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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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석미화(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광조/ CBS PD 지난 해 11월로 기억됩니다. 제가 나무와 풀, 숲을 공부하는 곳에서 강사님들이 봉하마을에 가신다고 하더군요. 청계산 근처였는지, 현장 수업이 끝나고 모두들 저녁을 먹고 해가 떨어진 뒤에야 강사님들이 봉하마을로 출발했습니다. 서 너 분이 가신 걸로 기억되는데, 모두 조금은 들뜨고 조금은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현직은 아니지만 대통령을 지내셨던 분을 만난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겐 그런 흥분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마을에 숲을 가꾸기 위해 과외선생님으로 초대받은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마을에 숲을 가꾸는데 정말 관심이 많으시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매실나무의 생리를 알기 위해 광양 매화마을에도 직접 가셨었다죠. 일주일이 지나고 봉하마을에 다녀온 강사님들의 얘기를 듣고는 더 흐뭇했습니다. 고향을, 숲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다음에 모두 같이 한번 가서 그 숲을 둘러보자고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봉하마을의 집을 두고 아방궁이라느니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의 고급 아파트 여러 채 중 한 채만 처분해도 시골에 그 정도 저택은 마련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자신의 흠을 모르는 그런 비난이 효과가 없어서 그랬을까요, 이번에는 ‘공권력’이 제대로 동원돼 수사가 벌어졌습니다. 누구든 의혹이 있으면 수사를 받고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겠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공허한 주장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수뢰의혹이 있어 수사한다는 데에는 나서서 토를 달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해지는 이런 저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이런 저런 혐의들이 검찰 발 기사로 쏟아져 나오고 여론재판이 벌어졌습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혐의사실이 새 나가는 것이 당혹스럽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증오와 능멸을 담은 저주의 말들이 ‘정의’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채 온 나라에 날아 다녔습니다. 거기에 피의자의 인권이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왕조시대의 사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도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던 정권이었기에 ‘도덕적인 책임과 법적인 책임은 다르다’는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조차도 과거보다 조금 나아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불법 대선자금 문제 같은 고질병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다만 우리의 수준이 아직 그 정도라는 걸 알기 때문에 묻어두고 가자는데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은 일방통행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자신들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은 떡값이라며 반성하는 기색조차 없이 넘어가는 검찰이 이번에 이렇게 부산을 떤 것도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은 기소가 돼 있는 상태죠. 그 후안무치에 화가 치밀고 슬플 뿐입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돌이켜보면 지난 2002년 겨울 천2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꿈을 꿨습니다. 그 꿈의 중심에 님이 있었습니다. 그 때 천2백 만 명이 같이 꾼 꿈은 달콤한 꿈, 이기적인 꿈, 대가가 바로 주어지는 그런 꿈이 아니었습니다. 불의와 불행, 몰상식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하는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소박한 꿈이었기에 더 깨지기 쉬운 꿈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소박한 꿈이란 우리 내면의 끈적끈적하고 은밀한 욕망과는 애초에 경쟁이 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천2백 만 개의 꿈, 그 속에 천2백 만 개의 욕망이 스며들었을 때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님은 같은 꿈을 품었던 천2백만 명뿐만 아니라 비슷한 수의 다른 꿈들을 함께 품어야했기에 많은 이런저런 논란 속에 더욱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사회의 갈등과 반목이 너무 거칠고 깊었으니까요. 펀드 수익률을 걱정하고 아파트 평수 넓힐 생각에 사로잡힌 채 하루하루를 살면서 진보를 논하고 님을 손가락질하며 모든 짐을 떠넘긴 건 아닌지 부끄러운 생각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재임 시절 이런 저런 논란과 실수, 아쉬움과 한계는 모두가 함께 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퇴임 후 고향에 정착한 첫 대통령으로 시들어 가는 농촌에 웃음과 활기를 불어넣어 줄 지도자로 오래 오래 국민의 사랑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숲을 가꿔 많은 관광객들이 봉하마을을 찾고 그래서 봉하마을 주민들이 어깨를 우쭐하고 모든 국민이 부러워하는 그런 흐뭇한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쾌한 풍경은 너무나 짧고 안타깝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7년 전 함께 꿨던 꿈은 이제 조각조각 부서져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부서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비극에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조각난 채로 팽개쳐 뒀던 그 꿈을 님이 다시 일깨워줬기 때문입니다. 공상과 탐욕이 아니라 이 험난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편안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다시 깨어진 꿈의 조각들을 모아 붙여야 할 테니 말입니다. 물론 다음번에는 서로를 좀 더 존중하고 인내하며 결실을 끈기 있게 기다려야겠죠. 우리들 마음속의 욕망들도 조금 더 순화시키기고 말입니다. 정책과 노선이 조금씩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 조각난 꿈들을 다시 모아 붙이는 긴 여정에서 님은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정치인이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한 인간으로 말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21 기자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을 경계로 북쪽이 선산, 남쪽이 칠곡이다. 지금 선산은 구미시에, 칠곡은 대구시에 많이 편입됐다. 대구나 구미는 신흥 도시다. 원래 이 지역의 본향은 칠곡과 선산이다. 이 곳 사람들은 영주·봉화·안동으로 이어지는 경북 동북부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한다. 족보 타령에 익숙한 고을이라 그렇다. ‘돔배기’라고 불리는, 소금으로 간한 상어 고기가 이 동네 제사상에 올라간다. 안동 간고등어의 대당이다. 돔배기 맛이 그립다는 이곳 출신 사람들이 간혹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소금 섞은 모래 같다고 생각했다. 짜고 퍽퍽했다. 칠곡-선산 지역은 이른바 ‘TK’의 본류다. 멀리 갈 것 없이 신현확, 박정희, 김제규, 김윤환, 이수성 등이 모두 이 동네에서 났다. 이들 모두 선산 사람이라는 이도 있고, 천만에 칠곡 사람이지라며 핏대 올리는 이도 있다. 나는 이들이 ‘범 칠곡’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자랐다. 내 본적이 칠곡이다. 할아버지들의 무덤이 금오산 자락에 있다. 아버지는 지금도 금오산에서 나무하던 이야기를 한다. 세상의 본류는 TK이고, 그 배후는 다시 칠곡이던(누군가에겐 선산이던) 시절, 박가네 정희, 김가네 윤환, 신가네 현확, 이가네 수성 등이 출세했던 것처럼 안씨 집안에서도 누군가 칠곡을 빛내어야 마땅하다는 게 금오산 정기 받은 칠곡 타령의 결론이었다.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이후 나는 동향 사람 만나길 피했다. 고등학교 동문회 따위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 어쩌다 같은 술자리에 어울려도 가급적 잔을 섞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투부터 바꿨다. TK 이야기가 나오면 일부러 열을 올려 돔배기처럼 퍽퍽한 정치적 낙후성을 비판했다. 나에게 서울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프랑스의 파리와 비슷했다. 자유와 저항의 도시였다. 완전히 젖어들어 저 금오산 자락, 박정희의 초가 생가에서 검박한 유품 사이를 거닐며 경건하게 고개 조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모두 잊고 싶었다. 대신 백낙청, 장정일, 유시민 등을 마음으로나마 응원했다. 그들로 말미암아 고향을 말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꿈꾸었다. 어찌저찌 하여 기자가 된 뒤, 묘하게도 나는 한국 보수 집단을 담당할 일이 많아졌다. 한나라당을 출입했고, 뉴라이트 단체들을 취재했으며, 보수 인사들도 조금 알게 됐다. 자유의지와 무관한 일이었다. 고향이 TK이면, ‘TK 당’을 출입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다. 지금 청와대에는 고대 아니면 TK 출신 기자들로 버글거린다. ‘고소영’이 ‘고소영’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 간혹 ‘고소영’이라서 그냥 넘어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처음엔 사투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조금 지나자 흥미가 동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의 ‘보수 돋보기’가 생겼다. 출세주의다. 정치인이건 지식인이건 한국 보수 인사들을 움직이는 ‘리비도’는 출세의 욕망이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긴 한데, 특별히 TK 인사들은 그 욕망의 작동방식이 노골적이면서도 당당하다. 이게 뭐 대단한 발견인 것은 아니다. 출세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셈하면, 그의 다음 행보가 대충 도출되더라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여기서는 ‘비TK’ 사람들을 뜻한다)은 출세 말고도 권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좋은 평판’까지 고려하는데, 내가 지켜본 TK 보수 인사들은 그런 것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세속의 권력은 세간의 평판까지 다스릴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 무덤 앞에 세워질 비석에 어떤 ‘자리’까지 올라갔는지를 아로 새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배움! 금오산(또는 팔공산, 혹은 소백산) 정기 받아 출세하는 일의 사명감을 돔배기 앞에 두고 체득한 부류였다. 그 돋보기는 처음엔 신기했지만 이내 싫증이 났다. 원내대표 출마하신다고요? 아, 큰 결심 하셨네요. 원내정책은 둘째 치고 고향이…. 아, 칠곡 옆 구미시군요. 어쩜, 정말 정말 원내대표 하고 싶으시겠네요. 대권까진 아니어도 나중에 국회의장 한번 하실 욕심도 있으시겠고. 그럼요. 이번에 떨어져도 일단 TK 대표주자가 되면 시장이나 도지사도 가능하지요. 하하, 그 마음 제가 젠장 맞게 잘 알지요. 이래봬도 박통 생가에도 찾아가던 소싯적이 있답니다. 뭐, 그렇다고 손까지 잡아주실 필요야…. 아, 참, 그런데 서민들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으면서 왜 정치는 시작하셨나요, 하고 옆구리 찔러 보는 게 소원이었다. 결국 지루함이었다. 내가 보수주의를 들여다보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출세주의 무한반복의 권태감 때문이었다. 타자배려 결여, 당연히 약자는 타자에 포함되니 약자 배려도 결여. 공동체 의식 결여, 당연히 국가도 공동체니까 국가권익에 대한 의식 결여. 포용력 결여, 붉으죽죽한 것들은 전부 권력 쟁투의 상대니까 당연히 혁신파 포용력도 결여. 사상 결여, 사상이 밥 먹여주지 않고 게다가 권력자원이 될 가능성도 희박하니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하이에크도 들여다볼 생각 자체가 결여…. 이런 따위의 수미일관한 출세주의로 한국 보수집단을 해석하는 일은 절대로 절망스런 일이 아니라(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하품 나오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별종’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족보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주의의 족보 말이다. 공부가 짧아 긴 이야기하면 무식이 탄로 날 것이다. 예전 무심히 봤던 책을 다시 읽다가 벤자민 디즈레일리를 발견했다. 그는 19세기 말 영국 보수당 당수였다. 프랑스는 혁신파의 나라고 영국은 보수파의 나라다. 프랑스는 루소의 조국이고, 영국은 버크의 조국이다. 그랬던 영국도 19세기에는 자본주의(당시에는 신흥 산업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였다) 세력에 밀려 보수파가 고전하고 있었다. 그랬던 보수당을 다시 일으킨 게 디즈레일리다. 그는 1872년 ‘수정궁’ (런던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만국박람회용 유리 건물이다) 연설에서 보수당의 주요 목표를 천명했다. 핵심은 인민의 생활조건 고양이었다. 노동조건의 개선 없이 인민의 조건이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외면하는 당시 자유당을 맹렬히 비난했다. 노동자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고 공장주의 잔혹 행위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보수당의 전통이자 핵심 임무라고 말했다. 뒤이어 일련의 개혁입법을 추진했다. 노동자에게 선거권을 줬다. 노동조건·공장환경·공중보건·공공교육 등에 걸친 사회개혁입법도 완성했다. 자산가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적 자선뿐만 아니라, 국가를 통해 그 책임을 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민의 상태가 정치의 중심과제라고 주장했다. 그가 이끈 보수당의 개혁입법은 이후 20세기 영국 복지국가로 이어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불리는 영국 복지 시스템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에 의해 완성됐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물론 디즈레일리가 개혁입법을 추진한 것은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노동계급의 지지 따윈 필요 없으니 아예 친 자산가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물론 디즈레일리는 인민을 진정으로 아끼고 보호하는 것은 국왕과 교회라면서 군주제와 종교제도의 영속성을 지키려 했다. 그래도 나라가 온통 하느님의 것이라고 봉헌만하고, 정작 하느님의 어린 양들이 어찌 지내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자세보다야 훨씬 경건하지 않은가. 물론 디즈레일리는 대영제국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수용했다. 그래도 식민 상태의 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무개념 시장개방보다는 훨씬 현명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디즈레일리는 급진파들이 나라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귀족층의 ‘온정주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버크식 보수주의에 적잖게 기대고 있었다. 그래도 데모하는 인민을 때려잡아 없애야 한다고 이를 부득부득 가는 ‘배타주의’보다야 훨씬 탁월한 선택이 아닌가. 보수주의의 전통은 에드먼드 버크가 세웠지만, 디즈레일리야말로 보수주의를 정치 현실에 구현한 ‘보수당의 아버지’로 불린다. 1874년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이후 1906년까지 30년 보수당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물론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바탕이 됐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인데, 이런 식의 보수주의 장기 집권이라면 춤을 추며 표를 주고 싶다. 흥미롭게도 디즈레일리가 내걸었던 모토 가운데는 ‘One Nation Tory’라는 게 있다. ‘토리’는 보수당의 별칭이다. 특권층과 노동계층으로 이분화된 나라가 아니라 이들 모두가 하나의 나라에서 공존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이라는 뜻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한나라당’이 될 것이다. 촛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히스테리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만의 하나,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있어 그걸 어딘가 보탤 일이 있다면, 그건 혁신파가 아니라 혹시 보수파에 대한 것이 되어야 옳지 않을까. 개인의 입신양명 이후에 대해선 전혀 배우고 익힌 바 없는 한국 보수 세력에게 온정적 버크, 인민적 디즈레일리, 애국적 처칠, 공화적 케인즈 같은 보수주의자를 소개하는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똑똑한 혁신파가 더 많아지는 것보다, 진정한 보수파가 한 사람이라도 생겨나는 게 혹시 더 절실한 일은 아닐까. 이런 수준의 보수주의자들과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과 비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차라리 내가 그냥 보수주의자로 전향하는 게 더 나은 일은 아닐까. 금오산 정기 받은 내 안의 보수주의가 이 봄날, 자꾸 그렇게 묻는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사회학박사 천국과 지옥에 대한 유명한 비유가 있다. “온갖 산해진미가 쌓여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식탁 주위에 자기 팔보다 기다란 젓가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팔보다 젓가락이 길어 혼자서는 음식을 먹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방을 먹여줌으로써 함께 먹을 수 있으면 천국이요, 그것에도 불구하고 자기만 먹겠다고 욕심부리다 결국 먹지 못하면 지옥이다.” 필자가 보기에 천국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존재 한다. 첫 번째는 국부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의 해석이다. 그가 본 인간사회는 물질적 효용이 핵심이고 부의 진정한 원천은 생산과 교환이며 그것을 지배하는 동기는 이기심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저녁식사는 도축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 등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각자 ‘이기심’을 발휘한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 대신에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준 만큼 너도 준다, 내가 긴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준 만큼 너도 긴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준다. 그러면 천국일까? 예를 들어 서로를 먹여주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훨씬 더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치자. 한 사람은 살이 찌겠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너는 왜 나보다 적게 주냐고 따지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있을까?’ 아니다. 동등한 교환이 아니어도 교환을 멈출 수는 없다. 부등가 교환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굶어죽을 수도 있으니까. 굶어죽기 보다는 배고픈 것이 낫고 그래서 누군가는 아무리 젓가락질 노동을 해도 항상 배고플 가능성이 있는 그런 교환이 반복된다. 자본주의적 시장에서의 교환이란 항상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두 번째는 마르셀 모스의 해석이다. 아담 스미스는 유명하지만 마르셀 모스는 최근에야 소개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할 필요가 있겠다. 모스는 유명한 사회학자인 뒤르껭의 조카이다(뒤르껭까지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짧은 점을 양해해 주시라, 현대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인류학과 사회학적 기반위에 선 그의 사회철학과 관련하여 최근 한 권의 책이 번역된 바 있는데 제목이 ‘증여론’이다. 그가 본 인간사회의 핵심은 물질적 효용이나 이기심이 아니다. 그는 교환의 태고적 형태이자 사회를 유지시키고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힘으로서 ‘주어야 할 의무’, ‘받아야할 의무’, ‘되돌려 주어야 할 의무’를 제시한다. “도덕과 생활 자체의 상당한 부분은 언제나 의무와 자발성이 혼합된 증여의 분위기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모스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서양사회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모두가 그러한 종류의 존재가 된 것이 아니다. 민중 속에서도 또 엘리트 사이에서도 순수한 비합리적인 지출은 관행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이기심에 기초한 교환과 시장인간은 인류의 전체 역사에서 아주 짧은 순간에만 존재하는 형태이고, 그보다는 고귀한 지출의 관습 혹은 도덕이 인간사회에 영원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진화한 사회에도, 가까운 장래의 사회에도, 또 가장 미개한 사회에도 공통된 것이다” 때문에 갖가지 사회에서 물건을 순환시키는 것(교환)은 유용성이 아니다. 긴 젓가락으로 상대를 먹여주는 것은 내가 더 많이 주는 것, 또한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것이 인간사회의 보다 오래된 규범이자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더 많이 주면서 기뻐한다. 2009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남성 일자리가 2천개 줄어든 반면 여성 일자리는 14만개 줄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모스를 읽은 친구는 “선배가 후배에게 술 사주고 기뻐하는 것(선배가 후배에게 술도 사주지 않는 것은 선배체면 구기는 행위이니까)이나, 음식값 먼저 내겠다고 하는 것이나... 결국 현대에도 모스의 철학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모스의 관점에 따르면 천국은 지속가능하다. 왜냐면 서로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되돌려주려는 관습, 규범, 도덕적 구조 때문에 교환이 유지되니까.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스 10대학의 사회학 교수, 알랭 까이에가 이끄는 학술지 MAUSS(Mouvement Anti- Utilitariste dans les Sciences Sociales: 사회학에서의 반실용주의 혹은 반공리주의 운동)가 모스의 이름을 딴 이유, MAUSS가 칼 폴라니 학파와 긴밀하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자본주의적 인간, 시장형인간, 경제동물로서의 인간을 넘어선 또 다른 인간사회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권리이다. 더 많이 받는 소수로 인해 더 많이 주는 다수가 비참해지는 그런 사회가 인류의 이상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인간사회는 모스의 사회, 스미스의 사회 그리고 지옥이 공존한다. 죽어간 이라크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그것은 지옥이며, 일자리를 잃어 갈 곳 없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보면 그것은 스미스의 사회이다. 2009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남성 일자리가 2천개 줄어든 반면 여성 일자리는 14만개 줄었다. 무려 70배이다. 그런데 3월에 접어들면 여성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여전하지만 남성 일자리가 더 많이 줄어들어 그 격차가 5배로 좁혀졌다. 바닥을 끌어올려 격차를 좁히는 대신 위를 끌어내려 격차를 좁히는 것은 스미스의 사회가 지옥과 그만큼 가깝다는 것이 아닐까. 효율성과 지옥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4 | 추천: 0
홍미정/ 건국대 중동 연구소 연구원 2009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서 UN 인종차별철폐 2차 회의가 열린다. 2001년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1차 회의가 개최된 이후 7년만이다(http://www.un.org/durbanreview2009/). 미국, 이스라엘 이외 독일 등 서방 8개 국가들은 이번 제네바 인종차별 철폐 회의가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자극할 뿐"이라고 주장하며 이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러한 서방 국가들의 주장은 유대인과 시온주의자가 동의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유대인, 시온주의자, 이스라엘인은 서로 다른 실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에 대한 정의는 상당히 모호하고, 가변적이라서 그 실체를 정확하게 드러내기가 힘들다. 이스라엘 정부조차도 법으로 유대인의 정의를 수차례 변경시켜왔다. 반면, 시온주의자는 좀 더 분명하게 이스라엘 국가와 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정의 된다. 시온주의자들 중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있고, 무슬림들도 있다.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으며, 유대인을 부인으로 두었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년~1938년)는 무슬림엘리트 집단보다는 시온주의자들에게 더욱 우호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스라엘 국가 해체를 요구하는 반시온주의자들 중에는 유대교를 믿는 정통 유대교도들도 있다. 이 정통 유대교도들은 시온주의자들은 유대교를 믿지 않으므로 유대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올해 이들은 팔레스타인 깃발을 앞세우고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반대하는 시위를 대대적으로 이끌기도 하였다(http://www.nkusa.org/activities/).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 시민권 소유자들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시민권 소유자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무슬림들도 포함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반시온주의는 존재해도 반유대주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전 세계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이란 대통령 아미디 네자드의 다음 발언 역시 유대인에 반대한다기보다는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아마디 네자드(Mahmoud Ahmadinejad) 이란 대통령은 제네바에서 20일(월요일) 열린 UN 인종차별 철폐회의 개막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은 가장 잔인하고 억압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국가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를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러한 아마디 네자드의 발언은 이스라엘과 서방 세계의 강력한 비난에 직면하였다. 아마디 네자드의 발언에 대하여 21일(화요일) 이스라엘 군 사령관 가비 아쉬케나지(Gabi Ashkenazi)는 “이스라엘은 적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쳐부술 능력이 있다. 아마디 네자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이고, 이스라엘의 파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부총리 실반 샬롬(Silvan Shalom)은 옛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Auschwitz-Birkenau)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 추모식에서 “지금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우려고 시도하고 있다.”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다고 알려진 홀로코스트를 팔레스타인 땅에 건설된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면, 홀로코스트는 유럽에서 유럽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이다. 따라서 유럽 출신의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빌미로 팔레스타인 토착민들을 추방하며, 팔레스타인 땅을 강탈하는 것은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유럽인들이라면, 유럽인들의 책임인 유럽 문제를 유럽 땅에서 해결해야할 것이고, 다른 지역에 전가시키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아마디 네자드의 이번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유대국가’는 유대 인종이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 동시에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의 권리는 박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일(화요일)에 발생한 다음 사건들은 시온주의자들이 목표하는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 국가화’가 체계적으로 실현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스라엘 군대는 서안에 위치한 칼킬리야, 나블루스, 제닌, 헤브론, 베들레헴 등지에 침공하여 15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고 납치했고, 나블루스 근처 아크라바(Akraba) 마을의 팔레스타인 주민 8가구에게 48시간 안에 집을 비우고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유는 이 8가구가 모키에르(Mokhier) 이스라엘 점령촌에 너무 가깝게 있다는 것이다. 모키에르 점령촌은 아크라바 마을의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강탈한 땅위에 불법적으로 건설되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모키에르 점령민들이 이스라엘 군대의 도움을 받으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빈번하게 공격해왔다.”고 주장한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이스라엘 점령촌 피스갓 제브(Pi! sghat Za’ev) 근처 도로에서는 이스라엘 점령민 운전자가 수파 난민촌 거주 팔레스타인인 무함마드 알리(Mohamed Ali, 27세)를 공격하여 살해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인 군인들과 점령민들의 팔레스타인인 공격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으며,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세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에 국제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 국가는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8 | 추천: 0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최연희 성추행 의원 한나라당 복당 부산지법의 부부강간 첫 승인 강호순 성폭력 및 연쇄 살인 사건 제주도 성폭력 후 살해사건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성전환자 강간죄 첫 인정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방침청와대 행정관 불법 성매매 사건 연예인 성상납 사건가정폭력에서의 쌍방폭력 용어의 등장과 쌍방폭력 증가라는 통계 2009년 새해가 시작되고 그동안 발생한 일련의 여성관련 이슈들이다. 정확히는 여성폭력과 관련한 사안들이다. 신문과 뉴스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동안에도 어쩔 수 없이 들려오고, 들어야만했던 사건과 사고와 이슈들은 광우병 대책위 활동을 불법집회와 시위로 규정하고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불법집회 및 시위에 대한 불참’ 확인서를 제출하라는 또 다른 사고와 함께 정신없이 여성들을 후려치고 있다. 일상의 정치를 말하고, 외치고, 활동해왔던 그동안의 결과들은 현실의 정치 앞에서 무력해지고, 차이의 정치 앞에 무력해진 연대와 네트워크는 정부와 정치권의 안하무인과 여성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분연한 대항의 대열과 접점을 만들지 못하는 듯 보인다. 경제위기설에 꼼짝없이 갇힌 서민들은 당장의 생존을 위한 방안마련에 급급하다. 미래의 위기를 빌미로 현재를 저당 잡을 줄 아는 기업과 특권층을 위한 정치권의 논리와 행태를 보면서, 분노하기에 앞서 대항할 수 있는 우리의 논리와 비전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작년인가 모 TV방송사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너무도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던 그 프로그램의 내용은 이렇다. 경상남도 한 작은 마을에서 6명의 소위 ‘독거노인’ 할머니들이 군청의 제안으로 마을회관에 모여 살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을 시리즈로 보여준다. 할머니들은 나이별로 서열이 있는데, 때로는 서열로 인한 권력분쟁(?)을 겪기도 하고 의견다툼으로 싸우고 삐진 후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싸움은 오래 가지 못하는데, 중재자들이 꼭 있어서 마주할 기회를 마련하고, 그 자리에서 얼렁뚱땅 다툼이 없었던 듯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경남 의령 만상마을, 할머니 6총사. 2007년 11월 의령군에서 전국 최초로 '독거노인 공동거주제'를 실시하면서 수십 년 째 혼자 살던 여섯 할머니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사진 출처 - KBS 할머니들은 다들 ‘독거노인’ 지원금을 받아서 생활하신다. 그러니 생활이 여유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왕언니가 아파서 몸져눕게 되자, 십 원짜리 까지 탈탈 털어 커다란 닭 한 마리를 사와 죽을 끓여 왕언니 몸보신 겸, 동네 할머니들과 나눔의 자리를 마련한다. 왕언니를 보살피게 되었을 때도 할머니들은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군말 없이 역할분담을 하였다. 그리고 뜨거운 물로 찜질이며 마사지를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 할머니들이 곱게 차려입고 얼굴단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집을 나서는 할머니들의 손에는 ‘달걀과 사이다’가 들려있다. 할머니들이 소풍을 가시는 길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결코 멀지 않으나 결혼생활을 하면서는 한 번도 갈 수 없었던 ‘가깝지만 너무도 멀었던’ 공원이었다. 막걸리를 한잔씩 걸치신 할머니들의 말씀. “남편과 자식들한테 받아보지 못한 보살핌을 언니들과 동생들한테 받네...!” “가족이 있을 때는 한 번도 못했던 호강을 지금에야 하게 되네 그려... 니들이 가족보다 낫다...” 그런 말들 끝에, 할머니들은 마치 소녀처럼 풋풋하고 환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시는 행복한 모습으로 방송은 마감되었다. 그러나 난 한참을 눈물을 흘리며 그 감동을 되짚어 봐야했다.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지? 우리가 보여줄 비전이란 저런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5월이 다가오고 있다. 5월은 가정평화의 달이라고 하지만, 평화의 달이 되기 위해서는 전단계가 필요하다. 폭력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단체는 해마다 ‘폭력 없는 가정평화의 달’ 행사를 전국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여성폭력예방조례’ 제정을 주요목표로 하고 조례제정을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일련의 여성폭력관련 사건들에 대한 대응의 전략이자, 지역공동체부터 바꾸어나가기 위한 전략이다. 이를 통해 여성들을 결집해 내고, 그 결집된 힘으로 다시 시작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위의 방송프로그램은 지역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할머니들은 하나의 가족공동체였다. 그런 생각을 한 군도 참 따뜻한 맘을 가졌다 싶었다.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상호부조’이다. 그것은 작은 공동체에서 실현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정신과 실천의 확산, 공유도 작은 집단에서 더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생활의 현장으로 들어가고, 생활과 밀착된 대안의 삶들과 제도들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모든 정부정책에 대한 대안이자, 생활세계를 한 층 질 높게 만드는 방법이 될 것이다. 비판하되 대안을 가질 것! (현 정권은 비판할 시간도 아깝다.) 담론을 논하되 행동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줄 것! 그래서, 이제 다시 행동을 조직하고 연대하고 실천할 때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7 | 추천: 0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라는 영화가 호평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검색하였더니 어떤 이는 한나(케이트 윈슬렛 분)와 마이클(랄프 파인즈 분)의 진정한 사랑 이야기로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좀 더 큰 차원에서 소통의 문제로 접근하기도 하였다.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만 가지고 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지만, 어두운 과거사를 정돈하는 이 영화의 방식이 흥미롭다. 영화는 몇 해 전에 개봉된 독일영화 <쇼피 숄의 마지막 날들>도 떠올려 주었다. 나치에 저항한 숄 남매의 삶은 이미 1970년대 후반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한국의 청년 학생들에게 저항의 영감을 심어주었다.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어쨌든 문자를 깨치지 못한 한나가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방법―어찌 보면 문맹 콤플렉스로 인해 시대를 회피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한나는 지멘스 공장 노동자에서 아우쉬비츠 수용소 감시원으로, 전쟁 후에는 전차 검표원으로 숨어 지냈다. 작중 화자인 마이클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30대의 한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까닭을 모른 채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까지 한나에게 들려주게 되었다. 몇 년 후에 법과대학생이 된 마이클은 견학을 간 법정에서 그 사이 종적을 감춘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나는 수용소에서 유대인 집단살해 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영화는 가해 집단의 맨 밑바닥에 놓였던 한나가 시도하는 말걸기라고 할 수 있다. 한나의 세상에 대한 말걸기, 피해자들에 대한 말걸기, 마이클에 대한 말걸기, 나아가 작중 화자인 마이클의 말걸기가 겹치면서 영화에는 작은 반전들이 거듭된다. 법관은 한나에게 수용소 화재시에 간수로서 유대인을 풀어줄 수 없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한나는 판사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를 되묻는다. 법원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종신형을 선고하였다. 감시원 역할을 사직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후 과거청산에서 자주 등장한 논리였다. 심지어 법정은 사형집행인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수 있었다―형집행인을 사직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전제하에 사형집행인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렇다면 원래 사형을 선고한 판사들은 어떤 책임을 져야했을까? 놀랍게도 사악한 판결을 이유로 처벌받았던 나치판사들은 없다. 한나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무수한 죄인들 중에서 '억울하게' 걸려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 책임은 법정에서 추궁할 수 있지만 다른 책임들은 어떻게 추궁할 수 있을까?" 사진은 영화 '더 리더'의 한 장면 <쉰들러리스트>, <피아니스트>, <발키리>도 나치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은 독일에도 나치에 저항하다 순교한 사람들, 나치의 만행을 최소화시켰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세상에 양심적인 인간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골드하겐은 <히틀러의 자발적 집행자: 독일의 보통사람들과 홀로코스트(Hitler's Willing Executioners: Ordinary Germans and the Holocaust, 1996)>라는 책에서 광신적인 나치들뿐만 아니라 독일의 보통사람들도 유대인 말살론에 기꺼이 동조하였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문제는 다수에게 있다. 세상을 끝장내는 데에는 악인 몇 명으로는 충분치 않고, 다수의 보통사람들의 비겁과 동조가 있어야만 한다. 나치 시대에 지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치가 장차 유대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야스퍼스는 독일인의 책임을 법적, 윤리적, 정치적,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예리하게 구분하여 지적하였던 것이다. 물론 법적 책임은 예상대로 법에 따른 책임을, 윤리적 책임은 양심에 따른 책임을, 정치적 책임은 국민의 일원으로서 지는 집단적인 책임을, 형이상학적 책임은 불행과 야만에 대한 인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담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법적 책임은 법정에서 추궁할 수 있지만 나머지 다른 책임들은 어떻게 추궁할 수 있을까? 인권침해와 집단살해를 저지할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그 책임을 이행하는 방법일 것이다. 영화는 이 문제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학살은 문맹이나 지성의 착오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적인 문제이다. 한나가 감옥에서 문자를 깨치듯이, 윤리적 책임의 문법도 그렇게 단순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2017-07-20 | hrights | 조회: 43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아침에 일어나면 현관으로 가서 배달된 조간신문을 집어 드는 것이 오래된 습관인데, 언제부터인가 신문을 집어와 1면만 훑어보고 그대로 놓아둔 채 출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무엇하나 즐거운 일은 없이 온통 짜증나는 소식이 가득해서, 아침에 신문을 읽고 나면 하루 기분을 완전히 잡쳐버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짜증스럽다 못해 용산 철거민 참사와 같이 신문 보기가 겁나는 기사들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해 신문 구독을 중단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무엇보다도 법률가로서 제일 화가 나는 일은 이 정부와 집권세력들이 도무지 법에 관심도 없고 법을 지킬 생각도 하지 않는 주제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법을 지키라고 훈계를 하며 법을 마구 휘둘러대는 일이다. 최근에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건과 관련하여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이 ‘대외비라는 문건을 슬쩍 유출한 판사도 공직자윤리위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외비라는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내 재판에 압력을 가하려고 한 행위보다 그 이메일을 유출함으로써 부당한 재판개입이 있었음을 알린 행위가 더욱 잘못이라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해괴한 논리이지만 혹시나 싶어서 공직자윤리법을 찾아보았더니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외부에 알린 행위를 처벌하거나 징계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법을 몰라도 지나치게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인터넷 서점 '알라딘' 같은 날 국방부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 2명을 파면한 것도 같은 논리이다. 국방부가 소위 불온서적 23권을 지정한 것이 군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의 행위가, 군 내부의 지휘계통에 따라 건의절차를 거치지 않아서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는 것이 파면의 이유이다. 군인사법 제56조는 징계사유로서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때,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 그 밖에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을 위반한 때’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행위는 이 가운데 어느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군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행위가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태만히 하는 것도 아니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도 아니며, 군인사법상의 명령을 위반한 행위도 아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는 법에도 없는 이유를 들어서 군법무관들을 파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논란이 확대되자 국방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안보위기 때문에 중징계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는데, 안보위기 때문에 군법무관을 징계할 수 있다는 규정은 어느 법에도 없다. 국방부의 해명은 대통령이 북한의 침략위협과 안보위기를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긴급조치를 선포하고 영장 없이 국민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감금하던 70년대의 논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법에도 없는 ‘공직자 윤리’와 ‘군 기강’ ‘안보위기’ 같은 것을 들먹이면서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반대세력을 탄압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법’의 칼을 빼들고 설친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재판에 회부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인터넷 논객을 구속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참사를 당한 용산철거민 사건의 대책위원회 간부들을 구속하고,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며 언론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는 YTN 노조간부를 구속하고, 폭행에 가담한 명백한 증거도 없이 민가협 간부를 구속한다. 이유는 한결같이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다. 자신들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법을 무시하거나, 법을 무기로 휘두르면서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이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괴롭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배는 고플지라도 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망명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0 | 추천: 0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소위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대학 안팎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고경영진(CEO) 인문학 강좌’가 회사경영과 시장경제에서 차지하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의 중요성을 고용주들에게 주지시킴으로써 인문학전공자들의 취업알선(?)을 겨냥한다면, ‘시민인문학 강좌’는 상아탑 바깥에 거주하는 일반인에게 꿈꾸기와 사색하기 등과 같은 인문학적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팍팍하고 고단한 그들의 삶을 위무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유익하고 행복한 세상살이에는 전혀 쓸모없는 ‘음풍농월(吟風弄月)’과 ‘고담준론(高談峻論)’에 탐닉하고 있(다)는 인문학에 쏟아지는 비난을 불식시키고 일반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 인문학 대중강좌이다. 그 중에서도 ‘희망의 인문학’은 노숙자나 수용자와 같이 특수한 처지와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 삶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력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사회복귀를 안내해 주는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나는 지난 2월에 수원구치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학술진흥재단이 후원하고 인권실천시민연대 등이 주관하는 ‘평화인문학’ 강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가?,’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프랑스혁명의 재발견: 여성과 인권’ 등의 세 이슈에 초점을 맞춰 10명의 미결수들과 함께 공부했다. 강좌의 기본취지는 우리가 이제까지 배웠던 역사지식이 위인과 영웅, 유럽과 남성 등을 중심으로 한 승자들의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반성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 동안 억압되었던 집단들(민중과 여성, 사회주변인 등)이 ‘낮은 목소리’로 전해주려는 ‘또 다른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는 것이었다. 승자의 역사학이 그 본질상 정복과 파괴, 침략과 갈등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동반한다면,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역사학은 공존과 배려, 포옹과 용서를 지향함으로써 평화인문학의 성격에도 부합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위와 같은 그럴듯한 수업목표를 표방하면서 진행되었던 ‘수용자를 위한 교정인문학’ 강좌는 내게 몇 가지 심각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소위 제도권(대학교)에서 ‘역사 선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10여 년 동안 근무하면서 일반인들이 흥미롭게 읽고 양식으로 삼을만한 글을 단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는 창피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강의 자료집에 게재될 글을 요청받고서야 나의 학문 활동이 극히 소수의 동업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 연구에 제한되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무도 읽지 않는 하찮은 논문들을 (되도록이면 많이!) 생산하는데 열중하면서 정작 중요한 세상살이에는 무관심한” 한심한 인문학자가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내 이웃과 사회, 현실과 세계정세에서 격리된 백면서생들이야말로 인문학 위기의 주범이라는 비판에서 나 자신도 비켜갈 수 없었던 것이다. 평화인문학 1기 수료식 모습 다른 한편, 나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궁극적으로 수강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끊임없이 직면해야만 했다. 강의주제와 관련해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지배층들이 독점했던 역사서술의 편향된 시각과 해석―예를 들면, ‘인디언’을 멸종위기로 내 몰았던 프런티어(Frontier, 개척)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최강국으로 발 돋음 한 미국의 서부팽창사와 “나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자랑했던 19세기 어느 영국 지식인의 유럽중심주의적 발언을 상기해 보자―에 대한 비판은 자칫하면 반미적·반세계화적인(?) 이념교육처럼 들릴 우려가 있다. 마찬가지로, 지배와 통치 및 질서와 발전이라는 승자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아래로부터의 시각으로 되씹어보면 산업혁명이나 자유방임주의가 이룩한 빛나는 성과는 다른 사람들(노동자와 실직자)의 상처와 고통의 대가였다는 설명은 기존체제를 향한 저항을 부추기는 좌파적(!) 선동으로 오해될 여지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본인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행위를 현재의 시점에서 깊이 반성하여 건전한 미래설계의 발판으로 삼아라. 그것이 죄인인 당신들이 입 닥치고 배워야할 불멸의 역사적 교훈이다.”라는 훈계조의 도덕수업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위험한 의식화교육’과 ‘따분한 정신무장교육’이라는 두 축 사이를 불안하게 왕래했던 나의 강좌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오늘날 (이 단어에 밑줄 좌~악),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부여안고 수용자들과 함께 했던 총 6시간의 수업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획득했으며 인생관과 역사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자신은 캠퍼스 바깥에서의 교류경험을 통해 역사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사회적 책무의 상관성을 고민해 볼 좋은 기회를 가졌다. 흔히 우리는 역사를 과거-현재-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에 비유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나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법으로 해서 새 것을 만들어 낸다)’ 같은 개념들은 과거의 거울에 오늘의 얼굴을 엄정히 비추어 스스로를 반성·경계하여 새로운 내일을 다짐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존재이유이며 주요기능임을 확인해 준다. 역사서의 제목에 종종 ‘거울’을 뜻하는 ‘감(鑑)’이라는 글자가 붙는―예를 들면, 《자치통감》이나 《동국통감》―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핵심내용은, 이 역사의 거울은 닦으면 닦을수록 위험하여 그것을 자기 입맛대로 과장, 곡해, 요용하려는 사람들을 반드시 처벌한다는 점이다. ‘역사 = 위험한 거울’의 등식은 최소한 두 차원에서 성립된다. 첫째, 역사의 지평이 점점 확장되어 ‘과거의 민주화’가 실행된다면 오랫동안 역사무대에 등장을 거부당했던 개인이나 집단들―청소년과 청년백수, 노숙인과 수용자, 비정규직노동자, 동성애자와 정신병환자, 외국인이주노동자 (무순^^*) 등―이 자신들의 정당한 몫과 권리를 요청할 것이다. 그동안 객관적 진리라고 암기했던 것들이 사실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실’에 불과하다고 깨우친 이들은 기득권층에 도전하여 기존의 세계관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역사학에 대한 한 개인의 지식과 인식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그는 자신을 둘러싼 ‘지금 이곳’의 정치외교적·사회경제적·문화종교적인 모순과 시대 착오성을 예민하게 파악할 능력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역사학은 우리가 이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 가도록 도와주는 좌표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금에 획책되는 반시대적이며 반국민적인 정책과 통치술의 무지와 과오를 포착하여 비판할 수 있는 고감도 안테나와 꺼지지 않는 촛불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다. 혹시, ‘평화’인문학 잔치에 초대되어 ‘다치지 않으려면 조심해! 역사는 위험한 거울이니까’라는 불경한 메시지를 (나에게, 너에게) 발신했다면, 나의 ‘오늘날, 역사학개론’은 본의 아닌 실패작이었으리라.
2017-07-20 | hrights | 조회: 40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터진 입술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입안도 온통 헐어버려 흥건히 피가 고였지만 웬일인지 머릿속만은 또렷하게 후련해져왔다. 지금도 무슨 억하심정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고딩 1학년 2학기말, 교련필기시험에 백지를 내버렸다. 늘 은빛 대위계급장을 양어깨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며 월남에서 용맹하게 베트콩을 때려잡은 무용담을 늘어놓던 구릿빛 얼굴의 교련선생은 시험성적 발표날, 마지막으로 불러 낸 뒤 칠판 앞에 차렷 자세로 세웠다. 그는 약간 살벌하게 보이는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명령했다. “입 꽉 다물어 ! 이빨 나간다 !” 어찌 보면 나는 고딩때 부적응 학생 이었다. 학교가 싫었고, 수업시간에는 뽀얀 몽상에 빠져 들기 일쑤였다. 늘 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숱한 의문들에 휘감겨 있었다. 완력으로 학교에서 짱을 먹을 배짱이나 관심은 없었지만, 언제나 숨 막히게 내리조이는 알지 못할 억압의 실체가 궁금했고 깊은 외로움의 뿌리를 들추어내고 싶었다. 가부장적인 부모님은 내가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 보다 점점 삐딱하게 엇나가는 자식이 걱정거리 일 뿐이고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내면의 동요를 들어주는 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무관심과 비난의 눈초리에 덧없이 삶은 방치되어 가기만 했다. 따뜻한 돌봄과 자상한 관심이 필요했지만 캄캄한 한밤중에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돌부리에 채인 생채기는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역설적으로 나는 대학에 가서 ‘의식화 학습’을 하면서 소외와 억압의 뿌리와 실체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서서히 방황을 마치고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10대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며 치를 떨다가도 내 아이만은 이 무모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생존 할 수 있을 거라는 쓸모없는 욕망으로 무장하는 어울릴 수 없는 두 가지 욕망이 일상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인 듯싶다. 일제고사를 치루는 아이를 ‘거부’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모른 척 눈감아야 하는지 갈등하다 수치스런 이율배반 앞에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어른들의 모습일 것이다. 일제고사로 줄 세우고, ‘자율’학습을 핑계로 밤늦게 까지 잡아두며 여전히 머리나 교복 길이로 쉽게 아이들을 통제 하는 구질구질한 일이 거리낌 없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고딩시절 나처럼 삶에 절망하고 마음속으로 학교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마, 전국 순위 10% 정도에 들어 ‘대박인생’이 예정된 아이들을 제외하고 지금 자신을 아끼고 미래를 낙관하면서 준비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을 듯싶다.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로 대표되어 온 경쟁 중심의 교육정책에 대한 현장의 우려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여성신문 촘촘히 서열화 된 사다리를 올라타려고 발버둥치지만 더 높은 사다리를 연결시켜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는 것이 아예 불가능 한데도, 꾸역꾸역 경쟁의 사다리를 올라타는 현실은 아직도 내 아이만은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부질없는 신앙이 만들어 낸 속임수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함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어 무거운 열패감을 털어버리려는 안간힘 일 것이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면 고딩 시절 정신줄 놓지 않으려고 꾸준히 썼던 잡글, 제법 풍부한 독서가 그나마 나를 지탱해준 기둥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신줄’ 잡으려는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고, ‘꽃남’같은 드라마로 아이들의 영혼에 각성제를 놓는 우리가 지금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아이들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대리자로, 계급상승을 향한 허망한 ‘기대’를 쟁취하는 전투병으로 만들면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아이들을 알량한 판타지 드라마로 잡아두려는 교활한 모습으로 어느덧 그 옛날 대항하던 어른들을 닮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거대한 욕망의 구조물을 과연 하늘 꼭대기까지 쌓아 올릴 수 있을까?
2017-07-20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올 1월 ‘한 가지라도 지키자’는 기치(?) 아래 결심한 일이 “한 달에 두 번 이상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이다. 작심 3개월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2월에 본 두 번째 영화이니 아직까지는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영화관에 가기 전에 서둘러 영화평을 읽으려고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대부분 영화관련 소식이지만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청와대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등등도 함께 검색된다. 제목만 보아도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고, 시간도 없어서 영화평만을 읽고 덮어두었다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다. 이카루스의 꿈도 되살아날까? 대한민국의 시간을 1980년으로 되돌리는 ‘짧은 시간여행’에 빠진 것은 이 때문이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전 일에 태어난 남자로부터 시작하여 2005년 그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의 죽음까지 무려 87년의 세월을 더듬고 있는 영화에 비하자면 28년 전으로 시계를 돌리는 것쯤이야 일도 아닌 성 싶었다. 하지만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하였으니 예상하지 못한 고된 일이 된 셈이다. 원인은 시간여행 길에 다시 마주친 마티스의 그림 ‘이카루스’에 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밀랍이 녹아 추락한 무모한 이카루스는 유명 화가들에게 좋은 미술소재이다. 그런데 다른 화가들이 이카루스의 ‘추락’을 그린 반면 마티스는 이카루스의 ‘열정’을 그렸다. 선명하고 부드러운 파란색 몸뚱이와 왼쪽 심장 부근 오직 하나의 붉은 점. 마티스는 젊은 이카루스의 무모함에서 붉은 열정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꿈을 본 모양이다. 아니 필자가 그렇게 보았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든가.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그 그림을 잊지 못하였고 결국 다시 맞닥뜨린 것이다. 만약 1980년대 한국으로 되돌아간다면 수 많은 이카루스를 보게 될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눈부신 젊은 열정을 곳곳에서 마주칠 것이다. 젊음 탓일 수 있다. 하지만 젊다고 하여 다 이카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특정 시기에 집단적으로 그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사랑과 명예도 마다하고 목숨을 내거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앙리 마티스 <재즈 이카루스> (1947) 사진 출처 - 네이버 하지만 마티스의 이카루스 보다는 브뤼겔의 이카루스가 그 이후 한국의 현실에는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 브뤼겔의 그림에서 이카루스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가 그린 평화로운 어느 농촌의 풍경 속에는 바다에 추락한 젊은이의 흔적이 오른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남아있을 뿐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카루스의 다리 때문에 그림을 본 후 참으로 씁쓸하였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감정을 박사학위를 마치고 처음 섰던 강단에서 경험하였다. 사회운동론 강의를 하였던 당시 필자는 강의 시간에 1980년대 비디오를 보여준 적이 있다. 광주학살 비디오를 본 학생들은 경악했지만 그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필자도 내심 놀랐다. 굳이 역사학자 카(E.H.Carr)의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 모르는 불과 20여년 전의 역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아득한 옛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되살아나는 것 속에 이카루스의 꿈도 있을까”에서 급기야 “그 많던 이카루스는 다 어디로 갔을까”로 번졌고 덕분에 눈이 뻘개져서 출근하였다. 그래도 요즘 같은 경제위기 시기에 출근할 안정적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임시, 일용직 일자리가 줄었고 상용직 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2009년 1월 고용동향 자료를 충혈 된 눈으로 읽다보니 직장이 있어 시간여행이라도 한다 싶다. 이번 경제위기는 1997년과 다르다. 그때는 대기업 근로자도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등 임금 근로자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였다면 이번의 경제위기는 아래로부터 시작된다. 일용직, 자영업자, 임시직, 상용직 순으로 일자리가 줄고 중소영세사업장부터 문을 닫는다. 또한 대다수 국민이 경제위기라는 강물에 빠진 1997년에는 대기업과 상용직 순으로 구명대에 올라타 그 이후 10년간 한국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는 순서대로 빠진다. 아니 구명대에 올라타지도 못한 채 10년을 버티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급류에 휘말렸다. 게다가 지난 경제위기의 극복속도가 매우 빨랐다면 이번 경제위기는 그렇지 않다.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를 예측하기가 두려워 고용동향 자료를 읽기가 무섭다. 하지만 학자는 무릇 진실 앞에서 두려워 말아야 하며, 최소한 사실이라도 잘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가끔 종군기자가 겪을 법한 고민에 사로잡힌다. 내가 그 사진을 찍는 동안 사람이 죽어가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나 그 현장을 찍어 전 세계에 알려야 하나. 그러나 이카루스까지 포함한 그 역사를 찍어내는 것이 연구자로서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라고 믿으며 더 이상의 질문을 접는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