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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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광조/ CBS PD 지난 해 3월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으로 집을 옮기면서 출퇴근 시에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른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이 15분에서 20분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사했을 때 통행료가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외곽순환도로를 처음 이용했을 때는 요금이 900원이었던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요금은 1,000원으로 인상되었고 지금은 1,100원이다. 편리함의 대가로 매일 2,200원씩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지 통행료를 내는 것에 별 저항감이 없지만 처음엔 유료도로에 대해 사실 불만이 좀 많았다. 도로는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대로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의 하나인데, 공적으로 투자해서 운영해야지 왜 돈을 받느냐, 이런 반감 말이다. 물론 지금도 어쩌다 인천공항고속도로를 타는 경우에는 통행료를 낼 때마다 열불을 내기도 한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는 외곽순환도로처럼 민간자본을 유치해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이른바 ‘민자 사업’이 유행처럼 번졌다. 인천공항고속도로, 지하철 9호선, 우면산 터널 등등. 정부 예산을 절감하면서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기반시설을 건설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민자 사업은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비싼 요금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 업체에 민자사업이 집중되면서 특혜의혹이 일었는가 하면 수요를 뻥튀기 해 막대한 정부 예산으로 민간기업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 김기준 의원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6년 동안 민자 사업에 투입된 돈이 2조원이 넘는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민자사업의 폐해가 이렇게 큰데도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도로나 철도, 교량을 몰수하자거나 싼 값에 매입하자는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혹은 투자할 것을 강요받는 주체가 농민이나 도시 서민 등 힘 없는 개인들일 경우에는 사정이 확 달라진다. 민자 사업으로 발생 가능한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건 고사하고 공익을 앞세워 땅값을 후려친다. 사회기반시설 건설로 인한 혜택은 고사하고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며 안면몰수다. 달리 방법이 없어 몸으로 저항이라도 할라치면 지역이기주의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보다 못한 주변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 불순한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욕한다. 민자도로야 그것이 없으면 못살 정도로 필수적인 시설은 아니다. 불편을 좀 감수하고 다른 도로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전기야 어디 그런가. 밀양송전탑을 지나갈 고압전기가 어느 지역에 얼마나 사용될지는 모르지만 전기가 없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불가능해진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 필수적인 시설이라면, 공익을 위해 희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공익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높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게 상식적인 일 아닌가. 하지만 2006년부터 시작된 밀양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을 보면 앞뒤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기자회견 및 시위현장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충분한 보상방안을 협의하고 그런 뒤에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게 순서일 텐데, 급하니까 공사를 빨리해야 한다며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가 사람이 죽고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항의하니 그제야 법을 만들어 보상을 하겠단다. 기존의 법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현금보상까지 넣었으니 정부는 할 만큼 했단다.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민간자본에는 그렇게 관대하고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힘없는 농민들이 자자손손 대대로 일군 그 소중한 자산과 그들의 기여를 평가하는 데는 왜 이리 인색하고 무자비한가. 원전 비리에 연루된 한수원 직원들의 금품수수 액수가 1인당 평균 1억 원을 넘고 한전, 한수원 등 발전 공기업에서 기획재정부의 지침을 어겨가며 공짜로 지급한 대학생 자녀 학자금이 1245억 원이 넘는다는 보도를 보며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지역이기주의라기보다는 갑의 횡포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0
홍미정/ 단국대 GCC 국가연구소 연구교수 ○ 사우디는 미국 총 석유 수입량 중 40%에 대한 영향력 행사 ○ 2011년 사우디는 세계 1위의 무기수입국으로 미국과 334억 달러 수입계약: 미국 전 세계 대상 무기판매에서 사우디 비중은 50%+α  사우디는 중동에서 가장 큰 미국의 무역 상대국이다. 2011년 미국국제무역부(U.S. International Trade Administration)에 따르면, 사우디의 미국수출은 475억 달러였고, 무기를 제외한 미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은 138억 달러였다. 미국-사우디 무역의 대부분은 사우디로부터 석유의 수입과 미국의 무기, 기계, 자동차 수출로 인한 것이다.   2012년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석유생산 국가였고, 총 석유수출 총량 중 16%를 미국으로 수출했으며, 이것은 미국 총수입량 중 13%를 차지했다. 더욱이 미국은 사우디가 통제하는 OPEC 국가들로부터 총수입량 중 40%를 수입했다. 결국 사우디는 미국 총 석유수입량 중 40%(순 수입량 중 55%)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석유시장에 대한 사우디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게다가 막대한 석유수익을 가진 사우디는 미국의 최대 무기판매 시장이다. 다음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8년-2011년 사우디는 전 세계 대상 미국 무기판매의 40.35%를 차지했으며, 중동국가들에 대한 미국 무기판매는 전 세계판매 대비 81.40%를 차지했다. 이 수치는 현재 중동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왜 더 호전적인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2008-2011년 미국의 무기판매 협정] (단위: 백만US$) 중동 91,974 (81.40%) 사우디 45,600 40.35(%) UAE 14,300 12.65(%) 이집트 7,400 6.54(%) 이스라엘 5,900 5.22(%) 이라크 4,800 4.24(%) 기타 13,974 12.36(%) 아프리카 296     0.26(%) 라틴아메리카 2,590     2.29(%) 아시아 18,127     16.04(%) 전체 112,987     100.00(%) ※ 자료: 미국정부 제공 이 통계는 미국 군사원조 프로그램, 국제 군사교육·훈련 프로그램과 관련된 무기판매는 제외.  구체적으로 2010년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총 무기판매협정 총액은 214억 달러(전 세계 무기거래총액 445억 달러)였으나, 2011년에는 약 663억 달러(전 세계 무기거래총액 약 853억 달러)로 급증하였다. 2011년 미국 무기판매가 전년도 대비 3배 이상 증가함으로써 미국무기 수출 역사상 최고 판매액을 기록했으며, 2011년 미국 무기판매액은 전 세계 무기판매액의 77.7%를 차지했다.   이러한 2011년 미국 무기판매 급증에는 사우디가 커다란 기여를 했다. 2011년에 사우디는 337억 달러 무기수입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1위의 무기수입국이 되었으며, 이 중 미국과 334억 달러(99%) 수입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무기판매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이 액수는 2010년에 미국이 전 세계에 무기를 판매한 총액 214억 달러보다도 120억 달러 정도 많다. 2011년 아랍민주화시위(아랍의 봄)가 격화되면서,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가 급증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사우디 교류 증진을 위한 회담 사진 출처 - USSABC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기업위원회)  그런데 위 통계 숫자는 [사우디 왕국정규군]을 훈련시키는 [미군훈련사절단]과 [사우디 국가방위군]을 훈련시키는 [사우디 국가방위군 현대화 프로그램]과 관련된 미국의 사우디에 대한 무기판매(+α)를 포함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의 사우디 무기판매 총량은 위에서 밝힌 수치를 훨씬 넘을 가능성이 있고, 필자가 접할 수 있는 통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2010년 10월 미 국무부는 의회에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600억 달러가 넘는 F-15전투기 수십 대, 헬리콥터 및 관련 장비와 서비스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할 계획을 보고하였다. 이 무기판매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기 위하여,  2010년 11월 16일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과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트가 의회 외무분과 의장이었던 하워드 베르만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무기판매에 관하여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의회 보낸 편지] 1. 이번 무기판매는 걸프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과 외교정책 분야 이익 증진 2. 이번 무기판매는 사우디-미국 간 긴밀한 안보협력관계를 유지한 60년 전통을 잇는 것. 60년 동안, 미국-사우디 안보협력은 중동 지역에서 제일 중요한 안보 축. 3. 이번 무기판매는 사우디군과 미군의 연동성 강화, 사우디의 대테러 능력 향상, 역내 불안정성을 포함하는 이란의 위협에 대처  현재 이 무기판매 계획에 따라, 미국-사우디는 계약을 체결하는 중이다. 결국, 미국-사우디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 기둥은 ‘석유지배와 무기판매’다. ‘무기판매’는 소위 ‘강력한 적, 이란’으로부터 ‘사우디왕가 보호’를 의미하는 ‘걸프지역 안보확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된다. 최근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는 명백히 ‘사우디 절대왕정체제를 위협’하는 것으로 ‘미국 무기시장의 확대’를 이끌어 냈다. 이로써 아랍민주화 시위와 사우디 절대왕정체제의 불안정성을 통한 최대의 경제적 수혜자는 ‘사우디 안보를 책임지는 미국’인 셈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95 | 추천: 0
위문숙/ 서울 DPI 회장 80년대 중반까지 장애인의 삶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철저한 배제와 분리였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찍소리도 못하고 보내온 장애인 역사의 처절함입니다. 이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 장애인의 비관 자살과 입학거부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교육과 노동에서 배제와 무시를 당했고, 산 좋고 물 좋은 어느 산골 수용시설에서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장애인의 인생인양 곁의 가족들조차도 그리 알고 살아 왔습니다. 80년대는 한국사적으로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운동 권하는 사회’였고 노동자 대투쟁과 시민 혁명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던 시기입니다. 86년을 시발로, 이 투쟁에 속했던 젊은 장애인들의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자각은, 이 후 이어지는 장애인의 삶에 큰 회오리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회오리는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의 양대 법안 투쟁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울림의 메아리는 장애인의 다양한 권리와 차별에 대한 더 큰 자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는 ’장애인운동‘의 태동기가 시작되면서, 장애인복지에 대한 영역별 종합대책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입학거부나 비관자살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장애인 수용시설의 온갖 비리가 장애인의 또 다른 아픔을 보여줍니다. 평택 에바다 사태는 지난 1996년 11월 27일 강제노역·구타·인신매매·성폭행 등 구 재단의 인권유린에 견디다 못한 에바다 농아원생들의 절규 어린 농성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해, 장애 시설 비리의 참상에 대한 충격을 사회에 던져 주었습니다. 2005년 광주 인화학교 사태는 ‘도가니’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사회를 또 한 번 경악케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원주 사랑의 집이라는 곳에서는 장애인을 목숨처럼 사랑해서 자신의 이름을 ‘장목사’라 부르는 이와 그의 처가 보조금과 후원금 횡령, 시신 유기, 원생들 구타·고문 및 실종 등 시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비리의 종합 세트를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어디선가에서 현재형으로 진행 될 듯 합니다. 영화 '도가니' 사진 출처 - 씨네21   장애인들이 삶과 권리에 대해 각성하고 요구하기까지의 시간은 30년이 채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세대라고 봄직한 시간이지만 차별의 장르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더불어 살기 어려운 존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살고 싶은 곳에서 환경을 변화시켜 가며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자립생활 운동’의 도입과 전개가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반인권적인 시설의 문제와 허망한 죽음과 상처들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반시설’의 깃발을 펄럭이게 하고 있습니다. 원주 사랑의 집을 운영하는 장목사가 직접 바늘로 새긴 장애인 팔뚝의 문신. 문신 내용은 장애인의 이름 전화번호, 장애급수 등 사진 출처 - SBS 한국의 장애인 복지는 ‘재활(론자)에 의한 재활(론자)을 위한 재활(론자)’로 근 50년을 보냈습니다. 장애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복지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복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가령 장애인을 위한 용품을 만들어도 사용자의 욕구나 의견의 반영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다보니 막상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충족되지 못하는 물건으로 골칫덩어리 취급받기가 일쑤입니다. 당사자의 의견과 참여를 참으로 한결같이 고려하지 않는 전문가 집단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인이 무서운 것일까요...? 원주 사랑의 집 수용 장애인의 모습. 수용된 장애인 모두가 머리카락이 없다 사진 출처 - SBS 이제는 장애인 자신이 우뚝 서서 대상에서 주체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복지에서 인권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가볍고 죽어있는 존재에서 의미 있고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27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사회주의 사회를 상정한 원전들에서의 예측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체제였지만, 자본주의 체제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몇 가지 요인만으로 양 체제의 차이가 없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단순 일반화의 오류이며 따라서 수많은 다양한 상부 구조에 대한 연구를 무의미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렇게 두 체제가 동질적이라는 주장과 정반대로, 구 소련식 현실사회주의는 모종의 사회주의 체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자보다 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체제의 붕괴와 전환이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졌으므로 더 이상 그 유산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쉽게 기각하고 연구하는 경향도 이러한 오류의 범주에 든다. 체제에 대한 혼란은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한 현대 러시아에서의 구체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연구에서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체제 전환 과정에서 소위 ‘보수파/개혁파’, ‘좌파/우파’의 잘못된 구분법과 더불어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민주화’라는 개념 규정 등에 있어 많은 혼동에서도 기인한다. 이론상으로는 더 직접 민주주의적 체제였어야 할 사회주의 체제가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억압적 권위주의적 체제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좌파적인 수사들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에게 혼동을 주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임은 분명하다. 체제 전환 이후에도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오랜 지배 정당의 역할에 더 익숙한 공산당 등 현실 사회주의 좌파 후신 세력들은 사회주의권 바깥에서 발달한 좌파적 의제들에는 물론 자유주의적 의제들에도 못 미치는 의식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중심부 국가와 자본이 러시아를 비롯한 중심부 외 지역에서 가하고 있는 불공평하고 부정적인 행위에 대한 분석은 날카롭지만, 자국의 안팎에서 자국에 의해 행해지는 유사하거나 더 잔혹한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 혹은 아예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에서는 우파보다는 좌파적인 운동 영역이었던 환경, 여성, 반핵, 인권 등의 문제가 러시아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의 활동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러시아식 구좌파는 물론 이에서 벗어난 신좌파 양자 공히 위에서 언급한 시민 사회 문제에 대한 올바른 관점에서의 접근과 시민 사회 단체들과의 올바른 연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런가 하면 좌파적 정당과 시민 사회 운동의 사상적 동질성은 많지 않지만, 반면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연대도 이루어진다. 정치 외의 문제에는 신경을 쓰기 힘들만큼 권위주의적 정권의 정치적 탄압에 저항하는 데 집중해야하는 러시아 정치의 후진적 현실도 올바른 관점에 입각한 연대를 방해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이 보다는 그에 선행하는 위에서 언급한 더 근본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즉 서구에서 수 백 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일들이 압축적,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더하여 자본주의의 경험도 없고, 자유주의적 가치가 제대로 실험되지도 못한 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시장 경제로 회귀하면서 여전히 자유 자본주의적 가치조차 제대로 완수되지 못 한 단계에 있는 러시아의 특수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체첸의 독립을 놓고서 러시아와 체첸 공화국이 치른 첫번째 전쟁. 러시아군에 점령된 수도 그로즈니의 모습 사진 출처 - 네이버 체제 문제는 마치 별도의 연구 분야인 것처럼 보이는 민족 문제에 대해서도 그 연구의 핵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주의 소련의 대 소수민족 정책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 식민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억압적 지배 구조의 유사성만으로 파시즘이나 제국주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를 같은 질의 체제로 보는 주장들이 있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 반강제로 편입된 비 러시아 소수민족에 대한 소련 중앙의 정책은 이상과 달리 식민지에 대한 그것과 유사한 점도 현저했다. 그러나 소련의 정책은 식민 본국을 위한 잔혹한 수탈과 억압, 동화 과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그러한 서구 식민지-피식민지 관계와 다른 유산이 소련 붕괴 과정과 심지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와 다른 민족 문제의 양상을 보여주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립을 획득한 구 소련 소수민족 국가들의 입장에만 의존하거나 단순 일반화된 민족 자결주의 혹은 민족 국가 건설론에 입각한 구소련의 과거 민족 억압에 대한 논의는 경계해야 한다. 비슷한 문제는 종교 등 문화에 대한 영역에서도 존재한다. 특히 소수민족 문제와 관련하여 그들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구 소련 내 이슬람에 대한 연구에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구 소련 민족/국가들 중에서도 이슬람 화된 시기와 정도, 수용 양상이 매우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수용 과정에 대한 역사적 팩트는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하는 반면, 수용한 민족과 지역의 여러 특수성을 세밀하게 분석하지 못 하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70년간의 소련 시기를 거치며 매우 세속화되고 변질된 이슬람, 종교로서가 아니라 관습으로 굳어져 종교적 요소가 약해진 면도 존재하는 구 소련 지역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적 분석도 눈에 띈다. 또한, 외부 세력에 대한 저항과 계급적 이익 표현으로 이용되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중동의 이슬람과 유사한 것으로 일반화되거나 이슬람주의자들은 모조리 근본주의자로 오해되기도 한다. 러시아는 그 자신 주변부 제국이면서도 동시에 내부에 주변부를 두고 있는 특이한 위치에서 연유하는 문제들이 많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주변부 제국주의 러시아와 현대 러시아 사이의 70년간의 전혀 다른 체제의 역사적 존재는 연속성과 단절의 경계와 내용 문제에 있어서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접근법을 요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 국가들의 고유한 문제들은 물론, 시장 체제로의 전환 이후 확산되고 있는 세계 보편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현실사회주의 체제를 규명하는 연구는 진보적 연구자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55 | 추천: 0
박현도/ 종교학자 욱일기(旭日旗)가 휘날리고,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의 죽음을 기리는 도덕이나 윤리의식이 완전히 마비된 일본정치인들이 득실거리고, 일본군의 천인공노할 강제적 성착취(性搾取)를 부인하고, 백주대낮에 한국인을 죽이자는 구호가 거리를 울리고, 일본은 침략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기막힌 역사해석이 난무하고.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한 일본이 패망한 지 68년이 된 지난 8월 15일, 바다건너 일본의 일상이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는 일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 되면 민폐 끼치는 것을 제일 혐오한다는 일본인의 문명화된 생활양식은 타인에 대한 진정어린 공감과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당하기 싫기에 남을 피해 다니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소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부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인륜의식이 마비된 집단처럼 보인다. 전후 손발이 닳도록 잘못을 빈 2차 대전 동맹국 독일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 말이다. 누구를 탓하랴.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했고, 아직도 약하여 일본정부가 우리를 아직도 우습게 여겨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저 힘을 길러 반드시 어디 한번... 분노가 치미니 극단적인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래서 역사청산이 중요하다. 전후 청산을 실패하다보니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로 둔갑하고 말았다. 전범(戰犯) 괴수 일왕(日王)을 정리했어야 했고, 우리가 아니라 일본을 둘이나 셋으로 나눴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였으니 전범 후손들이 수상이 되고 각료가 되어 일본을 기괴한 나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만 많고 생각 없는 한심한 일본의 추악한 정치지도자들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에 기대기보다는 우리 개개인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소수라 할지라도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연대하여 전 세계에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일본 정치인의 만행을 쉬지 않고 알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 우익의 자금줄이 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야 한다. 시끄럽게 떠들면서 하는 것 보다는 조용하고도 철저하게 외면하는 시민 의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같은 값이면, 아니 조금 싸더라도 쓰지 말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휘두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무기가 바로 소비니 말이다. 남양유업이 왜 고개를 숙였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안중근 의사는 왜 자신을 버리면서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쏘았는가? 이제는 우리가 이등박문 잔당을 굴복시켜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이등박문이 부활하고 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다시 노예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이슬람 전통은 거짓을 행한 자의 말로가 지옥불이라고 가르친다. 안중근 의사 사진 출처 - 한겨레   인간이 행한 것을 되돌아보는 그날 지옥이 보일 것이다. 잘못을 범하고 이 세상의 삶을 더 좋아한 자들은 지옥불에 머물 것이요 주님 앞에 서길 두려워하며 속된 욕망을 참은 자들은 천국에 머물 것이다. (꾸란 79장 35-41절) 나는 우리 한국인은 보편적 공동선을 숭상하고 사랑하기에 일본의 양심적인 사람들과 함께 결국 복락을 누리리라 믿는다. 인류 공동선을 도외시한 이등박문 잔당의 최후는 비참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전장에 나섰다. 이등박문을 존경하던 이들이 부끄러움에 욱일기를 찢고,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일본군에 희생된 어린 소녀와 여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전쟁피해국과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일본이 침략국이었음을 고백하고 속죄하는 날이 올 때까지 강건하고 흔들림 없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자.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정신을 길라잡이로 삼아 드높이고 대한국인이 되자.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5절)
2017-08-07 | hrights | 조회: 155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겨우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하지만, 핵심적인 2명의 증인은 빠진 상태이다. 이제 청문회도 진행된다고 하니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과연 진실이 밝혀질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과정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는 의혹 제기가 있었다.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급박한 상황에서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했고, 그 수사마저 왜곡되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상황이 이쯤 되면 국정조사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라도 당연히 해야 할 것 같은데, 여당은 마치 선심쓰듯 조사일정에 합의하고 야당은 장외투쟁이라는 강공책을 쓰면서도 중요한 증인채택에는 결국 합의하지 못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었다.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정보기관이 정치에, 그것도 선거에 직접 개입했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대에나 있었던,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라는 말도 여러차례 들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부정하는, 민주화 시대에 있을 수 없는 행위’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국민들은 이런 주장에 식상해 버린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으레 서로를 향해 내뱉는 독설이겠거니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재벌 총수들이 100억, 1000억을 횡령하고 비자금을 조성해도 으레껏 그러려니 여기는 둔감한 반응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 야당의원의 발언을 트집 잡아 시작된 이른바 ‘NLL 논란’은 여당의 대성공으로 끝이 났다. 논쟁에 종지부를 찍자고 제안한 회의록의 공개는 느닷없이 ‘사초 증발’ 사태로 이어졌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은 물론 대통령마저 역사를 지우는 일이라며 이를 한 수 거들고 나섰다. 그 효과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였듯이, 국정원 이슈의 희석이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참모진의 개편을 단행했는데, 1993년 지역감정을 자극한 ‘초원복집’ 사건으로 유명한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서실장으로, 역시 공안검사 출신인 홍경식 서울 고검장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마찬가지로 공안출신인 정홍원 총리와 함께 공안검사들이 내각을 장악하는 것과 함께, 이것은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검찰의 대응을 청와대가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민정수석으로 하여금 검찰을 더 잘 장악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는가라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사실 검찰이 국정원 사건을 열심히 수사했던 것은 자신에 대한 개혁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경찰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알다시피, 경찰과 검찰은 최근 몇 년간 갈등과 견제 상태에 있었고, 검찰은 작년 부패와 성추문 등 개혁을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는데, 대선 당시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경찰의 축소수사 의혹은 검찰에게 좋은 반전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제6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민주주의'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1980년대 후반, 일단 외형은 군사정권의 틀을 벗은 국가권력이 북한의 존재 혹은 남한 일각의 통일운동을 이용하여 국내의 여러 정치적 이슈들을 잠재우는 상황을 ‘공안정국’이라고 불렀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이와 같은 공안정국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국가안보와 공공불안을 자극하는 이와 같은 권력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사회현실과 넘치는 정보 속에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아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무디게 하는 데에는 안보와 공안만큼 좋은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랜 세월 적대관계에 있어 온 강력한 독재국가가 바로 코앞에 군대를 배치해 놓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감벤은 "정치적 지배자들이 민주주의를 인정하기 시작한 지 한 세기도 되지 않았는데, 민주주의는 이미 아무런 내용이 없는 공허한 개념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논쟁하고 행동하고 심지어 위법행위까지도 감행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민주주의란 이렇게 아무런 내용이 없이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있는 것인가.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랑스러운 ‘민주화’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정치적 지배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 맞는가. 혹시라도 소수 세력 있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전제정이나 귀족정을 보다 선호하는 정치세력은 없는가.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질문에 앞서 가장 기본적인 것 하나는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국가의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하고 제도적인 재발방지책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국가안보에 아무리 중요한 정보원이거나 청와대라고 해도 말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34 | 추천: 0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첫 신고전화는 고등학교 때였다. 등굣길 버스 안에서 목격한 교통사고를 119에 신고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나는 112에 한번, 동네 파출소에는 여러 차례 신고전화를 걸었다. 대학부터 결혼 전까지 서울에서 여덟 번 이사했고 결혼 후에도 다섯 차례 이사를 했다. 덕분에 여러 동네 파출소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 그 중 나를 정말 당황하게 만든 사건은 홍대 담벼락 아래에서 살 때였다. 앞집 다세대주택 이층에서 매일 저녁 같은 시간이면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아이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사는 막다른 골목으로 부인이 맨발로 도망쳐 나왔다. 나는 황급히 파출소에 전화했고 상세한 위치 설명도 덧붙였다. 초조하게 경찰을 기다렸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록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고 앞집 상황은 종료된 듯 했다. 황당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졸고 있던 참에 희미하게 내 이름이 들리는 게 아닌가. 화들짝 정신 차리고 들으니 진짜였다. 경찰 2명이 골목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 진짜. 신고한 사람 이름을 물어볼 때부터 이상하다 했더니, 저렇게 동네방네 내 이름을 불러대다니, 신고한 사람의 신원은 지켜주는 거 아닌가.’ 속으로 별 생각을 다하며 경찰에게 나라고 했더니, 본인이 맞는지 주민증을 가져오라는 거다. ‘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그 다음엔 신고한 집이 어디냐, 벌써 상황 종료된 거 같다고 했더니 내 전화번호를 적어 가는 거다. ‘도대체! 왜! 내 주민증과 전화번호가 필요하냐고?’ 갓 대학을 졸업한 신참 사회인인 나는 항변하지 못했다. 왜 그런 꼴을 당한 건지, 원래 신고하면 이런 것인지만 궁금해 했다. 그때 잠시 앞으로 신고전화를 하면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은 했다. 그 후 나의 신고정신 발현을 보면 그 경험이 내게 트라우마로 작동한 것 같지는 않다. 당연히 공익을 위해 내가 나서서 신고하는 것이라 여겼고 다른 사람들은 귀찮고 방법도 몰라 하지 않을 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해 다산콜이 생겼다. 다산콜은 동네 파출소 전화번호나 구청 민원과 전화번호를 알아둬야 하는 수고를 덜어줬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신속하다는 면에서 광케이블이 깔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세 차례 120을 눌렀다. 인도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된 낮은 턱 부분을 가로막은 차량 신고, 문 앞 스피커로 음악을 지나치게 크게 틀어놓은 가게 신고, 자신의 가게 전용 주차금지 입간판으로 마을버스 정류장 앞 도로를 점거한 홍대 앞 클럽 신고. 여전히 나는 광속으로 신고를 하지만 뭔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꼭 신고전화로 해결해야만 했을까? 그 당사자들에게 왜 대놓고 말하지 못했을까? 직접 부딪히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떠올리기도 전에 나는 120을 누르고 있었다. 그만큼 낯선 사람들과 불편한 상황을 대화로 풀어나갈 용기와 능력이 내겐 없었던 것이다. ‘혹시 입바른 소리 했다가 한 대 맞으면 어떡하나, 말싸움으로 번지면 피곤한데......’ 이 정도에서 나는 편하게 120을 누르는 걸로 나 스스로와 타협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언제부터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게 어렵고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경계의 몸짓을 갖게 된 걸까. 무슨 일이든 대리자를 통해서 해결하거나 말을 전하는 게 편하게 생각되고, 그것도 아니면 목소리도 없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를 통해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만큼 우리는 관계성을 잃어가고 있고 회복할 의지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애쓰면 원시적이라거나 너무 터프하다고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다. 공권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당연히 있다. 클랙슨을 울린다고 술 취한 사람에게 폭행을 당한다면 대화로 해결되긴 어렵다. 내가 한 신고전화의 경우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신고전화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대화로 풀 수 있는 상황들이 분명히 있었다. 언젠가부터 대화나 설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머릿속에 없다 보니 시도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 현대사의 크고 작은 경험이 사람들에게 체화된 흔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논리적 비약이 좀 심한가?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과 말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주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생각해보자. 경비실 아저씨가? 아니면 보험회사 직원이? 그것도 아니면 정부가? 지금은 귀찮고 힘들어도 내 삶의 터전을, 이웃을 만들어가는 데 내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때인 것 같다. 잘되면 작게는 공동 육아에서 크게는 협동조합이나 마을 공동체가 될 수도 있겠다. 적어도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을 누구나 염두에 두는 세상이 되려면 내 가족, 같은 회사 직원, 같은 아파트 주민 등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먼저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직접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관계라면 대리자에게 부디 그 역할을 맡기지 않으면 좋겠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66 | 추천: 0
신하영옥/ 광명시민인권센터장 광명으로 출퇴근한 지 일 년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던가? 때로 좌절하고 때로 긍정하며, 시간과 편견, 왜곡과 오해들, 이런 것들과의 씨름, 버티기 한판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확확 돌아가거나 바뀌는 것은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화들은 있다. 버티면서 차지한 공간이 점차로 넓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그러나 이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무엇보다 내가 힘들다. 그래서 자꾸 뭔가 되어가고 있는 쪽으로 마인드컨트롤 중이다. 몇 가지 변화를 살펴보면, 위원회 구성이 바뀌어 조금 더 영향력 있는 논의와 결정이 가능해졌고, 인권조례의 내용이 수정되어 지자체의 의무와 인권센터의 역할이 강화 되었다. 인권센터 직원들은 고용이 일 년 연장되었다. 인권세미나 팀은 인권의식과 연대의식이 높아져 실천의 영역으로 진입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엔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이고 조사 및 구제에 관한 시스템을 구성해 가는 중이다. 좋은 지역 분들을 만나면서 가능성을 덧셈했고, 이번 주는 처음으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을 진행한다. 하반기엔 다시 인권학당을 열 계획이다. 그리고 다시 발품을 팔아 센터와 관련한 여러 분들을 만나러 다닐 것이다. ‘인권기본계획‘안’이 현재 집행부에서 완성 중에 있어, 본격적인 하반기 사업 전엔 인권기본계획안에 의한 중장기 사업들이 셋팅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고립무원의 섬에 갇힌 듯, 혹은 공무원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포위된듯했던 고립감도 요즘은 극복되고 있다. 시간의 힘이다. 좀 더 지나면 더 많이 익숙해지고, 그만큼 인권센터의 영역도 확장되리라 기대한다. 며칠 전,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이제는 다른 곳에서 활동(?)중인 동료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도달한 곳은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운동단체의 활동도 쉽지는 않았다. 순간순간 처리해야 하는 일감들, 이견과 논쟁들, 내부의 권위주의, 소통의 불편, 비전의 부재 등 갈등과 불만, 과중한 업무 들이 그랬다. 그러나 그 친구 왈 ‘나와 보니, 그 안의 부조리가 얼마나 조리 있었는지, 비합리성이 얼마나 합리적이었던지 알겠다.’는 것이다. 그곳은 그나마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다는 것, 그리고 어쨌거나 현실의 부조리와 비합리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현실극복적인 성격이 강했던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고 고통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곳을 벗어나자마나 세상과 현실은 맨 얼굴, 속살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상상이상의 모습으로. 세상이 이렇게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아마도 이것이 현실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들의 일반적 모습이 아닐까 하며, 여기서도 버텨야 한다고, 서로 격려했다. 버텨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리고 힘들 때는 조금이라도, 정말 실낱같은 변화의 조짐이라도 침소봉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자고 위로했다. 그러나 결코 이러한 현실에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하자고 다짐했다. 서로 거울이 되어 줄 수 있음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같은 날 저녁에 학교동기모임이 있었다. 어느덧 50을 불과 몇 년 앞둔 나이에 직면한 중년의 남성들, 배도 적당히 나오고, 머리도 벗겨지고, 대충 아이들이 대학진학 즈음에 있고, 건강이 관심사인 이 중년 동기들의 수다주제는 회사생활의 어려움과 일상의 일탈에 대한 소망과 추억이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회사기밀의 보호를 위한 개인정보의 침해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정보에 대한 무제한적 개입과 통제, 회사정보 보호를 위한 개인적영역의 삭제. 예를 들면 이렇다. ‘개별 하드 없이 중앙컴퓨터에 연결하는 방식’, ‘일과가 끝나기 전 하루 세 번의 사용흔적 삭제’, ‘개인사용 컴퓨터에 대한 회사의 수시 검열’ 등 이쪽으론 문외한이라 그들이 사용한 전문용어를 풀어쓰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문제제기는 그렇다 치고, 왜 그러한 회사의 방침을 당연한 듯, 질문조차 하지 않는 그들이. 본인들이 회사의 부품으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 것이 내 눈엔 보이는데,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건지, 그저 귀찮다는 정도의 반응에 머문다. 그것이 더 안타깝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집어넣으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서서히 덥혀지는 물속에서는 뛰쳐나오지 않고 결국 그 안에서 죽는다. 길들여진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매 순간 물의 온도를 확인하지 않고는 살아있음이란 그저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다름 아니게 된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나는 때로 두렵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여하튼 관련자들과 협조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는 것이 혹시나 길들여지는 과정은 아닌지 말이다. 어느 순간 위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스스로 ‘을’의 신분과 태도를 내장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처음 시작할 때의 패기와 열정, 정의와 분노가 소멸하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이 혹시나 처세술은 아닌지 두렵다. 그리고 더 두려운 것은 변화와 그 일에 대한 욕망대신 적당히 안주하고픈 욕망이 들어서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 누군가를 만나 나를 검열당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매 순간 물의 온도를 간보는 작업을 멈추지 않으려는 것이다. 희망을 보지 못하면 포기하고 싶어진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삶은 죽음과 다르지 않다. 이 사회를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부당함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타인과 자신모두-하지는 않는다 해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 민감함 자체를 버리는 것이다. 섬세하다고 포용력이 좁다고 할 수 없다. 민감하고 섬세한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되, 그에 반하는 현실과 그 현실을 견뎌내는 자신을 너무 미워하고 못 참을 필요까지는 없다. 안 보고 싶다고 안 보고 살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봐야하고 견뎌야 하고 넘어야 하는 것이라면 포용하여 개선 혹은 수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민감함과 둔감함의 동시성이 가능할까 싶지만, 그것이 이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세상에서 변화를 꿈꾸면서도 자기유실(流失)을 막을 유일한 전략일수도 있다. 그것이 버티는 외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고인 듯 보이지만 흐르고, 매일 그대로인 듯한 풍경도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존재하면 변한다. 아니, 존재가 변화다. 여기서 변화는 당연히 진보하는 것이다. 오늘도 난 희망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찾아오는 누군가들로부터. 찾아오는 이들이 곧 존재의 확장이기때문에. 그래서 다시 정의감과 패기의 ‘각’을 다듬는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90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최근 전개된 이른바 ‘막말 정치공학’의 중심에 서 있는 대통령 박근혜 씨는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작년 대선 투쟁이 격렬한 시점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 후보로서 그녀가 막말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국정원 댓글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를 주장하는 상대방 후보인 문재인 씨에게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만약 사실이 아닐 경우 문재인 씨더러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지, 설사 문재인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지, 혹은 아니면 “제가 사실을 잘못 알았습니다.” 하고서 간단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 책임의 수위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그 ‘막말’은 현실적인 논리상 만약 국정원 댓글 사건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어느 정도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역시 가늠할 수 없지만 그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임에 틀림없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진실 공방이 이루어지고, 그 진실 여부를 어떻게 주장하는가에 따라 엄청난 이익과 손해가 갈릴 경우, 한쪽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자기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예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검찰에 의해 당시 국정원장의 지휘에 따라 국정원이 대대적으로 댓글 달기 등을 활용해서 신성한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로 크게 물들 게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야가 이를 국정조사를 통해 그 진실을 더욱 세세하게 밝혀 책임 추궁을 하겠다는 뜻을 모았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그런데 여당인 새누리당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수장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이미 저질러 놓은 막말이 있으니 그 막말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다, 아예 국정조사라고 하는 국가적인 강력한 조치를 통해 그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집권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아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방책은 대대적인 물타기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으리라. 그래서 대선 투쟁 때 써서 크게 이득을 본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발언’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럼으로써 그야말로 막말의 정치공학이 대대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국정감사의 대상 기관인 국정원의 수장이 자진해서 총대를 메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막말’의 정치 상황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공공기록물이라는 미명 하에 정상회담의 비밀 기록을 노골적으로 공개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예 국정원장 남재준 씨는 그 기록을 보아 당시 대통령인 노무현 씨가 NLL을 포기했음에 틀림없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이야말로 최고도의 막말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남재준 씨가 주도한 막말의 배후에서 애초 막말을 일삼은 탓에 책임을 져야 마땅한 대통령 박근혜 씨는 ‘침묵’으로써 남재준 씨의 막말 행위를 비호하고 있다. 자신이 내뱉은 막말에 대해 침묵 외에는 책임을 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수하로 하여금 더 큰 막말을 하도록 지시 내지는 방치를 하는 것이 최선의 역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저 귀찮은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자칫 ‘부정선거’ 운운하면서 본인의 책임 문제가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면 대대적인 국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정확한 우려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분명 이렇게 집권 세력에 의해 실제의 막말 정치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질펀하게 전개되고 있기에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막말의 원흉인 양 엉뚱하게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귀태’ 운운한 국회의원 홍익표 씨가 원내 대변인의 자리를 자진해서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당 대표인 김한길 씨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손하게’ 사과하고 만 것이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으로서는 천만다행의 전술적인 대 성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적반하장, 막말이 말을 먹어치운 꼴이다. 그러니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다. 먹힌 말이 막말을 치고 올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막말’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막말’은 말 그대로 ‘마지막 말’이다. 그러니까 막말은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막말은 앞일을 두고서 함부로 발설되는 것이다. 예컨대 “만약 네 말이 옳다면, 내가 손가락에 불을 켜고 하늘로 올라가겠다.”라든가, “이제부터 내가 너와 만나 함께 일한다면, 나는 개 불알 밑으로 난 개자식이다.”라는 식의 말이 막말이다. 예컨대 “만약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이 사실이라면 후보직(혹은 대통령직)을 걸고서 책임을 지겠다.”라는 식의 말이 막말이다. 이러한 막말은 정치인으로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에게 많은 대다수의 국민의 미래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숙석비서관회의에서 홍익표 민주당 전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 등 최근 '막말' 논란에 대해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홍익표 씨나 이해찬 씨의 발언을 막말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막말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막말이라면, 그들의 말이 “만약 이번 국정원의 부정한 선거개입을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에서이다. 만약 그들이 그런 뜻으로 발언을 했다면, 막말일 수도 있다. 만약 대통령이 국정원의 부정한 선거개입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그들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아예 정치적으로 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일체 인정치 않는 행위로 일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쪽이나 여당에서 보이는 반응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말을 막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의 부친의 치명적인 약점을 꼬집어 비난했다는 이유에서인 것으로 보인다.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은 대통령인 박근혜 씨 자신도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치사하게도’ 혈통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면서 비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막말이라는 것이다. ‘막말’ 개념에 대한 오인이다. 막말은 말을 점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합성과 논리적인 정합성을 갖추지 못한 채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함부로 장담할 때 성립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눈과 귀가 온통 쏠려 있는 현안인 ‘국정원의 부정 선거 개입’에 관련해서 맨 처음 막말을 한 장본인이 오히려 수하의 막말 행위와 자신의 침묵을 동원해 더욱 더 막말의 상황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어찌 강력한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과 행동의 일관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확실하게 지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끌어올려 최고의 통치자인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인 그 ‘박근혜’는 어디로 갔는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사라질 수도 없었던 것은 아닌가.
2017-08-07 | hrights | 조회: 165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Mahdi Abdul Hadi, Head of PASSIA, http://www.passia.org) 2009년에, 팔레스타인의 두 주요 파벌인 파타와 하마스는 화해와 현재 난국을 타개할 새로운 통합 정부 구성을 목표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집트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맡은 이 회의는 이 의제 말고도 보안대 개혁, PLO의 구조 개혁, 선거, 그리고 팔레스타인 통합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쟁적 이슈들을 다루기로 되어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2011년에 중지되었다가, 2013년에 재개되었고 두 파벌은 마침내 마무드 압바스를 지도자로 하는 기술관료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또한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단체를 포함시키기 위하여, 전통적으로 파타가 이끌던 PLO를 개혁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인정할 것인지, 미래의 팔레스타인 국경은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두 파벌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서 투쟁을 선호하는 반면 파타는 협상과 대화의 방식을 선호한다. 파타와 하마스의 정치지도자들은 앞으로 나아갈 다양한 방법이 있다. 팔레스타인 대통령 압바스는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의 외교 사절단과 협력하고,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와의 협상 개재를 위해 일할 수 있다. 그 와중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받지만 이스라엘의 군대와 안보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압바스가 2007년과 2008년의 대화에서 네타냐후의 전임자였던 에후드 올메르트와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평화회담에 대한 압바스의 의제를 거부한 현재 우파 이스라엘 지도자와 협상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고 믿는다. 압바스의 의제는 1967년 휴전선을 기준으로 팔레스타인 영역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의 완전 동결을 포함한다. 네타냐후 정부와의 밝지 않은 협상 전망과 관계회복을 볼 때, 압바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지난해의 팔레스타인 유엔 청원에 후속 조치를 취하고, 올 9월의 UN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승인을 확장하고, 국제기구 가입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법 전문가들을 모아서 하나 이상의 사건을 국제사법 재판소에 제출해서 이스라엘의 잔학 행위를 고발하고, 다른 국제적인 정치나 법 기구들에 가입하는 것이다. ▲ 마흐디 압둘 하디(Mahdi Abdul Hadi)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 소장   하마스는 어려운 위치에 놓여있다. 하마스의 지도자들은 가자에 위치한 국내 지도층과 도하(카타르)에 추방당해 있는 실용적인 지도층으로 갈려있다. 하마스는 예루살렘을 유대화시키려고 하는 이스라엘의 현재 의도를 깨닫고 ‘예루살렘 문제’에 집중해야 하며, 동시에 PLO와 팔레스타인 정치시스템에도 집중해야 한다. 또한, 미래에 어떤 종류의 투쟁을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하마스는 기존의 협력자들로부터 지지를 잃고 있는데, 2011년 다마스쿠스를 떠나면서 시리아로부터 지지를 잃었고, 18개월 전에 시리아 반군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란으로부터 지지를 잃었고, 헤즈볼라에게 시리아 분쟁에서 빠질 것을 요구하면서 레바논과 헤즈볼라로부터 지지를 잃었고, 2013년 7월 초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집트의 지지를 잃어버렸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범아랍주의와 팔레스타인 통합정책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잃어버린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이슬람주의를 계속 추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하마스 대변인 대부분은 화해 의제를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화해의 시기와 절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마스는 먼저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어 선거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압바스는 선거를 먼저 치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재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하마스 행정부가 해체되면, 하마스 관리들이 구속당하지 않고, 선출된 하마스 후보들이 구금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정치판의 변화를 고려할 때, 파타에 비하여 하마스의 영향력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네타냐후 정부와의 협력이 어려워 보임에도 불구하고, 압바스는 웨스트뱅크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기부금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존 케리의 현재 계획을 계속 실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하마스는 케리-네타냐후와 케리-압바스 만남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재선된 하마스 지도자인 칼리드 마샬은 두 파벌 간 화해를 강력하게 지지하며, 이집트와 터키가 협력을 계속 중재하기를 희망한다. 예를 들어 터키의 에르도간 수상이 가자지구를 방문 할 때 압바스가 참가하는 것을 권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압바스는 이 기회를 활용해 하마스를 포용하고 고립을 끝낼 수 있다. 이 회의에서, 두 파벌은 선거일정을 정하고, 과도 기간 동안, 압바스가 이끄는 독립적인 기술관료 정부 구성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두 파벌 모두 각 파벌의 이득을 넘어서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앞세운다는 분명한 신호가 될 것이고, 압바스는 ‘마지막으로 정통성 있는 PLO리더’가 되겠다는 그의 명분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 영문 원고 번역은 김해서 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5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