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대화모임

“보편적 인권의 성장이 소수자 인권을 지키는 전제조건” “똘레랑스 사상이 보편적 인권 성장 도움” - “‘단호함’ 필요” “한국에서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인권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권연대 5월 수요대화모임의 강사로 나선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이렇게 밝히고, 한국사회에서 똘레랑스 사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역설했다. 보문동 노동사목회관에서 진행된 이날 강연회에는 70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소수자 인권과 똘레랑스 문제에 대해 참가자들의 관심이 높아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홍 위원은 “70년대 박대통령이 국제인권단체들의 인권보장 요구에 대해 ‘인권 좋아하시네’라고 답한 것은 한국사회의 인권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며, “민주화시기를 거치면서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보편적 인권마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으로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홍 위원은 “거창, 노근리 학살 등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보편적 인권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홍 위원은 이어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는 물신주의를 지적하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등의 광고카피를 통해 물신이 인간성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내면적 가치의 상실에 대해 교육자 집단이 이러한 모습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홍 위원은 한국사회가 이처럼 보편적 인권의식 조차 낮고, 물신주의가 지배하게 된 원인에 대해 교육제도와 민주공화국에 대한 인식의 밀접성을 지적했다. 홍 위원은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교육을 통해 인권의식을 형성할 환경에 있지 않고 역사적 맥락에서도 민주공화국은 철저히 배반당했다”며, “국가는 곧 정권’이라는 의식이 교육과정을 통해 전일적으로 관철되었고,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공화국의 이념과는 다르게 학교에서는 ‘질서’만을 강조해 이 것이 내면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역설했다. 홍 위원은 “똘레랑스는 16세기 유럽에서 신구교간의 분쟁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다름은 틀림이라는 잘못된 의식을 버리고 나와 다른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이성의 소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똘레랑스를 위해서는 ‘단호함’이 필요하다”며, “차별과 억압, 다름에 맞서 단호하게 싸우는 것이 보편적 인권의 기반이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은 마지막으로 “성실성과 참여는 시민의 선택이 아니라 시민의 자격조건”이라며, “우리가 인권, 정치, 언론 상황을 단호한 자세를 통해 만들어 가는 것이다”고 호소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한 청중이 “똘레랑스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이어서 수구보수세력도 인정하라는 말 같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호하다”는 질문을 하자, 홍 위원은 “똘레랑스가 단 하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앵똘레랑스”라며, “똘레랑스의 단호함은 바로 앵똘레랑스를 향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수요대화모임 지상 중계>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 2004년 4월 28일)  “보편적 인권의 성장이 소수자 인권을 지키는 전제조건” ‘인권 좋아하시네’가 가진 의미 인권의식도 의식이다. 인권의식이 어느 수준에 있는가는 그 사회 이성의 성숙단계와 비례한다. 한국은 인권적 현실로 봤을 때 그 성숙단계가 매우 낮은 수준에 있다. 흔히 인권현실은 첫째 재소자를 통해, 둘째 이주노동자를 통해 알 수 있는데, 두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인권현실은 대단히 낙후해 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유신시절 일상적인 고문이 벌어지고 있을 때 국제인권단체들이 인권보장을 주문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인권 좋아하시네’라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 한마디는 당시 한국사회의 ‘소수자’ 인권 이전에 ‘인권’ 자체에 대한 인식 수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독재자에게서 인권 존중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사회구성원의 인권 인식 또한 독재자가 그런 발언을 공격적으로 내뱉을 수 있게 한 배경의 하나였다. 개발독재 시기에 보릿고개를 넘기는 것도 인권이라고 얘기한 것은 한국사회 구성원의 인권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일상적인 고문이 있어도 일반 인권의식이 워낙 낮아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왜 이런 낮은 인권의식을 갖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역사적 연원에서 찾을 수 있다. 식민지, 분단, 전쟁을 거치는 동안 숱한 학살이 있었고 대량학살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살에 대해 정리할 수 없었고, 숱한 죽음에 대해 책임지기는커녕 신원할 기회도 없었다. 제주 4.3도 고작 지난해에야 정부의 사과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인권 이전에 인간, 인간성 자체에 대한 확인도 하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권이 자리잡힐 가능성과 여지가 없었다. 시민의식도 부족했으나, 정서적으로도 어려운 배경이 있었다. 이런 사회적 여건상 한국에서는 보편적 인권을 기대하기 힘들다. 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도 사회 민주화를 기다려야 했고, 이제 겨우 이야기할 자리에 왔다. 그렇지만 보편적 인권에 대한 해결이 없이 소수자의 인권 역시 어렵다. 보편적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환경이 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올바른 인식과 실천을 위한 출발점이자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 중요한데 ‘민간인학살진상규명특별법’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사회 ‘물신주의’ 지나쳐 한국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훨씬 더 ‘물신’에 영혼을 내주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불편했을지 모르지만 물신화를 통해 마음까지 편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억울한 죽음을 정리 못한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물신화’의 과정 밝아온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 있을 때도 한국의 경제성장을 알고 있었으나, 이 지경으로 물신주의에 매몰되어 있는지는 상상을 못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조상의 말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인심나기는 커녕 과거 보릿고개 시절 보다 사회상태, 인심이 더욱 험악해졌다. 최근 들어 일어나고 있는 자살, 강도, 살인, 유괴 등이 물신에 인간성을 내준 것이 증폭되어 나타난 것이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국사회 구성원 다수가 물신에 영혼을 내준 것 아닌가 의심된다. 최근 광고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광고는 그 사회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광고카피에서 능력은 소비능력, 지불능력을 말하고 있다. 이런 광고가 나오는 사회에서 소비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대한민국 1%의 힘’이라는 카피는 한국사회가 20:80을 지나 1:99의 사회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는 물신이 인간성을 압도해 사람이 물질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인간의 내면적 가치가 실종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고카피들이 일상적으로 공중파를 통해 거리낌없이 전해지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런 것이 프랑스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인간성’이란 항체 때문에 용납되지 않는다. 청소년이 이런 것들을 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질지에 대해 종교, 교육 등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교장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일인데, 우리의 교장선생님들은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기 위해서만 모이고 있는 것 같다. 의식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의 일상은 물신주의가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고, 이런 상황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사회에 공화국이 있는가? 인권은 교육문제와도 관련되고, 국가의 정체성인 민주공화국과도 연결된다. 프랑스 사회가 프랑스 사회인 것은 그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한국 사회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인권상황은 프랑스 구성원의 의식을 반영한 것처럼,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의식을 갖게 되는데,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인권의식을 형성할 환경에 있지 않다. 민주공화국이 역사적 맥락에서 철저하게 배반당하면서 ‘인권’과 ‘연대’ 대신 ‘경쟁’과 ‘질서’가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국민전선당의 후보가 1차 투표에서 17%를 획득하여 결선투표에 나서게 됐을 때의 일이다. <르몽드> 신문은 ‘프랑스의 수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고, 십여만 명의 고등학생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극우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때 그들이 내건 표어가 ‘공화국을 지키자!’라는 것이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추방과 차별, 사형제의 부활, 경찰력 강화 등을 주장하는 극우파에 반대하는 이념적 근거로 공화국이란 기치를 들고 나온 것이다. 공화국(Republic)이라는 틀을 통해 공유하는 가치가 자유, 평등, 인권, 연대이다. 한국사회에서는 독재라는 실체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공화국’ 정신인 Public 개념은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것은 ‘대물림 되는 왕 대신 대통령’이라는 정도이다. ‘공화국 = 대통령’을 떠올릴 정도로 공화국의 의미는 축소되어 있고, 대통령이 통치하는 것으로 공화국이 완성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공화국은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익을 목표로 하고 법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이다. 이런 의미를 통해 공유해야 될 긍정적인 가치는 실종되었다. 이러한 이유는 역사적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일제 부역세력을 정리하지 못하고, 이들이 각 부분에서 반세기 이상 헤게모니를 쥐어오고 있는데 있다. 이는 단순하게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넘어 이들에 의해 나라를 지배하게 했다는 것이다. 국가 경영의 각 부분인 언론, 정치, 치안, 법조, 국방 등 모든 부분을 일제 부역세력이 장악함으로써 공적부분을 사적 이익을 창출하는 장으로 변질되고 전락했다. 이런 뒤집힌 결과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당과 족벌언론 등이 공당, 공기이기보다 사당, 사기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탄핵사태 직후, 헌법재판소를 방문한 국회 소추위원들인 김기춘, 김용균의원의 소추장면은 한국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김용균의원의 부친은 친일혐의를 의심받고 있고,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끝까지 누더기로 만들었던 사람이다. 김기춘의원은 유신헌법의 기초자로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고,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조장했던 초원복국집사건(1992년)의 장본인이다. 이번 4.15총선을 통해 조금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듯 하다. 열린우리당이 ‘공공성’에 맞게 정책을 추진했으면 좋겠는데, 개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의식화를 통해 개인 부정하는 결과 일제 부역 세력은 한국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전일적인 의식화를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교육과정, 대중매체를 통한 의식화를 통해 인간성을 부정하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개인’보다는 ‘국가’를 중심으로 놓고 보는 의식이 형성되었다. 반공, 안보, 질서, 지역감정 등을 통해 한국사회 구성원 스스로 민족적, 계급적 정체성을 배반하게 한 것이다. 5.16 군사구테타 직후 중학생이던 나는 ‘우리는 반공을 국시로 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의 ‘5.16 혁명공약’을 암기해야 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나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처럼 혁명공약과 국민교육헌장을 암기시키면서 ‘교육’은 우리를 철저하게 국가에 복속시켰으며, ‘국가는 곧 정권’이라는 의식을 교육과정을 통해 전일적으로 관철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중동을 통한 일상적 확인사살까지 병행했다. 절대다수가 자기 존재를 배반하게 되었다. 근대시민사회는 자유, 평등으로 봉건적 신분질서를 깨고서 태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기존체제에 대한 자발적 복속을 위해 ‘질서’를 강조했고, 반인권적, 봉건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수위실은 위병소, 운동장은 연병장, 구령대는 사열대를 옮겨다 놓은 것처럼 병영의 구조를 갖춘 학교는 문제제기도 없을 만큼 내면화되었고, 초등학생 때부터 병사들처럼 줄을 서서 ‘애국조회'를 통해 교장의 훈화를 듣는 등 철저한 의식화가 진행되었다. 똘레랑스는 차별에 대한 반성적 성찰 똘레랑스는 ‘다름’의 관계를 부정하는 관계이다. ‘다름=틀림’이라는 잘못된 의식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똘레랑스다. 안보의식화 속에서 국보법 등을 통한 색깔론, 지역주의를 앵똘레랑스라고 한다. 이는 사상의 다름, 출생지의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앵똘레랑스는 수구보수의 지배이데올로기적 기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똘레랑스는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하지 말라는, 나와 다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라는 ‘이성의 소리’이다. 차이는 차이일 뿐이다. 남녀, 이성, 동성, 내외국, 사상, 종교의 다름을 다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이성의 소리가 똘레랑스다.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에 익숙해 있던 그동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중요한데, 똘레랑스를 위해서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프랑스에는 17%의 극우파가 있지만, 83%의 극우파에 대한 ‘단호한’ 반대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지역주의가 여전히 정서적 차별의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지역주의라도 영남의 지역주의와 호남의 지역주의는 다르다. ‘당신 경상도 사람이지’와 ‘당신 전라도 사람이지’라는 질문이 나타내는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런 소수의 공격적 지역감정에 대해 다수가 ‘단호한’ 반대를 하고 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똘레랑스 사상은 16세기 유럽에서의 신구교간 분쟁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집단적 광기로 다름을 빌미로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학살하고 전쟁 일으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똘레랑스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과제로 다가서야 한다. 똘레랑스 위해 단호함 필요 ‘이성’은 인간의 저급한 속성 때문에 중요하다. 인간은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만족하려고 한다. 나와 남을 비교하며, 낫다고 생각할 때 만족한다. 이런 저급한 속성을 부추기며 정치적 패권의 장악을 기도하는 것이 지역주의이다. 출생지를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차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야만’이다. 출생지에 대한 잔인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그저 ‘나는 지역감정이 없다’ ‘나는 그렇지 않다’라는 차원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싸우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의 정신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보편적 인권의 기반이다. 볼테르가 ‘광신자들은 광신이어서 열성을 보인다. 광신자들의 열성도 수치스런 일이지만, 지혜로운 자들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도 수치다’고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너무 점잖으면 결국 광신자들이 지배하게 된다. 사익추구집단들은 마치 돈 몇푼 따기 위해 밤새 도박을 하는 사람들처럼 이익을 위해서는 대단한 열성을 보이기 마련이다. 최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했던 모습을 생각해보라. 이제 단식투쟁이 긍정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관철하거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익, 집단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 이들의 연대는 공고하고, 또 매우 열성적이다. 성실성과 참여는 시민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시민의 자격조건이다. 우리가 바라는 인권, 정치, 언론 상황은 단호한 자세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회진보란 결국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데 있다. 한 사회의 보편적 인권보장은 소수자 인권을 위한 필요조건이며,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받는 다는 것은 그 사회의 보편적 인권이 지켜지는 충분조건이다.
2017-08-08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우호적 공생관계가 한반도의 평화 정착시킨다.” 인권연대 수요대화모임서 한완상 한성대 총장 고언 “남한에는 ‘친북’, 북한에는 ‘친남’ 많아야”-“개성공단 등 경제협력 중요” 인권연대는 지난 24일 17차 수요대화모임에 한성대 한완상 총장을 초청하여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사회원로의 고언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서울 보문동 노동사목회관에서 진행된 이날 강연회에서 한완상 총장은 “남북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벗고 우호적 공생관계로 거듭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정착할 수 있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 총장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그 동안 이익을 본 세력은 북한의 강경세력과 남한의 수구보수냉전세력뿐이라”고 성토하며, “적대적 공생관계가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밝혔다. 한 총장은 또 “남한에는 ‘친북’인사가 많아야 하고, 북한에는 ‘친남’인사가 많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북한의 실용주의파와 공존파들의 발언권이 높아질 수 있도록 남한에서 지원해줘야 하고, 이는 종교인들이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총장은 남북경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개성공단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 기업의 개성공단 진출이 남과 북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 총장은 “한반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구체화되면 개성공단은 중국의 ‘푸동효과’를 뛰어넘는 중요한 산업화 기지로 발돋움 할 것이다”고 전망하며, “개성공단 등을 통한 경제협력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물량적 기초’이며, 남북한의 우호적 공생관계가 형성되면 한반도의 평화는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다.”고 견해를 밝혔다. 평화정착의 물량적 기초 마련해야 한 총장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6자회담에 대해서도 현정부의 태도를 지적하며, 보다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강조했다. 한총장은 “남북문제는 민족문제인데 남한은 6자회담에서 변두리에 나가있다”며, “북한과 미국사이에서 외교적인 힘을 발위해 적극적으로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하고, 또 그럴 때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한 총장은 또 YS정부 때 통일부총리로 재직할 때의 뒷얘기를 털어 놓으며 “이인모 노인 송환은 YS의 기독교적 양심이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 총장은 “교회 장로를 지냈던 YS와의 독대에서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 그랬고, 또 정말로 기독교적인 그런 사랑을 실천할 그런 힘이 있지 않느냐라고 했다”며, “북한보다 14배 강하니까 복수에 근거한 정의를 두지말고, 당장은 힘 들더라도 팍 껴안자고 했다”고 그때의 얘기를 전했다. 또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서 이인모 노인 얘기가 나와 3년정도면 죽을 것 같다고 그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YS가 이인모 노인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다”고 배경을 밝혔다. 한 총장은 또 “이인모 노인 보내고 나서 지금까지 ‘색깔론’이 물귀신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총장은 아울러 이날 동북아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한반도의 중요성, 미국 부시정부와 니오콘의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속성, 남한의 정보강국으로의 발돋움에 대한 견해를 밝히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간의 긴장관계의 완화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수요대화모임 지상 중계> (한완상 한성대학교 총장 녹취내용- 2004 년 3월 24일) - 우호적 공생관계가 한반도 평화정착의 지름길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한반도 오늘 우리 한반도 평화문제를 새롭게 생각해보도록 하자.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관련된 절박한 문제인데, 우선 우선 왜 한반도에 평화가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우리가 발딛고 있는 한반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20세기와 함께 냉전시대가 종식되었다. 새로운 21세기는 정보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한반도는 역사적 흐름으로 볼때, 마치 난류(暖流)와 한류(寒流)가 교차하는 지점처럼 보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냉전시대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냉전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한류는 여전하고, 최소한 남한의 경우에 세계적으로 정보화, 개방화란 측면에서 가장 앞선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난류의 흐름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는 냉전의 시각에서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고, 정보화의 흐름으로 보면 누구보다도 앞서 21세기에 진입해 있다. 지금 우리나라 인터넷 인구가 3,000만명인데, 젊은 사람들만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농민도 주부도 인터넷을 쓰고 있으며, 인터넷이 일상생활 속에서 전국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보화에서는 가장 앞서가는 나라가 냉전을 종식시킨다는 측면에서는 가장 뒤쳐지고 있다. 아시아 중에서도 동북아시아가 지닌 무게 21세기에 들어와서 아시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다. 아시아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면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생산의 50%, 전체 소비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중에서도 핵심은 동북아시아이고, 여기에는 한국(남북한) - 중국 - 일본 등 3개국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의 영국의 한 언론이 세계 60개국을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눠서 그 지역마다 평균 IQ(지능지수)를 내고 경제발전 지표를 제시한걸 보면, 세계 8개 지역 중 동북아시아인의 평균 IQ가 105로 제일 높고, 북아메리카, 유럽, 호주는 100, 북아프리카는 85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도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의 두뇌가 가장 우수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평가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동쪽에는 경제대국인 일본이 있고, 서쪽에는 거대한 중국이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2개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고, 역사적으로도 20세기의 전반은 일본의 식민지로, 후반은 분단이라는 불리한 정치적, 경제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남쪽은 세계경제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전세계에서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정보화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의 놀라운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정보화, 참여 민주주의를 통해 꼴찌가 일등으로 거듭나고 급속도로 정보화가 진행되고, 이 정보화의 성과들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 등을 통해 확인하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7,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할때, 우리는 참으로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숨가뿐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마다 함석헌선생님이 우리같은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함선생님은 “우리가 지금은 정치적인 후진국으로서 군사독재의 핍박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뒤쳐진 나라로 대열의 맨끝에 초라하게 붙어 있지만 언젠가 하느님께서 ‘뒤로 돌아 가!’라고 말씀하시면, 꼴찌가 첫째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정보화를 통한 놀라운 성과들을 보면서, 식민지, 전쟁, 독재정권으로 가장 볼품없고 보잘것 없었던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나라가 되어 보니 마치 “뒤로 돌아 가!”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실현된 것 같아 보인다. 정보화는 정보인프라 그 자체보다 쌍방향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은 시간과 거리의 제약없이 일상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사람들 사이의 정보의 공유가 진행되면서, 어떤 의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최근 촛불집회에서 보는 것처럼 오프라인에서의 커다란 행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의사소통과 표현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나타난 양식이고, 21세기에 와서 우리가 만들어낸 디지털혁명의 생생한 증거이다. 이런 네티즌들의 역동성은 정치판도 뒤흔들고 있는데, 조직적으로 중앙당에서 자금을 모아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만드는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쌍방향 의사소통에 자유로운 네티즌들에 의해서 당선된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날 영국의 가디언지는 “2월 25일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전자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발췌개헌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영국의 런던 타임즈가 조롱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촛불집회에서도 입증되듯이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참여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도 이제 스스로 ‘엽전’ ‘바지 저고리’라고 자조하지 않아도 될만큼으니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예전에 함석헌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뒤로 돌아 가!’라는 한마디로 꼴찌가 일등으로 거듭나는 극적인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탄핵사태 자체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경미한 실수를 야당이 무리하게 처리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이후의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경탄’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나는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점점 더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경의선이 연결되면 부산에서 서울, 평양, 신의주를 거쳐 중국대륙과 실크로드를 관통하여 유럽대륙까지 이어지고, 경원선이 연결되면 함흥을 거쳐 시베리아를 통해 유럽대륙에 연결되게 된다. 이 철도의 대동맥은 단순히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까지 참여하게 될 것이며 경제적 효과도 어마어마하게 될 것이다. 이런 꿈이 구체화,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의 시금석은 바로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이 제대로 가동되면 중국 상하이의 ‘푸동효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매우 중요한 진전을 가져올 것이다. 남한의 중소기업 수천개, 수만개가 개성공단에 진출하여 수많은 북한주민들을 고용하여 서로가 함께 살 수 있는 윈 - 윈 게임을 한다면, 이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는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남북협력을 통한 물적기반이 커지면 커질 수록 서로 공생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이렇게 되면 개성이 아까워서라도, 남북협력을 통해 버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전쟁을 방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부시정권과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을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는데,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호전적인 부시 행정부 때문이다. 미국의 카터 전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발발 1년을 맞아 인디펜던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부시와 블레어는 사담후세인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고, 정보를 곡해했다”고 지적한 것처럼 부시정권은 무모할 정도로 호전적이다. 부시정권의 이런 성격을 이해하려면 부시와 주변의 니오콘, 신보수주의자들의 정책을 이해하려면, 기독교 역사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부시와 그 주변의 니오콘들은 예수를 아주 잘 믿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다. 근본주의자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모든 것을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는데, 자기는 지선이고 다른 사람은 지악으로 규정하며, 악은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멸한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초전에 박살낸다는 것이고, 이런 생각은 부시정권의 선제공격, 예방 전쟁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후 승승장구하고, 국제적인 저항과 비난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북한에 무슨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반전이 쟁점이 되고, 스페인의 철군에서 보듯이 국제적인 지원도 못받고, 반전운동이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도처에서 전개되자 북한까지 손댈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부시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마음 속에는 ‘사탄’과도 같은 북한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고, 이들의 위험한 생각은 언제든지 한반도의 평화를 교란하거나 유린할 수 있다.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남북의 강경 수구세력 한반도의 평화는 내부에서도 위협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가 남북이 그동안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해오면서, 양측에 기득권세력으로 굳어지고 세력화된 강경 수구세력들의 존재이다. 남한은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 언제나 북한의 남침을 이용하였다. 적이 곧 쳐들어오고 그러면 우리는 다 죽으니까 정권의 말을 잘 듣고 조금 불편해도 참으라는 것이었다. 북한도 똑같았는데 입만 열면 미제국주의와 남조선괴뢰가 쳐들어온다며 북한 인민을 통제하여왔다. 양측이 다 저쪽이 위험하니 우리끼리 뭉치자라고 선동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명시적으로는 서로 매우 적대적이었지만, 묵시적으로는 공생관계였다. 남과 북에 긴장이 조성되면 득을 보는 세력이 바로 남과 북의 강경 수구세력이었다. 이들 수구세력에게는 서로 자기 체제의 유지를 위해 ‘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얼마전 나는 한 언론과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한에는 친북인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물론 북한에는 친남인사가 많아져야 된다. 북한의 친남인사와 남쪽의 친북인사는 우호적 공생관계를 만들어가는 주체들이다. 이들은 냉전적 잣대에서 민족을 보지 않고, 민족 공생의 잣대에서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의 실천적인 차원에서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친남인사가 많이 생기도록 남한에서 할 수 있는 길은, 북쪽의 실용주의파, 온건파 등 우호적인 교류를 통해서 평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더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우호적 공생관계’로 바꾸는데에 있어서 효과적인 여러 정책 중 하나가 바로 ‘햇볕정책’이다. 기독교 장로의 양심에 호소하여 이끌어낸 이인모 노인 송환 내가 통일부총리로 있을때인 1993년 2월 26일, 각료 중에 처음으로 YS대통령하고 독대를 가지면서 “지금 남북한의 힘의 균형에 있어서 우리가 14배 강하니까 저쪽에서 팍치더라도 함무라비 법전시대의 복수에 근거한 정의를 정책으로 두지 말고, 당장은 힘들더라도 껴안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네가 내 눈을 치기 때문에 나는 네 눈을 친다는 ‘때문에’ 논리가 아니고, 너는 내눈을 때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껴안는다는 ‘불구하고’ 논리를 갖자”라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YS가 교회장로였던 점을 감안해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 그랬고, 힘도 14배나 강해 기독교적인 사랑을 실천할 그런 힘이 있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이인모 노인 얘기가 나왔고, 내가 3년 후쯤에는 죽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 때 YS가 이인모 노인 송환을 결심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이인모 노인을 보냈지만 그 후로 색깔론이 물귀신처럼 따라 다니고 있다. YS대통령과 독대 후인 1993년 5월 15일(토)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에서 기자가 “북한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에 대해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고, 그 전보다 훨씬 그럴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물어서, 내가 “저쪽은 우리의 1/14도 안되는 경쟁력 규모를 가지고 있으니까 흡수에 공포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라면 ‘14배 잘 살는데도 불구하고 당신들을 흡수할 의도가 없다’라고 정책적으로 선언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기회에 북한 당국에 명백히 밝히고 싶다. 김영삼 정부는 흡수통일의 의사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않으며, 능력도 없다.”라는 3무(三無)를 얘기했다. 이런 보도가 나간 후 수구세력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3무에서의 ‘능력’이라는 말을 하게된 배경은, 94년에 클린턴도 대북강경정책을 쓰고 있어서 북한에 대한 정밀공격(써지컬스트라이크)을 고려하고 있었을 때인데, 엄청난 경제적, 군사적 비용과 인명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받고선 못하고 있었다. 물론 전쟁이 나면 경제적인 힘이 우세한 남한이 시간이 갈수록 유리하겠지만, 서울에서 몇백만이 죽고, 울산, 포항 등 산업기지가 다 깨진다면 그렇게 이겨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능력’을 얘기했던 것이다. ‘햇볕정책’은 이런 의도에서 만들졌고, 내가 언론을 통해 “정부는 북에 대해 한파로 옷을 벗기기 보다는 따뜻한 햇볕을 쪼여서 스스로 옷을 필요성에서 벗게 하는 정책이다.”라는 말을 써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햇볓정책을 통해서 우호적 공생관계를 이룩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고, 통일을 보장하는 단계로 가게 될 것이다. 경제협력이 평화로가는 물량적 기초 남북한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쥐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 쪽은 역시 경제적으로 강대한 남한이다. 1994년에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대통령 특사로 가는 과정에서 만난 우간다의 대통령이 의미있는 충고를 던졌다. 당시 우간다의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를 푸는 방법은 남북간 서로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것인데, 신뢰구축은 정치적 교류뿐만 아니라 경제적 교류로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는 많은 부분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남북한간의 경제교류 협력은, 남한의 기업도 살고, 참혹한 상태에 있는 북한의 경제상황을 개선하는데 꼭 필요하다. 임금이 싼 곳으로 공장을 옮기려는 ‘기업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의 중소기업이 개성공단에 들어가 저렴한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의 노동자에게는 일자리가 제공되는 것은 일방적 퍼주기가 아니라 공생이고 평화로 가는 물량적 기초이다. 1993년에도 “북한핵 해결땐 교류협력 가속”이라는 신문기사가 있었는데 이는 꼭 지금의 얘기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북한핵 해결이 우선이라는 논리가 아니라, 경제협력을 통해서 평화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 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져야 한다. 6자 회담에서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 해야 6자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 대립을 우리 정부가 조정할 수 있는 외교 역량을 발휘할 때가 됐다고 본다. 적어도 남북간의 문제는 민족문제인만큼 강대국끼리가 아닌 당사자가 제 힘을 발휘해야 한다. 6자회담에 임하는 우리정부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변두리로 나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북한 핵동결 선언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완전 핵시설 폐기에 이르기까지 두, 세단계가 있다면, 북한이 핵동결을 하면, 미국과 나머지국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단계적으로 공식이행하게 하는 어떤 노력을, 남한이 가운데에 서서 해야 한다. 평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우리 민족은 중심부에 설 수 있는 때가 왔고, 또 중심부에 서야 한다.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갈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것은 시민들이 먼저 인식하고 정부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 촛불집회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자긍심을 이제 평화를 정착시키데 써야 한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