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시형, 박용석, 방효신, 서동기, 서진석, 정석완, 조동순, 조예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2월은 졸업 시즌이다. 요새는 학생 대표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단상에 올라가서 졸업장을 받는 편이다. 취지는 좋으나 졸업식을 준비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간단치 않은 성 정치가 펼쳐진다. 사회에 비해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학교에서 자신의 직급과 나이, 성별을 확인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일반 교사가 긴 탁상에 쌓인 졸업장을 하나씩 챙겨서 교장에게 건넨다. 교장은 전달받은 졸업장을 다시 학생에게 준다. 졸업장 내용은 단상 아래에 있는 부장 교사가 마이크를 잡고 대신 읽는다. 교장 혼자 해도 될 일을 세 명이 나눠서 진행하는 모습은 흡사 행위 예술인가 싶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꽃순이’가 누구였는지 뒷담화가 꼭 있다. 학교에서 가장 젊고 예쁜 여교사가 남교장 옆에 서서 졸업장이나 꽃다발 건네기, 즉 시상 보조를 한다. 졸업식 행사를 주관하는 교무부장은 업무 지시를 빙자하여 ‘꽃순이’ 역할을 ‘어떤’ 교사에게 미리 부탁한다.  부탁을 받든 못 받든 교사는 기분이 나쁘다. 부탁을 받은 교사는 없던 정장을 사면서 ‘왜 그 때 거절 못했지?’, ‘내년에는 내가 안 하겠지!’ 하고 후회한다. 부탁을 못 받은 어떤 교사는 ‘이제 나도 한물 갔구나’ 자책하거나 ‘뭐가 부족하지?’라며 씁쓸해 한다. 며칠 전, 경기도의 모 중학교에서는 비슷한 나이의 여교사 2명이 ‘꽃순이’ 역할을 부탁받았다. 교무부장은 졸업식 당일 차림새를 훑어 보고 1명을 ‘초이스’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당하면 시간이 지나도 자꾸 생각난다. 나는 발령받은 첫 학교에서 신규교사 환영식 때 치마 정장을 안 입었다며 교무부장에게 따로 불려가서 한소리 들었다. 출근 전에 자꾸 옷차림을 점검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고, 이듬해 2월에 졸업식 꽃순이는 당연히 안 시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외양보다 중요한 것은 나이였다. 20대였던 그 때 졸업식 시상 보조를 맡았는데 이걸 부탁하는 부장교사가 나더러 ‘영광으로 알라’며 어깨를 툭 치는 것이다. 나이와 외모를 기준으로 남자 교장에게 대응하는 여교사를 선발하는 관례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걸까? 선발되는 순간, 부조리함을 알았으니 내 얼굴 표정은 일그러졌고 다시는 시상 보조를 맡지 않았다.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 풍경. 주인공은 누구인가? 사진 출처 - 필자  ‘성’이 매개가 되어 권력관계를 확인하고 억압이 관철되는 것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결혼 휴가를 받기 위해 교장에게 소식을 알리면 “임신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먼저 듣는다. 남교사들끼리 모이면 학교 내 여교사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고, 얼굴 성형 여부에 내기를 건다. 교육청 내 배구대회 응원이라며, 선수가 아닌 교사들도 회식에 동원되고 선수로 활약한 교사는 모두 앞에서 교장에게 러브샷을 제안받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거절도 못한다. 은밀한 성추행은 아닌지라 문제 제기하기도 뭣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시대라 초등학교에도 남교사가 많아졌다. 여교장은 예전에 당신이 당했던 희롱 방법을 성역할만 바꾸어 소비한다. 졸업식 시상 보조에 어리고 준수한 남교사가 선발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교장 옆자리에 앉아 물이라도 권해야 한다. 마초 같지 않으면, “너 게이냐?”라는 공격을 받는다. 여교사들은 나이가 들면 성차별적인 업무를 젊은 여교사에게 떠넘기기라도 하는데, 남교사들은 ‘남자이기 때문에‘ 힘든 업무를 더 맡는 경향이 있어서 억울해 한다. 성평등을 외치는 여교사들이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키보드로 분풀이한다.  교직 사회가 여초집단이라, 친여성적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초사회인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나 선정적인 장기 자랑 사태를 보라. 사회가 이렇게 성폭력적인데, 어느 직장인 들 오고가는 말과 눈빛이 안전할 수 없다. 최근 여자 검사들의 성희롱 경험 드러내기, 최영미 시인이 쓴 문단 내 ‘괴물’ 시인 이야기, 연극 연출가의 성추행 파문을 보며 교직의 #미투 사건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희롱으로 징계된 충북이나 인천의 교장 사례는, 당시 피해자의 용기와 저항으로 드러난 일부에 불과하다. 선후배, 업무 지시, 전보발령, 승진 점수, 성과급, 학년배정 등의 이유로 꽃순이들은 눈을 질끈 감는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착각한다. 성희롱은 지속된다, “저는 불편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방효신: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8-02-21 | hrights | 조회: 289 | 추천: 26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퇴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번이 두 번째 퇴사이다. 이번 퇴사는 이미 예정된 터였다. 유아휴직 대체근로로 약 10개월 기간을 계약하고 입사하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직장에서 평생직장이었으면 했던 막연한 꿈이 상실되어서 그런지, 두 번째 퇴사는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박사학위 논문을 순전히 내 힘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온전히 내 자신 뿐이다.  두 번째 직장은 첫 번째 직장과는 달리 회사 분위기가 좋았다. 수직적인 관료제는 커녕 대다수 임원들이 일반 직원들을 수평적으로 대한다. 또한 시차변형 출근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유연하여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측면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직장에서는 계속 일하고 싶었다. 학위 논문을 마치면 논문을 마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직장은 계속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을 무너뜨린 것은 지난 연말에 있었던 논문 심사와 관련 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내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안위만 급급하게 살피는 지도교수의 ‘태도’를 경험하면서, 논문을 끝내지 않으면 기약 없이 지도교수에게 질질 끌려 다닐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칼럼을 통해서 지도교수의 태도를 고발하고 더군다나 험담하겠다는 의도는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오히려 학풍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내가 겪은 일은 기록하여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왜 지도교수는 학생이 논문을 검토해달라고 지난해 5월부터 요청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을까? 그리고 항상 자신의 시간에만 맞춰서 그리고 자신의 일정에 따라 아무 소식도 없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지도교수 역할이 논문 심사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었더라면 미리 언질을 해주든지, 또는 당신이 1년 동안 연구년이기 때문에 지도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위임을 하든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행히 논문심사 위원회가 구성되고 심사 위원장님과 다른 심사위원님들의 배려로 지도교수 없이 논문 심사 날짜가 잡혔다. 지도교수가 연구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시간이 허무하게 날려버릴 뻔했다. 그런데, 막상 심사일정이 잡히니까 미국에 있는 지도교수는 심사 전날이 되어서야 코멘트를 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방학동안 펑펑 놀던 초등학생이 밀린 방학숙제를 처리하듯이. 그런 코멘트는 지도교수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도 보낼 수 있었던 거였다. 그나마 심사 당일에 받은 코멘트조차도 완전한 코멘트는 아니었다. 이렇게 기를 쓰고 종심을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연출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코멘트인가? 결국 작년에 딱 1번 코멘트를 받았다.  지난해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대학원생은 몇 달 전에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 대학원생이 그렇게라도 했을까 싶다. 그런데 이 대학원생의 지도교수는 질책이라도 했지. 나의 경우는 ‘방치’다. 하지만 학생이 끊임없이 요청하는 것에도 약 10개월 동안 반응하지 않다가 심사 일정이 잡히니까 바로 전날에 반응하는 지도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 코멘트는 일종의 ‘공격’인데, 나에게 전혀 ‘방어’할 수 있는 시간을 안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너 왜 이렇게 못 싸우니?’ 하지만 난 어디에서도 항변을 할 수 없었다. 실컷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구석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애초에 입학할 때 물어야했을 물음을 묻는다. 대학원은 과연 어떤 목적을 지닌 걸까? 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다. 학생은 대학원을 유지하고 교수 월급을 유지시키는 상품이 아니다. 적어도 학교 본연의 기능인 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닐까?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을 키워내는 기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교육기능을 토대로 박사과정 학생과 지도교수가 ‘연구 동료’가 되어서 지금 여기에 등장하는 전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는 토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박사과정 학생만 죽어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교수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몇몇 동료들에게 내가 지난 연말에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 ‘네가 참어’, ‘원래 그래’, ‘조심해. 괘씸죄에 걸려서 학위 못 받을 수 있어’, ‘원래 지도 교수는 지도 안 해’ 등의 대답이 일반적이다. 내가 기대하는 대학원과 현실의 격차가 참으로 크다. 옛말에 제자는 학문으로 낳은 자식이라 하지 않나? 하기야 요즘 세상에 학문하는 교수를 찾은 내가 바보 같다. 물론 순수 학문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해하고 실무적인 논문을 지향했지만, 지도교수는 실무적인 논문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10개월을 흘려보냈다. 지도교수는 학생이 원고를 써서 봐달라고 아무리 요청을 해도 묵묵부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지도교수가 전화하면 연말·연초에 바쁜 업무 다 제쳐두고서라도 전화를 받지 못하면 무례한 학생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코멘트를 단 1번이라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게 생각해야 하고 박사과정은 지도교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심리적 주눅이 깔린 분위기 속에서 내 안에서 자책감만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자책감이 무서운 사실은 애초에 내가 품었던 연구 열정이 사라지도록 만든다. 아이러니다. 대학원은 연구열정을 키워주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은가? 출근길에 우연히 찍은 사진 사진 출처 - 필자  퇴사가 한 달이 채 남지 않던 출근길에 뜻하지 않은 플랜카드를 보았다. 사실 어릴 적부터 무난하게 성장해오고 부모님도 나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셨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서 나의 일정이 휘둘리는 경험을 못한 탓일까? 그래, 내가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반성한다. 그동안 ‘갑질’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를 진심으로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갑질’이라는 말이 내 가슴을 깊게 후비고 지나간다. 학생의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안위만 급급하게 챙기는 지도교수의 ‘태도’가 갑질이다. 이 갑질은 비단 나의 지도교수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지도하는 사람이라면 주의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갑질은 노사관계와 더불어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있고, 대학원의 현장에서도 만연된 문화이다.  플랜카드를 만드신 을께서 보낸 메시지는 내 안에서 천둥처럼 울린다. 지도교수 앞에서 끽 소리 할 수 없는 을 중의 을, 나는 대학원생이다. 플랜카드에서 보여준 을이 보내준 용기에 힘입어 나도 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기로 한다. 갑질에 굴복하여 논문을 관두는 것이 아니라, 갑질과 싸워 승리하고 싶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오래된 격언을 믿으며 직장인이란 옷을 벗고 오로지 대학원생이 되어 펜을 들고 일상에 숨어있는 갑질과 싸우련다. 내가 겪은 갑질은 끝나야 하니까. 김시형 : 윤리를 지식이 아닌 ‘삶’으로 이해하는 대학원생
2018-02-20 | hrights | 조회: 44 | 추천: 4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1 “오늘까지만 일하는 걸로 하자. 고생했고 오늘까지 일한 돈 십 이만 원” 그렇게 나는 해고통보 하루 만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하는 신세가 됐다. 나의 항의에 사장은 더 이야기해봤자 서로 좋을 거 없다며 말을 줄였다. 해고 이유라도 듣고 싶어 떼를 쓰며 물었다. 그는 며칠 전 나의 항의를 이야기했다. 내 일은 치킨을 배달하는 것이었다. 두 달 동안 치킨을 배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은 오토바이가 고장 났다며 하루만 시급을 이천 원 덜 받고 다른 일을 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엔 배달을 할 오토바이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시킨 대로 일했다. 생각할수록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가게의 사정도 이해해요. 그래도 제게 양해라도 구해주셨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라고 조심스레 항의했다. 알고 보니 그게 해고의 이유였다. 화가 났고, 녹음기를 켰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학자금 대출과 그 이자를 갚으며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면 ‘군대도 갔다 온 자식’이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한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해고 이틀 후 사정을 설명하며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까지만 일을 할 수 없냐고 물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구직광고 사이트에 시급을 천 원 더 올려 새로운 배달원을 구하는 광고가 올라왔다. 부품이 된 기분이었다. 생애 첫 해고에 막막했다. 청년유니온이라는 단체에 도움을 구했다. 덕분에 단체의 노무사와 상담할 수 있었다. 그는 필요한 정보만을 충실히 전해줬다. 인터넷으로 임금체불진정을 넣었고 노동부의 조사를 받으러 갔다. 조사 후 “체불임금이 지급되더라도 처벌을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변하고 왔다. 나만 돈을 받고 없는 일로 만드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고 하루 전 출근을 지시한 문자 메시지, 녹취에 담긴 구두해고통보, 서면으로 된 해고예고가 없는 점들이 노동부 감독관에게 설득력이 있었나보다. 그의 조사와 압박에 사장은 내게 해고예고수당에 십만 원을 더 얹어 지급했다. 그저 내게 온 건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계좌이체 내역뿐이었다. 치킨집 사장과의 마지막 문자 사진 출처 - 필자 #2 “네가 정 원하면 노동부에 가서 받는 수밖에 없어” 치킨집 사장의 말이 아니다. 치킨집에서 해고된 후 새로 시작한 횟집 사장의 말이다. 사장은 장사가 되지 않아 인건비를 줄여야한다며 이주 후에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래서 “해고를 할 거면 최소 한 달 전에 말씀해주시거나 한 달 치 임금을 지급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니 노동부에 가라고 말했다. 나는 마가 끼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두 번째 해고통보를 받은 뒤 며칠 후, 치킨집 사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 상처를 짐작한다며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의 입장차이가 있는 것이고, 자신도 나 때문에 자신을 돌이켜 봤다며 용서의 미덕을 구했다. 사장이 말한 “미워할수록 나만 힘들어지더라”는 조언을 곱씹었다.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마음으로 법적 절차를 밞을수록, 나에게도 상대의 미움이 내게 위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다 문득, 아르바이트를 할 때 연중무휴 일만 하고 친구도 못 만나는 게 지친다며 일주일에 하루를 쉬겠다는 사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장의 맥락이 있지 않을까, 어렴풋하게 추측하기 시작했다. 가해자는 사과하고 피해자는 용서를 한다. 경험 속에 교훈을 얻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처럼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답을 알 수 없지만 사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가 얻었다는 교훈을 믿어보기로 했다. 막상 취하를 하니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사장에게 느끼던 미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노동의 가치, 약속의 이행, 법 준수,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다. 그 상식의 불이행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은 각자 얼마만큼의 피해를 볼까. 약자의 용서는 궁핍한 현실 때문에 강제된 것이 아닐까. 왜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는 걸까. 정답 없는 고민은 잠시 내 머리를 표류하다 이내 일상이라는 현실에 부유해갔다. 전국의 중년 사장들은 대부분 부모로서 살아가고, 높아지는 임대료와 노후 계획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테다. 반대로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청년들은 끼니, 대출을 고민하며 살아간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이는 풍경이 다름은 자명하다. 최소한의 상식과 법이 지켜지는 사회가 필요할 뿐이다. 나의 불편함이 상대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잠시 내가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것 아닐까. 그럴 때에 비로소 잘못, 사과 그리고 용서라는 불필요한 회복과정이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서진석 : 기자가 되기 위해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2018-02-07 | hrights | 조회: 192 | 추천: 7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해는 유난히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열심히 광장에 나가다 보니 새해가 밝았고, 몰아쳤던 정치적 사건들의 흐름이 일상의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인지 금세 한해가 지나갔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많은 비정상들이 조금씩 나아져가고 있다. 대통령은 비정규직으로 왜곡된 노동시장의 정상화를 이야기하고,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한 문제임을 반복해 강조한다. 일방적 합의로 국가에 의해 다시 폭력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국가는 사과했고, 그녀들을 정성으로 청와대에 모셨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얼어붙은 남과 북의 관계 개선도 시작되었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은 자신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1987>도 열풍을 일으키며 4.19 혁명에서 80년의 광주로, 87년의 광장에서 촛불광장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승리했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그날이 오면>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노래하던 ‘그날’에 이제 한발 다가서있는 것일까? 1980년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20대가 영화 <1987>의 주요 관객층이라는 고무적인 현상 이면에는 ‘88만원 세대’를 넘어 ‘77만원 세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N포 세대의 청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이면에는 호시탐탐 ‘성장’과 ‘효율성’을 무기로 반격을 노리는 경제 권력의 저항도 여전하다. OECD 최고의 자살률과 빈곤, 양극화의 문제는 사람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정당한 노력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절벽 앞에서 사람들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환상의 한탕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국가 권력은 달라졌을까? <1987>로 주목 받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같은 보안분실는 여전히 서울에만 5개, 전국적으로 43곳이 운영 중이다. 경찰은 잠시 엎드려 있지만, 대공수사권 이첩 등을 계기로 보안분실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검찰 개혁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끈끈한 카르텔을 넘어 검찰에 대한 개혁의 성과를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도 요원하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가짜 사무실까지 차렸다는 의혹을 받은 변 모 검사의 자살에 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는가. 한 식구의 죽음에 절절한 애도를 나타내고, 검찰총장은 연말에 맞춰 직접 납골당을 방문하며 검찰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사진출처 - Francesco Boneri, 성전의 정화(淨化), 1610-1615. 구글  우리 사회 앞에 놓여있는 과제는 이렇게 잠깐 언급해도 가볍지 않은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만 새로운 ‘그날’, 통일의 ‘그날’, 자유와 인권과 평등의 ‘그날’을 관성적으로 외치는 것은 앞선 죽음들과 치열했던 싸움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서준식 선생은 ‘광주인권상’을 제정하여 인권상을 국제적 사교도구로 활용하고, ‘명사님들의 호화판 잔치’가 되어 광주를 세계적인 ‘인권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선자들아. 인권을 앞세운 요란스러운 행사를 꾸미기 전에 먼저 광주 주민의 인권을 걱정하라. 먼저 광주교도소의 재소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아 내고 먼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발언하라. 거룩한 광주의 이름으로 인권을 팔아먹지 말라!”(인권하루소식, 2000년 5월 20일, <인권의 도시는 없다> 가운데, <서준식의 생각>, 야간비행, 2003, p.96에서 재인용)  이 말을 촛불 이후 정권을 교체했고 새로운 세계사적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고 자축하는 정치인들과 진보세력에게, 촛불을 예찬하는 대학의 교수들과 우리 스스로에게 돌려보자. 광주에서 세월호까지, 살아남은 ‘산 자들’이 안전한 ‘그날’, 정의로운 ‘그날’을 단지 팔아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습관적으로 실체도 없는 ‘그날’을 말하면서, ‘그날’을 파는 ‘산 자들’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8-01-17 | hrights | 조회: 230 | 추천: 4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학년말이다. 이 시기는 늘 정신없다. 쏟아지는 일에 지친 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보낸 지 오래되었다. 반 아이들과 나름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헤어지고 싶지만 생각뿐이다. 올해도 현대사를 제대로 수업하지 못했다. 종업식 날까지 허덕허덕 진도를 나가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이번 2학기에는 아이들에게 근현대 시기의 여러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도록 했기 때문에 중간 중간 맛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미래의 새싹답게 아이들은 교과서 내용이나 내 설명보다 훨씬 풍요로운 주제로 수업을 이끌어 주었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의 소식도 들려온다. 누구는 어느 대학 갔더라. 아쉽게 떨어졌다더라. 정시에 어느 학교를 지원한다더라. 직접 소식을 전해오는 아이도 있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친한 친구들끼리도 서로 입시 결과를 모르다가 다음 해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씁쓸한 얘기도 들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업 소식도 곧잘 전해졌는데, 최근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다. 사진 출처 - 필자  생각나는 아이들이 있다. ㄱ은 통통 튀고 배포가 컸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절대 흔들리지 않고 늘 긍정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해맑게 다가와 “쌤, 이건 왜 해야 해요? 안 하면 안돼요?”하고 물을 때는 귀엽기도 했다. 크면 자신의 일을 독립적이고 진취적으로 잘 해나갈 것이다. 친언니로 삼고 싶은 아이다.  ㄴ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와 떨어져 홀로 작은 방에 살면서 악바리처럼 일하고 공부했다. 중국어를 잘 하고 흥미로워하는 아이라서 중어중문학과에 아슬아슬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정말 기뻤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지난 이듬해 봄, 피자집 아르바이트 복장으로 학교에 왔다갔다고 들었다. 입금해야 할 첫 등록금에서 돈이 모자랐고, 어머니는 집에 돈이 없다고 그러셨단다. 순간 멍해졌다. 수능 후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 아이는 계속 피자집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아이다.  ㄷ은 고민이 많았다. 나도 잘 모르는 어려운 고전이나 문학작품을 즐겨 읽었다. 농담 삼아, 책 그만 읽고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했다. 박노자씨 글을 보고 흥미로워하기에 집에 있던 그분의 책을 몇 권 갖다 주었더니 좋아했다. 근현대사를 가르칠 때 사회주의에 대해 살짝 비판했더니 다가와 “쌤 우파지요?”라고 슬쩍 묻기도 했다. 누군가는 쉽게 다녔을 고등학교를 참 힘들게 고민하며 다녔다. 쑥쑥 잘 성장할 아이인데 대학에서는 그걸 모르고 자꾸 불합격의 딱지만 붙였다.  ㅁ은 집이 아주 멀었다. 혼자 떨어져 우리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누구보다 잘 적응했고 친구도 많았다. 말이 많지 않았다. 가끔 툭 던지는 말에 애정이 숨어 있기도, 가시가 돋쳐 있기도 했다. 그 해 우리 학교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ㅁ은 누구보다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그 겨울을 가장 힘들게 보낸 아이 중 하나가 그였다. 이듬해 가끔 만나 말을 걸면 씩 웃기만 했다. 나보다 큰 아이다.  학년말이다. 헤어짐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작년처럼 또 일처리만 하다가 급하게 헤어질 확률이 크다. 매년 새로 만나는 아이들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기억에 진하게 남는 아이도 있고, 스쳐 지나가는 아이도 있으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다. 그들 기억 속 나도 그럴 것이다. 바쁘게 헤어지는 것이 헛헛함을 덜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늘 그들을 응원한다. 어른으로서 그들에게 부끄러울 때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학교를 떠나 어느 순간 힘들고 좌절하더라도, 그 순간 한 번 더 힘내기를 바란다. 조예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
2018-01-10 | hrights | 조회: 214 | 추천: 6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택배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아무리 택배 물류량이 많은 추석 연휴에 배송시켰다하더라도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나? 결국 추석 연휴 코앞에 도착했다는 그 택배는, 도착했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책이었다.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내 책을 가져갔다는 의심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동안 한 주에 1~2건씩 택배로 책을 받아보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문자메시지로 ‘몇 시 경에 택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만 남긴 채 그 후 아무 소식이 없다. 기다림 끝에 약 3주가 지나서야 택배기사님께 택배가 사라졌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대뜸 무인택배함이 아니라 바닥에 두고 가셨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실까?  인권연대에 칼럼을 쓰기 전에, 아니면 인권 교육을 받기 전에 택배아저씨의 행동에 화가 났을 법 했다. 잠시 화가 나긴 했다. 그래서 택배 회사에 불편 신고를 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소식은 없다. 항상 익숙하게 받아오던 택배가 사라지면서 그제서야 기숙사에서 택배들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의 택배실은 ‘무인’으로 운영한다. 택배가 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택배 예상 도착 시간이 문자로 전송된다. 그럼 직장에 있는 나는 문자를 보고서 언제쯤 택배가 도착할지 가늠한다. 그리고 또 문자가 온다. 택배가 도착하면 무인택배함에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비밀번호’도 문자로 전송된다. 바로 이 비밀번호 메시지를 받아야 정말로 택배가 도착한 것이다. 하필 그날 택배 기사님은 무인택배함이 아닌 바닥에 두고 가셨다. 택배는 바닥에 방치된 채로 긴긴 추석연휴가 지나갔다. 나는 ‘비밀번호’ 메시지가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왜 택배 기사님이 바닥에 두고 가셨지? 문자 메시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는 결국 그 기다리는 시간(약 3주) 동안 방치된 택배를 누군가 그냥 가져갔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택배를 찾으러 여러 번 무인 택배실에 다녀오면서 느낀 사실은 무인 택배함은 택배를 받는 학생과 택배를 관리해야 하는 기숙사만 좋을 뿐 정작 모든 노동력은 택배 기사님의 몫으로 떠넘기는 구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택배를 일일이 무인택배함에 입력하여 넣는 수고를 하고 계셨다.  속상한 일을 오래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나 같은 문제를 겪는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닌 모양이다. 어느 날 기숙사에서 택배를 관리하는 담당자 업무를 맡을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무인 택배실 앞에 사진과 같은 메모판이 생겼다. 참 오랜만에 보는 손글씨들이다. 처음에 무인 택배실을 봤을 때, 세상에 이런 택배실도 있다면서 감탄을 마지않았다. <무인 택배실> 입구에 마련 된 메모판 사진 출처 - 필자  과연 무인시스템 도입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일까? 이제는 하루종일 ‘인간’을 만나지 않고도 스마트폰 하나로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는 것만 같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첨단 디지털 시스템들이 생활 속에 도입되는 와중에 뜻하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문득 생겨난 손글씨 메모판을 보면서 첨단 무인시스템 속에서도 꼼지락 거리며 살아있는 인간의 향기를 느끼는 것 같아 안도한다. 그나저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택배는!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2017-12-20 | hrights | 조회: 244 | 추천: 7
방효신/ 회원칼럼니스트 초등학교 교실에서 급식실이나 강당으로 이동할 때, 아이들은 복도에 두 줄로 선다. 이 때 선착순이냐, 출석번호 순이냐, 키 순서냐 하는 것으로 따지고, 서로에게 "뒤로 가라" 말하고 담임 교사에게 "저 어디 서요?" 묻고. 이렇게 줄서는 것 자체가 싫어서 줄 밖에 서 있기도 한다. 교사마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거나 위 3가지를 혼용하는데, 학년과 담임이 바뀌어도 똑같은 기준이 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이다. 일 년 동안 바뀌지 않을 기준일테다.  작년 이맘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교사 생활 12년 만에 남녀 구분 없이 준비되는 대로 두 줄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은 이 방침에 적응하기까지 반 년이 더 걸렸다. 특정 시간에 다른 교사가 지도할 때, 성별을 구분짓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렇게, 여자는 저렇게 하라는 지시가 종종 있다. 해당 교사가 학생 이름을 못 외웠거나,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가 목적이라면 남녀 구분은 쉽게 적용된다. NEIS라는 반별 인적사항 등록에 출석번호가 1번부터 남자, 51번부터 여자인 것도 한 몫 한다. 어제 전교생 음악발표회에서 반 별로 연주하고 관람하는 시간에도, 우리 반은 남녀 구분 없이 도착하는 대로 앉았다. 어느 반이 연주한 뒤 무대에서 내려가는 동안, 이전 반은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옆 줄에 앉았던 이전 반 아이들은 '원래' 자기 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남자 줄을 찾고, 키가 크면 뒤에 앉으라고 했으니 철수 뒤에 영식이, 이런 식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제 때 앉지 못한다. 비효율적인 성별 구분이라도,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 걸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성 친구보다 동성 친구 옆에 앉으려 한다. 그 이유는 경험이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이성이 있어도, 옆자리에 앉으면 "너네 사귀냐?"고 놀림 받을 수 있어서 피하는 게 상식이다. 교사들이 굳이 남녀로 짝지어 앉히거나, 줄을 세우는 이유가 뭘까? 실은 '지금까지 그래와서'겠다.  사회 교과서 2단원 제재 중 양성평등에 대해 수업하면서 물었다. 박물관 앞마당에서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 아이의 즉석 제안이 있었다. "여자 대 남자로 대결하자!" 사진 출처- 필자  "내가 여자구나 또는 남자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어?"  (이하 아이들) "화장실 갈 때요." "제 몸을 보잖아요, 그럼 제가 남자인 걸 알겠어요." "앉아서 볼 일 봐요." "수영장 갔을 때, 여자는 저 쪽 가라고 했어요." "선생님, 근데 왜 남자는 치마 못 입어요?" "야, 입어도 돼." "아무도 안 입는데?" "남자는 왜 머리 못 길러요? 저도 머리 기르고 싶은데, 엄마가 자르래요." "아, 군대 가기 싫다! 군대 가면 머리 다 깎아야 돼." "저는 머리 자르고 싶은데, 여자는 머리 길어야 예쁘대요." "근데 우리 중학교 때 상명여중 가죠?" "중학교 가면 교복입어야 돼. 치마 입던데." "남자들은 청운중 가."  성별 이분법으로 가르쳐서, 이 사회에 일찍 적응시키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한국은 성별 구분이 차고 넘친다. 성별을 구분지어 말하는 분위기일수록, 남자답게 여자답게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그 말을 듣는 남녀의(여남의) 스트레스도 높을 것이다. '~답게' 라는 말이 죄여오는 부담감을 생각해보라. (예: 선생답게, 학생답게, 가장답게, 첫째답게) 한국은 성평등지수  118위인 나라(세계 144개국 중,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11.1. 발표) 이다. 여자가 여자답게 살아도 취직도 잘 되고, 월급도 똑같이 받고, 임신해도 직위를 유지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해 부서 회식을 주도해야 하거나, 승진을 포기한 못난 놈 취급 안 받으려고 육아 휴직을 1개월도 못 써본다면 과연 누구 좋으라고 사는 세상일까? 주어진 성별에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해도,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한국. 2018년에는 성별 구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성별과 관계없이 행동하고 생각해도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방효신: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7-12-13 | hrights | 조회: 167 | 추천: 10
박용석 /회원 칼럼니스트  2014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태어나 25톤 덤프트럭을 처음 탔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있는 현장에 몰래 들어가 이 차에서 저 차로 옮겨 타며 이야기를 들었다. 새내기 노동조합 상근자가 조합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직접 보고 들으며 배우라는 배려였다. 1억 원이 넘는 비싼 건설기계장비지만, 움푹 파인 현장을 다닐 때는 차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이 길을 60km가 넘게 달리라고 해, 현장에선 40km를 못 넘도록 하는 게 규정인데 그렇게 일하면 바로 아웃이야. 일하다 보면 허리가 다 나가. 저것 봐, 빨리 안 간다고 뒤에서 하이빔 쏴 대는 거. 이런 거 바꿔야 돼”  “여기는 원래 신호수가 있어야 되는데, 다 인건비잖아. 불법인지 알면서도 안 쓰는 거야. 저기 저 전봇대랑 전선엔 위험 표지판이 있어야 된다고. 봐봐 없잖아. 얼마 전에 저기에 덤프가 걸려 전봇대가 넘어갔거든, 그런데 사업자라고 우리 보고 다 책임지라는 거야”  “내가 사실 차를 두 대 굴려, 노동조합 기조에는 안 맞지. 그런데 어떻게 해. 차 할부금 갚고 보험금 내고, 타이어 한두 짝 갈고 나면 다달이 적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캐피탈 할부로 한 대를 더 사서 기사 고용해 태우는데, 그렇게 하고도 월급쟁이 한 달 월급이 안 나올 때가 많아”  “지난주에 내리 비 왔잖아. 비 오면 우린 죽어나는 거야. 하루하루 할부금은 나가는데, 비와서 일 못하면 돈도 없어. 현장 오기 전에 새벽에 탕뛰기라도 한 번 더 나갈 수밖에 없는 거야. 가면 새벽 4시에 도착했는데도 차들이 수 십대 줄서 있어. 나도 오늘은 허탕 쳤어”  “4대강 때 운전대 잡고 죽은 사람 얘기 들어봤지. 갑자기 일이 생기니까 무리하게 할부 부어서 두 대 세 대 차만 늘려놓고, 죽어라 해봤자 돈이 나한테 스쳐가기만 하는 거야. 그런데 일단 눈앞에 돈은 왔다 갔다 하잖아. 그러니 끊지를 못해. 빚만 잔뜩 쌓이는데. 빚이 쌓이니까 더 벌어야 되고. 그렇게 12시간, 13시간, 15시간 계속 일만하다, 운전대 잡고 잠깐 눈 감았는데 평생 못 일어나는 거지. 남 얘기가 아니야”  노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하지만 직접 목격한 현장은 막막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아니, 현장에는 문제만 가득했다. 기본적인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무법천지 건설현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결을 하긴 할 수 있을지, 답이 있기는 할지 알 수 없었다. 거대한 산 같은 흙더미와, 그보다 더 거대한 문제들 앞에 나는 나약하고 초라했다.  “이제 뭘 해야 될지 감이 좀 오냐?” 조금은 껄렁한 말투가 툭하고 날아왔었다. 그때 내가 무어라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한심하게 우물쭈물했을 게다. 한때 노동조합 사무처장까지 했던 조합원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수더분하다 못해 헐렁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시간이 지나 다시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됐다.  생각해보니 참 얄미운 사람이다. 본부에서 쏘는 회식이니 수석부위원장님께서 오셔서 좋은 말씀 한마디 해주고 소주 한잔 하고 가라했건만 기어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한창이던 11월 11일 밤 11시, 국회 앞 광고탑 위로 출근해버렸다. 전야제 노숙농성장에서 화들짝 깨어 그 광고탑을 지키러 가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 사진출처 - 노동과 세계  반갑지 않은 함박눈이 내린다. 얄미운 그 사람에게 가져갈 김장 김치를 버무리는 손이 바빠진다. 내일 저녁에는 이곳저곳 십시일반한 사람들이 광고탑 위에 있는 그에게, 그리고 그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밥을 지어주겠다고 광고탑 아래로 모이기로 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은 노래로,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시 쓰는 사람은 시로, 밥 짓는 사람은 밥으로 함께 하겠다 한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현장에 정말 답이 있을지. 전 조합원이 똘똘 뭉치고, 조합원이 아니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잠시나마 현장을 멈추는 진짜 총파업이 될 수 있을지. 그래서 하늘로 출근한 사람들을 구해 올 수 있을지를. 모르겠지만 얄미운 그가 가르쳐 준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했던. 당장 내일 먹일 김장 김치는 소중히 통에 담고, 그와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졸고일지라도 한 자라도 더 적어내고, 총파업 그날엔 한명이라도 더 붙들고 가야 한다. 이영철 아저씨 안전하게 하늘 아래로 퇴근시키고 소주 한잔 따라주러, 11월 28일 국회로 가야 한다. ※ 덧: 이 글은 11월 23일 밤에 적었습니다. 11월 24일 밤에는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연대 문화제가 진행되고, 11월 28일에는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총파업을 합니다. 박용석 : 전국건설노동조합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조직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11-27 | hrights | 조회: 249 | 추천: 8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경찰 되시려고요?”, “동국대 다니세요?”  경찰행정학과를 다닌다고 소개하면 돌아오는 질문이다. 심리학과 학생들이 프로이트도 못할 심리분석을 초면에 요구 받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가 다니는 학교는 경찰 실무나 법 지식만큼 범죄학을 중요하게 다룬다. 범죄학은 범죄의 원인을 이루는 사회 경제적 환경, 개인의 유전적 특징 그리고 심리 상태를 분석한다. 범죄학과 더불어 경찰, 검찰, 법원 그리고 교정에 관한 제도와 체계까지 다루니, 경찰행정학은 상당히 포괄적인 학문이다.  경찰이 되려고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학과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다. 그럴 때면 사회학의 한 분야로 범죄학을 받아들이고, 기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을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성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동기부여가 잘 된다. 더 나아가 범죄학으로 현재 사회를 해석하려하면, 경찰행정학은 꽤나 내 적성에 맞는 학문이 된다.  소년사법, 비교경찰제도, 피해자학, 지역사회경찰론 등의 과목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막막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현실에 대입하려는 목적을 갖고 듣게 되자, 책을 집을 때 ‘팍팍’ 내뿜던 한숨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소년법 폐지’와 ‘사형제 부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애완견의 목줄을 채우지 않는 주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도 새로운 관심사다. 안양 초등생 살인범 정씨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형제 부활 논란을 접하며 수업 내용과 현실이 상당히 다름을 느낀다. “살인마는 이미 인간이 아니야”라는 분노와 적의에 “맞아. 쓰레기 같은 놈들이 많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오랜 기간 쌓여온 학문적 결과물을 생각하면 “근데 미국도 강한 처벌정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보호관찰 정책을 늘리고 있는데?”라고 갸우뚱거리게 된다.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에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죠”라고 언론학 교양 수업 때 들은 교수의 말은 이제는 틀린 말이 됐다. 사람을 문 개의 주인과 개에게 물린 피해자가 화제성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위 ‘개 목줄 논란’에서 비난의 화력이 목줄을 채우지 않는 견주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를 보고도 번지수가 틀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양한 이론과 경험에 따르면, 강한 처벌보다 검거율을 늘릴 때 범죄와 비행이 더 크게 감소한다. 그럼에도 법 집행의 책임자인 정부는 충분한 감시와 처벌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반려견에게 목줄을 매지 않는 주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을 어기고 목줄을 채우지 않은 주인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쉽고 자극적인 것을 취하고, 어렵고 복잡한 건 멀리하는 것 같다. 때문에 잔혹한 범죄 기사에 더 많은 손이 가고, 범죄의 원인에도 “사이코패스니까”처럼 간단한 판결을 내리는 듯하다. 그렇게 거리를 두면 범죄자는 나와는 다른 존재로 선을 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분노가 범죄를 해결해주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시원하게 욕지거리 몇 마디 뱉는 것도 당장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 번쯤 비행과 범죄의 동기가 나에게는 없는지, 사람보다 제도가 더 잘못된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서진석 : 경찰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입니다. 정의가 뭔지 잘 모르기에 정의를 배우고 있습니다.
2017-11-22 | hrights | 조회: 63 | 추천: 1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며칠 전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습니다. 훈련장은 최신식으로 개선되어 있더군요. 최신식 전자알림판이 각 훈련교장마다 설치되어 있고, 동영상 시청과 간단한 실습을 하며 훈련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입소할 때 나눠준 전자팔찌로는 훈련 수료 여부가 각 훈련 종료 즉시 통보되었습니다. ‘전자팔찌로 각 예비군의 위치가 바로 파악 가능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훈련들을 빠짐없이 성실하게 수료하도록 예비군을 지원하는 첨단 시스템’이라고 교관이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서영교 의원께서 예비군 개혁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을 접했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예비군 처우 개선을 위한 실질적 훈련비 지급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예비군을 위험한 시기를 대비한 정예군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하여 제대로 된 무기와 장비를 제공하고, 훈련을 개선하자고 강하게 주장하셨지요.   한편으로는 예비군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예비군 기강 강화’에 관한 법안도 함께 준비하셨습니다. 불성실한 훈련과 지휘관에 대한 반항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대대장에게 대들었던 예비군이 최근 처벌된 사건을 염두에 두셨지요. 하지만, 너무나 관성적인 대응으로 보입니다. 마치 ‘여중생 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너도 나도 청소년보호법 폐지를 외쳤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저 사건이 벌어진 뒤 강력한 처벌만 말하는 것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보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임무 아닐까요?   예비군 제도는 ‘1.21 사태’라고 불리는 ‘김신조 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안보드라이브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주민등록증, 주민등록번호제도와 함께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것입니다. 정작 전쟁 직후인 50년대, 60년대에는 필요치 않았던 예비군이 1968년에 창설되었고, 그에 따른 여러 훈련과 제도들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예비군이 과연 필요한가? ‘무장공비’라는 희대의 사건과 함께 탄생해 기형적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왔던 예비군 제도의 본질에 대해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군은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전투형, 야전형 군대를 목표로 개혁 중입니다. 예비군 제도도 이에 발맞춰 실제 전투와 같은 전자 서바이벌 게임 등을 훈련에 추가해 실질적 훈련의 개선이라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21세기의 전투가 시가전, 고지전, 백병전으로 이뤄지는지 의문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수많은 포와 대량살상무기로 이뤄질 것이 자명한데 백병전을 준비하며 전투형 개혁을 한다? 그것이 과연 국방개혁의 과제일 수 있는지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의원님의 역할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도 정치인의 소중한 덕목 중 하나일 테니 말입니다.   마침 올해 국군의 날을 목표로 했던 동원전력사령부 창설 작업이 10여 일을 앞두고, 중단되었습니다. 이미 314명에 달해 미 육군의 장군 수보다도 많은 우리 군대의 장군 수를 더 늘리려는 군의 욕망에 새 정권이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권에서 예비군 개혁에 관한 이슈들이 재검토되는 지금이 의원님께서 적절한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타이밍이라 생각됩니다.   플라톤은 존경 받는 정치인을 위한 덕목으로 지혜와 절제, 그리고 용기를 꼽았습니다. 예비군 지원의 현실화에 관심을 가지고 말씀해주시는 것도 좋지만, 예비군 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추진하는 용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고 싶습니다. ‘예비군 기강 강화’ 같은 주장은 절제하고, ‘예비군 제도 폐지’와 같은, 이제는 말할 수 있고 반드시 누군가 말해야 하는, 새롭고 명확한 전망을 만들어낼 지혜와 용기를 기대합니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7-11-15 | hrights | 조회: 62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