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는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들의 이익과 생존권,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합리적 보수 세력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단지 세력화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그들의 생각을 모으거나 대변할 만한 매체가 없어서 존재감을 확인할 길이 없을 따름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건강한 보수가 보이지 않는다. 건강하고 상식 있는 보수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극우세력들만이 일부 언론의 부추김 속에 힘껏 목청을 돋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좌표는 영락없이 극우 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분단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에 따른 소모적인 이념 대립 상황이 큰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극우세력들은, 정책의 건전성이나 도덕성의 여부 등은 상관없이, ‘빨갱이’ 색칠 하나면 간단하게 반대파의 손발을 묶어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색깔론이라는 만능의 무기로 그들은 줄곧 저희에게 유리한 대립 구도를 만들어 왔고, 그 속에 저희의 무능과 부패와 매국을 감춰 왔다. 돌이켜보면 일제 강점기나 군사독재시대에 그 시대 권력의 끈을 잡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소신과 정의와 지조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한 번도 국민들의 편에 서서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오직 권력에 충성하고 그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할 뿐이었다. 그들은, 만일 대한민국이 무능하고 부패한 공산정권 치하에 있다면, 마찬가지로, 인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권력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개 같이 공산정권에 충성을 다할 것임이 분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종북 좌빨’이라고 매도당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공산당 일당 독재에 항거하며 탄압과 핍박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끈을 잡은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권력을 위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불법도 마다하지 않으며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극우로 기꺼이 기울었다. 그들 극우세력이 발호하는 속에 나라가 돌아가는 모양이 저 옛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으니,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명백한 불법이 백일하에 드러나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오히려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이나 검사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하고 결국 수사관을 바꿔버리는 비상식이 난무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나라의 근본이 어지러운 상황(국기문란)임이 분명하다. 이준호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 전 팀장인 윤석열 여주지청장 등에 대한 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런 어지러운 상황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런 극한의 상황을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는 지금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합리적 보수를 포함한 온건한 중도보수는 평소에 침묵하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폭발하고야 마는 것을 역사가 말해준다. 79년 부마항쟁의 ‘90%의 시민’이 그랬고, 87년 6월 항쟁의 ‘넥타이부대’가 그랬다. 극우 매체나 어용 방송은 여전히 몰상식과 편가르기로 기승을 떨며 마치 이 상황이 언제라도 계속될 듯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상황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에 상식 있는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98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글을 볼 리는 만무하겠지만, 그 측근의 측근이라도 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이 ‘댓통령’이라는 말을 알지 모르겠다. 국정원과 국군 등 국자 돌림 형제가 ‘댓풍’을 일으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총풍, 세풍, 안풍에 이은 댓풍이다. 본인들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이 이 나라 절반 이상 국민들의 생각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고위 관계자들이 연일 쏟아내는 댓글과 관련한 궤변들은 이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사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돼 있다. ‘진실’이란 날이 어두울수록 도드라져 보이는 불빛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엔엘엘로 가려보려 했고, 내란음모 사건을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터뜨려 보기도 했으며, 혼외자식 논란을 일으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그 때 뿐이었다. 이번엔 수사를 방해하려고 직접 찍어 누르다 들통이 났다. 급기야 국가보훈처에 이어 행정안전부까지, 걷잡을 수 없이 진실이 폭로되고 있다. ‘대선 불복’이라는 적반하장 프레임도 수명을 다했다. ‘그러면 너희는 헌법 불복 세력’이라는 반격 앞에 맥을 못 추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방법은 단 하나, ‘인정’하는 것이다. 댓풍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게 아니다. 댓풍이 있었다는 사실만 인정하면 된다. 이미 검찰이 기소했고, 트위터 5만 건으로 추가 기소장이 제출됐기 때문에 사실을 인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정하는 순간 정말 댓통령이 돼 버리는 게 아닌가 두렵겠지만 그렇지 않다. 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고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이미 대통령이 된 사람을 끌어내릴 방법도 없다. 공소시효도 지났고, 탄핵의 대상도 아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의 두려움은 한 마디로 기우다. (대통령 하야론자들은 당장 ‘대통령 아님’을 선포하고 싶겠지만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다) 인정하고 나면 5년 내내 흔들 거 아니냐고? 천만에, 거꾸로다. 인정하지 않으면 5년 내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인정하면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다만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실천해야 한다. 진실을 가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려 한다면 더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당장 정홍원 총리가 ‘대신 읽은’ 담화문이 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10월 28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등 현안과 관련해 새 정부 들어 첫 총리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원고만 읽고 9분만에 퇴장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지만) 지금 중요한 건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느냐 여부가 아니다. 단 한 건이라도 국가기관이 선거 관련 댓글을 달았다면 그것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를 어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 여당이 국가기관을 선거에 동원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무너진다. 이번에 처벌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 하게 된다. 결과는 자명하다. 우리 사회 유지의 기본 전제인 헌법정신과 법치주의가 무너진다. 무질서와 무법 상태로 떨어질 것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을 것이다. 여당은 전에도 괜찮았으니 또 해도 된다고 불법을 저지를 것이고, 야당은 ‘쟤네도 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고 불법을 저지를 것이다. 모두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데 야당만 처벌하면 법의 형평성이 깨진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약속이 깨지게 되면 이 나라는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렵다. 그 이후의 사태 전개는 상상하기도 싫다. 나라가 깨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정말 그런 사태가 오기를 바라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충심으로 말한다. 나는 박 대통령을 대통령 권좌에서 끌어내리길 원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법과 원칙이 제대로 서길 원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정의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을 따름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92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일본이 급속히 우경화한다며 많은 이들이 염려한다. 일본 밖에서는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를 한다. 일본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그것은 국제 관계나 외교적 차원에서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일 때가 많다. 참배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은 드물다. 신사 참배는 일본인에게 문화적 차원에서 익숙한 행위이기에 야스쿠니와 같은 국가주의적 신사 참배로 인한 국제적 문제의 소지는 언제나 상존해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본 문화사적 차원에서 보면 일본의 국가주의화는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일본은 왜 자국중심의 국가주의적 정책을 펼치는지 그 문화적 뿌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사상가인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1933~)의 입장에서 배운 바 크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동양의 고전인 『논어(論語)』에는 계로(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죽음과 귀신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로가 ‘귀신 섬김(事鬼神)’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도 잘 못 섬기면서 어찌 귀(鬼)를 섬기겠는가.’”(『논어』 선진) 공자의 관심은 사후 보다는 삶, 귀신보다는 사람에 있었지만, 공자의 대답은 별 의심 없이 귀신을 긍정하던 이들에게 귀신의 유무 및 존재 방식과 관련한 논란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죽은 이의 영혼이 어떻게 산 이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지와 관련한 담론도 생겨났다. 주자(朱子)는 죽은 자나 산 자나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되 형태가 다를 뿐이라는 입장을 펼쳤다. 이러한 해설은 동아시아 사상가들의 귀신 담론 및 민중의 조상 숭배 체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귀신 담론의 또 다른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해 일본에서도 사람들은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 생각했고, 죽은 이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조상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면서, 이른바 귀신 관념을 생활화했다. 고야스에 의하면, 일본에서 귀신담론은 오랫동안 사회를 움직여가는 살아있는 실재였다. 귀신담론이 정치적 정책과 만나면서 사회 통합의 강력한 근거로 작용해왔다. 실제로 일본 근대화의 틀을 결정지어준 메이지유신 – 한국의 시월‘유신’도 이 메이지유신이라는 말을 따다 만들었다 - 은 조상 제사를 기반으로 하던 유교적 질서를 민중적 종교인 신도(神道)의 정서와 연결시키고 다시 국가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면서 성립되었다. ‘호국영령’(護國英靈), 즉 ‘나라를 지키다 죽은 꽃다운 영혼’을 국가적 담론 속에 살게 하고, 국가와 국민의 제사 대상으로 재구성하면서, 천황을 정점으로 수직적 통일 국가체계를 확립하려고 했던 정치적 시도가 메이지 유신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령’이라는 말은 메이지시대 이래 전쟁을 통해 국가의 모양을 갖추어가던 과정에 나라를 위해 죽은 전몰 군인을 지칭하기 위해 일본에서 발명된 언어이다. 한국에서도 이 말을 별 생각 없이 따다 쓰고 있지만, 영령이라는 말 속에는 자민족 혹은 자국중심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들어있다. 좁게는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 중심적 사유를 하게 함으로써 정권 유지에 이용되어온 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일본에서의 ‘호국영령’은 국가와 국민의 제사 대상으로 재구성된 일종의 ‘담론상의 전사자’이다. 국가를 위해 존재해달라고 국가에 의해 요청된 영혼, 일종의 담론상의 귀신인 것이다. 이른바 귀신에 대한 상상이 국가적 이데올로기 속으로 들어오고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드는 정치적 역학은 일본에서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가령 국가적 희생자(忠)를 현양하는(顯) 날(日)이라는 한국의 현충일(顯忠日)도 죽은 이들을 드높인다는 외적 명분하에 실상은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고 국민의 정신적 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로 이용되어온 측면이 크다. 호국영령이라는 말이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는 국민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지 않던가. 현충일 역시 ‘귀신의 정치학’의 연장인 것이다. 일본 미에현에 이세신궁이라는 신사가 있다. 일본의 개국신 및 황실의 조상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우리에게도 종묘가 있는 것처럼, 이세신궁은 황실의 종묘이다. 동시에 천황이 전쟁의 개시와 그 종결이라는 국가의 대사를 보고하고 국가의 흥륭을 원하는 제국 신민들에 의해 떠받들어지는 제국의 큰 사당[大祠]이기도 했다. 문제는 연초가 되면 수상이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것이 정례화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도 하지만,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데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나아가 천황이 즉위해서 제사를 드릴 때는 전국의 신사가 천황의 즉위를 봉축하는 깃발을 내건다. 이세신궁이 천황 중심의 국가적 통합을 이루어온 일본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는 뜻이고, 일본의 전통 문화인 신도가 그저 개인적 행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국가의 정치 행위 속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국가신도는 패전 이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세신궁 내궁(內宮)으로 들어가는 우지하시도리(宇治橋鳥居)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야스쿠니신사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을 위한 내전 희생자들의 혼령을 모시고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지내기 위해 창건(1868)된 신사이다. 그 뒤 청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에 걸친 전몰자들의 영혼을 합사해 제사함으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호국의 정신과 자세를 갖게 하는 데 기여해온 국가주의적 신사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2,133,823위(位)의 영혼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모든 전쟁 희생자들, 모든 전몰자들이 모셔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 정치의 제국주의화에 부합한다고 판단된 혼령들만 선별적으로 모셔져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그 자체로 특정한 의도적 해석이 개입되어 창건되고 운영되고 있는 신사라는 뜻이다. 그 기준은 오랫동안 천황을 중심으로 수직적 체계를 이루어온 일본 중심의 호국(護國)이었다. 이 때 호국의 기준은 천황제 하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현양시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었다. 야스쿠니신사 내 박물관인 ‘유취관(遊就館)’이 “영령을 현창하고”(英靈顯彰) “근대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해석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희생자의 영이 ‘아름다운 영(英靈)’이 되고, 일본의 근대사가 그들에게 ‘진실’이려면, 사자의 혼령이 일본의 정신을 긍정적으로 고취시킨다고 해석될 만한 사건에 연루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패전으로 국가적 영광에 상처를 입힌 사건의 희생자들은 국가적 제사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차대전 당시 미국과의 최후 교전이 벌어졌던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희생자는 국가가 제사지내지 않는다. 오키나와도 국가적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이지만, 자랑스럽지는 않은 역사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관련된 제사에는 이미 국가주의적 혹은 자국 중심적 해석이 들어있다. 메이지시대 이래 일본인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게 적응해왔다.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야스쿠니신사나 이세신궁을 이해하고 참배해왔다. 이들은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가 자국 중심일 뿐만 아니라 정권 유지와 강화를 위한 정치 행위라는 사실을 별반 인식하지 못한다. 도리어 이에 대해 문제 삼는 한국이나 중국이 월권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분위기 탓에 총리나 국회의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어져가고, 그 속에 전쟁을 정당화해온 군국주의적 분위기도 다시 심리적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힘을 얻는다.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되어 희생당한 뒤 야스쿠니신사에 강제로 합사되어 있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 부모형제의 이름을 빼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쿄지방법원에 강제 합사 철폐를 위한 이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소송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며칠 전 아사히신문이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몰자 추도 방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사설을 실은 것은 이러한 운동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소수이긴 하지만 신사참배로 인한 외교 마찰을 피하려는 일본 내 흐름을 일부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일들이다. 2001년도에도 A급 전범만을 분사해 따로 모시거나 태평양전쟁 당시 사망한 무명 군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인근 치도리가부치 묘원을 확대하자는 제안이 나온 적이 있지만, 보수적 국회의원들과 야스쿠니신사측이 반발해 무산된 적이 있다. 한 번 합사된 영혼을 분사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이지만, 국가주의적 상징성을 지니는 야스쿠니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역할이나 상징성이 위축 가능성은 적지만, 외교적 마찰이라도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력 일간지를 통해 나오는 것은 작은 변화의 첫걸음은 된다는 점에서 다행은 다행이다.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귀신의 정치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17 | 추천: 0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금부터 대략 400년 전후에 이탈리아에서 살다 죽었던 두 남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 사람은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이름 없는 시골뜨기이며, 다른 사람은 과학자와 대학교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인사이다. ‘가방끈’과 사회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건방진 책’ 때문에 말년을 망쳤던 종교재판의 죄인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첫 남자 도미니코 스칸델라라(1532∼1599)는 본명보다는 메노키오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는 인구 600-700명의 고향에서 목수, 제분업자, 방앗간 주인 등 여러 직업을 가지며 마을이장과 교회교구 행정관직을 맡았던 시골유지였다. 부인과 11명의 대가족을 부족함 없이 부양할 정도로 경제기반도 튼튼했고, 당시 외딴 시골마을에서는 드물게 스스로 공부하여 라틴어 기도문을 암송할 정도의 교육수준을 갖춘 유식쟁이이기도 했다. 잘 나가던 메노키오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52세 때였다. 그는 성경과 가톨릭의 교리에 어긋나는 불경한 발언으로 마을사람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1584년에 동네 사제에게 고발되어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신앙고백을 위해 신부님을 찾는 것 보다는 나무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 더 낫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가 더 위대하다.” “예배의식과 법정언어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치즈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듯이 이 세상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석방 후에도 이런 위험한 세계관을 전파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메노키오는 15년 후에 다시 체포되어 결국 67세의 나이로 화형 당했다. 메노키오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시퍼런 (종교)권력에 무릎 끓지 않은 그의 용기와 양심이었다. 무식한 시골 중늙은이가 우주탄생의 비밀과 종교생활에 관한 급진적인 생각을 감히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종교재판관은 “배후와 공범자를 불어라”고 그를 겁박했다. 고문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메노키오는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머리에서 나온 의견들”이라고 맞섰다. 카를르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사진 출처 - 아마존 그는 금서, 여행기와 연대기, 이슬람 코란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고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석하면서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세계관과 우주관을 키웠다. 말하자면, 메노키오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인쇄혁명의 세례를 받아 스스로 깨우친 민중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참조] 두 번째 남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이다. 예순이 넘은 메노키오가 고문과 재판으로 고생할 때 30대 초반이었던 갈릴레오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파도바 대학 수학교수로 출세길에 들어섰다. 메노키오가 불타죽던 1599년에 갈릴레오는 애인(마리아 감비나)을 만나 단란한 가정의 성을 쌓았다. 야심에 불타는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선하여 원로원에 선물했고,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별들에게 ‘메디치 가문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 당대를 호령하던 권력자에게 아부했다. 이런 반짝이는 처세술 덕분에 그는 피렌체 대공의 수학자 겸 피사 대학교의 수학 종신주임교수라는 부와 명예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잘 나가던 갈릴레오도 하필이면 52세가 되던 1616년에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지지했다는 혐의로 종교재판에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유명세와 권력자들과의 인맥에 힘입어 지동설을 공개적으로 주창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경고조치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633년에 갈릴레오는 『두 가지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1632)에서 금지된 지동설을 전파했다는 죄목으로 종교재판에 다시 얽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유죄판결을 받은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허튼 역사가들이 없던 명대사를 지어내어 그를 과학혁명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메노키오 사례와 비교되는 갈릴레오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권력 앞에 쫄은 과학자의 초라하고 비굴한 태도이다. 재판관이 『대화』에 서술된 관련 부분을 읽어주고 “당신은 언제부터 지동설을 믿었는가?”라고 다그치자, 갈릴레오는 “나는 단 한 번도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지지한 적이 없으며 현재도 그렇다. 만약에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렇게 오해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헛된 야심과 순진한 무지 탓”이라고 옹졸하게 변명했다. 시골촌부 메노키오가 “내 머리에서 나온 위험한 사고방식은 전부 나의 것”이라고 떳떳이 밝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당대의 유명한 먹물지식인 갈릴레오는 자신이 책에서 언급하고 증명했던 과학적 진리(지동설)를 손바닥 뒤집듯이 부정했던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초상화 사진 출처 - 구글 재수 없게 종교재판의 덫에 걸렸던 불쌍한 두 늙은이들의 ‘죽음 이후의 삶’은 매우 달랐다. 재판 후 금서목록에 올랐던 『두 가지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는 1835년에 해제되었고, 그보다 훨씬 지난 1983년에 갈릴레오는 교황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사면·복권되었다. 그러나 빅뱅이론에 버금하는 우주탄생의 비밀을 혼자 깨우치고 가톨릭의 낡은 관행을 비판했던 메노키오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역사의 죄인이며 억울한 패배자로 남아있다.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 같은 역사적 변혁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힘없고 가난한 민중의 헌신과 희생을 교황으로 대변되는 권력자는 먼지처럼 귀찮고 하찮은 것으로 침묵·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남자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획득할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책을 (잘못) 읽거나 서술하는 행위는 당사자 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위험천만하다고? 동양철학적으로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안다)’의 무거운 나이에 해당하는 오십대(현재의 386세대)가 공연히 공권력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나섰다가 괜한 신세를 망친다고? 아니다. 메노키오와 갈릴레이의 사례로부터 우리가 새삼스럽게 배우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권력의 시대착오적 집요함과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함이다. 그렇다. 메노키오를 위한 국가와 권력은 없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옛날 옛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2013년 지금 이곳의 문제로 고쳐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두려움 없이 실천했던 메노키오는 이 땅의 양심수, 내부고발자, 군의문사 진실추적자 등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메노키오의 역사적인 복권은 낡은 시대를 견디며 저항하는 ‘또 다른 메노키오’인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13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일본 평화헌법은 제9조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 및 교전권을 부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평화헌법의 상징과 같은 제9조는 첫째,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과거사 반성의 뜻을 담고 있고, 둘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막기 위한 재무장을 금지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행보는 형식적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는 제9조의 취지조차 무색케 하고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청산해야 할 과거사를 반성하고 그 피해를 배상하는 대신에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망언을 하고, 내각의 관료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과거 식민 지배와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우경화 행보에 거침없이 나서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전후 동아시아 역내 평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한 제9조의 기능과 역할을 완전히 부인하며 군국주의 부활과 재무장 강화의 움직임을 날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패권 유지 전략을 추종하여 중국을 견제하며 북한과는 군사적 대결을 추구하는 미일 군사동맹 및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동맹 강화, 군비증강 및 전쟁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급기야 전쟁 참여를 위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 법적 제도적 장애물에 해당하는 평화헌법의 해석의 변경을 검토하고 아예 제9조를 개악하기 위한 헌법 개정 추진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아베 정부의 이러한 우경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어떨까? 규탄과 분노 일색일까?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수미일관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수많은 국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바로 현실이고 그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라는 것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3일 미·일 양국의 외교·국방 담당 장관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번 안전보장협의위원회는 미-일 양국의 외무장관과 국방장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른바 '투 플러스 투' 회담이다. 사진 출처 - YTN 먼저 친북, 반북, 반미, 친미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만장일치의 이견이 없을 만큼 규탄과 분노의 목소리로 뒤덮이는 대목이 있다. 일제 패망 7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일본은 미국에 기생하는 극우보수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과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하여 주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이 조선 여성들을 유인, 납치하여 일본군의 성노예로 유린하는 등의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며 배상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한국인은 아예 없다 싶을 정도다. 그런데, 평화헌법 제9조를 개악하면서까지 미일군사동맹에 의존하여 군비 증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나서는 일본 아베 정부의 재무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여론은 북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와 그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니, 대다수 국민들은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쉽사리 판단하지 못해 눈치를 보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행보에 대하여 규탄과 분노의 태도로 일관하지 못하고 각각의 대목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배경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종북 혐오이든 친일 혐오이든 간에 대중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경우 개인의 정치생명은 물론 정치세력과 정권의 운명까지도 판가름할 수도 있는 폭발력 있는 여론몰이가 통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의 부활과 재침략의 위험을 경계하고 이를 불안해하며 반대하는 것이 일관성 있는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구실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해 나서는 미국의 태도를 본 다음부터 발생한다. 전범국 일제에 대한 친일, 반일의 기준에서 명확히 이해가 되던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문제가 친북, 반북의 논리가 생기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여 친미, 반미의 선택지가 눈앞에 보여지는 순간 그 곳에는 더 이상 들어서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순식간에 판단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극과 극의 냉온탕을 오갈지 모르는 역동적 상황이 조성되고 이와 같은 여론의 향배는 닻이 없는 변덕스런 배를 탄 형국이 된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 아베 정부와 같이 그 정치적 성격에서 친미 의존적이고 극우 보수적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미일 동맹 강화에 편승하여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한일 군사협력에 당당히 나서며 대북 대결 노선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도 같지만, 현실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종북 혐오에 기반한 종북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듯 한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도 미국을 추종하여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에는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여론의 반발이 몹시 두려운가 보다. 1965년 선친의 대통령 재직 시절, 굴욕적 한일협정 체결로 인하여 국민적 저항을 불러와 계엄령까지 선포하였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극우보수세력을 대변하는 박근혜 정부의 친일 트라우마에 못지않게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을 견제할 충분한 힘을 여전히 갖추지 못한 우리 국민들의 입장에서 겪는 극우보수세력의 매카시즘 선풍에 대한 공포도 현재 진행형이다. 매카시즘의 공포에 짓눌려 살아가다 보니,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한결같은 분노와 규탄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나아가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지지하는 미국에 반대하여 규탄과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가 특별한 각오 없이는 정말 어렵다. 우리 국민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주춤하는 사이 한미군사동맹에 의존하여 같은 민족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해 온 불행한 역사는 아직도 우리의 힘으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37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빈 깡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이 그냥 속담으로만 남아 있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국정원은 온몸으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 정치인과 선량한 시민을 사찰 탄압하고, 각종 공작을 통해 선거에 적극 개입하고,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일까지 무수한 만행을 저질렀다. 참여정부 시절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성찰하겠다며 자체적인 과거청산 기구도 만들어 활동하고,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모두 위선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권에서 국정원은 선량한 시민과 단체들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는 신종 매카시즘 공작을 조직적으로 자행하였다고 검찰은 발표하였다. 이러한 정치공작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였다. 18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여론이 심상치 않자 박근혜 당선을 위해 여론조작 작업을 벌리고, NLL 논쟁을 조장하였다. 국정원 행동의 핵심은 국민주권주의를 침탈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놓고도 국정원 댓글녀는 뻔뻔한 육성으로 피해자라고 자처하고, 원세훈, 김용판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위증을 서슴지 않았다. 더 나아가 청와대는 검찰총장이 국정원의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을 처리하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근거도 불분명한 “ --- 카더라 통신”의 혼외자를 운운하면서 목을 베었다. 이런 훌륭한 기관은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 걸까. 국정원의 예산이 얼마인지는 예산․결산을 심사하는 국회의원들도 잘 모른다. 대충 1조원 정도라고 한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댓글 쓰는데 들어간 비용으로는 너무 너무 큰돈이다. 시민이 낸 세금에 대해서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시민은 알 권리가 있다. 시민이 낸 세금을 시민이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다. 국정원에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업무에 사용되는 예산으로 특수 활동비가 있다. 각 부처에 숨겨진 특수활동비가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국정원법 제12조 제2항에 의하여 예산액은 총액만 표시하면 되고, 예산처에 사용처와 명세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심사도 생략되고, 결산심의에 영수증도 제출할 필요가 없다. 국정원 예산 자체가 2급 비밀로 규정되어 있다. 국회를 통한 견제도 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무력화되고, 감사원 감사도(제13조) 국가안전보장이라는 이유로 감찰이 불가능하다. 죽의 장막, 철의 장막이 없어진 때가 언제인데 국정원은 여전히 비밀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철의 장막 속에서 몸을 숨기며, 여전히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법치주의 국가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SBS 국정원 존폐 문제에 대해서 법률가들이 즐겨 쓰는 방식의 학설로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국가안보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절대적필요설, 국민을 상대로 한 정보기관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어 폐지해야 한다는 폐지설, 국가정보기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가안보라는 제한적 역할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제한적 존치설이 존재해왔다. 나는 그동안 절충적인 견해에 가까운 입장에 서 있었다. 금번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그 이후 대응을 바라보면서 기존의 견해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빈 수레가 시끄럽다.’ 는 속담도 그냥 속담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대한민국 주권을 뒤흔들어 민주주의를 빈 깡통으로 만들어 놓고도 무엇을 잘했다는 것인지 떠들어대는 국정원의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면 국정원 자체가 빈 깡통처럼 보인다. 국정원 자신이 빈 깡통이니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빈 깡통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요란을 부리는 짓거리로 보인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탄식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민주주의는 살아있는가’라고 다시 묻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농단하고, 민주주의를 빼앗아 가려는 무뢰한 집단을 그대로 존치시키는 것이 정의인가.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국정원이 셀프서비스로 스스로를 개혁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주고 먹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개과천선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짓’에 불과하다. 이제는 아예 국정원을 없애자고 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국정원 스스로 소리 높여 웅변하고 있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70 | 추천: 0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퍽퍽한 시절 그래도 교수만한 직업이 없어, 안식년이라는 명목으로 6개월간 강의를 쉴 수 있게 되었다. “전 국민이 안식년을 떠나는 그 날까지” 선도투쟁을 하는 거라며 농담조로 얼버무렸지만, 다른 직업은 물론, 같은 교수직에 있으면서도 안식년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한 형편이라 호사인 건 분명하다. 쉬는 김에 이런저런 핑계로 영국까지 날아와 버렸다. 공부를 한다기보다 이국에 정착하느라 허덕대며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사람 사는 사정은 비슷할 텐데 왜 이리 낯선 게 많은지. 영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숱하게 들었다. “어휴, 인터넷 신청하면 설치하기까지 6주일쯤 걸립니다. 속 터져요.” “여기 사람들은 너무 잘 참아서요, 그냥 기다리시면 한이 없어요. 계속 찾아가고 불평하셔야 해요.” 실제로 애들 학교는 신청한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 답답해서 한두 번 연락을 해 봐도 “다 잘 진행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회신뿐이다. 창문 수리를 부탁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이웃 어떤 집에선 시에서 제공하는 쓰레기통 교체를 신청한 게 2년 전인데 여태껏 새 것을 받지 못했다고 전해 주기도 한다. 속도전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로선 그야말로 ‘속 터져 죽을’ 판이다. 연전에 와 보기 전엔 미국과 비슷하려니 생각했는데, 영국은 또 딴 나라다. 미국에 편향돼 있는 우리네 외국 경험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속내가 많다. 20세기를 지배한 미국과 달리 19세기에 전성기를 보낸 나라로서, 어쩌면 이 나라에선 ‘번영’이나 ‘진보’ 같은 단어가 좀 낯설어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질문, “여기만 바라보고 죽도록 달려왔는데,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좀 다른 형태로 진작 마주하고 조금씩 해법을 찾아온 사회 같기도 하다. 이민자 출신 엄마가 자기 딸을 두고 불평하듯, 여기서 자란 사람들에게 ‘꼭 해야 하는’, ‘어떤 걸 희생해서라도 이룩해야 하는’ 목표란 존재하지 않기가 쉬울 성 싶다. 헌데 정말, 그러면 뭘 바라고 살지? 나만 해도 ‘대의’나 ‘명분’을 믿고 ‘옳은 것’ 앞에서는 이익이나 쾌락이 당연히 유보돼야 한다고 믿는 세대다. 위선으로 흐르기 쉬운 ‘대의명분’의 그늘에서 자란 불의가 어디 한둘이랴만, 적어도 그렇게 믿는 척이라도 해야 마음이 놓이는 연배다. 대의명분으로 조정된 목표가 없다면 삶이 대체 무엇일는지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어깨 너머로 보는 영국인들 생활에서 느껴지는 대로라면 집과 정원과 가족? 자선과 자원봉사? 그것만으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그건 그것대로 위태위태한, 정체와 무력감의 징후가 아닐까? 게다가, 도자기나 직물 같은 옛 시대의 상품으로 유명한 영국과, 자동차 및 전자기기의 주요 수출국 중 하나가 된 한국의 상황은 아무래도 다를 것 같다. 그럼에도 영국은 참조가 되기 충분하다. ‘번영’과 ‘진보’라는 목표가 물러났을 때 생활의 리듬을 엿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소비’가 덜 다급하고 덜 우선시된다는 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다. 미국과 영국 사이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다섯 시 반이면 손 털고 집에 가는” 전형적인 영국식 노동은 ‘고객님’들로선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리듬이 노동자로서 죽도록 일하고 소비자로서 그 피로를 단번에 만회하려는 식이라면, 영국의 리듬은 양쪽에서 다 현저하게 느리다. 반면 거리 곳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가게’식 자선 중고 상점들은 훨씬 요령 있어 뵈고 한결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수십 년 된 개성 만점 자동차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사람들은 확실히 더 천천히 걷는다. 캠브리지 시내 모습 사진 출처 - 구글 아마 영국 사람들도 한국에 와 생활하다 보면 참조 삼을 만한 일이 있으리라. 두 달 남짓 산 경험으로도 영국은 과도하게 느리거나 과도하게 시간을 끄는 일이 적잖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리듬, 많이-빨리-싸게 소비하는 속도가 급속히 침투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아직 절감하진 못했지만, 예의 바른 듯 냉담한 게 영국인의 특징이라는데, ‘정 많고 눈물 많은’ 한국인의 기질이 한결 매력적일 수도 있을 듯하다. 장점이 곧 단점, 완전한 존재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그런 대로 캠브리지 시내를 오가면서 배우는 게 적지 않다. 나도 훨씬 많이 걷고, 덜 사고, 조금 더 기다린다. 돌아가면 이 경험은 또 어떤 모양새로 남으려나.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46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안식년 후반부를 베를린에서 보내고 돌아온 지 2주 가량 되었다. 몇 달 간의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는가 했는데 막상 와 보니 한국은 ‘현실’이 아니라 ‘초현실’의 공간인 것 같다. 난데없는 ‘내란음모’가 등장하고, 극장 상영 예정이던 영화가 모종의 위협 때문에 상영을 중단당하고, 대학에서 <자본론> 강의한다고 고발당하고, 남의 결혼식장에 똥물세례를 퍼붓고 싶어 하는 자들이 설친다. 이게 도대체 21세기 대명천지의 현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으니 초현실이랄 밖에. 그래선가 도무지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처럼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근 2주째 밤잠을 설치고 낮에는 정신이 흐리멍덩한 채로 꾸벅꾸벅 조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무려나 오늘은 한국의 ‘초현실’적 상황과 무관하게 독일에서 인상적으로 본 공간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그곳은 우파 파브릭(Ufa Fabrik)이란 곳이다. 우파(Ufa)는 1917년에 설립된 독일의 대표적인 영화사다. 프릿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같은 영화를 제작했고 나찌 시대에는 나찌즘 선전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Ufa 영화사 건물의 서쪽은 촬영소로, 동쪽은 현상소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분단이 되면서 동부와 서부가 갈라져 더 이상 종합 영화촬영소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결국 우파 영화사는 1965년경부터 이 공간을 사실상 방치하게 된다. 베를린에는 방치된 건물이나 공간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예술문화 공간으로 바꾸어 놓은 곳이 많다. 특히 68혁명 당시 베를린으로 이주해 온 젊은 예술가들이 이런 장소에 모여들어 공간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 사례가 많은데 우파 파브릭(Ufa Fabrik)도 그 가운데 하나다. 처음 이 공간이 주어졌을 때, 우파 영화사가 친 나찌 선전 영화를 많이 제작했다는 이유로 헐어 없애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에 이곳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스스로 주거와 노동을 위해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공동체 안의 다양한 시스템을 구축하자 베를린시가 이곳을 장기대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우파 영화사도 렌트비를 지원하고 각종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이 공간이 탄생하게 됐다. 우파 파브릭 입구에서 본 전경 사진 출처 - 필자 이곳은 단순한 예술 작업장이 아니다. 젊은 세대의 예술적 문화적 상상력이 대안적 삶에 대한 고민을 만나 새로운 주거와 문화 공간을 창출한 대단히 특별한 공간이다. 이 안에 예술가들의 작업장과 전시장이 있고 극장이 있고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있다. 거기에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공동 식당과 동양무예, 발리춤, 음악 등을 배우는 강습소도 있다. 이곳에서는 1년 내내 예술 작품이 전시되고 공연이 이루어지며 매주 3,4차례 세계 각국의 생태문화 전문가들이 모인 세미나와 워크숍이 이루어진다. 매년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30만명이 넘는다. 하루 평균 100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이곳의 모토인 “To Think Another Way and Change Life"가 어떻게 도시 공간에 구체화되어 있는지를 목격하고 간다는 얘기다. 놀라운 건 이 공간이 보여주는 생태적 삶의 실천들이다. 빗물을 받아 작물을 가꾸고 건물 지붕에 흙을 덮어 풀이 자라도록 했다.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태양열 목욕탕과 물을 내리지 않는 자연발효 화장실이 개발됐단다. 태양열을 이용해 난방을 하고 이곳에서 나는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빵이나 꿀 같은 것을 팔기도 한다. 문화, 예술 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까지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그야말로 대안적 삶의 공동체인 셈이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문화 예술적 고민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하나의 성공 사례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 마침 일요일이었던 탓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거 공간인 듯 보이는 건물 2층에 올랐더니 방마다 각기 다른 것을 배우는 강습실이다. 한 방에서는 드럼 소리가 들렸고 다른 방에선 발리 댄스를 추는 모습이 보였다. 어린이 놀이 공간 한 쪽에는 놀랍게도 말과 돼지, 토끼 등 가축을 기르는 축사가 있었다. 생태적 환경에서 사육되는 탓인지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커피 한잔 마시려 카페에 들렀는데 이 카페에서도 저녁에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고 한다. 말과 돼지, 토끼 등을 기르는 축사의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가장 놀라운 건 이 공간이 다름 아닌 베를린이라는 대도시 한 복판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마 대한민국 토건업자들과 부동산 업자들이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일 게다. 하지만 우파 파브릭의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은, 돈과 개발과 탐욕의 허울을 넘어선 대안적 삶이 가능하고 그 삶이 지역사회와 충분히 소통하며 이를 통해 다른 방식의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69 | 추천: 0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좌익사범. “좌익사범(左翼事犯)은 좌익에 관련된 사상인 아나키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따르거나 전파하는 국가 전복 세력을 의미한다. 또는 단순히 전파만 하는 것도 해당한다. … 요즘 좌익사범은 일반적인 사회주의 계열 사상보다는 주사파를 의미하기도 한다.(출처 : 위키백과, 네이버)”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좌익사범은 국가정보원에 신고하라’는 익숙한 안내방송이 나왔다. 포상금도 있다(간첩선을 신고하면 최대 7억5천만 원까지 준단다). 늘 들어왔던 좌익사범. 아나키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들 사상을 신봉하여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을 좌익사범이라 부르는 것인데,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는 대한민국에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이들 사상을 신봉하였다는 이유로 좌익사범으로 분류되었다면 우익사범도 있을 것 같은데... 우익사범. “제목이 ‘우익사범’인 문서를 새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아래 검색 결과 내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룬 문서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출처 : 위키백과, 네이버)” 백과사전에 우익사범에 대한 정의는 없는 모양이다. 만들어 보자. 우익. “우익 정치사상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의 특징을 지니며, 현대에서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시장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출처 : 두산백과, 네이버)” 그렇다면, 우익사범 : “우익사범(右翼事犯)은 우익에 관련된 사상인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 반공주의, 개발주의, 시장주의를 따르거나 전파하는 국가 전복 세력을 의미한다. 또는 단순히 전파만 하는 것도 해당한다. … 요즘 우익사범은 일반적인 민족주의 계열 사상보다는 꼴통보수, 수구를 의미하기도 한다.(출처 : 절대적이지도 상대적이지도 않은 백과사전)” 이 정도를 우익사범이라고 해도 될 듯싶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두 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내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5.16 쿠데타, 12.12쿠데타가 그것이다.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에 의한 내란, 성공한 쿠데타. 전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후자는 매우 미흡한 정도로만 처벌받았다. 그런데 이들을 보니, 국가 전복 세력이었지만 좌익사범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익사범이군. 다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좌익사범의 내란이라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몇 건 있었지만 아쉽게도 현재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좌익사범에 의한 내란 행위는 없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진실이다. 그런데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 중 유독 좌익사범만 신고하도록 하고 거액의 포상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처벌하려는 것은 국가를 전복하는데 성공한 것이 우익사범이었기 때문일까?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은 좌익인지, 우익인지를 불문하고 찾아내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만 잘못 생각하고 있나?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최근 국가정보원에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좌익사범들을 색출한 모양이다.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과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 1)이 그것이고, 이들이 내란을 음모했다는 거다. 그런데 국정원이 입수하였다는 녹취록이라는 것의 내용을 보면,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몽상토크인지 한심하기만 하다. 한편, 1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산을 먹어치우는 국정원이 설마 이 정도 증거 따위로 내란 어쩌구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뒤에 뭔가 큰 게 있겠거니 생각했다. 정말이다. 며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게 다인가 보다. 물론 녹취록에 대해선 그 진위 여부가 다퉈지고 있다(뭐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래도 상관없지만). 3년을 내사했다고 한다. 또 문제의 발언이 있었다는 5월12일부터 공개수사로 전환한 8월29일까지는 무려 3개월이 넘는 기간이다. 3년의 내사 기간과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검토해서 내 놓은 결론이 고작 “내란음모”. 한심하다. 그 많은 예산 중 매달 50만원만 줘도 석 달 동안의 기본 자문시간이면 내란음모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변호사의 법률자문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 국정원은 그 동안 법률 검토를 한 게 아니라 정세 검토를 한 게다. 사이버 내란. “사이버 내란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국토 참절,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행위를 말한다.(출처 : 절대적이지도 상대적이지도 않은 백과사전)” 국정원은 심리전단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서 온라인상에서 일반인이라면 상상하기 어렵고 무시무시해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내용의 댓글, 게시글을 작성하고, 찬반클릭을 하는 방법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대통령선거에 개입하여 대선결과를 조작해 냈다. 지역감정을 유도해 남남 갈등을 조장했다. 그 규모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정원 정직원 외에 일반인 세포 조직을 두고 공작금도 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총선 및 대선 기간 동안 벌인 이들의 사이버 폭동은 능히 사이버 내란이라 할 만하다. 사이버 내란은 오프라인 활동으로도 이어져 정상회담 대화록인 소위 NLL대화록을 불법으로 새누리당에 유출하였고, 김무성, 권영세 등은 이를 대통령선거에 이용한 것(혹은 김무성, 권영세로 하여금 이를 대통령선거에 이용하도록 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이 국정조사 현장에 끌려 나가 거짓말을 해야 하고, 법정에 불려 나가 판・검사로부터 모욕을 당해야 하며, 2) 종내는 조직이 해체될지 모를 암담한 상황, 더 나아가 촛불들이 대통령 하야, 대통령 퇴진까지 외치는 상황에서 국정원은, 추석을 기점으로 한 국정원 대 개입이라는 전국적인 여론 확산을 방지하고자,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하려 했던 국가보안법 카드를 조금 더 과대 포장해 내란음모로 발표한 것이다. 느낌 아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느낌이 70년대에 머문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점.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표현의 자유도 보장한다. 국가 전복 세력은 좌익과 우익을 가리지 않는다(경험칙상 우익사범이 더 위험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겐 좌익사범이든 우익사범이든 국가 전복 세력이라면 끝까지 찾아내 그 행위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 대통령이나 집권당이 아닌 국민을 주군으로 모시는 정보기관이 필요하다. 상황이 엄중하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이미 실행된 내란행위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사건을 내란음모라 자신 있게 선언했고, 이로써 대한민국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지는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그 선언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국에 물타기 하려는 것이라는 뻔 한 의도는 이미 읽혔다. 국정원은 공개수사로 전환할 만큼 자신 있는 모양이니 이제 검찰로 수사를 넘기고 법원의 재판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되지도 않는 피의사실 공표로 더 이상 대한국민을 기만하지 마라. 그리고 기다려라, 국민의 엄정한 처분을. 1) RO라는 조직의 실체에 대해 단 한 건의 기사도 다루지 않고 있어, RO 조직이라는 건 혹시 “개(ro)” 먹는 조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2) 국정원은 심리전단 운영이 온라인상의 종북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정작 심리전단장인 민병주는 종북의 기준조차 몰라 우물거려야 했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340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화투판을 끼고 사는 ‘타짜’가 아니더라도 ‘면피’라는 말은 어쩐지 익숙하다.(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다들 그러지 않을까.) 노름에는 젬병이어서 웬만한 내기 당구나 어디서 ‘사다리타기’라는 말만 나와도 가슴이 벌렁대기 시작하는 내게 예의 ‘면피’는 ‘절대만족(또는 최소 만족)’의 기준이다. 참고로, 군대시절 한 겨울에 찬물로 식판을 닦아야 했는데 한 소대원 전체 식판을 57번이나 도맡아 닦아야 했던 적이 있다. ‘가위 바위 보’로 식기당번을 정했는데 무려 20일 가까이 혼자 시린 손을 불어가며 얼음 동동 뜬 찬물과 싸워야 했던 것. 그래서 어떤 내기판에서든 중간은 고사하고 꼴찌만 면하자는 게 내 신념 아닌 신념이 되고 말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내기나 노름판에서나 통용됨직한 ‘면피’라는 말이 더 많이 유통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게 요 몇 년 사이다. 물론 속뜻은 조금 비틀어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 정도로 읽히는 듯하다. 꼼수는 말 그대로 어떠한 상황이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다. 면피를 위한 몸부림의 절정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한 일이 버젓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이 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해 국가기강을 문란하게 한 이른바 ‘국정원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곳곳에서 “어떻게 이뤄온 민주주의인데…!”라는 탄식이 메아리친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면피는 고사하고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는 철면피(鐵面皮)한 이들의 행렬이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원(원세훈)·판(김용판) 불변의 법칙’을 확인시켜준 전직 정보기관장과 경찰 수뇌의 모습은 단연 아연실색의 압권이다.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듯한 '국정원 댓글녀'의 모습이나 진실 규명을 외치며 촛불을 든 시민들을 ‘좌빨’이라고 간단히 매도해버리는 이들에게서는 ‘면피’하려는 부끄러움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기판에서 느끼는 위기의식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이성이 사라진 민주주의는 극단으로 흐르기 쉽고 사랑이 사라진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4년 전 운명을 달리한 고 김수환 추기경이 비슷한 말은 한 적이 있다. 김 추기경은 “민주주의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탄력 속에서 화합이 이루어질 때 창조되어지는 것”이라며 민주주의 속의 다양성을 얘기한 바 있다. 그는 또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국민들은 어둠 속에서 살 것”이라고도 했다. 김 추기경이 활동했던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언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현실에 가슴마저 저며 온다. 종북몰이로 ‘거짓 평화’를 얘기하는 자칭 ‘애국자’들의 모습을 보며 “정의와 사랑이 없는 곳에 평화와 기쁨이 있을 수 없다”고 외치던 인간 김수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건 무슨 영문일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들의 행진을 보며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촛불이 빛을 내려면 스스로 불타야 합니다.” “거짓된 질서 위에 세워진 거짓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우리 곁에서 사라진 노병, 아니 노장(김수환)의 말이 두고두고 뇌리를 떠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4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