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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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 카타르를 넘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 강화 홍미정/ 단국대 GCC 국가연구소 연구교수 ○ 동력을 상실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2013년 7월 3일 이집트 대통령 무르시의 축출로, 카타르와 지역 패권 경쟁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잠정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사태가 격화되기 직전인 6월 25일에,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권력 장악을 적극 지원했던 61세로 비교적 젊고 건강한 카타르 왕 하마드(재위:1995년 6월 27일~2013년 6월 25일)가 아들 타밈에게 권력을 이양하였다. 이 사건은 최근 카타르에 힘을 실어주었던 미국의 중동정책이 약간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타르는 2011년 이집트 민주화시위 과정에서 미디어(알 자지라)와 자금을 동원하여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으며,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슬림형제단을 활용했다. 게다가 카타르는 무르시 통치기간 동안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에게 70억 달러를 지원했다. 따라서 무르시 축출에 앞선 카타르의 권력 이양은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동력상실로 연결되었다. 앞으로 카타르는 더 이상 사우디아라비아의 심기를 거스르며, 무슬림형제단을 적극 지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은 자국 내 정부 반대파인 무슬림형제단의 정치개혁 요구를 경계하면서, 때로는 이들을 체포하는 등 탄압해왔다. 7월 4일 아들리 만수르가 이집트 임시 대통령으로 선서를 한 직후, 외국 지도자로서는 가장 먼저 사우디 압둘라 왕이 축하 전화를 걸었다. 7월 5일 이집트 군 최고 사령관이며 국방 장관인 압둘 파타 알 시시는 사우디 왕 압둘라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칼리파에게 전화를 걸어 이집트의 최근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는 한 때,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이집트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사우디 군부와 정계 지도자들과 친분이 있었던 인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무르시 축출에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과도정부가 지난 16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했다. 사진은 이날 수도 카이로의 대통령궁에서 아들리 만수르(앞줄 가운데) 임시 대통령 주재로 하젬 엘베블라위 총리를 비롯한 35명의 각료들이 취임 선서식을 갖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가 이집트에 120억 달러 지원 현재 이집트는 2014년 6월까지 빚과 54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해결하기 위하여 약 195억 달러를 필요로 한다고 알려졌다. 7월 9일 사우디는 이집트 과도정부에게 50억 달러의 원조를 승인하였다. 이것은 중앙은행 예치금으로 20억 달러, 에너지 품목으로 20억 달러, 10억 달러의 현금 지원을 포함한다고 사우디 재정부 장관이 밝혔다.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는 이집트에 30억 달러를 원조하기로 결정하였다. 10억 달러는 보조금이며, 20억 달러는 차관으로 중앙은행에 예치될 것이다. 7월 10일, 쿠웨이트는 40억 달러를 원조하기로 약속하였다. 이것은 중앙은행 예치금 20억 달러, 보조금 10억 달러, 오일 제품 10억 달러로 구성된다. ○ 미국 F-16 전투기를 이집트 군부에 8월 중 제공 2013년 7월 10일 미국방부관리들이 이집트와 이미 약속한 F-16 전투기 4대를 예정대로 수 주 내에 이집트에 인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무르시를 축출한 이집트 군부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미국의 지지를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현재까지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한 사건을 쿠데타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쿠데타로 규정할 경우, 미국의 쿠데타세력지원 금지법에 따라,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 이후 계속 돼온 이집트-미국 군사 협력관계와 이집트에 대한 미국원조는 전면 또는 일부 중단된다. 미국 의회는 오바마 행정부가 제출한 2014년 이집트 지원예산안 15억 5천만 달러를 7월 25일 경에 심의할 것이다. 이것은 13억 달러의 군사 원조 및 2억 5천만 달러의 경제 원조를 포함한다. ○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적인 군사 동맹 사우디는 미국의 최대 무기 판매 시장이다. 2011년 사우디는 337억 달러 무기 수입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1위의 무기 수입국이 되었으며, 이중 미국과 334억 달러(99%) 수입계약을 체결하였다. 같은 해 미국의 전 세계 대상 무기판매 협정체결 총액은 663억 달러이며, 이는 전 세계 무기거래 협정총액의 77.7%를 차지했다. 2013년 3월,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 제임스 스미스는 “1933년 외교 관계 수립이후, 80년 동안 미국과 사우디는 상호존중과 이해관계에 토대를 둔 강력한 동반자 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내놓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발언들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1943년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사우디 방어는 미국 방어에 필수불가결(vital)하다.”고 선언하였다. 당시 미국은 이탈리아의 공격으로부터 사우디 석유시설과 하지 순례객들을 보호하였다. 1990년 8월, 걸프전을 수행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사우디의 방어는 미국에게 필수불가결(vital)한 이익”이라고 밝히면서, 이라크의 공격으로부터 쿠웨이트와 사우디를 보호하기 위해서 미군을 파견하였다. 2010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은 “1945년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사우디 왕국 창건자인 압둘 아지즈 이븐사우드 사이에 있었던 65년 전 역사적 회동 이후, 미국과 사우디 사이에는 강력하고, 전략적인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고 밝혔다. 미국-사우디의 역사적으로 견고한 군사 동맹관계를 통해 볼 때, 앞으로도 사우디 정책은 이집트 정치와 중동 지역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며, 카타르는 소극적으로 사우디 정책에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33 | 추천: 0
이광조/ CBS PD 정말 뭐가 있는 줄 알았다. 대선도 끝난 마당에 정말 뭔가가 있지 않다면 새누리당 의원들이 저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 포기발언’을 했다는데, 정상회담 대화록만 보면 국민들도 다 알게 될 거라는데. 정말 뭔가가 있지 않다면, 허풍이라면, 새누리당 안에서 누군가는 이런 무모한 주장을 뜯어말리지 않았을까. 여기에 국정원장까지 나서서 국익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걸고 회의록을 공개하기로 결단했다고 하니, 최소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실언이라도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정파를 초월해 국익을 지켜야할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현행법까지 어기고 내린 결단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이 모든 예상은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공개되는 순간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호탕한 성격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종종 논란이 되기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실언이라고 할 만한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13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레드컴플렉스? 약하다.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선거에 이기려고 북에다 휴전선에서 총 좀 쏴달라고 부탁했던 정당의 후예들 아닌가. 북을 두려워하고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나. 그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고 단절했다는 흔적이 없다. 하도 답답해서 구글에서 ‘의처증’이라는 단어를 넣고 검색을 해봤다. 내 좁은 식견으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일종의 병리현상으로밖에 설명이 안 되어서다. 위키피디아에는 의처증 또는 의부증에 대해 이런 설명이 나와 있다. “부정망상(不貞妄想, delusion of infidelity) 또는 오셀로 증후군(Othello syndrome). 상대방의 정조를 의심하는 망상성 장애의 하나. 명확한 증거와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믿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환자 본인이 배우자의 부정적인 행동에 대한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망상에 따른 행동이상을 동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을 ‘부정망상’에 비유하는 건 비약인가? 비약이 맞을 거다. 정당과 정부기관의 행위를 개인의 병리현상에 비유하는 게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답답해서 찾아본 부정망상에 관한 얘기를 굳이 옮기는 건 반성해볼 대목이 있을 것 같아서다. ‘부정적인 행동에 대한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망상에 따른 행동이상을 동반한다.’ 그래, 어쩌면 이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또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 또는 남북한의 대결보다는 대화와 협력, 화해와 평화를 앞세우는 사람들을 믿고 싶지 않고 그들의 부정적인 행동(그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종북’)에 대한 증거를 찾고 싶은 게 아닐까. 지난 24일 오후 국정원이 국회에서 여야 정보위원들에게 지난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문서로 배포했다. 사진은 회의록 발췌문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한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국정원의 회의록 발췌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듯이 자의적인 편집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상전 모시듯 하며 저자세를 취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 그리고 NLL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서해평화협력지대를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을 ‘NLL 포기’로 규정하는 것. 전자의 경우 이른바 ‘악마의 편집’ 논란이 제기될 만큼 왜곡이 심한 걸로 드러났다. 대화에서 나타나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 그리고 표현의 문제와 관련해서 본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을 나무라기는 더 어렵다.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그의 참모들이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가정해보라.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김일성 주석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경청해보니 내용 하나 하나가 내 생각과 거의 동일합니다. 김 주석께서는 공개적으로 말씀이 계셨지만 40년 전에는 민족해방 투쟁으로, 그리고 평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애써 오신 충정이 넘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남북한 최고책임자들의 회담이 이와 같은 분위기라고 할 것 같으면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는 것도 나의 의견입니다." - 전두환 대통령 “김일성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종전의 인식과는 달리, 현실감이 있고 통찰력을 갖춘 것은 물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아첨꾼들의 약점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과 정책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군사적 갈등을 대화와 협력을 통해 풀려고 하는 노력에 대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면 남북대화니 평화통일이니 하는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차라리 ‘주석궁에 탱크 몰고 들어가는 게 통일’이라고 주장하는 게 정직한 자세가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의 DMZ평화공원 구상이 DMZ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듯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이 NLL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북한이 DMZ평화공원 구상을 찬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종북’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90년대 중반 방송사에 입사해 저녁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의 일이다. 남북관계를 다루는 인터뷰에서 ‘주석’이니 ‘국방위원장’ 같은 공식 직함만 나와도 항의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그나마 직함만이 문제가 된 경우는 좀 나았다. 존댓말이 입에 벤 출연자가 나와 ‘김일성 주석’ 뒤에 ‘께서’라는 조사를 붙이기라도 하면 난리가 났다. 왜 그런 빨갱이를 출연시키냐, 너네도 빨갱이 아니냐. 이런 유치한 시절은 지나간 줄 알았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525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활동가들 중에는 자신의 지식이나 상식만이 진리라는 아집에 휩싸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과거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꿈꿨던 일부 지식인들은 여전히 ‘모 아니면 도’ 식의 논리에 젖어 있기도 하다. 몇 가지 원칙만을 가지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그 원칙이 적용가능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그 수에 비해 목소리가 크다. 그런데 이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서 그와 대비되는 주장이나 이론에 대해 본질까지 왜곡할 만큼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공격하는 나쁜 관행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러한 날카로운 공격의 대상은 같은 진영 내부를 향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그 어떤 진실도 거부한 채, 여전히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꿈꾸는 이들과는 스스로 다르다고 강변하면서도, 이들은 논쟁 과정에서 밀리거나 우위를 점하고 싶을 때에는 돌연 100년도 더 된 원론적이거나 추상적인 원칙들을 들이대며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곤 한다. 전후 아주 잠시 동안, 그것도 서구 일부 국가들에서만 예외적으로 케인즈 주의적 정책을 통해 시장의 폭력을 다소 조절했을 뿐, 사회주의 실험을 예외로 하면, 봉건 시대 이후 대부분의 시기, 대부분의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였고 현재도 그러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라는 것도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그 틀 속에서의 일반적인 현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념적인 진보 지식인들은 아무 때나 너무 쉽게 상대에게 ‘신자유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우곤 한다. 바로 얼마 전에도 국내 자본과 해외 자본의 과도한 관념적 대립 구도를 만들어 국내 자본에 더 많은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을 ‘신자유주의자’로 몰아 부치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표면 뒤에서 작동하는 실제 ‘정치’에 대한 무지는 정당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관료 권력이나 사회기득권 세력에 대한 무지로 이어지면서, 왕조 시대도 아닌데 명색이 사회과학자라는 이들이 국가수반이라는 일 개인을 중심으로 한 지지와 비난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를 경우, 결국 그 어느 누구도 신자유주의로의 투항과 배신이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관념적인 지식인들은 서구 사회에서 발달하고 서구 사회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론에 대한 과도한 몰두로 인해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중심부 지역들의 특수한 역사와 구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무지하다. 따라서 비중심부 지역에서의 식민지 시대 ‘민족’과 ‘민족주의’가 갖는 특수성, 그리고 탈식민지 시대 이들 지역의 ‘자유주의’ 세력의 특수성과 같은 사안들에 대해서 너무나 둔감하다. 역사적 맥락 없는 관념, 정치를 도외시한 채 서구 중심적, 원론적 관념에 휩싸인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뉴 라이트 학자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자료가 있다고 한 말 자체가 뭐가 문제냐’고 하거나, ‘김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면 뭐냐’며 마치 자신이 퇴행적인 민족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종의 정통 좌파 지식인인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독도는 한국 땅도 일본 땅도 아닌 갈매기의 땅’, ‘고구려는 중국 역사도 한국 역사도 아니’라는 말도 텍스트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컨텍스트 없는 단순한 말의 나열은 지식인들만의 관념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비판을 받으면 그들은 언제나 ‘그럼 민족주의에는 민족주의로 맞서는 게 맞다는 것인가’하는 전형적인 ‘모 아니면 도’ 식의 주장을 되풀이한다. 현재 역사 논쟁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역사를 왜곡하는 수구보수 세력과 맞서기에 앞서 이러한 폐습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가령, 뉴 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논리에 반대하는 진영에는 소위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학자들이 주요 세력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두고 좌/우 구분 없이 민족주의로 규정하는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소위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수탈론’마저도 단순화시켜 비판한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근대화의 맹아가 있었음에도 조선이 독자적으로 근대화 혹은 자본주의화를 이룩하지 못 했다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을 두고 이들이 ‘근대화 혹은 자본주의화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식의 심각한 왜곡이나 폄하도 쉽지 않게 발견된다. 그러나 우파 민족주의 학자가 아니라면, 그 어떤 이도 일본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근대화나 자본주의화가 가능했다고 해서 그것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그 과정이 아무리 끔찍하고 야만적이며 폭력적이었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런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극소수의 서구 중심부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민지적 착취와 억압, 수탈을 수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후대 인간들의 관념과는 상관없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 이후의 이상사회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해도 명백한 역사적 진보였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근대화 과정의 고통이 배가된 것을 지적하는 것을 두고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퇴행보다도 더 퇴행적인 관념일 뿐이다. 형식적으로는 독립한 상태였으나 사실상 미국 등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던 중남미 국가들까지 포함한다면 태국 등 극소수 국가들을 제외한 사실상 거의 전 세계 국가들이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근대화(혹은 자본주의화)를 겪었다. 따라서 인류 역사에서 근대화란 제국주의 치하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극소수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세계 역사에서의 근대화 과정은 그리 다양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얼마나 그 이후의 사회경제적 구조의 발전에 영향을 줄 만큼 수탈 구조가 있었는가의 문제가 존재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은 분명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지 그 이후의 독자적(?) 근대화나 산업화는 좋았다고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상과 세력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이며, 시장의 폭력에 대한 통제와 조절을 옹호한다. 그러나 필자는 몰역사적이며 비과학적인 자세로 비중심부에서의 민족주의 혹은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또한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시장을 완전히 철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너무나 쉽게 신자유주의로의 경도나 배신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과학적인 자세가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의 반동과 퇴행은 종종 진보 진영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0
박현도/ 종교학자 어느 날 밤, 우마르는 거리를 걷다가 어느 집에서 남녀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담벼락으로 다가갔고, 이내 한 쌍의 남녀가 술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을 보더니 “알라의 적들이여! 너희들은 알라께서 너희들의 죄를 감춰주시리라 믿느냐!”라고 소리쳤다. 이에 여자와 함께 있던 남자는 “우리 믿는 자들의 지도자여, 우리가 한 가지 실수를 했다면, 당신은 세 가지나 했소이다. 알라께서는 다른 사람을 염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당신은 염탐했소. 알라께서는 문으로 드나들라고 하셨는데, 당신은 담벽으로 넘어왔소. 그리고 알라께서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살람(평화)’이라 말하며 인사하라고 하셨는데, 당신은 이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알라의 적들이여!’라고 했소이다.” (이븐 아빌 하디드의 샤흐르 나흐즈 알-발라가에서) 우마르는 이슬람 역사상 2번째 지도자다. 632년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뒤 더 이상 예언자는 나오지 않지만, 누군가는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기에 무슬림들은 아랍어로 예언자의 대리자라는 뜻을 지닌 칼리파(영어로는 칼리프)를 뽑았는데, 우마르는 2대 칼리파였다. 첫번째 칼리파 아부 바크르 (재위 632-634년)를 이어 634년부터 644년까지 10년간 무슬림 공동체를 이끈 그는 괄괄한 성격의 사내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거리를 걷다 남녀의 소리를 들었으니 가만 두고 넘어갈 리 만무! 그래서 슬금슬금 소리가 나는 집 담을 넘어 보니, 아뿔싸, 한 쌍의 남녀가, 그것도 이슬람교에서 금하는 술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짜고짜 거친 성격 그대로 “알라의 적들이여!”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글에서 두 남녀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부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마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집안에 들어 온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서 인사도 없이 무작정 저주의 말을 뿜어대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이슬람에서 금하는 술을 앞에 두고 있었다한들, 이 어찌 무례한 일을 거침없이 하는 것일까? 앞 뒤 따져보지도 않고 말이다. 술을 안 마셨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 가슴 한켠이 무겁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기본이 지켜지고 있는지 우마르에게 항변하는 남자가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하다. 갑의 횡포가 사회 전반에서 횡행하는 나라라서 그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 다물고 제발 그런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의 눈빛을 보낼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최근 한 두 달 사이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 비행기에서 진상부린 대기업의 ‘라면’ 상무, 제품 밀어내기로 대리점을 못살게 한 남양유업, 불평등거래 관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편의점 업주 사망진단서를 위조한 CU 편의점 갑 BGF 리테일, 그리고 대통령 방미를 수행하면서 권력을 무기로 인턴을 성추행한 희대의 ‘Grab’범 윤창중 전 대변인 등등 대한민국의 갑들의 끊임없이 ‘갑질’에 그동안 숨죽이던 ‘을’들이 전 국민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헌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갑질’의 주인공들이 뻔뻔하고 속 보이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나선 점이다. ‘갑질’의 피해를 당한 ‘을’들에게 사과해도 시원찮은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입 씻으려 한 것이다. 남양유업과 BGF 리테일이 그랬다. 왜? 물어서 뭐하나. 속이 뻔히 보이는 속셈이지. 국민들이 불매 운동할까봐.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사과하는 기업 경영진이나 고위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왼쪽부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배상면주가 배영호 대표.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런데 그게 어째 국민들에게 먼저, 그리고 국민들에게만 용서를 구할 일이냐. 자기들 때문에 눈물 흘린 직접적인 피해자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바른 일 아닌가?!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 매출저하를 막아놓고 보자. 어차피 점주들에게 굳이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고, “잠시 언론플레이로 반성하는 척 보이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우리의 지저분한 ‘갑질’을 기억조차 못할 것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못된 갑이 ‘갑질’을 못하도록 우리가 지켜봐야 한다. 그렇다고 우마르처럼 염탐하거나, 담을 넘거나, 욕하지 말고, 점잖고 차분하게 말이다. 기본을 잘 지키는 사회를 만들려면 좀 늦더라도 우리가 기본을 지켜야겠지. 기본! 그 기본이 없어서 우리 사회에 ‘갑질’ 천국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갑’이 반드시 대기업만은 아니라는 것. 소시민인 우리도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갑’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갑질’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둘러보자. 기본은 지키는 착한 갑이 되기 위해서, 좋은 갑, 그리고 그런 갑과 사이좋은 을이 공정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56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콘도르(Condore)는 남미에 서식하는 매라고 한다. 매 종류가 다 그렇지만,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어 저 먼 공중에서도 땅위에 있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다. 이 맹금의 이름을 본따 만든 ‘콘도르 작전(Condore Operation)’이라는 것이 있었다. 1970년대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비슷한 정치적 상황, 즉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정부가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는 불행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아르헨티나를 필두로 하여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 등 여섯 나라가 공동으로 반정부인사들을 추적, 납치, 살해하는 모의를 하게 되고, 이를 콘도르 작전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아직 충분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키신저로 대표되는 당시 미 외교 및 정보당국의 지원과 협조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콘도르 작전은 칠레의 전 대사가 대낮에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에서 살해당한 이후 국제적인 압력을 받으면서 조금씩 축소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이 작전으로 인해 모두 10만여 명이 살해당하고 40만여명이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 이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해온 남미 언론인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이 콘도르 작전에 대한 재판이 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피고인은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인 라파엘 비델라와 레이날도 비그노데를 비롯해 살인과 고문에 참여했던 당시 몇몇 군인간부들이다. 이 가운데 비델라와 비그노데, 두 전직 대통령은 사실 이미 2010년 재임 중 저지른 반인권 범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상태이다. 고령으로 건강 또한 좋지 않아, 비델라는 결국 지난달 17일 수감되어 있던 교도소에서 사망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전 독재자 라파엘 비델라(좌)와 마지막 독재자인 레이날도 비그노데 사진 출처 - 뉴시스 이런 상황들을 보면 사실 이 재판은 피고인들에게 몇 가지 혐의를 더 밝혀 형벌을 추가하는 것보다는 콘도르 작전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용서될 수 없는 명백한 유죄임을 선언하는 정치적, 도덕적 의미가 그에 못지않게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남미의 이러한 과거청산 작업이 반드시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간단치 않은 과거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해방직후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또 세계 전쟁의 대리전 성격으로 치러진 남북 간의 전쟁상황에서 군부와 국가권력은 무고한 많은 사람들에 대해 무참한 학살을 감행한 바가 있었다. 어디 이 뿐인가. 60년대와 7,80년대를 지나면서 계속된 군사정권은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들을 가혹하게 고문,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80년 5월의 광주가 있다. 아직도 행방을 알지 못하는 수천의 실종자들, 그리고 민주화를 염원하며 스러져간 피살자들, 아직도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 지금도 가끔은, 내게 감히 이들의 영정을 쳐다볼 자격이 있는가 하는 회의와 자조가 들 때가 있다. 지난 십 수 년간 이 같은 과거문제에 대한 조사와 정리가 시도되었다고는 하나, 우리의 과거청산작업은 완성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리고 나는 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사건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극히 일부의 사례, 예컨대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제외하고는 과거 국가범죄에 대한 어떤 형사재판도 진행되지 않았다. 광주에 대한 기소와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화합의 명분아래 6개월 만에 사면되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 피해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상만으로 과거의 문제가 덮어진 것이다. 아니, 덮어진 척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남미와 같이 세계 여러 곳에서 과거청산은 전 사회적인 문제이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 시각이 대립한다. 하나는 오래전 과거문제의 처벌이 가져올 정치적 분열과 갈등, 혼란을 우려하여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으로 만족하고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있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사건의 법적․정치적 정리가 가져올 갈등이나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의 합의에 기초하여 이를 단죄하고 정의를 명백히 하는 것이 이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유명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거사 위원회가 전자의 입장을 취한이래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방식의 과거청산이 이루어졌고, 얼마 전 까지의 남미나 우리나라도 이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 현실을 중시하여 처벌 대신에 진실규명과 화합을 택한 이와 같은 입장은 과거의 참혹한 범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내심 크게 반길만한 해결책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이러한 결론은 문제의 원천에 대한 애매모호함, 즉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예컨대, 최근 논란이 된 광주에 대한 북한군의 개입주장이나 당시 광주시민에 대한 비하적 표현에 대해 한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광주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가. 만약 이렇게 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라면 여기에 도전하는 것은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전두환에 대한 추징시효가 10월이면 만료된다고 한다. 이를 불과 5개월 앞두고 검찰은 이제야 비로소 추징을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다. 이도 믿을 수 없어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추징대상자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로 이전된 경우(물론 사정을 알고 취득한 경우를 말한다)에도 강제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미납추징금에 대해서는 노역장유치가 가능하도록 한 “공무원 범죄에 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에 따라 유죄선고가 이루어진 내란과 민간인 학살의 최고 책임자에 대한 형벌의 집행. 사형이나 장기 자유형이 아니라 고작 범죄로 인한 불법수익을 몰수하는 재산형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정치세력이 아직도 두렵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아직도 덜 되었기 때문인가. 과거청산만으로 그 사회의 성숙도를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남미의 그것은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242 | 추천: 0
늘 ‘을’의 위치인 장애인들 위문숙/ 서울DPI 회장   최근 남양유업의 대리점 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갑을전쟁’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애써 모른 체하지만, 갑의 횡포에 일상적으로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회사의 횡포에서 또 다른 주류회사, 그리고 통신회사와 최근엔 연예계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같은 행위가 자행되고 있음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우리들 자신의 둔감함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횡포를 견뎌내지 못한 어느 을의 자살로 인해 우리는 이러한 사태들의 진정한 내막에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번 갑을전쟁을 접하면서 과거 무수히 많이 짓밟히고 사라진 장애인의 삶을 떠올립니다. 장애인의 인생은 늘 ‘을’의 인생이었고, 또한 늘 죽음이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1967년부터 1986년까지 약 20년간 신문보도를 통해 (단 한 줄이라도) 알려진 장애인의 사건과 사망 보도의 간략한 내용들입니다. ● 1967년 박정희 前대통령, 사립초등학교에 장애아 우선 입학 지시 부산중학교에 지원한 소아마비 장애인 윤철 君, 학과시험이 만점임에도 체능검사에서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 1968년 권오병문교부장관, 지체부자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관한 특혜 반대의사 표명 문교부, 지체부자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관한 별도의 체능 배점 기준 마련 문교부, 지체부자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관한 별도의 체능 특혜 백지화 발표 중·고교 입시특혜 백지화에 따른 대책위 구성과 서명운동 전개 ● 1972년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현,소아마비협회),장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따른 체능점수 배 점을 높여 줄 것을 요구하는 진성서 관계기관에 전달 ● 1974년 경북대치의과에 지원한 박영범 君, 소아마비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 1975년 UN장애인권리선언 결의 ● 1976년 장애를 이유로 대학입시 30여명 불합격. 장애학생·부모 등 1백여명 비교육적 입학제한 규탄 궐 기대회 개최. UN,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 선포 ● 1977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 지원한 박창권 君, 청각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영남대 약대에 지원한 정길석, 구본영,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YMCA, 장애로 인해 대학입시에서 탈락된 박창권, 정길석, 구본영의 입학허가 건의문을 관계 기 관에 전달 ● 1978년 부산대학교에 지원한 윤여진 김호남 등 7명, 집단 입학 거부 휠체어 이용 장애학생 윤태호 君, 과속택시에 치여 사망 ● 1980년 예시합격 시각장애자 대부분 대학에서 원서접수 거절 복지시설, 재활위주로 개편 발표 20세 도효희 양, 영남대 약대에서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경북 경주시 5급 행정직 시험을 치룬 정진석씨,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 1981년 24세 지체장애인 전용호 씨, 비관 자살 17세 뇌성마비 장애인 남구현 군, 주위의 조롱으로 비관 자살 18세 지체장애인 천병전 군 비관 자살 15세 정신지체 장애 조만수 군, 장애 비관으로 나무에 목 매어 자살 19세 지체장애인 진식열군, 비관 자살 심신장애자복지법(현, 장애인복지법) 제정 ● 1982년 성균관대 약대 장애를 이유로 2명 입학거부 한국심신장애자선도선교협회. 기술 훈련을 핑계로 장애인 착취 박 찬, 박은수, 조병훈, 김신, 법관임용에서 장애를 이유로 탈락 중등교사 임용후보자 김봉련 양, 장애를 이유로 면접에서 낙방 ● 1983년 장애를 이유로 이희정, 김용학 대입 낙방 ● 1984년 동국대 지원한 최동락 군, 지체장애를 이유로 낙방 휠체어 이용장애자 김순석 씨, 서울시장앞으로 유서 남기고 비관 자살 뇌성마비 딸 고치려고 돈 훔친 이분성 씨 입건 문교부, 대학신입생모집요강에 ‘수학불능’ 기준 명시 지시 술집주인·종업원, 장애자 손님 재수없다고 폭행 ● 1986년 가톨릭대 의대, 소아마비 학생 3명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가톨릭대, 불합격 처분 고수 의사결정 김수환추기경, 불합격 처분 재고 요청 정립회관에서 ‘장애학생불합격처분에 대한 전국장애인대회’ 강행 고모 씨, 소아마비 어린 딸 학대(조선일보)   1983년 2월 1일자 경향신문 기사 사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쳐. 박찬, 조병훈, 김신, 박은수씨.   내 자식 교육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만큼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장애인은 공부를 잘해도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운 처절한 과거를 지나왔습니다. 휠체어나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감히 생각조차 못하고 엄마 등에 업혀서라도, 기어서라도 다녀보려던 시절에 말입니다. 또한 이 시기는 장애운동이 시발되기 전이라고 보아야 할 만큼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고, 피해 장애학생의 부모와 몇몇 기관의 눈물어린 호소와 청원만이 유일한 접근방법이었습니다. 구제되면 참으로 다행이었고, 안 된다 해도 어찌하지 못했던... 1975년에는 (8년의 노력 끝에) UN장애인권리선언이 결의되었고, 1981년에는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었으며 그해가 바로 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입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뭔가 기대해 봄직한 1981년에 오히려 장애인의 비관자살 보도가 가장 많았습니다. 짐작컨대, 세계장애인의 해를 맞아야 하는 정부는 대단히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태도일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 ‘장애인문제에 관심 갖기’여서 보도의 횟수가 늘어난 것일 뿐, 아마도 그 이전에 훨씬 더 많은 장애인의 자살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시나 88올림픽을 앞둔 몇 년 동안에도(장애인을 위해 뭔가를 한다고 무척이나 떠들어댔음에도) 역시나 장애인의 비관과 갖가지 차별은 별반 차이 없이 계속됩니다. 이렇듯 장애인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 간에도, 사회 속에서도 늘 존재감 없는 ‘을’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비단 장애인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삶에는 늘 ‘갑’의 학대와 ‘을’의 서글픈 ‘죽음’이 너무도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86년 이후의 내용을 다음에...)
2017-08-07 | hrights | 조회: 459 | 추천: 0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개미가 지나가는 걸 보고도 개미가 지나간다고 하면 안 된대. 그냥 저기 까만 조그만 것들이 어디로 움직이네, 이렇게 말해야 아이에게 인지적 학습이 안 되고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거야.” 30개월 된 아들을 둔 내 친구는 놀이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다른 엄마에게서 들은 수업 내용을 내게 들려준다. 20개월짜리 딸을 두고 2년 반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된 내게 뭔가 도움이 될 거라 들려준 얘기다. 아이를 주변 어른이나 다른 공동체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엄마 혼자 키워야 하는 입장에 있는 엄마들은 늘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나’ 애가 조금만 심하게 반응해도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애착관계 형성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고민에 빠진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안 좋다니까 그런 불안의 이유나 원인을 빨리 알아내서 아이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다. 이런저런 육아상담 심리책도 읽어 보고, 인터넷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들 얘기도 읽어 보고, 관련 단체나 기관에서 주최하는 집단심리상담도 들어 본다. 그 속에 찾게 되는 건 해답일까, 위안일까. 어쩌면 너무 많은 육아 이론과 지침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엄마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개미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한테 "너도 인지적 학습 형태로 아이한테 얘기를 많이 할 거 같은데, 어때?"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야, 이렇든 저렇든 아이한테 말도 해주고 대꾸도 해주면 됐지 뭘 그래? 입 꾹 다물고 있는 거보다 백배 낫잖아." 뭐가 정답인지는 나도 모른다. 직장에 다시 가기로 결정했을 무렵 내게 가장 큰 불안을 일으킨 기사가 있었다. 엄마 냄새를 하루 세 시간 이상은 아이가 맡아야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그 책을 사서 꼼꼼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솔직히 읽기도 싫었다, 그건 나 자신의 정서적인 안정을 파괴할 것만 같은 위협으로 내겐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한 대형 서점의 육아서적 코너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21 한편으론 육아서도 자기계발서처럼 점점 더 자극적이고 단호함을 넘어서 독단 같은 지침들을 엄마들에게 들이미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는 안아주는 식의 스킨십이 좋다는 식에서 3시간 이상은 꼭 엄마 냄새를 맡게 해야 한다는 식의, 뭔가 계량화된 법칙 같은. 자기 성과에 목매달게 하는 자기 착취 개념은 비단 일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떠맡기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이에게 조금의 문제라도 발생하면 모두 엄마 책임이라는 암묵적인 책임전가와 위협들 속에서,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아이와 함께 편안한 육아를 하려는 엄마는 설 자리가 없는 걸까? “아, 내가 아이한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 어떨 때는 주변 어른들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아, 다 잘 큰다 하고 말해주면 마음 편해질 것 같아.” 단 한 시간도 엄마 대신 아이를 돌봐줄 피붙이가 주변에 없던 나는 육아를 인터넷과 책으로 배우다 보니 다른 엄마들이 좋다는 건 꼭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내뱉은 말이다. 냉정한 사실은 ‘편안한 육아’가 누군가에게 그러고 싶다고 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로부터 괜찮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육아를 하나의 커다란 나무라고 한다면, 그 나무를 지탱하는 튼튼한 뿌리와 줄기는 엄마의 자존감과 가치관이다. 문제라면 자존감과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천천히 뭔가 해보면 될 것 같지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니 내 마음 살림살이 늘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안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당장 뭔가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이나 해결책을 전문가로부터 듣고 싶다. 그건 이미 현란한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입맛과 비슷할지 모른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법칙이나 대안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순박한 진리에도 가슴이 떨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세’이다. 어떻게 처음 해보는 일을 전문가의 말대로 한다고 금방 잘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좌충우돌할 수 있다. 그 정신없음과 당혹스러움과 불안과, 그 와중에도 애쓰는 자신과 그 시간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불안과 슬픔과 기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상태라면, 누군가의 입을 빌리지 않고 누군가의 양육 방식을 흉내 내지 않고도 내 아이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고 그 과정 자체가 각자 색깔이 다른 ‘편안한 육아’일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43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어깨가 아파서 병원을 찾는다. 의사가 묻는다. “어떻게 아프세요?” 환자가 대답한다. “팔을 뒤로 돌릴 수가 없어요. 너무나 아파서.” 의사가 묻는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환자가 대답한다. “3개월 쯤 된 것 같아요.” 의사가 묻는다. “혹시 다른 데 아픈 데는 없으세요?” 환자가 대답한다. “편두통인지 가끔씩 머리도 찌르듯이 아파요.” 의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세요. 또 다른 데는요?” 환자가 말한다. “우울증이 있는데. 그건 좀 오래 되었어요.” 의사가 말한다. “그러세요. 여러모로 힘드시겠어요.” 환자가 묻는다. “혹시 이 모든 질환들을 한꺼번에 싹 고치는 방법은 없을까요?” 의사가 환자를 멍하니 쳐다본다. “글쎄요.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아무래도 생활방식을 아예 좀 다르게 바꿔 보면 어떨까 싶네요. 가장 큰 문제는 스트레스라고 하잖아요, 왜.” 다소 좀 조용해진 것 같지만 얼마 전만 해도 핵을 동원한 전쟁이 날까봐 전전긍긍했다. 결국은 애써 가꾸어 온 분단된 한민족의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던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되고 남쪽 사람들이 전원 철수해버렸다.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직원들이 ‘그분의 말씀’을 지침으로 삼아 동시다발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적인 정치 개입을 자행한 탓에 검찰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아직 전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빙산의 일각이라고 여겨지는 남양유업의 갑을 사태가 불거져 유리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피지배적인 처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예 인간의 명색을 벗어버린 작태가 만연해 있음을 노출했다.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하고만 있다고 보니 정신병까지 앓게 되었다고 실토한다.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그런 와중에 신임 대통령은 세계 최상의 나라인 미국 의회에서 영어 연설을 하면서 수 십 차례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하면서 멋지게 기염을 토하고 있는데, 이런!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핀잔을 들으면서까지 애지중지 기어코 대변인 자리를 맡긴 인물이 방문 국가에서 성희롱을 하다가 고발을 당하자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일체의 임무를 저버리고 돌연 귀국해 버렸다. “글쎄요. 아예 길이 안 보이네요.” 그렇잖아도 분기의 경제성장이 0%대로 내려앉지를 않나 부모로부터 방임·방치된 나머지 밤늦게 거리를 떠도는 어린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된다는 소식도 들려오면서 사회 양극화의 간극이 점점 더 커지는 속도가 ‘안 봐도 비디오’ 식으로 날로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창조경제”라는 한 마디로 어떻게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되살려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데, 대통령 대변인이란 자가 그것도 가장 잘 보여야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성희롱으로 고발을 당하다니, 정말이지 돌아버릴 지경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정말 재수가 없어서 어쩌다가 당한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모든 일들은 지난 수 십 년간 반민주적·반민족적·반인간적인 독재와 가없는 폭력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과 부패의 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온갖 고통과 희생을 지불했는데도 불구하고 생겨난 반민주적·반민족적·반인간적인 결과이다. 이 모든 일들에 적어도 나 혼자만은 결백하고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았음을 입증하기라도 하려는 듯 기를 쓰고 한탄하고 비난해 마지않는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집권 통치 세력을 비롯하여 경제사회적으로 지배 계급에 속한 인물들, 특히 대통령 방미 때 대통령을 위시해서 연회석에서 대통령의 좌우에 도열했던 그 유명한 경제계의 거물들이 대오각성하기를 기대할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진보 진영이 아예 “사물의 명색만을 알뿐 인간의 명색은 전혀 모르는” 자본주의적 시장체제에 따른 의식/무의식의 아비투스를 싹 지어내고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여 대대적인 사회혁명적인 실천에 나서기를 기대할 것인가? “글쎄요.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아무래도 생활방식을 아예 좀 다르게 바꿔 보면 어떨까 싶네요.”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지배 계급은 대대적으로 심지어 세계적인 규모로 연대하여 흔히 서민이라 불리는 피지배 계급을 한편으로는 적절히 활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히 유린해서라도 그네들의 재산과 지위의 기득권을 유지 ․ 강화하고자 노력한다. 역사 이래로 모든 잉여의 생산은 아래에서부터 피지배 계급으로부터 산출되는데도, 그 잉여의 대다수를 독차지한 것은 상층의 지배 계급이지 않았던가. 1990년대 말 3백 48명의 억만장자들이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 이후 이 수치는 더욱 증가했으리라. 그러면서 “낙수 효과” 운운하는 것이다. 이 낱말처럼 겉으로는 경제적인 원칙인 양 포장되어 실제로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굴욕으로 몰아가는 잔인한 낱말도 드물 것이다. “글쎄요,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라고 푸념을 늘어놓을 여유가 없다. 딱 한 가지 길이 있다. 이 길은 다소 부족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때 한껏 제시한 길이다.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는 경제민주화의 창조여야 한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는 재벌 대기업들에게 자본주의적인 시장 원칙을 준수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복지의 대대적인 확대를 목표로 시장에서의 착취를 국가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들의 질 높은 행복한 삶은 양극화의 깊은 골짜기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데서 시작되고, 이는 복지의 대대적인 확대 외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정부 관료들을 재기용해야 한다. 모두가 모두를 오로지 자신을 위한 수단이나 기회로만 여김으로써 다들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사회의 풍토를 전격적으로 바꾸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국가의 생활방식을 아예 색다르게 바꾸어야 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역시 대대적인 복지사회를 향해 국가 전체가 매진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의 기능은 대다수 국민들의 피땀 어린 노고의 성과를 상층의 소수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갖다 바치기 위해 진력하는 데 불과할 것이다. “낙수 효과”라는 말을 믿지 말고 “정당한 노력에 정당한 대가”라는 말을 믿어야 한다. 때로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때로는 참신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디어 하나로 수 백 수 천 억 달러를 벌어들여 그들만의 지갑을 천문학적으로 부풀리는 세계자본주의의 논리에 국가가 휘말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②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균형 있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의 민주화” 등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이란 대목을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헌법 조항의 내용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가 모두를 부와 권력을 향해 그 좁디좁은 대롱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몰아 부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대변인이라는 자가 세계의 눈이 집중된 가운데 발가벗고서 버젓이 성희롱을 자행한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0
홍미정/ 단국대 GCC 국가연구소 연구교수   지난 금요일(5월 3일) 이스라엘 전투기가 시리아 정부군 시설을 공격하면서, 시리아 내전이 역내의 모든 국가들이 연루되는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13년 2월 유엔 인권 위원회는 2011년 3월 이후 2년 동안 시리아 내전에서 7만 여명이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다음 주간 사망자 표는 시리아내전이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1) 사진 출처 - notthemsmdotcom 현재 시리아 정부군 편에는 러시아, 이란,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팔레스타인 해방군, 이라크 시아 민병대 등이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정부군에 맞서는 반군은 거칠게 세 편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통합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통제 지역을 놓고 서로 분쟁한다. 시리아 국민연합(Syrian National Coalition), 무자헤딘(Mujahideen), 쿠르드 최고 위원회(Kurdish Supreme Committee)가 그들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인정받고 있는 시리아 국민연합은 2012년 11월 카타르에서 창설되었다. 걸프 지역의 6개 아랍 왕국들(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오만), 아랍 연맹(알제리, 이라크, 레바논을 제외), 미국, 유럽연합, 터키 등은 시리아 국민연합을 아사드 정부를 대체하는 시리아인들의 대표로 인정하였다. 2013년 3월 19일 시리아 국민연합은 임시 정부 총리로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가산 히토(Ghassan Hitto)를 선출하였다. 알카에다 등 지하드주의자들로 구성된 무자헤딘은 사우디 종교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7월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이 창설한 쿠르드 최고 위원회는 이라크 쿠르드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 현장에서 세 편은 다시 각 무장단체를 이끄는 조직들로 더욱 세분화되고, 내부적으로 세력들 간의 권력 투쟁이 존재한다. 흔히 시리아 내전과 관련하여 미디어들은 시리아 거주민들을 수니파, 시아파, 알라위파, 기독교도, 무슬림 형제단, 알카에다, 쿠르드족, 튀르크족, 팔레스타인인 등 종교나 종파 혹은 종족에 따라 구분하면서, 시리아 내부 사회가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충돌하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이 존재해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시리아 내부에는 이러한 집단들이 존재하며, 시리아 정부가 일부 집단들을 편향적으로 지원하고 다른 집단들에 대해서는 차별하는 정책을 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종교나 종족 집단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시리아 정부군이나 반정부군편에 서있는 것도 아니고, 시리아 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이 결정적으로 내전을 확대 강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예가 그것을 증명한다. 현재 무슬림 형제단과 제휴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다마스쿠스 동부 지역에서 반군인 시리아 국민연합과 연대한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을 훈련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샬은 2001년부터 시리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다마스쿠스에서 하마스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2012년 2월 시리아 위기가 고조되면서 다마스쿠스 소재 사무실을 폐쇄하고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카타르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칼리드 마샬의 행보는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이미 카타르가 지원하는 무슬림 형제단 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세속적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끄는 정치 단체인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과 팔레스타인 해방군은 시리아 정부군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5월 2일, Occupied Palestine보도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에 거주하는 1,267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사망하였다고 한다.2)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정부군과 반정부군 양 편에 모두 연루되어 있으며, 가장 많은 외국 민간인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시리아 내전이 시리아 정부의 특정 종파나 종족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을 넘어서서 역내 강국들의 개입과 지원이 중요한 동력이었음을 밝혀준다. 특히 이 내전에서는 카타르가 적극 지원하는 무슬림 형제단 세력이 시리아 국민연합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요르단 왕국 내의 무슬림 형제단 분파들은 각 왕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면서 권력 공유를 의미하는 정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따라서 무슬림 형제단이 시리아에서 권력을 장악할 경우, 그것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왕국에게는 국내 정치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강력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역내 아랍 국가들의 복잡한 국내 상황이 시리아 내전을 장기화시키고 격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1) Terrorism has spread in Syria and so has chaos. This is reality: April 3, 2013 http://notthemsmdotcom.wordpress.com/2013/04/03/terrorism-has-spread-in-syria-and-so-has-chaos-this-is-reality/ 2) 1267 Palestinian martyrs since the outbreak of the Syrian revolution, May 2, 2013 http://occupiedpalestine.wordpress.com/2013/05/02/1267-palestinian-martyrs-since-the-outbreak-of-the-syrian-revolution/
2017-08-07 | hrights | 조회: 443 | 추천: 0
신하영옥/ 광명시민인권센터장 지난해 시민인권학당을 마치고, 그 수료생 중 일부와 인권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여러 가지 역학적 관계로 인해 올 해는 인권센터사업이 아직 개점휴업 중이었고, 그러한 돌파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그동안 위에 떠 있었던 듯 하던 활동이 대지에 발을 붙인 듯 느껴지고, 무엇보다 세미나 과정의 역동을 통해 새로운 각오와 시민들의 건강함을, 힘을 흥분으로 느끼고 있다. 구성원은 10대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 여성과 남성이 절반씩, 장애자녀부모, 제도권 밖의 학교 재학생과 선생님,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는 분, 시민단체 활동가 및 회원 등, 보편에서 제외되거나 보편을 거부한 소수자들이다. 그래서일까? 첫 시간부터 세미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혹시 자칫 지루해지거나, 너무 다양해서 얘기들이 섞이지 않으면 어쩌나 했던 것은 기우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봇물 터지듯 자신의 경험과 소수자로서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청소년인권을 다룬다고 청소년들만이 논의를 주도하지 않고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이고, 빈곤의 문제도 모두다 자신과의 연관성, 즉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장애여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안에서 70대 어르신의 경험이 현재 청소년들에게 재현되고, 빈곤문제는 청소년의 미래이며, 현재 우리들의 모습으로 환원된다. 청소년들의 권리에 대한 침해는 다시 어르신의 분노와 만난다. 이 모든 인권침해와 차별들은 결국 서로 만나고 있다. 나이, 성별, 장애유무, 빈곤, 인종, 심지어 주거 및 보행권의 문제도 하나로 만난다. 그것은 이 국가가 누구의 국가이며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에 대한 질문과 이로부터 오는 배신감이다. 광명시민인권센터 세미나 모습 사진 출처 - 광명시민인권위원회 블로그 그래서 '공분'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분이 서로의 연결됨을 확인하게 해주고, 그러한 유대감이 세미나의 활력과 역동의 배경이 된다. 나와 뜻이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 내 아픔에 공감해주고 나의 분노에 지지해주는 타인들, 집단이 있다는 것은 내 존재, 정체성에 대한 존중과 확인이 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자 산다면 무슨 인권이 필요하겠는가? 혼자 산다면 존중받고자 왜 애쓰겠는가? 정체성의 확인과 존중은 함께 사는 인간의 필요충분조건 일 테다. 그래서 인권은 존중과 정체성대로 인정받고 그 정체성대로 살아가고픈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제도화하는 게 인권일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별 근거도 없이 존중받는 집단의 구성원이 되고, 다른 어떤 이들은 ‘정체성’ 때문에 무시받거나 경멸의 대상이 된다.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근거조차 없다. 근거없는 무시와 경멸이 현실 속에선 힘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국가와 인권의 만남은 이중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현재의 국가는 그리고 그 국가의 의무로 실현되고 있는 인권은 여기 모인 '우리'를 대상이나 주체로 하고 있지 않다고... 그래서 또 우리는 찾고 있다. 이러한 '공분'에서 오는 문제와 해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여성주의 상담의 원칙에는 ‘내담자의 문제는 내담자 자신이 해결할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나는 이 말을 얼마나 잊고 있었으며, 그리고 요즘 다시 재발견하고 있는 중인지 깨닫는다. 세미나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나’인 듯하다. 문서자료와 토론석상, 워크숍을 통해서가 아닌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문서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오류를 발견한다. 그리고 한 동안 잊었던 ‘부정의에 대한 공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매번 세미나가 끝날 때 나는 감동이 온 몸을 훑고 지나는 듯한 원기 충만함을 느낀다. 이것이 날 잡아끄는 매력으로 작용하는 한 아마도 나는 이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듯 하다. 배움을 다시 시작하면서 일과 배움 중 배움을 더 선택하고픈 욕망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자리에 있도록 하는 것은 완전히 이 세미나가 주는 사람들과 나에 대한 재발견과 감동이다. 내게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충분히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다.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만들어내는 힘과 역동, 공동체성의 회복, 인간에 대한 긍정적 희망, 이런 것들을 관념이 아니라 실체로 확인하고 느끼는 나에 대한 감사함이다. 이를 통해 나는 내 삶 즉, 활동의 방식에 대해 성찰해보게 된다. 관념과 추상과 오만으로 얼룩져있진 않았던가... 나를 너무 내세우지는 않았던가... 하는. 겸손해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겠다. 세미나를 하면서 확인하는 또 다른 점은 우리는 누구나 다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소수자성들로 인해 다른 형태의 인권침해나 차별, 부정의에 대해 공감이 형성된다. 그 소수자성이 우리를 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묶고, ‘우리’, ‘공통의 분노’라는 것으로 표현되게 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소수자성이 먼저 배려되어야 하는가? 누가 가장 사회적약자이고 그래서 가장먼저 인권의 정치학의 혜택을 보아야 하는가? 하는 이론적 문제가 여기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소수자성이 한 개 이상으로서, 여성이고 장애아부모이고, 마땅한 직업은 없으나 사회활동은 하고 있다거나, 소상인이지만 빈곤하고 인권보장이 안 되는 학생자녀를 두고 있고 비정규직 가족이 있다. 노인이고 일자리 없고 병든 몸이거나, 탈 제도화로 인해 미래가 불확실한 청소년과 선생님이 있다. 정체성은 중첩되고 생애주기에 따라 변화는 것임을 서로를 보면서 확인한다. 따라서 무엇이 혹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 하나라도 소수자정책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이리저리 얽혀있는 정체성으로 인해 어딘가 에서는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아닌 너의 문제해결이 선행된다고 해서 억울해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것이 또한 소수자들의 연대의식임도 확인한다. 그러니 기다려주겠다. ‘우리 모두의’ 국가라는 확신이 들 그 날을... 모두의 국가가 아니라는 베일이 완전히 벗겨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의 국가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현상이 빚어질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공분하는 우리’가 늘어가는 이상 그것은 필연적이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2017-08-07 | hrights | 조회: 12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