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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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광조(CBS PD),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자식 잃은 부모들의 통곡소리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자살’하였다는 통지를 받은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참혹하겠는가. 더구나 ‘자살’하였다는 아들의 시신에서 또는 부대 동료들의 증언에서 자살이 아니라고 믿을 만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자살’하였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군을 대할 때 이들 부모의 아픈 마음을 어디에 비하겠는가. 사고조사를 위한 현장출입도 자유롭지 못하고 관련 기록마저 제대로 열람할 수도 없는 형편에서 어느 부모의 마음인들 이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허원근 일병 사건과 같이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타살이었음이 밝혀진다면 그 동안의 억울함과 고통은 무엇으로 보상하겠는가. 제대로 납득할 수도 없는 아들의 ‘자살’에 국가에서 주는 것이라고는 사망위로금 500만원이 전부인 이 나라는 과연 무슨 근거로 징병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과연 국방의 의무는 진정 신성한 것인가.   전투력의 손실? 국가유공자법 제2조에서는 ‘자해행위로 인한’ 사상의 경우 국가유공자 등록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도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되며 이는 전투력의 저하를 가져온다고 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군인의 지위에 관해서는 선진적이라 할 수 있는 독일 군인지위법 제17조 제4항은 “군인은 건강을 유지 또는 회복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군인이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자신의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하고, 직무능력평가나 임용적격평가 등과 관련되는 경우 신체의 불가침성에 대한 제한을 규정하고 있다. 자신을 해(害)할 권리 또는 죽을 권리가 기본적 권리로 인정된다 해도 군인에게 자살이나 자해는 군기 또는 전투력에 저해요소가 됨은 분명하다. ‘자원’ 또는 ‘병력’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이들에게 군인의 사망은 병력(兵力)의 손실이요,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리라.   무엇이 전투력을 약화시키는가? 군대에서 자살자가 발생하는 것은 군으로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전력과 단결을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전력을 약화시키고 단결을 해치는 것은 국가가 복무에 대해 베푸는 보상이나 보호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아닐까. 군대에 가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생각, 군대는 안 갈 수 있으면 어떻게라도 안가는 게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야말로 군의 단결과 사기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던가. 부하를 개인의 편의를 위한 사병(私兵)으로 부리는 일, 가혹행위를 가하는 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오히려 군기문란의 주범이 아닌가.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입대하였는데 그 환경은 열악하고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길은 막막하고 어쩔 수 없는 고립과 한숨 속에서 자살의 길을 택한 사람은 어쩌면 타인에 대한 공격을 스스로에게 돌린 점에서 가장 적은 피해를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죽음을 단지 자살이라는 형식을 가졌다 하여 보상을 하지 않고 불명예스러운 죽음으로 치부하는 것은 남은 이들에게도 엄청난 상실감과 무력감을 일으킨다. 전투력의 바탕이 자발적인 복종과 국방에의 의지라고 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와 군 복무에 대한 자부심은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군복무에 대한 신성한 관념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가장 힘없이 죽어간 이들에 대한 예우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게 아닐까.     출처 - 한겨레 군에서 자살하였다 해도 국가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 군에서는 자살하였다고 판단하는 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며, 법원에서도 자살이 업무와 관련성이 인정되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본인의 과실이 70-80%나 된다고 하니, 사실상 국가책임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자살한 이들도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정하고 보상을 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병(兵)을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군복무가 의무에 의한 것으로서 개인의 의사에 반해서도 복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원에 의한 경우도 일단 복무하게 되면 그 신분을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에서 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이 아무리 가지 않으려 해도 소집되면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군복무이다. 둘째, 오늘날 군대와 관련하여 특별권력관계라는 관념을 부인함으로써 군에서도 기본권이 보장되게 하려 하지만 아직도 군복무는 그 실질이 포괄적인 지배관계라는 점이다. 의식주를 비롯한 사생활까지도 내무생활을 통하여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이 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차단한 채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포괄적인 지배관계에서 국가는 그 규제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점이다. 헌법 제10조 후문에서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본권의 보장은 우선 기본권의 주체인 개인의 자발적 노력과 행동을 통하여 주장하고 이를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모든 기본권의 보장을 위하여 국가가 개입한다면 이는 또 다른 기본권 침해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권 주체의 기본권보장을 위한 행위의 가능성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기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는 보다 현실화된다. 스스로 기본권주장이나 구제노력을 하지 못하는 유아나 정신병자의 경우는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가 더욱 강하게 인정된다. 교도소와 같은 수용시설에 감금되어 스스로 권리구제를 위한 노력이나 소통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그러한 기본권침해방지와 구제를 위한 국가의 의무와 책임이 보다 강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넷째, 많은 이들이 대체복무를 하고 일부만 군에 입대하라는 명령이 이뤄지는 것이라면, 입대하는 이들은 현역복무적합자라는 판단을 한 것이므로 그 복무관계에서의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포괄적인 책임을 시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보험사의 경우도, 일반적으로 가입자에게 보험가입결정여부, 보험금액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여 판단하고, 일단 가입이 되면 제공한 정보가 허위이거나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부분에 대한 책임을 제외하고는 사고 발생시 보험금을 지급한다. 군복무명령을 한 것은 군복무적합자라는 판단을 한 것이고, 자살을 한다는 것은 결국 그 복무적합판정이 그릇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그 사람이 소질상 사회에 있었어도 자살할 가능성이 높았다 해도 이를 간과한 채 복무하도록 하였다면, 이는 현역복무적합 여부에 관한 국가의 중대한 판단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국가는 복무부적응 또는 부적격을 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사고라도 발생하면 군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더구나 군에 수많은 보직이 있기 때문에 능력에 따른 배치에 만전을 기하고 복무부적응의 경우 배치전환을 하여야 한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군에서의 생활은 대체적으로 군복무와 관련하여 근무 또는 대기상태에 있으며 항상 긴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4시간을 업무와의 관계 속에서 긴장하는 군인들에게 무엇이 업무관련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으며 모든 부분을 군복무관련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치 정당이 선거를 통하여 국가기관을 구성하는 공적인 부분과 그 밖의 사적인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섯째, 자살은 자유의지의 결과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엄격하게 폐쇄적인 사회에서 문제를 달리 해결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자살이 어떻게 개인의 자유의지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국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가가 군복무에 종사하도록 강제하였다면 이들에 대하여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는, 그것이 설사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다만 전투중이나 전우를 구출하기 위해 사망한 경우 등의 경우와는 포상 등 대우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양적인 차이”에 불과하고 근본적으로 국가책임이 부정되어야 할 정도의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살자에 대한 처우는 군복무관계에 대한 인식, 자살에 대한 과학적 인식, 예산 등에 의하여 결정되는 문제다. 군대에서 자살하였다 해도 이는 군대에서 사망한 것의 한 유형일 뿐이요, 달리 대우할 사항은 아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28일 오후 서울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군내 자살처리자,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립묘지 안장이 그렇게 어려운가? ‘자살’하였다고 하는 이들에 대한 예우문제에는 항상 국립묘지 안장문제가 수반된다. 국립묘지는 명예로운 죽음을 당한 이들이 안장되는 곳이므로 자살자는 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 강하게 주장된다. 심지어 ‘힘든 군대생활 잘 견디고 제대한 사람도 유공자가 안 되는데, 그것도 못 참고 자살한 ×들이 무슨 유공자이며, 국립묘지냐’고 비난한다. 그러나 국립묘지를 유공자에 대한 관념에 철저하게 만들 것이면 전투 또는 훈련 중 사망한 사람이나 기타 공을 인정할 만한 경우나 국가에 대한 공적이 있는 자에 한정하여야 한다. 단순한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실상은 유공자는 아니다. 그 죽음을 낮게 평가해서가 아니다. 국가유공자 여부는 그 죽음의 실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평가하여 부여한 것이다. 결국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그 죽음의 실질보다는 국가의 평가에 달려 있다. 국립묘지가 반드시 명예로운 희생자만이 안장되는 곳은 아니고, 명예는 부여된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자살자에 대한 평가의 변화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 문제도 전향적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물론 국립묘지 안장에 철저하게 ‘유공자’일 것을 요구한다면 임실이나 영천에 있는 호국원에 유족의 원에 따라 안장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단순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왜 유공자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다만 고려할 점은 호국원에 안장되는 이들이 대개 한국전쟁 전후 참전자, 월남전 참전자 등인 것을 고려하면 그곳에 안장된다는 사실 자체가 명예롭지 못한 평가를 수반할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러운 방안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현재 국립묘지가 그 죽음 자체의 명예 여부가 아니라 국가의 죽음에 대한 평가에 따라 대상이 결정되고 있으므로 자살자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여 안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군에 입대하여 사망한 사람이 죽음의 경위는 다를지언정 어느 목숨인들 소중하지 않을까. 특히 자살자의 유족이 원하는 것이 금전적인 보상보다도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하였다는 평가이고 보면 적극적으로 고려할 부분이다. 사망자에 대한 예우의 문제는 엄격하게 말하면 죽은 자에 대한 예우라기보다는 유족들에 대한 예우가 아닌가.     이들에 대한 예우로 얻는 것 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이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예우는 사랑하는 자식과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최소한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하진 않지만 적어도 마음에 위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국민이 가지는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고, 적극적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꺼이 군복무에 종사하고자 하는 자발적 의무이행에 대한 의지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에 대한 대우가 열악한 것은 예산문제에서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예산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자살자가 1년에 60여명까지 줄어들고 있는 현실(2004년 67명, 2005년 64명)에서 이들을 충분히 보상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군복무에 대한 의지를 고취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을 지출할 이유는 충분하다. 법은 따뜻한 것이다. 아픈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는 자식 잃고 통곡하는 부모들의 피울음소리를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2017-06-09 | hrights | 조회: 3 | 추천: 0
유정배/ 참여와 자치를 위한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는 38선 이북에 있다. 도청 소재지인 춘천과 가까운 곳이지만 춘천호가 마을을 감싸고 있어 오지가 돼버린 곳이다. 서오지리에는 ‘건넌들’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수몰 전에는 논농사를 많이 지어 ‘건넌들’이라고 한단다. 댐이 생긴 뒤 논은 물에 잠겨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게 되었고 남은 몇 가구는 과수농사를 짓거나 낚시꾼들에게 잡동사니를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 마을주민들이 요즘 수생식물인 연(蓮)을 가지고 호수를 새롭게 가꾸어 가며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주민들은 호수를 연꽃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생계수단의 제공자인 낚시꾼의 출입을 금지하였고 연근, 연차, 연주 등 부가생산물을 만들어내며 마을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직은 연꽃단지가 조성단계여서 일반에게 개방하지는 않고 있지만 호수주변 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테마들을 개발하여 마을의 잠재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주민들끼리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진행하고 있으며 ‘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해서 마을경영을 위한 협동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대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 앞 다투어 민생을 해결 할 방도를 제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민·외자를 유치하고 ‘기업하기 좋은 지역’을 만들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주도형 경제 발전 전략만으로 지속가능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경제가 가능한지 의문이 생기곤 한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이 박정희식 경제를 혁신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지만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균형발전 정책 진행과정을 보아도 시민사회에서 주체가 형성되지 않은 채 위에서 내려오는 경제정책은 왜곡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강원도 지역혁신사업의 성과를 보면 주민주체와 지방자치단체, 전문가의 네트워크가 좋은 지역은 나름의 성과가 있지만 주민주체형성 과정을 생략하고 구색 갖추기로 진행한 곳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진행하는 기업유치 성적표를 보면 기업유치가 지역주민의 삶과 얼마나 동 떨어져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양수리 연꽃단지 '세미원'에 핀 수련의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강원도는 2000년부터 수도권에서 모두 377개의 기업을 유치해서 올해 건교부로부터 기업유치 실적이 가장 좋은 자치단체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초라하다. 유치한 기업 중 48개 기업은 이미 강원지역에서 영업 중인 기업인 것으로 드러나 실제 수도권에서 이전해온 기업은 324개 사였다. 그 가운데 101개 기업은 휴·폐업을 했고 82개사는 이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 실제 운영 중인 기업은 141개 이다. 그나마 50인 이하 업체가 118개이며 그 중 10인 이하 업체가 46개사이다. 경제력이 수도권에 초집중 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변방’이라고 하는 강원도에 기업유치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방자치단체가 화려하게 제시한 수치 속에 감춰진 진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이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외부요인에만 의존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잘 보여 준다 하겠다. 오래전부터 사회운동은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대안경제’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면서 사회적 자본의 기반이 굳건한 시민사회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역시민운동에게 지속가능한 경제 만들기는 더 절실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으며 실천적인 방안도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그렇지만 더러는 사회운동의 비판적 기능에 익숙한 탓에 그런 시도를 다소 무모하게 여기기도 하고 궤도이탈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이 몰락해 가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분산’이라는 이름으로 이익배분정치가 작동하여 토호를 살찌우며 ‘자치’를 말살해 가는 현실은 지역시민운동이 대안경제 창출에 뛰어들 것을 요청 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의 위기를 시민들이 모여 해결해가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사회운동의 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춘천시 한림대 고령사회교육센터 1층 국제회의실에서 춘천지역고용포럼(공동대표 안봉진.박준식)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시민의 힘으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주제를 가지고 시민사회 주도형의 산업발전을 위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얼마 전 춘천의 활동가들은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그들은 지역의 시민사회가 나서서 춘천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고용 및 인적자원의 개발을 위해 지역 내부의 잠재적인 자원을 활성화 시키고 네트워크화 해서 춘천의 대안적인 산업전략을 합의하고 실행 기구를 창출하려는 목적으로 '춘천지역고용포럼‘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역동적이고 활달한 시민사회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 경제적 성취도 크다는 경험이 아직 드물지만 이들의 실험은 사회운동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지역을 살기 좋은 삶터로 변화시킬 것이다. 활성화된 시민사회와 협동하지 않는 경제정책은 그들만의 잔치가 되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정책이나 대운하 건설이 일시적으로 고용을 창출할지는 모르지만 양극화로 고속 질주하는 사회를 멈추지는 못한다. 농사일 빼곤 해본일 없는 서오지리 주민들이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 삶의 질을 높여가는 가듯이 ‘자치’와 ‘협동’에 기반한 시민들의 경제 살리기가 세계화와 양극화로 갈갈이 찢겨진 삶을 치유해 갈 것이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1. 지난 주 어느 학회에서 성매매여성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후배 변호사를 만났다. 그 후배는 성매매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법률지원 활동에서 겪는 어려움을 소개하면서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늪을 지나는 기분이었는데, 법이 시행된 후에도 여전히 진흙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느낌이라고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하였다. 법률은 어느 정도 정비되었지만 우리사회에서 성매매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늘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2.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강남역 근처에는 수많은 유흥업소가 있는데, 요즘 불경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대낮에도 반나체의 여성사진을 크게 걸어놓고 명함과 유인물을 돌리는 호객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인물에 쓰인 귀를 보면 누가 같이 들여다볼까 무서울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들이 대부분이다. 유인물에 유흥업소 웨이터들의 광고는 더욱 요란하다. 강남역 근처 보도블럭에 빽빽하게 붙여진 미남 청년의 사진 위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000, 2차 100% 보장합니다.”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광고를 들여다보다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서울 어디에선가 살아남기 위해, 또래의 여성을 미끼로 돈을 버는 그 미남청년의 가난한 삶에 문득 연민을 느낀다. 3. 성매매여성 두 명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요란하게 화장하고 나타날까 은근히 겁먹고 있었는데, 너무나 예쁘고 참한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그중 한 여성은 최근에 결혼을 했는데 포주가 찾아와서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하여 과거 자신의 경력이 들통날까봐 걱정이라고 눈물까지 글썽인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에서 기거하다가 눈치가 보여 집을 나왔는데, 잠재워주고 월급 많이 준다는 광고가 있어서 업소를 찾아갔단다. 처음에는 2차를 안 나가도 된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2차를 나가지 않으면 매일 빚이 늘어나 결국은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한번 발을 들여놓자 빠져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졌다고 한다. 용기를 내서 목욕탕에 간다고 도망나왔는데, 갚지 못한 선불금이 그대로 남아있다. 포주가 고소를 하면 경찰서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아야 하고, 빚을 갚지 못하면 사기죄로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 여성 앞에서 문득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젊은 아이에게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는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의 쉼터에서 거주하는 여성 10인의 수기와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4.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여성활동가를 만났다. 환하고 씩씩한 웃음. 성매매 여성들과 스스럼없이 언니동생하며 지내는 그 여성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성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일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자신도 하루 빨리 ‘탈 성매매’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밝게 웃는 그 여성은 성매매 여성들을 특별한 남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탈 성매매를 결심한 후에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짓’을 계속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 그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주면서. 자활을 꿈꾸는 어린 성매매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발에 밟히면서도 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떠올린다.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여성폭력추방공동행동이 지난 4월 11일 오후 청계천 광장에서 '여성폭력 없는 세상' 선포식을 갖고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5.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성매매에 관한 우리사회의 논의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성매매를 금지하면 성폭력범죄가 늘어난다거나, 성매매를 금지하면 미혼남성들은 성욕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거나,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관련 산업의 불황이 심각하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국회에서도 버젓이 제기될 정도이다. 성매매산업 속에서 여성들은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굴욕을 겪으면서 폭력과 성적 학대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신체와 인격에 대한 중대한 침해임에도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특수한 여성의 문제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돈 때문에 부득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타인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를 얻는다면, 타인에게 신체를 제공함으로써 신체에 대한 폭력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놓인다면, 신체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여 번 돈을 대부분 빚 갚는데 사용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그 일을 반복하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이것은 더 이상 여성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장애인, 노인, 성적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만큼이나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서 심각한 인권침해상황에 놓여있다. 다만 소리 내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에 대한 논의는 여성단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이다. 앞으로는 성매매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가끔씩이라도 인권단체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요즘 국민들의 주요 관심사는 단연 부동산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그동안 대구 계명대학교 교수로서 8년 6개월간 재직하다 작년 9월 1일 동국대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지방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옮기면서 가장 신경을 써야 했던 일은 집 문제였다. 발령을 받은 날짜가 마침 정부의 8·31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직후인 9월 1일이라서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장만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미루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부동산에 문외한이었던 나로서는 정부를 믿고 부동산중개사와 주위 분들의 권유를 종합하여 1년간 전세를 살다가 집값이 안정기에 접어든 올해 집을 장만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전세집을 마련할 동안 부인은 대구에 있게 하고, 아들 둘과 협소한 원룸에서 2개월 여 동안 생활해야 하는 불편까지 감수하였다.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이후 서울지역 평당 분양가가 7년 사이에 3배 폭등했다. 사진은 서울 강북에 위치한 한 아파트.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어렵게 내린 결론은 1년 후인 올해 결국 참담한 실패작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올라버린 집 값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나의 미숙한 판단을 탓하려니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체면이라도 세우기 위해서 남들처럼 정부라도 비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 생활 1년 사이에 8·31대책, 3·30대책, 11·3대책 등 세 번씩이나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으나 한번도 약효가 듣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8·31 대책을 내놓고는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며 대책을 만든 공무원들에 대한 훈·포장 잔치를 벌였다. 대통령은 세금폭탄 운운하며 지난 5월 “종합부동산세 한번 내 보라”고 국민을 겁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기만 하면 집 값은 다락같이 오르기만 하니 부동산대책 발표가 서민들에게 지금 바로 집을 사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는 암시 같기만 하다. 도대체 참여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정책을 수립하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모름지기 정책이란 “문제해결 및 변화유도를 위한 활동” 또는 “정책기관에 의하여 결정된 미래의 행동지침”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정책결정이란 “설정된 국가목표나 공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복잡하고 동태적인 과정을 거쳐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정부의 장래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념정의에 비추어 볼 때 부동산가격 폭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정책결정은 부동산가격 안정이라는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집 값 안정대책이 오히려 집 값 폭등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악화시켜 놓고 있으니 이론적으론 정책결정으로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호되게 질타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건설교통부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8·31대책은 성공했다고 본다. 점수로 치면 80점 정도는 된다”며 맞받아 쳤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주변 집값을 크게 올렸다는 비판을 받아온 판교신도시.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남소연 현재 집 값의 이상 폭등현상은 “조만간 집 값이 떨어진다”는 식의 헛 공약 남발로 정부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린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본다. 정책결정을 잘못하면 이를 거울삼아 더 좋은 정책결정을 하면 되지만, 국민이 정부에 대하여 신뢰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제발 기원하오니 하루빨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 서민들이 정부를 믿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4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올해 6월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과 레바논 지역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화학 무기 사용은 계속 제기된 문제였고, 이와 함께 현지 언론에는 상처 없이 검게 탄 시신의 모습들이 여러 번 보도되었다. 병원에서 나온 자료들과 목격자들, 무기 전문가들을 포함한 현지 주민들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요구 사항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그런데 10월 22일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지난 주 이스라엘 내각 장관, 야코브 에더리가 34일 동안 헤즈볼라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군사 목표물’을 향해서 인폭탄(Phosphorus)을 사용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어디서, 무슨 목표물을 향해서, 어떻게 인폭탄이 사용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국제법은 인폭탄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적십자사를 비롯한 인권 단체들은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했다. 국제법은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사 목표물’을 향한 인폭탄 사용도 금지한다.”고 주장한다. 인폭탄은 반투명의 왁스 같은 물질이며 자극적인 냄새가 있고, 수류탄이나 미사일 등에 장착할 수 있다. 공기와 접촉했을 때 강렬한 열을 발산하며 연기를 내뿜는다. 이 폭탄이 공중에서 폭파되어 사람 피부에 닿으면, 치명적으로 완전히 검게 탄다. 이러한 인폭탄은 과거 1982년과 1993년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할 때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팔레스타인 부녀자들이 나스르 모스크 내의 팔레스타인 전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인간방패를 만들어 이스라엘 군에 비폭력적으로 대항하다가 2명이 숨지고 최소 10여 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군사 목표물’만을 겨냥해서 인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의 검게 탄 시신들은 시민들이었다. 병원 의사들은 인폭탄의 사용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남부 레바논의 차안에서 검게 탄 마흐무드 수르와 그의 아버지 시신은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겨냥해서 인폭탄을 사용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인폭탄이 ‘군사 목표물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바논 대통령은 인폭탄이 ‘어린이를 포함하는 민간인들을 살해’하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제네바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국제 적십자사를 비롯한 인권 단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폭탄이 사용되었는지를 이스라엘이 밝혀야하며, 인폭탄은 화학 무기”라고 강조한다.   지난 3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남부 가자지구 칸 유니스 팔레스타인난민촌의 자기 집을 둘러보고 있는 한 팔레스타인 소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1993년 ‘화학 무기 사용금지 협정’이 조인되었고, 1997년부터 실행에 들어갔다. 이 협정은 화학무기를 제거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 국제적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1997년 ‘화학 무기 금지 기구’가 창설되었다. 현재 180개 국가가 이 기구에 가입이 되어있지만,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북한은 가입하고 있지 않다.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국제법상으로 금지된 집속탄을 남부 레바논에서 사용했다. 10월 22일 일요일에도 불발된 집속탄이 남부 레바논의 올리브 농장에서 폭발해서 12살 난 소년이 죽었다. 유엔의 중재로 8월 14일 이스라엘/헤즈볼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적어도 20명 이상의 레바논인들이 불발 집속탄의 폭발로 죽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유엔과 인권 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34일의 전쟁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4백만 개의 집속탄을 쏘았고, 이 중 1백만 개는 불발탄으로 레바논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겨울이 오면 비가 내릴 것이고 이 비는 폭탄들을 땅 속에 묻을 것이다. 그러면, 이 폭탄들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하눈의 시체안치소에서 한 남자가 이스라엘 저격범의 총격으로 희생된 12세 소년의 시체를 살피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 군의 공습과 폭격으로 반군 4명을 포함 팔레스타인 6명이 숨졌다. 사진 출처 - 로이터/뉴시스 어제도 오늘도 이스라엘의 정찰기는 헤즈볼라가 시리아로부터 무기를 밀반입하는 것을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상공을 침공하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병 문제에 대해서 한국 내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다.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깨뜨리는 공격자들을 막아야한다. 그렇다면, 파병을 결정하기에 앞서 누가 공격자인가를 분명하게 먼저 결정하고, 그 주둔지를 결정해야한다.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레바논 양 측이 교전했다고 한다면, 최소한 이스라엘/레바논의 국경을 기준으로 해서, 양 측의 영토에 각각 비무장지대를 공정하게 설정하는 등으로 그 주둔지가 선정되어야만했다. 그렇다면, 남부 레바논 지역으로 한정된 평화 유지군 주둔지는 레바논인들이 공격자라는 것을 의미하며, 원천적으로 불공정하고 잘못 선정된 것이다. 10월 20일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미르 페레즈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특히 하마스를 공격하기 위하여 하마스의 아성인 가자에 대한 군사 공격을 계속하도록 이스라엘 군대에게 명령하였다. 가자 지역은 10월 12일 이후 재개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10월 22일에는 8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되었다. 그런데 10월 23일 페레즈는 가자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11월 1일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울메르트 주재하의 정치-안보 회의는 가자 지역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강화 할 것을 결의하였고, 군대는 공세 강화를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11월 1일부터 시작된 “가을 구름” 작전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공격은 더욱 격화되었다. 11월 4일 토요일에 9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되는 등 1일부터 4일까지 4일 동안 가자 지역에서 최소한 49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되었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항하는 화학 무기 공격을 동반한 이스라엘의 위험한 전쟁 놀음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5 | 추천: 0
이광조/ CBS PD 군사용어에 “부수적 피해”라는 말이 있다. 전투행위시 불가피하게 따르는 민간인 피해를 이르는 말이다. “피해”라는 단어는 전쟁의 참상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피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리는 건 교통사고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아닐까 싶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부수적 피해”라는 말 속에서 팔,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부수적”이라는 수식어는 더 기가 막히다. “부수적”이라는 말 속에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행동에 따르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는 뜻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뜻도 있지만 ‘고의는 아니다’라는 무책임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침공,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서 엄청난 “부수적 피해”가 발생했다.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수 천 명에 이르고 이라크의 경우에는 최근 민간인 희생자가 65만 여 명에 이른다는 한 미국 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서도 이 보다는 적지만 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이 18만 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는 전쟁의 참상과 본질을 희석시키는 고약한 말인 듯 하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무슬림 시아파들이 살아가는 남부 지역, 파괴된 건물 더미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엄청난 민간인 희생자 수도 문제지만 공격에 동원된 무기와 공격방식은 더 큰 문제다. 미국에 이어 영국이 이라크에서 ‘백린’을 무기로 사용한 것이 논란이 된 데 이어 최근에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면서 ‘인폭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사람의 살갗을 태우는 ‘백린’은 ‘과도한 피해와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는 무기로 국제적십자가 사용금지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은 이런 호소를 콧등으로도 안 듣는 듯 하다. 이들 군사강대국들은 민간인이 밀집한 지역에서 ‘인폭탄’과 ‘집속탄(커다란 폭탄 속에 많은 수의 소형 폭발물이 장착돼 있어 소형폭발물이 분산 폭발하면서 살상반경을 넓힌 폭탄)’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고 적군이 있다고 의심되는 지역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도심을 무차별 폭격하고 민간인 거주 지역에 집속탄을 투하하면서 민간인들의 희생을 예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법을 잘 모르지만 형사법적으로 따지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해당될 듯 하다. 2차 대전 이후 지구촌에서 벌어진 전쟁의 대부분은 군사력이 비대칭적인 국가들 간의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그랬고 최근의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까지. 군사력이 불균등이 심한 상황에서 강대국이 물량 공세를 펼 때 이른바 “부수적 피해”는 커지기 마련이다. 최근의 전쟁에서 “부수적 피해”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물량공세는 주로 서방 강대국들의 몫이다. 더구나 최근 벌어진 일련의 전쟁들은 이슬람에 대한 문화적 우월의식과 인종주의까지 암암리에 개입됐으니 전쟁의 양상은 더욱 참혹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후세인 같은 독재자는 법정에서 자기주장이라도 하지만 폭탄세례 속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은 이름도 목소리도 없다. 50년 전 이 땅에서도 전쟁으로 끔찍한 “부수적 피해”가 발생했다.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가 남북을 합쳐 수십만에 이른다(전쟁을 시작한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미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 2차 세계대전 전 기간동안 사용된 폭탄의 3배 정도가 집중됐고 베트남전의 상징처럼 된 네이팜탄도 3만 2천 톤 이상 사용됐다. 주요 공격 대상은 북쪽의 도시들이었지만 남쪽에서도 강원도 영월, 충북 단양, 경북 예천에서 수 천 명의 민간인들이 네이팜탄의 화염 속에 목숨을 잃었다(더구나 이 네이팜탄들은 일본에서 생산된 것으로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펴낸 화염무기에 관한 한 저서에서는 ‘일본 경제 재건의 첫걸음이 한국의 도시를 파괴하는 네이팜탄 생산이었다는 사실은 일종의 역설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아프간과 이라크, 레바논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전쟁 소식을 보도하는 언론과 전쟁의 참상에 무감각한 우리 자신을 보면서 가끔 무서운 생각이 든다. 불과 반세기 전 ‘부수적 피해’의 희생자였던 우리가 어느 새 가해자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이동하는 모녀의 모습. 전쟁은 민간인들의 피해를 가중시킨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017-06-09 | hrights | 조회: 4 | 추천: 0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아이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간 어느 날,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늘어선 줄의 앞에 선 어느 젊은 여인이 내게 묻는다. “예수 믿으세요?” 그저 빙긋이 웃을 뿐 답이 없으니 그 다음 이어지는 말, “구원의 확신이 있으세요?” 참으로 난처한 질문이다. 초면에, 그것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사이에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그런 방식의 전도행위를 권하는 종교단체가 존재하는 우리 사회는, 참으로 종교적 차원의 삶을 살아가고 종교적 심성이 깊은 시민들로 가득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며칠 전 서울외국어고등학교에서는 어느 목사를 초청하여 학생들에게 종교예배 참석을 강요하고 또 그것이 앞으로 그 학교가 미션스쿨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항의하는 글이 홈페이지에 올라오자 학교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삭제하였다. 이 문제에 관한 것은 졸업생들이 쓴 짧은 글 두어 편이 보일 뿐이다. 교장이나 이사장이 계획하였을 이런 일이 종교적 열정에 불타는 순수한 신앙심이나 학생들을 바로 기르기 위한 교육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오늘도 죄악에 허덕이는 불쌍한 불신자를 향한 전도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느 종교인이나 자신이 믿는 신앙을 나누기를 원하고, 참으로 옳고 영원한 진리를 전파하고자 애쓴다.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몇 가지의 사례에서 앞으로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갈등의 요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징조를 읽는다. 매우 공격적인 종교적 태도와 선교의 방법이 일상화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기독교의 특정 종파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그렇다고 기독교만을 비판하자는 것도 기독교가 모두 그렇다고 말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른 종교가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다만 잘못된 종교전파의 행태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고 바람직한 선교의 모습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교나 다른 어느 종교도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마찬가지의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앞에서 든 예에 나타난 종교 전파의 방식은 우선 상대방을 존엄과 가치를 가진 인격으로 존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종교적으로 죄인이라고 보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의 생각이 올바르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고귀한 존재이며 또 그렇게 대우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이 지나치면 자신이 깊이 믿어마지 않는 신앙을 가지지 않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저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모양이다. 성찰적 자세로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그러한 연민과 구원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가 불신지옥이라는 식의 공격적 선교행위로까지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이런 방식은 상대방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하여 종교적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다. 100여 년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는 국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종교적 진리를 널리 펼쳐왔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인은 전 국민의 4분의 1에 달하고 종교단체 또는 종교인들이 수많은 학교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학교교육에서 종교학교의 비중은 낮지 않으며, 취학전 교육 단계에서의 종교학교의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이와 같은 종교단체의 학교교육과정에서는 학교교육에 종교교육이 덧붙여져 학생의 의사에 반하는 종교교육과 선교가 이뤄지는 예가 많다. 교회 등 종교단체 안에서는 ‘감히’ 가하지 않고 또 가하지도 못할 강제를 학교에서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성적평가에 반영한다. 학생회 활동에 종교에 관한 조건을 붙이기도 한다.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보다도 학교는 더욱 강력한 종교교육과 선교의 도구가 된다. 종교단체에서는 생각지도 않는 강제가 학교에서는 오히려 당연히 강제되는 기이한 현상이 교육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학교교육은 법률에 의하여 인정된 교육제도라는 점에서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제도종교가 학교를 통해 종교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사실상 국가에 의한 종교교육 방임이라는 점에서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반한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종교적 행태의 뿌리는 멀리 이승만 정권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된다.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원식에서는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자마자 이윤영 의원(목사)에게 개회기도를 부탁하여 국회에서 “하늘에 계신”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맺는 전형적인 기독교식의 기도가 행해진다. 이 무렵 기독교인의 비율이 전 국민의 5% 정도에 불과했음에도 이승만의 종교적 성향에 의하여 특정 종교의 기념일인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되고 군대와 교도소에 근무하는 종교성직자가 기독교에 한정된다. 기독교 편향적인 정책에 발맞춰 선거에서 기독교는 이승만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세속국가에 당연시되는 정교분리에 관한 의식이 극히 미약하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권력의 도움을 받은 종교전파의 행태가 오늘날의 공격적 선교행태를 낳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종교인이 종교를 믿고 신앙을 전파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모든 사람이 종교적 차원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면 이 사회는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의 전파는 종교적 삶의 거룩함과 감동을 통하여 이뤄지는 것이어야지 권력을 이용한 강제적 방법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인간의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는 고백이야말로 종교의 기초이며 그러한 고백은 결코 강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은 단순히 특정 종교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에 진지한 삶에 대한 고민과 인간의 깊이를 탐구함으로써 실시되어야 하는 것이며, 학생의 진지한 의사에 반하여 강제를 하는 것은 입으로만 종교적 진리를 고백하게 하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결국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교육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자유라는 인권을 침해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종교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종교의 신자를 만드는 종교교육보다는 종교적 삶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특히 자신의 신앙 이외에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개종하여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신앙인의 징표라고 믿는 사람이 다수가 될수록 이 시회에서 종교가 촉발하는 갈등은 깊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원종교사회에서 올바른 종교교육이야말로 단지 필요한 것만 아니라 절박하기까지 한 주제이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 | 추천: 0
유정배/ 참여와 자치를 위한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지난 9월 24일, 반환 했거나 반환 예정인 29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가 드러났다. 그동안 SOFA의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를 핑계로 완강하게 공개를 거부하던 환경부가 일부 내용을 국회에 보고 한 것이다. 춘천에 있는 반환미군기지인 캠프 페이지(Camp Page)도 560개 토양오염 조사지점 중 185곳이, 지하수 71개 채취지점 중 10곳이 오염기준치를 크게 초과해서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언론은 캠프 페이지의 토양 오염정도가 심각해서 공장부지로 활용하기도 힘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55년부터 존재한 캠프 페이지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 결과 지난 2004년 7월 전국의 14개 미군기지와 함께 우리 정부에 반환하기로 결정되었다. 춘천은 의암호를 비롯해 3개의 커다란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호반의 도시’로 여성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유명한 도시다. 그런데 춘천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경춘선을 타고 춘천역에 도착하면 먼저 호수가 있는 멋진 풍광을 만나는게 아니라 볼썽사나운 시멘트벽이 둘러친 군사기지와 훈련에 바쁜 아파치 헬기를 마주하게 된다. 20만평이 넘는 캠프 페이지는 춘천의 도심지 한가운데에 있어 도시공간을 기형적으로 왜곡하였고 캠프 페이지 주변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했다. 캠프 페이지는 춘천의 심벌인 의암호 가까이에서 시작해서 강원도청, 춘천시청, 겨울 연가 촬영지로 유명해진 ‘춘천명동’ 등 구도심의 중심지역 사이에 있다. 장소로 보면 춘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춘천의 얼굴이 50년 넘게 ‘국가안보’때문에 아파치 헬기와 외국군대의 위용에 자기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숨죽여 왔다. 2005년 9월 열린우리당 최성의원은 캠프 페이지가 적어도 1987년 까지는 핵 기지 였다고 폭로했다. 주한미군의 핵기능이 ‘주한병기지원분견대(WSD-K)'에 의해 통합 운영되었는데 WSD-K의 사령관은 서울의 용산기지내 핵 계획·작전사단(2462빌딩)에 사령부를 두고 있었지만 참모 대부분은 캠프 페이지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는 것을 보면, 춘천시민들이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핵무기에 저당 잡히면서도 일그러진 얼굴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기막힌 세월을 보낸 것이다. ▲춘천 캠프 페이지 전경. ⓒ 선대식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001년 11월 춘천시민연대는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와 함께 캠프 페이지 주변지역인 근화동 주민 60여명의 헬기소음에 대한 청력반응, 스트레스 지수, 정신 심리적 상태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근화동 주민들의 건강상태는 다른 지역 주민보다 현저히 나쁜 것으로 드러났고 2003년 3월 근화동 주민 42명은 원고인단을 구성해서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 하여 1심에 승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04년 7월 캠프 페이지 반환 결정 이후 춘천시민들은 캠프 페이지 터에 춘천에 잘 어울리는 얼굴을 복원 하기위해 골몰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중앙에 예속된 지역이 아니라 지역만의 색깔을 가진 독특한 자립적 발전의 길이 모색되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삶을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지역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보아 춘천이 자신의 얼굴을 조각해 가는 과정은 ‘자치’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또 다른 시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군기지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을 국정 목표로 삼고 있는 참여정부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지난 7월 14일 끝난 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결과를 보면 미군이 8개 항목 치유를 끝냈으니 미군은 할 일을 다했고 우리정부는 이를 ‘믿고’ 반환 받는 것을 합의하겠다는 내용이다. SOFA에 규정되어 있고 정부 스스로 늘 주장해온 ‘오염자 부담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미군이 환경정화에 대한 성의를 보이고 있다며 미군의 입장을 수용 하려고만 하는 국방부는 반환미군기지 주민을 분권·분산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한 영원한 희생자로 밖에 여기지 않는 듯하다. 캠프 페이지는 지난 6월부터 지하수의 기름을 제거하기 위한 정화에 들어갔지만 정화 방법 및 정화업체의 자격, 정화비용 문제 등으로 정화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확산되는데도 강행되고 있다. 그리고 환경부는 여전히 환경오염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 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고 행자부는 지방자치단체에 미군기지 반환지역의 개발계획을 조기에 완성해서 보고하라며 다그치고 있다. ‘국방·외교’는 중앙정부의 고유권한이므로 참여정부는 ‘중앙정부’의 역할에 충실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빨리 확보하도록 해서 ‘협력적 자주’를 조기에 완성, ‘자주국가’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걸까? 어쨌든 중앙정부의 무원칙한 용기에 민주주의의 밑거름인 ‘지방자치’의 싹이 찬바람을 맞게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