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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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교수 1. 얼마 전 졸업한 지 30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이 모였다. 느지막이 참석한 자리에서 옛일을 돌아보고 웃음꽃을 피웠다.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담담히 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조금씩 나이의 무게를 느낀다. 물레를 돌려 ‘청(靑)5번’을 뽑고 그날 5시 라디오에 귀 기울여 어느 사립중학교에 배정된 후, 빗물 흐르던 계곡(?)이 뚜렷하고 비 오는 날이면 운동화에 흙이 떡처럼 달라붙던 운동장에서 자갈을 줍고, 건물 증축공사를 할 때 벽돌을 나르던 일, 겨울인데도 깨진 유리창을 한 달이 넘도록 갈아 끼워주지 않던 무심함을 탓하던 마음도 이젠 그저 그렇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공금횡령사건과 교장선생님의 구속... 조회시간에 이 사건을 해명하던 교장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말았던 기억이 스친다. 교실방화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울하게 당한 친구의 이야기... 그때도 지금도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 잘 알고 있었다. 횡령은 누가 했으며, 교장선생님만 억울하게 됐다는 것, 불 지른 범인이라던 친구는 진짜 불 지른 아이를 ‘불지 않고’ 매를 맞아낸 참 멋있는 놈이었다는 것 등 그때도 지금처럼 친구들은 이미 성숙해 있었다. 어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니들이 나이 들면 이 모든 일들이 뭐가 문제였는지를 다 알게 될 거라고... 돌아보면 그 때도 알 건 다 알았다 싶다. 그러고도 학교 잘 졸업하고 공부 열심히 한 게 신통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세월의 무게와 학생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쳐주시던 몇 분 선생님들의 사랑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2. 김포외고 시험문제를 교사가 밖으로 빼돌려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문제를 빼내 학생들에게 제공한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의 합격이 취소되었다. 세세한 사실관계까지 알 수는 없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그 학원에 다니고 있다 또는 다녔다는 사실 때문에 합격이 취소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송을 제기하면 뻔할 뻔자로 학생들이 승소할 사건으로 보이는데 학교는 합격을 취소하였다. 일반계 고등학교 시험을 보게 하려면 빨리 취소할수록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못은 영문도 모르고 문제지 받아서 읽고 우연히 읽은 문제가 나와서 정답을 골랐든, 주는 문제 읽어보니 쉽게 풀 수 있는 것이어서 시험에는 더는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합격하고야 만 수험생들에게 있지 않다. 시험문제를 빼돌린 교사와 문제유출을 막지 못한 학교, 그리고 돈을 주고 문제를 빼낸 학원 말고 이게 학생이 책임을 질 문제인가? 설사 학원에서 나눠준 문제를 보고 도움을 받아 합격했다 손쳐도 이게 합격을 취소할 일인가? 그걸 준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걸 받고 합격한 학생도 평생 동안 그 일은 분명 떳떳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이상의 비난이나 불이익을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부인할까? 학교에 다니든 다니지 못하든 이 사건에 얽혀든 학생들은 평생 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갈 텐데 어른 아니 선생이란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더 큰 상처만 주고 있다. 사건의 본질이 뭔지는 모를 아이들이 아니잖은가? 문제 학원에 다니던 수험생들의 합격을 취소하는 것도 교육자들이 걸을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넉넉하게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선생으로서 참 미안하고 안타깝다.   김포외국어고등학교 사진 출처 - 김포외국어고등학교 홈페이지   3. 로스쿨 광풍이 불고 있다. 말 그대로 미친바람(狂風)이다. 로스쿨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계획에 그럴싸한 실적 만들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예를 들자면, 로스쿨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에게는 5년 동안 논문 800%가 요구된다. 쉽게 말하자면 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술지에 논문 한 편을 단독으로 실으면 100% 실적이 인정되니 5년 동안 8편을 쓰면 로스쿨 교원으로 적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출판해도 마찬가지이다. 로스쿨법이 통과된 이후 9월에서 10월중에 법학논문과 서적이 엄청나게 출간되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책을 나눠서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 필요한 양만큼만 찍어내기도 한다. 5년간 논문 한 편 안 쓰던 분이 갑자기 논문과 책을 합하여 800% 요건을 맞춰내니 신기에 가깝다. 어느 출판사직원은 이런 모습을 두고 2007년 9월과 10월중에 출판된 법학 책은 아예 인용을 할 가치조차 없다고까지 독설을 퍼붓는다. 교원이 강의중인 10월 중에 학교를 옮기고 갑자기 시간강사 신분이 되기도 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또 다른 학교에서 그렇게 교원을 ‘모셔’오기도 한다. 학기 중인데도 주저함이 없다. 로스쿨이 된다 해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보다도 더 세상물정을 알 만큼은 다 아는 법학전문대학원생들에게 정의와 공평을 어떻게 가르칠지 걱정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정신이 몽롱하다. 날밤을 새웠기 때문이다. 어제 밤도 로스쿨신청서를 만들다가 아침을 맞고야 말았다. 선생 탓을 할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 된 지금 나는 이제 이런 꼴을 만드는 제도와 극심한 경쟁만을 탓하여야 할까. 마음이 무겁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
이광조/ CBS PD 현직 국세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사상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강변하던 사람이 구속된 뒤에는 ‘혐의사실을 인정하면 형량을 줄여줄 수 있냐’고 협상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짜증 지대로다. 그런데 이 분은 취임 첫날부터 집무실에서 공공연히 상납을 받았다고 한다. 가증스럽다. 전군표 국세청장의 소식을 접하며 어릴 적 어른들에게서 듣던 얘기가 떠올랐다. 세무서 다니는 사람들은 장판 바닥에 지폐를 깔고 베개에 지폐를 넣고 잔다고 하더라, 결재 서류를 올릴 때 돈을 끼우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고 하더라... 세무공무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군표 국세청장이 취임첫날부터 집무실에서 공공연히 상납을 받았다면 그가 특별하게 돈을 밝히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짐작이 자연스레 생긴다. 대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공무원이랑 화투 쳐서 돈 잃어주는 게 내 일’이라고 푸념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열불 나는 차에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불법승계, 정관계 로비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졌던 문제라 새로울 건 없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파장이 큰 건 한 때 삼성그룹의 고위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 이사를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대한민국 최고 기업’, ‘세계 일류 기업’ 삼성의 행태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기업범죄를 다스려야할 검찰을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뇌물을 먹이며 관리했고 정치권은 물론 국세청을 포함한 국가기관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관리해왔다고 한다. ‘떡값’이라는 훈훈한 표현 덕분이었을까. 자신이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공직자 중에는 자신이 삼성의 관리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다고 하고 몇몇 모자란 사람은 ‘나한테는 왜 안주냐’고 볼 멘 소리를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16일 오후 삼성 본관 앞 도보에서 열린 '삼성그룹 불법비자금 규탄 및 처벌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이건희 회장의 탈을 쓰고 나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조직을 위해 국가조직을 관리대상으로 삼았던 삼성. 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보여준 관리방식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차별화된 관리 기준에 있는 듯 하다. 검사라고 다 똑 같은 검사냐. 학벌 좋고 성적 좋고 보직경로가 좋은 사람이 관리대상이란다. 뭐 이 정도야 어떻게 보면 상식에 속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같은 무지렁이를 감탄하게 만든 건 국세청 등 돈과 직결된 국가기관에 들어가는 뇌물의 규모가 검찰보다 훨씬 크다는 김 변호사의 증언이다. 어차피 법의 심판을 받을 일은 별로 없으니 세금 덜 내고 돈을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국세청이 검찰보다 한 단계 높은 로비 대상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듯 하다. 생각이 이 쯤 미치고 보면 검찰, 법원, 정치권, 국세청, 재경부, 건교부, 언론사 등 삼성이 관리대상으로 삼은 기관들의 순위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검찰수사에서 이런 궁금증도 해결되려나? 로비 대상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옵션이 있다는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현금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줘라. 여기에 등장하는 와인은 요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칠레 산 와인은 아닐 테고 아는 사람만 아는 고급 와인일 게다. 이 밖에 고급 골프채, 호텔 숙박권 등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게 만드는 맞춤형 뇌물을 공급해왔다는 점에서 투철한 관리정신이 엿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이런 세세한 대목까지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도 대단히 흥미롭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업계 최고 조직의 1인자, 조직 안에서뿐만 아니라 조직 밖에서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평가되는 회장님이 힘 꽤나 쓴다는 정관계의 유력인사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챙겼다는 얘기 아닌가. 이 대목에서 영화 ‘대부’의 ‘돈 꼴레오네’를 떠올린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이게 나라야?’ 국세청장의 구속과 삼성 비자금 조성, 로비 의혹을 보면서 입버릇처럼 한탄이 터져 나온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이 연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 시간에 삼성그룹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명예훼손죄로 구속된 한 노동자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다.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 씨. 국제사면위원회는 그를 양심수로 선정했다. 한국에서 노동자가 양심수로 선정된 건 김성환 씨가 처음이란다.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는 번번이 법의 심판을 모면하고 삼성에서 노조를 설립하려던 김성환 위원장은 감옥에 있는 현실, 이것이 삼성의 정관계 로비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 삼성 휴대폰을 보면 괜히 반갑고 첼시 선수들이 삼성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고객에 대한 기업의 예의가 아니다. 삼성의 관리대상이었던 자랑스러운 공직자들이여, ‘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 해라.’
2017-06-22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전국이 지방의원 의정비 인상 문제로 시끄럽다. 강원도에서도 과도한 의정비 인상에 대해 시민들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고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강원도 지방의원의 의정비는 40% ~ 90% 인상되었고, 재정자립도가 20% 안팎을 왔다 갔다 하는 인제군의원 의정비가 무려 90% 인상되어 인제군의원들은 한해 4380만원을 받으며 의정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방재정 상태가 열악한 강원도 지방의회의 인상률이 전국 최고라는 지적도 있다. 지방의원들의 의정비 인상에 대해서는 이른바 보수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좌우합작’이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의정비 인상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주장을 보면 주민을 설득하기에는 명분이 없고 무엇보다 의정활동 성적이 변변치 않은데 ‘생존권’주장만 하는 듯해 보기에 민망 할 정도다. 지방의원들은 대부분 생업을 가지고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의정활동 과정에서 이해가 상충될 수 있고 그래서 겸직금지제도가 없는 상황에서는 유급제가 표류할 수 있다. 또한 지방의원들이 선량이 아니라 토호라는 비아냥거림이 근거가 없지 만은 않기 때문에 의정비 인상 주장이 반대여론에 부딪히는 것은 자업자득인 면이 있다. 이렇게 의정비 인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대되면서 지방의회와 주민간의 갈등으로 발전하고 있고 마침내 중앙정부인 행정자치부가 개입을 선언하고 나섰다.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을 위해 도입한 유급제가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짧고 시민들이 지방자치에 대해 크게 애착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보면 의정비 인상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견제하고 입법권, 감사권, 예산심의권을 가지고 있는 주민의 대표 기관이기 때문에 지방자치가 자리 잡고 단체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단체다. 또한 지방의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할 수가 있다.   강원도의회 본회의 모습 사진 출처 - 강원도의회 홈페이지   따라서 이 문제를 의정비 인상 여부에만 국한해서 다룰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를 성숙시키기 위해 각 주체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제도정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논의해서 민주주의 꽃인 지방자치가 자라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처럼 정당공천제와 유급제를 지속시키려면 의원정수를 더 줄이고 비례를 최대 50%까지 늘려 책임정치가 구현 될 수 있는 여건을 확산,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제도를 고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아니면 의원들이 주민들의 생활에 더욱 다가갈 수 있도록 의원들의 숫자를 대폭 늘리고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며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회의 권한을 늘려 정책생산 능력을 높이고 집행부에 대한 독립성도 키워 의회의 견제기능을 강화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의정직에 대한 인사권을 의회에 주어 집행부에서 조직을 분리하고 전문위원을 늘려 의원들에 대한 정책 지원기능을 강화 시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지금 현실은 의원들에게 정책생산능력은 요구하면서 의원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고, 예산 편성권과 집행권을 가지고 있는 집행부가 의정직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도 가지고 있어 의회가 단체장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법률의 범위 내에서” 조례를 제정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지방자치법도 빨리 개정해서 지방의원의 입법권한을 넓혀주고 지방의회가 주민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의정비 인상을 둘러싸고 해마다 벌어지는 논란을 막기 위해 시행령에 자치단체의 재정형편이나 규모에 따른 차별화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의정비 심의위원회는 그 범위 안에서 심의 하도록 하는 방법도 검토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방자치를 도입 한 역사가 짧다. 그래서 지방자치에 익숙하지 않고 지방자치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이 충분 하지 못한 면이 있다. 어찌 보면 의정비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공론도 성숙한 지방자치를 위한 성장통일 수 있다. 의정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지방자치를 성숙시키는 방향으로 발전 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의 긍정적인 시선이 필요한 때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요즘 대학가에서는 “인권” “윤리” “정치”등의 이름이 들어간 강의는 별로 인기가 없고, 그 대신 “문화” “성” “건강”과 같은 이름이 붙은 강의는 인기가 높아서 수강신청이 몰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과목을 수강하겠다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지만, 갈수록 삶의 근본적인 문제, 가치, 공동체 등에 관한 문제는 외면한 채 “실용적이고, 재미있고, 돈 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번 학기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으로 맡은 과목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교양과목이었다. 제목이 그럴 듯해서 수강인원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책도 몇 권 새로 구입하고, 강의계획표도 만드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수강신청변경기간이 끝난 후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수강인원이 적어서 폐강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최고 인기강좌 중의 하나였다고 들었는데... 하기야 요즘 대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역사책에서 접하고, 87년 민주화운동 역시 유아기에 겪은 세대이니 민주주의와 인권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그야말로 대학가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몰락”(?)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클레멘트 코스라고 불리는 빈곤층과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통상 국가는 사회복지 정책으로 “교육”이 아닌 “훈련”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적능력이 부족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등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반면 인문학 교육은 삶과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찰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주어 가난한 사람들도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라는 것이 가난 그 자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 쇼리스의 주장은 한계가 있지만, 삶과 사람에 대한 성찰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기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참으로 타당하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인문학 교육은 어떠한 지식을 얼마나 아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기능과 지식을 습득하는 훈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요즘의 대학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가를 키워낸다는 미명하에 실용적인 “훈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저임금을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가난한 기술자를 원하는 기업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는 현실을 보면 결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닌 것 같다. 얼 쇼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필요의 지배를 받게 되면 정치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간도 열정도 사라지게 되며, 그 결과 힘 있는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진다.” 정치적인 삶이란 인간으로서의 삶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공동체에 대해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인권연대가 꾸준히 하고 있는 일반시민, 재소자,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은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사람의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경찰청은 10월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박명재 행정자치부장관, 유인태 국회 행정자치위원장, 이택순 경찰청장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우선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경찰청장 이하 15만 경찰관 여러분의 노고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린다. 우리나라 경찰은 경찰 창설 이래 시대 여건에 따라 건국경찰, 구국경찰, 호국경찰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 “봉사와 질서”라는 구호 아래 탄생한 우리나라 경찰은 경찰대개혁과 경찰혁신을 통하여 선진 경찰로의 도약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경찰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경찰의 숙원사항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결론을 짓지 못하고 해를 거듭하고 있어 못내 아쉽다.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수사권의 분권화’를 실현하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구조가 개편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검·경의 제 밥그릇 챙기기란 비난이 쏟아지면서 ‘수사권 관련 논의를 당분간 중단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더 이상의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는 국정원리에 따라 수사권의 조정 문제가 공약사항에 포함돼 추진되었다. 2005년 3월 16일 경찰대학 21기 졸업식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고 경찰이 책임감 있게 범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06년 10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6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검·경 수사구조 개혁과 관련하여 양측이 성의 있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단계적 접근을 통한 제도개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9일 경찰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공약했던 수준보다 더 나아간 안을 마련해서 중재하려고 했으나 여러분의 조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 방안을 추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사실상 참여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경찰의 혁신과제로 선정되었던 검·경 수사구조 개혁은 국민의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 마무리되기는 난망해 보인다.   지난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2007년 12월 19일 치러지는 제17대 대통령선거의 각 당 대통령후보들이 경선 절차를 통해 속속 선출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선출된 데 이어 9월 15일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10월 10일에는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 10월 15일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2007년 10월 16일에는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밖에도 창조한국당 문국현을 비롯하여 참주민연합의 정근모 등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후보들이 대권을 꿈꾸며 경제대통령, 교육대통령 등을 기치로 내걸고 각종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앞으로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어떠한 내용의 경찰관련 공약들을 내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경찰관련 공약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의 도입’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공약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기 정권에서도 다른 공약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100년 정당을 기약했던 열린우리당이 창당 4년을 못 채우고 간판을 내렸으니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자치경찰제의 도입’과 같은 공약은 이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만일 대선 후보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이번 기회에는 이를 반드시 관철할 수 있도록 경찰 지휘부를 비롯한 모든 경찰관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찰과 검찰 사이의 그동안 쌓인 해묵은 갈등과 반목이 해소되어 ‘견제와 균형’, ‘분권과 자율’에 충실한 합리적인 ‘민주 분권적 수사구조 개혁’을 통하여 국민에게 양질의 수사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3월 8일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에서 나타난 수사 과정에서의 은폐와 외압 등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의 부단한 자기 혁신이 계속돼야 한다. 이를 통해 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해 국민에게 경찰 수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수사역량을 강화해 고품질의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여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매번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내걸었던 선거공약이 대통령이 된 후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자는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공약(公約)을 반드시 실현하여 공허한 약속(空約)으로 끝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아울러 국정을 정상화시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십장생(10대들도 장래 백수가 될 것을 걱정)’과 같은 말이 사라져서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 청년실업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날도 빨리 찾아오기를 고대해 본다. 다시 한 번 경찰의 날을 맞이하여 15만 경찰관 여러분께 축하를 드리며,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이 감동하는 치안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줄 것을 부탁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국제문제연구소(PASSIA) 소장 *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PASSIA, http://www.passia.org/) 소장인 마흐디 압둘 하디(Dr. Mahdi Abdul Hadi) 박사가 인권연대에 보내온 기고문, “가자와 서안 분할(The Gaza-West Bank Split)”은 현재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기고문의 번역과 정리는 홍미정(한국외대 중동문제연구소)교수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역사상의 팔레스타인 땅(26,323㎢) 중 78%는 현재 이스라엘 국가 영역이고, 22%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을 일으켜서 점령한 동예루살렘(345㎢), 가자(365㎢), 서안(5,310㎢) 지역으로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인 이스라엘 군사 점령지다. 이 세 점령지들은 이스라엘이 직접 지배하는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자 정당인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역, 팔레스타인 자유주의자들 정당인 파타가 통치하는 서안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다. 이 세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간의 이동은 모두 이스라엘의 허가증이 필요하지만, 허가증은 거의 발급되지 않는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을 종식시키고, 이 22% 지역을 통합하여 팔레스타인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소망과는 반대로, 동예루살렘, 가자, 서안 사이에서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분할이 진행되고 있으며, 예루살렘은 하루가 다르게 이스라엘의 패권 아래로 빠져들고 있다. 예루살렘의 상황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주변 지역에 8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여러 겹 건설하고, 수많은 검문소를 설치하여 수 천 명의 이스라엘 군인들과 경찰들을 배치함으로써 서안 지역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의 동예루살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상황을 계속해서 창출하면서, 동예루살렘 거주 25만 팔레스타인인들(Jerusalemites)에게 새로 창출된 상황을 수용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도시 텔아비브와 유사하게 변해가면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를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에게 영주권을 의미하는 2등 시민권을 발급하였다. 2등 시민권을 소유한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은 의회 선거에서 투표할 수도 없고, 정해진 구역 밖에서는 재산도 소유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의 비율을 줄이는 정책의 일환으로 2등 시민권을 박탈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시민권 박탈 비율이 작년보다 6배 증가하였다.   그림 출처 - 홍미정 교수 가자의 상황 가자 전 지역은 이스라엘에게 포위된 채 고립된 감옥이다. 이 대형 감옥에는 5개(Erez, Nahal Oz, Sufa, Kerem Shalom, Rafah)의 출입구가 있으며,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경계를 분리시키는 5백 미터 폭의 보안 지대가 있다. 가자 공항은 파괴되었고, 항구 건설도 방해받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를 ‘적지(enemy entity)’라고 선언하면서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경계를 영구적으로 폐쇄시키려고 획책하고 있다. 이 대형 감옥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인들의 약 40%를 구성하는 약 150 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매우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중 60%는 등록된 난민이며 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UNRWA)과 다른 국제기구들에 의존해서 생활한다. 70%의 주민은 실업 상태이며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한다.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하여 이집트로 가기를 원하는 수천 명의 가자 학생들은 이집트로의 출국 길이 막혀 있다. 빈곤, 실업, 연료, 전기, 식량 부족 뿐만 아니라 수출입이 전면적으로 차단되면서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집단 체벌을 당하고 있다. 서안의 상황 서안 지역은 이스라엘 점령촌, 분리 장벽, 이스라엘 검문소 등으로 철저히 통제된다. 가자는 통합된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며, 서안은 분리 장벽으로 건설된 거대한 감옥이 다시 갈기갈기 찢겨지고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상황이다. 영토, 주권, 민족적 정체성의 견지에서 서안 지역을 가자 지역에 비교해 본다면, 찢겨진 서안 지역이 통합된 가자 지역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리 장벽 건설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9.5%를 이스라엘 본토로, 8%는 서안 내부의 이스라엘 점령촌으로 합병하였다. 2007년 현재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점령민 20만 명을 포함하는 약 45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점령민들을 보호하는 이스라엘 보안대가 570개 이상의 검문소를 설치하여 서안의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서안의 28.5%를 구성하는 요르단 계곡 지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폐쇄되어 있고, 이스라엘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된다. 약 3천 5백 내지 4천명의 이스라엘 점령민들이 이 지역 수자원의 85%를 지배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요르단 계곡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 소유지에 접근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나머지 영토인 서안의 54%에만 접근이 허락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이 고통스런 상황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광범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협상들이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통하여 세 지역에서 통합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마흐디 압둘 하디 소장과 홍미정 교수 사진 출처 - 홍미정 교수
2017-06-19 | hrights | 조회: 35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일 년 일정으로 동경으로 오기 전 해외 은행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모 은행 현금카드를 하나 만들었다. 국내 은행에 잔고가 있으면 해외 대부분의 현금인출기에서 현지 화폐로 인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금 일부는 국내 은행에 두고 일부는 손에 들고 동경으로 날아왔다. 동경에 머문 지 일주일 쯤 지나서 나는 현금 인출이 과연 자유로운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듣던 바와는 다르게 내가 시내에서 만난 어떤 현금인출기에서도 카드 사용이 불가능했다. 사용할 수 없으니 발행기관에 문의해보라는 메시지만 뜰 뿐이었다. 몇 번 시도 끝에 나는 카드를 발행해준 은행 동경 지점에 문의하러 숙소 근처 허름한 공중전화를 찾았다. 동경지점 직원 말에 의하면 아무 은행에서나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계 은행과 우체국에서만 사용 가능한 카드라고 했다. 특히 우체국은 곳곳에 있으니 우체국 현금 인출기를 이용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왜 한국에서 들은 말과 다른지 간단한 항의를 한 뒤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때가 초가을 어느 날 오전이었다. 이어 나를 초청해준 일본 교성학림 학장을 비롯한 전문학교 교장, 일본종교인평화회의 관계자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 환담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늦은 오후였다. 잠시 휴식하다가 은행 직원에게 들은 말이 생각나 우체국에서는 내 현금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지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 이리 저리 물어 알아놓은 뒤 그 카드를 찾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갑에 있어야 할 카드가 없는 것이었다. 온갖 주머니, 가방, 방안을 샅샅이 뒤져도 나오질 않았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사고를 쳤나보다 싶었다. 침착하게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최근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면 동경지점에 문의하기 위해 갔던 그 허름한 공중전화 근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은 기대를 품고 옷을 챙겨 입고는 그 공중전화로 향했다. 가면서 생각했다. ‘그 공중전화 자리에 카드가 있을까, 있었으면 좋겠다, 만일 그대로 있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신뢰할 수 있게 될 거야....’ 부지런히 도착해 허름한 공중전화 보호대 문을 여는 순간 전화기 옆에 놓여있는 내 은행 카드가 한 눈에 쏘옥 들어왔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단면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들 휴대전화를 쓰니 어쩌면 그 공중전화에는 나 이후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금이나 다름없었던 카드는 여섯 시간 동안 공중전화 부스 안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래도 중요한 것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 거의 여섯 시간 동안 카드가 그대로 놓여있었고, 나는 현금이나 다름없는 그 카드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카드를 들고 나는 바로 근처 우체국으로 향했다. 은행 직원 말마따나 우체국 현금 인출기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었다. 한 번 더 다행이었다. 동경의 외곽 한적한 동네우체국 뒤로 넘어가는 저녁 햇살 속에서 무언가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뒤 이 날의 느낌을 남겨놓으려 한국에서 쓰던 노트북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수십 여 개 의미 없이 깔려있는 바탕화면의 아이콘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삭제해도 되는 아이콘들은 정리해야겠다 싶어 이리 저리 마우스를 클릭 하다가 뜻밖에 가수 윤도현의 거의 모든 노래가 담겨있는 폴더를 하나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윤도현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언젠가 나의 아들이 저장해놓은 곡들이었다. 이것이 바탕화면에 있었는데 그동안 전혀 몰랐다니... 여러 음악 파일 중 눈에 띄는 노래가 있었다. 언젠가 딱 한 번 듣고는 인상적이었다가 그 뒤로는 전혀 들을 기회가 없었던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였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나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서정적이면서 깊이 있는 가사가 좋았고, 멜로디는 반복적이었지만 따뜻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그 노래 분위기에 푹 빠졌다. 반복해서 수십 번 들었고, 외워버렸다. 일 년 이상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듣지 못하던 이 노래가 뜻밖의 상황에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내게 이렇게 묘한 감동을 주다니 역시 세상 이치는 다 알 수 없었다. 여섯 시간 동안 현금카드를 공중전화기 옆에 고스란히 놓아주었던 그 “아름다운 것들이” 노래 가사처럼 “오래 남을 수 있기”를 바랬다.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가수가 고마웠고, 이 노래를 나도 모르게 컴퓨터에 저장해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일지, 두 사람일지, 아니면 전혀 없었을지 모르지만, 공중전화기에서 그 카드를 보고도 그대로 둔 이가 고마웠다. 이런 고마움들이 내가 일본으로 오게 된 흔치 않은 상황과 미묘하게 어우러졌다.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아름다운 것들이 오래 남도록” 하는 일, 내가 할 일은 그런 것이어야 하리라는 생각에 날 새는 줄을 몰랐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42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거짓말 아닌 거짓말 처녀 시집 안 간다는 말, 장사치 밑지고 판다는 말, 노인 얼른 죽어야지 하는 말을 3대 거짓말이라고들 한다. 거짓말인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이 말에 어찌 진실이 없을 것인가? 여자라고 반드시 시집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 안 간다는 말이 거짓일 수만은 없고, 장사하면서 물건을 떼 온 값에 자기 품삯 정도는 더해야 원가가 되니 물건을 떼 온 값 이상으로 판다 하여 밑지지 않는 게 아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얼른 죽어야지.” 하시는 말씀은 어떤 때에는 엄숙하기까지 하다. 어찌 거짓말이라 가벼이 여길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거짓말보다 더한 거짓말은 아마도 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하는 “딱 한 잔”이 아닐까 싶다. 죽음 - 가장 엄숙한 삶의 순간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음으로써 이승의 삶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죽음을 어떻게 맞고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어쩌면 삶의 가장 진지한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살려면 잘 죽어야 하고 잘 죽는 사람은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믿는 바 가치를 실현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죽는 것,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떠나는 것, 남는 사람들에게 한을 남기거나 짐을 지우지 않고 죽음으로 오히려 화해에 이르게 하고 떠나는 것은 잘 죽음의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종교인들의 경우는 다른 차원의 덕목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잊고서는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잘 사는 것도 배워야 하지만 잘 죽는 것도 배워야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의 학습공간 "얼른 죽어야지."라는 노인들의 말은 상당 부분 진실이라고 믿는다. 늙어 자식들에게 짐만 되거나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어느 날 잠자듯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의 마음은 숭고하게 느껴진다. 곧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곡기를 끊고 속까지 다 비운 채 죽음을 택하는 모습은 거룩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죽음의 모습은 일생을 통하여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 결과라 생각한다. 종교를 신앙한다는 것도 그러한 차원을 만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음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그 원인이 상당 정도는 생활공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이의 무덤이 산 자의 생활공간 안에 존재하는 시골마을의 공간구조는 산 사람들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집을 나서 논과 밭으로 가면서 조상님들의 묘를 지나고 산 자에게 얘기하듯 조상님을 만나는 생활을 통해 죽음이 삶 깊이 자리 잡게 된다고 생각한다. 마을 뒤의 무덤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잔디 깔린 운동장이다. 자신도 죽으면 저렇듯 무덤을 이루고 자손들이 얘길 걸어줄 것이라 믿고, 죽음이 삶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른 모습임을 깨닫고 살게 되는 것이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와 차례를 통해서도 죽음과 삶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교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분들이 죽음을 대하는 것은 죽음을 공포로 느끼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조상의 반열에 드는 것이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추석을 맞아 조상의 묘를 찾은 성묘객들의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죽음이 추방된 도시 반면 도시에서 죽음의 자취를 찾기란 매우 힘들다. 도시에서 죽음은 매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공동묘지는 음습하고 처녀귀신이 나오는 장소이다. 비 오고 흐린 평일에 한산한 공동묘지에 택시기사들도 가길 꺼린다. 시골이라고 무섭지 않을까만 도시에서 그 분위기는 유난한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도시의 생활공간에서 죽음을 거의 접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게 도시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도시에서는 죽음을 배제하고 있다. 병원은 사람이 치료받는 곳이긴 하지만, 치료가 된 사람은 병원 정문으로 퇴원하고 치료가 되지 않은 사람은 지하실을 통해 큰(?) 차타고 길을 나선다. 분명 살아 병원 문을 나서는 사람과 죽어 문을 나서는 사람이 있지만 죽어 나가는 사람의 모습은 애써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아파트에서도 상가(喪家)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변 주민들의 항의로 장례식장은 대부분 지하에 자릴 잡는다. 생활 속에서 상시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오로지 충격과 함께 죽음을 만난다. 송장을 태우는 화장장도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만들지 않으려 한다.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화장장은 다른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요금을 대폭 인상한다고 한다. 죽음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면 죽음의 자리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삶이 있을 수 없을 텐데, 도시의 삶은 그만큼 종교적 차원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종교가 그 자리를 상당 부분 메우고 있겠지만 말이다. 납골묘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 얼마 전 천주교 추기경이 탄 차가 어느 성당을 방문했을 때 주민들의 계란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성당에서 건설 중인 납골묘에 대해 항의한 것이라 한다. 초·중등학교가 부근에 있다던가? 그들에게 납골묘가 그렇게 혐오스러운 것이었을까? 납골묘가 가까이 있다고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가?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 말고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지 궁금하다. 기독교 교회나 천주교 성당에서 내걸고 있는 십자가는 2천 년 전 한 청년을 처형한 형틀이었음을, 그것도 시뻘건 피를 흘리며 죽었음을 기억하고자 붉은 빛으로 하고 있음을 상기하면 십자가라는 상징을 바라보는 마음이 단순할 리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종교란 본래 삶과 죽음에 관한 가르침이자 믿음임을 떠올린다면 죽은 이들의 남은 흔적인 뼛가루를 종교시설 안에 모신다 하여 무엇이 그리도 문제가 되는 것일지? 납골묘 부근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오히려 훌륭한 철학적·종교적 품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계란은 먹는 것이지 차나 사람에게 던지는 게 아니다. 도시 안에 죽음과 같이 살자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천박한 자본주의와 경박한 행태를 경험하는 것은 멀리는 이러한 죽음의 부재에서도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강하고 화려하고 풍부하고 밝은 것만을 추구하는 도시의 문화는 약한 것, 힘겨운 것, 모자란 것, 어두운 것을 감춘다. 부자들이 산다는 동네에도 반은 집 없는 사람들이 살지만, 드러나는 것은 돈의 화려함뿐이다. 영원할 수도 없고, 사람을 살리지도 못하는 이러한 문화를 바꾸는 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자각을 위해서 생활공간 안에 그러한 자리를 마련하여야 한다. 가장 확실한 것이 죽음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묘지이다. 이렇게 보면 묘지, 화장장은 오히려 도시에 필요한 시설이다. 몇 년 전부터 서울시가 추진해오는 묘지공원사업은 답보상태이고, 간혹 설치되는 시내 납골시설조차 민원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분명 반성하여야 한다. 물론 잘 때까지 곡소리 들리는 걸 방임하자거나 검은 연기 풍기는 걸 무작정 허용하자는 게 아니다. 죽음의 공간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내에 있는 묘지를 한가로이 산책하면서 죽은 이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삶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차원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맹모삼천지교처럼 사는 환경에 따라 사람 사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라 하니, 죽음을 생각하고 살 수 있다면 종교적, 철학적 삶이 더욱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맹자 역시 공동묘지 가까이서 살았던 경험이 그의 사상형성에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 살려면 잘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멀리 하면 삶도 멀리 있는 게 아닌가.
2017-06-19 | hrights | 조회: 50 | 추천: 0
이광조/ CBS PD 장면 1.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법원으로부터 200시간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법원을 나서는 김 회장은 수염을 깎지 않아 여전히 초췌해보였지만 안도감 때문인지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심야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사람을 폭행하고 더구나 폭행과정에 쇠파이프 등의 흉기를 사용했다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최소 징역 5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다는 것이 변호사들과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에게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 같은 법률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피고인은 그동안 재력으로 사회에 공헌한 바가 크다 해도 재벌그룹 회장으로서의 과도한 특권의식을 버리고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 화광동진(和光同塵.빛을 부드럽게 해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의 자세를 갖춰 복지시설 및 단체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이행할 것을 조건으로 형의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 ‘너의 땀을 통해 속죄하라’. 법에도 인간의 얼굴이 있겠지만 김승연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은 문제아를 지도하는 교사를 연상시킨다. 자상한 판사님. 게다가 문장력은 또 얼마나 뛰어난가. 화광동진이라는 절묘한 사자성어까지 동원한 문장력이란. 하지만 판사가 아버지야 선생님이야? 검찰은 집행유예가 선고될 정도로 적당히 수위를 낮춰 구형하고 재판부는 재벌회장에게 훈계성 멘트를 마구 날리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을 이렇게 자신들 임의대로 주무르는 법원과 검찰을 우리는 어떻게 통제할 도리가 없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장면 2. “미국에서도 교포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것처럼 국내 시판 미국산 쇠고기 역시 이상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수입위생조건 위반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심지어 광우병 위험이 있는 특정위험물질이 포함된 경우까지 있었지만 우리정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미국사람도 먹고 재미동포들도 먹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다. 농림부 방역과장의 얘기다. 어떤 유력 일간지의 한 데스크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광우병 위험을 거론하며 철저한 검역을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반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행동’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언론의 분석과 주장이야 각기 다양할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민의를 대변하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에 둬야할 정부가 이렇게 ‘무대뽀’로 나오면 어떡하나. 미국의 약속위반은 내버려두고 갈비뼈도 수입할 수 있도록 수입위생조건을 바꾸려고 하는 정부의 입장은 상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이해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광우병에 대한 철저한 검역과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주장은 자국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이기적인 주장이 아니다. 소비자로서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고 싶다는 것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요구이며, 경험적으로 확인된 위험요소를 최대한 피하자는 것 역시 합리적인 수준의 요구일 뿐이다. 광우병이 발견된 국가들 중 미국처럼 광우병 검역을 소홀히 하고 여전히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는가. 그 뿐인가 미국은 아직 쇠고기에 대한 이력추적제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엉성한 제도를 고치는 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나라들뿐 아니 미국 내 소비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 아닌가. 두 나라의 소비자를 위한 일이 어떻게 반미가 될 수 있나? 17년 전 존 검머 영국 농무부 장관이 “영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며 자신의 딸과 함께 텔레비전에 출연해 쇠고기 버거를 먹었다. 다행히 당시 검머 장관의 딸은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버거를 먹지 않았지만 검머 장관의 이 시식행사 이후 영국에서는 엄청난 광우병 파동이 불어 닥쳤다. 현재까지 18만 두가 넘는 소에서 광우병이 확인됐고 약 400만 마리가 도살됐다. 그 뿐인가. 1995년 인간 광우병으로 19세 청년이 사망한 뒤 143명이 인간 광우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어떤 전문가는 광우병의 잠복기간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2015년쯤부터 해마다 약 2만 명 정도의 영국인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지난 2001년까지 동물 사료를 먹은 애완용 고양이 100마리가 광우병으로 죽었다. 확인된 것만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동물성 사료를 먹은 다른 애완동물들도 광우병의 위험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을 휩쓴 광우병 파동이 재연되질 않길 바라지만 마냥 안심하기에는 모든 게 너무 불확실하다. 미국은 광우병의 공포가 유럽을 휩쓸던 지난 1997년 동물성 사료 규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동물성 사료 규제 조치는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금지했을 뿐 다른 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는 계속 허용했고 이런 사료정책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광우병은 반추동물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교차 감염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의 경우 광우병은 밍크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모피를 만들기 위한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살코기와 부산물은 동물성 사료로 만들어져 소에게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지난18일에 열린 '한우인 총궐기 대회'에서 축산농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한미FTA국회비준 저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교차 감염의 위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몬태나 주에서 축산업에 종사했던 하워드 리먼의 얘기는 충격적이다. 하워드 리먼은 “성난 카우보이(Mad Cowboy)”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농장에서 나온 가축 이외에 사료업자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안락사 시킨 애완동물이다. 전국의 동물 수용소에서는 매년 6-7백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죽어간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레스만 하더라도 매월 약 2백 톤의 안락사한 개와 고양이를 사료 공장으로 보낸다. 이런 섬뜩한 혼합물을 빻아서 증기로 쪄내는데, ... 무거운 단백질 원료는 말려서 갈색 가루로 만든다. 그 중 4분의 1 정도는 배설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 갈색 가루는 가축의 사료뿐만 아니라 대부분 애완동물의 사료에 첨가된다. 축산업자들은 이것을 ‘농축단백질’이라고 부른다. ... 미국에서는 9천만 마리의 육우 가운데 약 75퍼센트의 육우에게 ‘영양가를 높인’ 동물성 사료를 일상적으로 먹인다.” 섬뜩한 광경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97년 동물성 사료 규제정책을 실시한 뒤에도 이런 현실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소의 피는 여전히 소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지난 2003년 광우병 소가 발견된 뒤 지금까지 모두 세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9천만 두에서 1억 두에 이르는 소를 사육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률적으로 아주 낮은 가능성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경우 광우병 검역체계가 유럽연합이나 일본에 비해 대단히 허술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2003년 12월 첫 광우병 소가 발견되기 전까지 전체 축우의 0.1 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했다.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이후 광우병 검사 대상이 1퍼센트로 확대되었지만 최근 다시 0.1 퍼센트로 축소되었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에서는 전체 축우의 25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고 일본은 모든 축우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만약 유럽연합이나 일본처럼 광우병 검사 대상을 늘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미 농무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낸 도축과정의 문제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견된 2003년 12월 이후 14개월 동안 도축과정에서 광우병 검역과 관련해 모두 829건의 위반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 산 쇠고기를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뼈를 포함해 미국 산 쇠고기에 대한 전면적인 수입개방이 이뤄질 경우 쇠고기 가공품이나 소의 피로 만든 사료 등도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광우병이 국내에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을 가르치려고 하는 재판부와 국민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요구에도 ‘무대뽀’로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정부. 국민의 의견과 법이 이렇게 무시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기’ 아니면 ‘환상’이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1. 지난 번 ‘수요산책’에서 신정아씨 학위 위조 사건은 형식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는 글을 쓴 바 있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의 개인적 친분관계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일부 나오면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까지 비화되고 있지만, 어떻든 이번 일이 박사학위, 가능하다면 미국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을수록 무언가 대접받는 우리 사회의 풍토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학문적 역량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분위기야 문제될 일이 전혀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쳐 학위, 학교 또는 학위 수여국 자체가 학문적 능력과 단순 동일시되는 현상은 경계하고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니 특정 대학 학위를 위조하고도 버젓이 활보하거나, 그렇게 행세하도록 조장하기까지 하는 일부 사회적 분위기는 타파되어야 하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번에 적은 대로 과거에는 중국, 한 때는 일본, 그리고 이제는 미국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권력에 가깝게 다가설 가능성이 커지는 현실은 우리에게 체질화되다시피 한 사대주의적 구습이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현상이니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기회에 일부라도 극복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것도 분명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서 무엇보다 내 자신은 그러한 저급 문화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먼저 묻게 된다. 나부터 그렇지 않고서 어찌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겠는가? 이번에는 박사 학위에 얽힌 나의 얘기를 써보련다. 2. 나는 화학과 재학 중 인생 고민을 하다가 대학원을 종교학과로 진학했고, 학문에 대한 흥미와 순수한 열망 속에서 종교학 및 신학으로 두 번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건방진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뒤에는 나름대로 인생관도 뚜렷해지고, 학문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났다. 특히 종교 공부는 매력 있는 일이었고, 박사 아니라 그 어떤 분야의 학문도 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자신감만으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현실적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89년 종교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동료 및 선후배들과 ‘종교문화연구원’이라는 연구소를 창립해 연구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면서의 일이다. 연구소 활동은 충분히 즐거웠지만, 그런 즐거움과 자신감은 정말 나만의 것이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는 학문적 자신감에 넘쳤지만, 남들도 나를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학문, 특히 종교학과 신학의 핵심은 연구자가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가에 있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그런 순수함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색이 연구소의 연구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다 보니, 사회는 나의 연구가 정말 신뢰할만한지 객관적인 근거가 있느냐며 물었다. 그러니까 박사 정도는 있어야 네 연구를 신뢰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고 네가 하는 연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자격증이 바로 ‘박사학위’였던 것이다. 혼자 도를 닦는 것이 아닌 마당에 나름대로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것이 현실이었고, 나는 그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만 했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박사학위는 내 인생 첫 번째의 ‘타협’이었다. 평상시 신념에 따르면 학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위가 내 앞길을 넓게 열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자 타협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학자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 내지 흐름에 나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물론 공부 자체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자격증도 필요했던 것이다. 신정아씨가 온갖 학위를 편법으로 취득하거나 위조한 것도 학위가 있으면 자신의 앞길이 좀 더 탄탄하리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는 점에서는 나와 전적으로 다르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3. 석사 과정 중 나는 적어도 외국, 특히 미국에서는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나서던 그런 학생은 아니었지만, 광주항쟁 이후 ‘반미’적 정서를 갖게 되었던 학생 시절 한국에서 쓸 자격증을 취득하러 미국으로 간다는 것은 그 때 내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반일한다면서도 일본 유학 한 뒤 출세 길로 들어선 상당수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종교학과 신학은 이론이기보다는 실천이니, 어디서든 제 하기 나름 아니겠느냐 믿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나중에 여행이나 다녀야 할 곳이라는 마음이 그 때는 강했다. 그렇게 해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박사 과정을 끝내고 보니 이른바 국내박사가 미국박사에 비해 받는 푸대접은 생각보다 심했다. 우리 사회에 미국에 대한 사대적 성향은 과거 중국 종속적이던 시절에 비해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박사가 돌아오자마자 받는 대우와 비슷한 대우를 국내박사가 받으려면 학위 취득 후 10년 이상 노력해 상당한 연구실적을 쌓으면 될까 말까 하는 정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박사학위 취득 후 학회에서 논문 발표라도 할라치면, 종종 듣던 말이 ‘언제 귀국했느냐’는 것이었다. 종교학이나 특히 신학계에서 학자라는 명함이라도 내밀려면 미국이나 독일 정도에서는 하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팽배했다. 아닌 게 아니라 97년 한 기독교 관련 학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국내에서 박사를 마친 이는 거의 나 혼자뿐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언제 귀국했느냐는 물음은 좀 불쾌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신학계에서 결코 어색한 물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학에도 ‘원조’가 있으며, 그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나 독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나는 이들이 저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에서의 학문을 열등한 것으로 매도하고, 진리의 기준을 늘 자기 밖에서만 찾다가 결국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고 말게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미국 유학 박람회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4.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몇 가지 소박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 때 제대로 읽지도 않은 외국어 책을 의도적으로 각주나 참고문헌으로 인용하면서 내가 외국 학문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 자랑하려는 유치한 분위기에 편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몇 가지 단순하나마 나만의 규칙을 갖게 되었다. 첫째, 논문이나 책을 쓴 사람의 학위를 참고는 하되 내용을 읽거나 보기 전에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 둘째, 연구자의 학위취득 국가나 학교에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셋째, 우리 말 책을 읽고는 마치 영어나 독일어로 읽은 것인 냥 논문 각주에 원서 참고문헌을 줄줄이 달아놓는 유치한 일은 하지 않는다. 넷째, 외국의 흐름과 현황을 익히기는 하되,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당시 결심했던 내용들은 대체로 그런 것들이다. 요지인즉, 형식보다는 내용, 술수보다는 순수를 지키는 것이 결국 학문의 정도임을 나름대로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5. 적고 보니 다소 우습지만 솔직한 고백이다. 때로는 이러한 단순한 규칙마저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은 늘 간직하고자 한다. 학문의 기준은 오로지 내실과 내면에 있는 것이지 외형과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데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에야 실력을 보고 평가하지, 권력을 보고 평가하는 저급한 사례는 줄어들 것이다. 좀 더 전문성을 인정받으려 박사학위라는 ‘자격증’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니 박사학위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신정아씨나 나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정아씨는 왜 학위 위조 내지 매수의 길을 갔을까? 만일 그가 학위 조작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더라면, 그의 최소한의 실력마저 묻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깝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4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