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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댓통령'이라는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9:02
조회
29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글을 볼 리는 만무하겠지만, 그 측근의 측근이라도 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이 ‘댓통령’이라는 말을 알지 모르겠다. 국정원과 국군 등 국자 돌림 형제가 ‘댓풍’을 일으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총풍, 세풍, 안풍에 이은 댓풍이다. 본인들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이 이 나라 절반 이상 국민들의 생각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고위 관계자들이 연일 쏟아내는 댓글과 관련한 궤변들은 이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사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돼 있다. ‘진실’이란 날이 어두울수록 도드라져 보이는 불빛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엔엘엘로 가려보려 했고, 내란음모 사건을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터뜨려 보기도 했으며, 혼외자식 논란을 일으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그 때 뿐이었다. 이번엔 수사를 방해하려고 직접 찍어 누르다 들통이 났다. 급기야 국가보훈처에 이어 행정안전부까지, 걷잡을 수 없이 진실이 폭로되고 있다. ‘대선 불복’이라는 적반하장 프레임도 수명을 다했다. ‘그러면 너희는 헌법 불복 세력’이라는 반격 앞에 맥을 못 추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방법은 단 하나, ‘인정’하는 것이다. 댓풍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게 아니다. 댓풍이 있었다는 사실만 인정하면 된다. 이미 검찰이 기소했고, 트위터 5만 건으로 추가 기소장이 제출됐기 때문에 사실을 인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정하는 순간 정말 댓통령이 돼 버리는 게 아닌가 두렵겠지만 그렇지 않다. 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고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이미 대통령이 된 사람을 끌어내릴 방법도 없다. 공소시효도 지났고, 탄핵의 대상도 아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의 두려움은 한 마디로 기우다. (대통령 하야론자들은 당장 ‘대통령 아님’을 선포하고 싶겠지만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다)

인정하고 나면 5년 내내 흔들 거 아니냐고? 천만에, 거꾸로다. 인정하지 않으면 5년 내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인정하면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다만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실천해야 한다. 진실을 가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려 한다면 더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당장 정홍원 총리가 ‘대신 읽은’ 담화문이 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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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10월 28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등 현안과 관련해
새 정부 들어 첫 총리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원고만 읽고 9분만에 퇴장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지만) 지금 중요한 건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느냐 여부가 아니다. 단 한 건이라도 국가기관이 선거 관련 댓글을 달았다면 그것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를 어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 여당이 국가기관을 선거에 동원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무너진다. 이번에 처벌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 하게 된다. 결과는 자명하다. 우리 사회 유지의 기본 전제인 헌법정신과 법치주의가 무너진다. 무질서와 무법 상태로 떨어질 것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을 것이다. 여당은 전에도 괜찮았으니 또 해도 된다고 불법을 저지를 것이고, 야당은 ‘쟤네도 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고 불법을 저지를 것이다. 모두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데 야당만 처벌하면 법의 형평성이 깨진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약속이 깨지게 되면 이 나라는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렵다. 그 이후의 사태 전개는 상상하기도 싫다. 나라가 깨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정말 그런 사태가 오기를 바라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충심으로 말한다. 나는 박 대통령을 대통령 권좌에서 끌어내리길 원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법과 원칙이 제대로 서길 원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정의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을 따름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