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제89차 수요대화모임 지상 중계 강정마을 지킴이 송강호의 “강정의 생명 그리고 평화” 인권연대 편집부 인권연대 제89차 수요대화모임 초대 손님은 국제평화운동단체 ‘개척자들’ 송강호 전 대표였다. 송 전 대표는 제주 강정마을에 머물면서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아침마다 강정마을 중덕바다 구럼비 바위에서 생명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렸고 10월 해군에 의해 구럼비가 봉쇄된 후에는 바다를 통해 헤엄쳐가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는 출임금지가처분 명령이 내려져있다. 해군 소유로 된 땅을 한 번 밟을 때마다 200만원, 그렇게 쌓인 벌금이 모두 6천만원이 넘는단다. 매번 경찰에 끌려나오면서도 매일처럼 구럼비를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강정의 생명 그리고 평화’라는 주제로 진행된 10월 수요대화모임에서 송강호 전 대표는 제주 강정마을 중덕바다와 구럼비 바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을 쏟아냈다. 10m 규모의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바다 속과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신비의 너럭바위 구럼비. 송 전 대표는 따스한 낮 햇볕을 흠뻑 머금은 구럼비에 앉아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면 이곳이 천국인가 생각한단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장소를 콘크리트로 덮을 수 있는지 ‘미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단다. 사진 출처 - 강정마을 까페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분쟁지역에서 사람들의 슬픔을 지켜보며 싸워왔던 송 전 대표는 강정마을에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경찰탄압을 본 후 강정마을에서 자신이 해야 될 일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강정마을 지킴이로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강정마을 활동 때문에 구속되기도 했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해군들의 바벨탑이다” 몸집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해군기지 건설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다는 게 송 전 대표의 생각이다. 강정마을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442호 연산호 군락지, 천연보호지역, 생태계보전지역, 해양보호구역 외에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 등 무려 5개 항목의 보호지역이 자리한 곳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도전적으로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들에게 내려진 신의 심판처럼, 자연을 파괴하려는 인간들에게 자연은 매서운 심판을 내릴지 모른다. 게다가 강정마을은 제주 문화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는 등 고고학적으로도 상당히 가치가 높은 땅이다. 송강호 전 대표는 해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일본)와 하와이(미국), 진해(한국)의 예를 들어 해군기지가 허울뿐인 허상임을 강조했다. 진해는 주민자유침해로 점점 인구가 줄고 있고 아름다운 섬 하와이에서는 이제 진주조개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빈곤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송 전 대표는 ‘해군기지 건설이 지역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해군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일갈했다. 또 해군이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들을 모아다 회식과 관광을 시켜주고 선물을 보내는 등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송 전 대표는 강정으로 달려와달라고 했다. 상황은 심각한데 강정마을을 지킬 힘은 부족하기만 하다는 거다. ‘구럼비의 천사들’이 절실하단다. 함께 싸워주면 고맙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한 번씩이라도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해달라는 거다. 강정마을은 한 달에 한 번씩 ‘제주해군기지 저지 전국시민행동의 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9 | 추천: 0
목판화가 이철수 선생의 ‘나뭇잎 편지’ 처음 시작은 대중들과의 소통 방법을 찾는 것이었단다. 1981년 첫 전시회를 열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왔지만, 역시 고민은 ‘소통’이었단다. 8년전 홈페이지 ‘이철수의 집’(www.mokpan.com)을 열었다. 이철수 화백의 작업은 나무를 다듬고 그림 그린 종이를 나무에 붙여서 칼로 파내는 아날로그적 작업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가상공간으로 투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많았단다. 2-3년쯤 고심이 거듭되었다. 그러다 온갖 선정적인 기사, 욕설, 이치에 닿지 않는 공허한 주장들이 난무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또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소통인데, 그러면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초등학생부터 팔순 노인까지 6만4천여 명의 독자와 소통하는 ‘나뭇잎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많은 독자가 읽고 있지만, 댓글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눈팅’만 하는 과묵한 손님이 많다. 역시 소통은 쉽지 않다. 25년 전 충북 제천으로 귀농했다. 박달재 밑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처음 도시를 떠날 때는 민중미술을 하는 사람이 투쟁의 현장을 떠난다는 생각에 번민도 많았지만, 그래도 가서 살아보니 좋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굉장하다’는 느낌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박용길 장로님 빈소에서 문상을 하고, 새벽 2시쯤 집에 돌아왔다. 문득 하늘을 보는데, 밤하늘의 별들, 그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며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정말 굉장했다. 굉장한 우주를 접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우리의 고민들이 얼마나 누추하고 또 초라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림 그리다가 또는 책을 읽다가 막히면, 그냥 밭으로 나가서 일을 한다. 그러면 머리가 단순해진다. 농사를 통해 많은 공부를 한다. 사도 바오로가 갑자기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처럼, 갑자기 글과 그림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자연 속에서 온전히 내가 서 있다는 느낌, 세간의 평가 같은 것과 상관없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자연 속에서 노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있다. 내게 있어 농사는 그래서 공부이기도 하다. 나를 긍정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생명들을 긍정한다는 거다. 뭇생명을 긍정하는 활동이 바로 인권운동이다.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인권연대를 가슴에 각별히 담아두는 까닭이 여기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좋은 뜻으로 일하는 분들이 서로 친하지 않다는 거다. 인권센터를 짓는 사람들과 인권연대 사람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진보정당에서 일하는 분들의 갈등도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 불화 없이 관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운동을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너무 큰 꿈을 꾸지 말고, 가까운 데서 하나씩 실천해보자. 보잘 것 없는 엽서 얘기 하느라고 이렇게 길게 왔다. 고맙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문화기획자 탁현민 교수의 “상상력에 권력을” 참여연대에서 상근활동가로 시민운동을 했고, YB 등이 소속된 다음기획에서 문화기획자로 일했으며, P당이란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다, 최근에는 이마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넘겨주었단다.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를 비롯해, 노무현 추모공연, 문재인 콘서트, 게다가 허경영 콘서트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끄집어내 하나의 문화기획물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 MBC 앞에서 ‘삼보일퍽’이란 독특한 일인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가장 적당한 직함은 문화기획자다. 낡은 주제와 구태의연한 인물, 심지어 콘서트라는 형식과 도저히 맞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정치인들까지, 그를 만나면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좋은 문화상품이 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운 좋게 흐름을 잘 탔다고 말한다. 과연 그뿐일까.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제87차 수요대화모임에 참석한 탁현민 교수는 먼저 무엇이 문화인지, 특히 대중문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어떤 것이 문화가 되는지, 또 어떤 것은 대중문화가 되는지에 대한 깔끔한 개념 정리였다. 클래식 음악의 위대한 작곡자들의 작업은 빠짐없이 기록되고 보존되지만, 같은 시절의 음악적 생산물이라도 선술집에서 대중들이 모여 부르던 음악들은 대부분 잊혀졌다. 음악적으로 부족한 탓보다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민중들에게도 문화적 생산과 유통은 있었지만,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았다. 대중문화라 불릴만한 것들은 대중이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싹튼 다음의 일이었다. 대혁명 이후, 참정권이 확산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또는 그럴 수 있는 길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졌고, 자신들의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도 커졌다. 대표적인 흑인 음악, 재즈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열등한 존재, 아니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로까지 모욕당하고, 착취당했던 흑인들의 한맺힌 음악이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기존의 문화담론을 전복하고, 저항의 의미가 불온하게 담긴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대중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즐기고, 내가 즐기는 문화로 인해 세상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생각들이 흘러 넘친 탓이다. 물론 재즈라는 장르가 지닌 선정적인 속성, 유흥의 기능이 유행이라는 시대 흐름과 짝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탁교수는 대중문화의 주요 특성으로 선정성, 유행, 유흥, 저항 등 네 가지를 꼽았다. 대중문화가 이제는 자본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었다. 불온한 저항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기획에 의한 단발적 문화상품만 반복되고 있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대중이라는 기본을 확인하지 못한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도 대중의 주체적 역량을 확인하고, 다시 불지피는 것이다. 대중은 대중을 위한 문화를 가질 권리가 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50 | 추천: 0
문화기획자 탁현민 교수의 “상상력에 권력을” 참여연대에서 상근활동가로 시민운동을 했고, YB 등이 소속된 다음기획에서 문화기획자로 일했으며, P당이란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다, 최근에는 이마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넘겨주었단다.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를 비롯해, 노무현 추모공연, 문재인 콘서트, 게다가 허경영 콘서트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끄집어내 하나의 문화기획물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 MBC 앞에서 ‘삼보일퍽’이란 독특한 일인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가장 적당한 직함은 문화기획자다. 낡은 주제와 구태의연한 인물, 심지어 콘서트라는 형식과 도저히 맞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정치인들까지, 그를 만나면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좋은 문화상품이 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운 좋게 흐름을 잘 탔다고 말한다. 과연 그뿐일까.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제87차 수요대화모임에 참석한 탁현민 교수는 먼저 무엇이 문화인지, 특히 대중문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어떤 것이 문화가 되는지, 또 어떤 것은 대중문화가 되는지에 대한 깔끔한 개념 정리였다. 클래식 음악의 위대한 작곡자들의 작업은 빠짐없이 기록되고 보존되지만, 같은 시절의 음악적 생산물이라도 선술집에서 대중들이 모여 부르던 음악들은 대부분 잊혀졌다. 음악적으로 부족한 탓보다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민중들에게도 문화적 생산과 유통은 있었지만,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았다. 대중문화라 불릴만한 것들은 대중이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싹튼 다음의 일이었다. 대혁명 이후, 참정권이 확산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또는 그럴 수 있는 길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졌고, 자신들의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도 커졌다. 대표적인 흑인 음악, 재즈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열등한 존재, 아니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로까지 모욕당하고, 착취당했던 흑인들의 한맺힌 음악이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기존의 문화담론을 전복하고, 저항의 의미가 불온하게 담긴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대중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즐기고, 내가 즐기는 문화로 인해 세상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생각들이 흘러 넘친 탓이다. 물론 재즈라는 장르가 지닌 선정적인 속성, 유흥의 기능이 유행이라는 시대 흐름과 짝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탁교수는 대중문화의 주요 특성으로 선정성, 유행, 유흥, 저항 등 네 가지를 꼽았다. 대중문화가 이제는 자본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었다. 불온한 저항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기획에 의한 단발적 문화상품만 반복되고 있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대중이라는 기본을 확인하지 못한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도 대중의 주체적 역량을 확인하고, 다시 불지피는 것이다. 대중은 대중을 위한 문화를 가질 권리가 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5 | 추천: 0
박준성 선생의 슬라이드 사진으로 보는 ‘잊혀진 노동자의 역사’ 인권연대 편집부 박준성 선생(역사학 연구소 소장)은 커다란 등산용 가방을 매고 나타났다. 슬라이드를 볼 환등기가 든 가방이었다. 꽤 무거워보였다. 요즘엔 어딜 가나 빔 프로젝트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을 담은 USB 한 개면 충분할텐데도, 그는 환등기를 고집했다. 환등기로 봐야 질감이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거 였다. 마침 강의가 있었던 날은 ‘밤엔 잠 좀 자자’며 파업 중인 유성기업 노조 파업현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 예정된 날이었다. 하루 종일 파업 현장에서 그 무거운 가방을 매고 있었단다. 운전면허도 없기에 무거운 가방을 매고 대중교통수단에만 의지해야 한단다.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이렇게 무거운 짐을 기꺼이 맨 사람들이 있다. 그들 덕에 우리가 산다. 무거운 환등기를 챙겨 다니는 이유에 대해 박준성 선생은 루쉰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 유학 시절, 루쉰은 환등기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루쉰은 그의 첫 소설집 <눌함> 서문에, 왜 의학공부를 포기했는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당시, 오랫동안 나는 중국 동포들을 만나지 못했다. 어느날 모처럼 중국인들을 슬라이드에서 보았다. 중국인 한 명이 손을 뒤로 묶인 채, 사진의 중앙에 있었고, 다른 중국인들을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그들은 튼튼하고 건강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통해 너무 명백하게 그들이 정신적으로 둔감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설명에 의하면 손을 뒤로 묶인 중국인은 러일전쟁 중에 일본국을 염탐한 혐의로, 곧 본보기로 참수형을 당할 예정이었다. 그를 둘러싼 중국인들은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동포 중국인이 처형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무감각하게 그 장면을 즐기던 중국인들의 모습은 루쉰에게 충격이었다. 육체적 질병을 고치기보다, 중국인의 정신적 질병을 고치는 게 더 급선무라고 생각한 루쉰은 단박에 의학공부를 중단해버렸다. 이렇게 슬라이드 사진 한 장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에, 박준성 선생은 슬라이드 사진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강의 때 그는 모두 200여장의 슬라이드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나 하나는 모두 잊혀져선 안되는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의 주인공이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척박한 일제시대였던 1931년 5월,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던 장주룡이 있었다. 똥물을 뒤집어 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도 거기 있었다. 전태일이 지금도 기억되는 것은 전태일을 역사로 불러낸 사람들 때문이었다. 변호사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을 썼고,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지금껏 아들의 몫까지 다하겠다며, 운동의 전선을 지키고 있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의 기억을 지배하는 자가 오늘의 역사를 주도한다.” 사심(私心)없는 지도자 박정희의 노고 때문에 경제발전이 가능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은 그 시대를 떠받쳤던 숱한 노동자들의 삶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 된다. 역사의 주역들을 꾸준히 불러내는 한편, 지금 여기의 일과 사람들을 부지런히 기록하고, 역사에 남기지 않는다면, 잘못된 역사는 끝없이 이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7 | 추천: 0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이 인간다운 세상 앞당기는 마중물 되길” 인권연대 편집부 4월 <수요대화모임> 초대 손님은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이었다.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 쌍용차만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능교육 등 다른 장기투쟁사업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제 몫의 십자가가 무겁다는데도 그는 남의 고통에 대해 연대하려고 했다. 이창근 실장은 이런 강의가 처음이었다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한 안목을 갖고 있었다. 그를 통해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배웠다. 이창근 기획실장은 강의에서 몇 가지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가 스마트 폰으로 촬영한 영상에는 노동자들의 ‘거리 선전’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희망을 찾았다. 이웃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제 갈 길만 재촉하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그가 찾은 희망의 근거는 바로 자신에게 있었다. 이창근 실장은 쌍용자동차 관련 싸움을 하면서도, 굳이 짬을 내 재능교육 농성장이나, 동희오토 농성장들을 찾았다. 한사람의 연대가 아쉽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심함이 아쉬워, 자신이라도 고초를 겪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싶었단다. 연대와 지원의 손길이 절실하기에 자신이 먼저 연대의 손실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 쌍용자동차 사태(2009년)의 결과는 참담했다. 그동안 14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월간 <인권연대> 인쇄를 맡기는 날에도 또 한명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이젠 15명이 되었다. 이창근 실장은 어떤 배우의 죽음, 잇따르는 카이스트 학생의 죽음, 또는 어떤 농민의 죽음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죽음들은 별개의 죽음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2년 전 노동자들은 이미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끝이라는 게 노동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랬다. 사회보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해고는 가계 부채의 증가, 빈곤층으로의 전락, 그리고 가정의 파괴로 이어졌고, 죽음은 마치 예정된 수순인 것처럼 따라 붙었다. 만약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평택 공장이 아니라도 가족들과 함께 가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면, 다른 회사들이 쌍용자동자 출신 노동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서 취업의 기회를 막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 사회가 실업 상태에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사회였다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비슷한 일은 곳곳에서 반복된다. 그래서 이창근 실장이 고른 강연 제목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 쌍용차만이 아니다”는 너무 정확한 현실의 반영이었다. 오늘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생존권, 곧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지만, 내일은 또 다른 사업장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 거다.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의 역할에 기댈 게 별로 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시민과 함께하는 건강한 투쟁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을 투쟁하는 노동자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5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