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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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만약 학생들이 이렇게 얘기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삶의 가치를 배우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학교라는 뻔하고 진부한 표현은 하지 않겠다. 그렇더라도 학교를 감옥으로 느끼는 현실은 정말 참담하지 않은가. 상상이 아니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물어본 결과다. 설문에 응한 48.0%는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지고, 34.2%는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히고', 40.6%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 운동의 연대체인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와 전교조 참교육연구소가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전국 초·중·고 학생 2,9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다. 솔직히 한국 사회에서의 학교가 열악하기 그지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왜곡된 교육구조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학교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렇지만 이 설문의 의도는 과도하게 경쟁을 부추기거나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학교라는 공동체 공간이 평소 학생들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 둘 사이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긴 하겠지만, 교육구조와 학교운영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더라도 학교운영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숨통이 트이도록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운영하는 학교가 있고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왜곡된 교육구조와 학교운영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 설문의 결과는 전체적인 학생인권의 상황도 여전히 열악함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체벌과 언어폭력은 아직 완전하게 뿌리 뽑히지 못했고, 이 중에 약 30%는 자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두발과 복장에 대한 규제를 받고 있는 학생도 절반이 넘었다. 자율학습과 방과후학교에 대한 강제도 상당수의 학교에 남아있는 상황이다. 교육당국 스스로 학생인권이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다른 셈이다. 학생들의 권리의식이 너무 높아져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어렵다는 주장도 그저 볼멘소리로 들린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져 통치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하던 권력자들의 수준 낮은 인식과 상통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국민의 목소리에 몽둥이로 맞서고 있는 권력의 모습과 학교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학교 현장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복도에서 학생 2명이 수업태도 불량으로 교사의 지적을 받고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렇지만 이 설문결과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지역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지역과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경기·광주라고 해서 학생인권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체벌, 언어폭력, 두발, 복장, 학생자치, 차별 등 문제에 있어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체벌만 놓고 봤을 때 ‘전혀 없다’가 학생인권조례 시행지역은 58.7%에 이르는 반면, 미시행지역은 39.8%에 머무른다. 언어폭력도 시행지역은 51.7%가, 미시행지역은 36.5%만 ‘전혀 없다’고 한다. 다른 쟁점들 역시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는 대답이 23.3%와 41.0%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학교규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역시 27.9%와 53.2%로 간격이 크다. 다시 말하면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지역의 학생들은 그나마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이고 있는 셈이다. 찬/반 논란이 여전하고 교육부의 발목잡기도 있지만 학생인권조례의 규율이 학교운영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문제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제도적 확인에 불과하다. 조례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학생인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례의 취지를 현실에 반영하기 위한 의지와 정책, 환경의 조성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시행한 경기도의 경우에도 채 3년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런 조건이 완전하게 갖추어졌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도화가 갖는 일정한 힘이 현장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학생인권조례를 얘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미 학생인권조례 얘기는 식상한 얘기일 수 있다. 떠들썩하긴 했지만 조례를 제정한 곳은 최근에 제정한 전북을 포함해 고작 4곳에 불과하다. 시행하고 있는 곳 중에서도 수장이 바뀌면서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왜곡된 교육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힌 아이들을 당장 구출해낼 수 없다면, 적어도 학교생활만큼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부족하긴 하지만 그 가능성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금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아주 식상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얘기일지도 모른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22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지역사회 곳곳이 아프다. 당진은 인구 16만의 소도시이지만 10~20년 사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제2의 수도권’이라 불리며 서울과 1시간 거리의 접근성, 편리한 교통 그리고 현대제철·동부제철·당진화력 등 대기업을 비롯해 크고 작은 업체들이 모여 있어 월평균 400명의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외적으로는 여느 시·군보다도 두드러지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성장 뒤엔 아픔도 크다. 지난해부터 우리 신문에서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을 찾아가 대대로 터를 닦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마을의 옛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지역의 모습이 변하고, 농촌이 계속해서 고령화 되면서 옛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자꾸 줄어드는 추세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마을의 옛 모습과 전설, 집성촌 이야기, 주로 재배하는 작물 혹은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에 대한 추억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삽교호방조제를 건설하며 서울로 가는 길목이 바뀌자 당진읍(지금은 당진동으로 바뀜)보다 더 융성했던 합덕읍 지역은 완전히 침체돼 수십 년 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석문방조제, 대호방조제로 물길을 막아 간척지를 만든 곳에선 이제 “버글버글”하던 망둥이, 숭어, 준치 등 수많은 물고기가 자취를 감췄다. 당진에 김양식장, 염전이 있었다는 것도 이제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면 하얀 소금밭 뒤로 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렸지.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 한 장에 담아 두지 못한 게 내내 한이 되더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마을의 모습이 이제는 너무도 그립다는 어느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전쟁으로 북쪽에 고향을 둔 이들만이 실향민이랴. 산업단지 개발로 마을을 떠나야 했던, 그리고 마을에 남아 있더라도 옛 모습을 잃은 마을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 모두 실향민이었다. 최근 당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송전철탑이다. 철탑으로 전국적 이슈가 된 밀양과 같은 일이 당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당진에는 이미 총 525기의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다. 서산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철탑이 많이 세워진 지역이다. 한국전력 측은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통해 올 여름과 같은 전력난에 대비하기 위해서 송전철탑을 추가적으로 더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새롭게 건설하는 송전선로 전 구간을 지중화하라고 주장하며 단 한 기의 철탑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맞대응하고 있다. 선로 노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육상노선과 해월노선을 두고 내륙과 바다인근 지역 주민 간 반목이 야기되기도 했다. 한국전력 측은 14.4km에 달하는 전 구간을 지중화 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면서 ‘일부구간 지중화’라는 카드를 제시했지만 주민들은 완강하다. 이미 선로가 지나가는 마을에서는 가축불임이나 기형출산 등을 겪고 있으며, 구체적 통계자료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주민 암 발생이 많아졌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더불어 토지매매가 이뤄지지 않거나 지가가 현저하게 떨어져 주민들의 재산 상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진 송전철탑을 반대하는 주민들 (당진송전탑반대대책위 시위현장)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화력발전소 건설도 마찬가지다. 이미 당진화력에서는 9·10호기를 건설 중이고, 바로 옆 마을에서 동부그룹은 추가적으로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 역시 법정소송을 이어가며 대기업과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대도시 사람들은 “그럼 매년 벌어지는 최악의 전력난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양이 적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용 전기가 생산단가보다 터무니없이 싸고, 그로 인해 에너지 다(多)소비형 산업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부 지역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집중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대기업의 편의 주의적 발상은 대기오염을 비롯해 주민 건강피해, 재산피해, 주민 간 갈등 등 지역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도록 하는 잔인한 일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에너지자립을 실현하는 게 목표가 돼야 하며, 지금부터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를 일터로, 삶터로 삼고 지내면서 곳곳에서 아픔을 본다. 주민들은 이미 늙었고 힘이 없고, “늘 지기만 했다”는 자괴감도 때때로 드러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11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간첩은 오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이다.” 역사학자 한홍구의 글이다(2004년). 그가 만나본 전직 간첩들을 보니 만들어진 간첩이 많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힘 줘서 말했다. 오히려 간첩이 두려운 게 아니라, 간첩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두렵다고. 자. 이제 지금의 한국사회를 무섭게 몰아치는 ‘내란음모사건’을 보자. 33년 만에 다시 세상에 공포의 얼굴을 내밀었다. 근데 발표 내용이나 과정을 보면 의심스러운게 한 둘이 아니다. 130여명이 모여 내란 모의를 일으켰다는 합정동 M 종교시설. 마리스타교육관이다. 본인도 거기에 1박 2일, 당일씩 해서 십여 차례 다녀왔던 공개 대관장소이다. 주말이면 두 세 팀이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이런 대중공간에서 일요일에 모여 국가 전복과 국가시설 파괴를 기도했다고? 거기에 부모와 아이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리고 일부 분임 토의 녹취록으로다가 내란 모의라고? 어쩜 이리도 타이밍이 절묘할까.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청와대와 국정원, 33년 만에 내란음모라는 대형사건을 터트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란음모 죄목이 달라진다. 말 그대로 해묵은 국가보안법으로는 약하니 국면전환용으로 우선 찔러놓고 보자는 심보다. 영장실질검사에서 검찰이 공개한 증거자료가 녹취록 발언과 참고인 진술서가 전부라는 것이 지금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구체성 없는 녹취록과 금전지원을 받은 참고인 진술로 국정원 대선개입 물타기가 성공한 셈이 되어버렸다. 또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의 내란음모 조작 타이밍과도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가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겨우 승리한 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사건이 터졌고, 공안정국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무죄로 판결되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도 마찬가지. 전두환 12.12 군사쿠데타 이후 공안정국 전환용으로 희생양이 필요했었다. 역시 훗날 모두 무죄였다. 이쯤에서 정부 수립 후 최초의 내란죄 처형자였던 최능진 선생을 얘기해보자. 일제 시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숭실전문대 체육과 교수를 하게 된다. 이후 안창호 선생과 함께 활동하면서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2년 여간 복역한다. 해방 후 일제부역자들이 경찰 간부가 되는 것을 보고, 이들을 처리하고자 그도 경찰 간부가 되었으나, 오히려 그가 쫓겨났다. 이후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반대 활동을 펼치면서 5.10 단독선거 때 동대문에 출마해 이승만과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이승만의 방해공작으로 선거등록이 무효화되고, 단일후보로 이승만이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그 해 10월 선생은 내란음모죄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자유의 몸이 되어 ‘즉시 정전, 평화통일운동’을 펼친다. 그러나 그 해 가을 선생은 이승만의 지시로 일제부역자 출신 김창룡에 의해 체포되고 이듬해 총살형에 처해진다. “정치사상은 혈족인 민족을 초월해 있을 수 없다.” 주장하던 독립운동가 최능진 선생이 일제부역자 김창룡에 의해 죽게 되는 대한민국의 반쪽짜리 역사에는 늘 이렇게 ‘내란죄, 이적죄’들이 등장했었다. 최능진 선생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번 내란음모죄 사건에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안관계자가 인정했듯이 내부 협력자에게 돈을 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족과 함께 갑자기 외국으로 사라져버렸다. 또한 RO라는 혁명조직의 구체적인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3년 동안 수사했다고 하지만, 답변으로 나온 것은 아직 하나도 없다. 조중동을 포함한 보수언론에서만 계속해서 OOO가 연락 총책이다 등의 설만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이것 또한 공안기관과 언론의 긴밀한 협조 속에 펼쳐지는 공작일 뿐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죄로 잡힌 것이 아니다. 다만 만들어졌을 뿐이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진영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통합진보당을 향한 시선은 곱지 못했다. 작년 경선과 분당 사태, 그리고 조직운영 과정에서 보여준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미운 시선만을 보낼 때는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국면전환용으로 내란음모죄가 33년 만에 거대하게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 국가권력은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촛불을 내란음모 동조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보수 언론과 집단들은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낙인 찍고 있다. 촛불문화제에 나온 시민들을 종북세력이라 한다. 어제 참여연대 창립기념식 행사장 앞에서는 이석기 동조세력 참여연대를 해체하라는 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심지어 권은희 전 수사과장에게 편지를 쓴 청소년들을 이석기 키즈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또한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야권연대를 비방하면서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이 책임을 져야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작금의 심각한 현실을 통합진보당 이석기 사태로만은 볼 수 없다. 민주 대 반민주, 상식 대 비상식, 자유 대 구속의 현실로 봐야 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저항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최근 박래군 선생이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하는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 대책위> 결성은 반가운 일이다. 과거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말이 절실히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24 | 추천: 0
손상훈/ 소셜리서치앤멘토르 기획국장   존경 받고 있는 A목사님의 고백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월요일 쉬는 날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상습적인 놀이문화를 만끽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농담인줄 알았지만 지역 인근에 이웃 종교인들까지 모여 하기도 하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원정을 가 친목놀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해 조계종은 백양사 도박사건, 행정 최고 지도자급의 성매매 의혹 논란으로 도덕성이 크게 실추되었다. 그 일환으로 ‘자성과 쇄신 결사본부’라는 특별한 조직이 만들어졌고 1000일 동안 생명평화 기도가 500일을 맞아 소박한 기념행사까지 진행했다. 그런데 최근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을 지낸 장주스님이란 분이 도박장개설, 상습도박으로 포항지청에 자수서를 제출하고, 16명을 자신과 함께 처벌해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조계종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16명 가운데 일부 스님은 장주스님을 무고죄로 고소해 진실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도박장 개설 장소가 B교구 본사 사찰, O장학재단 인데 이곳은 조계종에서 매우 상징적인 곳이다. 사찰이야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도 아는 곳이니 언급할 필요가 없다. O장학재단은 설립자스님과 어머니의 이름을 따 만들었고, 거론 되는 스님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다. 자수하고 폭로한 분은 지하2층 지상6층의 이 건물 맨 위층에서 상습도박을 했고 금고에서 돈을 빌려주는 등 도박장을 개설했다는 주장이다. 자세하게 내부 배치도와 동선까지 검찰에 제출했다는 주장도 있다. 조계종 대변인은 수차례의 공식적인 부인 입장만 있다. 아직까지 O재단이나 당사자 스님 개인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O재단은 장학금 지원뿐만 아니라 소년소녀 가장, 독거 어르신 등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도 지원해 왔다. 은사스님의 뜻이 이웃의 어려움을 보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런 재단이 일반언론에 언급되면서 명예가 실추되고 있는데 참으로 차분하다. 만약 일방적인 주장이고 근거없는 폭로라면 O재단의 이사장인 이 스님은 대단한 인내의 소유자이고 행정 전문가이고 수행자답다. 은사스님에 얼굴에 먹칠을 하고, 2009년 각서까지 공개하는 행위에 대해 어떤 마음이실까 궁금하다. 이제라도 직접 말을 떼야 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말이다. 자승스님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한편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는 지난 8월24일 성명을 발표했다. 2천여 명의 하안거결재(여름집중수행)를 마친 수행자들을 대표하여 아주 강력한 입장을 발표했다. 특히 과거 수좌회 임원진 십여 명이 결정해 준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래로부터 다양하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나온 성명서라고 한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단호하고 확실하다 어느 학생회나 단체 성명 같다 주요 주장을 살펴보면 ▲자승원장은 불교광장 및 여타의 수단을 통한 연임 기도를 즉각 중단하고 퇴임하라 ▲자성과 쇄신 결사의 미명 아래 진행되는 특정인의 연임 획책을 즉시 중지하고 참회하라 ▲지난 도박사건 이후 수좌회와 약속한 8개 사항을 이행하기는커녕 연임을 기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혼란의 책임은 자승원장에게 있음을 밝혀둔다 ▲ 전국선원 수좌회는 덕망과 수행력을 갖춘 스님다운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선출되기를 바란다. 이번 성명서는 과거 성철스님을 기억하게 하는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의 지도가 결정적이었다고 알려졌다. 대부분의 선원 수행자 스님들이 존경하는 스님의 입장과 대부분의 선원장 스님들과 유나스님들이 동의하였다고 한다. 모 교구본사 선원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스님들이 서울 종로 조계종 총무원 1층 로비에서 재임포기 선언 때까지 침묵정진을 한다고 한다. 사회로 보면 연좌농성이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어느 선임 기자는 2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될 것 이라고 한다. 한편 봉암사 적명스님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기만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 30년가량 지속된다면 조계종단이라는 종명이 지속될 수 있겠느냐”며 “더 이상 머뭇거리고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망할 조짐으로 꽉 차있다, 그릇을 확실하게 비우고 새로운 판을 짜야 종단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선원수좌회 임원진 스님들은 ‘자성과 쇄신’의 명분으로 현 원장 스님을 비호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고 있는 D스님을 실명으로 비판 하자는 지적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적명스님은 조계종 교육원장 스님 등 소위 개혁적인 집행부 그룹의 스님들에게 성명서의 주장보다 더 강력한 지적을 했다고도 한다. 적명스님 인터뷰 장면.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적명스님은 “총무원은 겉으로 자정과 쇄신을 하겠다고 하는데 결혼증명서(은처)까지 나온 스님을 퇴출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징계 책임자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그(은처승)가 총무원 기득권자들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상황이 이런데 구태를 벗어던질 수 있겠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적명스님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불교계의 타락상도 정화할 방법으로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 법과 제도적 장치를 제안했다. 한편 불교계 시민단체의 한 곳인 참여불교재가연대 전문기관 교단자정센터(자정센터, 원장 김종규)는 22일 오후 포항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종 고위급 승려 도박 의혹 사건과 관련, 장주스님과 종상스님에 대한 구속수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과 검찰에 접수한 촉구서에서 “장주스님의 자수서 제출 이후 45일의 시간이 경과했다”면서 “출가자와 불자들의 위의가 참혹하게 훼손당하고 있는 점을 살펴 검찰은 엄중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정센터 김종규 원장이 수사 촉구서를 포항지청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자정센터는 “불국사 경내에 도박장을 개설했다는 진술이 있고, 두 사람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했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종상스님이 도박장 개설 및 상습도박죄이든 장주스님이 무고죄이든 두 스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정센터는 이어 “무엇보다도 투명해야 할 최대의 관람료사찰 불국사의 스님들이 도박을 했고 경내가 도박장소로 제공되었다는 폭로의 내용상 두 스님에 대한 신속한 수사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면서 “두 스님 중 현재까지 수사과정상 혐의가 명백히 드러난 한 스님을 구속 수사하여 구속 기간 내에 사건을 신속하고 엄중히 처리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불교계 평신도들로 구성된 단체에서 현 총무원장을 만드는데 일등공신이라고 알려진 모스님을 구속수사 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례이다. 종교지도자 가운데 상습도박이 놀이문화, 친목게임이라고 하며, 중독에 빠진 이는 없는 지 눈 밝은 평신도들이 잘 살펴보아야 한다. 조계종의 일부 고위급 스님들의 도박 중독, 의혹 이번에는 치유될까 궁금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16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보건복지부 사무관에 특채된 한 변호사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해 민간기관이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소송이 진행 중인데 갑자기 사표를 냈다. 곧바로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로도 그 변호사는 자신이 담당하던 소송에 계속 관여했다. 다만 이제는 복지부를 방어하던 자리에서 공격하는 자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알고 보니 그를 스카웃한 로펌이 바로 복지부를 상대로 한 소송 대리인이었다. ‘서울에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변호사 얘길 듣고 대뜸 ‘개새끼’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했던 행동 가운데 법을 어긴 부분은 십중팔구 없다. 이런 부류는 법의 경계선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에선 '회전문 인사'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국방부 장군들 사이에서도 흔해빠진 사례가 된 지 오래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전직 판검사 전관예우야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언제부턴가 모피아를 시작으로 이제는 공무원이나 준공무원 가리지 않는다. 로펌이든 컨설팅회사든 가리지 않고 고문이니 뭐니 하는 감투를 쓰고 말을 갈아탄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충돌'이라 부른다. 이해충돌이란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실제적이거나 외견상 혹은 잠재적으로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갈등상황을 일컫는다. 현대사회 공직자윤리 문제에서 가장 첨예한 현안이라는 지적까지 받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해충돌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만 거론한다면, 신속한 일처리를 '졸속행정'이라 하고 신중한 일처리를 '뒷북행정'이라고 부르며 공공부문 불신하기가 국민스포츠가 된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공무원에게 평생직장을 대가로 국민의 충복이 될 것을 요구하는 '제도 틀'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고위공직자가 곧 정치인이고 행정가이자 동시에 학자여서, 존경을 대가로 책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해충돌이란, 어떤 면에서는 불신의 댓가로, 다른 측면에서는 '공공성 약화'의 부작용으로, 또 어떤 관점에선 '사유화와 규제완화'의 후폭풍이 만나서 만들어낸 괴물이 아닐까. 1981년부터 2011년까지 공직에 있었고 복지부 차관까지 했던 분이 있다. 대체로 “원만하고 합리적이다”거나 “일을 무리 없이 추진한다”는 평가를 듣는 분이다. 이 분은 2011년 10월 갑작스레 퇴직을 결정했다. 새로 취임한 장관이 행정고시 동기라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다는 우호적인 해석이 많았다. 그런데 그 해 12월 법무법인 태평양이라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로펌에 고문으로 들어가면서 논란이 일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는 2011년 5월15일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영상장비 수가(건강보험 진료비) 인하를 결정했다. 건정심 위원장은 복지부 차관이 맡는다. 병원협회는 건정심 결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서울행정법원에 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복지부는 2011년 10월과 2012년 4월 잇달아 패소했다. 그 소송을 대리하던 로펌이 바로 법무법인 태평양이었다. 결국 복지부는 절차상 하자로 지적된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를 두 차례 열고 영상장비 수가 재평가를 거쳐 2012년 7월 영상장비 수가를 다시 인하했다. 건정심은 당시 “향후 건정심 의결사항을 소송 등을 통하여 번복하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이러한 경우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부대결의를 했다. 병원협회 대표가 건정심 위원으로 참여하면서도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는 행태를 겨냥한 것이었다. 자신이 책임자로서 정책결정을 주도한 뒤, 그 정책을 반대하는 소송을 담당하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고, 자신이 주도했던 정책결정을 1년 가량 늦추면서, 자신이 몸담은 로펌 수익만 올려준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가 차관에서 물러난 시점도 두고두고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가 퇴직한 2011년 10월19일은 ‘4급 이상 퇴직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 으로 전직을 제한한다’는 개정 공직자윤리법 시행 열흘 전이었다. 말도많고 탈도 많은 전관예우, 고위공직자 로펌행 논란의 한복판에 들어가면서 “원만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스스로 빈말로 만들어버렸다. 이 분은 전화 통화에서 이런 취지로 해명했다. “차관에서 물러날 당시엔 복지부에 중요한 현안이 많았다. 1심 패소 사실은 알았지만 소송 대리인이 법무법인 태평양이란 건 몰랐다. 고문이 된 뒤 태평양에선 나에게 그 소송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관여한 적도 없다. 우연히 인터넷 뉴스검색을 하다가 2심 판결 기사를 봤고 소송 대리인이 태평양이란 것도 알았다. 더 찾아보니 복지부가 절차상 하자를 치유했더라.” 솔직히 가장 놀랐던 건 (아무리 전현직 대통령의 선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책결정자였던 분이 남 얘기 하듯 하는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했다는 점이었다. 절차상 하자가 있다면 당시 건정심 위원장으로서 자신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다. 그 하자 때문에 자신이 몸담았던 곳이 연달아 소송에서 패소하며 영상장비 수가인하라는 좋은 정책이 1년 이상 늦어졌다. 거기다 이른바 ‘기획소송’으로 막대한 수임료를 챙겼을 법무법인 역시 자신이 고문으로 몸담았던 곳인데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이 분은 그럼 태평양에서 2011년 12월부터 2013년 8월 초까지 20개월 가량 도대체 무슨 일을 했을까. “헬스케어 쪽 자문을 하기로 했는데 그 쪽이 아직 국내기반이 취약해 자문해줄 게 별로 없었다. 헬스케어를 주제로 젊은 변호사들이 공부하는 모임에 ‘가끔’ 참여해 자문해준게 전부다.” 언론보도나 각종 인사청문회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대형 로펌에 간 전직 고위공직자들은 최소 억대 고문료를 받는다. 태평양이 사회적 기업이거나, 이 분이 아주 무능력해 밥값을 못하는 고문이었던 모양이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그냥 로펌에서 고문으로 계속 있었다면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분은 전직 고위공직자에 머물 생각이 없다. 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 분을 새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했다. 공직자윤리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쟁점인 이해충돌 논란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분이 고용복지수석이 되었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딱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또 어느 곳 고문으로 갔다는 소식으로 국민들 고문하지는 말아달라고.
2017-07-12 | hrights | 조회: 182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요즘 국정원 국정조사,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 등으로 어느 때보다 바쁜 일상 중에서도 수요일과 목요일엔 칼퇴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때문이다. 여기서 다루는 법정 사건 가운데 특히 지난주 목요일에 방송됐던 피의자 황달중과 관련된 재판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내를 토막 살인한 죄로 26년을 복역한 뒤 감옥을 나온 황달중은 ‘살아있는 아내’를 만나자 홧김에 깨진 꽃병조각으로 아내의 목을 그었다. 26년 전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감옥생활을 한 황달중에게 또다시 아내에 대한 살인미수죄를 적용할 수 있는가가 이 재판의 핵심이었다. 검사측은 이렇게 주장했다. “피고인은 억울한 수감생활을 했지만 그 판결이 유감스럽다는 이유로 선처를 바라면 안 된다. (황달중을 살인범으로 몰고 간 아내의 죄는 폭력이 아닌) 법으로 단죄함이 옳다”고. 이런 검사의 주장에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들의 절반 이상이 수긍한다. 그러나 황달중의 변호인인 장혜성 변호사(이보영 분)가 최후변론을 하면서 배심원 전원이 ‘무죄’로 마음을 돌린다. 장혜성은 “피고인에게 법은 무엇이었을까. 무고하게 감옥을 살게 한 게 법이었다. 그런 피고인에게 또 다시 법을 강요한다. 만일 여러분이라면 그 법을 따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 이 재판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과 동시에 사법부의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이다”라고 호소한다. 모든 걸 ‘정치적 상황’에 대입시키는 버릇이 있는 정치부 기자가 보기엔 이 드라마의 상황도 현재의 정치상황과 여러모로 비슷하게 느껴진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신뢰감은, 황달중이 사법부에 느끼고 있는 신뢰감처럼 거의 ‘제로’에 가깝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정치인들에 속아온 국민들은 최근 국정원 사태로 인해 이런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깨달으며 진저리를 치고 있다. 평소 정치에 별 관심 없었던 친구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늘 신문을 보며 몸이 떨리고 닭살이 돋았다. 차마 무서워서 끝까지 못 읽겠다. (정치인들이) 정치라는 의미를 알고 있기나 하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는 걸 알기는 아는지 여야는 최근 “국민들이 짜증낸다”며 ‘NLL 논란 종식’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보다 새누리당에 불리한 사태를 막기에 급급해왔다. 민주당이 이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자 새누리당은 “3권 분립이 엄연히 있는데 국정조사를 칼처럼 휘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내뺐다. 그러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 당시 국정원이 갖고 있던 정상회담 대화록을 입수해 이를 선거에 이용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군 통수권자로서 올바른 품격을 지켰는지 ‘NLL 국정조사’를 하자”고 공세를 가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태에 대해서도 애초에 “여야 합의로 검찰에 고발하자”던 새누리당이 불과 며칠 만에 여당 단독으로 검찰에 고발한 것도 ‘진실 규명’ 차원이라기보다는 ‘정치공세’에 가깝다. 이에 대해서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새누리당의 공세가 강해지자 문재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해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지정기록물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뤄져야 열람이 가능할 정도의 ‘일급비밀’에 해당한다. 공개될 경우 앞으로의 국가 외교에 상당한 차질을 불러올 수 있는 국가기밀을 단지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또는 약세로 밀리던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공개하자고 주장한 것은 국가이익보다는 당리당략을 앞세운 결정이었다. 공개될 것으로 믿었던 정상회담 대화록이 실종되자, 애초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은 원본이 아니다”라고 했던 주장을 뒤집고, “국정원 대화록을 원본이라고 치고” 남북정상회담 관련 사전·사후 문서를 우선 열람하자고 주장한 것도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다. 드라마 <너목들>의 한 장면. 26년 전 잘못된 판결로 황달중을 억울하게 감옥에 보낸 서대석 판사는 그 책임을 당시 검사와 변호사에 돌리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SBS 정치권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에게 “정치를 신뢰해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26년간 옥살이를 한 황달중에게 “법을 신뢰하라”고 말하는 것과 얼마나 다를지 의문이다.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너목들>에서 26년 전 잘못된 판결로 황달중을 억울하게 감옥에 보낸 서대석 판사는 그 책임을 당시 검사와 변호사에 돌린다. 판결 직후 황달중의 아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면서도 26년 동안 은폐한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26년 뒤 진실이 드러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까지 외면받는 서대석 판사는 끝까지 “내가 뭘 잘못했어?”라며 무표정을 유지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권력을 움켜쥔 자들에 대한 서늘한 두려움을 느꼈다. 상대방만 물어뜯으며 자신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는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얼굴과 서대석 판사의 얼굴이 겹쳐지는 대목이었다. 서대석 판사의 입양 딸이며 황달중의 친딸인 서도연 검사는 이 재판으로 인해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서도연은 재판 뒤 어릴 적 친구인 장혜성 변호사에게 말한다. “11년 전에 널 범인으로 몰았던 것 미안했다. 아마 나도 아버지처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나보다. 틀린 걸 인정하지 않는 게 얼마나 끔찍한 건지 오늘 알았다. 사과한다. 진심으로.”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그동안 악역을 맡아왔던 서도연 검사를 용서했다. 정치권이 국민들의 용서를 바란다면 통렬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과가 먼저다. 상대방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외치다보니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장혜성 변호사의 최후변론 같은 역할이 아닐까. 장혜성 변호사는 극중에서 피의자를 변호하는 입장이었지만, 그가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진실과 정의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혼란스러울수록 언론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통해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역할이 더욱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서워서 신문을 끝까지 읽지 못 했다”는 친구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51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2007년 9월 버마(미얀마)에서 들려온 군부독재에 의한 잔인한 시위진압소식은 한국의 많은 시민사회 운동단체들의 관심과 우려를 불러왔다. 기름값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는 그동안 군부독재에 대한 불만들과 융화되며 거침없이 커져갔고 버마에서 존경받는 승려 분들이 시위에 가담하면서 시위는 전국화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군사독재정권이 그러하듯이 버마 군부독재는 무자비한 공권력을 사용하여 시위를 진압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당시 내가 활동하는 단체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 한국 내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왔던 버마인들의 단체(버마 NLD 한국지부, 버마행동 등)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서울 광화문과 버마대사관 앞에서 촛불시위 및 수차례의 기자회견과 공동행동을 하며 버마민중들의 항쟁에 연대하였다. 당시 기억으로 이렇게 버마단체들과 한국의 시민사회가 공동의 활동을 하기는 처음이 아니었나(개별단체들의 연대활동은 제외하고) 싶다. 시간이 흘러 공동의 연대활동은 이제 네트워크 방식으로 전환되어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수준이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모습이지만 안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10월 2일에 진행한 38차 Free Burma Campaign(korea) 모습. 시민사회 각계 인사들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이 버마 민중학살 규탄과 민주화 지지 긴급행동(버마긴급행동)을 출범하여 한남동 버마대사관 앞에서 버마민중 학살중단과 군부퇴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내가 활동하는 민변 국제연대위는 2007년 버마이슈를 시작으로 중국의 탄압을 받는 티벳, 활동가들과 종교인에 대한 정치적 살인이 만연한 필리핀, 내전으로 고생하는 스리랑카 등 이슈가 발생하는 순간에 연대활동을 하기 위해서 의미 있는 시도를 했었다. 아시아지역 국가들 중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자리 잡은(형식적으로나마) 한국 단체입장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아시아 국가의 인권상황에 목소리를 내려 했었고,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버마의 경우처럼 공동 연대활동도 진행했다. 그리고 단체 내에서 그 목소리와 활동력을 더 높여야 함에도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이라는 정치지형이 변화하면서 민변 내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진영 내에서도 국제연대는 다시금 한국의 상황을 밖에 알리고 연대를 요청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솔직히 내 코가 석자다 보니 국외의 이슈를 제대로 챙기기 어려웠다는 그럴듯한 변명을 할 수는 있지만 낯 뜨거운 변명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체 내에서 시작된 의미 있는 시도에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담당자의 잘못이 가장 크다. 그런 이유로 민변 국제연대위 내에서 2012년 후반부터 아시아인권 상황만을 다루는 아시아인권연대팀을 발족하였고, 그 첫 번째 국가로 버마를 선택하였다. 버마를 왜 선택하였는지는 딱히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전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럼 너희들 뭐할래?” 라며 주변에서 많이 물어본다. 관심 있어 하는 민변 소속 변호사뿐만 아니라 주위 단체 활동가들이 물어본다. 심지어 지금 버마에 뭔가를 하러 왔는데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좀 곤혹스럽다. 팀 만들 때 활동계획과 목적을 담은 설립안, 버마현지활동을 위한 기획안 등을 대강 끼적거렸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비싼 비행기 표를 지불하고 버마 현지까지 날아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 위안해주는 말이 있어 참 좋다.^^ ‘시작이 반이다.’ㅋㅋㅋ 일전 중동지역에 잠깐 있을 때 말버릇처럼 되뇌었던 표현이 있는데, ‘직접 봐야 마음이 동하고 마음이 동해야 움직일 수 있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 손과 발을 움직이자’ 라는 나름의 각오였다. 한국도 여전히 민주화되었네 인권이 어쩌네 하고 요란한데 여기 버마라고 아니 한국보다 훨씬 열악한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상황이 어느 한 순간 바뀔 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는지?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라는 질문에 나와 내주변의 사람들이 답을 할 수 있느냐? 이다. 마음과 머릿속을 좀 더 경쾌하게 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겠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경험을 경청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도를 타진하는 것이 이번 버마방문의 최종과제가 될 것이다. 그래도 잘 되어야 할 텐데..^^
2017-07-12 | hrights | 조회: 175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최근, 내가 속한 투기자본감시센터(이하, 우리센터)에서는 중국을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비판적인 논평을 낸 바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자격으로 방문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G2라는 경제대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도, 수천 년 문화대국과의 “인문”교류를 위해서도 그의 방중은 의미가 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시황제의 병마용갱(兵馬埇坑)을 방문하는 것도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우리센터의 비판 요지는 이렇다. 이번 중국 방문이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이라는, “심신지려(心信之旅)”라는 아름다운 슬로건도 좋지만,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 중국 자본으로부터 고통을 받은 국민들의 마음도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중국 자본의 먹튀에 대해 책임을 따져 묻고,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그전에는 믿음도 마음도 없다!.. 등등의 내용이다. 주지하다시피, 2009년 상하이차(上海汽车)의 먹튀로 발생한 “쌍용차 사태”로 수십 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이 죽었고, 수천 명의 해고자를 양산했으며, 77일 파업과 대량구속으로 평택이라는 지역사회와 한국 사회 전체가 감내한 고통은 너무도 크다. 2006년, 우리센터는 당시 노무현 정권의 쌍용차 중국매각을 반대하였고, 완성차기술이 무단으로 중국 상하이차로 도용되고 있음을 폭로하였으며, 이를 검찰 고발한 이래로 쌍용차 사태에 개입을 해왔다. 지금까지, 이 사태를 주시하여 내린 결론은 쌍용차 사태의 주범은 대한민국, 국가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반대를 억압하고 무분별한 매각을 강행한 당시 정권, 상하이차에게 대출을 해주어 채권단과 맺은 “특별협약”을 무력화시켜 쌍용차의 부실과 기술유출을 방치한 산업은행, 상하이차에 대한 고발을 묵살한 검찰, 상하이차의 회계조작을 통한 고의 부도를 묵인하고 대규모 정리해고를 승인한 파산법원, 상하이차와 결탁한 대형 회계법인과 쌍용차 경영진, 쌍용차의 완성차 기술을 훔쳐 중국에 넘기고 일신의 영달을 차지한 연구소 임원들,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무력진압하고 또다시 수상한 인도 마힌드라 자본에게 쌍용차를 재매각한 이명박 정권 등, 모두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국가기관들과 사회적 권력자, 전문가들, 쌍용차 내부의 권력자들이 총체적으로 모의해서 저지른 것이 쌍용차 사태이다. 하지만, 한국만 그런 수준의 국가범죄로써 쌍용차 사태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쌍용차 사태는 중국의 국가범죄이기도 한다. 작년 9월 국회에서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쌍용차 사태에 대한 중국의 책임을 확인할 수 있다. 상하이차의 불법적인 기술유출로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상하이차가 조기철수를 한 것인데, 상하이차 뿐만이 아니라 상하이시, 상무부 등 중국정부가 그 철수를 결정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그 상하이차의 철수를 협조한 것이다. 무수히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말이다. 이렇듯 쌍용차 사태의 책임이 1차적으로 중국에게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2006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직 후, 한국을 방문한 당시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熙來)가 정세균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인수에 반발하는 노동조합 단속을 요구한 바도 있었다. 보시라이는 부패독직, 부인의 암살 혐의, 유명 여배우와의 성추문으로 실각해서 온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 중국 정치인이다. 중국은 상하이차의 범죄에 대해서 지금도 비호하고 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는 우리센터가 앞장서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장이 3년 넘게 그대로 묻혀 있다. 내용은 대주주인 상하이차로부터 다른 소액주주(쌍용차 노동자)와 회사(쌍용차)가 큰 손해를 입었으니, 회사인 쌍용차에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대리한 이는 우리센터 공동대표인 이대순 변호사이다. 그에 따르면, 2009년 소송을 하고 재판은 한번인가, 열리고 지금까지 휴정상태이다. 이유는 중국의 오만과 억지 때문이다. 처음에는 송장의 원고인 한국사람 이름이 중국의 한자가 아니라 한글인 것이 문제가 되었다. 원고 “홍길동”은 자기들이 못 알아보겠으니, 한자인 “洪吉童”으로 바꿔오라는 것이다! 김정우(현 쌍용차노조 지부장, 구속) 외 1,779명의 사람 이름을 한자로, 그것도 현재 중국에서 쓰는 “간자체”로 옮기느라 참 힘이 들었었다. 그래도, 피해 노동자를 생각해 어려운 작업 끝에 송장을 다시 제출했더니, 이번에는 주소가 상하이차로 해서는 안 되고, 상하이차 총재 천홍(陳虹) 외 13명의 개별 주소로 각자에게 송장을 보내라는 것이다. 작은 시민단체인 우리센터가 무슨 수로 타국의 그들 개인 집주소를 파악한단 말인가! 한마디로 중국이 쌍용차 재판을 거부하고자 오만부당하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 같지 않은 이유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재판을 열지 않는 판사도 한심한 자이다. 여기서 우리가 중국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상하이차는 중국의 국영기업(중국식으로는 국유기업)이다. 중국의 국영기업은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흔히 중국을 일체화된 중국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당정국가”, “일당독재”라고 한다. 중국의 총리와 장관은 모두 중국공산당 당원이며, 당에서 선출하고, 당에 책임을 진다. 중국의 공무원과 군대도 중국보다는 당에 충성을 한다. 국영기업들도 당의 것이다. 국영기업의 임원은 모두 당원이며, 당에서 선출을 하고, 당에 충성을 한다. 중국 4대 국영기업이라는 상하이차 총재는 장관급이라고 한다. 또, 현장의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불법유출이 된 쌍용차의 완성차기술도 상하이차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기관인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 , 中國科學院)’으로 쌍용차에서 훔친 기술이 보내지고, 거기서 검토한 후 중국 전체 자동차 산업계로 보내어진다고 한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로 둔갑을 해서 말이다. 따라서 쌍용차 사태는 처음부터 고도의 음모로 진행된 상하이차와 중국의 먹튀이고, 국가 범죄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들의 목적은 중국은 쌍용차의 완성차 선진기술의 획득이고, 투자 미이행으로 동종의 경쟁업체인 쌍용차 부실, 나아가 쌍용차의 숙련 노동자의 대량해고로 국제 경쟁력 상실일 것이며, 이를 어느 정도 실현했다고 생각된다. 역사상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18세기 인도 무굴제국이 내전 등으로 약화되자 영국 제국주의가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벵골지역을 장악했다. 당시 벵골지역에는 거대한 곡창지대였으며, 중국 양주(楊州)와 함께 세계시장에서 독점적인 경쟁력을 지닌 면방직(모슬린) 산업이 성업 중이었다. 영국의 제국주의자 입장에서는 산업혁명기 자국 면방직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의 모슬린 산업을 파괴해야 했었다. 그래서 모슬린 공장을 해체하고 직조기를 파괴했다. 더욱이 모슬린 산업을 영구히 파괴하기 위해 모슬린 제작 숙련노동자들의 모든 손을 자르는 야만적인 짓을 저질렀다. 이후, 인도의 모슬린 산업은 붕괴되었고, 영국산 면방직 제품만 인도와 세계에서 유통되었다. 이 제국주의 야만의 사건과 쌍용차 사태는 매우 유사하다. 중국의 행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그 나라의 전통산업을 붕괴시키고 식민지 수탈경제로 전환시키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을 연상시킨다. 영국 = 중국, 동인도회사 = 상하이차(上海汽车), 무굴제국 = 한국, 벵골 모슬린 산업 = 쌍용차, 손목 잘린 노동자 = 정리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딱, 이런 사건이다.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쌍용차뿐만 아니라 LCD생산을 하는 경기도 이천의 하이디스에서도 중국 국영 자본, BOE에게 먹튀를 당한 바 있다. 또, 중국 자본의 아프리카 자원 약탈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국제사회 목소리도 높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한중FTA 협상 운운하며, 중국 자본의 더 많은 투자를 더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마음과 믿음이 쌓인다는 헛소리는 말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후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리커창 중국 총리와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의원시절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을 발의한 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그 법의 맹점은 많다. 무엇보다,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와 분야, 1800여 기업에 이르는 상장기업 숫자에 비해 턱없이 적은 규모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결국, 일부 대기업의 몇몇 기술보호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한계이다. 하지만,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 선점을 위한 국제 소송 전에서 보듯이 초국적 대기업들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 문제는 자신들의 기술을 해외 투기자본의 적대적 M&A로부터 지킬 어떤 수단도 강구하지 못할 수준의 기업에 대한 대책이다. 동종업계의 후발업체나 정체불명의 사모펀드, 투자은행 등 투기자본은 경영권에 접근할 수준의 주식취득 자체를 막아야 한다. 이들의 목표는 경쟁업체의 몰락이나 이미 국제시장에서는 경쟁력을 잃었지만 자국과 일부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선진기술을 노릴 것이다. 특히, 신흥 경제 강국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동종업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 투자를 심사하는 경제관료에 대한 주의와 감시도 필요하다. 끝으로, 몇몇 핵심기술 규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술인력에 대한 보호조치”이다. 숙련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도 사회적 비극이고, 기술개발 인력의 해외유출도 막아야 한다. 특히, 정리해고의 문제는 노동‧인권의 문제이지만, “산업보호”라는 관점에서도 중시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소비자 후생”과도 관련이 있는데, 국내의 숙련노동자들에 의한 생산이 중단되고, 해외의 미숙련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은 “도요다 리콜”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은행과 주요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해외 매각정책”의 폐기이다! IMF외환위기 사태이후, 김대중 정권과 그 이후 정권들은 주요 기업과 은행 등에 대한 해외 매각정책을 추진하였다. 2011년 9월 현재, 상장 기업의 외국인 소유 지분은 평균 30%이고,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도 외국인 지분은 절반을 넘긴 51% 수준이다. 금융기관은 더 심하다. 2012년 10월 현재, 4대 금융지주사 가운데 정부가 1대 주주인 우리금융(24%)을 빼고, KB금융(65%), 신한금융(63%), 하나금융(65%)의 외국인 지분이 모두 60%를 넘는다. 대부분 정체불명의 사모펀드나 투자은행인 경우가 많다. 즉 “투기자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자들은 자본시장을 넘어 주요 기업과 은행에서 대주주로서 책임 있는 경영이나 사회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반대로 단기적이고 투기적 수익, 먹튀에 몰두하고 있어 반사회적이고 반노동자적인 경영의 위험은 계속 증대되는 것에 있다. 다른 말로, “재무적 투자”라고도 한다. 기업의 가치나 성장을 목적으로는 하는 “전략적 투자”와는 상반된 개념으로 오로지 빠른 시간 내에 투자차익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계속 기업을 운영하고 한국에서 영업을 할 이유는 투기자본에게는 없다! 오로지, 단기 고수익이 필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은 쉽게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노출된다.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가 많으니 정리해고 할 때마다 주가상승 등 수익이 발생하고, 공장부지 등 보유 부동산이 많으니 매각할 때마다 현금은 쌓이고, 생산량에 딱 맞는 소비시장이 안정적으로 있으니 그에 따른 수익과 주식가치는 보장된다. 더욱이 해외시장까지 확보하고 있다면, 정부(중앙 또는 지방)의 세제나 보조금 지원기간도 끝난다면,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먹튀를 한다. 국내 사업장을 청산하고, 인건비 싸고, 구조조정이나 투기자본의 경영행태에 반대하는 “민주노조”가 없는 해외로 생산 공장을 이전한다. 또, 이미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보유한 경우가 많아 생산기술의 불법유출시 보너스로 엄청난 추가 수익을 볼 수도 있다. 최근의 불황도 이런 폐해의 반복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기업은 자본가의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지원해준 정부, 모두의 것이다. 이런 자본가의 배신은 반드시 규제되고 처벌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산업보호 일 것이다. 그래도, 남는 것은 이미 피해를 입은 노동자와 시민들에 대한 구제이다. 중국에게도 강력하게 쌍용차 사태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국의 범죄부터 단죄된 후 가능할 것이다. 쌍용차 사태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조사와 같은 진상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결코,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나 자살한 노동자가 불쌍하니 이들을 구제해 달라 식의 태도는 쌍용차 사태의 진정한 해결이 아니다. 또는, 다시 쌍용차가 예전의 생산력을 복구했으니 현재 경영진이 선처를 해서 해고자를 복직시켜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웃기는 소리이다. 쌍용차 사태는 산업변동기에 발생한 우발적인 실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한 소리가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부에서 나올 때가 있는데, 불쾌하다. 무지가 아니다. 아마도 그들 속에는 쌍용차 사태의 공범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쌍용차 사태는 한국과 중국의 국가범죄이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끝으로, 사족(蛇足)을 하나 붙인다. 나는 중국을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존경한다. 요즘 밤에 읽고 있는 것도 초(楚) 나라 시인 굴원(屈原)에 대한 평전이다. 다음 번 중국 여행을 기다리며 밤마다 그가 빠져 죽었다는 멱라수(汨羅水)를 상상한다. 다만, 쌍용차 사태에서 시비를 따지고, 책임을 묻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45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인권담당관, 전임 간사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하라. 2.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라. 3. 어린이에게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만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라 어디에서 나온 얘기일까?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식장에서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발표한 「아동의 권리 공약 3장」의 내용이다. 1989년에야 채택된 ‘UN 아동 권리 협약’보다 앞서고,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있었던 선언이지만 그 내용이 가히 혁신적이다. 어린이를 완전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노동을 금지하며, 배우고 놀 수 있는 가정과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완전한 인격적 대우’라는 것은 ‘촛불소녀’들에 대해 언론과 어른들이 ‘배후조종’을 들먹이며 ‘무뇌아’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전히 먼 일임을 실감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는 ‘미성숙’의 논리에 갇혀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완전한 권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노골적으로 제기되었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민주사회의 시민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이 어린이청소년들에게는 제한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성적지향’을 포함하려는 것에 대해 ‘동성애자 양산’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 속에도 어린이청소년은 그저 스스로 인식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고가 깔려있다. ‘완전한’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인격적 대우’조차 먼 것이 현실이다. 어린이노동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법으로 허용하고 있는 청소년노동에 대해서는 ‘사각 중에서도 사각’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생계를 위해, 또는 용돈벌이(용돈도 사실 대부분 생계와 연결되어 있다)를 위해 PC방과 편의점 등에서 일하거나 ‘30분 안에 도착’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야간•휴일수당은 고사하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폭행과 성희롱을 일삼는 추잡한 어른들이 있지만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미흡하기만 하다. ‘고요히 배우’는 것은 “떠드는 놈은 죽는다.”라는 무시무시한 협박 속에서 일절 소음 없는 조용한 학교라는 왜곡된 방식으로만 나타나고 있다. 입시경쟁과 성적 위주의 줄 세우기 속에서 ‘고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죽어 있는’ 것이다. ‘즐거이 놀만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학교-학원-집’으로 이어지는 생활동선에 ‘놀 곳’은 들어가지 못한다. 집조차도 나머지 학습을 하는 공간일 뿐 놀고 쉬는 공간이 아니다. 이 거대한 도시 안에 어린이청소년이 ‘즐거이 놀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조건이 이렇다보니 어린이청소년과 관련한 지표들은 ‘우울함’ 그 자체다. 국내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도는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그것도 한참 차이가 나는)이다. 자살을 생각해 본 어린이청소년은 부지기수이고, 열 명 중 한 명은 여러 번 생각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 방임, 학대, 성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있고, 학교를 떠나고 집을 떠나는 어린이청소년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청소년’은 여전히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사실 이러한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린이청소년을 학교 안에만 가두어두려는 사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학교 안에 있어야 하니 기본권을 제한해도 되고, 노동현장에서 학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고인 것이다. 학교 안에만 있어야 하니 도시에 놀 곳 따위는 필요가 없다. 또 하나는 어린이청소년 교육의 책임을 한낱 행정관청에 불과한 교육청에만 내맡기고 있는 데에 원인이 있다. 성장하는 과정이 곧 배움의 과정이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교육일 수 있는데, 학교를 포함한 교육청에만 맡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청은 교육과정이라는 아주 협소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하지 않고, ‘학생’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학교를 넘어 어린이청소년의 생활공간 전체가 교육적 환경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어린이청소년을 저 ‘우울함’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는 도시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 권리를 확인하면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맘껏 떠들며 놀 곳과 쉴 곳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교육을 나누어 맡아 학교 밖의 공간도 또 다른 배움의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와 학교 밖이 구분되지 않고, 삶의 공간이 곧 배움의 공간이 되도록 하는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도시 전체에 물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이 90년 전 소파의 일갈에 대한 현재적 고민일 수 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10 | 추천: 0
손상훈/ 소셜리서치앤멘토르 기획국장 한국불교의 90%이상 영향력이 있다는 조계종. 25개 교구본사 가운데 어떤 교구가 골프장을 설립해 영업을 하고, 시내 최상급 상업건물을 소유하고 임대업을 한다면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불교계에서는 골프가 운동이라는 주장과 일반 사회적 시선에서 또는 출가수행자의 모습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불교 교단에서 골프는 아직 확실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골프장 영업을 하는 사찰은 없다. 사회적 여론조사들 가운데 종교인들의 생각을 묻는 조사는 많이 알려지지 않고, 정확하지 않다고 하지만 또 한편으론 정확하다.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 조계종 중앙종회 한 종책모임이 주축이 된 몽골여행단 일행들이 지난 2007년 6월 25일 6.25 발발 57주년에 삼삼오오 징기스칸C.C.에서 라운딩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 골프장에 간 사실이 없거나 골프를 친 사실이 없다고 부인, 참회하거나 골프를 즐긴 사태에 대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임을 반증했다. 사진출처 - 불교닷컴 종교를 믿는 사람이면 자신이 믿는 종교가 최고라고 하고 영원하다는 확신이 굳세다. 그런데 최근 한 논단에서 인도에서 발생했던 불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간단하면서도 마음 가는 한 결론은 민중과 함께 하지 않아 망했다는 것이다. 소위 지식이 많고, 권위가 있는 특별한 출가수행자그룹만으로 강력한 탄압에 맞서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평신도를 포함하여 가르침을 생활에서 익히고 발전시키는 다양한 층이 존재하지 않으면 인도 불교 모양새가 된다는 곱씹어 볼 주제이다. 교과서 또는 학술적으로 힌두교 부흥과 이슬람 침입 이후 무자비한 사찰 파괴, 수천 명의 승려 학살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양면을 다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제목으로 발표를 한 조준호 박사(외국어대 인도연구소 연구교수)는 “성채와 승원에 갇힌 불교는 실천력이 크게 약화했고, 일반인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상실한 불교는 인도사회에서 종교적 신앙적 활력을 끌어내지 못했다. 또 상류층 후원에 안주한 불교는 왕조의 지원이 끊기고 이슬람 침략으로 후원자가 몰락하면서 거대 사원경제가 마비됐다.”고 지적했다. 힌두교도의 불교 탄압에 이은 이슬람교도의 무자비한 승려 살상과 사원 파괴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힌두교도 이슬람의 살상과 파괴를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불교가 사라진 내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조 박사는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내적 원인을 ▶교리적으로 조직충성도를 강화시키지 못했으며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 ▶일반인의 생활의례 정착에 소홀 ▶세속의 욕망에 반하는 ‘무아’ 교리 ▶정체성 상실 ▶힌두교의 불교 박탈 전략에 무대응 ▶승원에 갇힌 출가중심으로 민중과 단절 ▶산스크리트화로 대중과 유리되었다”고 진단했다. 국고보조금과 문화재 관람료, 큰 후원 신도를 찾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강렬한 느낌이 든다. 정확한 사회적 통계는 부족하지만, 무늬만 전통사찰이 아닌 대부분의 오래된 문화재 사찰은 대부분 왕조와 관 주도로 건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과 한국의 불교교단도 닮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한국 불교의 역사에서 고려 말 12세기 불교계는 지독하게 부패하고, 온갖 못된 일은 다 했다고 전해진다. 국가차원의 불교행사를 자주 열어 민중의 생활은 궁핍하고, 병역의 의무를 피해 출가를 하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라마불교를 이용해 여인을 유혹하는 몹쓸 승려들이 판을 치고, 심지어 사람장사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고려불교 교단의 문란은 유생들의 불교 배척의 근거가 되고, 조계종이 새로 등장하게 된다. 현재 조계종은 민중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비칠까. 오는 10월 조계종의 대통령 선거인 총무원장 선거에 갖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원장 후보의 기준에 최소한 은처 논란은 없는 후보, 상습도박이나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고, 후보 스스로 철학이 있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의 세속화 된 교황으로 알려진 알렉산데르 6세 시대의 ‘호색과 탐욕 부정부패’로 사상최악의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뛰어난 지도력을 갖춘 군주라는 의견도 있다는 교황도 닮은 후보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는 가장 먼저 찾는 주체이자 특혜를 받는 브이브이아이피(VVIP)고객 대접을 받는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 조계종 환경위원장 장명스님을 비롯한 환경위원들은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을 찾아 주민들의 호소를 들었다. 사진출처 - 불교포커스 한국의 불교가 인도의 선례를 닮지 않기 위한 소중한 사례도 많다. 그 중에 조계종 환경위원회(위원장 장명스님)는 밀양 송전탑 문제에 기자회견과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_출처 : 불교포커스) 지역사찰과 평신도들도 함께 할지 지켜볼 일이다. 답답한 철학놀음이나 하고 당시 인도 민중의 생활을 외면했던 불교 교단의 문란과 고려 말 12세기 불교와 닮은 점이 어떤 것인지 교훈을 찾아야 한다. 또한, 12세기 고려 말의 불교와 닮은 부패하고 너무나 세속적인 종교 교단의 모습은 인권을 아끼는 모든 이들이 ‘자성하고 쇄신’해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2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