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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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간사),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주윤아(교사), 최유라(지구의 방랑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최근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3건의 발달장애인 존비속 살인이 있었다.  하나는 광주 성인발달장애인 질식사 후 부모 자살 사건, 또 하나는 제주도의 18세 장애학생의 죽음과 부모 자살 사건이며, 나머지 하나는 자폐성 발달장애 9세 딸 살해사건에 징역 4년을 선고한 사건이다. 광주의 경우에는 코로나로 인한 국가 개입의 부재가 부른 범죄가 분명해 보이고 제주도 사건은 양육부담 이외에도 다른 원인도 있으리라 여기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마지막 울산 사건의 경우는 부모 한쪽도 자살을 시도 했지만 미수에 그쳐서 처벌을 받은 사건이다. 특히나 중증 장애인의 경우,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사회적 지원과 협력이 모두 중단된 나머지 장애인의 돌봄이 모조리 가족들에게 전가되어 모두가 최악의 상황에 몰려가는 중에 일어난 것이라 더욱 충격이 크다. 따라서 그 지역 부모님들이 ‘발달장애인 부모 일동’의 이름으로 참담한 사연들을 담아 국가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제기하셨다.  그리고 필자는 그 청와대 청원의 표현에 대하여 인권 감수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공식적으로 SNS를 통해 반대했고 많은 장애인 부모로부터 비난과 질타를 받았다. “발달장애인 청년과 그 엄마의 죽음에 대해 대통령님 응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출처 - 국민청원 게시판  중증 장애인의 지원과 조력, 그리고 돌봄에 있어 장애인 부모들의 극한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분노하며 당신들의 요구에 대한 나의 입장은 분명히 동일하다. 그러나 이번의 죽음에 대하여 활동가들과 인권 단체들은 이제 불편하고 고통스런 토론과 논쟁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장애인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이며 소수자의 문제라면 이제 우리는 단순하고 감정적인 온정주의와, 무책임하고 무비판적인 연대와 침묵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오랜 역사의 유교적인 가족주의에서 만들어진 법체계 내에서 자녀에 의한 부모의 살인 즉 존속 살인은 과중하게 처벌하고 – 우리나라는 ‘존속 살인’ 이란 개념 아래 이를 가중 처벌하는 법조문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 그동안 경제 발전이란 미명 아래 부모에 의한 자녀의 살인은 오히려 감형해주는 기형적이며 가부장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감형의 근거는 과거 첫 번째가 ‘경제적인 이유’ 였고 두 번째가 ‘정신적인 이유’였다. 법원의 이런 온정주의는 90년대 후반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사회적 여론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으나 장애인 자녀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제자리다. 인권 활동가들과 인권 단체들은 이제 장애인 부모단체가, 일부 활동가들이 돌봄의 부담에 대해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하여 위의 청원처럼 자녀들의 죽음과 비자발적 안락사를 설득의 서사로 활용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 물음을 던져야 한다. 이것은 돌봄으로 야기된 어려움을 폭력과 반인권적으로 푸는 것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장애에 대한 자기혐오일 뿐 아니라 단체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 혐오이다. 그 언어들이 아무리 공감되고 설득된다 한들, 우리가 다른 소수자들에게 같은 언사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가?  집단의 표현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크게 준다. 당신들의 위치가, 발언 당사자들로서의 당신들의 힘이 문화적으로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풀어낸 감성적인 표현들이 보다 높은 인권 감수성으로 정제 되지 않으면 오히려 차별과 혐오를 스며들게 하는 반작용이 있다.  무엇보다 이 대목 “6월의 어느 날 새벽 발달장애청년과 그 엄마는 차안에서 연탄가스를 교통편 삼아......”로 이어지는 묘사 같은 것이 문제이다. 이런 표현들은 청원의 의도와는 달리, 발달 장애인의 존재부정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보낸다. 개인이 아니라 인권 단체라면 먼저 이 부모의 일방적인 폭력과 살의에 사과하고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사건은 명백한 부모 폭력이며 극단적 장애인 학대 사건이다. 정책적으로 국가가 방조 · 방기한 살인 사건이며 정부는 미필적 종범이다.  아무리 부모가 힘들고 고통스럽다 한들 단체 이름으로 그 살의와 살인을 표현하고 집행하는 것을 정서적으로라도 용인하면 안 된다. 상처와 이해라는 이름으로 상상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부모라는 권력과 관계가 살인을 쉽게 도모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극과 안타까움의 이름으로 이 폭력과 범죄의 현실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방법, 다른 길이 있다고 외쳐야 한다.  장애인 비속 살인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 상상으로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개별 주체로 보지 않겠다는 자기혐오이자 순환 혐오일 뿐이다. 특히 광주와 같은 사건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부모와 함께 자살하는 것에 동의 했는지, 부모가 장애인 당사자 살해 후 자살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 명확하게 경찰이 사건 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분명히 문제 제기 해야 한다. - 장애인 당사자 살해 후 자살이라면 이건 분명 비속 살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가 억울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극단적인 장애인 학대일 뿐이다. 단지 안타까운 사건으로만 말하는 언론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온정주의적인 대중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부모단체와 인권단체들이 보다 민감하게 다른 방법이 있음을 외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회적 지원이 많아지고 풍부해지더라도 이런 사건은 반복될 것이다. 1990년대부터 그마나 늘어난 사회적 지원에도 지금까지 장애인 가족의 존비속 살인은 크게 줄지 않았다.  단체 청원이라고 하면, 인권단체라고 하면, 얼마든지 더 강한 표현으로 더욱 세고 다르게 청원할 수 있다. 장애인의 비속 살인을 멈추라. 가족들을 살인자로 만들지 마라. 이렇게 강하게 정부를 규탄할 수 있다. 장애인 부모 단체의 그 대표성이 개인화되지 않고 더 높은 인권감수성으로 더 많은 대중들에게 해결을 위한 강한 정치력과 연대를 끌어낼 수도 있다. 대중들이 발달 장애인에게 높은 인권감수성을 갖추기를 바란다면 부모 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이 이를 이끌어 주면 좋지 않겠는가?  이런 사건과 청원을 접하는 대중들과 부모들이 장애와 장애인을 단지 ‘고통과 부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를, 장애인 당사자들이 살인과 살해의 공포에 놓이지 않기를, 가족의 우울 앞에 당사자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를, 부모들의 삶과 장애인 당사자의 삶이 온전히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법적으로 개별주체로 인식되어 지원되고 발달 장애란 존재 자체가 부정되지 않길 바란다. 장애인의 주체적 존중과 국가 책임제를 요구하는 마당에 이는 지극히 자기 모순적이며 자기혐오, 순환 혐오이다. 공적인 발언을 통해 그런 인식을 자꾸만 재생산하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장애인 당사자를 죽음으로 이끈 부모가 같은 단체소속이고 같이 활동했다는 이유로, 돌봄의 책임을 죽음으로 다했다는 명예를 주는 것은 그만 목격하고 싶다. 최소한 함께 명복을 빌고 안타까워하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자리에서 죽음을 논하는 것은 전혀 인권적이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싶다.
2020-07-08 | hrights | 조회: 31 | 추천: 1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2019년에 다시 만난 팔레스타인 활동가 라쉬드는 많이 피곤해보였고 주름은 한층 깊어졌다. 그는 ‘요르단계곡’ 마을의 농부이면서 이스라엘의 부당한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는 ‘요르단계곡연대(Jordan Valley Solidarity) 소속 활동가이기도 하다.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한국의 참가단에게 ‘요르단계곡’ 주민들이 겪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열성적으로 이야기하던 그가 저녁 즈음에 필자에게 짧게 하소연했다. “셀림(필자의 현지이름), 요즘 정말 힘들어. (한숨) 갈수록 어려워져.”  ‘요르단계곡(Jordan Valley)’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 국경이 위치한 지역으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요르단강과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해(Dead Sea)로 이어지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주변국가의 곡창지대(Food basket) 역할을 하며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보면 서안지구의 30%를 차지할 만큼 방대한 지역이고 6만 5천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하며 삶을 일구어 내는 터전이다. 하지만 1967년 3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요르단 계곡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특히 이 지역은 대부분 군사지역으로 설정이 되어 사람들의 이동제한, 수자원 이용 제한, 토지 몰수 등 수십년동안 피해가 이어져 오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르단계곡’이 또 한차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0년 1월, 이른바 ‘세기의 협상’이라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평화안이 공개되자 이스라엘은 환호했고 팔레스타인은 절망했다. 평화안의 주요골자는 ①서안지구 불법정착촌의 주권인정 ②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 ③요르단계곡을 이스라엘로 편입 ④팔레스타인에 500억 달러 금융제공 ⑤이스라엘 사막지역 팔레스타인 대체부지 제공 등이다. 완벽하게 이스라엘 우파쪽에서 수십 년 동안 추진하던 팔레스타인 합병계획을 뒷받침하는 평화안인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더욱 쪼개고 분리시키는 21세기판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이다. 요르단계곡 합병시위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주민들 사진 출처 - 요르단계곡연대 JVS 홈페이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2019년부터 총선공약으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 지역을 이스라엘에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최근 기사에 따르면 2020년 7월부터 이 합병계획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계획이 엄연히 국제법 위반이고 그동안 국제사회가 합의했던 원칙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16일 유엔의 47명 인권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서안)합병은 전쟁과 경제 황폐화, 정치적 불안, 조직적 인권유린 등을 야기할 것이고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다”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역시 강력한 반대의 의견을 수차례 발표하며, ‘합병이 진행될 경우 그동안 이스라엘과 맺은 모든 협상을 무효로 돌리겠다’고 선언하지만 현실적인 대응방법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합병계획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팔레스타인 풀뿌리 조직들과 그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다. 그들은 수십 년째 이스라엘 군대와 경찰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요르단계곡연대’ 단체는 “We will fight to the end(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외치며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그리고 7월 1일 국제적인 캠페인 “The Day of Rage on 1st July(7월 1일 분노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현지에서 긴박한 메일과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라쉬드의 한숨이 떠올랐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활동가가 순간 내비친 피곤함의 단면. 당시 그에게 힘이 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해외의 활동가에게 연락하고 sns를 통해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삶의 고단함속에서도 저항의 불씨는 아이러니하게 평화를 외치는 권력자들에 의해 계속 타오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안보와 평화를 외치는 만큼 그 지역의 평화는 깨져나가고 사람들의 생존은 위협받는 현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2020-06-24 | hrights | 조회: 118 | 추천: 5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아이  모자이크 너머로도 상처는 뚜렷했다. 온통 새까맣게 멍든 아이의 눈두덩은 언뜻 귀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눈두덩뿐만 아니라 온몸에 격한 폭력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이는 웬만한 성인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결단을 했다고 했다.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창문을 넘어 4층 높이의 빌라 난간으로 맨발을 딛었다.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가지고 있던 어떤 기억 덕분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아홉 살 인생을 내내 지옥에서만 보내지 않았다. 2년 정도 위탁가정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누가 때리지 않는 평온한 하루, 배를 곯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상을 살아본 아이는, 돌아온 제 집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살려면 여기를 나가야 한다는 것, 집 밖에는 도움을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옥을 나온 아이는, 아이의 맨발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영문을 물어오는 어른을 만났다. 소녀  소녀의 어머니는 신병을 앓고 있었고 당뇨가 심각했다. 부모는 소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중학교 들어가던 해,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살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한 달에 백만 원 남짓을 벌어오는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이었고, 술에 취하면 자기 엄마를 잡아먹은 년이라고 욕을 해댔다.  집 밖도 편하지 않았다. 어머니처럼 신병을 앓는 소녀는 어려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소녀는 종종 집이 아닌 곳, 학교가 아닌 곳으로 나왔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는데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그럴 때 소녀를 찾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 어른들은 소녀에게 돈을 주고 성을 샀다. 소녀는 열아홉 살에 임신을 했고, 이 일을 계기로 아버지의 폭언은 더욱 심해졌다. 낙태 후에도 소녀는 어른들에게 성을 팔다 발각되었고 분류심사를 거쳐 보호관찰 대상이 되었다. 사진 출처 - 영화 <범죄소년> 소년들  보호관찰 과정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한 소년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심각한 폭력의 가해자인 경우도, 어른 못지않은 사기행각을 벌인 경우도 있지만, 어쨌거나 보호관찰 과정에서 소년원으로 보내진 소년들도 많았다. 성인으로 치면 가석방에 해당하는 임시퇴원 과정에서 다시 들어온 소년들도 제법 있다. 우리는 성소수자나 빈자, 노인과 장애인, 여성, 아이들에게 대체로 가혹한데, ‘잘못을 저지른 소년’쯤 되면 어떨까. 좋은 밥을 먹을 수 없고, 책등이 떨어져나간 책을 읽어야하고, 눈앞에 있는 운동장에서 뛸 수 없어도, 죗값을 치르는 당연한 처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소년원에 오기까지 살아온 ‘소년원 밖’의 세상과 어른들이 어땠는가를 들어보면,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것이다. 어른의 조건  어른이란 무엇일까. 스무 해나 서른 해 넘게 살면, 결혼을 하면, 부모가 되면,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내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걸까. 어쨌거나 ‘생물학적인 어른’이 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최소한 만으로 20년은 사고나 병, 혹은 자살로 죽지 않고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생각해보면 나쁜 어른이 되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돈을 주고 아이의 성을 사려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엄청나다. 아이를 때리고 굶기는 경우에도 그렇다. 자칫하다가는 남은 인생이 매우 곤란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에 비하면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르겠다. 사정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안부를 물어봐주거나, 배고파 보이는 아이에게 한 끼 밥을 먹일 짬을 내거나, 아이를 윽박지르고 때리는 부모를 신고하거나, 소년원 출신이라고 눈흘겨보지 않고 다정한 한 마디를 건네주거나 하는 아주 쉬운 일로도,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손을 내미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 근사한 일이다.
2020-06-17 | hrights | 조회: 261 | 추천: 22
주윤아/ 교사  스쿨미투의 시초였던 용화여고의 가해 교사가 한차례 무혐의 처분 끝에 지난 5월 불구속 기소되고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고발부터 재판에 이르는 2년 남짓의 과정에서 학생들과 시민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용화여고 학생들이 2018년 4월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하며 시작된 스쿨미투는 1) 2년간 전국 100여 개의 학교로 번졌다. 용화여고의 가해 및 연루 교사 대부분은 가벼운 징계처분을 받은 후 다시 학교로 복귀했고, 파면된 교사 1명만이 유일하게 수사 대상에 올랐으나 같은 해 12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검찰과 교육청의 미온적 대응과 2차 가해까지 발생하며 학생들은 위축되고 지지 단체의 활동도 줄어들며 세간의 관심에서도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9년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이 진정서를 접수하면서 추가 보완 수사가 이루어져 검찰이 지난해 12월 수사를 재기하자 다시 시민모임은 지난달 5월 검찰의 기소 여부를 앞두고 총 8,403명의 개인 및 단체 연명을 받아 탄원서를 제출하고, 검찰의 기소와 엄중한 처벌이 결정될 때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피해 사실을 제기한 지 2년이 훌쩍 넘어 가해 교사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신고를 하면 법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던 학생들의 미투 이후 또 다른 지옥의 시간을 잊지 않아야 하고, 피해 학생들의 진술 의지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2019년 정치하는 엄마들은 스쿨미투 전국현황 데이터베이스(스쿨미투 전국지도)를 공개하며 학교별 사안처리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후 정보공개 판결을 받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항소하여 결국 깜깜이 징계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스쿨미투 2년이 지나도록 학교가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이 되기는커녕 최근 ‘속옷 빨래 숙제 낸 초등교사’, ‘애인이 필요하다’며 기간제 여교사에게 성희롱을 일삼은 초등 교감 사건에서 보여지듯, 다양하고 교묘한 방식의 학교 내 성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가 오히려 각종 성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신종바이러스의 습격 못지않은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사건, 일명 ‘N번방’의 끔찍한 보도를 접하게 된다. 사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착취 범죄 사건은 1997년 ‘빨간 마후라’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소라넷사이트, 연예인 단톡방 불법 촬영물 유포 사건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고 결코 그 역사가 짧지도 않다. 그러나 이를 단지 오락거리로 소비하거나 혹은 소수의 일탈로 치부하며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결과, 처벌받지 않은 소라넷 회원 100만 명이 보안이 강한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그대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수가 16명에 달하며, 여기에는 초등학생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디스코드 등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한 10대 청소년이 전체의 70%에 달한다고 한다. 촌각을 다투며 발달하는 다양한 메신저는 10대 청소년 등 미성년 사용자가 많은 것이 당연하고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피해자 단속을 강조하는 성폭력 예방교육과 여성 혐오가 일상의 유머로 통용되는 학교 문화, 오랜 억압과 차별이 구조화된 학교는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은커녕 성폭력과 성착취 범죄의 토양이 되기 십상이다. 성인지 감수성의 변화 없이는 겉으론 스쿨미투는 지지한다고 말해도 뒤에서는 그릇되고 왜곡된 성의식으로 또 다른 성범죄를 주도하거나 가담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사진출처 - 정치하는 엄마들(https://www.politicalmamas.kr/school_me_too)  스쿨미투 2년을 돌아보면 학내 성폭력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 처벌 과정 또한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학생 혹은 졸업생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에 대한 반복적 진술 과정과 낯선 수사와 재판 절차를 오롯이 감당하며 고소 진행 의지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사법 처벌의 전 과정을 피해자 개인(학생)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평등하고 안전한 학교를 바라며 피해 학생들이 어렵게 용기를 낸 스쿨미투의 해결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사법부와 교육청은 각종 성범죄에 가담한 교·사대 예비교사들이 교단에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스쿨미투 등 각종 성비위 관련 교원들을 강력하게 처벌해야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성범죄가 당연히 ‘범죄’임을 명확히 하고,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는 제도를 실제 작동시켜, 피해자들이 자신이 목소리를 낸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응답해야 할 것이다.  스쿨미투 해결을 바라는 이들은, 스쿨미투의 첫 시작을 연 용화여고의 가해 교사 기소 및 재판부의 판결을 지켜보고 있으며, 정의로운 판결이 나올 때까지 ‘With You’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이상 스쿨미투 피해자들에게 ‘해결’까지 떠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1) 정치하는 엄마들 스쿨미투 전국지도(https://www.politicalmamas.kr/school_me_too)
2020-06-10 | hrights | 조회: 158 | 추천: 11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함성이 울려 퍼진다. 그들의 후광에 눈을 뜨지 못한다. 심지어는 꿈에 나타나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만 지르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인생의 팔 할이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인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최근에는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SLEEQ)에 빠져있다. Mnet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인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 래퍼 슬릭이 나온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이 되면 벌써 목요일만 기다리게 된다. 방송이 목요일에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떠돌던 포스터에서 슬릭을 발견했을 때는 당혹감이 먼저 방문했다. Mnet이라니. 과연 괜찮을까 하는 염려였기 때문이다. 우려의 시선으로 TV 화면을 바라보았었다. 첫 화에서 ‘크루 탐색전’을 했다. 크루 탐색전이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을 선정하여 무대 위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음악적 색깔을 지녔는지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다. 아티스트 슬릭은 이날 자신의 TITLE 곡 중 하나인 “HERE I GO”를 무대 위에서 선보였다. 이 음악을 Mnet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LGBTAIQ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무대의 장면을 보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나 또한 무대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더 주목할 것은 가사다. “고민하지 / 어떤 게 예술가의 삶 / 누구 위에 있기 위해선 존재하지 않아 / 고민하지 아무도 죽이지 않는 노랫말 / 그 앞에선 어떤 게임도 / 시작 버튼 눌리지 않아 / Here I go Here I go here I” 여성 혐오 가사로 음악을 발매하기까지 한 몇몇 음악인들을 향한 일침일 것이다. 많은 예술인이 이 공연을 보고 심장이 덜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생각이 든 이유에는 국립창극단에서 올린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가 그 문제의 중심에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덕질의 반경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중에는 국립창극단 소속의 국악인도 있다. 팬클럽 회원인 나는 팬클럽 사이트에 들어가 종종 공연 스케줄을 확인한다. 그렇게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을 몇 년째 맺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큰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2018년도에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를 처음으로 봤었다. 극 중에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장면이 꽤 오래 나왔었다. 불편함과 내 연예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었다. 스스로 길티플레져(guilty pleasure,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 떳떳하지 못한 쾌락)가 되고 말았다. 2019년 또 올려진다는 소식에 덕질 주인공을 보러 간다는 생각만으로 마지막 공연을 약 두 달 전에 예매를 해두었다. 망각의 존재인 나는 그 1년 새 그 장면은 떠올리지도 못한 채 공연 당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2019년 12월의 어느 날 한 작가님의 극 중 페미니스트 비하 장면에 대한 문제 제기로 다시 이 문제가 불거졌다. 언론에 보도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심지어 공연은 성황리에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극 중 문제 장면은 이렇다. 페미니스트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갈라 싸움을 유도하는 존재로 그려졌고 이에 “민족이 힘을 합쳐”라는 대사로 페미니스트를 모독한다. 문제 제기에 국립극장에는 이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었다.  “마당놀이는 풍자와 해학, 비틀기를 중심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내며 지난 40년간 사랑받아왔습니다.” 그 뒤로는 “그중 ‘춘풍이 온다’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춘풍전’을 현대에 맞게 각색한 작품으로 가부장적 사회를 전복시키는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이었다. 그 후 2차 답변으로 “극적 과장과 비틀기를 중심으로 마당놀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연출 문법”,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통해 양성평등의 가치를 담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받았다고 작가님이 글을 공유해주셨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 자신이 ‘평등’의 가치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로 정서적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성평등’이 이야기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양성’에 갇힌 답변에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답변에 화가 나 예매를 취소해버렸다. 결국 국립창극단의 사과는 없었다. 아마도 또 똑같은 내용으로 극이 올려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예술의 이름으로 휘둘려지는 폭력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더라면 연출진은 분명히 처벌받았을 것이다. 차별과 혐오가 예술로 포장되는 현실 앞에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용기로 맞서는 아티스트 슬릭의 행보를 응원한다. 누구도 죽지 않는, 누구도 다치지 않는 예술의 힘을 믿으면서 나는 오늘도 덕질한다.
2020-06-03 | hrights | 조회: 128 | 추천: 6
이회림/ 00경찰서  쿠르드 여전사 '딜진'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고향에서는 산책을 하고 싶으면 남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면서 “여권(女權)을 수호하려고 전투한다. 적(IS)뿐 아니라 가부장제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역할(전쟁)을 수행해 편견을 깼다. 이것은 평등을 이루려는 투쟁”이라면서 “여성해방부대에 합류한 것은 처음 맛본 자유”라고 털어놓았다. ​  위의 쿠르드 여전사의 인터뷰를 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의 물결 이후 가속화 된 여권신장운동과 쿠르드 여성들이 자진해서 전쟁터로 뛰어드는 현상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쿠르드 여전사들이 전쟁터에서 히잡을 벗고 총을 든 것처럼 한국에서 여성경찰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는 큰 걸음을 뗀 순간입니다. ​  한국의 여성경찰은 경찰의 당면 업무를 하나씩 배워나가며 이를 책임 있게 잘 수행해내는 과정을 통해 저절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부장제 사회 규범에 의해 양육되었을지라도 경찰 제복을 입게 되면서 새롭게 재사회화의 과정을 겪는 셈이지요. ​  그런데 얼마 전 저희 내부망으로 전달된 전체 메시지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4월 한 달에만 전국에서 접수된 경찰 내 성희롱, 성폭력사건의 수가 두 자리 수 였기 때문입니다. 성범죄가 보통 암수범죄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더 많은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고 말입니다. ​  그동안 경찰 조직 내에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소수 미꾸라지들의 소행"이라고 일축했던 직원들이 많았습니다. 교사 등을 포함한 공무원 전체의 발생 통계를 따져보면 경찰관에 의한 성비위 사건은 그 수가 매우 적은 편이라는 통계까지 인용하면서요. 그리고 오늘 5월 13일,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강동원)는 여성경찰관을 성폭행하고 성관계를 암시하는 촬영물을 찍어 동료인 남성경찰관들과 돌려본 혐의로 기소된 A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습니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재판부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피해 여성이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생각하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는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정상적인 근무를 어렵게 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피해자가 강간당한 이후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노력한 것은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소문이 날 경우 자신에게 닥칠 모진 현실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성범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수치심’ 입니다.  여러 범죄 유형 중,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는 ‘성범죄’ 이외에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성인들 사이에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폭행사건의 경우, 대체로 남성 대 남성의 구도에서 발생하고 있고, 피해를 입은 쪽이 ‘수치심’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기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남성 대 여성 구도에서 대표적인 범죄 유형인 ‘성범죄’의 경우, 여성 피해자들은 대체로 피해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위의 여성경찰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해자들은 종종 피해를 알리지 않고 숨기며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노력하는데다 불특정 다수에 의한 ‘소문’까지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수치심’이 그들의 마음속에 크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입을 떼기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  2019년 10월, 노래방 안에서 만삭 여경에게 노래를 강요하고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였다는 혐의로 A총경이 직위 해제되었다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그때 그 여경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임신까지 한 몸으로, 그런 분위기에 놓여 있었던 것 자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상황인 것 같습니다.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나 그 노래방 안이나 둘 다 야만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닌지요? ​  "적(Is)뿐 아니라 가부장제와도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던 쿠르드 여전사와 한국 여성경찰이 만난다면 서로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2020-05-15 | hrights | 조회: 96 | 추천: 6
'안내견, 너를 알려줘!?'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잔인하고 처연한 4월이 끝나간다. 바이러스 때문이기도 하고 세월호 때문이기도 하고 전두환 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만든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 이번에는 21대 국회의원 비례 대표 시각장애인의 장애인 보조견의 본회의장 입장 문제 때문에 ‘안내견’ 문제가 언론을 통해 부각되었다. 이에 한번 찾아봐야할 날이 하나 있다. 대부분 고개를 갸웃할 테지만. 뚜렷한 날짜 박음도 없이 ‘4월의 마지막 수요일’이라고 정해 놓은 이 기념일은 인터넷 기사 검색을 아무리 해보아도, 달력을 뒤져보아도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요일을 이렇게 정해 놓으니 매년 날짜가 바뀔뿐더러 국가적인 행사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4월 29일인 그날은 바로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안내견협회’(International Guide Dog Federation)가 정한 ‘세계안내견의 날’이다. 참고로 97년에는 4월 30일이었다. 성웅 이순신의 날처럼 사람을 기념하거나 특별한 사건을 기념한 것도 아닌,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일개 개(犬)를 기념한 날이고 특별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정된 것은 더욱 아니다. 사실상 세계 안내견의 날은 1989년에 창설된 국제안내견협회(IGDF)가 90년 중반 독자적으로 안내견 훈련조직을 운영하던 미국과 독일이 가입함으로써 명실상부 국제적인 기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을 1990년에 기념한 날이다.  12월 3일처럼 유엔이 정한 것도, 우리나라처럼 -비록 정통성은 없었지만- 국가원수가 공포한 날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날을 계기로 시각장애인의 눈이요 생명인 안내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내견의 역사  '안내견 양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일순간에 앗아갔던 바로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1차 대전 이후 수없이 많은 군인들이 시력을 중도에 상실함에 따라 군인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여러 교육과 재활훈련이 시도되었고 그 과정에서 1916년 독일 올덴부르크에 맹인안내견 학교를 개설한 것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당시 독일 국견(國犬)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세퍼드가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3년 독일 포츠담(Potsdam)에 독일훈련학교(the German Training School)가 세워진 것이 체계적인 안내견 양성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지역적이던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세계로 확산시킨 사람은 미국의 '도로시 유스티스 여사(Mrs. Dorothy Harrison Eustis)다. 그녀는 포츠담을 방문하여 독일훈련학교를 견학한 후 큰 감명을 받았고, 이는 그녀로 하여금 훗날 최초의 맹인안내견 학교를 설립, 본격적인 안내견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게끔 하는 계기가 된다. 때마침 그녀는 ‘The Saturday Evening Post’지로부터 원고를 부탁받게 되었고, 그녀는 개들이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의 “The Seeing Eye”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게 된다(1927년 11월 5일자). 이 기사가 안내견에 대한 관심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미국 테네시에 살고 있던 시각장애인,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라는 젊은 청년이 이 기사를 보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유스티스 여사에게 자신을 위해 안내견을 훈련시켜 달라는 요청의 글을 썼다. 청년은 여러 우여 곡절 끝에 그녀와 함께 팀을 이루어 버디(Buddy)란 이름의 개를 선택하여 훈련시켰고 결국 성공, 버디를 미국 최초의 안내견으로 등록하게 한다. 그 후, 1929년, 사재를 털어 프랭크와 함께 ‘The Seeing Eye’(www.seeingeye.org)라는 세계 최초의 전문 안내견학교를 설립해, 1929년 2월, 2명의 교사만을 데리고 최초의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해 훈련받은 안내견으로 인해 독립을 되찾은 시각장애인은 모두 17명이었다. 한편, The Seeing Eye는 국제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영국에서의 안내견 훈련학교 설립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된 영국의 체계적인 안내견 훈련은, 1931년 왈라시(Wallasey, Cheshire)의 클리프(The Cliff) 훈련센터에서 시작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0년대부터 부흥기를 맞는다. 영국에 6개의 안내견 전문훈련학교가 세워지고 여러 유럽 국가들도 안내견학교를 건립하게 되었다. 70년대에는 안내견에 대한 개념이 유럽 외 지역 국가들에게 전파되어 일본(1970년), 뉴질랜드(1973년) 등에 최초의 안내견학교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의 안내견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권29, 忠烈王 8年4月條)에서 부모를 여의고 ‘백구’라는 개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눈먼 아이의 이야기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근대적인 안내견 사용자는 대구대학교의 임안수 교수(현재 대구대 점자도서관장)로, 그는 1972년 말에 미국 유학을 마치면서 세퍼드종 안내견 '사라'와 함께 귀국하였다. 이후 외국기관으로부터의 분양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사후 관리 미흡과 일반인들의 인식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국내기관에 의해 배출된 최초의 안내견은, 1994년 양현봉씨가 삼성안내견학교로부터 분양받은 뷰티이며 97년에는 16마리, 현재 연평균 15마리 정도가 분양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안내견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수요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며, 안내견 양성기관은 비영리 사회단체나 유력인사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삭도우미개학교(1992년), 삼성안내견학교(1994년)가 안내견을 훈련, 무상 보급하고 있다. 일본에는 일왕가족이 활발하게 안내견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삼성안내견학교는 99년 11월 국제안내견협회(IGDF)에 정회원으로 승격되었다. 안내견은 원한다고 모두 분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훈련비용이 많이 들고 제한된 수가 양성되며 실제 생명을 다루다 보니 안내견의 분양자격은 다소 까다롭다. 일단 고등학생 이상으로 활용하는 목적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안내견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국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의 보유 비율이 장애인 대학생에게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안내견에 관한 법과 차별사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법 제36조 제3항에는 "누구든지 보조견 표지를 부착한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거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고자 하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 되어있었다.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어길 시 법 제80조 제1항 제4호에 의거하여 벌금 300만원이 부과 된다.  많은 시각 장애인들이 안내견 출입거부나 차별을 당할 때 바로 이 법으로 항변하지만 실제로 단속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이 거의 없었다.(대부분 그 해당시설 관할 주무부서에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또한 정당한 사유라는 애매한 조항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법 조항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었다. 벌금도 실제로 부과된 사례가 거의 없다가 2005년 <내사랑 토람이>의 실제 주인공 전숙연씨가 대형 할인점 카르푸에서 안내견 출입을 거부당하자 이를 고발하여 벌금이 부과된 경우가 최초였다.  이러한 안내견의 근거 조항에는 장애인 복지법뿐만 아니라 철도청 국유철도여객운송규칙(63조2항)과 도로교통법 자동차운송규정에 맹도견의 탑승조항(개정령 28조)을 두고 있고 대한항공과 같은 항공사들도 자체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항들은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관계자들도 잘 모르고 있다.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와 그의 개 버디, 그리고 '도로시 유스티스 여사 (Mrs. Dorothy Harrison Eustis) 자료 출처 : The Seeing Eye 2003 Annual Report  그러다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9.11테러 당시 주인을 구한 안내견과 그 주인공을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위에서 지적한 ‘정당한 사유’라는 보조견 출입제한 허용규정이 보조견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차별의 근거가 된다고 판단해 4월 폐지를 권고하고 건교부와 각 지자체에도 보조견 사용자 차별금지와 보조견 보급 확대 정책 수립을 권고했다. 이에 같은 해 보건복지부가 ‘식품접객업소 등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보조견의 출입을 거부할 수 있다’는 법 규정(장애인복지법 제36조 3항)을 삭제하고 관련법령에 주거시설에서 보조견 사용자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또한 올해 발효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면 제19조(이동및교통수단의 차별금지)에서 제2항 “②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의 이용에 있어서 보조견 및 장애인보조기구 등의 동승 또는 반입 및 사용을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보다 강력하게 명시해 놓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에 대한 거부와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다. 공공건물에서도 안내견이 거부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도 했다. 1995년 7월에는 서울국제라이온스클럽 총회에 참석했던 시각장애인 에드 레빈스 교수는 구내의 내로라하는 호텔로부터 일제히 투숙거부를 당해 총회기간 동안 시각장애인복지관 기숙사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5년 1월에도 서울의 별 6개 특급 호텔에서 안내견을 데리고 호텔을 찾았던 시각 장애인은 완강히 거부당해야 했다. 그 호텔 당직 지배인은 "다른 손님이 불쾌해하기 때문에 장애인 전용식당이 있으면 몰라도 절대로 들어가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해서 더욱 분노를 사게 했다.  이러한 안내견의 거부는 고위층 경호과정에서 심하게 일어난다. 1999년 4월 영국여왕이 이화여대를 방문하여 안내견과 함께 온 장애인 학생을 만나는 과정에서 경호팀이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며 실랑이를 벌이자 여왕이 ‘괜찮다, 함께 만나자’고 하더니 ‘이 개가 너와 함께 강의를 들으니 매우 스마트하겠구나’라고 발언한 일화도 있었다.  또한 2001년 여성부 출범 기념식에서도 '개가 내빈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과 안내견이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경호팀에서 참여 불허를 통보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2005년 전라도지역의 장애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모 대학에서 시각장애인 학생이 기숙사에 입사하면서 안내견과 함께 입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가 전염병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거부당하고 학생들의 항의로 겨우 1학기만 기숙사 이용을 허가받기도 했다.  안내견 사업은 삼성의 기업 이미지에 크게 기여했는데 2010년 삼성 비자금 세탁을 위한 그림들이 이 안내견 센터에서 발견되자 청각 장애인 도우미견은 더 이상 키우지 않고 안내견 사업만 하겠다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장애인 보조견 사업은 처음부터 삼성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삭도우미개학교(現,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가 1993년 10월 시각도우미견을 국내 처음으로 무상 분양한 것이 그 시초이다. 더불어 1992년 한국안전시스템주식회사(현재의 삼성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사업을 실시하여, 1994년 4월 30일 제1호를 분양했다. 이후 삼성이 시각도우미견 보급에 집중하자,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청각도우미견에 눈을 돌렸다. 1999년 6월, 청각도우미견을 국내 처음으로 무상 분양하자, 뒤이어 삼성이 2003년 6월 청각도우미견 분양사업을 시작했으며,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이후 지체도우미견 분양사업을 시작했다. 마치 중소기업이 블루오션을 개척하면, 대기업이 거대 자본으로 밀고 들어와 시장을 독점해오다가 시장 자체를 붕괴시켜 버린 것과 같은 일이 반복돼 왔다.  이번 삼성의 사업 축소가 크게 비판받는 점은, 그동안 국내 장애인 보조견 사업을 거의 독점해오다시피 해서 다른 민간단체의 참여나 다른 기업의 기부를 막아 공익사업 자체의 성장을 막아 오다, 이제 와서 경영 논리로 사업을 일방적으로 폐지하고 숙련된 전문가들을 해고시켜버림으로써 단순히 사기업의 구조조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보조견 사업 자체를 크게 후퇴시켜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내견 사업을 기업이 하는 경우가 삼성밖에 없었다는 삼성의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 삼성이 안내견 사업을 독점했기 때문에, 국내 관련 비정부 기구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안내견의 국회 입성을 계기로 일부 언론이 삼성을 예찬하는 것은 참 동의할 수 없다.
2020-04-29 | hrights | 조회: 144 | 추천: 1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대유행인 지금 팔레스타인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3월 5일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현재(4월 22일자) 팔레스타인 누적 확진자수는 334명이고 사망자 2명, 회복자는 69명에 이른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발표했습니다. 초기 예수탄생지로 유명한 베들레헴 도시에 집중된 확진 사례는 시간이 지나면서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퍼졌고, 최근에는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에서 대량 확진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십 수 년째 이스라엘에 의해 완전 봉쇄된 가자지구 역시 12명의 확진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발표됨에 따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학교와 관공서, 종교시설, 공장과 가게의 문을 닫고, 사람들 간 모임을 금지하며 예외적 장소(병원, 약국, 빵집, 생필품구매처)를 제외한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강력한 봉쇄조치를 3월 23일 내렸고 이 조치는 최근 5월초까지 연장됐습니다. 봉쇄조치로 인해 발길이 끊긴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시내 모습  한편, 1967년 전쟁이후 팔레스타인 전역의 국경을 통제하고 무력 점령한 이스라엘은 점령지(팔레스타인)의 방역과 검역, 점령민에 대한 의료지원에 대한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가자지구에 들어가는 인도적 의료시설과 물자의 출입을 막고, 예루살렘에서 코로나19를 검사하는 팔레스타인 의료시설이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진단키트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급습하여 폐쇄시켰습니다. 또한 지난 3월 23일 이스라엘 경찰은 텔아비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검문소 도로에 내던지고 가버린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아디의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가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이중, 삼중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존의 이스라엘의 점령과 봉쇄 속에 코로나19에 대응해야 할 내부의 의료체계와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확진자는 계속 늘고 있다. 거기에 강력한 봉쇄조치로 인하여 하루 벌어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다수의 사람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난민캠프와 가자지구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열악합니다. 수십 년간의 이스라엘의 봉쇄와 점령은 팔레스타인 내 산업기반을 무너뜨렸고 경제구조를 국제기구나 해외기관의 원조와 지원에 많은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외부의 지원이 끊기는 순간 바로 빈곤과 생존의 문제가 발생하는 불안정한 시스템입니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는 이 시스템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내부의 촘촘하고 헌신적인 풀뿌리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별로, 지역별로, 자치정부가 없을 때부터 스스로 조직화하였고 지속적인 분쟁상황에서도 피해자 가족과 취약계층을 도우며 챙겼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풀뿌리 네트워크는 더 취약한 계층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조사했고 내부의 자원을 모으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최대 난민캠프인 발라타 캠프에서 거주하는 활동가에 따르면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마스크나 소독제의 부족도 문제이지만 일을 할 수 없기에 빵과 같은 식료품의 부족이 더 큰 문제이다”라고 합니다.  각 국가차원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긴급하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국가 차원에서 전염병을 막는다 하여도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진 않습니다. 아디는 힘겹게 분투하는 팔레스타인 풀뿌리 네트워크와 함께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활동을 조사하고 실행하고자 합니다. 지구촌내 더 열악하고 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한 우리의 연대와 지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2020-04-22 | hrights | 조회: 169 | 추천: 5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네일(nail) 기술을 배워 샵을 내면 먹고는 산다더라. 남들보다 조금 더 성실히 일하면 아주 괜찮게 살 수 있다더라고. 너는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내고 나는 그 한 켠에서 네일샵을 하면 되겠다. 배관 기술은 남자들이 주로 배워가지만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수입은 그게 더 낫다더라.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다는 편견 덕에 한국인 목공도 인기가 있다는데 우리 중에 네가 가장 손재주가 좋으니 나무 다루는 기술은 네가 배우는 게 어때. 아참, 타일공도 아주 괜찮다던데. 너 퍼즐 잘 맞추잖아.  구한말 한약방 컨셉이라고 알려진, ‘힙스터’들은 꼭 가본다는 을지로의 어느 커피 가게에 앉아 우리는 그런 말들을 나누고 있었다. 몇 해 전 이맘때였다. 작정하고 만나 돈을 쓰는 날이었다. 비싸고 예쁜 밥을 먹고 나서,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커피가 맛있다는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 사실 그런 날은 두 세 달에 한 번 만들기도 힘들었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웬만큼의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에, 그런 작은 사치라도 없으면 숨통 틀 일이 없었다.  한국을 떠나 1세계 어느 나라로든 정착해, 우리가 익혀보지 못한 기술들로 먹고 사는 상상들이 농담과 객담, 진담 사이에서 즐겁게 오갔다. 아니, 사실은 즐겁지 않았다. 농담과 객담을 오가다 짐짓 진담으로 향하는 내밀한 순간에 특히 그랬다.  A는 작은 영화를 만든다. 내가 그녀를 알아온 20여 년간 영화일을 떠나본 적이 없다. B는 그림을 그린다. 책이나 달력, 다이어리에 들어가는 그림을 주로 그린다. 마찬가지로 그녀도 그림 그리는 일을 떠나본 적이 없다. 우리는 대학에서 만났고 서로의 젊은 날과 치기, 그 시절 꿨던 꿈,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장점 같은 것들을 알고 있다. 영화를, 그림을, 시민운동을, 익숙한 풍광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새 기술을 배워야 사람다운 수준으로 먹고 살 수 있을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즐겁기만 할 리가 없었다.  결국 실현되지 못했던 농담 혹은 객담이지만 그때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세월호 사태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나라가 나라 같지 않다는 전조들은 많았지만 세월호 사태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세월호 이후, 마치 누가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큰 사고들이 이어졌다. 그 모든 순간에 일관되게, 국가는 없는 것 같았다. 이 나라에서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알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세월호를 두고 모진 소리를 해대는 이웃들을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이게 가장 근원적이고 무거운 절망이었다. 선거를 잘 하고 법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고 상층부를 바꾼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대에는 여기가 지옥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 세상이 온통 휘청거리고 갸우뚱거리던, 앞이 보이지 않던 날들이었다.  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로부터 몇 해가 지났다. 강산이 변하기도 전인데 강산만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적어도 체감하기로는, 국가라는 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마음껏 휘두르고 국민을 억압하던 주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듯 보인다. 좀 더 후하게 점수를 주자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같다(지금 정부가 이상에 가깝다기보다, 이전 정부가 워낙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사진 출처- freepik  이웃들도 달라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들 밥 먹이는 일-무상급식-을 두고 빨갱이 같은 생각이라며 들고 일어나던 어른들이, 이제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재난기본소득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본소득 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황당 일색이던 반응도 조금 바뀌어서, 이제는 논의와 토론의 도마에 오르는 수준은 된 것 같다.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으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생애 첫 투표를 했을 아이들은 사전투표장에 일부러 교복을 입고 나와 아쉬움을 달랬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N번방 운영에 적극 가담한 성범죄자들을 전례 없는 강도로 수사하고 처벌하며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세우자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만 하면 멀쩡한 사람도 간첩을 만들 수 있던 나라, 그것도 서울 한복판의 부촌에서 북한 고위공직자 출신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놀라운 변화도 언급하고 싶다. 앞으로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은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어쩌면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리는 다시 갸우뚱거리고 휘청일지 모른다. 헌법을 제외한 그 어떤 법안 처리도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거대여당이 탄생했지만, 세상이 바로, 그것도 아주 극적으로 좋아지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선의로만 움직이지 않는데다가, 다양한 이해를 조율해야 하는 정치의 세계는 종종, 작은 민의를 외면하기도 할 것이다. 파란 깃발만 들고 있을 뿐, 행적과 철학이 분홍색인 당선자도 여럿이다. 범여권의 압승이어도,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동서로 갈린 한반도 지도는 그 자체로 슬펐다. 세월호를 두고 모진 말을 쏟아내는 이웃들이 여전히 곁에 있고, 약자끼리 서로 혐오하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갸우뚱거리면서 느리게나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따금 스텝이 꼬여 주저앉을 수도, 길을 가는 과정에 얼굴 붉힐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언제 이만큼 왔나 싶은 순간이 올 것이다. 오직 빨리 가기 위해 자기 체력이나 주위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뛰기만 하다 많은 것을 잃은 예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관건은, 곧은 방향으로, 결국 도달하는가에 있다.  투표 전날, A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모처럼 모였다. 모두 같은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었다. 작은 영화를 만들던 A는 큰 영화회사에 다니게 되었고 B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이제는 다른 이의 출판물에 들어가는 그림이 아니라 온전한 자신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는 밤새 A의 회사에서 만드는 영화라든가, B가 요즘 그리는 그림이라든가, 경기도에 세워질 예정인 오월 걸상이라든가, 우리 동네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들이라든가, 요즘 하고 있는 저축과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냈다. 날이 밝아오고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시간 6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 앞의 투표소로 함께 걸었다.
2020-04-17 | hrights | 조회: 199 | 추천: 14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널 좋아해.” 이 한 마디가 뭐라고. 어쩜 그리도 전하기 어려운지. 종이 위에 그 애틋한 마음을 담으려 애를 써봅니다. 첫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새종이로 몇 번을 바꿨을까요? 불현듯 의문이 듭니다. 좋아한다는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가능하기는 한지 말입니다. “너는 내가 왜 좋은데?”라고 상대방이 물어온다면 그것조차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유야 너라서, 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이 세상에 너는 하나니까. 상대방의 반응은 둘 중 하나입니다. 기뻐하거나 탐탁지 않아 하거나. 좋아하게 된 계기야 저마다 다를 겁니다. 사람 사이에 추억이 많고 이야기가 많을수록 종이 위에 글자가 넘쳐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별의 순간은 어떨까요? 이별도 저마다 다를 겁니다. 긴 이야기로 끝맺음을 맺거나 아주 짧은 말로 이별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죠.  다시 종이에 집중합니다. 어떤 달콤한 말을 적어볼까 고민이 깊어집니다.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사랑의 깊이가 깊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닥친 문제인데요. 사실 좋아하지는 않는데 사랑하는 것처럼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신기하게도 거짓말이 술술 적힙니다. 한 편의 완벽한 소설이 되지요. 그러나 소설이라면 공모전에 제출이라도 할 수 있죠. 요즘 제가 쓰고 있는 이 사랑 고백은 공모전에는 낼 수 없습니다. 이쯤 되면 대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이야기는 종종 들어봤습니다. 군대에서 국문과 출신들이 사랑의 시를 그렇게 많이 대필해줬다죠. 그 많은 대필이 모두 성공했을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글도 대필이라면 대필일 수 있을까요? 제 안의 새로운 자아가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거짓말 술술 하는 그 자아도 어차피 저니까 대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습니다. 바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입니다. 흔히 자소설이라고 하죠. 사진 출처- KBS  통장에 적힌 숫자에 등 떠밀려 단기아르바이트라도 알아보자 하고 알바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셀카 사진 2장, 키와 몸무게를 요구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력서가 아니라 문자로 보내라는 것이었죠.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 하며 경악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채용절차법’이 통과되기 이전에는 일상이었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방식에 ‘인간의 얼굴과 몸’이 있다니 다시금 소름이 돋았습니다. 노동할 수 있는 몸과 그렇지 않은 몸,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얼굴과 그렇지 못할 얼굴. 도대체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알바사이트를 닫고 워크넷으로 들어갑니다. 사진을 요구하거나 남과 여 이분법적 성별을 묻는 곳은 여전합니다. 순간 내가 만약 얼굴에 큰 흉터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성별 정정을 하지 못한 트랜스젠더였다면 이 이력서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가족관계를 묻는 칸도 있습니다. 미혼, 기혼 그리고 부모가 있는 사람인지도 알아내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질문이네요. 대체 일을 하는데 왜 이런 정보가 필요할까요? 이런 질문이 적힌 이력서만 봐도 어떤 회사인지 짐작이 갑니다. 마음은 이미 떠났지만, 코가 석 자인 저는 자기소개서로 넘어갑니다. ‘성장 과정’ 가장 난해한 질문이죠. 어떻게 회사와 성장 과정을 연결할지 고민해봅니다. 키보드 위로 손가락이 열심히 움직입니다. 타다닥. 다음 단골 질문 ‘동기’. 사랑을 고백하기 딱 좋은 질문입니다. 만들어낸 사랑을 읊습니다. 마침내 ‘해냈어!’하고 전송을 누르죠. 세상에 거짓말이 사라진다면 제일 위험한 영역은 이력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피곤한 과정을 거쳐서 입사하고 시간이 지나 퇴사를 결정할 때 사직서에는 딱 한 줄 적습니다.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합니다.” 애정 없는 무미건조한 답변을 선택합니다. 빨리 이별하고 싶어서죠.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이력서를 작성하는 키보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2020-04-09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