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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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새해는 새로운 것들의 총체입니다. 그래서인지 새해인사는 기대의 말들로 충만합니다. 새해에 건네지는 “복 받으세요”라거나 “부자 되십시오”라거나 “소원성취 하십시오”와 같은 동서고금을 관통해 온 이 덕담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늘 새로움의 기대로 전해집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을 나누어 놓은 것도 인간이고 보면, 이 시간의 흐름 한 묶음으로서 한 해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단절시키고자 하는 어쩌면 욕망의 계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욕망의 시원(始原)은 단절이 곧 새로움이라는 본능 같은 것 때문이겠습니다만, 요즘은 이에 더해 마치 ‘과거는 필요 없어’식의 경향성을 타지 못하면, 문명인이 아닌 듯 천대받습니다. 사람들의 손에서 휴대폰이 바뀌는 압축된 유행은 시간의 구분조차 허락하지 않을 듯 매우 빠르게 진행됩니다. 지나간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으로의 시간의 흐름이 사람들의 미시적 생활관념안에서 시시각각 단절을 일상화해 놓았습니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 관념은 촌스럽기 짝이 없을 따름입니다. 이 단절이 사실은 ‘망각하기 위해 기억’하고, 진보하기 위한 제대로 된 단절을 모색하는 역사작업을 방해합니다. ‘새로운 것’의 ‘조건’을 상실한 탓입니다. 독재로부터의 민주주의, 구태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새로운 것들은 그것에 합당한 조건을 진행시키지 못한 채, 또 다른 독재, 부활한 구태의 뜰채에 의해 물에 뜬 기름처럼 오늘 날 요부룩 소부룩 걸러내어 지는 것입니다. 평화의 섬이라는 제주의 새로움도 ‘평화’에 대한 깊은 담론과 고민을 조건으로 달지 않은 탓에 군기지의 계획 하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제주의 새로운 브랜드도 사실은 단절되지 않은 과거와 생태의 결과인데, 그 조건의 성찰 없이 대형건물과 주차장 같은 이기(利器)의 새로움으로 드러내려 바쁩니다. 봄은 늘 ‘새봄’이고, 새해는 추운 겨울로 시작됩니다. 겨울은 시간이 나뉘는 시점에 걸쳐 있으니 ‘새 겨울’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추운 겨울을 두고 ‘새 겨울’이라고 하기엔 이상합니다. 새로운 것은 따뜻한 데서 출발합니다. 따뜻한 기운이 새로운 것을 창조합니다. 봄이 새로움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그 새로움의 조건입니다. 새해, 새봄, 이 새로운 것들은 돋아나고, 성장하고,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새해에 서로에게 가해지는 덕담의 ‘덕’은 각자 스스로 얻어내는 것에 대한 관심을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덕(德)은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 직(直)과 심(心)을 합친 덕(悳)조에 "밖에서 사람이 바람직하고 안에서 나에게 얻어진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와 실천양식이 바람직하면, 그 안에서 얻어지는 것이 덕(德)입니다. 밖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은 조건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바람직한 행위와 실천양식입니다. 조락(凋落)의 가을, 엄동과 혹한의 겨울의 조건이 있어, 봄의 양식은 새로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가을의 애상보다는 조락한 나무의 곧은 가지와 성장을 봐야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옛 현자들은 겨울 한(寒)데의 곧추 서는 신경이 명민한 각성과 예지를 가다듬기에 제격이라며 스스로 차가운 방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헤아려 서로 도울 줄 아는 세상사의 이치와도 맥이 닿습니다. 그러니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새해 인사는 ‘올해는 더욱 바르게 살자’, ‘바람직한 일들을 더 많이 하세요’와 같은 충언이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이 바로 덕담을 건네는 상대에 대한 좋은 인사로 여겨지기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바쁜 인사말 보다는 상대에 대한 깊은 관심과 눈동자를 지긋이 마주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주는 일을 앞세웠으면 합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5당이 지난 10일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합해 공동대응키로 합의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초등학교 시절,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에 “나라를 지키는 일에 더 힘써주세요”라고 썼다가, 가뜩이나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더 힘쓰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선생님께 핀잔 듣던 생각이 납니다. 그 후로부터는 “수고하세요”와 같은 인사말에 늘 신경이 갑니다. 그러나 수고가 있어야 얻어지는 것이 있으니, 이런 저런 일에 더 마음을 두어 수고하면 행복이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와 같이 얻어짐의 조건을 일깨우는 말이 충언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사가 오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해가 바뀌면, 정부나 기업의 큰 규모의 인사이동이 있곤 합니다. 제주의 경우 음력 정월을 앞두고 ‘신 구간’이라 하여 집을 옮기는 이들이 일제히 이사를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지난 해 말미까지 읽던 책을 새해에 계속 부여잡는 게 뭔가 뒤쳐진 느낌에 새로운 책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1월 1일자 신문은 ‘올해부터 달라지는 것’에 대해 일제히 보도를 합니다. 모두 새로운 것들을 향한 행보입니다. 새로운 것들의 조건은 비단 그 이전과 달라지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들의 조건은 ‘바람직한 변화’이냐 하는 것일 것입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후보, 새로운 정책, 새로운 세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5+4’로 표현되는 이른바 ‘반MB’논의가 언론보도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새로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람직한 변화로서 그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움의 조건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반(反)’이 작용이 아니라, ‘정(正)’의 행보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 아쉬워 기대는 처지가 아니라, 서로 나눌 것을 풍부히 하는 관계로 기대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 스스로 얻고 국민과 나누는 대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47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 연구본부 연구위원 2009년이 끝날 무렵 한 통의 초대장을 받았다. [라 광야,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초대전]. 새해에 접어들어 초대장에 적힌 장소를 찾아 나섰다. 을지로 3가 지하철역 11번 출구에서 서울 중부경찰서쪽으로 길을 걷다보면 오른쪽에 있는 갤러리 M. “총알은 언젠가 바닥이 나겠지만/샤이를 마시는 건 영원하지요./먼데서 온 친구여, 우리 함께/갓 구운 빵과 샤이를 듭시다.” 사진전을 알리는 포스터의 쿠르드인 여성이 말한다. 박노해가 집단학살의 현장을 찾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처음 만난 23년 전부터 지금까지 벗이자 선배로서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개인적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쓸고 닦고 세우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신 앞에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광야의 사람들에게 나는 다만 경외의 마음을 가질 뿐이다”는 시인의 마음이 현장을 찾게 한다. “나는 ‘슬픔의 힘’을 믿는다. 기쁨은 나눠 갖기 어렵지만 슬픔은 함께 나눌 수 있다. 슬픔은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우리 자신을 정화하고 참된 나 자신과 진리에 가 닿게 한다... 슬픔은 흘러야 한다. 나의 슬픔이 너에게로 국경 너머의 슬픔이 나에게로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 그 믿음이 시인을 학살로 인한 슬픔의 강으로 인도한다. 문득 용산 참사 현장이 떠오른 것은 흐르는 슬픔이 필자에게도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출처 - 나눔문화 그래도 한 가지 질문, 왜 시가 아니라 사진인가? “감추어진 그들의 진실을 수없이 기록했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만국공통의 언어인 카메라로 시를 쓰고 필자는 사진 속에서 시를 읽는다. 그러고 보니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8년 10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페르라쉐즈 공동묘지를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이었고 프랑스어를 하는 동행이 있던 탓에 그 전에 알지 못하였던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나치의 압제에 저항하다 죽은 사람들의 묘지명에 단 한 사람의 기업가도 없다는 것 이다. 대부분 노동조합의 조직원인 죽은 자들의 합장 묘비 옆에는 조각이 즐비하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몸, 포승과 쇠사슬에 묶인 손, 절규하는 입. 그 조각들은 인간이 행한 최대의 잔혹상을 언어 아닌 언어로 전달하였다. 라 광야의 눈동자 역시 비슷한 절규와 아픔을 간직하여 그날 밤 필자는 악몽에 시달리다 눈을 떴다. 수년간 필자는 연구자의 눈을 갖고 비정규직과 근로빈곤의 현장을 꽤 많이 돌아다녔다. 어느 때는 쟁의 중이거나 시위중이며, 어느 때는 교섭 중이거나 근로 중인 곳곳에서 다양한 이력과 얼굴의 사람들을 보았다. 돌아와서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복원하며 보고서나 논문을 쓰는 자신과 마주하였다. 그때마다 부딪혔던 질문, 우리 사회에서 연구자란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기륭전자 노동조합 위원장이 20여 일째 단식을 하는 천막에 방문했을 때 조합원 중 한 사람이 “단식으로 힘이 없는 사람을 붙잡고 길게 인터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했지만 위원장은 필자의 조사에 응해주었다. 그러나 돌아올 때 분명 스스로에게 물었다. 저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저 현장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옳을까. 꽤 오래 끌었고 결국 해결하지 못한 KTX 여승무원 노동쟁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보고서의 작성을 위해 이 분들을 연구원에 모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의외로 담담하게 질문에 답하는 그 분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꼬박 하루 동안 글을 쓰지 못하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은 그녀의 강연에서 “모든 사람 스스로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게 하라, 그리고 진리 그 자체는 신에게 맡겨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다. 라 광야, 박노해의 초대전은 다시 한 번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카메라로 시를 쓴 시인과 그 사진 속에서 시를 읽은 연구자, 그들은 누구인가? 불평등과 부정의로 고통 받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누구인가? 시는, 연구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질문 자체,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이 곧 대답 일까. 빛으로 쓴 시는 빛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혹시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 햇살에 하얗게 웃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뜰 한구석의 작은 나무, 여린 잎사귀에 눈이 부신 적이 있는가. 모두가 빛이 되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는가. 슬픔과 절망이 꿈을 꾸게 하는 힘이라면 빛으로 쓴 시가 빚는 사회에서는 꿈을 없애지 못한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57 | 추천: 0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새해 첫 출근하는 날, 전날부터 내린 눈이 세상을 덮고, 그리고도 사락사락 눈이 내렸지. 그 좋다던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지하를 제외하곤, 모두 뒤엉켜 버렸어. 5분이면 되던 기다림이 30분을 넘고, 15분이면 되던 운행시간이 30분을 훌쩍 넘기고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해 결국 차에서 내려 뚜벅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도 길은 눈 천지였지. 그게 어제였으니 오늘은 좀 나아지려나? 어릴 적, 눈이 오면 세상은 온통 동화 속이었지.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날 때까지 눈싸움인지, 눈 치움인지를 하던 시절에 눈은 기쁨 그 자체였어. 그 때도 눈이 오면 차는 달릴 염을 못 내었었지. 신작로라 불리던 넓은 길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누구의 발길도 허락지 않았었다. 단지, 눈으로 인해 괜스레 일찍 일어난 나와 동무들의 발길과 웃음과 고함과 장난질만 허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눈은 눈 그 자체로 환희이고 기쁨이었지. 언젠가 신작로가 더 넓어지고 평탄해지면서, 그리고 눈들이 적게 오기 시작하면서 눈이 오면 온 뒤의 그 처절함이 먼저 상상이 되어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어. 차바퀴에 치이거나 떠밀려 진흙과 한 덩이가 되어 눈인지, 흙인지 구분이 안 되던 그 형상이, 도저히 눈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져서 눈이 오면, 그 자체로 기쁨이기보다는 그 뒤의 처참함이 먼저 떠올라 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강박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눈은 생활의 불편함과 대중교통시스템의 한계를 생각하게 하는 기제가 되어버렸네. 눈은 아무 변화도 가치도 없는데 눈을 바라보는 나는 변덕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눈은 참 이뻐. 여전히 세상을 동화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기도 하고. 그리고 새해와 눈은 참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다 덮어버리고 새롭게 세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니 말이야. 덮는다고 덮어질까 만은... 지난한 해, 참 어이상실이란 말이 어찌 잘 어울릴까 싶을 만큼 어이없는 일들이 많았다. 기대는 했으나 기대이상으로 치달은 사건들과 시간들에 감사하다 해야 할까? 돌아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너희들을 생각하니 슬퍼진다. 작년에 애가 고등학교에 가고, 그나마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이 있어 위로가 되었는데 그나마 없어졌다지? 아이는 혼자 공부하다 지쳐 드디어 학원을 가보겠다고 했다지? 알아보니 과목당 몇 십 만원이 넘는다지? 어째야하니? 한 달 겨우 끊어줬다고 했나? 그 다음은 어쩌냐? 그나마 지금까지 혼자 잘 해 왔던 애에게 감사해야할까? 그리고 아이 둘을 어찌어찌, 그것도 명문대를 보내긴 했는데, 큰 넘은 군대로 가고, 작은 넘은 일요일까지 알바를 한다니 그 애 인생도 한심하다며 웃음으로 때우던 너의 피곤한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소위 ‘two job’을 가진 너를 보면서, 월요일이면 금요일보다 더 피곤하고 지친 너를 보면서 내가 해 줄 것이라곤 “몸은 좀 어때?”라는 립 서비스만 할 수 있는 나로선, “가난이 정말 대물림이 되는 거 같아서, 애들을 보면 미안하고 안쓰러워서..”라며 입을 닫던 네 곁에서 나는 그나마 조금 나은 내 현실에 안도하고만 있었다. 미래로 장학금인지 뭔지 있었는데 그것마저 수급자가 될 것인지, 장학생이 될 것인지 사이에서 초조해 해야만 한다는 기사가 곧 너였었지. 제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제도를 만들고자 했던 나였음에도 요즘은 그 제도가 우리 삶과 얼마나 직결되어 있는지 너희들을 보면서 실감하고 있다. 그 복지라는 제도 말이야. 너희들 곁에서 같이 술 마시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나는, 술값을 계산할 때도 각각 나누어 내는 것에 너희들을 대신할 수도 없는 나는, 아니 나도 불투명한 현실과 미래를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게야. 우리 어째야 하니? 그나마 그런 절망스런 기분과 생각이 오래가지 않도록 바쁜 우리 현실과 두뇌에 감사도 하고 순간순간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살 수 있는 너희들의 긍정적 힘에 감탄도 한다. 예전에 “빚을 조금 지면 빚이 짐인데, 너무 많으면 아무렇지도 않아.”라던 ‘돈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해탈’을 한 듯 하던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돈을 넘어선 것인지 돈에 눌려 자포자기 한 건지는 모르나, 여튼 그 선배의 일상은 해맑았으니, 가진 넘들 돈 좀 빌려 쓰고 갚지 않는 객기도 필요치 않나 싶다. 신 새벽에, 그것도 새해 벽두에 시답잖은 주절거림을 용서해라. 보이지 않는다고 없지 않더라는 얘기를 언젠가 떠들었듯이 눈에 덮였다고 없어진 것이 아닌 듯이, 단지 눈을 가지고 장난질 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처럼, 어이상실로 뒤덮인 이 상황을 가지고 놀자. 그런데 어떻게 놀 수 있을지는 아직도 감감하긴 하다. 그래도 그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게야. 이제는 어떤 대상이던 싸우기보다 놀고 즐기면서 그 대상을 넘을 수 있을 때도 되었지 싶다. 왜냐면 이제 우리 벌써 반백년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장난질할 수 있는 장난감이나 궁리해보자.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새해에는... 이런 표현 정말 진부하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할 말이 이것밖에 없으니 어쩌겠니? ^^; 새해에는, 2010년에는 눈 덮인 한적한 마을처럼 마음속에 결코 버릴 수 없는 동화하나 만들고, 그 동화를 지키기 위한 놀이 감 하나 만들어 그렇게 저렇게 살아보자.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눈이 되면 어떻겠니? 허물도, 슬픔도 서로 덮어주어 정결함만 남도록 하는 그런 눈 같은 존재들이 되자.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오는 너희들아.
2017-07-20 | hrights | 조회: 138 | 추천: 0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이곳 네덜란드에서는 연말분위기가 조금 일찍 시작된다. 어린이와 뱃사람의 보호성인인 신터클라스(Sinterklass, 영어로는 Nicholas) 축일 이브 날인 12월 5일에 선물과 축복을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일찍이 네덜란드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뉴 암스테르담(현재의 뉴욕)을 건설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신터클라스 명절이 미국으로 건너가 (귤이 대서양을 건너 탱자가 되듯이) 12월 24일에 활약하는 산타클로스로 재탄생 되었다는 학설도 그럴 듯하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전통의 재창조 혹은 원조 찾기'가 아니라, 신터클라스 축제일에 네덜란드인들은 선물과 함께 자신이 직접 쓴 시를 교환하면서 함께 읽는 오랜 전통을 즐긴다는 사실이다. 이날만큼은 학교와 직장은 물론 언론매체와 국회 등지에서도 야유와 풍자가 넘치는 '시인들의 왕국(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정이다)'이 되는 셈이다. 지난 넉 달 동안의 짧은 체류 경험에 비추면, 교수정년퇴임식에서도 송사와 답사가 시 읽기로 진행될 정도로 시 쓰기와 낭송이 네덜란드에서는 어느 정도 일상생활화된 것처럼 보인다. 내가 거주하는 라이덴(Leiden)에서는 1980년부터 도시건물의 여백에 세계 40여개 국가의 시를 그 나라 언어(원어)로 장식하는 문화운동을 시민단체가 주관하여 전개해 왔다. 13년에 걸쳐 총 101편의 시로 도시를 시인의 마을로 색칠하는 행사는 전체 시를 담은 책자 《벽 위에 쓴 시(Dicht op de Muur: Gedichten in Liden, 1992)》의 간행으로 완성되었다. '대안 이미지'(Tegen-Beeld, Counter-Image)라는 주관예술단체의 명성에 어울리도록, 미운 현실에 대항하는 질서를 꿈꾸며 억압에 맞서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헌신하는 내용을 주제로 하는 세계적인 시들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청교도들이 일시 피난, 정착했던 '망명객의 도시 = 라이덴'이라는 오래된 명성과 잘 어울리는 도시 프로젝트인 셈이다. 필자가 책자를 (네덜란드어를 모르니까) 대충 살펴보니까 아쉽게도 한국시인의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라이덴(Leiden)에서는 1980년부터 도시건물의 여백에 세계 40여개 국가의 시를 그 나라 언어(원어)로 장식하는 문화운동을 시민단체가 주관하여 전개해 왔다. 사진 출처 - 필자 '더치페이'라는 신조어를 잉태할 정도로 셈이 정확하고 실용적인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시는 물과 기름같이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어쩌면 시를 쓰고 읽는 행위는 천박한 현실과 낯 가름하고 더 좋은 내일을 다짐하는 일상적인 업무와 역사적 과제의 일종이 아닐까. 이런 명분을 담고, 네덜란드인들의 문학 사랑을 흉내 내며, 나의 문학청년 시절의 결기를 되살려, 오늘은 독자 여러분들과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올해를 환송하고자 한다. 멀리서 기원하오니, 부디 겨울의 남은 추위를 잘 이기시고 새해에는 행운과 기쁨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나날이 되옵소서. 교생실습 Ⅰ 아마도 일천구백팔십일년 봄이었겠지(요). 내가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교생실습을 나간 곳은 서울시내에서 축구와 주먹으로 손꼽히는 어느 공고 야간 졸업반 영문도 모르고 다닌다는 영문학과 퇴폐총각 샘 터벅머리 머시마들과 함께 공부한 것은 보이스 비 엠비셔스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이 따위 머리 쥐나는 영어문법과 독해가 아니라 컨퓨젼 윌 비 마이 에피타프 침묵이 비명을 삼켜버리고 힘 가진 놈이 제 법대로 아름답다면 지식은 한갓 라면이나 끊이면 보람이겠지 너무나도 비장(悲壯)한 음조와 노랫말을 담은 외국산 팝송 '묘비명' 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Ⅱ 미안하지만, 그때는 일천구백팔십일년 내가 걸음마 할 때부터 종일 대통령이었던 농민의 아들 막걸리 대신 시바스 리걸로 잔이 넘쳐 돌아가시고 남쪽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고립되어 꽃잎처럼 스러졌네. 세계가 서울로 마구 모였다는 팔팔 올림픽은 그 다음 이야기 사우스 코리아 전직 대통령이 황혼이 깃들기 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은 아직 먼 훗날 컨퓨젼 윌 비 마이 에피타프 알고 있는 자 4월의 나무처럼 분연히 일어서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아직) 잡혀있네 우리가 견뎠던 이 땅의 혼란과 시련이 7080 운동가요 후렴처럼 반복된다면 음탕하게 늙어버린 중년 주름에 각인된 나의 부끄러운 교생실습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어머니. (육문청^^*)
2017-07-20 | hrights | 조회: 187 | 추천: 0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이곳 네덜란드에서는 연말분위기가 조금 일찍 시작된다. 어린이와 뱃사람의 보호성인인 신터클라스(Sinterklass, 영어로는 Nicholas) 축일 이브 날인 12월 5일에 선물과 축복을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일찍이 네덜란드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뉴 암스테르담(현재의 뉴욕)을 건설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신터클라스 명절이 미국으로 건너가 (귤이 대서양을 건너 탱자가 되듯이) 12월 24일에 활약하는 산타클로스로 재탄생 되었다는 학설도 그럴 듯하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전통의 재창조 혹은 원조 찾기'가 아니라, 신터클라스 축제일에 네덜란드인들은 선물과 함께 자신이 직접 쓴 시를 교환하면서 함께 읽는 오랜 전통을 즐긴다는 사실이다. 이날만큼은 학교와 직장은 물론 언론매체와 국회 등지에서도 야유와 풍자가 넘치는 '시인들의 왕국(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정이다)'이 되는 셈이다. 지난 넉 달 동안의 짧은 체류 경험에 비추면, 교수정년퇴임식에서도 송사와 답사가 시 읽기로 진행될 정도로 시 쓰기와 낭송이 네덜란드에서는 어느 정도 일상생활화된 것처럼 보인다. 내가 거주하는 라이덴(Leiden)에서는 1980년부터 도시건물의 여백에 세계 40여개 국가의 시를 그 나라 언어(원어)로 장식하는 문화운동을 시민단체가 주관하여 전개해 왔다. 13년에 걸쳐 총 101편의 시로 도시를 시인의 마을로 색칠하는 행사는 전체 시를 담은 책자 《벽 위에 쓴 시(Dicht op de Muur: Gedichten in Liden, 1992)》의 간행으로 완성되었다. '대안 이미지'(Tegen-Beeld, Counter-Image)라는 주관예술단체의 명성에 어울리도록, 미운 현실에 대항하는 질서를 꿈꾸며 억압에 맞서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헌신하는 내용을 주제로 하는 세계적인 시들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청교도들이 일시 피난, 정착했던 '망명객의 도시 = 라이덴'이라는 오래된 명성과 잘 어울리는 도시 프로젝트인 셈이다. 필자가 책자를 (네덜란드어를 모르니까) 대충 살펴보니까 아쉽게도 한국시인의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라이덴(Leiden)에서는 1980년부터 도시건물의 여백에 세계 40여개 국가의 시를 그 나라 언어(원어)로 장식하는 문화운동을 시민단체가 주관하여 전개해 왔다. 사진 출처 - 필자 '더치페이'라는 신조어를 잉태할 정도로 셈이 정확하고 실용적인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시는 물과 기름같이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어쩌면 시를 쓰고 읽는 행위는 천박한 현실과 낯 가름하고 더 좋은 내일을 다짐하는 일상적인 업무와 역사적 과제의 일종이 아닐까. 이런 명분을 담고, 네덜란드인들의 문학 사랑을 흉내 내며, 나의 문학청년 시절의 결기를 되살려, 오늘은 독자 여러분들과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올해를 환송하고자 한다. 멀리서 기원하오니, 부디 겨울의 남은 추위를 잘 이기시고 새해에는 행운과 기쁨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나날이 되옵소서. 교생실습 Ⅰ 아마도 일천구백팔십일년 봄이었겠지(요). 내가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교생실습을 나간 곳은 서울시내에서 축구와 주먹으로 손꼽히는 어느 공고 야간 졸업반 영문도 모르고 다닌다는 영문학과 퇴폐총각 샘 터벅머리 머시마들과 함께 공부한 것은 보이스 비 엠비셔스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이 따위 머리 쥐나는 영어문법과 독해가 아니라 컨퓨젼 윌 비 마이 에피타프 침묵이 비명을 삼켜버리고 힘 가진 놈이 제 법대로 아름답다면 지식은 한갓 라면이나 끊이면 보람이겠지 너무나도 비장(悲壯)한 음조와 노랫말을 담은 외국산 팝송 '묘비명' 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Ⅱ 미안하지만, 그때는 일천구백팔십일년 내가 걸음마 할 때부터 종일 대통령이었던 농민의 아들 막걸리 대신 시바스 리걸로 잔이 넘쳐 돌아가시고 남쪽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고립되어 꽃잎처럼 스러졌네. 세계가 서울로 마구 모였다는 팔팔 올림픽은 그 다음 이야기 사우스 코리아 전직 대통령이 황혼이 깃들기 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은 아직 먼 훗날 컨퓨젼 윌 비 마이 에피타프 알고 있는 자 4월의 나무처럼 분연히 일어서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아직) 잡혀있네 우리가 견뎠던 이 땅의 혼란과 시련이 7080 운동가요 후렴처럼 반복된다면 음탕하게 늙어버린 중년 주름에 각인된 나의 부끄러운 교생실습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어머니. (육문청^^*)
2017-07-20 | hrights | 조회: 223 | 추천: 0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달 유엔 권리위원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12번째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저소득취약계층에 대한 사회권 보장을 제대로 실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 즈음에 프레시안이나 경향신문 등 많은 매체들이 우리나라를 '고성장, 저사회권국가'로 규정하였다. 당연히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사회권 정책의 실상을 설명할 때에 좀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점을 제대로 밝히면 지난 대선에서 이른바 개혁정권이 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저절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1월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부가 유엔 권리위 보고서를 수용하도록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부의 불평등에 대해 다양한 측정도구가 있지만, 오늘날에도 대체로 지니계수로 불평등의 실상을 해명한다. 지니계수는 인구누적분과 소득누적분을 축으로 하여 불평등을 평가하는데, 지니계수가 이론상 0이면 완전평등사회이고, 1이면 완전불평등사회가 된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0이나 1은 불가능한 수치이므로 대체로 0.2에 가까우면 매우 평등한 사회로, 0.3을 넘으면 불평등한 사회로, 0.4를 넘으면 매우 불평등한 사회로 규정한다. 지니계수는 작성기관마다 편차가 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최근 발행된 국회예산정책처 현안분석자료 48호에 따르면, 이른바 IMF 직전인 1995년의 지니계수를 0.268로, 2008년의 지니계수를 0.325로 추산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통계치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해석하는데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빈곤문제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빈곤과 소득불평등은 지난 개혁정부가 마땅히 시정했어야함에도 시정하지 못하여 현 정부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태가 이렇기 때문에 현 정부는 오히려 인기영합적인 빈곤정책을 펼쳐 여러 가지로 혹세무민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구인회의 <한국의 소득불평등과 빈곤(서울대출판부, 2006>은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국의 산업화시기로부터 고도성장기, 90년대 그리고 국제통화기금체제 이후의 사정을 반영하여 부의 불평등 분배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 통계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첫째로, 60년대 이후 한국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하였고, 산업화 이후 지니계수는 점차 낮아졌으며 1995년을 전후하여 저점에 이르러 비교적 평등한 사회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IMF 구제금융 이후에 지니계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빈곤층이 폭증하여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이 다루고 있지 않는 최근 몇 년 간의 상황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으로부터 얻은 시사점은 고도성장기, 완전고용, 개발의 논리는 한국사회에서 97년을 고비로 끝났다는 것이며, 물론 완전고용 시대에는 국가가 재분배정책을 실시하지 않아도 빈곤층이 취업활동을 통해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IMF 체제와 같이 절대적 빈곤층이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일자리가 증발하는 고실업 구조 하에서는 빈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대책이 필요하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빈곤층에게 빈곤탈출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IMF와 동시에 집권한 개혁정부는 소득격차를 완화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 재분배정책에 의한 소득개선정도는 시장지니계수와 세후지니계수(가처분지니계수)의 편차를 통해 알 수 있는데, 개혁정부하에서도 그 편차가 미미하였다. 실제로 소득재분배가 절실히 필요하였는데 개혁정부는 도리어 신자유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사태를 어지럽힌 끝에 정권을 상실한 것이다. 물론 소득불평등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아니고, 현 정부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어쨌든 성장과 완전고용의 신화(박정희의 신화)에 입각한 경쟁적 사회의 모델은 끝났으므로 사회문화적 안전망을 갖춘 좋은 사회로 이행해야 한다는 요구는 현 정부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사회권규약 제2조에 따르면, 당사국은 가용자원을 최대로 활용하여 사회권을 점진적으로 실현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용산참사에 보듯이 사회적 약자의 생활터전을 최대한 약탈하고, 콘크리트 자본가들을 위하여 가용자원을 최대한으로 한강에 투기하고 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71 | 추천: 0
홍미정/ 건국대학교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유럽 연합 의장국인 스웨덴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계획안을 유럽 연합에 제시해 놓은 상태이고, 이번 주에 브뤼셀에서 개최되는 유럽 연합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 계획안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계획안을 즉각 거부하였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예루살렘은 분리될 수 없으며, 항상 이스라엘의 수도로 존재할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의 입장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고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이후 계속돼온 양 측의 기존 입장들을 재확인 한 것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창설 계획안에 대하여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인 마흐디 압둘 하디(PASSIA, Mahdi Abdul Hadi)는 필자에게 “스웨덴의 계획안은 UN 결의에 입각하여 움직여왔던 유럽 연합의 기존입장에서 나온 것이며,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유대화 정책에 시의 적절하게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는 하루가 다르게 예루살렘을 독점적인 유대인의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유대화 정책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유럽인들이 믿고 있는 국제사회의 도리와도 충돌되는 것이다. 스웨덴의 계획안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예루살렘 유대화 정책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마흐디 압둘 하디(PASSIA, Mahdi Abdul Hadi)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사진 출처 - 필자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 이후 현재까지 동예루살렘을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으나, 알아크사 모스크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인들 정체성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2000년 9월 28일에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야당지도자가 1천명의 이스라엘 경찰을 이끌고 알 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하면서 2차 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촉발되었다. 이와 같이 알 아크사 모스크와 동예루살렘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치에서 예민한 쟁점이며 핵심적인 상징이 되어왔다. 2009년 12월 2일 이스라엘은 셰이크 아크리마 사브리(Sheikh Ekrima Sabri)에게 6개월 동안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알 아크사 모스크의 출입을 금지했다. 셰이크 사브리는 현재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설교자이며, 이슬람 고등 위원회의장이다. 셰이크 사브리는 1994년 10월부터 2006년 6월까지 팔레스타인 종교 최고지도자(the Grand Mufti)를 역임하였다. 이번 셰이크 사브리에 대한 알 아크사 모스크 출입 금지 명령은 그가 일주일 동안 메카 순례를 다녀온 날인 지난주 2일에 발생했다. 사브리의 딸인 루바바(Lubaba Sabri)는 필자에게 이 사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스크 출입 금지 조치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이다. 이스라엘은 나의 아버지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알 아크사 모스크에 모이도록 고무시킨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나의 아버지는 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하려는 행위들을 막고 모스크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필생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알 아크사 모스크 주변에 굴착기를 동원한 굴 파기 등을 비롯한 모스크 파괴 행위를 중단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해야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셰이크 사브리는 “우리는 인간에 관한 논의로부터 출발해야한다. 세계인들, 특히 유럽인들은 이스라엘의 인권 위반 행위들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한다. 오늘날 예루살렘 문제는 예루살렘 주권을 대상으로 한 유대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교 분쟁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설교하고 있는 셰이크 아크리마 사브리. 셰이크 사브리는 1994년 10월부터 2006년 6월까지 팔레스타인 종교 최고지도자(the Grand Mufti)를 역임하였다. 사진 출처 - 필자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유대교도와 무슬림들 간의 종교 이념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며, 역사적으로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과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촉발된 이후,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스라엘은 알 아크사 모스크 주변뿐만 아니라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예수의 묘가 있는 장소로 알려진 성묘 교회(the Church of Holy Sepulcher) 주변도 2009년 11월 23일부터 굴착 공사를 시작하였다. 요르단 정부는 2009년 12월 3일 이 공사에 대하여 이스라엘 측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였다. 올 해 7월 이후 현재까지 동예루살렘 세이크 자흐라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계속해서 강제 퇴거당하고,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퇴거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주택을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11월 한 달 동안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택 14채를 파괴하고 170채에 대한 파괴 명령을 내린 반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은 계속됨으로써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알 아크사 모스크 주변의 굴착 현장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마흐디 압둘 하디(Mahdi Abdul Hadi) 소장은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의 새로운 장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에서 운영 중인 팔레스타인 기구들을 더 많이 폐쇄시키고,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상당히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페인은 곧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계획안을 유럽 연합에 제출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정치에서 유럽 연합 지도자들은 개별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국가를 건설할 권리는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피력해 왔다. 따라서 유럽 연합이 어떤 결의를 한다할지라도, 그 결의가 예루살렘 유대화 정책에 제동을 거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78 | 추천: 0
이광조/ CBS PD 며칠 전, 그러니까 2009년 11월 27일은 우리 정치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날이 될 것 같다. 이 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마음에 있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반성의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나가겠단다. 대통령의 이런 고백에 국민들은 참 당혹스럽다. 우선 다른 걸 다 떠나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선거법 위반이다, 사기다, 갖가지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건 이번 사태가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조차 뿌리째 흔들어버렸다는데 있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흩어져버리는 걸 수도 없이 목격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애초부터 생각이 달랐는데 당선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고백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그렇다면 2년 전 대통령 선거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와 무게를 지니는가? 늦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백에 반성이 따르고 거짓말에 속은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따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의 ‘후회와 반성’ 속에는 그런 의지가 전혀 깃들어 있지 않다. 대통령의 입장은 ‘비록 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내 생각이 옳기 때문에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미안하다. 이해해라.’ 그런데 세종시 문제만 그런 걸까. 혹시 4대강 사업은? 모두가 아는 대로 4대강 사업의 전신은 한반도 대운하였다. 뜨거운 논란 속에 반대여론이 비등하고 사업계획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은 임기 중에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대신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은 이름만 바꾼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라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될 즈음 우리는 다시 한 번 대통령의 고백을 접할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사실은 4대강 사업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사를 마쳤는데, 이제 물길만 이으면 된다. 국민들 다수가 반대했지만 내 생각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이해해라.’ 이런 상황에서 명색이 주권자인 우리는 대통령의 선의만 믿고 그의 거짓말을 이해하고 따라야 할 것인가? 서울 방향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안내판을 마주쳤다. 대통령의 뜻대로 세종시 원안 추진이 백지화된다면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의 표지판은 물론 새로 만들어진 지도와 각종 데이터도 모두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랏일 치고는 너무 경박스럽지 않은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법안을 만들고 그 법률에 의거해 추진되던 일이 하루아침에 백지화될 처지에 놓여 있다. 국민들의 뜻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우리사회의 정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한국적 민주주의? 이명박식 민주주의? BJR 민주주의?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이든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가 참으로 초라해 보인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31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겨울, 추위의 시작이다. 한라산에는 예년 보다 일찍 많은 눈이 내렸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원주, 부안, 전주 등지를 다녀왔다.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다는 서울의 성미산 마을도 가보게 되었다. 부안에서 만난 어느 분은 부안과 제주가 참 비슷한 곳이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과거 시대에 부안은 역사적으로 유배지이면서, 민란의 땅이기도 하단다. 제주와 유사하다. 오늘 날에도 새만금, 핵폐기장 문제로 주민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이 또한 군사기지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제주와 닮아 있다. 부안으로 가는 길에 지나친 군산은 어느 덧 군사도시화 되는 징조를 보았다.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지역’은 오늘 날에도 국가의 필요에 부름 받는 동원구조로 머물러 있다. 그 일방주의의 결과로 돌아오는 상처는 두고두고 ‘지역’이 감내해야 할 몫이 된다. 원주에서 만난 분은 ‘원주의 꿈’에 대해 들려주었다. 주민이든, 시민활동가이든, 진보정당원이든 모두가 협동네트워크의 일원이면, 이걸 우선시 하는 분위기다. 이들의 횡적 네트워크는 오직 ‘원주’를 매개로 연결돼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삶을 구가한다. 이야기를 들려준 그 분은, 서울에서는 결코 희망을 만들 수 없다고 하였다. 언젠가 TV에서 오키나와 주민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닌,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답한다고 했다. 부안 사람들에게는 지리상의 조건이 매개가 돼 ‘독립 의식’ 같은 게 있어왔다고 들었는데, 제주에도 그 역사적 연원을 통해 ‘독립’이야기가 세간에 농담처럼 회자된다. 이 경우들은 ‘지역’의 독자성을 매우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지만, 그 만큼 전통적 삶의 양식과 문화적 조건들의 온전한 완결체로서의 지역의 의미를 일깨운다. 중앙중심 논리가 필연코 내포하는 일방주의에 대한 일종의 방어로서 불거져 나오는 반작용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지역’은 ‘지방’이 아니다. 보편이 관철되는 특수한 ‘부분’으로서만 설명될 수 없는 고유한 맥락이 존재한다. 오늘 날, 지역은 국가를 거치지 않고 세계와 소통하는 독자단위로서 재평가되고 있다. 서울중심의 일극체제가 빚어낸 한국사회의 여러 고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이제 ‘지역’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흐름이 생긴 지 오래다. 그렇지만 아직 그 흐름은 어떤 물길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 공사현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는 이 ‘지역’을 과거보다 더 후퇴된 형태로 바라본다. 이명박 정부에 있어서 ‘지역’은 국가의 번영에 복무하는 일개 경쟁력 단위일 뿐이다. 서울을 ‘세계도시’로의 발전을 촉진토록 하는 주변부 동력에 불과하다. 서울의 인구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의 몇몇 도시들을 주변과 통합해 만드는 덩어리 체제를 국가발전구조로 놓고, 독자적 단위로서의 ‘지역’들을 이른바 광역경제권으로 묶어세움으로써, 국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봉건적 지배구조로 재구조화하려는 의도를 출범초기부터 보여 왔다. 지금 벌어지는 세종시 논란도, ‘행정수도이전’이라는 명제는 실종된 채 ‘세종시 수정’이라는 프레임 속에 끌려 다니고 있을 뿐이다. 의도했던 바일 것이다. 내년에 벌어지는 지방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모호함에서 벗어나 이러한 보다 가치적이고 맥락적인 차원에서 ‘지역’에 대한 논쟁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들이 힘을 합쳐 지역연합의 문제제기를 형성하고, 그것이 다시 지역별 역내 구도로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그래야 분권이든, 녹색성장이든, 심지어 4대강이든 오로지 ‘정부사업, 정부예산 따오기’의 삽질경쟁의 시각으로 지역을 몰가치의 늪으로 치환해 버리는 현존 지자체 권력과 대별되는 구도를 전제할 수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향한 여러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MB체제를 돌파하기 위한 이른바 ‘반MB-한나라당’연대에서부터 진보대연합 논의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도 폭넓다. 진보정당간의 후보단일화 논의도, 이미 정치참여를 선언한 시민사회 진영과 더불어 ‘제3지대 창당’논의로 까지 구체화된다는 소식도 있다. 비판적 지지론이나 독자후보론과 같은 전통적 틀에 얽매임 없이, 현실을 기반으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는 분위기다. 어쨌거나, 최소한 MB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절박함이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를 위해 모든 세력들의 뼈를 깎는 희생과 양보가 있어야 한다”는 최병모 변호사의 주문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한 것일까? 그것은 다시 ‘서울의 움직임’이다. 그것이 ‘2010 연대’이든, ‘희망과 대안’이든, 진보정당 통합론이든, 모두 서울이 시발점이 되고, 서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투어강연식의 지역기획이 있긴 하지만, 하나의 프로그램일뿐더러, 지방선거를 서울발로 얘기하는 것이 맞나 하는 회의가 앞선다. 이런 식의 논의구조라면, 그것이 실재화된다 하더라도, 정작 지역에서는 중앙 회의가 작동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진보정당 정도만 영향을 받을 뿐,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를 새롭게 대변하는 흐름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 비단 내년 선거만이 아니라, 이번을 계기로 진보개혁의 새로운 실체를 형성한다는 관점에서도 그 접근과 경로의 일방성으로 인해 입체적인 전국전략으로 가기는 힘들다고 보여진다. 그 만큼 ‘지역’의 문제의식은 이미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사회운동은 ‘정치’에 대한 욕망이 한껏 성숙해 있다. 욕망이라기보다는 절박함이다.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정치는, 그 영역에 대한 인식을 채 가다듬을 새 없이 중요하고 강력한 수단임을 구체적이고 오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체득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있어서 사회변화는 매우 실질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그것은 훨씬 분명한 목표, 구체적인 접근과 동시에 깊숙이 보고, 길게 가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제주에서 벌어진 주민소환은 ‘토대 없는 정치투쟁’으로부터 뼈저린 변화의 노력으로 거듭나라는 주문을 일반화 시켰다. 그것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지역의 공감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부안, 전주, 원주를 다니며, 그 곳의 사람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한국사회의 그늘이 관통하는 지역의 변화는 한국사회 변화의 내용을 담보한다. 그래서 강준만은 “한국을 지방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지역에서 변화를 준비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중요한 기획이 되어야 한다. 이념과 입장에 따라 나눠지고 합쳐지는 방식이 아니라, 구분된 이념과 입장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자치, 평화, 생태와 같은 가치의 총체로서 ‘지역’안에 진보가 구현되게 하고, 또한 그런 지역들의 네트워트가 서울의 일방주의를 포위하는 형태의 새로운 진보기획이 구상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사회에서 ‘지역’은 그 자체로 진보이기 때문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46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 연구본부 연구위원 한 달쯤 전부터 여의도 직장까지 40분을 걸어서 출근한다. 한강고수부지 억새밭을 지나면 곧바로 KBS까지 이어지는 낙엽길이고 그 중간에 작은 찻집이 있어 잠시 다리쉼을 한다. 진한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버릇처럼 책을 꺼내든다. 시집, 소설책, 인문사회과학 서적. 그날 그날 읽으려고 들고 오는 책이 바뀐다. 몇 주 전 갑작스런 추위에 집을 나서기 전, 서랍을 뒤졌다. 혹시나 하며 장갑을 찾았는데 역시나 없다. 세 켤레든 네 켤레든 장갑을 모두 잃어버려야 겨울이 끝나고, 장갑을 사야지 하면 또 다시 겨울이다. 그래서 이맘때면 장갑을 잃어버리는 털털함을 책망하기 마련이다. 마침 KBS 앞을 지나는데 피켓을 든 사람들이 예닐곱 명 서 있다. 피켓 밑에는 ‘KBS 계약직 지부’라 적혀있고 부당한 해고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문득 피켓을 든 손을 보니 장갑을 끼지 않았다. 해고가 되어 싸우다 보니 겨울일 터 언제 장갑을 준비할 정신이 있으랴마는 찻집에 들어설 때까지 그 손이 뒤꽁무니를 쫓아온다. 공원 양쪽 은행나무 가로수에 그들의 시린 손이 단풍으로 걸린다. 지난 목요일인가. 집을 나서는데 가랑비가 온다. 커다란 우산을 쓴 채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를 흥얼거리며 오는데 KBS 앞이 소란스럽다. 무슨 일인가 멈춰 서서 보니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해고된 사람들이 정문 출입을 시도하고 있다. “비정규직도 사람이다, 일터로 가고 싶다.” 막히면 서서 구호를 외치고 그래도 막히면 또 구호를 외친다. “공영방송 KBS가 부당해고 웬 말이냐!” 비에 젖은 그들의 등만 바라보다 찻집에 들어갔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데, 또 얼마나 비에 젖으려나. 찻집 통유리 너머로 뿌리는 비를 1시간 넘게 바라만 보다 일어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가 지난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그동안 사측과 벌여온 비정규직 문제해결과 고용안전을 위한 교섭 진행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아마 그 때문일 게다. 지난 금요일 토론회에서 도대체 비정규직에게 “연대하다”가 무슨 의미이냐고 묻게 된 것이. 사회에 ‘자리’가 있는 자, 예를 들어 정규직은 자리를 지키거나 나누거나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연대해왔다. 때문에 연대하다는 사실상 무엇 무엇 ‘인 자’의 규범이며 모든 도덕과 문화와 관습, 법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한 사회가 무엇 무엇 ‘인 자’와 ‘아닌 자’ 즉 정규직 인자와 아닌 자, 정상인 인 자와 아닌 자, 인문계 고고를 나온 자와 아닌 자, 이성애 인 자와 아닌 자로 나뉘면, 그래서 사회에 자리 자체가 없는 긴 차별의 목록이 만들어지면 무엇 무엇 인자의 규범은 그렇지 않은 자를 배제하는 규범으로 바뀐다. 정규직이 아닌 자에게 연대하다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그 말을 쓰게 될 경우 연대가 배제로 바뀌는 것은 불가피하다. 노동조합 전략에 목소리내기(voice)와 회피(exit) 전략이 있다. 직장에 자리가 있는 정규직은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면 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지 않던가. 그러나 비정규직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정규직 조직률은 17.5%이지만 비정규직 조직률은 2.5%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매년 떨어지는 추세인데 어떻게 목소리를 내겠는가. 그렇다고 회피(exit)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에게 회피란 사회적 강제이며 일종의 추방이지 결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노동조합 전략 하면 두 가지를 떠올린다. 그것이 무엇 무엇 인자에게는 전략과 규범일지 모르지만 아닌 자에게는 그 말을 사용하는 것조차 배제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비정규직, 주변인들, 사회적 약자에게 연대하다는 어떤 의미인가. 그들이 연대와 저항의 주체일 수 있는가. 이 사회에 자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이와 비슷한 문제가 최근 논란이 되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에 있다. 대기업에서는 기존의 정규직 노동조합 외에 소규모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있을 수 있다. 이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범위가 겹치는 복수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현행법으로도 노동조합의 설립을 인정받은 다수노조이다. 그런데 정부가 주장하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다수노조와 복수노조를 구분하지 않고 한 사업 혹은 사업장에 하나의 교섭단위를 강제하기 때문에 현장에 다수의 조합이 있으면 조합원 수가 최소 1명이상 많은 노동조합만이 단체교섭권을 가지고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다. 즉 정규직 노동조합에 비해 조합원 수가 적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교섭권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한국의 노동조합은 해당 조합의 조합원 이익만을 대표할 뿐이며 다른 노동조합이나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모든 종업원의 이익을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다. 결국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특정 이해집단에게만 단체교섭권을 부여하여 다른 노동조합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삼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 또한 정부는 이 조치를 시행령에 의해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노동삼권의 제약을 시행령으로 강제하겠다니. 해당 기사를 읽으며 눈을 의심하지만 다시 읽어도 그렇게 씌어있다. 오늘은 영하의 추위란다. KBS 앞을 지나다보니 계약직 지부 사람들이 장갑을 낀 손으로 피켓을 들고 있다. 모금함이라도 있으면 싶은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멈칫 거리다 다시 걷는 길에 노란 은행나무 잎이 휘날린다. 비정규직에게 또 다시 겨울이 왔다. 그들이 정규직처럼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대답할 자신이 없는 탓인지 아니면 추위 탓인지 장갑 낀 손이 시리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4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