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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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간사),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요왕 /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최근 여기저기서 그동안 민-관을 연결하는 소위 중간지원조직 조례안이 폐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춘천도 필자가 몸담았던 곳이 조례개정을 하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아예 조례 자체를 폐지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의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전임권자가 시작했던 정책, 사업을 폐기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새로운 조례가 만들어지고 예산과 사업이 세워지고 그 조직의 구성원들을 구축해서 본 궤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노력과 시간, 에너지가 들어간다. 민간 조직도 그럴진대 하물며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 승인까지 받아 만들어내는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4년에 한 번 있는 지방선거로 정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폐기처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방자치, ‘단체자치’와 ‘주민자치’ 사이   2025년은 1987년 제9차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가 부활한 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였던 제1회 동시지방선거(1995년)가 실시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란 주민이 스스로 지역의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라고 지방자치법에 나와 있는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혹시 지방자치가 ‘단체자치’(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만 남아있고 ‘주민자치’는 허울뿐인 건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국민, 시민, 주민들의 권한과 의견은 종종 무시되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주민을 위한 조직, 기관들의 폐지과정에서 시민들과 진지한 공론장이나 의견수렴을 하는 시간이 있었던가 짚어봐야 한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마을 ‘히가시카와정’을 다섯 번이나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놀라운 점 하나는 12명의 지방의원들 정당이 모두 무소속이었다는 것이었다. 자기 지역을 위해 일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중앙정치의 정당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방자치 3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중앙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많은 정당의 정강정책이 지역에 도움이 되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바라보는 현실은 무조건 표대결로 가게 되고 의원 개개인의 가치와 신념은 정당주의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민주적 공론장을 통해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체제 속에 그 허점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자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 풀뿌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를 도모하고자 했던 숭고한 가치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중요한 정책결정에 있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막무가내식이 아닌 시민들의 민주적 공론장을 통해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한다. 한마디 더 첨부하자면 진정한 민의의 지방자치가 주민자치로 가기 위해서는 유럽이나 일본 등 지방분권, 지방자치 선진국들처럼 더 작은 단위로 권력과 권한이 분산되어야 한다. 적어도 읍면동 단위까지는 작아져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지방자치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써 지방자치   11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그중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일들이 있는데 모두 현장의 민의 활동가들이 직접 준비하고 기획하는 전국 행사들이다. ‘전국 읍면 실천 사례 공유회-옥천 청성대회’(11/15~16) 그리고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풀뿌리교육자치 국제포럼-장수’(11/29~30) 행사가 그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고민하고 움직이고 대안을 만들어 실천하는 의미있는 행사들이다. 서로가 토닥이며 응원하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나누는 그것이 지방자치이며 주민자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故 노무현 대통령님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지난 8월부터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성인 인생학교 : 학위도 자격증도 없는 시민교육, 삶전환교육)에 6개월 과정으로 공부하고 배우고 생활하고 있는 딸내미의 행복한 글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다 같이 다양한 사람과 관계 맺고 이것이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건강한 삶,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 같다”
2024-11-13 | hrights | 조회: 223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는 서울에 몇 안 되는 재활치료를 전담하는 서울 재활병원이 있다. 몇 년 전 보건복지부 수도권 공공어린이 재활병원 운영까지 도맡으면서 10년 가까이 이어온 뇌병변 장애인 청소년 캠프가 있었다. 이른바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당사자나 부모들이 너무 자신에 장애에 대한 치료나 재활에 매몰되지만 말고 다른 비장애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취업이나, 연애나, 대학 진로 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탐구와 모험을 하기를 희망하는 캠프였다. 처음에는 여행이나 진로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장애’를 무조건 감추거나 치료하기만을 원하는 학부모를 설득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캠프에서 배출한 유명한 이가 바로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이다. 우리 장애인 청소년들은 지난 10년 동안 송암스페이스 천문대에서 머나먼 은하수 밤바다 사이로 길고 긴 레이저도 발사했다. 그것은 송암천문대의 놀라운 장애인 접근성과 직원들의 높은 인권 감수성 덕분이었다. 영국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의 장애인 참여 프로그램 부럽지 아니하다. 부모님 장애와 관련한 잔소리 일절 없이, 활동 지원사의 일방적인 의존 없이 당사자들이 기획하고 병원 사람들과 실습 대학생의 지원만으로 코로나 전에는 제주도도 다녀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년에는 3년 만에 재개한 강화도 캠프가 여름 태풍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송암스페이스도 더 이상 숙박을 지원하지 않아 하룻밤 머물며서 별을 볼 수는 없게 되었다. 남들이 다가는 외국 체험 캠프는 정부 돈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강릉으로 가는 휠체어 10대   그래서 우리는 올해 마지막 여름, 지난 9월 4일부터 2박 3일 나름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강릉 앞바다로 가기로 결정했다. 병원 프로그램으로 병원 앞에서 우리끼리만 가는 셔틀버스 여행이 아니라 남들이 설레며 타는, 철도청 KTX 강릉 가는 복작이는 기차를 타고 모두 다 함께 단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휠체어 10대와 함께 정동진 일출도 맞이하고 레일바이크도 모두가 빠짐없이 발을 굴렸다. 인터넷에서 인기 높은 도슨트가 계신 참소리 축음기·에디슨 과학박물관은 편의시설도 해설도 너무 훌륭했다. 해설사 선생님은 당사자들이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한 명 한 명 모두 챙기셨고 장애인 청소년들을 모두 숨넘어 가게 웃겨 주셨다.   또한 사전 답사에는 문조차 열지 않았던 강릉역 역사 무장애 관광 지원센터에서 전동 휠체어도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물론 평창 올림픽 덕에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 있는 식당도 많았지만 강릉 역시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에 당사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무조건 단체 손님을 거부하는 식당도 많았다. KTX를 타기 위한 노력   숨겨진 이야기지만 이에 뇌병변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필자는, 서울 병원 관계자와 함께 강릉 사전 답사를 두 번이나 가야 했다. 식당이나 레일바이크를 이용할 때 큰 위험은 없는지 접근은 가능한지 특별한 차별은 없는지 나를 통해서 먼저 모두 확인해야 했다. 나같은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 스스로 여행할수 있다면 1:1 조력자가 있는 우리 청소년들은 다들 안전하고 신나는 경험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투쟁하기 위하여 여행하는 것은 아니니까 미리 차별이 있거나 배재당하는 상황과 조건을 만들면 아니되었다. 사실 예상치 못한 일은 KTX 기차에서 일어났다. 기차에 있는 휠체어 좌석과 함께 기차 한 칸 한량에 모두 함께 같이 가야하는 원칙이 중요 했다. 적어도 휠체어 이용자 당사자들은 그래야 했다. 당사자들을 위한 캠프이고 안전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비장애인 청소년들의 단체 여행은 그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고 두명만 기차 한량에 따로 타라고 아예 예약 자체를 막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KTX는 강릉으로 다닌 이제껏 한량이든 두 량이든 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을 5명 이상 태워 본 적이 없단다. 그런 손님을 받은 적이 없단다. 아니 아예 예약 자체를 안받아 주는데 어찌 도전을 하냐고. 휠체어를 캐리어나 택배 보관하는 공간에 두고 자체 인력 지원만으로도 옆에서 합석하겠다고 했음에도, KTX측은 처음에 휠체어를 이용학생들이 왜 10명이나 넘게 단체 여행을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언론이나 인권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설득하는데 두 달 이란 시간이 걸렸다.   서울역에서 승강기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우리는 출발 시간 두 시간 전에 모였다.   사전 답사 당시에는 짐많은 승객들이 승강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몰려 들어 제 때에 플랫폼에 당도 하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캠프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행여 차별 앞에 홀로 서지 않도록 많은 준비를 했지만 캠프 여행 매 순간 우리는 역사에서 기차에서 행여나 거부당하지 않을까 긴장했고 전투력을 모아야 했다. 그래도 강릉역에서 만난 리프트 버스 운전사 선생님은 너무나도 당사자들을 즐겁게 하셨고 막상 현장에서 모두 친절했다. 여행, 도전이 아닌,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   특히 우리 휠체어 때문에 비좁게 불편을 감수하셨던 다른 장애인 승객에게 감사드린다. 캠프 참가한 학생은 “이번 캠프에서 휠체어로 기차를 타는 것을 포함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체험하고 도전하는 좋은 기회였다."라고 말했다. 정작 중요한 건 우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우리를 만나고 우리를 지원했던 다른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여행을 떠날 것이다. 우리의 여행이 특별한 도전기가 아니라 그 어떤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
2024-11-13 | hrights | 조회: 198 | 추천: 5
정한별 / 사회복지사   타인의 인생에 개입해도 되는 것인가?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하면서 가장 자주하는 고민이다. 속된 말로, “내가 뭐라고” 식의 고민들이 타인의 인생에 개입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어주곤 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목적의식 아래 어떤 때는 문제가 아닌 것들을 문제 삼고 지원의 탈을 쓰고는 간섭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사람의 자기결정.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선택권의 존중을 위해선 당사자의 참여, 당사자가 의사표현 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이 중요하다. 말로는 쉽고 너무 당연한 일인데  때때로 이 간단하고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는 일이 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당사자의 경우에는 자기결정권이 더욱 쉽게 무시되곤 한다.   30대 남성 A씨는 혼자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단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고 받는 약간의 급여와 공적급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 복지단체에서 제공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보통의 혼자 사는 30대 직장인이 그러하듯 주거비용, 휴대전화 사용료, 식사비, 공공요금, 주말마다 이용하는 찜질방 이용료, 예배헌금 등을 사용하고 나면 저축을 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다.   A씨는 지적장애가 있다. A씨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A씨의 상황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A씨에게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A씨의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마법에 걸려버린다. 나아가 장애를 이유로 A씨를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낙인까지 새겨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특히 이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과 관련해서 더욱 큰 편견을 만들어 버린다.   A씨는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통칭하는 개념)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발달장애인 재산관리지원서비스의 제공을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재산을 수탁받는 기관과 발달장애인 당사자 또는 부모가 위탁자로서 현금, 부동산 등에 대한 신탁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신탁재산의 수익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된다. 수탁기관은 신탁계약에 근거하여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위해 본인이나 부모의 재산을 관리하게 된다. 한편, 재산관리지원서비스에서는 개별적 수요에 맞는 지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탁계약 체결 과정에서 개인별 재정지원계획의 수립도 함께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사자들은 신탁된 재산을 문화생활, 요양, 치료, 직업훈련, 심리상담 등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A씨는 갑작스럽게 목돈이 생겼다. 이에, A씨를 돕는 다양한 지원기관과 A씨가 함께 협의하여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A씨가 갖고 있는 목돈을 신탁재산으로 설정하여, 재산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매월 생활비를 지급 받는 식의 지원계획을 수립하였고, 1년 전, A씨가 신탁한 재산이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신탁 계약의 의미는 없어졌다.   몇 달 전, A씨를 지원하는 다양한 복지기관의 직원들과 A씨가 함께 모여 재산관리지원서비스 이용에 대해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A씨는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고, A씨가 없는 자리에서 A씨를 어떻게 지원하는 게 적절할지 논의가 진행되었다. ‘A씨는 자신이 받는 급여와 공적급여를 저축도 하지 않고 모두 다 써 버리니 문제가 있다,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가 받는 급여와 공적급여를 다 합쳐도 200만원이 되지 않는데, 저축을 하는 일이 쉬울까요, 주거비, 식사비, 공공요금 등 다양하게 쓰다 보면 결코 풍족하게 쓰는 것도 아닐텐데,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A씨가 장애가 없었다면, 문제를 삼았을까요? 이렇게 개입하는 게 맞는건가요?”   결국, A씨 없이 논의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고민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A씨가 결정하는 방향을 존중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실제 발생했을 때 당사자와 함께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회의는 일단락 되었다. 며칠 뒤, A씨에게 연락이 왔고, 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종료되었다.  “00에 취직 했어요. 11월부터 다녀요. 11월 20일에 만나요. 신탁(재산관리지원서비스) 필요 없어요. 저 혼자서 잘 해요” 존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 라고 말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자유.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을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2024-10-30 | hrights | 조회: 268 | 추천: 6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1. 지난 9월 25일 아침 해도 뜨지 않은 새벽 6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에 살고 있는 와엘의 집으로 15명가량의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이 들이 닥쳤다. 군인들은 와엘과 가족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고함을 지르며 한쪽으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명령을 거부하면 죽음을 당할 수 있기에 집안에서 있던 와엘과 그의 아내 메이샤,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거실로 모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은 와엘의 아내인 메이샤를 다른 방으로 옮겨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렸다. 60세 고령의 메이샤는 평소 시력에 문제가 있기에 눈을 가리자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고 와엘과 자녀들은 목숨을 걸고 강력히 항의했다. 군인들은 메이샤의 눈은 풀어줬지만 그대로 메이샤를 끌고 갔다. 집 밖에는 커다란 군용차량 4대가 있었고, 수십 명의 추가 군인들이 집 근처를 경계하고 있었다. 와엘이 추후 알게 된 그녀의 체포이유는 ‘이스라엘 보안 위협’이었고, 그녀는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이다. #2.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모함메드는 13살이고 밑으로 6명의 동생이 있다. 작년 10월 10일, 외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된 모함메드의 엄마는 외할머디댁에 잠깐 방문한 사이 모함메드의 아빠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함메드 집 근처의 집이 폭격을 받았고 그 집이 모함메드 외할머니 집이었다. 집안의 모든 이들은 사망했다. 그렇게 모함메드 가족들은 엄마를 잃었고, 모함메드와 동생들은 병원에 대피했다. 머지않아 병원역시 폭격을 받으면서 이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고, 그 와중에 아빠와 헤어지게 됐다. 3일 동안 거리에서 아빠를 기다린 모함메드와 동생들은 병원근처의 임시텐트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모함메드와 동생들은 계속 지낼 곳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생후 1년도 되지 않는 막내,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위해 모함메드는 먹을 것과 물, 땔감을 찾아 매일 거리를 헤매면서, 무슨 일이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3.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계속되면서 WCNSF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Wounded Child, No Surviving Family(WCNSF), 생존한 가족이 없는 부상당한 아이, 모함메드와 6명의 동생들과 같은 가자 지구의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모함메드는 아빠의 생존을 희망하며 동생들과 살아가기 위해 매일매일 분투하지만. 공습의 폐허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다른 아이는 아빠와 엄마가 없는 이 현실이 지옥이라며 자신도 부모와 함께 죽었기를 바란다며 절규한다. UN은 이미 가자지구가 아이들의 공동묘지가 돼 버렸다고 했다.  #4. 얼마 전 하마스의 리더라는 신와르가 이스라엘 군에 의해 살해됐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환호 했고, 미국의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축하를 전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했다. 한국의 언론 역시 신와르가 누구였고, 어떻게 죽었는지 상세히 전하며 10월 7일 이후 벌어지는 모든 사태의 원흉이 그였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재차 전달해준다. 그리고 며칠 뒤 이스라엘 총리의 집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며 언론은 비중 있게 다룬다. 이스라엘 총리집이 드론 공격받았기에 놀랄 만한 사건이고,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드론으로 암살당하자 안보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한다. 이 지독한 이중성과 위선이 그동안 세상의 정의였고 선악의 기준이었다. #5. 메이샤의 남편과 자녀들에게 이스라엘은 절대 면회를 허용하지 않는다. 메이샤의 가족들은 그녀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세상에 소식을 전하고 있다. 또한 가자지구의 모함메드와 6명의 동생들 역시 아빠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던진다. 이들이 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과 이웃의 관심과 도움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위선과 폭력은 긴 시간동안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웠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시간동안 서로를 돌보며 서로를 챙겼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체포하며 살해해도 이들은 존재로 저항한다. 팔레스타인은 그런 곳이다.
2024-10-23 | hrights | 조회: 382 | 추천: 14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어안이 벙벙했다.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청소년쉼터 출신인지를 두고 일종의 서열이 매겨진다는 경험담은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다. 청소년쉼터는 오갈 곳 없는 처지의 아이들에게 일시적이나마 먹고 잘 곳을 제공해주는 일종의 피난처다. 그런데 소년원에서 한솥밥을 먹는 아이들 사이에서조차 출신을 두고 나름의 비교 경쟁이 붙은 것이다. 보육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두가 부모 없이 자란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화장실에서 태어났고, 누구는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식으로 태생에 따른 서열이 공공연히 매겨진다고 한다.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마저 끊임없이 서열을 매길 정도로 비교 문화는 이제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상당수 한국인은 학창 시절 “몇 등이야?”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성인이 된 이후 연봉과 집값을 흔한 얘깃거리로 다룬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보긴 어렵다. 같은 무리 안에서 서열을 매기고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확인해 타인과 조금이라도 차이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물론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려는 심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비교하는 행동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더 뛰어난 사람과의 ‘상향 비교’를 통해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도 잘살아 보자‘는 상향 비교를 토대로 한국이 일궈낸 경제·사회적 성취는 적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3745달러를 기록했다. 1960년 158달러와 비교하면 200배가 넘게 불었다. 한국은 높은 교육 수준과 기술 혁신, 문화적 영향력에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비교 의식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별난 면이 없지 않다. 해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쌀이 주식인 동양권에선 서로 논에 물을 터주며 돕고 살아야 하다 보니 서구권에 비해 집단주의가 더욱 발전했다고 한다. 무려 5000년이 넘는 쌀 문화 속에서 동양인들은 같은 집단 사람들과 더 많이 비교하는 의식 체계도 갖게 됐다고 한다. 특히나 한국은 초고속 경제 성장을 거치며 물질주의까지 합세해 비교 의식이 한층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비교 대상이 주변 지인에 그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학교 친구에서 어른이 된 이후에는 회사와 동네 사람들로 바뀔 뿐이다. 자신과 유사한 상황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 위안으로 삼으려는 취지다. 그러다 보니 국제적인 비교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무감각하다. 일부 한국인이 타인에게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는 건 한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만 서구에서 연봉, 집값 등과 같은 재산을 대놓고 물었다간 무례하다는 평가는 물론 ‘하류층’이란 시선까지 따라온다고 한다. 돈을 대놓고 언급하는 건 ‘저속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란 인식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주변 지인들과의 구별 짓기에는 집중하면서도 더 넓은 차원에서의 비교는 간과하는 셈이다. 이제는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만을 전부인 양 여기는 ‘우물 안 개구리’ 태도에서 벗어나 시야를 좀 더 넓혀보는 건 어떨까.
2024-10-15 | hrights | 조회: 732 | 추천: 9
신종환 / 공무원 1995년 인류는 허블망원경을 통해 통상적인 장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빈 공간을 같은 위치에서 여러차례 관측한다. 대부분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여겼으나 관측 결과 아주 작은 관측 공간 안에서만 수천 개의 은하가 발견되고 이후 우주에 관한 천문학적 인식은 크게 전환되었다. 과학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나면 뒤따르는 발견으로 시도의 가치가 반증되고는 하지만 삶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오히려 시도를 지속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발견이고 의미이다. 브레히트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문구를 남겼고 지금은 시골에서 정신머리를 유지만 해도 훈장이 되는 시대다. 노조 아저씨들의 새로운 사업으로 젊은 노조의 패기로 민주노조의 모습을 보여 신규 조합원을 유치하자는 미친 소리를 꼭 참고 청년부에 남고, 돈이 없어 탈퇴하겠다는 친구에게 프렌차이즈 치킨 1.5마리 값 때문에 노조를 버리지 말라며 울고불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게 패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콧날을 오똑히 세우며 퇴근해서는 한동훈을 적극지지 하는 아주머니와 함께 웃는 낯으로 욕하며 수 년째 이어지는 책모임을 준비한다. 서울에서 금천구청 휘하의 복지 부서와 연계된 금천구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친구는 공무원과 연계된 조직 특유의 경직성, 낭비, 불통, 섬세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노동이 아니라며 통화할 때마다 폭발한 백두산처럼 감정을 쏟아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흥군 문화재단에서 사람을 뽑는다며 다음 직장으로서 어떨지 내게 물었다. 나는 고흥군의 위치를 보고 잠시 말을 잊고, 고흥군 문화재단에서 작가들을 초청해 고흥군에서 잠시 머물게 하며 쓰게 한 글들을 보고 더 길게 말을 잊었다. 훌륭한 곳이겠지만 자본집약과 노동집약의 총본산 서울에서 상호 착취되는 과정에서 우러나는 문명의 편리함과 윤택함 속에 살던 친구가 고흥에 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의견을 말하니 자신도 인천의 덜 발전된 곳에 제법 살았다고 반박해서 더욱 말을 잇지 못하는데 친구는 적어도 거기가면 마음 맞는 또래는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것이 경기도민의 무지구나... 하며 처음 속초시 공무원 노조에 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청년부를 모집한다는 사내 메신저 쪽지를 보고 내 또래가 있을 거란 기대감에 청년부에 가입하러 갔더니 나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조합원 형이 반색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나와 동갑인 친구는 부서 계장님에게 강제로 잡혀와 이제까지 누가 먼저 탈출할까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김영민 작가는 어떤 글을 읽을 때 글쓴이가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은 보이지 않은 의도적 침묵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작가의 의도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무미건조한 지방의 삶을 돌이킬 때 잠시 떠올랐다 휘발되곤 하는 채 의미를 갖추지 못한 여러 의도들과 충동들을 떠올리면 명시된 것보다 명시되지 않은 수치 이하의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때때로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대체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보며 그들에게 혹독했을 환경을 염두하며 나도 모르게 온정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곤 하는데 그 온정적 시선과 미래에서 무이자 대출처럼 끌어오는 낙관을 스스로에게 종종 써먹는 것도 나의 미결된 기준 이하의 낱알들을 모아 동력으로 삼는 일로 느껴진다. 기다리면 무언가 변할까.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별 변화는 내 안에서도 밖에서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런 바뀐 일이 없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품고 존속하고 기다리는 것도 돌이키면 하나의 성과인 셈이다. 귀 기울임의 어떤 단계는 들리지 않는 것들에서 원래는 소리이고자 했을 것들을 스스로 울려보고 들어보는 것 같다. 거대한 적대도 시시한 적도 없이 옆 지자체장의 바지를 벗으라니 벗었다는 기가 막힌 해명을 회사에서 나누며 니체의 격언을 비둘기떼 가득한 광장에 빵조각처럼 뿌리며 어느 놈이 미끼를 물지 예의주시하는 스스로의 행태를 실은 그리 못나지만은 않은 것이라며 피고자 하고 했던 스스로를 추어올리며 먼지 같은 나날을 쓸어담아 먼 훗날 볼쏘시개처럼 타오르려니 믿어본다.
2024-10-08 | hrights | 조회: 349 | 추천: 5
김태형 / 프리랜서 방송작가 칼럼을 통한 인권연대 여러분과의 첫 만남, 영광입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도, 두려움도 함께하는, 조금은 이중적인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 박중훈의 첫 오프닝은 첫울음, 첫 만남, 첫 데이트, 첫 키스로 시작합니다. 상상만 해도 설렘 가득한 이야기지만 사실 절반의 감정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들지만 제가 경험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누군가는 잘 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는 18년차 방송작가입니다. 29살이라는, 업계에서는 많이... 늦은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고 마흔 후반의 나이에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처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은 진주MBC였고 6년 정도를 지역 MBC에서 일하다가 서울 방송국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2년여 있었던 진주 MBC에서는 진주, 창원 MBC의 통폐합 시도로 시끄러운 때였고 지금 직무정지 중인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대전MBC 사장으로 있을 때 그곳의 시사 작가로 있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TV조선에서 잠시 일하다가 SBS에서 토론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운이 좋아서 지상파 처음으로 낮 시사프로그램을 런칭하기도 했습니다. 이후가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외주 방송국 을의, 병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KBS 아침 방송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 새로운 사장이 오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한 번에 실업자가 되기도 했습니다(문화예술인 실업급여 못 받았습니다. 그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방송국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지역의 안전을 강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시사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 추억과 같은 명함들 방송작가가 경험한 ‘레거시 방송 VS 유튜브’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방송국에서는 테이프로 편집하던 시절부터 파일로 편집하던 지금까지 일상을 함께했던 작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튜브 방송 작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질문합니다. 레거시 미디어, 흔히 말하는 방송국은 위기이고 유튜브가 대세 아니냐고 묻습니다. 뉴미디어시대, 유튜브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제가 경험한대로 말씀드리면 “지금은 맞고 내일은 다르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추석연휴 스픽스에서는 김진애 전 의원이 진행하고 ‘MBC 백분토론’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를 모셔서 방송장악과 뉴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분들의 고견을 제가 각색하거나 인용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제가 얻은 답변은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 차이점은 이런 것입니다. (레거시 미디어, 지금부터는 방송국이라고 하겠습니다.) 방송국은 방송작가가 필요하지만 유튜브에서는 방송작가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 방송 시작하기 전 뉴스토마토에서 ‘김건희 여사 총선 개입 의혹’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방송국이었다면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입니다. 패널을 어떻게 교체해야하는 건지,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지, 기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가야하는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회의가 진행되고 방송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유튜브 방송은 달랐습니다. 진행자인 최경영 앵커(전 KBS 기자)님에게 기사를 전달했을 뿐이었지만 1시간 20분 가까운 생방송을 문제없이 마무리했습니다. 전 이 방송을 준비 하면서 유튜브에는 방송작가가 필요 없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럴까? 방송국이 문제일까? 절차의 문제입니다. (모든 방송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한 방송국은) 방송국은 예상답안을 미리 준비합니다. 작가가 패널과 통화를 하고 어떤 답변을 할지 예상을 합니다. 그 답변에 따라 진보, 보수 패널의 입장을 붙이기도 하고 매끄러운 진행에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방송국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 마무리를 중시합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답변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예상 답변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유튜브 방송은 자율성이 강조됩니다. 그리고 심의라는 절차가 거의 없습니다. 내부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방송국의 심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심의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완전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한 개그맨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KBS 개그콘서트가 맥을 못 추고 TVN 코미디빅리그가 잘 되는 이유는 심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TVN이 유튜브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방송국 보다 유튜브가 심플하고 발전적인 시스템을 가진 건지 모릅니다. 하지만 선을 넘는 발언이나 가짜뉴스가 독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유튜브가 좋은 점도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겁니다. 시사 유튜브에서는 정치적 색을 가지고 있고 중도는 유튜브에서 성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섭외 패널은 진보 혹은 보수,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작가가 섭외할 때 방송국 보다는 어려움이 덜합니다. 과거 한 방송국 토론 프로그램을 할 때 모시기 힘든 진보 패널이 하기로 했지만 보수 패널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밤을 새면서 섭외를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유튜브 환경은 유연하고 비슷한 성향의 패널을 섭외하기 때문에 섭외의 어려움이 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레거시미디어의 해는 지는 것인가? 유튜브로 대체되는 것인가? 두 곳에서 일해 봤던 방송작가로 말씀드리면 “함께 하면 살고 각자의 길을 가면 둘 다 무너질 것이다”입니다. 유튜브는 독자 생존이 불가합니다. 여러분들이 즐겨 찾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유튜브 패널 분들이 정보를 얻는 곳이 어디일까요? 레거시 미디어입니다. MBC, JTBC, SBS, 한겨레,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프레시안, 노컷, 뉴스토마토, 서울의 소리... 이런 언론사가 없다면 어떨까요? 지금의 패널 절반은 지금의 K사나 Y사와 비슷한 말을 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Y사 24시간 생방송을 틀어놓고 원고를 쓸 때가 있었습니다. 원고를 쓰다가 속보가 나오고 특종이 나오면 다른 언론사를 찾아보면서 원고를 업데이트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Y사 방송을 보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는 뉴스가 없습니다. 이제는 다른 언론사를 찾아서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내부를 통해서 주변인을 통해서 정보를 얻어서 유튜브 방송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시사평론가가 말하길 아침에 이슈가 터지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방송을 다니면서 서로 정보를 얻고 저녁이 되면 완벽한 평론을 한다는 농담도 합니다. 그 사이 서로의 의견도 교환하지만 언론의 보도도 꼼꼼히 챙깁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위기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유튜브가 대세라는 말이 아니라 유튜브도 위기라는 말입니다. 레거시 미디어라고 말하는 방송국, 신문사의 취재력이 없다면 유튜브 생태계는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방송사 중에 열심히 취재를 하는 곳도 있지만 자본으로 본다면 다양한 취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취재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가 상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 ‘인’ 자가 서로를 받들고 있듯이 방송환경에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해 보고요. 언론장악은 그래서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진실을 알고 공유하기 위해서 막아야 합니다.
2024-09-25 | hrights | 조회: 336 | 추천: 8
이원영 /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거대한 공공부지 개발에 반발하는 시민들 한가위 연휴 첫날, 은평혁신파크 농성장을 찾았다. 9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낮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농성장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3호선, 6호선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가까운 은평혁신파크는 축구장 15개 크기(11만㎡)로 서울시가 소유한 땅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 넓은 땅에 60층 높이로 대규모 복합 개발을 추진하겠다며 건물 철거작업에 돌입했다. 은평지역 시민단체와 서울지역 노동, 시민단체들은 ‘공공의 공간으로서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을 결성해 지난 7월부터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가 2025년 공사에 들어가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밑그림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 철거작업에 돌입하자 혁신파크 시민모임은 혁신파크 입구에 급하게 농성장을 차렸다. 사진: 오마이뉴스 도박장에 반대했던 긴 농성장의 추억 마사회에 맞서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영업을 저지하기 위해 경마도박장 앞에서 5년 동안 농성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고 길거리에서 농성장을 차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를 잘 알기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는 마음으로 은평혁신파크로 향했다. 드넓은 혁신파크 부지에는 그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반려견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큰길 쪽 한 편 건물은 대충 봐도 철거공사가 한창임을 느낄 수 있었다. 혁신파크에는 지금도 은평세무서, 시설관리공단 등 공공기관이 여전히 크고 작은 건물에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는 중이라고 한다. 사전 예고도 없이 방문했지만, 농성장을 지키던 은평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원한 커피를 사서 1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조금씩 기울면서 농성장 안으로도 뜨거운 열기가 쏟아졌다. 역시 농성은 날씨와의 전쟁임을 실감했다. 선풍기 바람이 불고 있지만, 얼굴에는 땀이 송송 맺혔다. 추석 때도 농성장은 번갈아 가면서 유지할 계획이란다. 시민단체들이 당번을 정해서 농성장에서 잠도 자고 있단다. 아직은 농성이 오래되지 않아선지 지친 표정은 별로 없어 보였다. 소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발 관행 공공의 땅을 개발할 때 가장 기본은 시민들의 의견수렴이다. 그런데 서울시 행정은 불도저식이다. 초고층 개발에 목숨을 건다. 반대하는 시민들이 있어도 깡그리 뭉갠다. 이런 개발 프레임이 횡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험난하다. 지키는 것도 힘들고 접는 것도 어려운 길거리 농성장을 시민들이 차린 것은 막가파식 개발을 막고자 하는 아우성이자 몸부림이다. 혁신파크 시민모임은 공공의 공간이므로 많은 시민이 참여해 이용하는 방안을 결정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활용방안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건물 철거부터 하는 것은 매우 상식 밖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국, 이렇게 가면 공간의 주인인 시민들이 아니라 소수 건설업자, 개발 마피아 집단이 천문학적인 개발 이익을 독점하는 악습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힘겹게 농성투쟁을 해봐서 느낀 것이 많다. 시민들의 작은 참여와 연대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뭐 할지 아직 결정도 안 했는데 철거하고 있다고요. 미친놈들이네요. 고생하세요” 농성장 앞을 지나는 연세 많아 보이는 동네 주민이 거칠게 한마디를 보탠다.
2024-09-19 | hrights | 조회: 313 | 추천: 9
윤요왕 /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언젠가부터 거의 TV를 보지 않는다. 폰이나 테블릿으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서 보다보니 일방적인 방송사의 송출에 접근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알고리즘에 의해 법정드라마 한편이 자꾸 보라고 올라온다. ‘유어 아너'(Your Honor)라는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다 결국 고결한 명예(Honor)를 저버리고 자식을 살리기위해 굴복하게 된다는 씁쓸한 결말의 드라마였다. 원작이 이스라엘 드라마 'Kvodo'라고 하는데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무소불위 부당한 권력의 부조리는 비슷한 듯 하다. 자본권력이 청와대에서부터 법원, 검찰, 경찰 등 국가권력과 손잡을 때 얼마나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들려오는 ‘검찰공화국’이라는 현실에 길을 잃은 듯 깜깜하고 두려운 하루하루에 어느시대를 살고있는지 국민들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나마 감시하고 대항하는 정치권력의 수평을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투표로 증명해 냈다. 그러나, 국민들의 고단하고 힘든 일상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아파도 병원을 가기 힘든, 상상조차 되지 않던 후진국이 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곳곳에서 마을마다 ‘바위틈에 피어나는 꽃순’처럼 여전히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하루아침에 정책과 예산이 없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대항하는 연대의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드라마에 제목인 ‘명예’<Honor>는 어디에서 오는가? 국가의 명예, 권력의 명예가 한낱 그들의 잇속만 차리는 것으로 만연될 때 국민들은 얼마나 서글픈 백성이 되겠는가 말이다. 작년부터 교육부의 작은학교 공모사업인 ‘참 좋은 우리학교’ 심사를 하고 있다. 전국의 작은학교를 들여다보며 감동도 배움도 얻게 되는 것이라 힘겨운 발품을 팔아 다니고 있다. 공모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탈락되는 학교들이 있지만, 현장을 다녀보면 참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교육을 지키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많게는 100여명에서 적게는 20-30명의 작은학교의 선생님들은 도시의 큰 학교에 비해 고민하고 신경쓰고 교육활동하는 업무량이 3~4배는 많은 것 같다. 어느 학교 초임 여자선생님은 반 여자아이들과 목욕탕도 다닌다고 하고, 어느 선생님은 다문화가정 아이집에 수시로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의 일상을 돌보기도 한다고 한다.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작은 시골마을의 작은 학교에서 이렇게 애쓰는 참선생님들을 우리사회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의 리그에 낄 자리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의 명예는 국민들의 품격으로 증명되지 않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이웃을 돌아보고 건강한 아이들을 키워내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이름없는 시민들이 있음에 희망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지난주 우리마을이 농림부 ‘행복농촌 콘테스트’ 본선에 올라 경진대회에 다녀왔다. 작은학교만큼이나 어렵고 작은학교의 원인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힘든 현실의 농촌마을이 있다. 사회인프라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고령화와 복지사각지대는 점점 더 가속화되어 암울하기만 한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고 바라는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마을과 이웃을 돌보고 농(農)을 지키는 주체적인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심사를 갔던 한 학교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왈콱 쏟아냈다. 이어 나이 지긋한 교장선생님도 울먹울먹...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어떤 말이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내 마음속의 참 좋은 학교였다. 우리가 존경해야 할 ‘명예’는 그 진한 ‘눈물’에 있음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오버랩되었다. 정치도 권력도 아닌 감동의 눈물을 보며 내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다.
2024-09-11 | hrights | 조회: 311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지난 7월 큰 물이 들 때 경남 사천으로 인권교육을 가야 했다. 학교장들의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하는 대면 교육으로 몇 달 전부터 그곳 특수교육지원센터가 무척 많이 애쓴 중요한 행사였다. 운전으로는 왕복 12시간이었다. 수해라도 나면 제때 도착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일정을 맞추더라도 정작 강의할 체력이 남아 있을지, 무사히 다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어 고속 버스도 위험했다. 기차는 없었다. 다행인지 사천 공항은 가까웠다. 김포 공항에서 뜨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진에어 항공사라는데 그곳까지 장애인 승객이 어떻게 이용했는지 경험과 정보가 없다. 더구나 대한항공의 자회사임에도 진에어는 과거에 나와 같은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 승객을 차별한 사례도 있었다. 공항에도 억수와 같은 비가 쏟아져 목발로 가는데 애써 입은 양복과 셔츠를 어떻게 뽀송하게 지킬지도 알 수 없다. 휠체어 서비스를 요청하고 출발 시간 오후 4시 20분 보다 3시간 먼저 김포공항 진에어 데스크 앞에 도착해야 한다. 비장애인 손님은 한시간이면 넘쳐나게 충분한 시간인데 나 혼자 가려면 남들보다 3시간을 더 써야 한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어떤 웃지 못할 차별과 사건들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3시간 전에 가서 항공사 접수처에 도착하려면 그 1시간 전 박터지는 김포공항 장애인주차구역에 도착해야 한다. 자칫하면 주차만 2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폼나는 노트북은 언감생심이다. 2kg도 넘지 않는 노트북 가방도 두 손을 모두 목발질에 써야 하는 내게는 20kg 캐리어보다 더 무겁고 번거롭다. 휠체어 서비스는 주차구역에서는 불가하다. 비상 체력은 남겨둬야 한다. 시설에 살지 않고 혼자서 직업 활동을 하는 뇌병변장애인의 삶은 늘 시간과의 양자물리적 전쟁이다. 그래서 동트기도 전인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이제 샤워하고 옷을 챙겨 입고 짐을 챙겨 두어야 한다. 장애가 만드는 경직은 남들보다 2~3배는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일어나다 침대에서 떨어지면 아니된다. 옷을 다 갖추고 출발 준비를 하더라도 정장에 맞는 양말을 신을려면 현관문 신발장 앞에서 10분 넘게 걸릴 지도 모른다. 공항 지붕이 있는 횡단보도 30미터를 가는 동안 이 양복도 홀딱 젖어 버릴지 모른다. 나같이 양쪽 어깨 목발로 넓게 휘저으며 오랫동안 보행한 뇌병변장애인에게 비가 오는데 무작정 긴 장대 우산을 내미는 사람들, 무게를 덜기 위해 엉덩이 허리가방만 메고 공항 주차장 횡단보도 잎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빈카트 이용하라면서 내 앞으로 가져오는 사람들의 당황스러운 마음들은 어찌할 것인가? 최근에 서울시가 장애인의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하고 공공돌봄을 책임지던 서울사회서비스원도 문을 닫겠다 했다. 그러면서 오세훈 시장은 점진적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 주말 서비스 이용을 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을 공지 내렸다. 내가 국가의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를 거부하고 개인적으로 시급 2만오천원 + 특별 수당을 주면서 활동지원사를 고용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의 인권과 생존을 정치인 입맛에 따라, 전문가의 탁상 공론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줬다 뺏는 그 폭력성 때문이었다. 물론 나처럼 혼자 비행기 타고 출장간다면 신청할 수 있는 활동지원 점수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장애인의 손발과 지역 사회 활동을 사회적으로 구체적으로 책임져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권과 사회권을 보장하겠다고 해놓고서, 주말에는 먹지도 씻지도 돌아다니지도 말라는 뜻인가? 더구나 이렇게 알량한 활동지원을 받을려면 그 내용들을 일일이 수기로 써서 감독 기관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 비장애인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손발이 하는 일상활동과 신변처리들을 일일이 공공기관에 보고 하고 검열 받는가? 이제 중증 장애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이 받아 주는 시설로 강제 이주라도 하라는 말인가? 서울시에 따로 장애인 보호구역이라도 만들려는 것인가? 내가 1박 2일 강의를 하면서 버는 돈은 70만원이 채 안된다. 그러나 그 70만원을 벌기 위해 내가 지역 사회와 국가를 향해 쓰는 돈은 숙박비, 교통비 30만원에 개인 활동지원사 인건비,숙박 수당, 야간 특별 수당까지 붙이면 40~50만원이 넘어갈 것이다  즉 통화 회전율에 따른 경제 효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내 적자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아무리 장애인 시설 앞에 안전을 내세워도 그건 시설 관리자에 따른 구속 영장도 없는 감금이며 아무리 장애인 시설 앞에 인권을 붙여도 시설 설립자와 운영자들은 장애인과 함께 시설에 들어와서 살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장애인들을 이윤으로 보지 않는다 말해도 장애인 거주자에게 시설 재산권에 대한 지분이나 결정권을 내어주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서울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시민, 특히 원주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구인 광고를 낸다. 그렇게 활동지원일을 하겠다는 어떤 분을 만났다. 기존 활동지원사 교육과 실습이 교육하는 기관의 전문성 따라 얼마나 격차가 큰지 실감한다. 길고양이 밥을 주기 위헤 지원 했다는 그 분과 실습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데 혼자 사는 장애인을 위한 식사 지원과 가사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하루 종일 같이 식사하고 함께 청소하고 있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가 어떤 활동과 어떤 작업을 수행해야 할 때, 어떻게 협동해야 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고 심지어 어떤 언어를 써야 하며 어떤 눈빛까지 가져하는지 의견을 나눈다. 장애인을 지원할 때 어떻게 신체 접촉을 해야 하는지 재활운동 보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신체 모형도로 시연하고 제 몸을 아낌없이 실험 실습 기자재로 제공하였다. 오랜만에 내 몸은 블랙홀에 잠시 들어갔다 온 것처럼 온 몸이 찢어 질 것 같고 한 두 시간 몽둥이 찜질을 당한 것 같다. 당장이라도 몸살이 날 것 같지만 그분이 더이상 나를 만지면서 다치면 어떡하냐며 보내셨던 안쓰러운 눈빛은 사라지셨다. 그 대신에 나의 뇌병변 장애의 경직을 자신의 중력과 힘으로 어떻게 지원하면 되는지 배우셨다. 내가 자폐인과 잘 통했던 이유가 그 분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이 몸을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인데 코로나 시대 대상포진과 코로나 감염을 겪고 혼자서 화장실도 가기 힘들었던 그 경험 때문에 이제 그 금기를 내려 놓았다. 좋은 활동 지원을 만들려면 멋지게 그 지원을 받는 방법도 터득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막연한 도움 같은 것을 정말 싫어했다. 그들의 지원은 대부분 무례하고 일방적이고 모욕적이며 폭력적이고 심지어 나를 위험에 노출했다. 특히 뇌병변 장애에 대한 기본 이해는 찾아 보기 어려웠다. 대상 포진의 통증을 장애로 만든 통증과 구별도 못할 만큼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것 신체 조절 능력이 지구별에서 움직이는게 아니라 지구 중력보다 몇 배의 금성별에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다 것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깨닫고 통달하고 전문적인 지원을 하게 만들 것인가? 그 손쉬운 장애 체험- (필자는 장애인 생활 체험이라 한다)-도 실질적인 뇌병변 체험이나 지적 자폐성 체험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왜 집안의 모든 구멍이 있는 물건에 끈 고리가 달려있는지 넘어질 모든 위치에 의자나 책상이 놓여 있는지, 왜 곳곳에 위험한 가위가 있는지 왜 과일이나 반찬등을 날날이 소분하는게 중요한지 왜 일부 그릇을 제외하고 모든 용기는 금속이고 플라스틱인지 일일이 설명해 준다      내일부터 기관 방문이나 외부 강연 활동을 수행하는데 길거리에서 차별적인 시선이나 모욕을 받았을 때 어떻게 응대할 것인지 이용자가 빛이 나야할 때는 어떤 의전과 호칭을 써야 하는지 -(이 분이 명언을 남기셨다. 아이유의 매니저처럼 지원하겠다 하셨다.) 활동지원사가 더 존중받아야 할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 사무총장이라고 부를 때와 형수 형이라고 부를 때와 형수 오빠라고 심지어 이용자라고 부를 때 나와 활동지원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깊었다. 다른 이를 상담할 때 꼬박 꼬박 사무총장이라고 호칭하고, 나는 저를 수행하는 활동지원사 선생님이라 호칭했음에도, 그 비싼 비용을 지급함에도 그 비싼 고급 노동이 '마냥 저냥 좋은 일하시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활동지원의 마지막 실습 금요일은 양말 신기기와 구두 신기기에 도전한다. 미션은 비장애인들이 걸리는 시간 만큼은 너무 최고 레벨이고 그 시간 두배 안에 끝내기. 아마도 내 발과 발목은 거덜 날 것 같지만 그 이쁜 것 별로 없는 찍찍이 신발하고는 안녕할 수 있겠지.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자, 인권 운동을 하려는 자 모두 활동지원부터 해보시라. 진정한 인권 운동 현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당히 그 소득 역시 상당히 뿌듯할 것이다.
2024-08-28 | hrights | 조회: 312 | 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