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연가투쟁은 산으로 가는 정부의 교육정책 막기 위한 것”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 교육은 미성숙한 인간을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 과정이고, 인격과 인권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매우 소중하다. 우리는 하고자 하는 교육, 빼앗겨서는 안 되는 교육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2001년과 2003년에 이어 세 번째 연가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산으로 가라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정부의 교육정책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다. 한마디로 경쟁교육, 수월성 교육, 서열교육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산으로 가자는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산 밑에다 세워놓고 뛰어올라가라고 채찍질을 해댄다. 그러나 정상까지 뛰어올라갈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좋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이, 좋은 신발, 좋은 체력을 가진 아이는 가능하지만, 거기에는 장애인도 있고, 신발과 체력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전부 묶어서 채찍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들판으로 가는 교육을 하고 싶다. 들판에서는 고무신을 신어도 되고, 산에 오르기 좋은 신발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모두 다 어깨동무를 하고 낙오자도 좌절자도 없이 함께 나가면서 그 안에서 개성에 어울리는, 자기만의 향기와 빛깔의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공교육이 되어야 하고, 의무교육, 무상교육이 되어야 한다. 또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재정 6%도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모든 교육을 시장교육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고, 돈 없는 사람들은 낙오하라고 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다. 실제로 하향평준화라는 논리로 평준화를 깨트리기 위해 소수의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심지어 지금 서울교육감은 ‘10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한 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수 엘리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재화가 민중에게 가는가. 우리나라와 일본이 수출강대국으로서 국가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민중들의 삶을 더 성장시켰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전교조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인간화교육이다. 학교에는 인권이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오로지 입시와 경쟁을 위한 교육을 받는데 거기에 무슨 인권이 있겠는가. 지금의 교육은 시스템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소중하게 만나는, 인격과 인격이 소통되는, 선생님과 아이가 서로 눈을 마주하면서 따뜻하게 교감하는, 나눔과 협력이 상시적으로 가능한 학교를 꿈꾼다. 전교조가 제안한 ‘참교육과정’은 그런 고민에서 나온 것인데 정부는 관심도 없다. 인간화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꿈꾼다 교사들의 자질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한다. 그래서 교원평가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그런데 교사는 누가 만들었는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대, 교대를 나와 임용고시를 거치면서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자질이 부족하다면 무능력한 교사를 배출해내는 시스템과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다. 교원평가제도의 본질은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에 방해가 되는 전교조 교사들을 억압하고, 호봉제인 임금제도 자체를 성과임금제로 바꾸려는 음모일 뿐이다. 물론 교사 스스로 성찰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성찰은 별개로 하더라도 모든 교사들을 평가의 잣대로만 보는 반인륜적인 관계 속에 놓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와 언론은 전교조가 연가투쟁을 하면 학교가 마비되고 수업이 안 될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전교조가 목표로 하는 연가투쟁 인원은 1만명이다. 전교조 분회가 있는 학교는 전국에 9,500개다. 한 학교에 1명, 많으면 2명 정도가 연가투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어서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언론이 호도하고 있다. 연가투쟁에 대한 공격적인 폄하, 왜곡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그 것 때문에 몰매를 맞는다 하더라도, 그 것 때문에 학교를 쫓겨나거나 감옥에 간다 하더라도 싸울 것이다. 초중등교육만큼은 올바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전교조가 헌신하겠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편집자주] 8월 수요대화모임은 후세인 람말(Hussein Rammal) 주한 레바논 대사와 함께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폐허로 변한 레바논의 상황을 살펴보고 희망을 찾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후세인 람말 대사는 반복되어 왔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의 역사를 짚고,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이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이 아닌 ‘레바논’에 대한 공격이었으며,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인 남부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지름길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역할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이날 강연의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강연록으로 대신합니다. 후세인 람말 대사는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소박하기 그지없는 인권연대 교육장을 기꺼이 찾아주셨고,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열과 성을 다해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또 한양대 이희수 교수는 사회자를 자청해 참석자들과 대사와의 대화를 이끌어 주셨고, 참석자들은 수용인원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에어컨조차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공간에서 오랜 시간동안 진지하게 함께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많은 분들이 레바논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모금된 금액은 추후 레바논 대사관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43차 수요대화모임(06.08.23) 강연 자료] 후세인 람말(Hussein Rammal) 주한 레바논 대사 안녕하세요. 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인권실천시민연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레바논과 최근 레바논 사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주 61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이한 것에 대해 한국 국민들에게 축하의 말 올리고 싶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 많은 고통을 당했기에 더욱 의미 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 레바논 또한 이웃 국가인 이스라엘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어 과거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레바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레바논은 한국의 경기도 면적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입니다. 중동의 산맥 국가로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레바논은 북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인접해있고 남쪽으로는 1948년 이전까지 팔레스타인 이였던 이스라엘과 접해있습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여러 문명의 교차로이며 기독교, 이슬람 외 여러 소수 종교 집단을 포함해 17개의 종교 집단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2006년 실시된 통계조사에 의하면 레바논 총 인구는 39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인구의 약 90%가 도시에 분포해 있으며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수도인 베이루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도시들 중 베이루트는 예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주요 관문이었으며 동양과 서양 문화의 독특한 조화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최근, 레바논은 그 지역에서 번영을 누렸으며 레바논 경제와 기반시설을 복구하기 위한 작업이 널리 시행되어 왔습니다. 그에 대한 결과가 최근 들어서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베이루트 복구 작업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레바논의 리조트들로 날로 증가하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레바논은 "중동의 파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국 대부분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안정을 되찾은 시기에 지난 7월 12일 이스라엘-헤즈볼라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최근 UN 안전 보장 이사회에 의해 발표된 결의안 1701이 채택되면서 정전된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로 굉장한 군사와 민간인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사회 기반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왔으며 난민들이 대량 발생했습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의 대립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스라엘이 수립되어 많은 팔레스타인들이 레바논으로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48, 1967, 그리고 1973년, 세 번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생하면서 11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웃 국가 레바논으로 이주해 오늘날에는 그 수가 35만 명에 이릅니다. 아랍-이스라엘간의 충돌은 약 85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정치적인 긴장과 끝임 없는 전쟁 상태로 이어졌으며 그 시작은 벨포르(Belfor) 선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Belfor선언은 당시 외무부 장관을 지녔던 벨포르 장관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팔레스타인 내에 유대 민족 국가의 수립을 약속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본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고 유대인들이 들어서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적극 제공한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곧 아랍-이스라엘간의 충돌은 유대 민족국가로서의 근대 이스라엘의 수립과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와 관련해 일어난 충돌이었습니다. 충돌 상황 속에 발생했던 대표적인 전쟁들로는 레바논이 간접적으로 참가했던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1967년 6일 전쟁, 그리고 1973년 Yom Kippur 전쟁이 있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과 레바논, 두 국가 간의 대립으로 발생한 전쟁들로는 1978 리타니 전쟁, 1982년 레바논 전쟁, 1996년 카나 대량 학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일어난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사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으며 그 외에 여러 작은 충돌들도 있었습니다. 일명 "독립전쟁"으로도 알려진 1948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팔레스타인에게는 "대참사"로 일컬어지는 사건들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UN이 영국 통치 하에 있었던 팔레스타인을 두 개의 국가, 아랍과 유대 국가로 나누면서 아랍인들은 이에 반대했고 새로 수립된 이스라엘로부터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군들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과 이라크는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아랍-이스라엘간의 대립으로 일어난 여러 전쟁들의 그 시작이었으며 전쟁의 결과로 이 지역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1949년에 UN에 의해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동의 하에 국경 지대에서 그 어떠한 군사 활동도 금지되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은 10월 5일에서 10일까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간에 발생한 전쟁이었습니다. 이집트가 UN 관계자들을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지대에서 내보낸 후 국경 인근의 군사 활동을 늘리고 티란 해협으로부터 이스라엘 선박들의 접근을 봉쇄해,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이집트 측의 공격을 우려해 선제공격을 했습니다. 요르단은 이에 맞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네타냐를 공격했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사나이 반도, 서안 지구와 골란 하이츠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도 일컬어지는 1973년 Yom Kippur 전쟁은 10월 6일에서 26일까지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집트와 시리아를 앞세워 아랍 국가들이 연합하여 발생한 대립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간의 직접적인 대립에 있어서는 1978년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레바논을 침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1968년부터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습격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지역을 기지로 사용해 오던 팔레스타인들은 몰아내기 위해 침입했던 것으로 이후, 이 사건은 리타니 작전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쟁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UN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425를 채택해 레바논 영토에서 이스라엘군의 철수, 팔레스타인군의 철수, 레바논 남부 지역에 평화 유지군 배치를 요구했습니다. 처음으로 레바논 내의 UN 임시 군이 배치된 것은 결의안이 채택되고 4일 만인 1978년 3월 23일이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철수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남부 레바논 군에게 레바논 남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지지 군이 계속 머무르면서 팔레스타인 저항군 역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에게 대적하기 위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평화 기구의 군대는 이후 계속해서 레바논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스라엘은 결의안 425를 거부하고 1982년에 다시 한 번 레바논을 침입해 팔레스타인들은 공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릴리의 평화 작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역시 레바논 남부지방에서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에 공습을 하고, 나아가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까지 영역을 넓혀 그곳에서 3,000명의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브라와 샤틸라 대량학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지지를 받아 다국적 군인들이 레바논에 배치되어 팔레스타인들이 수단, 튀니지, 알제리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레바논 민간인들과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안전을 책임졌습니다.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 평화 기구 본부가 튀니지로 옮겨졌습니다. 후세인 람말 주한 레바논 대사의 강연 모습 1984년, 이스라엘은 또 한 번 레바논 일부 지역들에서 철수했지만 레바논 남부에 이스라엘이 4~6km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지정해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마을들을 지키기 위한 이스라엘 측의 보호 조치로 해석됩니다. 이스라엘은 "안전지대"에서 2000년 6월에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계속되는 침입에 맞서기 위해 레바논 남부 출신들로 이루어진 저항 세력인 헤즈볼라가 1982년에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2000년 이스라엘 측의 공식 철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습니다. 1982년 팔레스타인군의 철수 이후, 헤즈볼라는 본격적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쫓아내기 위해 대규모 저항 작전을 펼쳤습니다. 계속해서 무장 저항이 이루어졌고 1993년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해산 시키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1996년, 이스라엘은 또 다시 헤즈볼라를 소탕하기 위해 "분노의 포도 작전"을 펼쳤고 이 작전에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카나 마을에 배치해 있던 UN군 기지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기지에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의 전투를 피해 피신해 있던 약 800명의 레바논 시민들 중 120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인 70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1996년 카나 대량학살이었습니다. 카나 학살이 발생한 다음날, UN은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휴전을 요구했습니다. 레바논, 프랑스, 미국, 시리아와 미국 간의 협정이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에게 민간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시민들을 향한 모든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협정의 목적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국 민간인들의 안전을 선포하고 앞으로 양국 간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문제들을 예방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5월, 매일 헤즈볼라의 공격을 받아오던 이스라엘군은 마침내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철수가 이루어진 이후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샤바팜스를 점령하고 있고 지뢰 위치가 표시된 지도들을 넘겨주지 않고 있으며 포로 석방을 거부해 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철수 이후 양국 사이에 UN에 의해 "블루 라인"이 지정되었습니다. 이 분계선이 지정될 당시 샤바팜스가 포함되지 않아 이스라엘은 샤바팜스가 레바논 영토임을 부정하면서 샤바팜스를 계속해서 점령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은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샤바팜스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결의안 425에 따라 지뢰 지도들을 넘겨주고 레바논 포로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UN과 이스라엘 측은 샤바팜스가 시리아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시리아와 레바논 사이에 샤바팜스가 레바논 영토라는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합의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서류들은 교환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이후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와 같은 입장에서, 이스라엘로부터 레바논 영토를 되찾기 위해 활동을 계속해 왔고 남은 포로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으며 지뢰 지도들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테러 단체로 여겨지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명백한 저항세력으로 레바논 남부레바논 사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레바논 내의 최대 종교 집단이면서 인정받은 정치 세력이기도 합니다. 현재 14명의 의원들이 있으며 2명의 장관들이 레바논 정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헤즈볼라는 2000년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 레바논 뿐 아니라 아랍과 이슬람 사회에서 더욱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레바논 영토, 영공, 영해를 침입해 왔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레바논 남부 뿐 아니라 시민들을 공격해 왔으며 헤즈볼라 지지자들을 납치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측의 행위들은 UN과 레바논에 배치된 UN 군(UNIFIL)이 영토 침입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라는 요청을 무시하는 행위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엄연히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레바논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무차별 행위들을 계속 해 온 이스라엘에 대해 헤즈볼라는 그 어떠한 공격 또는 레바논 영토에 대한 행위들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0년 이후에도, 그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지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 간의 충돌은 계속해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7월 12일 아침,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무장 차량들이 UN이 지정한 "블루 라인"을 넘어 온 것에 대응해 맞서 싸웠습니다. 이 사고로 이스라엘 병사 8명이 숨지고 포로 교환을 목적으로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레바논 포로 석방을 거부하고 대신 헤즈볼라 뿐 아니라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레바논 대부분의 기반 시설들을 파괴했습니다. 레바논 사회 기반 시설, 헤즈볼라 시설들, 민간인들에 대한 군사 작전으로 1,287명의 민간인과 병사들이 숨졌습니다. 이 통계는 여전히 잔해들 속에 묻혀 있는 시신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외 최소 5,000명이 부상당했으며 10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북부지역으로 대피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200㎢에 이르는 지역을 공격해 16,000~30,000개의 아파트와 레바논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베이루트 국제공항이 파괴되었습니다. 87개의 다리와 도시와 마을들을 잇는 96 개의 도로들, 학교와 수많은 공공시설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우유와 직물 공장들을 포함해 300개의 공장들 뿐 아니라 2000㎢에 이르는 레바논 남부 지방의 모든 마을들이 사라졌습니다. 남부에 위치한 저의 고향에서도 저의 집을 포함하여 모두 사라지고 겨우70여 채의 집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인명 피해와 극심한 파괴는 즉각적인 정전이 연기됨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은 지하 침투용 레이저 유도폭탄, 집속폭탄, 파편폭탄, 3가 인을 함유한 폭탄, 스마트폭탄(레이저 광선에 의해 목표에 유도되는), 소이탄을 포함해 다양한 폭탄들을 공격에 사용하였습니다. 항공기, 탱크 그리고 무기들을 이용해 30,000명으로 구성된 이스라엘군이 2000㎢ 이르는 지역에 걸쳐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헤즈볼라를 리타니 강 뒤로 후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한 레바논의 피해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폭력 사태를 끝내고 간접적 평화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즉각적인 정전을 위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할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해 왔습니다. 이러한 레바논 정부의 정전 제안에 대해 이스라엘측은 헤즈볼라의 해산과 무장해제, 그리고 납치된 이스라엘 군인들의 석방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었을 경우에만 고려해 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레바논 정부가 계속해서 즉각적인 휴전을 위해 UN의 원조를 호소해 왔으나 UN 안전 보장 이사회의 몇몇 핵심 국가들, 특히 미국과 영국, 이 즉각적인 휴전을 거부했습니다. 사태가 계속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7월 25일 키암에 위치한 UN군 초소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무장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캐나다, 중국과 핀란드 출신 UN 감시단원 4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사태의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소집된 로마 회담이 있기 전날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당초 감시단원들의 죽음은 계획적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 측의 요구에 따라 UN 측은 UN 감시단 초소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을 공식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격에 대한 충격을 표현하는데 그쳤습니다. 사고로 감시단원 1명을 잃은 중국 측은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공격을 엄중하게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를 원했습니다. 43차 수요대화모임의 전체적인 진행을 도와주신 한양대 이희수 교수님 하지만 이스라엘 공격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틀림없이 7월 30일 발생했던 카나 대량학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다른 마을들로부터 가족들이 피신해 있던 한 아파트 건물을 공격했습니다. 이 사고로 55명이 사망했고 그 중 대부분이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 외 여성들과 노인들도 이 대량학살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카나는 이미 지난 1996년 발생한 학살극으로도 기억되는 마을입니다. UN 안전 보장 이사회는 카나 폭격에 대한 충격과 비통함은 나타냈고 15개 회원국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협정을 통해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강하게 비탄하고 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즉각 휴전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의 반대로 또 다시 휴전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과거와 최근에 발생한 카나 대량학살 그리고 UN 초소 공격을 비추어 보았을 때, 생존권이 인권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스라엘은 엄연히 레바논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국제 사회는 수천 명의 사망자, 부상자,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키고 사회 기반시설들에 대한 대대적인 피해를 낳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인 대규모 공습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헤즈볼라의 초기 공격은 명백히 이스라엘 군사기지와 병사들을 목표로 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했습니다. 헤즈볼라 공격으로 119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이 숨졌고 670명이 부상당한 반면에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는 1,150 이상의 시민들이 사망했습니다. 레바논 측 사망자 중 대부분이 2개월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이가 대부분이었고 그 외 여성과 노인들도 많이 숨졌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 뿐 아니라 레바논 전체를 위협하고 파괴 시키는데 있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레바논 영토와 기반시설들을 파괴시킨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들은 UN 헌장, 국제법과 국제 인도주의 법 규범들을 위반할 뿐 아니라 명백한 인권 침해 행위들입니다. 한 달 이상의 전쟁 상태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회의들이 수차례 이루어진 끝에 마침내 지난 8 월 13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대한 공격 사태를 끝내는 UN 결의안에 합의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합의가 이루어진 후,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이 UN 안보리 결의안 1701 조항들에 따라 8월 14일 오전 8시 휴전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UN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안 1701의 주요 조항들에는 모든 공격을 중단하고 레바논 남부 곳곳에 군인들은 배치할 것으로 레바논 정부와 레바논의 UN 임시군에 요구하고 동시에 이스라엘군이 남부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레바논과 이스라엘에 영구적인 휴전과 장기적인 해결책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레바논 정부는 새로 채택된 결의안에 따라 15,000 의 병사들을 레바논 남부지역에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 브라질, 프랑스, 인도, 노르웨이, 필리핀 그리고 스페인 대표 12명으로 구성된 평화단체가 최근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장기적인 평화 협정은 레바논으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철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표단은 7가지 제안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에는 이스라엘 정치가와 군사 장교들이 인류에 대해 범하는 범죄들을 재판할 국제 전쟁 범죄 재판소의 설립,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 샤바팜스와 골란 하이츠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즉각적인 철수, 그리고 이스라엘 수용소에 있는 포로들의 석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전이 이루어진 가운데, 포로 교환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점령했을 당시 남기고 간 지뢰들에 대한 지도들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UN주최 하의 간접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더 나아가, 2006년 레바논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있어 온 이스라엘 측의 레바논 영토, 영공, 영해 침입을 막기 위해 회의들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현재 레바논 정부는 난민들이 그들의 집과 영토에 남아있는 폭탄들을 제거하고 집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에게 의약품, 식량, 의류, 석유 등의 인도적인 원조를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1600만 명의 레바논 동포들과 UN, 프랑스, 유럽과 아랍 국가들의 도움으로 정부는 공항, 다리, 도로, 학교 그리고 그 외 공공시설들을 재건하여 레바논의 기반시설들을 복구 시키는데 집중적으로 힘 쓸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와 아랍 에미리트 연방에서 인도적, 의료 원조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국제 사회는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과 의료 지원을 제공해 왔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사태 종결 이전에도 인도적 원조를 제공했으며 최근에는 레바논에 추가적인 지원을 공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고통 받고 있는 희생자들을 위해 $500,000를 기부했고 앞으로 $100,000 상당의 의료품들을 레바논 국민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날 후세인 람말 레바논 대사의 강연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강의에 참가한 참석자들이 번역된 강연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레바논 국민들은 많은 일을 겪어 왔습니다. 오늘날까지 수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의 침입과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레바논 국민들의 자생력은 잘 알려져 있으며, 재건과 일상생활로의 복귀 능력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원조로 레바논은 빠른 속도로 유명한 관광 도시로서의 명성을 되찾고 석유달러를 끌어들이는 은행 계좌를 복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앞으로, 레바논은 안정을 되찾아 궁극적으로는 중동지역의 평화를 추구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UN 주도하에 이루어진 간접협상이 가장 시급하다고 레바논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열린 아랍 정상회담에서 레바논을 포함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에서 물러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을 받아들이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준다면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모두 성립이 된다면 분명 이스라엘과 레바논, 나아가 아랍 국가간의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7월 12일을 시작으로 해서 레바논은 34일이라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강력한 공격으로 인해 고통 받아왔으며, 마침내 8월 14일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휴전협상이 이루어진 가운데, 지난 월요일, 이스라엘군은 또 다시 총격을 가해 헤즈볼라 단원 3명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군 측은 그들이 위협적이라 판단해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휴전에 돌입한 가운데,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상황을 "영구적인 정전"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또, 간접협상들을 통해 포로 교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철수가 단행되어야 할 것이며 지뢰 지도들을 이스라엘로부터 넘겨받아야 할 것 입니다. 최근 발생한 사태는 국제사회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인터뷰를 통해 "내 생각으로는 이스라엘에게는 레바논 전역에 그들의 대규모 폭격을 가할 그 어떠한 법적,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 사실 이스라엘 측은 10,000명에 이르는 포로들은 수용하고 있는데 레바논 또는 가자에서 이스라엘 병사 1~2명이 납치당한 것으로 레바논과 가자지구의 민간인 공격을 정당화 하고 있는데 이것은 공격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비판했습니다. 또, 이 사태와 관련해 이론 언어학 분야에 크게 공헌한 저명한 언어학자인 놈 촘스키는 이스라엘에게는 분명 자신들을 지킬 권리는 있지만 그 어떠한 국가도 점령 지역을 방어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사법 재판소가 이스라엘의 분리 벽을 비난했을 때 한 미국 고등 법원 판사조차 분리 벽에서 이스라엘 점령지들을 지키기 위해 지어진 부분은 결과적으로 국제 인도주의 법에 위반된다고 단언 했습니다. 그것은 점령지 자체가 비합법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인권실천시민연대와 한국인들이 이번 사태와 레바논에 주신 관심과 지원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권실천시민연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무궁한 번영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1 | 추천: 0
“이스라엘은 모든 아랍영토에서 철수해야" 후세인 람말/ 주한 레바논 대사 먼저, 광복 61주년을 맞이한 한국 국민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많은 고통을 당했기에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의 레바논 또한 이스라엘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어 과거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반복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레바논은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한국의 경기도 면적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다. 레바논은 북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에,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접해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여러 문명의 교차로이며 기독교, 이슬람 외에도 여러 종교 집단이 모여 살고 있다. 최근 레바논은 기나긴 내전에서 벗어나 재건의 결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날로 증가하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레바논은 ‘중동의 파리’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안정을 되찾고 있는 시기인 지난 7월 12일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재건에 치명타를 입혔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대립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레바논으로 이주해왔고, 4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은 더욱 늘어 지금은 35만명에 이른다. ‘중동전쟁’ 말고도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1978년 리타니전쟁, 1982년 갈릴리 평화작전, 1996년 카나 대량학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 일어난 레바논 침공을 포함해 여러 번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거점을 두고 있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공격하면서 구성되었다. 이 공격에서 이스라엘의 목적은 레바논 남부지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 때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촌에서만 3,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결국 PLO는 본부를 튀니지로 옮기게 됐고, 이스라엘군의 계속되는 공격에 맞서기 위해 레바논 남부 출신들로 이루어진 저항세력인 ‘헤즈볼라’가 구성되게 된 것이다. 이후 헤즈볼라는 본격적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쫓아내기 위해 대규모 저항 작전을 펼쳤다. 후세인 람말 주한 레바논 대사 헤즈볼라의 저항이 계속되자 2000년 5월 이스라엘은 마침내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철수했다. UN은 ‘블루라인’을 정하고 경계선을 지정하지만 ‘샤바팜스’지역이 제외되면서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의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이스라엘과 UN은 샤바팜스가 시리아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시리아와 레바논 사이에서 레바논 영토라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 지역이 레바논 영토임을 부정하면서 영토, 영공, 영해에 대한 침입을 계속해왔다. 시민들에 대한 공격과 헤즈볼라 지지자들에 대한 납치도 계속됐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철수 이후에도 헤즈볼라는 레바논 영토의 반환과 포로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왔다. 비록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테러 단체로 여겨지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명백한 저항세력이자 레바논 내의 최대 종교 집단이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정치세력이다. 현재 14명의 의원과 2명의 장관들이 레바논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2000년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 레바논 뿐 아니라 아랍과 이슬람 사회에서 더욱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포로를 볼모로 또 다시 레바논 침공 이러한 상황에서 7월 12일 아침,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무장 차량들이 UN이 지정한 블루라인을 넘어 온 것에 대응해 맞서 싸웠다. 이때 이스라엘 병사 8명이 숨지고 헤즈볼라는 포로 교환을 목적으로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포로 석방을 거부하고 대신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레바논 전체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레바논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레바논 사회기반시설, 헤즈볼라 시설들이 파괴되었고, 1,287명의 민간인과 병사들이 숨졌다. 이 통계는 여전히 잔해들 속에 묻혀 있는 시신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외에도 최소 5,000명이 부상당했으며 100만명 이상의 난민들이 북부지역으로 대피했다. 또 이스라엘은 수 만 채의 아파트와 레바논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베이루트 국제공항을 파괴했다. 수 십 개의 다리와 도로, 공장, 학교와 공공시설이, 2000㎢에 이르는 레바논 남부 지역의 모든 마을들이 사라졌다. 남부에 위치한 제 고향에서도 저의 집을 포함해 모두 사라지고 겨우 70여 채의 집만 남았다. 이스라엘은 지하 침투용 레이저 유도폭탄, 집속폭탄, 파편폭탄, 3가 인을 함유한 폭탄, 스마트폭탄, 소이탄 등 첨단무기와 전투기, 탱크, 30,000명의 군사를 앞세워 레바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헤즈볼라의 초기 공격은 명백히 이스라엘 군사기지와 병사들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 뿐 아니라 레바논 전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데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공격은 결국 한 달이 넘은 8월 14일에야 UN의 결의안을 통해 공식적으로 중단될 수 있었다. 현재 레바논 정부는 난민들이 그들의 집과 영토에 남아있는 폭탄들을 제거하고 집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에게 의약품, 식량, 의류, 석유 등의 인도적인 원조를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레바논 동포들과 아랍 국가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원조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후세인 람말 주한 레바논 대사의 강연 모습 이스라엘, 모든 아랍영토에서 철수해야 레바논 국민들은 많은 일을 겪어왔다. 그렇지만 레바논 국민들의 자생력은 매우 강하다. 그러나 레바논의 안정을 위해서는 먼저, 휴전이 이루어진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불안한 휴전을 ‘영구적인 정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중동지역의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지난 2002년 ‘아랍정상회담’에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에서 물러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을 받아들이고, 난민귀환을 보장해 준다면 이스라엘과 평화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이런 조건들이 모두 성립이 된다면 분명 이스라엘과 레바논, 나아가 아랍 국가와의 평화는 찾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은 노엄 촘스키의 “이스라엘이 분명 자신들을 지킬 권리는 있지만, 그 어떠한 국가도 점령 지역을 방어할 권리는 없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정리=허창영/ 인권연대 간사
2017-08-08 | hrights | 조회: 20 | 추천: 0
한미FTA의 음모와 위험 (하) - 한미FTA로 경제, 정치, 외교안보 모두 위험 * 인권연대는 제42차 수요대화모임 강사로 온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강의 내용을 2회에 걸쳐 지상중계합니다. 2회에는 NAFTA 이후 멕시코의 실상과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알아 봅니다.   얼마 전 멕시코에 다녀왔다. NAFTA를 맺은지 12년이 지난 멕시코에는 그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NAFTA를 맺을 당시의 대통령은 살리나스다. 살리나스는 NAFTA를 맺으며 수출과 투자가 늘어 경제성장률이 좋아지고,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 양극화가 없어질 것이라는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지금 우리정부가 똑같은 약속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살리나스는 지금 멕시코에서 살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을 가 있는 미국 경제학 박사다. 멕시코에서 살리나스에 대한 원성은 대단히 높다. 멕시코 ‘마킬라도라’ 신화의 거품 실제로 12년 동안 멕시코는 수출이 네 배정도 늘어 약 2천억달러 정도에 이른다. 한국이 오랜 시간동안 수출을 키운 결과가 약 2천8백억달러인데 멕시코는 아주 짧은 기간에 도달했다. 수출과 투자가 늘 것이라는 것은 맞았다. 특히 투자에서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굉장히 많이 늘어 연간 약 1백80억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60억달러 수준이다. 수출과 투자가 늘었으니까 경제가 크게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2년동안 멕시코 국민소득 증가율은 평균 1.43%로 미미하다. 희한한 일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는 기계산업단지라는 뜻의 ‘마킬라도라’가 있다. 원래 마킬라도라는 미국과 멕시코가 생산공조를 위해 65년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이것이 실제로 활발하게 커진 것은 NAFTA 이후다. 마킬라도라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전기전자, 섬유의류 3가지 산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킬라도라에 많은 기업들이 들어가면서 투자가 늘었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는 현대를 제외하고 지엠, 크라이슬러, 혼다, 폭스바겐 등 자동차 6대 메이커가 다 들어가 있을 정도다. 전기전자도 산요, 소니, 삼성, LG 등 세계적 가전제품 기업이 모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생산된 물건의 90%가 미국으로 수출되면서 수출도 늘었다. 농업국가였던 멕시코가 제조업이 급상승하면서 산업고도화가 이루어졌다. 살리나스가 얘기한 두 가지는 다 지켜졌다. 우리정부에서도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왜 국민소득은 안 늘어났을까. 마킬라도라에서는 부품의 95%를 미국에서 수입해서 이를 멕시코 노동자들이 조립해 다시 미국으로 수출한다. 결국 수입도 증가했다. 멕시코가 공급하는 부품은 3%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을 산업연관이 끊어졌다고 한다. 수출이 늘어 수출기업은 좋은데, 내수기업은 잘 안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어날 현상이다. 사실 마킬라도라는 멕시코 경제과 별 관계 없이 돌아가고, 이익을 보는 것은 초국적 기업들이다. 멕시코에 남는 건 고용뿐이다. 한때 고용이 180만명까지 이루어졌다가 지금은 150만명으로 줄었는데, 이들이 받은 임금만 멕시코에 남는다. 그런데 그 임금도 12시간 노동에 고작 20-40만원 정도다. 멕시코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다. 우리의 7-80년대 가리봉동의 벌집보다 훨씬 못한 곳에서 물도 전기도 없이 살고 있다. 멕시코에 남은 것은 이런 비참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뿐이다. 내수와 주곡산업도 붕괴 이게 끝이 아니다. 멕시코로 나오는 마킬라도라의 상품 일부 때문에 멕시코의 내수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멕시코시티에 가면 현대를 제외한 모든 자동차가 시장에 나와 있다. 삼성전자도 있다. 기존 멕시코 기업의 제품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멕시코는 94년 페소화 위기를 맞는다. 우리의 IMF와 같은 위기인데, 이 때 긴축정책으로 이자율이 30%대까지 오른다. 우리는 그나마 이자율이 금방 떨어졌지만 멕시코는 고이자가 계속됐다. 문제는 마킬라도라에 있는 초국적 기업들이야 자국이나 월스트리트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됐지만 멕시코에 있는 기업들은 30%라는 높은 이자를 주고 대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있다. 그래서 결국 기업들이 붕괴되었다. 결국 마킬라도라로 외국인 투자는 증가했지만 국내 투자는 감소했고, 국내 기업이 붕괴하면서 늘어난 투자의 양이 상쇄된 것이다. 멕시코는 주곡산업도 붕괴했다. 멕시코는 옥수수가 주곡이고 원산지다. 그런데 멕시코의 옥수수가 미국의 옥수수 때문에 무너졌다. 원래 멕시코는 우리의 쌀처럼 옥수수 수입을 금지했다. 그런데 NAFTA를 통해 옥수수시장을 개방했고, 초기에는 쿼터를 정해서 제한을 했지만 쿼터는 곧 무너졌다. 농업보조금을 받은 미국의 값싼 옥수수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멕시코는 농업을 현대화한다며 보조금조차 없애버렸다. 결국 옥수수 농가가 몰락하게됐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옥수수 값이 떨어졌으니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생길 것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서는 그 옥수수로 만든 또띠야(만두피 같은 것으로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넣고 싸먹는 것)값이 올라갔다. 미국의 옥수수 수출은 ‘카길’이라고 하는 다국적기업이 하고 있다. 멕시코에서의 옥수수 공급은 우리의 농수산물유통공사 같은 곳에서 담당했는데,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유통공사가 민영화되자 카길과 이 유통회사가 담합을 한다. 싸게 수입한 옥수수를 또띠야 공장에 비싸게 공급을 하게 되면서 또띠야 값은 올라가게 되었다. 농민에게 싸게 사서 도시민에게 비싸게 팔아 그 이익을 미국의 다국적기업과 멕시코의 독점기업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멕시코의 경제관료가 자기네 농업수출도 증가한 것이 있다고 자랑을 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과의 국경지역에서 열대과일을 생산하는데 마이애미에서 전체 소비하는 토마토의 2/3를 공급한다. 그런데 이런 작물들은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하는 물품이고 극히 일부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그 외 전체 멕시코 농업은 몰락했다. 한국의 경제관료나 멕시코의 경제관료나 하는 것을 보면 생각은 워싱턴 컨센서스이고, 지식은 미국 경제학으로 똑같다. 이렇게 자기의 삶을 잃은 멕시코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멕시코의 전설적인 영웅 사파타의 후예들이라는 뜻의 ‘사파티스타’라고 하는 농민반란군이다. 두 번째 부류는 도시빈민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 많이 일어났던 상황이다. 우리나라 명동에 해당하는 멕시코 구도심에 가면 노점상이 너무 많아 차가 못다닐 지경이다. 아이들도 장사를 하고 있다. 세 번째 부류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가고 있다. 국경을 넘다 총에 맞는 수가 한 해에 몇백명에 이르고 천명이 넘을 때도 있다. NAFTA 이후에 국경을 넘은 수만 1천6백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중에 불법 이민이 3백50만명이다. 살리나스의 말처럼 수출과 투자는 증가했지만 양극화는 심화됐다. NAFTA로 공공서비스도 붕괴 멕시코 현실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공기업 민영화다. 공기업은 미국의 기업이 아닌 멕시코 재벌들이 차지했는데, 83년부터 94년까지 1차, 94년 이후 2차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민영화의 결과는 이용료의 폭력적인 인상이다. 한 대학 학자는 전화료가 5천배 올랐다고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다. 민영화 이후 멕시코는 먼 구간에 있는 지역의 철도가 끊겨 있다. 멀리갈수록 타는 사람이 줄어드니까 멀리 안간다. 수도나 전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걸 망(네트워크)산업이라고 한다. 망산업을 민영화하면 구석구석까지 가지 않게 되어 있다. 멀리 보낼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에 이익이 남는데까지만 보낸다. 멀리까지 보낼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을 ‘교차보조’라고 한다. 그런데 민영화가 되면 교차보조가 없어진다. 망산업은 독점의 위험도 가지고 있다. 독점이 이루어지면 경쟁없이 가격을 올릴 수 있다. 결국 공공서비스의 가격은 높아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한 예로 볼리비아는 물을 민영화했는데, 이 결과로 가난한 사람들이 물을 먹지 못해 호수에서 물을 길다가 아이들이 악어에 물려죽는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대통령이 언론이 FTA를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또 멕시코와 한국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맞다. 기술도 다르고 산업도 다르다. 그런데 왜 멕시코의 예를 들며 FTA를 하겠다고 했나. 한국은 FTA를 해도 수출이나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지 않는다. 마킬라도라가 멕시코에는 생겼지만 캐나다에는 생기지 않았다. 캐나다의 임금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전기전자건 자동차건 오지 않는다. 멕시코는 미국과 국경을 같이 하고 있지만 우리는 태평양이 있다. 물류비용이 늘어나는데 올 이유가 없다. 그게 한국과 멕시코의 차이다. 같은 점은 미국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관철시켰듯이 한국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이 는다는 건가 정부는 수출이 늘 것이라며 자동차의 예를 든다. 이는 정부가 얼마나 준비를 안했는지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승용차 관세는 2.5%다. 이를 없애기 위해 보통 15년이 걸리는데 우리는 5년 내에 줄인다고 한다. 소나타가 2만달러정도니까 5년 동안 2.5%를 줄인다면 1년에 0.5%이고 10만원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이 10만원 떨어진다고 일제자동차를 타는 사람이 한국자동차로 바꾸겠는가하는 점이다. 국내에서 자동차를 선택할 때도 10만원 차이로 A를 B로 바꾸지 않는다. 이 얘기를 했더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한미FTA를 하면 픽업과 SUV에서의 수출이 늘 것이라고 발표를 했다. 픽업과 SUV는 관세가 20%다. 그 이유는 미국이 지난 10년동안 SUV 시장을 키우기 위해 20%로 관세를 올린 것이다. SUV는 레저용 대형차인데 지금은 그것 때문에 망했다. 관세를 높게 하고 열심히 생산해서 잘 만들 수 있게는 되었는데, 석유값이 많이 올랐다. 80년대에도 미국이 대형차를 많이 만들어서 망한 적이 있다. 79년에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오르자 일본에서 생산된 소형차를 선택하게 되었다. 다시 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는 것은 CUV다.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투산 등은 SUV가 아니라 CUV다. 우리나라는 SUV나 픽업을 생산하지 않는다. 정부는 생산하지도 않는 것에서 수출이 는다고 하고 있다. 그 정도로 준비가 안되어 있다. 이 얘기를 했더니 다시 김종훈 수석대표가 이제 라인을 깐다고 하더라. 이건 정말 산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주먹구구식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라인을 깔고 생산을 하면서 품질이 좋아지고, 이러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국내에서 팔다가 수출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10년은 걸린다. 이 얘기를 마치 당장 수출이 늘 것처럼 하고 있다. 전기전자도 늘 것이 없다.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는 이미 무관세에 현지생산을 한다. 냉장고도 이미 마킬라도라에서 값싸게 생산하고 있는데 왜 한국에서 생산하겠는가. 얻을게 없다. 섬유의류도 마찬가지다. 마킬라도라에 있는 섬유의류도 중국산에 밀려서 무너지고 있다. 중국산은 관세를 아무리 붙여도 싸다. 더구나 얀포워드(yarn forward)라는게 있다. 원산지 규정을 말하는데, 옷을 만들 때 들어간 원사를 생산한 나라를 원산지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내가 입고 있는 옷도 원산지가 중국일 확률이 90%다. 한국에서 디자인을 하고 한국에서 만들어도 미국관세청이 보기에는 중국산이다. 그래서 원사가 중국산이면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잘 만들어서 소용이 없다. 때문에 섬유의류도 늘 것이 없다. 마찬가지 논리로 외국인 직접투자도 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에 수출하려면 마킬라도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다만 캐나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부 서비스 시장에는 진출할 것이다. 방법은 인수합병이다. 그건 우리가 이미 봤듯이 IMF 이후 금융산업이 구조조정된다는 것은 결국 외국 자본에 의한 인수합병이다. 정부는 인수합병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 다음에 고용이 늘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97년부터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했는데 고용은 줄었다. 지금은 조금 늘었는지 모르지만 원상태까지는 한참 멀었다. 서비스업은 구조상 고용이 많이 느는 산업이 아니다. 서비스업이 고용의 효과가 크다는 것은 유통이라든가 식료, 숙박 등이지 고급 서비스 산업에서 고용이 많이 느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인수합병 형식으로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고용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한미FTA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리는 아무 것도 없다. 한미FTA는 사법권도 침해 한미FTA는 정치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NAFTA 11장은 투자에 관한 조항이다. 투자와 수용의 정의, 내국민 대우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조항의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가 정부를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그리고 제3의 민간기구(ISCID나 UNCITRAL)에 의해서 판결이 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기업만 캐나다 정부나 멕시코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도 있다. 미국도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캐나다의 로우언이라고 하는 장례회사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 발단은 로우언이 미국의 장례회사를 다 합병해버리자 미시시피정부가 반독점법에 걸린다는 이유로 제소를 했다. 미국의 사법부에서는 당연히 미시시피정부의 손을 들었다. 문제는 로우언이 NAFTA 11장을 들어 수용과 유사한 간접적인 수용이라고 제소를 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로우언이 졌지만 이 사건은 미국의 사법부에 충격을 주었다. 독점인지 아닌지에 대해 미국의 법원이 판단을 해야지 왜 제3의 민간기구가 판단을 하느냐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인 산드라 오코너는 “우리의 헌법 3조는 연방법원에 각 사건과 논란에 관한 결론을 내릴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며 NAFTA 11장이 미국헌법 제3조의 위반이라고 얘기한다. 미국의 사법권이 무시된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기업은 어떨까. NAFTA 12년 동안 42건의 제소가 있었고, 그 중 11건이 해결됐다. 11건 중에 5건은 기업이 이겼고 6건은 정부가 이겼다. 기업이 이긴 5건은 전부 미국의 기업이 이긴 것이다. 6건 중에 3건은 미국 정부가, 3건은 멕시코 정부가 이겼다. 기업이 이긴 것은 모두 미국 기업이고, 미국정부는 아직까지 한번도 지지 않았다. 문제는 편파적이라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이 제3의 민간기구에서 판단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 나라의 사법부는 그 나라의 경제나 민심이나 사회를 생각하면서 판단을 하는데, 이 기구들은 오직 NAFTA의 조항만 가지고 판단을 한다. 42건 중 압도적으로 많은 1/3정도가 환경에 관한 것인데, 기업이 이기면 그 환경규제는 없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메탈클레드라고 하는 쓰레기처리회사가 있다. 멕시코의 쓰레기 처리를 유치했고, 쓰레기장 확대 인허가를 냈는데, 멕시코의 시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쓰레기장에서 발생한 침출수가 상수원을 오염시켜서 암발생률이 높아졌고 곡물이 자라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농민들이 조사해 알아냈고, 농민들의 반대로 시정부가 인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아예 지역을 ‘생물종다양성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버렸다. 그런데 간접적 수용이라고 제소를 해서 이겼고, 메탈클레드는 멕시코 정부로부터 1천6백50만달러를 받았다. 기업이 주변을 오염시키면 당연히 벌금을 내게 해서 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오염을 시키고 정부로부터 돈도 받았다. 미국의 에틸컴퍼니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캐나다에 MMT라는 신경유독물질을 반입하려고 하다 캐나다 정부가 반입하지 못하게 하자 제소를 해서 이겼다. 캐나다 정부는 1천3백만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정부는 스스로 제소를 두려워 해 규제를 완화시키게 된다. FTA는 미국 어거지 관철협정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UPS 케이스다. UPS는 TNT, DHL 등과 함께 세계 4대 특송업체다. 이 특송업체가 캐나다의 우체국을 상대로 NAFTA 11장 위반 혐의로 1억6천만달러의 ‘보상’을 요구하는 제소를 했다. 망산업에서 설명했듯이 우체국은 전국에 우체국 지부가 있어서 산골까지 소포를 배달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부 보조금을 통한 교차보조를 받기 때문인데 이것이 불공정경쟁이라는 것이다. 이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인데, 만약 UPS가 이기면 망산업은 전부 제소대상이 될 것이다. UPS가 이기면 다른 특송업체도 가만 있을리 없고, 캐나다에서 이기면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또 42건 중에 6건은 캐나다의 침엽수림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 미국와 캐나다의 오래된 문제이다. 캐나다는 기본적으로 국유림이고 미국은 사유림이다. 그래서 캐나다는 목재생산자들이 묙재를 생산하는데 별도의 돈을 지불하지 않지만 미국의 생산자들은 지주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결국 목재값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은 캐나다에 덤핑을 때리고 상계관세를 물리고 있다. 캐나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다. 미국의 어거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은 캐나다로부터 석유 수입도 많이 한다. 캐나다에서는 모레에 석유가 붙어있는 ‘샌드오일’이 많이 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미국은 NAFTA에 현재의 수출비율을 위기시에도 지켜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즉, 캐나다 전체 생산의 1/3을 수출한다면 위기시에도 1/3을 지켜야한다는 조항이다. 유가가 급등하거나 자연재해로 인해 석유생산이 줄어 캐나다 내수도 부족해도 1/3은 수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생검역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미국은 다른나라의 위생검역 수준을 낮추라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위생검역은 굉장히 자의적이다. 멕시코 한 기업이 우유를 수출했는데 박테리아가 검출돼 부적격 판정이 났다. 그러자 그 멕시코 기업이 미국 우유를 수입해서 재수출했는데 또 다시 박테리아가 검출됐다. 그런 사례가 너무 많다. 한미FTA는 안보도 위협 미국의 공언에 따르면 한미FTA 7장은 NAFTA 11장보다 훨씬 강력하다. 아직 내용을 모르지만 정부가 쟁점이라고 얘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미 다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첫째, 우리나라 사법권을 초국적 기업에게 양도하는 것이고, 둘째, 그 내용이 환경과 건강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는 우리 국민의 사회경제적 권리,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침해하는 것이다. 셋째, 외교안보적으로도 대단히 위험하다. 전략적 유연성도 2월, 한미FTA도 2월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평택으로 이전한 미국 공군이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폭격을 위해 기동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대만과 중국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이 코 밑으로 다가온 것이다. 더구나 한미FTA를 시작하면서 김종훈 본부장이 외교안보 동맹에 이어 경제적 동맹을 맺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국 중국을 포위한다는 얘기다. 원래 참여정부의 동북아 구상은 ‘엄정중립’이었다. 한 때는 ‘동북아 균형자’라고 강하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캐스팅보드’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면 한국은 양쪽 다 동맹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안마다 힘을 실어주는 쪽이 이기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실리도 유지할 수 있고, 명분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침략으로부터도 안전해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미국에 치우쳐 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결국 한미FTA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피해를 볼 부분은 확실하다. 정치적으로도 우리의 사법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안보적으로도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다. 따라서 한미FTA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정리=허창영/인권연대 간사
2017-08-08 | hrights | 조회: 20 | 추천: 0
한미FTA가 가진 음모와 위험 (상) - 워싱턴 컨센서스를 관철하기 위한 미국의 야욕 * 인권연대는 제42차 수요대화모임 강사로 온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강의 내용을 2회에 걸쳐 지상중계합니다.   한미FTA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상황은 아마도 국민도,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또 반대하고 있는 나조차도 FTA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점 같다. 심지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만들었던 미국의 의회조차 NAFTA가 앞으로 어떤 일을 만들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 FTA와 경제성장은 무관 정부가 한미FTA를 해야 되는 이유로 전세계 200개의 FTA가 있고, 전체 교역의 반 이상이 FTA를 맺은 나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올라가기는커녕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하나는 우리는 수출을 해서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큰 시장인 2조7천억달러짜리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 논리는 국민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가는 논리다. 전세계적으로 200여개의 FTA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전혀 달라진다. FTA의 이름은 자유무역협정이지만 사실은 그 협정 밖에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보호무역이다. 협정을 맺은 국가끼리는 관세를 철폐하지만 그 외의 국가들에는 여전히 관세를 두기 때문에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다. 원래 자유무역은 모든 국가에게 똑같이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GATT(가트)가 만들어지던 1947년에는 FTA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유럽의 국가들이 EU를 결성하기 위해 예외조항을 요구하면서 생긴 것이 FTA 규정이다. 그런데 WTO에서는 FTA가 많이 생기면 다자간 협정이라든가, 자유무역의 틀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FTA를 신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FTA를 체결한 곳 누구도 GATT나 WTO에 신고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FTA인 NAFTA도 마찬가지다. 이런 WTO가 파악하고 있는 FTA가 200개 정도다. 그런데 현존하는 FTA조차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높은 수준의 FTA’를 맺겠다고 한다. 미국은 심지어 NAFTA보다 강력한 ‘NAFTA 플러스’로 맺겠다는 것이 전략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진 않지만 대체로 전품목을 개방하고 개방의 정도가 90% 이상인 것을 말한다. 그러면 그런 FTA가 있느냐. 없다. NAFTA도 그렇게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FTA를 맺겠다고 한다. 대부분의 FTA는 협상을 하다보면 수준이 낮아진다. 결국 무산이 된 한일FTA도 초기에는 김과 자동차부품시장을 놓고 서로의 요구가 상이했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을 하다보면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FTA를 하면 우리의 농업이 망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중국은 제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관세가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관세를 낮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제조업을 지키고 우리는 농업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의 수준이 낮아진다. 이런 이유로 FTA의 대부분은 중간 수준이다. 후진국들의 FTA는 더 낮은 수준이다. 이들은 더 지킬게 많기 때문에 몇 가지 협정만 가지고 FTA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200개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이 그런 낮은 수준 혹은 중간 수준의 FTA다. 실제로 WTO의 자유무역에 어긋나지 않는, 높은 수준의 FTA는 많아야 18-20개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FTA 개수만 가지고 우리가 소외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FTA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평균 5-6개, 유럽이 3-4개, 동아시아가 2개다. 중남미 국가는 평균 7개의 FTA를 맺고 있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동아시아가 가장 못살아야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제성장률이 빠르다.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률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FTA를 가장 많이 맺은 멕시코는 2003년에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다. 즉 FTA 개수와 경제성장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가 호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대외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쇄국론자라는 비판을 많이 한다. 그 근거로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이기 때문에 더 개방을 해야 된다는 주장을 한다. 대외의존도 70%는 아일랜드나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의 작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장 개방이 많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천천히 가자는 것인데 무엇이 쇄국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마타도어일 뿐이다. 요즘 청와대 국정브리핑을 보면 ‘조중동’과 차이가 없다. 섞어 놓으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FTA에 대해서는 이미 ‘대연정’이 이뤄졌다. 실제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라면 내수를 늘려서 내수와 외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대외의존도는 18% 정도다. 수출지향의 일본도 18-25%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대외의존도가 상당히 낮다. 즉 선진국일수록 상당한 내수를 바탕으로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임금이 높고 복지와 삶의 질이 높다는 얘기다.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삶의 질이 낮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왜냐면 임금을 낮춰서 수출경쟁력을 높이면 기업은 좋지만 그 수출을 위해 임금을 낮춘 노동자들은 살기 어려워 질 수 있는 것이다. 더욱더 경제학의 상식에 비춰 볼 때 한국은 지나치게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내수를 늘려야 하는데, 그러므로 대외의존도를 높이기 위해서 한미FTA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수출만이 살길이다’는 박정희 시대 때부터의 구호에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를 이미 넘어서 있다. 미국의 FTA 전략 음모 미국의 FTA 전략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원래 한꺼번에 협상하는 다자간 협상을 선호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도하라운드까지 이르는 다자간 협상을 주도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목표는 FTAA(전미자유무역협정)를 만드는 것이었다. 즉 NAFTA를 바탕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의 EU처럼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5년에 FTAA는 중남미 좌파 성향 국가들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또 한축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MAI(다자간 투자협정)도 프랑스 등이 미국에서 투자자 보호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또 도하라운드 역시 칸쿤에서 좌절됐다. 이를 계기로 지금은 당시 미무역대표부(USTR)의 대표였던 로버트 죌릭은 ‘경쟁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양자간 FTA를 맺겠다고 선언을 한다. 즉 전 세계를 대상으로 양자간 FTA를 경쟁적으로 맺게 하겠다는 것이며, 그 내용은 ‘NAFTA 플러스 이상’이다. NAFTA에는 ‘우리는 상대국가의 공기업 민영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죌릭은 ‘우리는 상대국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지지한다’고 명확히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죌릭이 선언한 내용이다. 죌릭의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 지지 선언은 우리가 IMF를 통해 많이 들었던 얘기다. 즉 미국은 IMF와 월스트리트의 합의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FTA 중 가장 강력한 NAFTA보다도 더 강한 FTA를 맺어서 개방, 민영화, 긴축정책이라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관철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즉 미국은 한편으로는 IMF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FTA를 통해서 신자유주의를, 워싱턴 컨센서스를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앞으로 FTA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케이스가 한국이다. 원래 한국이 아니었는데 한국은 네 가지 선결조건까지 주면서 케이스가 되기 위해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FTA는 IMF가 10개쯤 터지는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10개는 아니고 한 8개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10개 이상이다. 100개일 수도 있다고 본다. IMF 조건은 돈을 갚으면 효력을 잃는다. 그리고 돈을 갚으면 조건에 대해 법적인 강요를 계속할 수 없다. 그런데 한미FTA는 한미동맹처럼 협정을 깨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된다. '한미동맹에서 빠져나오면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하는데 조금 지나면 한미FTA도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논리만 강요 미국이 FTA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가 지적재산권, 둘째가 투자, 셋째가 서비스다. 여기다 농업을 더하면 미국이 다자간 협상 등 모든 통상협상에서 전력을 기울여서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제조업 관세를 얘기하지만 미국은 제조업 관세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미국의 평균관세는 나라마다 다른데 대체로 한 2% 정도이고 우리는 18% 정도다. 멕시코는 25% 정도 됐다. 이를 10년 동안 똑같이 낮추자고 하면 우리는 18%를 낮춰야 하고, 미국은 2%만 낮추면 되는 것이다. 어디가 더 충격을 받고, 어디가 더 이익이겠는가. 농업을 제외한 세 가지를 ‘신이슈’라고 부르는데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미국이 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쉽게 얘기하면 특허다. 특허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는데 모두 타당성이 있다. 첫째는 특허권을 강하고 길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허권이 없으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발명과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창출되게 하기 위해서 특허권이 강력하고 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특허권을 강하게 할 경우 기술을 만들어도 너무 비싸서 확산이 안되기 때문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기술이 확산되어야 경제가 발전하기 때문에 특허 기간을 줄이고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 다 일리가 있다. 하나는 기술의 창출에 관련되어 있고, 하나는 기술의 확산에 관련되어 있다. 다만 특허를 많이 갖고 있고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전자를 요구하고, 특허가 없고 이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은 후자를 택한다. 특허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미국은 전자다. 전세계 특허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를 가장 강력하게 만들자고 주장한다. 한국과 미국이 협상하면 미국 주장대로 간다. 다음은 투자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상품이 아니라 투자다. 상품이 국경을 넘어올 때 관세를 얼마로 하느냐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투자는 상품이 아니다. 처음에는 석유나 지하자원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 외국인 기업을 좌파정권이 몰수해버리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투자에 대한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수용으로 바뀌면서 기업의 이윤에 저해하는 행위를 규제해야 된다는 것까지 넓어진다. NAFTA에 ‘간접적 수용’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업의 이윤을 저해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점점 보호하는 투자의 대상이 커진 것이다. 보호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NAFTA의 혁명적인 변화는 투자자가 바로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도 우리나라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민간기구가 판단을 한다. 간접적 수용도 독소조항인데 이것은 최고의 독소조항이다. 이것은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MAI가 무산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미FTA에는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정부는 투자에 대한 쟁점은 없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우리가 합의해 준 것 같다. 이는 미국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4인방은 청문회 설 것 서비스 경제력 역시 미국이 가장 좋다. 농업도 미국이 가장 강하다. 땅이 워낙 비옥하기도 하지만 면적당 농업보조금도 가장 많이 준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농업보조금을 줄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은 최근에 더 늘렸다. 그럼 제조업은 어떤가. 우리가 제조업은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지만,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1위 상품은 미국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강한 것은 자동차 중형 부문, 반도체 D램 부문, 휴대 전화 일부, 백색 가전 정도다. 그 외에는 미국이 모두 강하다. 특히 화학 의료 산업은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 한일FTA를 준비할 때는 기계부품육성방안 같은 걸 만들었는데 한미FTA에서는 그런 것도 없다. 미국과 캐나다가 CUSFTA(캐-미 자유무역협정)를 맺고 다시 멕시코와 NAFTA를 맺는데 3년이 더 걸렸다. 그걸 우리는 10개월만에 해치우려 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FTA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면 아직 협상이 끝난 것도 아니니 나중에 결과를 보고 얘기하자고 한다. 또 협상의 내용이 문제가 되면 나중에 국회에서 비준을 안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의회처럼 우리의 국회도 미리미리 보지 않으면 비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NAFTA는 3천 페이지다. 하나하나 각 부문의 전문가들이 봐야 이해할 수 있다. 경제학자나 변호사도 자기 분야만 안다. 국회의원들이 한 달 봐도 모른다. 더구나 원래 이런 것은 한나라당의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를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왔다. 이것도 대연정이다.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왔는데 한나라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주고 욕도 대신 먹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정책은 언제나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정책이나 나쁜 정책이나 큰 정책은 마찬가지다. 부작용에 대해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얘기할 것이다. 다음 정권은 누가 잡던지 대통령과 이른바 4인방은 청문회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작용은 나오게 되어 있다. 끝나면 끝이기 때문에 지금 얘기하는 것이다. - 지상중계 2회에는 정 전 비서관이 직접 보고 온 NAFTA 이후 12년이 흐른 멕시코의 실상과 한미FTA가 가진 사회민주주의의 위협 요소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정리=허창영/인권연대 간사
2017-08-08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수구보수 세력의 이익에만 관심 있는 뉴라이트"   김민웅/ 목사, 성공회대 교수   뉴라이트’란 가면 속에 숨겨진 검은 본질 언젠가 탈 식민지화에 관한 논쟁의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준비한 자료와 사용하는 말의 대부분이 대표적인 제국주의 식민침탈 국가의 언어였던 영어인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모습에서 과거 식민지배 역사의 잔재들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제국주의 지배의 피해경험이 그 후 이들 국가의 정체성 형성을 얼마나 왜곡시키고 오염시켰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뉴라이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신우익 세력들은 애써 자신들을 가리켜 ‘뉴’라이트란 영어 명칭을 사용하면서 그들의 본질을 포장하여 감춘다. 겉으로는 민족과 국가의 이익과 자존이란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여전히 제국주의 강대국의 잔재와 향수에 의존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신우익 세력들의 모순과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철저히 대외 종속적인 한국의 우익 뉴라이트가 기존 한국의 우익과는 차별화된, 뭔가 더욱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정한 국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이 역시 국민에 대한 기만이자 허구일 뿐이다. 맹목적 애국주의, 배타적 국익지상주의 등의 위험성을 차치하더라도, 뉴라이트는 진정한 민족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대외 종속적이고 사대적인 움직임만 보여주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 추진과정,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민족 전체의 이익이 아닌 일부 수구보수 세력들의 이익을 위해 미국, 일본 등의 대외정책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뉴라이트가 갖는 위험성이다. 그래서 뉴라이트는 일본 신우익 세력과 미국 네오콘의 수준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신우익과 네오콘이 철저하게 자국 또는 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는 반면, 뉴라이트는 민족의 이익을 외치면서도 그저 수구보수 세력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교육기본법 논쟁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교육은 2차 대전 이전에는 집단적 군국주의 가치, 패전 이후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는 가치로 교육의 지향점이 변화되어 왔다. 교육의 목적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일고 있는 교육기본법 개정 논쟁은 교육의 목적을 국가, 전통, 향토 등을 사랑하자는 방향으로 다시 바뀌고 있다. 이런 현상이 겉으로는 바람직해 보이나 문제는 그 본질이 맹목적 집단주의, 애국주의의 강조라는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 우익 세력들이 주도하고 있고 국내외에서의 뜨거운 논쟁과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과거 군국주의 역사의 잔재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또다시 일본을 왜곡되고 위험한 역사의 방향으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 - 신우익 구분은 의미 없어 이것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스스로를 표방하는 오늘날 일본 우익의 모습이다. 이들도 이전의 일본 우익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1945년을 과거 반성과 청산을 통한 평화적 공존과 상호발전의 계기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패전의 굴욕감을 강조하고, 다시는 지지말자는 식의 다짐을 외치고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과거청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일본 우파도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 뿌리를 이루고 있는 과거의 우파들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본질 역시 같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살펴보자. 1960~70년대는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는 미국사회에 강력한 반전, 평화주의를 불러 일으켰고 이에 대한 반발로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신우익 세력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당시 반전운동 확산 등의 분위기를 미국의 민주주의, 자유를 위협하는 혼란으로 규정하고 미국적 질서를 지킨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는 1950년대의 우익이 공산주의 진영의 팽창을 미국적 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느끼고 이에 대한 경계와 반발로 미국사회 내에 강력한 ‘매카시즘 운동’을 일으켰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50년대와 60년대의 미국 우익이 적으로 규정한 상대에는 차이가 있지만 자국 질서와 이익의 수호라는 목표는 공통적이다. 이런 점에서 60년대 네오콘의 등장은 전혀 새로운 신우익의 출현이라기보다는 인권, 반전, 평화운동 등으로 잠시 위축됐던 우익의 지배력이 되살아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울 것 없는 뉴‘우익’ 앞에서 살펴봤듯이 공통된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의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는 우파를 굳이 구우익, 신우익으로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한국의 뉴라이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뉴’라이트라고 해서 기존 우익과 차별화된 뚜렷한 차이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 역시 여전히 배타적이고 냉전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며, 수구반공 세력을 그 기반으로 한다. 또한 민족 전체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철저한 대외 종속적 속성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더욱이 뉴라이트 세력들은 식민지근대화론, 전교조에 대한 색깔논쟁 등을 통해 그 기만적 정체성을 점점 더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엄밀히 얘기하면 오늘날 한국의 우익은 ‘우익’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도 없다. 이들에게는 특정 집단의 이익 앞에 민족 전체의 이익과 미래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일본의 우익과도 다르고, 오히려 훨씬 더 위험한 집단일 수 있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이 있다. 뉴라이트의 주장이 꾸준히 전개되고, 우리가 이것에 대한 경계와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뉴라이트가 갖는 기반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라이트 진영의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지적하며 이들의 주장을 귀 담아 듣지 않지만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파고드는 이들의 전략이 한국적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우익들과 마찬가지로 뉴라이트 역시 미디어와 교육부문의 장악을 계속해서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의 교육기본법 개정 움직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다른 진영 또한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전략에 대한 대응방식도 의미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교육과 미디어가 특정 이익집단에 의해 장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움직임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뉴라이트의 허구적 외침이 줄어들어 갈수록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고, 모든 삶의 주체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박성옥/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지식인, 현장성 기반한 불온한 문제제기 왜 없나?”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 가까이에 있는 것이 가장 어둡고,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는 얘기가 있다. 지난번에 있었던 <한겨레신문> 포럼에서 ‘지식과 지식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때 ‘지식인’이란 주제에 대해 지식인들이 가장 무지하고, 가장 지적 열정을 못 느끼는 듯 했다. 신체성의 부재. 즉, 지식인들의 정신은 타자 신체의 관념일 뿐, 자기 신체의 관념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진보운동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진보적이기까지 했던 다른 지식인들을 바라보며 어떤 강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왜일까? 문제는 바로 위치(position)와 시선(perspective)이다. 위치와 시선의 문제 오늘날 지식인들은 대중을 ‘그들’과 같은 ‘3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지식인에게 대중은 하나의 이해 관계자 또는 객관적 분석 대상인 것이다. 이는 지식인들이 대중을 대하는 위치가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80년대의 지식인은 대중을 부를 때 ‘우리’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지식인 스스로가 자신을 대중과 하나로 사유하고 함께 움직이고자 했다. 하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지식인은 대중으로부터의 거리가 확보된 위치에 서있다. 대중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지식인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대중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고, 기존의 대중에 대해 적응하는 문제만 사유하게끔 하고 있다. 즉, 새롭게 도래할 대중에 대한 사고가 부족해지고 있다. 또 하나는 시선의 문제다. 앞에서 말한 위치의 문제보다 훨씬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지식인들이 현재의 집권 세력과 자기 자신을 마치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세력들은 자신들이 집권하고 있다는 착시효과에 젖어들고 있다. 노무현과 의견이 다를 때조차 그 시선은 동일하다. 어떻게 사회적 문제를 제기할까 보다는 어떻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어떻게 운동을 생산할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시선은 어느덧 지식인들마저 코포라티즘(corporatism)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식인에 대해 지속적인 비전 제시 능력과는 상관없이 실증적인 정책능력이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만 유능 또는 무능을 평가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코포라티즘에 매몰된 지식인들 그래서 <한겨레신문> 토론회에서 지식인의 위치와 시선으로 인한 문제를 ‘현장성의 상실’이라고 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표현될 수 있는데, 운동현장의 상실과 자기 삶의 현장의 상실이다. 80년대를 지식인들의 ‘운동현장으로의 침투’라고 표현한다면 90년대 이후를 ‘운동현장으로부터의 퇴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공장만이 현장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공장만큼이나 대학도 현장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서있는 그곳을 현장으로서 사유하고 그만큼 치열하게 행동하려는 의지와 실천인 것이다. 이때 비로소 대학도 운동의 살아있는 현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냥 프로젝트만 따면 그만인 것인가에 대한 사유, 이 프로젝트는 누가 준 것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자신은 어떤 지식을 어떻게 생산하는지 등 자기 삶의 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사유하며 살아가야 한다. 오늘날 ‘지식기반사회’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지식이란 이윤을 낼 수 있는 특허나 정보를 의미한다. 인격 도야, 삶에 대한 다양한 인식 등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단순히 비즈니스 재료로서의 지식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 사회에 많은 우려와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법인화 움직임과 함께 기업과 대학의 지적 집합체 구축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즉, 대학 운영에 기업적 발상을 적용하고 즉각적인 이윤을 낼 수 있는 지식, 성과 향상에 효율적인 지식만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대학은 이러한 지식의 생산 및 공급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테크노크라시와 현장성 상실 지식기반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의 출현이다. 이들은 고시합격 후 미국유학파들로 고급 기술 지식을 소유했으며, 기존의 관료들과는 달리 매우 의욕적이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전문기술지식을 독점하고 한-미 FTA 추진에서 볼 수 있듯 시기의 긴급성, 비밀주의 등을 통해 상황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극대화한다. 이들은 실증적 수치를 중시하고 구체적 정책화 능력만을 지식인의 조건으로 강조한다. 테크노크라시들은 노조와 시민단체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서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있어서도 지식은 그들의 권력을 강화시켜주고 이익을 제공해주는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가진다. 미국 학위를 취득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서울대 사회대 교수진의 92%가 해외 학위이고, 이 중 80%가 미국학위 소지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가치판단 기준의 다양성과 고유의 전통가치, 대중의 구체적 삶에서 멀어짐으로써 현장성을 상실하게끔 하는 원인이 된다. 불온함이 대중을 움직인다 현장성을 상실한 지식인이 문제를 제기할 때 그것은 전혀 불온하지 않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면 “긴급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결의 즐거움을 위해서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인의 문제제기는 세상을 술렁이게 하거나 대중을 움직이게 하지 못하는 ‘프로의 안전한 사상’으로 안착하고 만다.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인은 전체를 기술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대중의 구체적 삶은 총체적이기보다는 부분적이고 파편적이며 다양하다. 지식인들이 현장성의 상실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대중의 삶을 위해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익’ ‘공동체 전체’ 등과 같은 총체화된 이미지만을 외치기보다는 농민, 예술인, 비정규직 등 대중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강력하게 제기해 나가가는 것이 우선이다. 정리=박성옥/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20 | 추천: 0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평소에 강의를 시작하면서 언제나 ‘개념’에 대한 접근에서 출발하곤 한다. 왜냐하면 개념이 제대로 안서면 제대로 못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모든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올바른 개념의 정립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바로 ‘나 자신’ 그렇다면 ‘언론’이란 무엇일까? 언론은 ‘말(言)로써 설을 푸는 것(論)’이다. 다시 말해 추상적인 뜻과 사고를 구체화해서 말을 통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하면 신문, 방송부터 떠올릴 텐데 이는 올바른 개념이 아니다. ‘언론’과 신문 등의 ‘언론매체’는 구분되어야 하는 다른 개념이다. 언론은 말을 통해 내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 바로 ‘나 자신’의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통해 의식을 표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어릴 적에 읽어봤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자유로운 사회적 발언이 억압될 때 극한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인권과 언론이 밀접한 관계임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인권의 가장 기본은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믿는 바를 말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권리, 즉 ‘언론인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될 때만이 비로소 인간 주체의 본질을 지켜나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셀 푸코의 ‘파르헤시아’란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말로 ‘자유언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바를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항해 두려움 없이 발언할 수 있는 능력과 도덕적 책무’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용기를 가지고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발언함으로써 사회적 소통을 촉발하고 진행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도 진정한 자유는 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는가 여부에 달려있다고 했다. 결국 권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공식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공적 자유와 이것이 발휘될 공간을 더욱 더 확대하는 것이 언론의 요구이며, 우리의 역할이다. 그런데 파르헤시아란 개념을 통해 사적 차원뿐만 아니라 공적인 차원에서도 언론을 실천해야 할 때 우리는 스피커가 필요하다. 즉, 언론을 증폭시켜서 사회적 수준에서도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매체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문, 방송과 같은 언론매체이고, 우리는 이들에게 ‘매개체’로서의 역할과 자격을 위임한 것이다. ‘언론매체’가 ‘언론’으로 인식되는 오류 하지만 오늘날 언론매체가 스스로를 ‘언론’이라고 부르며, 이로 인해 우리도 언론을 나 자신이 아닌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각한 인식의 오류에 빠져 있다. 또한 언론매체는 앞서 언급한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체 오히려 민중의 소통을 억압, 통제, 왜곡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언론매체가 아닌 권력과 자본의 선전매체로 전락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위기’와 ‘언론매체의 선전매체화’가 언론 위기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식의 오류에 대한 각성과 함께 언론매체의 선전매체화에 대하여 언론의 관점에서 비판해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늘날의 언론 현실에 맡게 새로운 미디어 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 생각한다면 비판의 대상을 설정함에 있어서 신문과 방송을 분리하고, 다시 신문을 조·중·동과 그 외로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논리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비판의 대상은 ‘미디어 전체’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언론매체에 있어서 시장경쟁의 메커니즘이 지배적인 운영원리가 되고 있고, 이로 인해 미디어의 전반적인 수구화, 동질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총체적 수렴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각각의 미디어가 사회의 다양한 소통의 목소리들을 담아내기 보다는 월드컵, 야구 등 소위 ‘팔리는 아이템’만 다루려는 선전매체화, 장사 안되는 파르헤시아의 상실 등 미디어 전체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경쟁 논리 속에서 각각의 차이를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제 진보적 관점에서의 미디어 운동은 안티조선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또한 미디어 운동의 재구성 전략은 ‘어떻게 하면 미디어 내부에 잔존하고 있는 진보적 존재들과 미디어 바깥의 진보적 영역이 연계, 협력하여 미디어 위기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접근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미디어 내부에서 신자유주의적 세례 속에서 성장한 신세대와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이전 세대 간의 운동적 흐름의 단절을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진보적인 운동을 재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미디어 외부에서는 진보적 언론개혁운동 세력들이 정치 영역으로 흡수되어 버리고,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도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보다는 점차 경영, 경제학 등의 ‘돈 되는’ 특정 영역에만 국한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진보 세력의 고민과 연대가 매우 절실한 시점이다. 그리고 거대한 자본의 네트워크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 역시 단결하여 보통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공고한 네트워크 속에서 각각의 운동적 에너지의 흐름들이 서로 만나 강렬한 스파크와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때 기존 시스템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네트워크에 대항해 네트워크로 맞서야 한다. 네트워크에 네트워크로 대항하자 정리해보자면 현재의 언론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 스스로가 언론으로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담론을 형성하고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둘째, 미디어를 비판함에 있어서 비판과 생산의 이중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전면적인 FTA의 실시와 함께 올 자본의 총공세 속에서 우리의 미디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들을 끊임없이 비판해야 하며, 동시에 민중을 위해 존재하는 미디어 본연의 체질로 다시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언론매체가 민중의 스피커로서 본래 자리를 되찾아 갈 때 진정으로 자유가 보장되고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박성옥/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16 | 추천: 0
교육문제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 질문에 대해 ‘교육이란 삶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대답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두 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데 ‘무엇이 잘 사는 것이냐’와 ‘잘 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란 질문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육운동, 철학의 부재 누구나 우리의 현행 교육체제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교육운동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운동의 접근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가치, 신념의 변화와 같이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변화의 동인이 궁극적으로 그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야 가능하다는 입장인 ‘개혁적 접근’, 개혁적 접근에 비해 법과 제도의 변혁 등과 같이 더욱 구조적인 시스템적 접근을 강조하는 ‘재건주의적 접근’, 가치와 제도의 동반 변혁을 주장하는 ‘변혁적 접근’이 있다. 오늘은 변혁적 접근법을 통해서 앞으로의 교육운동의 방향에 대해 애기해 보자. 흔히 교육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학생’ ‘교사’ ‘학교 등의 교육기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체제를 결정짓고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가치’ 즉, ‘교육이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교육이념이란 ‘교육을 통해 실현하려는 가치’이다. 따라서 기존의 제도권 교육의 잘못됨을 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 한 사회가 어떤 교육의 가치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에 적합한 교육체제가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태껏 우리 교육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운동은 교육가치에 대한 접근이 아닌, 국정 교육과정과 단위학교 교육과정, 교육 일선의 교칙이나 교육방법, 교과서 등의 차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즉 교육체제 전반의 관계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교육가치(철학)에 교육개혁 움직임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교육방법 등의 방법론적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제도권 교육운동의 문제점으로 ‘철학의 부재’를 지적할 수 있다. 철학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교육철학으로서 ‘평화’를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평화교육’을 교육운동의 철학적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평화라는 가치는 어떤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평화의 가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여겨지지 않는 존재들까지도 우리 사회 속에서 인간에게 적용되는 도덕률을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나무 한그루, 작은 개미 한 마리도 사랑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이란 가치를 영위하는 존재로서 생각하게끔 교육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때 ‘개만도 못한 인간’과 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흔히 쓰이는 반인권적이고 비평화적인 말들이 자연히 사라져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운동의 철학적 기반 평화교육을 교육운동의 철학적 기반으로 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존에 우리교육을 지배하고 있던 ‘1을 열 번 더하면 10(1+1+1+1+1+1+1+1+1+1=10)’이라는 식의 서구 중심의 분석적 사고방식에서 ‘10은 2와 8의 합으로도 나타낼 수 있고 5와 5의 합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10=1+1+1+1+1+1+1+1+1+1)’는 식의 세계를 총체적이고 유기체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끝없이 전체를 해체하고 점점 더 세분화하여 분석하고 증명하는 서구의 자연과학적 사고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임을, 그래서 그 속에 여러 다양한 구성체들의 존재가 지켜질 수 있을 때 세상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동양적인 무아(無我)의 사고방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교육을 받는 주체가 앎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냉철한 머리가 아닌 궁극적으로는 따뜻한 가슴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사고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평화교육이란 우리의 아이들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만드는 것’ 즉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들은 어떻게 교육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까? 학교 울타리 안의 갇힌 사고와 경험을 넘어서 다양한 세상을 직접 접하며 ‘평화’라는 가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인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연 지금 내가 가르치기 위해 뱉는 말이 내 자신을 먼저 감동시켰는가, 그래서 내 삶 속에서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이들을 감동시키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사고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키고 진정한 ‘평화교육’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가르치고자 하는 가치를 직접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천으로 가치를 보여줘야 이제 마지막으로 지식 정보사회에서의 ‘평화교육’의 필요성을 말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래사회에서 삶의 수준이나 모습을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질이나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지적 능력이 될 것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에서의 개인간의 지적 능력의 격차는 사회적 문화적 자본의 불평등의 차원에서 ‘개인간의 양극화’를 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격차의 해소는 정보화의 진전으로 말미암아 첨단 정보기기나 시설물, 정보 자체에 대한 접근이나 활용의 가능성 차원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삶의 이기로서 지혜롭게 수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즉, 변화된 환경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의 양적 차원을 넘어서 지식을 창조적으로 창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줘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앞서 논의했던 사고방식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1을 열 번 더하면 10이라는 서구적 관점에서 벗어나 유기적인 어우러짐과 협동이 단순한 부분의 합을 능가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방법이 세상 속의 여러 구성체들에 대한 생명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평화교육’인 것이다. ‘평화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평화로운 가치를 꿈꿀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 이것이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정보화 시대의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고, 지구라는 하나된 생명체 속에서 진정으로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우리의 역할이고 우리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이다. 정리=박성옥/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1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