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제37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 - 전환의 위기 극복은 경계의 재구성으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최근 사회운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들이 많다. 노동, 환경, 여성 등 운동 전 부문에서 위기라는 인식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러한 위기의식은 동시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들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87년 체제의 전환적 위기 현재의 위기를 87년 체제의 전환적 위기로 보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서 형성된 체제를 87년 체제라고 했을 때 그 체제가 십몇 년이 진행되면서 포스트 87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오는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 위기는 세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민주개혁의 진전과 실현이다. 87년 이후 다양한 민주입법이 만들어지고 정당개혁 및 의회개혁이 있었다. 국민의정부의 가장 큰 성과인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가 신설됐고, 2004년 총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상실하고 열린우리당이라는 중도자유주의정당이 다수당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진보정당의 원내진출도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 자체가 체제의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했다. 둘째는 민주개혁 추진세력의 문제가 드러나는 것 같다. 저항의 미덕과 구별되는 통치의 미덕이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것 같다. 저항운동 할 때와 통치의 위치에 있을 때의 차이가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보와는 달리 과거와 단절되어 있어 통치의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숙하지만 부패는 없다. 셋째는 민주개혁 자체의 내재적 한계다.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87년 체제하에서의 민주개혁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결합되어 전개됐다. 외환위기를 통해 보수세력의 통치력을 박탈했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이 신자유주의에 부응하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면서 민주적 통치세력이 신자유주의의 향유자가 됐고, 투명성, 민주성, 법치는 진전됐지만 동시에 계급적으로 훨씬 더 양극화된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민중들은 형식적으로는 민주화가 진전됐음에도 불구하고 살기는 훨씬 더 팍팍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결국 ‘계급의식 없는 계급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결과로 과거 개발독재 말기에 보수세력이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면, 이제 87년 이후 한국사회를 주도해오던 민주진보세력이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이 위기는 기본적으로 미래적 비전의 고갈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를 먹고 사는 집단’을 벗어나 새로운 의제를 개발하고 미래적 비전과 상상력을 내포하는 진보로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은 없다 심화된 계급적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국민과 시민을 얘기하기 이전에 계급적 분화를 전제로 사고해야 한다. 즉 계급적으로 분화된 국민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안을 논의할 때도 정치적・계급적으로 상이한 미래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반독재가 최대의 진보였고, 그 내부에는 자유주의적 진보세력과 급진적 진보세력이 상호 존재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조건은 자유주의적 세력은 시민운동으로, 신집권층으로 변화했고, 급진적 진보세력은 원내 정당으로, 합법적인 사회운동부문으로 변화했다. 이는 곧 ‘국가의 자유민주주의적 정상화’가 진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국민은 존재한다’. 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어느 것이 국민적 프로젝트가 될 것인가 하는 경쟁이 존재한다. 개혁집권세력의 프로젝트가 혁신될 수 있다면, 민주개혁의 과제와 신자유주의적 도전에 개혁적으로 대응하는 형태의 프로젝트이어야 할 것이며, 급진진보세력은 개혁의 영역을 확장하고 신자유주의의 파괴성을 쟁점화하는 대안적 프로젝트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집권 개혁자유주의세력과 재야 진보세력의 입장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정치적 위치가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 고민하여야 한다. 단일한 진보는 없다. 다원적인 진보만이 존재한다. 중도자유주의적 프로젝트와 진보적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경계를 재구성하자 이러한 시기에 필요한 것은 민주개혁운동의 확장과 심화이다. 이제 진보는 소수자,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를 내재화해야 한다. 정치경제적 민주화에서 사회문화적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1인 NGO 등 생활영역에서 다양하게 제기되는 새로운 주제들도 포함할 수 있는 민주화로 확장해야 한다. 이렇게 경계의 고착화를 뛰어넘어 경계의 재구성이 ‘진보의 게토화’를 막을 수 있다. 아울러 국가와 시장의 민주화에 따라 시민운동이 요구하던 의제들의 상당부분 실현되었고 상대적으로 민주화되고 합리화된 국가와 시장을 대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제기형 운동에서 정책적 대안능력을 강화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덧붙여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진보를 넘어 세계주의적 진보로 전환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황우석 사건은 ‘순수한 애국주의’가 ‘국익론’을 징검다리로 해 어떻게 비이성적인 애국주의와 국가주의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한국은 피해국가이면서 동시에 가해국가가 되고 있다. 12대 무역대국은 이제 세계적인 경제적 패권국가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과거 피억압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평화인권공동체의 선도자이자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시아는 세계의 각 지역 중에서 인권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해 아시아의 ‘인권레짐’을 실체화하려는 노력을 해볼 수 있다고 본다. 또 50년대 미국의 ‘평화봉사단’처럼 매년 일이천 명씩, 한 10년 정도 아시아 및 기타 지역으로의 봉사단을 파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다국적기업의 노동탄압과 착취를 막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결국 한국의 민주진보운동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성찰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우파의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는 운동으로 재구성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우리 안에 있는 보편성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근대화론적 사고에 매몰돼 모방적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과잉되게 서구의 기준에 맞추려는 의식이 있었다. 우리 운동의 역동성과 영향력 등 우리의 근현대사의 진통 속에서 세계적인 것을 찾아 보편화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시도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7 | 추천: 0
2017-08-08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
안타깝지만 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홍미정/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오늘날 중동의 복잡한 정세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물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은 당시 그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영국이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에서 주변의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맥마흔서한, 사이크스-피코협정, 밸푸어선언 등 ‘일구삼언’하면서 이미 분쟁의 씨앗을 심었다. 불합리한 유엔 분할안과 중동전쟁 1945년 팔레스타인 지역은 팔레스타인인들이 87.5%를, 유대인들은 6.6%만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5.9%는 영국의 위임통치 지역이었다. 그런데 1947년 유엔 총회 결의 181호는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56.5%를 유대 국가에, 42.9%를 아랍 국가에, 0.65%를 국제지구로 할당하는 분할안을 제시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당연이 분할안을 거부한 반면, 유태인들은 받아들여 1948년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분할안과 이스라엘 국가 수립에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78%를 장악했고, 나머지 22% 중 가자는 이집트, 서안은 요르단의 통치하에 놓이게 됐다. 더 나아가 1967년 6월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 이집트로부터 시나이반도와 가자,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을 빼앗았다. 이 중 가자와 서안이 현재 이-팔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의 점령 이후 난민 등 문제가 발생하자 유엔에서는 안보리 결의 242호를 통해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결의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일부 지역에서의 철수’로 해석해 본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 이 중 시나이 반도는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협상을 통해서 이집트로 반환되었고, 요르단은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협정을 통해서 서안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였다. 골란 고원은 시리아와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여전히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태에 있다. 결국 이집트와 요르단의 이스라엘과의 협상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써 이스라엘의 권리를 보다 확고히 인정해 해주는 결과가 됐다. 결국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랍 국가들이 형제애를 발휘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자국의 안보와 이익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실효성 없는 이-팔 평화협상 1987년 말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중항쟁인 인티파다로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고, 소련 붕괴를 전후해 이주한 유대인들로 인해 급증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 나서게 됐다. 오슬로Ⅰ 협정에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과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는 자치정부 당국의 설립과 이스라엘군의 재배치에 대해 협상을 벌인다. 그러나 이 협상의 결과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점령촌, 군사기지와 유대인들에 대한 권리를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자치지역 외곽에 대한 안보권조차도 갖고 있지 못하게 된다. 오슬로Ⅱ 협정의 협상자로 나선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와 야세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서안지역의 일부지역으로 확대하지만 협상의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의 점령촌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평화적인 공존, 상호 존중, 안보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협상은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민중항쟁인 인티파다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스스로 종료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낳았다. 또 이스라엘인들의 총체적인 안보에 대한 책임은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수행할 것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안보라는 구실로 이스라엘 군대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에 머무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슬로 협상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은 ‘합법적인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서안지역 대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채 점령촌 확장을 중지시킬 수 있는 근거마저 상실했다. 요원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드맵 구상에 대한 유명한 연설을 하지만 이는 2000년 9월 시작된 2차 인티파다를 통해 팔레스타인 저항의 방법으로 등장한 자살폭탄 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한 불끄기였다. 부시는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과 나란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이라는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로드맵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점령지 자체를 두 국가의 영역으로 분할함으로써 소위 이스라엘의 안보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또 전문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위한 최종 지위 협상 이전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장 공격을 중지해야만 한다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애매모호한 용어의 사용은 강자의 의도에 따라 영토 분할이 가능하도록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샌프란시스토 대학의 스테판 주네스(Stephen Zunes) 교수는 △미국은 이스라엘에 30억 달러 이상, 이집트에 20억 달러 이상을 원조하면서 중동의 군국화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점 △미국은 대량 파괴 무기를 만들려는 아랍 국가들의 시도를 반대하면서, 이스라엘의 커다란 핵무기 공장을 묵인하고 있는 점 △미국은 분쟁의 공정한 중개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요한 외교적, 재정적, 군사적 후원자라는 점 △미국의 이스라엘 원조금은 대부분 미국 무기를 수입하거나 대부금 반환으로 돌아오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공정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에서 전혀 유리한 조건을 만들지도 못했고, 미국은 절대적인 이스라엘 지지국가이고, 내부적으로 집권당과 저항단체들 간의 정치적인 이견차도 조율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팔레스타인으로서는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숙원에 대한 전망이 안타깝지만 멀기만 하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5 | 추천: 0
안타깝지만 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홍미정/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오늘날 중동의 복잡한 정세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물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은 당시 그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영국이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에서 주변의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맥마흔서한, 사이크스-피코협정, 밸푸어선언 등 ‘일구삼언’하면서 이미 분쟁의 씨앗을 심었다. 불합리한 유엔 분할안과 중동전쟁 1945년 팔레스타인 지역은 팔레스타인인들이 87.5%를, 유대인들은 6.6%만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5.9%는 영국의 위임통치 지역이었다. 그런데 1947년 유엔 총회 결의 181호는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56.5%를 유대 국가에, 42.9%를 아랍 국가에, 0.65%를 국제지구로 할당하는 분할안을 제시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당연이 분할안을 거부한 반면, 유태인들은 받아들여 1948년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분할안과 이스라엘 국가 수립에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78%를 장악했고, 나머지 22% 중 가자는 이집트, 서안은 요르단의 통치하에 놓이게 됐다. 더 나아가 1967년 6월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 이집트로부터 시나이반도와 가자,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을 빼앗았다. 이 중 가자와 서안이 현재 이-팔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의 점령 이후 난민 등 문제가 발생하자 유엔에서는 안보리 결의 242호를 통해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결의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일부 지역에서의 철수’로 해석해 본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 이 중 시나이 반도는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협상을 통해서 이집트로 반환되었고, 요르단은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협정을 통해서 서안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였다. 골란 고원은 시리아와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여전히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태에 있다. 결국 이집트와 요르단의 이스라엘과의 협상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써 이스라엘의 권리를 보다 확고히 인정해 해주는 결과가 됐다. 결국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랍 국가들이 형제애를 발휘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자국의 안보와 이익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실효성 없는 이-팔 평화협상 1987년 말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중항쟁인 인티파다로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고, 소련 붕괴를 전후해 이주한 유대인들로 인해 급증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 나서게 됐다. 오슬로Ⅰ 협정에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과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는 자치정부 당국의 설립과 이스라엘군의 재배치에 대해 협상을 벌인다. 그러나 이 협상의 결과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점령촌, 군사기지와 유대인들에 대한 권리를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자치지역 외곽에 대한 안보권조차도 갖고 있지 못하게 된다. 오슬로Ⅱ 협정의 협상자로 나선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와 야세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서안지역의 일부지역으로 확대하지만 협상의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의 점령촌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평화적인 공존, 상호 존중, 안보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협상은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민중항쟁인 인티파다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스스로 종료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낳았다. 또 이스라엘인들의 총체적인 안보에 대한 책임은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수행할 것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안보라는 구실로 이스라엘 군대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에 머무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슬로 협상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은 ‘합법적인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서안지역 대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채 점령촌 확장을 중지시킬 수 있는 근거마저 상실했다. 요원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드맵 구상에 대한 유명한 연설을 하지만 이는 2000년 9월 시작된 2차 인티파다를 통해 팔레스타인 저항의 방법으로 등장한 자살폭탄 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한 불끄기였다. 부시는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과 나란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이라는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로드맵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점령지 자체를 두 국가의 영역으로 분할함으로써 소위 이스라엘의 안보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또 전문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위한 최종 지위 협상 이전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장 공격을 중지해야만 한다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애매모호한 용어의 사용은 강자의 의도에 따라 영토 분할이 가능하도록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샌프란시스토 대학의 스테판 주네스(Stephen Zunes) 교수는 △미국은 이스라엘에 30억 달러 이상, 이집트에 20억 달러 이상을 원조하면서 중동의 군국화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점 △미국은 대량 파괴 무기를 만들려는 아랍 국가들의 시도를 반대하면서, 이스라엘의 커다란 핵무기 공장을 묵인하고 있는 점 △미국은 분쟁의 공정한 중개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요한 외교적, 재정적, 군사적 후원자라는 점 △미국의 이스라엘 원조금은 대부분 미국 무기를 수입하거나 대부금 반환으로 돌아오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공정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에서 전혀 유리한 조건을 만들지도 못했고, 미국은 절대적인 이스라엘 지지국가이고, 내부적으로 집권당과 저항단체들 간의 정치적인 이견차도 조율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팔레스타인으로서는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숙원에 대한 전망이 안타깝지만 멀기만 하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
제34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9.28)- 평택 지키다 죽겠다 문정현/ 신부, 평택범대위 상임대표 난 74년 이후 소위 운동권 생활을 해왔다. 딴 짓 한번 해 본적이 없다. 내 의식은 내 눈으로 보고, 내 몸으로 느끼면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등 소위 국가기관에 의해 벌어진 인권침해에 항의하기 위한 것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감옥에 가고, 나왔다 또 가고, 나오고를 반복하면서 독재정권 타도운동과 노동운동 등 혹독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분단이라는 상황이 독재정권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쳐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을 유보한다는 독재정권의 논리는 결국 분단이 해소되어야 깨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식이 결국 89년에 동생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파견해 임수경과 동행하도록 한 것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과 평양을 가지만 여하튼 남북분단을 극복해야만 군사정권도 무너트리고, 인권도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서 미국이 보였다. 그것이 지금 평택에서 싸우는 이유다. 모든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 사실 처음에 나는 친미적이었다. 영세 세례를 받은 나로서는 일제시대 때 매우 친일적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친미적이다 못해 완전히 반공에 앞장선 가톨릭적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내게도 가보고 싶고, 부럽고, 도와주는 나라였다. 이런 생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내 제자 조성만 때문이다. 그 이전에도 80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 재판을 빠지지 않고 방청다니면서 어느 정도 반미교육이 되었다. 그런데 88년 조성만이 올림픽 남북공동개최와 한반도에서의 미군철수를 부르짖으며 명동 성당에서 할복투신자살을 했다. 조성만은 내가 영세를 준 신부고, 해성노동학교 제자이지만 내 신념의 스승이다. 그 사건 이후로 미국이 그렇게 고마운 나라만은 아니라는 의식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미국과 싸우게 된 것은 97년 군산에서다. 군산에는 230만평의 미공군기지가 있는데, 미군 범죄가 한 주가 멀다하고 벌어졌다.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범죄가 끊이지 않고, 소음과 오폐수 등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결국 그 동네에서 ‘미군땅바로찾기시민모임’이 만들어져 매주 금요일에 지금까지 8년 동안 집회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의 패권을 손에 쥐고, 종속관계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평택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문정현 신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인 F-15K 비행기 선정과정도 이를 잘 보여준다. 조건이 가장 나쁜 보잉사의 비행기를 선정한 것은 미국과의 종속관계 때문인 것이다. 결국 2008년까지 40대를 들여오는데, 모두 12조가 든다. 또 동해에 이지스함 두 대를 들이는데, 한대가 2조 5천억에 이른다. 한국이 미국의 죽어가는 산업체를 살리고 있다. 결국 이런 경험을 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자주화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답을 얻었다. 미군기지 확장저지가 자주화의 관건 지금도 평택에서는 매일 촛불집회가 열린다. 오늘이 394차다.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필요한 땅이 모두 349만평인데,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2리 전체 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주민들이 땅을 내놓지 않아 국방부에서 확장을 위해 필요한 땅의 겨우 2%만 샀다.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이 더 억울한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라는 점이다. 39년에는 일본군 공군기지 때문에 쫓겨나고, 한국전쟁 중이던 52년에도 기지를 확장하며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 갯벌 옆 움막에서 살아야 했다. 이렇게 움막에서 갯벌을 갈아엎고, 흙은 파다 메워 논을 만들었다. 소출이 일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국유지로 선정해 그 돈을 갚는 데만 또 10여년이 흘렀다. 겨우 자기 논으로 만들어 조금 살만한데 어느 날 갑자기 주민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정부가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실정이다. 삶의 터전이 그곳이고, 할 줄 하는 것이 농사밖에 없는데 땅을 내놓으라니 어떻겠는가. 이렇게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미군기지 확장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주는 요원한 것이다. 협의매수 기간이 지난 8월 31일에 끝났는데, 지금은 건교부 산하에 수용재결위원회가 만들어져 강제매수에 들어갈 계획이다. 강제매수에 들어가면 매수에 필요한 돈을 법원에 공탁하고 강제철거를 한다. 아마도 그 시기가 설 전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평택은 긴장감이 매우 높다. 평택에서 죽을 것 지난 7월 10일 평화대행진에 1만2천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럼에도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은 계속되고 있는데, 무리수를 두다보면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부작용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 부작용이 큰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12월 11일 제2차 평화대행진을 계획하고 있는데, 1차때 보다 많은 사람들을 모을 계획이다. 단 절대 비폭력적이어야 한다. 1차 때도 평화행진을 했는데 지휘관이 얼마나 당황했으면 확성기에다 대고 공격하라고 했겠는가. 2차 때도 그런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12월 11일 평택들판에서 만나자 내 나이가 이제 곧 일흔인데, 지금까지 꼭 10년마다 한 번씩 큰 변화가 왔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자주사회라는 변화를 보고 죽었으면 한다. 평택에서 살아나올 마음은 없다. 땅을 빼앗긴다면 내발로 걸어 나오지 않겠다. 단지 평택 주민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또 싸우고 싸우면 바위가 계란에 의해 무너지듯, 흐르는 물에 바위가 녹아나듯 자주사회가 건설될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서 살다 가는 것, 이것이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는 12월 11일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 만나자.
2017-08-08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
평화재향군인회가 군 개혁의 미래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임시 상임대표 평화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하지만 군인은 이 평화에 반대되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어떻게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느냐다. 우리 민족은 900여회의 전쟁을 했지만 한 번도 침략전쟁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군대는 바로 이런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 헌법에도 침략전쟁을 부인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는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이다. 지금은 인권이 가치의 기준인 사회다. 그런데 우리 군대는 아직도 군인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경직된 군대문화를 가지고 있다. 또 시대착오적인 안보의식에 사로잡혀 아직도 북한에 대한 증오와 적대의식만을 가르치고 있다. 증오와 적대는 힘이 아니다.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것이 힘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 군인은 평화통일에 기여한다’는 사명을 위해서라도 낡은 군대문화와 시대착오적인 안보의식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군인들이 군대의 문제점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군을 개혁할 수 있는 평화재향군인회(평군)와 같은 민간단체가 필요하다. 폐쇄적인 기존 재향군인회(향군)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는 평군같은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평화재향군인회는 시대적 요청 평군은 우선 제대 군인들에 대한 복지와 권익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가보훈처가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전상자나 제대 군인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한 예로 장군만 되면 무조건 국가유공자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것에 반해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베트남전이 어떤 목적과 정치적 의미를 가진 전쟁이었는가는 다른 문제다. 나라의 임무를 부여받고 묵묵히 임한 것 자체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두번째 과제는 군 개혁이다. 군 개혁은 제대로 된 교육에서 시작한다. 먼저 민족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 우리 군대는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 신흥무관학교,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국군의 효시를 국방경비대라고 하는 얼토당토않은 교육을 하고 있다. 장엄한 역사의 아름다운 무장투쟁의 역사가 있는데도 군대에서는 들어볼 수 없다. 육군참모총장이 1대부터 21대까지가 일본군대 출신이었는데, 이런 사람들이 한 번도 침략해보지 못한 나약한 민족이라고만 가르쳐 왔다. 군대의 정훈교육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배우고, 군사정권이 왜 부끄러운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제일 부끄러운 군인은 박정희다. 독립군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투쟁할 때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동태를 보고하고, 고문한 사람이 박정희다. 그래서 평군은 이런 부끄러운 군인들을 청산하고, 12?12때 전두환에 맞서 항거하다 죽어간 김오랑 소령을 기리는 일도 할 것이다. 세번째 과제는 자주적인 안보철학을 마련하는 것이다. 향군과 조선일보 같은 극우언론이 만드는 냉전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한미동맹의 관계를 새롭게 정비하자는 것과 효순이 미선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왜 반미인가. 이는 민족의 자주권을 말하는 것이다. 대등한 관계에서 우리의 안보를 주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대북적개심이 강하면 안보의식이 강하고, 대북화해적이면 안보의식이 없다고 하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평군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민족세력이다. 그러나 절대 극우세력은 아니다. 평군은 남북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자주를 우선 목표로 하는 민족세력일 뿐이다. 할일이 많지만 차근차근 진행할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어느 시정잡배들이 막을 수 있겠는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54 | 추천: 0
32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6.22) - 비이성애자, 이성애를 묻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부대표 동성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잠시 효과를 거두는 듯 보이겠지만, 결론적으론 ‘불가능한 임무’다.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빈틈없이 이해시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며, 동성애를 이해시키려 할수록 자칫 이성애주의를 더 강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이성애자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해결책일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이성애자가 다수이고 정상’이라는 그 대전제부터 의심의 눈길을 던진다. 이성애자가 다수이고 정상? 그간 나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이성애자들에게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해 알아듣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성애자들로 하여금 “저기…이성애자라서 동성애에 대해선 잘 몰라요.” 라는 말을 마치 수줍은 고백이라도 되는 양 털어놓게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동성애자가 ‘호모새끼’정도로 불리던 7~8년 전과 동성애 코드가 뜬다는 요즘을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엔 다짜고짜 ‘대체 동성애가 뭐야’하고 물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제가 주변에 아는 동성애자가 없어서…’라고 미안해하며 묻는다는 정도의 차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미안할 것도 없다. 어차피 이성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는가. 동성애자에게 자주 그러했듯이 반대로 ‘언제 이성애자란 걸 처음 알았나요?’라고 물으면 바로 대답할 이성애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세상의 대부분의 글들, 심지어 동성애자의 주체성에 관한 글조차도 ‘이성애자=다수’라는 절대적 전제하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정말 이성애자가 다수일까? 그리고 이성애가 정상이라는 게 확실한가? 어쩌면 올바른 논의는 이성애자가 다수라는 전제를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종차별에 대항한답시고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차별한다고 격분하지만, 유색인종이란 말 자체에 이미 ‘흰색은 색이 아닌’ 백인 중심적 시각을 반영해버리고 말듯이,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려 해도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나뉜 동/서양의 기준을 피할 수 없듯이 말이다. 이성애자에게 묻다 이성애자들이 자신을 정의 내리는 일에 골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탓에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이성애의 정확한 의미는 뭐지?’라고 질문을 던져도 쉽게 대답을 들을 수 없다. 어쩌면 근래 자주 언급이 되는 ‘성적 지향’ 혹은 ‘성 정체성’ 혼란은 동성애자의 몫이 아니라 사실 이성애자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또한 분명한 점은 이성애자들이 자신을 ‘이성애자’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자’로 명명하는 일에만 익숙하다는 점이다. 이성애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한답시고 뛰어다니면 다닐수록 나는 점점 동성애자가 누군지 애매모호해지는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고백하건대 “나는 모르겠소”이다. 연령, 성별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해보면 그 중엔 동성과 성행위만을 즐기는 이가 있고, 동성을 사랑하지만 한 번도 성행위는 해 본적은 없는 이도 있고, 동성에게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끌림은 느끼지만 성적 끌림은 이성에게 느낀다는 이도 있다. 이성과의 성경험이 있는 동성애자가 있고, 양성애자라고 하지만 데이트 경험은 이성뿐인 이도 있다. 또 양성 모두에게 성욕을 느낀다고 말하는 10대나, 줄곧 이성과 지내다 어느 날 동성과의 사랑에 빠진 40대 중년도 있다. 이쯤 되면 머리가 아파서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따위의 쓸데없는 구분이 없어져야 한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게 되지만 세상은 아직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묻고 싶다. 왜 이성애자가 되었는지, 언제 이성애자임을 알았는지, 이성애자로 사는 게 그럭저럭 괜찮은지도 물어보고, 동성애자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발언엔 정치적 올바름을 유지하려는 환상이 숨어있진 않은지,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를 억압하고 차별한다고 스스로 밝히면서도 왜 그 억압기제와 차별 현황에 대한 성찰은 늘 동성애자들의 몫인지, 가해자보다 피해자들이 더 섬세하고 더 예리하게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구조의 모순을 해체할 수 있다는 지적조차 가해자들의 태만에 대한 합리화처럼 보이노라고 타박도 하고 싶다. 나는 비이성애자로소이다 모든 동성애자는 처음엔 이성애자였다. 알다시피 한국은 이성애주의 사회이다. 사람은 이성애자 남성 혹은 여성으로 태어난다고 간주되고 특별히 일탈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그대로 이성애자라는 믿음이 적용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동성애자들이 ‘나는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어느 날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성애적이지 못함’을 조금씩 반복해서 느끼는 과정이 바로 정체성 형성의 과정이다. 더 이상 거부하거나 어찌할 수 없이 확실하게 자신이 이성애자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바로 ‘이성애적이지 못한’ 상태를 합리화해주는 단어로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 동성애자는 비이성애자(non-heterosexual)인 셈이다. 이미 주어진 성 정체성이란 책을 이성애자는 무사통과로 읽어 나가는 ‘긍정’의 과정을 거치지만, 동성애자는 이미 새겨진 활자를 지워가며 다시 쓰는 고통스런 ‘부정’의 과정을 통과한다 이것이 근본적 차이이고 또한 억압이 발생하고 차별을 느끼게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동성애자를 비이성애자로 파악하길 권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이성애자’라는 용어가 동성애자를 대체하길 바란다는 건 아니다. 낯설기만 할 동성애자라는 말 보다 이성애가 포함된 단어인 비이성애자로 생각해 보라는 제안이다. 전 보단 더 ‘이성애’에 주목하게 될 것이고, 또한 그리 매끄럽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성애자가 이성애자로서의 분명한 문제의식 없이 동성애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이성애주의와 차별 또한 더 강화될 수 있다. 시선의 변화 없이 힘의 변화가 오겠는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38 | 추천: 0
학벌은 정당화된 차별을 위한 장치 김상봉/ 철학자, 학벌없는사회 교육은 인간의 자기실현의 기관이다. 이 말은 교육이 부자나 특권계급, 곧 선택받은 소수의 자기실현이 아니라 인간 일반의 자기실현의 기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자기실현의 기회를 제공해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낙오할 수 있는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복지적 기능을 수행함은 물론, 삶의 현실적 조건의 차이로 말미암아 발생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문화적 단절과 몰이해, 나아가 적개심을 미연에 예방하는 사회적 통합기능을 수행한다. 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교육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고, 어떤 집단을 동등한 교육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성별이나 빈부귀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공교육을 베푸는 교육제도를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교육은 또한 각 개인의 자아실현의 기관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즉 모든 사람은 교육을 통해 개성적인 인격으로서의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교육은 보편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개성적이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이율배반적인 요구다. 국가의 공교육 수립 과정에서 부딪히는 가장 원칙적인 어려움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이율배반은 보편성과 개별성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 본질에서 비롯된 까닭에 둘 중 하나만을 택하는 것으로써 해소할 수 없다. 경쟁이데올로기로만 치닫는 한국의 공교육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공교육은 근본 철학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공교육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국민의 평등한 자기실현을 위한 장치였던 적이 없었다. 도리어 국민들 사이의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옛날의 과거시험이 출세를 위한 수단이었듯이 오늘날의 학벌체제에서 교육이란 남보다 좋은 대학가서 남다른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의 장치일 뿐이다. 공교육 체제가 오히려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장치였던 것이다. 이 점이 한국 교육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교육이 불평등의 재생산장치였던 까닭에 대다수 사람들은 교육이 평등과 사회 통합의 장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교육을 통한 불평등을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생각한다. 교육의 이름 아래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맹목적으로 정당화하고 신성시하는 미신에 빠져 현실적 교육의 파행을 비판 없이 절대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험공부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교육을 받는다’ 또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험공부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물론 교육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이는 수단일 뿐 어떤 경우에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교육에서는 전 교육이 마지막 평가, 곧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시험성적을 교육적 성과와 무비판적으로 동일시하고, 인성교육과 지성 계발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현행 수능시험 같은 비교육적인 시험도 신성한 통과의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시험을 통해 가려진 이른바 우수인재가 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는커녕 오히려 시샘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학벌타파 위해 학교를 평준화해야 한다는 김상봉 선생 게다가 교육이 차별과 배제의 장치라는 통념에 더하여 요즘에는 맹목적인 경쟁논리와 시장논리가 제법 그럴듯한 이론의 탈을 쓰고 급속히 유포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경쟁이란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가장 좋은 처방이므로 교육 역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보다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이기심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미화된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때 그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육에서의 경쟁은 소수의 승자를 위해 절대다수의 패자들을 희생시키는 ‘검투사적 경쟁’이다. 이는 과장된 수사나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증가하는 청소년 자살이 실증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모든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별하고 또 차별한다. 이 차별이 패자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활동으로 유인하는 자극이 되는 한에서 경쟁과 승패에 따른 차별적 보상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 교육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패자의 희생 위에 살아남은 승리자들만을 위한 투쟁으로 변질된 지 이미 오래다. 한국 교육은 차별과 배제의 장치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의 교육이 오로지 집단적인 학벌에의 진입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나마 생산적일 수 있는 경쟁이 모든 면에서 역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교육에서의 경쟁은 개인들 사이의 학력(學力)경쟁이 아니라 학벌(學閥)경쟁이다. 학벌이 과거의 족벌문중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개인들 사이의 경쟁이란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학벌집단들 가운데서 보다 지배적인 학벌집단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일 뿐, 탁월한 자기실현을 위한 경쟁은 아니다. 더 나아가 학벌집단들 사이의 불평등한 서열이 단순히 객관적으로 주어진 현실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도 정당화되고 요구되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더러는 학벌을 타파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연발생적인 대학 서열이란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학벌집단들의 서열이 필연적인 당위라는 확신이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려 있는데, 바로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인 공교육의 수립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왜곡된 공교육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평준화된 학교교육이다. 평준화된 학교교육이란 국가가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동등한 수준과 내용의 교육으로서, 빈부격차와 생활환경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와 의사소통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학벌집단을 기준으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계급분화가 일어나는 한국사회에서 평준화된 학교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 서열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중·고등학교의 평준화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위기에 처한 평준화체제를 수호하고 교육의 본래성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평준화를 단순히 수세적 입장에서 지키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철학과 원칙에 입각해 적극적, 공세적으로 추구해야만 한다. 단순히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과 확대를 막는 것은 물론, 비평준화 지역을 평준화 지역으로 바꾸고, 학교교육이 억압이 아닌 자율성을,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학생인권의 존중과 권리의 확대, 그리고 교육과정과 학제의 다양화를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아가 서열화 된 대학들을 평준화시켜야 한다. 학교평준화는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것 모든 것은 자기의 본래성에서 이탈할 때 질병에 빠져든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원칙적으로 인간의 자기실현을 위한 것이지 어떤 경우에도 타자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교육이 타자와의 경쟁으로 변질되어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성인 사회의 야수적인 생존경쟁구도를 그대로 이식하고 강요함으로써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학교의 서열화에 저항하고 중등학교든 대학이든 모든 학교의 평준화를 추구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이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기제가 되고 있는 사회에서 학교의 평준화를 추구하는 것은 차별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 평준화 운동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운동으로서 단순한 교육운동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정치투쟁이자 인권운동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
미래의 상상력이 현실을 보여준다. 진중권/ 미학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 시대에 따라 이상적 인간형은 변화한다. 호전적, 전투적 인간형이 이상적 모델이었던 중세에서는 전쟁이나 결투가 당연한 것이었고, ‘교양’은 약자였던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며 상황이 달라진다. 중세적 칼부림은 밀실로 사라지고, 이성적 인간이 이상적 인간형이 된다. 이는 데카르트가 정념과 상상력 그리고 감각을 배제해야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가상현실은 ‘가상’이 아닌 ‘현실' ‘상상력’의 현재적 의의를 도식화하자면 DATA(라틴어로 datum, 주어진 것)와 FACT(라틴어로 factum, 만들어진 것)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예전에 구두 제작자가 할 일은 이상적 이데아로서의 구두 모형을 본뜨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구두의 이데아를 확인해 주는가? 이데아를 말하는 신학자(theoria)나 철학자였다. 바로 이들이 구두와 이데아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구두의 가격을 매겼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구두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진다. 비로소 장인들의 개성적인 창조성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세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근대에는 Subject(주체)와 Object(객체)의 개념으로 세계를 파악했다. 이때 주체는 ‘주어진 것’으로서의 객체에 대해 참-거짓을 판별했다. 그러나 이제는 ‘Project’의 시대가 도래했다. 주체와 객체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상력의 시대이다. 이전을 ‘모방의 시기’라 한다면, 이제는 ‘디자인의 시기’인 것이다. 상상력에는 ‘해리포터’와 같은 주술적 상상력, ‘반지의 제왕’과 같은 신화적 상상력, ‘매트릭스’에 영감을 준 보르헤스의 철학적 상상력,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패러독스적 상상력, 쥘 베른과 같은 과학적 상상력 등 여러 유형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상상력이 현실에 실체를 갖는 상상력이라는 점이다. 현대 사회의 테크놀로지가 그 원동력이다. 종자개량에서부터 온 몸으로 확대된 성형 수술, 유전공학 등이 바로 테크놀로지에 의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상상력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상현실’도 대표적인 예다. 이제 가상현실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싸이월드의 미니룸은 엄연한 가상현실이지만, 그 가상현실속의 아바타를 위해 실제 돈을 지불한다. 리니지 등의 게임에서는 사이버상의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엄청난 현금 거래가 이뤄진다. 텔레비전, 인터넷, 게임 등등이 ‘가상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프로그램 생산자와 소비자로 세계가 나뉠 것이다. 한국이 아무리 ‘IT 강국’을 외쳐도 마이크로소프트사(MS)가 프로그래밍 한 세계 안에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프로그래밍을 한 MS가 세계의 표준이고 한국은 하위 프로그래머 정도인 것이며, 실질적으로는 ‘IT 소비 강국‘인 셈이다. 이러한 차이와 미래적 비전을 좀 더 경계해서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테크놀로지를 통한 현실화된 상상력을 맹목적으로 찬양해서도 안 된다. 특히 한국사회가 기계 기술에 너무 맹목적인 경향을 보인다. 황우석 박사의 경우, 외국 같으면 당장 윤리적 문제부터 제기했을 텐데, 한국 사람들은 오직 세계 최고의 기술, 노벨상 후보감만이 관심 대상일 뿐이다. 이런 점을 보면, 그 상상력에도 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상상력과 연관된 창조력이나 예술적 감성 등은 앞으로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노동이 아닌 정신노동이 더 중요할 것이고, 그것은 일종의 ‘놀이’와 비슷해질 것이다. 미래 사회가 ‘노동 해방’을 추구하는 맑스의 사상을 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맑스가 이야기했던 ‘꿈꾸는 노동’은 많은 부분 실현될 것이다. 놀이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놀이 요즘 학생들은 과거 세대와 다르다. 예전에 리포트를 쓸 때는 기승전결이 뚜렷했으나, 이제는 ‘자르고 붙이기’가 대세다. 구어체뿐만 아니라 이모티콘도 등장한다. 그렇다고 요즘 학생들을 별종으로 봐서는 안 된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가족관계뿐만 아니라 전체 마을의 생활 패턴이 변했다. 요즘 학생들은 처음부터 TV와 함께 성장한 아이들이며, 거기에 게임과 인터넷까지 덧붙여졌으니 오죽하겠는가? 영화와 TV, 게임 등의 매체들은 구성 자체가 이미지의 몽타주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몽타주 세대의 아이들은 사회나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이전 세대들에게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라는 발전론적 역사관, 진보적 역사관이 통용됐다. 순차적 시간 구조이기에 개인의 정체성은 말 그대로 ‘individual’이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영원한 현재’를 추구한다. 과거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미래를 현재에 갖다 쓴다. 역시, ‘자르고 붙이기’식인데,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은 ‘dividual’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산만해져서 학력이 저하된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오히려 산만해진 것이 당연하다. 자동차가 발명돼 걷는 능력이 퇴화하는 것처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당연한 현상과 문화로 구성된 현대 세계가 바로, 비선형적(unlinear)이며 하이퍼링크(hyperlink)의 세계이다. 예술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원시시대와 근대, 현재에 걸쳐 예술은 그림, 글, 그림이라는 표현 수단을 활용했다. 물론 원시시대의 그림과 현재의 그림은 다르다. 전자가 주술적 맥락을 지닌다면, 후자는 텍스트를 깔고 있는 그림이다. 즉 현 시대가 이미지의 시대이지만 그 이미지는 ‘이미’ 많은 컨텐츠와 컨텍스트를 함유하고 있다. 윈도우를 예로 들어보자. 비록 윈도우의 형태는 GUI(graphical user interface)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텍스트 프로그래밍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구성하고 창조하는 최종적인 프로그래머는 결국 텍스트로 승부를 내기 때문에 이미지의 시대일수록 텍스트가 더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를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실상 지금처럼 인문학이 필요한 적이 없었다. 현대 사회의 이상적 인간형은 상상력을 갖춘 예술가, 컨텐츠를 제공하는 인문학자 그리고 엔지니어의 복합 모델이다. SONY社와 백남준의 상상력의 동맹 관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역사에도 상상력 넘치는 천재들이 많이 있다. 화가로 알려진 다빈치는 광학, 기하학, 원근법을 결합한 조합과학으로서의 회화를 추구했다. 갈릴레이나 뉴튼도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연금술사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상력과 호기심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상상력을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러나 되찾을 수는 있다. 바로 ‘놀이’를 통해서다. 카드나 체스 게임은 모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다. 어릴 때 많이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술래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세계적 장면들의 복합 구성이다. 한번 뒤돌아 볼 때마다 상황이 변하지 않는가? 종이접기라는 기초적인 아이디어가 현대 사회의 최첨단 기기에도 적용되고 있다. 우리는 의자도 접어서 만들고, 컴퓨터도 접어서 만든다. 상상력을 살리는 인권운동 필요 이러한 발상을 근거로 인권운동의 패러다임도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국보법에 대한 인권적 대응은 개인의 표현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자는 지극히 소극적이며 보호주의적인 전략에 근거했다. 좀 더 적극적이며 공세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 국보법은 상상력의 최대의 적이며, 이 때문에 상상력의 만개를 통한 사회발전에 걸림돌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55 | 추천: 0
여성주의가 인권영역을 확장하고 재구성한다. 정희진/ 서강대 강사, 여성학 제29차 수요대화모임 강사로 오신 정희진씨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로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갔다. “강의를 맡고 있는 어떤 대학의 수업 첫 시간에 한 남학생이 내게 ‘눈이 아름답습니다’라고 얘기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예쁘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거나 어떤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그 표현 자체가 젠더화된 표현이어서 화가 났다. 그 남학생이 여성 교수인 내게 던진 ‘아름답다’는 무의식적으로 교수에게 ‘너는 여성이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교사라는 헤게모니를 쥔 너이기 이전에, 너는 여성이므로 학생이기 이전에 남성인 나와 권력관계가 상하관계임을 표현한 것이다.” 범주의 정치학 사실 누가 여성인가, 누가 인간인가는 상당히 논쟁적인 개념인데, 보통 여성을 결정할 때 ‘body’와 ‘person’은 같지 않음에도 우리는 ‘body’로 여성을 결정지어 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범주도 기존에는 인간은 남성임을 상징해왔고 거의 모두가 ‘인간’을 ‘성중립적’인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에 있는 여성 관련 강의들을 보면 ‘여성과 인권’ ‘법과 여성’ ‘현대사회와 여성’ 등이 있다. 여기서 ‘여성과 인권’이라는 과목에서 인권은 남성의 인권을 뜻한다. 따라서 이런 과목들의 제목은 여성을 인간에서, 시민에서, 법에서, 사회에서 제외하는 언어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담배를 당당하게 필 수 있는 여성은 할머니, 지식인, 유흥업소 여성이다. ‘어떻게 여성이 담배를 피워’라는 의식이 아직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은 그런 비난의 공격을 고스란히 비껴나 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규범적으로 여성이 아닌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여부는 한 사회의 지배규범에 의해 자의적으로 정해진다. 4·3 제주항쟁에서 ‘서북청년단’이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빨갱이를 죽였다”고 말하고, 가정폭력가해자가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집사람을 때린 것”이라고 항변하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제29조 1항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진다’는 조항은 장애인과 여성은 국민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 것인가? ‘군인도 인간이다’는 말이 보다 명확해지려면 여성, 장애인이 군대에 갈 권리를 인정하고, 병역거부 등 군대에 가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군인이 되는 것이 시민권으로 연결되는 것을 반대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인권영역의 확대와 재구성 인권운동 초기에는 양심수, 장기수 등 공적영역에서 국가에 의한 정치적 문제만 인권문제로 생각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 동성애,장애인 문제로 범주가 확대되었다. 이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이 개인과 개인의 폭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일상의 정치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인권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으로 보편성을 얘기하는데, 보편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보편이라는 개념은 구성되는 과정 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공을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이고, 역사적 상황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년간 이대축제에서 고대생들이 저지른 행동은 명백한 성폭력이다. 그런데 여론은 ‘학생들이 강간을 한 것도 아닌데 성폭력이라 한 것은 지나치다’며 이를 ‘젊음의 낭만, 놀이’로 보았다. 그렇지만 평화시의 이런 남성 중심적인 놀이문화가 바로 전쟁 시에 강간, 학살과 같은 폭력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쟁에서의 폭력은 ‘광기’ 때문에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젠더화 된 일상놀이문화의 연장선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즉, 일상의 상징체계가 전시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도 누가 누구를 상대로 하는 주장인가가 중요하다. 백인이 흑인을 비하하는 것, 남성이 여성을 비하하는 것, 호모포비아를 드러내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근대에 강력한 국가주의가 들어서면서 거대한 국가권력에 비해 약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표현, 집회, 사상의 자유 등을 인정했다. 즉, 지배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권리일 때만이 표현의 자유는 진보적 가치로서 존중되는 것이다. 이를 프라이버시와 연결해 생각해보면, 개인의 지위가 성별, 계급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프라이버시도 다르다. 동성애자의 성은 정치적인 반면 이성애자의 성은 프라이버시이다. 또한 남성이 프라이버시를 국가, 자본을 상대로 주장하면 진보이지만, 여성을 상대로 주장하면 진보가 아니다. 따라서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은 피의자, 재소자로서 인정되는 것이지, 피해자를 상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인권과 안네프랑크의 인권, 전두환의 인권과 광주 희생자들의 인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권은 필연적으로 재구성의 논리가 필요하다. 인권은 재구성되는 것이다 ‘근절’이라는 것은 때론 관념론에 지나지 않는다. 성매매방지법은 본의 아니게 성매매 유형을 바꾸는 결과를 낳고 있고,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부르주아를 욕망하며 그들과 동화된다. 노동운동가들의 요구는 사실상 자신도 중산층처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임금을 인상하라는 것이다. 남성노동자 월급과 여성노동자 월급의 비율이 100대 52다. 이 공식이 깨지지 않는 한 남성노동자의 월급 또한 100에서 110으로 올라가지 못할 것인데 거기까지는 사고하지 못한다. 맑스의 가장 큰 오류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실천이고, 말을 바꾸는 것도 실천이다.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것도 실천인 것이다. 아울러 자기 내부에 있는 타자성과 대화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위치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이는 다만 현재와 맺고 있는 채널일 뿐 변화한다. 장애인의 90%도 후천적인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메신저가 아니라 메세지에 있다. 그래서 레닌이 얘기했던 “짜르와 생각이 1초라도 같으면 연대한다”는 말은 의미가 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