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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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인터넷에서 고식지계(姑息之計)를 검색하면 “한때의 안정을 얻기 위하여 임시로 둘러맞추어 처리하거나 이리저리 주선하여 꾸며 내는 계책”이라고 나온다. 많이 쓰이는 말로 ‘눈 가리고 아웅’일터인데, 찾아보니 유사한 고사성어가 꽤 있다.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면 남들이 자신을 보는 줄도 모르고 속이려든다는 것(柯葉遮眼, 가엽차안)이나, 귀 막고 방울도둑질 한다 - 즉 방울 소리가 제 귀에 들리지 않으면 남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엄이도령(掩耳盜鈴) 역시 비슷한 뜻이다. 타조가 도망가다가 힘들면 모래 속에 머리만 박는다는 타조 머리 감추기(鸵鸟政策, 타조정책) 역시 이웃사촌 쯤 되겠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눈 가리고 아웅’해야 할 일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11,42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노동부의 [사업체 기간제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2009년 9월 4일)를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이’라고 덮을 수 있을까?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지난해부터 100만 대란설을 주장하며 “7월 이후 해고되는 비정규직 연인원이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또한 2009년 7월 발간된 노동부의 [비정규직(법) 관련, 오해와 진실]에 따르면 비정규직법이 정규직 전환법이라는 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기업은 2년이 넘기 전에 계약만료 시점이 되면 언제든지 고용을 종료시킬 수 있다. 정부가 실직자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고용대란만 강조했다는 것도 오해이다. 왜냐하면 법 개정이 비정규직 실직을 막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라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해고대란은 사실무근이다. 실태조사 결과 넓은 의미의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 10명중 6명 내지 7명이기 때문이다. 계약종료 된 3, 4명의 경우도 자발적 이직인지, 해고인지 아니면 기업의 경영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비정규직 법 때문에 해고된 경우는 발표된 수치보다 적을 수 있다. 민생민주국민회의 회원과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기획해고’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만약 정규직 전환 지원 대책이 마련되었다면, 해고대란만 조장하지 않았다면, 기업의 권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오해와 진실’과 같은 노동부의 안내서만 아니었다면 정규직 전환 수치는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최소한 해고 규모 과장과 관련,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는 보도이다. 하지만 장관의 발언과 지시 때문에 계약종료가 늘었다 해도 그 책임을 질 방법이 있을까. 이미 해고된 사람을 원직복직 시킬 수 있는가. 목숨줄인 밥줄을 끊은 책임을 무엇으로 질 것인가. 더군다나 노동부가 나서서 실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조사할 가망성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해고대란 문제에 대해 보도자료는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며 세 가지 근거를 들어 피해간다. 그런데 그 이유 중 두 가지는 매우 이상하다. 하나는 2년 이상 근속자 중 법 적용대상자만을 파악한 결과이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100만 해고대란설에는 법 적용대상자가 아닌 자들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법 적용 이전에 2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감소한 것이 원인이란다. 그리고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전월대비’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줄었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가끔 “선수끼리 이러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해당 자료가 그러하다. 보도자료에는 빠뜨렸지만 전월대비 대신 전년동월대비 자료를 살펴보면, 2009년 1월부터 6월까지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다만 7월만 감소하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공공기관에서의 기간제 계약종료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공공기관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공공기관에서의 계약종료는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경쟁압박을 받는 민간기업 대신 공공기관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OECD 국가들과 달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부터 사람을 자른다. 심지어 정규직을 기간제로 바꾸고 싶어 한다. 올 초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서 4년이 넘은 정규직 신분인 필자에게 갑자기 2년짜리 고용계약서를 쓰라고 강요하였다. 말문이 막혀 필자의 신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회사의 대표는 “기간제”라고 답하였다. 만약 전 직원이 아무 말 없이 고용계약서를 썼다면 100% 기간제로 이루어진 최초의 공공기관이 탄생할 뻔 했다. 노동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100% 기간제를 꿈꾸는 기업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계약이 끝나면 사람을 자를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나 정규직 전환지원금은 없다는 언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에 동참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 기간제를 만들겠다는 꿈은 그래서 ‘꿈’이겠지만 밥줄이 달려있는 근로자들은 가끔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100%가 아니라 10%라도 그 대상이 자신일 수 있기 때문에.
2017-07-20 | hrights | 조회: 177 | 추천: 0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글을 쓴다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어버렸다. 결혼 전까지 내 일기장이 열 몇 권이었다면 누가 믿을까? 초등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쓸 수 있게 되면서, 방학일기를 몰아 쓰면서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아마도 책 읽은 후의 감상문을 써오라던 숙제도 한몫했지 싶다. 게다가 매월 언니가 사다준 ‘계림문고’의 소년소녀 명작동화 시리즈도 단단히 한몫 했을 터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이 가져다 준 감동과 상상력을 드러내어 남기고 싶었고, 그리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 저녁 어스름이 지면 이집 저집 불러대던 아이들의 이름들...그 이름을 메아리로 남기고 뿔뿔이 흩어지는 동무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 야릇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나도 어김없이 엄마의 부르심에 집으로 끌려가듯 들어가야 했지만... 산이 주던 감동, 들판의 향기, 코스모스의 하늘거림과 그 냄새, 저녁 답의 애잔한 노을, 해거름의 알 듯 모를 듯 했던 쓸쓸함... 하루 동안 접했던 그 모든 감동과 느낌과 활동들을 내 언어가 닿는 한 가능한 표현해내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그 글을 통해 누구와 무엇과 소통하고 싶었을까? 여튼 그렇게 열심히 썼던 일기장이 두툼한 노트로 열 몇 권이 되었다. 그러나 소위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글은 점점 더 멀어지고,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 성명서나 기자회견문 종류로 한정되어 버리고, 사고마저도 그 틀에 갇혀 버리면서, 자연과 동무/사람이 주는 감동을 예전처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편이, 불안과 강박증을 가진 감동 불감 증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물을 흘러보아 넘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일상의 감각이 무디어질 때, 일상은 매너리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일상이 새로운 것이 될 때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같은 일상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을 때 일상은 항상 변화무쌍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일상을 색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하게 하는 힘을 글을 씀으로써 회복할 수 있는 듯하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버스와 전철과 마을버스를 교대로 타야 하는 나지만, 버스 운전기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보호박스 같은 곳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월요일이었다. 아마도 여기 이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곰곰이 일상을 두리번거렸었나 보다. 버스기사에 대한 폭행이 많았다는 뉴스를 언젠가 본 것은 같아 곧바로 추리를 해본다. 아마도 버스승객들의 폭행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가 보다. 그럼에도 왠지 안쓰러웠다. 물론 운전 내내 좌석을 떠나기는 힘들지만, 보호대라는 경계로 승객들과 단절된 기사는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까?,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의 안전은 안전인가? 속박인가? 뭐 이런... 그러다가 얼마 전 대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떠올랐다. 다세대 주택의 복도나 계단도 주민들의 허가 없이 들어오면 불법침입이 된다는... 물론 단서는 안전과 범죄 예방의 효과라는 것. 이제는 지인의 집이 다세대 주택이면, 지인이 집에 있음을 확인하고 가거나,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 공동복도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뉴스를 보면서 순간 ‘뭐 이런 0같은..?’ 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올라야 했다. 그런저런 경계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날 아침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사랑이 결혼을 하면 전쟁이 되는 레퍼토리... 아이가 생기면 더 강해지는 전쟁, 그 안에는 여전히 여자와 남자는 다르고, 아이는 여자의 몫이고, 돈 적게 버는 일/여성운동은 소일거리 이거나 취미이거나 이기적인 활동이라는 사고의 경계가 도사리고 있다. 그 경계로 인해 소통의 단절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따라서 단절은 지속된다는 결혼한 여성 활동가라면 한번은 경험했을 법한 그 뻔한 레퍼토리가 오늘 아침, 십 수 년 전의 내 경험과 꼭 같은 것에, 그 반복에 진저리치게 만들었었다. 내 딸은 달라질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며칠 전 여성단체들이 모여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광안리를 지척에 두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 ‘토론은 무슨 토론?’, '이런 장소에서 정책을 논의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등등... 들썩이는 엉덩이와 궁시렁대는 입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진행되자 모두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이라니. 뭐 모든 시민사회운동영역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일고 있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성운동영역도 마찬가지이고 그 대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위 대중, 여성들과의 소통의 방향과 방법,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자세와 방법, 정권으로부터의 위기 대처방법, 그리고 여성운동들/단체들 및 제 시민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여성운동 안에서의 경계와 단절을 허물고 새로운 연대를 통해 힘을 집결해보자는 것이다. 여성운동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다름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다르게 접근하면서 그 안에서의 경계들이 만들어져 왔었다. 그리고 그 경계는 허물지 못할 공고한 벽으로 굳어 단절을 유래하기도 했다. 소통의 거부와 소통할 방식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진 벽들이었다. 이제 그 벽을 새로이 허물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허물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벽을 허물기를 원하는가? 왜 허물려고 하고 허물어야 하는가? 가 먼저 질문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단일한 대오를 만들고 대중들이 수용할 적절한 이슈를 선택하면 그것이 곧 연대가 되고, 광풍이 되어 이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사진출처 - 한겨레 갑자기 일터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던 동료이자 친구와의 갈등이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 이 정도는 니가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기억하는 너랑 다를까? 배신감 드네..’ 이런 것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에서 출발했음이 보인다. ‘적어도 친구라면..’ 혹은 ‘여성운동 한다면..’ 이런 자기기대에 기반한 전제들이 실망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만이 옳다는 닫힌 사고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좋아는 하지만 다름을 안다. 그리고 가끔 그 다름이 불편하기는 하여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 뭐 너니까!’, ‘흠, 나는 아닌데... 너는 그럴 수도 있겠지..’ 혹은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나도 그도 쉽게 된 것은 아니라 본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만남이 오면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도 못한다. 그러나 한계 속에서나마 갈등을 그나마 극복하게 한 것은 갈등을 숨기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한 수많은 부딪힘, 자기성찰 이런 것들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버스기사의 보호부스, 공용주택 복도와 계단의 외부인 차단, 남편과 아내의 소통의 벽, 그리고 여성운동들 안의 차이, 그로인한 경계들... 둘러보면 우린 너무 외롭다. 경계(boundary)는 곧 그 경계만큼 행동하게 하며 그 경계를 중심으로 각각의 단절이 발생하게 된다. 차이로서 경계는 필요하며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경계는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만 유용하다. 경계가 벽이 될 때 차이는 곧 단절이 된다. 사람간의 단절은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보게 하지 못한다. 사물이나 객관화 시킨 대상이 된다. 기사와 승객의 단절은 그 사이에 기사와 승객의 책임과 권한의 다툼만이 존재한다. 오늘아침 기사의 기분이 어땠는지? 승객은 어땠는지? 같은 맥락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도 각각의 역할과 의무와 권리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외롭고 외톨이이고 항상 경계하는 존재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계를 허물지 않되 단절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연대하고 또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경계를 인정하는 것, 경계를 넘되 내 것으로 남의 것을 채우려 하지 말 것, 혹은 그 반대. 경계란 언제나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등이 아닐까. 연대는 그래서 경계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계를 보고 인정한다는 것은 단일한 관점을 갖기를 바라는 것을 포기할 때, 역지사지를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을 때, 나나 너나 스스로 말하게 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왜,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같음이 발견될 것임으로. 경계심을 유발하는 사회에서 경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위험사회를 인정하는 꼴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절을 위한 경계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경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경계는 이미 그 안에 소통과 교류와 성숙을 포함하고 있다. 경계가 성숙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개인적 조직적 성찰과 논의/소통이 또 필요하다. 때문에 그것은 삶이자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경계를 성찰하는 삶은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란 그래서 하나의 언어로 정의되는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 방식 등 과정에 관한 것이다. 여성주의는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 다 똑같으니 제발 남도 좀 생각하며 살자구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자구요. 그리고 집단으로서 가장 큰 덩어리인 성별경계에서 볼 때, 남성여러분 제발 여성들의 경험과 입장을 생각해 보시라구요. 그리고 다 같이 행복한 게 뭔지 같이 고민해 보자구요.”
2017-07-20 | hrights | 조회: 164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군보안사령부(약칭 보안사)라는 곳이 있었다. 1980년대에 안기부와 함께 공안 사건에서 악명이 드높던 기관이다. 원래 보안사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과 군인들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내의 정보수사기관이지만, 한때는 공공연히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도 했었다. 국정원 진실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보안사라는 기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불법을 저질렀는지 잘 나타나 있다. 수사권한도 없는 기관에서 민간인들을 불법으로 연행해서 수 십 일간 구금하고(불법체포. 감금죄), 잠을 안 재우고, 거꾸로 달아매고, 각목으로 기절할 정도로 구타하는 등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다 해서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내고(특가법상의 독직폭행죄),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으니 안기부 수사관들의 명의를 도용해서 수사서류를 만들기도 했다(공문서 위조죄). 보안사에서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동안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은 수사권도 없는 보안사의 민간인 수사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 보안대 수사관들에게 “이 정도면 기소할 요건이 성립되었다”고 법률검토까지 해 주었다. 보안사가 수사권한도 없이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를 하는 점에 대해서는 “보안대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는지도 잘 몰랐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절대 꾸며낸 말이 아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민간인들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권한을 행사하던 보안사는 1990년대까지도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하게 야당정치인 등 민간인을 사찰하다가, 윤석양이라는 청년의 양심선언에 의해 그 전모가 밝혀지자 다시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명칭도 ‘국군기무사령부’(약칭 기무사)로 바꾸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씨(가운데)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자신의 일상 생활을 몰래 찍은 동영상(오른쪽)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최근 기무사가 다시 민간인 사찰을 재개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민주노동당의 당직자와 가족까지 미행하고 촬영을 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수구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외치더니 드디어 20년 전으로 돌아갔구나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후퇴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틀이 정착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기관이 버젓이 법을 어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1년 만에 이 정부는 온갖 불법이 난무하던 2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버렸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수구언론이나 청와대, 여당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뻔 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냄비근성의 국민들이니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문제는 절대로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될 중대한 사건이다. 87년 국민들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이후에 나름대로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오던 군이 다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간인 사찰에서 시작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간인을 수사하고,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도 “건국 이후 전 공안기관 검거 간첩의 43%를 검거”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그 사건들 중에는 보안사의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기무사의 참을 수 없는 공안본능을 조기에 잠재우지 못한다면,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 속도로 보아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순식간일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미행하고, 나의 사생활이 낱낱이 군 수사기관에 보고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창살이 없다 뿐 그것이 감옥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보안사의 민간인에 대한 고문 수사 이야기를 먼 옛날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90 | 추천: 0
이광조/ CBS PD 뱀 꼬리보다는 닭대가리가 되라.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가끔 듣던 얘기다. 대학에 가서는 ‘데모를 하려면 아예 총학생회장이 되든지 주동자가 되라’는 얘기도 가끔 들었다. 학생회 간부나 이른바 운동지도부가 아니라도 실컷 얻어맞는 건 기본이고 여차하면 고문까지 당하는 터라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조언을 하지 않았지만 나름 세상이치를 좀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 중에는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뭘 하든 남들의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라!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이 조언 속에 참 많은 함의가 담겨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무섭게 다가오는 게 있으니 그건 ‘어느 쪽이든 권력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였다. 이런 제기랄. 권력에 환장했나? 20대 때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하지만 그 말 속에 켜켜이 담겨 있는 경험과 역사를 조금씩 체감하면서 때론 열패감에 때론 분노에 휩싸이곤 한다. 왜? 그 때 그 어른들의 충고를 새겨듣지 않아서? 언론사라는 곳에 있다 보니 우리사회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을 직접 보기도 하고 그들의 얘기를 자주 접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이른바 정치엘리트(?)가 충원되는 경로를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뱀 꼬리보다는 닭대가리가 되라’는 말이 왜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사회의 처세술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절감할 때가 종종 있다. 이와 관련해 우선 가장 흔히 목격하는 사례는 대통령 선거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이른바 캠프라는 것이 꾸려진다. 선거운동을 하는데 캠프가 없을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 선거캠프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 가치관과 정책에 공감해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대선 캠프라는 곳이 취업 창구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를 돕던 참모들이 후보가 당선된 이후 보좌진으로 일하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어느 사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취업 창구라고 말하는 건 국정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참모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저런 떡고물을 생각하며 캠프에 이력서를 들이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된 뒤 그들의 전문성이나 가치관, 목표의식과는 관계없이 높은 연봉과 영향력이 보장되는 자리로 취업이 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이런 낙하산이 얼마나 될까? 세 보진 않았지만 너무 많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방문진 신임이사로 선임된 이사들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몇 차례 이런 과정을 겪다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선거를 통한 취업이라는 관행이 굳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은 이른바 지식인들이다. 교수, 기자,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등.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캠프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면 누구는 국회로 가고 누구는 청와대로 가고 누구는 공기업 이사와 감사로 가고... 대선 후보 캠프라는 곳이 이렇게 취업 창구가 되다보니 정책이나 가치관 따위는 별 문제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먹고 살려고 직장 구하는데 까짓것 정책이니 가치관이야 뭐 대수겠는가. 취직시켜주고 인정해주고 돈 많이 주면 그만이다. 반대로 취직 제대로 안 시켜주고 똑똑한 나를 제대로 대접 안 해주면? 볼 거 뭐 있나, 안녕이지. 하여 김대중 후보 캠프에 얼쩡거리던 사람이 ‘친북좌파’니 어쩌니 하면서 반 김대중 투사가 되기도 하고 노무현 후보 캠프에 취업원서 넣었던 사람이 ‘잃어버린 10년’이니 어쩌니 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참여해 투사가 되기도 한다. 거 참.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주군이 최고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칼만 차지 않았지 이들은 사무라이들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찾아 권력의 주변을 떠도는 사무라이들. 문제는 이런 사무라이들의 눈에는 주군만이 보일 뿐 정작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세금을 내는 국민들은 안중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능력은? 뭐, 주군에게 충성하고 반대세력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면 충분한 것 같다. 뭐 또 사회라는 게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거지 나 하나쯤 어떻게 한다고 조직이 안돌아가고 세상이 망하고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과거에 뱉었던 말들? 세월이 가면서 생각도 변하고 그런 거지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이라고 이런 사무라이들이 없었을까마는 요즘은 아닌 게 아니라 좀 걱정스럽다. 왜냐고? 단순히 취직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너무나 전투적이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도 이런 사무라이로 의심되는 몇몇 이사들이 입성했다. 이들은 ‘왜곡, 편파방송을 일삼아 온 문화방송을 바로잡겠다’는 굳센 결의를 다지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래, 문화방송이라고 왜 문제가 없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서 고쳐야겠지. 그런데 왜, 당신들이 ‘왜곡, 편파방송’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는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관련 보도에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문화방송이 언론 신뢰도 1위를 차지했을까? 국민들이 왜곡, 편파 방송에 세뇌가 되어서? 칼이든 펜이든 입이든 마구 휘두르면 화를 부르게 되어 있다. ‘왜곡, 편파방송’이라는 당신들의 진단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대한민국 방송 산업과 언론에 대한 당신들의 고민과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제발 그것부터 냉정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74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21 기자 “기자 사회의 낭만이 사라졌어.” 초년 시절인 1998년 무렵, 인사동 한 술집에서 선배 기자가 말했다. 그가 다니는 신문사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웠다. 술파는 것과 아무 관련 없는 주류 신문, 뭘 고쳐 바로 잡는 것과는 더구나 관계없는 보수 신문, 하물며 정중동의 미덕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서 툭하면 노골적으로 고함치는 조중동 등이 그의 머리 위에 붙어 다니는 꼬리표였다. 그것은 때로 높은 사람들을 굽실거리게 하는 후광이었고, 때로 낮은 사람들로부터 밉살받는 낙인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낙인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언론사가 서로 싸우는 일의 피곤함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했다. 소속사 상관없이 기자들끼리 뭉쳤다 했다. 그가 기억하는 낭만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부처 출입 기자들이 일제히 ‘당꼬’(담합)한다. “오늘은 조용하네요. 기사꺼리 없습니다. 청장 간담회가 있는데, 특별한 일 있으면 다시 보고하죠.” 소속사 상관없이 모든 기자들의 아침 보고 내용이 똑같다. 오전 11시, 청장이 기자실로 내려온다. 특별한 내용이 있을리 없다. 브리핑하라고 부른 자리가 아닌 것을 청장도 알고 기자도 알고, 심지어 신문사 데스크들도 짐작하고 있다. 청장은 휘하 국장 몇몇을 데리고 기자들과 함께 북한산 계곡에 개고기 먹으러 간다. 폭탄주 몇 잔 돌았고, 계곡에 발도 담갔고, 아랫도리 뜨끈해지는 고기도 먹었으니, 이제 화투장을 펼친다. 어쩐 일인지 국장들이 자꾸 돈을 잃는다. 앞에서 자꾸 쌍피를 푼다. 훗날 개평을 줄 지언정 노름판에서 딴 돈, 사양하는 법 없다. 오늘 처음 고와 스톱의 차이를 익힌 기자들조차 어쩜 자꾸만 돈을 딴다. 그러다 언쟁도 한다. 판돈과는 아무 상관없는 주제다. “김 기자님, 평소에 좋게 봤는데, 지난번 그 기사는 너무 하셨어요.” “아니 박 국장, 김 기자 기사가 뭐 어때서. 내 비록 김 기자한테 물먹고 우리 회사에 가선 열나게 쪼였지만, 기자라면 당연히 그 정도 지르는 맛이 있어야지.” “에이, 이 기자, 기분 좋은 날, 왜 목소리 높이고 그래. 자자, 술이나 마시자.” “아니지,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말이야. 밥 좀 얻어먹는다고 이런 수모를 왜 당해야 하나 말이야.” 이 순간, 기자는 하나다. 서로 배려하고 추켜세우고 존중한다. 왜? 우리는 무슨 신문 기자, 무슨 방송 기자가 아니라, 그냥 기자니까. 우리는 기자라니까. 저들은 공무원이고…. 소속 매체의 꼬리표가 사라지고, 오직 기자 개인의 자격으로 서로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판돈까지 따오는 이런 종류의 ‘낭만’이 가능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나, 배신자가 나오면 안 된다. 아침 보고 때 딴 소리 하는 기자가 있으면 안 된다. 개고기 먹을 때 삼계탕 먹겠다고 샛길로 빠지는 기자가 있으면 안 된다. 둘. 공무원 가운데 내부 제보자가 나오면 안 된다. 기자들이 술 먹고 놀았다고 다른 언론사에 알리는 간 큰 공무원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간이 크려면 스스로 청렴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그런 이가 드물었다. 셋, 북한산을 등반하다 그 낭만의 자리를 목격하고 휴대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시민들이 나오면 안 된다. 물론 예전에는 그러고 싶어도 휴대폰이 없어 곤란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낭만이 사라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소수의 사이비 기자들을 제외하면 이렇게 흐물텅하게 먹고 노는 술자리는 사라졌다. 기자들도 많이 나아졌고, 공무원들도 예전과는 다르다. 그런데, 기자 사회의 낭만이 사라진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다. 1998년, 인사동에서 들었던 선배 기자의 토로에는 다른 맥락이 있었다. 그는 전혀 다른 세상이 오고 있음을 비감하고 있었다. ‘함께 있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던’ 친구들이 곁을 떠나고, 거리의 광풍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낭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 시장경쟁이었다. 시장경쟁은 음습한 담합의 낭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자 개인의 영토를 뺏고, 그 땅에 뿌려진 연대의 씨앗을 고사시켰다. 나쁜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언론계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망하는 신문사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자를 제쳐야 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중앙일보 기자가, 한겨레 기자와 경향신문 기자가, 술자리에서 상사의 흉을 보고 소속사의 구태를 토로하며 어깨동무하는 일이 사라졌다. 조직이 사활을 건 경쟁을 하면, 구성원 개인의 입지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 기사 내보내면 신문사가 망해. 이 신문사 망하면 너는 어디 가서 기자질 할 거야?” 자본의 얼굴을 한 데스크의 압박 앞에서 ‘기자’는 무너지고 ‘월급쟁이’가 자랐다. 회사가 주는 월급 받아 사는 게 무슨 죄악이겠는가.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겠다는 데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그러나 그런 월급쟁이 언론인이 많아질수록 시민들은 불행해진다.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집단이다. 언론은 시민사회를 ‘대의’한다. 권력자들에겐 권력이 있고 부자들에겐 돈이 있으니, 힘없는 서민들에게 ‘말’을 돌려주어 권력과 돈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누구도 그들을 선출하진 않았다. 그들에게 그런 권능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오직 자청했다. 언론의 정당성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완성된다. 시민이 직접 제어할 통로가 마땅치 않다. 따라서, 시민의 정의를 대변하지 않고 권력과 돈 가진 자들을 대변하는 언론이 많아지면, 결국엔 나라가 망한다. ‘공익적 개입’이 거의 유일한 통로다. 투표로 언론 권력을 선출할 방도는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언론의 토양 자체가 사라진다. 그래서 공익 기금, 공적 부조 등의 형식을 빌어 정부는 언론을 도울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이 적절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말과 글을 시민들에게 전하도록 도울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가 그들의 공장이고 은행이고 시장이며 군사기지인 거대 제국이 어찌하여 공장은 사라지고 은행은 망하고 시장은 위축되는데 제국의 군사기지만 여전한 한국의 ‘모범’이 될 수 있는지를, 나는 미국 시민권을 따기 전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대부분은 그래서 여러 기금을 만들어 작은 언론사를 배려하고 돕는다.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농사꾼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다. 야당 의원들과 시민들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역 앞에서 열린 ‘언론악법 원천무효 국민선언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미디어법이 통과 됐던가? 그렇다는 이도 있고, 아니라는 이도 있다. 시민 전체가 기억의 혼란에 빠져드는 미증유의 사태 앞에서 만의 하나, 미디어법이 직권상정과 대리투표와 날치기의 권능으로 의회를 통과했다고 치자. 그것은 언론 다양성이 아니라 시장 경쟁을 북돋는 법안이다. 다양한 채널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사는 몇몇 곳만 살아남을 것이다. ‘다양한 기자’는 확실히 사라질 것이다. 채널의 다양성과 언론의 다양성은 별 상관이 없다. 시장 경쟁 자체가 ‘다원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것은 독점 또는 과점을 향하는 경로에 불과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그토록 모범으로 떠받드는 미국이 그 미래다. 미국에는 수많은 방송 채널과 수많은 신문이 있다. 그런데 그 90%가 6대 거대 미디어 기업 소유다. 자본가, 금융 전문직, 행정관료, 연애·스포츠 스타 등에 관심이 많은 언론사들이다. 언론기업을 경영할 자유는 있겠지만,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이미 결론이 나온 상태다. 미국은 독점 미디어 기업의 나라다. 언론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거대 미디어 기업에 저항하는 언론사들이 제법 버텨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희망 섞인 관측이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그런 ‘저항’ 언론사조차 살아남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 상업 콘텐츠 강화, 거대 자본 유치 등의 노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도·경영·기술·제작 등 언론의 모든 분야 종사자들은 거대 미디어 기업의 여러 자회사들에서 단기계약, 파견근로 등의 형태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목숨은 파리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거울 것이다. 사주, 광고주, 주주, 데스크의 손가락질 하나에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기자’라는 소명의식 따위, 그런 기자들을 엮는 연대의식 따위, 낭만에 밥 말아먹는 소싯적 이야기가 돼 버릴 것이다. 그래도 나는 생뚱맞고 얄궂게도 ‘낭만’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가 꿈꾸었던 기자에 대하여 생각한다. 기자는 격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문학과 정치에 대한 동경이 이 꿈 뒤에 숨어 있다. 소설가, 정치가가 되려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는 (문학의) 창작과 (정치의) 소통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 한다. 동시에 자유로운 실존을 지키려 한다. 조직의 억압과 구속을 최소화하면서 나만의 영토를 가꿔 두루 인정받으려는 꿈이다. 사주·광고주·주주·데스크 등에 휘둘리며 시키는 대로 쓰는 기자란, 애시당초 그런 꿈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런 기자들이 많아지면, 언론 다양성이 지켜진다. 그런 기자들의 자리가 사라지면, 언론 다양성은 멸종할 것이다. 지금,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MBC> 등은 치욕스런 통폐합의 미래 앞에 서 있다. 조중동은 국내 대기업, 초국적 미디어 기업 등을 끌어들여 방송사를 만들려 한다. 잘만 하면 다른 종편 채널이나 보도전문 채널 등을 통폐합할 것이다. 어차피 이 나라의 광고주는 3~5개 정도의 거대 미디어 기업을 후원할 만큼만 넉넉하다. 딱 그만큼만 살아남을 것이다. 광고 시장을 장악하면, 여윳돈으로 신문과 인터넷과 시사주간지 시장을 유린할 것이다. <한겨레> 등에서 일 해온, ‘실력은 있으나 너무 깐깐하지 않은’ 기자들을 높은 연봉으로 유혹할 것이며, 앙꼬를 다 내주고 겨우 버티는 매체가 있다 한들 쭉정이로 만들 것이다. 그런 매체들을 플랫폼 삼았던 독립 PD, 프리랜서 작가, 시민 기자, 저항 지식인 등은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영상과 글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할 것이며, 그러다 이메일 압수당하고 블로그 폐쇄당한 끝에 감옥에 갈 것이다. 지금, 여기서, 즉각적인 반대가 필요하다.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언론인들의 투쟁은 그래서 두말 필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즉각적인 구제도 필요하다. 15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사는 기자들이 있다. 여유 인력이 없어 탐사보도는 꿈도 꾸지 못하는 기자들이 있다. 격무에 시달리다 마흔 줄에 심근경색이 와도 병원 치료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 기자들이 있다. 각 언론사마다 ‘고립적으로’ 후원회원을 모으고 선의의 기부를 받아도 닥쳐올 언론사 통폐합에 속수무책인 기자들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소속 매체의 경계를 넘어 기자들끼리 어깨동무하고 서로를 추켜세우는 낭만이 필요하다. 그런 낭만이 가능하려면 뜻있는 언론인을 돕는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 따로 흩어져 각자 살 길을 도모하지 말고, 더 많은 기자, 더 좋은 기자를 시민사회가 품어 안을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선의의 기업과 시민의 돈을 모아 ‘참언론재단’을 만들자. 공부도 하고, 서로 노하우도 주고받고, 취재비도 지원하고, 어려우면 경제적 도움도 주자. 6개월 탐사 취재 아이템에 2천만 원쯤 주자. 기사를 써서 인터넷 매체에 싣고, 신문에 연재하고, 책으로도 내고, 나중에 다큐로 만들어 극장에서도 상영하자. 기자 개인도 살고, 언론도 사는 길이다. 이런 일을 각 언론사는 도모할 수 없지만, 재단이라면 가능하다. 개별 언론사가 얼마 안 되는 인력으로 인터넷도 하고 방송도 하고 신문도 내면서 살아남으려 용쓰지 말고, 시민사회에 산재한 ‘광범위한 기자’들을 끌어안고 활용하자. 자유로운 영혼의 기자들이 더 많은 시민을 더 오래 만나 더 좋은 기사를 쓰도록 돕자. 그리고 그들이 매체 장벽을 넘어 두루 기여할 수 있도록 돕자. 어쩌면 좋은 언론사의 체질을 강화하는 선의의 매체 합병이 참언론재단과 같은 공익·시민적 조직에 의해 이뤄질 수도 있다. 거대 자본으로 규모를 키우는 앞에서 고립된 뉴스룸 운영으로 살아남길 꿈꾸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말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언론사를 시민에게 개방하자. 고립적인 채용, 고립적인 임금 테이블, 고립적인 뉴스 플랫폼을 헐어 버리자. 뜻이 있고 능력이 있는 ‘자유 기자’들에게 물적 토대를 제공하자. 그 시민들이 곧 뜻있는 언론사의 노동과 자본과 시장이 되게 하자.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야 계속 기업가·특목고 졸업자·미국 유학생·연예스타 따위의 기사를 쓰라고 내버려 두고, ‘우리’는 노동자·실업고 졸업자·국내 박사·대학로 연극인 등에게 관심을 쏟자. 물론 그 가운데는 새로운 시선으로 기업가·특목고·연예스타의 가치를 발견하는 ‘진짜 보수’ 성향의 기자들도 있을 것이다. 무슨 상관인가. 그런 이들까지 두루 품어 안는 것까지가 진정한 언론의 다양성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시민사회의 돈을 모으자. 신문사 하나, 방송사 하나 세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시민의 언론 전체를 살찌우는데 쓰자. 그러고도 누가 살아남는지 진짜 한번 겨뤄 보자. 그러지 않고서야, 기자 사회의 낭만은 정말이지 사라질 것이다. 멸종할 것이다. 지금 죽음 앞에 서 있는 것은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인이며 시민의 자유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48 | 추천: 0
유정배/ 사단법인 강원살림 상임이사 춘천 - 서울 민자 고속도로가 뚫리고 난 뒤 기대와 절망이 교차되고 있는 때에 그 녀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사업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그동안 나이트클럽, 골프연습장, 결혼식장, 바다이야기 게임장등을 운영하면서 돈을 꽤 모았고, 그래서 제법 숱한 아우들을 거느리며 동네에서 행세하는 유지가 되어있다. “나, 요즘 골프장 때문에 먹고 살잖아 !” 나는 그가 경춘가도 어디쯤에다 18홀 짜리 골프장을 열었다는 이야기로 듣고 겉으로는 반색하면서도 속으로는 ‘어휴!, 또 나랑은 엉뚱한 길로 가는 구나’며 투덜대고 있는데, 그 녀석은 엉뚱하게 “야, 00리 골프장 반대 주민들, 우리가 풀고 길 열어 줬어”면서 한방 먹이며 내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는 그의 아우들이 어깨에 힘 잔뜩 주고 꾸역꾸역 콩국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는 영화 ‘똥파리’의 상운처럼 속으로는 여린 가슴을 지닌 양아치라기보다 세상 물정에 밝고 그래서 동네 역관계도 적절히 탈 줄 아는 ‘합리적’인 초기 자본가에 가깝다. 그런 그도 춘천에서는 제법 주먹깨나 휘두르고 행세한다지만 한낱 외지자본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춘천 - 서울 고속도로가 열리면 누구에게 좋지?”라는 내 궁금증을 민자 고속도로를 따라 밀려들어 오는 돈방석에 올라타고 있는 중학교 동창 놈이 풀어 준 셈 이다. 하긴 앞으로 민자 고속도로 주변 춘천시 지역에만 골프장이 16개가 들어설 계획이라고 하니 이제 춘천시민 누구나 멋진 그린에서 골프를 치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늘 대학시절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인 강촌이 꽤 오래전부터 강변마다 들어선 펜션으로 흉측해졌지만 민자 고속도로 개통으로 땅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고 기업형 대규모 펜션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며 지역신문이 장황한 기대감을 늘어놓는다. 서울-춘천간 민자고속도로 개통식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리고 아예 “춘천 서울 고속도 개통... 부동산 시장 들썩”이라는 제목을 1면에 달고, 춘천 땅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값이 올라가려면 어찌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친절한 조언까지 부쳐놓았다. 민자 고속도로 개통 덕에 바야흐로 춘천 시민들이 개발 시기 강남부자들처럼 거액을 횡재 할 날이 눈앞에 다가온 모양이다. 또 골프장, 리조트에 널린 일자리 탓에 지역경제가 쾅쾅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그것뿐인가? 분명히 수도권과 불과 38분 거리일 뿐인 춘천에 매력을 느낀 각종 기업들이 쇄도 할 것이므로 춘천시민들의 숙원인 인구 50만 돌파도 현실이 될 것이다. 수도권의 이웃인 춘천시민들은 ‘용역’으로 취직하고, 부동산 수수료 챙기며 골프장, 리조트에서 ‘고객님’의 만족을 위해 서비스하면서 대한민국 최첨단 자본주의가 주는 안락함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동해안 가는 가장 빠른 길 ‘서울 춘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제 ‘개나리 꽃피는 마을’ 춘천은 수도권의 ‘이웃’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77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1. ‘소통’이 화두다. 경향신문에서는 국내 지식인 100명을 대상으로 소통인물 설문을 실시해 이를 중요하게 다뤘다.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최근 시국을 매개로 한 전국적인 시민운동 연대조직을 추진하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연대와 소통의 일방성도 시국에 대한 정세인식과 더불어 스스로 성찰해야 할 일로 전제해 두고 있다.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표상화된 소통의 문제가 피아의 가림 없이 한국사회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중요한 척도로 얘기되는 듯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정권의 일방주의 행보가 우리사회에 소통의 중요성을 널리 퍼뜨린 셈이다. 소통이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다. 종종 소통하면 ‘대화’를 떠올린다. 대화는 소통의 전제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소통의 효과를 낼 수는 없다. 대화가 설득이나 전달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를 소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박원순은 이명박 대통령이 재래시장 떡볶이집을 찾았다고 이를 소통이라 할 수 없다며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재래시장 구멍가게 상인에게 구태의연 상술 운운하며 인터넷 직판장 만들어 승부 걸라는 이명박 소통법은 소통을 왜곡할 뿐이다. 소통은 생태계와도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복잡한 것으로 느껴진다. 문제는 이 복잡한 ‘얽힘’과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복잡한 얽힘의 관계에서 소통은 언제나 ‘일치’보다는 다름과 때로는 갈등마저 동반하는데, 이명박식 소통법은 이를 불필요한 것으로 묘사할 뿐이다. 조용히 지나가면 문제 없을 텐데, 결과만 좋으면 모두 해결되고 소통은 소용없는 ‘과정’일뿐인데, 괜스레 소통한답시고 이것저것 다툼거리만 만든다는 식이다. 더구나 권력의 입장에서 이러한 소통법은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 입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소통의 복잡성은 그 자체로 생태계와도 같은 질서를 담보한다는 점을 파악한다면, 그 질서는 공존을 향한 관계의 산물인데 최소한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나 기득권을 지속시키려는 것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 이미 세상은 공존을 미래의 키워드로 핵심 짓고 있다. 적어도 이를 모르는 CEO라면, 실패한 경영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은 다른 것이다(More is Different)"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앤더슨(P.W. Anderson)의 이 말은 소통의 전제로서 다름을 인정하라는 사회학적 언사를 연상케 한다. 한편으로 이 말은, 이른바 창발(생산성)은 이미 ‘부분과 전체의 다른 특성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미 소통은 좋은 정치, 좋은 경제, 좋은 사회를 위해 필히 적응해야 할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야말로 소통은 ‘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질서’인 셈인데, 이명박 정권은 정치사회의 주인노릇에만 골몰하기보다, 그 스스로가 사회정치의 담지자로서 자신을 위치 짓고 이를 잘하기 위한 소통의 원리부터 제대로 살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해 상인들과 어묵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사진기자단   2. 제주에서도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식 소통법은 이 곳 남단의 섬, 제주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얼마 전 국내 언론들은 요즘 벌어지는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을 두고 이대통령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언급을 드러냈다고 전하였다. 서울 코엑스 투자박람회장에서 제주도지사가 보이지 않는다며 던진 말이라고 하는데, 속내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무슨 사정으로 제주 주민들이 도지사 소환에 나섰는지, 분위기가 어떤지 아랑곳없이 대통령 신분으로 개입하려는 자체다. 들어보기도 전에 대통령으로서 단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교롭게도 제주도지사도 결국은 소통의 문제로 광역지자체장 최초로 소환대상에 오르는 오명에 처했다. 제주도민들은 이명박 정권의 그 ‘산성’을 일찍이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어찌나 비슷하던지, 의료민영화 하겠다는 것이나 기업프렌드리 운운하는 것 등이 영리병원 도입, 자유시장모델을 만들겠다는 식의 제주도지사의 행보와 꼭 닮았다. 더욱이 이를 추진하는 방식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비판여론에 부딪히니까 안하겠다고 했다가, 또 다시 은근슬쩍, 혹은 포기한적 없다고 또 추진한다. 국면전환을 위해 이미지 정치와 언론장악,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매우 닮아 있다. 그랬던 제주도지사가 소환정국에 와서는 지금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민박하고 있다. 주민소환의 도화선이 된 해군기지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뒤늦은 민심행보에 나선 것이다. 성찰적 전향은커녕 아무런 해법도 갖추지 않은 채 무조건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재래시장에 나선 자체로 민심교감이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법과도 참 닮아 있다. 소환문제를 갈등으로 몰고 가면서 자신은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믿는 도민은 많지 않다. 이미 진정성 없음이 탄로난지 오래기 때문이다. 국민소환제도는 아직 없지만, 제주도지사 소환을 위한 서명과정에서는 “다음은 이명박”을 주문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이 사실들을 근거로, 한 발짝 앞서 ‘명박산성’을 겪은 대가로 벌어지는 제주도민들의 소환운동을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정국에서 깊이 헤아려볼 일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80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2009년 5월 현재 공식적인 실업자는 938천명이지만 실망실업자나 취직준비까지를 포함할 경우 그 수치는 3~4배 정도 커진다. 정부가 1년 내내 강조했던 비정규입법에 따른 해고대란은 확인되지 않지만 경제위기로 인해 직장을 잃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또한 2009년 4월 현재 공식실업자 중 실업급여를 받는 비중은 17.7%이며 실망실업자나 취업준비자 등 취업애로층의 경우 10.4% 만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아도 그것으로 생계가 유지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대다수 취업자들이 실직 이후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내몰리는 것이다. 하지만 숫자를 통해서는 이들 실업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이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 가족 생계부양자일 경우 그 심각함은 더 커지며 실직한 부모를 가진 어린아이는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부분 이들의 삶을 알지 못한다.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이렇게 말할 듯싶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해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새로 사귄 친구의 목소리나 눈빛, 취미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친구가 몇 살인지 아버지의 수입이 얼마인지, 몇 평 아파트에서 사는지 만을 묻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고 믿지요. 그래서 인생의 정말 중요한 일을 알지 못해요” 그래도 어린왕자는 작고 여린 목소리로 어른들을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내내 70만 고용대란 혹은 100만 고용대란을 운운하며 2년 기간 연장 등 숫자에 매달린 탓에, 경제위기의 충격에 신음하는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지도 근본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도 못한 것은 너그럽게 대하기 어렵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왜 숫자에만 미친 듯이 매달려 정작 삶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일까. 몇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 어린왕자가 방문한 다섯 번째 별에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다. 가로등을 켜고 끄라는 명령을 받은 이 사람은 별의 회전이 점점 빨라져서 일분에 한 번씩 회전하자, 명령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서 잠도 자지 않고 일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끈다. 어린 왕자는 그래도 그동안 만난 어른 중 가장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명령에 따르고 직무에 헌신하는 행위를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부른다. 고문기술자도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고 전쟁에서 민간인을 쏜 군인도 발포 명령을 충실히 따른 다는 점에서, 악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 속에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숫자에만 매달린 것이 자신의 직무에 헌신한 결과라면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은 괴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일 지도 모른다. 어린왕자가 다섯 번째 별에서 만난 가로등지기 사진 출처 - 네이버 숫자에 매달리는 어른 중의 하나인 필자는 더 이상 어린왕자의 여행길에 동반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으로 책을 덮는다. 다만 어른들이 마음을 바꾼다면 숫자세기 외에도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면피를 해보고자 한다. 실직과 비정규의 덫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원책을 제안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첫째,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실직자 권리 찾기’ 이다. 고용보험법 13조에 따르면 고용보험을 내지 않은 사람이라도 180일 이상을 주 15시간 이상 근로하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실직한 것이 아니라면 고용보험을 청구할 수 있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사람의 54%가 고용보험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것을 고려하면 실업급여 수급율을 대폭 올리고 실직에 따른 위험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모두가 실직자 권리 찾기를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보험료 감면이다. 실직자 권리를 찾으려면 의무도 감당해야 한다. 그동안 내지 않은 보험료를 회사와 근로자들이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만원 미만의 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사회 보험료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한시적으로라도 사회보험료 납부를 면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고용보험 대상도 아니고 기초생활보장의 대상도 아닌,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800만 정도 된다. 이들을 위해 제2의 사회적 안정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실업부조일 수도 있고 일본과 같이 취업 및 생활지원 기금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 시급하게 강구되어야 한다. 넷째, 임금 및 근로조건, 복리후생에서의 차별을 원천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천명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민 세금을 실직한 사람과 비정규직을 위해 사용해도 좋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낸 돈을 남을 위해 쓴다는 결정이 어디 쉬운가. 어린왕자는 자신이 떠나온 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 꽃을 제대로 사랑하기에는 아직 어렸지요”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충분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내가 사는 한국이 숫자놀음만이 아닌, 타인에 대한 사랑과 이해로 충만한 나라이기를 바란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97 | 추천: 0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 정부 들어 정부정책에 비판하는 공직자나 과거정부의 공직자들에 대한 징계와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방송의 이사직을 수행했던 모 교수에 이어서 한국방송 사장이 해직되었고, 임기가 보장된 정부기관의 장까지 억지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압박과 뒷조사를 통해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추태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비교적 한적하리라고 예상되었던 문화예술계의 기관장들도 해직과 사직의 대열에 섰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을 사임한 시인 황지우는 교수직까지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다. 어디 이뿐인가! 불온서적 지정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법무관을 파면하였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빌미가 된 세무조사를 비판한 공무원을 파면하고 심지어 국세청 공무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검찰에 고발하였다. 문화방송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하여 검찰은 마침내 거국적 소송을 시작하였다. 명예훼손소송은 본질적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사실상 스스로 입증하는 사적 소송에 가까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검찰은 열심히 입증하려고 준비하였던 것 같다. 만약 소송에서 검찰이 패소한다면 정운천씨 개인이 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 전체가 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기소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 대변인의 입을 보니 이 소송이 거국적 프로젝트라고 인식되었다. 지난해에 검찰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교사의 관여를 문제 삼았던 희한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올해에는 교과부가 시국선언을 주도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와 처벌을 공언하고 있다. 전부 위키피디아에 등록될만한 새로운 사건들이다. 심지어 희망제작소의 사업들에 대한 기업의 지원마저도 정부의 압박에 의해 중단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일그러진 남북관계는 계산서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물론 주변에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데도 시국선언을 하며 설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여부에 대하여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과는 점심 메뉴에 대한 의견 이외에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필자의 기준은 단순하다.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에 있다는 이유로 7년 전의 이메일을 뒤져 혐의점을 찾거나 사적인 이메일마저도 정략적 소송을 위한 선전도구로 활용하는 검찰이 법을 말하는 한, 이 나라에는 법도 없으며, 민주주의도 없다는 점이다. 정치적 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파면을 일삼는 권력, 정치적 반대자를 숙청하기 위하여 해를 넘겨 죄목을 만들어내는 검찰이 있는 한, 민주주의의 죽음을 말해야 할 때이다. MBC 김은희 작가가 지난 6월19일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적 이메일을 공개했다”며 검찰 수사팀을 ‘비밀침해죄’와 ‘직무유기죄’로 고소했다. 19일 오후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들이 검찰청 앞에서는 고소장 접수에 앞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스 현 정부가 벌이는 일은 히틀러가 집권한 후에 실시하였던 공무원 숙청과 같다. 유대인, 사회민주주의자, 민주주의자들은 공직에서 해직되었다. 진중권씨가 현 정부 들어 발호하는 문화 권력의 지휘자를 나치시대의 선전상 괴벨스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나치시대에 비유하는 것이 꼭 적절한 것은 아니다. 일단 국민이 권력의 놀라운 능력을 대략 믿어야 나치적 구축이 가능한데, 집권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국민이 그들의 영혼에 깃든 달랑 삽 한 자루를 투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언론을 장악해서 선동과 압박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지지를 여전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사회에서 끊임없이 확산되고 만연한 빈곤이다. 독재와 파시즘은 중산층의 기회주의와 빈곤층의 증오감에 의존하여 왔다. 사회 민주주의적 정책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며 서민층을 대변하는 민주정당이 탄탄하게 뿌리박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 계층과 예비역 노병들은 극우세력의 폭민이 되었다는 독일의 역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객관적 상황은 거기에서 멀지 않다. 한반도에서의 긴장고조와 더불어 사악한 동원체제가 확립될 수도 있다. 좋은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나쁜 입장도 존중받는다. 좋은 시대란 좋은 인간들이 집권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쁜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좋은 입장도 박해를 받는다. 왜냐하면 나쁜 자들이 집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각하게 나쁜 시대에 있다. 우선은 힘껏 평화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현해보자. 그리고 기억하기로 하자. 반대의 힘으로 다음 3년을 기다리자. 그리고 이번에는 용서와 화해 대신에, 바른 말을 하는 자를 무단히 파면하고 박해한 자들이 감당해야 할 것들을 세밀하게 설계하자.
2017-07-20 | hrights | 조회: 173 | 추천: 0
나, 역사가 맞아?〔1〕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다음은 ‘그날’ 이후 지난 3주일 동안 역사가 (맞아?) A교수가 경험, 관찰, 청취한 기록을 생각(안)나는 대로 제멋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1. 대학원 면접심사를 위해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학교 도착 전 아내가 늦잠에서 덜 깬 경황없는 목소리로 전직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면접직전 문학전공 동료교수가 “세계사적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는가?”라고 역사전공 A교수에게 물었다.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넓고도 깊은 지식이 매우 부족한 A교수는 “한국현대사에서 전례 없는 매우 독특한 사건이 방금 발생했음은 분명하다”고 눙쳤다. 면접 후에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뉴스를 확인한 그는 약속을 위해 시내로 향했다.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선배가 관여하는 대안언론단체를 돕기 위한 일일주점에 참석하는 길이다. 을지로 골뱅이 맥주 집을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반겨주었다. 교사, 회사원, 학원 선생, 언론종사자 등 직업은 다르지만 지난 30년 동안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심심하거나 할 때면 가끔 만나던 선배/친구들이다. 지금은 아무도 문학전문업소(?)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문학하는 마음으로’ 사회를 살아가려는 50대 초반의 ‘문청’들인 셈이다. 1년 후배인 A교수가 이들과 즐겨 어울리는 까닭은 젊은 시절 선배들이 한 때 간직했던 ‘새파랗고 과격한 생각’들이 자식들 군대 보낼 나이까지도 도대체 늙을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철없고 이름도 없이 일상적으로 살아남은 7080 ‘운동권’의 잔챙이들에 대한 존경과 추억이랄까. 화제는 자연스럽게 자살사건으로 모아졌고, 아니나 다를까, “역사적인 차원에서 향후 정국을 어떻게 전망하는가?”라는 물음이 A교수에게 날아왔다. 자신이 유럽사상사 전공자라고 주장하는 그는 “한국현대사 문제는 한국사 전공자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며 비켜갔다. 한심한 꼴뚜기 역사가라는 계면쩍은 마음에 A교수는 어제의 숙취를 외상처럼 달아놓고 자리를 먼저 떴다. 사실 어제 ‘이 정권 들어 졸지에 모두가 불법단체가 되어 버렸다’고 하소연하는 시민단체관계자들과 늦은 밤까지 다소 과하게 마셨다. 정치가 7080 복고풍으로 되돌아 간 것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쏘맥 폭탄주’를 거푸 마셨는데, 밤새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귀가하자마자 아내―전직 대통령의 서울 검찰청 출두장면을 멀리서 지켰던 여자다―는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역사적으로 올바른가?”하고 A교수에게 따졌다. 제기랄, 오늘은 왜 하루 종일 모두가 나를 괴롭힐까. 직업적 역사 선생이 반드시 족집게 정치평론가 노릇을 해야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역사가는 최소한 30년을 뜸 들여서 말하는 스로우 쿠커(slow cooker)라니까!” 관련 자료들이 충분히 공개될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특정사건의 역사적 배경, 원인과 결과, 전개과정과 역사적 교훈 등을 순서대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분석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불 꺼, 오늘은 이만 끝! 전국에서 이명박 정부의 전면적인 국정 기조 쇄신을 요구하는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번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에서 잠시 쉬는데,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갔던 대학동창이 “칭찬하려고 전화했다”고 뜬금없이 안부를 전했다. 조금 전에는 제자, 졸업생과 대학원생으로부터 ‘수고 하셨습니다.’라는 문자를 받고도 어리둥절했던 A교수는 비로소 자신이 ‘서명교수’였음을 깨달았다. ‘현직 대통령은 반성하고 국민과의 소통에 힘써라’는 요지의 교수시국성명서에 이름을 빌려 주었던 것이다. 서명에 동참하는 것만큼 쉽고도 무책임한 일이 없는데, 웬 호들갑. 지난 십여 년 동안 A 교수가 발표했던 수십 편의 논문을 읽고 감동받았다고 연락한 제자들은 한 명도 없었는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후에는 대학원 논문심사 후 심사위원 교수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 저런 심사평의 뒷얘기 끝에, 정치현안이 식후 안주거리로 생략될 수가 없었다. A교수보다 나이 많은 고참 B교수는 “새 정권 출범 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증거를 대봐라”고 정색을 한 뒤, “국민이 합법적으로 선출한 현직 대통령을 흔들어 나라에 무슨 이익이 되는가.”라고 야단쳤다. 이런 엄청난(?) 질문이 제기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가 (맞아?) A교수가 우물쭈물 거리는 동안 젊은 C교수가 끼어들었다. 다른 견해와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끼리의 소통과 상호이해도 매우 중요하므로… 어쩌고저쩌고. 며칠 뒤 이웃 대학에 논문심사를 가서도 A교수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각각 다른 대학에 재직하는 4명의 역사 선생들 중에서 우연히 A교수만이 ‘서명교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으므로 대화는 ‘왜 나는 서명하지 않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D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의 사망이후 전개되는 일종의 ‘애도(哀悼)정국’은 착한 이 나라 국민들이 펼치는 ‘3일간의 효자노릇’이 잉태한 현상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효자 아닌 효자들의 후회와 자기질타는 결국 일상생활의 분주함과 이기심에 파묻힐 것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E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직 대통령의 유서를 텍스트 삼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민족’이나 ‘국가’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를 포스트 모던적 시각으로 해석하면… 저쩌고어쩌고. 두 사람은 지식인들이 ‘나를 따르라!’고 대중을 선동하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냉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름답고 지당한 말씀과 논리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업계’(상아탑)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파악, 진단하고 있을까? 다른 의견의 샘플수집에 골몰하던 차에 마침 A교수 시골친구들의 번개모임이 있었다. 오십 넘어 미술대학원에 진학하고 개인화실을 오픈한 친구를 격려하자는 핑계였다. 중소기업 사장, 국영기업체 간부, 주요 신문사 전문기자 등의 명함을 가진 친구들이 화실 바닥에 앉아 나누는 잡담에도 ‘요즘 사태’는 등장했다. 우선 늙다리 예술가가 “새 정권 들어서 예술지원정책이 엉망이라서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국영기업체 간부는 “나라경제가 잘 되어야 네 작품에 대한 구매력이 높아진다.”고 위로했다. 이에 맞장구치듯, 전문기자는 “서명교수들이 많은 대학(당국)은 여러 가지로 입장이 곤란할 것이므로 앞으로는 이름 빌려주지 마라”고 A교수에게 조언했다. 맞춤법 틀린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교수들에게 자식교육 맡기는 것이 걱정된다는 어느 신문의 허튼 논조가 퍼뜩 떠올랐다. 잘못된 이름(사진)과 통계, 확인되지 않은 풍문과 오보 등에 대한 사과·정정기사를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것을 빛나는 전통처럼 자랑하는 이 땅 (일부!) 주류언론사들의 천박한 발상과 뻔뻔스러운 여론몰이와 더 이상 시비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고 귀하지 않는가. 염려삼아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위 글에 언급된 인물들과 그들의 언행은 3류 역사가 (맞아?) A교수가 주관적이며 선별적으로 (재)배치하고 (재)창조한 것임을 밝힌다. 객관적이며 진실된 공적 기억이라는 간판 아래 지금까지 서술된 거의 대부분 역사가 그랬듯이. (계속)
2017-07-20 | hrights | 조회: 244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