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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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시형, 박용석, 방효신, 서동기, 서진석, 정석완, 조동순, 조예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대학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오랫동안 못 본 가족들을, 취업하면 또 언제 볼까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또, 바닷가에서 제철을 맞은 방어도 먹으며 식도락 여행도 겸할 심산이었다. 테마도 있고, 먹는 맛도 있고, 반갑게 만날 가족도 있으니 값진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부산을 시작으로 순천, 광주를 거쳐 돌아오는 계획을 짰다. #부산  첫째 사촌형은 결혼 전보다 살이 많이 불어 있었다. 형은 갓 돌이 지난 조카를 처음으로 보여줬다. 자신을 닮아 장군감이라고 이야기하는 형의 얼굴엔 봄꽃처럼 밝고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들자랑이 끝나자 형은 방어가 제철이라며 집근처 횟집으로 안내했다. 활어회와 마시는 술에 취하는 줄도 모르게 술병은 쌓여만 갔다. 그러다 최고의 이적료를 받고 이적한 축구선수 호날두에 자신을 비유하며, 새 직장을 자랑하던 형의 안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갓 아빠가 됐는데, 왜 할아버지 역할까지 해야 할까”. 대학 졸업 직후 대기업에 입사한 형은 돌아가신 큰아빠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형이 처음으로 푸념을 뱉어냈다. 그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항상 당당하고 모든 걸 아는 것 같아 보였던 형의 처진 어깨가 안쓰러웠다. 다음 날 새벽출근인 형을 위해 자리를 일찍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조카를 재우고 있던 형수의 몰골은 무너지기 직전이었지만 조카를 보는 눈만은 반짝였다. 마치 형과 형수의 삶은 조카의 그림자 같았다. #순천  갓 취업한 둘째 사촌형을 만났다. 형은 호기롭게 “첫 월급 탔는데 먹고 싶은 거 다 먹자”며 위대(大)한 나의 식성을 자극했다. 나는 순천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 집을 찾아내고 말았다. 메뉴판을 보고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도 취업하면 한 턱 내지, 뭐’라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죄책감을 물리쳤다. 고기를 먹으며 사촌형의 첫 직장생활을 물어봤다. “취업하니깐 좋아?”. 사촌형은 말없이 소주만 삼켰다. 약간은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사촌형의 입이 열렸다. “내가 이러려고 취직한 건지 모르겠다”. 사정을 들어보니 형은 ‘쓰레기(담당)’로 불리고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형의 첫 업무는 쓰레기 관련 민원처리였다. 매일같이 ‘쓰레기’로 불리며 쓰레기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게 형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기대했던 직장생활과 너무 달라서 괴롭다고 했다. 형의 긴 수험생활의 끝이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술을 잘 못 먹는 형은 그날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웃음인지 슬픔인지를 건네며 내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보니깐 좋다, 진석아” #광주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잠시 작은아빠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의 모습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작은아빠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항상 교통비 이상의 ‘차비’를 주시며 별로 잘날 것도 없는 조카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준다. 그런 작은아빠는 사실 정만큼이나 아픔도 많다. 술에 취할 때면 종종 불쑥 화를 내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오래 다닌 직장에서 잘리고, 외숙모가 떠나자 작은아빠는 지금처럼 약해져버렸다. 그는 항상 웃어주며 “우리 멋진 조카”를 외쳤었는데. 지금은 많이 야위었다. 아마도 그래서 비싼 옷과 세련된 머리스타일을 고집하는 지도 모른다. 광주를 떠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행 중 처음으로 후회했다. 차마 드리지 못한, “작은아빠, 건강 생각하셔서 약주 좀 줄이셔요”라는 말이 허공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한 명씩 떠올랐다. 새로운 가족을 꾸려나가는 형,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형, 세월의 풍파로 생기를 잃어가는 작은 아빠. 가족은 무엇일까. 창가에 비친 내 얼굴에 질문을 던지니, 가족들의 웃음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봐서 좋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차비로 써라, 그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가족을 꾸리는 건 삶의 주어가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과정일 것이다. 나의 행복이 최우선이었던 모습은 과거로 남겨두고, 나는 잠시 희생되기도 한다. 자식의 웃음, 동생의 성장, 형의 아픔이 한 데 어우러져 우리라는 단위로 공유된다. 못난 모습에도 잠시 기다려주고, 힘들 때 위로를 건네고, 맛있는 걸 함께 먹으며 같은 시간을 보낸다. 여기엔 어떤 조건도 부담감도 없다. 그저 가족이기만 하면 된다. 가족이 주는 조건 없는 위로는 하루를 버티고 새로운 날을 만들어갈 힘을 준다. 바로 이런 힘이 ‘비혼’과 다양한 가족형태가 등장 하는 사회 속에서도, ‘가족’을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로 유지시키는 게 아닐까. 비록 가족이라는 이름과 형태가 바뀔 지라도 말이다. 여행과 가족의 의미를 정리하니, 만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가족들이 벌써부터 보고 싶어진다. 서진석 : 기자가 되기 위해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2018-04-10 | hrights | 조회: 149 | 추천: 4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나도 모르게 내 이름으로 가입된 펀드상품이 있었다. 한참 펀드 붐이 불던 2007년, TV에선 <경제야 놀자>와 같은 금융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다. 투자가 어떻고, 펀드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지방에 살던 부모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당시 각종 언론에서는 투자를 해야 성공한다고, 남들 다하는 금융상품에 함께 하지 않으면 멍청한 것이라고 부채질을 해댔다. 그럴 듯한 말들에 혹한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이름으로 펀드상품에 가입하셨다.  하지만 한 달에 5만원씩 85만원을 적립했을 때,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반 토막이 나고 연일 깎여나가는 잔고에 깜짝 놀라 돈을 더 넣지는 못하셨지만 허탈한 나머지 쌈지에 가지고 계시던 통장을, 어머니는 10년 만에 꺼내어 등록금에 보태라고 건네셨던 것이다. 가입되어 있는 상품의 이름은 <삼성그룹적립식증권투자신탁1호>. 막연하게 투자처를 찾던 어머니는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한 삼성그룹 펀드에 가입을 해두셨다.  그런데 해지 신청서를 작성한 타이밍이 참 묘했다. 지난 2월 2일, 금요일이었다. 은행 직원은 주말을 끼고 영업일을 기준으로 월요일이 지나, 2월 6일 화요일 주식시장의 종가를 기준으로 최종 환급금액을 산정해준다고 설명했다. 별 생각 없이 은행을 나왔는데 괜스레 삼성의 주가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삼일 뒤인 월요일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 필자   ‘이재용이 월요일에 석방되면 화요일 삼성 주식이 더 오르려나?’   ‘이재용이 풀려나면 주식이 좀 뛰어서 한 3만원은 더 받지 않을까?’  나는 그날 저녁부터 직원의 권유로 설치한 어플리케이션으로 금액을 들춰보면서 펀드 환급금을 많이 받는 데 도움이 되는 판결은 무엇일지를 곰곰이 따지고 있었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김용철 씨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분노하고, ‘삼성공화국’을 비판하는 기사들과 칼럼에 공감하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적극 도왔던 삼성의 행태에 분노하고,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삼성도 공범이다’를 외치던 나는 어머니가 등록금에 보태라고 10년 만에 꺼내주신 삼성펀드 통장을 손에 들고 이재용의 석방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재용의 석방이 주가를 올려 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왜인지 나의 논리회로는 이재용이 석방되면 삼성에 좋은 일이고, 주식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고, 펀드 환급금에도 좋은 영향이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참 소박하고 후진 생각이다. 굵직한 재판이 풍년인 요즘 판결 소식을 들으면 이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대부분 피식 부끄럽고 마는데, 가끔 이 기억이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8-04-04 | hrights | 조회: 71 | 추천: 7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꽃피는 3월이 다가온다. 학생들도 그렇겠지만 교사들도 3월이 두렵다. 올해는 어떤 나날이 펼쳐질까. 수월하게 지나가는 해가 있고, 뭐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 해가 있다. 무사한 한 해를 기원하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각오를 하며 집을 나서는데 여전히 바람은 쌩하니 불고 봄은 멀리 있는 듯하다.  작년에 여기저기 몸이 아팠다. 예전부터 약했거나 꾸준히 살폈던 부분도 있었지만, 건강검진 결과 자궁 쪽이 좋지 않다고 나왔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산부인과에 들렀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겠지만 산부인과를 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굴욕의자에서 검진 받을 때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진료실에서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다. 상태를 설명하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주 2~3회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조신하게 앉아 있지 않으면 혼날 것 같았다.  진료실을 나와 병원의 진료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평일 오후 6시 진료 마감, 5시까지는 접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검진 결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앞으로 진료 받을 생각을 하니 더 복잡해졌다. 수업 시간표를 확인했다. 화요일에 7교시 수업이 없으니, 화요일에 병원에 가는 것이 낫겠다. 5시까지 병원에 도착하려면 수업을 바꿔야 하는데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조퇴할 때 무슨 이유를 대야 할까. 종례와 청소는 누구에게 부탁할까.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학교는 말이 빠른 곳이다. 2층 교장실에서 한 얘기가 5층 교무실까지 퍼지는 데 30분이 안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나도 모르는 학교 이야기를 우리 반 아이들이 시시콜콜 먼저 알고 있기도 한다. 걱정을 빙자하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싫었다. 나의 조퇴 사유는 치과 진료, 은행 업무, 가족 간병 등으로 매번 바뀌었다. 사람 좋은 남자 학년부장은 내가 말하는 여러 핑계를 그냥 넘어가 주었고, 자주 조퇴를 달았는데도 윗분들은 내 조퇴에 큰 관심이 없었다. 반 아이들은 내가 없으니 청소를 더 잘하고 더 밝은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필자  병원에 온 환자들은 20대에서 60대까지 나이가 다양해 보였다. 큰 병원으로 옮긴다며 진료실을 나서며 눈물짓는 어느 환자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다. 아프다는 판정을 받으니 배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화장실도 자주 갔다. 괜히 마음이 우울해졌다. 별일 아닌데도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내가 자주 일찍 나가는 것을 걱정한 몇몇 여선생님들에게만 사실을 공유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인터넷으로 검색한 무시무시한 병명들을 대충 다 들은 것 같았다. 공통점은 대부분 나처럼 여러 핑계를 대가며 혼자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서 수업을 하는 교사들에게 자궁 질환이 흔한 건 당연한데도 산부인과 검진을 꺼려, 1년에 한 번씩 받아야 하는 자궁경부암 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동료들도 여럿이었다.  10년째 학생들의 선호 1위 직업이라는 교사들조차 아프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이 세상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아픈 것을 참고 화장실을 못 가며 일을 하고 있을까 짐작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며 병원은 다닐 수 있을까. 몸이 아픈 것을 자기 관리의 문제로 치부하지는 않을까. 당장 학교에서도 몸이 아파 조퇴하고 싶다는 학생에게 일단 참아보라고 하지 않는가.  미투(#MeToo) 운동이 한창이다. 나도 아프다, 나도 사람이다, 라는 외침이다. 유난히 뉴스를 많이 봤던 작년처럼 세상에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사람들이 덜 아팠으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도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다. 3월이 온다. 봄이 온다.   조예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
2018-03-06 | hrights | 조회: 232 | 추천: 6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2월은 졸업 시즌이다. 요새는 학생 대표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단상에 올라가서 졸업장을 받는 편이다. 취지는 좋으나 졸업식을 준비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간단치 않은 성 정치가 펼쳐진다. 사회에 비해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학교에서 자신의 직급과 나이, 성별을 확인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일반 교사가 긴 탁상에 쌓인 졸업장을 하나씩 챙겨서 교장에게 건넨다. 교장은 전달받은 졸업장을 다시 학생에게 준다. 졸업장 내용은 단상 아래에 있는 부장 교사가 마이크를 잡고 대신 읽는다. 교장 혼자 해도 될 일을 세 명이 나눠서 진행하는 모습은 흡사 행위 예술인가 싶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꽃순이’가 누구였는지 뒷담화가 꼭 있다. 학교에서 가장 젊고 예쁜 여교사가 남교장 옆에 서서 졸업장이나 꽃다발 건네기, 즉 시상 보조를 한다. 졸업식 행사를 주관하는 교무부장은 업무 지시를 빙자하여 ‘꽃순이’ 역할을 ‘어떤’ 교사에게 미리 부탁한다.  부탁을 받든 못 받든 교사는 기분이 나쁘다. 부탁을 받은 교사는 없던 정장을 사면서 ‘왜 그 때 거절 못했지?’, ‘내년에는 내가 안 하겠지!’ 하고 후회한다. 부탁을 못 받은 어떤 교사는 ‘이제 나도 한물 갔구나’ 자책하거나 ‘뭐가 부족하지?’라며 씁쓸해 한다. 며칠 전, 경기도의 모 중학교에서는 비슷한 나이의 여교사 2명이 ‘꽃순이’ 역할을 부탁받았다. 교무부장은 졸업식 당일 차림새를 훑어 보고 1명을 ‘초이스’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당하면 시간이 지나도 자꾸 생각난다. 나는 발령받은 첫 학교에서 신규교사 환영식 때 치마 정장을 안 입었다며 교무부장에게 따로 불려가서 한소리 들었다. 출근 전에 자꾸 옷차림을 점검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고, 이듬해 2월에 졸업식 꽃순이는 당연히 안 시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외양보다 중요한 것은 나이였다. 20대였던 그 때 졸업식 시상 보조를 맡았는데 이걸 부탁하는 부장교사가 나더러 ‘영광으로 알라’며 어깨를 툭 치는 것이다. 나이와 외모를 기준으로 남자 교장에게 대응하는 여교사를 선발하는 관례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걸까? 선발되는 순간, 부조리함을 알았으니 내 얼굴 표정은 일그러졌고 다시는 시상 보조를 맡지 않았다.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 풍경. 주인공은 누구인가? 사진 출처 - 필자  ‘성’이 매개가 되어 권력관계를 확인하고 억압이 관철되는 것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결혼 휴가를 받기 위해 교장에게 소식을 알리면 “임신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먼저 듣는다. 남교사들끼리 모이면 학교 내 여교사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고, 얼굴 성형 여부에 내기를 건다. 교육청 내 배구대회 응원이라며, 선수가 아닌 교사들도 회식에 동원되고 선수로 활약한 교사는 모두 앞에서 교장에게 러브샷을 제안받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거절도 못한다. 은밀한 성추행은 아닌지라 문제 제기하기도 뭣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시대라 초등학교에도 남교사가 많아졌다. 여교장은 예전에 당신이 당했던 희롱 방법을 성역할만 바꾸어 소비한다. 졸업식 시상 보조에 어리고 준수한 남교사가 선발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교장 옆자리에 앉아 물이라도 권해야 한다. 마초 같지 않으면, “너 게이냐?”라는 공격을 받는다. 여교사들은 나이가 들면 성차별적인 업무를 젊은 여교사에게 떠넘기기라도 하는데, 남교사들은 ‘남자이기 때문에‘ 힘든 업무를 더 맡는 경향이 있어서 억울해 한다. 성평등을 외치는 여교사들이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키보드로 분풀이한다.  교직 사회가 여초집단이라, 친여성적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초사회인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나 선정적인 장기 자랑 사태를 보라. 사회가 이렇게 성폭력적인데, 어느 직장인 들 오고가는 말과 눈빛이 안전할 수 없다. 최근 여자 검사들의 성희롱 경험 드러내기, 최영미 시인이 쓴 문단 내 ‘괴물’ 시인 이야기, 연극 연출가의 성추행 파문을 보며 교직의 #미투 사건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희롱으로 징계된 충북이나 인천의 교장 사례는, 당시 피해자의 용기와 저항으로 드러난 일부에 불과하다. 선후배, 업무 지시, 전보발령, 승진 점수, 성과급, 학년배정 등의 이유로 꽃순이들은 눈을 질끈 감는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착각한다. 성희롱은 지속된다, “저는 불편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방효신: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8-02-21 | hrights | 조회: 397 | 추천: 27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퇴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번이 두 번째 퇴사이다. 이번 퇴사는 이미 예정된 터였다. 유아휴직 대체근로로 약 10개월 기간을 계약하고 입사하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직장에서 평생직장이었으면 했던 막연한 꿈이 상실되어서 그런지, 두 번째 퇴사는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박사학위 논문을 순전히 내 힘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온전히 내 자신 뿐이다.  두 번째 직장은 첫 번째 직장과는 달리 회사 분위기가 좋았다. 수직적인 관료제는 커녕 대다수 임원들이 일반 직원들을 수평적으로 대한다. 또한 시차변형 출근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유연하여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측면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직장에서는 계속 일하고 싶었다. 학위 논문을 마치면 논문을 마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직장은 계속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을 무너뜨린 것은 지난 연말에 있었던 논문 심사와 관련 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내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안위만 급급하게 살피는 지도교수의 ‘태도’를 경험하면서, 논문을 끝내지 않으면 기약 없이 지도교수에게 질질 끌려 다닐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칼럼을 통해서 지도교수의 태도를 고발하고 더군다나 험담하겠다는 의도는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오히려 학풍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내가 겪은 일은 기록하여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왜 지도교수는 학생이 논문을 검토해달라고 지난해 5월부터 요청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을까? 그리고 항상 자신의 시간에만 맞춰서 그리고 자신의 일정에 따라 아무 소식도 없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지도교수 역할이 논문 심사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었더라면 미리 언질을 해주든지, 또는 당신이 1년 동안 연구년이기 때문에 지도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위임을 하든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행히 논문심사 위원회가 구성되고 심사 위원장님과 다른 심사위원님들의 배려로 지도교수 없이 논문 심사 날짜가 잡혔다. 지도교수가 연구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시간이 허무하게 날려버릴 뻔했다. 그런데, 막상 심사일정이 잡히니까 미국에 있는 지도교수는 심사 전날이 되어서야 코멘트를 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방학동안 펑펑 놀던 초등학생이 밀린 방학숙제를 처리하듯이. 그런 코멘트는 지도교수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도 보낼 수 있었던 거였다. 그나마 심사 당일에 받은 코멘트조차도 완전한 코멘트는 아니었다. 이렇게 기를 쓰고 종심을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연출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코멘트인가? 결국 작년에 딱 1번 코멘트를 받았다.  지난해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대학원생은 몇 달 전에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 대학원생이 그렇게라도 했을까 싶다. 그런데 이 대학원생의 지도교수는 질책이라도 했지. 나의 경우는 ‘방치’다. 하지만 학생이 끊임없이 요청하는 것에도 약 10개월 동안 반응하지 않다가 심사 일정이 잡히니까 바로 전날에 반응하는 지도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 코멘트는 일종의 ‘공격’인데, 나에게 전혀 ‘방어’할 수 있는 시간을 안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너 왜 이렇게 못 싸우니?’ 하지만 난 어디에서도 항변을 할 수 없었다. 실컷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구석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애초에 입학할 때 물어야했을 물음을 묻는다. 대학원은 과연 어떤 목적을 지닌 걸까? 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다. 학생은 대학원을 유지하고 교수 월급을 유지시키는 상품이 아니다. 적어도 학교 본연의 기능인 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닐까?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을 키워내는 기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교육기능을 토대로 박사과정 학생과 지도교수가 ‘연구 동료’가 되어서 지금 여기에 등장하는 전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는 토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박사과정 학생만 죽어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교수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몇몇 동료들에게 내가 지난 연말에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 ‘네가 참어’, ‘원래 그래’, ‘조심해. 괘씸죄에 걸려서 학위 못 받을 수 있어’, ‘원래 지도 교수는 지도 안 해’ 등의 대답이 일반적이다. 내가 기대하는 대학원과 현실의 격차가 참으로 크다. 옛말에 제자는 학문으로 낳은 자식이라 하지 않나? 하기야 요즘 세상에 학문하는 교수를 찾은 내가 바보 같다. 물론 순수 학문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해하고 실무적인 논문을 지향했지만, 지도교수는 실무적인 논문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10개월을 흘려보냈다. 지도교수는 학생이 원고를 써서 봐달라고 아무리 요청을 해도 묵묵부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지도교수가 전화하면 연말·연초에 바쁜 업무 다 제쳐두고서라도 전화를 받지 못하면 무례한 학생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코멘트를 단 1번이라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게 생각해야 하고 박사과정은 지도교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심리적 주눅이 깔린 분위기 속에서 내 안에서 자책감만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자책감이 무서운 사실은 애초에 내가 품었던 연구 열정이 사라지도록 만든다. 아이러니다. 대학원은 연구열정을 키워주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은가? 출근길에 우연히 찍은 사진 사진 출처 - 필자  퇴사가 한 달이 채 남지 않던 출근길에 뜻하지 않은 플랜카드를 보았다. 사실 어릴 적부터 무난하게 성장해오고 부모님도 나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셨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서 나의 일정이 휘둘리는 경험을 못한 탓일까? 그래, 내가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반성한다. 그동안 ‘갑질’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를 진심으로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갑질’이라는 말이 내 가슴을 깊게 후비고 지나간다. 학생의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안위만 급급하게 챙기는 지도교수의 ‘태도’가 갑질이다. 이 갑질은 비단 나의 지도교수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지도하는 사람이라면 주의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갑질은 노사관계와 더불어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있고, 대학원의 현장에서도 만연된 문화이다.  플랜카드를 만드신 을께서 보낸 메시지는 내 안에서 천둥처럼 울린다. 지도교수 앞에서 끽 소리 할 수 없는 을 중의 을, 나는 대학원생이다. 플랜카드에서 보여준 을이 보내준 용기에 힘입어 나도 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기로 한다. 갑질에 굴복하여 논문을 관두는 것이 아니라, 갑질과 싸워 승리하고 싶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오래된 격언을 믿으며 직장인이란 옷을 벗고 오로지 대학원생이 되어 펜을 들고 일상에 숨어있는 갑질과 싸우련다. 내가 겪은 갑질은 끝나야 하니까. 김시형 : 윤리를 지식이 아닌 ‘삶’으로 이해하는 대학원생
2018-02-20 | hrights | 조회: 102 | 추천: 5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1 “오늘까지만 일하는 걸로 하자. 고생했고 오늘까지 일한 돈 십 이만 원” 그렇게 나는 해고통보 하루 만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하는 신세가 됐다. 나의 항의에 사장은 더 이야기해봤자 서로 좋을 거 없다며 말을 줄였다. 해고 이유라도 듣고 싶어 떼를 쓰며 물었다. 그는 며칠 전 나의 항의를 이야기했다. 내 일은 치킨을 배달하는 것이었다. 두 달 동안 치킨을 배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은 오토바이가 고장 났다며 하루만 시급을 이천 원 덜 받고 다른 일을 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엔 배달을 할 오토바이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시킨 대로 일했다. 생각할수록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가게의 사정도 이해해요. 그래도 제게 양해라도 구해주셨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라고 조심스레 항의했다. 알고 보니 그게 해고의 이유였다. 화가 났고, 녹음기를 켰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학자금 대출과 그 이자를 갚으며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면 ‘군대도 갔다 온 자식’이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한다.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해고 이틀 후 사정을 설명하며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까지만 일을 할 수 없냐고 물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구직광고 사이트에 시급을 천 원 더 올려 새로운 배달원을 구하는 광고가 올라왔다. 부품이 된 기분이었다. 생애 첫 해고에 막막했다. 청년유니온이라는 단체에 도움을 구했다. 덕분에 단체의 노무사와 상담할 수 있었다. 그는 필요한 정보만을 충실히 전해줬다. 인터넷으로 임금체불진정을 넣었고 노동부의 조사를 받으러 갔다. 조사 후 “체불임금이 지급되더라도 처벌을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변하고 왔다. 나만 돈을 받고 없는 일로 만드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고 하루 전 출근을 지시한 문자 메시지, 녹취에 담긴 구두해고통보, 서면으로 된 해고예고가 없는 점들이 노동부 감독관에게 설득력이 있었나보다. 그의 조사와 압박에 사장은 내게 해고예고수당에 십만 원을 더 얹어 지급했다. 그저 내게 온 건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계좌이체 내역뿐이었다. 치킨집 사장과의 마지막 문자 사진 출처 - 필자 #2 “네가 정 원하면 노동부에 가서 받는 수밖에 없어” 치킨집 사장의 말이 아니다. 치킨집에서 해고된 후 새로 시작한 횟집 사장의 말이다. 사장은 장사가 되지 않아 인건비를 줄여야한다며 이주 후에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래서 “해고를 할 거면 최소 한 달 전에 말씀해주시거나 한 달 치 임금을 지급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니 노동부에 가라고 말했다. 나는 마가 끼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두 번째 해고통보를 받은 뒤 며칠 후, 치킨집 사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 상처를 짐작한다며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의 입장차이가 있는 것이고, 자신도 나 때문에 자신을 돌이켜 봤다며 용서의 미덕을 구했다. 사장이 말한 “미워할수록 나만 힘들어지더라”는 조언을 곱씹었다.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마음으로 법적 절차를 밞을수록, 나에게도 상대의 미움이 내게 위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다 문득, 아르바이트를 할 때 연중무휴 일만 하고 친구도 못 만나는 게 지친다며 일주일에 하루를 쉬겠다는 사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장의 맥락이 있지 않을까, 어렴풋하게 추측하기 시작했다. 가해자는 사과하고 피해자는 용서를 한다. 경험 속에 교훈을 얻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처럼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답을 알 수 없지만 사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가 얻었다는 교훈을 믿어보기로 했다. 막상 취하를 하니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사장에게 느끼던 미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노동의 가치, 약속의 이행, 법 준수,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다. 그 상식의 불이행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은 각자 얼마만큼의 피해를 볼까. 약자의 용서는 궁핍한 현실 때문에 강제된 것이 아닐까. 왜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는 걸까. 정답 없는 고민은 잠시 내 머리를 표류하다 이내 일상이라는 현실에 부유해갔다. 전국의 중년 사장들은 대부분 부모로서 살아가고, 높아지는 임대료와 노후 계획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테다. 반대로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청년들은 끼니, 대출을 고민하며 살아간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이는 풍경이 다름은 자명하다. 최소한의 상식과 법이 지켜지는 사회가 필요할 뿐이다. 나의 불편함이 상대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잠시 내가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것 아닐까. 그럴 때에 비로소 잘못, 사과 그리고 용서라는 불필요한 회복과정이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서진석 : 기자가 되기 위해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2018-02-07 | hrights | 조회: 272 | 추천: 7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해는 유난히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열심히 광장에 나가다 보니 새해가 밝았고, 몰아쳤던 정치적 사건들의 흐름이 일상의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인지 금세 한해가 지나갔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많은 비정상들이 조금씩 나아져가고 있다. 대통령은 비정규직으로 왜곡된 노동시장의 정상화를 이야기하고,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한 문제임을 반복해 강조한다. 일방적 합의로 국가에 의해 다시 폭력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국가는 사과했고, 그녀들을 정성으로 청와대에 모셨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얼어붙은 남과 북의 관계 개선도 시작되었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은 자신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1987>도 열풍을 일으키며 4.19 혁명에서 80년의 광주로, 87년의 광장에서 촛불광장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승리했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그날이 오면>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노래하던 ‘그날’에 이제 한발 다가서있는 것일까? 1980년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20대가 영화 <1987>의 주요 관객층이라는 고무적인 현상 이면에는 ‘88만원 세대’를 넘어 ‘77만원 세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N포 세대의 청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이면에는 호시탐탐 ‘성장’과 ‘효율성’을 무기로 반격을 노리는 경제 권력의 저항도 여전하다. OECD 최고의 자살률과 빈곤, 양극화의 문제는 사람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정당한 노력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절벽 앞에서 사람들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환상의 한탕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국가 권력은 달라졌을까? <1987>로 주목 받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같은 보안분실는 여전히 서울에만 5개, 전국적으로 43곳이 운영 중이다. 경찰은 잠시 엎드려 있지만, 대공수사권 이첩 등을 계기로 보안분실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검찰 개혁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끈끈한 카르텔을 넘어 검찰에 대한 개혁의 성과를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도 요원하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가짜 사무실까지 차렸다는 의혹을 받은 변 모 검사의 자살에 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는가. 한 식구의 죽음에 절절한 애도를 나타내고, 검찰총장은 연말에 맞춰 직접 납골당을 방문하며 검찰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사진출처 - Francesco Boneri, 성전의 정화(淨化), 1610-1615. 구글  우리 사회 앞에 놓여있는 과제는 이렇게 잠깐 언급해도 가볍지 않은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만 새로운 ‘그날’, 통일의 ‘그날’, 자유와 인권과 평등의 ‘그날’을 관성적으로 외치는 것은 앞선 죽음들과 치열했던 싸움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서준식 선생은 ‘광주인권상’을 제정하여 인권상을 국제적 사교도구로 활용하고, ‘명사님들의 호화판 잔치’가 되어 광주를 세계적인 ‘인권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선자들아. 인권을 앞세운 요란스러운 행사를 꾸미기 전에 먼저 광주 주민의 인권을 걱정하라. 먼저 광주교도소의 재소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아 내고 먼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발언하라. 거룩한 광주의 이름으로 인권을 팔아먹지 말라!”(인권하루소식, 2000년 5월 20일, <인권의 도시는 없다> 가운데, <서준식의 생각>, 야간비행, 2003, p.96에서 재인용)  이 말을 촛불 이후 정권을 교체했고 새로운 세계사적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고 자축하는 정치인들과 진보세력에게, 촛불을 예찬하는 대학의 교수들과 우리 스스로에게 돌려보자. 광주에서 세월호까지, 살아남은 ‘산 자들’이 안전한 ‘그날’, 정의로운 ‘그날’을 단지 팔아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습관적으로 실체도 없는 ‘그날’을 말하면서, ‘그날’을 파는 ‘산 자들’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8-01-17 | hrights | 조회: 303 | 추천: 8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학년말이다. 이 시기는 늘 정신없다. 쏟아지는 일에 지친 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보낸 지 오래되었다. 반 아이들과 나름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헤어지고 싶지만 생각뿐이다. 올해도 현대사를 제대로 수업하지 못했다. 종업식 날까지 허덕허덕 진도를 나가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이번 2학기에는 아이들에게 근현대 시기의 여러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도록 했기 때문에 중간 중간 맛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미래의 새싹답게 아이들은 교과서 내용이나 내 설명보다 훨씬 풍요로운 주제로 수업을 이끌어 주었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의 소식도 들려온다. 누구는 어느 대학 갔더라. 아쉽게 떨어졌다더라. 정시에 어느 학교를 지원한다더라. 직접 소식을 전해오는 아이도 있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친한 친구들끼리도 서로 입시 결과를 모르다가 다음 해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씁쓸한 얘기도 들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업 소식도 곧잘 전해졌는데, 최근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다. 사진 출처 - 필자  생각나는 아이들이 있다. ㄱ은 통통 튀고 배포가 컸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절대 흔들리지 않고 늘 긍정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해맑게 다가와 “쌤, 이건 왜 해야 해요? 안 하면 안돼요?”하고 물을 때는 귀엽기도 했다. 크면 자신의 일을 독립적이고 진취적으로 잘 해나갈 것이다. 친언니로 삼고 싶은 아이다.  ㄴ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와 떨어져 홀로 작은 방에 살면서 악바리처럼 일하고 공부했다. 중국어를 잘 하고 흥미로워하는 아이라서 중어중문학과에 아슬아슬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정말 기뻤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지난 이듬해 봄, 피자집 아르바이트 복장으로 학교에 왔다갔다고 들었다. 입금해야 할 첫 등록금에서 돈이 모자랐고, 어머니는 집에 돈이 없다고 그러셨단다. 순간 멍해졌다. 수능 후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 아이는 계속 피자집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아이다.  ㄷ은 고민이 많았다. 나도 잘 모르는 어려운 고전이나 문학작품을 즐겨 읽었다. 농담 삼아, 책 그만 읽고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했다. 박노자씨 글을 보고 흥미로워하기에 집에 있던 그분의 책을 몇 권 갖다 주었더니 좋아했다. 근현대사를 가르칠 때 사회주의에 대해 살짝 비판했더니 다가와 “쌤 우파지요?”라고 슬쩍 묻기도 했다. 누군가는 쉽게 다녔을 고등학교를 참 힘들게 고민하며 다녔다. 쑥쑥 잘 성장할 아이인데 대학에서는 그걸 모르고 자꾸 불합격의 딱지만 붙였다.  ㅁ은 집이 아주 멀었다. 혼자 떨어져 우리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누구보다 잘 적응했고 친구도 많았다. 말이 많지 않았다. 가끔 툭 던지는 말에 애정이 숨어 있기도, 가시가 돋쳐 있기도 했다. 그 해 우리 학교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ㅁ은 누구보다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그 겨울을 가장 힘들게 보낸 아이 중 하나가 그였다. 이듬해 가끔 만나 말을 걸면 씩 웃기만 했다. 나보다 큰 아이다.  학년말이다. 헤어짐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작년처럼 또 일처리만 하다가 급하게 헤어질 확률이 크다. 매년 새로 만나는 아이들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기억에 진하게 남는 아이도 있고, 스쳐 지나가는 아이도 있으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다. 그들 기억 속 나도 그럴 것이다. 바쁘게 헤어지는 것이 헛헛함을 덜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늘 그들을 응원한다. 어른으로서 그들에게 부끄러울 때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학교를 떠나 어느 순간 힘들고 좌절하더라도, 그 순간 한 번 더 힘내기를 바란다. 조예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
2018-01-10 | hrights | 조회: 279 | 추천: 6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택배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아무리 택배 물류량이 많은 추석 연휴에 배송시켰다하더라도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나? 결국 추석 연휴 코앞에 도착했다는 그 택배는, 도착했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책이었다.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내 책을 가져갔다는 의심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동안 한 주에 1~2건씩 택배로 책을 받아보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문자메시지로 ‘몇 시 경에 택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만 남긴 채 그 후 아무 소식이 없다. 기다림 끝에 약 3주가 지나서야 택배기사님께 택배가 사라졌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대뜸 무인택배함이 아니라 바닥에 두고 가셨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실까?  인권연대에 칼럼을 쓰기 전에, 아니면 인권 교육을 받기 전에 택배아저씨의 행동에 화가 났을 법 했다. 잠시 화가 나긴 했다. 그래서 택배 회사에 불편 신고를 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소식은 없다. 항상 익숙하게 받아오던 택배가 사라지면서 그제서야 기숙사에서 택배들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의 택배실은 ‘무인’으로 운영한다. 택배가 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택배 예상 도착 시간이 문자로 전송된다. 그럼 직장에 있는 나는 문자를 보고서 언제쯤 택배가 도착할지 가늠한다. 그리고 또 문자가 온다. 택배가 도착하면 무인택배함에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비밀번호’도 문자로 전송된다. 바로 이 비밀번호 메시지를 받아야 정말로 택배가 도착한 것이다. 하필 그날 택배 기사님은 무인택배함이 아닌 바닥에 두고 가셨다. 택배는 바닥에 방치된 채로 긴긴 추석연휴가 지나갔다. 나는 ‘비밀번호’ 메시지가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왜 택배 기사님이 바닥에 두고 가셨지? 문자 메시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는 결국 그 기다리는 시간(약 3주) 동안 방치된 택배를 누군가 그냥 가져갔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택배를 찾으러 여러 번 무인 택배실에 다녀오면서 느낀 사실은 무인 택배함은 택배를 받는 학생과 택배를 관리해야 하는 기숙사만 좋을 뿐 정작 모든 노동력은 택배 기사님의 몫으로 떠넘기는 구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택배를 일일이 무인택배함에 입력하여 넣는 수고를 하고 계셨다.  속상한 일을 오래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나 같은 문제를 겪는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닌 모양이다. 어느 날 기숙사에서 택배를 관리하는 담당자 업무를 맡을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무인 택배실 앞에 사진과 같은 메모판이 생겼다. 참 오랜만에 보는 손글씨들이다. 처음에 무인 택배실을 봤을 때, 세상에 이런 택배실도 있다면서 감탄을 마지않았다. <무인 택배실> 입구에 마련 된 메모판 사진 출처 - 필자  과연 무인시스템 도입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일까? 이제는 하루종일 ‘인간’을 만나지 않고도 스마트폰 하나로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는 것만 같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첨단 디지털 시스템들이 생활 속에 도입되는 와중에 뜻하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문득 생겨난 손글씨 메모판을 보면서 첨단 무인시스템 속에서도 꼼지락 거리며 살아있는 인간의 향기를 느끼는 것 같아 안도한다. 그나저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택배는!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2017-12-20 | hrights | 조회: 352 | 추천: 7
방효신/ 회원칼럼니스트 초등학교 교실에서 급식실이나 강당으로 이동할 때, 아이들은 복도에 두 줄로 선다. 이 때 선착순이냐, 출석번호 순이냐, 키 순서냐 하는 것으로 따지고, 서로에게 "뒤로 가라" 말하고 담임 교사에게 "저 어디 서요?" 묻고. 이렇게 줄서는 것 자체가 싫어서 줄 밖에 서 있기도 한다. 교사마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거나 위 3가지를 혼용하는데, 학년과 담임이 바뀌어도 똑같은 기준이 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이다. 일 년 동안 바뀌지 않을 기준일테다.  작년 이맘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교사 생활 12년 만에 남녀 구분 없이 준비되는 대로 두 줄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은 이 방침에 적응하기까지 반 년이 더 걸렸다. 특정 시간에 다른 교사가 지도할 때, 성별을 구분짓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렇게, 여자는 저렇게 하라는 지시가 종종 있다. 해당 교사가 학생 이름을 못 외웠거나,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가 목적이라면 남녀 구분은 쉽게 적용된다. NEIS라는 반별 인적사항 등록에 출석번호가 1번부터 남자, 51번부터 여자인 것도 한 몫 한다. 어제 전교생 음악발표회에서 반 별로 연주하고 관람하는 시간에도, 우리 반은 남녀 구분 없이 도착하는 대로 앉았다. 어느 반이 연주한 뒤 무대에서 내려가는 동안, 이전 반은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옆 줄에 앉았던 이전 반 아이들은 '원래' 자기 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남자 줄을 찾고, 키가 크면 뒤에 앉으라고 했으니 철수 뒤에 영식이, 이런 식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제 때 앉지 못한다. 비효율적인 성별 구분이라도,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 걸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성 친구보다 동성 친구 옆에 앉으려 한다. 그 이유는 경험이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이성이 있어도, 옆자리에 앉으면 "너네 사귀냐?"고 놀림 받을 수 있어서 피하는 게 상식이다. 교사들이 굳이 남녀로 짝지어 앉히거나, 줄을 세우는 이유가 뭘까? 실은 '지금까지 그래와서'겠다.  사회 교과서 2단원 제재 중 양성평등에 대해 수업하면서 물었다. 박물관 앞마당에서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 아이의 즉석 제안이 있었다. "여자 대 남자로 대결하자!" 사진 출처- 필자  "내가 여자구나 또는 남자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어?"  (이하 아이들) "화장실 갈 때요." "제 몸을 보잖아요, 그럼 제가 남자인 걸 알겠어요." "앉아서 볼 일 봐요." "수영장 갔을 때, 여자는 저 쪽 가라고 했어요." "선생님, 근데 왜 남자는 치마 못 입어요?" "야, 입어도 돼." "아무도 안 입는데?" "남자는 왜 머리 못 길러요? 저도 머리 기르고 싶은데, 엄마가 자르래요." "아, 군대 가기 싫다! 군대 가면 머리 다 깎아야 돼." "저는 머리 자르고 싶은데, 여자는 머리 길어야 예쁘대요." "근데 우리 중학교 때 상명여중 가죠?" "중학교 가면 교복입어야 돼. 치마 입던데." "남자들은 청운중 가."  성별 이분법으로 가르쳐서, 이 사회에 일찍 적응시키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한국은 성별 구분이 차고 넘친다. 성별을 구분지어 말하는 분위기일수록, 남자답게 여자답게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그 말을 듣는 남녀의(여남의) 스트레스도 높을 것이다. '~답게' 라는 말이 죄여오는 부담감을 생각해보라. (예: 선생답게, 학생답게, 가장답게, 첫째답게) 한국은 성평등지수  118위인 나라(세계 144개국 중,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11.1. 발표) 이다. 여자가 여자답게 살아도 취직도 잘 되고, 월급도 똑같이 받고, 임신해도 직위를 유지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해 부서 회식을 주도해야 하거나, 승진을 포기한 못난 놈 취급 안 받으려고 육아 휴직을 1개월도 못 써본다면 과연 누구 좋으라고 사는 세상일까? 주어진 성별에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해도,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한국. 2018년에는 성별 구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성별과 관계없이 행동하고 생각해도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방효신: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7-12-13 | hrights | 조회: 240 | 추천: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