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간사),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주윤아(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가까운 날, 교황님이 오시면 직접 만나 뵙고 건의하고 싶다. 먼저 대법원 양형위원회 종교시설 기준을 엄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한민국에는 평신도가 교회에 헌금하고, 사찰에 기부하면 최종 결정이 해당 교회 담임목사, 해당 사찰 주지에게 모든 권리가 인정되도록 한 대법원의 판례가 있다. 이는 지난 100여 년간 직업종교인의 부정부패를 비호하는 매우 못된 판례이다. 지난 1919년 3.1운동과 4.19혁명의 정신을 이어받고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시민행동을 실천해 온 평신도들의 기도를 저버리는 판례이다. 이제 대법원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교회, 사찰 부정부패 사건으로 각종 송사와 분규가 발생할 경우 새롭고 지혜로운 판례와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조계종 종정 모 승려와 제자가 평신도(불교계에서는 재가불자라고 부른다)의 가족 건강과 집안이 망한다고 협박하여 기부(시주)받은 후원금이 정당할 수 없다. 심리적으로 불안해 상담한 평신도를 겁주고 사기 쳐서 뜯어낸 '고의성'이 강한 위법 행위일수 있다. 종교계 시민단체는 비영리 민간단체의 고유한 업무로 '합리적인 의심이 강한 사회문제'에 대해 창의적으로 비판하고 건의하는 것이 본연의 활동내용이다.  두 번째로 대한민국 검찰과 경찰을 방문해 용기 주시길 건의하고 싶다. 조계종 생수비리 의혹 사건에 대해 경찰과 검찰은 황당한 결정을 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과 골프를 친 자승 전 총무원장을 계좌 조사도 하지 않고 봐주기식 결론을 냈다. 의혹을 덮어버린 경찰과 검찰에게 고해성사를 받아주시길 기도해 본다.  정의평화불대 상임대표 이도흠(한양대 교수)을 비롯한 불교계시민사회단체는 국고보조금 7천여만 원을 횡령한 의혹이 있다며 자승 전 총무원장을 고발했다. 이제 지켜봐야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한민국 사회에서 종교계는 많은 국고보조금(시민 세금)을 지원받는다. 받는 만큼 투명한 집행과 결산을 해 시민들에게 신뢰받는 종교단체가 되어야 한다. 불교 조계종의 경우 직·간접적으로 연간 수백 억 원을 세금으로 지원받는다. 전통사찰 유지보수, 템플스테이 심지어 10.27법난 특별법으로 천 억대 예산편성도 받았다. 그럼에도 수년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다가 이제 봉은사에 500억을 10.27법난 기념관과 동국대에 치유센터 건립 명목으로 500억을 편성하려고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천 억대 예산을 조계종 마음대로 집행하려하는 모양새를 그냥 놔두는 현 정부가 정의로운지 묻고 싶다. 종교계를 관리 감독하는 문화관광부나 감사원은 감사 지적을 하고도 시민들에게 제대로 결과를 안내하지 못하고 있다.  또, 봉은사를 방문해 주셨으면 한다. 맑고 향기롭게 법정스님이 머물렀고 종교간 대화를 위해 노력하신 서울 강남 봉은사, 추사가 말년에 혼신을 다해 쓴 멋진 글이 있는 봉은사에 교황님이 오신다면 청렴한 세계시민이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해서다.  자승 전 총무원장이 중심이 되어 벌이는 위례신도시 종교부지의 이른바 ‘안거놀이’, ‘결사놀이’를 들으면서 이제는 불교의 마지막 보루인 수행조차도 오염된 듯 하여 슬프다. 왜 ‘천막법당’일까? 예전 한나라당의 천막당사가 생각나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박근혜는 대선과정에서 차떼기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자 기존 당사엔 단 한 발짝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이 부패 정당, 기득권 정당이란 오명에서 완전히 새롭게 출발한다”며 여의도에 천막을 쳤다. 천막당사로 한나라당은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위기를 ‘천막법당’으로 돌파해야 할까? 백번 양보해 지금 천막에 들어가 안거를 해야 할 만큼 선수행처가 잘못된 점이 있는가? 9명 승려가 수행할 처소가 없을 만큼 선방이 부족한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천막법당에서 안거를 하겠다는 9명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사진 출처 - 필자  오히려 한국불교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도박, 폭행, 돈봉투선거도 모자라 생수비리와 국고보조금 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등 온갖 불의의 몸통이며 종단을 사유화한 ‘강남원장’이 여전한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자정이 불가능한 종단의 현실이 진정한 위기의 근원이다. 교황님이 위례 신도시에서 천막쇼를 하는 자승 전 총무원장 등 조계종 승려에게 '평신도의 소수의견'을 전달해 주시길 기도해 본다.  봉은사 평신도(재가불자)들은 이제 500억 원을 모아 위례신도시에 건물을 지어 죽을 때까지 자승 전 원장이 머물도록 기부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 생각이 기우이길 바랄뿐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에 잘못과 오해가 있다면 공개반성하고 싶다. 아니, 교황님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업종교인인 재벌승려, 재벌목사님들에게 교황님이 들려주실 소중한 강론과 지침을 듣고 싶다.  1만3천여 명의 조계종 승려가 침묵하는 현실에서 교황님에게 건의하는 평신도의 바람이, 아니 기도가 응답받길 기대해 본다.
2019-11-13 | hrights | 조회: 258 | 추천: 10
이회림/ 00경찰서 「성폭력 범죄 경찰에게 성폭력을 신고하라는 것인가? 경찰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제하의 2019년 11월 7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논평에 공감하며..  경찰청이 11월 5일 국회에 제출한 ‘경찰공무원 성비위 및 징계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4~2019년 6월까지 292명의 경찰이 성비위에 연루돼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체 발생 건수 중 경찰 내부에서 벌어진 성 비위는 179건으로 61.3%를 차지하고 유형별로는 성희롱이 74.3%, 성범죄가 25.7%이며, 가해자 계급별로는 경위가 81명으로 전체의 45.3%, 경감 37명(20.7%), 경사25명(14.0%) 순 입니다. 대한민국 경찰관 11만8,000여 명 가운데 여경은 1만3,000여 명으로 현재 약 10%를 차지합니다.  약 10%의 여경 중 남경으로부터 성희롱성 언행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여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여경들은 남경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힘들어합니다. 그저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려니 하고 스스로 마음을 챙겨가다가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피해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일을 경험할 때마다 미리 예상하고 녹음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피해를 입고도 드러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창구가 없으니 친한 여경끼리만 속 얘기를 하고 피해 공유 정도에 그칩니다. 운이 좋아 좋은 주변인을 만나면 혼자 '여자'임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별 문제 없이 안전하게 근무를 하게 되지만, 그렇게 '젠더 감수성'이 풍부한 남경들과 일하게 되는 행운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경은 가해 남경을 피해 타도, 타서로 도망치듯이 옮겨 갔고, 또 어떤 여경은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했다가, '튀는 여경'으로 '찍힘'을 당해 인사철에 불이익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제 주변에서만 일어나는 극소수의 사례가 아니고 그동안 쉬쉬해 온 불편한 진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여경 대상 성범죄는 경찰 조직 내 대표적인 '암수범죄'입니다.  여러 범죄 중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직접 신고 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범죄는 실제로 드러나는 수치보다 숨은 범죄의 수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휴직기간을 빼면 제가 여성경찰로 살아 온 지 얼추 13년이 되는데, 그 기간 동안 직접 겪은 조직 내 성비위의 기억을 당장 떠올려보니 범죄 인지가 가능한 것만 3건이 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비단 저 혼자만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대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희롱성 발언에서부터 허락을 구하지 않은 부적절한 신체 접촉, 강제추행, 준강간, 강간에 이르기까지 남경에 의한 여경 대상 성범죄는 일반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동료 여경, 선•후배 여경과의 대화 속에서 인지되는 성비위를 모두 수치화한다면 국민들 앞에서 차마 밝히기 어려운 부끄러운 통계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추행을 당한 어느 20대 여성이 피해자 진술 조서를 받고 있던 저에게 고맙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저처럼 여경이 되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경이 되면 경찰이니까 사내 성범죄나 성희롱 같은 건 당연히 없지 않냐”고 말하던 그 여성에게 차마 그렇지 않다는 말은 못하였습니다.  계속되는 남경들의 성비위 행태, 그 중에서도 여경 대상 성범죄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방식으로 예방을 도모해야합니다. 특히 야근 후 적절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반강제적인 교육 참여 종용, 남경• 여경 모두에게 공감 받지 못하는 집체 교육, 형식적인 교육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버 교육은 모두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이런 일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소수의 개인적 일탈이고 어느 직종이든 일어나는 현상이다.’ ‘소수의 비위 사실로 전체 경찰을 일반화시켜 비난하지 말아 달라’ ‘경찰조직보다 다른 조직이 더 하더라’ 등, 이런 낯 부끄러운 항변은 경찰 제복 입은 자들이 스스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9-11-12 | hrights | 조회: 24 | 추천: 1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최공돌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구룡리다. 구룡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구룡리는 충남 홍성에 있는데, 홍성은 바다가 가깝고 논이 넓다. 최공돌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마을회관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한글을 배우고 있다. 80세가 가까워서야 공부를 시작해 이제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은 생전에 할머니가 제 이름 석자를 쓰지 못하는 것을 두고 종종 타박했다. 할머니는 습자지에 이름 석 자를 쓰고서 가장 먼저 남편을 떠올렸다.  나는 홍성에 가 본적이 없다. 최공돌 할머니를 만난 적도 없다. 앞서 언급한 정보들은 모두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날 프로그램의 주제는 할머니들의 늦은 배움이 아니었다.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연필로 적어 내려간 의젓한 생김새의 글자들보다, 공부를 마치고 끓여 드시는 소꼬리탕과 해물탕이 더욱 무게있게 다뤄졌다.  그날 소꼬리 전골과 신선한 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다만 그녀들의 글씨가 마음에 남았다. ‘홍성은 바다가 가깝고 논이 넓다’는 대목에서, 할머니들 고생이 많았겠구나, 짐작을 시작해서였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들은 아마 바다가 주는 일, 논과 들이 주는 일들을 두루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부지런히 그 일들을 하고 계실지 모른다. 고향의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이른 새벽 밭일을 하고, 해가 뜨면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고, 돌아와 아이 젖을 물리고, 다시 밭으로 나가 종일 돌을 골라내어야 했던 젊은 시절의 ‘삼춘’들을 구룡마을에서도 보는 듯했다.  방송을 보다 말고 메모지를 꺼내 최공돌 할머니와 구룡리의 이름을 적어둔 것은, 마침 그날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기 때문에 눈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내가 특별히 눈물이 많아서는 아니었고, 극장을 나서는 다른 관객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의 원작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나는 내 세대로 묘사된 김지영씨의 고난에 아주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못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데부터 그녀와 나의 형편은 출발점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설과 영화가 묘사한, 그녀가 성장과정에서 겪은 성폭력의 기억에 대해서도 그랬다. 직간접적으로 겪은 끔찍한 기억은 ‘버스 안 성추행과 가족에 의한 2차 가해’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김지영씨가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는 묘사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원작 소설이 발표되어 인기를 얻을 때도 이런 목소리들이 많았다. ‘내가 더 불행했고, 내 친구는 더 아팠는데, 고작 이 정도로?’하는 말들을 자주 들었고 그런 불만족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  하지만 그런 불만족에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 켠은 불편했다. 더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이 덜 힘들게 사는 이의 아픔을 낮춰볼 이유가 되어도 좋은가 수도 없이 생각했다. 아주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이 시대 한국사회 여성인 김지영에 공감하며 원작을 눈물로 읽어냈다는 후기들도 외면할 생각이 없었다.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원작을 읽었고, 또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극장에 앉았다.  영화를 보러갈 때 들고 갔던 의무감은 극장 바닥에 시원하게 내려놓고 나왔다. 공감하지 않았다면 울지도 못했을 테니 어쩌면 당연했다. 가장 크게 눈물샘이 터진 지점은 김지영씨와 그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가 동시에 이어지는 장면에서였다(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기로 한다).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라 무방비상태에서 당하고 말았다.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시절의 엄마를 떠올렸고, 엄마가 되기 전 한 여자의 삶을 상상했다. 한 사람이,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 했을 것들을 짐작해보았다. 감독의 의도대로 기꺼이 ‘우리 엄마’를 떠올렸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고 있었다.  벌게진 눈으로 고향의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엄마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었다. 마침 그날 엄마도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왔다고 했고,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울음이 터진 지점이 같았다. 엄마도 자기 엄마를 떠올리며 울었다고 했다. 자신이 포기한 것을 두고 터진 회한이 아니라, 엄마의 엄마 삶을 떠올리며 더 아팠다는 말에서 명치가 저렸다. 사는 지역과 세대가 달라 자연스레 삶의 무게가 달라졌어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는지 모른다. 사진출처 -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이미지  82년생 김지영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대단한 발견도 아니다. 그저, 여기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을 건네고 있을 뿐이다. 최공돌 할머니는 원래 최공돌 할머니였으나 스스로 써내려간 글자를 통해 자신을 끄집어내셨을 것이다. 원래 있는 것을 꺼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낼 땐,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소소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주는 것, 내 가족과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한 번쯤 해 본다고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시도가 손해라고 느껴도, 기껏 영화 한 편 관람료만큼의 손해다(조조할인 또는 심야할인, 각종 카드할인 혜택을 받으면 그 손해는 더욱 줄어든다). <82년생 김지영>이 더 이상 성과 세대와 불행의 크기, 어떤 차이들을 대결하는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9-10-30 | hrights | 조회: 273 | 추천: 22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마음을 짓눌러,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단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 후기 이덕무 수양서 <사소절(士小節)> 중에서) 인권 ‘감수성’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인권교육은 기본적으로 공공언어로 하는 교육입니다. 그래서 인권 교육은 언제나 인권 감수성이 높은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감수성은 항상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개별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교육하는 사람은 언제나 역동적으로 인권의 감수성을 일깨워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하는 사람의 역량 강화와 자기 계발, 전문성 강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권은 몸과 머리에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도록 반복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은 보행이 어렵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비워두어야 한다는 것을 암기하고 아는 것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 자동차 등이 대안이 별로 없는 필수인 것과 휠체어가 보행 방식이자 신체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디딜 공간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할 권리임을 깨달아, 비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법을 준수하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인권은 그래야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인권은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요컨대, 인권의 이론과 이해는 인권 교육의 필요조건이며 감수성 교육과 개발은 인권교육의 기본이며 충분조건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이해와 인식 개선을 넘어 인권의 문제들이 공감이 되어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에 인권교육은 단기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언제 어디든 일관되게 인권이 지켜지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권 감수성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실천, 바로 ‘말과 글’· ‘행동과 일상생활’로 드러나고 만들어지며 미디어를 통해 대량으로 나타나고 공유되고 소통됩니다. 그래서 인권교육에서 강의하는 사람이 쓰는 말과 행동, 이야기는 아주 중요합니다. 교육을 받는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그 인식과 사상과 언어 행동을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 장애 감수성 : 장애에 대해 생물학·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공포와 인식을 넘어 장애를 마주보고 이를 수용하여 차별과 편견 혐오를 발견하여 대응해서 이를 철폐시키는 것.  ■ 인권 감수성 : 일상생활의 다양한 자극, 사건, 작은 것에서도 인권의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이를 최우선으로 하여 옹호하고 실천하여 인권 문제로 변화시키는 과정.  ■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 사회 여러 문제에서 성차별의 요소를 찾아내는 민감성. 성별의 차이로 생기는 이해와 반응, 결과의 차이를 인정하며 사회, 문화, 관습, 통념의 변화에 달라짐.  ■ 미디어 디지털 리터러시란 무엇인가요?  Literacy라고 하면 옛날에는 글을 읽고 쓰고 해석하는 능력을 뜻했으나 지금은 글을 포함해 사진, 동영상, 영화, 광고, 스마트폰의 사용 등 정보를 다루고 표현하는 모든 영역을 뜻합니다. 미디어(정보)를 만들고, 미디어(정보)로 표현하고, 미디어(정보)를 선택하고, 미디어(정보)를 해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이나 행위를 말합니다. 여기서 미디어는 글과 그림, 사진과 동영상, 연극 영화, 음악, 만화(웹툰) 사회적 연결망(S.N.S) 모두를 칭합니다.  장애인에 대해 미디어(정보)를 어떻게 인권적으로 창작·생산하고 어떻게 인권적으로 수용하고 어떻게 인권적으로 비평할 것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장애인 인권과 관련한 여러 매체에 대하여 기관들이 모니터링을 하고 의견을 발표하는 것도 리터러시 활동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판과 재해석을 기반으로 다시 인권의 시각에서, 미디어를 창작하고 생산하는 작업을 해보는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그 관점에서 직접 미디어를 만들고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미디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비평해보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freepik 장애 관련 용어, 언어는 왜 중요한가요? 사람들은 언어로 서로 이어지고 만나고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 1) ■ 언어에 담긴 인권 : 장애인 차별어 및 혐오표현에 대항하여 인권적인 표현 찾기(Counter Speech!)  말은 표현하는 대상에게 일정 가치와 판단을 담아서 소통과 교류의 도구로서 다른 이에게 전달되고 알려서 그 인식을 퍼뜨립니다. 특히 특정 계층이나 일부 집단 전체 또는 어떤 요소를 지칭하는 것일 경우 그 낱말은 사회적인 규범과 힘을 가집니다.2) 특히나 ‘차별’과 ‘혐오’, ‘비하’의 의도를 품은 경우 말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그것을 듣는 사람의 의미 수용과 해석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수신자가 어떤 표현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그 표현이 공적이거나 사회적인 표현일 때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편파적이거나 편견적이며 반인권적 언어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언어만을 바꾼다고 차별어가 없어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를 바꾸는 데에 앞서 장애인 차별적 표현인지 아닌지, 과연 바뀐 언어가 장애인들의 차별적 의식을 완화하는 데에 기여하는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3) ■ 차별과 혐오의 원인과 구조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별과 혐오 표현, 언어 사용의 근본 원인들은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이지만 일단 만들어진 말들은 다시 그 사회 갈등과 대립을 생산하고 증폭시키며 행동으로 이어지며 생활에서 습관이 되어 굳어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굳어집니다. 요즘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잦아들 여지도 없이 뜨거운 논란을 빚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슨 용어를 쓰든, 현재 ‘장애인’이란 용어는 모두가 인정하는 법적인 용어이지만 ‘장애(障碍)’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의미와 인식을 고민해보고, 대안을 찾는 인권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차별어의 사용과 혐오 발언들은 결국 구체적인 차별 행위와 모욕으로 드러나고, 더 나아가 혐오 범죄 또는 증오 범죄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언어생활은 개인적이고 자의적이며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와도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언어 부림의 인권 민감성은 인권 강의에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감수성은 한 개인에게, 한 기관에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속되어야 합니다. 댓글을 달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는 것도 ‘행동’이고 일상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 언어들은 사회적으로 전염성이 있으며 그 전염성은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듭니다. 일차적으로 교육하는 사람들과 공적인 영역의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언어의 전염성을 차단하고 사람들이 그런 행동들을 스스로 단속하고 바꿀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 듣는 사람들이 많은 공공 영역의 사람들의 언어 부림은 특히 중요합니다. 특히 순환 혐오 표현이나 혐오를 은폐하고 있는 표현들이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듣는 사람이 많고,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정치인이나 종교지도자 및 공무원들의 공공영역에서 장애인을 생각한다고 하는 말들이 당사자들을 더욱 공분하게 만드는 이유는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모욕을 감성적인 것으로, 개인의 문제로 은폐하면서 그런 의식을 오히려 널리 퍼뜨리고 사회적으로 교육시키기 때문입니다. 차별어와 혐오 표현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표현의 효과를 아예 없애거나 그 표현을 전혀 안쓰는 것입니다. 말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이, 종교인이, 권력자가 자꾸 이 말을 쓰고 또한 언론이 이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그 표현 그대로를 자꾸 대중들에게 노출시키면 오히려 그 혐오와 차별의 말에게 생명과 힘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순환 혐오이자 이중 혐오입니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전파하고 심지어 그 비판까지도 다시 혐오로 전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포용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 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행위는 일종의 정신 장애다 ”  “장애를 극복하는 피나는 노력을 '특권'으로 장애인을 비하하지 말라“ ”장애인을 괴롭히면 ‘특수학급’으로 보내버린다.“ 1) W.v.Humvolt : Gesammelte Schriften, Akademieausgabe, 7. Bd. S. 60. 2) 이러한 관점에서 언어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과 이론을 사회언어학 [sociolinguistics, 社會言語學]이라 부른다.  3) 『사회적 의사소통 연구; 장애인 차별 언어의 양태에 관한 연구』 7쪽(임영철, 2008, 국립국어원) 
2019-10-16 | hrights | 조회: 69 | 추천: 1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예전에 지역에서 꽤 큰 시민단체에서 실무책임자로 일했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후원 행사를 열거나 후원회원 가입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낼 때마다 잊지 않고 매번 하는 말이 있었다. 그건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회원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저희 단체를 후원해 주세요” 라는 문구였다. 한번 두 번 받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몇 년간 계속 받다 보니 후원해 달라는 이유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것밖에 없나? 오히려 단체가 지역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으니 후원해 달라고 하는 적극적인 문구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에 인권단체를 만들고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그 선배처럼 나도 비슷한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단체가 격주에 한번 회원과 시민 1,500여 명에게 보내는 뉴스레터의 마지막은 항상 “대전충남인권연대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사양하고 시민의 참여와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후원회원 가입을 요청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지원 없이 독립적인 인권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시민들에게 후원회원 가입을 요청하는 문구에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는 건 어딘지 모르게 궁색해 보인다.  몇 년 사이 지역사회에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는 이른바 중간지원조직이 많이 생겼고 그런 기관에 가서 일하는 시민사회 출신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확장이라는 측면과 정부조직이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사업 형태를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중간조직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지역에서도 이제 기존 시민단체는 중간지원조직과의 후원이나 협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 단체도 대전시가 전국 최초 민간위탁으로 설립한 대전시인권센터와 올해 처음 공동주최형식으로 진행한 인권학교는 60명이 넘게 수강하면서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렇게 우리 단체뿐만 아니라 지역의 많은 단체가 중간지원조직과 협업을 하고 때로는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런 연대사업들이 기존 시민단체들에 마냥 좋기만 할 것인지는 판단이 정확히 서질 않는다. 위에서 말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단체들의 독립적인 활동과 성장을 더디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당장 우리 단체의 경우 내년에도 다시 인권센터와 공동으로 인권학교를 할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상황이다. 대전시의 재정지원을 받는 인권센터와 같이하는 사업이라 올해는 수강료가 무료였는데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하다 보면 우리 단체 독자적인 사업의 경우 유료 강의를 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같으면 모르겠지만 강좌도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좁은 바닥인 대전에서 어떤 강좌는 무료이고 어떤 강좌는 유료라면 시민들은 당연히 무료강의를 찾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제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지방자치단체나 중간지원조직의 지원을 받지 않고 하는 사업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열악한 단체 형편을 고려하면 그게 지적받을 일인지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단체의 열악한 상황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 시민단체는 몇 개 단체를 제외하고는 두 명의 상근자도 두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각한 것은 이를 타개할 변화의 움직임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보내주는 뉴스레터에 신입회원이 몇 명 들어왔다는 소식은 정말 드문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사실 뉴스레터나 소식지를 보내주는 단체는 몇 군데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지원조직에 기대는 사업만 하다 보면 단체의 재정적, 사업적인 독립은 점점 힘들어지고 시민단체 본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기능마저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지방자치단체, 중간지원조직과의 거버넌스는 아주 중요한 시민단체의 활동영역이다. 하지만 개별 시민단체의 독립적인 활동과 성장의 토대가 약한 가운데 전개되는 협력, 특히 재정적 지원은 그 자체로 시민단체 성장의 위협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자면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회원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단체’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지향해야 할 운영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중간지원조직과의 거버넌스와 연대는 물론 중요하지만 원활한 단체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재정과 활동성은 독립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해서 시민단체의 독립적인 활동과 비판기능을 위해서 시민단체의 후원회원이 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회원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우리 단체를 후원해 주세요”라는 말은 어색함이나 진부함의 홍보문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성장하는데 근간이 되는 당당한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요청을 접하는 시민들이 외면하지 말고 보다 많은 지지와 후원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2019-10-10 | hrights | 조회: 100 | 추천: 3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며칠전 오랜만에 나간 기자회견에서 예전 활동했던 단체에서 친했던 지인들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도 묻고 근황도 묻다가 최근 아디가 추진한 ‘팔레스타인평화여행’을 이야기했더니 그 분이 놀라며 ‘거기는 목숨걸고 가야하는 곳 아니야?’라고 한다. 흠칫!! 워낙 주변에서 많이 들어 무덤덤해질만도 한데, 씨익 웃으며 “목숨걸지 않았고 잘 다녀왔어요”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을 다루는 언론과 단체의 이야기는 한결같다. 누가 얼마나 다치고 얼마나 죽었는지? 아시아 분쟁지역의 인권과 평화를 다루는 우리 단체 역시 마찬가지일때가 많다. 이런 상황속에서 일반인 뿐만 아니라 활동가들 역시 팔레스타인을 ‘목숨걸고 가야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대안학교선생님, 기자, 일반 참가자들 5명을 모시고 약 열흘 간의 ‘팔레스타인 평화여행’을 다녀왔다. 뜨거운 퇴약볕아래 에어컨 안되는 차를 타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전역을 돌아다닌 여행이었지만 참가자들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감탄하며 여행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여행 마지막즈음 소감을 묻는 질문에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그동안 예상했던 팔레스타인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놀랐다‘라고 하신다. 작년의 여행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참가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팔레스타인은 굉장히 복잡한 입국절차와 철옹성과 같은 국경을 넘어야 하고 방탄조끼와 헬멧이 필요한 곳이지 않을까 했겠지만 예루살렘에서 버스타고 30분이면 도착했던 그 곳이 팔레스타인 마을이었고, 시끄러운 듯 외국인에게 환영한다라고 요란한 인사를 하는 이들이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그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2년에 걸쳐 진행된 팔레스타인 평화여행의 목적은 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참가자에게 전달함에 있다. 테러와 전쟁이라는 프레임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높은 장벽속에 감춰진 ‘사람’들의 지난한 저항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비록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곳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통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우리역시 이 상황이라면 마찬가지로 ‘저항’할 수도 있겠다는 공감대 형성이 주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모인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팔레스타인 공식명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저항을 보았음을 이야기했다. 사진 출처 - 필자  여행기간 내내 모든 참석자들은 현지로부터 ‘당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당신들 나라에 그대로 전달해 달라’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아디와 참석자들은 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을 알리는 ‘평화여행 보고회’ 행사를 10월 하순에 가질 예정이다. 여행을 통해 가본 도시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 활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영상과 기록을 통해 전해보려 한다. 또한 국내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현지 여행을 통해 그 심각성을 절감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물 문제’, 이를 수개월동안 연구조사한 팀의 인권보고서도 발표할 계획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이슈는 관심갖기 어려운 주제이다. 솔직히 국내 이슈도 차고 넘친다. 하지만 혹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있고 식민점령의 부당함에 분노하며 한번이라도 고민하신 적이 있는 사람이 계시다면 이 행사에 꼭 오셨으면 좋겠다. 소수라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상을 이해하고 점령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는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19-10-02 | hrights | 조회: 98 | 추천: 4
이회림/ 00경찰서  여행의 영어 표현인 travel의 어원을 아시나요? Travail, 고통, 고난을 뜻한다고 합니다. 익숙하고 안락한 나의 공간에서 떠나 평소보다 긴장된 상태에서 매일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것. 이 자체가 흥분이 되고 즐겁기도 하지만 정말 피곤하고 힘든 것 또한 여행입니다. 그래서 늘 여행이 끝나면 돌아갈 집과 고향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있다는 생각에 안도를 하곤 하지요.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저의 여행이야기를 들려 줄 엄마가 곁에 없습니다. 약 2개월 전에 엄마가 먼저 하늘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거실 창가에 비스듬히 누워서 일본에서 오는 큰 언니를 기다리다가 숨을 거두셨습니다. 마치 낮잠에 스르르 빠지는 사람처럼 조용히 평온한 표정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저는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직장에서 배운 대로 심폐소생술도 해 보았습니다. 땀과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는 동안 119 구급대원들이 왔습니다. 엄마의 심장이 완전히 멎은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큰 딸은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서 오고 있었고 나머지 딸 셋, 아들 하나, 그리고 아빠가 보는 가운데 하늘로 가셨습니다. 사진 출처 - 필자  저는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스웨덴으로 떠났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일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스웨덴의 여름에게 저를 부탁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스톡홀름의 남쪽에 있는 공원묘지에 혼자 갔습니다.   “skogskyrkogården” 스웨덴 말로 직역하면 “숲 묘지”이지만 시민들이 공원처럼 드나들어서 인지 “공원묘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제가 이 곳에 세 번이나 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첫 날은 맑았고 두 번째 날은 흐렸고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마치 꿈 속에서나 봄 직한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그날의 풍경은 마치 엄마의 하늘나라 일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푸른하늘에, 싱그러운 초록빛들과 아이들의 순수한 몸짓들. 엄마가 이런 곳, 아니 이 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평안히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슬프면서도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내내 엄마가 옆에 같이 있다고 상상을 하며 엄마에게 여행 가이드처럼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말이지요. 어쩔 수 없이 매일 눈물 바람이었고 항상 젖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계속 “엄마,, 엄마” 를 입 속에 되뇌는 것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낄 때, 그리고 내가 나름의 정의와 진실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최선을 다 했음에도 그것이 오해받을 때 정말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힘듦은 엄마를 먼저 하늘로 보낸 상실감과 그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에, 제가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못해서 골든타임 안에서도 엄마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로 갔으니 나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당연하다는 듯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그랬다가 엄마가 살아 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마음을 고쳐먹곤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몫까지 열심히 세상 구경을 다니며 돌아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엄마가 세상에 없지만 사실상 엄마와 함께한 여행이었습니다. 아마 저는 앞으로 어디를 가든 늘 엄마를 수호천사처럼 생각하면서 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의 첫 머리에, 여행의 어원이 ‘고통’ 이라는 뜻의 travail에서 나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통의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항상 제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야말로 진정한 나와 만나는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전혀 꾸며지지 않은 나를 만나고 싶을 때는 저처럼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나보라구요. 특히 결혼 안 하신 미혼 여성인 분들이 용기내서 혼자 여행을 많이 떠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상치 않은 기분 좋은 만남, 우정, 사랑, 고통, 후회...결국은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할 친구인 나 자신과 고요히 조우하게 되는 순간, 이런 소중한 나날들을 음미해보시길 바랍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다소 외롭지만 그 외로움마저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고, 그것은 정말이지 하늘에서 특별히 주어지는 선물이니까요.
2019-09-19 | hrights | 조회: 213 | 추천: 4
주윤아/ 교사  미국 조지아주(Georgia)에 사는 친구 집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지역의 박물관과 명소를 둘러보는 동안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큐레이터가 여성 운동이나 위인에 대한 소개를 해 주거나 관련 내용이 대체로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애틀랜타 히스토리 센터에는 그 지역 출신의 여성 활동가나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한 역사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 중 애틀랜타(Atlanta) 출신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역사학자인 할아버지에게 수없이 들었던 남북 전쟁과 노예 이야기를 자신의 고향인 남부의 시선으로 풀어내었다. 그리고 소설의 여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는 당시 여성들의 진출이 드물었던 직업에 도전했던 작가 자신의 성향과 닮은 면이 있어 보였다.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대공황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녀는 출간 이후인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작가로서가 아닌 여성 운동가로서 활동했다. 진학이 어려운 흑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정하고 남부의 형편이 어려운 흑인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구호와 기부 활동을 했다. 그녀의 이러한 숨은 활동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에야 점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대작만을 남긴 채 요절한 그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만 알고 있지만, 여성 운동가로서의 그녀의 후반기 생애도 재조명받기를 바란다. 만약 그녀가 북부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 혹은 어떤 내용의 작품을 썼을까 하는 상상도 잠시 해 보았다.  그리고 또 한 명, Space Museum에서 알게 된 ‘MERCURY 13’ 중의 1인인 제리 코브(Jerrie Cobb)의 이야기는 더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최초의 예비 여성 우주비행사이자 평생 우주 비행을 염원했던 파일럿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경비행기를 타 본 이후 비행의 자유와 해방감을 잊지 못해 파일럿의 꿈을 갖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운송 파일럿으로 취업한다. 이후 여성 우주비행사 육성 프로그램인 ‘Mercury project’에서 'FLAT(First Lady Astronaut Trainees)'라는 시험을 통해 선발된 13인(일명 ‘MERCURY 13’) 중 1인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비행경력과 실력보다 외모를 부각하여 소개하는 등 대부분의 예비 여성 우주인들을 가십거리로 소비하였다. 그렇지만 이 시험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주여행에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성도 높다는 새로운 연구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 여성들에 대한 테스트는 NASA의 달 탐사(아폴로 계획)에 밀려 최종 단계 직전에 중단됐다. 여성 승무원들이 갑자기 사망할 경우 우주 비행 계획이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비공식적인 이유였다. 코브는 시험 과정 결과를 근거로 여성도 우주 비행사 육성 프로그램에 선발해 달라고 2년 동안 미국 의회에 청원 운동을 벌였으나 정부와 NASA의 성차별로 인해 끝내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1963년부터 우주 비행 대신에 자신의 경비행기를 타고 아마존 지역에 의료 생필품 등 인도 물자를 전달하며 항공 선교사로서 자원봉사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 제리 코브(Jerrie Cobb)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2012년 미 우주항공 명예의 전당(NAHF)에 이름을 올릴 당시 “나는 개척자가 아니다. 단지 마음껏 날지 못한 한 여성일 뿐이다”라는 그녀의 탄식에 가슴이 먹먹하다. NASA에 따르면 여성 우주인의 우주유영은 1984년 옛 소련의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가 처음 개척한 이래로 35년간 계속됐지만, 현재까지 500여 명이 넘는 전체 우주인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1%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고,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6대의 우주선에 여성 우주인은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최근 NASA는 아르테미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의 쌍둥이 남매) 프로그램을 발표하여 2024년까지 달에 다음 미국인이자 최초의 여성을 착륙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한 이후 50여 년 동안 세계 각국이 우주 탐사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주복, 우주선의 좌석 등 우주에서 사용하는 도구들이 평균 남성의 크기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 등을 볼 때 우주 탐사의 성평등 철학에 대한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 실제로 올해 초 NASA는 여성 우주비행사들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입을 우주복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여성 팀'의 우주유영 계획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진심으로 인류 역사상 달을 밟는 최초의 여성 우주인의 탄생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인권과 젠더의 렌즈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기본부터 전 과정을 철저히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번에 둘러본 곳은 관광 명소보다는 시골 마을들인데, 이곳의 주민들은 비교적 아동과 여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었다. 또 양육과 가정을 우선시하므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능력과 여건에 따라 가사와 돌봄 노동을 합리적으로 분담하고 있었고, 여성 중심의 커뮤니티에 남성들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또 의류나 액세서리 일반 매장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디자인의 제품들이 구비되어 있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20여 일의 아주 짧은 체험으로 속단할 수 없고 그것이 미국 전체의 모습이라고 착각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미국은 여전히 인종 갈등이 심각하고 통계적인 성평등 지수 순위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마을, 사회 곳곳에서 성차별을 줄여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자세를 눈으로 확인한 시간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그 길은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더디고 미숙하고 불편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더구나 내가 깨우쳐 내 일상부터 하나둘 바꿔가기 시작하는 것 외에 달리 대단한 해법도 없다. 예컨대 가사와 돌봄 노동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바로 그런 마음이 출발이 되는 것이다. 왜냐면 국가나 정부에서 이와 관련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완벽히 마련한다 해도 내 마음이 온전히 수용하지 않는다면 성평등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그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 1. Margaret Mitchell House & Museum 2. 하버드-C.H.베크 세계사 1945 이후: 서로 의존하는 세계, 入江昭 엮음(2018) 3. 우주 시대를 개척한 우주비행사, Sonia Gueldenpfennig(2009) 4. 한국일보 [가만한 당신], 최윤필 기자(2019.06.17) “난 마음껏 날지 못한 한 여성일 뿐” 젠더 벽에 막힌 첫 여성 우주비행사 후보 제리 코브
2019-08-20 | hrights | 조회: 242 | 추천: 10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Pride! Disability·Enjoy! Disability·Power! Disability “아무리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고 해도 물리적 장벽이 제거되고 거리에 저상버스가 넘쳐나도, 장애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장애인을 보고 수군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남아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낯선 존재로 바라보는 이상, 장에인에게 우리 사회 역시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자유공간 2007년 11월 12월호 2-3p」(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총장)) 나는 ‘장애’인으로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걷는데 목발을 이용하는 40대의 평범한 서울 시민이다. 보다 먼 거리를 이용하는데 단지 전동 스쿠터를 이용하는 조용한 도시의 소시민이다, 그러나 내가 이 서울에서 이동하고 생활하고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나를 보는 사람들을 나를 이 서울이란 도시에서 힘들게 차별받고 고통 받는 ‘장애’인으로 기억하고 고민하고 배려한다. 이 도시를 이루는 여러 가지 것들은 나를 끊임없이 ‘장애’인으로 일깨우고 단지 걷는데 목발을 사용하고 몸을 지탱하는 것에 약간의 지지대가 필요한 김형수란 개인을 단지 사람들에게 ‘장애’인으로 아로 새긴다.  나와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도 관계의 ‘장애’인으로 느끼게 만들고 차별받게 하며 그들을 동등한 친구나 선후배, 공적이며 객관적인 사회관계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애틋한 도우미나 봉사자로 만든다. 단순한 건축물의 장벽과 구조가 그럴 수도 있고, 입구에만 승강기가 있고 환승역에는 승강기가 없다고 알려주지 조차 않는 일종의 도시 구조가 나와 사람들의 관계를 일그러뜨린다. 지하철역무원에게는 손님이 아니라 리프트를 타고 한번쯤 목숨을 걸어도 되는 존재가 되며, 항상 시설이 없어 늦었다고 변명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 장면 1. 관계의 장애인  얼마 전, 휠체어를 이용하는 후배와 함께 여의도 국회 앞 빌딩, 지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적이 있었다. 한창 퇴근시간이었고 사람들이 붐비는 많은 식당 중에서 30분 넘게 헤맨 끝에 겨우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조그마한 분식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식당 아줌마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 후배를 보자, “휠체어는 여기서 식사할 수 없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 일행이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자리가 있었건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은 우리가 그 말에 나가 주었으면 하셨다.  물론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장애인이 정말 싫거나 혐오해서 거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손님이 몰리는 저녁 시간에 좁은 분식집에 덩치 큰 수동휠체어가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곤란하셨거나 식당에 장애인이 있는 것을 보고 식당을 오려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발생할까봐 염려하시는 눈치이셨다. 그렇게 우리는 식탁에서 의자만 빼면 된다고 해서 겨우 식사를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그런 장애인과 일행이란 이유로 식당이용을 거부당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 장면 2. 시간과 거리에 관한 장애인의 상대성 이론  전동스쿠터를 타고 7호선 맨 끝 온수역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이 있는 2호선 홍대 입구 역으로 오기 위해서 대림역에서 환승하려고 했더니 환승 구간에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7호선 대림역 지상으로 올라와 후배들과 10분을 걸어 2호선 대림역에 도착, 개찰구로 갔더니 승강기는 없고 휠체어 리프트만 설치되어 있어서 위험하겠기에 역무원에게 다음 역에 가서 타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 역무원이 그냥 리프트타고 가라고 해서 리프트에 살짝 실었더니 고장, 괜히 역무원에게 핀잔만 받고 다음 역까지 갔다. 지하철이 끊길 것 같아, 같이 가겠다는 후배들을 억지로 보내고 구로디지털역까지 달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고 집에 오니 새벽 1시. 일반적으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하였다. # 장면 3. 보이지 않는 무인도.  우리 동네에는 서대문구청에서 운영하는 장애인무료버스와 서울시 공영버스로 운영하는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와 굴절버스가 모두 지나간다. 그런데 난 이 두 종류의 버스를 아직 단 한 번도 이용해 본적이 없다. 장애인무료버스에 달린 리프트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찔한 경험이 싫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바쁜 서울을 살아가는 사회인 중에서 30분 넘게 버스를 기다리며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절대 아닐 것이다. 아주 가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여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려고 하면 아직도 간간히 들을 수 있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한마디가 있다. “이렇게 혼잡한데 편하게 집에 있지... 왜 나왔어?”라며 나를 걱정해 주는 여러 시선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난 이 도시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경쟁하여 살아남고만 싶은 삼십대 일뿐이다. 나도 가끔은 출퇴근 시간에 정전이 되어 지하철에 갇혀있었던 찜찜한 기분에 공감하며 직장 동료들의 얘깃거리에 동참하고 싶을 뿐이다. 편하지만 외롭고 삭막한 양로원보다는 불편하지만 언제나 왁자지껄한 마을 노인정이 좋다는 어르신들의 마음에 100%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도시에서 장애인들은 보이지 않는 무인도에서 살아간다.  도시 외곽이나 그린벨트의 장애인 생활시설이라는 무인도에 살고, 도시 변두리에 임대아파트란 블록으로 만든 무인도에 살고, 우리들끼리 교육하면 편하고 좋다는 이유로 특수학교라는 이름의 무인도에 산다.  일천 만 명이 넘게 사는 이 도시에서 ‘장애’인이란 내 존재에 늘 각성되어야 하는 나는 그래서, 서울특별시의 서대문구 연남동의 로빈슨 크루소이다. 도시는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이 요구하고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기능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더욱 외롭다. 이 도시는 나에게 ‘장애’를 만들고 느끼게 하고 장애인 카드를 만들게 한다. 장애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장애’ 도시이다. 사진 출처 - 구글 # 느낌 1.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에 절망을 느낀다.  사람들이 이 도시가 만들어준 나의 장애를 보면서 그 불편함과 불가능함에 내가 고통을 받고 차별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큰 차별은 다른 곳에 있다. 도시를 계획하고 투자하는 것에 있어 나와 같은 사람이 항상 지원하고 투자 대상이 아니라 도시 예산에 부담을 주고 다른 일류시민에게 무엇인가 지장을 주고 ‘장애’를 초래하는 사람으로 느낄 때, 그렇게 2류 시민으로 취급받을 때 난 비참하고 또 비참하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승강기를 만들어 달라고 서울시를 상대로 싸울 때, 저상버스를 운영하라고 요구할 때 서울의 도시가 정치적 권위의 상징 기능밖에 없는 여의도 국회의 둥근 청동 지붕의 장식과 그 장식의 청소를 더 우선시 할 때, 이미 ‘장애’를 부여받은 시민과 나는 서울특별시에서 밀려나 있다. 우리가 장애인에 대한 도시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할 때 관료들은 늘 예산 부족을 말한다. 그런데 모든 도시민의 욕구를 채워줄 수 예산은 항상 부족하다. 문제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예산의 ‘우선순위’인 것이다. # 느낌 2. 상암동 하늘 공원에 가면 가끔 서울 시민이 될 수 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가끔 하늘 공원을 간다. 한강 둑을 따라 스쿠터를 타고 애인과 강바람을 맞으며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긴다. 물론 우리를 보는 많은 사람들은 시설에서 나들이 나온 장애인과 도우미로 생각하고 애틋한 눈빛을 보낸다. 그렇지만 우리의 관계는 앞에 가는 저 팔짱끼고 가는 연인들처럼 닭살스럽다.  한강에서 하늘공원까지는 나에게 ‘장애’를 부여하는 장애물이 별로 없다. 다른 서울 시민들처럼 강바람에 몸을 맡기며 갈대밭 사이로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며 데이트를 즐기게 하는 나무 경사로와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다. 물론 하늘공원 서비스센타에서 전동 스쿠터를 충전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종종 거부하시기는 하지만.  생태 공원으로 만들어진 청계천 양 끝에 멋진 경사로가 있어 청계천에서 나는 서울 시민이 될 수 있지만, 중간에도 내려올 수는 경사로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여자 친구를 먼저 내려 보내고 혼자 멀리 에둘러 보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물가 앞까지 안전하게 내려 갈 수 있는 돌담길이 있다면 여자 친구 혼자 물장구치는 것을 등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 하는 애잔함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과 시․청각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위한 도시계획과 건축물들이 도시의 상징이 되고 기호가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복잡한 출근길에 시달리고 동네 슈퍼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물건을 사고 지역의 은행과 우체국을 드나드는 것. 가까운 지역의 수영장에 갈 수 있고, 걷고만 싶은 거리가 아니라 전동 휠체어도 접근 가능한 거리에서 동네 주민들과 나란히 걸으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진대, 안타까운 일이다. Pride! Disability·Enjoy! Disability·Power! Disability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에서 2007년 무장애일터만들기 NGO 기관 순례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용한 모토이자 캠페인. 그 중에서 Pride! Disability는 장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뜻하는 Disability Pride의 변용이다. Disability Pride는 장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기도 하다. ‘장애와 자부심(Disabled and Proud)'이란 모임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Disability Pride는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인 부분에서의 다름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장애가 다양한 사람의 모습 중에 일부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공표하는 것이고 장애에 낙인을 두는 사회구조에 대한 도전이며, 오랫동안 장애억압적인 사회가 규정한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믿음과 느낌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자유케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Sarah Triano 2004- " 「장캐 2007 vol 27 11p」
2019-08-07 | hrights | 조회: 250 | 추천: 7
서동기/ 인권연대 간사 위플래쉬(Whiplash)라는 영화가 있다. 채찍질이라는 뜻의 제목이다. 최고의 드럼 연주자를 꿈꾸는 음대 신입생 앤드류, 그리고 그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교수 플래쳐의 이야기다. 플래쳐는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의 폭언은 기본이고 자신에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고 쫓아내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감상 가운데 한국 사람들에게서 유독 도드라지는 해석이 있다. 완벽한 연주를 위해 그 정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며 완벽한 연주, 천재적인 연주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아무리 납득하기 어려운 고통이더라도 마땅히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도를 넘은 플래쳐의 행위와 광기를 비판하면, 무엇을 위해서 노력은 해보고 투덜대는 것이냐며 비판한다. 사진출처 - 영화 <위플래쉬>  며칠 전 대안학교에서 만났던 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자퇴 후 꽤 오래 방황을 했던 친구다. 마음을 다잡고 검정고시를 치렀고 대학에도 입학했다. 자기와 같은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며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한 달 전쯤 드디어 실습기관 면접에 합격해 현장으로 나가게 되어 긴장되고 설렌다며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더니 일주일 만에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컴퓨터 문서 작업 경험이 없는 그는 매일 실습일지 작성이 고통이었다. 문서에 표를 그리고 편집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았는데 매일 쏟아지는 일지 작성과 다른 실습생들과의 비교 속에서 무기력했고 도망치듯 실습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바쁜 일과 속에서 한글 문서 편집 따위를 알려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나 조직은 없었다. 다만 다그치고 그것도 못하냐는 닦달뿐이었다. 사람이 귀하지 않은 세상이기에 을은 언제든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  위대한 연주를 만들어내기 위한 광기에 관한 영화와 사회복지사 실습현장에서 좌절을 겪었다는 평범한 이야기의 공통점은 성장을 뒷받침할 시스템의 부재다. 알아서 능력을 키우라는 다그침 앞에 을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착취하면서 불필요한 무기력과 고통을 겪는다. 갑은 답답하고 을은 지친다. 꿈을 갖고 무엇을 해보려던 을들은 밀려나거나 떠난다. 갑은 겨우 그 정도 성장통도 겪어내지 못하는 이들을 탓하며 능력을 갖춘 이가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악순환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계를 만나고 돌파해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마땅히 어려운 것들에 부딪히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각자도생 식으로 개인들에게 책임이 미뤄졌을 때 비극은 시작된다. 적절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꿈꾸는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먼저 그 과정을 겪은 이들의 책임이다.  예술가나 스포츠 선수들을 길러내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보자. 최근에 나오는 그들 세계에서의 착취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그들의 성취를 돕는다는 명목 하에 기존의 성취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눈감아져왔던 것들이다. 예술계나 스포츠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직장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뜻을 갖고 해보려는 많은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주고 있는가. 더 나은 성취를 위해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성장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책임을 너무 쉽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19-07-17 | hrights | 조회: 342 | 추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