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서동기(대학생),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회림/ 00경찰서  어느 겨울, 일요일 오후 ,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  ‘순 21. 순 21 00마을 00길 3호 우물에 사람이 거꾸로 들어가 있다는 신고. 119도 보냈으니 순 21호 신속히 출동하여 상황보고 하도록.! 아울러 순 22.23호도 지원바람‘  현장에 도착해 보니, 다행히 119 대원들이 먼저 와 있었고 대원 한 분이 이미 우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떤 남자가 머리를 우물 바닥 얕은 물속에 박은 채 고꾸라져있었습니다.    ‘로프 좀 던져주이소~!’  우물 안에 들어 간 대원이 밖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로프가 아래로 던져지고 구급대원은 로프를 그 남자의 몸에 칭칭 감았습니다. 다른 대원 2명이 우물 위에서 로프에 묶인 남자를 끌어당기니 이내 거꾸로 선 다리가 먼저보이다가 마지막으로 파랗게 질린 남자의 얼굴이 올라왔습니다. 대원들이 남자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 다급히 인공호흡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창백한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지 한참 된 것 같았습니다.    ‘이 순경~! 가족들 인적사항 파악하고 상황실에 무전보고 해~’  ‘네~! ’  가족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과 그 할머니보다는 약간 젊어 보이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이고~아이고~~’하며 울고 계십니다.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에게 누구시냐고 물어보니 우물에 빠진 남자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사돈뻘 되는 어르신들이라고 합니다. 저는 수첩을 꺼내들고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보시더니 한 팔로는 저의 팔을 잡고 다른 팔로는 당신의 가슴 한 가운데를 주먹으로 치시면서 오열하십니다.    “아이고~ 순사아가씨요... 순사아가씨요...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맨날 천날 물만 보면 뛰 들어갈라 카디만 인자 우물 앞에 가서 ‘엄마 내 죽는다. 내 죽는다’ 하고 기들어가디만... 내가 그거 들어가는 거를 붙잡는다꼬 다리를 붙잡고 죽어도 안놓을려고 붙잡고... 붙잡고... 사돈이 지나가다가 그거를 보고 같이 붙잡고 한참을 버티고 그라다가... 늙으이 둘이가 무신 힘이 있능교... 마... 둘이가 힘이 빠져가 다리를 놓쳐뿌리가 우리아가 저래 되었는기라요... 아이고... 순사아가씨요... 내가 손이 이래 되도록 죽을힘으로 붙잡았는데... 아이고 우야능교...아이고...”  제 팔에 매달려 우시는 할머니의 손등을 보니 우물 표면에 긁혀 살갗이 벗겨지고 빨간 피가 송송이 맺혀있었습니다. 고목의 표면 같아 보이던 손등에 새 빨간 피. 할머니가 말씀하신 상황이 눈에 보이듯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이 되어 제 가슴도 덩달아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끌어올리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무게였을 터인데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려고 사투를 벌였을 할머니의 절망감을 생각하니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기에 그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떨고 있는 가녀린 어깨를 안아드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전기에서 상황보고를 재촉하는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와 퍼뜩 마음을 가다듬고 순찰차로 돌아갔습니다. 남자의 누님에게 인적사항을 받아 적고 시신을 싣고 간 구급차를 따라 병원 영안실로 향하였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남자는 마흔이 다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할머니의 말대로 물가에만 가면 항상 뛰어 들고 싶어 해 정신병원에 몇 차례 수용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비번날 어머니가 경영하시는 한복가게로 갔습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와 마주앉아 이야기 나누고 계시던 어떤 할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이고~~ 순사아가씨~~ 이 집 딸네미가 순사한다카더니... 이런 인연이 어데 있노~~‘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얼마 전 우물에서 자살한 남자의 어머니였습니다. 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친 우물 벽에 손을 긁혀가며 안간힘을 썼을 노모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계속 울적했었는데 우연히 다시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때와는 다르게 얼굴이 많이 밝아 보이셔서 저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위에 쓴 이야기는 사실 십 수 년 전 겨울, 제가 신임 순경 시절 겪은 일입니다. 순찰 일을 하면서 꽤 많은 변사사건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주로 순경때 유난히 변사사건을 많이 만났습니다. 하루에 3번 각기 다른 시신을 수습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 나름의 경험치로 통계를 내어본다면 교통사고사를 제외하면 자살이 가장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구하기 쉬운 독극물인 농약(제초제)를 마시고 자살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았고 목을 매어 자살하시는 분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순찰요원을 거쳐 형사과 성폭행 사건 전담 수사를 하게 되면서 ‘사람은 왜 이렇게 악한가?’ ‘왜 사람은 죄를 저지르나?’ ‘왜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뒤로 하고 자살을 택하나?’ 이렇게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져 이런 저런 책을 뒤적여 가며 해답을 찾고자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불교집안에서 자라서 불교와 인연이 깊은 저이지만, ‘선과 악’ ‘죄’ ‘자살’에 대해서는 불교가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이런 제 마음을 선배 형사에게 토로했더니 성경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 주었습니다. 평소 성경을 그리스신화 비슷하게 허황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저였지만 그때만큼은 마음을 열고 성경을 펼쳐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읽기는 불편해서 성구사전을 활용해 키워드 별로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성경에서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기담당 시종에게 검으로 자신을 찌르라고 명했다가 스스로 칼 위에 엎어져 죽은 ‘사울왕’, 다윗왕을 배신하고 집으로 돌아가 목매어 죽은 ‘아히도벨’. 그리고 예수를 팔아넘기고 목매어 자살한 ‘가롯 유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살까진 아니지만 자살 충동을 느꼈던 성경 속 인물들을 찾아보면 ‘엘리야 선지자’와 ‘사도 바울’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 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하고> - 열왕기상19:4  이렇게 엘리야 선지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하나님께 목숨을 ‘취해 달라’ 구하였다고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이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 고후 1:8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말했던 사도 바울 또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고 할 정도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마주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저는 성구 사전에 키워드만 넣어서 찾아 본 정도이므로 ‘자살’에 대한 기독교적인 깊은 성찰까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어느 정도 사고의 전환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 했습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이 어느덧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입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이 시기는 고독감이 증가해 자살이 늘어난다고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기준 자살 (1만 3092명), 교통사고 (4292명), 산재사고(969명) 등 총 1만 8353명이 사망했고 10만 명당 자살률에서 25.8명(OECD국가 평균 11.6명)으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5년간 이웃 나라 일본은 자살예방사업 예산에 3조 3000억 원을 투입했고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417억원을 투입하는데 그쳤습니다. 일본은 이 같은 정책적 뒷받침 이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5년간 21.4명에서 16.7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자살예방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하여 자살률을 점차 줄여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내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지 먼저 잘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파괴를 통해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고 그러한 죽음은 남겨진 이들의 마음까지도 병들게 합니다. 새해에는 부디 외로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라고 당부하건데 주변에 힘듦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는지 찾아보시고 있다면 주저 없이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 주시길 바랍니다.
2018-12-11 | hrights | 조회: 24 | 추천: 2
이동화/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활동가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은 한반도 분쟁과 더불어 현대사에서 가장 고질적인 분쟁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의 원인을 종교간 갈등이나 테러와 안보간 대결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의 원인은 줄곧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계획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계획은 현재 팔레스타인 거주지내에 만들어지고 있는 ‘불법유대정착촌’으로 실현되고 있다.  유대인들의 종교사회적 집단 거주지인 유대정착촌은 팔레스타인지역내 소수 공동체로 오랫동안 주변 아랍무슬림과 공존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후 영국의 벨푸어 선언(팔레스타인지역에 유대국가 건설)으로 유럽의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원주민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는 등 현재 이팔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4차례의 중동전쟁을 통해 유대정착촌 지역도 급속도로 확장됐고 그 결과 수백만의 팔레스타인 원주민은 난민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제네바협약과 헤이그협약과 같은 국제법은 ‘1967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차지한 현재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무력점령지역이며 점령지역의 거주민을 쫓아내서도 점령국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주시켜서도 안 된다’고 확고히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팔레스타인 내 유대정착촌은 ‘불법’인 것이다.  ‘불법유대정착촌’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미국 주도의 평화협상 과정 속에서 일시적으로 가자지구에서 철수되며 변화를 거듭하다가 2016년 후반 친이스라엘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폭발적인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아디의 ‘2018 이스라엘 불법정착촌 인권실태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팔레스타인지역에 건설예정인 ‘불법유대정착촌’은 그 전년도에 비하여 4배 이상 증가했는데, 특히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유대화’사업 일환으로 집중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2018 아디 팔레스타인 활동보고회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로 인하여 팔레스타인 사람의 인권침해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8년 8월까지 700채의 팔레스타인 소유의 건물이 철거되는데 그 중에는 유치원이나 학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총 951명의 거주민이 강제이주 당했고 퇴거 명령에 불응한 팔레스타인 마을은 파괴되고 거주민들은 구금되었다. 이스라엘 불법정착민에 의한 폭력도 한층 심각해졌는데 대표적으로 올리브나무 훼손, 토지 강탈, 농장 접근 차단, 무단점거, 물리적 폭행, 마을 공격, 재물훼손 등 다양한 폭력이 보고됐다. 이스라엘 정착촌의 지하수 독점과 장벽, 도로 건설로 인한 팔레스타인 전체 사람의 이동권 제한 등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도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디가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두 차례 현지조사방문을 통해 만난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지역이 어느 한 국가의 소유가 아닌 2국가체제(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가 공존하는 체제)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으며 건설되는 ‘불법유대정착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험요소일 수밖에 없다.  최근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엔비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내 ‘불법유대정착촌’에서 운영하는 숙소명단을 제외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이미 ‘불법유대정착촌’을 ‘불법’이라 명명하고 다양한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을 여행제한지역으로 설정하고 지역의 폭력성과 심각함만을 강조하는 정도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한국의 시민사회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듯하다. 
2018-11-28 | hrights | 조회: 81 | 추천: 4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지난 11월 1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사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며,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 모 씨에게 무죄 판결했습니다.  내년 말까지 대체복무제 법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매년 수백 명의 젊은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교도소로 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판결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제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접했던 반응은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권교육을 할 때 간혹 양심적 병역거부를 언급하면 군대를 제대한 남성 중에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었고, 어떤 교육 때는 아들이 군대를 다녀온 중년 여성의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청년 시절에 2년, 혹은 3년 가까이 거의 반강제로 군대 생활을 하고 왔기에 아무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라고 해도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결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사실관계의 오해, 분단 상황의 특수성과 헌법적 의무로서 병역을 우선시하는 태도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 남성이 병역의 의무에 대해서 가지는 ‘억울함과 불평등’의 감정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자들만 모인 술자리나 모임에서는 어렵지 않게 각자의 군대 시절 경험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군용 모포 한 장만 덮고 밤새 군용트럭 화물칸에 누워서 충북 충주에서 동해안의 어느 도시에 있는 부대까지 갔던 얘기, 수해 현장 대민지원을 하러 갔는데 굴삭기로 몇 시간이면 할 일을 부대원 전체가 땡볕에서 온종일 고생했던 경험, 다쳐서 군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재빨리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제대로’ 치료받게 했던 어느 아버지의 무용담까지 대한민국 군대에서 사병들의 경험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라면 쉽게 일어날 수 없는 불합리와 편법, 비인권적인 것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게다가 월급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라서 ‘애국페이’ 라고 폄하 받는 병사 월급까지 생각하면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병역의무를 하지 않는 남성들에게 가지는 ‘억울함과 불평등’의 감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 억울함과 불평등의 해결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모두 1년 6개월간 교도소에 보내는 방법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불편하고 억울한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다른 이의 특수성과 환경을 무시한 채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수자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폭력적인 차별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체복무제의 한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현역 복무자의 2배 이상 기간을 교도소, 소방서 등에서 복무하게 하자는 것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 복무를 일종의 징벌로 간주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여기서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군대의 여러 가지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측면은 그대로 놔둔 채 어떻게든 군대만 가면 다 괜찮은 것일까요?  병역 비리를 막기 위해 웬만하면 현역판정을 하는 바람에 군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관심병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역 입대 위주의 병역 정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저하에 따른 청년 인구 감소로 현재 60만 명 수준인 한국군 병력 규모는 몇 년 후에는 50만 명 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군대 운영 전략은 현재까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400명이 넘는 장군 숫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나라를 지키러 간 대한민국 군대의 많은 장병은 장군과 영관급 장교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청춘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 현역 장군의 공관병 갑질 사건이 충격이었던 것은 장군과 부인의 갑질 행태뿐만 아니라 현역 군인이 병역의무를 장군 공관의 가정부나 정원사 역할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군대 비리는 잊을 만하면 계속 적발됩니다. 여군의 숫자는 늘어 가는데 상관의 폭력에 의한 군대 내 각종 성폭력 범죄도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더 한심한 것은 그 처리도 일반 직장과 사법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가해자인 상관에게 너그럽습니다.  우리나라 군대에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인, 그래서 주권국가의 필수적 요소인 전시작전권도 넘겨준 미국 군대에서도 2016년에 이미 육군 장관에 동성애자인 에릭 페닝이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형법은 영외에서 개인 사이 합의하에 이뤄지는 동성애까지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십 년 전에 비하면 최근의 군대가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군대 갈 나이 즈음의 젊은이에게 대한민국 군대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존재인 것이 사실입니다.  지원하는 일부 부대를 제외하고 의무 복무를 다녀온 남성에게 병역 복무 기간 동안 자기 계발을 하고 애국심이 높아지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좋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대부분의 젊은이에게 그냥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곳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이렇게 가기 싫은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비난과 욕을 퍼붓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대한 군대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며 싫어했던 군대인데 우리 사회는 이상할 만큼 그런 군대의 변화와 개혁에 대해서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이상하고 좋지 않은 군대이지만 다녀왔으니 그만이고 내가 고생하고 싫어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어쨌든 꼭 가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완전 모병제까지는 힘들더라도 자발적 징병제나 독일 징병제 시절처럼 10개월만 복무를 하더라도 전투력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낮은 출산율로 줄어드는 병력과 인공 지능의 시대임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에 근접하는 병사 월급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힘들다면 이스라엘처럼 제대 후 교육, 주택, 결혼에 대한 지원금을 주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군 행정의 민간화는 군대의 비리와 불합리를 상당부분 개선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군의 변화가 실제 이뤄진다면 군대 기간이 인생의 더하기가 되고 미래를 준비하는 알찬 기간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고단했던 의무복무에 대한 분풀이 수준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고 징벌 수준의 대체 복무를 주장하는 것은 이 사회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정말 가고 싶은 군대까지는 아니어도 군대 경험이 사회진출을 위한 부담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으로 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는 이들에 대해 타박하는 것보다는 변하지 않는 군대를 비판하고 이제부터라도 대안을 세우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가야하고 갔다만 오면 끝나는 군대가 아니라 가야 하는 그 군대가 어떤 군대인지 살피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한 때입니다.  초등학생인 제 아들이 군대에 가려면 12~1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가 되어도 징병제가 남아있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큰 부담 없이 군대에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2018-11-14 | hrights | 조회: 142 | 추천: 5
- 장애인이 나오는 영화! 장애인 문제를 다룬 영화? 장애인이 만드는 영화......  -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김 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략)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중략)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 ( 1984.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중에서 소리의 뼈.) 우리에게 지금까지 보여진 것들·····  왜 장애코드이고 장애인 캐릭터인가?  ‘문화’는 타일러(Tylor, 1871. 1. 1)가 정의하듯, 한 사회 집단이 공유하는 생활양식의 총체(a whole way of life)로써 지식·신앙·예술·도덕·법·관습 그리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과 습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전체다. 뒤집어 말하면 어느 특정한 집단의 능력과 습성, 즉 그 존재성을 구별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실천’ 및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대의 영향 있는 문화 ‘매체’다. (ex. 도가니 2011, 감독 황동혁)’에서 목격하듯이. 또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지역에서 진행되는 장애인 영화제와 제작되고 있는 장애인 영화들 다큐멘터리 등등에서. (ex. 글러브 2011, 감독 강우석). 그렇게 영화는 문화의 산물이자 문화의 ‘도구’이다. 또한 산업이기도 해서 소비되고 소모된다. 산물이자 도구이며 산업이기 때문에 영화의 구성요소와 코드들과 기호들은 서로 관계가 있고 서사적이며 권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극장의 우상’ 효과와 ‘동굴의 우상’ 효과를 함께 일으킨다. 우리는 영화가 전달하는 이야기를 영화관에 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성찰하거나 피드백하기 어렵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영화가 전해주는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및 관점을 보고 따라가고 몰입하고 감동한다. 영화의 막강한 힘은 매체로서의 파급력(필름 복사를 통해 전 인류가 동시간대에 볼 수 있다)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사람들의 물리적 공간을 재배열하고 일상생활의 많은 활동들과 장소들을 시간적으로 재조직하면서 우리 사회의 관계 자체를 변화시킨다.  그래서 문화로서의 영화는 기존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새로운 가치를 일깨워 주기도 하지만, 왜곡된 가치관이나 잘못된 관점을 부여하기도 한다.1)  영화는 진실을 만들고 진실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본의든 아니든 간에 진실을 숨기고 왜곡시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 속 캐릭터로서의 장애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대부분의 장애인 영화 - (여기서 ‘장애인 영화’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장애인 영화가 여성 영화나 페미니즘 영화나 퀴어 영화처럼 정체성을 가지고 장르화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 -가 ‘장애인의 것’과 ‘비장애인들의 것’을 확연히 다른 것처럼 억지로 나누고, 다시 그것을 서로 비교하여 충돌시키면서, 그 관계를 긍정적으로 재통합시키지 못하고 되레 왜곡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절대 다수의 비장애인 관객은 장애인이라는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를 영화라는 거대한 매체를 통해 우선 접촉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영화에서의 장애 코드는 이야기의 논리성과 상상력을 완결하기 위해서 표현되는 장애를 가진 인간 캐릭터의 ‘완성’이나 ‘발견’이 아니라 인간 캐릭터의 왜곡과 두려움, 상징이 주된 목적이었다. 장애 코드를 영화 기호화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등장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들은 대상화 되었고 그들의 장애는 커밍아웃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아웃팅 되어왔다. 또한 장애 자체나 장애인이란 캐릭터가 영화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긴장 관계를 가진 것은 한국 영화에서는 얼마되지 않았다. 한국 영화에서의 장애코드나 장애인의 등장은 주로 문학과 텍스트영역에서 변용되고 각색되고 재구성되어왔다. (ex. 소설 <백치 아다다> - 1935년 5월 조선문단에 발표한 계용묵의 단편소설이 1956년과 1987년 두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 졌다. 1956년은 이강석 감독에 의해 ‘백치 아다다’, 1987년엔 임권택 감독에 의해 ‘아다다’라는 이름으로 개봉됐으나 영화적으로 재창작되는, 즉 패러디되거나 풍자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 우리나라 영화 중에 ‘만종’(An Evening Bell, 1970)이란 영화가 있다. 한국 영화중 최초로 수화가 비중있게 나오면서 농아인 연인들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인데 둘 사이에 결합을 방해하는 것으로 한 의사가 ‘장애가 유전된다’는 잘못된 정보를 활용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영화가 수화를 사용하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의미이외에도 그 시대의 장애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런 흐름이 90년대까지 이어 오다가 2000년 초 각종 인권영화와 여성 영화 및 퀴어 영화들의 등장으로 장애 코드와 장애인 캐릭터는 본격적으로 영화 자체와 긴장 관계를 가진다. (ex. 오아시스 2002. 감독 이창동.) 영화 ‘오아시스’의 등장은 영화에서 장애코드와 장애인 캐릭터의 본격적인 논쟁의 시작이었다. 영화 기호로서의 장애여성에 대한 묘사, 이야기, 비장애인 주연 배우가 장애 연기를 하는 것에서 촉발된 장애인 당사자 배우 등장에 대한 논쟁 등이 그것이다. 장애인을 연기했고 장애인 문제를 다루었던 것이 장애인 영화냐 아니냐 하는 장르적 토론까지 영화적 담론을 뜨겁게 끌어냈던 영화였다. 아마도 감독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영화 기호로서의 장애와 영화 주제로서의 장애인 또는 장애 코드 등등. 즉, 어떤 주제를 그 영화에서 잘 형상화 해내기 위해 장애인이 그려졌는가? 아니면 장애인을 형상화한 영화인가? 하는 문제의식이었다. 2)  그리고 이런 영화를 시대 흐름에 따라서도 분석하고 분류했다면 글쓴이가 드러내고 싶은 주제의식이 –고정 관념의 변주와 확장에 따른 장애인 캐릭터의 변화- 이  더욱 분명해 질 수 있겠다.     매체는 문화적 경험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메시지를 그 매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강요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위협받게 되는 문화적 경험을 결정한다.  이는 비장애인에게나 장애인에게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과거에 영화를 통해 드러난 장애 코드는 장애인에게는 자기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심어 주고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들은 우리가 먼저 이해하고 무조건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 그리고 우리들은 은연중에 삶의 방식을 강요받게 된다. 장애인을 약하거나 나쁘게 혹은 왜곡되게 그리는 영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다양하게 그리는 영화가 없다는 사실을 비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미 짜여진 의식이나 틀에 의해 만들어진 장르로서의 장애인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끊임없이 파괴되어야 한다. 장애 코드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  “청각장애라는 것은 장애(handicap)가 아니다. 이것은 문화이고, 언어이다. 그리고 나는 청각장애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만약 의학이 발달해 내 청력을 돌아오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결코 내가 죽을 때까지...”   미식축구선수 영화배우청각 장애인 존 림니즈 청각장애는 또 다른 문화다. (The Deaf Celebration of Separate Culture)  나의 개성, 나의 장애, 나의 영화. 우리는 결코 성립되지 않는, 적어도 납득할 만한 규정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용어들을 아주 쉽게 사용하곤 한다. 일상에서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소통이 되지만 사실은 분명치 않은 용어 말이다. 그런 용어 중의 하나가 바로 ‘영화 언어’이다. 앞으로 규정해야 할 대상이 그 규정 전에 전제되는 논리의 오류가 발생한다. 장애가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도 할 수 없으면서 영화에서 장애 코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애인이 등장하는 (비장애인이 등장하는 또는 장애인이 직접 연기하는) 것이 장애 코드인가? 장애인 문제를 다루면 그게 영화에서 말하는 장애 코드인가? 장애인 감독이 연출하고 영화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자문을 해주면 장애 코드가 충실히 반영된 영화인가?  장애인의 문화 행위와 문화 실천이 ‘문화’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면, 먼저 ‘장애(Disability)’ 자체가 문화적으로 가치 있어야 한다. ‘장애(Disability)’가 문화적으로 가치를 지닌다면 ‘장애인’ 역시 문화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문화적으로 가치를 지닌 ‘장애(Disability)’ 상태의 사람들이 생산하고 누리고 즐기는 문화 역시 사회적인 힘과 영향을 지닌 문명으로서의 ‘장애인 문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항상 긍정적일 필요도 없고 좋을 필요도 없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있는 그대로 영화에 나오면 그만이다. 장애가 흡연보다 나쁘지는 않으니까. 3)  ‘장애’가 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음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장애’ 자체가 문화적으로 가치 있다고 믿고 신념으로 확인해야 우리들에게 그 가치가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장애’가 가진 소수성을 창조하고 획득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소수성을 창조하고 획득하고 확인 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에서의 장애 코드는 완성될 것이다.   tvN 드라마 ‘마이 디어 프렌즈’처럼, 주인공이 3년 전에 사고 당했다는 설정을 고려하면 오히려 사실적이다.    미국 영화 ‘SuperHero Movie (2008, 한국제목:잠자리맨)’를 보면 유명한 장애인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온갖 비속어를 내뱉으며 자기비하를 일삼아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패러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메디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가끔 등장하면 미국에 비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미국 영화의 개봉 이후 호킹 박사나 장애인 단체 등이 문제제기를 하거나 소송을 했다는 소식은 찾을 수 없다. 왜 그럴까? 외국의 경우 개그의 소재로 장애인이 등장해도 별문제가 없는 것은 아마도 누가 보더라도 장애인 당사자라고 인식할 수 있는 캐릭터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면을 폭로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은 아닐까?  논의를 막는 도구로써 문화는 장애인 개인이나 집단의 개별성으로 도드라지는 문화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주류 문화에 용해되어 자신들의 장애를 ‘극복’하거나, 불굴의 의지로 인간 승리를 하거나, 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감추어야 하는 것으로써 ‘장애’를 사회화시키는 중요한 기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끊임없이 중요한 주제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정치의 이용가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애인과 그의 장애가 뭔가 멋있고 강력하고 폼나는 것으로 표상된다면(피터팬의 후크선장처럼), 장애가 손해나 패배로 작용하지 않는다면(미국 드리마의 명탐정 뭉크처럼), 그런 문화실천과 행위로 문화를 생산할 수 있다면, 장애인의 문화 그 자체가 장애인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주고 그들에게 자부심의 권능을 심어주고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산하게 될 것이다(미국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의 절단 장애 소년 주인공과 투슬리스 용처럼). 자신의 장애가 인생의 멍에나 고통이 아니라 뛰어난 문화 콘텐츠 아이콘으로 변환된다면, 장애인의 장애를 기적과 구원의 대상이 아닌 향유하고 즐겨야 할 예술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비장애인으로 하여금 그 문화를 닮게 할 수 있다면 장애인 문화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시청률 1, 2위를 달렸던 미국 드라마 ‘Glee’를 보면 실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가 고등학교 치어리더로 등장하면서 극의 진행을 이끌고 있으며, 유명한 ‘C.S.I’에서는 시즌별로 약 2편씩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폐인의 관점에서 미국의 동물학자를 다룬 영화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도 개봉했다. 그 실존 주인공은 정보 공유 강연 사이트(Ted)에 나와 15분 동안 ‘우리 사회는 왜 자폐를 필요로 하는가’란 제목으로 대중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 제작자들은 반드시 제작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을 참여시킨다. 이는 장애인 당사자들을 실제로 주연 배우로 등장시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그들의 삶을 세밀하고 일상적으로 그리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극으로서의 재미도 떨어지지만, 장애인 당사자에게 당장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미국에서 코미디 소재나 풍자의 소재로 발달장애인이 희화화된다 하더라도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 스스로 그것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가 많을 뿐 아니라 희화화한 것 외에도 장애인을 멋있고 능력 있게 그려낸 다른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스타워즈 다스 베이더처럼, 영화 아이언맨처럼. 그리고 아카데미 최연소 최초 여우주연상을 받은 농아인 배우 말리 매틀린(Marlee Matlin) 4)처럼.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1947년)은, 보스턴 출신 미국의 동물학자이다. 비학대적인 가축시설의 설계자이며, 콜로라도 주립대학 준교수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좋은 지도자를 만난 덕분에 1960년대에는 뉴햄프셔 주 린지에 있는 기숙학교 햄프셔 컨트리 스쿨에 들어가 1970년에 프랭클린 피어스 컬리지에서 심리학 학사, 1975년에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에서 동물학 석사, 1989년에 일리노이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 그녀의 이름을 딴 극 영화가 제작되어 2011년 1월 미국 LA서 열린 제17회 미국배우조합상(SAG)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장애인당사자가 주인공을 맡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도 이영화가 당사자의 관점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근자에 와서야 1960년대 바보 캐릭터 ‘영구’가 만든 발달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를 ‘내 마음이 들리니’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겨우 넘을 수 있었고, 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의 현실을 ‘착한 일’, ‘좋은 일’로, 도덕적 면죄부에서 벗어나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이제야 시각 장애인을 그릴 때는 시각 장애인에게 물어보고 청각 장애인에게 자문을 구하고 그들을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제쯤 장애인 배우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 자아를 찾아가는 올바른 길임을 강조하고, 굳이 장애코드를 드러내지 않고 장애인을 등장시키며 네 장애는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재미있게 설득하는 ‘X-man’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본질을 통찰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익숙해지자는 류 감독의 장애인 캐릭터 상의 시도는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문학에서 예능으로, 그리고 사진 영역으로까지 넓혀보자. 그래서 장애인을 문화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해보자. 물론 이를 위해서 장애인들의 영화적 창작 활동이 적극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고 기존 영화마당에도 장애인 당사자들이 더욱 많이 뛰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메가폰을 들고, 카메라를 들고, 조명판을 들고, 시나리오를 들고서. 특히 보다 많은 지적 자폐성 장애인들이, 정신 장애인들이, 희귀 장애인들이.      「당신의 편견에 도전하라. 아니면 그것들이 당신에게 도전할 것이다. -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 시즌 1기 4부 중에서」 1) 우리가 문둥병이라고 잘못 부르는 한센병은 현대에 와서 의학적으로는 단순 전염성 피부병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둥이’란 단어는 그 어떤 모욕어나 차별어보다 그 힘이 강하다. 문둥병이란 호칭은 단지 당사자에 대한 차별을 넘어 아직까지도 자식들이 파혼까지 당할 수 있는 세대간 차별이나 전지구적인 모욕을 야기한다. 오죽했으면 지난 1월 일본의 유엔 친선 대사가 "폐기된 용어를 차별적 의미로 사용"한다고 개탄하면서 "문둥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촉구하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결의문까지 발표했을까? 한센병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사회화 시키는 가장 강한 무기 중 하나가 ‘영화 벤허’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아직 그것을 뒤집을 만한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2) 전자의 대표적 예인 찰리 채플린의 <City Lights>에 나오는 시각 장애인인 꽃 파는 소녀는 이 영화에서 하나의 영화적 형상화를 거친 언어일 뿐이었다. 채플린은 시각 장애를 가진 소녀가 어떻게 해서 룸펜을 재벌이라고 여기게 되는가를 형상화 해내야 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교통이 매우 혼잡한 곳을 오락가락하다가 모퉁이에 주차해 있는 리무진의 한쪽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다른 쪽 문으로 나오는 방법을 썼다. 눈먼 소녀는 무거운 차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재벌’이 값비싼 차에서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예로는 1995년 베니스 영화제 은곰상 수상한 팀로스의 비열한 거리 (1994)에 나오는 장애인 폭력배, 우리나라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심혜진이 밑은 정신 장애인, <고래 사냥>에서 이혜숙이 분한 실어증 언어 장애인등이 있다. 3)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주연 배우가 여장남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하는 대사를 변용했다. 4) 1986년 《작은 신의 아이들》로 영화 데뷔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데뷔작을 통해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을 만들어 놓고 있다. 하나는 현재까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유일한 장애인 연기자라는 기록이며, 또한 그가 수상했던 여우주연상은 해당 부문의 역대 최연소로 기록되고 있다(수상 당시 21세 218일). (출처-위키백과) 
2018-10-31 | hrights | 조회: 91 | 추천: 1
서동기/ 대학생  강력 범죄가 발생한다. 가해자 X의 잔혹한 범죄와 피해자의 참혹한 피해가 연일 언론에 정밀하게 묘사된다. 가해자의 심신미약, 정신질환에 의한 형벌 감경 가능성이 언급된다. 분노는 더욱 타오른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등장하고 많은 이들이 동참한다. 사악한 X의 신상 공개결정이 내려진다. 끔찍한 짓을 하고도 살아있는 뻔뻔한 X의 얼굴과 목소리는 브라운관과 4G, 5G의 인터넷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중개되고 가해자에 대한 각종 분석과 피해자 가족의 고통에 찬 일상이 후속 기사로 따른다. 그리고 조금 뒤 X는 어디선가 등장한 또 다른 사악한 X’로 대체되어 있다.  며칠 전 친척들 여럿이 모였다. 대화는 ‘피시방 살인사건’으로 흘렀다. 어른들은 뉴스에서 본 범죄의 잔혹함을 공유하고, 아이들은 페이스북에 담당 응급실 의사가 올렸다는 글을 이야기한다. 범죄의 잔혹함에 치를 떨고, 사형을 해서라도 강력하게 처벌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분노한다. 그리고는 각자 조심하라는 안쓰러운 당부로 대화는 마무리된다. 누구나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아마 이러한 사건은 다시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비슷한 패턴으로 사건을 지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사진출처 - pixabay  우리 사회를 다시보자. 가해자의 가족을 끈질기게 쫓고, 주변인들을 찾아내어 온갖 가십들이 사명감에 찬 언론에 의해 근엄하게 보도된다. 이번 사건에는 담당 응급실 의사까지 등장했다. 피해자 담당 의사는 피해자의 참혹한 상태와 분노를 SNS에 작성한다. “목덜미에 있던 상처가 살이 많아 가장 깊었다.” 등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는 글은 20만의 공감을 받으며 퍼져나갔다. 담당의는 자신의 글이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과 진상 조사, 재발방지’의 도화선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언론의 사명에 찬 보도와 응급의학과 의사의 분노 표출은 무언가 닮아있다.  다수 언론의 보도와 모 의사의 사명감에 찬 분노를 보면서 ‘주석궁으로 탱크 진격’을 말하던 이른바 ‘대북강경파’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과도할까. 그들의 주장은 과격한 언어와 묘사를 기반으로 형체 없는 분노와 적대심만을 재생산한다. 그것이 결국 오래토록 분단 상황을 고착화해왔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이런 ‘수구적’ 행태에 언론과 모 의사의 선의에 찬 경솔함을 빗대는 것이 과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죽음과 사건사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음, 해결의지 없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단지 분노에 차서 엄벌을 말하고 주목경쟁을 하는 것으로 우리는 아무 것도 넘어설 수 없다.  냉정하게 지금 우리 사회가 정밀 묘사해야 할 것은 무언인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자살로 12,463명, 운수사고로 5,028명, 산업재해로 2,040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하루에 자살로 34명, 운수사고로 14명, 산업재해로 5.5명이 죽었고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올해도 죽고 있을 것이다. 한편 타살로 세상을 등진 이들은 지난해 총 415명이다. 과도한 분노 표출과 이를 자극하는 주목경쟁들이 가해자 하나를 엄벌에 처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우리 사회의 주목받지 못하는 죽음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엄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도 명확하다. ‘조두순 사건’ 이후 흉악범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 유기징역의 가중 상한이 최대 50년까지 늘었지만 사악한 X는 X’가 되어 끊임없이 등장해왔다. 이것은 단순히 형벌의 강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명감에서 비롯된 비판(의식)과 범죄에 대한 분노가 단순히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리게 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분노와 엄벌을 넘어서는 논의와 정치,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숙제 앞에서 우리는 너무 비슷한 패턴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2018-10-29 | hrights | 조회: 80 | 추천: 6
 손상훈/ 종교투명성센터 운영위원, 교단자정센터 원장  지리산에 산적이 나타났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잠시 놀랐지만 바로 수긍이 갔다. 시민단체 참여연대와 인근 주민들이 낸 조계종 천은사의 관람료 징수문제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2000년에 참여연대가 문화재 관람료 문제로 공익소송을 해서 대법원이 부당이득이라는 판례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문화재 관람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사찰은 약 70곳이다.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 500여 곳 가운데 일부만 징수하는 것이다. 불국사 등 사찰관람이 중심인 경우 시민들의 불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사찰을 방문하지 않고 국립공원을 주로 이용하려는 시민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당연한 지적이고 개선되어야 할 과제다. 2018년 3월에도 국회에서 의원실과 단체들이 토론회를 열어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해결을 위한 제도개선은 미흡하고 조계종은 침묵하고 있다.  조계종은 최근 10년간 시민들에게 받은 관람료의 사용 내역부터 공개해야 한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쓰이는지 먼저 관람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리산 천은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길을 막고 돈을 받는 것은 국민 재산권 침해다"라고 했다. 지난 수십여 년 간 조계종 총무원이 수억에서 수십억대의 국고보조금을 횡령하는 등의 부정부패 사건이 나면 사찰재정투명화, 관람료내역 공개를 수습방안으로 내놓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쓰임새가 공개된 적 없다. 왜 이럴까. 정치권이나 정부 관련부처, 사정당국이 눈감고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눈치를 보고 여야가 민원과 항의에 겁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시민사회단체와 조계종 신도단체는 지난해부터 함께 행동하여 ‘조계종 총무원장’을 퇴진시키는, 현대불교사에 새로운 사례를 만들었다. 1994년 조계종 교단개혁은 승려와 재가불자가 함께 했다면 2018년은 평신도(재가불자)가 주도했다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수만 명이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촛불법회와 행진을 했다. 조계종의 적폐청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 정진단’을 만들어 싸웠다. 우리 나이 80세 가까운 스님의 40여 일간의 단식에 많은 시민과 이웃종교, 시민사회, 언론인들이 함께 해준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불교계의 미흡한 역량만으로 이룰 수 없는 성과를 만들었다. 임기 1년 안팎인 현직 총무원장이 탄핵되는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아니라 제 잇속을 지키려는 이익집단인 약 300여명의 승려들이 전두환 식 체육관 선거처럼, 그들만의 잔치로 인물만 교체되었고 문제점은 여전히 그대로 인 상황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에 임명된 승려는 징역형의 유죄판결을 받은 인사다. 경기도 S시 시장이 이 승려에게 뇌물을 받고 사법처리를 받았다. 이 승려는 납골당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 고위직 승려에게 상납했다는 의혹과 함께 미국 라스베이거스 해외원정팀이 실무를 추진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불국사 종상승려 등과 함께 미국 여행을 추진한 여행사 자료가 엠비씨 피디수첩에 공개되기도 했다. 나라에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템플스테이 지원예산과 폐사지 복원예산, 전통사찰지원관련 예산을 나누는 총무원의 부장(사회로 치면 장관급 인사)이 되었으니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산적에 이어 세금 먹는 아귀의 탄생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지리산의 산적을 없애는 방법은 참여연대에 이어 종교계, 시민사회, 시민들이 대규모 소송인단을 모집해 다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문제를 제기해 보는 방법이 있다. 이번 단풍철에는 지리산 국립공원에 가보자. 사찰을 가고 싶지 않음에도 길목에서 입장료를 여전히 받고 있다면 인터뷰도 하고, 녹음도 하고, 입장료를 낸 영수증도 모아보자. 이웃 종교인들과 시민사회가 이런 단풍철 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이 호응해 주길 기대한다. 지난 10여 년간 관람료 사용 내역을 낱낱이 공개해 모든 이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연간 수백억 원을 직간접적으로 지원받는 조계종 사찰들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국고보조금과 관람료 지출내역도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하면서 조계종 지원예산만 늘리려 하는 것은 종교의 대표적인 악습이다. 신임 총무원장은 합리적인 관람료 개선책을 통해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길 촉구한다.
2018-10-17 | hrights | 조회: 179 | 추천: 7
이회림/ 00경찰서  제 고향 경주는 온통 무덤 천지입니다. 계절마다 색다른 자태를 뽐내는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무덤들 천지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못 보면 그리운 마음까지 듭니다.  보통 무덤은 교외나 산에 숨어 있는데 경주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고분 공원이 있습니다. 임신한 언니와 함께 무덤을 탑돌이 하듯이 돌며 산책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조카를 안고 나와서도 산책하고 또 얼마 뒤 걸음마를 배우게 된 조카의 손을 잡고 나오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죽은 자와 산 자가 더불어 사는 땅이라고 해도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안 그런가요?  네 살 배기 조카가 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모! 저기 되게 큰 무덤이 있어!”라구요.  ‘산’이라는 단어와 ‘산’의 모양을 배우기 전에 무덤, 고분, 능, 이런 단어들을 먼저 배운 조카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요. 산이 삶이라면 무덤은 죽음일진데, 제 조카의 눈에는 크다 작다의 차이 정도인가 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 에서는 언어학자인 여주인공이 어떤 특별한 경험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삶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 여주인공이 알게 되는 비밀이라는 건, 이름 모를 고분들이 그들의 존재 자체로 웅변하는 그것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아직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그 비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알아차렸을 것 같지만요. 사진 출처 - 필자  지금 저는 정면으로 커다란 고분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2층 창가자리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깎여서 만들어진 부드러운 능선을 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도 덩달아 보들보들 잘 다듬어 지는 듯 한 느낌이 듭니다.  창밖은 조금씩 땅거미가 내리는지 대기가 푸르스름해 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시간대의 풍경을 참 좋아하는데요. 이렇게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이 석양에 물들고 해가 질 때까지의 시간을 ‘매직 아워’라고 부른답니다.  사진·영화계의 전문 용어인 ‘매직 아워’는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녘부터 일출 직전까지, 해 진 후 땅거미가 지는 저녁녘부터 어둠이 덮이기 직전까지를 일컫습니다. 대기에 푸른빛과 붉은빛,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면서 매혹적이고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특별한 시간이죠.  요즘처럼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출계를 따로 사서 하늘과 땅, 건물, 사람 등 내가 프레임에 담고 싶은 것들을 향해 들고 노출값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지금 제 앞에 보이는 풍경을 예로 들어, 큰 무덤과 그 앞을 지나가는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과 무덤 뒤로 보이는 갈색빛 나무 그리고 하늘까지 모두 한 프레임 안에 담고자 한다면, 이렇게 4 개의 피사체가 가진 각각의 노출값을 찾아낸 후에는 이들의 평균값, 즉 ‘적정노출’을 도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노출값이라는 것은 햇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고 특히 해질 무렵이 되면 색온도의 변화가 가장 많아 적정노출 값을 완벽히 구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사진 찍기 가장 불편한 시간일 수가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에 가장 색감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사진이 찍힙니다.  영화감독 테렌스 맬릭은 ‘천국의 나날들’이라는 영화의 야외장면을 모두 ‘매직 아워’에 찍었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그 당시 시력을 잃어가고 있던 촬영감독 ‘네스트로 알멘드로스’에게 맬릭 감독이 모든 야외 장면을 인위적 조명 없이 부드러운 자연광으로, 오직 ‘매직 아워’에만 찍어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맬릭 감독의 이 같은 고집 덕분에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밀밭을 배경으로 ‘세계 영화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영화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의 내면엔 절반은 천사, 절반은 악마가 있다.”  이 영화 안에서 관찰자 역할을 하고 있던 소녀의 대사입니다.  매직 아워에 촬영한 덕분에 어스름 속의 사물과 풍광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같이 낯설고 불안하기도 한 미묘한 느낌을 줍니다. 영화는 그렇게 마술 같은 순간들을 화가가 점묘화를 그리듯이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매직 아워는 낮과 밤의 경계에서 변화무쌍한 노출값을 가지고, 천국의 나날들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아름답게 빛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좋은 순간, 나쁜 순간을 동시에 품에 안고 살아갑니다. 특히 범죄 피해 경험을 가지면 그 나쁜 순간이라는 것이 정말로 진하게 눈앞에 불쑥 불쑥 나타나니 참 귀찮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런 모든 좋고, 나쁜  순간들을 모두 모아놓고 저기~ 멀리서 쳐다 보다보면 아주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매직 아워에 노출이 마구 변하지만 가장 풍부하고 아름답게 남듯이 말이죠. 자~ 10월 초이니, 슬슬 가을 향기가 진해지려하는 경주입니다.  올 가을에는 당일치기든 1박 2일이든 모두 경주여행 한 번 오시기를 권합니다. 무덤 위로 내려앉는 석양과 매직 아워, 저 혼자 즐기기엔 미안할 정도로 사랑스러우니까요! 어서오이소~~
2018-10-04 | hrights | 조회: 123 | 추천: 2
김아현/ 인권연대 연구원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수원과 인천을 떠들썩하게 했고 제주를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어린이대공원 초입에서 벌어진 일이 과천을 두려움에 빠뜨렸다. 세상 곳곳, 옛날부터 지금까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언제나 있어왔다. 살인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을 죽이는 일과 같은 무거운 범죄도 사람이 사는 곳이면 일어나는 일이지만, 잘 돌아보면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더 요란하게 알려질 뿐이다. 그리고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려질 즈음이면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세상과 격리된다. ‘정체가 드러난 살인자’는 구속 수감되어 여러 미디어와 우리 공포 속에서 회자될 뿐,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지 않다.  발각된 죄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아직 발각되지 않은 죄다. 발각되지 않아 합당한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참회와 교정의 기회도 아직 보장받지 못한 상태의 죄다. 그리고 발각되지 않은 죄보다 절망적인 것은, 죄를 쉽게 짓도록 하는 부정적인 외부영향이 고착화된 사회, 그 고착이 내내 개선되지 않는 사회다. 한 사람의 고통과 두려움이 증오와 혐오로 자라도록 방치하면서, 그의 잘못에 대해 처벌만 강화하는 사회다.  최근 몇 년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의 관계자라는 오명이 억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남자가 있다. 남겨진 그의 아이들은 아직도 친구들에게 아버지의 이름과 존재를 밝히지 못한다. 실명과 얼굴, 그를 둘러싼 혐의가 모두 알려진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 이후 일어날 것이라 예상되는 일들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기 전까지 아마 숨죽여 살,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기억이 두려움과 공포일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인간의 모든 범죄는 어린 아이의 방황에서 시작된다(<레 미제라블>에서 인용).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평생 대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응보이고 정의인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심지어 사회 정의라는 이름으로, ‘피의자의 가족, 범죄자의 아들, 살인자의 어머니, 악인의 아버지’로 호명당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사진 출처 - freepik  피의자 얼굴 공개를 두고 오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과천 어린이대공원 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던 최근에는 분노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이다. 경찰과 우리 사회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 그는 용서받기 힘든 끔찍한 죄를 저질렀고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아 당연히 형이 확정되지 않은, 우리가 법적으로 ‘피의자’라 부르기로 한 사람을,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매장시키고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남겨진 그의 가족에게 ‘보복’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경찰은 지난 1년 반 동안의 개혁 논의를 통해 도출한 몇 가지 결론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며,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인권침해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민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해온 과오를 반성하고 달라지겠다고 했다. 개혁을 위한 입법 논의도 진행하는 중이다. 좀 떠들썩하다 싶게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시점,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말과 행보를 일치시키는 최소한의 염치는 있었어야 했다.  경찰이 이러한 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법적 근거는 2010년 신설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 8조 2항이다. 이후 2011년 개정을 통해 피의자의 얼굴, 나이, 성명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강화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밝혀진 살인’이야 말로 재범의 위험이 가장 적은 범죄 가운데 하나다. 살인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해서 예방될 일이라면, 우리 사회의 살인은 통계적으로든 체감으로든 점점 줄어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강호순과 신창원이 검거되던 시점의 얼굴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재범 방지는 물론이고 예방조차 할 수 없다. 피의자 얼굴 공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이익은 아무 것도 없고 다만 파생되는 고통과 비극의 계보만 있을 뿐이다. 득보다 실이 많다면 바꾸는 게 문명사회다. 특강법 8조 2항에 관한 전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범죄자의 얼굴과 그의 가족을 궁금해 하는 우리 마음 속 특강법 8조 2항도 함께.
2018-09-12 | hrights | 조회: 515 | 추천: 12
이동화/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활동가  로힝야 여성인 카리마 카툼(20)님에게 1년 전 사건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끔찍한 악몽이다.  “(2017. 8. 25.)점심 기도 시간이 지나고 남편이 모스크에서 돌아왔어요. 식사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들어오더니 아무 설명 없이 남편에게 총을 쐈어요. 그렇게 남편을 잃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저를 강간하려 했고, 저는 저항했어요. 그러자 옆에서 울고 있던 두 살 아들을 땅에 던지고 총을 쐈어요. 땅에 있는 아들을 껴안으려 손을 뻗자 군인은 제 팔목에 총을 쐈어요. 그리고 정신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헛간은 까맣게 타 있었어요. 가족이 저와 아들을 마을 의사인 소피 울라에게 데려갔죠. 아들을 응급처치 했지만 가망이 없다고 했어요. 마지막 젖도 물리지 못한 채 그렇게 아들을 떠나보냈어요.”  - 조진섭 사진사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영상(2018. 8. 30.) 중 일부 발췌  우리에게도 뉴스를 통해 알려진 로힝야 난민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1년 전 미얀마 군부에 의해 자행된 학살은 미얀마 정부의 공식적 진상조사도 책임자 처벌도 없이 수천, 수만 명의 로힝야 사람들의 몸과 마음속에 섬뜩한 공포로 기억되고 있다. 불과 몇 달 만에 10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이 형성한 난민촌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빼곡한 천막 막사가 산비탈을 중심으로 위태롭게 존재하고 있다. 수만, 수십만의 난민들이 형성한 사회는 강한 역동성을 보이지만 그 미래가 밝아보이진 않고 그 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우리네 아이만큼이나 호기심 많고 해맑지만 그 내면의 미소는 슬퍼 보인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 중 하킴파라 난민캠프 사진 출처 -세계봉공재단촬영, 2018. 6. 8.  로힝야 사람들에 대한 한국 온라인 댓글에 “영국에 부역한 로힝야 사람들” “자업자득” “일제시대 프락치와 로힝야는 동일하다”는 식으로 여전히 비하와 혐오로 가득하다. 도대체 로힝야 사람들이 한국 네티즌에게 무슨 잘못을 했을까 싶다. 백번 양보하여 로힝야족이 과거 영국식민지였을 때 나쁜 짓을 했다 치더라도 2만 5천 명(외국 연구보고서)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어린아이들이고 성폭행피해자만 1만 9천 명이라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70년 전의 과거는 현재의 학살을 정당화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8월 24일, 아디를 포함한 한국의 시민사회는 로힝야 학살 1주기 추모행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한국에서 로힝야 난민으로 살고 있는 파티마님은 행사 막바지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도 꿈이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삶, 불쌍함이 없는 삶, 사실 우리의 꿈이 거창한 건 아닙니다. 로힝야가 아닌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삶, 우리는 그 당연한 삶을 꿈꾸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는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1년이 지난 오늘, 아직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8-09-05 | hrights | 조회: 121 | 추천: 9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보고 또 봐도 눈물이 납니다. 심지어 같은 장면을 몇 번을 봐도 눈물이 납니다.  이번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TV 화면 속에 보이는 일백 살 무렵의 부모와 일흔 살 즈음의 자식들이 만나는 장면은 볼 때마다 특별히 더 슬프고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예전에는 마냥 슬프고 애잔한 마음만 들었는데 이번에도 상봉 가족들이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남한과 북한 양측의 국가가 이산가족에게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자연스레 혼잣말로 욕지거리까지 나왔습니다.  인터넷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검색해 봤습니다.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형식으로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의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진 이후 올해까지 21차에 걸쳐 직접적인 상봉이 이루어졌고 일곱 차례 화상을 통한 만남이 있었다고 합니다.  통일부와 대한 적십자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남아있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5만 6천 명이 넘고, 신청했지만 상봉하지 못하고 사망한 신청자는 7만 5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생존자 중 70대 이상의 고령 신청자가 85%이고 90세 이상이 1만 2천 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이번처럼 한 번에 100명도 안 되는 가족의 만남으로는 이산가족의 염원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헤어진 가족을 한 번도 만나기 어려운 현실도 문제지만 한 번 만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연락이나 만남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도 상봉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큰 아픔입니다.  이번 21차 이산가족 상봉을 기념해 MBC 방송사에서 원로가수 현미 씨의 사연을 방송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두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남한에 정착한 현미 씨 남매들은 남북 간 정식 교류가 없던 1998년, 제3국 중개업자와 방송국의 도움으로 북한의 여동생 한 명과 극적으로 상봉합니다. 하지만 그때의 짧은 만남 이후 현미 씨는 동생 생각에 우울증에 걸려 치료까지 받아야 했고 20년 동안 남북 정부의 상봉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청을 해 봤지만 한 번도 재회의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여동생과 다시 만나기를 염원하던 현미 씨의 오빠와 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5년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후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상황변화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식적인 직접 상봉 행사가 21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남한과 북한 양측이 이산가족의 상봉을 남북관계에서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정치적 이벤트이자 지렛대로 이용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처럼 전통적인 가족관에 대한 비판과 여러 급진적인 이론도 많습니다. 하지만 눈물과 감정이 남아 있을까 싶은 고령의 노인도 자식을 만나서 통곡하고, 형제가 죽어 대신 나온 조카를 만나서도 얼싸안고 우는 장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적어도 헤어진 가족이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인륜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일 것입니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염원에 정치적, 외교적 조건과 잣대를 들이대어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고 반인권적인 처사입니다. 남한과 북한 정부는 가족이 생이별한 전쟁피해자인 한반도의 이산가족들에게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잔인한 고문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엔의 고문방지협약에서 정의한 고문의 정의는 “한 사람 또는 다수의 사람이 단독, 당국의 지시에 의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보나 자백을 받아 내거나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의적, 또는 제도적으로 불합리하게 고통을 당하게 함으로써 정신적 및 육체적 해를 가하는 행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문에까지 비유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를 찬찬히 읽어보면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으로 헤어져 자유롭게 만나지 못했던 이산가족들은 정부 당국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불합리하게 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해를 입고 살았습니다. 긴 세월 동안 이산가족들은 광의의 의미에서 고문을 당하고 살았던 것이지요.  시시때때로 변하는 복잡한 외교와 정치 상황에서 어쩌면 고정불변의 정답과 대응정책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지 65년이 지나도록 고통 받는 남과 북의 이산가족 상봉이 더는 정치와 외교의 기회와 조건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 발언에 이산가족문제의 정답은 다 나와 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3600여 명이 매년 돌아가셨고 올해 상반기에만 3천명 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이 헤어진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천추의 한을 안고 생을 마감하신 것은 남과 북의 정부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그분들의 기다림이 더 이상 길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더욱 확대하고 속도를 내는 것은 남과 북이 해야 하는 인도적 사업 중에서도 최우선적인 사항입니다. 남과 북은 더 담대하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상봉행사는 물론 전면적 생사확인, 화상상봉, 상시상봉, 서신교환, 고향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합니다. 특히 오래전에 남북 합의로 건설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취지대로 상시 운영하고 상시상봉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 발언내용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하루빨리 만나서 결과를 내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8-08-22 | hrights | 조회: 279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