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일본 국민주의의 기원과 재일조선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 나는 1951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다. 일제시대 때,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가셨고 그 이후로 계속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다. 지금은 대학 교수 재직 중 안식년을 맞아 조국에서 한번 살아보자는 각오로 여기에 있지만, 한국은 그렇게 쉽게 올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언어가 두개여만 하는 사람들 나는 아직 모국어(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어렵다. 이번 방문에서 두 가지의 목표를 갖고 왔는데 하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한국어로 에세이나 소설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정 시대의 악몽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인데 검찰이나 경찰의 심문을 받을 때 적어도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을 만큼은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두 번째도 어려울 것 같다. 이전에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라는 질문에도 대답을 잘 못했는데, 병원에서도 그러니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재일조선인처럼 모국어와 모어(일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체성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다. 일본에서 60년대까지 금기시되었던 말 중 하나가 ‘조선’이다. 내가 말하는 조선은 북조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조선은 하나다’라는 의미에서의 조선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국적은 다를지언정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다양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의 그 조선이다. 따라서 재일조선인이란, 일본 국적을 받아 국가의 호칭으론 일본인이지만, 민족적 정체성의 측면에서는 조 인인 사람을 가리킨다. 해방 후, 일본에 거주하던 230만 명 정도의 조선인 중에 60만 명이 일본 땅에 남게 되었고 일본 정부에 의해 이 사람들의 국적은 일본이 됐다. 재일조선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1952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까지는 계속 일본 국적이었다. 물론 일본인들과 국적만 같을 뿐, 결코 똑같은 대우를 받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소득세나 주민세는 일본 국민과 마찬가지로 부과됐지만, 공무담임권이나 공공주택 입주권 같은 국민(국적보유자)의 기본적인 권리는 박탈당했다. 서경식 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재일조선인들은 강한 조직을 유지했다. 대표적인 단체가 ‘조선인연맹’(조련)이다. 자발적인 단체인 ‘조련’은 조국으로부터의 어떠한 재정적 지원 없이도 600개가 넘는 민족학교를 설립했다. 전후에도 여전히 천황제를 유지하는 일본 정부나 미국은 민족학교를 억압했다. 당시 요시다 수상은 미국에 편지를 보내 “재일조선인 대다수가 범죄자이므로 추방해야 미국에게도 유리하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1959년에는 ‘북송운동’(일본에서는 귀국운동이라 한다)이 일어났다. 이때 10만 명 가까운 재일조선인이 북조선으로 갔는데, 대부분 일본에서의 차별과 빈곤을 피하기 위해 귀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정부는 ‘자신들이 원하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에서 귀국을 마련해주는 것처럼 포장했다. 사실이 아니다. 인도주의를 가장한 추방정책에 불과하다. 최근의 연구에서도 당시 일본적십자사와 일본 정부 사이에 이 사업의 추진이 일본의 국익에 합치한다는 인식을 확인하는 문서가 교환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재일조선인은 통제와 배제의 대상 이런 이중적인 태도가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본질이다. 한편에선, ‘일본 국적을 지닌 일본인이므로 일본법에 복종’ 할 것을 강요하고, 다른 한편에선 ‘범법자이니까 추방해야 하고, 추방 전까지는 외국인이므로 철저히 통제를 받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 또한 재일조선인 탄압에 일조했다. ‘일본의 공산화 저지’라는 냉전 전략과 더불어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일본 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수한 탄압을 받아오던 민족학교는 1948년 즈음엔 일제히 폐쇄됐다. 이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재일조선인 학생이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1947년에 천황의 마지막 칙령으로 ‘외국인 등록령’이 내려졌다. ‘일본 국적이어도 당분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결국 ‘외국인이므로 일본법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등록 신청서에는 국적을 쓰는 난이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재일조선인들은 자신의 국적을 ‘조선’이라고 기입했다. 아직 남한 정부가 수립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재일조선인들이 자신들의 존재성에 부여하는 자연스러우며 자발적인 호칭이었다. 반면, 이때부터 일본에서 ‘조선’이란 말은 차별과 조롱의 대명사가 됐다. ‘조선’이란 말은 학교에서의 이지메(왕따)나 폭력을 일으키는 수단이 됐다.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말 자체가 하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이다. 내 학생 중에는 ‘저는 재일조선인입니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드물다. 하지만 나는 조선인이라는 말을 하기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조선인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일본 사회가 이렇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재일조선인 문제를 과거 먼 나라의 일로 치부하고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재일조선인은 1960년대 말 전까지는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병이 나면 의료비의 전액을 자기가 부담한 것이다. 국민연금에는 1980년대까지 가입이 인정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그랬다. 그 근거는 재일조선인은 ‘국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빈곤층이 많았던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민들로부터의 차별에 더해 이러한 법적인 권리 박탈까지 더해져 한층 어려운 생활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민족으로서의 호칭이며 국적이 아니다.” 한국도 일본의 국민주의를 그대로 답습 현재의 일본 헌법은 전후 연합군사령부(GHQ)가 영문으로 초안을 제시하고, 일본 정부가 수정·번역 한 후에 국회에서 결의한 것이다. 여기에 재일조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일본 국민주의의 기원이 담겨 있다. 초안에는 일본 국적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자연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자연인’을 ‘국민’으로 번역했다. 이로 인해 인권의 향유가 가능한 주체는 ‘국민’이며, 그 ‘국민’이란 국적법에 의거한 일본 국적 보유자를 의미한다. 덧붙여,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국적법은 혈통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일본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일본 국적 보유자=일본 국민=인권의 향유자’라는 등식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된다. 혈통에 근거하지 않은 재일조선인들은 ‘국민’의 테두리에서 쫒겨남과 동시에 ‘인권’의 테두리에서도 쫓겨난 것이다. 이러한 등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심성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국민주의의 본질이다. 이러한 국민주의는 은연중에 차별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한다. 국민이라고 인정받는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외국인에 대해 ‘그들의 인권은 소중하지만, 우리랑 똑같지는 않다’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이 이로부터 자유로운가. 결코 아닌 것 같다. 정부 수립 후 일본 국적법을 모방한 한국은 ‘조선 민족’이라는 단일 민족을 강조하기 위해 혈통에 근거한 국적법을 만들었다.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의 역사적 기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주변의 외국인노동자들을 떠올려 보라. 혈통이 다르다고 그들의 인권이 너무나도 쉽게 무시되지 않는가. 한국은 일본 식민 지배를 직접 경험한 역사적 기억이 있다. 한국은 최소한 동아시아에서 제일 개방적인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리: 임혜민/ 인권연대 자원활동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
내가 바라는 경찰상 황운하/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 총경 나는 1981년에 경찰대학에 입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입학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왜 힘든 경찰을 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그리 넉넉지 못했던 집안 사정이 경찰이 되고자 하는 결심에 한몫을 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10.26 사건’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대통령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보다는 그 동안 유신정권을 훌륭한 정부라고 믿어왔던 내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반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후 다양한 사회과학도서를 접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권력의 민주화’를 위해서 경찰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맺은 경찰과의 인연이 올해로 26년이 된다. 경찰개혁을 위해 경찰이 되다 1985년에 경찰대학을 졸업했을 때 경찰로서의 삶을 기약하며 두 가지 큰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가 경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경찰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머물러 있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정치적 중립성은 경찰이 본래의 업무를 정상적으로 해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경찰이 정권의 하수인격으로 시위진압에 집중하는 것은 결코 경찰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내각이 경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할 경우 경찰의 수장이 직접 온 몸으로 그러한 시도를 막아 왔다. 이러한 노력이 오늘날 일본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낸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검찰의 경우 청와대로부터 독립해서 정치적 중립성을 획득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경찰의 경우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의 예가 한화 김승현 회장 보복 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발생과 진행, 처리 결과 전 과정을 통해 과연 경찰청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 내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였다. 김승현 회장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하라는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아무런 고뇌의 과정도 없이 바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사람을 상급자로 모시고 있는 경찰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라’라는 요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경찰청장 스스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면서 ‘정치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고 ‘시민의 공복’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아무런 고뇌의 과정도 없이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현실. 그리고 그러한 경찰청장에게 조직의 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퇴진하라는 요구를 한 하급자를 하극상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징계하는 현실. 이것이 2007년 한국 경찰의 현주소다. 수사권 독립은 인권보호 위해 반드시 필요 정치적 중립성 못지않게 중요한 두 번째 목표는 바로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이다. 즉, 수사권을 검찰로부터 독립해서 경찰조직의 책임 하에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대해 조직이기주의나 조직보호주의로 몰아세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형사사법제도의 민주화와 선진화에 기여하고 검찰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개인의 인권보호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경우 검찰은 기소를 담당하는 공소제기 기관으로, 경찰은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 기관으로 탄생됐다. 기소와 수사를 한 기관이 독점하고 있는 곳은 선진국 중에서도 오직 한국뿐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오래전에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실현되었고 검찰과 경찰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외적인 경우에만 검찰에게 수사권을 주고 있다. 한국처럼 검찰이 기소와 수사를 모두 독점할 경우 ‘기소를 목표로 하는 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 소지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내가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는 공소제기 기관인 검찰과 수사 기관인 경찰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을 때만이 경찰 수사 활동의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인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수사권 독립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론과 낙관론이 동시에 존재한다. 비관론의 경우 노무현 정권이 대선공약으로 수사권 독립을 약속했고 그에 따라 2000년 당시 사회의 화두가 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지만 뚜렷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냄으로써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아마도 두 번 다시 그런 좋은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검찰의 조직적인 방해도 수사권 독립을 어렵게 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낙관론은 최근의 형사사법제도의 국제화 경향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로스쿨 제도와 배심제 도입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의 공판중심주의 강화 추세는 기소와 수사를 모두 독점하고 있는 검찰에게 상당한 정도의 업무 부담을 줄 것이고, 이러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결국은 수사할 여력이 없는 검찰이 경찰에게 자연스레 수사권을 넘겨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비관론이든 낙관론이든, 중요한 것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가 지속적으로 사회적 관심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무엇이 한국의 사법개혁발전을 위해 필요한지 진지하며 열린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청장이 사퇴해야 옳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경찰청장 퇴진 요구와 그에 따른 징계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어떠한 조직이든 그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표현의 자유를 통한 건전한 비판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 특히나 경찰 조직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홍세화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18세기 계몽사상가인 볼테르의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똘레랑스적 관점이나 “자유로운 논쟁의 결과, 진리는 생존하고 허위는 도태된다.”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모두 건전한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징계와 관련해서 단순히 경찰 내부의 논리가 아니라, 민주 사회에서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 민주화를 위한 선례가 되기를…” 그렇다면, 과연 경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면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스스로 자초하고 한화 김승현 회장 보복 폭행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경찰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될 정도로 조직의 위상을 무너뜨린 경찰청장에 대해 책임을 지고 퇴진을 하라고 요구한 것이 하극상인가? 나는 아직도 이택순 경찰청장이 사퇴했어야 옳았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 퇴진 요구가 공무원의 복무규율과 품위유지의무 등의 위반이라는 이유로 최근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 징계에 대해 현재 소청을 제기한 상태이다. 그러나 소청의 결과에 관계없이 행정소송이라는 사법적 판단을 통해 이번 퇴진 요구와 징계에 관련된 쟁점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퇴진 요구가 과연 표현의 자유의 한계 내에서 보호되는 경찰조직의 민주화를 위한 건전한 비판인가 아니면 조직 기강의 해이에 해당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 밖인가에 대한 분명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이번 사안과 비슷한 경우가 또 다시 발생할 경우 그것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더 넓게 본다면 경찰 조직의 민주화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선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
비정규직 문제? 확 줄여놓고 접근하자 !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비정규직 문제는 2000년부터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최근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 조건으로 투쟁을 함으로써 전사회적으로 다시금 활발하게 쟁점화 되고 있다. 또한 처음 국회에 상정된 지 2년 1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소위 ‘비정규 3법’이 그 취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지 못하고 있고,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 또한 천차만별이라는 점과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논점조차도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다양한 차별 현실 불확실하거나 다중적인 사용자와의 고용관계 속에서 일시적 혹은 특정한 기간동안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동안 노동을 하는 경우를 비정규직이라 하며 파견, 파트타임, 임시직, 용역 등이 이에 해당된다. 우리의 경우 최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정규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증가와 함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또한 증가하고 있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의 경우 노동 현장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랜드 사태의 경우에도 이러한 비정규직의 극심한 차별로 발생한 노사간의 갈등이 외부로 격렬하게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불법파견이다. 파견이란 고용사용자와 파견회사 그리고 노동자가 파견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공공부문의 민간위탁이나 제조업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파견은 기간이 2년을 넘을 수 없고, 만약 2년을 넘을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파견이 금지되는 업무에는 파견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년 이상의 경우에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거나 파견이 금지되는 업무에도 파견을 하는 불법파견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불법파견은 간접고용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고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악성구조라고 할 수가 있다.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자동차 제조업체의 사내하청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경우 실제 사용자에게는 고용부담이나 책임을 주지 않으면서도 비정규직에게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정규직에 비해서 대단히 낮은 임금의 지급, 그리고 정규직보다 많은 노동시간이라는 차별을 떠넘기고 있다. 2006년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110만원으로 절대적인 금액에서 차이가 계속 커지고 있고 그나마 임금이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당 노동시간을 보더라도 일반 임시직과 용역의 경우 50시간이 넘으며, 주5일제 실시여부에 대해서도 비정규직의 경우 21.2%만이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의 경우 사회보험 적용률은 30% 내외로 정규직의 98%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또한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적용 비율도 매우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나 문제가 되는 것은 노조 조직화의 격차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의 주체적 노동권 보장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 작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수중에서 정규직은 150만여 명, 비정규직은 23만 4천여 명으로 가입률로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각각 21.6%와 2.8%가 된다. 비록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지만 정규직 노조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노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연대에 대해서 자동차노조의 많은 정규직 구성원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데, 이는 ‘동감은 하나 같이 하지는 않는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정규직 이기론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정부와 사용자측의 주장에는 엄밀한 경계가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 또한 구조조정의 항시적 불안이나 사무자동화로 인한 인원 감축 등으로 끝없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노동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 소득의 불평등 문제도 감안한다면 경제적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계층과 일반적인 정규직 노동자들간의 소득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다. 개별 기업내 노동조직의 갈등보다는 전체 고용구조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비정규법안 통과 이후의 현실 최근 국회에서 소위 ‘비정규 3법’ 이 통과 되었는데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법)’, 노동위원회법개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원청사용자의 사용자 책임 인정’ 그리고 ‘4인 이하의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소위 ‘비정규 3법’이 실제적으로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비록 차별금지, 기간제한, 파견제에 대한 규정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 냈다고는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비정규법안이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를 더욱 더 열악하게 만든 면도 있다. 이는 최근 비정규법안 시행에 대비해 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다양한 조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뉴코아 등 유통, 공공기관 및 다수의 민간대기업의 경우 근속 기간에 상관없이 계약을 해지하고, 언제든지 해고 가능한 초단기 계약 등 파행적인 고용계약을 포함해 정규직화 하지 않아도 되는 단기계약직으로 전환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은행, 부산은행, 국민은행 등 금융, 이마트,홈에버 등 유통, 제조 대기업 사무직종의 경우 상시 고용된 기간제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고 기존 정규직과는 별도의 평가제, 퇴출제 운용으로 저임금과 승진에 제한을 받게 함으로써 고용안정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와는 달리 KTX-새마을호 승무원 등 철도, 청소, 환경미화의 경우에는 기간제한과 차별금지를 모두 비껴갈 수 있는 자회사 고용이나 용역도급 노동자로 전화하는 외주화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비정규법안의 통과와 그에 대한 기업들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이제까지의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측면이 있으며 비록 비정규법안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처지를 더욱 더 열악하게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필요한 것은 사회 시스템의 변화 소위 ‘비정규 3법’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제까지의 차별을 정당화 시키며 비정규직을 오히려 더 열악한 처지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체계적이면서 현실성 있게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 함께 개별기업 수준에서의 해결이 아닌 구조적으로 고용불안정을 확대재생산하는 현재의 사회시스템 수준에서의 해결도 요구된다. 즉 비정규직이 발생할 수 있는 입구를 막는 ‘사용사유제한’을 통해서 기업이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그 동안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에 대해서 엄단함으로써 출구를 억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의 과도한 인건비 절감 욕구로 인한 비정규직 활용으로부터 발생한 사회적 비용을 기업이 직접 부담하게 함으로써 추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소요되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금과 같은 유인장치를 적용함으로써 이런 관행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정리 - 정이석/ 인권연대 간사
2017-08-08 | hrights | 조회: 40 | 추천: 0
왜 진보정당인가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은 3개의 주요한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다. 민노당은 하반기 국회 비준만큼은 반드시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협상이 한 고비를 넘어가고, 또 많은 국민들이 협상을 지지하고 있는데, 소수 정당인 민노당이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맞는 말이다. 한-미 FTA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7:3이 될 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 허세욱 동지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 농민 대중들의 바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자신감이 중요한데, 민노당이 결사 반대의 각오와 결의를 갖고 있으니 믿어 주길 바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반대의 30%가 결코 적은 수도 아니다. 정부가 언론을 봉쇄하여 철저히 왜곡된 정보를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30%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의 변화된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 6차 협상 때 민노당 의원 9명이 협상장 앞에서 철야단식농성을 할 때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심지어 언론의 집중도 받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끝나는 건가’라는 고민을 했지만, 결국 김근태, 천정배 위원 등이 단식투쟁에 동참하며 전세가 역전됐다. 다른 국회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낸 것이다. 이 30%가 민노당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민노당이 내건 한-미 FTA 결사반대에 이분들의 지지와 참여가 모아진다면, 이번 대선이나 총선을 통해 민노당이 약진할 수 있는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완패했을 때 무명인사에 불과한 민노당 후보가 16%를 얻었다. 이는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표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한-미 FTA 협상은 반드시 막는다 또 하나의 중심적 의제는 비정규직 문제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올해 7월에 시행을 앞둔 비정규직법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법이라 하지만, 사실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이 아니라 해고의 칼날을 들이대는 비정규직 억압법이다. 이미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대형 할인마트나 정부 공공기관에서 대량해고가 진행되고 있고, 몇 주 전에 지방 시청에서 일하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하소연을 직접 듣기도 했다. 그 분은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일만 하게 해 달라’고 했다. 보호하겠다는 법이 해고를 위한 악법 구실을 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개별적인 해고나 부당 처우에 대한 불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 해고가 확산됨에 따라 투쟁의 규모도 거대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2년 후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겠다는 법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2년이 지나도 정규직화의 의무가 없는 직종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곧 5년이고 10년이고 비정규직으로 영원히 쓸 수 있는 직종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사 학위자나 기타 전문직 종사자들은 어디가든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므로 굳이 비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기간을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파견 직종을 더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것만 보아도 정부 정책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이나 민노당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민주노동당이 정규직 노동자만 대변하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개별적인 투쟁이나 정규직 노조에 기대지 않고 법과 정치투쟁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오직 민노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표를 일부 잃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해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월에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심의가 있다. 이런 제도는 노동자들이 알고 적극적으로 요구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집단적이며 대중적인 투쟁을 통해 최저임금을 제대로 달라고 노력해야한다. 물론 민노당이 앞장설 것이다. 적어도 노동자 평균임금의 반 정도는 보장되도록 투쟁할 계획이다. 마지막 과제가 국가보안법 폐지이다. 이건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원칙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상식의 문제다. 현재 남과 북을 오가는 사람이 10만 명을 넘고 있다. 이런 국가적인 화해무드와 평화통일을 원하는 많은 분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 후보는 평화협정을 비롯하여 통일을 대비한 구체적인 비전과 실천 사항들을 제시할 것이다. 평화협정을 맺고 있는 가운데 분단을 조장하는 휴전 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민노당 후보는 비무장지대를 없애고 군비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해결 의지 없다 요즘 민주노총의 민중참여경선 도입 요구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민중참여 경선의 의미는 인정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절차상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현행 진성당원제를 변경하려면 대의원대회를 통해 당규를 바꿔야 하는데 지난 회의에서 부결된 바 있다. 민노당이나 민주노총이나 결정된 사안에 대한 책임이 불분명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 건을 계기로 책임정치에 대한 일종의 합의와 준수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이번엔 어렵지만, 2012년에는 민주노총과 함께 헤쳐 나갈 것이다. 또 이번 대선과 관련해서, 진보대연합에 대한 민노당의 입장에도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번에는 전주 CBS 라디오 방송 대담에서 진보대연합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했더니, “문성현 대표가 김근태, 천정배 의원과도 조건부로 진보대연합을 할 수 있다”라고 기사가 나가 논란이 됐다. 연합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의제다. 김근태, 천정배 의원이 아닌 그 누구라도 한-미 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 통일문제에 민노당과 뜻을 같이 한다면 연대할 수 있다. FTA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근태, 천정배 의원이 같이 단식을 하는 등 연대를 위한 합의가 일정정도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의제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선은 3파전이며, 핵심은 의제다 진보정당으로서의 민노당은 그 누구보다도 농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이번 대선에 임할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 경선 경쟁을 벌이는 박근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합이 70~80%에 이른다며, 민노당의 약진을 우려하지만 그건 허수다. 통합여권이나 민노당 후보가 설문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한나라당내 경선 경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만이 수치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각 당의 대권 경쟁이 본격화 되면 결국 3파전이 될 것이다. 민노당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열정을 갖고 있는 당은 민노당임이 분명하다. ‘나홀로 파산’이나 가계 부채를 덜어주고, 장애인관련법, 카드수수료 인하 등의 법 개정을 통해 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은 민노당 밖에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민중들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당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리 - 김동헌/가톨릭대 학생, 자원활동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38 | 추천: 0
건강한 사회 없이 건강한 개인 없다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지금까지 다양한 보건의료운동을 해왔는데, 그런 흐름들을 한마디로 ‘인권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위한 활동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건강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면 산재나 직업병으로부터의 자유라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포괄적 의미에서의 건강권은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질병은 개인적 불행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특권과 차별이 스며든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질병을 대하는 것은 사회의 몫  헌법 35조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밑에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건강권을 환경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영역의 한 부분으로 설정했다. 독자적인 영역으로서의 건강권은 없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1981년 제34차 세계의학협회에서 채택한 ‘환자의 권리에 대한 리스본 선언’을 참고할 수 있다.  선언의 전문은 의사들이 양심을 따르며 항상 “환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확히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환자의 이익’이란 표현으로 ‘환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리스본 선언’은 환자의 권리 몇 가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첫째가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할 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환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따라 선택의 폭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동네병원과 대학병원은 분명 차이가 있다.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할 권리 실행은 불가능하다.  선언의 세 번째 조항은 환자가 치료를 수락하거나 거절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의사가 치료 결정권자가 아님을 주장하는 굉장히 중요한 변화다.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는 의사에 대해 절대적인 약자다. 그런데 선언은 이런 현실을 뒤집어 약자인 환자에게 치료 결정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어서 선언은 환자의 정보 존중,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성직자의 도움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권리 등을 담고 있다. ◎ 환자의 권리에 대한 리스본 선언(1981) ◎ 이 선언은 1981년 9/10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개최된 제34차 세계의학협회 총회에게 채택되었다. 현실적, 윤리적, 법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의사는 항상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언제나 환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음 선언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제공하려고 애쓰는 몇몇 기본권리를 대표하는 것이다. 법률이나 정부의 행위가 이러한 환자의 권리를 부정할 때에는 언제나 의사들은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여 권리를 확보하고 회복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A. 환자는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B. 환자는 아무런 외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임상적,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의사에 의해 보살핌 받을 권리가 있다. C. 환자는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은 후에 치료를 수락하거나 거절할 권리가 있다. D.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진료상 또는 개인적인 여러 가지 비밀을 존중해 줄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E. 환자는 품위 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 F. 환자는 성직자의 도움을 포함한 정신적 그리고 도덕적 위안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권리가 있다. 보건의료 운동은 사회 운동  이러한 권리들은 모두 서구 의학의 발달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각각의 의미를 깊이 해석하면 문명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과도 같은데, 중요한 것은 의료분야에서의 하나의 흐름이 진행되고, 그것의 정신과 원칙이 명문화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운동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60년대 후반부터 의료 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서울의대 사회의학연구회에서 공해지역 비교조사, 농촌 의료봉사, 판자촌 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특히 판자촌에서 함께 생활하며 1971년에 ‘판자촌민 연구’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70년대에 축적된 운동 역량들이 87년 6월 항쟁이후 분야별 집단의 결속으로 전문가 집단이 출발하게 된다.  올해 20번째 생일을 맞는 단체들이 많은데, 주로 ‘민주’자가 들어간 단체들이 그렇고, 보건의료부문에서는 ‘건강’자가 들어간 단체들이 그렇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등이 있다.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대표적인 단체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다. 인의협은 굉장히 많은 일을 해왔는데 영세민, 장애인, 해고 노동자, 파업 노동자 등의 의료 상담·진료에서부터, 상봉동 진폐증,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직업병, 유기용제중독증의 조사 작업, 고문 피해자, 시위 중 사망 학생, 구속자, 의문사 진상 조사 등의 권력 피해자 돕기 등을 전개했다.  이런 활동들은 기존 보건의료부분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으로, 돈벌기 위한 진료가 아니라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료 운동이었다.  내가 제일 많이 한 것은 권력의 피해자 돕기였다. 시위 중에 학생이 사망하면 항상 내가 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검 담당의사로 알았다. 경찰폭력이나 의문사가 생기면 유족들과 반 고문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의료보장 확대, 공공의료 확대 등 환자중심 의료 개혁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게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문제다. 민간보험이 들어서면서 의료의 공공성이 수익 지향적 진료에 의해 많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전체가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의료제도 개혁 운동하다가 인의협이 많이 약해졌다. 의약분업 당시 인의협 의사들이 파업을 반대하니까, 당시 회원이 약 2천여 명이었는데, 이제는 회비내는 회원 250여명으로 규모가 줄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대중적 영향력을 상실해서 안타깝다. “환자에게는 권리가 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성과물로 1993년에 생긴 원진재단과 1999년에 발족한 원진노동자건강종합센터를 모태로 한다.  이황화탄소 중독증을 유발해 각종 신경계장해, 행동장해, 정신장해 등을 일으켰던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태는 직업병을 사회적으로 문제화시킨 계기이며, 그 투쟁을 통해 직업병 관리제도와 환자복지에 대한 새로운 전형을 창출해 냈다.  한국에서 원진 직업병 환자는 약 930명이 진단을 받았는데, 현재 약 850명의 환자가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일본에서 건너온 기계가 한국에서 직업병을 뿌리고, 지금은 중국 반둥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에 개원한 녹색병원은 철저하게 환자중심의 진료를 지향하고 있는데, ‘녹색병원 환자의 권리와 책임’을 인쇄해서 환자에게 나눠주고 외우게 한다.  환자의 권리로는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 충분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 진료비 내역을 알 권리, 의료 행위 시행여부를 선택할 권리,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 등이 있다.  반면에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의료진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성실히 협조해야 할 책임을 진다. 의료 운동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 기제가 되려면 몸으로 실천하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운영되어야 한다. 녹색병원을 그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나는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녹색병원에 가라’는 말이 나오도록 수익이 아니라 안심하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익성을 구현하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 ◎ 녹색병원 환자의 권리와 책임 ◎ 녹색병원 환자의 권리 1. 환자는 인간으로서 존중 받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2. 환자는 자신의 질병, 현 상태, 치료방법, 향후 진행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3. 환자는 자신의 진료비 내역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4. 환자는 자신의 병과 관련된 치료, 검사, 수술, 입원, 교육 등의 의료행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시행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5. 환자는 담당 의료진이나 법적으로 허용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환자 자신의 의무기록 열람을 금지하여 비밀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다. 6. 환자는 진료와 관련하여 사생활과 신체의 비밀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다. 녹색병원 환자의 책임 1. 환자는 질병치유의 주체로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여야 한다. 2. 환자는 자신의 현재 증상, 질병의 과거력, 입원경력, 약물사용 등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정확하고 안전하게 제공해야 한다. 3. 환자는 의료진의 치료나 지시에 성실하게 협조하여야 한다. 좋은 의사를 만드는 주체는, ‘우리’  그러나 이 꿈은 동시대인들의 실천을 필요로 한다. 의사를 믿고 병원을 믿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의사의 진료에 대해 ‘그래서 병명이 뭡니까?’,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라고 질문하여 의사가 믿음 받을 만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단순히 좋은 의사를 찾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좋은 의사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와 무관한 건강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건강권 또한 사회 전체가 논의와 공감, 실천을 통해 합의해 나가야 한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서 건강한 개인이 존재할 수는 없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9 | 추천: 0
“싸워야 할 상대도 모르는 ‘사이비진보’” 심상정 의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얼마 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문제는 진보가 아니라 ‘사이비진보’”라고 얘기했다. 사이비진보라는 것은 노무현 정부로 대변되는 진보개혁세력을 꼬집어 한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매번 강하게 비판을 하니까 어떤 기자가 참여 정부가 좌절한 것이냐, 아니면 변절한 것이냐를 물었다. 정치적 주소도 모르는 ‘사이비진보’ 노 대통령은 노동운동을 할 때 만나 개인적으로 잘 안다. 사실 노 대통령은 공약만큼은 실제로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조차 노무현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줬다. 권영길 후보보다 더 신뢰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노 후보의 공약 중 노동관련 공약이 나름대로 진보적이었고, 당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집권 4개월 만에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모든 개혁에는 반드시 손해를 보는 세력이 있다. 그 세력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손해를 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개혁을 통해 손해를 볼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방법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얘기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누구인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한나라당이 가장 크게 적대시하는 것은 전교조다. 적대감도 노골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참교육이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외투쟁까지 나서면서 사립학교법 반대에 열을 올렸던 것도 지지 세력에 대한 철저한 관리차원이다. 앞에서는 LPG 특소세 폐지를 주장해 개인택시 기사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고, 뒤에서는 어물쩍 넘어간다. 반대로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너무 모른다. LPG 특소세 같은 경우 회사택시 기사들을 잡을 수 있는 법안을 상정해서 맞불을 놔야하는데, 그냥 무기력하다. 정치적 주소조차 모른다. 이것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다. 한나라당은 자신의 정치적 주소를 잘 알고 철저하게 지지기반의 요구에 복무를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주소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노무현 정부, 시대정신이 없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면, 그래도 형식적 민주주의의 정착, 탈권위주의, 탈 지역주의는 이루지 않았느냐고 주장한다.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20년이 되었다. 87년 이후 10년은 권위주의 정권의 잔여세력이 국가를 운영했고, 이때 IMF를 맞았다. 이후 10년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대변되는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했다. 그런데 이 10년 동안은 자본의 전면적인 자유, 신자유주의의 확장이 노골화된 시기였다. 물론 김대중 정부의 탈냉전과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주의는 하나의 성과라고 분명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적어도 진보로 자임하려면 사회적 약자들의 핵심적 고통과 요구가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 나는 이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 이미 87년 이후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공고화 단계에 있었다. 국민들이 노무현을 선택하면서 한 요구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다수 서민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달라는 것이었다. 최장집 교수가 말한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요구한 것이다. 다수 서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 오히려 신자유주의는 확대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공동체의 해체는 뚜렷해지고 있다. 따라서 형식적 민주주의의 정착을 노무현 정부의 성과라고만 볼 수도 없고, 또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 사회적 양극화에 가속 페달까지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양극화 문제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가 17배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자산’의 문제다. 자산 중 가장 큰 항목이 바로 토지다. 상위 10%가 95%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제만으로는 투기를 막지 못한다. 서울의 땅값이 지난 40년 동안 960배 올랐다. 지난 몇 년 동안 아파트값 상승분을 합치면 640-50조에 이른다. 같은 기간 국가재정과 비례한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이익 중에 사회로 환원된 것은 8.8%에 불과하다. 바로 이런 자산주도형투기경제가 양극화를 부추기는 근원이다. 양극화를 부추기는 가장 큰 것 중 또 하나는 교육이다. 재산과 신분이 자식의 대학을 결정하고, 그 대학이 그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 양극화를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사회양극화 문제는 IMF 이후 김대중 정부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유산을 물려받은 측면도 있지만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속페달을 밟은 것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한미 FTA다. 우선 한미 FTA는 경제적으로 도저히 계산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계산도 안 해봤다. 그러니 협정이 체결됐을 때 어떤 경제적 영향이 있을지는 당연히 모른다. 그럼 안보는 어떤가.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 정세를 좌우하는데 미국과 이런 협정을 맺게 됐을 때 중국과의 안보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원래 노무현 정부의 안보론은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는데, 한미 FTA에 의해 중국과 대립되는 위험을 떠안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정치적으로는 어떤가. 한미 FTA를 체결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한나라당 지지자들이다. 경제적, 안보적, 정치적으로도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을 왜 추진하는지 정말 의아하다. 지금 현재 노 대통령 주위에는 대통령과 함께 시작한 사람이 경제 분야에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모두 재경부 출신 관료로 바뀌었다. 친미 개방 외교론자들로 대통령이 포위돼있다. 심하게 말하면 ‘무식하면 용감’한 것처럼,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노 대통령이 재경부 출신 개방론자들에 실려서 가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는 김대중 정부의 유산이 결코 아니다. 진보, 정치적 뿌리부터 되찾아야 민주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사람들, 진보를 위한 세력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지금 자신의 정치적 뿌리가 어디인지부터 다시 파악해야 한다. 다수의 서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표출할 수 있는 세력을 갈구하고 있다. 범여권이 다시 헤쳐모여 만들자고 하는 소위 ‘민주평화개혁세력’은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 새롭게 양극화의 한축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에 수 십 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였는데, 이제는 다수 서민을 중심으로 하는 서민정치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금 다들 중도를 말하는데, 중도가 마치 실패한 자들의 부적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 앞에 유연한 진보니 신진보니 하는 형용사를 붙인다. 사실 진보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 그냥 진보는 진보다. 진보는 진보다워야 하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한다. 이번 대선은 전환기의 한국사회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그 핵심에는 첫째, 다수 서민정치시대라는 시대의 요구다. 둘째,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는 외교 안보적 측면보다 평화 경제적 측면으로 그 중심이 옮겨가 평화세력들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범한나라당 대 범민주노동당의 대결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민주노동당이 시대가 부르는 진보를 대표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당원들만의 정당을 넘어서 그간 지적되어온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딛고 전체 서민의 당으로, 진보개혁세력에게 대안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미 FTA는 민주노동당 대선 승리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서민경제를 지켜낼 수 있는 확고한 의지와 실력을 보여 줄 때 진정 서민을 위한 민주노동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에 심상정도 전력투구할 것이다. 정리=허창영/ 인권연대 간사
2017-08-08 | hrights | 조회: 37 | 추천: 0
여군은 ‘여성’이 아니라 ‘군인’이다 피우진/ 예비역 중령 군에서 27년 9개월을 복무하고 지난해 11월에 전역했다. 내 삶은 군에서 시작해서 군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아직도 군에 있다는 착각을 하고, 요즘도 새벽 5시면 일어난다. 전역을 한지 벌써 9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상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군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여군의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여군은 올해로 창설된 지 57년이 됐다. 성숙되기에 충분한 나이지만 아직도 여군의 위치와 정체성은 모호하다. 그것은 57년의 역사 속에서 40여년을 ‘여군’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군인이 아니라 ‘여군’이기를 강요했던 군 군에는 병과라는 것이 있다. 같은 육군이라도 주어인 임무가 보병이냐 포병이냐, 혹은 항공이냐 하는 것에 따라 하는 일도 다르다. 이를 병과라고 한다. 그런데 여군은 병과가 여군이었다. 1979년 청운의 꿈을 안고 자원입대를 했다. 군을 지원했던 것은 당시 지금보다 더욱 심했던 한국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 군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급은 있지만 계급 안에서는 평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업무가 여군이었다. 여군들만 모아놓고, 여군 안에서만 생활하게 했다. 부사관들은 행정지원 등 보조역할을 하고, 간부들은 부사관들을 관리하는 일이 업무였다. 물론 군인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군사훈련은 받았지만 여군은 그 자체가 더욱 철저히 여성을 차별하는 시스템이었다. 여군에게 요구하는 외모도 문제였다. 여군들에게도 남자 군인들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게 했다. 그런데 여군 후보생들은 훈련을 받는 기간 내내 아침에 ‘화장상태’를 점검했다.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화장을 할 필요도 없고, 해봤자 금방 지워진다. 그런데도 화장상태를 점검하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안면상태불량’이라는 이유로 벌점을 줬다.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면상태가 불량하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머리 길이는 남자처럼 짧게 자르게 해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주고, 화장으로 ‘여성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유방암 전력이 문제가 되어 지난해 11월 강제전역을 당한 피우진 중령 여군에 대한 불합리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80년대 초부터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어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여군에게도 업무를 주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래서 헌병, 정보를 비롯해 여성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몇 가지 분야에 업무를 주기 시작했다. 항공도 이때 생겼다. 여군에게도 업무가 주어지면서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항공을 지원했고, 조종사 생활을 시작했다. 4년여를 항공부대에서 헬기조종사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군은 군종, 법무 등과 같은 특수병과여서 전과가 안 되었다는데 있다. 항공부대 소속의 조종사들은 병과가 항공이기 때문에 조종을 하는 것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인데, 여군은 조종사 역할은 수행하지만 병과는 여전히 여군이었다. 당시 여군 3명이 함께 근무를 했는데, 근무하는 내내 파견근무였다. 사정이 이러니 항공에서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관리를 해주지 않았다. 또 조종사도 자격증만 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등급 승진이 필요하다. 부조종사에서 정조종사, 교관조종사, 시험비행조종사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승진은 비행시간과 그에 따른 교육이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계급 승진도 초등군사반 교육이니 고등군사반 교육이니 하는 계급에 따른 필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 기회도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은 지나 계급 승진을 해야 함에도 교육을 받지 못해 계급 승진도 못하고, 역시 교육을 받지 못해 조종사 등급 승진도 하지 못했다. 결국 3명 모두 남자 후배들 옆에서 부조종사 역할만 하다가 84년에 여군으로 복귀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군이 군인으로 인정받기까지 40년 여군 장교는 결혼에도 제한이 있었다.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전역을 해야 했다. 부사관들은 아예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여군들이 결혼 때문에 군생활을 포기하고 사회로 복귀하고는 했다. 이런 불합리한 부분은 89년에 군인사법이 바뀌면서야 해결될 수 있었다. 여군병과도 이 때 조정되어 여군에게도 그 자체가 병과가 아닌 남자 군인들처럼 병과에 따른 업무가 주어졌다. 그런데 영관장교(소령 중령 대령)들의 경우 마땅한 병과업무에 대한 교육이 되어 있지 않아 대령이 소령 때 가는 육군대학을 가고, 소령이 소위가 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교육 동기들 중에 언제나 최고참에 최고계급이었다. ‘고문관’이지 않았겠는가. 나 또한 7년 만에 다시 항공으로 가게 되었다. 공백을 메우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하루 종일 비행을 해도 비행시간을 만회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중령 계급들이 가지고 있는 비행시간보다 훨씬 적은 비행시간을 가지고 있다. 또 그걸 빌미로 참 많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고, 계급에 맞는 보직도 주지 않았다. 그나마 그렇게 된 것이 90년대 초반부터니까 이제 17년 정도 되었다. 결국 여군은 40여 년 동안 한편에서는 여성이기를 바라고 또 한편에서는 남성들과 동일할 것을 강요하는 모순된 구조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여성의 역할’을 강요하기도 한다. 또 여군에 대한 제도적 변화는 많이 있었지만 여전히 군 시설은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특히 훈련장에서의 화장실 문제는 대표적이다. 남자 군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동식 화장실을 가지고 나가면 좋으련만 아직 우리 군의 장비가 경량화되어 있지 않아 이동식 화장실 하나 실을 데가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소변은 막대만 꽂아 놓은 간이화장실을 쓰고, 대변은 천으로 사방만을 가린 임시화장실을 쓴다. 그러니 여군들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겠는가. 여군에게는 훈련이 아니라 그런 것과의 싸움이었다. 방광염에 걸리는 후배들도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후배 중에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빨간 마후라고 지랄이고 똥이나 한 번 실컷 눠봤으면 좋겠다.”고. 또 훈련을 나가면 여럿이 함께 자는 텐트를 치기 때문에 중대장 소임을 맡으면 병사들과 함께 써야 한다. 잠을 자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생리적인 현상 등 곤란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옷은 갈아입을 수도 없다. 아직까지 이런 것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군을 받아들일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받아놓고, 모든 문제는 개인의 몫으로 돌려놓고 있다. 여군을 받아들였으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기본적인 시설도 갖춰야 한다. 그게 기본인데 그게 안 되어 있다. 군 시스템은 아직도 멀었다 장교나 지휘관들의 사고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국가가 장교로써 그에 맞는 권한을 준 의미가 무엇인지 헤아려야 한다. 권력이 아니라 전투에서 생사여탈권을 가진 책임자로서 그에 맞는 권한을 준 것이다. 그런데 많은 지휘관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권력’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군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렇기 때문에 변화시켜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을 중심에 놓고 모든 시스템이 움직일 수 있게 바뀌도록 싸워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역을 받아들여도 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누가 또 언제 군의 문화와 인식에 대해 지휘관의 권력 앞에서 얘기할 수 있겠는가. 후배들이 전화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군은 여전히 내게 매력적인 집단이다. 국가수호라는 군의 가치는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군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군도 변해야 한다. 그래야 군도 산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7 | 추천: 0
제48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 - ‘개헌’의 중심은 ‘국민’이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우리의 헌법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 인권을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어떤 원리에 의해서 구성하고 운영하며, 권한의 부여와 통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공동체가 근본적으로 합의하는 이념과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헌법이기 때문에 조그만 정책의 변화에 좌지우지 되거나 개정이 얘기될 수 있는 규범이 아니다. 헌법 개정의 전제 헌법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개정이 얘기될 때는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상당히 중대하고 △그 문제점을 개정이란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필요성이 있고 △그런 개정에 대해서 국민이 동의를 해야만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더구나 헌법은 개정절차가 굉장히 까다롭고 비용 또한 많이 들기 때문에 중대한 사항을 개정 할 때 사소한 것을 같이 고친다면 모르겠지만, 사소한 어떤 문제를 위해 개헌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현행 헌법은 그동안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졌던 헌법들 중에서는 비교적 우수한 내용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물이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해 규정한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시대상황을 광범위하게 포괄해서 규율하고 있는 꽤 괜찮은 헌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상황과 정신이 변했다면 현세대가 당연히 개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 내가 동의를 해서 내 자유를 구속한다는 것이 자유의 제한 원리이기 때문에 과거의 헌법이 문제가 있다면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언은 이런 측면과는 거리가 있다. 사실 지금의 헌법이 이전의 헌법들과 비교했을 때는 나아진 것이라 해도 정리되어야 할 내용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한 개헌논의는 비교적 활발하게 있어 왔다. 노 대통령의 이번 개헌 발언이 그동안의 개헌논의를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정치적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제안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언 먼저 대통령 연임제다. 그런데 우리가 연임제냐 단임제냐를 얘기할 때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우리는 흔히 두 제도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를 비교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표면적인 장점과 단점을 열거해 두 제도를 비교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제도가 이전 제도의 단점을 시정하면서 장점도 보존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단임제는 과거 정권이 임기연장과 장기집권을 했던 폐해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선거에 대한 심판과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 정치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재선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소신 있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연임제를 했을 경우에는 두 번째 임기의 시작과 함께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러한 경우를 잘 보여준다. 연임제가 단임제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제도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한번만 하고 끝인 단임제에 비해 국정운영의 능력과 결과에 대한 평가에 따라 또 할 수 있는 연임제나 중임제가 우수한 제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집권의 폐해를 경험했고, 아직까지 뛰어난 정치적 지도자를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임제의 긍정적인 요소를 포기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임기일치 문제다. 이는 ‘여소야대’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여대야소’로 극복하겠다는 발상일 수 있다. 대통령제는 ‘죽음에 키스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선출된 군주’라고 불린다. 그만큼 엄청난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통제력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의회다.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적절한 견제 기능을 상실케 할 수 있다. 또 임기가 불일치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분립을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일부러 일치시켜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제헌의회와 이승만의 초대 임기를 다르게 했던 이유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임기 일치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로 잦은 선거를 드는데, 선거는 국민의 의사표출과 국정에 대한 평가의 반영이다. 문제는 금력, 인력, 지역 등을 동원한 ‘선거문화’이지 ‘잦은 선거’가 아니다. 헌법개정, 이렇게 해야 사실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최우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은 하찮은 것일 수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장하고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방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먼저 헌법 제8조 3항에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가 규정되어 있다. 물론 정당은 공적인 역할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강하다. 사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사적 결사의 자율성을 오히려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정당의 운영비를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또 국민의 세금을 소모적인 정치에 쓰이게 만드는 것은 적절한 예산의 사용이라 할 수 없다. 헌법 제27조 2항에는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에 대해 헌법학 책에서는 일반 국민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라고 굉장히 고상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것을 자세히 보면 군사법원에서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규정하고 있는 군사상 기밀 등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계엄령 하에서는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 후 미군정이 군사재판을 했던 이래 한국전쟁,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하에서 광범위하게 군사재판의 역사가 이어져 오며 남아있는 잔재라 할 수 있다. 제43조에는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겸직 범위에 국무총리나 장관은 없다. 국무총리나 장관은 겸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이런 직을 겸하면서 의원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총리나 장관으로 간 국회의원 수만큼, 그리고 그 사람과 관련된 국회의원 수만큼 의회가 적절한 통제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제45조의 ‘국회의원의 특권’도 문제다.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명예훼손이나 허위란 사실을 알면서도 했을 때까지 면책특권이 적용될 수 있어서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탄핵소추를 받은 때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권한행사를 제한하는 것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또 대통령의 사면권도 문제다. 법률은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대통령의 사면은 법률의 근본적인 엄정성을 상실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개헌’의 중심은 국민이다 이밖에도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것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기수 중심의 서열화가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결국 옷을 벗은 선배에 대해서는 조직을 위한 희생을 조직이 보상하는 논리에서 ‘전관예우’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자격을 법관으로 제한한 것도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법원과는 다르다. 법관은 세세한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판단하면 되지만 헌법재판관은 공동체의 운영 원리와 방향을 결정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때문에 변호사나 법률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이나 공동체의 문제를 다뤄본 식견을 지닌 사람도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개헌을 얘기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필요가 아니라 국민들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신장하는 관점에서 긍정적이냐 아니냐가 중심인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개헌이 불가피하다면 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개헌은 신중해야 한다. 정리 - 박용석/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2017-08-08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
부동산운동은 국민 95%와 상위 5%의 싸움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 ‘개발5적’의 ‘먹이사슬’ 재벌, 언론, 정치집단, 관료집단, 지식인층을 ‘개발5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개발5적을 비호하는 부동산 투기세력들이 있다. 이들이 대한민국 권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치인을 4년에 한 번씩 바꾸는 것 정도의 민주화가 되었을 뿐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에 거수기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관료가 만든 정책에 손만 들던 시대의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정책 없는 386은 ‘표’를 준 사람들이 아니라 ‘돈’을 준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재벌은 정당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국민들을 도박장으로 끌어들여 돈을 벌고 있다. 이렇게 번 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적’인 관료집단이 있다. 정치집단은 그나마 투표를 통해서 교체를 할 수 있지만, 관료는 바뀌지 않는다. 박정희 시절 관료가 지금까지 남아 장관이 되기도 하고, 정당 정책위에 앉아있기도 하다. 이들이 결국 마지막에 갈 곳은 재벌집단이기 때문에, 노후가 편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재벌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 한다.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지식인도 없다. 외국에서 이론적 지식을 쌓아가지고 와서 우리 현실에 맞지도 않는 이론을 입혀보려 애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이 생산하는 정책개발비의 대부분은 관료들을 통해서 나온다. 관료들은 지식인을 매수하고, 지식인은 관료들의 요구에 ‘주문생산’하는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신도시 개발을 통해 재벌에게 몇 조의 이익을 남겨주었는지를 파헤쳐 폭로를 해도 기사화하지 않는다. 일반 광고보다 단가가 4-5배 높은 부동산 광고가 ‘조·중·동’을 먹여 살리고 있고, TV광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개발5적들의 ‘먹이사슬’이 지금의 부동산 문제를 만들었다. 잘못된 정책이 ‘거품’에 ‘기름’을 붓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의 ‘엉터리’ 대책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노무현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계획을 쏟아낸 정부다. 전국 곳곳에 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결국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대한민국 땅값 평가액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2,500조였는데, 지금은 5,000조에 이른다. 미국을 통째로 살 수 있고, 캐나다를 10번, 호주를 20번, 유럽대륙 전체를 살 수 있는 땅값이다. 강남에 30평짜리 아파트 하나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최하 5억 이상의 자산이 늘어났다. 상위 5%만 좋아졌다. 문제는 금덩이나 석유가 쏟아진 것도 아닌데 값이 이렇게 오른 이유가 바로 ‘거품’에 있다는 것이다. 그 거품은 집값이 끊임없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에서 비롯된 것인데, 정부는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거품을 빼기 위해서는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후분양제를 실시하고, 공공임대 주택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임기가 4년이 지나도록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실효성도 없는 ‘8․31대책’이니 ‘신도시 계획’이니 하는 것들만 제시하고 있다. 엉터리 의사가 엉터리 진단을 하니 엉터리 처방이 나오고 부작용만 생긴다. 부동산운동은 국민 95%와 상위 5%의 싸움 우리 사회에 집 없는 사람이 40%다. 집을 살 수 없는 집단이 어느 나라나 3-40%는 된다. 문제는 다른 나라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있는 반면, 우리는 2%밖에 없다는데 있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서 100만호를 건설하겠다고 하는데, 공공임대주택은 3만가구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주택을 건설해도 서민들에게는 그저 먼 얘기일 뿐이다. 80년대에는 성실하게 일하면 5-10년 내에는 집 하나를 사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그게 꿈이었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서민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정부에게 희망을 걸지도 않는다. 이제 국민이 직접 개발5적의 특혜와 비리를 파헤치고, 그 고리를 끊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 운동은 재벌개혁, 언론개혁, 관료개혁, 정치개혁, 지식인개혁이 될 것이다. 상위 5%와 나머지 95%의 싸움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
“북한 핵문제, 미국의 자세에 달려 있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   북한 핵문제의 성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 핵문제는 향후 남북관계와 한반도정세의 중요한 변수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냉전해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다. 미국의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북한 핵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딜레마다. 북한 핵 실험은 미국의 자충수 이른바 북한 핵문제는 ‘북한발’이 아니라 ‘미국발’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사실 처음부터 우습게 시작됐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뒤에 이어진 미 국무부의 북한이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시인했다”는 일방적 발표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주장을 미국의 날조라고까지 주장하며 한 번도 핵개발계획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다. 북한은 외무성 담화에서 “미국 특사는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이 우리가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농축 우라늄계획을 추진하여 조미기본합의문을 위반하고 있다고 걸고들면서”라고 하면서 미국을 반박했다. 다만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 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었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 이후에도 북한은 자신들의 언론과 외교관들을 통해, 미국의 일방적인 핵개발계획 발표가 날조된 것이라도 주장해 오고 있다. 동국대 이철기 교수 당시 누구의 주장이 맞았던 것일까.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 핵개발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어떤 구체적인 사실 설명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당시 제임스 켈리 차관보는 한국에서의 기자회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얼버무리면서 회피하기만 했다. 미국은 단지 언론을 통해 북한이 새로운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부품인 코발트 파우더와 6000시리즈 고강도 알루미늄합금을 수입했다는 것을 흘리고 있었지만, 6000시리즈 알루미늄합금은 의료기계 제작을 비롯해 민수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철공소에도 얼마든지 널려 있다. 또 미국은 똑같은 내용을 이라크의 핵개발 증거로 제시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바 있다. 결국 미국 언론을 통해 나온 이러한 증거는 핵개발의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더구나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면, 봉인을 완료해 보관하고 있는 8천 여 개의 사용 후 연료봉을 개봉해, 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하기만 하면 수개월내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우라늄 핵무기를 만들려면 고농축 우라늄이 50kg정도 필요하며, 이 정도의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700여기의 원심분리기를 1년 동안 풀가동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굳이 적어도 1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시간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새로운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분명한 미국의 속내 이처럼 이번 북한 핵파문은 미국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일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부린 농간의 성격이 짙다. 그렇다면 미국의 의도는 무엇인가. 첫째, 한반도정세의 주도권을 재장악할 목적이었다. 미국의 “북한 핵개발시인” 발표가 터진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화해의 급물살을 타고 있었고, ‘신의주특별행정구역’ 발표 등 북한의 변화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만큼 대담했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북한방문 등 북일대화가 예상외로 빨리 진행되고 있는데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둘째, 공화당을 중심으로 주장해온 ‘제네바합의문 파기’의 목적이었다. 부시 행정부와 의회 내 강경파들은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제네바합의문’의 파기를 주장해 왔으나, 그동안 대내외적인 반대여론과 그럴듯한 명분이 없어 실행하지 못하다가 명분을 찾은 것이었다. 셋째, 미국의 패권주의적 대외정책의 명분을 위해 ‘북한위협론’을 유지할 목적이었다. 이른바 ‘깡패국가들’ 가운데 미사일 개발 능력이 가장 뛰어난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MD(미사일방어)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에 제격이다. 또 중국봉쇄정책의 핵심요소인 북일동맹관계와 보조축인 한미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주요한 명분은 일단 ‘북한위협론’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에 대신할 새로운 ‘적’이 필요하며, 그 적합한 국가가 북한이기 때문이었다. 북한 핵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NSA 위반 북한 핵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NSA(소극적 안보보장)’ 위반에 있다. 북한의 NPT 탈퇴선언과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도 이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사실 북한의 NPT 탈퇴는 국제법 위반도, ‘죽을 죄’도 아니다. NPT 10조 1항에는 ‘자국의 최고이익을 위협하는 비상사태라고 판단될 경우 주권행사로서’ 탈퇴할 권리가 보장된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5개국만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불평등조약이다. 어떤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국가 주권사항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NPT에 가입하지 않은 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불평등조약이 존재하고, 또 어떤 국가가 핵무장을 포기하고 NPT체제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핵무기국가들이 해당 비핵무기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겠다는 안보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소극적 안보보장’이라고 한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합의문’ 제3조 1항에서 북한에 대해 이 NSA를 문서로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 국방부는 2002년 1월 8일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보고서’에서 기존의 전략을 수정해 핵무기를 선제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잠재적 공격대상 국가로 북한을 비롯해 7개국을 거명해 ‘제네바합의문’에서 명시한 NSA 약속을 정면으로 깬 것이다. 이것이 북한핵문제의 본질이다. 핵 포기와 안정보장 맞교환이 유일한 해법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우리 국민들은 침착하고 우리 사회는 매우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일부 언론들이 제기하는 ‘안보불감증’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이 북한 핵사태의 전말과 원인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여론조사의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북한이 왜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보수언론들의 사실왜곡과 선동적 보도, 그리고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이번 북한 핵실험은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와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이 정면충돌한 결과다. 핵실험을 통해 국제사회의 핵비확산체제를 위협한 북한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책임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있다. 협상을 통한 해결을 거부하고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해온 미국의 ‘벼랑끝 몰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 부시 행정부 매파들에 일방적으로 동조하면서 대북강경론을 부추겨온 국내 보수세력들과 언론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억제력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일부 진보진영의 시각도 옳지 않다.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은 아직도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미국의 북한체제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진지한 자세로 양자협상에 임해야 한다. 그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