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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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다솜(미디어 활동가),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 원고는 월간 서울교육 11월에 기고한 원고를 대폭 수정 보완한 원고입니다. 「'진실은 발을 차갑게 하는 이불 같은 것입니다. 잡아당겨도 늘어트려도 이불은 부족합니다. 무슨 수를 써 봐도 이불을 우릴 전부 덮어주지 못합니다. 울면서 태어난 날부터 죽음으로 떠나는 날까지 울고 절규하고 신음하는 우리의 얼굴만을 덮을 겁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올해 들어, 1977년 12월16일 특수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40년 동안 누구도 하지 못한 특수학교의 사회적 인식이, 국회 위원이 무릎을 꿇은 장애인 학부모를 외면한 사건으로 변화되었다. 이 사건은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특수학교’를 짓게 하라는 담화문까지 발표케 했다. 집 근처 좋은 시설의 특수학교를 열망하는 일부 학부모들은 환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 학생의 통합 교육의 정책 방향이 후퇴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수학교냐 특수학급이냐 라는 논란은 현재의 돌발적인 여론과 정책 흐름의 본질이 아니다. 통합 교육이라는 가치가 사회 통합과 차별 금지에 있다면 그 가치는 공간의 특성이나 학교의 종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진대, 유독 장애인 학생에게만 그것이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과도한 일반화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왜 이런 현상과 결과가 나왔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학교는 학생을 가리지 않습니다.” 학교가 문제일까요? 사람이 문제일까요?  글쓴이는 뇌병변 장애가 있다. 부산에서 12년 동안 특수학급은커녕 장애인 화장실, 경사로도 없는 일반학교를 다녔다. (입학하고 나서 좌변기를 화장실을 설치해 주었다.) 당시에는 교육청에서 취학 통지서도 제대로 보내지 않았고 당시 두 곳 밖에 없던 특수학교는 대기자만 수십 명이었으며 열 곳 넘는 일반 공립학교는 ‘위험하기에 나를 위해서’ 입학을 거부했다. 5살 때부터 입학가능한 학교를 찾아 전국을 헤메였으나 입학을 허락하는(?) 학교들은 부모와 떨어져 시설 입소를 해야 하는 곳들뿐이었다.(장애인학생이 법적으로 완전히 의무교육대상자가 된 것은 1995년이다.)  결국 이미 지적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학생을 두 명이나 받았던 부산의 사립학교에 혹시나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서 입학 허가를 문의했다. 수화기 너머 얼굴도 모르는 입학 담당 교사는 딱 한마디만 했다. “학교는 학생을 가리지 않습니다.” 추첨으로만 학생을 뽑던 명문 초등학교였던 그 학교 교장은 필자를 위해 비장애인 학생 6명에게 일부러 불합격 제비를 뽑도록 제비뽑기를 조작하기까지 하셨다. 1981년의 일이다.  결국 취학통지서는 부모님께서 장학사에게 헌법 제31조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를 들고 가서 직접 받아왔다. 개인적으로는 단 며칠 만에 취학통지서를 준 그 장학사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데 크게 기여 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그 어떤 특수교사도 만날 수 없었고 지원인력도 없었지만 하교길에 데리러 올 부모를 기다리던 나에게 라면을 끓여 주시고 가끔 바지에 실수라도 할 때면 손수 씻겨 주시던 학교 수위 ‘이또범’ 선생님이 계셨다.  사춘기가 불타는 중학교 때 자잘한 학교 폭력과 놀림에서 벗어나고 싶어 청산가리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준 것은 학교 현장에서 만나기 힘든 중한 장애를 가진 학생을 만나서 너무 좋다면서 두 번이나 담임을 맡았던 초등 때 스승님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손이 불편해도 컴퓨터로 얼마든지 글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국어 선생님도 계셨다. 드물지만 가끔 나의 장애를 매력있다고, 목발이 섹시하다고 격려해주는 비장애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놀리는 학생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서관도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다”  특수학교를 늘리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정규 특수교사를 늘려야 할 자리에, 1년이면 떠나야 하는 비정규직 자리와 특수교육 지원인력만 늘렸다 학부모에게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한 권리라는 것을 알려주기보다 낙인과 혐오, 그리고 차별로 스며드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특수학급 신설이나 장애인 학생 입학을 거부하는 교장이 없었다면, 동네 학교의 특수학급이 중증 장애인 학생의 통합 교육에 기여했다면, 교육청을 포함한 지역 사회가 수화 통역사와 점역 지원을 제공하고 편의시설 전문가를 각 학교에 지원 해주었다면 부모가 다시 특수학교를 요구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지역 주민이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학교에 시설 좋은 특수학급을 요구하고 특수교사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라고 요구했다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장애인학생 옆에 앉겠다고 자처했더라면, 졸업 이후에 지역사회에서 그들을 적극 고용하고 이웃 주민으로 초청했더라면, 그들이 원하는 한방병원을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진 출처 - 필자  반대로 교장이 편의시설이나 특수학급을 만들 수 없으니 특수학교로 가시라는, 선의로 은폐한 차별과 모욕을 하지 않도록 각 교육청의 교육감과 특수교육지원센터가 교육과 징계를 강화했다면, 특수교육계가 학벌과 파벌로 얽혀서 특수학교 자리를 나눠먹기를 하지 않았다면, 특수학교가 지역에 완전 개방되고 민주적이어서 장애유형이나 정도를 가려서 선발하지 않고, 특수학교를 다녀도 장애인 학생들이 자기 동네에서 원하는 만큼 비장애인 친구를 사귀고 함께 활동할 수 있다면, 특수교사를 보면서 장애인 학생 스스로 장애인임을 자부할 수 있다면, 비장애인 학생과 부모가 당신들을 보면서 장애인을 낳아도, 장애인 등록을 해도, 특수교육대상자가 되어도 괜찮구나 하는 믿음을 얻는다면, 부모들이 명절 때마다 친인척들에게 특수학교 학생증을 당당히 내보이고 특수학교 졸업식에 초대할 수 있다면, 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인권 활동가들이 작금의 현상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교육과 교육 환경이 사회 통합과 교류와 존중을 향하고 있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각자의 한계와 모순을 성찰하고 개선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특수학급이든, 특수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홈스쿨이든 상관이 없다. 장애인 학생이 장애에 대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어떤 교육 기관이든 교육 환경이든 장애인 학생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개별 서비스와 교육, 통합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어떤 교육이든 어떤 기관이든 그것이 ‘통합’에 기여하고 ‘사회화’와 ‘다양성’에 충실하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국가와 학교는 장애인 학생에게 최선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려고 최선을 다했는가?    장애인 부모 당신들이 시선이 싫어서 놀림이 싫어서 특수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학생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고 선택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주고 있는가? 적어도 비장애인 학생들은 학교가 맘에 안 들면 전학을 가거나 유학을 가거나 자퇴라도 할 수 있다. 국가가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을 위해 고등학교까지 마음대로 자퇴조차 할 수 없도록 했다면 적어도 특수학급이 특수학교 만큼의 서비스를 받고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 투자를 해야 한다. 특수학급에서 특수학교로 전학이 자유로운 만큼 그 반대도 그 만큼 자유로워야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특수학급의 교사가 장애인 학생을 특수학교로 배제하는 일, 너무 자주 일어나지 않는가? 사진 출처 - 필자 “헌법을 던져라”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차별과 상처를 내면화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자존감이 무너져 가는 장애인 당사자들도 여기에 있다. 시선이 박히고 놀림을 받더라도 그냥 동네 비장애인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고 싶은 장애인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특수학교가 있는데 왜 우리학교 오냐’라는 말을 ‘교사’로부터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중도에 어떤 이유로 장애가 생긴 학생은 적응할 시간도 없이 특수학교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부모들은 무릎을 꿇기보다는 웃으면서 헌법을 그 토론회 자리에서 당당하게 던져야 했다. 특수학교든 특수학급이든 뭐든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이자 우리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전문가들과 특수교사들은 그들의 전문성이나 실력이 사회 변화나 인구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성찰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그들의 당사자 주의, 자기의사 결정권, 정체성을 위해 교육계와 투쟁하지 못했다.     특수학교냐 특수학급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학교와 교육이 진행되는 곳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습득하고 사회화 하는 곳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얼마나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는가 불편함을 익숙하게 견디는가가 관건이다.  문제는 그 학급이 어떤 학급인가,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가일 것이며, 우리가 장애에 대하여 자긍심을 주며 선택권을 보장하는 학부모가 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며, 특수교사가 진정으로 통합교육의 가치와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전문가인가 아닌가 그것이 중요할 것이다. 국어 사전은 통합을, 1. 여러 요소들이 조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일. 2.인격의 구성 요소가 조화로운 구조를 이루는 일. 이라 정의 내리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특수학교에서 특수학급에서 이 정의를 어느만큼 실현했는가? 그리고 학교를 정할 때 부모들은 전문가들은 장애인 학생에게 의견을 묻고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고 있는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삐디이)
2017-12-13 | hrights | 조회: 3 | 추천: 0
김아현/ 인권연대 연구원 “그 피자, 범죄자들 주는 거에요?”  대놓고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사님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놀람과 비아냥이 분명 섞여 있었다. 열 판의 피자를 들고 30여분을 걸어갈 자신이 없어 잡아탄 택시였다. 초겨울 쌀쌀한 공기에, 들고 가는 동안 방금 만든 피자의 김이 식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구치소로 가자고 했을 때 기사님은, 젊은 아가씨가 들고 가기 벅차했던 상당한 양의 피자가 구치소 재소자들에게 주려는 것임을 알고는 저렇게 물었다.  한 달에 삼일 일정으로 인권연대가 진행하는 평화인문학 마지막 날엔 그동안 강의를 듣느라 수고한 수강생, 그러니까 구치소 재소자들에게 피자를 드리곤 한다. 토핑이 화려하고 값이 많이 나가는 피자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구치소 가까운 곳에 있고 가성비가 꽤 좋기로 알려진 곳에 신경 써서 미리 주문을 하고 시간에 맞춰 픽업하러 간다. 밖에서는 흔하고 쉬운 음식이지만 안에서는 귀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그 피자배달, 보람도 있다.  택시기사님과 의견이 다를 때는 을이 되어야 잠깐의 안전과 평화를 확신할 수 있다는 경험치를 쌓아왔기 때문에, 그분과 언성을 높이거나 각을 세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조근조근, 그러나 빠르게 내 할 말을 해야 했다.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도 사기와 횡령이 되어 경제범으로 저 안에 갇힐 수 있다고, 지금 서울구치소 독방에 계시는 분이 집권하는 동안 그런 경제범들이 아주 많이 늘었다고, 기사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구치소 재소자들이 그렇게 악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아닐 수 있다고, 실정법을 위반한 게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기사님은 ‘좋은 일 하신다’면서도 위의 말에 반응하기보다는 피자를 구입한 돈의 출처를 더욱 궁금해했다. 세금으로 범죄자들에게 피자 사 주는 것 아니냐는 거였다. 그 분이 걱정하는 것처럼 ‘혈세’로 나가는 돈이 아니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구치소 앞에 차를 세워주는 기사님 목소리에서 불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차로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달리는 동안 주고받은 대화는 짧았지만 택시에서 내려 구치소로 들어가는 동안 명치에 쌓인 답답한 기분은 열 판의 피자보다 무거웠다. “죄 지은 사람은 피자 먹으면 안 되나요?” 라는 한 마디를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아직까지 남았다. 사진 출처 - 구글 “아우, 걔네들한테 무슨 피자를 먹여. 밥이랑 반찬이면 되지.”  그녀는 이른바 사모님이다. 넉넉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에 비슷한 연배에 비해 공부를 많이 했고, 남편도 꽤 잘 나가는 지위에 있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를 할 시간도 주어졌다. 그녀가 하는 봉사라는 것은 이를테면 보육원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에게 주기적으로 쌀과 반찬, 학용품들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몸 위에 두른 것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기품은 놓지 않는 미적 감각도 지녔다. 그녀의 활동이 알려지자 지역사회에서 존경도 받게 되었고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녀가 하는 좋은 일을 함께 하려는 사람들도 제법 생겨났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논의하던 어느 자리에서 그녀는 위와 같이 말했다. 누군가 ‘만날 주던 쌀과 부식 말고, 피자나 브랜드 운동화 같은 것을 선물하는 것은 어떤가’ 하며 낸 의견에 대한 답이었다. 그녀보다 오래 봉사하지도, 많은 돈을 부담해오지도 못했기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대번에 그녀의 말에 토를 단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는 그걸 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고,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 일로 그녀는 아마 조금 외로워졌을지도 모른다.  그간 그녀가 해 온 좋은 일의 무게를 굳이 깎아내릴 일은 아닐 것이다. 두루 동의할 만한 철학으로 해 온 일이건 아니건, 그녀는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녀의 활동이 위선이라 해도 위악보다 위선이 백 배 낫다. 누군가의 위선 덕에 하루의 근심을 덜고 이웃의 존재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도 가치 있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는 ‘하루하루 먹고 자고 싸는 일만 해결하면 다행인 존재, 의식주를 벗어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되는 존재, 결국 인격과 개성을 지닌 인간이기 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 자신이 돕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갸웃거리게 하는 위력이 있었다. 가난이, 그것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의 인격을 모르고 지나쳐도 된다는 말과 같지는 않을텐데.  욕을 하고,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이 혐오는 아니다. 그리고 모든 혐오가 나쁜 것은 아니다. 욕하고 싫어해도 좋은 나쁜 짓은 꽤 많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무시하고, 상대가 어떤 지점에서 상처를 받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 혐오다. 그래서 혐오는 가장 낮은 곳,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해 흐르고 자주 정당화되곤 한다. 관습과 논리와 도덕의 탈을 쓴 채로 유통되고 굳어진다. 농담인데 뭐 어때, 네가 예뻐서 그 남자가 그랬나보지, 걔네들에게 피자라니 과분하지, 범죄자는 피자 먹으면 안 돼. 성희롱에 가까운 말에 정색하는 동료직원에게, 용기 내어 성폭력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가난하고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이 발각되어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말들에 혐오가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그게 혐오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피자를 먹으려면 값을 치러야 한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나 가난한 아이들이 사 먹을 수 있는 피자와, 연봉이 어마어마한 사람이 먹는 피자의 값이 같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피자를 먹는 입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은 기억해도 좋지 않을까. 삶을 욕망할 권리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도.
2017-12-06 | hrights | 조회: 292 | 추천: 28
이회림/ ○○경찰서 골목길, 공연음란죄, 그리고 용기 골목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이웃사촌이라고 부르면서 가족처럼 친하게 여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옆집 동갑내기 남자아이와 딱지치기를 하거나 동네 언니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며 정신없이 놀던 장소는 주로 ‘골목길’ 이었습니다. ‘골목길’에는 유년시절의 따뜻함, 아련함, 그리움과 포근함이 오롯하게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추억의 ‘골목길’에 다소 어두운 이면이 있습니다. ‘범죄 불안장소 1위’가 바로 ‘어두운 골목길’이라는 것입니다.  법무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범죄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장소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5.2%가 ‘어둡고 후미진 골목’을 꼽았습니다. ‘유흥업소 밀집지역’이 35.6%로 뒤를 이었고, ‘놀이터나 공원’(29.5%), ‘지저분한 거리’(25.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저는 주로 혼자 걸어서 통학을 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는 골목길이 하나 있었는데 반드시 그 길을 통과해야만 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8시30분정도 되었을까요? 골목길을 중간 정도 걸어가고 있는데, 후미진 모퉁이에서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툭 튀어나왔습니다. 그 당시 40대이던 저희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고 외할아버지보다는 적어 보였으니 아마 50~60대 정도로 되는 아저씨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 성기를 속옷 밖으로 꺼내서는 흔들흔들 대면서 저를 향해 느끼하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본의 아니게 아저씨의 흔들거리는 ‘그것’을 한참동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갑작스럽게 성인 남성의 성기를 그것도 환한 대낮에 정면으로 보게 된 터라 낯설음과 불쾌함 속에서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당시 한 살 먹은 아기였던 막내 남동생의 ‘그것’과는 다르게 귀엽지도 연약해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생김새가 연못가에 자라는 ‘부들’같다고도 생각하다가 계속 보고 있기는 참으로 불편하고 싫다는 마음이 확 밀려왔습니다. 다행히 그 아저씨는 본인이 정한 그 자리에서만 그 ‘부들’ 같은 것을 계속해서 열심히 흔들대고 계셨고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학교를 가기 위해선 그 아저씨 앞을 지나쳐 가야만 하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불쾌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고, 발은 안 떨어지고 이래저래 가슴속이 답답해 왔습니다. “엄마야!! 이 양반이 미쳤나!!” 매우 높고 새된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들려왔습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어떤 아주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나오시다가 아저씨를 보자마자 소리를 꽥~지르셨습니다. 이내 저를 발견한 아주머니는 ‘너는 얼른 학교나 가라’며 저를 향해서도 소리를 빽~ 내시더니 다시 아저씨를 향해 격렬히 욕설을 퍼부으셨습니다. “이 미친 @#$%&*가~ 어디서 &*()^%$~!!” 뭐랄까요.. 그 생명력 넘치시던 아주머니의 목소리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의 카랑카랑한 사자후를 뒤로 하고 마구 마구 뛰어서 학교 정문까지 내달렸습니다. 그 날 이후, 그 골목길에 차마 혼자 걸어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골목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길을 멀리 돌아서 가야했지만 다시 그 길로 갔다가 또 징그러운 아저씨와 마주칠 것 만 같았습니다. 3년이 지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그 근처 골목길에서 또 다른 이상한 아저씨와 마주쳤습니다. 이 아저씨도 자기만의 소중한 ‘그것’을 꺼내서 미소 띤 얼굴로 저를 쳐다보며 흔들대고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불쾌감이 엄습했고 살짝 몸이 굳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3년 전인, 1학년 때와는 달리 저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뒤통수가 화끈거리고 간지러웠지만 나름 용기를 쥐어 짜 내서 그 아저씨 앞을 지나쳐 왔습니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 이었지만, 그런 아저씨들을 두어 번 보게 되자 더 이상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들은 3년 전 뽀글 머리 아줌마처럼 대차게 빽~소리 한 번 질러주거나 아예 아무런 반응을 하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주친 아저씨들의 행위는, 공연(公然)히 음란한 행위를 하는 죄, 즉 형법상 ‘공연음란죄’에 해당하고 당장 현행범인으로 체포를 해야 하는 범죄행위입니다. (“공연음란죄” : 형법 제 245조  1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공연음란죄’는 건전한 성도덕 내지 성풍속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공연히’란 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일컫고 ‘음란한 행위’는 성욕의 흥분 또는 만족을 목적하는 행위로서 사람에게 수치감·혐오감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음란성의 판단에는 행위가 행하여지는 주위환경이나 사건이 일어나는 생활권의 풍속·습관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합니다. 초등학생때 두 번이나 ‘공연음란죄’의 피해자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행위 자체가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머리가 이상한 아저씨들이라 병원에 가야된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구글 흔한 피해자 중의 하나였던 제가 경찰이 되고나서는 가해자를 체포하는 입장으로 상황이 역전되는 경험을 하게 되니 범인들을 체포할 때마다 통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혼자 체포한 것은 아니고 항상 남자 경찰들과 함께 인데다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지만,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최선을 다했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순찰요원으로 112신고 사건을 담당할 때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체포에 나서는 상황이 많았지만, 형사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현행범인으로 체포되어 온 가해자와 마주 앉아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봄 밤, 순찰요원들께서 한 30대 남성을 ‘공연음란죄’로 체포해 왔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여고생들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옷을 하나씩 벗으며 아무도 원하지 않은 스트립쇼를 벌인 남자였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112에 신고를 했고, 피해 여고생들은 ‘아저씨한테 가라고 말했는데도 안 가고 계속 옷을 벗고 성기를 꺼내서 자위를 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는 내용을 진술서에 꼼꼼히 적어 왔습니다. 가해자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나름 심도 깊은 대화를 시도하여 보았으나 그 남자는 저를 쳐다보며 방긋 방긋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역시나 여느 공연음란죄 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말 수가 적었습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말입니다. 시종일관 묵묵부답이라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 진술’을 이끌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진술, 목격자들의 진술 그리고 촬영된 영상이 있었기 때문에 ‘기소’ 의견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여성을 놀래키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남성다움’을 인정받고자 하거나 자신의 소중한 ‘그것’을 보고 놀라는 여성을 보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행위는 정신질환의 일종입니다. 실제로 극심한 우울증이나 여성으로부터 큰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발견되기도 합니다. 흔히 ‘바바리맨’으로 대표되는 노출증은 자신의 성기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거세공포증’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성기를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욕구, 성기를 드러냈을 때 당황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쾌감을 느끼려는 행위는 ‘거세공포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라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지거나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다지 중한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경향이 있고 개그 프로에서 가볍게 희화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오랫동안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트라우마를 일으키기도 하는 엄연한 ‘범죄 행위’ 입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은 우리 삶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우연입니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삶의 모양과 다르게 놓여진 생소한 사건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크고 작은 다양한 삶의 위기에 잘 대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용기’ 입니다. 우리 안에 ‘용기’가 살아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게 하고, 견디게 하고, 또 자신을 지키게 하는 정신력으로 나타납니다. 처음 가해자와 골목길에서 1대1로 마주 섰을때 아무 소리도 못 내고 가만히 있기만 했던 제가 3년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긴장하고 있던 두 다리를 움직여서 자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에서 ‘용기’라는 감정이 튀어나왔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용기’라는 단어는 왠지 남성스러운 단어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단어 그 자체에는 성별이 따로 없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아무리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악당들 앞에서 눈도 똑 바로 못 마주치고 머리 싸매고 웅크리고 앉은 연약한 슈퍼히어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슈퍼히어로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러한 능력을 끄집어 낼 마음가짐, ‘용기’가 없으면 다 무용지물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겁쟁이 사자가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 것도 ‘담대한 용기’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위험이 없을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쳐올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 그 위험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 이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자~ 여러분은 ‘용기’ 있는 사람인가요?
2017-11-29 | hrights | 조회: 51 | 추천: 4
이동화/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활동가 지난 8월 25일 미얀마군의 대대적인 로힝야 무장세력 색출 작전과 함께 시작된 로힝야 인종청소사태, 현지에서 전해오는 참혹한 소식에 아디를 비롯한 국내 시민단체들은 긴급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기자회견 당일 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국내 거주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 이삭 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1988년 미얀마 반군부 민주주의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군부의 표적이 되어 주변국에 피난하였다가 2000년대 초반 한국으로 밀항했고 국내 종교인의 도움으로 난민지위를 획득하여 지금까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에 있는 가족친지를 통해 참상을 접하고 있던 그는 우연찮게 국내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생업중임에도 기자회견에 나와서 로힝야의 참혹한 실상을 전해주었다. 아디는 올해 현지 인권실태 조사를 위해 두 차례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로힝야 난민들을 만났다. 그리고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전해준 이야기들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현실감마저 들지 않을 정도였다.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들은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했고 사람들을 집안에 몰아넣고 불을 질렀다. 여성들을 강간하고 아이들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죽음과 극한의 공포가 번져나가면서 로힝야 여성과 아동, 그리고 늙고 병든 사람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무작정 이웃나라로 피신했다. 피난하는 그들의 뒷모습에 사격을 하며 행여나 돌아올까 봐 길에 지뢰를 매설했다. 이것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광기가 몰아쳤고 인간의 존엄은 상실됐다. 유엔에서는 피난민의 숫자가 60만 명이 넘는다 했고 이는 미얀마 로힝야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이다. 국내에서 외국의 인권이슈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다. 대부분이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낼 여력이 없다. 그래서 로힝야 사태가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걸 아디는 환영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국제적 압박여론이 국내에서 형성되길 바랐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미얀마군대의 반인권적 전쟁범죄를 성토했다. 하지만 국내 인터넷 댓글들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로힝야 관련 기사의 댓글들 중 상당수는 “로힝야 족은 친일파이며 과거 미얀마 사람들을 학살했다” “무슬림 불법이민자가 갑자기 분리 독립을 요구해서 발생한 사태이다” 등으로 로힝야 역사관련 여러 논쟁들을 역사적 진실로 간주하며 이슬람 혐오에 가득차 ‘로힝야 사람은 당해도 싸다’식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댓글은 아주 높은 추천을 받았다. 이 주장들은 섬뜩하면서도 위험한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인종청소 사례였던 유대인 학살, 르완다 학살, 코소보와 보스니아 인종청소 사태들을 살펴보면 특정 종교와 민족에 대한 혐오와 차별, 정치집단의 적극적 선동, 내부집단의 적극적, 암묵적 용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현재의 로힝야 사태와 상당히 유사하다. 소위 가해자의 전형적인 논리인 것이다. 사진 출처 - 필자 하지만 만약 한국의 댓글러와 혐오 댓글을 추천한 사람들이 실제 로힝야 사람을 만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전해 들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여전히 로힝야 사람들을 폄훼하고 혐오하는 댓글을 남길까? 장담할 순 없지만 로힝야 인권사태에 대해 꾸준히 입장을 밝혀온 국내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가정을 했을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로힝야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현재 모습을 바라본다면 분명히 변화가 있을 것이다. 혐오는 줄어들고 이해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논리로 자신들의 눈과 귀를 멀게 했던 혐오와 편견을 걷어내고 사태를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래서 아디를 포함한 국내 시민단체는 국내에 거주하는 로힝야 난민과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한 두 명의 활동가를 모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이런 식으로 행사를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로힝야 관련하여 한국 인터넷 상 댓글은 최악의 인권사태를 겪고 있는 로힝야 난민들에게 큰 상처를 내고 있다. 한국전쟁을 통해 민족간 폭력의 결과와 피난의 고통을 DNA속에 인식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하고 혐오와 증오가 아닌 평화와 공감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로힝야 난민들에게 전해야 할 첫 번째 댓글이다.
2017-11-17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얼마 전 대전 근처의 모 도시에서 주부 대상 인권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한 여성분이 중학생 자녀가 교복 위에 외투를 입고 등교한 것 때문에 중학교 3년 동안 벌점을 30점이나 받아서 속상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두 달 전 사무실 홈페이지 게시판과 전화로 인권침해 상담을 요청하신 대전의 학부모도 비슷한 얘기를 해 주셨다. 환절기를 맞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생 자녀가 교복 위에 잠바를 입고 등교하다 교사에게 교칙 위반이라며 벌점 5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학교는 양말 색깔도 흰색과 검은색만 허용 되고,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학생은 그 자리에서 물티슈로 닦아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교복 위 겉옷을 단속한 위 두 학교는 교육부의 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을 취재한 오마이뉴스에 기사에 의하면 교육부는 이미 지난 2016년 1월 '학교규칙(겉옷규제) 시정 촉구 민원 관련 단위학교 학교규칙 개선 요구'라는 제목의 공문을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냈다고 한다.  교육부는 이 공문에서 "학생 두발·복장·용모 등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은 학생,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반영하여 학교규칙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외투 착용을 규제하는 학교규칙에 대해 학생 인권침해를 이유로 시정 및 개정을 요청하는 민원이 접수되었다"며 "각 교육청에서는 단위학교에서 학생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학교규칙이 제·개정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고 한 것이다.   대전의 해당 고등학교 지도교사는 이런 교육부 지침에 대해 듣지를 못했다고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업무 때문에 교사업무가 힘들다고 하는 교사들이 이런 지침은 아예 접하지를 못했다고 하니 의아할 따름이다.   비록 교육부 지침에서 시정을 요구했다 해도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는 왜 그렇게 교복을 입힌 다음에는 기를 쓰고 규제와 단속을 하는 걸까?   일곱 살인 우리 집 둘째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지만, 교복을 입지 않는다. 교복을 입지 않을뿐더러 체육복, 태권도장 유니폼 등 아무 옷이나 자기 맘에 드는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간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만 거기서도 둘째의 옷 입는 스타일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심하게 더럽지만 않다면 학교에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하지만 교복을 입는 전국의 다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등교 시간 교문에서, 공부하는 교실에서 교복을 두고 교사와 학생 간의 끊임없는 신경전이 펼쳐진다.   충남 지역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인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가 지난 10월 31일 지역의 64개 학교 151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가장 불편하다고 답한 규제 중의 하나가 응답자 중 64.7%가 꼽은 ‘겨울철 외투는 반드시 교복 상의 위에 입어야 한다’는 규제였다.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때도 입지 않고 규제도 하지 않던 교복은 중고등학교 때는 이처럼 엄청난 감시와 규제 대상이 된다. 교복뿐만 아니라 머리 모양과 길이, 양말의 색깔, 화장 여부 등도 중고등학교 때는 단속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중고등학교 안의 단속 대상들은 대학교에 진학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차이는 고작 나이 1~2살 차이일 뿐인데 고등학생 처지에서 보면 정말 마법처럼 자신의 신체와 개성, 자기표현의 자유를 옥죄어 오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이 단속과 규제와 미성숙의 대상에서 수능시험 한 번을 치고 나면, 그래서 대학에 가거나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옷차림도, 머리스타일도, 양말색깔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절대반지를 가지게 되는 이해하지 못할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은 복장과 머리 스타일을 규제해야 하고 대학생과 일반 직장인은 자유로워도 된다는 기준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복장과 머리 스타일을 규제하고 단속하면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고 성적도 오른다는 연구논문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 아이는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해서 파마를 하고 다닌다. 싫증이 나지 않는다면 꽤 오래 하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 현실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면 아마도 파마를 풀고 머리 모양도 짧게 깎아야 할 것이다.   그때 둘째 아이가 “왜 중학교에 가면 파마를 풀고 머리 모양도 짧게 해야 돼요?”라는 질문을 받는 상상을 하면 나는 별다른 대답할 거리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혹시 “중학생이니까, 대한민국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그냥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대답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내 아버지의 학창시절에서 나와 또 내 자식 세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서 공교육을 한다는 다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머리카락과 복장에 대한 규제와 단속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반세기를 훌쩍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 단속과 규제에는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이 없다. 무채색 양말만 신어야 하고, 추워도 교복 위에 덧옷을 입지 말아야 하며, 귀밑 몇 센티까지 머리를 잘라야 학교생활을 잘하고 그래야 공부도 잘 한다는 미신 같은 교칙이 기성 교육세대의 엄포성 주장과 함께 난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알파고가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기더니 그 알파고에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알파고 제로’라는 인공지능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지나온 100년의 변화보다 앞으로 다가올 10년의 변화가 더 빠를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고급정보도 아닌 상식이 되어버렸다.   이런 세상에서 학생들의 교복 위에 입는 덧옷과 머리 모양으로 인권침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이런 얘기는 정말 그만했으면 좋겠다.
2017-11-09 | hrights | 조회: 11 | 추천: 1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소중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친척들과 대화의 소재는 단연 국정원과 군의 위법행위가 아닐까 싶다. 설마 그랬을까. 믿기 어려운 일이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군대가 벌인 불법행위가 뉴스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국가기관이 이정도 까지 깊숙하고 세밀하게 정치와 개인들을 탄압했는지, 그들의 조직적이고 치밀함에 놀라고 있다.   그동안 문제제기를 해온 앞 선 단체와 전문가들이 용기 있게 지적해온 일이 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시민들이 고마움을 표시하고 새로 회원에 가입하고 후원회비를 늘려가고 교육이나 실천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도 절실하다. 불법행위의 놀라움만큼 시민 개인이 힘을 합쳐 적폐청산을 이루는데 함께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 명절이 되고 있다.   그저 생업에 종사하다 우연히 뉴스를 접한 시민, 개인은 어떻게 함께해야 할지, 자신들의 영역에서 열심히 싸워온 분들이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고 위안 받는 자리를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불교계 시민단체와 조계종 선원수좌회 등의 승려단체들이 매주 목요일 ‘조계종 적폐청산 촛불법회’를 서울 보신각 앞에서 8차례 열어왔다. 주최 측 추산으로 2만여 명이 넘는 시민과 불자들이 참여해 왔다고 한다. 조계종의 적폐청산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해야 할 사안은 국정원의 종교개입, 검찰의 상습도박 재수사, 적광 스님의 인권유린 재수사, 동국대 현 총장의 교비횡령 기소 등 이다.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에서 내쳐진 이유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개입이라는 주장에 대해 진실이 무엇인지 시급하게 조사되어야 한다. 현직 조계종 총무원장과 국정원이 어떤 사전 협의를 한 사실이 있는지 밝혀져야 단식을 한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너무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조계종은 10월12일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점잖은 방식으로는 뒤통수만 맞을 것이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난 것도 한 사례이다. 비공개로 한 의례적인 인사였다지만, 조계종 총무원은 마치 청와대가 명진 스님 단식천막을 방문한 국민소통수석의 행동을 사과하러 왔다고 주장하는 등의 언론 플레이를 했다. 어설프고 눈치 보는 애매한 자세로 적폐청산 활동을 찬물을 뿌리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8년간 자승총무원장 종권과 싸워온 불교계 시민단체들이 10월 11일 저녁에 시민과 함께 하는 집회를 서울 종로 종각과 우정총국 거리에 연다고 한다. 적폐청산을 염원하는 개인과 단체, 전문가 모두가 모여 가을 밤, 연대의 촛불잔치를 벌여보았으면 하는 꿈을 꿔 본다. 너무나 큰 국가기관과 공공영역의 적폐청산이 큰 절벽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바로 보이고 매일, 매주 청산하고 싶은 적폐청산의 의제는 너무나 많다.   명진 스님 단식에 이어 조계종 비구니 스님 두 분이 단식을 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조계종의 원칙과 기본 생계를 보장하라는 요구다. 1만2천명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구니의 여론을 움직이는 행동은 마치 여성 참정권을 찾는, 미국 노예들이 권리를 찾는 모습과 비교되는 새로운 역사가 되고 있다. 여성의 권리를 찾는 조계종의 적폐청산을 응원하고 함께 희망의 텃밭을 일구는 평화와 연대, 민주와 인권이 상생하는 10월 가을 밤, 함께 만날 것을 제안한다.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2017-09-28 | hrights | 조회: 4 | 추천: 0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장애 자체는 오래 전부터 몸에 베어 있었으므로 별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전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던 일들이 갑자기 심각한 문제로 바뀌어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놀이가 변화면서 바꿔 말하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쿠라모토 토모야키, 한 장애인이 청소년에게 묻는다 보통이 뭔데? 中에서」     사춘기- 날마다 아웃팅, 그리고 청산가리 실험.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이 각자의 차이를 자각하고 상대방을 인식해가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화하는 4학년 무렵에는 과학 실험 준비물로 ‘청산가리’란 것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그 청산가리가 사람이 즉사하는 독극물이란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중학교 전까지 늘 품에 소지 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자살을 시도 하려고 그랬던 것일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2006년 청소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장애인 청소년이 비장애 청소년보다 자살시도나 자해행위를 한 경험이 1.5배 많았는데 지금도 크게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따돌림과 놀림에 자살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는 내 자신의 의지이자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학교 폭력이나 왕따가 크게 사회적으로 이야기되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또래에서 나름대로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가지지 못한 필자는 외톨이였다. 아니 아이들 사이에서 투명인간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입학거부 9차례에 선생님들의 비리 아닌 비리(?)로 힘들게 들어간 사립학교에서 최소한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몇몇 친절을 베푸는 아이들을 친구로 사귀기 위해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나의 장애가 뭔지,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 뇌병변장애가 어떤 것인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설명한 기억은 별로 없다.     장애인 in 청소년(?), 청소년 in 장애인(?)-장애인 당사자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이란 단어만큼 실체들이, ‘존재감’이 없는 낱말은 없을 것이다. 그 존재감 없는 그룹에서도 그 실체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장애인 청소년일 것이다. 청소년문제를 다루는 여러 청소년단체에서 ‘장애인’에 대해 연구하거나 활동하거나 전담 전문가를 두는 곳이 있는가? 그리고 장애인 문제를 주제로 다룬 크고 작은 단체에서 ‘청소년’에 대해 연구하거나 활동하는 전담 전문가를 두는 곳이 있는가? 물론 장애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과 ‘체험’ 프로그램은 많고 많다. 그러나 장애인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고, 떠들고, 실천하는 조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지향하는 단체나 활동 역시 드물기만 하다. 인터넷을 아무리 몇 시간 검색해 보아도 장애인 청소년 문제를 언급한 고발성 기사나 사회성 보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뉴스의 장애인 청소년은 언제나 격려 받아 즐겁고 체험시켜줘서 기쁜 각 기관의 예산 대비 성과가 좋은 프로그램의 대상일 뿐이다.   장애인 청소년 당사자의 고민과 갈등을 이해하고 그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그들이 주체가 되어야 함을 인식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그들이 청소년일 때 ‘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으며, 그들이 장애인이기 이전에 ‘청소년’이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며 다양한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기 때문에 장애인도, 청소년도 아닌 독자적인 ‘장애인 청소년’ 일 수도 있다. 어디서 어떤 일에 장애를 일으키는 장애청소년이 아니라.   사진 출처 - yes24       꼭 놓치는 장애인 청소년 문제들.   1. 대표적 장애 유형별 청소년 프로그램은 넘쳐난다. 그러나 그 속에 진정한 통합은 아직 2% 부족하다.   지체, 시각, 청각 등 대표적인 장애 유형별 큰 단체들은 너나할 것이 없이 자체 청소년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것 자체는 나름대로 가치 있고 의미가 있겠으나 그렇게 청소년들을 장애 유형별로 묶어서 프로그램 하는 것은 자칫 그들을 그 장애유형에 갇히게 하고, 안주하게 하는 그들만의 ‘보호구역’으로 위축시킬 위험도 있다. 장애 유형별로의 독자성과 정체성은 인정해야 할 문제지만 오늘날 청소년 프로그램의 트랜드인 ‘다양성’의 요체는 장애인끼리도 유효하며 장애인과 다른 소수자끼리도 꼭 필요한 주제이다.   2.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분류되지 않으며 인식하지 않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 그들이야 말로 진정 소수자이다.   지금 논의하고 있는 ‘청소년’이란 담론 속에 ‘장애인’이란 영역이 소수이듯, 대표적인 장애 유형에 속해 있지 않은 희귀 질환에 의한 장애인청소년들은 장애인에서도 청소년에서도 이방인이다. 장애 판정을 받은 정신장애나 건강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특히 그러하다. 또한 장애상태가 그리 심하지 않아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육체적인, 정신적인 정체성의 갈등을 겪는 청소년들은 그 정체성을 결정지을 때까지, 아니 정체성을 결정짓고 나서도, 그들은 경계선을 헤메이는 회색인이다.   3. 성적을 고민하는 그들도 있으며, 성적 고민을 해보고 싶은 그들도 있다.   학생회장이 되거나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거나 대학을 입학해서 축하받는 장애인 청소년은 많아도 그들도 학교에서 성적을 고민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시청각 장애인 청소년이나 중증 지체장애인 청소년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사교육시장에서 개인 과외나 학원과외를 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필요한 지원과 환경에 익숙한 훈련된 학원이나 대학생 과외 선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4. 그들도 가끔 벗어나고 싶다. 학교-집-병원이란 쳇바퀴에서. 그러나 동시에 심야야간 자율학습도 하고 싶고 심야 학원도 가고 싶다.   필자는 또래문화에 약하다. 아니 아예 없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 각종 재활치료에 소풍도 방학도 반납해야 했고 남보다 느린 필기 속도, 남보다 느린 인지 속도에 다른 또래들 보다 수면 시간을 대폭 줄여야 했다. 촛불들이 역사를 새로 만들어 갈 때에도 필자가 가르치는 중증 장애의 재수생들은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인터넷 중계에 만족해야 했다. 집에서 말이다. 분식집과 pc방에서 만들어 지는 중학생들의 문화와 담론도 모르고 영화관과 카페, 그리고 당구장에서 생성되는 고등학생들의 세계도 장애인 청소년들에게는 낯설다. 그 공간에 장애인청소년들이 자유로이 참여 할 수도 없고 장애인 청소년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에 청소년들의 세계가 창조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권은 디테일에 약하다.   입시철에 보면 많은 장애인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보면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학교 현장의 폭력성과 배타성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2017년 법과 제도는 엄청나게 변화했지만 여전히 학교 선생들은 편의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 학생에게 어려움을 각오하지 않았냐며 장애인학생에게 수치심을 주며 책임을 전가하고 비장애인 학생들은 봉사 학점을 빌미로 장애인학생에게 위선을 떨 뿐이다. 일반 학생들과 심리적으로 안정을 가지며 수능시험을 치르겠다는 자폐성 학생의 요구에 학교장은 자의적으로 비장애인 학생들의 피해를 운운하며 수능 접수조차 거부하는 작금의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편의시설이 없어서 이과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휠체어 장애인 고등학생의 눈물은 특수학교를 요구하며 무릎을 꿇은 장애인 부모의 눈물과 무게감이 다른가? 그런 장애인 고등학생들의 눈물에 특수학교의 부모님들은 그런 현실에서라도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데 그건 문제가 없나? 눈물 흘리고 무릎을 꿇은 부모님 뒤에 있는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야 하는가? 그 많은 교육 현장의 목소리는 왜 그들 앞에서 그동안의 차별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가? 그 많은 인권적인 교사들은 많은 비장애인 청소년들에게 교육하지 않는가? 장애인을 낳더라도 장애인이 되더라도 수치심을 가지지 말라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차별에 저항하라고 네 장애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회에 항거하라고 교육하지 않는가?   다시 사춘기 청소년처럼 반항해 본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최근 로힝자 사태에 관한 소식은 너무도 처참하다. 불과 약 2주전부터 이어진 미얀마 군의 로힝자 무장세력 토벌작전으로 인해 현재까지 1000명 이상의 로힝자 무장세력과 민간인이 사망했고(유엔인권보고관 발표, 미얀마 군인과 경찰도 15명 사명), 마을 전체가 불에 타고성폭행과 아동살해까지 벌어져(국제이주기구 발표) 전체 인구의 1/3인 31만 명의 로힝자 사람(유엔난민기구 발표)들이 최소한의 생존도구조차 챙기지 못한 채 논과 밭, 산과 강을 가로질러 방글라데시로 피난하고 있다. 더욱이 피난하는 로힝자 사람들을 향해 박격포와 자동화기를 쏘며 피난민의 귀환을 막기 위해 지뢰를 설치했다는 소식은 도대체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끔찍한 뉴스를 보며 또 한 번 놀랐던 것은 관련 국내 기사에 대한 댓글들이다. “로힝야 족은 미얀마 사람이 아닌 방글라데시 출신의 무슬림 불법체류자이다” “로힝자 사람은 미얀마가 영국식민지배 시절 미얀마 사람들을 탄압하는 지배세력으로 한국 일제강점기 시절 ‘쪽발이’ 앞잡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 “로힝자 사람들은 미얀마사회에서 강간과 학살을 저지르는 무슬림 테러리스트 이다” 심지어 이런 댓글은 가장 많은 추천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로힝자의 탄압에는 역사적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미얀마 군과 정부의 행위가 그럴만하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아디의 로힝자 기고글에 대한 댓글 캡처     도대체 로힝자 사람들과 직접 이해관계도 없는 한국 사람들이 이런 지독한 댓글을 달고 가장 높은 추천을 받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댓글이 전혀 사실과 맞지 않다는 점이다.   로힝자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이 아닌 불법 체류자라는 것은 미얀마 군부독재 시 만든 법령에 의한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이다. 미얀마 독립이전부터, 방글라데시가 건국되기 훨씬 이전부터 로힝자 사람이 라카인 지역에 살고 있었다. 또한 로힝자 사람들이 식민지배시절 영국에 의해 대규모로 이주되기도 하였지만 이는 라카인 지역에서 농업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함이고 대부분이 지배세력이라기보다는 하층민이었다. 무엇보다 로힝자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들을 강간하고 학살하며 문제를 일으켜 현재의 사태를 야기했다는 주장 역시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몇 가지 사실을 짜 맞춘 뒤틀린 허구이다. 로힝자 사람들은 1962년 네윈의 군사독재시절부터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탄압받았고, 1978년 군부의 무슬림 반군토벌작전인 ‘킹드레곤 작전’으로 20만 명 이상이 피난민이 되었다. 1982년에는 시민권법개정으로 기존 로힝자 사람들의 차별적 시민권마저 박탈되었고, 1990년대 초반에도 군부에 의해 대규모 로힝자 난민이 발생했으며 2012년 불교도 여성의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로힝자 사람 수백 명은 학살당하고 1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어 바다 위를 떠돌았으며 로힝자 사람들은 내부난민촌에 강제 이주 당했다. 2016년 10월, 그리고 최근의 토벌작전까지 로힝자 사람들은 끊임없이 배척당하고 차별받으며 살해와 성폭행, 추방 등 폭력의 대상이었다. 또 한가지 로힝자 사람들이 무슬림이기에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동화되지 못하고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2008년 군부에 의해 제정된 미얀마 헌법만 보더라도 미얀마는 13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었고, 불교, 가톨릭, 개신교, 힌두교, 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다민족, 다종교 국가이다.   비단 2차 세계대전시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서 민간인 학살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폭력을 가하는 세력은 끊임없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사실에 대한 접근을 막은 채 피해자들이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사실을 재가공한다. 이번 로힝자 사태역시 마찬가지이다. 미얀마 정부는 군사작전지역의 모든 접근을 막거나 통제하고 로힝자 무장세력을 대상으로 테러와의 전쟁이라 주장하고 있다. 로힝자 사람들 전체 인구의 1/3이 피난하는 이 상황에서도 로힝자 사람들의 피해가 ‘가짜뉴스’라고 한다. 로힝자 사람들의 출신이 어떠하고 종교가 무엇이냐는 이번 학살에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한다. 죽음의 공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난민은 이제 굶주림과 질병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이들을 향한 공격이 비단 미얀마 군인의 총끝에서만 나온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들을 향한 저주어린 댓글이나 생각없는 동조 역시 로힝자 난민에게는 폭력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차별받고 탄압받아야 마땅한 사람은 없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18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벌써 20년 전 무렵의 일입니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지역의 통일 운동 단체에서 3년 넘게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시작할 때는 특별히 통일 운동에 대해 거창한 사명의식 같은 건 없었고, 학교를 그만둔다는 정보(?)를 입수한 선배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시작한 이른바 첫 사회생활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윤이상 선생은 고향 통영 출신의 음악가로 고등학교 교가의 작곡가란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선생이 현대음악계의 거장으로서 ‘동백림 사건’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당시의 나를 적잖이 흥분시켰습니다. 비교대상은 될 수 없었지만 같은 고향이란 점과 통일 운동의 끈으로 윤이상 선생님과 내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역의 보잘것없는 활동가였던 저에게는 큰 위안이었고 자랑거리였습니다.   올해는 윤이상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선생은 생전 유럽 음악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되었으며, 1995년에는 독일 자아브뤼겐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한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훌륭한 현대 음악가였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그의 출신지 통영의 분위기는 조금 어색합니다. 물론 100주년을 맞는 9월에는 선생을 기리는 합창, 프린지, 다큐멘터리 상영 등의 다양한 행사가 통영에서 개최된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     하지만 윤이상 선생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선생의 생가터 옆인 통영시 도천동에 지어진 기념관의 이름은 여전히 ‘도천테마파크’입니다. 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에 당사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는 아마 세계 최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영시는 해외에 나가서는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란 점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활용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보수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선생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 현 통영시의 비열한 꼼수가 바로 ‘윤이상’이 보이지 않는 윤이상기념관 ‘도천테마파크’인 것입니다.   이제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면서 한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도 통영시가 도로를 새로 개설한다면서 아예 없애려고 했습니다. 사실상 같은 터인 생가터 바로 옆 공방의 소반장 인간문화재 추용호 선생의 천막농성과 강제윤 시인을 비롯한 많은 시민의 반대가 없었더라면 선생의 생가터는 흔적도 찾지 못 할 뻔 한 것입니다. 추용호 소반장의 아버지는 고모부인 윤이상 선생 부친에게서 소반 제작기술을 배워 인간문화재까지 됐고 그 기술을 아들인 추 소반장에게 전승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바로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입니다.   이러한 공간을 없애버리고 70년대 초에 작성한 도시계획에 근거해 도로를 개설하려고 한 통영시의 행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생가터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도 통영시는 공방을 이전하고 도로를 개설하면서 바로 옆의 윤 선생 생가터는 보존하겠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통영시의회는 9월 11일 임시회에서 ‘도천테마파크' 명칭을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바꾸는 조례안을 심의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의원 13명 중 8명이 윤이상 선생에게 부정적인 이념 논쟁을 주도한 자유한국당 소속이어서 과연 조례가 가결될 것인지 걱정스럽습니다.   1967년 독일에서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강제입국 당하고 2년간의 복역과 추방 이후 다시는 대한민국과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운명하신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선생은 살아생전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올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습니다. 1994년, 그가 동백림사건으로 강제추방 된 지 25년 만에 서울, 광주, 부산에서 “윤이상 음악축제”가 열리고 윤이상 선생도 김영삼 문민정부에 기대를 걸고 입국을 허가해 달라는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선생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명예회복 차원에서 고국 입국을 준비했던 윤이상 선생은 당연히 각서를 거부하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일 년 후인 95년 11월 4일 “내 고향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독일”이란 비통한 말씀을 남기고, 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한 줌의 흙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 영원히 잠드시고 맙니다.   선생이 이 땅에 오신지 100년이 되는 올해 당신의 유골이나마 고향 땅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고향의 푸른 바다와 당신 음악의 원천이라고 했던 밤배 선원들의 노동요를 무덤에서나마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한반도에서 당신의 노력으로 음악을 통한 평화적 남북 교류 사업이 이루어진다면 고국의 흙에 입 맞추며 조용히 하고자 한 말씀을 우리가 상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충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9 | 추천: 0
- 도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하라!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농부     최근에 제주시청에 민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의 답변은 이러했다. 여기는 제주도청 정책을 실행하는 곳이라, 도청 해당 과에 전화를 해 거기에 물어보라는 것이다. 황당하다. 육지 어느 시정이 이러할까. 시민이 시청에 문의 전화를 하는데, 도청에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한다.   이번 9월 1일엔 서귀포시장 내정자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그런데 임기가 고작 10개월 남았다. 업무 파악, 내년 6월 지방선거 등을 고려하면 제대로 일하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 대다수의 육지 분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보궐선거? 웬 인사청문회? 제주는 행정시장을 시민이 뽑지 않고, 도지사가 임명한다. 원희룡 지사가 임기 2년 중 1년 남은 전 서귀포시장을 도청에 갑자기 차출해 갔다. 내년 지방선거 대비라는 말도 많다. 결국 원지사가 도민과의 약속을 어겼다. 시장 임기 2년을 보장해 행정시 기능강화를 언급했지만, 결국 세 번째 서귀포시장을 임명할 예정이다. 서귀포 시민들은 화가 단단히 났다.   이게 제주의 현실이다. 2006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라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곤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다(조세와 재정 핵심권한은 이양되지 않았음). 하지만 위와 같은 처지다. 그래서 올 6월에 제주행정체제개편위원회에서 발전적인 행정체제 권고안을 원지사에 제출했다. 주된 내용은 기존 2개 행정시에서 4개시로 바꾸는 것과 행정시장 직선제였다. 지난 5개월 동안 용역 연구하고, 14차례에 걸친 읍면동 설명회, 2차례의 도민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다. 도민 정치참여 욕구 충족, 정책선호 동일성, 경제 및 산업구조 유사성, 제주시 집중화 완화 및 지역균형발전 등을 고려했다.     사진 출처 - 제주의소리     그러나 결론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제주도정과 제주 국회의원들이 수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내년 개헌과 2019년 제주특별법 전면 개정이 있으니 지금은 유보하자는 것이다. 결국 시장 직선제나 기초자치단체 부활 등은 2022년이나 얘기하자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또 제주 도의원 비례대표를 축소한다고 했다가 사실상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제주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오랫동안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논의해 원래는 지역구 두 석을 늘려 총 43석으로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 7월에 도지사, 도의회 의장, 제주 국회의원 3자회동에서 비례대표 2석 축소 추진을 합의했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오영훈 제주 국회의원이 이 사안의 제주특별법 개정을 위한 국회의원 20명 공동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3명의 동의를 받는 것에 그쳐 무산됐다.   결국 국회에서도 비례대표 축소는 올바른 정치개혁에 맞지 않다고 해준 것이다. 이건 매우 상식적인 일이다. 소수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거대 정당만이 기득권 정치를 펼치는 현 소선거구 제도는 건강한 지방자치와 분권에 역행하는 길이다. 득표는 50%밖에 되지 않는데 의석수는 90%나 된다는게 매우 비상식적인 행태다. 다양성과 참여를 기초로 한 건강한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제주 정치행정 지도자들이 이 씁쓸한 해프닝을 벌렸다.   제주는 특별자치도다. 즉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 지역이다. 특별법을 통해 이곳에서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시작해 한국 사회 곳곳에 퍼트릴 수 있다. 그 첫 걸음은 바로 자치와 분권을 확장하는 것이다.   첫째,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도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 현재 도의원 41석 중 7석만이 비례대표라 17%밖에 되지 않는다. 거대 양당의 지역구 의원이 다수를 구성한다. 비례대표를 30%까지 늘려야 한다. 그래야지만이 제주 지역의 환경, 복지, 교육, 노동, 행정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제주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둘째, 행정시장 직선제가 절실하다. 시장을 시민이 선출하지 못하니 시민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저 도지사 아래의 시장임에 불과하다. 행정시장의 자기결정권이 없다. 고로 앞서 언급한 제주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진짜 자치와 분권이 실현되는 제주특별자치도를 희망한다. 이것이 미래 제주의 희망이 아닐까.
2017-09-27 | hrights | 조회: 2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