쇼리스의 주장은 한계가 있지만, 삶과 사람에 대한 성찰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기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참으로 타당하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인문학 교육은 어떠한 지식을 얼마나 아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기능과 지식을 습득하는 훈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요즘의 대학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가를 키워낸다는 미명하에 실용적인 “훈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저임금을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가난한 기술자를 원하는 기업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는 현실을 보면 결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닌 것 같다. 얼 쇼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필요의 지배를 받게 되면 정치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간도 열정도 사라지게 되며, 그 결과 힘 있는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진다.” 정치적인 삶이란 인간으로서의 삶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공동체에 대해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인권연대가 꾸준히 하고 있는 일반시민, 재소자,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은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사람의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경찰청은 10월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박명재 행정자치부장관, 유인태 국회 행정자치위원장, 이택순 경찰청장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우선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경찰청장 이하 15만 경찰관 여러분의 노고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린다. 우리나라 경찰은 경찰 창설 이래 시대 여건에 따라 건국경찰, 구국경찰, 호국경찰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 “봉사와 질서”라는 구호 아래 탄생한 우리나라 경찰은 경찰대개혁과 경찰혁신을 통하여 선진 경찰로의 도약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경찰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경찰의 숙원사항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결론을 짓지 못하고 해를 거듭하고 있어 못내 아쉽다.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수사권의 분권화’를 실현하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구조가 개편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검·경의 제 밥그릇 챙기기란 비난이 쏟아지면서 ‘수사권 관련 논의를 당분간 중단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더 이상의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는 국정원리에 따라 수사권의 조정 문제가 공약사항에 포함돼 추진되었다. 2005년 3월 16일 경찰대학 21기 졸업식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고 경찰이 책임감 있게 범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06년 10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6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검·경 수사구조 개혁과 관련하여 양측이 성의 있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단계적 접근을 통한 제도개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9일 경찰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공약했던 수준보다 더 나아간 안을 마련해서 중재하려고 했으나 여러분의 조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 방안을 추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사실상 참여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경찰의 혁신과제로 선정되었던 검·경 수사구조 개혁은 국민의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 마무리되기는 난망해 보인다.   지난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2007년 12월 19일 치러지는 제17대 대통령선거의 각 당 대통령후보들이 경선 절차를 통해 속속 선출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선출된 데 이어 9월 15일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10월 10일에는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 10월 15일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2007년 10월 16일에는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밖에도 창조한국당 문국현을 비롯하여 참주민연합의 정근모 등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후보들이 대권을 꿈꾸며 경제대통령, 교육대통령 등을 기치로 내걸고 각종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앞으로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어떠한 내용의 경찰관련 공약들을 내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경찰관련 공약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의 도입’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공약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기 정권에서도 다른 공약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100년 정당을 기약했던 열린우리당이 창당 4년을 못 채우고 간판을 내렸으니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자치경찰제의 도입’과 같은 공약은 이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만일 대선 후보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이번 기회에는 이를 반드시 관철할 수 있도록 경찰 지휘부를 비롯한 모든 경찰관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찰과 검찰 사이의 그동안 쌓인 해묵은 갈등과 반목이 해소되어 ‘견제와 균형’, ‘분권과 자율’에 충실한 합리적인 ‘민주 분권적 수사구조 개혁’을 통하여 국민에게 양질의 수사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3월 8일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에서 나타난 수사 과정에서의 은폐와 외압 등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의 부단한 자기 혁신이 계속돼야 한다. 이를 통해 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해 국민에게 경찰 수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수사역량을 강화해 고품질의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여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매번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내걸었던 선거공약이 대통령이 된 후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자는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공약(公約)을 반드시 실현하여 공허한 약속(空約)으로 끝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아울러 국정을 정상화시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십장생(10대들도 장래 백수가 될 것을 걱정)’과 같은 말이 사라져서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 청년실업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날도 빨리 찾아오기를 고대해 본다. 다시 한 번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15만 경찰관 여러분께 축하를 드리며,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이 감동하는 치안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줄 것을 부탁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