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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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뉴스들을 접하면서 요즘 드는 생각은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것과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일까?’ 하는 것이다. 규제 때문에 경제가 힘들다며 기업과 금융에 대한 모든 규제들을 완화하거나 철폐하고, 종합부동산세도 완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으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재벌 총수의 비리에는 검찰이 나서서 선처를 구하고, 소위 강남부자들의 단결과 결속력을 잘 보여준 교육감 선거의 당선자는 영어몰입교육과 특목고를 밀어붙이겠다고 일갈한다. 또한, ‘국정 철학이 같은 인물이 공영방송 사장이 되어야 한다’ 는 발언을 철썩 같이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한나라당의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안은 시민사회단체들을 행안부의 지원금에만 의존하는 존재로 평가절하하면서 ‘이명박 정부 비판 시민단체 보조금 회수’ 라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월 100만원 여 정도 받는 ‘나’를 위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나날이 느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생존 전략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다. 그냥 쉽게 말하면 나날이 ‘우리나라’에 대한 박탈감과 배신감만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주권을 가진 국민인가? 아니면 권력과 자본을 가진 몇몇의 국가를 위한 소모품인가? 휴가를 맞아 유명한 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그곳을 가게된 것은 어떤 종류의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는데,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동안은 겁 없이 덤볐으나 대회가 다가오면서, 또 대회당일 이틀은 정말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긴장과 스트레스를 느껴야 했다. 그냥 ‘참가’ 하는데 의미를 두자고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우승’에 대한 집착이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준비과정에서는 나름으로 힘든 훈련을 거쳐야 함에서 오는 다음날의 훈련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려야 했다. 어른이 되고 싶은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시험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는데, 스스로 시험에 들어 그 강박을 또 다시 느껴야 할 이유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든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의 고통스러움을 느끼는데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선택이라면 상황은 더 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학생들과 군인들이 아닐까 싶다. 공부하는 기계로서, 전쟁하는 기계로서 욕망과 욕구를 억압당하거나 거세당해야 하는 집단들. 그러나 아마도 그 강도는 군인들이 더 심한가 보다. 군인으로 지낸 시간에 대한 보상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18대 국회 들어 군가산점 부활법안이 2건(한나라당 김성회, 주성영의원) 발의되었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의 하나인가? ‘군가산점제’는 이미 9년 전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17대 국회부터 슬며시 부활법안이 논의되더니 결국 18대 국회에서 발의되고 말았다. 9년 전 위헌소송을 냈던 여성들-여성단체-과 장애인들-장애단체-이 당한 수모가 기억되면서 그 진흙탕 싸움을 또 해야 하는가? 하는 갑갑함이 먼저 들었다. 또 다시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로 문제의 핵심이 흐려질까 우려하면서-벌써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대안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안을 왜 여성단체-여성들-가 찾아야 한단 말인가? 아니 왜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이 그 대안을 만들도록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아래의 사례들은 군인으로서 직접 당사자인 남성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한 남성이 병역법의 몇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은 ‘남자만 병역의무를 지게하고 여성은 지원에 한해 복무하도록 한 점을 들어 평등권, 직업의 자유,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현대의 전쟁이 무기의 현대화 등으로 전통의 개념과 다르며, 넓은 의미의 대체복무형태가 발달한 현대에서는 여성도 병역의 의무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병역의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나 남성에게 차별적인 제도라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국방부장관은 위헌이 아니라고 답했으나 지난 6월 14일 한국젠더법학회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양현아 교수는 남성에게 차별적인 조항임을 확인하였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고려한 여성에게 ’수혜적 차별‘이라는 말은 결국 여성은 권리와 의무에서 권리는 있으나 의무에서는 배제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남성에게 ’과도한 부담적 차별‘이 된다는 것이다. 촛불집회 폭력 진압 때문에 부대 복귀 거부를 선언했던 이길준 의경이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성당에서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한 전투경찰이 "촛불시위 진압에 나서는 것은 양심에 반하는 일"이라며 육군으로 전환복무를 요청했었고, 또 다른 전경은 촛불진압의 포상휴가를 나왔다가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에서 ‘인간성이 타들어가는’ 상처를 느껴 복귀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개인이 모여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연대'를 결성하여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안보 행위’를 벌이고 있는 군인으로서의 전․의경제도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시에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사자 남성들이 군대내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군대제도가 가진 인권 침해적 요소에 대해 적극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는 단순히 제대군인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것으로 보상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군대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산점을 통해 이득을 보는 제대군인들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 이는 가산점의 실익이라기보다는 그런 제도를 통한 정신적 위로의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너를 잊지 않고 있어...’ 정도?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군에서도 통용이 되는 듯싶다. 군대가 아무리 편해도 가기 싫은 곳이라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있긴 하지만, 군에 있는 동안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고난 후에 주는 적당한 보상보다는 군에 있을 때 보다 적절한 처우의 개선 여지는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외국의 예처럼 국민의료보험제도나 장학금제도를 통한 실질적인 보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 미국의 방위비 분담요구는 수용하면서 자국민인 건강한 남성들을 위해 투자할 비용은 없는가? 23가지 불온서적을 발표하여 사고와 판단의 자유마저 박탈하고 전쟁도구로 조정, 지배하기 위한 정책 외에 건전하고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넘치는, 배려와 존중이 규율과 같이 공존하는 군대문화를 만들기 위한 고민과 정책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병역의무가 신성하다면 진정으로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 ‘신의 아들’들도 가게 만들 의지는 없는가? ‘군가산점제부활안’은 어느 모로 보나 유치한 논리이다. 눈속임이고, 남성들 간의 계급문제를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꼼수일 뿐이다. 20:80으로 점점 양극화 되고 있는 사회에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는 이들은 80에 속해있는 이들의 아들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가로부터 소외되고 박탈당하는 이들의 자식들이 국가로부터 수익과 혜택을 입는 자들의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소모품이 아닐까?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개인들로 하여금 국가의 보위를 위해 헌신하라고 하는 것은 전체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군대문제는 가산점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 더 깊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이다. 거기서 주체로 나설 이들은 남성들이다. 가산점이란 떡밥에 위로받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하지 않는가? 여성에게 분노를 향하기엔 뭔가 수치스럽지 않은가? 위로받고 분노하기에 앞서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드러내는 용기와 공론화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려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지 않은가? 군가산점 부활을 들고 나온 한나라당은 미끼와 얄팍한 상술로서 또다시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로 본질을 흐리는 것에 낯부끄럽지 않은가? 진정으로 내 자식 걱정 하듯 진지한 정책을 마련할 의도는 없는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가? 여성단체 활동가들도 편안히 휴가를 즐기고 싶다. 제발 사고 좀 그만 치기를...
2017-07-20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일본이라는 시스템 일본사람은 전반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한국에 비해 일본 TV 뉴스나 신문은 좀 밋밋하다. 뉴스에도 아래로부터의 ‘요구’보다는 위로부터의 ‘하달’이 더 많이 담겨있으며,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쓴 소리는 한국에 비해 별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하달’한다고 사회가 금방 바뀌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사회가 그만큼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새삼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도, 정치가가 특별히 목청 높이지 않아도, 그저 그렇게 굴러갈만한 사회 시스템이 진작에 갖추어져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편에서 보면 일본 국민은 예나 이제나 정치 순응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특히 후자가 관심의 대상이다. 군사주의 문화와 정치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시대(1192-1336)이래 에도시대(1603-1867)까지 칠백여년 가까이 군사정권을 유지해왔다. 군사정권은 필연적으로 개인적 창의성보다는 집단적 조화성을 중시한다. 개성도 집단이라는 큰 틀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유지되고 인정된다. 그런 탓인지 일본인은 오랫동안 자신만 잘 보호해주면 위에서야 무어라 하든,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밖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을 보여 왔다. 겉마음과 속마음이 다른 일본 문화는 그런 맥락에서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정권도 실세들인 ‘다이묘’나 ‘쇼군’에 의해 바뀌는 것이었지, 백성에 의해 아래로부터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 표면적으로는 군사정권이 사라졌지만, 패전(1945) 때까지 군사적 집단주의 문화는 천황을 정점으로 하면서 여전히 유지되어왔다. 그런 것이 체질화되어있는 탓일까. 일본은 경제는 선진국이지만, 상대적으로 정치는 선진국이 아니다. 정치 선진국이 개인의 권리와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고 실제로 발휘되면서 움직인다면, 일본은 외적 권리는 보장되지만 그것이 정치 현장에까지 적용되기는 힘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가와 국민은 항상 겉돈다. 국민은 내심 정치가를 좋아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저 그런 정도에만 머물 뿐, 현실 정치를 바꾸기에는 사이에 놓인 무관심의 골이 깊다. 무언가 억누르고 있는 사람들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에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한국에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사실 그 속담은 일본사회에 더 잘 어울린다. 개인의 자유도 집단의 틀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 당연한 일 같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그것이 좀 두드러진다. 정치든 문화든 이런 저런 분위기든,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런 감정은 특별히 표출되지 못한 채, 자기 안에 감춰져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무언가 깊은 욕망이 안으로 숨어들어 얼굴에까지 무언가 어두운 구석이 엿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부족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도 표정은 상대적으로 밝지 못하다. 개성을 밖으로 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속으로만 파고드는 ‘오타쿠(お宅)’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드시 오타쿠 부류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자신의 눌린 내적 감정을 표출할 기회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생각을 정치 차원에서 과감하게 표출하는 이들 대다수는 이른바 우익세력이다. 이 우익이 일본 여론의 실질적인 주도 세력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인 다수보다 목소리 높은 소수 우익이 일본 정치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일본 우익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의 후예들이다. 그리고 현실 정치에 무관심한 다수 소시민은 이러한 소수 우익의 목소리를 의식, 무의식적으로 방조하거나, 결과적으로는 이들 목소리에 그대로 끌려온 역사를 지닌다. 일본의 정치가 전후 일본의 정권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현재 후쿠다 내각의 지지율은 한국과 비슷하게 20% 초반 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20% 정도라면 정치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겠지만, 그래도 정권은 바뀌지 않는다. 엄청난 잘못만 저지르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된다. 일본인은 스스로 아래로부터 정권을 바꾸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심으로는 변화를 요청할지 몰라도,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한 탓인지,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거북해한다. 시스템 중심의 사회는 한편에서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변화를 용납하기 힘든 사회이기도 한 것이다. 정치가는 이것을 잘 안다. 일본 정치가는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아는 사람,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쥐락펴락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특히 음으로 양으로 우익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우익이 오랫동안 여론 조성세력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독도 사진 출처 - 한겨레 제국주의와 다케시마 일본 정치인이 툭하면 ‘다케시마’를 들고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도, 일본이 다케시마를 역사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영토라고 우길 만한 근거는 한국의 독도 주장에 비해 적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몇 가지 이유만으로 그것을 고집하고 주장하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있거나 그것을 입증하려는 차원이 아니다. 항간에는 독도 심해에 묻혀있는 자원을 탐내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유는 그것보다 복잡해 보인다. 중요한 이유는 다케시마를 일종의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놓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우익 세력을 이용하는 일본 정치인에게 ‘분쟁 지역’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전부터 주장했고 ‘나름대로는’ 그렇게 진행시켜왔던 자신들의 기존 논리를 특정 정권이나 세력이 새삼 바꾸기 힘든 사회가 일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케시마’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해온 기존 주장을 이제 와서 바꿀 정치적 명분이 일본인에게는 없다. 이미 과거를 답습해오고 있는 정치 시스템 속에 녹아있어서, ‘다케시마’가 정말 자신의 영토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고, 또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이 변화 없는 사회라는 것도 이것을 의미하며,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우익세력을 근간으로 하는 제국주의적 저류도 큰 변화 없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적 특징 중에 하나가 계속 분쟁지역을 만들어 언젠가는 자신들의 기존 목적을 위해 충분히 활용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가능한가 언젠가 한 학회 토론 시간에 한 일본인 학자가 서브프라임론 문제 때문에 미국 경제가 정말 어려워지면 어떤 명분을 들고서라도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데, 그러면 일본도 그 전쟁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섬뜩한 예상이지만, 일본에서 살아보니, 그리고 비교적 관심을 가지고 일본 문화를 공부하다보니, 그것이 그저 헛말이나 공상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맥락에서 ‘다케시마’ 문제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한일 간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일본 정치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끝없이 다케시마를 이용할 것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포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늘 그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본 우익의 목소리를 자극해 정치권에 힘을 얻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하고 고개를 숙이며 다니는 일부 일본인의 속 깊은 분노를 폭발하게 만드는 구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다케시마’는 일본을 한국 위에 군림하게 해주는 나름대로의 ‘정당한’ 구실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일본에 군비 강화의 명분을 제공해주었던 북한이 자의반 타의반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포기 정책을 보여주기 시작한 이후, 일본 우익은 다른 구실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케시마’가 그 구실이 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강화된 군비는, 다수 소시민적 평화주의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한국을 향해 작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비록 섬뜩한 상상이기는 하지만.... 장기 비전은 있을까 나는 군사나 경제나 정치 전문가가 전혀 아니다. 그저 문화에 관심이 좀 있을 뿐이다. 물론 문화라는 것 안에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치나 처세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한국에서는 잘 안보이던 이런 상상들이 구체적으로 든다. 그리고 이런 상상이 헛된 공상만은 결코 아니지 싶다. 이런 상상을 구체적으로 할 때 일본은 한국과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면서 끝내는 한국의 정치인도 이런 상상 정도는 하고 살겠지, 그래도 내 수준보다는 낫겠지, 무언가 장기적인 비전과 정책은 갖고 있겠지 하는 푸념조의 자위를 하게 된다. 그것으로 동해 한 복판 독도의 외로움이 달래질지는 모르지만...
2017-07-20 | hrights | 조회: 26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폭염이 쏟아집니다.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우려나” 해보지만, 생각해보면 매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마음을 먹습니다. 올 여름은 그 자체가 휴가인 듯 마음이라도 여유롭게 지내자고. 조급하거나 성내지 말고, 찬찬히 음악도 즐겨가면서. 따지고 보면 바쁘다고 하지만, 자투리 시간 하릴 없이 인터넷 돌아다니느니 그 시간 소중히 책 한 줄 담는 것이 그 자체로 휴식이 될 테니. 지리산 풍경을 담아내거나 악다구니 세상, 그래도 평심 흐트러짐 없이 물 흐르듯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는 산문이나 시집이면 더욱 적격일 것입니다.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아시나요? 물 강(江), 물 정(汀), 강정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이 마을은 옛날부터 물이 풍부했습니다. 강정천과 악근천이라는 한라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마을이 이 곳이지요. 제주에서 논농사가 행해지던 몇 안 되는 지역 중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서귀포 시내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 대부분의 먹는 물을 이곳이 책임지고 있지요. 다른 지역보다 일조량도 많아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꽃을 재배하며, 특히 이 곳 감귤은 그 맛이 달기로 유명합니다. 와 보시면 알겠지만, 아름다운 경관에 놀라실 겁니다. 강정마을은 다섯 개의 보호구역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하고, 해양생태계보전지역이기도 하지요. 마을 바로 앞에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서귀포 앞 바다 세 개의 섬 중 ‘범섬’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바다 속에는, 저도 영상으로만 봤지만 화려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산호 군락이 장관을 이룹니다. 세계에서도 드문 경우라 합니다.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지요. 그 뿐 입니까? 바다로 흐르는 하천에는 은빛 은어들이 춤을 추며 놀지요. 서건도라는 아주 작은 섬도 마을과 마주하고 있는데, 하루 몇 번씩 물길이 열려 자근자근 까맣고 동그란 바닷 돌을 밟으며 이 섬에 갈 수 있어요. 마치 마을의 정원 같은 소담스런 곳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또 어떻구요? 15년 동안 유원지 지구로 묶여 재산권행사 제대로 못해도 큰 소리 별로 안내고 조용했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죠. 그래서 낙후됐다는 말도 듣지만, 그렇다고 몇 년 전 이 곳에 골프장 짓는다고 했을 때 반겨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에 나서기도 했지요.   이지스함을 본뜬 최병수 화백의 설치 작품. 이지스함을 통해 범섬이 보인다. 기지건설 예정지가 포함된 서귀포 앞바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 이 짙은 그림자는 가혹하기만 합니다. 요즘 마을 사람들은 차로도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이 곳 제주시에 와서 제주도청과 도의회 앞에서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1인 시위를 합니다. 1인 시위... 대체로 사람들 왕래 많은 시간 골라 한 두 시간 하는 게 보통인데, 이 곳 사람들은 순박한 건지, 절박한 건지 그냥 하루 종일 하고 만답니다. 그것도 두 달 동안 한다고 합니다. 절박함이 맞을 겁니다. 바로 1년이 지난, 작년 5월 이 마을은 느닷없이 첨단무기로 무장한 해군의 전략기지 건설예정지가 된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벌써 6년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후보지로 지목된 제주의 마을, 가는 곳 마다 격렬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당국은 작년에 마치 무슨 작전이라도 펼치듯 여론조사라는 수단을 동원해 기지건설을 확정했고, 이 곳 강정마을이 그 날로 예정지가 되어 버린 것이죠. 기지건설 예정지로 확정된 후 마을 사람들은 놀란 가슴만 쓸어내릴 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몇 몇 분들이 나서기 시작하고, 주민들이 밤마다 마을회관에 모이면서부터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게 되고, 강정마을이 기지건설 예정지로 결정된 것이 부당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에는 몇 번의 곡절과 좌절 끝에 주민투표를 통해 마을 사람들 모두의 의사를 비로소 분명하게 모아내게 되었던 거죠. 그럼에도 정부나 군은 아랑곳 하지 않더군요. 일단 결정했으니 따라오라는 것뿐입니다. 국가안보를 위한 시설을 한다면서, 정작 해당 마을의 주민의사는 이렇게 무시되다니요. 과연 주민의 지지와 협력 없는 안보가 성립 가능한 것이기나 한 것인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국가의 결정이지만, 그 자체로 주민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월하기만 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 심사가 요즘 말이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강정마을이 기지건설 예정지가 된 것이 왜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 반면, 마을의 의견은 얼마나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이었는지 충분히 알리는 일에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부 당국도 일부 인정하는 듯 했고, 국회도 이를 알아주어 잘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면 그럴 만도 하지요. 새 정부가 들어서더니 강정마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는 커녕, 날로 깊어가는 마을 사람들 간의 일부 찬성주민과의 갈등에도 나 몰라라 하는 겁니다. 하긴 이 정부 뭐 다른데 신경 쓸 새 없지요. 제 발등 불끄기 바쁘니. 제주도 당국도 결정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만 고수하고 있지요, 해군은 해군대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밀어붙이죠, 그러니 마을 사람들 어떻겠습니까? 이 마을에 기지건설반대 대책위원장 일을 하는 양홍찬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동네 반장 한 번 해본 일 없는 조용한 분이신데, 요즘 이 분 입에서조차 격한 말도 자주 나옵니다. 이 분이 묵상하듯 눈을 아래로 내리고 생각에 들 때, 저는 옛날 시애틀 추장과 대추리 김지태 이장과 더불어 이 분이 시공을 넘어 만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강정마을의 여여함 그 자체를 꼭 빼닮은 분이죠. 마을 사람들과 얘기 나누면서 더 기막힌 건 뭔지 아십니까? 그래도 비폭력, 평화적으로 버텨오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한다는 거죠. 자기 생존이 걸린 문제가 터졌는데, 갈수록 태산인데 이런 말이 나옵니까? 그 동안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지건설을 막아내든, 설령 못 막아낸다 해도,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민주적이고 오로지 비폭력적으로 상대해 나가자 이런 말들 합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강동균 마을회장과 양홍찬 공동위원장 등이 지난 7월 7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리 운동단체들이 생명평화 마을이라 이름 붙이기 이전부터 강정마을은 이미 생명과 평화의 마을이었던 겁니다. 생명과 평화 마을,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올 여름 축제가 벌어집니다. 무슨 노래공연, 시낭송도 하고 알토란같은 강정마을 속속 속살을 더듬으며 생명의 기운을 느끼는 걷기행사도 하구요, 어느 날인가는 돼지도 잡고, 한 판 난장도 벌인답니다. 때로는 진중하게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리고 지킬지 토론회도 연답니다. 이 기운들을 모아 강정마을 사람들은 한여름 땡볕도 마다않고 제주도 전역 순례길에 나설 작정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생명의 기운, 난장의 기운을 안고 집과 길의 호흡을 열어 세상과 통하기 위한 불끈 저항의 대열을 만들기도 할 계획입니다.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 지나 겨울로 가는 여정만큼이나 마을의 이 문제가 더 큰 시련에 들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은 지금 축제준비에 한창입니다. 무엇보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합니다. 마을회관에 인터넷 선도 더 깔고, 이부자리 준비하고, 샤워시설도 만들고 있습니다. 오시는 분들 맞이하기 위한 환영의 인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술하는 분들은 이 마을에서 벽화도 그리고, 미술품도 설치하고 퍼포먼스도 한답니다. 글 쓰는 분들은 시낭송회도 준비하고, 종교인들은 평화미사와 기도회 준비는 물론, 순례길 인도에도 함께한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시민단체 사람들은 모든 여름 계획을 이 곳 강정마을에서 준비합니다. 수련회도 하고 모꼬지도 하고, 때론 마을 사람들과 축구도 한 판 하려고 합니다. 생태관광하시는 분들은 마을과 인근마을 길 돌며 안내하고 이 마을의 빛을 보여주는 일을 합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모두가 강정마을에서 올 여름나기에 나선 거죠. 당신은 어떻습니까? 올 여름 강정마을에 한 번 안 오시렵니까?
2017-07-20 | hrights | 조회: 34 | 추천: 0
이광조/ CBS PD “서유럽과 미국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근대사회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삼아 왔다. 그러나 경험과 이성을 두 축으로 문명의 발전을 의심하지 않았던 인류는 지난 수십 년간 환경 문제 등 예기치 않은 도전에 부딪히고 있다. ‘위험사회’와 ‘성찰적 근대화’란 개념을 통해 근대문명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독일 뮌헨대 울리히 벡 교수를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장훈 교수가 만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실체와 돌파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편집자)... 장훈 : 당신이 발표한 ‘위험 사회’의 개념은 환경 위기, 복지국가의 실패와 같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위험사회’란 어떤 것이며 그런 개념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울리히 벡 :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서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그런 합리성의 부수적 결과들이 예측 불가능해 짐에 따라 일상생활 속에서 커다란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체르노빌에서의 원자력 유출 사건이라든가 광우병, 여러 가지 환경 재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계급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점차 더 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변동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있었지만, 사회과학은 이러한 새로운 현상들을 포착할만한 개념의 빈곤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계급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있기는 했지만, 저나 학생들 모두 이러한 개념적 범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대안적 개념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위험사회’는 그 결과입니다. 장훈 : 당신은 현대의 복지국가가 이런 ‘위험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위험사회’의 극복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울리히 벡 : 여전히 기술 관료제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 국가로서는 위험사회를 불러온 근본적 요인인 기술적, 경제적 합리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국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대규모의 생태 재난과 같은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공적 안전을 제공해야 할 국가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했습니다. 저는 위험사회의 극복은 대의 정치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책임지고자 하는 시민운동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민주주의는 국가를 비롯한 제도권 영역으로부터 일상적인 생활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위험사회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2000년 12월 14일) '위험사회' 저자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수 백 만년에 걸쳐 형성되고 굳어진 자연의 생리(소는 풀을 먹는다)를 이윤을 위해(기술합리성의 추구) 파괴한 결과(동물성 사료를 먹임으로써 소를 육식동물로 만들어 버린) 빚어진 광우병. 위험에 무기력한 국가와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책임지려고 하는 시민과 시민운동. 인용이 좀 길었지만 지난 5월부터 두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논란과 촛불시위를 이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위에서 인용한 인터뷰 기사는 경향신문도 아니고 한겨레신문도 아닌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다. ‘그 때는 이런 인터뷰 기사를 실어 놓고 지금은 왜 그러냐’고 비아냥거리거나 따지려는 게 아니다. 길지 않은 칼럼에 저렇게 긴 인터뷰 기사를 인용한 건 순전히 안타까움 때문이다. 위험사회. 독일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개념화한 이 ‘위험사회’는 사회학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너무도 쉽게 다가오는 개념이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화재,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물론 이런 사고들이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란 기술 관료제에 기반하고 있는 현대 국가 모두에 적용되는 것이고 그 위험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가 세계적인 사회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몇 백 년 동안 이룩한 근대화를 불과 수 십 년 만에 압축적으로 이룬 대한민국에서 위험사회라는 말이 지닌 울림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 지난 4월 1일 조선일보는 “한국은 아주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다, 첫 내한한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 교수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가 울리히 벡 교수의 ‘위험사회론’에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고 적지 않은 지면을 통해 그의 이론과 생각을 소개한 건 그가 세계적인 학자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위험사회’에 대한 경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반성 또는 성찰이 바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인식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깔려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치면이든 경제면이든 사회면이든 기사 형태가 스트레이트든 분석이든 인터뷰든 언론은 끊임없이 문제를 지적하고 경고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우리가 조선일보뿐만이 아니라 숱한 신문지면과 방송 뉴스에서 접하는 각종 고발 기사들, 이것이 위험사회에 대한 성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논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명박 출범 이후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관한 논란에 대해서는 ‘성찰’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마치 ‘불량 철근 좀 들어갔다고 한강 다리가 무너지랴’라는 식이다. 물론 불량철근 좀 쓴다고 꼭 다리가 무너지고 빌딩이 무너진다는 법은 없다. 쓰레기 시멘트로 아파트 짓는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에서 석면에 노출된다고 해서 모두가 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 매순간 이런 저런 위험에 노출된 채 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먹고 광우병 걸릴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얘기도 이런 슬픈 현실을 지적한 것 아니겠는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교통사고 사망률이나 산재 사망률에 비하면 그깟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쯤은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쇠고기 수입업자나 협상 책임자가 할 말이지 언론이 할 말은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미국산 소를 다 도살하라는 것도 아니고 미국산 소는 아예 안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예방할 수 있는 위험은 예방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 불합리한 요구인가. 우리정부가 우리가 구매하는 쇠고기에 대해서 만이라도 광우병 전수검사를 하자고 제안하고 동물성 사료강화조치를 요구했더라면, 설사 정부의 그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국민이 이렇게 화가 났겠는가. 비유하자면 이렇다. 지금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건 불량 건축자재와 쓰레기 시멘트가 들어간 아파트와 학교, 다리를 다 부수고 새로 짓자는 게 아니다. 그것이 성수대교 붕괴, 상품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 사고를 일으킬지 아토피를 포함한 피부병을 일으킬지, 언제 누구에게 암을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앞으로는 불량자재를 쓰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지어진 구조물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서 사고가 나지 않게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게 무리한 요구인가? 이게 친북좌파 운운할 사안인가?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이런 위험, 그 결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위험, 당장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해도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경고와 참견, 이게 바로 언론 본연의 임무 아닌가. 우리들 대부분은 내가 사는 집이 불량 자재로 지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적응하며 살고 세상의 자잘한 부조리도 그러려니 하면서 참고 지낸다. 하지만 가려움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긁어서 피가 나는 자식들을 본 부모라면 ‘안 죽으면 되지’라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돈 좀 아끼자고 불량자재를 계속 쓰자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철근이든 시멘트든 쇠고기든, 공짜도 아닌데 말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5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 기자 그러니까, 넌 열일 제쳐두고 반성부터 심각하게 해야 돼. 며칠 전 당국이 널 감옥에 잡아 가둔 건 차라리 다행한 일이야.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다니지만 말고, 이번 기회에 생각 좀 해봐.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석방대책위원회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거기에 끼어들어 네 석방 따위를 요구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굳이 석방을 촉구하려면 그건 촛불시민들을 위한 것이어야겠지. 넌 그저 그 곳에서 책도 읽고 좌선도 하면서, 시민운동가의 역할과 자질에 대해 성찰이라는 걸 한번 해봐. 도대체가 말이 되느냔 말이야. 지난 10년 동안 너는 시민운동에 매진했잖아. 그것 말고 달리 한 게 없잖아. 그런데 가히 ‘운동 전문가’라 할 만한 네 지성과 감성이 이번 촛불집회에 기여한 바가 뭐 있느냐고. 집회 사회도 보고, 거리행진도 이끌었다고 말하고 싶겠지. 다시 물어볼게. 그거 정말 네가 한 거야? 거리와 광장을 채운 촛불 시민들의 상상력을 봤지? 하나의 거대한 문화공연과도 같았던 그 기발함과 발랄함을 봤지? 어느 운동가보다 단호하게 발언하고, 어느 교수보다 분명하게 논리를 밝히는 고등학생, 주부, 대학생, 직장인들을 봤지? 넌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그런 식으로 데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넌 도대체 뭘 했냐고. 시민운동가로서 이번 촛불집회에 대해 책임질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거, 이거 부끄러운 일 아닐까? (이쯤에서 너는 기자로서의 내 구실에 대해 따지고 싶겠지만, 흠흠, 오늘은 네 이야기만 하도록 하자고) 하긴, 우리가 기억하는 데모란 그저 숭고하고 치열하고 엄숙하고, 그리하여 절망적인 그런 것들이긴 했지. 너와 내가 만나 이 기묘하고도 질긴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 치열하여 절망적이었던 ‘데모들’의 기억 때문이잖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이 지난 6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경복궁역 앞에서 장관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게 강제 연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9년, 전교조가 만들어졌지. 너는 광주에서 나는 대구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을 지킨답시고 데모 흉내를 냈지. 그때 우린 촛불집회 같은 건 생각도 못했지. 고작해야 종이비행기를 접어 교실 밖으로 던지거나,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시국 집회의 한켠에 모여 앉는 따위가 전부였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날, 교문을 붙잡고 엉엉 울어버린 게 우리의 마지막이었지. 우리는 누구에 맞서는 것인지도 잘 모른 채 그저 항의하고 분노했지. 어떤 친구는 퇴학당했지. 어떤 친구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둬 버렸지. 어떤 친구는 항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지. 그리고 우리는 또 울었지. 그때 기억나지? ‘교사는 노동자’라고 말하는 전교조 교사들은 모두 빨갱이다. ‘참교육’이란 중고생들을 의식화시키려는 책동이다. 조선일보가 그렇게 대문짝만하게 썼잖아. 교사와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처음엔 주춤했던 정부도 보수 언론들의 보도를 계기로 전교조 교사들을 모조리 해직하고 그것도 모자라 감옥에 집어넣었잖아.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 데모 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걸, 사춘기 시절에 알아 버렸지. 올바른 것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돼 버렸지. 대학 신입생이던 1991년, 그 해 봄을 잊을 수가 없지. 3월부터 6월까지 10여명이 죽었어. 고등학생, 대학생, 노동자가 죽었지. 시위하다 전경에 맞아 죽고, 거기에 항의해 투신 또는 분신하여 죽었지. 일주일에 한명씩 죽어나가는 거리에 나가려면 말 그대로 죽을 결심을 해야 했지. 그 시절엔 밤이 되면 라이터를 켰어. 종로를 메운 군중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무수한 별빛처럼 명멸했던 라이터 불을 보며 우리는 환호했지. 해직된 옛 선생님들도 만났지. 이젠 대학생이 된 제자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선생님들도 함께 데모를 했지. 87년 6월 이후 최대의 인파라고, 드디어 뒤집어진다고, 우리는 흥분했지. 그 다음의 일도 기억나지? 다시 한 번 조선일보가 ‘죽음의 굿판’ 운운하며 우리를 악의 화신으로 만들었지. 동료의 투신자살을 부추겨 유서까지 대신 쓰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빨갱이들이라고 몰아갔지. 각계각층에 주사파가 침투해 있다고 선전했지. 장관에게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는 대학생들을 희대의 패륜아라고 손가락질했지. 공권력이 대학생을 때려죽일 때, 우리는 왜 밀가루조차 던지면 안 되는 것인지, 우리는 정말 알지 못했지. 그리고 거짓말처럼 세상은 조용해졌지. 신문과 방송은 소련의 붕괴를 축하하고, 빨갱이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했지.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1996년, 아마도 90년대의 진정한 마지막이라 할 만한 그 때, 우리는 연세대에 있었지. 조선일보는 한총련 출범식에 모여든 대학생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주사파 집단으로 매도했지. 일본 전공투와 비교하면서 극렬 테러집단으로 몰아갔지. 경찰은 들어오는 길, 나가는 길을 통째로 막았지. 배가 고파도 먹을 것조차 없었지. 그렇게 열흘 동안 학생들을 굶겨 힘을 빼고, 일시에 진입해 모두 잡아갔지. 몰아놓고 때려잡는 토끼몰이식 진압의 초대형 버전이 그때 만들어졌지. 10여대의 헬기를 띄워 사실상의 군사작전을 펼쳤지. 그렇게 5800명의 학생들이 일시에 끌려갔지. 우리 같은 놈들을 선배라고 믿고 따라온 1학년, 2학년 후배들이 많이 잡혀 갔지. 선배들은 분해서 울었고, 후배들은 무서워서 울었지. 다시는 데모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자아도취에 불과한 시위 따윈 아예 때려 치고, 진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만한 일을 하겠다고. 우리는 결심했지. 너는 시민운동을 택했고, 나는 언론을 택했지. 그리하여 진걸아, 너와 내가 기억하는 모든 데모는 장렬했지만 절망적인 것이었지. 우리는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고 번개처럼 달려와 시위대의 머리를 잡아채 강력한 헤드락을 걸고 니킥으로 명치를 가격하는 백골단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지. 닭장차에 갇히는 순간 시작되는 전경들의 무수한 발길질이 왜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지 잘 알지. 누구건 마음만 먹으면 빨갱이로 낙인찍어 감옥에 보내버리는 조선일보가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한지를 잘 알지. 공안정국이 일단 시작되면, 세상 모든 항의의 목소리가 통째로 사라져버린다는 것도 잘 알지. 그게 보수정치의 본질이라는 것도 너무너무 잘 알지. 1998년 초, 너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 기억을 모두 나누고 있었지. 80년 광주항쟁처럼 시대를 넘어 추앙받지 못하고, 87년 민주항쟁처럼 승리의 기억으로 뭉친 하나의 세대를 낳지도 못했던 너와 나의 그 ‘데모들’은 오직 우리끼리만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었지. - 거대한 절망. 그것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지. 아무도 우리의 비극을 모를 거라고 제 슬픔에 취해 술잔을 기울였지. 나는 말이야, 진걸아. 촛불시민들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떨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아마 잘 안될 거야.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나는 지금도 가끔 울컥해. 나이를 먹어 그런지, 예전처럼 눈물이 막 쏟아지고 그러진 않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앞이 흐려지는 일이 많아. 절망하는 게 아니고 말이야, 위로받는다는 생각, 드디어 우리의 그 불행한 ‘데모들’이 위안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야. 촛불시민들은 사제단의 미사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고 하지만, 실은 바로 그들이 우리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고 있는 것 같아. 그렇구나. 데모는 엄숙하고 장렬하여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기쁘고 발랄하고 상쾌한 어떤 것이었구나. 바로 그래서, 성취하여 얻는 바가 적어도 데모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것이었구나. 그런 ‘행복의 힘’이야말로 조선일보와 정치검찰과 백골단과 청와대를 모두 넘어서는 원천이구나. 그걸 모르고 우리는 그저 죽을 결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구나. 진정한 운동이란, 그 성취가 대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구나. 대통령이 항복할까 하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우리 같은 옛날 데모쟁이들과는 달리, 이들 촛불시민들은 오늘은 어떻게 보다 새롭고 즐거운 방법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는구나. ‘해방구’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여 권력자들을 몰아낸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리한 해방의 욕망을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바로 그 시간과 공간을 일컫는 것이구나. 뭐, 그런 상념 끝에 또 한 번 감상에 젖어 울컥하는 것이지. 시민운동가와 언론인으로서 너와 나는 이제 촛불시민들의 앞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지. 그게 우리의 몫일 테고. 그렇지만 말이야. 그런 짐을 잠시 벗어놓고, 그저 이 촛불의 물결에 지친 몸과 마음을 맡기고 그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몰라. 어쩌면 지도가 필요한 것은 촛불시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일수도 있으니.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공권력에 대한 공포, 보수언론에 대한 열등감, 정치권력에 대한 집착 따위의 ‘80년대식 트라우마’를 모두 벗어던지는 촛불의 의식화를 먼저 거쳐야 할 것 같아. 그럴려면 우리 데모 좀 더해야겠지? 무슨 해결책 따위를 성급하게 기대하기 전에 너와 나는 케케묵은 20세기의 허물부터 벗어 던져야겠어. 그러니 진걸아, 나와라. 공부 좀 하고 난 다음에 감옥에서 나와서 거리에서 만나자. 그리고 지칠 때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을 때까지, 실컷 데모하자. 저들이 말하는 질서와 평화 따위는 그런 걱정에 날밤을 새는 저들에게 줘버리고, 우리는 해방구의 질서와 평화를 단 며칠이라도 좋으니 조금 더 누려보자. 권력을 얻어 그 권력으로 인해 자유로워질 것을 기대하기 전에,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유쾌하게 만드는 진짜 데모의 기억을 만들자. 가난하고 초라한 지성과 감성을 가진 탓에 이 촛불의 물결에 조금도 보탬이 된 바 없는 듯 하여 더욱 쑥스럽고 미안한 나는 그저 그런 정도의 소박한 기대만 갖고 이 여름을 버티려 해. 그러고 나면 아마도 가을 무렵엔 조금 더 깊은 혜안이 생기지 않을까, 장담하기 힘든 그런 희망도 곁들여서 말이야. 천둥벌거숭이 같은 시민운동가 안진걸도 아마 나와 비슷할 거라고 믿어. 술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것 말곤 닮은 데라고 하나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우리 둘을 자꾸 비교하려고 하여 서로 기분이 많이 나쁜, 참여연대의 안수찬, 너 안진걸에게 한겨레의 안진걸, 나 안수찬이 보낸다. 씩씩하게 잘 지내라.
2017-07-20 | hrights | 조회: 31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광화문에 수십만 개의 촛불이 모여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던 날, 청와대 뒷산에 올라 많은 반성을 했다는 대통령은 그로부터 닷새 만에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대국민 선전포고를 했다. 도대체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가 정체성이란 것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 국어사전에서는 정체성의 뜻을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풀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변하지 않는 본질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고, 민주공화국이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주권의 운용이 국민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나라를 말한다. 6월 한 달 내내 촛불시위에 나선 국민들이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이었다. 국민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정부가 민주공화국의 정부로서 정체성을 가지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뜻을 존중하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값싸고 질 좋은 미국 쇠고기’를 홍보하면서 미국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미국 정부가 보증만 해주면 안심해도 좋다는 식으로 미국정부의 선처에 기대지 말고 한 나라의 정부답게 검역주권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를 국가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다니, 그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반성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24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그는 이날 "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 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대통령은 아마도 대한민국과 미국이 같은 나라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미국 사람처럼 미국말 하고(심지어 우리나라 역사도 영어로 배우고), 미국 사람들이 먹는 소고기 먹고(심지어 안 먹고 버리는 뼈나 내장도 아까우니 먹어주고), 미국 사람들이 원하는 일만 해 주면 진짜 미국처럼 강대국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친미 사대주의적인 태도가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반미성향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반미로 돌아서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국가정체성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수구언론들이 부시대통령의 방한이 성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민망하다 못해 얼굴이 화끈거린다. 퇴직을 앞두고 이삿짐 쌀 준비를 하는 미국 대통령을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꼴이라니.... 가르쳐주지 않아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정부의 역할은 국민들의 뜻에 따라 통치하고,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내팽개치는 일을 정부가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촛불에 놀라 미국으로 달려간 협상단이 가져온 보따리에 실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허울 좋게 내세운 민간자율합의라는 것이 사실상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전국 수만 곳의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여부를 감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의 의사와 안전은 안중에도 없이 덜커덕 퍼주기 협상을 하고 돌아와 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을 근본부터 흔들어놓은 장본인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또한 알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혼란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실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국가 정체성을 운운하며 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뜻을 저버린 권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에, 국민들은 앞으로도 촛불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광우병협상이 타결되고 촛불이 막 타오르기 시작하던 시점에 던진 질문이었다. 처음엔 질문의 의미를 파악 못해 잠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 의미가 파악된 후 난 좀 허둥거렸다. 이유는 그저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그 나이의 나로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질문을 하는 딸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 다른 하나는 현 정부 들어 소주잔 기울이며 열심히 뉴스 보며 개탄만 하고 있던 소위 운동 한답시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0교시, 야자부활, 방과 후 교실 영리단체에 허용’ 그리고 광우병 미국소의 수입에 대운하의 문제까지 조목조목 나름의 논리로 따지는 딸을 보면서 ‘컴퓨터만 한다고 타박할 일은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받았다면 너무 오버인가? 그러나 그 날 이후 딸과 정치를 주제로 대화가 통하고 관계는 더욱 살가워졌다. 나는 딸이 자랑스럽고 딸은 엄마의 일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뉴스를 함께 보며 흥분, 분노하고 5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 중에 있다. 그러던 딸이 오늘 6/10 100만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자고 했더니 안하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난 5월말 경찰의 과잉진압과정에서의 시민에 대한 폭행, 특히 여대생에 대한 군홧발 폭행을 보고나서 무서워졌단다. 시민에 대한 무차별 폭행을 보고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서 서늘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같이 참석하고 싶었지만 굳이 설득하지 않았다. “걔네들은 트라우마가 없어서 그래” “난 아직도 시위를 나가려면 무서워” 지난 6월 5일 72시간 릴레이 문화제를 앞두고 5월 31일 물대포현장에 있었던 386세대 활동가들의 말이다. 물대포를 쏘아대자 “온수! 온수!”를 외치고 경찰이 해산을 종용하자 “노래해!”, “개인기!”를 외치던 풍자와 해학이 넘치던 시위대를 묘사하면서 한 자조 섞인 말이다. 그렇다. 우리에겐 트라우마(상처)가 있다. 군부독재의 정권연장을 저지하기 위해, 거의 매일 거리로 나갔던 우리들의 시위양상은 현재와는 사뭇 달랐고, 전투경찰, 백골단, 최루탄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 열심히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 중에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폭력을 경험해야 했다. 거리에서, 닭장차 안에서 군홧발과 곤봉에 짓이겨져야 했고, 발밑에서 씩씩대며 어지러이 돌아다니거나 내 머리통을 맞출 것만 같던 최루탄은 그 당시의 ‘시위’를 두려움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런 두려움을 직면해야 하는 것은 쪽팔림, 비참한 고통이다. 촛불문화제를 통해 ‘시위’ 양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면서, 어쩌면 저들은 정말 ‘시위’에 대한 상처가 없어서 저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도 해본다. 가정폭력피해여성들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상황을 견딜 만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그 상황을 벗어날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이다. 도저히 어찌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벽, 힘에 대한 무력감이 원인이다. 그것이 폭력이 갖는 잔혹함이다. 인격의 파괴, 존엄성의 파괴... 두려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을 외면하기 위해 심리적 노예상태를 자초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 폭력이다.   지난 1일 새벽 서울 경복궁역 부근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스크럼을 짠 채 경찰 살수차(물대포)를 맞으며 버티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80년대 시위를 경험했던 우리는 인정하기 싫지만 심리적으로 ‘시위’=‘두려움과 긴장’ 이라는 도식의 노예상태는 아닌지 모르겠다. 그나마 그런 두려움을 앞두고도 또 다시 ‘시위’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가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트라우마가 없는 요즘의 참여자들이 부럽고, 여전히 두렵다는 누군가의 말에 팍!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나, 우리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슬픔이다. “상처는 절대 없어야 해, 상처는 삶에서 많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우리 아이들은 상처 없었으면 좋겠어.” 경찰의 폭력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찰청장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며 나누었던 얘기들이다. 여성으로서, 사회에 저항하는 세력으로서, 우리는 개인적, 공적 상처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상처를 극복할 힘이-유머든, 해학이든, 내공이든-부족하고 방법을 몰랐던-가르쳐주지도, 있지도 않았던-우리들은 상처를 보지 않기 위해 도피를 택한 경험들이 있고, 그 도피는 또 다른 상처로 우리 안에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난 40여년은 그 상처를 직면하고 치료하기 위한 몸부림의 과정이었고, 그러한 과정을 ‘부당한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라는 말로 포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체육관을 다니며 ‘때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나름 상처에 저항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시대적으로 상처를 많이 만들어내는 상황에 던져져 봤던 우리는 그래서 내 딸들만큼은 상처가 없는 청정지대에서 자라길 바란다. 그러나 경찰 군홧발에 짓밟힌 여대생과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본 많은 아이들은 간접적으로 폭력을 경험하고 상처를 내면화 했을 수 있다. 딸아이의 참석거부이유가 바로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폭력으로 인한 상처는 여성이나 아이만이 아니라 남성, 어른, 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양천구의 한 전투경찰은 선배들의 구타와 성추행으로 괴로워하다 자해까지 시도했었다. 자신을 해치면서 까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추행부분은 발뺌을 하는 경찰은 또 한 번 그 경찰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군홧발로 여대생을 폭력 한 것에 대해 경찰은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과의 대상은 당사자 여대생이 아닌 여대생이 다니는 대학의 총장이었다. 이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대체 왜 사과를 했을까? 국내 유수의 대학 총장을 구슬리면 여론이 잠잠해질 것이라 기대했었나보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힘과 권력에 아첨하는 경찰의 실체가 여지없이 드러나 절망스럽다. 그걸 또 무슨 자랑이라고 팝업까지 걸어 놨다. 감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직접 폭력을 당한 시민들, 그 장면을 통해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꼈을 더 많은 국민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고 상처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한 경찰은 가해자로서의 상처를 안고 살아갈, 혹은 지속적 가해자가 될 상황에 놓여있다. 이들도 피해자다. 공권력의 행위(정치적 행위)가 개인적 삶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런 경우 행위의 책임자는 마땅한 책임을 져야하고, 행위의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사퇴하고, 경찰 내부 폭력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조치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에 의한 폭력근절 시스템과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민주적으로 각성된 개인들의 집단적 행위가 필요하다. 개개인의 주권으로부터 국가의 권력이 구성됨을 명확히 알려주는 것과 더불어, 국가 권력의 역할은 개인의 주권을 보호해야함을 알려 주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촛불문화제는 시작일 뿐이다. 그동안 법/제도 등 민주주의를 담을 그릇을 만들기 위한 싸움을 해왔다면, 지금은 민주주의의 내용을 만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말 한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안전할 권리, 상처 없이 행복할 권리를 생활 속에 실현하는 것, 그것을 위해 국가가 노력하는 것이 정치임을 촛불문화제를 통해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5년... 기대된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이 때 국외에 계신 건 축복입니다” 이른바 우상숭배죄로 대학에서 재임용을 거부당한 이후 음으로 양으로 내게 도움을 주셨던 한 신부님께서 동경에 있는 내게 메일을 보내며 하신 말씀이었다. 대선과 총선 과정을 겪으며 허탈하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는데, 그걸 안 봐도 되니 복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황당한 뉴스거리가 쏟아져 나오던 대선과 총선 당시, 나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공부도 놀기도 강의도 하면서 재임용 탈락 파문으로 소진된 기운을 좀 보충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에 별 관심 없는 일본이라는 곳에 있다 보니,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하는 소식 외에는, 한국의 요동치는 듯 한 정국이 그다지 입체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모르지 않았고 상상도 되었지만, 체감의 정도는 달랐다. 확실히 새로운 시대 그러다가, 학교에서 교육부를 피고로 제기한 항소심 참석차 금년 3월경부터는 한 달에 한 번 가량 한국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 참에 가족과 동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5월 이후 이른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결정을 거부하는 새로운 차원의 시위 문화였다. 일본에만 있었다면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묘미가 느껴졌다. 축제 같은 시위, 중구난방 속의 일사불란, 기성 언론보다 빠른 개인 언론, 모두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모습들이었다. 죄들 ‘조중동’만 보는 줄 알았는데 ‘조중동’을 거부하는 목소리까지 포함하여, 내게 메일을 주신 신부님의 허탈감이 상쇄되고도 남을 신기한 모습들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우뇌적인 한국 80년대 광주항쟁이나 6월 항쟁은 물론, 2002년 월드컵 응원 열기, 2004년 대통령 탄핵과 그 역풍의 에너지가 신선하고 가상하더니, 2007년에는 그 열기가 단번에 쇠귀에 경 읽기처럼 반대로 회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더니 2008년에는 순식간에 새 대통령 지지율을 20%대로 끌어내리는 그 변화무쌍한 기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21세기 한국이 확실히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국인은 감성이 넘치는 ‘우뇌적’ 기질이 다분하다는 것도 다시 확인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저 뻗치는 에너지를 일본인에게 소개해주고도 싶었다. 그러면서 정말 궁금했던 것은 이 역동적인 에너지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심심한 천국과 즐거운 지옥 5월말 재판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이번에도 허무하게 변론을 끝내고 다시 동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 공항은 비를 뿌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이륙하자마자 비행기는 구름 위로 솟아올랐고, 끝없는 구름바다의 세계가 펼쳐졌다. 지상의 짓궂은 날씨와는 영 딴판이었다. ‘따뜻한 눈’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겠거니 싶었다. 폭 안기면 그대로 안아줄 것 같았고, 덤벙덤벙 뛰면 순식간에 이리 저리 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치 천국 같은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은 구름 위 고요함이 아니라, 저 구름 아래 혼돈 속에 있었다. 가끔씩 이상 기류를 만나 허공에서 흔들리는 기내가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는 순간 하늘에서 펼쳐졌던 천국에 대한 상상은 멈췄다. 현실은 흔들리는 비행기였고, 변화무상한 저 구름 아래 세계였다. 역시 내가 두 발 디디고 서야 할 곳은 상상 속의 ‘심심한 천국’이 아니라, 지상의 ‘즐거운 지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기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은 몰라도 방향 하나는 분명했다. 그저 내가 아는 것 하나, 어떻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할 텐데 하는 것뿐... 이삼십년 가량 종교 공부를 해오면서 확신하게 된 것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문제였다. 다양한 종교, 무수한 교리들이 있지만, 결국은 ‘생명’이라는 한 마디로 수렴된다는 것이었다. 종교는 생명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이지, 교리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자적 교리를 지켰느냐 어겼느냐가 아니라, 생명을 살렸느냐 죽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구름 위로 솟아올랐고, 끝없는 구름바다의 세계가 펼쳐졌다. 지상의 짓궂은 날씨와는 영 딴판이었다. ‘따뜻한 눈’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겠거니 싶었다. 사진 출처 - 필자 종교와 권력과 욕망 그런데 이상하게 종교들이 넘쳐나는데 죽임도 넘쳐난다. 종교의 이름으로 편 가르고 죽이기 일쑤이다. 구원의 교리를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상하게 비구원적 현실은 줄지 않는다. 왜일까. 그 많은 교리라는 것이 실상은 권력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생명 자체가 다급하고 중요한 곳에 새삼 교리는 필요치 않다. 생명을 직접 살리고 살기 보다는, 그저 저 멀리의 대상처럼 간주하는 힘과 여유 있는 곳에서, 교리는 만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교리의 특성은 그 내용보다, 그 교리를 낳은 곳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교리를 지킨다는 것은 교리를 산출한 힘에 동의하거나 종속되는 것일 때가 많다. 여기서는 교리의 근본정신은 사라지고, 교리를 지탱하는 권력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하는 공간성이 부각된다. 권력 밖에 있는 자는 진리 밖에 있는 자로, 비생명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종교의 이름으로, 교리의 이름으로 억압과 죽임을 당연시하는 풍조도 생겨나는 것이다. 죽임과 억압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무한히 소유하고 싶은 욕망, 무한히 확장하고 싶은 욕망, 그것도 가능하다면 나만... 그것이 교리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다. 분명 교리는 포장이다. 그런데 그렇게 포장되고 나면 내용을 잊어버린다. 포장은 내용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내용과 동일시된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이 생명의 존재 방식은 사랑의 원리에 따른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결국 네 것을 나누어 생명을 살리라는 요구인 것이다. 그런데 흔히들 포장된 교리 자체에 안주하며, 제 소유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둔갑시킨다. 교리와 소유가, 욕망과 종교가 혼동되거나 동일시된다. 재물이 종교로 둔갑한다. 사실 인간은 그 둔갑의 과정을 안다. 알면서도 스스로 속는 것이다. 그래야 속 깊은 자신의 욕망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욕망을 타고 적어도 겉으로는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속으로는 알면서도 이른바 ‘뉴타운’으로 속이고 알면서도 ‘뉴타운’에 속는다. 차라리 몰랐다면 깨우치기라도 하겠건만, 알면서도 스스로 속는 실상은 더 고치기 힘든 중병이다. 한국인의 넘치는 우뇌적인 에너지는 과연 알면서도 스스로 속아오고 속여오던 그동안의 실상을 폭로하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내가 정치를 한다면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나는 때로 정치가 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가령 내가 책임 있는 정치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은 지금보다 가난해 질 것이 뻔 하기 때문이다. 가난이 저주라고 배워온 그간의 자기 최면적 둔갑술로 인해 가장 나는 반종교적이고 가장 무능한 정치가로 낙인찍혀 탄핵될 것이다. 아니 애당초 정치의 현장으로 들어설 기회조차 누려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지난 이삼십년간 공부한 바에 따르면, 나는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정치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것이 종교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브’한 헛된 공상이겠지만, 그런데도 인류의 종교적 천재들은 한결같이 그 헛된 공상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인 것도 분명하다. 한 때 그런 마음으로 목사가 되었다 보니,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나는 마치 습관처럼 여전히 그런 꿈을 꾼다. 한 낮 꿈으로 끝날 공산이 확실할 터인데도... 그래도 그런 꿈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다면, 설령 지금보다 가난해지더라도 그런데서 행복을 찾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정치’하고 싶은 생각은 여전하다. 그저 공상이지만, 아마도 예수가 정치를 했다 해도, 그런 공상적인 정치를 했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즐거운 지옥의 미래는 그런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장로가 현직 대통령이다. 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그 때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함께 가고 더디 가는 정책을 펼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예수를 따르는 교회가 그렇게 많아도, 그 교회에서 더디 가는 정치를 원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대부분 그 반대였다. 아, 이 모순을 어찌 할 것인가. 전 세계가 그리 가려고 애쓰는 마당에 어찌 어느 특정인 탓만을 할 수 있겠는가만, 그래도 늘 아쉽다. 포장과 내용을 혼동하지 말고, 생명이라는 내용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은 늘 가슴 한 켠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도 정치하겠다고 나설 필요가 없어진 시대가 ‘하느님 나라’일 테니, 그 때까지 이 ‘모순’은 지속될 것이다. 그런 때가 올 거라는 기대도 사실 별로 없다. 그래도 그 모순이 없는 시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나의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차라리 반예수주의 선언이나 하고 정치를 하면 모를까, 예수를 믿는다면서 예수를 이용하며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종교, 그런 정치는 싫다. 교리를 지킨다며 사람을 죽이는 종교는 싫다. 빨리 간다며 여러 사람 버리고 가는 그런 정치는 싫다. 이 땅의 무수한 교회들, 장로 대통령, 차라리, 정말 차라리 창(모)과 방패(순) 가운데 하나는 포기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선택의 기로 앞에 있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니, 제 숙제도 못하면서 어찌 남에게까지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그런 상상까지 못할 이유도 또 뭐 있겠는가. 구름 위를 날면서 구름 아래 펼쳐지고 있는 즐거운 지옥의 미래를 꿈꾸며, 내 앞 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1차 중동전쟁 60주년 기념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1948년 5월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종결과 동시에 발발한 1차 중동 전쟁은 아랍 국가들이 공모하여 이스라엘 국가(팔레스타인 땅의 56.47%)를 파별시키기 위해서 벌인 사건이 아니었다. 아랍 국가들은 처음부터 그럴 의사가 없었고, 그럴만한 군사력도 없었다. 이 전쟁은 ‘1947년 11월 유엔 분할안이 아랍 영역(팔레스타인 땅의 42.88%)으로 명시한 땅을 어느 국가가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1948년 영국의 위임통치 종결과 동시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발발한 전쟁은 ‘수적으로 압도적이며 통합된 아랍 군대가 모든 유대인들을 지중해 속으로 처넣으려한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전쟁에 대한 ‘다윗과 골리앗’ 버전인, ‘통합된 아랍의 전쟁위협’이라는 선전은 위대한 이스라엘, 유대 민족 국가 창설 신화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이 신화는 이스라엘인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면서, 이웃 아랍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화는 근거가 전혀 없으며, 놀랄만한 것도 없다. 이스라엘은 단독으로 이 전쟁을 치룬 것이 아니었으며, 국제 사회로부터 막대한 외교적, 물질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분열되어 있었고, 매우 허약한 상태였다. 영국 위임 통치 시절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은 오직 팔레스타인 게릴라들 뿐이었다. 영국 위임 통치 당국은 전략적으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무력화시킨 반면, 시오니스트 게릴라 조직들에게는 잘 무장하고 훈련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시오니스트들은 대부분 제 2차 세계 대전 중 영국군 소속으로 전투 경험을 획득하였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위임 통치가 종결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자는 영국으로부터 미국으로 대체되었다. 미국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 선포 즉시 이를 승인하였다. 이후 오늘날까지 미국은 이스라엘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민족회의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정부를 구성하였고, 1948년 10월 1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물론이고 트랜스 요르단과 이라크 정부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승인을 거부하였다. 그러므로 아랍 군대들이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위하여, 이스라엘로부터 팔레스타인 땅을 방어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작전을 수행했다는 신화는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아랍 국가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도와야한다는 아랍 대중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조차 않았다. 1948년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이 철수할 즈음에 유엔 결의가 아랍 영역으로 명시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자국의 국경들을 확장하려고 시도하였다. 유대 국가에 대항하는 아랍 통합이라는 허구적인 선전은 이스라엘에게 ‘아랍의 적들에게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실체를 강화’시켜야한다는 명분만을 제공해왔을 뿐이었다. 당시 영국의 위임 통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위협할만한 토착 팔레스타인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과 시오니스트들이 이미 이러한 토착 팔레스타인 세력들 대부분을 살해하거나 추방하였기 때문이었다. 1948년 전쟁 초기에 이스라엘 군대는 지중해를 통해서 보급품과 장비들을 받아들였으며, 약 2만 7천 명으로 구성되었고, 잘 정비된 조직 체계, 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여 잘 훈련된 병사들과 막대한 재정적 원조와 정교한 군사 전략을 갖추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정착촌 예비군 약 9만 명도 보유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나크바'(대재앙의 날)를 맞아 주민들이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형 깃발을 함께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반면 1948년 전쟁에 참가한 아랍 연합(이집트, 트랜스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군대 대부분은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고, 적당한 무기도 없었으며, 주로 지역 치안을 담당했던 경찰들로 구성되었다. 아랍 연합 군대 중 어느 정도 잘 훈련되고 적당한 무기가 있는 군대는 영국군이 훈련시킨 트랜스 요르단 군대뿐이었다. 전쟁 초기에 배치된 약 2만 3백 명의 아랍 연합 군대 중 트랜스 요르단 군대는 4천 5백 명 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트랜스 요르단군 사령관은 영국인 존 글럽(John Glubb)이었다. 영국이 1921년에 6개월 동안 매달 5천 파운드의 보조금을 압둘라 아미르에게 지급함으로써, 압둘라 아미르는 1921년에 트랜스 요르단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1921년부터 1956년까지 요르단군 사령관은 영국인들(F.G Peak와 John Glubb)이 담당하였다. 당시 이 영국인 군사령관들이 요르단 정치에서 막강한 결정권을 휘둘렀다. 트랜스 요르단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의 전투는 유엔 분할안이 아랍 국가 영역으로 명시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스라엘이 공격하면서 발발하였다. 이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은 영토를 유엔 분할안이 아랍 영역으로 명시한 지역으로 깊숙이 확장하여 팔레스타인 전 영토의 78%를 차지하였고, 나머지 22% 중 트랜스 요르단이 서안(West Bank)을, 이집트가 가자(Gaza)를 차지하였다. 결국 이 전쟁은 아랍 연합 국가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파괴시키려했던 사건이 아니었고, 1947년 유엔이 아랍 국가 영역으로 명시한 지역을 서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아랍 각 국가들이 벌인 전쟁이었다. 트랜스 요르단이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 국가를 파별시키려고 했다는 신화는 허구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6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광우병 쇠고기 촛불모임이 전국을 달구는 요즘, 이명박 정부는 이에 맞서 예의 그 ‘골라내기’ 전법을 시도하고 있다. 전주의 한 고등학교 학생을 수업 중에 끌고 가 배후가 누군지 추궁하였다고 한다. 경찰은 집회 주동자를 ‘골라 내’ 엄단하겠다고 연일 으름장이다. 서울시는 궁색하게도 ‘변상금’ 논리로 연일 이어지는 촛불시위의 오점을 어떻게든 ‘골라내려’고 했다. 그러더니, 광우병 쇠고기 협상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서 온 언론도 ‘골라내려’ 하고 있다. 모 방송사의 광우병 쇠고기 프로그램이 청와대의 외압으로 애초 계획된 날짜에 방영이 이뤄지지 못했고, 급기야 지난 16일 정부의 이른바 ‘홍보대책회의’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경향신문 같은 언론에 광고를 줄 필요가 있냐”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속한 단체에서는 평화를 주제로 한 아이들의 책을 모아놓고, 지역 곳곳을 돌며 전시하는 일을 하는 데, 이를 위해 한 100권 정도의 어린이 ‘평화책’이 평소 사무실에 진열돼 있다. 그 중 ‘노란별’이란 책이 있다. 동화 ‘노란 별’은 덴마크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어느 덴마크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펜하겐이 나치에 의해 점령된 후 왕궁에 걸린 나치의 깃발을 내리게 했는가 하면, 그는 평소에도 호위병 하나 없이 코펜하겐의 거리를 둘러볼 정도로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이 컸다. 1941년, 당시 나치는 유태인을 구분하기 위해 유태인들로 하여금 ‘다윗의 별’이라 불리는 노란별을 가슴에 달고 다니도록 했다. 유태인들을 ‘골라 내’ 관리하기 위한 선별과 배제의 조치였다. 유태인임에도 노란별을 달지 않으면 그 즉시 총살형에 처해졌다. 유태인들에게 노란별을 달도록 한 나치의 조치가 내려지자 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군대를 일으켜 맞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고,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홀로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섰다. 그의 가슴에는 노란별이 달려 있었고, 곧이어 덴마크인 모두의 가슴에 노란별이 달리게 된 것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얼마 전부터,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과천시의 주택가 곳곳에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연일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나선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이 작은 실천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정부는 이마저도 불법 논리로 단속을 시도하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작은 실천조차 ‘골라내야 할’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실천은 지금 전국으로 번질 조짐이다. 가히 ‘노란별 현상’이라 할만하다. ‘미친 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골라내려’는 정부의 선별과 배제의 논리에 맞서 국민들 스스로가 가슴에 노란별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온갖 불법논리, 선동, 사주 따위의 논리를 동원하며 ‘골라내고’ 노란별을 붙이려 할 것이지만, 이제 이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이미 강물처럼 형성된 민의를 거스른다는 것은 스스로 화를 더욱 키우는 꼴이 될 테니. 차라리 광우병 쇠고기 반대에 대한 단속과 검열과 추궁을 멈추고 과연 누가 반대자인지 숙고해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지혜로운 처신이 아닌가 싶다. 나치 치하에서 덴마크 왕은 스스로 먼저 가슴에 노란별을 다는 것으로써, 온 백성의 마음을 모으고 위기를 극복해냈다. 나치 독일군은 당시 어떤 저항도 없이 코펜하겐에 무혈입성 하여 덴마크를 장악했다. 미국의 광우병 쇠고기도 사실상의 무혈입성을 얻어냈다. 독일군의 코펜하겐 무혈입성은 덴마크 왕이 전쟁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고, 미국 광우병 쇠고기 무혈입성 선언은 왕(대통령)이 ‘굴복’한 결과이다. 덴마크 왕이 무력으로 저항하고자 했다면 덴마크의 많은 백성들이 죽었을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는 무혈입성 선언을 얻었지만, ‘조용한 저항’에 직면했다. 덴마크 왕이 보여줬던 지혜의 처신을 한국에서는 백성들이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도시의 광장에서 밤마다 저항과 축제의 촛불이 밝혀지고, 집집마다 현수막이 걸리는 ‘노란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에 대한 태도도 10년 전, 아니 20년 전의 그것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국민들의 노란별 현상이 덴마크 왕과 같은 누군가의 선동이나 사주에 의한 것으로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검열과 단속, 억압으로 민의의 강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치치하의 덴마크에서 독일군들은 유태인들을 ‘골라내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궁여지책 끝에 그들은 덴마크 국왕을 협박하면 국민들의 행동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왕궁으로 국왕을 찾아갔다. 독일군 장교가 “독일군이 두렵지 않소? 당장 노란별을 떼시오!” 국왕인 크리스티안 10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덴마크에서 최초의 유태인이요” ‘섬김의 국정’을 펴겠다던 이명박 정권은 너무 일찍이 그 섬김의 대상이 국민이 아님을 드러내고 말았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