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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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광조/ CBS PD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대통령은 ‘정부가 설마 위험한 쇠고기를 국민에게 먹이겠냐’며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값 싸고 품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를 위한 결정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작 그 소비자들은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결정을 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독재자의 폭거에 항거했던 굵직굵직한 저항운동을 제외하고 국민 다수가 이토록 분노하고 자발적인 행동에 나섰던 전례가 있었던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청소년들까지 대거 나선 것을 보면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상황의 이런 심각성은 정부도 또 이른바 보수언론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부와 몇몇 보수언론들의 진단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됐다. 정부는 광우병을 우려하는 여론을 반미좌파들에 의해 선동된 오도된 여론이라고 규정하고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사실’, 아니 자신들의 신념을 국민에게 설득하기 위해 갖가지 진기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나부터 먹겠다’는 대통령과 행정부처 구내식당에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한 꼬리곰탕을 메뉴로 올리겠다는 장관,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국회의원까지. 여기저기서 솔선수범해서 먹겠다는 선언이 잇따르는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 안전하다며 신문광고를 내고(미국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말이다) 광우병을 우려해 쇠고기 협상 반대에 나선 촛불시위를 두고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운운하며 시민들이 비과학적인 미신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하는 국회의원도 있다. 혹자는 이런 얘기도 한다. 세상에 100퍼센트 안전한 게 어디 있냐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골프장에서 벼락 맞아 죽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정부 편을 드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수학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확률적으로 무시해도 좋을만한 수치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 건가? 광우병이 처음 발견된 영국의 경우 지금까지 약 15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는 모르지만 혹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분들이 ‘그 정도면 1년 동안 발생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아니 걱정스럽다. 교통사고로, 각종 강력 사건으로 또는 천재지변으로 이 순간에도 숱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값싼 쇠고기 배 불리 먹고 몇 십 명, 몇 백 명 쯤 희생되는 건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르겠다. 쇠고기 먹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게 평가되는 걸 보면 ‘이밥에 (쇠)고기 국 먹는 것이 공산주의’라는 북한이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정말 국민들에게 그렇게 값싸고 품질 좋은 쇠고기를 공급하고 싶다면 호주산 쇠고기에 관세를 낮추고 수입을 확대하든지 몽골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든지 대안을 찾으면 될 일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은 위험이라도 사전에 예방을 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하는 건 상식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그 뿐인가. 이런 예방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하는 건 실용을 표방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념에도 맞지 않다. 왜 그런가. 유럽의 사례를 보자. 지난 1990년 5월 광우병이 처음 발견됐던 영국에서 인간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당시 영국 농림부 장관이었던 존 검머는 “영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며, 자신의 딸과 함께 텔레비전에 출연해 쇠고기 버거를 먹는 장면을 연출했다. 다행히 당시 검머 장관의 딸은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버거를 먹지 않았다고 하지만 검머 장관의 이 시식행사 이후 영국에서는 엄청난 광우병 파동이 불어 닥쳤다. 그 뒤 영국에서는 18만 두가 넘는 소에서 광우병이 확인됐고 이로 인해 약 4백만 마리가 소각 처리됐다. 말이 4백만 마리지, 이건 대 학살이다. 영국만큼 심각하진 않았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국가들은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은 물론 대외적인 신인도 하락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뿐인가. 영국에서는 1995년 인간 광우병으로 19세 청년이 사망한 뒤 지금까지 약 150명 이상이 인간 광우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광우병의 잠복기간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2015년쯤부터 해마다 약 2만 명 정도의 영국인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지난 2001년까지 동물 사료를 먹은 애완용 고양이 100마리가 광우병으로 죽었다. 확인된 것만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동물성 사료를 먹은 다른 애완동물들도 광우병의 위험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예방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했다가 만약 미국에서 유럽과 비슷한 상황이 초래된다면 그 후과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미국에서 축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놓고 볼 때 아마 공황상태가 초래될 것이다. 이런 위험을 방치하고 키우는 것이 미국에 이로운 일인가? 영국을 휩쓴 광우병 파동이 재연되질 않길 바라지만 마냥 안심하기에는 모든 게 너무 불확실하다. 미국은 광우병의 공포가 유럽을 휩쓸던 지난 1997년 동물성 사료 규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동물성 사료 규제 조치는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금지했을 뿐 다른 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는 계속 허용했고 이런 사료정책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광우병은 반추동물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교차 감염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의 경우 광우병은 밍크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모피를 만들기 위한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살코기와 부산물은 동물성 사료로 만들어져 소에게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가 제조되는 과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미국의 공장식 축산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화제의 책 <성난 카우보이>를 썼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윈프리로 하여금 ‘햄버거 못 먹겠네’라는 그 유명한 발언을 하게 만든 하워드 리먼은 자신의 책에서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워드 리먼은 몬태나 주에서 대를 이어 축산업에 종사했던 사람이다. “농장에서 나온 가축 이외에 사료업자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안락사 시킨 애완동물이다. 전국의 동물 수용소에서는 매년 6-7백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죽어간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스만 하더라도 매월 약 2백 톤의 안락사한 개와 고양이를 사료 공장으로 보낸다. 이런 섬뜩한 혼합물을 빻아서 증기로 쪄내는데... 무거운 단백질 원료는 말려서 갈색 가루로 만든다. 그 중 4분의 1 정도는 배설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 갈색 가루는 가축의 사료뿐만 아니라 대부분 애완동물의 사료에 첨가된다. 축산업자들은 이것을 ‘농축단백질’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9천만 마리의 육우 가운데 약 75퍼센트의 육우에게 ‘영양가를 높인’ 동물성 사료를 일상적으로 먹인다.” 섬뜩한 광경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97년 동물성 사료 규제정책을 실시한 뒤에도 이런 현실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소의 피는 여전히 소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지난 2003년 광우병 소가 발견된 뒤 지금까지 모두 세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약 1억 두에 이르는 소를 사육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률적으로 아주 낮은 가능성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경우 광우병 검역체계가 유럽연합이나 일본에 비해 대단히 허술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2003년 12월 첫 광우병 소가 발견되기 전까지 전체 축우의 0.1 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했다.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이후 광우병 검사 대상이 1 퍼센트로 확대되었지만 다시 0.1 퍼센트로 축소되었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에서는 전체 축우의 25 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고 일본은 모든 축우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만약 유럽연합이나 일본처럼 광우병 검사 대상을 늘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더구나 그동안 미국에서 확인된 광우병 소 3마리 중 2마리는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뭘 먹고 컸는지 확인조차 못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광우병 파동 이후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정착되고 있는 강력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와 이력추적제, 강화된 광우병 검사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우리 정부의 ‘오역’ 또는 ‘거짓말’과는 달리 미국의 동물성 사료 통제조치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았는가. 현재 미국의 동물성 사료통제 조치는 소의 월령이 30월 미만인 경우 광우병 여부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특정위험물질을 포함한 모든 부위를 다른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그 가축을 다시 소의 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무책임한 조치가 아무런 후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에 그런 요행은 없다. 미 농무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낸 도축과정의 문제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견된 2003년 12월 이후 14개월 동안 도축과정에서 광우병 검역과 관련해 모두 829건의 위반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 산 쇠고기를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월령 30개월 미만의 경우 특정위험물질까지 수입하기로 했으니 현재의 합의대로라면 쇠고기 가공품이나 소의 피로 만든 사료 등도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광우병이 국내에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가 확실히 개선됐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미국에 가본 사람이라면 적지 않은 미국 소비자들이 ‘grassfed’ 등의 마크가 찍힌 유기농 쇠고기를 먹는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선량한 미국 시민들이 공장식 축산업에 의해 ‘제조’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염려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건 광우병뿐만이 아니다. 항생제와 호르몬 남용, 유전자 변형 사료 사용 등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미국의 허술한 광우병 예방, 검역제도를 비판하는 건 이기적인, 또는 반미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소비자는 물론 미국 소비자, 나아가 전 세계 소비자의 건강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지구적인 윤리를 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경쟁자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라는 대통령의 말을 기억한다. 무한경쟁시대에 국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하겠지만 지구온난화나 먹거리의 안전 문제 같은 지구적인 이슈와 관련해서는 윤리적인 경쟁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와야하지 않겠는가. 지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더라도 미국 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수입을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우선 안전성이 검증된 것부터 하자는 얘기 아닌가. 그 뒤에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 강화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협상을 거쳐 수입을 확대하면 될 일이다. 소 한 마리 당 광우병 검사 비용이 20달러 정도라고 한다. 검사 두수가 늘어나면 그 비용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미국 산 쇠고기의 신뢰를 확보하는데 이 정도 비용도 지출하기 어렵단 말인가. 당장 전수 검사가 어렵다면 유럽연합 수준으로 샘플을 확대하는 노력이라도 보여야할 것 아닌가.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가공 처리하는 모든 쇠고기에 대해 자발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하려던 기업을 오히려 방해했다. 국내에도 쇠고기를 수출하던 ‘크릭스톤팜스’라는 업체가 일본으로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전수검사를 하려다 미 농무성의 제지를 받고 현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가? 난 대한민국 국민만큼이나 선량한 미국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지구적인 차원의 환경과 생명은 어느 한 국가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촛불시위를 반미로 매도하는 분들이여, 미국 시민들의 안전을 진정으로 걱정해 봤는가. 제발 친미 좀 제대로 하자.
2017-07-20 | hrights | 조회: 23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 기자 1996년 3월, 런던의 봄(이라기보다 겨울)은 음산했다. 회색 구름이 머리 위 50m 상공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을 짓눌렀다. 비와 눈이 섞인 진눈깨비가 하루걸러 한 번씩 거리에 흩날렸고, 오후 5시가 되면 해가 졌다. 그 도시에 왜 내가 있었던가. 실연의 상처를 입고 난생 처음 해외로 도피한 것이 한 달이 되고 석 달이 되고 여섯 달이 됐는데, 물론 그런 '고급스런 도피'가 가능했던 데는 아버지가 큰 맘 먹고 가산의 일부를 탕진하도록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난데없이 혼자 지리산을 며칠씩 헤매고, 절에 들어가 한 달씩 눌러 앉고, 선배에게 두들겨 맞아 볼이 퉁퉁 부어 들어오는 장남을 구제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튼 실연의 청춘이 그 마음을 다져 잡기에 런던의 겨울은 너무 강퍅했는데, 춥고 습하고 배고팠다. 물가는 비싸고 말은 통하지 않고 친구도 없었다. 그때 이따위 감상의 갈피를 사납게 헤집고 들어온 사건이 하나 발생했으니, 이름하여 '미친 소 파동'이었다. 198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영국에서 '미친 소'가 발견됐다. 10년 뒤인 1996년 3월, 영국 정부는 이 미친 소의 질병이 인간에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비록 10년 동안 끌긴 했지만, 그들의 정부는 그래도 도덕적이지 않나. 스스로 그 사실을 실토하다니!) 기다렸다는 듯 그 해부터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먹었던 미친 소의 위력이 잠복기를 거쳐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영국 정부는 급히 수만 마리의 소를 도살했지만, 영국은 물론 세계가 발칵 뒤집힌 뒤였다. 유럽연합(EU)은 즉각 영국 소의 유럽 본토 반입을 금지했다. 소고기를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BBC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mad cow disease'라는 새 단어를 하나 배웠다. 그건 마치 ‘쌀밥을 먹으면 10년쯤 뒤에 뇌에 구멍이 생기면서 미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설사 그게 말이 된다 해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찌 믿을 수 있는가. 아무리 천하의 BBC가 그렇게 보도해도 나는 실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고기를 그냥 먹었다. 아시아에서 온 가난한 이주민이었던 나는 가격이 폭락한 소고기를 왕창 사서 자취방에서 불고기도 하고 두루치기도 하고 스테이크도 해서 먹었다. 10여년이 지난 요즘, 나는 급격하고도 치명적인 기억력 감퇴 증상을 겪고 있는데, 그게 잠복기를 거친 영국 미친 소의 변형 단백질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20여 년 동안 상복한 알코올과 니코틴의 위력이 이제야 발휘되기 시작한 때문인지, 심각하게 헷갈리고 있다. 여하튼 1996년 3월, 영국 사회는 큰 논쟁에 휩싸였다. 광우병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가 일전을 벌였다. 어느 날 오후, 영국 정부(당시는 블레어 집권 직전의 보수당 정부 시절이었다)는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벤트를 하나 벌였다. 국회의원들이 직접 거리에 나와 영국산 소고기를 '무료로' 나눠 줬다. 내각을 포함한 의원들이 직접 그 소고기를 먹는 시연도 벌였다. 어땠을 것 같은가. 시민들의 반응은 열화와 같았다. 빅벤 시계탑으로 유명한 템즈 강변의 국회 의사당 앞에 런던 시민들이 줄을 서서 그 소고기를 받아 갔다. 다만 줄지어 소고기를 받아간 시민의 절대 다수는 노인이었다. 영국에는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유난히 많은데, 네 발 달린 보행기나 큼지막한 지팡이에 몸을 기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 '안전한 영국 소고기'를 무지하게 받아 갔다. 어차피 인간 광우병의 잠복기가 적어도 10년 이상이니 그 노인들은 걱정할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보수당 정부는 새로운 프로파간다를 시작했다. 이른바 '음모론'이었다. 영국 소의 위험성이 완전히 입증된 것이 아니고, 체계적 검역을 거칠 경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데도, 프랑스와 독일 등이 영국을 왕따 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치즈는 안전한가? 독일의 햄은 안전한가? - 뭐 이런 질문을 던지며 영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때마침 유럽연합의 주도권을 놓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각축을 벌일 때였다. 오랜 진통 끝에 유럽연합의 꼴이 제대로 갖춰진 것이 1995년이었다. 영국인들이 보기엔 유럽연합의 '단결된 힘'을 과시한 첫 정책이 영국 미친 소 대응책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옛날부터 영국의 성장을 시기한 프랑스, 독일이 유럽연합을 만들어 세를 굳힌 뒤, 미친 소 사태를 과장해 영국 경제에 대한 본격적인 '해상봉쇄'에 들어갔다는 논리였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 음모론은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리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영국에선 샐러리맨들이 미국식 햄버거를 곧잘 끼니꺼리로 애용했는데,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앞 다퉈 '영국산 소고기가 아닌 호주산 소고기를 쓴다'고 선전했다가 영국인들에게 엄청 항의를 받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들 햄버거 체인점은 한동안 소고기가 들어가는 햄버거를 일체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사태를 모면했던 것 같다. 그때 영국 좌파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들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생명운동'을 벌였다.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채식주의자(라기보다는 채식운동가) 등이 노동당 좌파 블록과 연합했다. 주장의 스펙트럼은 다소 넓었는데, 모든 육식을 금지해야 한다는 급진 채식운동가들의 논리부터 식용 가축의 사육만이라도 금지하자는 논리까지 다양했다. 다만 가축이라는 이름을 빌어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방식으로 소를 대량 사육해온 인류 문명이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라는 성찰의 기운은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이었다. 런던 시내의 극장을 통째로 빌려 '채식 영화제'를 열기도 했는데, 가축의 사육과 도축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부터 육식의 반문명성을 풍자하는 단편영화까지 다양한 '고급 프로파간다'가 쏟아졌다. 그 시절 나는 실연의 상처를 잊고 행복해졌다. 불고기를 먹고 부른 배를 두들기며 가디언과 BBC에 등장하는 좌우 논쟁을 즐겼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정책 담당자는 물론 과학자, 철학자 등이 모여 생명, 가축, 육식, 무역 등의 전반을 가로지르는 토론과 논전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보다 이런 공론을 정책적 결과로 결실 맺는 민주주의 과정을 보면서, 나는 즐거웠다. 영국인들은 결국 ‘타협과 조정’에 성공한 셈인데, 이후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일을 금지시키고 각종 검역체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소의 뇌·척수 등 광우병 위험부위에 대한 식용을 일체 금지했다. 식용 가축의 '생태적 사육'과 '위생적 유통'을 위한 사회 체제를 갖추는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영국의 검역체계는 광우병에 대처하는 유럽연합 회원국 전체의 모범이 됐다. 유럽연합은 영국의 미친 소를 수입하는 대신 미친 소 대응책을 수입한 셈이다. 미국과 비교할 수 없는 유럽연합의 도덕적이고 과학적인 검역 체계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미국의 미친 소를 다루는 이명박 정부의 허술한 실용주의를 타박하는 것은 두말이 아까울 정도다. 정상적인 보수주의자라면 한국 닭 수입을 금지하는 미국에 대해 연일 비방을 퍼부어야 옳다. AI 조류독감 파동이란 철새에 병원균을 묻혀 반도로 날려 보내는 이웃 나라들의 음모이며, 조류독감에 걸린 닭도 충분히 익혀 먹으면 아무 탈 없으니, 날지도 못하는 닭을 조리하여 식용으로 포장해 수출하겠다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떼라도 써야 한다. 그 정도는 돼야 미국의 미친 소와 한국의 감기 닭을 비교급으로 놓고 무역 협상을 벌일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그 정도의 역할을 해줄 때, 진보주의자들은 한국의 조류독감과 미국의 광우병 사이에 놓인 ‘생명’의 문제를 짚어 보편적인 생태운동의 차원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시 한 번, 보수주의자들이 친미주의자가 되고 진보주의자들이 애국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수 언론이 ‘미국 소가 한국 소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는 기묘한 비교급의 기사를 쓸 때, 그것은 분명 비겁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다만 그 안에는 진보주의자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아주 없지 않다. 한국 소는 정말 안전한가? 한국인들이 소를 기르는 방식은 미국의 기업적 축산농에 비해 얼마나 더 생태적인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생태적으로 기른 소를 먹는다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가난한 사람은 동물사료를 먹은 수입소를 먹고 돈 많은 이는 생태적으로 기른 국산소를 먹는 일의 생명권적인 계급 불평등은 과연 시장의 조절기제에 맡겨 해결해도 괜찮은 문제인가? 이런 물음이 사라진 미국 미친 소 파동을 지켜보는 일은 안쓰럽고 쓰리다. 삶의 기본과 국가의 기초를 지키는 몫을 보수주의자들이 하지 못할 때, 그 사회에는 어떤 상상력도 들어설 수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학교급식에서 미친 소 볶음밥을 먹고, 하교 길에 분식집에 들러 미친 소 뼈 분말스프 라면을 먹고, 집에 돌아와 미친 소기름 샴푸로 머리를 감을 생각을 하는 나는 '자 이제 우리도 생태적으로 올바른 삶을 위해 전면적인 채식을 시작해 볼까' 따위의 제안을 아이 앞에 내놓을 수 없다. 코앞에 들이닥친 생존의 위협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는 성찰을 할 수가 없다. 미국 미친 소가 싼값에 들어오면 한국 소를 생태적으로 기를 축산농도 생태적으로 길러질 한국 소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분노가 사색을 짓누른다. 저열한 실용주의가 먹고 사는 실용 그 자체를 무너뜨린다. 하여 오늘은 그냥 거리에 나가 미국 미친 소를 들여오려는 미친 사람들에 대해 미치도록 욕하는 것으로 한국 진보주의자 노릇의 전부를 대체하도록 하자. 언젠가 우리도 미친 소와 감기 닭을 앞에 두고 인간과 동물의 생명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2017-07-20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지금까지 60년 동안 어느 정부도 손대지 못했던 일을 민간단체가 해낸 것이다. 해방 이후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탓에 왜곡된 역사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친일행위를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왜곡된 역사의 비극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이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친일행적으로 얻은 재산과 지위를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재생산하는 하는 동안,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재산도, 건강도, 목숨도 잃은 채 응당 받아야 할 명예나 포상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잊혀져갔다. 혼란한 근현대사를 살다보니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 말라. 혼란으로 인해 진실이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명단이 발표되는 기자회견장 밖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를 하고 있는 보수. 극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몇몇 단체들의 시위 장면을 보면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수립하지 못한 대가로 우리국민이 얼마나 많은 혼란을 겪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긴 시간을 혼란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새삼 암담한 마음이 든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4월 29일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하필이면 3.1절 기념사에서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독립유공자들’에게 ‘과거에 발목이 잡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뒤통수를 치던 대통령은, 얼마 전 일본 천황을 만나는 자리에서 상전이라도 만난 듯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더 이상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겠다고 바라지도 않은 인심을 베풀고 돌아오더니, 친일명단 수록 예정자 발표가 나던 날에는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며 찬물을 끼얹었다. 도대체 누가 일본을 용서했다는 것인지 그리고 친일로 인한 공과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용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은 그동안 우리에게 단 한번이라도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았다. 잊을만하면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 등으로 한.일 관계에 불신과 분란을 조장해 왔다.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이들에게 피해를 보상해 준 것도 아니다. 용서를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하나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라는 말인가. 내 것을 빼앗아가고도 미안해 할 줄 모르는 날강도를 일부러 찾아가 굽신거리면서 “모든 것을 덮고 용서할 테니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손을 내미는 것과 똑같은 꼴이다. 이러한 굴욕적인 외교를 실용이라고 부르는 정신 나간 언론부터 반성할 일이다. ‘친일로 인한 공과’라는 표현도 그렇다. 물론 친일명단 수록자들 가운데는 개인적인 능력과 노력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공’이 친일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덮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되, 진실은 진실대로 밝히고 역사에 길이 남겨두어야 한다. 이것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공과’를 보는 방법이다. 대통령은 이날 종교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국민 의식을 바로잡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고 정부는 모범을 보일 뿐”이라면서 “종교지도자들이 국민의식을 바로잡는 일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누가 할 소리를 누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 있던 종교지도자들에게 진심으로 당부한다. “대통령의 역사의식을 바로잡는 일은 국민들이 할 일이 아니고, 국민들은 모범을 보일 뿐이다. 제발 종교지도자들이 나서서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로잡는 일을 해 달라.” 정말이지 수준 미달의 대통령 밑에서 살기 괴로운 요즘이다.   이유정 변호사 * 現 법무법인 자하연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경력 사법연수원 제33기 수료,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법무법인 자하연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등
2017-07-20 | hrights | 조회: 31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선거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욕망의 정치'를 질타하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 유권자들이 뉴타운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 선거 결과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한편에서는 시민들이 '경제적 이해'를 기준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 한다. 딴은 그렇다. '계급투표'가 뭐 특별한 것이겠는가? 이렇게 보면 역설적으로 한국정치는 수도권의 자산계층이 정상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재벌들이 오매불망 외쳐대던 '수도권 규제완화'가 코앞에 와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수도권을 키워야 하고, 잘 키운 수도권이 나머지를 먹여 살릴 수 있다 한다. 그래서 규제완화는 필수란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위해서는 불도저로 돌진 할 태세가 된 듯 한 정부는 수도권 규제를 가장먼저 풀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수도권은 포화상태고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동반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는 낡은 축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유행지난 물정모르는 노래일 뿐이다. 이로써 한나라당 소속 춘천시장이 춘천시민에게 호언한, 서울 대학생들의 MT촌으로 유명한 강촌 근처에 조성하겠다는 200만평 규모의 지식기반형 기업도시 계획은 북한강 세찬물길에 스러져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실, 땅값은 수도권 규제완화의 핵심이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기술혁신이나 경영합리화 같은 것 보다는 수도권의 높은 땅값이 돈벌이의 ‘실용적인’ 수단 이다. 그동안 공장총량제등 수도권에 대한 입지규제 등에 의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땅값 때문에 지방으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이제 지방에 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규제가 풀린 수도권 지역의 자연보전권역등이 택지와 공장부지로 개발되면 물량이 쏟아 질것이고 수도권 귀퉁이라도 부여잡고 있으면 언젠가는 대박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춤을 추던 아파트 값이 수도권 규제완화를 앞두고는 용솟음치고 있다한다. 수도권 시민들이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한국자본주의의 법칙을 다시 한 번 확인 하는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경제성장율 7%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간다는 볼멘소리만 들리는 지방에 살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치솟은 집값, 땅값이 주는 나른한 포만감을 알기 어렵다. 그리고 주식투자 한번 해보지 못한 변변하지 못한 인간들에게는 복잡해 보이는 자산 늘리기 과정이 고등학교 때 끙끙대던 난해한 수학문제보다 더 어렵다. ‘강부자’ 정부 각료와 비서관들의 재산규모와 비법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모범 사례로 두둔되기도 한다. 이렇게 욕망은 정치선진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자본의 축적 방식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다시 깨우쳐 준다.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동산 시장이 다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한 아파트 업체의 모델하우스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 사진 출처 - 파이낸셜 뉴스 바야흐로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정책은 책임정치를 통한 정치발전을 꾀함은 물론 시민 개개인의 덕성이 근대적으로 만개되는 것까지 달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야경국가’가 국가의 좋은 모습으로 칭송받던 시절에 사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배운 데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정상적인 자본주의라는 시각에서 보면 지금 지방민을 홀대하고 수도권 시민을 우대하는 정책은 퇴행적이고 반체제적이기까지 하다. 식자들이 욕망의 정치를 걱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시민의 선택이라기보다, 수도권 자산계층의 ‘계급적 단결’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현실의 배반에도 역사발전은 계급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적 덕성’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신념을 확인하려는 먹물들의 계몽주의 일뿐인가? 성경 말씀이라고 들었다. “나중 된 것이 먼저 된다” 지금 지방민들은 장로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는 공화국에서 머지않아 진리가 예언자적 기적을 행할 것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봄! 이다. 봄이 되면 근질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길 없어 떠남, 방랑, 자유니 하는 것들을 동경하면서 억매인 현실을 훌쩍 벗어나지도 못하는 몸만 애꿎게 괴롭힌다. 좀 자유롭게 살면서 꿈도 이루고, 먹고살 방법은 없는 걸까? 고민하면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까지, 규칙적인 등교를 포함해 학교생활의 규율을 따라잡기가 힘들었고, 자연히 개근상을 받아 본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요즘도 여전히 규칙과 규율에 대한 성실성은 자랑할 수 없다. 같은 일상, 같은 방식, 같은 사고체계의 요구는 제일 견디기 힘든 삶의 과제 중 하나다. 이주민들의 국적취득과 관련한 ‘사회통합교육이수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출처 - 필자 지난 4월 14일, 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민들의 국적취득과 관련한 ‘사회통합교육이수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법무부는 09년 1월 1일부터, 국적취득을 원하는 자에 대해 결혼이민자에 대해서는 250시간(단순이민자는 450시간, 10년 1월 1일 시행)의 한국어실력 및 우리사회이해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하려 하고 있다. 이에 긴급하게 이주민 관련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본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전면재검토를 요구하게 되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일선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한글교실, 다문화체험, 상담 등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들과 실제 이주민여성들이 참석하여 이주여성들의 현실을 글로, 또 퍼포먼스로 전달하였다. 중국출신의 한 결혼이주여성은 글을 통해 “...국적 없는 우리는 남편의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제 주변에서 종종 있는 일입니다. 국적 취득 전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기간 연장할 때 남편이나 남편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협박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법체류자 될까, 추방당할까 항상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한국문화 풍속은 살면서 몸으로 체험하면 습득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하였다. 퍼포먼스에서는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네들의 풍속과 문화를 떨치고, 한국의 문화와 풍속을 강요당하며 각종 의무와 책임에 짓눌려 국적취득을 하기위한 노력을 형상화 하였는데, 기자회견장은 순간 숙연해졌다. 다들 마음속에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간직하고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사회통합’인가? 혹은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 통합이 무언지? 왜 필요한지도...? 이주민들의 국적취득과 관련한 ‘사회통합교육이수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사진 출처 - 필자 답답함은 이것만이 아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호주제’를 대신한 ‘가족관계등록법’ 은 시행되자마자 민원이 빗발치고, 공무원들조차 여성단체에 항의와 상담을 할 만큼, 많은 문제들과 가족에 대한 의식들이 드러나고 있다. 남성가장을 중심으로 가족을 편재-줄 세우기-함으로써 모든 가족구성원이 강제로 호주(가장)아래 법적, 심리적으로 종속되게 함으로써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현실에서 나타나는 가족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호주제, 이러한 문제제기를 기반으로 개인별, 목적별로 신분등록제를 개편하자고 해서 만들어진 대체법안 ‘가족관계등록법’은 그러나 기대를 저버려도 한참을 저버렸다. 오히려 혈통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된 것이다. 현재의 가족과는 다른 예전의 자녀나 부모가 버젓이 서류에 등장하고, 혼인, 이혼의 경력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친부모와 자식으로 지내고 있는 입양가족 앞에 ‘기아발견’이란 항목을 통해 드러난 아이의 경력,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양부, 양모, 양자였다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피해사례 중에는 이러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드러난 과거로 인해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지내” 고 있음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다. 나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에 돌아가신 아버님-과거 가족이었던-이 현재 등록부에 기재되어 있었다. 대체 그런 증명서가 어디에 소용이 있는 걸까?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가족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러저러한 이유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족사나 관계 등이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공개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에서는 민법상 친족 및 재산분할 등의 문제로 인해 혈연중심의 가족관계를 기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미 어려운 이유로 법적, 사실적 가족관계를 포기했음에도 그렇다. 원본은 보관하되, 증명서 발급 시 필요한 부분만 기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자는 의견에도 재정소요를 핑계로 외면하고 있다. ‘기아발견, 양부, 양모’ 등 부모자녀관계에서의 문제만 개선하겠다고 한다. 배우자 간의 관계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혼전 자녀, 이혼경력 등)는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로 인한 압박감은 여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굳이 상처와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개인의 정보들이 드러나야 하는 신분등록제가 필요한가? 가족관계등록법의 문제점에 관한 토론회 사진 출처 - 필자 위 두 가지 사례를 보면서, 어릴 적 학교가기 싫었던 그 느낌이 되살아난다. 선생님의 일방적 전달과 훈시, 때로는 폭력을 동반한 강요와 강제. 설명과 대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문화... 여성운동 15년 동안 나는 그 답답함을 깨고 싶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답답함이 반복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민(民), 즉 개별자로서의 국가구성원들의 행복과 자유가 보장되고, 권리와 책임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의 특수성, 특수한 환경과 조건이 인정되는 것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의 공존이 기본전제가 된다. 다양성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여유와 배려 등 기다려줄 줄 아는 문화와, 또 굳이 다름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통합교육이수제’는 이주민들을 성급하게 적응시켜, 한국인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관계등록법’ 역시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가족관계를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법집행을 위한 ‘관리’의 편의성(관료주의)과 혈통주의를 버리고 싶지 않은(단일민족 신화)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 뿌리엔 가부장적 권위주의, 그리고 경제중심의 물질주의, 편의 중심의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모두가 검정 옷을 입고 있을 때 다른 색의 옷은 눈에 띄기 쉬어 쉽게 관리대상이 된다. 그러나 다양한 색의 옷들 속에서는 뭐가 더 다른지 표면상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나타난다. 집단 구성원을 단일화 하려하고, 때론 구성원 개인 정보를 필요이상 파악하려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국민들의 일탈을 방지하고 일탈을 발견하기 쉽고 단죄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관리의 용이함을 위해서) 획일화 시키고 단일화시키기, 한 가지 색만 강조하는 가부장적 관료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사회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숙명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역행하고 여성인권은 후퇴하고 있는가? 아름다운 봄 날,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 속에서도 나는 답답하다. 진정한 자유인으로 숨 쉬고 싶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시지요? 이리저리 활동하시느라 여전히 분주하시겠구요. 학자와 교육자의 길을 제대로 가시는 분이 있어 이렇게 편지라도 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있는 일입니다. 벌써 이년이 넘었군요, 교수님 못 뵌지... 사모님과 자녀분도 모두 건강하시지요? 제가 이곳 동경으로 온지 벌써 칠 개월째 접어듭니다. 저도 좋은 경험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은 커지는데 아직 제대로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을 보니 그게 다 공부려니 싶습니다. 무엇보다 여기 있으면서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말씀이 실감납니다. 제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나중에 자서전이라도 한 번 써보라고 하늘이 주시는 기회로 생각하며 지내고 있지요. 평상시에는 잊고 잘 살다가 법원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학교 생각도 나네요. 연구실, 책상, 강의실... 때론, 내가 거기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정말 옛 일처럼 아스라해지기도 하구요. 제 손때 묻은 책마저 거기 없었다면 잊혀졌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연구실 폐쇄된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싶습니다. 저는 삼월 중에 한국에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11일이 고등법원 변론기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학교 측 변호사가 교내 교수와 학생 일인씩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는 바람에 즉석에서 4월 1일로 연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4월 1일이 되니까 증인이 사정상 못 왔으니 또 5월 6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네요. 중간고사 끝나야 올 수 있다나 어떻다나... 어쨌든 학교측 연기 신청이 다시 받아들여져서 이번에도 3분도 안 되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동경에서 일부러 갔는데 좀 허무했지요. 증인이 못 오면 못 온다고 상대방에게 미리 얘기해주었더라면 여러 사람이 헛걸음까지는 안했을 텐데...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였을 텐데... 제가 동경에 있는 줄 알면서도 당일이 다 되어 기습적으로 연기 신청만 하고는 사라지니, 허무했다기보다는 술수만 쓰고 사는 것 같은 사람들 모습에 좀 씁쓸했지요. 장사에도 도의가 있다는데... 그리고 항소를 해놓고는 도리어 회피하기 급급하니, 스스로도 정당하지 못하니 그렇겠지요. 다음에는 그런 일 없도록 해달라고 학교 변호사와 얘기 좀 해볼까 했는데, 여러 번 불러도 전혀 못들은 척 재판 끝나자마자 황급히 법정 밖으로 빠져나가네요. 제가 언젠가 '변호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느꼈습니다, 배운 대로 실천은커녕, 왜 반대로 가려고만 애쓰는지... 오로지 돈 벌려고만 공부한 것은 아니었을텐데, 인권을 수단화하여 금권과 바꾸는 것이 법의 본래 정신은 아니었을텐데... 하긴 신학이라는 거창한 학문도 마찬가지지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겠노라 결심하는 순간에는 순수했는지 모르지만, 목사가 하나의 직업이 되고 난 뒤에는 자기 욕망을 신앙과 진리의 이름으로 슬쩍 포장하는 경우가 허다해지니까요. 그렇게 포장하는 자기 자신도 모를 정도로 자신의 이중적 자아에 스스로 속아버리기도 하구요. 그 때마다 네게는 그런 일 없었느냐는 양심의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너는 제발 그러지 말라는 하늘의 말씀 같은 것이 들리기도 하구요... 저도 부족하기 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누가 저를 정죄하는 증인으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그분이 안됐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찌되었든 정죄하는 일은 마음 아픈 일일 테니까요. 신앙의 이름으로 남을 죽이는 일은 더욱이나... 그러니 자꾸 연기 신청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착각일까요? 그냥 책임질 것도 없이 딱히 해결될 것도 없이 그저 빨리 잊혀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어쨌든 그 덕에 저는 5월 6일 전후해서 또 한국에 가게 생겼습니다. 아까워라, 비행기값... 사실 그동안의 경과를 정리하고, 각종 항소장과 답변서 등을 모아서 출판하자 권유하는 분도 계시고, 법이라는 것, 기독교라는 것이 현실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21세기에 벌어진 이 일을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제게도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이 마무리 된 다음에 해야겠지요. 어쨌든 자서전 쓸 거리가 생겨서 저는 좋습니다. 오늘 토요일, 일 년 간 저를 불러 준 이곳 학교에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좋은 계절에 입학식을 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여기도 종교 학교니까, 교수는 진지하게 훈시하고 학생은 긴장하며 맹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순수한 고백과 염원이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누구도 ‘처음처럼’만 살면 될텐데 하는 당연한 생각도 새삼 들었습니다. 갑자기 학교 생각, 교수님 생각이 나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생각날 때 표현하지 않으면 그 생각마저 잃어버리게 되더라구요. 결혼 생활 하면서 많이 느꼈던 일이기도 하지요.^^ 잘 했지요? 어쨌든 이렇게 메일 보낼 분이 계시니 좋습니다. 자주 소식 드리고 싶습니다만, 행여 교수님께 짐이 될까 하는 마음에... 그래도 기회가 되는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게 도리이겠지요. 몸과 마음 더욱 건강하시고, 더욱 큰 학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8년 4월 5일 동경에서 이찬수 드림
2017-07-20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며칠 전에 팔레스타인 알 나자 대학 정치학 교수인 사타르 카셈(Prof. Sattar Kassem)은 제자인, 모사브 까탈로우니(Mosa'b Qatalowni)의 석방을 위해 협조를 호소하는 다음과 같은 메일을 필자에게 보냈다. “모사브 까탈로우니 어디 있니?” 모사브 까탈로우니는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나의 제자입니다. 모사브는 지난 두 주일 동안 결석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대가 모사브를 하마스 대원이라는 혐의로 억류하고 있으며, 최근에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모사브의 형제를 체포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모사브는 한 쪽 다리를 수술하고 치료중인 환자입니다. 그는 목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사브가 고문을 받아서는 안 되며, 즉시 석방되어야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존경을 받으면서 영예롭게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불화와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자치 정부의 모든 조치들은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에는 극단적으로 해롭습니다. 교실안의 모사브 의자는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그의 의자는 팔레스타인에 셀 수도 없이 많이 활동하는 인권 단체들이 석방을 위해 역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1월 나블루스 소재의 사타르 교수 집에서의 필자 사진 출처 - 필자 나는 사타르 교수의 메일을 몇 몇 팔레스타인 친구들에게 보냈다. 시민 단체에서 일하는 아이샤가 내 메일에 답신을 보냈다.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은 파타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파타는 하마스 지지자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많은 하마스 지지자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상황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팔레스타인인들은 예전처럼 자신들의 정치적인 견해를 밝힐 수가 없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보안대로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립니다. 예전에 팔레스타인에는 민주주의가 있었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살해에 대한 두려움만이 존재합니다. 지금 날씨는 너무 좋습니다. 무력 충돌도 살해도 없는 여름을 맞고 싶습니다.” 2008년 1월 필자가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이샤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곳 중 하나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떤 정치적 견해라도 당당히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3월 말 현재 팔레스타인 상황은 1월과는 많이 달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팔레스타인 비르제이드 대학 교수인 가산 안도니(Prof. Ghassan ANDONI)는 답신에서 “하마스와 파타가 상대방 파벌의 지지자들을 체포하는 것이 매우 부끄럽습니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어리석은 파벌 싸움에 휘말려들어 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파벌 싸움에 대해서 우리 팔레스타인인들 모두가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고 밝혔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다수는 이 생 지옥 같은 내부 투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파타가 이끄는 자치 정부가 하마스를 공격하고 하마스 지지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협력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3월 26일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Ehud Olmert)는 기자 회견에서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협상을 재개할 것이지만, 동시에 서안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도 재개할 것이다.”고 밝혔다. 결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협상을 재개한다할지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서안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한다는 것은 서안 지역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나블루스의 어린이들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2017-07-20 | hrights | 조회: 35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꽃샘추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 주말 비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지금 다시 기온은 올라갔지만, 여전한 바람 탓으로 쌀쌀한 기운은 그대로다. 시민운동을 시작한 지 만 11년이 다 돼서, 한 달의 '안식'을 얻었다. 혼자 있는 낮 시간이 왠지 낯설고 이러 저러한 일들로 아직 고요하진 않지만, 시간의 규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으니 한결 편하다. 무엇보다 그 동안 밀어두었던 책들을 펼쳐 보게 된다. 지난 2003년, 37년 만에 귀국했다가 10개월 동안 고초만 치르고 돌아간 송두율 교수가 독일 귀환 이후 펴낸 책을 보고 있다. 안식기간에 우리사회를 반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그가 1심 재판에서 행한 최후 진술이 눈길을 끈다. 그는 당시 최후 진술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지적풍토에 대해 이를 다섯 마리의 원숭이 우화에 빗대어 비판하였다. 다섯 마리의 원숭이 우화는 다음과 같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 먹으려 나무에 오르다가 강한 전류에 놀라 곧 포기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이와 같았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 먹으려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이를 말렸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만류를 뿌리치고 바나나를 따 먹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송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보안법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국정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 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재생산해 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의 원숭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많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니, '말 바꾸는 지식인'이라고 저를 매도하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벌이는 시끄러운 굿판 속에서도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송두율 교수 사진 출처 - 후마니타스 아마 당시 1심에서 7년 징역형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데는 검찰마저 '멍청한' 원숭이에 빗댄 것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가 추가된 결과였지 않나 추측해 본다. 송 교수는 지식의 역할이 반드시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이 우화를 인용했다고 한다.'잘못된 지식'이 오히려 '조직을 멍청하게' 만들고, 그 결과 사회도 둔감하게 된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유명무실해졌다고 믿었던 국가보안법이 39년 만에 돌아온 한 지식인을 매개로 한국사회를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기억은 우리사회가 '충격'이 필요한 사회임을 실감케 했다. 송 교수도 그래서 이 '충격'이 지속적이길 원한다고 최후진술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사회는 언제나 충격적이다. 그래서 웬만한 충격에는 미동의 변화조차 허락하지 않을만큼 둔감하다. 위험사회로 일컬어지는 탈근대의 복잡성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유독 한국사회가 충격에 둔감한 사회임을 표상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 아닌가 싶다. 5.18이라는 정치적 충격으로 민주주의의 열린 국면을 맞이하며 두 번의 민주정권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지난 참여정부가 보여준 것처럼 여전히 힘의 관계에서의 열세만을 드러냈다. 이와 맞물려 경제적으로는 지난 대선을 통해 IMF라는 경제적 충격을 도래케 했던 개발성장주의의 적자(嫡子)를 새 대통령으로 불러들였다. 우리의 다섯 번째 원숭이들은 새 정권의 출현 앞에서 매우 비통해 하면서도, 다시금 스스로의 존재성을 확인시킬 수 있는 '기회'라며 자위한다. 필자 또한 새 정권의 출범으로 현상하는 개발성장주의의 전면화는 50여 년 동안 한국사회를 관통해왔던 그것과 비로소 단절하기 위한 총체적 평가 기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명제처럼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비정상의 사회가 정상의 사회로 거듭나는 진통의 산물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섯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땄던 그 '예외적인 창출'이 앞선 네 마리의 원숭이보다 늦은 이튿날의 출현으로 인한 무경험으로서가 아닌, '멍청한 지식'에 대한 '다른 생각'의 결과였다면 오늘 날 한국사회 다섯 번째 원숭이들의 새로운 거듭남을 위한 '다른 생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앞서야 한다. 최근 제주에서는 난데없는 '내국인 카지노'논쟁이 일고 있다. 이미 10년 전에 혹독한 갈등을 치렀던 사안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권을 달리해도 정부 불허방침에는 변함이 없고 달라진 것은 없지만, 지금 달라진 것은 카지노 찬성여론이 그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국내 여느 지역할 것없이 외자유치니 규제완화니 하는 마당에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여기에는 지역의 생존법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하고 있지만, 레저산업이니 관광전략이니 하는 세련된 포장이 새롭게 한 몫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예전 같으면 다섯 번째 원숭이라 할만한 '양심적' 부류들이 나서서 '너무도 쉽게' 거들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를 통해 뚜렷하게 경험했던 것은 이른바 시장주의가 낳은 동일시의 논리이다. 너무도 지배적으로 모든 지역과 사람과 정책들은 '시장'을 얘기하기에 바빴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거대한 개발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아우성쳤고, 외자유치에 혈안이 되었고, 규제완화니 개방이니 하는 이른바 대세의 논리를 선점하려 경쟁하였다. 국가는 그 결절점을 한미 FTA의 논리로 장식하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졌으니, 바로 그런 점에서, IMF 충격에도 또 다시 그것을 가능케 했던 개발성장주의세력을 새 정권으로 불러들인 것은 그 동안의 소위 민주정권이 단지 힘의 열세가 아니라, 이른바 경제개혁을 내세운 시장주의에 스스로 포획된 결과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대에 우리사회의 이른바 민주개혁 세력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굳이 이를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화 시대의 다섯 번째 원숭이들의 생존 방식을 접하면서 그 성찰의 지평이 매우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대적인 차원까지 탄탄히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현대는 탈현대의 가치를 추구한다. 탈현대의 가치들은 기본적으로 차이와 공존의 논리인데, 민주주의 정권기를 통해 우리사회는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동일시의 논리만을 재생산하며 그 결과 양극화라는 배제의 사회를 만들고야 말았다. 다섯 번째 원숭이는 송 교수의 표현으로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시대의 다섯 번째 원숭이의 '다른 생각'은 그것이 비록 현대사회에서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거꾸로 현대사회를 구제할 가치로서 다양성과 공존의 논리를 '네 마리의 원숭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여다보고 꿋꿋이 세워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송두율이라는 한 지식인의 10개월의 역경을 통해 상징화된 한국사회의 충격을 이어가는 길이자, 그의 고난을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이광조/ CBS PD “서울 도심에 웬 수산시장이 있나?” 서울에 온지 몇 년이나 지났을까. 노량진에 수산시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들었던 의문이다. 바다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도시에 수산시장이라니. 세월이 한 참 지나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마포와 노량진까지 커다란 배들이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노량진과 수산시장이 아무런 인연도 없는 건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은 하게 됐지만 지금도 수산시장 주변에 가면 비릿한 생선냄새 외에 바다를 떠올릴만한 건 좀체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말이다. 수산시장 주변으로 널찍한 백사장이 있고 한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바다가 보이진 않는다 해도 한강을 통해 서해의 풍경을 바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로 갈매기들이라도 날아다닌다면 바다는 서울시민들에게 지금보다는 훨씬 친숙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여름이면 노들강변에 수박 냄새가 흩날리던 시절에는 아마 그랬을 것 같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노량진 일대를 비롯해 한강 곳곳에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는데, 여름이면 숱한 사람들이 수박을 들고 그 백사장에 모여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수박도 쪼개 먹고 수영도 즐겼다는데... 그 많던 한강 백사장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1955년 노들섬 한강 백사장 모습 사진 출처 - 서울시 2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영등포구 양평동으로 이사 온 뒤로 나는 추운 겨울이나 비가 많이 오는 궂은 날을 빼면 되도록이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환경도 보호하고 묵직한 뱃살도 빼고 일거양득이지만 사실 차들로 가득 찬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봄기운을 느끼자마자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건 8할은 한강 때문이다. 늦은 퇴근 길 안양천에 난 자전거 길을 따라 한강으로 나가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동쪽으로 서쪽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강변을 따라 남북으로 펼쳐진 야경을 감상하면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달리는 기분이란... 특히나 무더운 한여름, 더위가 잠시 식는 밤에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겐 설명할 재주가 없다. 그래서 난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탈 때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감사하면서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는 반환점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뭐랄까, 늘 내게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강을 좋아하면 수심이 많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밤에 검은 강물을 봐서 그런 걸까. 화창한 봄날,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웃음과 꽃들이 가득한 강변에서도 강물이 여전히 애잔해 보였던 걸 생각하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법 하다. 사람마다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 한강을 바라보며 쓸쓸함을 느끼는 건 아무래도 욕구불만인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손도 잡지 못하는 그런 답답함이랄까. 비스듬한 시멘트 제방을 내려가 억지로 강물에 손을 담글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런 접촉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사랑하는 남녀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손을 잡듯이 사람이 강에 다가서고 강물이 모래사장에 스며들었다 물러나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발을 적시고, 기분이 내키면 웃통을 벗어던지고 강물에 뛰어들기도 하고, 그런 만남이 내가 생각하는 강과 사람의 만남이다. 하지만 내가 자전거를 타며 바라보는 강은 소리도 촉감도 느낄 수 없는 오직 눈으로만 마주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강과 스킨쉽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늘 욕구불만이다. 이런 욕구불만이 나 뿐일까. 요즘 한강이, 아니 사람이 시각만이 아니라 오감으로 한강과 교감하는 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생명을 품고 길러낸 강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하고만 교감을 할 수 있다니. 몇 해 전 취재차 프랑스에 갔다가 세느 강변에 모래를 퍼 날라 백사장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름이면 그 백사장에 파리 시민들이 나와 일광욕을 즐긴다고 한다.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세느 강변에서 말이다. 한강을 바라보며 느끼는 쓸쓸함과 욕구불만 때문인지 나는 강을 찾아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동강과 섬진강... 강변을 걷다 백사장이 있으면 물과 백사장이 만나는 지점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강물에 손을 넣는다. 휘적휘적 몇 번 손을 저을 뿐이지만 그 순간 그 느낌이 참 좋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세계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강을 인간과 교감하는 강으로 만들기는커녕 전국의 강을 한강처럼 아니 지금의 한강보다 더 인간과 유리된 강으로 만들 수 있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답답하다. 강은 물론 인간도 반쪽이로 만들지는 않을지. 사랑하는 존재를, 그것도 생명이 깃든 존재를 눈으로만 느끼는 건 그 존재를 지배하려는 욕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대상은 물론 스스로를 불구로 만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욕구와 권리를 가로막고 박탈하는 행위다. 제방과 아스팔트로 포위된 강변에는 조망권을 앞세운 고가의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이다. 걔 중에는 그 박제된 강 위에 요트를 띄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관음증에 빠진 사람처럼 아파트 창밖으로 꽁꽁 포박된 강을 바라보고 생명의 강을 멋진 항해를 위한 도로쯤으로 생각하며 흡족해 하는 사람들, 우리가 그런 반쪽이의 모습을 좇아야겠는가. 수박냄새 흩날리는 노들강이 보고 싶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4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최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올해의 여성 운동상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수요시위'를 선정했다. ‘수요시위'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1992년 1월 8일부터 지금까지 16년간 800회 이상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해 온 시위이다. 수요시위는 한 가지 사안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열리는 세계 최장기 시위로 기네스북에 등재 권유를 받기도 했다. 65세부터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해서 81세가 된 한 여성은 “우리는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책임질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진속의 그녀는 아름답고 당당하다. 15세에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고, 해방이 되어 조국에 돌아온 후에도 가족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할 끔직한 과거의 기억과 싸우던 여성이, 환갑이 넘은 나이에 스스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16년 동안 수백 번의 시위에 참여하고, 마침내 여성운동가로 설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그 힘이 고통의 경험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개인적인 고통의 경험으로부터 보편적인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여성은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우리국민과 전 세계에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여성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여성운동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머리를 흔들면서 과거사에 발목 잡히지 말고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처음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까지 포기할 수 없다”면서 “실용의 자세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형성”하자고 제안했다. 실용을 위해서라면 일제가 저지른 과거의 만행이 어떻든 간에 다 잊어버리고 덮어버리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실용이란 “경제”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과연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다 덮어주겠다는 말에 감동하여 한국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해 줄지는 의문이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하고, 미리 주는 경우에는 나중에 받을 것에 대한 약속이라도 받아두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거래관행인데, 대통령의 “실용”적인 외교는 보통 사람들의 방식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지난 2월 13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800번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수요시위' 모습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자신은 물론 새로 임명한 장관들까지 과거의 위법. 탈법행위로 인해 연일 망신을 당하는 처지에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일이 발목을 잡는 것처럼 못마땅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이 겪은 고통을 하루아침에 잊어버리고 덮어둔 채 무작정 미래로 가자고만 하다니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라는 사람의 역사의식이 이 정도 수준인가 한심한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이 “네가 나냐. 내 인생을 네가 살아주는 것이냐. 내 부모가 와서 '사죄 받지 않겠다'고 해도 나는 용서하지 못 한다"고 반발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과거에 머무르거나 회귀하기 위함이 아니다. 과거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극복할 힘을 얻고 미래로 향하는 올바른 길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고, 추모하고, 또 현재의 시각에서 다시 분석하는 것이다. 과거를 덮고 잊어버리자는 말은 과거가 부끄러운 자들의 선동에 불과하다. 과거가 발목을 잡고 있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 기념관에 한번 가 볼 것을 권한다. 그들은 원폭피해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처참하게 파괴된 건물을 그대로 두고, 원폭피해 당시 녹아내린 숟가락, 도시락 통, 까맣게 타버리고 피가 묻은 옷가지, 벽돌까지도 박물관에 진열한 채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일제치하에서 우리가 겪은 피해를 이런 방식으로 기록한다면 수십 개의 박물관을 지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도 다 덮고 가자고 하다니 과연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2017-06-22 | hrights | 조회: 4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