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위험한 ‘확신주의’ 경계해야 - 정체성과 대안을 찾아 떠나는 겨울여행 ④ 효림/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과거 전제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가 중심이었고, 개인은 국가의 종속물이자 소유물이었다. 그래서 개인에게 끊임없이 충성할 것을 강요했지만 지금은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다. 요즘 들어 세 가지 인권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먼저 호주제 문제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호주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났다. 사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문제다. 호주제라고 하는 것은 호주라는 1인을 두고 나머지 가족은 그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이다. 헌법은 누구나 독립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호주제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혼한 6-70세 노인이 세살난 조카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호주제는 개인의 독립성을 근원적으로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위헌이다. 다음은 ‘성권(性權)’이라는 개념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성의 권리가 있다. 성을 향유할 권리가 있고, 성을 즐길 권리가 있다. 또 자기 성에 대한 정체성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런 권리는 자기 성에 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타인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성을 침해하는 것이 성폭력이고, 성희롱인 것이다. 또 이것은 ‘성권’을 침해받은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인권으로 ‘성권’을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확신주의자’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는 위험한 확신주의자들이 있다. 내가 확신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이 너무 지나쳐서 민주주의에 기본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심한 경우 자신과 의견이 다른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시위를 하기도 하고, 또 자신의 주장은 절대 선이고 상대의 주장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화된 확신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주변의 상황이 변하면 오늘 나의 주장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의 주장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나하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의 의견도 옳은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울러 내가 상대를 설득시켜 나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상대의 주장에 설득 당할 준비도 하고 있어야 한다. 나의 주장만을 지나치게 주장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반대로 ‘인권침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주장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해도 상대는 그 의견을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확신’ 자체가 나쁘다기 보다는 ‘강요하는 확신’은 위험하다는 것을 합리적 개인주의가 충돌하는 지금의 시기에는 잊지 말아야 한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소비문화 시대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한 공동체 운동 박기호/ 예수살이공동체 대표신부 이 시대의 화두는 ‘소비문화’ 공동체 운동은 영성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신부가 공동체 운동까지 뛰어든 이유는 우리 시대가 가진 어떤 변화와 특성을 엿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성당에서 복음선포를 해야 하는 신부로 살아가면서 내가 전하는 목소리와 복음이 과연 힘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복음은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회개하게 만들고 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인데, 과연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회의가 컸다. 그런 회의가 들면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함이 일었다. 자기의 직업을 바꾸게 하고, 삶의 좌표를 바꾸게도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현대인들의 삶을 규정하고 의식을 장악하는 실태는 ‘소비문화’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성당에 나와 강론을 듣는 것보다 작은 가전제품 내지는 건강기구 하나를 선물 받는 것이 훨씬 큰 즐거움이고 행복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분명 거기에도 타당한 이유와 선(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제품이건 문화건 내가 찾아서 나의 행복으로 놓는 형태라면 개인이 자기 의식의 주인으로서 자기 삶을 꾸려나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필요해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게끔 무엇인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가져야만 하는 흐름이 우리들의 의식과 삶의 일반까지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문화가 역사를 만드는 시대 지금의 소비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는 과거문제를 많이 얘기하고 있다. 과거문제는 당대에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맡겨진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당시 그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군사독재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역사적 판단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당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파악하지 못했고, 역사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과거에 우리는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했고, 경제적으로 궁핍함을 면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해방, 정치적 측면에서의 자유가 그 시대에 우리의 욕구였기 때문에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지고, 밤낮없이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발전의 에너지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시대의 힘은 ‘소비문화’ 내지는 ‘소비욕구’ 그리고 그것에 의한 상품생산과 기술개발이라고 본다. 과거에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가 역사를 발전시켰다면 오늘날에는 개인들의 작은 행복과 안락을 보장해주는 ‘소비욕구’가 산업과 시대를 이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라고 본다. 그래서 과거에는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거나 후퇴되는 것이 역사의 후퇴라고 보았는데, 오늘날에는 소비가 줄었거나 위축되는 것이 역사가 후퇴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대인 것이다. 경기불황을 얘기하면서도 소비가 일어나야 해결된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이런 사회적 현상이 우리 자신들의 의식을 규정하고 자녀들의 삶을 만들고 있다. 소비문화를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그런 환경이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소비문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품이 인간을 만든다. 소비문화가 만드는 새로운 인간은 개인주의적이고 생물학적으로 퇴화된 인간이다. 그리고 이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상품인데, 상품은 편의성, 개별성, 기술성이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상품이건 손가락 하나라도 덜 쓰게 하고, 허리를 굽혀야 하는 일은 펴게 하고, 서서 해야 하는 일을 앉아서 하게 하는 편리함을 가진다. 이것이 상품이 가진 편의성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하나의 상품을 가지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던 것이 이제는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가정에 하나 있으면 됐던 전화도 가족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다니고, TV도 이제는 각자의 방에 들여 놓고 있다. 모든 시스템이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술성은 그렇게 만든 상품들을 마르고 닳게 사용하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에 지금까지 몇 개의 컴퓨터 사양을 바꾸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다. 하나의 상품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개발은 없다. 상품의 편의성은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퇴화하게 만든다. 손가락 하나라도 적게 움직이고, 이동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을 조금씩 퇴화시키는 것이다. 소설「태백산맥」에 보면 벌교의 장광산에서 읍내까지 24km정도의 거리인데, 거기를 하루에 두 번씩을 왔다 갔다 한다. 소설 속의 얘기가 아니라 옛날에는 의례히 그랬던 것이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얘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기억력도 퇴보하고 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수십 수백개씨 외웠던 전화번호도 이젠 몇 개를 제외하고는 외우지 못한다. 그리고 상품의 개별성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져옴과 동시에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환경은 인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매일처럼 쏟아지는 새로운 상품은 곧 쓰레기가 되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심각한 생태 환경문제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소비문화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문제는 소비문화를 통해 얻는 행복이 우리가 정말로 추구하고 가야 될 행복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사실 복음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다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포기할 수 있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 구원받으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고, 이미 강을 건넌 사람에게 강을 건너라고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건너간 곳이 가야할 곳이 아닌 경우 자신도 불행하고 주변도 불행하고, 불행한 주변의 환경이 자기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도 자유도 있지만 제어하는 능력, 자기 통제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다. 좋은 것과 새 것에 대한 욕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물러서게 해야 하고, 그리고 물러섬으로써 누릴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혀진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소비사회에서 반문명적인 삶, 기술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편리함을 포기하고, 상품의 개별성에 대항하는 것이 오늘날 예수가 요구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 예수살이공동체(www.jsari.com) 운동인데, 이것은 하나의 정신운동이기 때문에 좀 더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산위의 마을(충북 단양)’이라는 공동체 마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모두가 개별적으로 나아갈 때 공동체성을 구현하고, 좀 더 불편하게 살면서 우리의 몸을 쓰면서 사는 것이 또 하나의 길일 수 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김종철 선생/ 녹색평론 발행인 경제가 위기상황이라는 얘기가 많다. 장기불황의 시작이라는 해석도 있고, 미국의 패권적 질서유지가 바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즉, 북한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개방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시장이라는 것이다. 쿠바와 북한은 현존하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동구권과 소련이 몰락하면서 석유 등 원조가 끊기면서 위기를 겪게 된다. 그런데 농업의 기계 화와 화학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던 북한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반면, 농업의 위기를 예견한 카스트로의 지휘 아래 유기농업을 준비하고 있던 쿠바는 자립적 농업혁명에 성공한다. 물론 쿠바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지만 지금은 국가 전체가 유기농업을 광범하게 실천하게 되었고, 도시 곳곳의 빈터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가에 의한 텃밭이 되어 자급이 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또한 쿠바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도시 교통수단, 즉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았다. 21세기에 인류가 생존하려면 자동차의 시대에서 ‘자전거의 시대’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소비’는 경제 위기를 풀 수 없어 현재 경제적 위기상황을 푸는 방법으로 ‘소비’를 많이 얘기한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논리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한다. 갈수록 더 많은 소비에 의해서 유지되는 경제체제라면 더 이상 유지되어서는 안 되며, 빨리 망해야 한다. 사실 그런 식의 경제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초국적 기업과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극소수 특권층들의 단기적인 이익에 봉사할 뿐이며, 자연을 무한하다고 생각하고, 무한개발이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완전히 비현실적인 환상에 빠져있는 경제체제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나 주류 언론이나 수많은 대중들은 아직도 이런 식의 경제만이 살길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부양이라는 명분으로 정부는 어이없게 수백개의 골프장을 건설하려 하고 있다. 골프장은 농민 공동체와 숲을 파괴하고, 지하수를 오염시키며, 그 하류에는 어떠한 농사도 지을 수 없게 하며, 지금 그나마 한국농업의 마지막 구명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친환경농업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런 골프장을 짓는 데 한 건당 국고에서 500억씩 보조하겠다는 기가 막힌 정책을 정부가 내놓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현재 골프장은 전국에 200개도 넘는데, 앞으로 250개를 더 신설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골프장이 이 좁은 나라의 전 국토 중 1/20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경제성장의 논리에 붙들려 있는 정책입안자들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골프장 건설 따위 이외의 방책을 구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문제는 경제시스템의 근원적인 수정, 다시 말해서 보다 많은 생산, 보다 많은 소비의 사이클에 갇혀 있는 우리의 삶의 방식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방향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환경을 지키려는 싸움이 치열하다. 재작년의 3보1배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지율스님의 천성산을 살리려는 단식투쟁, 핵폐기장 반대를 위한 부안주민들의 투쟁 등, 지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높은 수위의 투쟁들이다. 그런데 이런 극한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정부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이 나라 주류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의 문제다. 그들은 경제와 환경을 대립적으로 생각하는데, 지금과 같은 경제논리로서는 그들의 생각이 맞다. 지금과 같은 반생명적인 자본주의 경제라면,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것을 구조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방식이라면, 당연히 환경과 경제는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유한계급론>의 저자 돌스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은 19세기 말 미국의 졸부들의 생활행태를 묘사하면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들이 소비하는 많은 것들이 생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과시를 위한 소비라는 것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어떤 역사학자가 학생들에게 슈퍼마켓에 가서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있는지 각자 조사해오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학생들의 조사결과는 슈퍼마켓들에 쌓여있는 엄청난 상품들 중에 실제로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거의 없더라는 것이었다. 사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 남의 눈이 없으면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을 가지기 위해 대부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제도 속에서 소비는 본질적으로 ‘과시적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진정한 필요에 의한 소비에는 상한선이 있겠지만, 과시적 소비는 끝이 없으므로 생태적 파국은 불가피하다. 현재의 시스템을 ‘보이코트’하자 간디는 “인간의 진정한 욕구(need)를 위해서는 지구자원은 무한히 풍요롭지만, 인간의 탐욕(greed)을 위해서는 지구자원은 희소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인위적인 욕망의 계속적인 창출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지구 자원을 고갈시킬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지양하느냐가 근본문제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들을 대개 두가지 방식으로 풀려고 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파리꼬뮨에 있어서처럼 민중봉기 혹은 '총파업'으로, 독일의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키 등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을 겨냥해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역사적 실패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이런 방법은 비현실적이고,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큰 의미가 없다. 사람은 먼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해 살 수는 없고, 당장 나름대로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의 행복은 어떤 행동의 결과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덕있는 행동(virtuous act))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에 간디는 ‘비폭력’적 보이코트라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간디의 사상과 행동은 오늘날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간디는 영국 식민당국이 소금을 전매품으로 만들자 수많은 인도 민중과 수백킬로를 걸어 바다까지 가서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직접 소금을 만들어 자치적 삶의 방식을 천명함으로써 정면으로 식민주의자들에게 타격을 가했다. 또한 영국에서 제조된 옷이 대량으로 침투하는 것에 대항해서 직접 물레를 돌려 자립의 중요성과 노동의 가치를 직접 가르쳤다.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불복종운동’이다. 단순한 불매운동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여성이 차 심부름을 거부하는 것, 쓸데없이 옷을 사지 않는 것, 대기업이나 반생태적인 직장에 취직을 하지 않는 것, 텃밭을 가꾸고, 의료자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 인간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 맞서 우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 등 모두가 보이코트라고 할 수 있다. 평생을 반전 평화와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했던 스코트 니어링은 죽으면서 ‘내 삶은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평생 추구했던 이상은 실현은커녕 사태는 더 악화되어, 미국은 더욱더 제국주의적으로 나아갔고, 전쟁은 곳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했다. ‘삶이란 끊임없는 열망이고, 분투노력이며, 그 속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유토피아를 위해 우리가 늘 막연한 준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혁명에 몸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이 흔히 당장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경향이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혁명에 대해 입으로만 말하고, 술집에서만 비분강개할 뿐이다. 3·1운동처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디처럼 소금을 만들고, 물레를 돌리는 행동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우리는 간디 식의 보이코트에 담겨있는 어마어마한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현대경제학을 ‘음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경제학이 근본적으로 희소한 자원과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디가 말했듯이 우리가 공생의 원칙 위에 삶을 꾸려나갈 때, 지구 자원은 무한히 풍부하다. 녹색평론은 그동안 왜 우리가 ‘고르게 가난한’ 삶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해왔다. 재화를 공정하게 고르게 나누면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풍요롭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길이기도 하다. 우리의 행복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온다. 혼자만의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각성은 윤리적으로, 또 생태적으로 건강한 삶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좋은 관계는 경청과 배려로 - 정체성과 대안을 찾아 떠나는 겨울여행① 전성표/ 이웃사랑교회 목사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방법과 외부에서 찾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내 주위의 환경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그것을 헤쳐 갈 힘이 생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지금의 우리 삶은 내가 선택할 길 중에서 가장 행복한 길을 찾아 온 길이다. 공부를 더 잘 할 수도 있었고, 술을 끊을 수도, 과식을 안 할 수도 있었지만 당장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른 원망에 돌려버릴 때가 많다. ‘때문에’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이가 걷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면 실제 책임은 걸려 넘어진 아이에게 있는데, 엄마들은 문지방을 나무란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문지방 ‘때문’이라는 세계관을 갖게 된다. 원망을 외부로 돌리게 되고, 나는 그 표현 속에 숨어버리면서 자신을 속이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위하여’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하기 싫은 공부와 학원, 유학을 보내면서 하는 ‘너를 위해서’는 사실 부모의 욕심과 이기심을 말 뒤에 숨기는 행위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위해서다. 말은 사유(思惟)를 담는 그릇 우리의 언어 습관 중 ‘~같아’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기분을 나타낼 때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표현하는 것인데도 불확실한 표현으로 대신한다. 반대로 “너 화났구나”라는 말과 같이 남의 감정에 대해서는 단정적이다. 이런 말 습관이 사람사이에서 오해를 불러오고, 그 오해는 ‘문제’라는 것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남의 감정을 단정 짓지 말고 좀 여유를 두면 사람사이가 넉넉해진다. 자신의 감정은 애매하지 않고 정확하게, 남의 감정은 거리를 하나 띄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 더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자주 ‘못해요’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이 못한다는 말의 95% 이상은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안 한다’는 말 대신 ‘못한다’는 말을 즐겨 쓸까? 그것은 책임의 회피다. ‘안 한다’고 할 경우 그 책임은 내가 지지만, ‘못 한다’고 할 경우 그 책임은 외부로 돌려지게 된다. 언어는 사유(思惟)를 담는 그릇이다. 생각을 바꾸면 언어도 바뀐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꾸긴 쉽지 않다. 따라서 생각이 물이고 언어가 그릇이라면 생각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는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그릇이 바뀌면 물모양도 바뀌듯이 말이다. 상대방을 경청하라 우리가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모든 일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 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용서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말이 쉽지 실행은 어렵다. 관계를 푸는 첫 번째 길은 잘 듣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말하는 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말하는 입은 적고 대신 듣는 귀가 많다면 상당히 다른 모양의 세상이 될 것이다. 듣는 귀가 없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이 문제는 오해를 낳고, 오해는 조직을 삐걱거리게 한다. 대체로 이야기 할 때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끝까지 듣지도 않고, 듣다가 딴 생각을 한다. 딴 생각할 뿐 아니라 내가 할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 순간 대화는 막힌다. 상대방 이야기를 할 때 말을 끊지 말고 내 온 몸이 귀라는 생각을 갖고 한번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보라. 이 세상이 듣는 귀로 가득 찬 세상이라면 얼마나 조용하고 아름답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잘못이나 게으름을 감추기 위해 먼저 화를 내거나, 죄 없는 차와 도로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 때문에 화가 나 있는 상대 혹은 기다렸던 사람들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이나 설명이 아니다. 변명과 설명은 오히려 상대를 지루하게 하고 짜증을 증폭시킨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고 있다면,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라. 그러면 당신을 최고의 벗으로 생각할 것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북한인권 문제는 북한 스스로 풀도록 기다려야 박경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한반도의 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이유는 다르지만 분단이라는 상황 자체는 우리와 비슷했던 독일을 준거의 틀로 생각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1970년 서독의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내세운다. 동방정책은 동서독이 서로 싸우지 않고, 화해하고, 잘못을 용서하자는 내용이었다. 또한 히틀러가 점령한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되돌려주자는 내용이었다. 이 동방정책은 동독의 수상이었던 빌리 스토프와 함께 두 정상이 분단 25년만에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독일은 이에 따라 1972년 현존하는 서로의 정책을 인정하고 협력하며, 인적교환을 한다는 내용의 ‘기본조약’을 체결한다. 이 기본조약이 만들어졌을 때 야당인 기독교연합당이 체코와 폴란드에 영토를 돌려주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불신임안을 냈었는데, 당시 기독교연합당의 젊은 의원 12명이 “게르만 민족의 장래를 일개 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면서 부결을 시킨다. 이후 독일은 1975년 헬싱키에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1990년 역사적인 통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의 문제가 정권차원으로 전락 우리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하며, 무력으로 도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 이후 1991년에 와서야 ‘고위급 합의문서’를 통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현존하는 정책을 인정하며,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게 한다는 내용에 합의한다. 그리고 결국 2000년 6월 15일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의 경우 연속성이 있는 반면, 우리는 연속성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노무현정부가 햇볕정책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또한 독일의 의원들이 민족의 문제를 당리당략에 따라 결정할 수 없다고 한 반면 우리는 민족의 문제가 정권차원으로 전락해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독일은 ‘불가침조약’이 나올 때까지 서독이 공식적으로 동독의 인권을 얘기하지 않았다. 동독의 인권문제가 분명하게 있었음에도 제3국과 NGO 말고는 서독 정부가 직접 얘기하지 않았다. 독일은 인권을 각론으로 다루지 않고 독일의 평화라는 평화권 속에 인권을 함입시켜 총론으로 다뤘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인권도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라는 큰 명제 속에 함입되어야 한다. 이런 첫걸음으로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북한인권을 말하는 것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처럼 인권이 오용되는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 인권은 당사자가 쟁취하는 것이고, 위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것이라는 대명제 속에서 그저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열어놓는 법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문제 북한이 풀어야 펜타곤 보고서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100만에서 500만의 민간인이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 시청 앞에서 있었던 기독교 중심의 보수단체 집회의 유인물에 “좌파정권 때려잡고, 부시에게 감사하자”는 내용이 있었다. 목사들이 앞장서서 전쟁을 일으키자고 하고, 김정일 때려잡자고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500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평화, 화해, 치유의 대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 240만명이 죽었던 전쟁 경험을 가진 우리가 또 500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또 기획탈북을 통해 북한사람들을 빼낼 것이 아니라 굶지 않도록 10년은 더 경제지원을 해야 한다. 독일처럼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인권 문제를 한반도 평화에 함입시켜 생각해야 하고, 북한의 문제는 북한 스스로가 풀도록 해야 한다. 또한 6자회담 속에서 한반도 평화조약을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770만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고, 연좌제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한을 푸는 길이다.   <박경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강연자료> (2004년 10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의 현황과 과제 - 1기 활동을 중심으로 <참고자료> 세계화·폭력·평화 -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하여 1. 들어가는 말 : 평화는 노력해야 얻어지는 것 저는 사회학자로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사회발전을 위한 비판의 기능을 저버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사회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웃들 에게도 사회학도 들이 이러한 건설적인 비판을 하무로서 사회학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자부를 하며 이럴 경우에 이웃들도 사회학의 고유성에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다음의 발제는 그런 생각에서 썼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제목이 “세계화·폭력·평화” 입니다. 이론적 접근 보다는 경험적 접근을 해 보 겠 읍니다. 그래야만 주제가 살아 움직일 것 같아서 입니다. 2003년 3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라크 전쟁 발발을 보면서 국가기관으로서는 드물게 반전평화인권선언을 함으로써 국내외에 큰 반응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반전 평화선언은 당시에 발표된 많은 사회조사에서 한국 국민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70%이상을 상회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반증한 것이다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류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민들의 인권과 평화를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고귀한 임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천명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수호하는 일에 책임을 다한다고 천명했습니다. 그 다섯 번째 입장을 보면 “동서고금의 인류역사가 반증하는 것처럼 인권 없는 평화와 평화 없는 인권은 모두 허망한 착각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반전 평화선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가 평화는 인권과 정의를 동반할 때만 진실한 평화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으로는 진정한 평화달성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는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교훈은 평화의 질과 폭은 인류의 또는 당사자들의 노력과 투쟁의 폭만큼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즉 양자관계는 늘 정비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의 성취를 위해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평화를 만들어가는 평화 역군으로써의 책임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평화는 인류 모두가 쟁취해야 하는 지고의 가치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2. PAX Romana, PAX Americana 그리고 Peace Maker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문자기록이 시작된 3521여년동안 인류는 기간의 8%인 286년을 전쟁 없는 평화의 해로 보냈었고, 나머지 92%인 3235년을 전쟁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우리에겐 전쟁이 늘 함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쟁을 종식하고 예방하고자 하는 평화의 역군(Peace Maker) 또는 평화실천가(Activist for Peace)의 노력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을 도발하는 세력, 즉 전쟁을 통해서만 평화가 온다는 사람들과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오므로 진정한 평화는 전쟁이 아닌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만 성취된다는 사람들 사이의 줄다리기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평화는 정의를 동반해야 참 평화이기에 전쟁은 한계가 있다는 이론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 경우의 전형적인 예는 로마의 세계정복에서 온 로마 평화입니다(PAX Romana). 로마인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군대와 무력으로써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정복을 당한 주변국가들의 정의 문제는 로마인의 평화를 위해서는 무시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PAX Romana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무너지고 말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PAX Americana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미국의 평화는 주위국가들과의 공생, 상생의 평화를 저버린 채, 미국인들만의 안녕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세계화라는 것은 금융자본(Finance Capital)을 엔진으로 작동하면서 미국식 세계화를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식 평화, 미국식 세계화가 지구촌의 모든 국가에게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을 가져다 주었거나 또는 가까운 미래에 그것을 보장한다면 우리는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수의 부자 나라와 다수의 가난한 나라들로 세계는 양분되었고, 한 나라 속에서도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의 부자들로 양분되었고 그 괴리는 날로 심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미국 내에서 그리고 지구촌의 각 곳에서 평화의 역군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작년에 있었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평화운동을 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봅시다. 작년 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유럽, 중동, 미국 등 10개국의 교회들의 총회장 및 주교들이 모였습니다. 이 모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절반이 무너졌다 다시 복구된 베를린 중심지의 카이자 빌헬름 기념교회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세계 교회들의 기도회 형식으로 모였습니다. 이 모임은 WCC(세계교회협의회)와 유럽교회연합회가 주최가 되었고 그날은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이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에서의 전쟁 수행 계획과 관련하여 연설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기도회 후 교회대표들은 독일 수상 케어하드 슈뢰더를 만나 교회 공동의 기도문을 전달하는 것으로 세계 교회들의 평화를 위한 기원을 전 세계에 공포했습니다. 외국의 신문들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취급했지만, 한국의 소위 유력지들은 이를 전연 기사화하지 않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이 기도회에서의 몇몇 발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 우리교회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단호히 거부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이 명시한대로 군대를 이용하는 것에 있어서 제한된 원칙을 완벽하게 지켜줄 것을 권고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견딜 수 없는 인명 피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 우리교회는 세계 최강대국이 전쟁을 가능한 수단으로 그의 외교 분야에서 사용하는 것을 그 나라의 교회대표들과 함께 반대한다. - 이라크도 유엔이 요구한 권고사항을 지켜주기를 권고한다. 이라크의 국민에게 전쟁이 아니고 독재정권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 로마 교황도 이라크에 대한 전쟁은 인류의 종말을 고한다고 천명했다. 이 모임에는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스,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영국 미국 그리고 중동의 교회 수장들이 참석했습니다. 그 외에 작년에 새로 취임한 Rowan Williams 켄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토니 블레어 수상과는 반대로 이라크 전쟁에 단호히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스웨덴 루터교의 대주교, K. G. Hammar 주교는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전쟁은 비도덕적이고 현명치 못하다고 천명했습니다. 지난 1월 브라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한 독일의 Margot Kässmann 주교는 “나는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러나 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 즉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도 무장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라고 발언하여 세계사회포럼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미국 NCC(미국교회협의회)는 작년 1월 15일을 기해 미국연합감리교회 감독회장인 68세의 Melvin G. Talbert 감독으로 하여금 CNN과 지방 Cable TV에 출연시켜 ‘이라크와의 전쟁은 하나님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라는 30초짜리 광고방송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뉴욕과 워싱톤 D.C에서 조직, 주선, 방영한 바 있습니다. Talbert감독은 1991년의 걸프전쟁에도 반대했던 평화주의자로, 부시 대통령이 연합감리교인이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던 때보다 더 많은 여론이 이라크와의 전쟁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왜 내가 광고 방송을 하게 되었느냐면 나를 포함한 감리교 감독들과의 비공식 회의조차 부시대통령이 거부하기에 TV에 출연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NCC는 작년 1월 30일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공식 서한에서 ‘우리 1000만 미국인을 대표, 즉 미국 정교회와 개신교를 대표하는 NCC는 전쟁을 다만 군사행동으로서만 인식해서는 안 되고, 윤리적, 도덕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이라크와의 문제를 푸는 데는 전쟁보다 평화적인 방법을 총동원 하도록 권고 한다’라고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재작년 11월 26일과 작년 1월 15일에 미국 워싱턴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진에는 미국전역에서 수십만이 참가해 전쟁은 최선책이 아님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Peace Maker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평화로운 촛불시위로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우리국민의 뜻을 전세계에 전달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 정의를 동반한 평화 전쟁을 통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인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서로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참평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성취된 평화가 진정한 평화입니다. 정의를 동반한 평화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부의 결실을 나누기에 소외되고 낙오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큰 사회라면 그 사회는 평화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회구성원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작년의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알 수 있습니다. 57세의 한 남자의 어려워진 삶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평화를 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이 다시 재연되지 않도록 이웃을 더불어 사는 상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 체험한 세계화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선 눈의 띄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세계화란 미국과 일본을 그대로 본받는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의 좋은 점-예를 들어, 미국의 투명성, 청교도 정신, 일본의 집단 이익을 위한 양보 등-을 배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국의 소비제일주의, 일본의 역사죄악의 은폐 등은 세계화가 아닌 것입니다. 그 대신 독일의 제2차세계대전 중 저지른 죄악에 대한 참회라든지, 비록 가난하지만 아프리카 아시아 이웃나라들의 깊은 내면의 영성들을 배우는 것도 세계화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1등은 하나이기에 2등 이하 꼴찌도 동등한 사회성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뉴욕에 위치한 Freedom House는 매년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기준하여 각 나라들을 자유국가, 약간의 자유국가, 자유가 박탈된 나라로 구분하여 발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5년 전부터 자유국가로 분리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2003년의 조사에서 Freedom House는 미국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 중임에도 25개국이 자유와 민주주의 분야에서 발전을 했으며, 13개국이 퇴보를 했다고 합니다. 이 퇴보된 13개국의 대부분이 중동과 중앙아시아 나라들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쟁은 확실히 사회발전, 민주주의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4. 폭력의 역사 그리고 한계 - 아시아 국가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다음 아시아의 네 나라의 예는 우리에게 폭력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력을 수반한 정권의 한계와 정의를 동반한 평화를 지향하는 다수의 염원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예입니다. - 첫 번째 나라 : 스리랑카 거의 450년 이상을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통치 때문에 고난을 당한 아름다운 섬의 나라 실론 스리랑카에는 가장 근세에 식민 종주국인 영국이 19세기에 인도의 남부 타밀나두에서 실론차의 재배를 위해 강제로 끌어온 타밀족들이 원주민 싱가리족들과 혼재하여 생활해 왔었습니다. 실론차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면서 영국은 양쪽 종족에 대해서 분리통치정책을 썼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이 두 종족의 알력을 못 본체 하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스리랑카는 1948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동시에 독립국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문제는 독립 이전부터 잠재해 있던 두 종족간의 알력이 점점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원주민 상갈리족은 타밀족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싱갈리어와 영어를 국어로 선포한다든지 타밀족들에게 고향 인도로 돌아가라고 압력을 행사하면서 식민 종주국이 분리 통치(Devide and Rule)하던 시절부터 잠재해 있던 양 종족간의 긴장이 1983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원주민들은 타밀족들의 가족, 일터, 상점들을 약탈, 방화, 파괴하고 살상을 저지르는 최대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지금까지 80,000명 이상이 희생되고 수십만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00만 명의 이재민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종족갈등문제에 설상가상으로 종교 간의 갈등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원주민 2천 만 명 중 70%이상이 불교 신봉자이며 힌두교, 이슬람교가 8%로 2위를 차지하고(주로 타밀족) 기독교는 가장 열세하여 양 종족 통틀어 7%의 구성비로 종교 간의 대화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1983년 폭동으로 벼랑 끝에 몰린 타밀족들은 타밀족 독립을 위해 뭉치게 되고 북부 쟈프나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무력투쟁에 들어갔습니다. 타밀 타이거라고 명명된 이 단체는 초창기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소수민족의 권리 쟁취라는 측면에서 많은 동정과 도움을 얻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원호는 이 단체가 극렬주의자들에 의해 유지되면서 국제적 연대를 잃어가게 됩니다. 민간 여객기를 납치한다든지, 자살 폭탄으로 1991년 5월 인도의 수상 후보인 라지브 간디를 자폭으로 살해한다든지, 무장으로 자프나시를 1991년부터 1996년간 장악하면서 정부군 싱가리 군대와의 극렬한 무장 충돌로 인해 대치하게 되면서 국제사회는 타밀 독립운동에서 등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온 세계는 스리랑카의 화해와 평화는 무력으로서는 도저히 성취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종교 간의 협력과 대화를 통한 정치적 타결 밖에 아무런 방법이 없음을 터득하고 이를 세계에 천명하게 됩니다. 폭력의 한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 두 번째 나라 : 캄보디아 킬링 필드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는 1963년 식민 종주국 프랑스가 철수한 후 시아누크왕이 중립정책을 펴나가면서 1960년의 베트남 라오스간의 전쟁을 잘 피해갈 수 있었으나 1970년 미국의 지원을 받는 Lonrol정권이 Sihanouk를 축출하면서 미소 냉전의 희생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1975년 Pol Pot가 이끄는 크메어 루즈(Khmer Rouge)가 론롤 정권을 타도하고, 1978년 이들이 베트남 국경을 침공하자 1979년 소련과 베트남의 후원을 받는 훈센(현재 수상)이 폴폿을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정권 혼란기인 10년간 1백만명 이상의 무고한 생명이 기아, 질병, 처형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무력과 폭력으로써 정권을 쟁취한 자는 다시 무력으로 그 정권을 잃고 만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1991년 10월 23일 파리에서 과거 무력 사용의 주인공 4개파가 평화협정에 사인을 하면서 폭력의 시대를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1993년 5월 시아누크가 다시 왕에 취임하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1993년과 1998년 두 번에 걸친 유엔 감시 하에 자유선거 실시 후 평화를 향한 걸음마를 한 걸음 한걸음 옮겨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의 폭력의 자취는 비참하여 곳곳에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폭탄들로부터 방출되는 다이옥신 등의 인체 유해 물질들이 임산부를 자극, 기형아들이 태어나고 있다든지, 아직 제거되지 못하고 있는 대인지뢰를 잘못 밟아 팔다리를 잃고 나무목발에 몸을 의지하고 구걸하는 크메르인들을 우리는 이 나라에서 수없이 목격하면서 평화는 대화와 양보 화해로서만 성취됨을 배울 수 있습니다. - 세 번째 이야기 : 동티모르 재작년 5월 20일, 450년 만에 독립을 쟁취한 동티모르의 이야기입니다. 16세기에서부터 포르투갈의 식민통치를 받아온 이 민족은 1975년 식민세력이 철수하면서 그렇게도 그리던 독립을 쟁취했다고 환호할 사이도 없이 1976년, 제2차 세계대전 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에 의해서 침략을 받고 식민지가 되어 독립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인도네시아 군대에 대항 하여 지난 30년간 정글 속에서 독립투쟁을 하면서 희생당한 동티모르족은 70만명을 헤아립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에 가장 강력한 공수부대를 주둔시키면서 무력으로써 원주민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지칠 줄 모르는 독립운동은 국내에서는 현 대통령 구스마오를 중심으로 정글 속에서의 게릴라전으로, 외국에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인도네시아의 폭력을 고발하면서 끈질기게 평화운동을 전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 평화운동의 정점에는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신자들을 예배 인도하는 카톨릭 벨로주교가 있었으며, 외국에서는 현 외무부 장관인 라오스 호르텐이 있었습니다. 평화운동의 국내 국외 중심인물 벨로주교와 호르텐 장관은 199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2002년 4월 유엔 감시 하에 평화 선거를 실시한 이 나라는 세계의 축복 속에서 금년 5월 20일 신생독립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현 대통령 구스마오는 2000년 광주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폭력으로 25년간 동티모르의 야미족을 억압 20만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그들의 가슴에 풀 수 없는 한을 심었습니다. 무력을 통해 평화가 오는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각종 혜택을 주는 것으로 티모르족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던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은 자국 내에서는 부정부패, 인권 유린 등의 독재자로 32년간을 악명 높게 군림하더니 1998년 정권 붕괴와 함께 동티모르에 독립을 안겨 주면서 종말을 고하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습니다. - 네 번째 이야기 : 버마 1960년 이후 계속해서 네윈장군이 이끄는 군부독재에 의해 신음하고 있는 버마의 민중을 위시한 여타의 다른 6개 종족, 4700 만 명은 군인들의 폭력정치에 의해 모진 고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2월부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된 군부와 아웅산 수지여사, 여사가 이끄는 민주민족동맹당과의 대화는 아무런 진전 없이 막을 내려서 세계는 실망했습니다. 1988년 학생과 지식인들이 주동이 되어 군부종식을 위한 데모와 시위의 결과로 1989년 5월에 민주화를 향한 최초의 평화 선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선거결과 거의 90%의 지지를 획득한 수지여사의 민주민족동맹은 정권 이양대신 더 극력한 폭력을 수반한 군부독재와 맞서야 되었습니다. 수만 명의 무고한 학생 지식인들이 희생되었고, 인도, 태국, 방글라데시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 국외 망명객(한국에도 거주)을 양산하였습니다. 2000명이 넘는 양심수들은 오늘도 어려운 여건의 수형생활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교가 국교로 거의 모든 곳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불교의 스님들은 목숨을 걸고 독재에 항거하였으나 대부분이 투옥되어 이제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군부독재는 첸족, 카렌족, 카틴족들을 강제 이주 시키면서 방화, 강탈, 강간을 일삼고 있으며 타일랜드를 끼고 있는 국경지대에는 유엔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강제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수천 명 의 버마의 소수민족들이 국제 NGO의 구호품에 의존하여 그날그날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방세계들, 특히 EU 그리고 미국, 캐나다 등은 이 군부의 독재를 종식키 위해 경제 재제를 가하고 있지만 아세안의 나라들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들의 기업들은 이 나라의 무궁무진한 자원에만 관심을 두고 군부와 협력을 해서 경제적 투자를 하고 있기에 군부 통치는 가능한 실정입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근 18년간 무저항 평화적인 수단으로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는 재작년 11월 11일 코엑스에서 한국이 주최한 세계민주주의공동체의 국제회의 개막식에 화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버마의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은 가까운 장래에 화해와 평화의 민주주의가 정의의 큰 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더욱 성원해 주십시오”하는 힘찬 메시지는 80개국 대표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현재 미얀마의 민주세력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종국에는 승리하여 평화로운 버마를 건설하리라 확신합니다. 5. 평화운동의 특성 이미 월드컵 기간 중에 우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역동성과 성숙성을 보았습니다만 슬프게 생을 마친 미선·효순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시위 그리고 최근에 전 세계에 보여준 탄핵반대 촛불시위에서 한국의 평화운동의 성숙성을 보았습니다. 또한 이러한 평화운동은 아시아 주변 국가들 그리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 시사한 바가 너무도 큽니다. 지난 달 일본 동경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참석한 저는 유명한 일본 시민운동가에게서 일본은 북한에 대해서 납치된 일본 가족들의 문제를 요구하기 전에 한국, 중국에 저지른 제2차세계대전중의 죄악을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화운동은 일본이 식민지 시절과 전쟁 중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사죄를 요구함과 동시에 우리나라가 베트남 전쟁에서 저지른 죄악을 베트남 국민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재작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천득렁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사과한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민의 위대성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베트남은 1978년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침략하여 1990년까지 12년 동안 식민지 지배세력으로서 저지른 죄를 용서해 달라고 이 두 나라에 빎으로서 평화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닙니다. 평화는 스스로 노력하여 쟁취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화해와 죄의 고백을 동반할 때에 세계적인 연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상생의 연대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가난한 이웃나라들은 자국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탈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선한 이웃이 될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 물결에 힘입어 윤리없는 약육강식의 논리만 설자리가 있기에 환경파괴는 물론 자원고갈을 초래,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의 괴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경제제일주의, 무한경쟁시대,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신자유이론은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모든 나라가 다 일등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21세기의 발전모델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초기에 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20세기에 우리가 했던 일들을 돌아보는 일은 21세기를 설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20세기의 발전모델은 경제성장 위주의 발전을 하나의 모범답안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경제성장수치가 상승하기만 하면 인권유린이나 환경파괴는 정당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후진국들의 경우 경제성장을 위해 사회 안정을 꾀하게 되며(사회 안정은 외자유치의 조건이 되므로) 국가 안보의 논리에서 당연히 인권과 환경 등은 뒷전으로 밀어냈습니다. 이 경제수치 위주의 발전모델은 제1세계와 그들의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제3세계가 공히 공감하는 모델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국제사회, 특기 국제기구들이 부러워하는 나라들이었고, 90년대 후기까지 제3세계 이웃들의 부러움을 사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라는 논리 속에서 성장의 그늘에 묻혀 있는 사람들의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은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이 허구의 발전 모델은 인도네시아의 경우 자카르타의 트리삭디 대학의 4명의 학생이 1998년 5월 12일 독재와 부정, 부패에 항의하는 데모가 시발점이 되어 1천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면서, 6번의 연임과 기나긴 32년간의 독재를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라는 논리로 연명해오던 수하르토 시대의 막을 내리게 했습니다. 이러한 20세기식 발전모델의 붕괴는 연이어 1976년 포르투칼의 500년 식민지에서 독립직전에 인도네시아에 다시 식민지화되었던 동티모르의 야미족들에도 인도네시아의 굴레를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고, 이리얀자야, 아체 등의 독립을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한국도 1997년 12월 IMF 위기가 닥치자 더 이상 경제수치 중심의 발전모델은 빛은 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우리를 더 이상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내놓은 21세기의 발전모델은 인권을 중시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모델을 설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제수치 성장 일변도 대신 인권과 환경을 전제로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21세기의 발전모델은 환경과 인권이 핵으로 구성되는 경제모델입니다. 이 경우에는 21세기와는 달리 외국자본도 안심하고 들어와서 성장을 배가하게 될 것입니다. $20,000시대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삶의 질과 관계되는 평화, 정의, 인권, 환경, 경제성장, 사회보장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성장모델이기에 경제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7. 나가는 말 - 한반도의 평화권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7000만 배달민족은 평화스럽게 살아야 할 천부적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의 비밀회담을 눈치도 채지 못했던 우리들이 그 회담에는 참석도 하지 못한 채 분단되었습니다. 그러한 분단이 59년을 맞았습니다. 그 사이 배달민족의 평화권은 미·소의 냉전논리 속에서 묻혀 버렸고 대치의 정국 속에서 무기를 통한 평화유지라는 착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인권의 새로운 개념인 배달민족의 평화권은 그만큼 침해되어 왔습니다. 1972년 7월 4일의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12월 13일 고위급 합의 문서인 “화해불가침, 협력에 관한 문서”, 그리고 2000년의 6월 15일의 문서는 같은 맥락 속에서 7000만 배달민족이 한결같이 바라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반영한 문서이기에 저는 이 문서들을 민족의 평화적 권리를 규정한 평화문서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이 민족의 평화문서는 그렇기에 남은 남·북의 국내적 정서를 훨씬 뛰어넘어 민족의 한을 푸는 문서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국회의 여·야 관계의 양당의 정쟁의 대상이 아닌 770만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문서로, 여수순천사건, 거창 사건, 제주도 사건들에서 억울하게 죽은 100만 이상의 우리민족의 한을 푸는 문서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이 평화문서는 또 민족의 평화를 추구할 권리의 문서이기에 정권을 초월하여 장기적으로 추진해야할 문서입니다. 독일의 경우 1970년 Willy Brandt의 동방정책 선포 후 1972년 3월, Brandt는 서독 수상으로서 분단이후 최초로 동독의 Erfurt를 방문했고, 그 답방으로 동년 8월 동독수상인 Willi Stopf가 서독의 Kassel에 방문하여 화해 불가침을 규정한 양독일간의 합의인 기초조약이 합의되고, 1975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무력 포기가 선언이 되면서 1990년 10월 1일 양 독일은 통일을 하게 됩니다. 1970년 브란트 수상의 사민당 동방정책은 20년이라는 긴 세월 후 기독교 민주당의 헬무트 콜 수상 시절 통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의 6월 15일의 문서도 정권을 초월하여 장기적으로 꾸준히 실천이 될 때 평화권은 성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국내사정은 민족의 평화권과 국내적 냉전론이 섞여서 혼란을 빚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1972년 문서가 남북에 의해 공히 국내용으로 전락·사장되면서 세계는 안타까워했습니다. 1991년 고위급 합의문서도 그렇게 잘 되어 있는 고도의 평화문서였지만, 불행하게도 빛을 발하지 못하면서 세계는 우리 배달민족에게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2000년 6월 15일 문서는 우리민족의 마지막 기회로 여겨집니다. 이 민족의 평화권이 냉전의 논리로 다시 사장된다면 우리의 자손들은 세계에서 설자리가 없을 것이 틀림없는 사실로 생각됩니다. 민족의 이 귀중한 평화권이 한반도에 정착되어 7000만 배달민족이 전쟁 없는 평화정착을 만끽하도록 오늘 우리 모두가 이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게 되면 동북아 평화는 올 것이며 이는 곧 세계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문헌> Ecumenical News International : WCC/LWF/WARC Geneva, Switzerland Globalization and third world : World Council of Churches, 2003 Central Committee Recommendation. 인권대사가 체험한 한반도와 아시아 : 서울 울림사 2002 년 12 월 United Nation, Human Rights Committee : Recommendation 2002, 2003 NCC Korea : 1988 11월 “분단고착에 관한 신앙고백 문건” UNDP Documents on Sustainable Development 2001 Geneva Reunification and Reconciliation : PARK, KYUNG-SEO,CCA Hong Kong 1997
2017-08-08 | hrights | 조회: 33 | 추천: 0
‘수돗물 철학’이 교육, 의료, 주택에도 적용되어야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4.15 총선 직후 뉴욕타임즈에서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왼쪽으로 이동했다는 평을 했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차지와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만을 놓고 볼 때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N에 가입되어 있는 181개국 중 아직도 한국사회는 가장 오른쪽의 나라일 것이다. 한국사회, 아직 오른쪽에 있다 한국사회가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규범이나 가치, 사회경제적 방식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대표적 인권유린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법률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형법에 규정되어 있다. 우리의 형법도 내란, 외환죄, 간첩죄, 집단소요죄 등 이미 충분히 무거운 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대만마저 국가보안법을 폐지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과 같은 비상하고 특별한 법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 이미 논쟁이 끝난 교사의 노동자성에 대해 10년을 싸워 겨우 특별법으로 노동2권만을 보장받고 있다. 공무원노조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도 한국사회의 특성을 말해준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해 심지어 ‘인종차별’을 운운할 정도다. 화교가 정착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사회가 오른쪽에 치우쳐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권리에서도 확인된다. 우리의 헌법은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필수적이서 당연히 보장해야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열거하고 있다. 법률이나 공권력에 의해 침해하거나 변경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상·집회·결사·양심·표현·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소극적 보장이 아니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옹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는 말일 뿐만 아니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또한 공권력에 의해 상시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 확대 위해 보다 왼쪽으로 가야 이제 인권을 군사독재시절에 유린되고 탄압받던 권리만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권리들을 되찾는 것으로 확대한다면 이를 위해 한국사회는 보다 왼쪽으로 가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 이주노동자의 문제, 돈으로 인한 차별 등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우리사회에는 ‘수돗물 철학’이 필요하다. 수돗물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나 적게 버는 사람이나 기본적인 비용만 부담하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돗물이 이렇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세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돗물을 생산원가보다 싼값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많이 부담하고 있는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득 재분배의 원리이고, 수돗물을 마시는 것으로 재분배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돈이 없어서 물을 마시지 못해 죽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수돗물 철학’이다. 그런데 이미 재분배되고 있는 물과 공기 외에도 교육과 의료, 주택 등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들에도 수돗물 철학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교육비의 본인 부담율이 높아지고 사교육의 확장으로 부가 부를 세습하고 가난이 가난을 세습하는 지금의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교육이 공공서비스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제공되었을 때 비로소 기회의 균등이 생긴다. 이는 의료와 주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사회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론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구시대유물인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 등을 철폐하는 것이다. 둘째, 적극적으로 보장되지 않아서 문제인 장애인 이동권, 성소수자 인권, 이주노동자의 권리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수돗물 철학의 적용범위를 넓혀내야 한다. 이렇게 지금보다 왼쪽으로 가서 181개국 중 가운데라도 서는 것이 인권사회를 위한 길이다. 또한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이념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대체복무제도가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시킬 것 오태양/ 양심적 병역거부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여러 가지 변화되는 사회적 상황들을 겪으며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유일한 30대 병역거부자가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어서 내심 기쁘기도 하다. 병역거부는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생소한 것이었다. 군대문제가 닥쳤을 때도 계속하고 있던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포기할 수 없어 군대문제는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자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던 2001년 신문기사를 통해 병역거부 문제를 만나게 되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나와 비슷한 젊은이들이 종교적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병역거부)하고 있는 숫자가 1만여명 정도 되고, 1,600여명이 감옥에서 생활하고 있고, 또 매년 5~60명 정도가 새롭게 감옥에 간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충격이었다. 또한 같은 종교인이지만 그들을 감옥에 보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심한 부끄러움도 느꼈다. 평화운동가, 종교인으로 부끄러움 느껴 당시만 해도 병역거부자들이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이었기 때문에 이단, 사이비, 광신도라는 편견이 그대로 병역거부에도 반영되었고, 특수 종교집단의 집단이익 내지는 맹신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이를 보면서 스스로 종교인으로 가졌던 내면적 고민이 병역거부에 대해 종교적 신심을 이단, 사이비라는 단어 몇 개로 규정하고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밀어 넣고 박대하는 현실을 만나면서 적어도 이들을 감옥에만은 보내지 말아야겠다, 감옥으로 보내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군대, 평화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오히려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총을 드는 것이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평화운동과 불교인으로서 가졌던 신앙심에 배치되는 것은 아닌지, 군사훈련은 결국 북한동포를 죽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다가왔다. 고민 끝에 결국 평화에 대한 확신과 동포에 대한 사랑, 종교적 양심에 따라 총을 들지 않는 것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감옥 등 병역거부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어서 당시에 병역거부자들에게 3년형이 선고되었던 상황을 생각해 3년 후에 평화운동을 다시 계속하겠다는 각오도 가졌었다. 당시에는 병역거부에 대해 활동가들조차 병역기피가 아니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시각이 있었지만 결국 2001년 12월 17일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되었다. ‘누구는 양심적이고 누구는 비양심적인가’라는 왜곡된 시각도 많이 줄어든 것 같고, 이제는 병역거부 자체에 대한 얘기보다는 대체복무의 현실화 문제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간 듯 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대체복무제도는 한국을 인권국가로 만들 것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는 새로운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의 문제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이것이 가진 사회적 기여도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우선은 인력이 부족한 사회복지분야에서의 인력확보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남북화해와 평화를 정착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에 대한 보호는 그 개인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체복무제도 인정은 사회전반에 걸친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다. 또한 남북한 대치상황이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있지만 독일은 전쟁 중에 병역거부자를 인정했고, 이스라엘, 대만 등도 인정되고 있다. 즉, 대체복무가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것은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일 뿐이다. 그저 관성적인 거부감일 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이의 현실화를 위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은 한국사회를 한걸음 더 인권국가로 만드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 오태양씨는 이 강의를 마친 닷새 뒤인 8월 30일 법정구속되었습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6 | 추천: 0
제국주의 해체하는 백혈구로써의 인권운동 -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우리는 통일에 대해 민족사적 과업, 성취해야 할 기본적인 명제로만 알고 있고 진정한 통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듯 하다. 대게 통일을 분단된 땅덩어리, 분단된 조국강토를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남북통일이라고 하는데,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의 남북통일은 미제국주의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침략을 전면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먼저, 얼마 전 한미은행이 미국의 시티은행에 3조 8천억에 팔린 것에서 보여주듯 지금에서의 통일은 온 한반도를 미국의 금융자본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미국의 첨단무기들이 도입되고 있는 것처럼 이런 무기들을 앞세운 미국의 군사제국주의가 한반도를 뒤덮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생활 곳곳에서는 홈메이드푸드니, 웰빙이니 하는 것처럼 영어를 무분별하게 쓰고 있고 미국식 문화에 익숙해 있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 이에 대한 대책 없이 통일을 하는 것은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질서에 재편되는 것이다. 아울러 지금 남쪽의 30대 기업의 매출고가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5%인데, 이는 30명이 남쪽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벌들 5%가 그 남쪽 땅의 50%를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은 한반도 전체를 돈 가진 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노동자 서민의 통일이 되어야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나는 ‘똥찌’라고 한다. 이 똥찌는 일을 하지 않고 게을러서 똥꾸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일을 해도 살 수 없고, 일할 데도 없는 것이다. 그 똥찌가 자그마치 남쪽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똥찌가 할 수 있는 것은 굶어 죽거나, 굶어 죽을 수 없으면 강도질 하는 것 밖에는 없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지만 비정규직, 반실업자가 지금 800만명을 넘고 있고, 멀쩡하게 일자리를 갖고 있던 사람도 쫓겨 나는 상황인데 똥찌가 일할 데가 있겠는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절대빈곤층이 전체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고 했을 때 그 것은 우리민족의 양심적인 노동자 농민 서민의 통일이 아니다. 왜정 때부터 부패부정을 하던 민족반역자들의 범죄를 합리화시켜주는 그런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진짜 민족적인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양심적인 시민들이 주도하는 통일이 되어야만 한다. 진보란 제국주의 해체를 위한 백혈구 장기수들이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고 때리고 죽이고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전향서를 쓰지 않고 버틴 것은 인간의 타고난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 것이다. 따라서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라고 한 의문사위의 판정에 대해 ‘빨갱이 새끼들이 무슨 인권이 있냐’고 비난하는 작태는 한심한 모습이다. 지은 죄가 있으면 처벌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그 걸 가지고 사람의 모든 모습을 평가해선 안된다. 송두율 교수에게 국가보안법의 멍에를 씌우려고 하는 나라가 인권이 있는 나라인지 의문스럽지만, 인권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해방 이후부터 온갖 범죄를 통해 한반도를 유린해 온 미군을 몰아내고, 노동운동이 보다 자유롭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진보란 제국주의의 해체를 위한 백혈구다. 그게 아니면 우파기회주의에 빠지기 쉽다. 시민운동이 남한에서 가장 위기에 빠져 있는 똥찌들,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일 뿐인 것이다. 우리의 인권운동이 자신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에만 국한되지 않고 총체적인 인권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 총체적인 인권운동이라 함은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군사문화에 대응하는 백혈구같은 문화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 것이 통일을 대비하는 진정한 인권운동의 모습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6 | 추천: 0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가치있게 사는 것 - 노동조합의 영역은 더욱 확대될 것- 20년이 넘도록 노동현장을 발로 뛰며 노동자들과 애환을 같이 한 사람이 일반시민들을 만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6월 23일 20차 수요대화모임에서 만난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이 이런 의문에 답을 주기에 적당한 인물일 것이다. 그는 지난 20여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교육과 상담을 진행해왔고, 때로는 파업현장에서 지원군이 되기도 했다. 그를 두고 일년 365일 중 300일을 현장에 나가 있는 사람이라는 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 그가 수요대화모임에서 던진 얘기는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며, 최근들어 대기업 노조를 바라보며 집단이기주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요즘의 상황은 80년대보다 훨씬 노동운동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정규직의 기득권을 낮추자는 얘기는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길이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다른 사람의 권리가 지켜져야 나의 권리도 지켜질 수 있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소장은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상적인 역사발전이 식민과 분단으로 불가능해지면서 노동에 대해서는 희생만이 찬양되었다”고 지적한뒤 “노동자의 기본권이 유린된만큼 수구 보수세력이 반대급부로 잇속을 챙겨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김선일씨 피살 이후에도 파병강행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있는 노무현정부에 대해서도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소장은 교육에 대해서도 “한국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임에도 교육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는다”며,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어려서부터 제대로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하소장은 시민법과 사회법의 차이를 설명하며, “노동법은 불평등하게 적용함으로써 평등을 구현하려는 대표적인 사회법”이라며, “우리나라는 노동법을 필수과목으로 가르키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회법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압류나 특수고용직노동자의 근로자성 등의 판결에 대해 “사회법을 공부한 적 없는 판사가 노동관련 재판을 진행하고 있어 이를 시민법적 관점에서 판결하고 있는 것이다”고 사법부를 꼬집기도 했다. 하소장은 비정규직노동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IMF(국제통화기금)도 비정규직을 줄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심각하게 왜곡됐다”며, “비정규직을 줄이고,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자성의 인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주장했다. 하소장은 “지금은 일부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동조합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는 시기가 아니”라며, “노동조합의 영역도 판사, 의사 등으로 계속 넓어질 것이다”고 희망을 나타냈다. 그는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는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공무원노조 결성 등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고, 2~50년을 걸릴 줄 알았다”며, 죽기전에 반드시 통일이 되고, 노동자정당이 집권하는 때가 올 것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꿈을 수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하소장은 강의 중 자신이 상담과 교육을 진행했거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위원으로 있으면서 만난 노동자들의 억울하고 비참한 사연을 소개하며 자주 눈시울 붉혀 노동자에 대한 그의 강한 연대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정보 불균형이 이슬람에 대한 오해 만들었다. “이라크 전쟁, 미국의 무모한 침략전쟁” - “파병,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이라크에서의 종전을 선언했던 당초의 주장과는 다르게 무장세력에 의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고,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의 고문이 폭로되면서 부시정권이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에서 이라크전쟁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19일 인권연대 5월 수요대화모임 강사로 나선 이희수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는 이슬람과 미국 등 서구와의 정보 불균형을 지적하면서, 이라크 전쟁을 통한 미국의 음모가 무엇인지를 거듭 확인해 주었다. 이교수는 Islam(이슬람)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평화를 담고 있음에도 이슬람교가 호전적 종교로 비춰진데 대해 “‘한손엔 칼, 한손엔 꾸란’이라는 인식을 갖게된 것은 서구의 반이슬람 이미지메이킹이 큰역할을 했다”며, “이슬람과 서구의 정보 불균형이 오해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9.11테러가 우리사회에 준 영향을 “50년동안 미국에게만 맞춰졌던 안테나를 변화시키는 계기였다”며,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정리했다. 이어 그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때 내세웠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 보유가능성, 9.11테러의 배후인 알 카에다와 연계 가능성, 이라크 해방과 민주정부 수립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교수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은 이미 전문가들과 조사담당자를 통해 입증되었다”고 비판한 뒤, “후세인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알 카에다에 의해 제거대상 1호였다는 점은 연계 가능성의 허구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 포로 학대에 대해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가족 중에 죽지 않은 이라크인이 없을 정도로 이라크 내 반미감정은 회복될 수 없는 것이다”며, “친미정권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서 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슬람교는 부자간에도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며,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이 인정되기도 한다”며, “성학대는 영적인 살인이며, 이슬람을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초기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결론적으로 “이라크 전쟁은 9.11 이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미국 시민들을 치유하기 위한 무모한 도발이었다”며, “거짓 정보와 거짓 명분으로 미국시민은 물론 지구촌 전체를 우롱한 전형적인 침략전쟁”이라고 단정지었다. 아울러 계속되는 저항에 대해서도 “조국을 빼앗긴 자의 저항을 테러라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읽고 그게 걸맞는 대안을 찾지 않으면 이라크 점령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한국의 파병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포탄 한 발 떨어지지 않은 쿠르드지역에 재건부대 파병은 우스운 일”이라며, “명분없는 전쟁참여와 또 다른 외교적 분쟁을 낳을 수 있는 파병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교수는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대선 이후 미국의 이라크 정책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부시가 낙선되어도 근본적인 정책변화는 힘들 것이고, 다만 UN을 통한 다자간 협상으로 바뀔 것이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교수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자살폭탄공격을 하는 사람의 95%가 대학 학력자이고, 이중 20%가 여성이다”며, “아무런 목적없이 조국을 위해 빼앗긴 자의 저항을 테러라고 하는 것은 서구인들이 만들어낸 논리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수요대화모임 지상 중계>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2004년 5월 19일) ☜ 클릭 <이희수 교수 강연록> - 이라크 전쟁과 이슬람 문화의 이해 - 신임 스페인 대통령의 이라크 철군 발표와 11월 미 대선을 앞둔 부시의 올인 선거전략과 맞물려 이라크 사태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무엇보다 2만명 가까운 무고한 생명를 앗아간 참혹한 전쟁이 당초의 명분을 거의 모두 상실한 채, 가진 자의 애매모호한 궤변으로 전쟁이 지속되는 기가 막힌 약육강식의 힘의 정치에 인류는 절망하고 있다. 인위적인 중동에서의 질서재편이 겉보기에는 아랍의 민주화 압박과 개방을 유도하리라는 순기능이 기대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뿌리깊은 반미감정이 아랍인들의 가슴 깊숙이 다시 한번 각인되어 대를 잇는 복수와 증오의 몸부림이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미국을 향해 그렇게 무모하게 보이는 저항을 계속하는가?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지고 이슬람 세계에서 과연 종교적 가치의 본질과 가르침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왜곡과 허구인가? 1. 이슬람과 우리 그리고 세계 9.11 사태 이후 또 다시 폭력의 전면에 이슬람이 등장한다. 세계분쟁지역의 대부분에 직접 간접으로 이슬람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이라크에서의 반미저항과 무차별 진압으로 이슬람권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두 가지의 흐름이 함께 흐르고 있다. 이슬람의 과격성과 폭력성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높아지는 한편 이슬람 문화를 우리의 시각에서 올바로 이해하자는 움직임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슬람의 가르침이 평화와 평등에 두고 있음에도, “Islam(이슬람)”이라는 단어의 의미자체가 평화를 담고 있음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와 거리가 먼 종교처럼 이슬람이 비춰지게 된데는 이슬람권 내부의 문제도 없지 않겠으나, 서구의 조직적인 반이슬람 이미지 메이킹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과연 이슬람이 어디까지 테러와 폭력주의와 연결되어 있을까? 이슬람의 교리에 그러한 구절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현실적인 적용을 하는 것일까? 21세기 글로벌시대 이슬람은 과연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면서 저항만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한번 정리해보자. 지구촌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개의 세계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느 양쪽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가진 또 다른 인식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슬람세계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를 중양(中洋)이라 표현하자고 주장한다. 세계 4대 고대문명권의 3개(이집트-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가 이슬람 세계에 속해 있고, 기독교보다도 힌두교보다도 불교보다도 많은 13-15억이라는 세계 최대의 종교인구를 갖고 있는 세계, 유엔에 가입하고 있는 정회원국만 57개에 달하는 거대한 문화권을 우리는 지난 50년간 무지 속에 방치해 왔다. 전근대적이고 후진이라는 낙인을 찍어, 물질가치의 오염에 젖은 사고방식과 인식체계의 1차적 희생물로 삼아 왔다. 오랜 단절 끝에 우리가 다시 이슬람 세계를 만나게 되는 시점은 1970년대 초였다. 이미 우리 산업구조가 거의 완전한 석유에너지 체제로 바뀌고 난 후였다. 예나 마찬가지로 그들은 석유라는 물품을 주는 교역대상자로 파악되었다. 원유의 70%이상을 의존하는 경제파트너이면서도 너무나 도도하고 건방지게 산유국을 대했다. 중동 산유국의 건설시장에 연인원 100만명 이상이 진출하여 막대한 외화수입으로 100억불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음에도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서구문화 일변도의 가치관이 가져다 준 난치병의 후유증을 지금 심하게 앓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런가? 첫째,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한번도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슬람과 이슬람사회를 들여다 볼 기회의 창을 가져보지 못했다. 둘째, 이슬람세계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적대적 이해당사자인 유대와 미국중심의 언론과 정보를 통해서만 아랍이나 이슬람의 문제를 인식하고 판단해 오는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양산된 오류와 편견의 구조적 양산이다. 셋째, 이번 9.11미국테러사건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일부 급진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와 폭력행위를 전체 이슬람의 모습으로 이미지메이킹해 가는 서구의 홍보전략을 거의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는 문제이다. 넷째, 이슬람과 아랍을 동일시하는 초보적인 상식의 오류가 지적사회에까지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이슬람은 서구가치체계와는 달리 정교일치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2. 이슬람의 특징 마호메트의 탄생과 이슬람의 등장은 20세기에 걸친 세계사의 가장 극적인 사건의 하나였다. 한 인간에 의해 완성된 종교가 놀라운 역동성으로 지극히 짧은 기간에 인류사회에 이토록 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특히, 최근 소련연방의 붕괴와 사회주의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전세계 14억 이슬람인들은 남다른 승리감을 맛보았다. 자본주의의 퇴조가 조만간 예견된 상태에서 이슬람의 가치틀이 21세기 인류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선험적인 확신 때문이었다. 이슬람교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성경상의 많은 선지자들을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에 의해 보내진 마지막 예언자로서 앞선 복음의 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곡해되고 변질된 신의 진리의 말씀을 바로잡고 완성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본다. 따라서 꾸란은 모세오경, 시편, 복음서 등 앞선 경전들의 내용을 순화, 보완해 주거나 확증해 주는 최후의 경전이 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종교는 이슬람으로 완성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3. 오해받는 이슬람 1)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 일찍이 서구인들이 이슬람인들에 의한 단시일의 정복사업을 소위 “한 손에 꾸란, 한 손에 칼”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슬람의 호전성과 강제전파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확산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위기감에서 만들어진 용어에 불과하다. 오히려 개종하게 되면 인두세나 토지세 등의 일부가 면제되었음으로 정부는 국가수입의 증대를 위해 피정복민의 개종보다는 공납을 요구하였다. 2)일부다처 문제 이슬람의 기본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이다. 다만 전쟁과 기근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다처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평하게 대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결혼을 할 것이니, 너희가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둘, 셋, 넷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면 한 여인으로 족하니라....”(꾸란 4:3) 3)차도르, 여성할례와 여성억압 기제 이슬람의 차도르는 정숙함의 상징이다. 외간 남자들을 자극하여 정숙함을 잃지 말라는 꾸란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따라서 얼굴까지 가리고 남성과 눈길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공개적인 처벌을 받는 극단적인 일부 이슬람사회의 행태는 이슬람의 본질적인 가르침에 근거하지 못한다. 여성할례는 이슬람의 가르침과 관련없는 아랍의 토착적 관습이다. 남성할례가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는 가르침에 비추어 신체의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부분을 정화한다는 의미을 담고 있지만, 여성할례는 그러한 의미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4. 거짓 명분으로 시작된 전형적 침략 전쟁 전쟁은 무릇 선과 악의 함수관계다.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다. 악을 다이나믹하게 극대화해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는 강자의 특권이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도 그랬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9.11 테러로 미국을 공격한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고 테러단체들을 지원해 왔으며, 수십만의 자국국민을 살해한 용서받지 못할 독재자를 제거함으로써 이라크 국민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이라크의 민주화, 나아가 왕정과 독재정권에 신음하는 중동전체의 민주화 도미노를 꾀하겠다는 것이었다. 9.11 테러로 이미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 미국 시민들은 이라크의 놀라운 죄목들에 경악했다.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끊임없는 테러 공포에 시달리던 그들에게 알 카에다를 비호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것으로는 치유가 되지 못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오리무중이고, 오랜 내전으로 거의 초토화되어 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 흙벽돌 건물을 공격하면서 무고한 시민들만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미국 시민들도 아프가니스탄은 적절한 희생양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이라크가 선택되었다. 이미 이라크는 9.11 테러 직후부터 부시 행정부 매파 관료층인 소위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약칭)들로부터 공공연히 다음 공격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적절한 기회와 그에 걸맞는 명분 쌓기가 조직적으로 시작되었다. 부시행정부가 9.11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 했다는 거센 비난이 일고 있는 이유다. 대기업들이 소유하는 언론들은 앞장서 이라크 침공을 외쳤다. 전쟁을 시청자의 관심을 묶어두면서 평균 30% 이상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전쟁 명분은 거의 완전한 허구였다. 이라크가 유엔이 정한 기준을 초과하여 국제사회를 위협할 생화학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10여년에 걸친 유엔의 무기사찰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특히 걸프전쟁 직후부터 시작된 12년의 경제제재로 이라크는 그러한 여력이 없었고, 미국과 영국에 의해 자국 영공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일방적으로 지정되어 모든 군사시설과 이동이 감지되었고, 의심나는 시설은 시도 때도 없이 무수히 폭격을 당했다. 거의 모든 중동 전문가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고, 무엇보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2004년 2월, 부시가 가장 신뢰하는 이라크 사찰무기 팀장인 데이비드 게이 박사의 의회 양심선언에 이르렀다. 자신의 과학자로서 양식에 비추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중동 전문가들이 상식처럼 알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는데 전쟁이란 최후 수단이 이미 동원된 후 10개월만의 일이었다.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와의 연계 주장은 한 편의 코미디같은 억지였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사담의 이라크 바스당 사회주의 정권은 철저한 이슬람 박해로 악명을 날렸다. 세속주의와 사회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이슬람 종교지도자에 대한 암살과 투옥, 종교적 박해는 극에 달해 사담 후세인은 전세계 이슬람주의자들의 오랜 공적이었다. 나아가 남부 다수 시아파에 대한 차별과 종교적 탄압은 순니파와 시아파를 망라한 총체적 적의감을 고조시켰다. 사담 후세인은 일찍부터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사악한 지도자’로 타도 대상에 올라있는 반이슬람적인 독재자였다. 이라크 침략 전쟁의 공식 명칭은 “이라크 해방 전쟁”이었다. 젊은 미군들은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고통받는 이라크 국민들을 구한다는 투철한 전쟁명분으로 참전했다. 이라크 진격 첫날부터 그러한 명분은 철저한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미군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성조기를 흔들며 거리를 뛰어 다니던 아이들과 만나면 손을 흔들던 일부 시민들의 행동은 침략자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적 보호의 제스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미군을 진정으로 반기는 환영의 분위기는 없었다. 곧 바로 두렵고 끈질긴 저항의 자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이 비굴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체포되는 장면을 보았으면서도 미군에 대한 저항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후세인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침략자인 미국을 이 땅에 머물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이라크인들의 확고한 애국심 앞에 미국은 고전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이번 침략을 이라크 해방 전쟁이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게 되었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거짓 정보와 거짓 명분으로 미국시민은 물론 지구촌 전체를 우롱한 전형적인 침략전쟁이었다. 이를 잘 아는 미국의 오랜 맹방 유럽과 전세계 시민들이 전쟁을 반했지만, 심지어 유엔의 결의안이라는 인류가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마련해 놓은 최소한의 규범까지도 하루아침에 벗어던지고 전쟁을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악의 축을 응징하는 의미있는 전쟁일지 몰라도 지구촌 전체에게 이번 전쟁은 더럽고 추악한 전쟁일 뿐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정부와 국민이 동시에 지지한 나라가 미국뿐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새겨야 한다. 그러한 전쟁에 미국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한 일부 국내언론과 정치인, 국익을 내세우며 놀아난 한심한 외교관리들의 무능과 시대착오적인 발상에도 경종을 울려야 한다. 5. 9.11 테러와 부시 야욕의 희생양 지금 미국 사람들은 테러 공포에 휩싸여 있다. 9.11 사태가 준 충격은 집단 히스테리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불안상태에서 미국사회는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상태가 이슬람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를 부추켰다.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유엔 무기사찰단에 의해 현재 개발하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음에도, 미국은 세 가지 가능성의 삼단논법을 내세웠다. 즉, 이라크가 향후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고, 그 무기가 테러조직에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으며, 테러 조직은 그 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과연 지구촌의 어떤 나라가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 억지논리가 미국사회에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지구촌의 비극이다. 또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을 스탈린과 히틀러에 버금가는 학살자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란-이라크 전쟁 직후 북부에서의 쿠르드족 봉기에 화학무기를 사용해 수만명을 학살하고 남부 바스라 지방의 시아파 봉기에 대한 잔학한 탄압을 부각시켰다. 미국은 당시 이 사건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미국에게 쿠르드의 희생은 얄팍한 인도주의적인 동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중동에서의 자국이익 보호를 위해 전통적으로 미국 행정부는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을 묵인하거나 간접 지원해 왔다. 터키정부나 이라크 정권의 쿠르드족 탄압은 철저한 미국의 군사원조 아래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20세기말의 대혼란과 쿠르드 학살의 현장은 미국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다른 참상에 비하면 인도적인 지원도 매우 미미한 편이었다. 따라서 쿠르드족 봉기 탄압을 빌미로 후세인을 세기의 학살자로 응징하겠다는 미국의 명분은 너무도 뻔뻔하여 지성인의 말문을 닫게 한다. 이라크 침략 전쟁은 부시 행정부의 의중 속에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알 카에다와 후세인의 연계설을 공개적으로 내비치며 이라크 공격을 이미 그 때 마음먹고 있었다. 결정적인 전쟁 명분과 증거찾기에 골몰하던 미국의 무리한 몰아부치기 때문에 1998년 유엔무기사찰단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무기사찰의 댓가로 풀어주어야 하는 이라크에 대한 금수해제조치는 미국의 비토권 행사로 번번이 거부되었다. 생필품과 기초 의약품, 심지어 연필과 볼펜마저도 심 속에 화학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100만 이상의 고귀한 생명이 죽어나갔다. 그 중 절반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지구촌 최악의 인권문제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무고한 생명이 죽어나가는 이라크였다. 지금 이라크인들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 인명을 죽인 주범은 바로 미국이라고 믿고 저항을 계속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 미국의 1차적 목표는 테러위협으로 불안한 미국사회의 집단 강박증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병리학적 고단위 처방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아무런 저항능력도 없는 폐허의 땅 아프가니스탄을 무차별 공격해서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만 양산하고 오사마 빈 라덴이 활개치도록 내버려 둔 전쟁을 승리로 자축하면서, 이번에는 보다 확실한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9.11 테러 직후,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배후에 이라크가 있다고 지목하고 그 때부터 이미 이라크전쟁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마련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라크와 중동에서의 분위기는 미국의 희망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전세계가 갖고 있는 무기를 왜 이라크만 갖지 못해야 하는가? 이라크가 핵무기를 소유하지도 개발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사찰단에 의해 확인되고 미국내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무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이 공격용이냐 방어용인가는 전적으로 자의적인 판단에 따를 뿐이다. 그리고 이라크가 갖고 있는 재래식 무기로 미국을 위협한다는 것은 억지이고 과장이다. 지구촌의 절대 다수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로 미국을 압도적으로 많이 꼽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결국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지 않고, 미국을 위협할 능력도 그러한 의사도 없는, 더욱이 이라크의 공격으로 단 한 사람의 미국인에게도 위해를 가한 사실이 없는데도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한 것이다. 선제공격이란 희한한 논리를 내세우며. 결국 불행한 이라크 민중들은 부시의 재선가도와 9.11 테러공포증을 치유해주려는 미 행정부의 무모한 도발로 21세기 벽두의 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6. 반복되는 약자의 저항과 독재의 악순환 이라크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을 위한 해방전쟁이라는 미국의 거창한 구호는 어느새 꼬리를 감췄다. 이라크 국민들은 혼신을 다해 미국에 저항하고 있다. 후세인이 좋아서도 그를 다시 권좌에 앉히기 위해서도 아니다. 신성한 조국을 침략한 미군을 몰아내기 위해 저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테러도 아니고, 종교적 이데올르기에 팔려간 정치적 집단의 저항도 아니다. 외국인에게 점령당한 자신의 조국을 되찾아야 된다는 몸짓일 뿐이다. 나라를 뺏기고도 아무렇지 않게 점령군을 환영하는 민족은 이미 혼과 정신을 잃은 희망없는 족속일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저항을 테러나 후세인 잔당들의 발악쯤으로 폄하하려는 미국의 심정은 측은하기만 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함께 춤추며 날뛰는 우리 언론이다. 물론 모든 악조건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춘 가공할 적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통상의 교전 방식으로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저 몸을 바쳐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던져 침략자에 맞서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자신들을 지원하는 누구의 도움도 아쉬울 것이다. 반미에 들끓고 있는 외부의 이슬람 무장조직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라크에 몰려든다. 이라크 민중들의 환영과 보호를 받으며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조직적인 저항을 계속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 누구의 지원을 받으며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이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읽고 그에 걸맞는 대안을 찾지 않는 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7. 사담 후세인 체포와 미국의 새로운 딜레마 사담 후세인의 체포로 이라크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으나, 저항과 자살공격은 끝간데 없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을 더욱 초조하게 하는 것은 후세인의 제거로 이라크가 전쟁 이전 보다 더욱 혼미스럽고 자칫 내전상태로 치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반대하던 많은 중동전문가들이 우려하던 결과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순니파와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시아파, 북부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결코 만만치 않는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쿠르드족과 투크르멘족 등을 하나의 깃발아래 묶을 수 있는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현재로서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허수아비 전위대로 구성한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미 그 역할을 포기한지가 오래고, 미국이 점찍어 놓은 찰라비 같은 인물도 또 다른 독재권력의 꿈에 젖어 있어 그를 대안으로 선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이라크가 무너지더라도 걸프연안에서의 미국의 안정적 교두보를 확보해서 유가를 비롯한 전략적 이해를 굳건히 지키겠다는 구상도 쉽지 않아 보인다. 테러를 응징한다며 시작된 이라크 전쟁으로 사실 중동에서 테러와 거의 연계가 없었던 이라크를 중동의 새로운 테러 무대로 바꾸어 놓았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점령자를 몰아내자는 이슬람권의 반미 공감대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테러집단들이 대거 이라크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후세인 체포로 저항이 수그러드리라는 당초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가장 강력한 반미 테러의 교두보를 이라크에 마련해 준 셈이 됐다. 중동에서의 테러는 주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이었다. 미국이 그 배후에 있지만, 뚜렷한 직접대상이 없어 대미테러는 한계를 가졌었는데, 이제 그들은 물을 만난 것이다. 중동 한복판에 미군이 국제법을 어기고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은 명분과 여론 지지에서 테러집단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호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후세인 시대를 그리워한다든지, 그의 잔존세력이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복귀하리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거짓 시나리오다. 그들은 결코 후세인을 지지하지 않는다. “후세인이 싫지만, 미국이 더 싫기 때문에 저항하는 것이다.” 후세인 제거에 대한 환호가 미국의 점령을 수월하게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미국은 처음부터 간과해 왔던 것이다. 명백한 침략을 전세계의 반대를 무릎쓰고 이라크 해방이라고 우기며 시작한 전쟁 때부터 이미 예고된 바이기는 하지만. 8. 한국의 파병과 중동의 정서 그럼 이미 파병을 결정한 우리에게 이라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무엇보다 우리 민족이 키워온 오랜 역사적 사명감을 이러한 명분없는 전쟁의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역사의 더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 면밀한 분석과 설득력없는 형이상학적인 막연한 국익논쟁도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이라크 파병이 한-미동맹의 문제만인가? 중동국가들은, 또 국민들은 이번 파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장기적으로 국가신인도나 경제시장 개척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지? 더욱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한 목소리로 반대를 하고 있는 동남아 이슬람사회의 한국 이미지 요인도 고려를 해야 한다. 파병을 위한 준비부족, 파병지 선택에 있어서는 최악의 고려 등등 이미 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추상적인 국익보다 잃어야 할 것이 분명하고 너무나 많은 이 문제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자. 9. ‘이라크인에게 이라크를’ 과연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가? 이라크는 수렁에 빠졌다. 미국이 쉽게 이라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일이고 보면, 이라크의 장래는 지금보다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많은 전문가들이 걱정하고 있다. 이라크는 기본적으로 복합사회다. 1932년 이라크를 독립시키면서 영국이 만들어 놓은 통치전략의 불행한 결과다.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쿠르드 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를 통치하고 있던 터키에게 석유 이권을 박탈했다.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혁명 성공 이후에는 반미노선이 뚜렷한 이라크 다수 시아파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게 순니 소수정권인 사담 후세인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왔다. 이라크 북쪽에는 또 터키계인 투르크멘 집단이 자신들도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 다양한 이질적인 집단을 조정하면서 이라크 국가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첫째는 이슬람의 공통적 가치, 반미라는 강력한 연대의식, 후세인 정권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독재였다. 그러한 후세인의 독재를 지지해주고 심지어 강화시켜준 배후에는 항상 미국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 왔다. 조만간 이라크는 미국의 식민통치에서 미국의 조정을 받는 과도정부로 다시 서서히 민주국가로 거듭나리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과정에서 겪어야 될 돌발변수가 너무나 많다. 우선 다양한 집단들의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고 이끌어 갈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쿠르드의 자치와 독립에 대한 것도 터키와 이란, 시리아 등 주변국가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다. 시아파 중심의 정권도 민주적인 절차에는 부합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밤잠을 설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언제 바로 이웃의 이란과 연계하여 미국의 이익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에서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의 고집은 자칫 이라크 국가 통합을 해치고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레바논에 버금가는 내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미 미국은 예배보는 사람들을 향한 모스크 폭격과 유일한 친미 협조 세력인 시아파까지 포기함으로써 내전을 통해 이라크를 혼란에 빠뜨리고 원격통치를 통해 석유자원을 통제하고 나아가 이란을 압박하겠다는 분명한 전략적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시나리오를 알면서 파병을 하겠다는 무모함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6월 30일 민정 이양 이후 미군 위주에서 유엔주도의 국제평화군으로 대체하고, 국제법과 규범을 존중하면서 이라크를 재건하고, 국가테러의 주범인 이스라엘 정권을 강력하게 압박하여 팔레스타인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하는 것이 또 다른 사담 후세인을 막는 첩경일 것이다. 10. 이라크 전쟁이 가져다 줄 변화 미국의 부당한 이라크 침공으로 중동전체 민중들의 반미정서는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각인되었다. 침공 명분뿐만 아니라, 침공 과정에서의 민간인 살상, 점령 후의 오만한 강공책과 이슬람 정신유산에 대한 경시, 전직 지도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 등으로 막연하고 관념적인 반미정서가 보다 구체적이고 목표가 뚜렷한 반미 운동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는 이슬람 강경세력을 자극하여 테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일반적인 분석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동시에 인근 아랍국가 지도자들에는 심각한 교훈이 되었다. 미국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며, 비민주적인 독재자의 과오와 몰락에 대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면전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아랍국가의 민주화에 촉매제가 될 것이다. 특히 석유로 부를 축적한 산유국 왕정국가들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미국에 의존해 왔던 이들 정권에 대한 반미적인 민중들의 저항과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회제도가 활성화되고, 사법 제도의 개혁, 여성의 사회진출 등이 단계적으로 허용될 전망이다. 여성의 운전조차 허용하지 않는 사우디의 변화는 곧 아랍전체의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