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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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온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 그 배경이 자못 궁금하다. 선의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국민들에게 통일의 중요성과 유익함을 널리 각성시켰으니까. 아마도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두고 나오지 않았나 하는 분석이 유력하다. 북한 정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모 당국자는 작년 송년회에서 "2015년 통일 위해 다 죽자"라고까지 했으니. 북한의 급변사태를 노리고 2015년까지 흡수통일을 목표로 대박 통일을 외치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오판이고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이 불안정하다는 징후는 사실 없어 보인다. 오히려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나, 대외관계에서나 더 적극적으로 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취지의 신년사, 중대제안, 공개서신을 잇따라 제안해 오고 있다.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 것을 누누이 강조하며. 장성택 처형 이후 정치적 안정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취하지 못할 조치로 여겨진다. 북한의 적극적 남북관계 개선 요청에 화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도발을 위한 위장평화공세로 치부할 까닭도 없다. 유엔에서, 전 세계의 언론이 보는 앞에서 상호 비방 중상하지 말고, 상호 적대행위 중단하자고 말하고 먼저 실천적 조치까지 취하겠다고 하는데 말로라도 호응하는 것이 유익한 일 아닌가. 북한의 불안정 급변 사태를 바라며 이에 대한 군사적 대비 계획에 역량을 쏟아 붇고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자칫 기회를 잃고 이명박 정부 5년을 되풀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북한은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평화적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외자유치 없이 민생의 향상이 어렵다는 것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전국에 걸쳐 경제개발구를 설치하여 외자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대외 관광 문호도 폭넓게 확대하고 있다. 외국인 누구나 두려움으로 북한 관광을 꺼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북한을 관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로 보인다. "악의 축" 국가로 악마화되고 기괴화되어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국가로 각인되어져 있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연결하는 교량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교량은 지린성 투먼과 북한 나진항을 연결하며 중국에서 나진·선봉경제무역특구를 드나드는 주요 통로가 될 전망이다. 사진 출처 - SBS 북한의 외자유치에 대한 계획을 일방적 희망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세계가 북한의 경제발전을 주시하고 있다. 나진, 선봉 경제특구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 개발 전략과 맞물려 철도, 도로, 항만 등 기반시설이 이미 올해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향후 더욱 본격적으로 개발과 투자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로 전기, 가스, 석유, 교통 분야에서 나진 선봉 경제특구를 물류의 중심지로 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중국은 동북3성의 경제 진흥을 위해 동해 쪽 해양 출구로 나진 선봉 경제 특구로의 투자를 서둘러 왔다. 여러 나라들에서 북한 투자에 대한 계획과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은 남북의 교류, 특히 남북 경제 협력이 북한의 경제발전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통일을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에도 중요한 토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렇기에 6.15 남북공동선언이 탄생한 것이 아니겠는가.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진정 흡수통일을 가장한 것이 아니라 남북 경제 협력을 통한 공동 발전을 다짐한 것으로 선의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 없이 5.24 대북제재 조치를 풀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남한 기업의 북한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한 변화를 외면한 채 남북경제의 활로와 통일 대박 기회를 날려 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312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구상에 단 하나의 종교, 단 하나의 철학, 단 하나의 세계관이 자리 잡아 본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신은 언제나 모든 억압에 맞서서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배우고, 정해진 틀에 따라 생각하는 것, 천박하고 기력 없게 만드는 것, 모두 똑같이 작게 획일화하려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나 어떤 불행한 집단을 선별해서 그들에게 밀린 증오를 집단적으로 분출한다. 종교 때문에, 때로는 피부 빛깔 때문에, 종족 때문에, 출신 때문에, 사회적 이상 때문에, 세계관 때문에 작고 약한 어떤 그룹이 더 크고 강한 그룹에 의해서 인간성에 잠재된 파괴 에너지의 대상으로 선별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혹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나도 뚜렷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오만하게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건만,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다면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추방, 망명, 감금, 화형, 교수형 등 온갖 처형과 고문이 날마다 행해지고 있다. 오직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일들이 행해진다.』 좀 장황하게 인용한 것 같지만, 이글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라는 저서 내용의 한 부분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형벌의 역사는 지배자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온갖 육체적 고문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며 사건을 조작하고,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감옥에 던져 넣었던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다. 민주화시대에 이르러 그런 육체적 고문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신적 고문, 사법적 절차를 빙자한 사법적 고문은 여전히 횡횡하고 있다. 지배그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주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자 취급을 하며 금지! 금지! 를 외치고, 법률로 꽁꽁 엮어 버리는 것이다. 중세 시대의 마녀재판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이 시대를 도도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자 취급을 받아 배척당하며 사랑하는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도 매장당하지만 대다수는 그런 야만의 배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김형근 교사는 2006년 <조선일보> 지면 캠페인을 통해 ‘빨치산 교사’로 찍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1979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반대 시위 주동, 1980년 속칭 ‘서울의 봄’에서의 시위 주동 등의 이유로 대학에서 3번을 제적당하고, 3번을 복학한 끝에 졸업한 사람, 1980년 3개월간 헌병대 영창에서 불법 구금 상태로 끔찍한 고문을 받았고, 강제징집으로 녹화사업 대상이 되었던 사람, 1987년 민주 항쟁에 앞장서다가 또다시 감옥에 간 사람, 먹고 살기 위하여 서점을 운영하였으나 금지서적을 판매하였다고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서점도 망해버린 사람, 범민련 운동했다고 다시 감옥, 그리고 김대중 정부 들어 사면 복권으로 교사로 임명되어 가장 행복하였다는 사람, 학생들이 졸고 있으면 찬 물을 길러다가 학생들 발을 씻어 준 사람, 그러다가 조선일보가 벌린 마녀사냥으로 빨치산 교사로 몰려 감옥에 간 사람, 이제는 다른 언론사에서 북한과 관련 보도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사람, 김형근 선생이 그 사람이다. 5·18 광주민주항쟁 보상금도 수령하지 않고, 국가유공자 등록도 거부하고, 나중에 먼 훗날 통일자금으로 위 돈을 사용하라고 거부한 사람이다.(2013. 12. 19.자 오마이뉴스 이털남 493회 방송에 김형근 선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용 듣기) 당 시대를 사는 사람이 자신의 시대를 가장 모르는 세대에 속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렇게 마녀 사냥이 자행되는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모르고 있다. 이단자라고 부르기 이전에 이단자로 규정하는 악마의 법이 존재한다. 악마의 법은 법이 아니다. 인간을 사상의 사냥감 대상으로 취급하는 법을 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건성박수를 쳤다고 숙청, 처형하는 북한과 우리나라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충성맹세를 하지 않는 자들은 국민도 아닌 이단자로 취급되는 세상에서는 증오의 샘물과 파괴만 가득할 뿐이다. 그곳은 인간세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다. 품격 있는 문명국가에서 살고 싶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84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중문화 연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겐 비교적 익숙한 미국 학자로 로렌스 그로스버그란 사람이 있다. 그에게 누군가 반(反) 신자유주의 운동이 가능할지를 질문했을 때 그로스버그의 답은, “No!" 였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There is no music!(음악이 없다!)” 다소 엉뚱한 농담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건 대단히 통찰력 있게 정곡을 찌른 대답이란 게 내 생각이다. 나 또한 오래 전부터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해 온 바 있다. 음악이 없다는 말은, 지금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사를 보면, 대중의 집단적이고 저항적인 실천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라 마르세이유’를 비롯한 많은 혁명가요들이 있었고, 20세기 서구의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는 수많은 록 음악과 모던 포크 음악이 있었다. 지난 2011년 자본가들의 탐욕에 저항해 ‘점령하라’(Occupy)'를 외치며 월스트리트에 모여든 군중 앞에 당시 92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타나 시위대와 함께 노래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던 피트 시거(Pete Seeger)는 바로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을 음악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 외에도 밥 딜런과 존 바에즈, 존 레논, 지미 핸드릭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밥 말리 등 60, 70년대 서구의 인권 평화 운동의 맥을 수놓은 뮤지션의 이름은 수 없이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70, 80년대 군사 독재에 저항했던 한국의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의 거대한 물결도 수많은 민중가요들과 함께 했다. 운동이 있는 곳엔 노래가 있었다. Occupy 운동에 참가한 피트 시거 사진 출처 - The New York Times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 진보를 향한 집단적 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젊은 청년 세대일 수밖에 없고 그 청년세대가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노래, 즉 음악인 것이다. “음악이 없다”는 그로스버그의 일갈은 바로 그런 저항운동의 중심이 되어줄 주체로서 청년집단의 부재, 청년문화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청년세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임은 여러 사람들이 지적해 온 바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으니 사실 이 말은 한국사회에서 대학생 집단이 유의미한 세력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고, 내가 오래 동안 써 온 표현으로 말하면 대학 문화와 청년문화가 부재하다는 얘기다. 그로스버그의 표현을 빌자면, 대학생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없다’는 말이다. 지난 세밑을 뜨겁게 달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이제 젊은 대학생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시청 앞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크고 작은 집회에도 젊은 청년들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함께 부를 노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직 그들이 주체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제 그들이 함께 부를 노래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의 퇴행이 완연해지면서 80, 90년대 민중가요의 역사 속에서 활동했던 일군의 민중가수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가 지금의 젊은 세대와 전폭적으로 소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연히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의 폭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와 함께 할 새로운 음악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떤 것이건 젊은이들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민중가요가 그랬듯이 말이다. 함께 부를 노래가 많아지면 청년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그만큼 사회 변혁의 길이 앞당겨질까? 내 대답은, “그렇다” 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83 | 추천: 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밥그릇에서 돌을 발견하고서는 전국의 바위란 바위는 죄다 읊어대는 호들갑스러운 <바우타령>이 있다. 필자도 그런 타령을 한번 해야겠다. 지난 연말에 영화 <변호인>을 보고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야 가까운 벗들과 돼지국밥을 먹으며 영화를 놓고 해장을 하였다. 최근 5년 사이에 가곡 수선화처럼 죽었다가 살아났다 또 다시 죽는 것을 거듭하는 그 양반이 영화 속에서 팔팔한 청춘으로 나타났다. 영화는 약간은 으스대고 헐렁하고 껄렁한 사내에서 조류와 맞서며 대의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그려놓았다. 떠난 사람이야 또 보내야 하겠지만 사회적 대의를 향한 집념은 온전히 우리와 함께 머물기 바라며 법비(法匪) 타령으로 들어가겠다. 일본제국의 위성국가인 만주국에서 민중을 억압하는 일본 관리를 민중들이 가장 무서운 도적 떼라 하여 법비라고 불렀다 한다(참조. 한홍구, 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80.html). 영화 <변호인>은 사건을 만화처럼 간결하게 처리하면서도 국가폭력의 양상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세상사를 일련의 권력범죄라고 이해하는 필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변호인이 아니라 살아남아 영달하는 수사관, 검사, 판사라고 생각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도 육법당--유신시대부터 할거하였던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법대 출신의 검사들의 권력 지향적 집단--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시대의 흐름을 타다가 역풍을 피하다가 권력의 정상에 이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니 이제 귀밝은 감독은 <변호인>의 2탄으로 <검찰>이나 <법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변호인> 속의 검사님은 안녕하시는지 파악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회의원도 역임한 그 분은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뜻이 없다는 점을 어느 일간지가 전한다. ‘사죄할 뜻이 없다’는 말이 당황해서 튀어나온 말인지 오래전에 준비한 말인지 궁금하다. 그들은 과연 법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일까?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씨네21 야스퍼스는 <독일인의 책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만행에 대하여 독일은 어떤 책임을 지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논의하였다. 그는 법적 책임이나 정치적 책임 못지않게 내면에서의 깨달음이나 전향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악이 근본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평범한 것이며 우리의 노력으로 악인을 개선하고 정화할 수 있으며 그래서 타인을 용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악은 정말로 이 정도로 평범할까? 근본악이 없다거나 근본적인 악인이 없다는 견해는 일종의 종교적 가정이 아닐까? 실제로 사람들은 ‘악의 평범성’의 예로서 특별한 출세동기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행하는 말단 공무원이나 관료제하의 인간을 지목한다. 아렌트가 유대인의 집단살해 프로그램을 완성한 아이히만에게 이 개념을 적용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진단과 이론화는 여러 가지로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단살해를 기획하고 자행한 자가 아무런 가책 없이 그러한 만행을 실행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 자체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또는 악 자체를 정당화하려는 기제가 마음 속에 완성되어 있지 않다면 말 그대로 ‘아무런 생각없이’ 타자를 죽이거나 고문하는 행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루살렘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조직이나 관료제, 법에서 구실을 찾고 자신을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위장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책임이 없는 자인 것처럼, 근본적으로 악인이 아닌 것처럼. 한 마디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농간에 낚인 것이다. 그래서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다른 유형의 악인에게는 설명력을 가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히만에게는 맞지 않다. 다시 <법비전>으로 돌아가자. 한국에서 정치적 조작사건들에서 많은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고문사건의 배후에 있던 검사들이나 불법감금과 고문을 뻔히 알면서도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별 탈이 없다. 다만 이근안씨가 경관으로서 유달리 출중한 고문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경관이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경찰이 아니라 법복을 입고 법을 유린한 법조인을 상대로 법의 투쟁을 전개할 필요를 느낀다.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에 미군은 뉘른베르크에서 나치독일의 고위법조인을 상대로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범죄의 책임을 물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법조인소송이고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은 이 소송을 <뉘른베르크의 재판 Judgement at Neremberg>으로 영화화하였다. 전범 처벌이라는 폭풍 속에서 연합국이 이러한 재판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시에 자국의 법원이 자국의 검사와 판사를 처벌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법조동일체와 법조특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문을 묵인하고 사주하고 그 결과를 인수한 법조인들을 고발해야 한다. 특히 지난 노무현 정부 이래로 활동하였던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재심을 거쳐 무죄판결을 받았던 간첩사건이나 정치적 조작사건중에서 불법성이 분명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고인을 기소한 검사나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를 상대로 고발운동을 전개하고 손해배상청구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변명은 그들의 몫이고, 우리는 변명을 위한 굿판을 만들어야 한다. 악법을 즐비하게 양산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체제에서 법대로 한다는 법비들은 항상 법을 명백하게 위반하면서 만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고발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무엇이든 시키면 행하는 용역이나 법비로 전락하는 공직자들이 점증하고 있다. 지금 또 한건의 사건에서 법비가 탄생하는 것 같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검찰이 조작된 증거로 유죄판결을 구했다는 민변의 고발이 오늘 터져 나왔다.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40107120707199) 그들은 법비인가 법의 수호자인가?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53 | 추천: 1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도무지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는 을씨년한 세밑이다. 헌법이 유린당했고, 정치는 실종됐으며, 민심은 흉흉하다. 연말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내보려고 내멋대로 시상식을 마련해봤다. 2013년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스크린을 암울하게 만든 최악의 조연 배우는 단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다. 김 씨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발표를 거짓으로 꾸며 대선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놓고도, 자유인으로 활보하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국회 증언대에 서면서 당당한 척 뻔뻔한 연기를 감행했으나 거짓말이 탄로 날까 선서조차 거부하는 찌질한 모습을 연출한 점이 수상의 배경이 됐다. 법정에서의 거짓말 연기도 당대 최악이었다. 아시다시피, 티케이 출신인 김 씨의 무리한 베팅은 경찰 조직에도 괴멸적 타격을 안겼다. 경찰은 이 정부 들어 오랜 숙원인 수사권 조정의 ‘ㅅ’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벼룩도 낯짝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기왕에 버린 몸이라는 듯, 정권을 향한 무한 충성을 다짐하고 있다. 문제는 충성을 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하지만 무능한 대응은 거의 블랙코미디 수준이다. 짜투리상인 ‘안습상’에 이성한 경찰청장이 뽑혔다. 최악의 여자 조연상은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 차지다. 철도공사의 적자가 심각하다면서 황금노선을 따로 떼어내겠다는 황당한 발상도 그렇거니와, 민영화가 아니라고 진심으로 믿는 듯한 연기가 매우 어색했다는 평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평소의 소신을 저버린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줘야 했는데 매번 똑같은 얼빠진 표정만 보여줘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큰 실망을 준 점이 수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좌로 부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최연혜 코레일 사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 - 뉴시스, 연합뉴스, 한겨레 김용판씨가 남자 주연상을 놓친 건 남재준 국가정보원 원장의 포스에 밀렸기 때문이다. 남 원장의 연기는 격이 달랐다. 군인 출신답게 어깨를 쫙 펴고 오만하게 야당 국회의원들을 쏘아보는 눈빛 연기를 감행해야 했는데 눈이 작아서 눈빛 연기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그 무대뽀 정신만은 거의 <람보>의 실버스타 스탤론 급이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해야 할 국정원을 ‘양지에서 일하고 청와대를 지향’하는 조직으로 격상시켰다. 말 그대로 국정원을 이후락의 중앙정보부 시절 위상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다. 남 원장은 명실상부하게 2013년 국내 정치를 주도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결정과 발언을 쏟아냈다. 엔엘엘(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했고, 적절한 시점에 이른바 아르오(RO) 사건을 터뜨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진상규명 요구를 짓밟았으며, 2015년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는 무식한 대사까지 뱉어냈다. 대망의 최악의 여자 주연상은 짐작하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이다. 남재준 원장이 아무리 큰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모두 박 대통령의 손바닥안이었다. 박 대통령이 이 정부 초강경 기조의 최후 배후라는 사실을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게 된 가장 최근의 사례는 철도 노조 지도부 검거를 위한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강제 진입 사건이다. 박 대통령은 경찰 진입 바로 다음날 비장한 표정으로 철도노조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신문사 건물 침탈이 본인의 뜻임을 만천하에 확인했다. 그래놓고 잽싸게 어린이집을 방문해 칙칙폭폭 기차놀이 연기를 시연하려 했으나 아이들과 키가 맞지 않아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모조리 말아 드시는 왕성한 ‘먹방’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혀를 내둘렀다는 유체이탈 연기와 한복 빨리 갈아입기라는 비장의 개인기도 심사에 영향을 줬다. 최고의 남자주연상은 검찰의 대선 개입사건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여주지청장, 여자주연상은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받았다. 별로 이견이 없을 줄 안다.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윤석열 여주지청장 사진 출처 - 뉴시스 이밖에 미처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각 분야에서 접전을 벌였던 후보군을 소개하겠다. 일요일마다 검찰 수사 기밀을 빼내서 기자들에게 먼저 알려주느라 너무 고생을 해서 잘생긴 얼굴이 폭삭 삭아버린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청와대가 갈등을 조정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정쟁을 주도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레이디 가카 보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정현 청와대 대변인(아! 이정현이 입을 ‘아’하고 벌리며 악을 쓰는 ‘짤방’은 21세기 괴벨스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청와대 눈치 보느라 눈이 옆으로 더 째진 것 같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여당인지 야당인지 헷갈리게 하는 둔갑술의 천재 김한길 민주당 대표, 새정치 하겠다면서 치사하게 야당의 둥지에 알을 낳으려는 ‘뻐꾸기’ 안철수 의원 등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하며, 좀 더 분발해서 2014년엔 꼭 상 하나 타시길 당부드린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24 | 추천: 0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침입니다. 어제 밤 마신 술기운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후다닥 씻고 아침밥을 먹으려 식탁에 앉습니다. 김치찌개가 있네요. 김치찌개엔 그 흔한 통조림참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는 생선을 좋아하는데 요샌 식탁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생선요리를 꺼려하네요. 일본에서 수천 km 떨어진 독일이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것과 다르게 정부는 원전 부품 비리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원전을 18기나 더 만들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전기료는 조금 덜 나올까 생각도 해봅니다. 산업용 전기료는 가정용 전기료보다 훨씬 싸다던데 가정용 전기료를 또 올린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신고리 원전에서 발전할 전기를 서울로 끌어오려고 밀양에 송전탑을 설치하려고 했답니다. 제대로 묻지도 않고 서울시민은 덕을 볼 수 있겠습니다. 피를 머금은 전기니 조금 비싸면 어떻겠나 싶을 수 있지만 그 전기 쓰고 싶지 않네요. 서울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지형이라고 하던데 강남이나 성북동 정도에 원전 짓고 종로, 압구정, 여의도 정도에 송전탑 지어 전력공급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나선 집 앞에는 아파트, 오피스텔 할인분양 플래카드가 3개월이 넘도록 걸려 있네요. 정부가 취득세를 영구인하 한다는데도, 돈을 싸게 빌려준다는데도 사람들이 통 집을 안 사는 모양입니다.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빚내서 집 사라는 형국이니 이해도 됩니다. 금융위기 이후로도 대기업이라 불리는 재벌은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벌었지만 중산층은 몰락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법인세는 줄여주고 개인 소득세는 올린다지요. 조기에 퇴직하는 중년들,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싶습니다. 지하철이 들어옵니다. 열차 차장과 부차장이 직장 근처까지 잘 데려다 줄 수 있을지 살짝 걱정하면서 탑니다. 열차 안에는 조는 사람들이 많네요. 졸지 않는 학생은 취직 준비를 하거나 자기개발서를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카톡을 합니다. 어렸을 땐 학생들도 신문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지금은 스마트폰으로도 잘 안 보는 것 같습니다. 볼 기사가 없어서일까, 볼만한 가치 있는 기사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기사 볼 시간이 없어서일까 궁금하네요. 영어를 잘 발음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혀를 절개해야 하고 오로지 수도권 대학 진학을 위한 12년간의 경쟁에 내몰리고 진리 탐구가 아닌 기술 습득을 통해 취직 시장에 가치 높은 상품이 되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지하철 전동차의 리드미컬한 진동은 어릴 적 엄마 손길 같은 자장가겠지요. 사무실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첫 화면은 ‘다음’인데 몇 달째, 아니 거의 1년 동안 굵은 글씨로 쓰인 메인기사 제목이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뭔가 불이 붙었구나 싶을 즈음에는 연예인 스캔들이나 추문이 올라오고 국가 전복 세력에 대한 기사도 올라오고 북한 관련 기사가 도배되어 있기도 하고 한복 입은 대통령의 외유소식도 올라옵니다. 아~ 어제 오늘은 머리에 띠를 두른 노동자들과 중무장한 경찰이 대치하는 사진과 기사로 채워졌네요. 대화합과 소통을 화두로 던졌던 대통령님은 1년 내내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고 있어 어떻게 지내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혹 노인연금 받겠다고 표 줬던 노인네들이 등 돌리는 일이 있을까 불안한 마음에 궁정동에서 술판 벌이고 계신 건 아닌지, 술 마시는 참에 51.6%가 아닌 48% 이물질들을 어떻게 밀어 버릴까 고민하고 계신 건 아닌지 당최 알 수 없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는 동안 트위터에 잠깐 들어가 봅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합니다. 2014년 초에 아이와 함께 제주도를 가볼까 잠깐 생각하다 접습니다. 제주도에 비행기 타고 가면 아이에겐 처음 해외로 나가는 셈인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의 부채의식 때문인가 봅니다. 강정에서 고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 한번 실어주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지요. 하늘이 준 은혜로운 땅 제주, 이를 외면하고 개발, 개발, 개발에 내몰려 슬픈 제주가 되어가는 것도 안타까운데 군사항구까지... 오후에는 지방 출장 스케줄이 있는지 살핍니다. KTX를 타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서울역 앞이 떠올려지기까지는 참 순간입니다. 고속버스 타고 가도, 시간이 더 걸려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생각을 다잡습니다. 잠깐 짬을 내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립니다.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병원 가실 일도 많아졌는데 값 싸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언제까지 걱정 없이 받으실 수 있을까 생각하기까지는 참 순간입니다. 의사가 자신의 목을 칼로 자해하는 영상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지요. 하지만 의료영리화로 병원비 없어 자살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의사 선생님의 행동에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퇴근 무렵 아내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시댁, 친정 모두 1시간 30분 이상 떨어져 있어 아이를 혼자 하루 종일 돌보고 있는 아내의 목소리는 실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맞벌이가 아니어서 어린이집 대기자 중 1순위가 될 수 없답니다. 내년에도 집에서 엄마와 단 둘이 하루 종일 놀아야 할 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정부 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보육료를 구청에서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들지도 않습니다. 출산율은 또 바닥을 쳤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랬더랍니다. 작년 이맘때엔 속이 쓰리고, 머리가 달아올라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꾼에게 5년이나 당했는데 “또” 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해가 바뀌기 전에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다시 5년을 잃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잘해야 한다. 잘 할 수 있도록 지지해줘야 한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5년의 시간을 그렇게라도 벌충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취임 후 몇 개월을 지켜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군요. 정부는 급기야 노동자들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애시 당초 기대를 하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행동도 해야겠지요. “불의가 법이 되는 순간, 저항은 의무가 되었다.”는 말이 떠오르는, 무엇하나 안녕하지 못한 세밑입니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13 | 추천: 0
- 2013년 한국의 자화상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지금까지 가톨릭교회에 몸담아 오면서 한 성직자가 이토록 빨리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사제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른바 ‘임수경 평양축전참가사건’으로 전대협 대표 임수경씨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뒤 축전이 끝나자 임씨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돌아온 문규현 신부(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도 박 신부처럼 빨리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 때와 지금과는 매체환경이나 여론의 유포 속도 등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아주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봉헌된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나온 박 신부의 말이 그토록 위력을 지닌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박 신부 덕(?)에 덩달아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박 신부를 팔아먹은(?) 주류언론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뿐 아니라 올 한해 대한민국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머리에 남을 열쇳말은 단언컨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 아닐까 한다. 국가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으로 촉발된 이른바 ‘국정원 사태’의 올바른 해결과 민주주의 가치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지금도 수그러들 줄 모르고 오히려 확대재생산 되는 모습이다. 2013년을 헤쳐 온 우리 국민들에게 올해는 유독 천주교 성직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던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터놓고 지내는 지인의 말대로 천주교가 끼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였다. 가톨릭교회의 이러한 모습에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은 듯하다. 가톨릭교회를 향한 염려는 대체로 “종교는 정치 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기도’나 열심히 하라”는 정도로 집약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종교적 신념이 개입하면 위험하다’는 이러한 논리는 실제 가톨릭교회에 대한 오해 내지는 무지를 깔고 있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어느 종교의 신자들이 사회 속에서 나름의 종교적 삶을 살아가며 지니게 되는 신념은 단순히 각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적 내용의 반복이 아님은 당연하다.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체화시켜 나가는 개별 종교의 가치는 순간순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결국 현실정치 역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실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오히려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정치 사회 문화적 활동에 참여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반 신부나 수도자, 평신도는 물론이고 주교라고 예외가 없다. 따라서 종교적 신념 내지는 가르침을 교회 안에 가두어두려는 일부의 태도는 단언컨대 교회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교도권적 발언은 신자들에게 와 닿는 순간,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가 된다. 따라서, 세속과 완전히 절연된 상태가 아니라면 현실정치와 종교적 신념을 분리하려는 시도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 수밖에 없다. 종교와 사회 참여를 획일적으로 분리하려는 논리 가운데 가장 황당한 것은 낙태를 비롯한 생명, 생태·환경 문제 같은 범주로 종교의 역할을 제한하면서 여타 영역, 주로 힘을 지닌 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제나 정치 등의 분야에서 종교가 목소리를 내거나 나서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못 박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DB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18일 성령강림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한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치가 혼탁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계속 혼탁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황은 “양떼를 찾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고립을 자초하는 목자는 목자가 아니다. 교회가 폐쇄적이면 부패하게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교황은 에둘러 ‘사회 참여’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정치 참여’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자 책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1960년대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꾸준히 개혁을 지향하며 시대의 아픔에 함께하기 위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가운데서 대안을 찾는 일에 함께해오고 있다. 이러한 가톨릭 고유의 내적 원리를 담은 ‘사회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치적 태도나 신념과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활동을 폄하하는 태도는 무지와 오만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이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라면 그러한 행위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오”또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오” 하는 베드로의 고백과 무엇이 다를까. 가톨릭교회는 현실에서 어떤 정치체제도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로 하느님의 뜻과 이웃의 선익에 반하는 ‘죄의 구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7항 참조) 우리는 폐쇄적 지배집단의 강압에 의해 침묵하거나, 때로는 무감각과 무관심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죄의 구조들의 확장을 돕는 위치에 서기도 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이 실종되는 상황 앞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 2013년, 많은 천주교 사제들이 대한문에서, 밀양에서, 제주 강정마을에서, 쌍용자동차 철탑에서, 그리고 수많은 가난한 이들 곁에서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댔다.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용기가 없어서일까, 꼭꼭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꾀꼬리는 겁이 많은 새여서 잘 숨어서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 꾀꼬리를 찾아 사제들이 거리와 우리 시대의 광야를 헤매고 다녔던 셈이다. 그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어두컴컴한 피시방에서 댓글이나 달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제 우리가 응답해야 할 때다. “응답하라 꾀꼬리!”
2017-07-14 | hrights | 조회: 293 | 추천: 2
윤다정/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린 연어는 늘 바다를 꿈꾸며 자랐다. 알 껍질 너머로 처음 본 실개울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어린 연어에게,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바다는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강을 거슬러 오르고 알을 지키는 동안 너덜너덜해진 아버지의 비늘은 무지갯빛 비늘보다도 아름다운 훈장이었다. 허나 개천에서 강을 지나 바다로 통하는 길목은 너무 좁았다. 자신처럼 작고 약한 개체를 위해 만들어진 샛길을 비집고 들어가는 강한 개체를 지켜만 보길 수십 차례. 어린 연어는 결국 실개울에 남기로 했다. ‘큰 물’로 나가는 ‘연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전쟁의 포화로 옛 것이 남김없이 타 없어진 한국전쟁 직후는 민물고기들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적기였다.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급 상승을 꾀했다. 그나마 손쉽게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 중 하나가 ‘공부’였다. 대학에 진학해 집안을 일으켜 세울 장남을 위해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헌신하는 풍경은 익숙하다. 물론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고개를 들고, 고교생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재에 와서는 ‘계급 상승의 수단’으로서의 진학이 갖는 역할은 다소 빛이 바랬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은 유효한 수단이다. 많은 교육 기관이 학업의 기회를 얻기 힘든 소외 계층을 위해 별도의 전형을 제공한다. 일종의 샛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샛길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이권을 공고히 하려는, 상대적으로 폭넓은 교육 기회를 얻는 이들이 늘고 있다. 때문에 교육 소외 계층이 자신들을 위해 마련된 입시 전형에서 또 다시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배려’라고 쓰고 ‘배제’라고 읽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훈국제중학교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서울 영훈국제중학교, 경기 청심국제중학교 등의 입시비리를 둘러싼 잡음이 단적인 예이다. 이들 학교에서 마련한 사회배려자 전형은 소외 계층에게까지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거리였다. 실상은 해당 전형이 부유층 자녀의 손쉬운 입학을 위한 지름길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교육여건 낙후지역을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울대학교의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도 마찬가지다. 2013년도 해당 전형 합격자 중 소위 ‘교육 특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노원·양천구 출신 학생들이 3분의 1을 훌쩍 넘었다. 농어촌에 사는 고등학생을 정원 외로 추가 선발하는 대입 농어촌 특별전형에 위장 전입한 도시 거주자 자녀들이 합격한 사실이 드러난 적도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허점은 있다. 법을 악용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은 손쉽게 허점이 드러난 샛길로 파고들어 사다리를 걷어찬다. 계층 고착과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실개울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개울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바다로 나가고 싶은 이들을 위해 길목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더 큰 세상을 보고 돌아온 연어들은, 그리하여 자신의 지혜를 후대에 전할 수 있지 않을까.
2017-07-14 | hrights | 조회: 293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교육부는 2014년 교원임용 때 정원의 3%(약 600명)를 시간제교사로 뽑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사의 근무 시간의 절반만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교사는 정규직 교육공무원으로 교과 수업, 학생지도만을 담당하고 행정업무를 맡지 않으며 5일간 오전에만 또는 오후에만 근무하거나 요일마다 자신이 원하는 근무시간에 하루 4시간 주 20시간 근무한다고 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각 부처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방침에 따라 2015년에는 800명, 2016년 1천 명, 2017년 1천200명 등 앞으로 4년간 3천6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 한다. 현재 학교에는 정규교사 외에도 기간제 교사, 영어회화 전문 강사, 체육 전문강사, 시간강사, 방과후교사, 특기적성강사, 보조교사(특수학급), 인턴교사(과학)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교사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 기간제교사란 비정규직 교사로 교육감의 발령을 거치지 않고 학교 측과의 계약을 통해 정해진 기간 동안 일하고 있는 교사를 말한다. 이를 테면, 교사가 근무기간 중 출산을 하거나 입원을 하는 등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학교장이 일정자격을 갖춘 사람을 채용해 연가나 휴가를 낸 자리를 대신 하도록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 업무를 맡지 않고 수업만 하고 퇴근하는 시간선택제 교사들까지 등장한다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 고백하건데, 서울의 소규모중학교(20학급)인 우리학교는 40여명의 교사(비정규직 포함)중에서 담임업무가 곤란한 교사(교장, 교감, 부장, 특수직(보건, 진로, 상담, 특수학급, 영양, 사서)를 제외하면 담임교사를 할 수 있는 정규교사는 10여명 정도이고 나머지(10여개)학급은 기간제교사들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소규모 학교에서 겪고 있는 현상이며, 이는 몇 년 전부터 정책이 바뀔 때마다 예산절감이라는 이유로 갈수록 정규직 교사의 비율도 줄어들고,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는 명목하에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교사(영어 전문강사, 과학 전문강사, 체육 전문강사 등)가 있게 된 것이다. “아니 학교업무에 대해 알고나 하는 소리야? 학교가 무슨 자리바꿈식 일자리 창구인지 아나? 어떻게 그런 정책을 내놓을 수가 있어?” “아르바이트처럼 시간이 되면 나타나 수업만 하고 사라진다면 학생들 생활지도며 또 잡무처리는 누가하지?” ‘시간선택제 교사’를 뽑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초·중·고교 교원 4,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2.7%가 정규직 시간제 교사제도 도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지난 11월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교원 도입계획 철회요구'기자회견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전교조 조합원들이 시간선택제 교사 도입방안을 철회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박미향(47)씨는 “만약 내 아이를 시간제 교사와 전일제 교사가 맡아 주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90만 원가량의 급여에 4시간만 교육하고 퇴근하는 그들보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해주는 전일제 교사가 맡아주는 것이 안심되고 믿음이 간다”며 “학부모 입장에서 보아도 시간제 교사는 교육적인 제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담임도 맡길 수 없고, 학생 상담도 할 수 없고, 수업준비 및 교재연구도 집에서 알아서 하는 교사로 채워지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학교는 일자리 창출 대안의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시간제 파트 타이머 식의 일자리 공간이 아니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아침부터 학생의 등교지도, 청소지도, 복장지도, 질서지도, 인성지도, 진로지도, 자기주도적 학습지도, 진로상담 등 등교시간부터 하교시간까지 학생들 생활의 모든 것이 교육의 대상이다. 수업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교재연구, 동학년, 동교과 간의 정보교류, 학습자료 제작, 방과 후 생활지도 등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업만 하고 사라지는 교사들이 모인 학교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다. 교육은 수업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등교시간부터 하교시간까지 학생들 생활의 모든 것이 교육의 대상이다. 교사가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교육에 임할 때 학생들에게 보다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거나 신분보장이 되지 못해 불안한 교사들로 어떻게 양질의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시간선택제 교사는 철회되어야 한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89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홍범도를 아는가. 제지공장의 악덕 친일파 공장주를 두들겨 패고 금강산으로 도망간 십팔세 소년 홍범도 말고, 삼수갑산을 지나 청진으로 진격하여 일본 주둔군을 괴멸 시켰던 의병장 홍범도 말고. “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로 부르는 “날으는 홍범도가”를 탄생시킨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 말고, 1922년 모스크바 피압박 민족대회의 조선 유격단 대표로 레닌을 만나 뜨겁게 포옹하던 소비에트 주의자 홍범도 말고, 그 사람 홍범도를 아는가. 1937년 9월9일 새벽 블라디보스톡 역을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가축 칸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어디쯤이라는 목적지도 없는 긴 여행을 떠난 유랑자 홍범도를 아는가. 불모의 땅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에서 하루의 생계를 걱정하며 말년을 보낸 고려극장 문지기 홍범도를 아는가.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다시 전쟁터에 나가 일본 놈을 무찌르고 내 나라를 되찾겠다고 카자흐스탄 당국에 호소하던 73세의 노인 홍범도를 아는가. “평생 일본 놈들에게 안 잡히고 여생을 마칠 수 있어서 나는 복 받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올해로 꼭 70년째 이역의 땅 스따라야 마기라-홍범도의 무덤이 있는 곳-를 배회하는 영혼 여천 홍범도(1868-1943))를 아는가. 지난번에 썼던 원고를 여기까지 읽다가 그만 울컥했다. 남과 북도 아닌, 좌도 우도 아닌 그저 민족을 사랑했던 열혈 청년 홍범도를 다시 떠올렸던 건 순전히 대한민국의 책임총리라는 그 냥반 정 모시기 덕분이었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도종환 의원: “일제가 우리 의병들을 소탕. 토벌했습니까 아니면 학살 했습니까? 그 당시 우리가 일본에 쌀을 수출했습니까 아니면 수탈당했습니까?” 정홍원 총리: “아니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시면 어떡합니까? 자세한 내용은 역사학자들이 다뤄야할 내용 아닙니까? ” 식민지 근대화론을 대놓고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의 일제 만행을 축소·외면했음은 물론 이승만·박정희의 독재까지 찬양했다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에 대한 총리의 입장을 묻는 시간 이었다. 총리의 안이한 역사인식을 답변으로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분노를 느꼈던 이가 비단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약 60여개 나라가 식민지로부터 독립한다. 그중에 식민지세력이 그대로 정권을 이양 받은 경우는 오직 48년도에 건국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아시다시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이전에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가 되길 소원했던 백범 김구가 있고 몽양 여운형이 있다. 그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조선의용대의 수령 광복군 군무부장으로 태항산 일대에서는 일제가 그림자도 밟지 못했다던 대장군 약산 김원봉은 해방이후 동대문의 자택에서 일본의 간악한 순사 출신 노덕술에 의해 잡혀간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다가 뒤처리도 못한 상태로. 약산이 활약했던 태항산 에서 1942년 여름 조국을 찾겠다고 길을 나선 석정 윤세주를 비롯한 조선 의용대 3000여명을 몰살 시킨 이는 자랑스런 대 일본제국의 중장 “고 시요쿠 (홍사익)”아니던가. 조선인으로서는 군부 내 가장 높은 위치까지 갔던 홍사익을 따랐던 숱한 후배들은 스스로 일본인이 되어 너도 나도 욱일승천기를 품고 니뽄도를 휘두르며 독립군들의 목을 베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 후배들 중 누구는 대통령이 되고 누구는 총리가 되고 약 40 여 년 동안 군 수뇌부의 요직을 차지한 나라, 그 이후에는 대통령이 된 후배를 흠모 했다던 또 다른 후배가 대통령이 되고 다시 후배의 따님이 대통령이라고 뉴스에 나오는 나라. 문득 “그들“은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인 이었다는 탄식을 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의 울분을 떠올리게 되면 품고 싶지 않은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2의 일제 강점기를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 신부의 강론이 연일 뉴스에 등장한다. 이른바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두둔했다는 이유다. 한때 방송을 진행 하면서 내가 주로 했던 멘트가 “여러분들의 신청곡은 빛의 속도로 배달해 드립니다” 였는데 보수단체의 고발을 받은 검찰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빛의 속도로 수사를 시작 한단다. 허긴 1975년 4월8일 사형선고 받은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혁당 재건위의 여덟 목숨을 앗아간 순발력 있는 집단이긴 하다. “그들”의 종북 놀이가 정점을 넘어서더니 이제는 조국 묻기 놀이로 바뀌어 가고 있다. 80년 광주항쟁의 참상에 아파하다 평생 다리를 절게 된 노신부에게 광주 학살의 원흉인 자의 한때 사위가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를 떳떳하게 묻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독립군 소탕인가 학살인가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총리가 다시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를 묻고 있다. 다카키 마사오 라는 창씨개명한 이름이 싫어 완전한 일본 이름으로 개명한 오카모토 미노루의 따님도 일갈한다. “국가의 정체성을 흔드는 언행은 용납하지 못한다”던가. “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는 “날으는 홍범도가”의 청년 의병장 홍범도에게 내가 묻는다. 제대로 된 묘비명 하나 없이 이역만리 크질오르다에서 해방조국의 미래를 꿈꾸었던 고려극장 문지기 홍범도에게 내가 다시 묻는다. “홍범도 장군, 저들의 조국은 과연 어디란 말입니까?”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92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