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길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간다. 더위와 습기찬 공기가 불쾌지수를 한없이 끌어올리던 올 여름. 그 불쾌지수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겹게 되풀이되는 학력위조 논란이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가 박사 학위를 위조한 사건에서 비롯된 학력위조 논란은 엉뚱하게도 연예계로 불똥이 튀어 한참 잘나가는 개그맨 출신의 영화감독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왕년의 여배우며, 우리나라 최고의 연극배우며 가릴 것 없이 대중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거짓말을 반성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만 연예인이 되는 것이 아닌데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물론 학력을 위조해서 학위를 필요로 하는 교수 등의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은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학력과 무관하게 다른 재주로 유명해진 연예인들이 차례로 도마 위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연예인들에게 “00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학력 차별을 조장하던 언론을 비롯하여, “00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실제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 온 우리 모두가 그러한 차별적인 관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함에도 여기저기서 꾸짖는 소리만 요란했다. 불쾌지수를 끌어올린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활동을 떠난 개신교 신자들 20여명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개신교를 둘러싸고 벌어진 지루한 논쟁들. 납치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국내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어느 신문에 무분별한 선교를 탓하는 내용의 사설이 실린 것을 보고, 나는 보수언론이 파병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그러한 논조의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신정아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그런데 무모한 선교나 봉사활동을 비난하는 여론이 점점 드세지더니, 마침내 위험한 지역에 선교를 하러간 사람들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식의 극단적인 비난 여론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인터넷 신문을 보기가 겁이 났다. 어찌되었든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고, 봉사활동을 떠난 사람들이 범죄 집단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심한 비난을 퍼부어야 했을까. 이성적인 비판과 진심어린 반성은 온데 간데 없고, 이미 무분별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인질들에 대한 손가락질과 고함소리만 요란했다. 학력을 속인 연예인들과 무분별하게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인질로 잡힌 기독교 신자들이 거짓말과 무분별함에 대한 들끓는 비난여론 속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동안, 29만원의 재산을 가지고 호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는 전직대통령은 대신 인질로 잡혀갈 생각을 했다는 코믹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부동산 문제에 대한 의혹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대통령 후보는 그 말이 웃기지도 않은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 또 다시 사람들을 웃겨 주었다. 웃으면서도 불쾌지수는 끝없이 상승한다. 더 큰 거짓말과 범죄 앞에서 관대해지는 사람들에게 짜증이 난다. 왜 우리는 작은 일에만 분노하고 더 큰 거짓말과 불의에 대하여는 그토록 쉽게 눈을 감고 잊어버리는가.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짜증스러운 마음도 한결 가라앉는다. 가을에는 우리 안에 자리한 편견, 차별적인 관념, 무분별함, 배타성에 대해 차분한 비판과 진지한 반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작은 일에만 분노하고, 더 큰 거짓말과 불의에 대하여는 쉽게 눈을 감는 우리 안의 이중적인 잣대에 대하여도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아프가니스탄 반군 세력인 탈레반이 7월 19일 경기도 분당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선교단 23명을 납치하였다. 8월 26일 현재 샘물교회 선교단원 2명이 살해되고 2명이 석방되었다. 나머지 19명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뉴스다. 아프가니스탄 주민의 99%는 무슬림이다. 그곳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선교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필자는 서울 시내에서 전철을 자주 이용한다. 전철 안에서 종종 마주치는 짜증나는 광경이 있다. 조용한 전철 안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크게 소리치면서 협박하는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속으로 필자는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게 무슨 신이람 ... 차라리 그렇게 이기적인 신이 있는 곳보다는 그런 신 없는 지옥이 더 낫다.”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한국 기독교의 선교 행태는 전철 안에 있는 대다수 시민들의 기분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작년에는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 사원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이슬람 사원으로 올라가는 도로변 모퉁이에서 찬송가를 크게 틀어 놓고 춤을 추는 10명도 넘는 기독교인 아주머니들과 마주쳤다. 필자는 모른 체하고 지나치다가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그 아주머니들에게 “아주머니들 !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찬송가를 크게 틀고 춤을 추십니까? 바로 50여 미터 위에 이슬람 사원이 있고, 이 도로는 무슬림들이 예배드리러 올라가는 도로입니다. 선교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아주머니들은 나에게 기독교인이냐고 묻고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아주머니들은 나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대학 1학년 때까지 모 기독교 교회를 다녔다.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윽박지르는 듯한 목사의 요구에 기가 질려서 그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 곳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지 않았고, 이미 만들진 패러다임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할 것만 같은 공포가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한국 기독교의 독선적인 행태는 기독교에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원인이다.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었던 샘물교회 선교단의 모습. 아프간 한국군의 연내 철군과 아프간 선교 중지를 조건으로 지난 28일 피랍자 19명 전원을 석방하기로 합의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런데,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가 태어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필자는 현지 조사를 위해서 매년 겨울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에 체류한다. 이 연구소에서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함께 근무한다. 이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은 예배드리는 양식에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신을 믿는다는 점에는 서로 동의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상호 인정한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가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와 마찬가지로 신의 사도이며, 하나를 더 추가해서 예수는 로마의 지배에 대항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한 투사라고 강조한다. 지난겨울 라말라 거리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무슬림 파티 히드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냐? 그렇다면, 최초의 테러리스트는 예수 그리스도다.” 이렇듯 오늘날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군사 점령 아래서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예수를 본받아야할 행위의 본보기로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등 레반트 지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무슬림들보다 생활수준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레반트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서구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한 네트워크 탓이기도 하고, 일부는 무슬림들에 비해서 교육 수준이 높은 탓이기도 하다.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66석 중 소수 종교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독교인들에게 6석을 할당하였고,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주의자 정당인 하마스는 가자 지역에서 당선을 위해 연합 전선을 형성하였다. 이 선거 결과 비기독교인 후보들은 1만 5천-2만 표를 획득해야 당선권에 들었으나, 기독교인 후보들은 2천-3천표로 당선되었다. 1989년 이후 2003년까지 4차례에 걸쳐 실시된 요르단 의회 선거에서도 기독교인들은 총 의석 중 10% 이상에 해당하는 소수 할당의석 특혜를 받았다. 레바논 대통령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선출된다. 이렇듯 기독교가 발흥한 본거지인 레반트 지역에서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은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선거 등의 정치 영역에서는 소수 기독교인들에게 특혜를 베풀면서 공존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공세적인 선교 행태를 지향하는 일부 한국 기독교인들은 타 종교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레반트 지역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의 태도를 배워야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8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광복절을 맞이했다. 경축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광복절은 3·1절과 함께 폭주족들에게는 광란의 밤거리를 질주하는 날이다. 이들은 여의도 한강둔치와 자양동 뚝섬유원지, 그리고 주택가 근처에서 사납게 귀청을 찢는 굉음을 내며 과속으로 질주하여 교통사고를 유발함은 물론 심한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폭염에 지친 시민들을 더욱더 지치고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폭주족들은 단순히 도로만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폭행과 절도 등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다. 이처럼 폭주의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룬지 오래 되었다. 폭주족이라고 하면 흔히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10대 청소년들이 많지만,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20~30대 성인 폭주족(이들 자동차 폭주족을 일명 ‘카폭’이라고 한다)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어렸을 때 오토바이를 몰다 20대 이후에는 승용차나 견인차, 구급차 등을 타고 폭주행위를 일삼기도 하는 것이다. 폭주족은 만화, 영화, 대중음악, 소설 등 모든 장르에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강남연합 최강폭주’, ‘월미도 폭주카페’ 등 폭주족 관련 카페를 통해 폭주족들의 모임이 결성되고 있다. 폭주족들은 과거와는 달리 ‘옵저버’, ‘리더’, ‘칼받이’, ‘뒤커버’ 등 역할을 분담하여 폭주 대열을 경찰단속으로부터 유지·보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옵저버는 선발대로 미리 코스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선두를 이끄는 리더는 양손에 번쩍이는 야광봉을 이용해 대열의 주행 방향과 속도를 조정한다. 칼받이는 ‘앞커버’라고도 불리며, 폭주 대열이 교차로를 지나가고 중앙선을 넘을 때 굉음을 내며 일반 차량의 진입을 막아 대열이 끊기지 않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뒤커버는 경찰 차량이 폭주 대열의 뒤에서 추격해 올 때 곡예운전으로 이를 막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폭주족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 리더의 야광봉 신호에 따라 진로와 속도 등을 조절하며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갈지(之)자로 2~3개 차선을 지그재그로 질주하고, 중앙선을 넘나들기도 하며, 심지어는 역주행을 하며 마주 오는 차량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리고 드리프트(drift) 등 곡예운전을 보여주기 위해 중간 중간 전 차로를 가로막는 일도 예사로 저지른다. 폭주족들은 ‘리더 지시에 따른다’, ‘리더를 추월하지 마라’, ‘카폭은 1차선으로 다닌다’, ‘폭주시 심심하면 112에 신고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행동수칙까지 만들어 조직적인 활동을 펼친다고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왜 그리 사납게 달리느냐고 물으면 폭주족들은 한결같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달리면서 털어 내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폭주를 하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진다고 말한다. 게다가 경찰차가 뒤에서 따라오면 스릴(thrill) 넘친다고 한다. 폭주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로를 질주하는 스피드의 매력이 마약과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폭주족의 난폭운전과 소음으로 인해 시민불편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경찰에서는 폭주행위가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특별단속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고성능 카메라와 차량탑재용 카메라 등 첨단 채증 장비를 활용해 현장 검거를 강화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년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폭주행위는 되풀이되고 있어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나 그마저도 신통치가 않다. 경찰관들이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마음껏 법을 어기는 폭주족들을 속 시원하게 적발하지 못하는 것은 폭주족들의 안전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폭주족들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게 되면 경찰의 단속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게 되어 경찰로서도 곤경에 처하기 일쑤다. 그래도 경찰관들은 주행 중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적극적인 단속보다는 차량으로 추격하며 동선을 좁혀 자진 해산하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경찰은 폭주족 단속의 어려움과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물망’, ‘바퀴에 감기는 밧줄체인’, ‘페인트볼 분사기’와 같은 최신 장비를 도입하여 폭주족의 단속을 지속하면서 폭주족을 상대로 한 계도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폭주족 가담행위자에 대한 간담회 개최와 문자메시지(SMS) 전송을 통한 사전 경고를 통해 난폭 운전에 대한 예방활동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폭주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폭주족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타인의 안전을 방해하는 심각한 범법행위라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 것에 주안점이 두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가정에서의 적절한 훈육은 물론 학교·사회·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건전한 육성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폭주행위를 즐기는 청소년들의 말처럼 폭주행위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면 폭주행위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2017-06-19 | hrights | 조회: 58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로스쿨제도의 도입 지난 7월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제도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아직 공포·시행된 상태는 아니지만 다들 예상하고 있는 바로는 10월부터 대학원설립인가신청을 받아 내년 3월경 대학원이 설치될 학교가 결정되고 1년 동안 개원준비와 신입생 선발을 거쳐 2009년 3월 교육이 시작된다고 한다. 흔히 로스쿨이라고 부르는 제도는 대학 학부교육을 마친 사람들이 법학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일정한 시험을 거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몇 가지가 크게 달라진다. 최소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변호사 첫째, 변호사가 되려면 고학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변호사가 되려면 대학원 졸업이라는 고학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지금은 굳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학원 등을 통해 일정 법학 학점을 취득하면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시험 합격후 사법연수원 과정을 거쳐 변호사자격을 취득하게 되고 이들 가운데서 변호사뿐 아니라 검사와 판사가 바로 임용되는 데 반하여, 로스쿨제도는 학부 졸업 후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3년 교육후 변호사시험을 거쳐 변호사가 임용되고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판사와 검사로 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의 증가 둘째, 변호사가 되는 데 고학력이 요구되는 만큼 시간과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단순히 대학원과정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등록금이 추가로 요구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로스쿨의 학비가 일반대학원보다 월등하게 비쌀 것이라 예상된다. 국립대학 의학전문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원을 넘는 것을 보면 국립대학 로스쿨의 경우도 한 학기 500만원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인다. 사립대학은 1000만원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비싼 등록금은 학교가 쏟아 부은 그 동안의 많은 투자를 회수해야 한다는 점, 고소득의 변호사가 되려면 반드시 졸업해야 하는 로스쿨이 과점자의 지위에서 학비를 결정하게 된다는 점, 변호사가 되면 장래 많은 수입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등에 의하여 곧바로 자리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학원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변호사의 개념이 바뀐다 셋째, 변호사의 개념이 바뀐다는 것이다. 지금은 변호사라면 적어도 제한된 인원만이 합격하는 사법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법학교육(대개는 법학과 4년, 졸업 후 몇 년의 공부)을 받고, 사법연수원에서 2년의 실무적 교육을 받은 후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법률가로서 상당한 수련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로스쿨제도는 법학과 대부분 무관한 전공을 한 학사들이 입학하여 3년의 교육을 받은 후 변호사 시험을 보고 자격을 취득하기 때문에 현재의 제도에서보다는 변호사의 법학적 수련의 정도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학부에서 상당히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학생들이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하게 되므로 3년의 교육과정도 알차게 운용될 가능성은 있으나 기본적으로 법학교육이라는 게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로스쿨을 통한 변호사는 현재의 제도에서보다 법학적 수련의 정도에서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법률생활에서 접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풀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로스쿨이 지향하는 변호사는 법률제도의 큰 골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인이며 보다 세부적이고 치밀한 논의를 요하는 문제는 변호사활동과 별도의 전문적 교육을 통하여 능력을 갖춰나갈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변호사의 개념은 변호사를 간단한 법률문제에 대해 손쉽게 조언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두게 하고 그만큼 많은 변호사의 배출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학부전공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기본적이고 충실한 법학적 이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변호사를 다수 배출하자는 게 이 제도의 기본 골격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공인중개사나 법무사가 하는 일도 장차 변호사의 일이 된다. 몇 가지 장애물 이 제도가 올바로 시행되는 데는 몇 가지 장애가 존재한다. 입학정원총정원제는 로스쿨과 어울릴 수 없다 우선 제일 큰 장애는 현재의 법조집단의 반발이다. 대한민국에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삼위일체로 장악한 법조집단은 로스쿨제도의 도입 자체에도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지금은 로스쿨입학총정원제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변호사 배출규모를 통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고 또한 그것이 국민에게 좋은 것이라면 자기가 가진 이익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입학정원총정원제는 제도만 로스쿨로 바뀔 뿐 현재의 법조인 충원제도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변호사들은 로스쿨을 통하여 변호사가 배출되면 법학교육기간이 짧아 자칫 자질이 문제되는 변호사가 배출될 수 있고 그것은 국민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제도는 그 근본적 취지가 고도의 법학적 수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법학교육을 거쳐 일정한 자격이 인정되면 변호사가 되고 전문적 능력은 실무경험과 교육 기회를 통하여 확보하게 한다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다는 것이 이미 변호사개념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을 왜 굳이 부정하려 하는가? 3년 교육을 통하여 배출된 ‘무자질의 변호사’에다가 자격을 취득하는 변호사의 수마저 제한한다면 국민들이 입게 될 피해는 오히려 막대한 것 아닐까? 변호사들이여, 이미 로스쿨이라는 제도는 도입되었고, 변호사는 3년의 교육과 시험합격으로 자격이 부여된다. 그렇게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면 거기에 굳이 숫자마저 제한하려는 것은 과욕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 변호사 영역에서만 경쟁이 제한되어야 하는가? 교육기관의 여건 두 번째의 장애는 교육기관의 문제이다. 교육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을 갖추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의 법학교육이 과거의 법학교육과 달리 이미 학부에서 상당한 정도로 학문적 수련을 한 학생을 대상으로 법학적 사고방식을 교육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피교육자에 대한 일방적, 주입식의 교육이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론과 실무의 단절, 교수 사이의 전공영역 할거의 문제도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과연 지금의 법학교육기관은 3년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로 유능한 변호사를 배출할 수 있을까? 어느 대학에 로스쿨이 설치될 것인 가보다는 어느 수준의 교육을 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가 더욱 고민되어야 한다. 굳이 로스쿨과 어울리지 않는 총정원제한이라는 제도가 아니라 일정한 수준의 법학교육을 할 수 있도록 충실한 교육여건을 요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신림동 고시촌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고액의 학비부담 세 번째 문제는 학비문제이다. 장학금 또는 학비대출제도를 통해 이 문제는 해결한다고 한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돈 없는 사람들이 변호사 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대출을 쉽게 해준다 해도 돈벌이가 보장되는 것도 아닐 테니, 부담해야 할 학비의 무게에 변호사 되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제도를 통하여 많은 변호사들이 배출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일하는 변호사가 지금보다 더 많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해 본다. 로스쿨제도는 그 제도 자체 때문에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운용의 문제라 생각된다. 교수생활도 완전히 달라지고... 필자와 같이 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법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교수들에게 로스쿨제도는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교수로서 자기 보고 싶은 책 읽고 관심분야를 공부하면서 논문 쓰고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의 강의를 하고 사회적 봉사활동도 할 시간이 있었지만, 로스쿨에서는 이런 것들이 상당 부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학부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상당부분은 비록 법학전공이 아니더라도 학부에서 공부한 것일 게고, 등록금을 한 학기 1000만원까지 내고 다니면서 어설프게 강의하는 것은 참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게 되면 쏟아질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게 될지... 장차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로스쿨에서 몇 년간은 강의준비에 모든 힘을 다 쏟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보다 조금 빨리 로스쿨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교수 몇이 과로로 쓰러졌다는 소문도 들린다. 로스쿨에서는 교수의 개념도 상당 부분 변경이 불가피하다. 보고 싶은 책 보고, 하고 싶은 공부하려던 꿈은 당분간 접어야 할 듯하다. 물론 필자가 로스쿨의 교수가 된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사법개혁을 위한 로스쿨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고민할 것은 어떻게 로스쿨제도를 통하여 국민이 보다 쉽고 값싸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이다. 로스쿨 입학총정원제 배제, 내실 있는 교육과정의 운영, 국민에게 가까운 사법제도의 구축 등 보다 구체적인 개혁 작업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신정아씨 학위조작 사건의 파문이 함축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그것은 개인의 거짓말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이 어떤지를 확인하는 데 외적 ‘형식’이면 충분하다고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전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왜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게 되었을까? 다소 과장된 해석일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진리의 기준을 우리 스스로 안에서 찾지 못하고 밖에서, 그것도 ‘대국’에서 찾아온 데 큰 문화적 원인이 있다. 실제로 유학, 불학, 도가 사상 같은 한국의 전통사상이라는 것은 다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던가. 한국 최대의 사상가라고 하는 퇴계의 철학이 중국 성리학과 얼마나 다르던가. ‘작은 중국’(小中華)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오기도 하지 않았던가. 한결같이 중국에서 배워오면서 그렇게 천년을 지내오지 않았던가. 근대에 들어 선진적인 것의 기준을 일본적인 데에서 찾기도 하다가, 이제는 미국을 위시한 구미 국가를 기준으로 진리를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국가적인 일에 미국 눈치를 보지 않은 적이 있던가. 미국에 가까울수록 앞서가는 것이고 그만큼 객관적인 삶의 기준이 되는 분위기가 여전하지 않던가. ‘썩 그럴듯하다’, ‘멋지다’를 의미하는 ‘근사’하다는 말이 사실상 서양적인 것, 외국 것에 ‘가깝고(近) 비슷하다(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도 이런 우리네 정서를 잘 보여준다. 불행하게도 역사상 우리 안에 제대로 된 것이 있다고 자긍심을 가져본 적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중국을 베껴온 것이 우리의 역사였다면, 오늘날 그 무게중심은 미국을 위시한 서양적인 데로 옮겨가고 말았다. 미국의 삼류급 선교사들이 전해준 삼류 기독교를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실상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 목사가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교회 성장의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로마보다 더 로마적이라는 비아냥을 가끔 듣기도 하는 한국 가톨릭이나, 중국에는 이미 없어진 공자제사(석전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한국 유교의 상황도 사상이나 문명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기보다는 큰 것을 베끼며 섬기고(事大), 그대로 모방해온 우리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사대주의’의 전형 아니던가. 얼마나 주체적인가, 얼마나 무르익었는가, 얼마나 지행합일적인가 등이 기준이 아니라, 대국에 있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대국과 가까운 사람인가가 사실상 권위를 결정하는 역할을 해왔으니, 신정아씨의 예일대 학위 조작 사건은 사실상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짜 학위로 논란을 일으킨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상은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사례들이다. 형식에 맞으면 내용이 좀 부실해도 그 형식만으로 충분히 화제가 된다. 화제의 중심에 서기위해서라도 내가 중국을, 일본을, 구미를 좀 아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형식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출세하는 첩경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학문하는 이들의 독서 습관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어떤 책을 읽을 때, 과연 그 책이 읽을 가치가 있는지를 아는 제일 솔직한 방법은 당연히 그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읽기도 전에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는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책의 날개에 써있는 저자의 이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때 학술서의 경우라면 저자가 어디서 공부했느냐, 학위 취득 대학이나 국가가 어디냐 살펴보되, 특히 미국에서 공부했으면 일단 읽을 가치가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 책에는 미국 학계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그걸 읽은 것만으로도 내가 미국과 가까운 존재가 되며, 그만큼 남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거리도 더 생겨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몇 마디 영어를 섞어가며 태생적인 영어 콤플렉스를 지닌 한국인의 정서를 슬쩍 건드리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그이는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능력자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얼마나 큰 나라와 가까운 존재인지로 사회적 신분을 결정해온 우리의 오랜 문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신정아씨가 굳이 예일대 학위증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신정아씨 혼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그이가 학위를 위조하고도 당당해하는 것은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이 또 있거나 적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형식이 내용과 동일시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면 충분한 사회, 분명히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저급 문화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때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이러한 삼류문화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음에는 나는 왜 박사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써보련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2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지난 7월 16일, 강원도의회는 의원총회를 열고 ‘동계올림픽 3수 도전’을 호소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가 신중론을 주장했지만 강원도의회는 오직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며 3수 도전을 몰아갔다. 강원도민이 지난 두 차례 도전에서 동계올림픽에 대한 찬반을 넘어 묵묵히 지지해 준 것은, 그것만 되면 강원경제가 획기적으로 좋아진다는 주장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동계올림픽이 유치되면 생산유발효과, 고용창출효과, 부가가치유발액등 경제파급효과가 십수조 단위로 일어난다는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청사진은 별다른 성장 동력이 없다고 느끼는 강원도민에게 매우 매력적인 호소일 수밖에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깃발 사진 출처 - 뉴시스 강원도민들은 지금,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핵심정책으로 추진한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 해체 현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는 역설을 고통스럽게 마주 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집중과 고삐 풀린 채 가속화되고 있는 한미 FTA 강행은 지역경제를 양극화의 어두운 골짜기로 밀어 넣으며 우리의 삶을 하루가 다르게 조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지역경영을 책임진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것이 설사 스포츠 쇼비니즘과 손을 잡는 것이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더라도 어떤 모험을 강행하게 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국제 스포츠 행사에 주민의 열정을 동원하고 이 기회를 틈타 국가자원을 경기장 시설 건설이나 SOC(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재분배 하려는 의도는 일견 당연하거나 실리적으로 보인다. ‘재수’를 하면서까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다 좌절을 겪은 ‘평창의 눈물’은 어쩌면, 이런 변방의 설움이 해결되지 못한 안타까움이고 그래서 더욱 우리를 아프게 하면서 ‘삼수’를 향한 오기를 낳게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3수 도전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평창의 눈물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악어의 눈물이 사람들을 세 번째 도전으로 몰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동계올림픽 개최만이 낙후된 지역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협박과 다시 한번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맹목적인 선동이 힘을 얻고 있고 신중하게 검토한 뒤 재도전을 결정해야 한다는 수준의 주장은 지역발전의 발목을 잡는 배신행위로 몰리고 있다.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한 IOC총회에 국가수반들이 경쟁적으로 몰려가는 현실을 보면 강원도같은 작은 지역에서 애향을 위한 유일한 길인 동계올림픽 유치에 반대 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축출당해도 쌀 만큼 큰 불경죄'에 해당 될 수 도 있겠다. 맹목적으로 국제스포츠 행사를 추종하는 태도는 이른바 대선주자를 비롯한 중앙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강원도를 찾는 정치인 마다 하나같이 동계올림픽 유치실패에 크게 낙담하고 있는 강원도민을 위로(?)하고 자신이 대권을 잡으면 반드시 동계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걸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면 지역 언론은 ‘실의’에 빠진 도민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렇지만 그런 위로가 진정 강원도민의 슬픔을 치유하는 처방인지, 평범한 강원도민들도 정치인들처럼 동계올림픽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강원도내 42개 시민사회단체들이 평창 동계올림픽 3수 도전문제를 논의하려는 강원도의회 앞에서 3수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참으로 어쩌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인가? 이제 강원도는 다시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세 번째 도전에 나설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는 바늘 틈도 비집고 들어설 수 없는 여론의 높은 벽에 다시 좌절하고 침묵하게 될 것이다. 2007년, 과연 우리는 과연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기는 한 걸까 ? 눈 먼 삼수생의 무한도전이 강원도민으로부터 이번에는 또 무엇을 가져갈지 눈에 훤하다. 그들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3수 도전을 뒤로하고 지금 우선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강원도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몸을 낮추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4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한다 - 이랜드 사태로 본 ‘비정규직보호법’   교복자율화가 시행된 1980년대에 이랜드라는 상표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동복과 숙녀복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입을 것이 없는 사춘기 소녀들이 사촌언니와 막내이모 때로는 엄마의 처녀시절 옷까지 걸쳐보던 시절이었던지라,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진 산뜻한 디자인과 색깔의 이랜드 옷은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다. 게다가 품질에 비해 값도 저렴해서 패션에 신경 좀 쓴다는 친구들은 이랜드 옷을 사기 위해 1시간이나 걸리는 이대 앞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이랜드와의 인연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나는뉴코아 백화점과 킴스클럽에 장을 보러 다녔으며, 아이들 옷을 사러 계절에 한번은 2001아울렛에 갔다. 얼마 전 2001아울렛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2001아울렛은 일요일에 매장을 닫기때문에 불편하다고 투덜거리자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 판매원이 웃으면서 "아이구. 우리는 월급 적고힘들어도 일요일 날 쉬는것 하나 보고 여기 다녀요. 안 그러면 일요일 날 아이들도 못 챙기니까."라고 대답했다. 화장을 했어도 얼굴에 기미가 가득한 그 여성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는 이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랜드 비정규직 직원들이 매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제의 발단은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비정규보호법(진짜 명칭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이다. 7월 1일부터 시행된 위 법률은 비정규직을 2년 이상고용하는 경우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는데, 위 규정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가 편법을 사용해도 정부는 아무런 제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외주용역화하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랜드 그룹도 비정규직인 계산원에 대한 대량계약 해지와 업무의 외주용역화를 추진함으로써 현재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비정규직을 진정으로 "보호"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러한 규정을 어긴 사업주를 처벌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워낙 비정규직법안 자체가 타협의 산물이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내용이 되어버려 결국 가장힘없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서울 잠원동 이랜드 뉴코아 지하매장 점거농성 중인 이랜드 노조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듣자 하니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뉴코아 강남점에 회사측이 쇠막대와 쇠사슬을 동원해서 출입문을 용접해서 봉쇄하였다는 흉흉한 소식도 있고, 화장실 다녀올 겨를도 없이 6-8시간을 서서 일하는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모두 소화불량(위염), 근골격계 질환, 방광염을 앓고 있다는 마음 아픈 소식도 들린다. 농성장의 사진을 보면서 일요일에 아이들을 챙길 수 있어 이랜드에 다닌다던 기미 가득한 얼굴의 중년 여성노동자를 떠올린다. 방광염에 걸리고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에만 다닐 수 있으면,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만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내쫒는 행위는 누가 뭐라 해도 야만이다. 정부는 이랜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벼랑 끝에 서있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을 법률로서 단죄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진압하는 야만을 또 다시 저질러서는 안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2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공격과 국제사회의 침묵 6월 25일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 요르단 국왕 입둘라 2세, 이스라엘 총리 올메르트,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가 참가한 4자 수뇌 회담이 샤름 알 셰이크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담은 하마스에 대항하여 압바스와 연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살해, 체포, 구금 행위를 동반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을 중지시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수뇌 회담 당일인 25일과 그 다음날인 26일에도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라말라, 나블루스, 헤브론, 베들레헴, 제닌 등을 공격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하고 체포하였다. 27일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 지구를 집중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가자 지구에서만 두 명의 어린이와 두 명의 형제를 포함하는 14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되었다. 30일에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공습하여 7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하였다. 예루살렘 미디어와 통신 센터(JMCC)와 팔레스타인 인권 센터(PCHR)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동안 이스라엘 군대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전투기, 탱크 등을 동원해서 팔레스타인 지구인 서안과 가자를 공격했다.   4자 수뇌 회담에 참석한 요르단 국왕 입둘라 2세,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 사진 출처 - 뉴시스   27일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의 운영 위원이며, 좌파인 팔레스타인 민주 해방 전선(DFLP)정치국원인 타이시르 칼리드는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을 국제사회가 나서서 막아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에 직면한 팔레스타인인들은 국제 사회의 도움을 계속 요청해왔다. 그러나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 유엔, 팔레스타인 주변 아랍 정부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시종 일관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종교 최고 지도자 수감 팔레스타인 무프티(종교 최고 지도자)인 타이시르 타미미는 6월 8일 금요일 저녁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체포된 이후 7월 1일 현재까지 이스라엘 감옥에 3주일 이상 수감되어 있다. 이스라엘 법정이 그에게 붙인 죄명은 ‘금요 예배의 설교를 통해서 이스라엘 당국에 대항하도록 팔레스타인인들을 선동하고, 이스라엘의 허가 없이 알 아크사 모스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타미미는 “이스라엘의 허락을 받고 알 아크사 모스크를 출입해야한다는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 법정은 나를 기소할 권리가 없고, 나를 기소한 것은 불법이다.”고 주장하였다. 타미미는 팔레스타인 이슬람 법정 최고 판사이며, 예루살렘 소재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이기도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4자 수뇌 회담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세계 주류 미디어뿐만 아니라 아랍 미디어들조차도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인 무함마드는 “이 사건을 알 자지라가 한 번 다루었을 뿐이다.”고 한숨지었다. 또 이스라엘 군사 법정은 구속 수감 중인 수 십 명의 팔레스타인 의회 의원들에게 의원직을 사임하면 석방시켜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팔레스타인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이스라엘의 지배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납치된 이들 의원들 대부분은 하마스다. 당연하게도 수감된 의원들은 이스라엘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압바스 수반과 체포되지 않은 의원들에게 이러한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조처에 대해서 명백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스라엘의 정책에 답하기라도 하듯, 압바스가 발족시킨 팔레스타인 비상내각 총리 살람 파야드는 6월 28일 라말라에서 800여명의 이슬람 성직자를 모아놓고 “모스크 내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나 선동을 금지한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묵인되지 않을 것이다.”고 경고하였다. 이것은 서안에서 하마스의 영향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하마스는 서안과 가자 소재 많은 모스크에서 영향력이 있다. 현재 서안에서 하마스 지지 설교자들은 파야드 정부를 지지하는 성직자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스라엘 장갑차들이 20일 새벽 나할 오즈 키부츠 부근에서 가자지구쪽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 국제군 파견 요청 이런 상황에서 6월 29일 프랑스 방문 중인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 지구에 국제군을 배치하도록 프랑스가 나서줄 것을 호소하였다. 압바스는 하마스와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면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수반 선거와 의회 선거를 위해서 가자 지역에 국제군이 파견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스라엘, 유엔, 유럽 연합은 이미 가자 지구에 대한 국제 평화 유지군 파견에 동의하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여론을 결집할 능력이 없는 압바스는 이스라엘과 외국군의 힘을 빌려 하마스를 제압하고 정권을 연장해 보겠다는 속셈이다. 그러나 하마스는 압바스의 국제군 파견 제안을 반대하면서, “우리는 어떤 외국 군대도 가자 지역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점령 세력으로 간주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전임 하마스 정부 대변인 가지 하마드는 “가자에 외국 군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 강요된 선거는 해결책이 아니다. 만약 모든 파벌이 선거에 동의한다면, 그 때 선거는 전혀 문제없이 치루어질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하마스는 파타와 대화 재개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팔레스타인인 대부분은 대화를 통한 하마스-압바스 간의 분쟁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압바스는 하마스뿐만 아니라 파타 산하의 무장 단체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을 포함하는 모든 무장단체들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면서, 자치 정부 보안대가 이 무기들을 압수하도록 명령해 놓은 상태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하마스와 압바스 사이의 분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내분은 군사 점령을 강화시키고 지속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분할 지배 계획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군사 점령이 종식되지 않고서는 팔레스타인의 내부 통합과 민주주의는 거의 실현 불가능하게 보인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2007년 3월 힘차게 출발했던 한 학기도 시험채점과 성적평가를 끝으로 대부분의 대학이 긴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그런데 성적평가를 할 때마다 매년 달라지는 세태를 느끼게 된다.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당시는 10․26과 12․12 등 정치적인 큰 소용돌이로 인하여 휴교를 일삼았다. 그 결과 수강과목의 대부분은 3분의 1정도도 채 마치지 않고, Report로 성적이 평가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독학을 통하여 학업을 이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절대평가니 상대평가니 하는 학교에서 정해 놓은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교수들의 성적평가도 지금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자유스러웠다. 1997년부터 피평가자의 입장에서 평가자의 입장이 되면서 이제 11년째 학생들의 시험을 채점하고 성적을 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성적평가와 관련하여 매년 달라지는 세태는 학교에서 정해 놓은 평가기준을 준수해야 하고, 사전에 학생들에게 일정기간 성적공시를 해야 하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에 근거해서 학생들의 성적을 강제로 배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다 보면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도토리 키 재기처럼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출결상황, 시험성적, Report 성적, 발표성적 등을 다시 한 번 면밀하게 검토하고 성적의 우열을 가려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100점 만점에 1-2점 차이로 성적의 등급이 강제로 매겨지고, 그에 따라 학생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이러한 성적평가는 곧바로 학생들로부터 강의평가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수강 학생이 적은 과목이거나 성적평가가 좋은 경우에는 강의평가가 상대적으로 좋게 나오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강의평가가 좋지 않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것은 교수들의 교육업적과 직결되고 있다. 어찌 보면 교수와 학생 사이가 사제지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를 평가하는 평가자의 입장에 선 셈이다. 또 한 가지 평가자를 괴롭히는 것은 정해진 기간 내에 성적을 평가하고, 이를 일정기간 공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말이 되면 늘 바쁘듯이 학기말이 되면 왜 그리도 바쁜지 시간에 쫓기며 시험채점과 성적평가를 해야 하는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년퇴임식장에서 그동안 교수생활을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 중의 하나가 “채점에 쫓길 때 백지답안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는 점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면서 채점을 완료하고 성적을 평가하여 일정기간 공시를 하게 되면 어김없이 성적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기졸업을 위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4학년 학생으로 취업을 위해서 학점을 관리해야 한다는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시험채점이나 성적평가에 오류가 있을 때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어야 할 성적공시제도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처럼 성적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이면에는 취업 걱정과 장학금 수혜가 가장 크게 자리 잡는 것 또한 평가자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만큼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고, 경제난으로 등록금 마련이 수월치 않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출처 - 오마이뉴스   성적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 중에는 정직하지 못한 학생도 간혹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교수님만 성적을 올려 주시면 조기졸업이 가능하다거나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다고 읍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교수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감동을 하게 되고 성적을 올려 주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구 절절한 요구가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공통적으로 써먹는 수법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요구에 교수가 넘어가면 좋고, 설사 요구대로 되지 않더라도 처음 성적보다 내려가는 일은 없으니 학생에게는 전혀 손해 볼 일이 없다는 점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예이다. 이런 경우를 당하고 나면 그러한 학생을 탓하기에 앞서 내 자신 학생들에게 전공지식 주입에만 신경을 쓰고, 올바른 사회인으로 교육하고 지도하지 못한 자괴감에 괴로울 때가 많다. 이제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학생들이여! 시험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더 크고 넓은 세상 속에서 본인을 드높이고, 우리나라를 세계 일류국가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기원한다. 지금보다 어른스럽고 꿈이 가득한 여러분을 다음 학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번 성적평가에 만족해 주었으면 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3 | 추천: 0
이광조/ CBS PD 여름이다. 일상생활에서 여름을 느끼는 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극장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들을 보면서도 계절을 느낀다. 아주 어릴 때 봤던 “장화홍련”부터 중고생 시절 유행했던 “13일의 금요일”, 비교적 최근에 본 “한니발”과 개봉을 앞둔 “검은 집”까지. 공포 영화의 소재는 무척 다양해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건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나 인간과 사회를 증오하는 이른바 ‘싸이코 패스’들이다. 겁이 많은 탓에 공포 영화를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공포영화에 흥미를 잃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영화가 주는 작위적인 공포보다는 현실이 훨씬 더 끔찍하고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던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내가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현실을 처음 느꼈던 건 대학 1학년 때 처음 경찰서에 잡혀갔던 때가 아닌가 싶다. 가두시위에 나갔다 시위에는 참여도 못해보고 사복경찰에 붙잡힌 나는 이른바 ‘닭장차’에 실려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머리를 무릎에 처박고 앉아 어디서 무엇이 날아올지도 볼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곤봉으로 혹은 군화발로 폭행을 당하면 정작 맞는 순간보다 타격이 가해지기 전의 잠깐이 훨씬 두려운 법이다. 하지만 좀 맞다보면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다. 비슷한 패턴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영화 '검은집' 홈페이지   얻어맞는 것보다 더 큰 공포를 느낀 건 경찰서에 들어간 뒤였다. ‘전경들이야 시위학생들에게 공격을 당했으니 흥분해서 우리를 때렸겠지만 사람들의 눈이 있고 높으신 경찰간부와 형사들이 있는 곳에선 좀 덜 때리겠지.’ 하지만 나의 이런 순진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꼬박 24시간동안 2시간 단위로 새로운 전경들이 들어와 우리에게 분풀이를 했지만 경찰서의 높으신 양반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누구 하나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때 느낀 배신감과 절망감이란. 그 뒤 내가 당한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끔찍한 고문에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 더구나 80년 5월 광주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총칼에 목숨을 잃고도 침묵을 강요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물정에 눈을 떠가던 내게 사람들이 권력의 횡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현실은 ‘공포영화’ 그 자체였다. 그 공포를 일으킨 사람들은 ‘싸이코 패스’도 아니었고 ‘소복 입은 귀신’도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소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정에서 자상한 아비였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인정 많은 좋은 친구, 이웃에겐 모범적인 생활인으로 인정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한 없이 선량한 이 소시민들이 ‘먹고 살아야지,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있나’, 또는 ‘세상이 그런데 어쩔 수 있나’라는 핑계로 거대한 악을 지탱하는데 일조했다. 얘기가 장황해졌다. 거대권력이 폭압을 휘두를 때 거기 맞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저항했기에 나는 깊은 정신적 상처를 받지도 않았고 그 시절 ‘먹고 살기 위해’ 권력에 휘둘렸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그런 ‘거악’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부당한 공격을 받고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할 사람들이 가해자를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손가락질한다면, 그가 느낄 공포와 절망은 어느 정도였을까? 더구나 그 피해자가 아직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청소년에다 연약한 여성이라면, 또 그가 겪은 고통이 ‘성폭행’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폭력이라면, 그가 느낄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나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이 전한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피해 학생이 겪은 2년 6개월은 세상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현실이었다.   밀양 성폭행 사건에 대해 방송한 MBC '뉴스 후' 사진 출처 - MBC   그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힘도 센 남학생들 수 십 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경찰과 주변 사람들, 제대로 된 현장 조사도 없이 가해자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 법원과 자신의 신상을 세상에 드러나게 만든 경찰과 언론, 가해자들과 쉽게 합의를 해줘버린 아버지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 거기에 가해자인 자기 자식의 선처를 위해 그가 어렵게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을 망쳐버린 가해자의 어미까지. 세상에 이런 공포영화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상대방의 입장과 고통을 헤아리지 않는 인간,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줄지 성찰하지 않는 인간. 나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인간. 그들이 한 소녀에게 가한 행위는 ‘악’이다. 악은 멀리 있지 않다. 반성하지 않는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평온한가. 때때로 악은 바로 그 평범함 속에 깃든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