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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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간사),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주윤아(교사), 최유라(지구의 방랑자), 홍세화(대학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회림/ 00경찰서  안녕하세요. 11월에 ‘잊혀진 권리’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던 이회림입니다.  가해자가 출소한 후, 예상대로 언론은 과도하게 가해자를 조명하느라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다수의 유투버들이 가해자의 집 앞으로 가서 고성을 지르고 그들의 채널로 생중계까지 할 줄은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잊혀질 권리”를 말하기 위해 말이든 글로든 그 사건을 소환했던 저나 그 유투버들이나 결과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문득 들더군요. 아예 그런 칼럼도 쓰지 말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맞았을까 하면서 자꾸만 되돌아보면서요.  올해 2월 나영이의 언니가 저희 집에 놀러 왔을 때 함께 기획했던 책이 있었는데 저의 예전 일기를 토대로 만든 에세이였습니다. 2020년 12월, 가해자가 출소하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세상에 내어 놓으면 더 이상 과도하게 그 사건과 가해자를 소환하는 현상이 줄어 들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날에 임박해서 책을 공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오고 나니 미디어에 나오는 가해자의 얼굴과 여러 유투버 등을 보면서 속이 메슥거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까지만 실질적으로 나영이를 치료했다는 주치의께서 그동안 계속해서 도움을 준 것처럼 보도가 되고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2013년 여름, 나영이의 아버지께서 주치의가 2012년까지만 나영이를 챙기고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는 이유로 진료를 중단했다며 저에게 다른 정신과 의사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하신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치의라는 분은 치료보다는 정치에 더 집중하시느라 바빴을지도 모르고 그 당시 정말로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릴 만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어찌 되었든 지금이라도 발 벗고 나서 모금 운동을 하면서 나영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시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이 책은 ‘나영’이라고 불리우던 소녀를 환한 빛 속으로 잘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 나영이 언니와 함께 고민한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잘 맞는 방법인지,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서 책을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책의 첫 부분에서 가져온 ‘첫 만남’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입니다. 이 책의 취지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불편하고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해당사이트로 찾아가셔서 전문을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www.bookk.co.kr/book/view/98734/preview) <우리들 푸르른 기록> ‘첫 만남’  2009년 1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전해 듣고 연락드립니다. 00서 00 형사님이시죠?”  2009년 1월, 아버님의 전화를 처음 받은 날은 제가 서울 시내 모 경찰서 형사과에서 일하고 있을 때 였어요. 저의 지인 중 평생 무료로 진료를 봐 주고 싶어하던 한 여성 의사분이 계셨는데 제가 그 분을 해바라기 아동센터를 통해 아버님에게 결하게 되었지요. 추운 겨울 날, 병원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어요. 진료를 받기 전에 먼저 카페에 모여 인사를 나누기로 했던 거죠.  “인사드려, 너 도와주러 오신 경찰언니야.”  나영이의 첫인상은 웃음기가 없고 피곤해 보였어요.  “안녕? 반갑다. 오느라 힘들었지? 언니가 선물 하나 준비 해 왔어. 사실 내가 밤샘 근무할 때마다 한 통씩 먹어치우는 건데 왠지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네 것도 사왔어.”  절대로 동정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섣불리 위로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동네 초등학생 대하듯이 편하게 말을 걸었어요.  “어~?!”  나영이의 작은 눈이 확~ 커지면서 얼굴이 환해졌어요. 얼굴에 조명이 하나 더 켜진 듯이 순식간에 밝아졌고 무거웠던 주변 공기가 명랑해졌어요. 처음 인사를 나눌 때는 내키지 않는 듯 건성으로 하느라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더니, 무당벌레 초콜렛을 보자마자 얼굴빛이 금새 변했지요.  ‘무당벌레! 다 니 덕분이다!!’  저는 마음속으로 안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영이가 타고 온 차 안에 돌고래 모양의 쿠션이 놓여 있길래 무당벌레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슬며시 했지만서도... 이렇게까지…  고마운 무당벌레 초콜렛 덕분에 다소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병원 진료실에 함께 들어갔어요. 그런데 나영이의 얼굴에서 조금 전의 그 밝은 표정은 풀썩 날아가 버리고 없더군요.  아무래도 병원이라는 곳은 꼭 필요한 공간이기는 하나 결코 편안한 장소가 될 수는 없었겠지요. 그건 저의 존재도 마찬가지. 나영이의 입장에서 오늘의 만남을 미리 상상을 해보니, 저 또한 그동안 만나 온 수많은 회색빛 공무원 어른들 중의 하나일 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에 저와 간단한 대화뿐만 아니라 인사를 나누는 것 조차 귀찮을 수도 있었구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런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고 싶어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챙겨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나영이의 취향을 전혀 모르니 아무거나 사갈 수는 없어서 그 당시 제가 즐겨 먹던 초콜렛을 들고 갔지요.  초콜렛은 형사과 야근을 할 때마다 피곤함을 이기기 위해 녹차와 곁들여 먹던 저만의 든든한 야식이었죠. 특히 하나씩 정성스럽게 포장된 무당벌레는 초롱초롱 똘망똘망한 눈빛에 미소까지 띄고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거든요. 무당벌레 초콜렛의 효과는 진료실에 들어 간 순간 스르르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요? 아주 잠깐일지언정 나영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톡! 건드리고 후다닥 귀여움을 선사하고 날아가 버린 무당벌레에게 경의를 표해요.  고맙데이~ 우리들 푸르른 기록 : ‘나영’ 이라 불리우는 소녀를 빛 속으로 떠나보내는 방법
2020-12-31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8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트리에 색색의 조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징글벨을 부르는 화음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 서 있으면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 이맘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기다리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다. 아마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름, 바로 '산타'다. 사실 산타를 기다린다기보다는 집에 몰래 놓여 있을 선물을 기다린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존재하는가 아닌가로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산타이건만, 지금은 그저 추억일 뿐이다. 나는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아이 중 한 명으로 “산타는 없어! 어른들이 다 지어낸 거야”라며 산타를 믿는 친구들을 종종 울리기까지 했었다. 산타가 없다고 생각했던 이유에는 ‘굴뚝’ 때문이었다. 산타는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놓고 간다는데 당시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었다. 굴뚝 있는 집에서 살아야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니. 그 당시 그것이 너무 차별적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머릿속으로는 ‘산타는 없다’라고 믿었지만 내심 산타가 집에 찾아와 선물을 놓고 가기를 기다리기는 했었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라는 말에 12월 즈음이면 의식적으로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평소에는 신발을 벗으면 두 짝이 제각각 여행을 떠나는데 12월이면 신발 두 짝을 외롭지 않게 가지런히 놓아둔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했다. 더더욱 산타를 믿지 못했고,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산타가 준 게 아니고 부모님이 몰래 둔 거야.”라고 목소리 높였던 기억이 있다.  착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가르는 기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누가 그 척도를 잴 수 있었던 것일까? 어린이 세계의 산타 이야기는 비단 그 시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산타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선별복지’와도 닮은 점이 많다.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와 받을 수 없는 누군가의 기준은 분명해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넘쳐난다. 사진출처-freepik  올해 서울시 청년수당을 신청했다. 서류가 통과되어 6개월간 50만 원을 지원받았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풍요로운 6개월을 보냈다. 사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사고 세미나가 끝난 뒤 통장 눈치 보지 않고 뒤풀이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직장이 어떤 조건이건 간에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도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질적 풍요라기보다는 심적 풍요를 경험했다.  올해 청년수당 신청자가 다른 해보다 많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예산이 정해져 있다 보니 서류를 통과해도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신청서류에 적힌 사연들을 읽으면서 이 모두에게 지급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다는 누군가의 말도 듣게 되었다. 가끔, 가난을 선별하는 가난 테스트에 신청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청년수당을 받은 자의 여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받은 복지로 인해 누군가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50만 원의 무게감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사이에 흐르는 경계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문제는, 2021년에는, 더욱더 ‘선별’ 복지에 초점이 맞춰질듯 하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코로나라는 명분으로 청년 자율예산제를 포함해 청년예산을 삭감했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서울시와 시민의 약속이었던 청년자율예산은 편성액이 18% 삭감되었고, 코로나19 관련 서울시 청년예산도 함께 삭감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취업 날개 서비스는 20%, 청년 전담부서 예산은 26% 삭감했다고 한다. 청년월세지원사업 확대 계획은 2만 명에서 5천 명으로 축소되었고 마음건강 지원사업은 3천 명에서 2천 명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2021년 서울시 예산은 40조를 넘어,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시민과 함께 시정을 운영하겠다는 시정 철학에 따라서 오랜 시간 공론화를 거쳐 확정된 자율예산을, 숙의 과정 없이 삭감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선별복지로 지급된 재난지원금도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나고 있어 그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복지로 확장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산타는 2021년에도 여전히 굴뚝만 찾아 헤맬 것인가 보다.
2020-12-15 | hrights | 조회: 139 | 추천: 5
홍세화/ 대학생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어느새 12월을 맞이하여 저물어가고 있다. 2020년을 되돌아보았을 때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는가 하면, 나는 ‘기후변화’를 꼽을 것이다.  기후변화가 일어나 곧 인류에게 심각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사실 그동안 환경보호에 대한 나의 의식은 점차 무뎌져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다큐멘터리 등에서 머나먼 북극의 빙하들이 모두 녹아 북극곰들이 발 딛을 곳조차 사라져 헤엄을 치다가 지쳐 죽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것에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올해 여름은 확실히 평년과는 달랐다. 6월부터는 이른 폭염이 찾아오더니 이내 전국적으로 50여일이 넘는 기록적인 장마가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섬진강 일대에는 홍수가 발생하였고, 1500건이 넘는 산사태를 불러왔으며 4개의 태풍이 연달아 우리나라를 강타하였다. 이러한 이상기후는 농수산업에 큰 영향을 미쳐 우리가 자연스레 접하던 음식들을 먹을 수 없게 하기도 했다. ‘토마토 없는 버거’가 대표적이다. 이상기후로 인해 전국적으로 많은 토마토 농가들이 피해를 입어 토마토 공급이 부족해졌고,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음식인 햄버거에서 토마토가 일시적으로 빠지게 되었다. 기후변화의 재앙이 조금씩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2020년에 이상기후를 겪은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었다. 시베리아에서는 섭씨 38도의 이상 고온현상이 일어났고, 미국의 콜로라도주 덴버에서는 지난 5월 연일 폭염이 지속되다가 하루아침에 폭설이 내린 일도 있었다. 이러한 기후변화가 나타난 원인은 단순히 빙하기와 간빙기와 같은 자연 순환의 일환인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이 지구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19의 역설적인 면모들로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사그라들자 생태계에는 점차 변화가 일어났다. 작게는 베네치아의 운하가 60년 만에 맑은 물을 되찾은 일부터 인도 동부 오디샤주 해안에서 멸종위기종인 리들리 바다거북이 다시금 모습을 보인 일 등이 그 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중국 연안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올해 봄, 가을에는 미세먼지 없는 쾌청한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다. NASA에서 제공한 항공화면, 중국이 봉쇄에 들어가기 전 1월과 그 이후의 대기오염도 차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줄어들고, 차량 이동이 제한되면서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량이 크게 감소하며 올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6% 감소한 것으로 세계기상기구는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만큼의 탄소배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일부에서는 ‘지구멸망’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기후변화에 의해서는 ‘인류멸망’만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일으키는 환경변화는 언젠가 지구의 자정능력으로 원상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동안 환경보호를 지구환경과의 ‘공생’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면 이제는 한단계 더 나아가 인류의 ‘생존’을 위한 활동이라 생각하고 기후변화에 더욱 경각심을 가지며 환경보호에 임해야 할 것이다.
2020-12-02 | hrights | 조회: 228 | 추천: 3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폭력 학대 신고로 일이 많고 욕을 많이 먹어 힘들다는 경찰 아저씨 당신께 .  먼저 피신고자에게 욕을 먹고 과한 업무에 시달리는 당신께.  직급 낮은 다른 직원의 근무 환경도 챙기셔야 하고 상사의 위신도 챙겨야 하는 당신께.  '요즘 일이 너무 많아 고생이 심하십니다. 욕을 너무 들어 자존감이 많이 상하셨군요'라고 위로와 감정 읽기를 미처 못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건 당신이 지적한 대로 제가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학교에서 부모교육을 강제할 방법이라도 없느냐는 어느 교사의 교육청 문의에 제가 학대 정황이 보이는 대로 족족 신고하는 방법이 첫 번째 라고 말하는 순간, 제 말을 자르고 역정을 내셨습니까?  논쟁하는 자리도 아닌 교육청의 장애인 학생의 인권지원단 논의 자리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 제 말을 그렇게 역정 내듯 자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50대 팀장급 남성이 가지고 있는 '발화 권력'이랍니다.  평소에 가해자를 보고도 그렇게 노려보지 않는데 저는 정말 분을 삭이지 못해 20초 이상 칸막이 너머로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좀 더 매너있게 정리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쓰기 권력'이 있답니다. 쓰기 권력은 당신처럼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아요. 독자들이 선택하고 해석할 수 있거든요.  당신의 말을 들을 때 너무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모두를 정확하게 듣지 못해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신고가 들어온 집을 찾아가서 조사해도 많은 경우 '무혐의이거나 오해일 경우가 너무 많다. 신중한 신고가 필요하다. 현장 경찰이 너무 힘들다.' 이런 취지의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실이라 하더라도, 가정폭력과 장애인 학대에 대하여 '신중한 신고', '무혐의', '오해'라는 단어를 인권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당신의 그 '공권력'에 매우 화가 났습니다. 사진 출처 - SBS  우리가 당신의 지위와 직무에 공권력이란 힘을 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피해자나 개인이 함부로 가해자나 다른 개인을 조사하거나 수사하거나 검거하거나 구속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합의에 따라 대신 부여한 막강한 권력입니다.  그런 공권력을 부여 받은 당신이 공적인 자리에서 '가해자'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변명을 하다니요. 그렇게 바로 말씀하실 수 있었던 건 아마 저를 제외하면 인권 단체 활동가는 아무도 없었고 죄다 경찰 관계자들 분들밖에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경찰의 입장을 더욱 대변해 주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인원수가 '발화의 힘'을 주었겠지요.  물론 당신이 그렇게 하소연하기 전에 행자부와 국회에 경찰 인력을 늘리라고, 근무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혹시나 대통령을 만나거나 국회의원들을 만나면 꼭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현장을 잘 아시고 실무 경험이 많으시면, 격무에 시달린다 하시더라도 ‘언제든지 신고해 주셔라, 사전에 교육청에 문의하지도 말고, 관리자 눈치 보지도 말고 즉시 신고자의 의무를 다하시라, 나라도 부모에게 전화 한 통 해서 인권교육 받으라고 하겠다’고 해야 수사 경력 몇 십 년에 걸맞은 전문성이 발휘되는게 아닐런지요?  가정폭력과 장애인 학대 신고의 본질 취지가 가해자를 벌하는 겁니까?  당신의 실적과 위신을 위해서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를 살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학대와 폭력을 우리가 미리 막을 수 없다니요? 당신을 출동시키는 신고가, 가해자를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것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당신들의 권력이자 직무입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초인종 소리 한 번에도 가해자의 폭력을 잠시나마 멈춰,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피해자에게 있어 가정 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를 제 맘대로 대할 때 사람들이 너를 도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것은, 신호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신호란, '당장 학대를 멈춰라!', '우리가 너를 항상 감시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늘 당신 주위에, 바로 뒤에 공권력인 경찰이 당신의 편에 있다고 격려하고, 연대해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며 폭력과 학대에 대항할 힘을 주기 위해 당신은 신고를 받고 가해자를 만나는 겁니다.  미국드라마에 나오는 경찰처럼 우연히 방문한 집에서 피해자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 할 것을 종용하고 또 종용하다가 결국 폭력을 막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반성하는 모습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적어도, 회의에서 말뿐이라도 한 번 더 방문하고 한 번 더 가해자를 압박하고, 피해자의 미세한 시그널을 읽어 내겠다. 장애인 학생을 한 번 더 살피겠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고를 망설이는 교사들에게 ‘의심만 들어도, 정황만 보여도,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라. 초기 진술을 반드시 녹음하고 피해자를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히지 마라. 보건 교사라도 불러서 확인하고 같이 신고 하셔라.’고 해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신고자라도 비밀 보장하겠다고 말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키우다 보면 가르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당신의 그 무혐의와 오해라는 표현이 폭력을 더욱 증폭시키고 전염시킵니다. 가해자에게 권력을 줍니다. 죄책감도 사라지게 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당신이라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란 이름으로, 치료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어떠한 폭력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 폭력과 학대의 가해자는 언제나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늘 피해자는 피해를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폭력과 학대의 특수성을 현장 근무가 풍부한 당신께서 모르지는 않으시겠지요?  당신의 발언 저 밑에 직무의 공권력을 부여하는 우리의 '신고'를 짜증과 비하와 무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어감을 느낀 것은 저뿐일까요? 그 발언은 오히려 당신의 바람과 다르게 당신의 허세를 부풀리고 자존을 더욱 약화시킬 뿐입니다.  저는 매 강의 때마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소방 훈련처럼 훈련을 요구하고 연습을 시켜서 숙련되게 할 것입니다. 화재신고를 신중하게,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머뭇거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이 되듯이 폭력과 학대 신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나 스페인처럼 가정 폭력과 학대를 알리는 피해자를 위한 신호를 만들자고 운동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좀 더 폭력과 학대에 민감했으면 합니다. 신고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거의 습관처럼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의 폭력과 학대에 대하여서는 '장애인 권익 옹호기관'에도 신고할 수 있도록 현행법이 있습니다. 당신처럼 수사권이 있거나 예산이 많지는 않지만 그들도 신고로 부여 받은 조사권이라는 공권력이 생겼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입니다.  경찰 아저씨. 당신의 능력을, 가치를, 의미를, 전문성을, 당신의 직무로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2020년 11월 24일 장애인 인권 활동가 김형수 올림.  
2020-11-25 | hrights | 조회: 101 | 추천: 3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청소와 정리정돈에 쓰는 시간이 어림잡아 하루 평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이다. 늘상 손에 달고 사는 핸디형 무선청소기 사용시간의 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리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날에는 청소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욕실과 싱크대 수전이나 거울에 생기는 물자국, 내 몸의 일부이기를 포기하고 중력에 순응한 머리카락들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침구와 카펫은 UV 살균청소기를 이용해 먼저 먼지를 빨아들인 후 편백수를 뿌려 2차 소독을 한다. 베란다 창틀에 쌓인 먼지도 이삼일에 한 번은 털고 닦아야 한다. 주방 한 켠의 이동식 팬트리도 매일 점검한다. 햇반이나 3분 카레 같은 식료품 포장이 일정한 배열을 이루며 각이 잡혀 있어야 보기에 좋고 흐뭇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먹고 마시는 중에도 내내 배달음식 포장용기를 정리하고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느라, 제발 좀 가만 앉아있으라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한다. 강박을 놓으면 좋겠다는 진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 강박 때문에 소비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면 책을 몇 장 더 읽을 수도, 잠을 조금 더 잘 수도, 산책을 할 수도, 상대와의 대화에 더 깊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건 다, 내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다 빠르게 달려오는 차에 치여 중상을 입거나, 깊이 잠든 사이에 집에 불이 나거나, 그도 아니면 낮은 확률로 고독사 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물건이 될지 육신이 될지 모르는 뒤처리를 해주기 위해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낡은 집에서 지저분하게 살았네’라고 한 마디라도 한다면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착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은데 지저분하다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집안의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부터였다. 전적으로 나만 통제할 수 있는 공간과 상황은 어쨌거나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게 내 존엄을 유지하고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해서다.  고독사에 대비해 청소를 열심히 하고 살자는 캠페인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오늘은 사회가 도통 신경 쓰지 않는 어떤 존재들의 작은 불행, 혹은 불편에 대해 ‘당사자’로서 말을 하고 싶다. 보통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관찰자 또는 대변자를 (감히) 자임하며 활동을 하고 말을 해 왔지만, 어쩌다 한 번 정도는 당사자 자격으로 불평해도 좋지 않나 싶어서다.  얼마 전 주택청약을 해지했다. 40대, (앞으로 당분간 결혼할 계획이 없는) 미혼, 무자녀, 1인 가구는 청약 가점에서 현실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우니, 차라리 그 기회비용으로 다른 것을 하라는 기사를 읽고 홧김에 저지른 일이다. 아주 작고 귀여운 목돈에 앙증맞은 이자가 붙어 통장에 들어왔다. 그날은 4캔 만 원 맥주를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뭐,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내 집 마련을 염두에 두고 하던 청약저축도 아니었다. 내 집을 갖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임대주택 신청 등을 고려해 막연한 마음으로 유지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집을 갖지 않고, 빚도 지지 않고, 분수에 맞게, 그러나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포부도 ‘내가 속한 집단 또는 계층’에게는 언감생심이다.  40대, 미혼, 무자녀인 1인 가구가 중위소득보다 아주 조금 더 번다면, 한국사회가 설계한 주거 복지망을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대학생, 신혼부부, 만 19~39세의 법적 청년, 주거급여수급자, 고령자에게 입주자격이 주어지는 ‘행복주택’도, 기초생활수급자나 국가유공자(또는 그 유족), 일제 하 일본군위안부나 북한이탈주민이 신청할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도 당연히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입주자격의 1인 가구 기준소득금액인 185만원보다는 더 벌기에, 내 생활반경 저 멀리멀리에 있다는 국민임대주택도 당연히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생계지원 국면에서 2만원쯤 지원해주던 통신비도 만16~34세, 만 65세 이상의 국민만 지원 대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바꿔 말해, 내가 속한 계층이, 대학생이나 19~39세의 청년보다는 확실히 더 누리고 있으며, 수급을 받아야 할 만큼 힘든 상황은 아니라고 사회가 판단한다는 거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할 말이 남은 이유는, 누가 더 불행하고 불편한지 겨루고 증명을 받고서야 비로소 사회 안정망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사진 출처 - freepik  202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인 가구 구성원이다. 1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156만원이지만 나이대별로 지출규모가 달라지는데, 40대 1인 가구는 평균 185만원을 생활비로 쓴다. 국민임대주택에 입주 신청이라도 하려면 중위소득에 한참 못 미치는 185만원을 벌어야하는데 그마저도 생활비로 185만원을 쓰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집을 사거나 투자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임대료를 내며 평생 무주택자로서 부동산 전쟁에 동참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불행을 증명하는 배틀에서 이기거나, 저축은 포기하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며 미래를 저당 잡히거나.  여기까지가 1인 가구 전반의 하소연인데, 조금 더 들어가 40대 이상의 ‘여성’이 되면 이야기가 조금 더 슬퍼진다. 임금근로 소득과 관련해 통계청이 배포한 가장 최근 자료인 2017년 기준으로 보자.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평균소득은 287만원이고 중위소득은 210만원이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수준을 보이는 3~40대 가운데, 40대 남성의 평균소득은 416만원이고 여성은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251만원을 번단다. 세대 불문, 파이 불문, 남성소득 대비 여성소득 수준이 60%선인 것은 너무 익숙한 이야기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저소득 중장년 여성쯤 되면, 흡사 벌을 받는 기분이 된다. 그럼에도 차마 쉽게 징징대지 못하는 것은, 더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뿐이다.  작고 귀여운 청약저축 해지금에 딸려온 앙증맞은 이자로 4캔 만 원 맥주를 사들고 들어와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티비를 끄고 분을 삭인다. 그리고 상상한다.  홀로 늙고 병들어도 나락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떨까. 이 나라 국민인 이상 어떤 경우에도,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촘촘하게 지켜주는 공동체를 경험해봤다면 어떨까.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 자손세대의 미래를 난도질하는 부동산 전쟁이 없다면 어떨까. 열심히 번만큼 납세를 하고 부의 재분배에 기여한 사람에게, 삶의 질을 구성하는 다른 요건으로 되돌려주는 사회라면 어떨까. 그 세상에서도 ‘내가 더 불행하다’고 손을 들기 위해 옆 사람의 팔을 자르거나, ‘나도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을과 병과 정들의 배틀이 이어지고 있을까.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손을 들지 않으면 아무도 보아주지 않을까. 언뜻 상상하기론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글쎄, 그런 세상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2020-11-18 | hrights | 조회: 211 | 추천: 12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2020년을 앞두고 나는 크게 들떠 있었다. 2년 동안 진행했던 ‘팔레스타인 평화여행’과 ‘인권보고서’ 사업이 잘 마무리됐고, 신규 사업인 ‘여성지원센터’ 사업은 국내 민간재단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여성지원센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전 게시글 참조)  하지만 1월부터 코로나사태가 시작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해외 출국이 불가능해진 탓에 미리 예약한 비행기 표를 포기하고 출장을 취소했다. 신규사업이라 초기사업세팅이 중요했기에 출장포기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현지의 활동가들이 더욱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아디의 현장 부재가 무색하게 공백을 메꿔 사업을 추진했다. ‘여성지원센터’의 두 가지 주요사업 중 하나인 ‘여성활동가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은 20명의 참여자 중 단 한명의 중도포기자 없이 모두가 끝까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졸업영상작품도 제출했다. (관련 활동은 아디 홈페이지 와 유튜브 참고) 여성지원센터 수료식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문제는 ‘인권보고서’였다. 2020년 보고서 주제는 ‘여성인권’으로 결정했지만 보고서 작성에 필수적인 방문조사와 인터뷰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장의 자발성 덕분이었다.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4명의 여성 활동가들은 인터뷰 수행자(모빌라이저)를 자처하며 각 마을의 세대별 인터뷰 대상자(60대, 40대, 20대 여성)을 물색하겠다고 했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그녀들의 자원에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도 됐다. 그래서 인터뷰시 유의해야 할 사항,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 인터뷰 동의서, 인터뷰 기법 등에 대해 2차례 워크숍을 진행한 뒤 그들에게 인터뷰를 맡겼다. 그렇게 현지 인터뷰는 진행됐다.  인터뷰 진행 초반에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개인적인 어려움과 자신들이 겪었던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해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결과를 하나씩 전달받으며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전달하고자 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위해 꼭 남기고 싶어 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심각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그녀들의 증언은 다양했다.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아디가 이들의 증언을 잘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미지는 머리에 히잡을 쓴 무슬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수동적 여성상일 것이다. 아디는 ‘인권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단순한 이미지를 깨고 이들이 우리와 동등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아디는 그녀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이 건네온 답변은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는가?’, ‘그녀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준적이 있는가?’, ‘그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막상 그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현실만을 탓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11월말 최종 발표를 앞 둔 아디는 이제 전달 받은 증언들을 잘 정리하고 필요한 정보를 추가하여 보고서를 완성하려 한다. 너무도 바쁜 현실을 사는 한국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란 쉽지않다. 그럴 의무도 없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여성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현지에서 보내온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디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부담스런 의무감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해본다.
2020-11-11 | hrights | 조회: 142 | 추천: 8
이회림/ 00경찰서  2020년 10월,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 오후, 창밖으로 커다란 배롱나무의 자태를 감상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택배 기사님이겠거니 하고 반갑게 받았습니다.  “네, 여보세요?”  “하하, 오랜만이네요. 접니다.”  모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네? 누구신데요?”  “아~ 내 번호 삭제했나보네~ 하하, 000기자입니다.  2013년, 나름 정의로운 기자로 유명세를 날리던 A기자. 배롱나무 덕분에 즐거웠던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택배 기사님들을 응대할 때와 180도 다른, 퉁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네?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아~ 이형사님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한 번 전화 해봤죠~ 잘 지내시나요? 나영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머릿속에 전구가 번뜩하고 켜지는 느낌입니다.  ‘아하! 조두순 출소가 얼마 안 남으니 날 이용해서 기사 하나 쓰고 주목 받고 싶어서 이러는 구나, 으이구~ A기자 아직 정신 못 차렸군!’  저는 참으로 기가 막혔지만 일단 대답은 해줍니다.  “하이고~ 참내, 잘 지내긴 하는데요, 기자님 전화 하나도 안 반가운데요? 마지막 통화가 5년 전인가? 그 때 기자님하고 굉장히 안 좋게 대화하다가 결국 연락 안 하게 된 것 기억 안 나세요? 설마 그 대화들이 전혀 기억 안 나셔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전화하신 거예요? 그리고 나영이요? 나영이 소식을 왜 물어보세요, 갑자기? 아~~ 알겠어요. 또 누가 옆에 계셔서 옆 사람 들으라고 일부러 전화하신 건가요? 전에도 그러시는 것 같더니 또 그러시네요~ 근데 5년 전 대화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세요? 거참~”  그 당시의 황당한 감정이 저의 마음 속 어딘가에 있다가 울컥 올라 왔나 봅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라고 소리를 치고 끊고 싶었으나 그 말만은 참았습니다.  “아니~ 그때는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A기자 특유의 ‘다짜고짜 반말’이 흘러나옵니다. 문자와 전화로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시정요구까지 했음에도 전부 무시하던 A기자. 정식으로 고소를 할 수도 있었지만 엄마의 암투병에 집중하고 싶어서 마음을 비웠던 그때 그 시절 황당한 일들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 말이죠.  2013년 여름, 저는 A기자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마치 연예인처럼 메이킹된 이미지만을 신뢰한 나머지 나영이와 나영이 언니를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나영이 아버님으로부터 정신과 치료를 해주실 의사선생님을 연결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터였습니다. 저보다는 인맥이 넓어 보이던 A기자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A기자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며 아무도 연결해 주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저는 더이상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급히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지 하루 만에 무료로, 비공개로 치료해주실 분을 찾아냈습니다. 그 의사선생님들은 저를 직접 만나지도 않고도, 전화 통화 몇 번만으로 저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오셨는지 흔쾌히 결단을 내려주셨습니다.  5년 만에 전화 온 문제의 ‘A기자’는 본인의 ‘잘못’이 뭔지, 감도 못 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갑툭튀 전화를 일방적으로 했던 거겠지요.  저는 길게 통화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나영이요? 갑자기 전화해서 나영이요? 참내~ 할 말 없습니다. 끊습니다~” 라며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A기자의 번호를 냉큼 차단하였습니다.  A기자를 알게 된 건 서울의 모 수사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지 5~6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뜬금없이 전화를 해 대놓고 ‘친한 척’을 하고 쉽게 말해 요즘 핫한, 기사 한 번 썼다 하면 검색어 1위에 금방 오르는 ‘나영이’를 물어 오는 그런 희한한 분이지요.  이런 사람의 마음상태는 도대체 뭘까요? 그리고 비단 A기자 뿐일까요?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는 저서 <잊혀질 권리>에서 '역사가 있은 이래로 인류에겐 망각이 기본값이고 기억은 예외였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 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구조가 역전됐다'라고 썼더군요.  2009년부터 나영이네 가족을 만나오면서 이 ‘잊혀질 권리’에 대해 줄곧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2년 전, 어떤 여성 기자에게 혹 ‘미국이나 유럽에서 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기사를 쓰기 전에 직접 허락을 받지 않으면 기사 생성을 아예 못하게 하는 법이나 규약은 없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곤 피해자들의 잊혀질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시스템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조두순 사건이 일어난 2008년 겨울, 저는 관악경찰서 형사과에서 성범죄 피해자 담당조사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산에서 일어난 조두순 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관여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영이와의 인연은 2009년 시작되었습니다. 해바라기아동센터 직원께서 저의 전화번호를 나영이 아버지께 전달하면서였습니다. 저의 지인 중 한 분인 여성 산부인과 의사께서 평생 무료로, 그리고 비공개로 나영이의 진료를 봐주고 싶다고 하셨고 이를 연결해 드리면서 만나게 된 것이었지요.  200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가끔씩 만나,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기까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영이가 저를 부르는 호칭은 ‘경찰언니’에서 그냥 ‘언니’로 바뀌었습니다. 저의 부모님 댁인 경주로 계절마다 여행을 가거나, 대학 입학 후에는 나영이 자매와 저, 셋이서 가까운 오키나와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나영이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함께 수다 떨고 놀고 여행을 다녀보면서, 그녀가 초등학생 때부터 어른도 웃기는 번뜩이는 유머감각이 있으며 섬세하며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친구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영이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무조건 믿고 따르거나 가볍게 감정을 표현하는 편이 아니라, 굉장히 강인한 성격이 밑바탕에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두순 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 출연한 여러 연예인 패널들이 함께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는 말씀을 계속 하시더군요. 연예인들만 계신 것이 아니라 범죄분야 전문가도 계셨고요. 저는 그 방송을 보면서 굉장히 가슴이 답답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다시 떠오른 각계각층의 과도한 관심이, ‘나영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제발 좀 생각하기 바랍니다. 생각을 한 후에 기사를 쓰고 TV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국민의 트라우마처럼 되어 버린 그 사건의 주인공은 조두순이 아니라 ‘나영이’여야하고, 그 사건이 기사화됨으로써 금전적인 이익을 보는 사람은 글 쓴 기자가 아니라 ‘나영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영이를 동정하고 걱정하고 함께 마음 아파하느라 조두순 얼굴의 정면 사진을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하고, 나영이조차 원하지 않아도 그 얼굴을 사진으로라도 마주치게 된 이 상황, 여러분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모든 범죄 피해자(생존자)들에 대해서 기자가 글을 쓰고 PD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 직접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나영이처럼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과도한 미디어에 노출되고, 이용당하고, 검색만 하면 튀어나오는 가해자의 얼굴을 감내해야 되는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요?  피해자(생존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사람들 앞에서 직접 SPEAK OUT하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의 극복법이라며 나영이가 그런 방법을 써서 극복하기를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망상이고 허구입니다. 본인의 결정으로 직접 책을 쓰거나 연단에 오르지 않는 이상, 나영이의 허락을 받지 않고 끊임없이 기사로, 방송 프로그램으로 상기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피해자(생존자)들에게는 2차 가해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대학교 2학년인 나영이는 엄연히 성인입니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부모님이 아니라 나영이 본인이 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진 출처 - freepik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강한 희생정신을 지니고 있어,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힘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주 직관적이고 자식과 배우자, 그리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리저리 내몰리고 학살당해 왔으며 열등한 존재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늑대와 여성들은 자기들을 오해하는 이들에게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취급을 받아왔다.  최근에 읽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Women who run with the wolves>이라는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범죄 피해자(생존자), 특히 나영이 같은 아동 성범죄의 생존자에게서 ‘늑대’의 기운을 느낍니다. 우리들의 늑대 ‘나영이’는 극한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 앞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조두순’이라는 인물은 어른들이 만든 온갖 더러움과 악함을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나영이’는 매우 특별합니다. 부디 특별한 사람만 특별하게 대해주시기를 호소합니다.  ‘조두순’같은 찌질하기 그지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범죄자는, 전 국민이 그 얼굴을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지 않더라도 하늘이 가만 두지 않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할 수 있었고,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은 일’을, 어른들이 상기하기 바랍니다. 안타깝지만, 세상이 그렇게 흘러온 것을 어찌하나요?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2020-11-04 | hrights | 조회: 1091 | 추천: 61
주윤아/ 교사  이제 포스트 코로나(Post-COVID19)를 말하기보다는, 위드 코로나(With COVID19)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어디를 가도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스크가 마치 일상복처럼 되어 버린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의 약 열 달을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울(corona blue)과 분노(corona red)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처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모두의 안타까움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고충을 호소하는 다수의 요구에 파묻혀 작은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워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이들도 너무 많다. 환자를 돌보다 1주일에 3명꼴로 감염되는 간호사들  지난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9개월간 코로나에 감염된 의료인력 159명의 감염자 중 간호사가 101명으로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감염 경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연히 오랜 시간 환자 곁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업무가 다른 의료 직종에 비해 감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고, 그 중 확진자를 치료하는 음압병동 등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가장 취약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장기 근무는 기본이고, 충분한 휴식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등 간호사들의 노동 여건과 안전 문제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우리는 병원에 보이는 ‘영웅’인 의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를 비롯해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약사, 행정사무연구직, 시설관리, 영양사, 조리, 청소, 정신보건전문요원, 기술 기능직 등 60여 개의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와중에 여전히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YG 엔터테인먼트는 그간의 관행을 반성하고, 전 세계의 대중문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서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스크 장벽으로 세상이 사라진 청각 장애인들  카페에서 어느 청각 장애인이 종이와 펜을 이용해 주문을 하려는데 전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점원이 짜증을 부려 결국 커피를 사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의 입모양을 읽거나 표정을 관찰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청각 장애인들은 올해 ‘마스크’라는 새 장벽으로 인해 그나마 세상과 소통하던 방법이 차단되어 버린 것이다. 난청이 있는 사람들도 마스크를 귀에 걸쳐 쓰거나 벗다 보면 보청기가 빠져 곤란을 겪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비장애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며 느낀 불편과 답답함을 토로하는 동안 1)청각 장애인들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며 세상이 180도 달라졌다고, 아니 세상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청각 장애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으로 그들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이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도구(종이와 펜, 스마트폰의 노트 패드 기능 등)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이용할 인내심을 모두가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중앙부의 입이 보이는 투명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청각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모두가 이를 사용하기도 어렵다. 비단 마스크를 쓰는 기간만이 아니라 언젠가 마스크를 벗게 된 이후에도 청각 장애인에게 입모양을 정확히 발음해 주고, 눈을 맞추며 손짓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인 표현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는 열린 태도가 가장 필요한 것이다. “어제보다 늦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택배노동자 아들  대통령이 배달 노동자를 비롯한 필수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약속한 지난 8일, 40대 택배 노동자가 배송 중 갑자기 쓰러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년 경력의 택배기사인 그는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밤 9∼10시에 퇴근하며 하루 평균 400여 개의 택배를 배송했다고 택배연대노조는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올해 업무 관련해 (과로사로 추정)사망한 택배 노동자는 현재까지 8명이고, 배달이 늘어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에 과속하게 되니 이륜차 교통사고도 전년 대비 1.0% 증가했으며, 특히 사망사고도 6.3% 증가했다고 한다. 게다가 확진자가 많이 나온 지역에서 배송을 하기도 하고, 자가격리하는 이들에게도 배송을 완료해야 하므로 안전을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고, 대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집 앞에 택배를 두고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실 관련해서도 기사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택배 노동자들의 생필품 택배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코로나19 예방의 ‘숨은 영웅’이라는 칭송을 늘어놓고 있지만 정작 감염병이 일상이 된 시대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실질적 대책은 여전히 마련하지 않고 있다. 돌봄노동자는 누가 돌봐주나? 건강한 돌봄노동을 위하여 저자 정진주 지음 / 출판사 한울아카데미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는 고령 여성 요양 보호사들  2)보건복지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고, 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도 올해 59.6세까지 높아졌으며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이 94.9%를 차지해 여성 편중 현상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코로나 시대에도 돌봄의 공백은 역시 엄마나 딸의 무급 노동이나 또다른 여성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촘촘히 메워지고 있다. 그러나 돌봄노동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포장되어 실상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노동’으로 평가절하되어 왔고, 설상가상 돌봄대상자에게 언어와 신체적 폭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다. 돌봄요양노동자 권리선언문에 따르면 4대 보험과 노동에 따른 적절한 임금 및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경력을 통한 임금상승효과도 미비하다. 또한 돌봄대상자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들은 당연히 감염에 취약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방역 물품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돌봄을 복지정책으로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 그 업무와 역할을 장애인활동도우미, 요양보호사, 학교의 돌봄전담사 등이, 그 중에서도 특히 중·노년층 여성들이 주로 담당해왔지만 응원과 감사만 전할 뿐 이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관계부처의 정책적 노력은 부족하다. 이 세상어느 누구도 돌봄의 수혜없이 자라날 수 없기에, 돌봄의 위기는 감염의 위험 이상의 국가적 재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돌봄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돌봄노동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힘들게 살았던 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한편, 코로나19 이전부터 열악했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비춰보고, 그 안의 또 다른 사각지대까지 찾아내어, 늘 약자로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는 전환의 시기로 만들어 가야 한다. 1) ‘코로나 시대에 청각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2020.08.20. theguardian) 2) ‘고령 여성’이 돌보는 대한민국…요양보호사 평균 59.6세(2020.10.06. 참세상)
2020-10-14 | hrights | 조회: 263 | 추천: 9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암막 커튼을 쳐 어둑어둑한 방안은 바깥이 낮인지 밤인지 알 길이 없다. 아침이 왔음을 아는 방법은 하나 있다. 사는 곳이 빌라인지라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문을 닫을 때 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아! 아침이군.’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의 세계로 입장한다.  딩동 초인종이 한 번 울렸다. 3초 후 똑똑. 문을 두드린다. “택배 왔습니다. 최유라 씨 집에 계세요?” 의심할 여지 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택배 올 게 없는데.’ 일단은 문을 열었다. 눈이 부셔 눈을 반쯤 뜬 채로 택배를 한 손으로 받았다.  택배에 보낸 사람은 없고 받는 사람만 적혀있다. ‘이게 뭐지?’ 생각하면서 천천히, 택배를 봉하고 있는 박스테이프를 뜯어냈다. 그 안에는 이런 글자가 들어있었다. “명절”  나에게는 ‘명절前증후군’이 있다. 명절이 다가올 때쯤 우울증이 방문한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증후군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 묻어둔 시절들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면서 발생하는 우울증이다.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않기 시작하면서 괜찮아지는 것 같았는데 최근 다시 겪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고구마를 팔기 시작하는 곳이 생겼다. 고구마를 먹을 때면 어떤 날은 목이 막혀 울게 된다. 물을 마시면 될 것을. 어리석게도 그런 생각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가끔 고구마를 보면 할머니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명절날 아랫목에 모여 고구마를 먹는다. 한 손에 고구마를 쥐고 한 손에 할머니가 찢어준 경상도식 김치를 고구마에  돌돌 말아 우걱우걱 씹어먹는다. 달달한 고구마에 짭조름한 김치의 조합은 한 번 맛본 이는 있어도 맛보고 끊은 이는 없다고 해야 할 정도의 환상 궁합이다. 그에 더해 “마이 무구라.”는 할머니의 말은 그 맛에 첨가된 좋은 MSG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할머니가 자기주장을 하던 기억이 전혀 없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의 목소리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했던 강렬하고 선명한 기억은 있지만, 그 옆에 있던 할머니는 그 모든 순간에 그저 조용히 침묵 아닌 침묵을 삼키던 기억만이 있다.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목소리로 살았을까? 자신의 목소리 없이 살아가는 것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아닐지. 그러고 보면 나 자신도 할머니의 지난 삶을 궁금해한 적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내게 할머니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할머니에 대한 슬픔 그리고 오랜 시간 묵인해온 가족에 대한 분노. 이 감정들이 한 데 뒤섞여 내 삶에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다. 나는 그 감정에 익숙해진 나머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만, 진짜 사람을 보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다.  최근 아빠가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았다. 사실 우리 모두 아프다는 것을. 나에게도 불어온 이 바람이 상처 입은 우리 모두에게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명절에 도란도란 서로 얹어준 김치와 고구마를 먹으며 할머니를 추억하는 날이 오기를. 형식적인 제사를 내려놓고 사람을 기억하는 제의 의미로의 식탁이 존재하는 그런 명절이 오기를.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로 존재하는 가족이 아니라 서로에게 진심이 되어 이야기 나누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날을 꿈꿔보며 다시 택배 상자를 봉해본다.
2020-10-14 | hrights | 조회: 147 | 추천: 6
홍세화/ 대학생  대한민국에 코로나19가 창궐한지도 반년이 훌쩍 지났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길거리를 걷던 때의 기억은 벌써 희미해져만 가고, ‘언택트(Untact)’, ‘사회적 거리두기’ 등 새로운 생활방식이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고 있다. 이제 세계는 B.C.와 A.D.로 나뉘는 것이 아닌, Before Corona(B.C.)와 After Corona(A.C.)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코로나는 우리 삶의 곳곳을 서서히 잠식시켜 나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역시 경제부문이다. 세계 경제는 2008년 경제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와 정부의 권고로 인해 거리의 사람들은 줄어들었으며, 이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어 소시민들의 경제피해 체감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지난 5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실시했다. 사실 그 당시 다른 국가들이 이미 코로나19에 의한 경제 침체에 따른 재난기본소득 지원 등을 실시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긴급재난지원금 실행은 늦은 감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시행한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덕에 소비시장이 작게나마 활기를 띄며 결과적으로 다수의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안겨줄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어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은 종식되지 않았다.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N차 유행이 지속되며 2차 긴급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실행에 앞서 국회에서는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보편 지급할 것인지, 선별 지급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갖은 토론 끝에 결국 2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선별 지급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이에 대한 아쉬움은 가시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후 많은 의료진들을 비롯하여 관련 종사자들의 희생과 노고, 정부의 방역대책과 국민들의 협조로 다른 국가에 비해 적은 피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우리나라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대를 기록하는 와중에 2020년 6월 기준 경제성장률 –1.3%에 머물러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하락세를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OECD 국가중 재정건전성 2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탄해진 재정을 바탕으로 전 국민 대상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시행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별적 복지가 시행되는 것의 안타까움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이유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커진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서류상으로 부양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의 복지제도를 누릴 수 없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하는 과정도 당사자에게 비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정부의 이번 2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선별 지급 선택은 여러 단계의 합리적인 토론과 고민을 통해서 나온 결과일 것이고, 나의 이러한 주장은 경제개념과 원리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놓는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2차 긴급재난지원금과 통신비 지원 등 힘이 될 수 있는 복지제도를 한시적으로라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까 누구도 걱정하지 않게, 모두를 위해.
2020-10-07 | hrights | 조회: 125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