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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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간사),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주윤아(교사), 최유라(지구의 방랑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주윤아/ 교사  코로나19가 그 어느 시기보다 빠르게 세상을 바꾸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신규확진자와 집단 및 지역감염이 줄지 않고 예측 불가능하여 공포와 불안이 일상을 잠식하였다.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지만 온전히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탄력적으로 근무 시간을 조정하거나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을 하다 보니 새로운 일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선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으로 모임과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노동과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 출근이나 불가피한 외출 시 늘 마스크를 착용하니 꾸밈 노동에서 온전히 해방되는 자유로움도 맛보게 되고, 모임을 하지 않으니 친목에 들어가는 비용 대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식료품비나 생필품 비용이 늘어난다. 집 안의 쌀이 날로 푹푹 줄어드는 드문 경험을 했다고도 이야기하기도 한다. TV가 없는 우리 집은 저녁 식사 이후 핸드폰 사용을 자제하려고 수년 만에 온 가족이 카드 게임에 끝말잇기도 하는 등 낯선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임노동이 줄어든 자리에 가사와 돌봄 노동이 늘어나 새삼 그 고됨과 귀함을 깨닫기도 한다. 지인들에게서 이전에 외출과 모임이 잦고 불필요한 소비 생활도 적잖았다는 말도 들려온다. 그러나 여유 속에서나 가능한 이런 반추와 성찰은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여유와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에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생계유지조차 곤란해진 사람들이 있다. 학원 강사를 하는 친한 선배는 1달 이상의 휴원으로 수입이 정확히 ‘0원’이라고 전했다. 매출 감소와 휴업 등으로 폐업과 실업의 위기에 직면한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 집단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 가장 위험한 곳에서 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던 간병인들, 폭주하는 물량에 과로와 죽음에 내몰린 배송노동자들, 가가호호 방문하며 일하는 학습지 교사,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희생만을 강요받는 긴급돌봄전담사 등 경제적 취약 계층과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의 생존 기반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마스크 대란으로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시행하는 공적 마스크 판매, 일명 마스크 5부제도 다른 경로로 마스크 구매가 어려운 고령층이 줄 서 있는 경우가 많고, 건강보험가입 조건이 안 되는 이주민은 공적 마스크 구입과 의료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다. 얼마 전 일본 사이타마시의 조선학교 유치원 마스크 배급 제외소식에 일제히 차별철폐의 목소리를 높였던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또 초기부터 최근까지 대량 확진자가 나왔던 집단감염지인 폐쇄병동과 요양병원의 경우다. 폐쇄병동의 경우 외부와는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지만 병동 내의 열악한 집단생활 및 위생관리 등으로 감염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요양병원 역시 면역력이 약한 고령의 환자들이 밀집된 위험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돌봄이 중단된 장애인들의 요즘 삶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직접 감염되지 않아도 바이러스의 여파만으로도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의 삶을 직시하고 우선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근간이 무너져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최근 긴급재난지원금이나 재난기본소득 지원이 결정된 것은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일이다.  백신 개발이 요원한 지금 코로나19가 언제 극복될 것인지, 과연 극복되기는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극복의 방법은 불확실하지만, 전 세계에 닥친 이 재난의 배경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익히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의 삶의 형태로 똑같이 돌아갈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는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을 지양하고, 무한한 소비 욕망을 경쟁하듯 키워온 개인들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방향으로 삶의 발걸음을 돌려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방향에 대한 논의를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어쩌면 내일은 없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 <컨테이젼> 사진 출처 - 구글  약 10년 전 개봉했던, 코로나19를 판박이처럼 예견한 영화 <컨테이젼>을 찾아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똑같이 재생되는 영화 장면에 가슴이 옥죄어 오고, 다 보고 나서는 경각심과 두려움이 더 커졌다. 영화의 스토리가 끝난 후 마지막에 바이러스 발생 배경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부연 설명 하나 없이 물 흐르듯 나오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한 충격이었다. 코로나19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악성 바이러스의 탄생과 창궐을 막을 수 있는 예방백신은 바로 지금 우리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
2020-04-01 | hrights | 조회: 55 | 추천: 8
이회림/ 울산남부경찰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할 즈음. 저의 스웨덴 친구 에밀은 여자친구를 만나러 인도네시아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소방관 출신인 그 녀석은 큰 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툭 하면 감기에 걸리고 천식까지 있는, 허우대 멀쩡한 약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에밀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기저질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공항을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I met my love of my life, having so much feelings..”  저는 상사병에 걸린 듯한 친구의 메일을 읽으면서 사랑은 인종, 국경 그리고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도 초월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는 이 엄혹한 시대에 이토록 고전적인 사랑이라니,,, 문득 마르케스의 대하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콜레라는 피부색이나 가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콜레라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전염병의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숫자를 밝히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가장 일상적인 장점 중 하나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에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콜레라가 만연하던 시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주인공 페르미나는 사랑하던 애인 플로렌티노 대신에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콜레라 박사와 결혼합니다. 버림받은 남주인공 플로렌티노는 51년간이나 결혼하지 않고 오로지 페르미나 만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콜레라보다 더 지독한 상사병에 걸려버린 그는 사랑하는 이의 남편보다 오래 살아남아 마침내 사랑을 이루고야 맙니다.  태양의 대기인 코로나의 온도는 약 100만℃를 넘습니다. 태양 표면의 온도는 약 6,000℃인데 표면에서 멀리 떨어진 대기층의 온도가 그 몇 백 배나 되는 것입니다. 화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온도는 그보다 훨씬 낮은 것이 정상일진데 태양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자체가 과학계의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스터리한 것으로 치면 코로나도 코로나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사랑은 마법이라고까지 할까요?  '사랑'은 제 친구 '에밀'을 움직이게 한 '로맨스'처럼 불타오르는 정열의 시간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J. A. Lee는 다음의 여섯 가지 분류법으로 사랑을 유형을 설명하였습니다.  열정적 사랑, "에로스“, 유희적 사랑 "루두스“, 동료적 사랑 "스토르게"  논리적 사랑 "프라그마”, 소유적 사랑 ”마니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타적 사랑 "아가페”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이 여섯 가지 유형 중에 하나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나'를 내어주는 사랑. 주기만 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이타적 사랑을 일컫는 '아가페'가 그것입니다.  - 현금 100만 원과 마스크를 편지와 함께 경찰서에 기부한 기초생활수급자 70대 할머니  - 고사리 손으로 쓴 응원의 편지와 마스크를 들고 지구대 경찰관들을 찾아간 어린이들  -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한 70대 어르신들의 애타는 112신고를 받고 약국으로 함께 가 마스크 구매를 도와 준 순찰 요원들  - 건강보험증이 없이 숨어서 생활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구청과 함께 “수제마스크 제작 강의”를 열어 준 외사계 경찰관들 - 감염 집중 지역인 대구 경북으로 전달되는 성금과 사랑의 마스크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적이나 마찬가지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적할 최고의 무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 훈훈한 정과 배려심, 즉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출근 할 때마다 나를 맞이해주는 청사 현관의 열화상카메라, 사무실, 엘리베이터, 버스, 기차 안 등 어딜 가나 비치된 손세정제를 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하고 따뜻한 사랑의 보호막에 우리 사회 전체가 둘러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혈관 속에는 코로나의 초고온 현상만큼이나 신비한 사랑의 백신이 유유히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26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 수는 46만 명을 넘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코로나 바이러스를 “눈에 보이지 않는 적”으로 명명하고 주 방위군을 소집하는 등 세상은 준전시체제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화장터를 24시간 가동하고 시신 운구에 군 트럭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사망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졌던 스웨덴은 의료 역량의 한계를 자인하며 일찌감치 진단을 포기해버렸습니다. 반면에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 수가 많았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3월 초에 저의 안위를 걱정하던 독일 친구에게 이제는 제가 응원과 염려의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AFP 에드 존스 기자  우리나라는 신규 확진자 수보다 완치자 수가 많은 경우를 뜻하는 '골든 크로스'가 이어지고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벗어나고 있는 요인으로 정부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손꼽히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동력은 바로 성숙한 시민의식에 있습니다. 이러한 시민의식의 바탕에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의지와 사랑이 있었고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코로나의 초고온 현상이 과학의 신비라고는 하지만, 그보다 백만 배는 더 신비한 ‘사랑’의 확산속도가 언젠가는 확진자의 수를 따라 잡을 수 있도록 내 주변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남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을 되찾기 위해 51년간이나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듯이.. 결국은 집념을 가지고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왠지 좋은 일만 계속 생기고 행운이 가득할 2020년 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새해부터 지구인들을 시험에 빠뜨렸습니다. 마치 인류가 공통의 보이지 않는 적 앞에서 얼마나 서로 관심을 갖고 고통에 공감하며 결국은 사랑으로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훗날 제 친구 에밀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열정의 로맨스로, 우리에게는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척하지 않는 아가페적 사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산 마스크 20장을 들고 지구대를 찾은 어린 영웅들의 손 편지를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신복초등학교 4학년 000입니다. 이 마스크를 마스크가 없어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좋은 일에 썼으면 좋겠습니다. 경찰아저씨들 힘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4학년 올라간 초등학생입니다. 저의 용돈으로 하는 거라 선물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잘 써주세요. 감사드려용. 작은 선물이라서 죄송해용!!” -
2020-04-01 | hrights | 조회: 90 | 추천: 2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조계종과 신천지를 대하는 검찰의 공통된 태도는 무엇일까?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봐주거나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리하면 검찰은 어떤 답변을 할까? 지난해 조계종 노조와 정의평화불교연대 등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은 ‘생수비리’, ‘자승달력’ 등 자승 전 총무원장과 관련된 부정부패의혹 사건을 고발했다. 그러나 서초경찰서와 서울중앙지검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수비리와 관계되었던 (주)정의 전 임원인 의사가 재벌가 자녀들에게 프로포폴을 제공해 몇 달 전 구속되었다. 재벌 2, 3세 자녀들과 불법을 저지른 이 인사가 조계종 자승 전 총무원장과 어떤 위법적인 상황을 만들었을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지난 2월 13일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프로포폴 주사를 상습적으로 맞았다는 공익신고가 접수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고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성형외과다. 이 병원 원장은 감로수 홍보마케팅 수수료를 받아온 (주)정의 감사이다. (주)정은 이 병원과 소재지가 같다. ‘감로수’ 로열티는 조계종 노조가 검찰에 고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조계종은 지난 2010년 10월 22일 (주)석수퓨리스(현 하이트진로음료)와 '감로수'라는 상표의 산업재산권 사용 계약을 체결해 로열티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현재까지 생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조계종 노조는 고발 당시 "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종단과는 무관한 제3자에게 판매량에 따른 로열티가 별도로 지급되고 있음이 확인됐다"며 "지난 2018년 5월경 하이트진로음료(주)가 작성한 <조계종단 ‘감로수’ 공급 보고>라는 자료를 통해서다"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주장한 제3자가 (주)정이다. 하이트진로음료(주)가 (주)정에게 지급한 로열티는 생수 1병당 각 500ml 50원, 2L 100원, 18.9L 150원으로 2011년부터 2018년 말까지 5억 원이 넘는 것으로 노조는 추산했다. 조계종과 하이트진로음료(주)가 체결한 계약서에는 종단로열티 외 다른 로열티 지급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 노조는 하이트진로음료(주)가 (주)정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는 이유가 당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요구로 진행됐다는 하이트진로음료(주) 과장의 통화녹취를 고발장에 첨부했다. 수사과정에서 이 과장이 증언을 번복했다는 등의 이유로 검찰은 자승 스님을 무혐의처분 했고, 노조는 항고했다. 사건은 고검에 계류 중이다.  자승 전 총무원장의 친동생은 2012년 9월 17일부터 2015년 9월 17일까지 만 3년간 (주)정의 사내이사로 등재됐다. (주)정의 감사인 성형외과 원장은 자승 전 원장이 이사장인 (재)은정불교문화진흥원에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이사로 재직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조계종 지부(지부장 심원섭)는 2019년 4월 4일 오전 11시 자승 전 원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검찰청 입구에서 기자회견 하는 심원섭(가운데) 조계종 지부장 사진 출처 - 불교닷컴(http://www.bulkyo21.com)  이제 경찰과 검찰은 ‘조계종 노조’와 시민단체가 제기한 위법 사항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 ‘생수비리’와 관련된 인사에 계좌조사와 압수수색 등 일반 시민이 납득할만한 적극적인 수사가 절실하다. 지난해 조계종 노조가 ‘생수비리’로 사정당국에 고발했지만 수박겉핥기 식의 조사만 했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이 있었다. 현재 고검에 계류 중인 생수비리 사건 등 종교계 최고위층 의혹사건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 특히 시민의 세금이 관련된 국고보조금 부정부패 의혹과 관련해서 성실하고 체계적인 조사 매뉴얼을 만들어 문제를 제기한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길 바란다. 언제까지 몇 줄짜리 답변서로 시민들을 설득하고 밥값을 다했다고 할 것인지 의문이다. 거짓말로 이룬 신천지의 전도 업적이 거짓말로 무너지고 있다. 진실을 밝혀 감염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검찰도 극소수 고위층 직업종교인의 부정부패를 새롭게 다뤄야 한다. 맑고 향기로운 공동체를 부패하게 만드는 숙주를 제거하는 자세로 출발할 때다. 
2020-03-18 | hrights | 조회: 387 | 추천: 21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1995년 2월 생전 처음 홀로 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해야 했을 때,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친척 하나 없이 고향 부산을 떠나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생경했다. 수중에는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신 대학 입학금만 있었다. 개인 통장 하나 만든 경험이 없는 나였다. 20년 넘게 부모님께서 신발 끈을 묶어주는 삶을 살다가 기숙사에서 매일 혼자서 신발끈을 묶어야 하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스산한 이슬비가 오는 새벽 서울역은 나를 잔뜩 주눅 들게 했는데, 대학교로 가기 위해 승차한 택시의 기사 아저씨가 큰 힘을 주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겁먹은 시골 청년으로 보였는지,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러시더니 대뜸, “젊은데 뭐가 걱정이냐? 여하튼 여기까지 왔으니 이미 용기가 많구만. 걱정일랑 접고 일단 저지르고 출발 해봐도 늦지 않아. 잘하겠구만.” 이렇게 격려해 주셨다.  1995년은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분기점이었다. 혹독했던 재수 생활과 대학별 본고사를 치르고 서울로 유학 온 해이며, 내 인생 처음으로 물리적으로 독립생활을 시작하며 10년 넘게 꿈꿔온 공부를 마음껏 시작한 시기였다. 이렇게 1995년은 학교-집-병원으로 한정적이었던 내 삶의 궤적을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시에 불타는 청춘으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내 육체적 고통과 장애의 차별과 타인의 시선에 직면하기를 결단했던 한 해였다. 그 시작에는 택시 운전사 스승이 계셨다.  20년 살면서 안쓰러워하고 쯧쯧 걱정하는 것은 많이 듣고 자랐지만, 그냥 보통 청년 대하듯 툭툭 등 떠밀려 격려해 준 이웃 사람은 그 아저씨가 생애 처음이었다. 내가 운전 학원에 등록하던 첫 날에도 그때와 같은 막연한 두려움과 직면하고 일상의 차별로부터 도피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에도 그 택시 기사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시동도 걸어보지 않고 운전을 포기하지 말라는 그 가르침. 장애를 핑계로 스스로 포기하고 회피함을 반성했다. 그 스승님도 내가 집을 떠났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다.  내 부모님은 다행히 장한 어버이상 또는 비장한 인간 승리를 요구하며 ‘장애’는 굴레이며 패배라고 외치는 교육에 사회화 되지 않았다. 나의 장애보다 내 이름을 먼저 불러준 사람들도 있었다. 넌 군대 가지 않아서 좋겠다고 펑펑 울면서 부러워 해준, 정말 용감하게 솔직했던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내 애인이 가족과 친구들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스스럼없이 자신의 졸업식에, 가족 상견례에 초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법이나 금칙어가 아니다. 그 시선과 평가 자체를 없애거나 약화시키는 관계와 지지이다. 그 관계와 지지가 장애를 내 고통과 열등감이 아니라 내 자신의 여러 면의 신체적․물리적․정신적인 일부분으로, 자긍심이자 정체성으로 만들어 주었다.  장애는 중요한 정체성이 되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실은 때때로 육체적 고통이었고 그 고통은 비장애인과 다르게 협소한 물리적 한계를 만든다. 목발로만 이동하는 것은 ‘철인삼종 경기’와 같은 것이었고 물리적인 움직임에 앞서 항상 나의 체력의 한계를 계산할 수밖에 없다. 대학 들어오기 전, 고향인 부산에서 20년 넘게 버스를 거의 타본 적이 없다. 버스 타는 것은 안전장치 없이 번지점프 하기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현실을 만났고 완벽하게 혼자서 버스를 타는 데 2년이 걸렸다.  정거장에서 정확하게 버스의 착지점을 알아내거나,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욕먹지 않고 쫓아가 세우기까지 1년, 넘어지지 않고 버스카드를 긋고 내리기 쉬운 자리를 확보하는 데 6개월 그리고 안전하게 내리는 데 6개월, 합이 2년이다. 자립과 독립은 어쩔 수 없는 부모로부터의 물리적 분리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물리적 분리를 안전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인 반복 연습과 훈련을 통해 생활로 정착되어야 한다. “내 앞에 길은 없다. 길은 내 뒤에 생긴다.”  2003년 즈음,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중심으로 전동휠체어 보급 사업이 진행될 무렵 나에게도 바퀴가 3개 달린 빨간색 국산 전동 스쿠터가 생겼다. 보행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체력에 한계가 있는 지체 장애인이 주로 쓰는 모델이었다. 아슬아슬하고 부실하게나마 벋정거리는 몸을 목발로 지탱하고 걸음으로써 헤쳐 나가던 길과 소리없이 사람들 어깨사이를 비집고 추월하는 평균 10km의 스쿠터 운전 추월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 새로운 이동이 공간의 경험과 관계의 경험을 만든다.  전동 스쿠터를 처음 사용할 때, 인도(人道)로 다니려니 그 요철로 인한 요동 때문에 온 몸이 부서질 지경이요, 보행로의 폭이 너무 좁아 지나가던 사람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나은 차도로 가자니 도로의 무법자 버스들 사이에 끼여 보험료도 못 받고 도로에서 비명횡사할 것 같고, 택시기사 아저씨들에게는 뭘 그리 오래 살 운명을 타고 났는지 욕이란 욕은 다 얻어 먹으면서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도로를 역주행 하는 행각까지 벌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전동 스쿠터를 참 열심히 탔다. 억척스레 탔다. 도로턱에서 떨어지면서도, 도로 갓길에서 택배 오토바이와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해도, 비록 스쿠터를 타던 첫날 지하철 리프트가 중간에 멈춰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찔한 조난의 경험도 있었다. 그래도 난 스쿠터 타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전동 스쿠터는 나에게 늦가을 야심한 밤에 골목길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어린 후배를 집 앞까지 배웅도 하고 과일도 직접 한 아름씩 사다가 녀석들 품에 안겨 주는 기쁨도 누리게 해주었고 옆사람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걷는 속도를 맞추는 배려를 베풀게도 했다. 그리고 11월 말 서울 인사동 언저리 은행나무 낙엽비를 맞으며 혼자서 사색할 수 있는 기쁨도 깨닫게 했다. 부모님 대신 잽싸게 시장을 볼 수 있어 막내아들로서 효도도 할 수 있게 했고, 가까운 거리에 소식을 전하거나 무거운 쌀가마니를 옮기는 파발마 노릇도 톡톡히 했다.  사랑하는 조카도 목마대신 태워주는 능력 있는 삼촌이었고, 비록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굴러가면 수없이 날아오는 시선의 고통과 권력을 느껴야 했지만, 스스로 독립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 그 자체였다.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두려운 건 독립이 아니라, 혼자서 ‘차별’과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장애인콜택시와 부실한 저상버스, 그나마 광역버스는 아예 접근도 못하는 현실 앞에 나의 독립은 장보기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전동 스쿠터는 나를 산책하는 동네 주민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휴가를 즐기는 여행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처음 운전 학원에서 연습용 차량을 탔을 때의 강사님의 그 걱정스러움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눈빛을 난 기억한다. 강사님은 “기어 움직여 보라.”, “핸들 돌려보라.”, “페달 밟아 봐라.”하며 운전연습 차량으로 의사선생님이 왕진 진찰을 나온 것 마냥 질문을 하셨다. 그리고 그 질문과 의심은 기능시험을 합격하고도, 도로주행에 합격하고 운전면허증을 받아 다시 시내 연수를 받을 때까지도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합격한 나를 서로 신기해했다.  1980년대 미국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모은 ‘전격Z작전(원제:나이트 라이더 Knight Rider)’이란 미국 외화가 있었다. 키트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스스로 운전하고 대화도 할 수 있는 유머러스한 인공지능 자동차이다. 우리 사회와 국가에서 중증장애인이 운전할 때 가지는 의심과 걱정, 두려움의 가장 큰 근거가 ‘운전하기에 충분한 운동 능력과 정보 감각이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데, 키트처럼 알아서 운전하는 자동차가 실제 등장하면, 장애인 운전의 논쟁과 편견은 사라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러한 편견과 공포를 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제거하려고 도전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들도 무턱대고 자신의 신체 능력에 대한 고민 없이 운전하려고 덤비지 않는다. 나도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하고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차량을 빌렸다. 몇 시간이고 핸들도 돌려보고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 페달도 밟아보며, 혼자서 안전벨트는 맬 수 있는지, 기어와 열쇠는 오른손으로 조작 가능한지 공터에서 하루 종일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었다.  심지어 운전면허를 발급받고 나서는 구매하려는 차가 내 몸에 잘 맞는지 전시 차량을 찾아 시승도 해보고, 같은 모델의 차량을 렌트해서 여러 가지 실험과 연습도 반복했다. 장애인 당사자가 경험과 도전을 통해 실패와 성공 모두의 인생 자료를 모아야 한다. 타인의 관심과 도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독립적인’ 휴가를 위하여  나의 독립된 휴가는 공식적으로 차를 소유하고 스스로 운전하기 시작할 때 시작되었다. 2008년 운전면허를 얻고 2011년 48시간의 제주도 해변도로 일주 여행을 시작하여 2012년 국도로 경주가기로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리고 2013년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백제의 사비, 충남 부여를 고속도로로 주파하였다. 이렇게 하루 반경 500km를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얻어서 혼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지니, 타인의 관심과 도움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독립적인 존재가 되니 혼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내 생애 첫차를 사야 할 때 게시판 글 하나에도 신경 잔뜩 쓰는 장애인으로서 다양성을 지닌 소비자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차에는 장애인 운전을 위한 보조 기구는 하나도 달지 않았다.  내가 차량에 오를 때마다 신기하게 오랫동안 관찰하며 나중에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이것저것 물어봤던 사무실 건물의 사람들, 주차 때문에 연락받고 뛰어나가면 한참 동안 불안함에 떨고 있는 상대방 운전자들에게 멋지게 운전해서 일종의 시위를 하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 편견에 도전했다. 나 같은 운전자를 사람들이 직접 보고 경험해 보길 기대하면서.  그렇게 나는 대학 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 피가 나도록 목발을 짚으며 넓은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그로부터 15년 뒤 2010년 6월 17일, 나는 하루 반경 400km 이동이 가능한 자가 운전자가 되었다.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이동권만을 제공 받던 인간에서 능동적이며 생산적인 이동권을 창출하는 인간이 되었다.  두려움과 망설임 없는 자립과 독립은 없다. 그 공포와 망설임 보다 더 강한 자기 이유와 논리를 찾고 작은 경험들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홀로, 가치를 내가 정하는 조건과 경험이 필요하다. 자립과 독립하려는 나를 남들이 규정하고 정의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자립했고 독립했구나라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실천하는 것 자체가 자립이자 독립이다. 자립과 독립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의도하지 않은 관심과 시선을 즐기고 오롯이 자신의 경험에 집중하다보면 날마다 독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2020-02-26 | hrights | 조회: 119 | 추천: 6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부린마을에 거주하는 수하(가명)는 자신의 첫 번째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지녔음을 알았을 때부터 슬퍼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녀는 그동안 마을에서 자폐성 아이의 존재를 쉬쉬하고 외부에 드러내지 않았던 관행을 거부했다. 자신의 아이도 다른 비장애 아이들처럼 교육을 받길 원했기에 아이의 입학을 위해 더욱 뛰어 다녔다. 어렵게 입학의 기회를 얻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냈지만 아이는 등교 1주일 만에 학교에서 내쳐졌다. 수하는 분노하고 절망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사연을 온라인에 알리고 마을 내 장애아동의 부모들을 모아 작은 조직을 만들면서 여성 활동가가 되었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명문 ‘안 나자’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마리엠(가명) 역시 졸업과 동시에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도 적었고 남편 역시 마리엠이 외부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으로 이혼하였지만, 2살짜리 딸과 노모를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제리코에 위치한 작은 공장에서 간신히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도시마다 설치된 이스라엘의 검문소와 일상적 통제정책으로 매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섰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공장마저 문을 닫자 지금은 난민캠프에서 아이들의 사연을 번역해 외국에 알리는 업무를 하며 캠프내 작은 조직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수년 동안 팔레스타인 현지를 방문하며 지역에 필요한 연대활동을 조사한 아디는 2019년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와 라말라의 여성단체와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며 현지수요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수하와 마리엠의 사연들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조사과정을 통해 아디는 그들의 ‘피해자성’을 확인하기보다는 ‘저항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감히 이야기하건데 그들은 금전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본인들 스스로가 외부의 지원을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가부장적 문화가 주는 여성폭력적 억압과 이스라엘 식민 점령정책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그들 스스로의 자립과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향한 희망과 의지를 계속 피력했다. 2019.9.2. 명예살인으로 희생된 팔레스타인 여성 이스라 가라에브를 추모하며 여성보호법률을 요구하면 시위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사진 출처 - AP Photo/Nasser Nasser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여성의 존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종교적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된 하나의 집단화된 존재로 인식된다. 한 번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진 않았지만 누구나 이슬람여성의 억압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녀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정책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못한 채 앰블란스에서 아이를 사산하는 일상을 겪으면서도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미명하에 온갖 폭력에 노출된 중층의 억압적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그 상황을 뚫고 나오는 여성들의 목소리조차 지리적 거리와 사회문화적 편견 때문에 오롯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아디는 1년 동안의 현지조사를 통해 그녀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2020년부터 바보의나눔이라는 민간재단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에 여성지원센터 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겪는 점령 폭력(ORV, Occupation related violence)과 젠더 폭력(GBV, Gender based violence)에 대항하고 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현지자원을 개발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수많은 수하와 마리엠과 같은 여성 활동가들에게 자립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교육과 실습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한다. 나아가 여성 활동가들의 성장을 통해 그 지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사업의 목표이다.  현지 활동가들과 사업을 논의하면서 한 현지 여성 활동가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팔레스타인이에요?” 순간 머릿속 여러 생각들이 스치며 어리버리 대답했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아디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마도 이 사업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지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순 없다.
2020-02-19 | hrights | 조회: 68 | 추천: 5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고등학교 이학년의 봄을 기억하는 것은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3박 4일, 아니 어쩌면 4박 5일이었을 그 여행의 다른 기억은 왠지 모조리 지워졌다. 단체로 찍은 기념사진을 보아야만 저런 곳에 갔었구나 하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붙들 지경이다. 다만, 한 대학교를 찾아갔던 일만은 비교적 또렷하다. 정확하게는, 그 학교 교문을 나서면서부터 꽤 오랫동안 매달려있던 어느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 학교는 누군가가 ‘2호선 대학’이라고 이름 지은 학교들 가운데 하나인 명문 여자대학교였다. 한 반에 사십 몇 명씩 모두 여덟 개 반이던 우리는 근사한 건물의 꽤 넓은 강당으로 안내되었다. 학생회 간부들 몇이 무대로 나와 학교를 소개했다. 주로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이 어느 단과대 회장이었는지 총학생회장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 생각하면, 일면식도 없고 사는 지역도 다른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에까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주는 대학생이라니 요즘도 그런 따순 광경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멀리, 한반도 ‘부속도서’에서 찾아온 ‘여고’생이라는 특수한 계급이 만들어 준 비상한 관대함인지도 몰랐다. 전교에서 1등을 하고 모의고사에서 전국 상위권에 들어도 ‘딸이기 때문에’ 섬에 남아 학비가 저렴한 지방국립대나 교대를 가야하는 경우가 왕왕 있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를 환대해 준 그 언니들은 여러분이 후배가 되면 좋겠다며, 여대에 진학해야 할 이유를 몇 가지 꼽았다.  내가 꽤 오랜 시간동안 답을 찾기 위해 몰두했던 궁금증은, 그때 마이크를 잡고 있던 언니의 말에서 시작됐다.  “여대에 오세요. 여기선 여자가 과대표도 할 수 있고 단과대 회장도, 총학생회장도 할 수 있어요.”  한참동안이나 붙들고 있다가, 얼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하게 될 즈음-그날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몇 년 전에야- 왜 저 말에 ‘버튼이 눌렸는지’, 그리고 저 말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알았다. 너무 맞아서 외려 슬픈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부끄럽게도, 명예남성에 가까웠다. ‘여대에 오면 과대표며 회장이며 여자가 하는 게 당연하지, 당연한 이야기를 왜 저렇게 당당하고 진지하게 하지’ 따위의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 여대라는 곳의 수준을 의심했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오만해지기 쉬운데 멀리서 그 예를 찾을 것도 없었다.  여러 이유로 그 언니들의 후배가 되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갈 일은 종종 생겼다. 주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예쁘고 저렴한 옷을 사기 위해서, 또는 약속이 있어서, 하는 이유들이었다. 어느 날, 그 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기다리며 학내에 들어갔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 생겼다. 교내 곳곳에 붙어있던 반전 포스터와 대자보들 앞에서였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군의 폭격을 비난하거나, 유고슬라비아와 콩고, 체첸 같은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들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대자보 너머의 그들은 전시에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면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성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드러내는 사진들 앞에서 꽤 오래 얼어붙었다. 그리고 ‘저런 당연한 소리를 진지하게 하다니’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하고 무거운 궁금증에 다시 붙들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먼 나라의 일에까지 관심을 두고 투쟁하듯 목소리를 내는 언니들의 지적수준이 부러웠고, 한편으론 저 포스터를 만든 사람은 아주 여러 번 끔찍한 사진을 보아야 했을 텐데 지금쯤 맨정신일까를 걱정했다. 그런데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죽어나가는 어린 아이와 노인과 남자 청년과 여자는 목숨의 무게가 다를까, 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로 여자만이 등장하지,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그 운동, 페미니즘을 오해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그때 그 언니들이 이야기해온 것들을 겪어내면서, 종종 그날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여대에 오면 과대표도, 단과대 회장도, 총학생회장도 할 수 있다는 말을 고깝게 붙들고 이십여 년을 지내보니, 자기 능력을 증명할 기회 얻기가 좀처럼 어려울 미래에 대한 경고가 읽혔다. 앞으로 살아갈 현실은 그럴테지만 그래도 함께 극복해보자는 행간도 읽혔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오조 오억 가지 이유 가운데, 힘센 남자가 주도하는 세상은 절대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들에 집중하자는 전략도 읽혔다. 미 제국주의가 어쩌고 종교전쟁이 어쩌고 경제수탈이 어쩌고는 강자들이 많이 이야기하니,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에 주목해달라는 간절함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도통 이해할 수 없어 갸웃거리던 모든 순간에도 언니들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정의로웠다. 강자와 폭력에 대한 분노 그 옆에, 약자에 대한 연민이 읽혔다. 그건 아무 생각이 없는 나 같은 자라도 그냥 알아지는, 뜨거운 마음이었다. 한동안 오해했으나 그 운동, 페미니즘은 그런 뜨거움과 냉철함 사이에 곧게 선 마음이었다. 사진 출처 - Flickr  여성으로 살고 싶었고 마침내 성별을 정정한 어떤 젊은이가 여대에 합격하고도 결국 등록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간 아팠다.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깊이 슬펐다. 걸음을 돌리고도 담담한 글로 앞날의 희망을 표현한 그이에게 미안했고, 미안하다고 말해주고도 싶었다. 이 사태와 관련 없어 보이는 오래전 기억을 주절거린 것은, 뜨거운 마음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서다. 정확히는 따지고 싶어서다.  오래 괴로웠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성별을 정정한 이를 여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쫓아내고 환호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합당하지 않은 공포를 핑계로 약자를 몰아내고, 타자의 상처 앞에서 환호하고, 그에 대한 다른 유언비어(이미 명문대에 재학 중이라거나 여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입학을 시도했다는 등의)를 퍼뜨리고, 사건을 바라보며 함께 상처받고 미안해하는 다른 여성들을 향해 입에 담기도 어려운 언어로 모독하는 것이, 어째서, 옳다고 우기는가. 왜 당신들은, 혐오와 차별과 폭력에 감히, 페미니즘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가.  질문은 더 이어진다. 여자대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여성이란 무엇인가, 자궁을 떼어내거나 유방이 없거나 질을 절개한 여성은 여성인가 아닌가, 세상에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과 남성밖에 없다는 건 과학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고작 생물학적 성별 따위가 만든 부조리에는 그토록 분개하면서 당신들은 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가, 약자의 상처와 눈물 위에서 나아지는 세상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쉽게 조롱하고 당당하게 혐오하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바라고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런 ‘짓’에 제발, 운동과 이즘(ism)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페미니즘은 이래서 안 된다는 몰이해와 또 다른 혐오가 퍼지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주인공이 너무 깊이 상처받지 않고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닿지 않는 응원들, 아파하고 미안해하는 마음들을, 간간히 떠올리는 것이다.
2020-02-12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11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비명이 귓전을 때린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에 경직된 몸으로 침만 거듭 삼킬 수밖에 없다. 살인을 미리 계획한 듯 바닥에는 큰 비닐이 깔려있다. 깔린 비닐 위로 붉은 피가 흥건하다.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지 눈을 깜빡이고 있다. 이내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피와 섞여 붉게 물든다. 그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도움을 요청하는 듯 한 슬픈 눈. 몸에 흐르는 혈관 속 피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 순간 눈을 감는다. 실눈을 떠서 확인하니 그는 이미 죽고 말았다. 서서히 긴장이 풀려가는 것을 깨닫는다. 손은 팝콘과 콜라를 향한다. 카라멜의 기분 좋은 단맛이 혀끝에 감돈다. 입안 가득 팝콘을 넣고 먹으니 씹는 소리에 비명이 멀어져가고 그 잠깐 공포를 잊는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공포영화로 푼다. 공포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에는 온종일 골머리를 앓았던 걱정거리가 ‘걱정 따위’가 되어 생각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공포영화로 푸는 것을 신기해하는 분들도 있다. 나도 공포영화를 끔찍이 싫어하던 때가 있었다. 나에게도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을 ‘대체 왜 보지?’라는 의문 가득한 눈으로 보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은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죽은 연기를 한 배우가 깨어날 것을 알아서가 아닐까. ‘이건 영화일 뿐이야.’라는 생각으로 ‘공포영화’에 접근해서, 무서워도 즐기게 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짐작일 뿐 명확하지는 않다. 직접적인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며 공포영화가 무서워서 보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 ‘전설의 고향’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 전설의 고향이었어!  동네에서 6살 동갑내기 친구들이 저마다 한 손에 포댓자루 하나씩 들고 와 뒷산 언덕에 모였다. 언덕 아래 들판은 잘 관리한 듯 한 잔디가 깔려있었고 들판 중간중간에 볼록볼록 튀어나와 있는 풀 덮인 흙더미가 썰매 타기를 더욱 재밌게 만들어주었다. 그곳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TV를 틀다 우연히 “전설의 고향”을 보게 되었다. 무덤에서 머리가 길고 하얀 옷을 입은 귀신이 나와 무덤을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본 이후 무덤 근처는 가지 못하기도 했었다. 놀이터가 무덤이라는 자각을 이때 한 것이다. 그 뒤로 무덤에서 귀신이 나와 나를 쫓아오는 꿈을 반복해서 꾸기도 했다. 공포는 공포 그 자체였기에 쳐다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공포영화를 지금처럼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설의 고향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지금처럼 공포물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란 부족하다. 더 무언가가 없을까 생각해봤다. 이번엔 ‘장례식장’에서 느꼈던 ‘이질감’이 떠올랐다. 그래! 장례식장이었어!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나는 이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조문객으로 갈 때와 상주로 있을 때 따라 장례식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조금 차이가 난다. 차이가 나지만 신기하게도 불편한 ‘이질감’을 느끼는 점에서는 두 경우 모두 결론이 같다. 먼저 손님으로 가는 경우다. 검은 옷과 양말을 찾으려고 옷장을 헤집는다. 겨우 찾은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식장을 찾아간다. 입구에서 흰 봉투를 집어 이름을 적고 ATM기에서 찾은 돈을 넣는다. 호실을 확인하고 들어간다. 상복 입은 상주가 “아이고”를 외치며 곡을 한다. 절을 하고 부조금 함에 이름이 적힌 흰 봉투를 넣는다. 그리고 밥을 먹는다. 상 위에 올라오는 육개장(가격이 비싸서 시래기 된장국을 주는 곳이 더 많다), 수육, 동그랑땡, 애호박전, 색색의 떡. 그리고 화룡점정 플라스틱. 음식을 다 먹고는 깨닫는다. 그릇이며 숟가락 모두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플라스틱은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이번엔 상주로 있을 때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 장례식장을 향한다. 눈물 바람이 된 상태로 절을 하고 가족을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운다(물론 슬프지 않은 때도 있다. 그저 가족의 눈물에 동할 뿐). 찾아오는 손님에 정신이 없다. 누군가는 부조금을 받고 누군가는 손님에게 음식을 드린다.(음식을 나르는 일은 여성의 몫이다) “손님은 왕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 말은 장례식장에서도 통한다. 슬픔을 나누러 온 건지 술을 마시러 온 건지 모를 어떤 사람들은 술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었다.(여기 술~!) 준비물이 안 보인다며 등교하기 전 엄마를 부르면 엄마는 “여기 있잖아. 찾아보지도 않고”라는 말과 함께 등짝 스매싱을 날리곤 했는데 술 달라 하는 저들에게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는 말과 함께 등짝 스매싱을 선사하고픈 욕구가 뜨겁게 올라오지만, 몸은 이미 냉장고 문을 열고 있다. 그렇다. 부조금을 낸 손님. “손님은 왕이다.”  손님들이 먹고 나간 후 상을 정리하면서 생각한다. ‘이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을 남기는 것이 분명하다.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플라스틱을 소비하다 죽어서조차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발생한 플라스틱은 결국 산 자의 몫이 될 텐데 말이다. 죽음이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진 출처 - freepik  역시나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위기 시대 지구는 뜨거워져 간다. 우리만큼의 플라스틱을 사용해본 적도 없는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인 섬이 점점 가라앉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으로 바다에는 산호초가 사라져가며 바닷속 다양한 생물들은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죽음을 맞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피해를, 사용하지도 않은 존재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살아 숨 쉬는 인간 세상이 더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가 맞을 듯하다. 영화는 가상이라 되돌릴 수도 있고 누구도 ‘진짜’로 죽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에서의 공포는 영화에 비할 수 없다. 혐오와 차별로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가는 오늘, 존재하지도 않는 귀신이 사람을 해하려는 것이 ‘진짜’ 죽음의 공포에 비하랴. 전쟁터에 신무기를 판매하는 누군가로 지옥이 된 분쟁지역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아이들도 있다. 영화 장면 속 살인사건이 그에 비하랴.  역시 인간이 제일 무섭다는 생각에 잠기며 공포영화와 팝콘에 신경을 집중한다. 플라스틱에 담긴 콜라를 마시며.
2020-02-11 | hrights | 조회: 80 | 추천: 3
이회림/ 00경찰서  지하철 치한(癡漢)은 지하철 안에서 여성을 상대로 동의 없이 특정 신체부위를 접촉하는 행위를 하는 자를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성추행, 성폭행 범죄자에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안이나 공공장소에서도 치한들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지하철은 그들의 주무대이지요.  성기를 여성의 신체에 갖다 대거나 한술 더 떠서 비비적거리기, 치마 입은 다리 안으로 손을 넣어 만지기, 바지 허리춤에 손 넣었다 빼기, 주먹으로 엉덩이나 허벅지 건드리기, 지하철 하차 시점에 엉덩이를 꼬집고서 자연스럽게 도망가기 등 그 수법이 매우 치사하고 다양합니다. 처벌조항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 대중교통수단, 공연·집회 장소, 그 밖에 공중(公衆) 이 밀집하는 장소에서 사람을 추행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이 아닌 경우  움직이다가 여성과 우연히 부딪치거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등을 보려고 팔을 위로 뻗었는데 신체에 닿았거나, 지하철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타인에게 떠밀려 신체 접촉을 했을 경우 등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정되어 성추행에 해당되지 않음.  저 또한 수년 전, 서울의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엉덩이를 세게 꼬집히는 추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지하철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누가 저를 꼬집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한순간 이상한 느낌에 ‘어~?’ 하면서 뒤를 돌아봤지만, 지하철 문이 열리고 수십 명이 우르르 내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뿐이었습니다. 제 눈앞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못난 인간이 그런 짓을 했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출근시간의 1호선도 정말 힘든 공간인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3일 연속으로 사건, 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누가 쓰러지거나, 추행을 당하거나, 자리 문제 때문에 서로 욕설을 하며 싸우거나 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저의 바로 뒤에서 추행을 당한 20대 여성 승객이 112에 신고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제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켰습니다. 저라도 개입해서 그 여성을 도와줄 마음으로 조용히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경찰이죠? 지하철에서 추행을 당해서 신고하려고요. 여기 1호선 2345열차 안이고 5번째 칸이고요. 지금 용산역 지나가고 있어요. 경찰 좀 보내주세요.” 그 분은 차분히 현재 위치를 설명하면서 한 손으로는 상대방 남성의 옷깃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자가 도망가려고 해서 제가 옷을 꼭 붙잡고 있거든요. 만원 지하철 안이라 역에 내리지 않으면 움직이기 힘들고요. 이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승강장 바로 앞까지 와주세요. 꼭!”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상황을 112 신고 접수 요원에게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여성의 바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 남자가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면 얼른 따라붙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경찰신분증을 꺼내 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지하철이 서울역 승강장에 다다랐고, 차창 밖으로 순찰요원들이 보였습니다, 문이 열리자 그 여성은 남자의 옷깃을 휙 잡아끌며 재빠른 몸놀림으로 전철에서 내렸습니다. 그 여성분은 갑작스럽게 불쾌한 일을 당했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게 그리고 당차게 잘 대처하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습니다. 저녁 7시경 지하철 1호선 안, 40대 남성 A씨가 안양에서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 1호선에서 20대 여성 B씨를 추행했습니다. B씨는 등 뒤에 서 있던 A씨가 자신의 신체를 만지는 것을 느꼈으나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이를 곁에서 지켜본 한 40대 여성승객이 조용히 B씨를 잡아끌었습니다. 이렇게 B씨는 곧바로 자리를 이동했으나, A씨는 계속 B씨를 뒤 따르며 B씨의 다리에 자신의 다리를 문질렀습니다. B씨가 울먹이며 앞자리에 앉은 승객에게 “뒤에 있는 분이 자꾸 나를 만진다”며 도움을 청했지만, 오히려 A씨는 B씨에게 “저 때문에 우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40대 여성은 성추행범인 B씨의 멱살을 잡고 “이런 짓 그만해”라고 소리치며 제지했습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한 시민은 재빨리 역무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출동한 역무원과 40대 여성이 함께 성추행범을 지하철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사진 출처 - 다음 뉴스  자, 어떻습니까? 여러분! 피해자도 아닌 목격자였던 40대 여성이 성추행범 B씨의 멱살을 잡고 ‘이런 짓 그만하라’고 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범죄 상황에 뛰어 들었습니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피해자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구경만 하던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그 여성의 정의감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사례를 보면서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경찰이 최대한 빨리 신고 현장에 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범죄 앞에서 우리 모두가 경찰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40대 여성분의 사례처럼,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현장의 목격자들께서 도움주실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여러분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라면 20대 여성처럼 용기를 내시어 침착하게 신고를 하시고, 목격자 중의 하나가 되는 상황이라면 40대 여성처럼 곤경에 처한 피해자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2020년에는 지하철 범죄가 급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처지에 공감하는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용기 있는 행동들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기를 바랍니다.
2020-01-31 | hrights | 조회: 124 | 추천: 2
주윤아/ 교사  ‘블랙독’이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인가 보다. 시청하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방송사의 드라마 소개란을 보니 ‘기간제 교사가 된 사회 초년생 주인공이 우리 삶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꿈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고 되어있다. 교사들 사이에도 꽤 리얼하다는 소문이 돌아 관심 있는 일부 내용만 찾아보았는데, 내가 근무했던 여러 학교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과 내가 기억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이 제법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재밌다기보다는 ‘웃프다’는 감상이 더 맞을 거 같다. 얼핏 보면 비정규 교사의 성장기 같아 보이지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학교 판 미생’이라고 불릴 만큼 촘촘한 갑을관계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타 직종보다 구성원들이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도 예외 없이 착취와 억압의 구조가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크게 교사와 교육을 지원하는 행정 노동자로만 구분되어 보이지만 사실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학교 내 비정규직은 교육공무원직, 방과후 강사, 파견·용역, 기간제 교사 등으로 고용방식도 초단기 계약직부터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까지 천차만별이다. 또 교육 당국이 단기성 정책으로 비정규직을 늘리고 없애고를 반복하다 보니 현재 1) 학교 비정규직 직종은 공식적으로는 크게 15종이나 노조 측에서는 세부 직종으로 나누면 100여 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이들 중 1/3 정도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도 하였지만, 인건비, 각종 수당, 복지 등 정규직과 차별받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중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제 중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갈등과 찬반논쟁도 거세어 해법도 요원한 데다 (무기계약직이 아니므로) 계약의 불안정성으로 드라마보다 실제는 백배 더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학교 내 정규직들은 같은 업무(혹은 기피하거나 더 강도 높은)를 하는 비정규직의 차별을 인지하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차별한 적은 없을까? 아마 차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은 없어도 차별하는 당사자는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을 수 있다. 내가 교육청이나 관리자에게 을이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갑으로 군림하고 있을 수 있고,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도 계약 형태나 처우 등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서열 피라미드가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학교 내에서 정규직의 목소리(사실 비정규직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를 먼저 듣고, 정규직의 안건(역시 비정규직의 안건도 거의 상정되지 않는다)을 주요하게 생각했던 사고와 태도가 몸에 배어 있음을 고백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최근 몇 년간 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만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 권력 관계와 나아가 개인이 가진 정체성의 교차성에 대해 고민이 깊어졌는데, 그 시작은 내가 가진 특권을 인식하면서부터였다. 교사로서의 나는 주로 국가나 자본, 교육청, 관리자의 권력으로부터 받는 억압에 집중하였는데, 나 역시 학교 내 비정규직, 학생, 보호자들에게는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일 수 있음을 성찰하게 된 것이다. 내가 부당하다고 여기고 비판하는 것들은 주로 지식으로 무장한 권리이거나 내가 더 가지지 못한 권리들을 향해있었고, 내가 남보다 더 누리는 권리나 특권에 대해서는 당연시하거나 불감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을 인지도 성찰도 하지 않는 경우는 물론,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 해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권력이 함축된 언어적 폭력으로 차별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은 나의 사고와 언행이 ‘꼰대’라서 그런 건 아닐까? 라는 자문을 수없이 되새긴 한 해였다.  학교 밖에서도 그렇겠지만, 학교 내에서도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원래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야’, ‘어쩔 수 없어’, ‘적당히(작작 좀) 해라’ 등등 ~ 이 말들은 얼핏 상대의 입장에 공감하며 평화로운 너와 나의 일상을 유지하자는 삶의 지혜가 담긴 조언 같기도 하지만 이 말이 사용되는 상황과 맥락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원래 그래’ : 인류의 시작과 동시에 원래 그런 것은 별로 없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 옛날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무탈?하고 유구하게 내려져 오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1월 중순쯤 방영된 모 프로그램에서 페루의 돌고래학살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약 700여 년간 자행되어 오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이를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주민들은 아마도 우리 동네에서는 ‘원래 그래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학살 행위를 금지하고 다양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현재에도 그 마을에서는 전통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무고한 동물들만 희생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남자는, 여자는 ‘원래 그래’ 라는 말은 왜 지양해야 하는지는 익히 알고 계실 테니 여기서 또 서술하지는 않기로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야’ : 부정이나 청탁이 오가는 상황에서 은밀한 어조로 자주 사용되는 이 말은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발화자는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즉 윈윈전략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을 발화할 수 있는 경우는 대개 강자이거나 주류에 속하는 다수일 테니 결국 ‘좋은 것’이란 이들의 관점에서다. 내 취향도, 나에게 이득도 가져오지 않는 그 ‘좋은 것’은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인 나에게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외모 칭찬도 결국 ‘내가 칭찬해 주니 너는 기뻐해야만 한다’라는 발화자의 고정관념에 근거한 오판일 뿐 외모 품평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날이면 날마다 “예쁘다고 말해주는데 도대체 뭐가 불만인 거냐?”라는 질책만 되돌아올 뿐이다. 쉼이 있는 저녁과 칼퇴근을 원하는 직장인들에게 상사가 시혜처럼 지정해 주는 회식 날짜와 방식에 직원들은 고맙기는커녕 왜 자기 가족과 지인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자신들에게 놀아달라고 조르는지 의아할 뿐이다. ‘가족 같은 직장’을 사훈으로 하는 사용자들은 직장(공적)을 사적 영역으로도 활용하는 상황이 본인도 모르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격려와 감사를 ‘밥’ 한 끼로 꼭 전하고 싶다면 먼저 의견을 묻고 정하는 게 순서다.  ‘어쩔 수 없어’ : 이 또한 시공을 가리지 않고 참으로 많이 듣는 말이다. 비합리적이고 부당하고 아무튼, 아닌 것은 알겠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의견을 말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능력(아니 사실 용기와 의로움)이 없다고 자기 자신을 변명하거나 혹은 을들의 처지를 묵인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불공정한 것은 알겠지만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받아도 나도 어쩔(도울) 수 없고 너도 어쩔(피해) 수 없다는 논리다. 그다음에 이어서 하는 더 짜증스러운 말은 ‘억울하면 출세해라, 준비해서 공채 봐라’ 등등이 있겠다.  ‘적당히 해라’ : 최근 지인 중에 채식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외식의 경우 식당과 메뉴 선택이 쉽지 않다. 인원이 다수면 대체로 채식주의자들이 양보(사실 체념임)하거나 본인의 기호에 상관없이 채소로만 이루어진 메뉴를 비자발적으로 먹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깃집이라도 갈 작정을 한 날에는 ‘적당히 좀 하고 살 것이지~ 저렇게 해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냐’ 라는 뒷담들이 등 뒤에서 오가곤 한다. ‘적당’하다는 것은 어느 선까지를 말하는 것이며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의 주체는 누구이며, 설사 대중의 기준이 있다 치더라도 왜 적당이라고 명명하는 그 지점에서 다수에 의해 내 취향과 선택을 강제 종료해야 하는가?  드라마 ‘블랙독’에서 교원평가를 소재로 하는 방영분만 또 찾아보았다. 거기서 편법을 쓰는 교감(관리자)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평교사들을 대변하려는 부장 교사에게 나름 절친 교사가 ‘(결국, 너보다 을인 너희 부원들에게도 불이익이 돌아가니) 적당히 해라’라는 진심?(그 순간만큼은 진심 같아 보였음) 어린 조언을 한다. 현실이다. 학교는 공공기관(공무원)이라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또 늘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가 많아 그 어느 조직보다도 변화와 진보가 더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적잖은 학교의 구성원들이 그 느린 변화의 속도에도 좌절하지 않고 ‘프로불편러’ 낙인도 감수하며 포기하지 않고 ‘적당’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의 권리와 책임, 정체성 등을 가지고 산다. 언제나 특권을 누리지도 언제나 차별만 받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차별을 받을 때도 명확히 인지하고 대응해야겠지만, 내가 가진 특권으로 상대를 차별하는 경우는 인지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 성찰해야 한다. 특히 교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학생과의 권력 관계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다.(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써 보려고 한다) 요즘 차별이 줄어 정말 평등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권력이 점점 많아져 오히려 인권 감수성은 떨어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 권김현영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 ……’ 1) 학교비정규직 파업 '역대 최대 규모'…"매년 되풀이 막아야"(연합뉴스 2019.7.5) 2)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권김현영, 휴머니스트, 2019.10)
2020-01-22 | hrights | 조회: 231 | 추천: 29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인권교육'이란 무엇인가요? : 교육하는 사람은 늘 인권 감수성을 점검, 성찰하고 개발하여 이를 인권교육을 설계하는데 반영해야 합니다. ■ 인권교육은 그 과정이 인권입니다.: 인권 교육의 질과 양, 실력은 교육하는 사람의 인권 감수성과 관점의 한계를 넘어서 교육 받는 사람을 설득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교육하는 사람이 편견과 선입견 차별의식을 가지면서 교육생에게 이를 타파하라고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권 교육은 의뢰와 진행, 결론 및 사후 관계에서 그 과정이 인권 기준에 맞아야 하며, 그래서 주입 교육 보다, 참여 및 민주적 교육이 되어야 하며, 감수성을 일깨우고 개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하는 사람이나 교육받는 사람이나 스스로 자신의 인권 감수성을 깨우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 방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Lister의 분류에 따르면, 인권교육은 인권에 대한 교육(Education about human rights)에 그쳐서는 안되고 동시에 인권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human rights), 인권을 통한 교육(Education through human rights)이 되어야 하며, 머리(인지영역), 가슴(정의영역), 손(행동영역)을 동시에 총동원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1) ‘인권을 위한 교육’은 실제로 인권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며, 이를 위해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인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에서 인권의 관점을 적용할 수 있도록 지식과 기술을 가질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권을 통한 교육’은 인권을 알고 누리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에 관한 학습이 일어나는 곳에서 충분히 누리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폭력과 억압, 강제적인 행위가 일어나거나 성차별 또는 인권에 역행하는 방식으로는 인권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권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가장 인권적이어야 합니다.2) 각 개인에게 어렵게 각성되고 키워진 인권감수성이 인권의 태도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권은 암기 과목이 아니라 가치지향의 예체능 과목과도 같으며, 그래서 그동안 인권교육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일상 생활의 습관이 되어야 완성할 수 있습니다. Tip) 인권강의 인권적으로 기획하고 설계하기: 강의 자료의 표현과 내용을 사전 점검하여 구성하는 것이 중요. 교육의 인권 당사자 참여·동의·평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강의 요청서로 참여자의 접근성(편의시설/시청각 장애인, 지적 자폐성 장애인의 정보 접근 – 수어 및 문자통역,화면해설 제공)을 확인함과 장신 장애인과 건강 장애인과 관련한 휴식과 안정 시간 확보등, 아울러 그들의 초상권/개인정보보호/위계를 방지하면서 교육의 기준을 제시하고 설명하여 인식시키고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강의 촉진, 흥미 유발을 위한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더라도 참여자의 인권문제와 위치성, 소수성, 감수성 등을 파악하여 강의 언어 사용에 신중해야 합니다. ex)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 사용(여자 친구가......→ 애인이나 파트너가) ■ 주관식 서술식 강의 평가서로 교육생의 평가와 변화 등을 소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권교육으로서의 ‘장애인 인권 교육’은 무엇인가요? 시민 모두 서로 연결되고 이어져 있음을 일깨워 모두의 편견을 제거하고 차별을 철폐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권한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 제37조 1항」 사진 출처 - 함께걸음 ■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장애인 이해 교육?! 장애인 인권 교육!! 장애 이해 교육3)과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 가지는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어느 인권 교육 영역도 이해와 인식 개선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해와 인식 개선이 인권을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실천이 없는 이해와 인식 개선은 오히려 차별과 편견, 분리를 강화시킬 정보만 주는 위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 인권을 논할 때 ‘여성 인권교육’이나 ‘성차별 방지교육’이라고 일컫지, 여성 이해 교육라든가 여성 인식 개선 교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육하는 사람은 이 표현의 의도보다 이 표현의 ‘효과’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인권교육 영역에서 유독 장애인에 있어서는 주체성과 당사자성 개념이 혼란스럽습니다. 개념이 혼란스러운 만큼 장애인 인권교육 역시 같은 인권교육 영역에 있다고 여기면서도 감수성의 간극은 아주 큽니다. 처음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교육 영역은,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이었다가 장애인 이해 교육이라고 대대적으로 변화했고, 지금은 그 영역에 성교육과 장애인차별금지법 교육,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에 의거한 각종 교육이 들어와서 각각의 교육 실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러 사건으로 촉발된 교육 과정과 장애인들의 권리로서의 ‘성’의 관점이 논의되면서 때문에 ‘성 인권’ 단어로 관점을 정립하며 성교육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소수자 중에서도 장애인만큼 ‘교육’에 있어 대상화되는, 권력관계에 취약한 소수자도 드물 것입니다. 또한 인식 개선이란 말부림은 원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나쁜 것이며 장애인은 사람들의 인식 개선을 통해서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개인 간의 관계 문제로만 만들어 버려서 사회와 환경과 구조의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 위험도 있습니다. 인권의 문제는 누군가가 이해해서 해결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누군가 ‘이해받아야 할 존재’, 비주체로 대상화될 위험이 있고 낙인찍기의 위험도 있습니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장애 공감 교육도 감수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이러한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예절, 에티켓 교육이 장애인 인권교육의 일부 내용으로 필요할 수는 있지만 이 자체를 장애인 인권교육으로 볼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장애인 인권 문제를 모두 배려나 사랑으로 풀어내는 것도 오히려 인권 문제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장애인을 싫어하거나 배려하지 않아도 차별하거나 인권 침해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권교육이란 이름을 달고 장애인을 강제로 아웃팅시키거나 개인정보를 남용하거나 자기 결정권과 주체성을 심각히 훼손하고 박탈하는 경우를 조심해야 합니다. 장애인은 ‘인권교육’의 이중성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4) 더구나 장애우라는 말은 장애인을 대상화 한다고 비판하면서 대상화5)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이해나 인식 개선을 인권교육을 대신 지칭하는 말로 공공기관이나 일부 공적 단체들이 쓰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모든 인권교육 자체가 장애인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하며 장애인 인권 교육 역시 다른 사람들의 인권 비장애인의 인권까지 영향을 주고 교류를 해야 합니다. 장애인 인권 문제는 인종 차별 문제에 그 뿌리가 있고 생물학적 결정론에 근거한 차별의 문제에서 페미니즘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독일이나 일본의 우생학의 가장 큰 피해자가 장애인이란 점에서 ‘난민’6)문제와 다문화 문제와도 그 결을 함께 합니다.(2009년도 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 다문화가족의 등록장애인 비율은 17.3%) Tip) 1) 『민간단체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워크샵(인권운동사랑방1회) 자료집』(2000년,인권운동 사랑방) 20쪽 2) 『국가인권위원회 연구보고서인권교육의 의미』 (2004, 구정화) 요약 3) 그리고 아쉽게도 아직 많은 교육 관료들과 공무원들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교육을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의 인성과 도덕이 높아진다고 해서 장애인학생들의 교육권이 인격적으로 그 질이 높아질지는 의심스럽다. 국가와 교육가, 활동가, 그리고 당사자, 그리고 당사자 가족과 다양한 관점에서 인권교육이 존재하고 진행할 때, 어떻게 해야 그것이 성과이든, 실적이든 ‘인권’ 자체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4) 장애인에게 인권교육 하겠다면서 그들의 성적 행동을 교정하는 교육을 해달라고 하거나 기본 예절 교육을 요구하는 경우도 그러하고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인권교육을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도 그러하다. 5) 【기사】인권위 “교과서 속 장애인, 배려나 보호 대상으로만 묘사 안돼”( 웰체어뉴스,정두리 기자, 2019.02.27. 10:05) 6) 참조 「11살 파키스탄 소년, 국내 첫 난민 장애인 등록」 세계일보 2018-07-10 7) 「“교육현장서 ‘다문화’란 말 쓰지 말자”」 (경향신문, 2019.02.21.) ‘다문화가족’이라는 용어를 교육현장에서 쓰지 말자는 제안이 나왔다.전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최명수 의원(민주당·나주)은 21일 “전남도교육청 업무보고에 다문화가족 학생들에 대한 지원사업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최 의원은 “ ‘다문화가족’이라는 말은 ‘국제결혼’ 또는 ‘혼혈’이라는 차별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들어 있다”면서 “ ‘다문화가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했다.최 의원은 또 “다문화가족 학생은 필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취약계층으로 분류돼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해당 학생들의 거부감이 있고, ‘다문화’란 명칭이 학생의 호칭과 별명으로 변질되는 등 문제점이 많다”고 개선을 요구했다.
2019-12-18 | hrights | 조회: 361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