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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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친구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몇 년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끼어든 택시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택시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가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친구는 택시 기사와의 대화 과정에서 “저도 조금 더 조심을 했어야 하는데 죄송하다”고 했다. 이 사고로 앞니가 빠지고 양쪽 팔에 금이 가는 피해를 입은 친구는 병원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조언을 들었다. 첫째는 “꼭 입원을 하라”는 것과 둘째는 “절대 사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입원을 하지 않으면 보험금이 나오지 않으며, 사과를 하는 순간 잘못이 인정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험사 직원은 친구에게 “혹시 사고 현장에서 기사에게 사과를 했었느냐”고 물었고, 친구는 자신은 사과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어느새 함부로 사과조차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손해를 보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따져보기 이전에 무조건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우겨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산다. 사과는 잘못이 명백하게 밝혀지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에 하는 사과에 과연 진심이 담겨 있을까. 그런 사과는 기껏해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조금이나마 선처를 바라는 생각에서 하는 하나의 ‘쇼잉’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을 접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사진기자단 사과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들의 주된 논리는 ‘잘못을 인정하면 법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쓴 책 <쿨하게 사과하라>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2008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 의사인 굽타 박사는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내야할 조직을 여덟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내는 의료실수를 저질렀다. 굽타 박사는 법적 소송으로 가기 전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사건 초기 변호사를 고용했던 피해자는 결국 의사를 고소하지 않고 8천만원의 배상금을 받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한다. 정식으로 고소했을 경우 수억, 수십억의 배상금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피해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 이야기는 당시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책은 이것이 단순히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수년간 조사한 결과 병원 측이 의료사고에서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한 사례가 37건이었는데 그중 환자가 소송을 진행한 것은 딱 한 건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병원뿐 아니라 하버드, 스탠퍼드, 미시간, 버지니아 등 미국 주요 대학 병원들은 의료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잘못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환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는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해외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우리나라는 어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수 신해철씨 사망 사건에서 해당 병원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아 국민적 공분을 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과를 하지 말라는 조언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은 정치권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좀체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과에 인색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뒤늦은 사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마음을 무너지게 하더니, 지난해 말에 터진 ‘비선 실세 파동’에 대해서도 “‘국민 여러분께 허탈함을 드린데 대해’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며 그 뜻이 모호한 사과를 내밀었다. 최근에 터진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서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된 정치인 명단이 가리키는 것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지만 그가 과연 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들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각종 파문에 지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6 | 추천: 0
손상훈/ 소셜리서치멘토르 기획국장   최근 불교계 언론과 시민단체 일부에서 조계종 천년고찰 P사 관련 고등법원 판결문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면서 추가 검찰조사 촉구 등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3년 ‘장주승려’가 자수서에 언급한 16명 관련자에 대한 검찰조사를 다시 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월 부산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J승려가 필리핀에 120여 회 원정도박을 하고, 심지어 해외 도피 중에도 도박을 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불교계 한 인터넷 언론의 기사이다. 부산고등지법 창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윤종구)는 지난 2월 4일 표충사 前 주지 J스님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검사의 항소심 구형도 기각하고 1심과 동일한 징역7년과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판결 이유’를 통해 J스님이 “피고인은 승려임에도 과거 약 10년 동안 약 120회에 걸쳐 필리핀을 출입하면서 그곳에 있는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였고 그에 든 경비 상당부분을 이 사건 횡령·배임금으로 충당하였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피고가 이 사건으로 필리핀으로 도피하던 중에도 그곳에 있는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에서 단순히 횡령 배임금액만으로 가장 중요한 양형판단의 근거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아니한 점 등의 불리한 양형요소 또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양형요소가 인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J스님이 1998년 1월 경부터 2012년 8월 경까지 총 227회에 걸쳐 필리핀 태국 홍콩 중국 등에 여행을 다녔고, 그 가운데 120여 차례에 걸쳐 필리핀을 출입하면서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다는 점을 판결 이유에 인용했다. 부산중앙지법 창원1형사부 J스님 항소심 판결문 일부 사진 출처 - 불교닷컴 이 기사가 보도되고 난 후 ‘장주승려 자수사건’에 대한 불교계 시민단체의 활동을 곱씹어 보았다. 지난 2013년 8월 참여불교재가연대 전문기관 교단자정센터는 장주스님이나 종상스님 등 도박장개설과 상습도박 의혹 승려들의 철저한 검찰수사를 촉구 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관련 승려 양측 모두 무혐의 처분하였다. 조계종 고위층과 관련된 16명과 문제를 제기한 장주승려 모두 자유롭게 된 것이다. 교단자정센터 김종규 원장이 포항지청에서 기자회견하려하자, 2013년 당시 불국사 신도들은 자정센터를 비판했었다. 사진 출처 - 불교저널 그런 가운데 영남 P사 J스님 도박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필리핀 등 해외 원정도박을 한 조계종 고위층 승려들에 대한 검찰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는 시사점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또한, 불교계 일각에서 현 검찰총장이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소문에 불과하고, 확인되지 않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 내정자로 되기 전후에 일어난 소문이었기 때문에 ‘전관예우’ 등 부정적이거나 탈법적인 사항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불교계 시민단체 일각의 의견이다. 소위 ‘장주승려 자수서에 이름 올린 16명’에 대해 검찰수사를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시작되면서 새로운 단체가 지난 3월 31일 창립했다. ‘바른불교재가모임(상임대표 우희종, 서울대 교수)’이다. 이 단체 창립행사에서 축사를 한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조계종 종무원조합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를 제기하는 등 법적공방이 시작되었다. 팟캐스트를 통해 조계종 총무원 핵심인사를 비판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조계종에서 하고 산하 조직이 대리전의 총대를 맡았다는 것이다. 현 제도권 일부 승려들의 권력싸움에 동국대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회피하고 5월 ‘부처님오신날’의 책임과 부채를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새로운 불교계 시민사회 진용,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약칭, 불씨넷)는 정웅기 운영위원장의 후임으로 유정희(지원, 전북불교시민네트워크) 님을 추대했다. 최근 불씨넷은 마곡사 주지 선거에 연루된 현 주지 부정부패사안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지난 3월 31일 ‘바른불교재가모임’ 창립으로 참여불교재가연대와 산하 전문기관 자정센터가 불교계 부정부패 사건의 짐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단체마다 ‘사명과 비젼’이 오래되거나 각 단체 상황에 맞지 않고, 젊은 인재들을 양성도 하지 못한 결과, 불교시민단체들은 현 조계종 권력에 아무런 위협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총무원 2중대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 인사도 있다”며, 단체 내부 정비에만 더 집중해야 한다는 단체 내부의 지적도 있다. 부패한 일부 승려가 고급승용차, 사설사암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막는 ‘승려 검소한 생활하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재가불자들이 도박중독치유센터 만들어 상습도박을 예방하고, 치유해야 하는 활동에 시민단체가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만 3천여 명의 조계종 승려가운데 500여 명이 ‘종교권력 해바라기’ 승려이며, 승려의 개인자산이 국민 일인당 평균 소득을 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건의도 있다. 조계종에서 제정 한 선원청규 같은 잣대가 더 공론화 되고 지킬 수 있는 강제조항을 만들며, 승려들이 포살법회 내용을 더 채우고 피부로 와 닿는 실천을 해야 한다. 여러 불교시민단체가 내부의 우환을 극복하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좋은 에너지를 얼마나 사회에 제안할지 주목해 봐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842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1995년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돼 지방자치의 틀을 갖추고 실질적으로 시작됐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방자치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 왔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제1공화국인 1952년부터 제2공화국이 끝나는 1961년 5.16군사정변까지 이어지다 30년 가까이 중단됐다. 그러다 1980년대 말 지방자치법 제정 및 개정으로 다시 부활해 1991년도에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의회를 구성하고 1995년 6월 지자체장 선거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방자치 시대를 맞은 것이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은 비교적 지방자치가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인식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관선 정치에 비해 비교적 행정의 투명성이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형식적인 틀은 갖추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많다.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조례는 상위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시행 가능하고, 지자체가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따로 떨어져 나와 살면서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에 대해 완전한 독립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법과 제도의 한계가 있는 것보다 사람들의 인식은 더욱 심각하다. 광역시장이나 도지사에 대한 인식은 높아도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구청장은 누구인지, 지역구 의원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조차 정부의 정책과 문제점은 잘 알고 있지만 기초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나마 대부분의 정보가 생산되는 서울시의 경우는 조금 나은 편이다. 서울시 이외의 다른 지역(흔히 지방이라고 부르는, 지방이란 말은 서울 이외의 어떤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상당히 중앙집권적인 표현이다) 광역자치단체와 의회는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쉽게 말해 대전이나 대구, 광주, 또는 각 도에 사는 사람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은 알고 있지만 정작 내 지역의 정책은 알지 못한다. 지역민과 현장의 이야기를 담는 경남도민일보의 ‘몰비춤’, 제민일보의 칭찬캠페인 ‘WeLove’ 프로젝트, 경남신문의 ‘기자살롱’ 블로그.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 출처 - 미디어스 이는 한국사회 언론의 구조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조선일보·한겨레 등과 같이 전체적인 국가 정책에 대해 다루며 전국으로 배포되는 전국지와 부산일보·대전일보 등과 같은 광역지, 그리고 시·군·구의 소식을 다루는 지역신문의 비중이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차이가 크다. 지난해 취재차 독일에 갔을 때, 독일시민들이 접하는 전국지와 지역신문의 비중이 한국과는 정반대라는 얘길 듣고 상당히 놀랐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전국지를 읽는 것처럼 대부분의 독일사람들은 지역신문을 읽는다. 그나마 당진과 해남, 홍성 등 몇몇 시·군에서는 지역신문이 상당히 잘 정착돼 있어 사람들이 지역의 현안과 이슈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큰 편이다. 그러나 도시화에 따라 영상매체에 익숙한 젊은 인구의 유입 등으로 이주민 비율이 높아지면서 도시의 인구성장에 비해 신문 구독자 비율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선진적인 행정은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건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한국사회에선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방자치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건 여전히 서울로 서울로, 중앙으로 중앙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관심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가와 정부를 바꾸는 일만큼 내 지역과 공동체를 바꾸는 일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56 | 추천: 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두 달 전 아내와 딸과 함께 서울을 떠나 제주 시골로 이사하였다. 바람 많은 곳 제주로 훌러덩 날아왔다. 아,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은 한경면 저지리다. 제주 서쪽의 중산간마을이다. 제주가 고향이라서 제주로 온 것은 아니다. 육지가 고향인 놈이 서른아홉에 제주로 온 것은 나이 사십이 되기 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였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서울보다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 2월 경,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제주로 이사하면 어때?” 아내가 바로 답했다. “그럴까?” 결국 우린 대화를 시작한지 30분도 안 돼 제주행을 무모하게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개인적인 글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매번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만 글로 담다보니 이번 글은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라 필자와 마을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저지리 마을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써보기도 한다. 사실 이 마을에 우리 부부만 내려온 것은 아니다.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빈집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가, 사회활동가 청년 8명이 함께 모였다. 1년여 전에 먼저 내려온 친구 부부, 서귀포에서 여기로 들어온 부부, 우리처럼 서울에서 작년 연말에 일을 그만두고 내려온 친구 등 여러 청년들이 모였다. 각자, 그리고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마을 활동들을 펼쳐가고자 한다. 서로 지인 관계이지만, 살아온 결이 다르다보니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논쟁도 치열하다. 저지리 마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경면 주민들이 사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제주에서는 보통 중산간마을이라 한다. 제주의 중산간마을은 매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해방 이후 4.3사건 당시 제주 일대의 중산간마을 95% 정도가 불에 탔다. 그리고 대한민국 군인, 경찰의 비호를 받은 서북청년회로부터 어린이, 부녀자까지 엄청난 학살을 당했다. 이곳 저지리 마을도 4.3 때 불타 버렸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불에 타지 않았던 성읍 중산간마을이 이제는 민속마을 문화재로 보존되는 아이러니한 현실도 존재한다. 저지리로 이사 온 후 마을 이장, 청년회장 등 마을일을 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났다. 우리 이주 청년들이 마을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저지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았다. 특히 이곳은 마을 구성원 중 50대가 가장 많으며, 40대도 매우 많은 젊은 농촌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제주 중산간마을 중에서 유일하게 중학교가 있기도 하다. 저지리에는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도 선정되었던 저지오름과 마을 곳곳에 곶자왈(화산지대 천연 숲길)이 자리한다. 그렇다보니 해안가도 아닌 이 중산간마을에 올레길이 있다(13코스 종점, 14코스와 14-1코스 시작점). 더불어 문화예술인마을, 도립 현대미술관, 필자가 활동하는 탐라표류기 등 문화예술활동도 잘 준비된 곳이다. 저지리 환상숲 곶자왈 사진 출처 - 인터넷 결국 필자가 이장님과 얘기한 것 중에 하나가 ‘마을주민 해설사 양성’ 활동이었다. 마을의 이 좋은 생태환경을 보고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해설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마을 탄생의 이야기부터 생태환경 모습 등 마을 스토리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공부하고, 방문객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잘 돌보지 않았던 마을의 주변 생태환경도 함께 보존하자는 마음도 커나갈 것이라 본다. 더욱이 체험 프로그램 계발, 마을 농산물 및 생산품 판매, 숙박 등으로 마을 주민들의 복지 향상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다행히 필자가 KYC(한국청년연합)에서 시민 대상 평화*인권 안내해설사 ‘평화길라잡이’ 활동을 10여 년을 해온 터라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최근에는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181시간 교육도, 제주참여환경연대 생태문화해설사 교육도 신청하였다. 여기에서부터 마을 분들과 작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시작해볼까 준비 중이다. 저지리 마을공동체라디오도 준비하고 있다. 제주에 개인별 팟캐스트 방송은 많지만, 마을방송국으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탐라표류기 문화예술창고에 작은 라디오 부스도 설치하였다. 4월에는 라디오를 함께 하고자 하는 주민들을 모집하고, 5월부터 교육과 방송 제작 등을 함께 하려고 한다. 중앙 언론에서만 다루는 거대한 뉴스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 마을의 이야기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활동이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 개인의 삶과 마을살이가 보다 풍요로워지는 마을방송국을 꿈꿔본다. 안타깝게도 라디오 주파수가 통신법상 승인이 나지 않아 인터넷으로만 송출이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극복해 제주와 육지 곳곳에 저지리 마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필자가 우선적으로 하고자 하는 위 활동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가져갈 것인가가 핵심일 수 있겠다. 당연히 필자도 어려움 속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겠다. 아무래도 위 활동에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족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소득 활동을 하면서 흔들리면 안 되겠다. 장기적으로는 마을 분들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차원으로 발전시켜 저지리 마을의 공유 자원을 키우고 주민들과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릴게 있다. 저지리 마을에 어떠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wepeace07@daum.net). 제주 지역 한 마을과 자매결연을 고민하는 육지의 마을과 기업, 생태관광을 꿈꾸는 곳, 감귤, 딸기, 제주 로컬푸드 농산물 직거래를 원하는 곳,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지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을 주시라.
2017-07-12 | hrights | 조회: 598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정부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가의식을 고취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폐지된 학교의 국기하강식을 부활하고, 청소년들에게 태극기 게양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방안까지 추진한다는 기사가 얼마 전 언론을 통해 흘러 나왔다. 이를 강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정부는 이에 연례적인 행사일 뿐 법 개정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고 다시 국기하강식을 하려는 이유는 국가의식, 즉 애국심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지나간 삼일절에는 아파트부녀회 등에서 태극기를 무료로 각 세대마다 나눠주는 아파트단지가 많았다고 한다. 태극기는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가의 여러 이미지를 대신하는 대체재로서 작은 천 조각(정부보급형은 60㎝ⅹ90㎝)인 태극기는 그 존재의 이유만으로, 단순히 많이 접하는 것만으로 애국심을 고취 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올해부터 경기수가 늘어나 한 해 총 720경기의 정규시즌을 치르는 프로야구는 매 경기시작에 앞서 애국가가 나오면 모든 선수와 대부분의 관중들은 일어나서 오른손을 가슴에 얹는다. 경기 시작 전부터 치킨과 맥주를 마시던 사람도, 족발에 소주를 들이붓던 사람들도, 몸을 푸는 상대팀 선수를 향해 계속 욕을 하던 아저씨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애국가가 나오면 일어나 외야 중앙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애국가가 끝나자마자 다시 앞서 하던 행동은 다시 계속된다. 나는 가끔 야구장에서 실제 그런 행동을 하거나 지켜본 사람이다. 아니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애국가를 들은 적이 더 많았지만 고백하건데 단 한 번도 그 현장에서 ‘애국심’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냥 그 상황은 웃겼고 애국가는 지루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 몰래 영화 출연자들의 맨살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이는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다. 지방의 작은 도시라서 거의 다 두 편 동시상영이었는데 한번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작영화인 심형래씨 주연의 아동영화 ‘우뢰매’와 몇 번을 돌고 돌아 다시 상영한 성인영화 ‘어우동’을 동시상영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영화 시작 전 인상적인 장면은 상영하는 영화가 ‘어우동’이건 ‘뽕’이건 ‘변강쇠’이건 간에 고향 사람들은 영화내용에 상관없이 애국가 전주 시작과 함께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 엄숙한 표정으로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서 있었다. 물론 우리들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엉거주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분위기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애국가를 듣는 동안 극장 안 관객들 대다수는 ‘애국심’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은 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1978년 서울시청 앞을 지나던 시민과 학생들이 국기 하강식을 하는 동안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물론 삼일절과 광복절 같은 국경일에 거리마다 아파트 베란다 마다 빼곡히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는 것은 썩 괜찮은 장면이다. 하지만 과거의 국경일을 기념하여 국기를 게양하는 것과 그것으로 현재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국기의 게양숫자와 애국가를 듣는 국기하강식의 존재유무는 애국심의 고취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한 해 동안 경기 전에 144번의 애국가를 경건한 분위기에서 듣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애국가를 들을 일이 10번도 되지 않는 나보다 수십 배 이상 애국심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제는 사라진 국기하강식을 통해 청소년들의 국가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발상은 야구장 안에서 술 마시고 듣거나, 성인애로영화 상영 전에 듣는 애국가처럼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무리한 국기게양과 국기하강식 사업 속에 애국심 고취를 빌미로 시민들에게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어느 한 정권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체제가 곧 독재이다.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독재정권 아래에서 교육을 받으며, 학교에 등교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하교할 때 거리에서 국기하강식을 접한 세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세대는 1980년대에 대학과 공장 등에서 역사상 가장 활발한 반체제 활동을 벌였던 세대였다. 우리의 현대사가 증언하는 이 역사적 아이러니를 정권 담당자들은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5포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포기를 희망으로 바꾸는 정책들이 하나씩 이어질 때, 그래서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것이 절망스럽지 않다고 생각될 때 국가의 존재는 조금씩 긍정을 넘어 사랑(愛)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이 텍스트가 아닌 현실로 구체화 될 때 애국심은 생겨날 것이라고 믿고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9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2014년 여름 한 달 반 동안 자원활동을 했던 ISM(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 팔레스타인인권 국제연대단체)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전(前) ISM 활동가였던 케일라 뮬러(Kayla Mueller) 씨가 IS(Islamic State)에 의해 살해당했고,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난민을 위해 활동했던 그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고 팔레스타인에서 뵌 적은 없었지만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마감했을 그분의 마지막을 떠올리니 한동안 멍 하면서 가슴이 아렸다. 전 ISM 활동가였던 케일라 뮬러씨, 생전 ISM 숙소에서의 모습. 사진 출처 - ISM 홈페이지 IS에 의해 살해당한 사례는 케일라 씨 뿐 아니다. 올해 2월 초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이자 활동가인 고토 겐지 씨는 참혹하게 참수 당했고, 2월 3일 요르단출신의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씨는 산채로 불에 타 살해당했다. 그 영상들은 Youtube에 공개되었고 전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개인적으로 이 소식을 접하면서 힘들게 묻어두었던 김선일 씨 기억이 떠올랐다. 2003년 당시 김선일 씨를 참수했던 조직이 현재의 IS이다. 그리고 최근 한국인 한명이 IS에 가담하였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요르단은 IS 점령지역에 공습을 이어갔고, 미국과 이라크는 지상군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온통 IS이다. 2001년 9.11 사건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다. 침공을 개시한지 40일도 안돼서 미국은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종전을 선언한다. 미국의 승리로 마무리된 듯 했다. 하지만 진정한 전쟁은 미국의 점령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은 수도 바그다드와 주요 유전도시들을 장악하며 정치권력을 시아파에게 넘겨주었고 권력에서 축출되었던 세력들과 미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중동 지역 일대의 무장 세력들은 이라크에서 무장투쟁활동을 하였고, 이라크내 다양한 종족별, 종파별 무장그룹들은 그 세를 키웠다. 점령초기 미국 및 점령군에게 집중되었던 공격은 2003년 후반부터 점차 이라크 내 정치인과 권력자들에게로 확장되었고, 2004년 중반부터는 특정세력이나 권력자에 집중되지 않고 자신의 종파가 아니면 공격하고 그 공격받은 세력은 또 보복을 하는, 모두가 모두를 두려워하는 극심한 혼동의 상태로 되어버렸다. 2003년 팔루자, 사마라,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그 세를 키웠던 IS는 2004년 미군의 팔루자 군사작전으로 인하여 수천 명의 이라크인들이 사망하면서 본인 활동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후 무슬림과 소수의 타종교인들도 살해하는 극단성을 보이며 당시의 알카에다 이라크 조직으로부터 축출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지속되면서 IS는 그 세력을 확장하였고 시리아와 맞닿아 있는 이라크 북부지역까지 점령하며 이 지역의 유전을 중심으로 수십 억 불의 자금을 챙기며 어마어마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목표에 반하는 세력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잔인하게 포로들을 살해하며 그 동영상을 공개하여 전 세계인들을 경악케 하였다. 이제 IS는 2003년 부시가 이야기 했던 또 다른 ‘악의 축’이 되었다. IS로 인하여 또다시 이슬람종교와 이를 믿는 무슬림들은 극단주의자들로 폭력의 종교로 오해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모든 무슬림 친구들은 IS를 규탄하고 IS의 어떠한 행동도 이슬람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는 광신도 극단주의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IS의 잔혹한 영상과 메시지에 묻힌다. 2001년 이후 미국에 의한 ‘테러와의 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IS와의 전쟁이다. 언론을 통해 IS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것은 미국과 그 동맹국에 의한 지상군 투입의 시점이 임박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2004년 팔루자에서 그러하였듯 미국에 의한 지상군 투입은 한시적으로 IS를 이라크 몇 도시로부터 쫓아낼 수는 있어도 IS의 존재를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이스라엘을 지원하며 팔레스타인 점령에는 관심 없고, 석유와 군사기지 확대에만 관심 있는 미국이 존재하는 한 그 지역에서의 반미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를 숙주로 삼고 있는 IS를 비롯한 여러 무장단체들은 그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부시 정권의 테러와의 전쟁은 역설적으로 전 세계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밀어 넣은 계기가 된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09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대통령 박근혜는 2012년 선거 당시 각종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 담론을 통해 적어도 복지정책 부분에선 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는 위치를 잡았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복지정책도 내놨다. '모든 노인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던 기초연금은 사실 진보신당 의원 조승수가 대표 발의한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보다도 '과격'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세웠던 것은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세출구조조정이었다. 사실 '증세없는 복지'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논쟁 대상이었지만 박근혜는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역사에 공짜는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증세라는 부담스런 정책도 피해가고, 복지공약으로 중도층 표심까지 얻는 전술은 선거에선 무척 성공적이었지만 선거 이후 실제 정책을 펴는 데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됐다. 사실 재정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근혜 대선공약이 자기모순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애초에 새누리당은 각종 복지공약으로 치장한 두툼한 정책자료집을 냈지만 자료집 어디에도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은 적어놓지 않았다. 거기다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에선 활로를 못 찾고, 비과세감면은 지지부진하며, 세출구조조정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과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두 외과 수술하듯이 단번에 환부만 도려낼 수가 없는 문제다. 모두 전체적인 조세재정제도라는 큰 틀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신용카드 활성화와 현금영수증 제도의 의의를 과소평가하지만 두 제도는 세원투명성 강화를 통한 증세 효과 뿐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도 적지 않았다. 당장 뭔가 대단한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비과세감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큰 논란이 되는 연말정산이 바로 비과세감면을 통한 사실상 증세 효과를 위한 정책이다. 이를 두고 벌어지는 민심이반은 비과세감면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잘 보여준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같은 사실상 대기업 특혜를 종료시키는 것은 좋은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정부의 지지기반을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세출구조조정은 더 어렵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포기할 수 있을까? 각종 도로건설 예산을 포기할 수 있을까?. 당장 국회와 지자체, 재계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한국 재정제도는 기본적으로 점증주의다. "예산항목을 원점재검토하겠다"는 선언은 정치적 수사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정책에선 원점재검토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조차도 선택과 집중 지점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다. 전략이 없으면 구조조정도 없다. 더 큰 문제는 복지와 무관하게 증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11일자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수결손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경기침체도 원인이 아닌건 아니지만, 좀 더 본질적인 원인은 먼저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소득세 법인세 감세와 종부세 축소, 비과세감면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 거기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부가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과장하는 것이 세수결손 규모를 키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증세없는 복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증세없는 복지' 논쟁은 허깨비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증세없는 복지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복지확대를 안 해도 증세가 불가피한데 복지확대까지 하려면 당연히 증세를 해야 한다. 그걸 갖고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한국사회 담론지형이 왜곡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복지없는 증세'는 논쟁의 핵심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 담론은 '증세를 할래, 아니면 복지를 포기할래'라는 대국민 협박에 불과하다. 이건 두 가지 면에서 혹세무민을 한다. 먼저, 연말정산 논란과 담뱃값 인상에서 보듯 정부가 이미 증세를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복지확대를 한 것인 양 눈속임을 한다는 점이다. 세대 간 불평등을 전제로 한 기초연금, 2012년에 여야합의로 확대한 무상보육 말고 정부가 무슨 대단한 복지확대를 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국민들은 왜 분노하는가. 복지패널조사 등 여러 조사, 무상급식 주민투표, 폭발적인 복지논의가 지배한 총선과 대선 등을 통해 보면 국민여론은 복지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증세를 감당하겠다는 여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결국, 현재 논란은 '복지없는 증세'가 초래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해법은 '복지있는 증세'에 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09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   “13월의 보너스”, 세금환급을 기대했던 노동자들이 “세금 폭탄”을 맞았다. 노동자들은 열 받고, 시중 여론은 비등하였다. 정부의 설명은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고, 당장은 어렵지만 ‘소득재분배’라는 정책목표는 달성할 것이라며, 참으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장 힘든 노동자에게는 분할 납부를 하게 해줄 것이고, 소급 입법을 통해 공제 항목들을 다시 원래대로 복원한다고도 한다. 급기야는 “대독 총리”라는 정홍원이 국무총리에서 물러나고, 야당과 협상을 잘한다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총리에 내정하였다. 그런데, 정초의 “담배세 인상”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세금이란 유사 이래로, 또는 본질적으로 계급 차별적’인 것이라는 것 말이다. 아무리 여론이 비등해도 대기업에 쌓여있는 천문학적인 유보금에 대해서는 “감세 정책”이라는 정부 입장은 완고하다. 그러면서, 세수부족분을 오로지 노동자와 서민에게만 전가해서 수조 원의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질소득은 나날이 줄고 있지만 가파른 세 부담으로 등골이 휠대로 휜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한편, 이번에 세금폭탄을 맞은 노동자들은 주로 5인 이상 가구이거나 노후연금 가입자들인데, 이는 그동안 정부 시책과는 정면으로 배치가 되는 것이다. 이를 다시 조령모개(朝令暮改)식의 소급 입법을 통해 원래대로 본원 한다는데, 정부가 노동자, 서민에 대한 증세에 급급한 나머지 정책혼선, 신뢰붕괴를 자초한 것이다. 다음은 국민들의 노후생활을 위한다는 “국민연금과 각종 연기금, 공적기금”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해 우리사회는 하반기 케이블 방송 씨앤앰(C&M, 이하 씨앤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떠들썩했다. 드러난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의 문제이지만, 이면에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 기금과 감독하는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케이블 방송 씨앤앰의 큰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08년 호주의 사모펀드 맥쿼리와 정체불명의 MBK파트너스가 씨앤앰을 인수하는 것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승인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방송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의 위반사항이 분명하다. 씨앤앰의 다른 문제는 MBK파트너스가 인수방식인 차입매수(LBO : Leveraged Buy-Out)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장차 인수할 씨앤엠의 주식을 담보로 2조 1,500억 원을 신한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아서 인수했는데, 채무만기 때까지 씨앤엠의 수익금 상당액은 이 채무상환으로 충당될 것이므로 재정건전성 악화는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또한, MBK파트너스는 씨앤앰 뿐 아니라 한미캐피탈, HK저축은행 등 구내 금융기관들과 중국, 일본, 대만의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를 하고 있는데, 대개 신한은행 등 국내 유수의 금융기관들이거나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기금의 대출과 투자를 받아서 차입매수를 한 것이다. 국민연금 등의 수익성이 높아야 국민들의 노후가 행복한 것이고, 은행의 수익성이 좋아야 예금자 등 금융소비자들도 보다 많은 이자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다. 자, 국민연금 등의 수익성을 보다 더 높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다 수익성 높은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것인데, 그 답은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자본가(대체로 사모펀드의 운영자)에게 투자하고, 그 투기자본가들이 먹튀에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를 뒤집어 보면, 어떤 노동자들의 노후를 위해 다른 어떤(보다 약한) 노동자들은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이러한 현상은 씨앤앰 뿐 아니라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기업체, 은행 등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연기금들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서울 지하철 9호선에서 “세금 도둑질”을 한다는 투기자본 맥쿼리와 투쟁을 할 때 일이다. 맥쿼리는 주로 신한은행과 군인공제회의 투자를 받아 사회간접시설을 운영하며 수익을 낸다. 맥쿼리의 상무가 해명을 하겠다며 우리센터를 찾아와 “자신들이 투기자본이 아닌 이유”에 대해 말했다. 다른 말은 억지이거나 궤변이라서 다 반박을 했지만, 마지막 주장에서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큰 투기자본인데, 왜 작은 우리만 비판을 하는가!”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정부는 직접 운영하는 공적 기금과 관리하는 금융기관의 자금을 동원해서 투기자본-사모펀드에게 대출 또는 투자를 하고, 투기자본의 불법적 고수익을 정부가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정부가 곧 투기자본인 것이고, 정부는 국내 최대의 투기자본인 것이다!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인근 전광판 위에서 50일 동안 고공 농성을 해 온 케이블방송 씨앤앰(C&M)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지난해 말부터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나섰고, 공무원노조와 노동운동계는 저지투쟁에 나섰다. 공무원노조의 주장이 대부분 공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억울하다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한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으로는 “노후 보장”이 되지 않으므로, 모든 연기금을 통합해서 전체적인 국민연금의 “수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실상은 “개인부담금”으로 적립된 현실을 볼 때, 그 수급률을 높이는 것이 곧 투기자본의 먹튀에 전국민이 동참하는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옛날의 어느 중이 했다는 “갈대 구멍으로 세상을 본다(葦管窺天)”는 말이 생각난다. 문제는 “복지”이다. 이 모든 것이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한 대통령의 사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단견이다. 복지라는 것은 본래 어떤 것인지, 특히 세금을 내는 노동자 입장에서 먼저 규명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끼리 세금을 더 내서 복지 수요를 충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먼저 드는 의문은 복지는 ‘있지도 않는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빈곤이 현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에 대비해 노동자들 중에 일부 극빈층들에게 약간의 위로금, 공적 서비스를 주어서 불만을 무마하려는 것일까? 즉, 국방비 같은 일종의 ‘체제 유지비’같은 것인가? 물론, 지금의 사회적 불만은 정부가 “근로소득세”를 내는 노동자들 여러 층위로 나누어 놓고, 보다 소득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그보다 소득이 낮은 노동자에게 약간의 보조금을 주는 것에 있다. 이를 두고 ‘소득재분배’라는 것이다. 일부 “운동권” ‘식자’들도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귀족노동자”의 욕심으로 일자리를 나누지 못해서 비정규직 양산과 청년 실업이 생겼다는 정부와 자본의 궤변이 확장된 것이라고 본다. 복지의 비용을 노동자들이, 노동자들 각각이, 또는 그 중 상위 소득자들이 부담하는 것, 자체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현대 국가들이 복지정책을 시행한 이유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노동자 혁명에 대한 예방’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후, 불황 속에서 유럽의 노동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중투쟁을 했다. 그때, 러시아처럼 국가권력을 내줄 수 없었던 유럽의 자본가들, 국가의 지배자들은 그 반대급부로 “복지”를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의 상당부분도 자본과 국가의 부담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근대적인 국가보험이라는 독일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도 당시 성장하는 독일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예방차원에서 노동자들에게 시행한 것이다. 즉, 복지란 노동자들이 강력한 투쟁을 통해 ‘자본과 국가로부터 쟁취한 권리’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진짜 복지’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의 “복지”가 논쟁 중이다. 주로 노동자 개인에게 세금을 지금보다 조금 더 걷어서, 한국의 노령화 사회와 저출산 문제에 대비하자는 식이다. 즉, 체제유지를 위한 노동자 재생산이 복지가 된 것이다. 마치, 지난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가 재현된 듯하다. 복지비용을 일종의 ‘체제 유지비’라고 하는 것은 복지의 유래를 생각해볼 때, 합당한 말이다. 그리고 그 체제 유지비는 당연히 현 체제에서 큰 수혜를 입는 자본이 전부 또는 대부분을 부담해야 옳다. “국민 모두가 공평하게 의무”를 져야 한다는 헛소리는 말아야 한다. “우연히 이 나라에 태어나서 그냥 산 것 뿐이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불공평한 이 나라가 뭘 더 나에게 요구하는가!”, “당신들의 나라, 이제는 당신들이 부담을 해서 지켜라!” 이렇게 주장하며 노동자는 싸워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18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요새 ‘세상은 엉망진창’이란 말이 유행이다. 말 그대로 그렇다. 새해 희망에 대한 얘기 대신에 오른 담뱃값에 대한 걱정이나 나이만 한 살 더 먹은 취업준비생들의 한탄, 안 그래도 낮은 출산율에 공포스러운 어린이집 구타 소식만 들려온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진보를 지지하던 이들은 지난해 말 이뤄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절망을 느꼈고, 중도층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부진함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보수층들이라도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돌부처식’ 반응에 그 공고하던 지지층들의 마음도 조금씩 금이 가는 중이다. 아무도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 새해는, 달력의 날짜가 바뀐다는 사실을 빼고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녁이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삶을 개탄하고 이 나라 정치를 비판하고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며 입에 쓴 소주를 털어넣는다. 알만큼 아는 사람들은 얘기한다. 정부가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 사고’로 위장했는지, ‘정윤회 문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어떻게 ‘청와대의 개’가 됐는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찬바람 맞으며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러나 그들은 또 얘기한다. 이렇게 한탄한다고 대체 뭐가 달라질까. 그래서 사람들은 몇 시간의 한풀이를 마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살아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 참사 현장이나 쌍용차 굴뚝 농성장이나 이 사회의 비참한 현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존재가 미약하고, 조용하고, 언론에서조차 주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거기엔 사람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는 사고 충격에 우왕좌왕하는 희생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향키를 잡아준 민변 변호사들이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청소라도 하겠다며 나선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도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폭식 투쟁의 조롱을 견디며 유가족들과 함께 단식에 나선 이름 없는 이들이 있었다. 쌍용차 굴뚝 농성을 응원하는 가수 이효리 씨도 있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얼음 바닥에 몸을 누이는 ‘오체투지단’도 있다. 상식 있는 헌법학자들과 민주주의 연구가들은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에 대해 ‘종북딱지’가 붙을 것을 감수해가며 그 결정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짚었다. 우리가 이들의 노력을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난 1월20일 <한겨레 독자·시민 특강>에 나선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밭에 잡초가 너무 많은 것을 한탄하기만 한다. 아무리 잡초를 뽑아봐야 어차피 다 뽑지 못할 것이라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서서 잡초를 하나라도 뽑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하더라도 잡초는 그만큼 없어진다.” 홍 이사장은 먼저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가진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부터 설득하라고 제안했다. 당장 몸을 치료할 의료비가 없어 걱정해야 할 이들이 ‘무상 의료’에 대해 말하면 “그 많은 돈을 나라에서 대주다가 나라 살림이 거덜나면 어쩌느냐”고 걱정하는 ‘아이러니’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권력자들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국민들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자신이 없다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지금의 정당정치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미래의 정당을 꿈꾸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조직에 참여해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권력 견제를 지속하면서도 대안 정당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세상이 더럽다고 해서 사회를 외면해버리지는 말자는 얘기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추이를 지켜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힘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그 잠재력의 다른 말이 바로 ‘희망’이 아닐까. 엉망진창 2015년,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자.
2017-07-12 | hrights | 조회: 245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여전히 안녕들 하신지. 1년 전, 안녕하냐는 한 대학생의 물음에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1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안녕하지 못하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로 안녕하지 못했다. 300명의 목숨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정말로 참혹했고 비참했다. 갑과 을,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갈등이 사람의 생명을 두고도 유효했다. 보편적인 ‘인권’ 조차 사회적 갈등 앞에 무너져 내렸다. 정치 논리와 이념적 대립 앞에서 본질은 없었다. 그렇게 2014년의 봄이 지났고, 다시 차가운 겨울이 올 때까지 사회는 매한가지, 변한 게 없었다. 땅콩 한 봉지를 두고 ‘갑질’하는 재벌 집 딸을 보면서 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다시 학습해야만 했다. 맞다가 죽은 이등병과 그를 짐승보다 더 못한 존재처럼 취급하던 병장처럼, 아주 작은 권력조차도 한국사회에서는 ‘사는 부류’에 있을 것인지, ‘죽는 부류’에 있을 것인지 그 위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돼버렸고, 지난 1년간 우리는 그 사실을 가슴 아프게 확인해야만 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갑과 을이라는 계급으로 촘촘하게 나눠진 현실에서는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 평등할 권리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높게 올라가야만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소수였지만 시민들로 이뤄진 하나의 정당이 허무하게 해체될 때, 담배값을 비롯해 온갖 세금이 오르면서 시민들에게만 부담이 가중될 때, 나는 정말 대한민국이 ‘나쁜 나라’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은 권리를 보호받는 것을 기대하기는커녕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권력은 힘없는 ‘을’들의 서글픈 눈물을 짜내 유지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나쁜 나라’의 모습이 지역사회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뉴스 속에 나오는 거물급 인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로 인해 살기 팍팍해진 보통의 사람들도 나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쁜 일들에 가담한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면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사회인 것이다. 1년 전 지역에서는 멀쩡한 소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수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보험사기 행각으로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150여 명에 달하는 축주들과 축협·낙협 직원, 수의사, 소 운반상 등이 수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가담한 일이었다. 이들은 소의 다리를 린치에 묶어 허공으로 들어 올려 걷지 못하게 만들었고, 수의사는 가짜로 진단서를 끊었으며, 축·낙협 직원들은 허위로 보험서류를 작성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건 가축재해보험을 담당하는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의 부실한 관리와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취재·보도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세월호 사고가 났는데, 선장과 승무원들의 대처, 선박에 대한 허술한 관리, 한 종교단체와 정치의 유착 등 캐면 캘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는 부조리가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너무나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위부터 아래까지, 서울부터 지역까지 썩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남해안 최고 해돋이 광경을 자랑하는 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 일출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인사한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시라고, 내년 한 해에는 좋은 일 가득하시라고. 안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또 다시 해넘이와 해맞이를 앞두고 있다. 딱히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체념하듯 살아가지만, 그러나 여전히 꿈꾸며 인사한다. 부디 안녕하시길, 2014년보다는 행복하시길.
2017-07-12 | hrights | 조회: 19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