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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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광조(CBS PD),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5월 5일), 어버이날(5월 8일), 스승의 날(5월 15일), 성년의 날(5월 21일)과 둘이 하나가 된다는 부부의 날(5월 21일) 등이 5월에 몰려 있어서 나온 말인 듯 싶다. 이상의 여러 가지 기념일 중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해 마다 달라지는 ‘스승의 날’에 대한 기억들이 “아이 둘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자식들의 스승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하는 생각”, “나를 가르치고 지도해 주신 스승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하는 생각”,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스승의 날에 대한 생각” 등이 서로 교차되어 떠오른다. 우선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선생님들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와 관련해서는 특별하게 얘기할 만한 내용이 없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다만,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생님께 감사의 뜻을 표하려는 것이 혹시라도 내 아이만 잘 봐달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서 주저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러나 조그마한 기쁨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은 1992년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물질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아내의 주선으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스승의 날을 전후해서 5년 가까이 스승의 날 일일교사를 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을 1시간 정도 가르치면서 5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배움을 주시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노고가 이런 것이구나 하며, 선생님들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점이다. 나를 가르치고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을 모시는 제자로서의 도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등에서 나를 가르치시고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들 증에서 기억에 떠오르는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시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중학교 때 수학을 가르쳐 주시던 교장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작고하실 때까지 늘 연락을 드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교장 생님과 대학교의 은사 선생님들께만 연락을 드리는 반푼이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제자로서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 온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들이 나에게 베풀어 주는 기쁨은 부끄럽게도 말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계명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마련하여 스승들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었던 기억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그러면서 내가 내 스승들도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서 제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몸둘 바를 모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제자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불러주는 “스승의 은혜”란 노래를 듣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빨리 행사가 끝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내 스승들을 잘 모시고, 제자들을 잘 가르쳐야 되겠구나 다짐하게 된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지난 2005년부터 '스승의 날'을 5월 15일이 아닌 2월말로 옮기자는 운동을 벌였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가끔 언론보도를 통해 학생 또는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이라든가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으로 사제지간(師弟之間)이 각박해지는 현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스승의 날이 되면 학생과 학부모는 촌지 또는 선물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오고, 묵묵히 사랑으로 교단을 지켜온 대다수의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가르친 ‘대가(代價)를 바란다’는 오해를 받는 날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스승의 날이 갈수록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려는 날에서 촌지를 주고받는 날로 변질되거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행사를 위한 날로 변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심지어는 촌지 수수가 두려워 휴교까지 감행하는 학교가 생길 정도니 더 말할 나위 없다. 1964년 5월 16일 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가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에 감사하며, 애정과 깊은 신뢰로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올바른 인간관계가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스승의 날이 길이길이 계승발전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 제자로서 스승님을 잘 모실 것을 다짐해 본다. 아울러 학생들이 가진 특성을 적극 계발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그들 모두가 개성 있는 인격체로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조그마한 밀알이 되기를 약속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시민권 획득과 입국에 관한 법(the Citizenship and Entry into Israel Law)’이 2003년 7월 31일에 제정되어 2007년 현재 실행되고 있다.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에 기초한 이 법은 점령지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10년 동안 유지해온 가족 관계조차도 파괴한다. 이 법은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과 가자 지역 출신의 팔레스타인인들과 결혼한 아랍계 이스라엘인 가족이 이스라엘에서 함께 사는 것을 금지하며, 점령지 출신의 배우자뿐만 아니라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도 시민권과 영주권을 주지 않는다. 결국 이 법은 아랍계 이스라엘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며, 수천 가족들을 체포, 추방, 별거 등의 위협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 유엔 인종 차별 철폐 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는 이 법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 조약을 위반하였다고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스라엘 의회 아랍 정당인 발라드 당(Balad Party) 소속 의원 자말 자할카는 이 법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신화가 폭로되었다. 이 법은 가장 야만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법이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베테누(Israel Beytenu, 이스라엘 우리 고향)당의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당수는 2006년 의회 선거 직전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 국가’ 특성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모르도바 이민자 출신인 리베르만은 구소련 출신 이민자들 사이에서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적의에 찬 그의 주장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호소력을 발휘하였다. 이 당은 2006년 3월 의회 선거에서 2003년 의석보다 8석이 증가하여 11석을 획득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정당으로 등장하였다. 전임 총리였으며 현재 리쿠드(Likud)당수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2003년 12월 “아랍인들이 증가해서 35-40%를 차지한다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유대 국가도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유대계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아랍 인구 위협(인구 폭탄)’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을 ‘유대국가의 특성과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잠재적인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아랍계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야만적인 인종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유대계 이스라엘 정치인들과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라크 내 시리아 접경도시의 난민촌에서 지쳐 보이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 이들은 50도에 가까운 살인적 열파와 식수난, 의료지원 부족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스라엘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 인구는 2020년에 이스라엘 전체 주민의 21-24% 정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베두인(10%)을 포함한 무슬림 82%, 드루즈 9%, 기독교인 9% 등으로 구성된다. 베두인과 드루즈는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는 등 이들의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충성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the Israeli Democracy Institute)가 2006년 10월에 수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75%는 “이스라엘 헌법이 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한 유대국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박탈당할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창설된다하더라도 이스라엘 시민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단순한 아랍계 이스라엘인 증가 숫자에 토대를 둔 네타냐후의 ‘아랍 인구 위협’ 주장은 과장되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007년 현재 약 142만 명으로 이스라엘 주민의 20%를 구성한다. 이들은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권자들과 아랍계 이스라엘 영주권자들로 구성된다. 1948년에 이스라엘 영역이 된 지역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1967년 점령지인 동예루살렘에 거주해온 아랍인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각각 이스라엘 시민권과 영주권 박탈 위협의 공포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주권을 박탈당한다.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동예루살렘 거주 이스라엘 영주권자들의 투표 참가율이 매우 저조했다. 그 주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영주권자들이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 참가했을 경우, 영주권이 박탈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500만 명 정도의 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이주민들이거나 그들의 후손이다. 실제로 19세기 후반에 팔레스타인 거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3%를 넘지 않았다. 유대 이주민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에 이주민들을 위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후 이스라엘 국가는 지속적으로 최대한 이주민들을 끌어들이고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토지를 강탈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2007년 현재 주요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점령지를 최대한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시키고, 이스라엘 영토내의 아랍계 인구를 최소화함으로써 ‘유대 국가’와 ‘민주주의’를 둘 다 성취해야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인종차별에 토대를 둔 ‘유대 국가’ 이념과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민주주의’ 정치 이념은 현실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22 | 추천: 0
이광조/ CBS PD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보면서 두개의 이미지가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재벌그룹 회장이 폭행 현장에 쓰고 있었다는 별 두개 달린 모자와 금장식이 달린 권총이 그것이다(회장님으로부터 다짜고짜 뺨을 얻어맞았다고 증언하고 있는 업소 사장은 ‘회장님이 금장식이 달린 권총으로 자신을 위협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에서는 총기 소지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군대에 가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대장이니 중장, 소장, 준장이라고 하는 계급에 별이 각각 몇 개나 달렸는지, 중장이 높은 건지 소장이 높은 건지,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군대에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별의 개수와 서열 정도는 훤히 꿰고 있을 것이다. 회장님이 머리에 쓰고 있었다는 별 두개는 소장에 해당된다. 대장이 별 네 개, 중장이 별 세 개, 그 다음이 소장이다. 이왕 ‘가라’로 쓰고 다니려면 별 네 개짜리 대장 모자를 쓰지, 왜 별 두개짜리 소장 모자를 썼을까? 요즘 군대 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경우에는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60년대와 70년대, 아니 80년대와 90년대에 군대에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들은 회장님이 소장 모자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슷한 연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정희 소장과 전두환 소장. 군 계급 상으로는 별 네 개인 대장이 최고지만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들은 모두 별 두개짜리 소장이었다. 군대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예비역들은 여기에 이런 해설을 붙인다. ‘사단장은 휘하에 자신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군에서는 소장이 실권자다.’ 회장님은 왜 소장 모자를 썼을까. 두 전직 대통령을 흠모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사단장 급으로 생각해서 그랬을까. 그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가죽점퍼에 소장 모자, 그리고 손에 든 권총.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요즘은 사정이 다르겠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군 사단장은 군대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에서 엄청난 권세를 누리던 실력자였다. 사단이라는 독립된 왕국에서는 ‘제왕’ 비슷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3, 40대 남성들의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가 나올라치면 ‘제왕’들의 권세에 관한 갖가지 증언이 줄을 잇는다. 똑똑한 사병을 자식의 가정교사로 쓰는가하면 부인에게도 병사를 비서로 붙이고 갖가지 개인적인 용무에 병사들을 종 부리듯 부려먹었다는 고발부터 각종 군 장비를 사적으로 전용했다는 얘기까지. 누가 그런 일로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군 고위 장교들의 이 같은 행태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했다.   보복 폭행 사건에 연루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 출처 - 한겨레21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복종’의 논리 술자리에서 군대생활을 회고하며 때로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던 별 볼일 없는 사병 출신들은 이런 불의한 상식과 현실에 순응해야만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군대에 대한 비판은 오랫동안 술자리의 ‘뒷담화’에서만 허용되던 ‘레퍼토리’였다. 그렇게라도 배설하지 않으면 어떻게 제 정신으로 이 땅에서 살 수 있었겠는가. 오랫동안 이 땅의 남성들은 얼차례와 군사정권의 치세를 통해 복종의 미덕을 몸으로 익혔다. 더럽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그런데.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하고 항거에 대한 응징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가 명령과 복종, 폭력이라는 단순한 원리에 의해 작동되던 시기에 ‘복종’은 생존과 밥벌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을 것이다. 가진 사람들이 자식 군대 보내기 싫어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대한민국 군대도 우리사회도 많이 변했다. 군사 쿠데타를 걱정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했던 북한의 위협도 요즘엔 통 먹히질 않으니 말이다. 군 복무 기간도 많이 줄었고 군 출신들이 떵떵거린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는 2007년, 불과 20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어떨 땐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대통령을 인격적으로 모독해도 아무 탈이 없는 세상 아닌가.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건 아닌 듯 하다. 상명하복과 저항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 그리고 폭력. 군사독재 시절, 군대는 물론 우리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이 힘의 논리가 최근 재벌그룹 회장의 한밤 활극을 통해 불쾌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제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거대 기업과 회장님들이 혹시 과거의 사단과 사단장 같은 존재가 돼 버린 건 아닌지. 북한의 남침위협이 허물어진 자리에 무한경쟁의 논리가 들어서고 국가경제를 위해 회장님들이 회사의 자원을 사적으로 전용하거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복종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혹시 회장님에게 조인트를 까이는 중역들은 안 계신지. 갖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의 이런 생각들이 시대착오적인 망상이기를.
2017-06-19 | hrights | 조회: 18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장애에 대한 장애물 - 사회의 가장 약한 자에게도 편리한 것이 모든 이들에게도 편한 법 장애인들에게는 세상살이가 편치 않다. 신체적 조건에서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사회제도와 시설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경우에도 상대방이 일단은 능력을 의심하고 함께 지내면서 겪어야 할 부담을 걱정하여 배제하기 일쑤이다. 그래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장애인들의 오랜 싸움의 결과 점차 삶의 환경은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편견과 배제의 논리와 현실이 존재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법제를 정비하여 장애 유무에 의하여 불합리한 차별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장애인에 대한 고용과 사회진출을 장려하는 정책도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성할 것은 같은 돈을 지출하면서도 지금보다 환경을 더욱 낫게 할 가능성은 없는가이다. 필자가 경험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진 1 전북대 대형 강의실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첫째는 전북대 대형 강의실의 모습(사진 1)이다. 몇 십억의 예산이 들어간 건물을 지으면서 엘리베이터나 여러 가지 편의시설을 둔 점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학생에게 가장 중요할 시설인 강의실의 맨 뒷좌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의실의 통로가 모두 계단이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뒷자리에마저 앉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학생이 필자의 강의 중에 맨 뒤에 앉아 듣길래 시설을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중간고사를 보던 날 이 학생은 늦게까지 답안을 작성하고 나가려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어 맨 뒷자리의 계단 하나를 넘지 못하고 휠체어가 뒤로 후퇴하려는 것이었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런 시설이 만들어진 것은 예산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시설을 누가 사용하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또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인권상황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도로에 설치된 장애인 유도블럭이다. 요즘 도로 곳곳에 이런 블록이 깔려 있다. 실제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수와 상관없이 이런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은 장애인정책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애인 유도블록이 무슨 의미인지를 읽지 못하고 그 위에 자동차 진입금지 말뚝을 박아 놓은 곳이 적지 않다(사진 2, 3). 이걸 설치한 사람이 얼마나 무감각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약간 비켜서 말뚝을 세운 것에 위로를 받아야 할지......) 사진 4에서 보듯이 장애인을 위한다고 이동 턱을 없앤 것은 좋은데 그 길목에 말뚝이라니......   사진 2(위), 사진 3(아래) 장애인 유도블럭 옆에 자동차 진입금지 말뚝을 박아 놓은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사진 4 이동을 방해하는 턱 대신에 말뚝이 박혀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셋째, 지하도 문제이다. 지하도는 보행에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다니기가 쉽지 않은 길이다. 지상으로는 차들이 질주하고 사람은 지하의 어두운 길을 걸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마땅치 않지만, 보행마저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지하도만 설치한 곳도 무척 많은 것이 현실이다(사진 5). 과연 지상으로 보행통로를 만든다고 얼마나 교통이 혼잡해질까? 보행용 지하도보다는 지하차량통로를 만드는 것을 먼저 고려하지 못하는가? 그게 과연 비용 때문 만일까? 서울 거리에 몇 년 사이에 지하도를 두고도 보행자 횡단보도가 늘어난 것을 보면 예산문제라기보다는 정책방향의 문제라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진 5 지하도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런 사례는 심심찮게 겪는 문제이다. 필자는 위 사진의 모습을 몇 년 전에 보았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기억을 되살려 그 장소에 갔는데 전혀 변함이 없이 그대로였다. 일단 처음에 시설이 설치되면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장애인들에게 편한 것은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도 편한 법이다. 강의실에서 적어도 한 통로라도 계단을 없애고, 길 가운데 박혀 있는 말뚝을 뽑으면 누구에게나 걷고 이동하기 편한 길이 될 것이다. 차량을 막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습에서 인권이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는 민감하게 느끼고 그 구제를 위해서 어떠한 방안이 택하여져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무원이기에 공무원들의 인권의식 또는 인권감수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공무원마다 그러한 감수성과 의식의 차이가 있으므로 최대한의 기준을 업무 매뉴얼로 만들어 모든 공무원이 업무를 수행할 때 따르도록 한다면 상당 부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돈을 들여도 엄청나게 좋은 건물을 지어 다른 학교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준공하고 나서 줄곧 부실공사와 불편만 나타나는 곳도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설물은 제발 사회의 가장 약한 자에게도 편리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지 예산의 부족만은 아니다. 근본적인 사고의 방향과 애정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7-06-19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이현령비현령식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 중국, 러시아 동포도 마땅한 한국인   1. 미셀 위가 천재 골프소녀로 이름을 날리자 국내 언론은 미셀위의 모든 경기를 시시콜콜하게 보도하면서, 미셀위의 한국이름이 위성미이고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그녀가 떡볶이 같은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것도 기사거리가 되었다.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하인스 워드가 MVP에 오르자 모든 언론은 워드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고, 헌신적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고생한 그의 어머니를 취재하기에 바빴다. 미셀 위와 하인스 워드는 한국인인가? 2. 버지니아공대의 충격적인 총기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범인이 중국계라는 뉴스가 나오자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그러던 중 범인이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은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1.5세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혹시라도 불똥이 한국에게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였다. 심지어 미국 언론에서 그의 이름을 ‘조승희’가 아닌 미국식으로 ‘승희 조’라고 표기하였다는 것도 기사거리가 되었다. 조승희는 한국인인가? 3. 조선족 여성 김 모씨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다. 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김씨는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기에 소지하고 있던 중국여권과 신분증 등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결혼을 주선한 브로커가 위장결혼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구속이 되자, 김씨 역시도 위장결혼을 하였다는 이유로 국적취득이 무효가 되어버렸다. 김씨는 더 이상 합법적으로 체류를 할 수 없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중국에서 국적회복을 인정해주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에 놓여있다. 설상가상으로 중병에 걸렸는데도 아무런 의료혜택도 받을 수가 없다. 김씨는 한국인인가?   우리는 미셀 위와 하인즈 워드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조승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스포츠칸, 한겨레, 연합뉴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의 선택과 배제 국적법에 따르면 미셀위와 김모씨는 한국인이 아니고, 조승희는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적과 무관하게 미셀위가 한민족이라며 자랑스러워 하고, 조승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하나의 핏줄, 언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35개 이상의 혈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절대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하나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은 그 단일민족의 개념속에 중국이나 몽골, 러시아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셀위는 기꺼이 한민족이고, 조승희는 어쩔 수 없이 한민족이지만, 조선족 여성 김모씨는 한민족이 아니라 그저 조선족일 뿐이다. 이처럼 이중적인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조선족은 대부분 일제 치하에서 항일 투쟁을 하기 위해, 또는 먹고 살기 어려워 부득이 한국을 떠난 사람들의 자손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건너온 조선족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에 대한 호칭부터가 다르다. 중국동포가 아니라 조선족인 것이다. 이들을 조선족으로 부르는 밑바닥에는 이들이 우리와 한 핏줄이 아닌 다른 족속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구분 지으려 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그래서 차별적이다. 명칭뿐만이 아니다. 단순 노무활동에 종사할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재외동포는 재외동포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국, 러시아 동포들은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가 차별적 예외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취업관리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국내에 친인척이 있는 자 등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으며, 입국한 후에도 복잡한 고용절차와 수많은 제한규정들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불법체류자가 되기 십상이다. 국내에 친인척이 없는 동포들은 아예 취업비자를 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국이나 러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 동포들이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부득이 불법체류를 하고 있거나 입국·출국에 규제를 받고 있는 중국동포들에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불법체류 상태에 있더라도 이들이 최소한의 의료와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반도를 떠나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한민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중국동포들을 한민족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의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셀위와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면 조선족 여성 김씨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한국인이다.
2017-06-13 | hrights | 조회: 21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며칠 전 ‘우아한 세계’란 영화를 관람하였다. 평소 영화 관람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시간에 쫓겨 영화 보기가 쉽지는 않다. 영화 관람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주말에 방송되는 ‘영화특급’ 이나 ‘명화극장’ 등을 보며 영화보기의 아쉬움을 달래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예전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방송3사의 주말영화가 한결같이 심야에 시작되기 때문에 밀려오는 잠으로 한 편의 영화를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일요일에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이나 ‘SBS TV 박스 오피스’를 즐겨 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그러면서 새롭게 개봉되는 영화 중에 범죄라든가 경찰 분야를 다룬 영화가 있을 경우 관심을 갖게 되고, 가끔은 직접 영화관에 가서 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학과 사무실로 영화 무료시사회 초청권이 들어와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인터뷰에 응하기도 한다. 이번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학원 수업이 계기가 되었다.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는 대한민국 40대 가장들의 피곤한 삶을 ‘조폭의 이야기’를 통해 그렸다는 홍보에 영화를 통한 전공 공부를 하자는 취지에서 보게 되었다. 영화 관람 후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호프를 마시면서 서로의 ‘영화평’을 듣게 되었다. 다양하게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단연 주제가 되었던 것은 ‘조폭의 세계’와 ‘왜 아버지는 딸에게 약한가’였다. 딸이 없이 아들 둘만 있는 필자로서는 후자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조폭의 세계’만큼은 몇 가지 거들고 싶었다. ‘들개파 넘버 3’으로 등장하는 강인구(송강호)는 건축공사장이나 유흥업소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이권을 챙기는 전통적인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렇게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더라도 집에서는 부인 허미령(박지영)과 딸 김소은(강희순)에게는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감독의 창작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몇 가지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우선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건 아니잖아’를 연발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들개파의 두목인 노회장(최일화)과 노상무(윤제문)를 죽이고 교도소에 구금되었다가 정당방위로 풀려나는 장면이라든가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이국적인 집을 사서 이사 간 후 집들이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평소 조직폭력은 사회악으로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편의점에서 다른 조직원에 의해서 강인구가 살해되거나, 아니면 자기를 죽이려는 노회장과 노상무를 어쩔 수 없이 죽였더라도 그동안의 전과사실과 조직폭력 활동에 비추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평생을 보내야 되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사진 출처 - 영화 '우아한세계'   이런 생각을 한 후 인터넷으로 ‘우아한 세계’의 영화평을 보니 이 영화는 ‘연애의 목적’에 이은 한재림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서 대한민국 40대 가장들의 피곤한 삶을 ‘누아르’라는 장르로 요리한 영화란다. 어두운 범죄세계를 다룬 누아르의 관습상 주인공이 죽는 일이 많은 데 이 영화는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식상한 누아르를 교묘히 비틀고 있다는 평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아들과 딸의 유학을 위해 부인까지 캐나다로 떠난 후 자장면을 먹으며 강인구가 가족들의 캐다나 생활을 촬영한 VTR을 시청하며 기러기 아빠의 한심하고 처량한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서도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리고 영어가 아무리 중요한들 가족관계를 파괴할 만큼 의미가 있는가 되돌아보게 했다. 하기야 2007년 4월 14일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호텔에서 치러진 부산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두목의 아들 결혼식장에 1천 100여명에 달하는 하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보도를 접하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일반시민들에게는 씁쓸하고 석연치 않다. 감독이 이 영화를 송강호가 나오는 재미있는 코미디, 액션영화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전적으로 감독의 전유물인 것은 사실이다. 타르드(G. Tarde)의 모방법칙이나 매스미디어의 모방효과로 인하여 조직폭력의 세계가 잘못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영화 내용 중 일부라도 권선징악적인 면도 가미되었으면 하는 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를 기원해 본다.
2017-06-13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이광조/ CBS PD ‘제 2의 개국’이라고 칭송되는 한미 FTA 협상 타결 소식이 모든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던 바로 그 주에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기후변화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인류가 지금까지의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할 경우 2080년쯤이면 평균 기온이 3.5도 이상 상승해 지구촌의 주요 생물 대부분이 멸종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겨져 있다. 물 부족과 식량난, 전염병의 확산, 홍수와 해수면 상승 등 헐리우드 재난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접했던 대재앙이 현실로 닥칠 거라는 얘기다. 한미 FTA 협상타결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듣기 싫은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 2,500명이 6년간의 연구조사를 거쳐 발표한 보고서라고 하니 쉽게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한반도가 지구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20개 국가에 포함된다고 하니 우리에게도 보통 심각한 뉴스가 아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10위권,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속도가 세계 최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책임도 그만큼 크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교토의정서가 공식 발효된 2005년 2월 16일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 앞에서 환경단체들이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미국을 규탄하고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9위인 한국 정부의 적극 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인류가 ‘멸종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아니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과학자들이 대재앙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게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국 등 강대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 정부관계자들이 보고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해 발표시간이 연기됐다고 하니 우리사회와 정부만을 탓하는 건 일종의 ‘자학’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대해 우리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를 보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4월 10일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보면 우리 협상단은 자동차 분야에서 배기량 기준 세제를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산 자동차에 대해 배출가스 자가진단장치 장착 의무를 2년 간 유예하고 배출가스 허용치도 2009년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보다 완화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환경기준이 후퇴한 것’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협상대표들, 정부관계자들의 생각은 좀 다른 듯 하다. 우리 협상대표들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동차의 배기량과 유해물질 배출은 관계가 없다’는 얘기를 되풀이해 왔다(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는 배출가스 자가진단 장치 장착의무 유예와 배출가스 허용치 기준 완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정부 관계자의 입장을 듣지 못했다). 큰 차라고 해서 모두 유해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건 아니고 작은 차라고 해서 모두 유해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맞는 얘기다. 품질 나쁜 작은 차가 큰 차보다 더 유해한 물질을 내뿜을 수 있다. 하지만 유해물질의 독성은 차치하고 연료를 많이 쓰는 대형차가 이산화탄소도 많이 배출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독성이 덜한 배출가스가 나온다고 해서 온실가스 총량이 늘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가 중심적이고 민족 중심적인 FTA 협상 미국 자동차가 들어오면 얼마나 들어오겠느냐. 뭐 그 정도 가지고 당장 큰 문제가 되겠느냐.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 단점도 있지만 FTA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다 등등. 여러 가지 반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세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비슷한 시각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가 온실가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내 13개 환경운동단체와 12개 주 정부가 연방 환경보호국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판결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환경보호국이 온실가스 규제에 소극적일 경우 각 주 정부가 환경보호국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고 환경보호국은 자동차 배출가스를 규제할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소극적인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심판한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협상단이 관철시킨 배출가스 규제 완화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 취지대로라면 문제가 있는 내용이 아닐까?   그림출처 - 경향신문 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히고 각국이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자유무역협정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각 국가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만 사로잡혀 인류에게 다가오는 재앙은 보지 못하고 국가간 경쟁에 매몰되는 자유무역이라면 눈앞의 파멸을 보지 못하고 질주하는 무모한 ‘치킨게임’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FTA가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FTA 협상은 너무나 국가 중심적이고 민족 중심적이다. 그 무한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또는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기 위해 각 국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게 아닌지. 파국이 임박했다는 얘기를 믿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 아니 수백 년 뒤도 아니고 금세기 안에, 다시 말해 우리 자식들이 살아 있는 동안 지구상의 생물 대부분이 멸종할 수 있다는데, 지금 우리는 너무 태평하지 않은가.
2017-06-13 | hrights | 조회: 19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한-미 FTA 타결도 침묵하게 하는 동계올림픽의 힘 - 민주주의 위협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   지난 3월 27일,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대구가 유치했다는 ‘쾌거’가 보도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치루는 7번째의 ‘자랑스런 나라’가 된다고 한다. 생산유발효과가 5,840억 원이며 고용창출 효과가 6,800명 이상이고 대구의 국제도시화가 기대된다며 대구지역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언론이 들썩였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강원지역의 여론은 혹시 동계올림픽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사뭇 부러운 기색이다. 일부에서는 대구의 물량공세에 아프리카지역 IOC위원들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동계올림픽 유치에 긍정적일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김명곤 문광부 장관은 정부차원에서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다. 강원도보다 인구와 경제규모 사정이 훨씬 나은 대구의 성적에 이 정도 반응이니 변방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온 나라가 경악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유치로 대구의 국제도시화가 기대된다며 대구지역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언론이 들썩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가 단체장 역량 검증 기준? 초등학교 때 박정희 대통령의 성을 딴 ‘박스컵’이라는 국제축구대회가 있었다. 어느 해인가 우리나라 축구팀이 킹스컵 대회에서 말레이시아에 진 뒤 같은 팀을 박스컵에 불러들여 대파한 일이 있었다. 강원도 궁벽한 시골에서도 그 경기는 대단한 화제였고 우리 또래 까까머리 꼬마들을 가을걷이가 끝난 논바닥에서 겨우내 축구를 하게 할 만큼 인기 있는 시합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80년대 초반, 강원도 연고팀은 ‘삼미 슈퍼스타즈’였는데 너무 약한 팀이었고 전두환의 계산이 빤히 보이기도 해서 일부러 무관심해 하기도 했다. 88올림픽 때는 ‘상계동 올림픽’ 비디오를 보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지만 온 나라가 올림픽에 들떠있는 모습을 보며 심하게 우울해 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스포츠를 정당성 없는 권력이 국민을 동원하고 위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긴 했지만 상업성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2002년, 2006년 월드컵부터는 대중의 자발적인 응원문화를 자본이 점령하고 애국주의 캠페인으로 치장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듯하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자치단체장들의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를 위한 각별한 행동은 전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치열하다. 이미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뤘고,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함께 인천광역시도 같은 해에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처럼 광역자치단체장들 뿐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추진하는 크고 작은 국제 스포츠행사는 파악이 어려울 정도다.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고 치루는 것이 국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단체장능력의 시험대라는 약간 이상한 자의식에 너도 나도 ‘올인’하고 있는데 이것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참 부족하다.   민주주의 위협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 우리 사회가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 추진에 이렇게 관대 한 것은 ‘성장콤플렉스’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크거나 아니면 우리 모두 ‘대발이’가 될 수 있다는 몽상에 빠져있기 때문인 듯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경제적 파급효과만도 총생산액 유발효과는 11조 5,166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5조 1,366억 원, 고용증대 효과는 14만 3,976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은 없다. 일단 지방자치단체장이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전에 뛰어들면 지역에서 다른 견해 또는 비판적인 의견이 드러나거나 자리 잡을 여지는 거의 없다. 지역 언론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수라며 중앙정부의 소극적 지지를 질타하거나 시민사회의 소수의견을 묵살하고 외면한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실사단이 지난 2월 강원 평창을 방문하자 주민들이 거리에 나와 국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대체로 지식인들은 유치타당논리를 만들어 내는데 앞장서고 유치위원회는 갖가지 이벤트를 통해 대중을 설득하며 지역기업들은 기부에 나서는 등 지역시민사회 전체는 하나의 동원체제가 된다. 지난 2월 IOC 동계올림픽 실사단이 경기장 시설 등을 평가하기위해 방문했을 때 강원도 사회가 ‘동계올림픽 실사 총동원체제’로 전환되었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강원도를 방문하는 중앙정치인들도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지하고 있으니 스포츠 행사가 이념과 사상을 ‘통합’한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국제 스포츠 행사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이처럼 무엇보다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한-미 FTA 타결도 침묵하게 하는 동계올림픽의 힘 강원도가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 한 뒤 지적된 여러 문제점 가운데 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유치위원회의 자금 조성과 사용처였다. 강원도의회에서 여러 차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도비집행내역 이외에 민간에서 기부한 기금은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강원도의 주장에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대구도 세계육상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과 임원의 숙박비 등을 대회 시작 3개월 전부터 면제해주는 조건을 제시하며 IOC 위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한-미 FTA가 대통령의 해괴한 용단(?)에 의해 체결되면 강원도 농민 12,000명 가량이 실업자가 되고 농업생산액은 1,480억이 줄어든다고 한다. 강원도가 애쓰고 있는 민·외자 유치사업도 어려워지고 강원도민이 대거 수도권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강원도에는 5조의 부가가치가 발생하고 14만 여명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동계올림픽이 있어서인가. 강원도는 한-미 FTA 타결에도 침묵하고 있다.
2017-06-13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도로 위로 스러져가는 생명을 보며 - 인간을 위해서라도 모든 생명 존중해야   사방에 봄이 완연하다. 매화향기 날리고 산수유, 회양목도 꽃이 만개하였다. 보리밭이 파래지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쑥이 고개를 내밀고 소나무도 신비한 색을 머금고 있다. 더 이상 아름다운 빛을 찾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가끔 어설프게 바람이 불고 비도 오지만, 봄은 그렇게 온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의 시체를 본다. 그 위로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서 붉은 피는 마르고 가죽마저 닳아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이 땅에서 가장 강한 종족인 인간이 좀 더 편하게 살고 빨리 가기 위해 닦은 길이 동물들의 삶을 변하게 하고 있다. 산길을 따라 먹이를 찾아 이동하던 산길이 뚝 잘려 나가고 길에는 차들이 질주한다. 동물들은 이동을 포기하거나 목숨을 무릅쓴 횡단을 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개발은 생태계를 흔들어 놓고 있다. 요즘 동물 이동통로를 만든다 하지만 예산 탓인지 실효성이 없다 여기기 때문인지 눈에 자주 띄지는 않는다. 얼마 전에는 도로교통으로 인한 동물살해인 이른바 ‘로드킬’(road kil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발표된 적이 있다. 아예 도로 양편을 막다시피 하는 해결방법이다. 도로에 동물이 진입할 수 없도록 한다면 도로 위에서 동물들이 차에 치이는 일이 없을 테니 방법은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도로 위에서 동물들이 죽는 것만은 아니다. 이 땅이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라 동물들도 함께 살아갈 터전임을 생각한다면 그런 방법을 해결책이라고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물들이 찻길에서 죽는 것은 도로가 동물들의 생활을 위한 이동경로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로드킬’ 막기 위해 도로 양편 막겠다는 ‘인간’ 지난 달 한 신문에 실린 사진기사는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많은 것을 가르친다. 길을 건너던 개가 차에 치어 죽자 같이 가던 개가 차에 달려들고 짖어대는 모습이다. 거세게 차를 몰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잘난 ‘사람들’을 향한 시위로 보인다.     ‘로드킬’ 견공(犬公)들의 항의[한겨레 07.02.24] (매일신문 박노익 기자의 사진기사) ① 22일 오후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강아지들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② 앞서가던 강아지가 달려오는 화물차에 치이자 뒤따르던 강아지가 일으켜 세워보지만 이미 숨이 멈춰진 상태. ③ 주위에 강아지들이 도로 한 가운데 버티고 서서 떠나지 않고 있다. ④ 화가 난 강아지 한 마리가 지나가는 차량에 달려들어 범퍼를 물어뜯고 있다. ⑤ 사고 차량은 떠났지만 강아지들은 이곳을 지나는 같은 종류의 화물차만 보면 거칠게 짖으며 달려들었다. 인간 이외의 자연을 정복이나 지배의 대상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근대 과학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자연은 인간에게 정복과 개발의 대상일 뿐이다. 사람을 품어주는 어머니도 아니고 신비한 그 무엇도 아니다. 다만 무생물인 지질일 뿐이다. 또한 동물들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라기보다는 이용할 물건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자연은 무참히 파헤쳐지고 잘리고 말 못하는 짐승은 상품으로 거래된다. 물건은 값어치가 없어지면 과감하게 버려진다. 철저히 개발의 대상이 되고 상품이 된 자연은 인간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이러한 자연관은 현대의 과학세계를 가능하게 하였지만 또한 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그로부터 오는 것은 아닌가? 이미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고 있고, 동물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생각은 사람들의 생명마저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로지 강자인 인간의 편의만을 위주로 한 삶은 가능할까? 개발 중심의 자연관에서 시작된 위험 예로부터 감을 딸 때도 몇 개를 남겨 두었고 흘린 이삭도 샅샅이 거두지 않는다 하였다. 쥐를 위하여 밥 한 덩이 남겨 두고 나방을 불쌍히 여겨 불을 켜지 아니한다(爲鼠常留飯 憐蛾不點燈)고도 하였다. 콩을 심으면 하나는 하늘 나는 새를 위해서, 하나는 땅에 사는 벌레를 위해서, 하나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가르침을 떠올린다. 뜨거운 물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말도 떠올린다. 법률상 소유자가 물건의 사용, 수익, 처분의 권능을 가진다 하지만 이 세상이 오로지 인간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여러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임을,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생명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어진 마음이 담긴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다른 생명 위에서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선인들이 발걸음 무겁게 하라는 말씀도 단지 의젓한 걸음걸이만을 가르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신발 아래 깔리는 생명을 걱정하였던 것은 아닐까. 요즘은 까치 때문에 귀한 과실 농사 망치지 않을까 염려하여 과수원에 철망을 씌우고 폭발음을 낸다. 쥐는 퇴치의 대상이고 나방은 전기그물망에 태워진다. 이런 형편에서 앞의 얘기들은 한가로운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사는 온갖 생명들에 대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우쳐 주고 있다 생각된다.   인간의 삶을 위해서라도 모든 생명 존중해야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존중과 연약한 생명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사람의 어진(仁) 바탕의 시작이 아닌가? 우리는 어느덧 이 본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한 연민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간들만 모여 사는 세상에서 아무 뜻도 없을 것 같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경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노예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거나 여자를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도 결국은 모두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인간이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 사람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마음에 무슨 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보행자를 보호하려 하지 않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경시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근원적인 생명에 대해 경외와 존중을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경외와 존중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사람이 편하자고 파헤치고 깎고 다듬고 하는 일이 인간의 삶을 파헤치지 않으려면 이것이 적어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인간의 풍요를 위하여 알지 못하는 사이에 희생되는 이름 모를 생명의 죽음 앞에서 경건하여야 한다. 이 땅에는 지배자, 강자만 사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삶의 환경은 인간의 문제이다.
2017-06-13 | hrights | 조회: 20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2003년 이후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점령으로 3만 4천여 명의 이라크 거주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대거 퇴거당했다. 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 건설과 함께 토착 팔레스타인 주민의 90%인 90만 명 정도가 축출되었던 대 참사는 이라크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 퇴거당한 팔레스타인 난민들 대부분은 정착할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라크 국경 부근에서 머물고 있다. 바그다드에서 축출당한 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일단의 이라크인들이 ‘너희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다.’고 외치면서 나와 아버지를 공격했다. 그들은 우리가 바그다드를 떠나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2007년 3월 14일 팔레스타인 난민부는 “이라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지난 2월에만 31번 공격을 받아서 8명이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이 공격은 미군과 이라크 무장단체들이 주도하였으며, 적어도 15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납치되었다. 이들 중 두 명은 석방되었으나, 다른 두 명은 고문 흔적과 함께 사체로 발견되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이라크에 거주하던 135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시리아로 피난하여 이라크-시리아 국경 근처에 설치된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설이후 이스라엘로부터,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를 점령한 이후 서안과 가자로부터,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과 그들의 후손 약 9만 명이 이라크에 거주해왔다. 이들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UNRWA)에 난민으로 등록되지 않았고, 따라서 이 기구의 원조를 받지 못한다. 현재 이라크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부분 이라크에서 태어났지만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했고, 정기적으로 거주권 갱신 신청을 해야 한다. 또 이들은 자동차, 집, 토지 등을 소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사담 후세인의 통치하에서 보호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부 소유의 집을 제공받았고, 개인 소유 주택을 임대할 때에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 또 사담 후세인은 토지나 건물 소유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낮은 가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임대해주도록 했다. 이로 인해서 이라크의 가난한 시아파 주민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후세인 통치하에서 특혜를 받았으며, 후세인 통치의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후세인이 몰락한 이후 이라크인 소유자들은 높은 임차료를 요구하면서,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아왔다고 생각되는 수 백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냈다. 이 상황에서 바그다드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반이 넘는 1만 9천명 이상이 퇴거당했으며, 남아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살해, 납치, 협박 등에 시달리고 있다. 요르단에는 이라크로부터 축출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이라크 국경 근처에 위치한 알 루웨이시드(Al-Ruweished)난민 캠프가 있다. 이곳의 난민들은 요르단 정부의 허가 없이 이곳을 떠날 수 없고, 아이들을 교육시키지 못한다. 2007년 3월 14일 팔레스타인 난민부 장관인 아테프 아드완(Atef Adwan)은 “요르단은 60만 명의 이라크인 난민들을 수용하였지만, 폭력을 피해 이라크를 떠나온 280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요르단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면서 캐나다로 이주시키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요르단 정부는 이라크로부터 오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거부하면서 비팔레스타인 난민은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난민 캠프 사진 출처 - http://www.imemc.org 시리아는 2006년 이후 알 홀(Al-Hol), 알 타나프(Al-Tanaf), 알 왈리드(Al-Walid) 등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 이라크로부터 축출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합법적인 지위도 없고,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일할 자유도 없다. 사실상 이들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이라크-시리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난민 캠프들에 갇혀있는 죄수들이다. 현재 어떤 아랍 국가도 이라크에서 축출되어 이라크 국경 부근에서 정착할 곳을 찾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다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일 의사를 표현했지만, 이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희망 사항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경조차 통제하지 못하며, 이스라엘의 철저한 감시 하에 놓여 있다. 2004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는 귀화법을 제정하여 10년 이상 장기 거주민들 중 100만 명 이상에게 시민권 취득을 신청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이 법은 아랍 연맹의 지침에 따라 50만 명에 이르는 사우디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을 배제시켰다. 아랍연맹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을 피하고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 요르단을 제외한 어떤 아랍 국가도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고 있다. 요르단조차도 팔레스타인 출신들은 사적인 부문, 경제적인 부문에 집중되어 있고, 정부 기구 등 공적인 부문에서는 배제된다. 시리아와 레바논에서는 시민권을 받은 극소수의 팔레스타인인들도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1990년-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당시에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이라크와 동맹을 맺었다는 이유로, 쿠웨이트와 걸프 아랍 왕국들은 4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대거 추방하였다. 이렇듯 중동에서 발생하는 분쟁 중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휘둘려지고 있다. 사실상 모든 아랍 국가들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정치적으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연맹 소속국가들은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고 있으면서도,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걸프 지역의 아랍 부국들은 정착할 곳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수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굶주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경제적인 원조조차도 거의 중단한 상태다. 실제로 아랍 국가 권력자들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할 어떤 의지도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난민 캠프 사진 출처 - http://www.imemc.org 단지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 국가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 혹은 완충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죽든지 살든지 그것은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1949년 12월 수립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UNRWA)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1946년 6월 1일과 1948년 5월 15일 사이에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사람들로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결과 집과 생계 수단을 잃은 사람들과 부계 후손들’로 규정하였다. 이후 1967년 전쟁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UNRWA의 구호활동은 이 기구에 등록된 난민들이 거주하는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서안과 가자 지역 등에 한정됨으로써 이라크,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배제시킨다.   2007년 1월 팔레스타인 인구 구성 분포(이스라엘 국내에 거주하는 140만 제외) 팔레스타인인 약890만 명 이스라엘 점령지 내부 - 약 400만 명 (UNRWA등록된 난민: 172만7천명) 가자- 150만 명 (UNRWA등록된 난민: 100만 명) 동예루살렘- 42만 명 (UNRWA등록된 난민: 1만7천명) 서안- 210만 명 (UNRWA 등록된 난민: 71만 명) 이스라엘 점령지 외부 - 약 490만 명 (UNRWA등록된 난민: 268만3천명) 요르단- 284만 명 (UNRWA등록된 난민: 184만 명) 레바논- 42만 명 (UNRWA등록된 난민: 40만 6천명) 시리아- 44만 명 (UNRWA등록된 난민: 43만 7천명) 기타 아랍국가들(이라크,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67만 명 기타 국가들- 53만 명
2017-06-13 | hrights | 조회: 14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