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김대중, 노무현 정부 평가를 할 때, ‘잃어버린 10년인가’ 혹은 ‘성공한 10년인가’ 하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회복, 민주화 운동을 한 세력이 집권함으로써 기본적인 정치적인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 남북 간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제 권력은 유지 혹은 확장되었다. 부동산 급등으로 부자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고 다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약화되었다. 따라서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 사이의 어느 사이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서민, 가난한 자들이 민주당 정권 10년을 버리고 이명박 정권을 선택했으며, 그리고 왜 또 다시 실망하고, 더 고통 받고 가난해지고 힘겨워하는지 그 원인을 추적하고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밝혀내기 위해 10년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때 평가의 기준은 어떤 민주주의를 했는가, 즉 정치적 자유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의 개선, 사회적 시민권의 확보, 평등의 확산 등을 준거로 해야 한다. 사실 지난 10년은 보수정권의 긴 지배기간의 ‘짧은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운동이 약속한 혁명, 변화, 개혁, 민중생존권, 서민들의 삶의 질 개선은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어디로 사라지고, 한국 사회의 보수화가 심화되는 속에서 대안을 찾는 길은 지난 10년 정권을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설정한 의제와 한계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의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었다. 권위주의 청산, 정경유착 탈피, 정치개혁,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 민주주의 개혁과 함께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관치경제와 재벌을 시장을 통해 개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실패하고 관료에 의존하였고, 외형적인 외환위기는 극복하였으나 재벌개혁에는 실패하였다. 오히려 재벌의 독점과 집중 현상이 다시 나타났고, 한국을 외국자본의 투기장으로 변모시켰다.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 카드 대란과 부동산 거품이 일어나고 서민생활은 악화되었다.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단계로 격상시키고 국가인권위원회, 여성부 설치 등 인권보호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부패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지역주의 가신정치의 폐해도 극복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의제는 특권과 차별의 철폐,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사회적 부, 권력, 가치의 재분배, 소수자와 약자 보호를 통한 사회적 균형 유지였다. 이는 사실상 진보적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 역시 스스로 설정한 국정목표와 지지자들의 요구를 얼마나 실현했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현실적 실패에는 눈을 감고 그가 실현하지 못한, 실현할 엄두도 내지 않은 막연한 노무현 구상을 기준으로 노무현 정권을 평가하는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퇴임 이후 정치평론가로서의 노무현의 진보주의적 구상이 아니라, 진보주의적 개혁과 변화의 열망을 배경으로 집권한 이후 임기 5년 동안이 평가와 분석의 내용이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시장의 독점세력에게 시장 전체를 넘겨주는 시장주의를 지향했다. 아파트 분양가 원가공개와 상한제를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며 반대했고, 법인세와 특소세를 인하하고 재벌규제를 완화했다.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기하였다. 시장에 대해 맹신하였고, 시장과잉을 제어하기보다 시장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그 결과 삼성공화국은 강화되었고, 갑작스럽게 한국사회 경제의 미국화를 추구하며 한미 FTA를 추진했다. 북유럽형 모델 논의는 중단되었다.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서민들은 시장의 폭력성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이미지는 진보적 정책이나 하물며 수사(修辭)에서 온 것이 아니라, 대결적 언어의 구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결적 언어로 인해 보수 세력으로부터 좌파, 진보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정치가 아닌 반정치를 했다. 서민들의 이해와 욕구를 국정에 반영하지 않았고, 대연정, 개헌 발언 등으로 정치의 기능 자체를 붕괴시켰다. 민주노총, 전교조 등과도 갈등하고 투쟁하였고, 노동운동에 대한 적개심과 무시하는 태도를 표출했다.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정치화 배제, 지역균형발전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퍼스널리티가 분열과 대결의 화법을 즐김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이 증폭되었고,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손실을 자초하고,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불신을 촉발시키는 한편, 반대세력을 결집시켰다.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세력은 화려한 약속과 달리 사회적 양극화, 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을 낳게 하였다. 이는 집권기간 중에 집권당이 몰락하고 해체하는 놀라운 정치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시민들은 집권세력에 복수를 하였고, 정권교체와 함께 국회도 반노무현 세력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배반당한 민주화 20년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소득분배 지표들이 악화되기 시작하는 등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이 2,316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등인 헝가리(1,986시간)와 300시간 이상 차이나고, OECD 평균 근로시간 1,768시간보다는 548시간이나 더 많다. OECD 가입국 중 빈곤률은 6위이고, 자살율은 3위, 출산율은 최하위이다. 여가시간과 수면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짧고, 삶에 대한 만족도는 30개국 중 24위다.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병든 사회, 삶의 질은 최하수준의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다. 이게 과연 민주화 20년의 열정과 헌신,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의 대가인가? 이 모든 것이 자유주의 세력(민주화운동세력)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유주의 세력이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이 세력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무너졌다. 그 결과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다. 현실을 극복할 대안은 없는가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등 야당 정치세력의 역할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호남을 기반으로 지역적 근거지를 축소시켰고, 잔존세력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결집한 당으로서 반대세력일 수는 있지만 대안세력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문제의 본질은 10년 집권의 결과 참혹한 몰락을 초래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성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 원인을 따져보고 기초부터 다시 세우기보다는 과거 집권기 이탈세력의 재결집을 회생의 제1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식의 통합은 과거 세력의 재결집 이상의 의미가 없는 타임머신 정치이다. 이 같은 통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당 의원들의 일반적인 성향, 정책방향, 노선 등을 고려할 때 전반적으로 보수화의 경향이 드러난다. 한미 FTA, 비정규직법, 법인세 인하, 성장 주시 등 노선상에서는 한나라당과의 차이도 크지 않다. 물론 구체적 현안에서는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지만, 대립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노선이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나라당의 중도실용노선으로의 전환과 민주당의 중도개혁주의노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노 상의 차이를 매우 좁힐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노선의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이명박 세력의 대표권을 독점하고 있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같은 뿌리라는 인식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의 하락이 대안으로서의 진보정당 지지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고, 동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독재로 규정하며 악마화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는 이명박 정권이 시대적응력을 상실한 무능한 보수정권이라는 본질을 은폐하며, 반대세력이 올바로 반대할 수 있는 길을 방해한다. 또한 자칫하면 지난 10년 정권을 미화하는 퇴영적인 정치적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올바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하고, 다수의 이익을 실현하고 복지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수의 정치적 조직화를 통한 자기 욕망의 실현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심화이고 진보이며 동시에 개혁이다.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 정치적 현실이다. 이명박 정권은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지키느라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 반대는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서민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민주대연합을 견인하면서 동시에 진보의 확장을 추구하기 위한 진보대연합이라는 이중의 연대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대안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다수를 어떻게 뭉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53 | 추천: 0
[72차 수요대화모임 강의자료] 김대중·노무현 정권 평가와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 잃어버린 10년인가, 계승해야 할 위대한 시대인가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 Ⅰ. 왜 김대중·노무현 정권 평가인가 한국 사회에서 지난 10년 민주당 정권(자유주의 개혁 세력)의 역사적 공과, 정권의 특징과 성격을 두고 극단적 평가가 상호 대립하고 있다. 진보 및 보수 사이에서 뿐 아니라, 여와 야, 자유주의 세력 및 진보세력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으며, 그에 따라 당면 과제, 향후 목표 설정에서 있어서도 다양한 차이와 대립을 낳고 있다. 역사적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우리가 직면한 정치 현실과 직접 닿아 있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잠정적이나마 평가해야 할 정치적 이유는 있다. 두 정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찾아 낼 수 있고 지금 무엇을 할지도 알 수 있다. 1. 10년에 대한 상반된 평가 □ 잃어버린 10년 - 보수세력의 일반적 평가. 친북, 좌파, 반미 정권의 등장으로 자유민주주의 훼손, 대한민국 정통성 파괴, 한미동맹 붕괴, 반시장정책으로 경제파탄 및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한 시기. □ 선진국 도약, 성공의 10년 - 집권 당사자의 평가. 국가 부도 위기극복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이름. 경제성장을 달성(경제규모 세계 12위, 국가경쟁력 11위, 지식정보 강국의 선진국. 2007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2007년 2만 달러 추정. 수출 3, 255억 달러, 주가지수 2065포인트, 경제성장률 5%, 외환보유고 2,601억 달러) - 민주주의: 권위주의 청산, 공정하고 투명한 민주주의 뿌리 내림. - 시장경제: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청산, 민주적 시장경제 정착. - 성장과 복지: 성장제일주의, 강자독식을 반대하고 성정과 복지가 함께 가는 사회로 방향을 선회. 국민의 정부에서 처음으로 복지정책의 틀을 잡고 참여정부에서 내용을 채웠음. - 평화: 항상 대결과 적대로 불안했던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음. (이상 “민주정부 10년, 대한민국은 성공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국정보고서”, 대통령 비서실) □ 잃어버린 10년과 성공 시대의 사이에서 - 권위주의 유산을 물려받은 구 집권세력의 정치권력 상실로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 또한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 탈권위주의. 남북화해와 협력, 평화의 증진등을 이루어냄. - 그러나 경제권력은 유지 혹은 확장됨. 부동산 급등으로 부자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다수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악화. -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10년 정권은 민중의 행복한 세상, 가난한 서민의 삶의 개선 등에 대한 열망을 싸늘한 절망으로 바꾸어 놓고, 보수정권에 권력을 헌납하고 역사속으로 퇴장.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약속은 사리고 10년 집권으로 새로운 기득권의 탄생이라는 결과만 빚어내고 그들을 구출하고자 했던 서민들은 고통에 빠뜨림. - 따라서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 사이의 어느 사이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임. 2. 10년 평가의 의의: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를 위하여 □ 더 많은 민주주의 - 서민, 가난한 자들이 왜 민주당 정권 10년을 버리고 이명박정권을 선택했으며, 그리고 왜 또 다시 실망하고, 더 고통 받고 가난해지고 힘겨워하는지 그 원인을 추적하고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밝혀내기 위해 10년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 정권의 평가 기준은 어떤 민주주의를 했는가, 즉 정치적 자유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의 개선, 사회적 시민권의 확보, 평등의 확산 등을 준거로 해야 함. - 한국인의 삶의 질 개선, 다수 시민, 가난한 자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문제는 민주주의 최소주의적 정의로는 해결할 수 없음. 절차적, 제도적 최소한의 정의만으로는 부족. 다수의 정치적 선택으로 자기들을 위한 정치 체제를 가질 수 있으므로 민주주의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음. □ 대안을 찾기 위해 - 시대 구분을 하자면, 권위주의(전두환 정권까지)- 권위주의 해체, 민주화 과도기(노태우 김영삼 정권)- 민주화 이후 자유주의 정권 집권기(김대중·노무현정권)- 신보수주의(신권위주의) 정권(이명박정권). 이 시기를 일별하면, 보수정권의 긴 지배 기간의 에피소드와 같은 10년으로 평가할 수 있음. - 어떻게 보수화, 우경화 경향을 극복하고 진보적 전망을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지난 10년의 실패를 고찰할 필요가 있음. 87년 약속한 혁명, 변화, 개혁, 민중생존권, 서민들의 삶의 질 개선은 어디로 갔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어디로 사라지고, 한국 사회의 보수화의 심화 속에서 대안을 찾는 길은 지난 10년 정권을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 Ⅱ.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특징과 한계 1. 김대중 정권 평가 □ 김대중 정권의 의제 -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야당으로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갖는 의미를 부각하면서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 구축을 과제로 제시한 것은 적절했음. 권위주의 청산, 정경유착 탈피, 정치개혁,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 민주주의 개혁과 함께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관치경제, 재벌개혁 목표를 시장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음. 즉 재벌중심의 기업체제를 탈피, 중소기업을 강화하고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시장을 관료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효율성, 공정성, 경쟁성을 추구하자는 것이었음. 이는 시장의 왜곡을 교정하는 한편, 시장의 권력을 민주주의 원리, 즉 다수의 통제하에 둔다는 의미에서 민주적 시장경제의 추구라고도 할 수 있음. □ 사회 및 복지 -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도입, 기초 생활 보장의 초석을 놓음. 의료 보험 통합, 국민연금 확대, 고용보험 확대, 국민기초 생활보장법 제정 등 복지정책을 폈으나 최소한의 소극적 복지에 머문데다 사회 양극화의 확산으로 복지로서의 기능을 못함. - 사회적 합의제도 도입.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해 정리해고 도입과 노조 합법화를 상호 교환함. 그러나 이는 국제통화기금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일시적인 합의에 불과한데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귀결됨. -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주 과제의 하나였으나 관료에 의존함으로써 관료의 부활로 귀결됨. □ 경제 - 외형적인 외환위기 극복에는 성공했으나 재벌 개혁에는 실패. 김대중 정권 전반기는 외환 위기 원인을 제공한 재벌 개혁이 과제였음. 그러나 구조조정이 완료된 이후 정권 후반기 재벌 규제는 다시 완화되고 재벌의 독점과 집중 현상이 다시 나타남. 구조 조정 과정을 거쳐 더 강력한 재벌로의 귀환. - 무분별한 개방. 외국 투기자본에 대한 보호책 없이 개방함으로써 한국을 외국 투기장으로 변모시킴. - 부동산 거품 조성, 카드 사태등 단기적 경기 부양책으로 인한 서민생활의 악화. □ 정치 및 남북관계 -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단계로 격상. 국가인권위원회 및 여성부 설치등 인권 보호 제도 도입. - 하반기 측근 및 가족들에 의한 각종 권력형 부정부패가 자유주의 세력에게도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음을 드러냄. - 지역주의, 가신정치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함. 2. 노무현 평가 □ 노무현정권의 의제 - 스스로 제시한 의제는 특권과 차별의 철폐,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사회적 부, 권력, 가치의 재분배, 소수자나 약자 보호를 통한 사회적 균형 유지였음. 이는 사실상 진보적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들임. “참여정부는 국민들이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 압축적 근대화는 사회의 모든 부문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였고, 그로 인해 특권과 차별, 배제의 갈등구조가 형성되었으며, 공동체의 분열이 야기되었다. 참여정부는 이 같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한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여 지역, 계층, 성, 세대가 더불어 잘사는 균형사회를 실현하여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것이다. 사회적 불균형의 시정은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경쟁에 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가 경쟁에서 기본적으로 배제되지 않고 참가할 수 있는 ‘국민적 최소한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약자를 사회공동체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적극적 차별해소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부, 권력, 가치의 재분배를 통하여 계층간, 지역간, 중앙, 지방간, 양성간에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균형발전사회는 경제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노동자에게도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 균형발전 사회이다.… 관용과 배려는 공동번영의 기초이다. 기업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이윤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만 보지 않고 재생산을 위한 수요를 창출하는 요인으로 보고 노동자들은 기업의 이윤을 자신의 소득향상을 위한 원천으로 볼 때 노사가 더불어 잘 사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 효율적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성원간에 협력을 위한 비용과 혜택에 대한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형평성은 협력의 핵심적 요건이다. 형평성의 기준은 수학적 평등으로 기계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세력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고려하여야 한다. 특권과 차별을 없애고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은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통합의 위기를 해결하는 기본 원리이다.(청와대 브리핑, <국정 목표와 국정원 리>)” - 노무현 5년 평가는 스스로 설정한 국정목표, 지지자들의 요구를 얼마나 실현했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함.그러나 종종 노무현의 현실적 실패에는 눈을 감고 그가 실현하지 못한, 실현할 엄두도 내지 않은 막연한 노무현 구상을 기준으로 노무현을 평가하는 오류가 발생하고 있음. 노무현 서거 정국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이지만, 5년의 집권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퇴임이후 정치평론가로서의 노무현이 구상한 국가 구상, 진보주의 개혁 구상으로 노무현 정권 혹은 노무현을 평가하는 것은 하나의 추모행위이지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음. 진보주의적 개혁과 변화의 열망을 배경으로 집권했다면, 5년간의 성적을 평가함으로써 왜 자기 구상을 실현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해야 할 것임. □ 신자유주의 확산 -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 갔다.” 시장의 지배자, 시장의 권력자, 시장의 독점세력에게 시장 전체를 넘겨주는 시장주의를 지향.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시장의 원리에 위배된다며 반대하고, 법인세 특소세 인하 및 재벌 규제 완화. 출자총액 제한제도 완화, 지주 회사 규제 완화 조치를 취했음.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포기, 시장 맹신이 있었고, 시장과잉을 제어하기 보다 시장에게 권력을 넘겨줌. - 삼성공화국의 강화. 삼성의 구호인 2만 달러 시대, 삼성이 주장한 국정과제의 채택 정책방향과 구체 내용을 삼성이란 재벌에 의탁. 장관 등 요직 인선도 삼성에 부탁해서 명단을 작성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음. (“녹음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도청이 본질”이라며 삼성 X파일 옹호.) - 한미 FTA 추진으로 한국사회 경제의 미국화를 갑작스럽게 추구. 북유럽형 모델 논의는 중단되고 미국모델로의 갑작스러운 전환. □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 사회적 양극화로 빈부격차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급증했으나 사회안전망은 제대로 구축하지 못함. 서민들은 시장의 폭력성에 그대로 노출. □ 방향성의 상실-“좌파 신자유주의” - 신자유주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수사학적으로 진보 좌파적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좌파와 신자유주의 정권 사이에서 정체성을 상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 말이 진보적 수사일 뿐 사실 진보적 수사는 많지 않으며, 대신 대결적 언어가 주류였음. 대결적 언어로 인해 보수세력으로부터 좌파, 진보의 이미지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음. - 노무현대통령은 진보든 신자유주의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다며 실용주의를 강조했지만, 자기 정체성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정체성이 없는 상황에서의 실용은 혼란으로 귀결됨. - 미국과의 관계에서 외교 안보는 다소 노무현정권의 목소리를 반영하려고 한 반면 경제에 대해서는 미국화라는 다른 방향을 추구. □ 정치의 실패 - 반정치, 분열의 정치, 배반의 정치, 해체주의 정치. 정치가 절실할 때 정치가 아닌 반정치를 했음. 한국 정치에는 시민들의 이해와 욕구를 정확하게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음. 모두를 대표한다는 것은 서민들의 정치적 대표자임을 포기하는 것. 노대통령은 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이해와 욕구를 국정에 반영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독립적인 의제를 추구하는 비정치적, 반정치적 행위를 했음. - 대연정, 개헌, 중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하면서 정권을 보수정당에게 통째로 넘겨주겠다는 발상으로 정치의 기능 자체를 붕괴시킴. 결과적으로 지지세력을 해체하고, 자기 기반을 잠식하며 고립을 자초함. - 민노총, 전교조와의 갈등과 투쟁. 노동운동에 대한 적개심 및 무시 태도 표출. - 노무현대통령의 퍼스널리티가 분열과 대결의 화법을 즐김으로써 실제 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싼 갈등 보다 불필요한 대결적 언사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었으며 이 갈등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손실을 초래하고 진보 개혁 세력에 대한 불신을 촉발하고 반대세력을 결집시켰음. 이는 지지세력 와해를 불러오고 그로 인해 정책 추진 기반을 상실함. - 시민동의 없는 대통령의 일방적 의제 선점 강행 - 여전한 측근과 가족의 권력형 부패. □ 정치적 성과 -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정치화 배제, 지역균형 발전의 추구. 3. 10년 집권의 결산 □ 민주 개혁 세력 무능론 -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세력은 화려한 약속과 달리 사회적 양극화, 서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민주화 세력 집권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진전을 이루었지만, 그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라는, 사회 경제적 개혁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를 통해 드러남. □ 지지기반의 붕괴 - 집권 기간 집권당의 몰락과 해체라는 놀라운 정치적 충격을 안겨줌. 시민들의 투표행위는 집권세력에게 던지는 돌멩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됨. 집권세력에 대한 분노가 매우 높은 수위에 까지 이름. - 지방선거, 대선, 총선에서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복수로 반대당에 표를 몰아줌으로써 정권교체는 물론 국회도 반노무현 세력이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한마디로 열망과 절망의 순환이었다고 할 수 있음. □ 배반당한 민주화 20년 - 불평등의 심화. 1998년을 기준으로 소득5분위 배율, 지니계수 등 소득분배 지표들이 악화되기 시작. (소득5분위 배율은 소득상위 20%의 소득을 소득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숫자가 클수록 분배불평등을, 1에 가까울수록 평등을 뜻함.) 이 지표는 1990~1997년 약 4배 정도에 머무르다 98년 4.94배로 급등한 뒤 2007년 6.2배. 지니계수(2인 이상 도시가구, 시장소득 기준)는 92년 0.256으로 최저치에 머물다 97년 0.268까지 약간 상승. 하지만 외환위기로 불황이던 이듬해에는 전년 대비 10% 오른 0.295를 기록. 2006~2007년 또다시 급증해 2008년 0.325. - 삶의 질 악화. 한국 노동자들의 2008년 연간 근로시간은 2316시간으로 2006년에 이어 부동의 1위. 2위인 헝가리(1986시간)와 300시간 이상의 격차로 OECD 국가들의 평균 근로시간 1768시간 보다 많음. 한국의 가난한 사람은 30개국 중 6번째로 많으며, 빈곤율은 0.15로 OECD 30개국 중 6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8.7명으로 3위이며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합계 출산율은 2006년 기준 1.13명이고, 2년 연속 30개국 중 최하위. 여가 시간은 주당 30.7시간으로 세계 평균(39.2시간)에 미치지 못하며,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 470분(7.8시간)으로 잠을 가장 적게 잠.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3.1점으로 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24위. 한 해 동안 겪은 고통, 우울, 슬픔 등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경험 수치도 61.5점으로 OECD 평균인 35.6점보다 훨씬 높음. 요컨대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병든 사회일 뿐 아니라 삶의 질은 최하 수준의 행복하지 않은 사회임. - 이게 민주화 20년의 열정과 헌신, 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의 대가인가. 민주화가 정치적 자유, 최소한의 시민적 권리 확보에 그쳤을 때 시민적 욕구는 증대했음. 더 나은 삶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를 바랐지만, 민주화 세력은 딱 이 지점에서 멈추었음. 이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유주의 세력(민주화 운동 세력)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유주의 세력이 당면한 이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이 세력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무너짐. 4. 10년 집권 실패의 원인, 그리고 결과 □ 시장주의 확산 - 김영삼 정부까지 광범위했던 재벌 개혁론의 상실. 시장의 독점적 지배자, 정경유착, 부정부패, 불투명한 경영 등으로 재벌 해체 혹은 개혁은 사회적 과제로 부상했음. 그러나 오히려 10년 집권기를 거치면서 재벌은 정치, 경제, 사회 전 영역에 걸친 절대 지배자로, 헤게모니 세력으로 등장. 재벌 일부는 몰락했지만, 더 강력해지고 공고해짐. - 시장을 관치경제를 타파하는 개혁의 도구로 인식. 곧 국가 개입 없는 시장의 자율성이 경쟁력과 효율성, 경제개혁, 경제성장을 보장한다고 인식했으며 이 때문에 시장의 힘을 강화하는 것은 곧 선이고, 국가도 시장 강화를 위한 개입을 정당화하면서 관치경제는 국가개입에 의해 강화된 시장으로 전환. - 10년 동안 시장화의 깊이와 확산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OECD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음. 시장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국가의 역할은 미미한 반면, 시장이 개인이나 가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OECD 국가들에 비해서 매우 높음. ‘과잉 시장화’라고 불릴 수 있는 사회. 교육의 경우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 2005년 18-21세 인구에서 대학에 등록한 인구 비율은 65%로 그리스와 함께 세계 최고다. 미국 45%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30% 내외에 지나지 않음. 그런데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부모의 교육비 부담이 가장 높음. 전체 GDP에서 정부의 고등교육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0.7%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고, 이는 OECD 평균 1.3%의 절반 정도. 한국은 고등교육의 매우 낮은 공공성을 특징으로 함. 의료도 의료 서비스의 공급과 재정 조달이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서 비해서 의료의 공공성이 낮음. 전체 의료비 가운데 정부의 지출은 OECD 평균 73%에 훨씬 못 미치는 55%에 불과. 가장 낮은 멕시코의 45%보다는 높지만, 유럽 선진국의 80%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수준임. 주거의 경우 한국의 경우 주택 공급은 대부분 건설업체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공공주택 비율이 5%에 미치지 못함. 네덜란드의 경우 공공주택의 비율이 35%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으며 유럽 대부분의 경우 15-18% 수준임. 상대적으로 공공주택의 비율이 낮은 남유럽과 영어권 경우 7% 미만임. 싱가포르의 경우 85%가 공공주택에서 살고 있고, 홍콩의 경우에도 45% 정도의 주택이 공공임대주택이거나 정부지원을 받는 주택임. □ 성장주의 - 2만 달러 시대등 성장주의를 부추기고 이로 인해 복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마련되지 못하고, 성장을 통해 분배가 이루어질 것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재벌 독점, 노동통제, 사회 양극화 해소에 대한 시민적 욕구를 억압함. □ 노동의 배제 - 민노총을 합법화 하고 노사정위원회 가동했지만, 외환위기의 특수상황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한시적인 것에 그치고, 노동을 포용하기 보다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 실현을 제약함. □ 초기 개혁 후기 관료 의존, 개혁 포기 안주. - 개혁과제들을 초기에는 거론하고 고민하나 후반기에는 대체로 포기, 관료 통제에 실패하고 개혁 프로그램의 부재로 관료와 재벌에 의존. □ 역사적 과제의 포기 - 진보적 의제, 개혁적 의제 실현 못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한, 동반성장, 소수자 보호, 시장 통제, 빈부격차, 불평등 □ 민주화 운동 동력의 상실 - 과거 재야 원로들의 위상은 10년 정권의 위상과 연계됨으로써 이들의 사회적 목소리는 영향력을 상실. □ 보수주의 헤게모니의 강화 - 다수 불만에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20% 밖에 대표하지 못함- 과소 대표로 인한 정치 왜곡 및 거리의 정치-> 의회 난장판->정치실망->참여거부->시민 불이익. 이 불균형은 어디선가 폭발과 문제를 일으키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정치체제. -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보수 물적 기반 강화. 중산층 해체, 저소득층 추락. 이런 노선을 민주적 정통성이 있는 정권이 추구함으로써 이 사회의 보수화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하게 구축해줌. 5. 몇가지 논쟁점 □ 이명박정부와의 차이 - 이명박정권은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공공기관장사퇴 압력, 검경의 통치 도구화 등 퇴행적 행태로 지난 10년 정권이 이룩한 민주주의 성과를 일정하게 훼손했음. 또한 교육 3불 정책 폐지 추진, 공기업 민영화 확대 등 시장화를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음. 그러나 이명박 정부 역시 87년 체제의 산물이며, 정치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노선, 노동의 배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의 연속선상에 있음. 한미 자유무역협정, 금융 자유화, 대외 개방, 비정규직법, 아파트 분양가 공개 반대, 규제 완화 등에서도 차별성이 없음. - 노무현과 이명박은 상호 안티테제가 아님. 안티체제라면 이명박 반대, 노무현 지지로 단순 정리 가능. 그러나 노무현 이명박은 노선, 정책적 중첩성이 있음. -물론 노무현 이명박이 연속선상에 있다 해서 10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동일시 할 수는 없음. 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노무현 이명박의 무차별성을 강조할 경우 노무현 이명박의 시장주의 차이점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음(이명박대통령이 중도 실용 노선을 추구하면서 국정 방향을 일정 부분 수정하고 있으므로 그 결과에 따라 신권위주의 정권에서 신보수주의 정권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음.) □ 개혁세력 무능론 -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차이가 무능론을 낳은 배경이라는 점에서 무능론은 보수정권의 능력과 비교할 성질의 것은 아님. - 10년 정권의 무능논란은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의 무능론과 대비됨. 자유주의 정권 보다 보수정권이 더 유능한가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주장임. 국가 부도를 낸 김영삼 정권, 국정운영의 한계 드러난 이명박 정권등 보수정권 역시 무능하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후 집권세력은 모두 무능하다는 일반화를 할 수 있을 듯함. 그렇다면, 무능은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구조, 정치문화, 정당정치의 제약 등 구조적인 문제일수도 있음. □ 왜 좌파 진보로 낙인찍혔나. - 노무현 정권은 보수세력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였다고 할 정도로 진보 개혁 세력 내부를 와해시키고, 진보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경제 문제와 관련 노동배제, 시장주의 정책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좌파 진보의 딱지가 붙였을까. 첫째 실제 구체적인 정책과 노선 및 가치와의 불일치로 인한 것. 시장주의, 성장 우선, 친 재벌 정책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수사를 동원. 둘째, 민주화 운동 배경의 정권에 대한 선입견. 셋째, 대북 포용정책, 동북아 균형자,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에 대한 평가를 좌파적으로 규정. 이런 현안들을 놓고 좌파와 우파로 구별하는 선이 흐릿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 공세 차원에서는 유용했던 것으로 보임. 넷째,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의 갈등과 대결이 단지 보수언론과 싸운다는 이유로 노무현정부에 진보 이미지를 심어줌. - 노무현대통령이 진보, 좌파적이었다면, 그 것은 재임 기간이 아니라 퇴임 이후였다는 점에서 역설적임. 노대통령은 퇴임이후 진보주의 연구에 몰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로 규정함. 진보적 개혁에 대한 포기와 그에 따른 실망, 실정으로 인한 보수 헤게모니의 확산에 기여해 놓고 퇴임이후 국가 구상을 진보적 개혁에 두었다는 것은 진보적 개혁을 준비하지 못한 정권의 현실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음. Ⅲ. 민주당: 계승자인가 유산의 파괴자인가 1. 민주화 세력의 잔당 □ 지역정당으로 축소 - 민주화 20년, 집권 10년의 결과물로서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적 근거지로 축소. □ 생존을 위한 당 - 몰락한 집권당의 잔존세력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결집한 당으로서 반대세력이 될 수는 있지만, 대안세력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 □ 민주세력이라는 이름의 쇠퇴 - 민주당을 여전히 민주세력이라고 호칭하지만, 이는 민주화 이후 불분명해진 모호한 개념임. 민주 세력 이라는 성격 규점은 역사적 시효가 끝남. 한나라당과 이명박정권을 반민주 독재정권으로 규정할 수 없다면, 민주세력도 규정될 수 없음.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 구도에서 민주세력이 아닌, 다른 이름을 가져야 하지만, 민주당이 새로운 상황에 걸 맞는 이름을 갖지 못함. 이는 민주당이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직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의미. 2. 민주당 재건의 방식 □ 통합, 통합, 통합 - 민주당 문제의 본질은 10년 집권의 결과 참혹한 몰락이 초래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반성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 원인을 따져보고 기초부터 다시 세우기 보다 과거 집권기 이탈 세력들의 재결집을 회생의 제1과제로 추진하고 있음. - 우선 친노세력 등 탈당그룹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탈당 그룹의 통합은 과거 세력의 재결집 이상의 의미가 없는 타임머신 정치. 이같은 통합을 통해서는 민주당 문제를 해결할수 없음은 열린 우리당 해체, 대통합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음. 열린 우리당 해체 이후 통합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합민주 신당은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했음. 이런 무조건 통합에 외부 인사가 참여할 리도 없다는 점에서 통합 우 방식의 당 재건은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음. 통합쇄신위원장을 노무현 정권의 노쇄한 인물로 인식되는 김원기가 맡은 것도 통합 작업의 전망을 어둡게 함. □ 뉴민주당 플랜 - 뉴민주당 플랜은 민주당의 우경화 프로그램으로 노무현정권 평가를 한나라당 시각에 따라 과거 낡은 진보로 정의하고 새로운 중도 혹은 진보를 해야 한다고 표방함. 자기의 과거를 무능한 좌파로 스스로 낙인찍고 한나라당 모델을 모방하는 것임. 시대적 과제를 현대화라고 규정했으나 이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라는 한나라당이 역사발전 모델을 베낀 것에 불과. 김효석 민주연구원장은 강남, 대기업, 부자, 성장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 - 그러나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추모분위기,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실용 전환등의 변수가 생기자 다시 진보를 강조하며 오락가락 노선 전환, 10년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부족함. □ 타임머신 정치, 노병정치, 유훈정치 - 과거 재야 원로 망명가들이 17대 대통령 선거 때 과거 민주화 운동 때 하듯이 대통합을 촉구하고 진보개혁 세력의 단결을 촉구하며 민주당 지지를 호소했지만,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함. 이는 민주화 운동의 소진된 에너지를 되살리는 방식으로는 실효성이 없음을 의미. - 그런데 최근 다시 민주대통합 시민행동을 결성, 대동단결을 외치며 이명박 반대전선을 통일할 것으로 주장. 생활 정치의 시대,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 새로운 의제, 시민들의 욕구 충족이라는 새로운 요구에 맞지 않은 낡은 운동방식. 3. 노선의 보수화, 행동의 과격화 □ 부조화 - 민주당 의원의 일반적 성향, 정책 방향, 노선 등을 고려할 때 전반적으로 보수화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음. 한미 FTA, 비정규직법, 법인세 인하, 성장중시등 노선상에서 한나라당과의 차이도 크지 않음. 물론 구체적 현안에 관해서는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지만,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노선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 특히 한나라당의 중요 실용 전환, 민주당의 중도 개혁주의는 노선으로서의 차이를 매우 좁힐 것으로 보임. - 그러나 한나라당은 집권당, 민주당은 야당이라는 상호 위치로 인해 여야간 대립과 충돌은 매우 격렬함. 이 당파적 대립으로 인해 민주당은 반대세력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이미지를 획득. 이와같은 ‘작은 차이를 둘러싼 싸움’은 여야가 노선 격차의 정도와는 무관한, 정치적 대립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임. 즉 민주당은 이명박 반대세력의 대표권을 독점하기 위해 여늬 정당 못지않은 대여 투쟁을 함. □ 진보정당과의 동반하락 - 민주당의 반이명박 투쟁은 진보정당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음. 자유주의 정당과 진보정당의 차이가 민주당의 반이명박 투쟁에 의해 가려지므로 민주당은 더욱 반대 투쟁의 선두에 서고 있음. -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같은 뿌리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의 하락이 대안으로서의 진보정당지지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고, 동반하락 하는 현상이 나타남. 4. 유훈정치: 김대중·노무현 계승의 문제 □ 유리한 점 - 두 대통령 서거 정국이 조성한 추모 분위기와 과거 지지세력 결집에 따른 반사 이익이 있을 수 있음. 민주당은 소수당, 지역주의 정당이 아닌, 영호남에 걸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던 전국전당임을 상기하고, 민주당 불참여 소수 정파들과 달리 정통성을 잇는 민주화 세력의 적자임을 부각할 수 있음. □ 불리한 점 - 과거 실패의 기억을 환기하며, 과거 실패의 유산을 계승한 세력임을 상기시킴. 따라서 미래 세력이라기 보다는 과거 세력이라는 이미지 각인 가능성이 있음. Ⅳ. 반 이명박 민주대연합론 1. 이명박 정권 평가 □ 이명박의 악마화와 반대의 신성화 - 이명박정권의 성격을 파시즘, 독재로 규정하며 이명박정권을 악마화하고 이를 부정하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음. 이는 한국의 사회 정치적 문제가 이명박정권의 ‘타도’로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는 환상의 유포에 다름이 아님. - 물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훼손이 있지만, 이명박 정권 역시 87년 민주화의 토대위에 있는 정권으로서 정권 전체를 반민주 정권으로 규정할 수는 없음. 이명박정권은 공권력 사용의 정통성을 가진 정권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권력의 행사를 막을 길이 없다는 점에서 권위주의 정권과 다름. - 이명박 반민주세력론은 반민주세력을 반대하고 축출하는 것으로 한국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20년전 담론의 복귀이자,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10년전, 혹은 20년전으로 후퇴시키는 것임. 또한 민주화 이후의 과제를 놓고 성찰하고 고뇌를 해왔던 한국사회의 고민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기도 함. □ 민주세력의 개념 문제 - 민주 대 반민주 구도하에서 민주는 무조건 지지하고 옹호해야 할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을 의미함. 그러나 이는 10년의 평가를 무시하고 상황을 호도하는 개념으로 더 이상 현실 적합성이 없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음. □ 시대적 과제의 은혜 - 이명박정권의 악마화는 첫째 이명박정권은 시대 적응력을 상실한 무능한 보수정권이라는 본질을 은폐함. 둘째, 그에 따라 반대세력이 올바로 반대할 수 있는 길을 방해함. 이명박정권의 악마화는 자칫 지난 10년 정권을 미화하는 퇴영적인 정치적 효과를 낳을 수 있음. 2. 반대의 주체 □ 이명박 반대 세력 ○ 보수적 반대 - 박근혜,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의 반대는 이명박 노선과 정책의 틀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 국정 운영 스타일, 통치방식에 대한 내부 비판의 성격을 띠고 있음. - 보수의 한 분파로서 갈등하는 양상. ○ 자유주의적 반대 혹은 구 집권세력의 반대 - 친노그룹, 민주당 등 기득권을 상실한 구 집권세력의 반대. - 지난 10년의 정권의 한계를 안고 있는, 이명박정권과 적대적 공존의 관계에 있음. 민주화 20년의 한계로 파탄난 잔존세력이 시대정신을 구현한 새로운 세력으로 재탄생하지 못한 채 반대를 통해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음. - 이명박 반대투쟁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반대세력으로의 정통성을 획득하고자 함. 그러나 이는 스스로 혁신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체현한 세력으로 거듭남을 통해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를 통해 과거를 은폐하는 것으로 집단기억의 망각이란 요행수를 바라는 것에 불과. - 이 ‘반대를 통해 차이 드러내기’는 ‘작은 차이를 둘러싼 대결’을 초래하고 갈등의 수준에 비해 노선과 정책적 차별성은 적다는 특징이 있음. - 이런 대안없는 반대는 반대여론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 ○ 다수 서민의 반대 - 반대의 이익은 무엇이고 그 이익을 누가 수확하는가를 준거로 반대가 올바로 되고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임. 현재 이명박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가 다수의 서민들이라고 했을 때 이명박 반대는 서민들의 이익으로 귀결되지 않고 있음. 민주당에 대한 약간의 정치적지지 상승이 있지만, 여전히 박근혜가 반대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음. - 이는 반대가 대안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결과. 피해자인 서민들의 불만과 반대 정서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반대의 정치적 결과는 결코 서민들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 왜곡이 나타나고 있음. 따라서 현재 민주당의 반대는 반대를 대표할 자격을 상실하고 있음. 3. 민주대연합의 한계 □ 민주당 중심의 문제 - 이명박정권을 반대하는 민주당을 포함한 자유주의 및 진보주의 제세력의 연대는 당면 과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필요한 정치 전략. - 그러나 반이명박의 과제는 노무현과 이명박을 넘는 과제임. 따라서 지난 10년의 실패를 경험한 세력들의 재결집은 반대세력의 정통성을 다시 상실하는 결과를 낳을 것임. □ 이명박과 민주당의 중복 - 이명박의 많은 문제들은 민주당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으며, 반이명박은 부분적으로라도 반민주당과 겹쳐짐. □ 대안의 억제 - 이명박정권 반대라는 단순한 정치적 이유로 제 정치세력을 통일하려는 것은 의미 있는 차이와 분화 발전의 계기를 차단. Ⅴ.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올바른 목표 설정 □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 시장 만능주의 극복, 복지사회, 다수의 이익실현은 다수의 정치적 조직화 통한 자기 욕망의 실현을 통해 가능. 그 것이 민주주의 심화 및 진보이고 개혁.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음. 이 것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 정치적 현실. - 이명박정권은 이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세력, 시장 지배자의 이익을 지키느라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음. 따라서 이명박정권 반대는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서민들의 삶이 무한 경쟁,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파괴되는 것을 막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함. □ 보수 헤게모니의 균열과 사회 경제적 의제의 확산 - 이명박정권은 중도 실용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정권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스스로 폭로하고 있음. 시민적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보수적 의제 조차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무능한 보수정권임. 이 때문에 무능한 보수가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음. - 이명박정권은 이 사회를 보수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이며, 사회를 분열시키고 타락시키는지 분명히 각인시키는데도 성공했음. 민주화 이후 김영삼정권, 이명박정권 등 보수정권의 국정 수행 능력의 한계는 특정 정권의 능력의 차원이 아닌 보수정권의 능력의 수준을 드러낸 것으로 스스로 보수 헤게모니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음. □ 김대중·노무현·이명박을 넘어 - 이명박 반대는 과거 영광의 재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을 넘어, 더 많은 민주주의, 민주화 20년의 성과와 한계를 넘는 소외된 다수 서민을 이한 것이어야 함. - 대안세력이 올바른 대안을 준비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좋은 역사적 계기를 이명박정권이 제공하고 있음. 시민들은 노무현도 이명박도 아닌 대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함. 2. 민주주의 전진을 위한 과제 □ 대안의 조직 - 대안있는 반대여야 함. 대안은 선택 가능하게 제시되어야 하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함. 밥상에 올려져있어야 젓가락이 갈 것임. 밥상에도 올라와 있지 않으면 선택의 기회도 없음. 대안이란 노선과 정책 뿐 아니라, 조직, 인물을 포함. - 서민은 이미 다수이지만, 조직되지 않은 다수. 결론은 대안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뭉친 다수로 조직하느냐의 문제. □ 반 MB 민주대연합과 진보연합의 문제 - 반대의 본질, 이명박정권의 한계를 폭로하고 대안을 확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특히 보수의 균열과 붕괴가 목격되는 상황에서 진보적 담론의 확산을 통해 진보적 여론의 형성과 정치적 조직화를 꽤할 수 있음. - 그러나 조직화되지 않은 현재의 조건에서 진보연합만으로 맞설 경우 고립될 수 있음. - 따라서 민주대연합과 함께 이중의 연대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 민주대연합을 견인하면서 진보의 확장을 추구해야 함. - 진보연합의 폭도 두 정당 중심이 아닌, 민주당내 일부 진보세력과 시민단체를 망라한, 초당적이고 범사회적인 대안세력의 연대틀을 구성, 민주대연합을 주도하는게 필요함. □ 민주당 해체 혹은 쇄신 - 이 연대의 조건으로는 민주당의 혁신을 촉진하고 견인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임. 민주당의 해체와 혁신을 통해야 견고한 연대가 가능. 몰락한 잔당으로서의 민주당이 아무런 변화없이 과거의 실패를 안고 반대의 최전선에 서는 것은 무의미함. 따라서 연대의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하며 이는 민주당의 낡은 요소를 탈피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함. □ 진보의 재구성 - 서민의 이익을 조직하고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보수 헤게모니를 깨고, 진보정당이 시대변화에 맞게 재편성되어야 함.
2017-08-08 | hrights | 조회: 57 | 추천: 0
언론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최문순/ 민주당 국회의원 사이버모욕죄와 집시법 등 이른바 MB악법으로 불리는 법안들도 심각하지만, 미디어 관련법을 놓고 여야가 몸싸움까지 벌이고 대리투표, 일사부재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모르쇠로 치부하며 밀어붙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바로 불가역성(不可逆性) 때문이다. 앞서 말한 법안들의 문제점도 심각하지만, 그래도 좀 참았다가 정권이 바뀌면 다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방송법은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정치적 자산은 물론 미래의 정치적 자산까지 훼손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신문과 방송의 경영상의 문제를 넘어 87년 체제를 둘러싼 투쟁이다. 미디어 악법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해체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유일한 민영방송이던 부산 MBC(김지태 사장)는 3.15 부정선거 규탄 과정에서 희생된 마산의 김주열 학생 사건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등의 활약을 했다. 박정희가 MBC를 빼앗아 버렸고,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가 1961년부터 MBC를 소유하게 되었다. 지금도 지분의 30%는 정수장학회의 몫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에 시민들에 의해 MBC 방송국이 불태워졌을 정도로 MBC는 정권의 충직한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MBC 사원도 정수장학회에서 선발했고, 박정희의 뒤를 잇는 전두환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장이 직접 인터뷰에 나서는 등 무리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피땀흘려 만들어 온 언론민주화 시민들이 관공서, 하다못해 경찰서도 그대로 두면서 방송국만 불태웠던 것은 방송이 전두환 정권의 가장 충직한 집권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언론의 참담한 역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이 언론민주화의 횃불이 되었다. 1988년 5월 최초의 국민 소유 신문사인 <한겨레>가 창간되었고, MBC가 정치권력에게서 독립했다. 박정희 일가가 소유한 주식의 70%를 KBS로 넘겨주고, KBS와 MBC가 공영방송으로 새출발을 한 것이다. MBC의 소유구조 등을 규정한 <방송문화진흥회법>의 제정에 따른 것인데, 이 역시 87년 체제의 성과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던 1998년에 방송개혁위원회가 출범하였고, 이는 방송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졌다. 방송이 더 이상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 공익적 매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가 함께했기에 KBS는 국영에서 공영으로, MBC는 민영에서 공영으로, 곧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언론매체들의 변화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소유권이 공기업에게 넘어가면서, YTN이 공영방송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한화그룹의 자회사였던 경향신문은 독립언론, 사원주주회사가 되었다. 권력과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언론의 출현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미디어 악법은 이와 같은 과거의 민주화 성과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종합편성 PP가 왜 문제인가 방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MBC, KBS, SBS 방송으로 드라마도 보고 스포츠도 보고, 음악도 듣고 뉴스도 시청한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방송을 한 채널에서 다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종합편성 PP(Program Provider·채널사용업자)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케이블처럼 한 채널이 한 종류의 방송을 내보내는 경우다. 뉴스만 보도하는 YTN방송이나 드라마만 볼 수 있는 ’MBC드라마넷‘ 등을 ’전문 편성 PP'라고 한다. 종합편성은 뉴스전문편성보다 훨씬 더 높은 뉴스 전달력을 갖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와 연결된 뉴스를 제공하기에 시청률이 높고,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30% 정도의 시청률을 보이는 드라마 뒤에 어떤 뉴스가 방송되느냐에 따라 여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합 편성 PP'가 생기면 우리나라 전체를 광고 전달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 현재 각 지역별로 방송사가 있지만 영세한 편이라 중앙 방송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중앙 방송사의 영향을 받다보면 내보내는 방송의 내용도 중앙 방송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지역의 특색은 사라지게 되고 중앙 중심의 내용만 방송될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을 가진 ‘종합편성PP’를 이윤창출이 목적인 시장 권력에 귀속시키려는 것이 ‘미디어법’의 주요 내용이다. 결국은 조중동의 방송진출이 관건 방송시장 진출을 노리는 조선, 중앙, 동아 입장에서 방송국을 만들만한 자본은 없지만, 대기업, 재벌과 연결해 방송허가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이 때 정부의 힘이 작용하게 될 것도 물론이다. 이 미디어법은 결국 우리가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힘겹게 만들었던 ‘한겨레 창간(88.5)’과 ‘MBC의 독립(88.12)’ 등 언론자유와 독립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다. ‘땡전 뉴스’식의 여론 호도와 정권 찬양에만 열심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지향해야 하며, 이 공공성은 언론의 독립을 통해서만 성취가 가능하다. 방송이 국가 권력과 대기업위주의 시장 권력, 또는 조중동 식의 수구언론에 귀속된다면 우리 국민의 알권리는 보장받기 어렵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처리에 그토록 열을 올린 것은 그들의 정권 지배를 공고히 하고 장기화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안정적 정권재창출 나아가 장기집권을 위해 언론지형을 뒤흔들어버리자는 게 한나라당 정권의 속셈이다. 미디어법은 지방과 서민의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조선, 중앙, 동아 등과 소수의 대기업을 연결시켜, 그들만의 방송을 만들겠다는 거다. 이는 군사정권을 물리치고 언론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우리의 과거를 해체하는 것이며, 지방과 서민의 목소리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기에 또한 우리의 미래를 해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 말씀하셨다. 시민들의 힘을 모아 무엇이 문제인지 관찰하고 어떻게 실천해야하는 지를 깨달을 때이다.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10월에 있을 예정이며 현재 미디어법 원천무효 천만인 서명 운동이 진행 중이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8 | 추천: 0
2MB 시대, 반대를 넘어 대안으로 임종인/ 변호사, 전 국회의원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노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난 것은 92년 5월 민변 수련회였고, 93년부터는 ‘해마루 법률사무소’에서 노 전 대통령을 모시고 함께 일했다. 이미 80년대 후반에 청문회 스타로 유명해진 분인데도 참 소탈한 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행보는 잘 아실 것이다. ‘바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우직하게 자기 길을 걸었다. 2002년 대선 승리는 그런 정치행보에 대한 평가의 결과였다.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는 2MB에 대한 분노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진보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이념, 세대, 지역’을 아우르며 수구세력의 압박을 돌파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이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결집된 것이다. 색깔론과 보수언론의 공세를 넘어선 것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성역과 금기를 깨뜨린 사건이며 민주주의의 확장이었다. 이후 개혁진보세력이 더 이상 색깔론과 보수언론의 공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제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양극화로 인해 서민들은 더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고, 4대 입법으로 대표되는 개혁입법도 실패했으며, 경제문제를 교묘하게 파고 든 수구세력의 거듭된 공세 등으로 인해 지지층이 무너졌다. 2004년 총선 이후 재보선에 연달아 패했고, 대연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미FTA 추진, 비정규직 법률안의 통과로 지지층은 완전히 사분오열 되었다. 열린우리당은 끝내 붕괴되었고, 참여정부의 좌절과 실패는 결국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하고 4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의 의미였다. 이명박이 싫은 사람들이 투표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반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반대만으로는 진보를 이룰 수도, 좋은 세상으로 나갈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권을 궁극적으로 심판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집권전망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슬픔과 분노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고, 좋은 의미에서 ‘정치화’될 수 있다.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정치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야권이 대단결해야 하고, 시민사회와 하나 되어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치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 세 가지를 극복해야 한다. 먼저 모든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지금은 작은 기득권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둘째로 시장만능주의를 폐기하고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출발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진보정당들이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되 연합정치를 통해 실질적인 힘을 키워나가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숙제를 풀어가면서, 민주화시대 이후 시민들과 함께 변화를 주도해나갈 새로운 중심세력을 결집시켜야 한다. 집권을 가능케 할 정치 대안을 마련해야 어쩌면 노 대통령이 자신을 내던지면서, 다시 한 번 국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길 바란다는 뜻을 우리에게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는 떠났고 그가 남긴 꿈들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당장은 온통 어두움뿐이지만 이 어둠을 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다시 한 번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2MB, 왜 방송에 집착하나 이강택/ KBS PD 많은 사람들은 ‘언론’을 선험적으로 자유를 부여받은 신비한 집단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정권, 시장에 의해서 영향을 크게 받는 자본주의 사회의 집단 중 하나일 뿐이다. 특히 주류 언론사는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존재하면서 하나의 위계 구조를 가지며, 그 구조는 위로 갈수록 더욱 철저한 통제구조 모습을 갖는다. 언론사의 이러한 통제 구조는 크게 2가지로 구성된다. 언론사 상층부는 자신들의 말에 잘 따르는 사람들만 채용할 수 있는 인사권과 자신들의 의도대로 방송을 구성하는 프로그램 편성권으로 언론을 통제해 나간다. 단지 내부적으로만 통제받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정부 언론장악에 맞서는 MBC는 MB정권 들어 수입의 대부분인 광고가 급감했다. 경제 불황 여파도 있겠지만 광고를 배분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중간에서 정부의 의도에 맞게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부에도 통제가 어김없이 존재한다. 청취자를 위한 방송, 정권을 위한 방송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알기 위해서는 방송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방송은 크게 사영, 공영, 국영, 대안(공동체)으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다들 얘기하는 공영방송은 언론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공영방송의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간다. 국가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방송을 자본에 맡길 수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국가권력도 맘대로 통제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공영방송이다. 모든 이가 동등하게 참여하자는 취지에서 모든 청취자에게 동일하게 수신료를 걷어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고 청취자를 위한 방송을 가능하게 했던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방송은 1927년에 일본에 의해서 시작되고 미국이 들어오면서부터는 KBS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분단 이후에는 정부가 관리하는 국영방송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방송의 시작이다. 그러다 1973년에 공영방송으로 바뀌었으나, 이는 문화관광부 관리들의 철저한 감시·통제를 받는 무늬뿐인 공영방송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에 의해 1980년도에 방송 통폐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신군부세력은 언론사 내에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모두 내보내고, 방송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청자들은 시청료 거부 운동으로 맞서기도 했다. 왜냐하면 방송은 자본이나 국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정책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영방송 중심 체제를 사영방송 중심 체제로 바꾸려는 것이다. 공영방송 중심 구조를 해체하여 결국 사영방송과 국영방송만 남기려고 한다. 이로써 언론을 국민을 위한 방송이 아닌 기득권세력만을 위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언론을 장악하면 사회 모든 곳에 정보원들(기자)을 심는 게 되고 자신의 의도대로 사실을 조작할 수 있다. 정부가 언론사를 장악하려는 의도는 정권의 재생산 또는 영구집권을 위한 것임이 자명하다. 이런 음모에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강하게 뭉쳐 저항하지 않으면 이 싸움은 이기기 힘들다. “비관할 필요는 없다.” 나는 요즘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그래도 정권을 10년 안에 교체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지금 이 시기보다 더욱 힘들었던 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에는 훨씬 건강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했었다”고 말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8 | 추천: 0
버마, 그리고 한국의 희망찾기 뚜라/ 버마행동 대표 내가 한국에 와서 택시를 타면 기사가 보통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십중팔구, ‘버마’에서 왔다고 하면 ‘아! 미얀마’라며 잘 안다는 말씀을 하신다. ‘버마를 어떻게 알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버마 아웅산묘소폭파사건으로 버마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좋은 일로 버마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버마’가 공식명칭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미얀마’가 공식 국가명이 됐다. 군부정권이 맘대로 국가명칭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버마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군부정권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미얀마’라는 국명을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버마’라고 부르고 있다. 버마의 민주화를 예상하고 한국으로 내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8888 민중항쟁’ 이후 버마의 민주화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절이었다. 1962년 3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이후 군부정권의 독재에 시달리던 버마 국민들은 1988년 8월 8일에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를 했고, 이를 계기로 총선을 통해 정권을 이양받기로 약속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나는 버마가 민주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 이후를 고민했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전문대학에 진학해 기계를 공부했던 나는 해외에서 기계를 제대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싱가폴과 한국으로 가서 기계공부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다가 먼저 허가가 난 한국에 오게 됐다. 그러나 군부정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90년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이 80%이상의 득표를 얻었지만 군부정권은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가택 연금했다. 그 이후 아직까지 버마는 군부정권이 독재를 휘두르고 있다. 군정은 버마 국민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버마는 세계적인 자원부국이다. 천연가스는 세계 10대 매장량을 자랑하며, 루비 등의 보석과 열대우림에서 나는 고가의 목재도 매우 풍부하다. 축복받은 기후 덕에 쌀 생산량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 버마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해 있다. 정권의 유지에만 급급한 군부는 국민의 생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쳐 결국 총체적인 경제 파탄의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물가는 그 끝을 모르게 치솟고 있으며, 국민들의 1/4 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연명하고 있다. 군부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더욱더 가혹한 탄압으로 억누르고 있다. 경제 악화와 독재 정권의 유지가 서로 맞물리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버마가 민주화 될 것을 예상하고 한국으로 왔던 나는 이렇게 되어 버린 상황에서 버마로 돌아 갈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의 삶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한국에 온 나는 처음에 단양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 당시는 아직 이주노동자가 많지 않을 때라 그 지역의 이주노동자는 나와 함께 온 내 친구, 이렇게 2명밖에 없었다. 우리를 처음 본 사람은 쳐다보면서, 만져도 보고 신기하게 여겼다. 너무나도 낯선 존재였던 것이다.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하루 16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고 동물원 원숭이 같은 취급을 받았다. 약속된 임금도 제때 주지 않았다. 기계를 배우고 열심히 일해서 몇 달 안되어 공장의 한 라인을 책임질 정도가 되었지만 임금은 20만원이 안되고 그나마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았다. 너무도 부당한 처사에 월급을 60만원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일을 안 하겠다고 요구해서 온갖 회유와 ‘당장 나가라’는 협박을 받으면서도 결국 60만원의 임금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와 소위 말하는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 버마행동의 뚜라 대표 버마 민주화 활동가의 삶은 시작되고 불법 체류자로 살면서는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가는 곳마다 부당한 일들이 생겨났고 이에 맞서 싸우는 일이 더욱 빈번해졌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자신의 처지가 변해 있었다. 먼저 한국에 와서 그나마 한국사정을 잘 알기에 다른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같이 싸우면서 도와주는 일도 잦아졌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입장에서 해결책은 하나다. 바로 버마가 민주화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버마의 인권 상황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처우가 더해져 결국 나는 버마 민주화와 이주노동자를 위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동료들을 만나고 ‘버마행동’을 조직하면서 하나씩 버마의 민주화와 한국 내 이주노동자를 위한 일을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인권연대와 같은 단체와 연대해서 ‘프리 버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버마의 상황을 더 알리고 버마 민주화에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버마 국내에서 활동하는 동료에게 자금을 송금하거나 함께 부를 수 있는 버마민중 노래를 만들고 전하기도 한다. 또한 이주노동자 방송국인 MWTV를 만들어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국사회에 알리고 있다. 한국에는 100만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있다. 대부분 일이 힘들고 보수가 적어 한국 사람들은 거의 일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처우가 열악한 것만이 아니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혹 폭행 등의 피해를 입어도 정당하게 사업장을 옮기거나 계약을 변경할 수 없다. 계약기간 중도에 자신의 나라를 방문할 수도 없다. 정해진 기간이 종료되면 무조건 출국해야 된다. 돈을 벌기는커녕 한국에 오기 위해 진 빚을 갚을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한국정부는 이런 현실은 외면한 채 불법체류자 단속만으로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관리하려고만 한다.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관점을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 무조건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것이 아니라 인력을 필요로 하는 한국과 일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 양측을 살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버마의 민주화를 꿈꾸면서 한국도 오랜 기간 군부독재에서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민주화를 이루어낸 국가다. 내가 버마에 있을 때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버마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었고 큰 감명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나와 같은 제3세계 민주화운동가에게 그리 호의적인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민주화운동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지원을 하기는커녕 난민지위를 부여하는데도 인색하다. 난민협정에 가입되어 있는 국가인데도 말이다. 나도 오래전에 난민지위 신청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불법체류자로 단속되어 버마로 강제송환 되면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비록 한국이 정부차원에서의 많은 지원이나 난민지위를 인정해 주는 데는 인색하더라도 나에게는 좋은 한국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는 미안할 만큼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그들의 도움과 격려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한국과 버마는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언젠가 한국에서의 버마민주화운동이 결실을 맺어 버마에서 군부정권이 무너지고 한국과 함께 민주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소망해본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용산참사와 ‘부동산 계급사회’ 손낙구/‘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왜 용산4구역 재개발지역에 무리하게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끔찍한 용산참사가 발생하였나. 물론 많은 이들은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의 과잉충성으로 빚어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한 개인의 과잉충성심만이 아니라 건설재벌의 거대한 개발이익이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 1월 용산구청 자료 ‘21세기 희망찬 새용산 - 용산 개발현황’을 보면 서울역에서 한강에 이르기 까지 16개 개발지역이 망라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알짜배기 개발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즉 용산참사 지역인 4구역 용산역세권 개발이다. 150층 빌딩 건축 등 사업비만 28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개발이익이 걸린 탓에 GS, 현대산업개발, 포스코 등 왠만한 건설재벌은 다 참여하고 있으며, 삼성물산이 주도하고 있다.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역세권 개발사업에서 삼성물산, 한 개 기업이 얻는 이익은 시공이익을 포함하여 무려 1조4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대규모 공사는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동시에 진행되지 못하고 한 공사씩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계획된 공사하나가 틀어지면 전체공사가 지연되면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용산4구역은 2009년 2월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철거가 늦어지면서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나는 이 손실을 막고자 경찰특공대가 급하게 투입됐다고 생각한다. 건설재벌의 개발이익을 확실히 보호하고자 한 경찰특공대 투입작전이 6명의 생명을 앗아가게 만든 용산참사의 큰 원인이다. 확실한 이익은 건설재벌 손으로 재개발에서 가장 확실하게 개발이익을 얻는 집단은 시공사나 철거·용역·정비업체 등 계약에 따라 공사를 수주한 업체들이다. 건설재벌들로 구성된 용산 4구역 시공건설사들이 받게 되는 공사비만 6천억 원에 달한다. (주)파크앤시티는 조합에 시공사와 철거업체 선정 등을 자문해 준 대가로 105억 원을 받았는데 이는 시중가격보다 갑절이나 된다. 용역깡패의 폭력으로 물의를 빚은 철거업체 두 곳이 받는 공사비는 63억 원이다. 이들은 용산 4구역 재개발 과정에서 가장 확실한 개발이익을 현금으로 쥐는 집단들이다. ▲ 67차 수요대화모임 모습 그 다음의 이익 수혜자들은 역시 집주인, 땅주인들이다. 개발사업이 발표되면서 2004년 이후 용산 4구역 땅값은 10배 이상 뛰었다. 기존 부동산 소유자들이 최종 확보하게 되는 권리를 기준으로 얻게 되는 개발이익은 가구당 5억 원이 넘는다. 나아가 부동산 소유자들의 분양과정에서도 시세차익이 예정돼 있다. 최소 3억에서 11억 원까지 분양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소유자들이 얻게 되는 개발이익은 새로 지은 아파트나 오피스텔, 상가 가격이 예정된 분양가 이상으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에 따라 개발이익의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하락세인 부동산 시세가 폭락할 경우 양상은 완전히 바뀐다. 즉 이들은 공사를 수주한 업체들보다는 확실한 이익을 보장받지 못한다. 용산 4구역에 집을 갖고 있던 집주인들 중에 상당수는 결국 동네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아니 개발계획 발표 뒤 몇 년 사이 투기세력이 몰려들고 상당수 집주인이 이미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임대주택을 제외한 모든 아파트가 50평형 이상이고 아무리 시세보다 싸게 준다 해도 분양가격이 약 14억 원이 넘으니 이 돈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입주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소유주들이 분양받는 전체 270채 중에서 50평형은 6가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60평형 이상이다. 60평형의 조합원 분양가격은 16∼17억 원에 달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5년 현재 용산 4구역이 포함된 한강로3동의 주택은 용산 전체평균보다 아파트는 절반 수준인 데 비해, 단독주택은 두 배에 달한다. 이는 1,299채의 주택에 1,738가구가 살고 있었던 점과 견줘보면 전월세가구를 낀 다가구주택 집주인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전월세 보증금까지 돌려줘야 하는 다가구주택 소유주들은 비싼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입주를 포기할 것이다. 결국 은평 뉴타운에서처럼 소득수준의 차이로 인해 80% 이상은 타동네로 쫓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부동산 먹이사슬과 부동산 계급사회 부동산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철저한 먹이사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먹이사슬의 최정점에는 재벌을 비롯한 대표적인 부동산 계급인 부동산 5적이 있고, 맨 밑에는 무주택자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1990년대 일본과 같은 토건국가 현상을 보이며 건설 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 등 부동산 5적이 투기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부동산 5적 바로 아래에는 집을 여러 채 가진 다주택자를 비롯한 부동산 부자가 있고, 이들과 무주택자 사이에는 집을 한 채 가진 1가구 1주택자가 있다. 부동산 5적은 정경언 유착, 관변 학자까지 끼어든 정경언학의 투기 동맹으로 얽히면서 부정부패의 온상이 돼왔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 뇌물 사건의 55%는 건설관련 부패이며, 공직자가 물러나는 주된 이유도 부동산 관련 비리와 투기가 많다. 부동산 먹이사슬의 각 단계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즉 부동산 보유 여부, 그리고 보유 부동산의 규모라는 기준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계급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먼저 집을 소유한 집단과 소유하지 못한 집단, 지하방·옥탑방·비닐집 등 적절하지 못한 곳에 거주하는 극빈층으로 크게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주택 소유자는 다시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자(1계급)와 그렇지 않은 자(2계급), 집을 소유했지만 경제적 여력이 안돼 셋방에 사는 집단(3계급)으로 나뉜다. 셋방 사는 사람은 내집 마련을 꿈꿔볼 수 있는 경계선인 전월세 보증금 5천만 원(2005년 말 현재)을 기준으로 둘(4, 5계급)로 나눌 수 있다. 지하실이나 옥탑방, 비닐집, 쪽방 등에 사는 부동산 극빈층은 그 집을 소유한 사람이 일부 있으나 가격이 워낙 싸기 때문에 주택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같은 최하계급(6계급)으로 분류된다. 부동산 문제 해법이 한국 사회의 미래 결정 부동산 계급이 삶의 질 전반을 결정하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계급별 맞춤형 주택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다주택 소유자에게는 택지 국유화와 임대소득세·보유세를 강화하고 1가구 1주택자 보호 정책을 펴야 한다. 집이 있으나 대출금 부담 등으로 셋방 사는 가구는 내집 입주 지원정책으로 상향시키고 보증금 5천만 원 이상의 셋방 사는 무주택자는 내집 마련 지원안을 마련해야한다. 보증금 5천만 원 미만 무주택자에게는 전·월세가 안정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지하방, 비닐집 등에 사는 극빈층은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정책이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택지에 대한 단계별 국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3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매년 30∼40조 규모의 영구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택지를 국유화할 경우 5년 안에 전체 택지의 20%를 국유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의 채권 발행은 채권시장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공공 택지를 건설 재벌에 헐값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공영개발을 통해 공공주택을 지어 무주택 서민에게 임대하거나 분양해야 한다. 한 예로 송파거여(위례)신도시를 100% 공영 개발할 경우, 38조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1조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면서도 4만5천가구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할 수 있다. 부동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며, 한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사람답게 사는 한국 사회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실천해야 한다. ‘서민대청소’ 사업으로 전락한 건설재벌 주도의 뉴타운 재개발을 중단하고 공공개발 중심의 도심 재생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뉴라이트와 역사교과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2004년 10월경 뉴라이트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나 도대체 뭐가 ‘뉴(new)'인지 알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꼴보수’의 대표격인 김용갑 의원 등 여러 명이 ‘저게 바로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라며 맞장구를 쳤을 정도니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런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흔들기가 한참이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근현대사 특강 강사들 경력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뉴라이트가 왜 그렇게 역사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는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의아해 할 것이 없다. 뉴라이트는 원래 그것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명박 집권 후 뉴라이트의 활약을 예상하긴 했지만,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왜일까. 아마 촛불집회를 거치며 그 해답을 얻었을 것이다. ‘좌경용공’의 운동권이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촛불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즉, ‘전교조 빨갱이'들이 새빨간 역사교과서로 애들을 다 버려서 그렇다는 것이 뉴라이트의 일치된 견해일 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이 별거 있겠는가. 전교조 몰아내고, 교과서 뜯어고치는 식의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다. 친일잔재청산의 실패는 실패, 그 이상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사회에는 존경할 만한 우파가 없다. 서구에서 우파는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일단 상식적이며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수긍이 가는 자기 나름의 원칙도 있고, 관점이나 생각은 달라도 삶의 태도에 있어서 배울게 적지 않은 것이 서구의 우파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합리적인 ‘진짜’ 우파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것은 친일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이른바 ‘지식인’들이 많은데, 이들 중에 친일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 물론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 죄질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의 반역자들’이 문젠데, 한국의 경우 바로 이들이 집권함으로써 친일 잔재의 청산에 실패하게 되었다. 이것은 밋밋한 실패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한다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가진 세력이 친일파에게 거꾸로 역청산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청산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4.19 이후엔 5.16 때문에 못하고, 박정희가 죽고 난 뒤 이른바 ‘서울의 봄’도 속절없이 날려버렸다. 좋은 기회 다 날리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과거청산을 했는가. 아니다. ‘인권 대통령’께서는 과거청산 대신에 국고 5백억 원을 들여 박정희 기념관을 짓자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8.15 경축사에서 포괄적 과거청산 얘기를 꺼내면서 국가보안법(국보법)을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때 나는 평화박물관 운동을 하고 있는 터라 ‘국보는 국립박물관에, 국보법은 평화박물관에’라는 구호를 외치며 환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과가 어떤가. 국보법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다. 과거청산이란 게 쉽지 않다. 특히 노무현 정부를 보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 민변 초대 회장이 국정원장이 되고, 민변부회장 했던 이가 법무부 장관, 민변 초대 대표간사가 여당의 원내대표가 되었다. 17대 국회에서 국보법으로 감옥 갔다 온 사람들도 30-40명이나 되었다. 여당단독 과반수에 민노당 10석이 있었다. 말 그대로 국보법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국보법을 폐지시키겠다고 했을 때, 과거청산이 불안한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했을 것이다. 대통령과 의회라는 선출권력을 다 내어주었으니 ‘웬만해선 그들을 말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구도에서조차 국보법 폐지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청산 대상 세력들은 뜨끔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등장한 것이 바로 뉴라이트다. 한국의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과거청산에 대한 대응 활동을 하기 위해 뉴라이트를 앞세웠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반동적인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들이 내세운 것이 바로 건국정신이다. 좌경용공들이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뉴라이트의 ‘건국정신’ 뉴라이트에서는 입만 열면 ‘국가 정체성’을 내세운다. 과연 저들이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나 읽어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제헌 헌법은 3.1운동 정신의 계승을 전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부칙에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에 대한 헌법적 근거도 마련해두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사회주의적 통제 경제에 가까운 경제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중요 산업 국유화, 토지개혁, 무상교육과 무상치료, 8시간 노동, 남녀평등과 같은 임시정부의 강령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툭하며 ‘좌빨(좌파 빨갱이)’로 지목되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도 이런 식의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달랐다. 제헌 헌법은 누가 만들었던가. 독립 운동 진영 내에서도 가장 오른쪽이 만든 것이다. 현재의 ‘우파’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국유화다 토지개혁이다 하는 것들은 이미 과거의 ‘우파’들이 그렇게 바라마지않았던 내용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의 뉴라이트들이 입에 담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진정한 모습이며, 그들이 수행해야 할 ‘우파’의 참 역할이다. 이렇게 수립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과제가 일제청산이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들은 남로당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해산, 백범 김구 선생 암살 등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일련의 ‘쿠데타’를 일으키며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좌절시켰다. 친일 청산을 무위로 그치게 한 반민족 행위자들은 제헌 헌법 위에 서서 그들의 권력을 말 그대로 ‘초헌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무기를 만들어냈다. 바로 국보법이다. 지금 저들이 떠들어대는 국가 정체성이란 제헌 헌법에 기초한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에 불과하다. “민주화가 담긴 역사교과서를 만들자” 마지막으로 교과서 이야기를 해 보자. 지금 뉴라이트 세력들은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마치 굉장한 좌편향을 지닌 불순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과서들을 보면 대부분의 내용들이 거기서 거기다. ‘붕어빵 교과서’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거의 미비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학자들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이나 사실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학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공통된 이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비록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한 역사가 짧고, 실제로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전문가들도 수적으로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 드러나 있고 그에 대한 평가가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이러니 역사교과서들이 다양하게 있더라도 사실상 그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가 제시하는 역사라고 특별히 새로울 것이 있겠는가. 큰 차이가 없어야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다’. 전혀 엉뚱한 내용들로만 말이다. 그들은 1948년의 정부수립만 이야기할 뿐 거기서 조금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임시정부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 온통 친일파와 독재에 대한 미화로 가득하다. 유신시대의 ‘시련과 극복’, ‘한민족의 용틀임’ 등 ‘웅비사관’의 재탕뿐이다. 하긴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교과서’ 필진에 역사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2010년에 교과서 편찬 기준이 변한다. 이제 우리는 뉴라이트에 대한 무시를 넘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바로 현행 교과서가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한 과거청산의 역사, 우리가 손으로 일군 민주화의 역사를 교과서에 담아 다시는 역사의 후퇴가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검찰, 이대로 좋은가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 요즘 검찰이 관심의 대상이다. 최근 '정치검찰'의 성향을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의 사건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촛불문화제 관련한 일, 검사를 5명 투입해서 번역 잘못한 방송국을 수사한 일, 광고 불매운동을 수사 대상에 넣는 일 등의 사건이 그렇다. 이러한 사건을 보면 검찰을 - 살아있는 권력에 의지하면서 그 권력을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우리가 72년부터 87년 사이 비난의 목소리로 얘기했던 권력의 시녀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있으면 지난 2002년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이 있었을 당시보다 더 큰 불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사동일체 원칙과 기소독점주의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해 상사가 지시를 할 수 있다. 이를 안 따르면 사건을 지시한 상사가 사건을 승계하든지 다른 검사에게 이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약 이의가 있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나, 누가 자기 목숨 혹은 목숨과도 같은 승진을 내놓고 이의제기나 저항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 따라서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것이 그대로 유효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검사는 피해자를 대리함으로써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과 일종의 계약 관계를 맺는다. 이를 통해 검사가 공권력을 행사하게 되고, 검사에게는 이러한 공권력을 행사할 때 진실에 맞도록 하는 ’객관의 의무’가 있다. 따라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가 있을 때에도 이를 숨기지 말고 반드시 법원에 제출해야한다. 그러나 일단 수사가 진행되면 무죄 증거가 많이 나오더라도 이를 무시한다. 우리나라의 유죄율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소를 얼마나 많이 해서 유죄를 받아내느냐가 인사성적에 굉장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검사 동일체원칙 아래에서는 검사가 객관의 의무를 지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선 인사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인사권을 상사가 갖고 있게 되면 상사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인사기준을 마련하고 공정성 및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상사나 인사권자를 쳐다보지 않고 소신껏 법과 양심에 따라 법에 정해진 절차를 지키면서 법을 적용하고 심판할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감찰권 행사 강화이다. 감찰위원회를 구성한다 하여도 검찰 혹은 검사 출신의 변호사, 교수들 등의 친 검찰 인사로 감찰위원회를 둔다면 징계권을 제대로 행사 할 수 없을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권과 공소권의 주체이다. 따라서 검사가 공소제기를 하고나면 굉장히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기소편의주의를 택해 기소 할 수 있는 권한이 검사에게만 있다. 따라서 유죄판결을 받을 자신이 있어도 기소 유예를 하든지 아니면 불기소 처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권한이 굉장히 막강하여 법원이 아무리 사건을 다루고 싶어도 불고불리의 원칙에 의해서 사건을 판단 해볼 수 없다. 많은 사건들의 경우 검사의 이러한 권한을 통해서 은폐되거나 자동적으로 유야무야 되는 경우 많았다. 또한 검사가 중간에 공소를 취하할 수 있는 권리와 공소를 변경할 수도 있는 권리도 있다. 마지막으로 형을 집행하는 권한도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 검사의 권한은 굉장히 막강하다. 반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해서 기소하지 않을 경우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물론 검찰청의 상급기관에 항고하거나 법원에 재정신청을 낼 수도 있다. 첫째, 재정신청은 불기소 처분이 옳은지 그른지 법원에 물어 재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형법 123조부터 125조에 이르는 3가지 범죄에 대해서만 재정신청이 가능했지만,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을 통해 범위 제한이 없어졌다. 처음 법을 만들 때는 제한이 없이 모든 법에 가능했다. 정권안보를 위해 검찰이 필요했던 독재정권은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으려는 검찰의 개정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재정신청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이번에 다시 원상회복 한 것이다. 다만 남용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신청한 사람에게 재판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였다. 또한 항고 전치주의라고 하여 반드시 항고를 먼저 해야 한다. 한편 재정신청을 전면적으로 열어두면서 재판 진행시 지정 변호사가 검사의 역할을 대신해서 공소를 유지하는 공소유지 변호사제도가 없어지고 법원이 검사에게 공소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재정신청의 전면적인 개방에 대한 검사들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항고 전치주의 다음의 두 번째 딜(Deal)인 셈이다. 둘째, 항고는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사가 속한 상급 검찰청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적용되어 이로써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셋째, 헌법소원이다. 재판을 받아보지도 못한 개인은 검사의 공권력에 의해서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보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도록 하였다. 헌법소원의 3분의 1이 불기소처분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많아 헌법재판소도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위와 같이 전면적인 재정신청제도로 바뀌면서 법원에 판단을 맡기게 되면 헌법소원까지 갈 일들이 줄어들 것이며 헌법재판소도 기본권 침해 등과 같은 사건들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준 사법기관으로서의 검찰, 탈정치화 이루어야 법무부에 속하는 검찰은 형식적인 조직상으로 보면 행정부에 속하지만, 진실 발견을 위해 수사를 하고 공소를 제기하고, 재판과정에서는 공소를 유지하며, 마지막에는 형을 집행하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준 사법기관 즉, 사법기관에 준하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준사법기관이라고 한다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앞서야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혹은 자기승진에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지를 판단하여 사건을 처리한다. 그러한 기관을 준사법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스스로 준사법기관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99%의 일반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했다 하더라고 1%의 정치사건을 눈치 보기로 처리했다면 국민은 검찰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검찰청법에 의하면 청와대에 검사 파견을 금지하도록 되어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저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에게 사표를 받아서 청와대로 파견하는 등의 편법을 사용한다. 과거 노무현, 김대중 정부도 검사가 사표를 낸 후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복귀를 할 때는 검사로 재임용하였다. 지금도 청와대에 검사 출신이 몇 명 있을 것이다. 그게 모두 검찰과의 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듯 권력은 끊임없이 검찰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한편 법무부 장관은 세세한 업무지시를 내릴 수는 없어도 검찰청장을 통해 지시 할 수는 있다. 대부분이 정치인 출신인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통해서 검찰이 정치화, 정치법무화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끊으려면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해야한다. 현재는 법무부에 검사들이 포진해있다. 법무부를 검찰로 채울 것이 아니라 법무부를 탈검찰화 시키는 것이 정치적 중립이나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찰의 탈정치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해서 서로 교류하는 인사가 사라져야한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법치주의를 실현하려면,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과 검찰 등 유력기관이 법을 지켜야 한다. 또한 법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 검찰은 공정하고 투명한 법집행을 통한 법질서 유지를 위하여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갖고, 권력을 감시하고 부패를 통제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아무리 검사임용 때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선서를 한다 해도 검찰 스스로 의지를 다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권이나 통치자가 달라지지 않으면 어떠한 선서도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