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주류와 인권 김두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의는 <우익청년 윤성호>와 <두근두근 시국선언> 두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랜만의 강연이다. 능력은 부족한데 일이 많아서 이런 식의 강의는 늘 거절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인권연대에 엮였다. 물론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왔다. 인권운동을 하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로 살려면, 정해진 것 이상의 논문을 써야 한다. 그런데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에 몇편의 논문을 실어야만 하는 지금의 시스템에는 영 적응하기 어렵다. 학술 논문이란 게 기껏해야 쓰는 자신과 마누라, 그리고 ‘저 놈, 두고 보자’하고 벼르는 사람 정도만 읽는 글이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조금만 바꾸자고 생각했다. 겨우 몇사람만 보고 마는 글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약간이라도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작업은 그동안 진행했던 몇권의 책을 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김두식 교수는 2004년 <헌법의 풍경>을 쓴 이후,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를 썼다. 내가 무슨 전문적인 고발꾼도 아닌데, 법조계와 한국 교회의 내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을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강한 비판은 없었다. 센 비난이 좀 있었지만, 그건 대개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여기 오신 분들도 그럴 것 같은데, 내 책을 읽든, 이렇게 아주 가끔 강연을 할 때 모이는 분들은 대개 비슷한 분들인 것 같다. 책이든 강연이든 나를 찾는 분들은 대체로 내 이야기에 동의할 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아무리 거창한 이야기를 해도, 그건 ‘찻잔 속의 태풍’일 가능성이 높다. 변화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 나와 전혀 딴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관계맺고 소통하는데서 시작될 수 있다. 최근에 낸 <불편해도 괜찮아>를 보고 몇분이 지적한 것처럼 나는 어떤 면에서 보면, 주류로서 살아왔다. 하지만 난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통해서 친해질 수 있고, 이야기를 통해 변화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불편해도 괜찮아>도 이야기의 힘을 믿고 쓴 것이다.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으려고 쓴 것이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까놓고 이야기하다보면 어쩌면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어디선가 굴러온 사람 취급을 했다. 내 말이나 글의 내용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그런 식으로 비난할 땐, 사실 할 말이 없다. 응대하기도 어렵고, 응대할 생각도 없어진다. 그맘때 윤성호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윤 감독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약간의 삐딱함을 보여주면서도 주류로 남고 싶은 마음도 숨기지 않는다.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어떤 힘이 느껴졌다. 윤 감독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윤성호 감독처럼 나도 늘 내가 우익인지, 좌익인지 고민하고 있다. 남들은 나를 복음주의자, 평화주의자, 다원주의자로 비판한다. 말이 좋아 다원주의지, 사실 열심히 믿는 사람들에게 다원주의자란 사탄이란 말과 동의어쯤 된다. 약간 부드러운 표현 정도일 뿐이다. 나는 그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다. 좌익을 옹호하기만 해도 좌익으로 취급받는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좌와 우가 어떻게 나뉘는지도 의문이지만, 난 그저 교회 열심히 다니고, 예수 잘 믿으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정부가 북한의 트위터 계정을 막는다고 호들갑을 떤다. 국민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생각보다 탄탄하다. 만약 ‘어버이’들이 광화문에 가스통과 함께 인공기 들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웃기는 모습일 거다. 그러면 그냥 웃고 끝내면 된다.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나는 오히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다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인권이 보수정권에서 획기적으로 신장되는 그런 모습 말이다. 2004년에 경험한 것처럼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들고 나오면 난리가 난다. 그게 아니라, 한나라당의 홍준표, 주성영 의원 같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래도 ‘어버이’들은 반발하겠지만, 실제로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그 어버이들도 걱정할 건 없다. 그분들이 어딜 가시겠나, 진보정당이나 민주당으로 갈 수도 없으니, 그냥 도로 한나라당을 지지할 거다. 미국에서도 중요한 인권정책의 진전은 공화당 정부의 몫이었다.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는 차별이라고 결정한 브라운 대 토피카교육위원회 사건은 연방대법원의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에서 1964년에 시민법이 통과된 것도 공화당의 역할이 컸다. 만약 한나라당이 미국의 공화당처럼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고 인권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글쎄 아마 30년쯤 장기집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나라당 정권이 실질적으로 집행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사형제도 자체를 없애버리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도 인정하면 어떨까? 사실 이런 문제는 양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문제다. 마음만 바꿔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쉬운 문제다. 하지만 한나라당 등 우파가 실제로 그렇게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마음만 바꿔 먹으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지만, 그건 그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한나라당의 회심을 바라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리 기본적인 것이라도 인권의 진전을 위한 노력은 힘겨운 투쟁을 요구한다. 지금처럼 자기들끼리만 모이고, 자기들끼리만 토론하고, 자기들끼리만 분노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파들은 트위터가 좌파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걱정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걱정할 게 없다. 트위터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싸움만 박터지게 진행된다. 내가 볼 땐, 비슷한 사람들인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람들은 정말 피터지게 싸운다. 한홍구는 한겨레에 나온 ‘놈현, 관장사’란 표현 때문에 하룻밤에 10만 명의 안티를 만들었단다. 하지만 한홍구처럼 진지하게 노무현을 생각했던 사람은 별로 없다. 노무현 서거 국면에서 한홍구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말 한마디에도 동지와 적이 갈린다. 이게 소위 좌파들의 실상이다. 남을 비판하는 훈련이 잘 된 탓인지, 아니면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에도 발끈하고, 윤성호 감독처럼 자기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일에는 정말 익숙치 않다. 찻잔 속에서 자기들끼리 정말 열심히 싸운다. 자기들끼리는 진중권과 김규항을 들먹이며 싸우지만, 정작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진중권이 누군지도 모른다. 내가 일하는 대구에는 한겨레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경북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운동하는 분들을 보면, 죄다 형 아니면 아우로 통하는 걸 본다. 과거 학생운동 때부터의 인연이 이어진 거다.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가끔은 걱정도 된다. 한나라당은 경선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수혈하면서 끊임없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당장 다음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 건지조차 불투명한 야당은 오히려 느긋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 특히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마음을 열고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상대방의 이야기도 인정해주면서 만났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끼리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편에 속한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불편해도 괜찮아>의 맨 앞에는 교육 문제를 다뤘다. 보수나 진보 할 것 없이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니까 그랬다. 관심이 큰 문제부터 시작해서 보수든 진보든 함께 우리 모두의 인권문제를 이야기해보자는 뜻에서였다. 우리 사회는 너무 둘로 쪼개는 걸 좋아한다. 많이 만나서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면 둘만이 아니라, 더 잘게 쪼개질 수도 있으며, 또 인권문제 같은 기본 문제에서는 더 많은 합일점을 찾을 수도 있다. 주류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주변을 항상 점검하고 돌아보며 약자의 입장에서 살아간다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요약 : 홍수진 간사)
2017-08-08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백 년 전 사람들 - 1910년대와 3.1 운동 권보드래/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3.1운동은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에게는 일종의 ‘알리바이’와 같은 사건이다. 만약 3.1운동이 없었다면, 임시정부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항일 투쟁이 있었다지만, 간헐적이고 소규모적이었다. 우리가 식민지 시절,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3.1운동이었다. 전체 인구 10% 이상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7천5백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는 위급한 상황인데도 그랬다. 하지만 3.1운동 이전의 10년은 너무나 조용했다. 그 이전에 쫓겨 가고 도망간 사람들이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탓이지만, 그래도 너무 조용했다. 일제강점과 함께 찾아온 뒤숭숭한 소문들 1910년,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 시작된 일제강점은 풍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할 만큼 뒤숭숭했다. 대중들은 최소한의 정보조차 접하기 어려웠다. 언론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뿐이었다. 일제강점이 시작되고, 당장 정치체제가 바뀌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었지만, 언론을 통한 공론화도 불가능했고, 지도자가 나서 설명해줄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적 호소력과 설득력있게 등장한 것이 루머였다. 루머는 그저 입소문을 넘어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소문은 대중들에게 믿음직하게 받아들여졌고, 여기에 상상력이 보태져 소문은 훨씬 더 생생하고, 가공할만한 것으로 변모하였다. 정보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제주 같은 지역에서는 특히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능지처참(陵遲處斬). 곧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문 끝에 죽게 하는 기계가 일본에서 도입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일본인이 상륙하면 소, 말 등 가축을 모조리 죽이는 것은 물론, 사람까지 피부를 벗겨내며 죽일 것이란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소문의 공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하면서 조선의 일상은 평온해졌다. 폭력적이거나 야만적이지 않았다. 일본 때문에 큰 일이 날 거란 소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큰일이란 것도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재산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여성들은 모두 일본사람과 결혼시킨다든지, 조선여성이 모두 불임하게 되고, 남성들은 모두 거세될 것이란 등의 소문들도 떠돈다. 1910년대의 조선은 일제의 안정적 장악 속에 들어가고 만다. <매일신보>를 통해서 본 조선의 일상은 더욱 그렇다. 일제는 복(福), 복락(福樂)이란 말 대신 행복(幸福)이란 말을 의식적으로 자주 쓰기 시작했다. 근대 이전엔 존재하지 않던 말이다. 조선 사람도 이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노력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 일제는 치밀한 노력을 전개했다. 좀 답답할 수는 있지만, 조용히 살면서 개인적으로 경제생활을 열심히 해 나가면 언제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기사가 넘쳐났다. 한두 푼씩 모아서 살림살이를 장만했다는 기사들이었다. 일제는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강요했고, 실제로 조선의 일상은 지극히 평온하기만 했다. 일확천금의 꿈마저도 통제되었다. 1910년대 후반 금은과 중석 등 광물 가격이 오르고 외국인의 매수 열풍까지 가세, 광산 개발 및 투자 열기가 뜨거웠고 들뜬 소문이 많았지만, 이 같은 꿈은 <매일신보> 지면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조용한 그리고 작은 개인적인 꿈만이 용납되었다. 근본적으로는 패배감을 안고 살아야 했던 시기였다. 1910년대 일제는 조선 사람들에게 쾌락을 요구했고, 강요하기도 했다. 1910년대에는 다양한 여가 문화가 활성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매일신보>는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였다. 행복하게 살자, 그러나 조용히 <매일신보>는 대대적인 지면 캠페인을 전개했다. 승경지(勝景地)를 소개하고, 여가의 담론을 조직하고 쾌락의 필요를 강요했다. 신문사가 직접 나서 굵직굵직한 문화행사를 주관했고, 대중을 문화적 주체로 구성해 나갔다. 왕이 살던 경복궁에서 열린 공진회(共進會)는 당시 인구의 10% 정도인 120만 명이 다녀가기도 했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 차비와 입장료를 부담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일제는 쾌락을 조직했고, 대중은 충실히 쾌락을 쫓았다. 해서 1910년대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평온하기만 했다. 공포스러운 헌병 통치는 계속되고 대중들은 쾌락에 동원되고, 또 추구하기도 했지만, 1910년대는 일제의 폭력적 통제에 전방위적으로 노출된 시대이기도 했다. 양민이 부랑자 단속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합법적으로 기생 연주회를 여는 한편, 참가자들을 잡아가는 이해하기 힘든 단속을 하기도 했다. 민중들이 견디기 힘든 것은 헌병의 즉결 처분권이었다. 지금의 <경범죄처벌법>처럼 시시콜콜한 일로 사람들을 처벌했다. 그 처벌은 엄했다. <매일신보>에 ‘태형과 벌금’이라는 코너가 마련될 정도로 헌병의 일상적 폭력은 정도 이상이었다. 남성이 웃통을 벗었다고 태형을 당하기도 했고, 청소를 제대로 했는지 아궁이를 검사하기도 했다.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순찰하는 헌병은 공포와 폭력의 원천이었다. 식민지였기에 ‘질서유지’는 더욱 과격한 제도 폭력에 의존했다. 일제는 1912년 묘지규칙을 공포하여, 개인이나 가족 단위의 분묘를 금지하고, 지역별로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선산(先山) 관습이 뿌리 깊었던 조선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횡포였다. 먹고 살기는 너무 힘들어지고 제1차 세계대전은 한동안 ‘구주(歐洲) 대전’이라 불렸다. 말 그대로 유럽 국가들 사이의 유럽지역을 무대로 한 전쟁이었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이 전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귀족계급이 최종적으로 부정되고, 국가 간의 경계가 완강해졌으며,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게 되었다.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전쟁 특수를 누렸지만, 공업 생산기반을 갖추지 못한 식민지 조선은 전쟁으로 인해 커다란 피해를 강요받아야 했다. 유럽과 일본에서 수입되던 공산품 가격은 폭등했다. 강점 직후 물가 인상으로 휘청거리다 1913-4년 경 겨우 안정을 찾아가던 조선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3년 동안 쌀값은 지속적으로 올랐고, 물가는 2배 이상 뛰었다. 주택시세도 급등하여 사글세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 독감이 유행하여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1917-8년에는 쌀값 폭등으로 인한 노동쟁의도 늘어났다. 드디어 3.1 운동 3.1 운동은 서울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서 모일 예정이던 33인은 거사 누설로 인한 소요를 염려해 태화관에 모였다. 공원에는 이미 소문을 쫓아 온 학생들로 넘쳐났다. 갑자기 경신학교 학생 한명이 독립선언문을 읽었고, 이게 3.1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학생들의 만세는 “조선은 독립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조선은 (이미) 독립되었다”였다.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고, 일제는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3.1운동의 첫날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은 있었으나 최소한 총격은 없었다. 3월 5일 학생들이 재집결하고, 이에 대해 일본 군인들이 무력진압을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사망자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고종 장례를 보러 서울에 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한 지역 주민들이 귀향하면서부터 불거졌다.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 지역에서는 매우 격렬한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거족적인 운동이었고,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3.1운동은 무력투쟁도 아니었고, 의식적인 민주항쟁도 아니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목격했으며 앞으로 상태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막연한 걱정들이 모여 공원에서의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필연의 흐름을 이끌어 낸 것이 바로 3.1운동이 지닌 독특한 지형이었다. (요약 : 홍수진 간사)
2017-08-08 | hrights | 조회: 18 | 추천: 0
학교교육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칠 것인가?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 학교가 20:80으로 재편되었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실 속의 학생들도 그렇다. 민사고, 자사고부터, 외국어고, 과학고, 그 밑에는 자율형사립고, 공립고, 일반 인문계, 실업계, 서울과 지역 등 고등학교마저 완벽한 서열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학교와 학생들이 완벽하게 한 줄 세우기 무한경쟁 때문에 서열로 나눠졌고, 다수인 80%가 20%의 들러리로 전락해버렸다. 학생들은 자유, 존중, 참여를 배우기는커녕, 온 몸으로 차별과 배제, 그리고 체벌을 배울 뿐이다. 학교체제는 학생들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유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저 잘못된 서열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순응하도록 하는 무기력한 학생들만을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꿈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고, 다수를 패배자로 만들고, 주체성을 말살하는 교육은 없어져야 한다. 차별과 배제, 그리고 체벌에 깃들여진 학생들, 그리고 무의미한 경쟁에서 패배한 학생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넘어지고 다친 학생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넘어진 학생들, 조금 느린 학생들, 장애가 있거나 부모의 소득이 낮거나 다른 불편함이 있는 학생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공교육이고, 연대이다. 지금은 공공성에 기초한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이고, 우리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연대성의 원리도 해체된 상황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너나없이 교육문제 전문가가 될 정도로 교육이 엉망이 되었다. 국영수 중심의 한 줄 세우기 교육은 그저 폭력일 뿐이고, 교육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교육을 바꾸려면, 교육문제를 고치려면, 지금의 ‘한 줄 점수 경쟁’을 ‘백 줄, 천 줄 재량 발현’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체제에서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여전히 저복지국가에 머물고 있다. 사회보장이 별로 안되고, 사회는 불안하기만 하다. 개인의 미래 역시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신분을 유지하거나 보다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교육경쟁을 통해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갈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체제에서는 그저 암기 위주로 일방적 주입식 강의를 하며, 점수를 끌어 올리는 방식의 교육같지 않은 교육만이 요구될 뿐이다.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이나, 원리에 대한 이해, 자기주도형 학습은 필요없게 된다. 당연히 입시만을 염두에 두고, 소수의 학생들 가르치는, 사교육이 더 강점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교교와 대학의 서열구조와 대학입시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교육문제는 더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전면적인 교육개혁이 당장 진행되지 않더라도, 초중등 학교 차원에서도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학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꾸준히 시도되어야 한다. 먼저 정규수업과 평가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히 ‘교육혁명’이라 불릴만한 대대적인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 암기를 넘어 그룹식, 협동식, 문제해결식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한 줄 세우기만 강요하는 일제고사는 당장 없어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고,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학교 문을 열어 지역사회와 함께 배움이 일어나고, 배움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 교육활동 전반에서 무상급식을 비롯한 보편적 복지가 실천되어야 한다. 교장은 학부모와 교사가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형 또는 개방형 교장 선출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교육재정이 확충되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한국의 교육은 조금씩 고쳐봐야 효과도 나지 않을 정도로 중병을 앓고 있다.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제대로 고치려면 혁명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는 책임 교육, 누구도 낙오하지 않는, 낙오할 까닭도 없는 맞춤형 교실, 한 줄이 아니라, 천 줄, 만 줄을 설 수 있는 교육, 수직서열화가 아니라, 수평다양화가 실현되는 교육으로의 혁명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2010년 두 번째 손님은 경제학자 강남훈 한신대 교수입니다. <기본소득 네트워크>의 대표이기도 한 강남훈 교수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이라는 간결한 구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정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일정한 액수의 돈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성년, 미성년을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지급하되, 나이가 많아지면 지급액이 따라서 늘고, 최저생계비 이상 수준으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너무 생소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연구자들과 운동가들은 ‘기본 소득’ 제도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병폐를 없애고,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권연대 <수요대화모임>에서는 ‘기본 소득’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강 교수는 “기본소득구상을 설명하면 사람들이 ‘아, 그렇게만 되면 참 좋겠네’라면서도 ‘그런데 과연 그게 될까, 부자들이 그만큼 세금을 더 낼까’ 등의 의문을 단다”며 “하지만 기본소득은 순식간에 파괴력 있게 전파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에 이를 정도로 거의 ‘무복지’에 가깝다.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비율도 전세계적으로 매우 높고, 대규모 빈곤노인 계층이 있다. 자영업자 600만 명 중 400만 명 정도는 비정규직보다 영세한 상태다. 청년실업자도 많고 어느 계층 할 것 없이 기본소득이 절실하다.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이 대규모로 존재하지만, 당장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기본소득이 이미 20여 년 전부터 소개되고 있다. 대안을 절실하게 갈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구상은 의외로 빨리 파괴력 있게 전파될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절반이라도 혹은 4분의 1 정도만이라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형태로 가면서 꿈을 점점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막대한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대해선 “근로소득세와 법인세·부가가치세는 현행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약 250조원의 기본소득 기금을 충분히 만들수 있다”고 강조했다. “불로소득(이자·배당·증권양도소득 등)에 대해 30% 세율로 과세하고, 환경세를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약 40조원)으로 부과하고, 재산세·종부세 등은 모두 토제세로 통합하되 지가총액에 대해 3% 세율로 과세하면 여기서 또 약 60조원의 세금이 걷힌다.” 그러면 약 250조원의 기본소득 재원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우리 국민은 경제성장을 부르짖는 정치 세력에게 표를 던져왔고, 그래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얻어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개선되기 바라는 성향이 강하다“며 “지난 수십 년간 이런 기대를 해왔으나 그런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이 점점 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비 성향이 훨씬 높다. 2008년에 조세를 추가로 170조원 걷어 기본소득으로 나 준다면, 이런 소비 성향 효과에 따라 GDP가 추가로 31조9천억원(3.5%) 증가하게 된다. 즉 기본소득 도입을 통한 분배 개선만으로도 매년 경제가 3.5% 더 성장하게 된다. 물론 경제가 성장하면 기본소득 조세도 더 많이 걷힐 것이다.” 그는 또 기본소득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보편적인 기본소득 모델로 보면 적어도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자신의 시장임금소득보다 약간이라도 더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세청이 소득 데이터를 제공한다면 소득수준별 인원 수를 뽑아내 인구의 몇%가 기본소득으로 이득을 보게 되는지 금방 추산할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경제가 망한다느니 하는 반대론이 거세게 일어날 수 있다. 지금은 이런 비판도 없는 상황이다. 진보정치 영역을 포함한 현실 정치 세력에서 토론과 비판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출처 - 한겨레21
2017-08-08 | hrights | 조회: 18 | 추천: 0
인권과 언론보도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저널리즘의 기본요소>(The Elements of Journalism). 날로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 미국 언론인들이 1990년대 말 ‘우려하는 언론인 위원회’를 만들어 대대적인 연구·조사활동을 거쳐 내놓은 책이다. 변해가는 언론 환경 속에서 언론인들이 지켜야할 원칙과 저널리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담겨 있다. 이 책은 첫 번째 원칙으로 진실(truth)를 제시한다. 그런데 공정성(fairness)이나 균형(balance)이란 준칙은 따로 다루지 않고 있다. 연구·조사 결과 이들 준칙은 너무 주관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떤 언론인들은 근래 몇 년 사이 ‘진실성’(truthfulness)의 원칙에 대한 대체물을 제안했다. 크게 두 가지로, 공정성과 균형이다. 그러나 공정성은 너무 추상적이고 결국 진실보다 주관적이다. 누구에게 공정하자는 건가? 어떻게 공정함을 입증하는가? 진실성은 최소한 입증할 수라도 있다.” “균형 또한 너무 주관적이다. 양쪽 당사자에 공정한 균형 잡힌 보도는, 만약 양쪽이 사실에 있어 같은 무게를 지닌 게 아니라면, 진실에 대해선 불공정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는 사실인가? 압도적인 다수의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언론은 양쪽 주장에 똑같은 무게를 둔다.” 그러므로 최고 가치는 진실이며, 공정성과 균형은 이를 담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공정성과 균형보다 진실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언론인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 책이 제시하는 답은 시민(citizen)이다. 회사가 첫 번째 충성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업무와 편집의 철저한 분리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양쪽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의견을 나누되, 보도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뉴스룸 쪽이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옵저버> 편집장들이 사내 광고부문의 회의에 참가해서 했다는 말이 소개된다. “우리는 아이디어에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간섭엔 열려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언론의 중요한 기능은 바로 권력 감시 그리고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 주기(Offer Voice to the Voiceless)�이다. 이는 정부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권력을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은 권력의 치부를 들추는 탐사보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눈돌림을 동일한 무게로 강조한다.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정리하자면, 인권에 충실한 보도는 크게 첫째 인권 원칙에 충실히 따르는 보도, 둘째 인권 실현을 충실히 추구하는 보도로 나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첫째 원칙과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의 문제와 같은 언론과 인권 원칙이 충돌하는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 프라이버시와 관련해 참고할만한 해외사례가 있다. 99년 모나코 캐롤라인 공주의 사진이 몰래 촬영되어 보도된 사건인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은 해당 보도가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언론사의 요구를 더 중시한 것이다. 모든 이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려면 그런 보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유럽 인권재판소 재판관들은 캐롤라인 공주의 사생활 보호에 무게를 실었다. 공주의 사생활도 보호되어야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언론의 역할이 여론 형성에 있다고 해서 단순한 오락 기사를 헌법상 보장된 언론 자유의 대상에서 제외해선 안되며 여론 형성은 오락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아니라고’ 봤다. 또한 ‘오락성 기사도 여론형성에 기여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사는 오로지 사실만 다룬 정보성 기사보다 더 지속적으로 여론 형성을 촉진하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캐롤라인 공주에 대한 보도가 표현의 자유로 보장된다는 거다. 이에 비해 유럽 인권재판소는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저울질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는 해당 사진과 기사의 보도가 일반의 이해관계가 걸린 토론에 기여하는지 여부’에 중점을 두었다. 청구인, 즉 캐롤라인 공주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인물이고 문제된 기사도 오로지 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만 다뤘기 때문에 그런 기여를 전혀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나아가 청구인이 비록 유명인이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장소에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대중이 그의 위치와 사생활에서의 행동 방식 등을 알아야 할 정당한 이해관계를 지닌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캐롤라인 공주의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보호 사이의 엇갈리는 견해에 대해 참고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두 번째 원칙인 인권 실현을 충실히 추구하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거의 모든 문제가 인권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인권적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해외사례를 보자. 2001년 영국 히드로 공항 인근 주민들이 유럽 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공항에서 나오는 야간의 소음으로 인해 ‘가정·사생활·가족의 삶을 존중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했다는 이들의 제소에 대해 유럽 인권재판소 1심 재판부는 5대 2의 판결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2대 5의 판결로 영국 정부가 주민들의 권리와 다른 이들의 권리, 즉 승객의 여행할 권리 및 국가 경제에 필요한 기업의 영업권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재판관들은 영국 정부의 정책이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했다고 봤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권 보호와 환경 보호의 시급한 필요성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는 상황에서 건강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이며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이 사건에서처럼 밤낮으로 계속해서 또는 주기적으로 비행기 엔진의 소음이 일상을 뒤흔든다면, 가정의 사생활과 관련해 인권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건강을 사생활의 한 요소로 보호하려 할 때 그것이 항공기 이용자들과 국가 경제에 방해가 된다면 이는 분명한 딜레마다. 이러한 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더욱 요구될 것이다.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현대 언론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문제점은 다 나온 얘기들로 치부하거나, 어떤 문제는 인권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어린이, 빈곤, 평등권 문제 등은 인권문제인데도 인권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인권 기준으로 설명하지 않는 경향이 존재한다. 인권에 대한 언론보도를 연구한 사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1970~80년대 뉴욕타임스, 타임, CBS, 영국 타임스 등의 보도를 분석한 논문(Ovisiovitch, Jay Samuel)에서는 시민·정치적 권리(신체적 학대나 정치적 탄압)에 집중했던 미디어의 모습을 분석했고, 2000년대 나온 국제인권정책연구회(International Council on Human Rights Policy)의 보고서 ‘저널리즘, 미디어, 그리고 인권 보도의 어려움’에서는 눈에 덜 보이고, 더디게 진행되는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인권은 시민·정치적 권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빈곤, 불평등, 사회·경제적 차별 등의 문제는 대개 무시되는 미디어의 특성을 지적했다. 2009년 영국 어린이·청소년 인권연대(the Children's Rights Alliance for England) 보고서에서는 10개 신문 6개월치를 분석한 결과,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와 평등을 다룬 기사는 어린이·청소년 관련 기사의 1.8%에 불과했다. 물론 빈곤문제 등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마치 ‘머리와 심장을 쟁취’하는 일이기도 하고, 이미지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계량적 분석은 못해봤지만,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문제가 날로 중요해지고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의 정책에서도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그런 만큼 인권 이슈에 대해 보도하고 설명할 책임(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직업적 책임)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개선을 위해 인권친화적 보도를 위한 언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조건은 무엇보다 인권교육이다. 저널리즘 스쿨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국제 인권기준에 대한 직무 교육등도 수반되어야 한다. 회사 자체적으로도 인권 이슈에 대한 보도를 검토하는 사내 프로그램을 기획·진행되어야 하고, 언론인과 인권단체 사이에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활동들이 장려되어야 한다. <인권연대>가 기자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언론인권상을 만들어주거나, 기자들을 위한 인권교육활동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안팎에서 함께 인권의 진전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