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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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동호 /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검찰이 아주 오랜 기간 보여준 사건 처리 행태는 매우 편파적이고 자의적이며 정치적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법과 원칙의 의미는 고정적이지 않다.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관점에서 법과 원칙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유·무죄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로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며 정치적 존재감을 키울 때 검찰은 든든한 후원자였다. 아예 대놓고 정치권과 교류하기도 했다. 검찰에 우호적인 정당 관계자에게 검찰에 비후호적인 정치인의 고발을 사주한 후 이를 받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고발사주사건이 그렇다.   최근 고발사주사건의 피고인 손준성 검사장에게 항소심이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하면서 더 ‘윗선’인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등 상급자의 관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윤 대통령 탄핵을 무산시켰던 국민의힘의 한동훈 전 대표는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였다. 윤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은 완전히 무너졌다. 국민의 검찰이 아니라 윤 대통령 부부의 검찰이었다.    검찰은 4년을 끌며 수사해오던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불기소결정을 했다. 검찰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숙고한 결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범의 진술과 사건 정황을 보면 설득력이 없다. 전두환·노태우의 12·12 쿠데타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기소할 수 없다”고 결정한 전례를 보면 믿기 어렵다.   윤 정부의 검찰이 보여 준 납득할 수 없는 사건 처리가 더욱 노골적이고 심각해져서 국회가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지휘부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하자 오히려 검사들은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증거와 법리에 따라 기소하였으므로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선 검사의 집단적 반발은 집단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위반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들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기소하여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같은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처벌받고 검사들은 수사조차 받지 않는 상황이 검사들의 눈에는 법과 원칙에 부합한가.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남시의 대장동과 백현동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허위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하여 결국 1심에서 유죄를 받아냈다. 백현동 개발사업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김진동씨의 휴대전화에서 이 대표와 통화한 녹음 파일이 발견되자 이 대표를 위증교사혐의로 기소까지 했으나 법원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이는 별건수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12월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와 당시 대선 후보로서 “대장동 개발사업에 부산저축은행이 부당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조우형씨가 10억이라는 대출커미션 받은 것을 알았고 거기에 대한 일정한 진술이나 증거가, 단서라도 있었다고 한다면 그거는 봐줄 수가 없는 것”이라며 봐주기 수사 의혹을 일축했다.   이 발언과 관련 대선 후보 검증 차원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받는 김만배씨가 “윤석열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이 대장동 대출브로커 조씨의 범죄를 덮고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무마했다”고 주장하는 인터뷰가 2022년 3월 6일 뉴스타파에 보도되자, 검찰은 오히려 김만배씨와 기자 및 뉴스타파 대표를 윤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강제수사 후 기소하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죄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의 범죄로서,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요건으로 한다. 그런데 이후 조씨는 알선수재죄로 처벌을 받았다. 따라서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사실의 공익성이 인정되면 비방 목적이 부정되어 처벌할 수 없다. 공익성과 비방 목적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죄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공소제기를 할 수 있다. 고소가 없더라도 검사의 기소는 적법하다. 이와 달리 친고죄는 피해자의 명예보호에 주된 목적이 있는 범죄로서,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기소가 적법하지 않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반의사불벌죄일지라도 기소하기 전에 피해자의 처벌의사를 묻는다.   검찰이 김만배씨와 그 관련자를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처벌의사를 묻지 않은 것은 실무의 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 자체도 적법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청법이 규정한 검찰의 수사권의 대상에 명예훼손죄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선 후보자의 발언을 검증하기 위한 보도로서 공익성이 인정되어 비방 목적도 인정되기 어렵다.   검찰력의 한계를 인식한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서 군사력과 경찰력을 동원한다. 그런데 이는 형법의 내란죄에 해당한다. 이 죄의 요건은 간단하다.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면’ 성립한다. 우두머리는 사형이나 무기형으로 처벌된다.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해야 기수가 아니라 폭동을 일으키면 기수다. 목적을 달성하면 성공한 쿠데타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쿠데타일뿐, 모두 기수다.   윤 정부에서 검찰이 보여준 모습으로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말도 믿기 어렵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공수처에 형식적으로만 넘긴 채 윤 대통령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부여하고 있는 검찰에 어떻게 믿음이 가겠는가. 더욱이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기소권이 없다.   오히려 검찰에 내란죄의 수사권이 없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불순하다. 검찰청법은 수사권 있는 직권남용죄(본래범죄) 수사 중 인지한, 그와 직접 관련된 범죄(관련범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본래범죄 수사 중 관련범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 관련범죄(내란죄)를 수사하기 위해 본래범죄(직권남용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다. 내란죄(본래범죄)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직권남용죄가 관련범죄인 것이다.   수사절차의 위법이 12·3 비상계엄 사태의 우두머리와 관련자에 대한 처벌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우려한다.
2025-01-02 | hrights | 조회: 335 | 추천: 5
이윤 / 경찰관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경찰은 대체로 수동·적극적이었다. 정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지만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원죄가 되어 수치와 참회로 이어지고 있다. 해방 후 친일파와 일제 부역자를 처벌할 목적으로 제헌국회가 설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이승만의 지시로 경찰이 습격하였는데, 반민특위 특경대원들을 폭행·체포·감금하는 등 경찰은 반민특위 해체의 주된 역할을 했다. 그때 민족 반역자들을 처벌하고 사회·정치 무대에서 몰아냈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평등한 사회가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1949년 공산당과 아무런 관련없는 사람까지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기합, 체벌, 반공교육을 받게 하였을 뿐 아니라 전쟁 중 학살되게 한 것에도 경찰이 가담하였다. 4.19 혁명 당시에 김주열 열사에게 최루탄을 발사하여 사망하게 한 것도,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한 것도 경찰이었다. 4.19 혁명의 시발이 된 3.15 부정선거에도 수동·적극적으로 가담했다. 1972년 10월 유신 체제에서 전체주의 독재에 반대하는 교수, 학생, 언론인, 종교인 등 민주인사 탄압에 가담한 것도, 1980년 전두환 체제하에서 사회악 일소를 표방한 삼청교육대 수용자 검거 시 실적 경쟁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에게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을 가한 것도, 1987년 박종철 열사를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경찰이었다. 반면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해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해야 한다”라며 거부하고, 경찰 총기를 회수하고, 시위대에 부상자 치료 및 음식 등을 제공한 안병하 치안감 같은 분도 있으나, 이런 결기는 흔하지 않다. 사진: 연합뉴스 1991년 경찰청을 내무부 외청으로 독립시킨 이유는 경찰에게 정권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말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하라는 요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2024년 12.3 비상계엄에서도 경찰은 다시 정권의 명령을 받아 수동·적극적 역할을 했다. 국회를 방패와 몸, 차벽으로 막아 국회의장을 포함한 국회의원의 출입을 통제하였고, 계엄군은 들여보냈다. 오히려 TV 속 특전사 군인들은 수동·소극적으로 보였다. 시민들과 보좌진에 의해 이리저리 밀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에 ‘계엄을 이리 어설프게 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 본래의 경찰 임무는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가지 않도록 군인과 시민을 분리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정당하게 직무를 수행하도록 보호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부끄럽고 안타깝고 죄송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아래와 같은 중요한 순간순간에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경찰다운 결정을 했다면, 많은 국민이 불안과 공포 속에 여러 날을 뜬 눈으로 지새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1. 삼청동 안가 계엄선포 3시간 전 삼청동 안가에서 계엄 관련 지시와 국회 포함 10여곳 장악할 기관이 적힌 종이를 받았을 때, 즉각 주동자를 내란예비죄로 현행범체포하여 수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내란죄가 된다는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고, 자신을 임명해 준 사람을 차마 매정하게 체포까지는 못 할 수도 있으나, 최소한 이러면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했어야 한다. #2. 경찰청장 공관 또는 사무실 경찰청장은 안가 회동에서 돌아와 계엄지시 종이를 공관에서 찢었다고 했는데, 얼마 후 계엄이 선포될 중요한 시기에 공관으로 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마 사무실에서 계엄의 정당성과 계엄 후 경찰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관련 기능 참모들과 논의 및 지시를 했을 것이다. 이때 헌법 제77조와 계엄법을 검토했을 텐데, 요건에 맞지 않아 위헌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인지하였을 테니, 이때라도 국회통지든 기자회견이든 위 사실을 온 국민에게 공지하여 국헌문란의 위급한 상황과 계엄에 의해 예상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했다. #3. 계엄선포 직후 계엄 실행이 확인되었으면 혼란 속 인명피해 예방 조치를 취해야 했다. 군의 국회 장악 및 국회의원 체포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국회와 의원들을 보호하고, 시민과 군인이 충돌하지 않도록 분리시키는 조치를 지시하고, 내란을 예비하고 실행한 관련자들 정보를 국가수사본부에 제공하여 체포하고 수사하게끔 해야 했다. 그랬으면 경찰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피고용인이다. 피고용인이 주권자가 정한 약속이자 규칙인 헌법을 위반하여 홀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려 한 것은 주권자 의사에 반하여 독재정권 수립을 시도한 내란이고,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경찰은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지킬 임무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찰에게 원죄에 대한 수치와 참회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024-12-18 | hrights | 조회: 350 | 추천: 11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우리의 역사에 이런 날이 다시 올 것이라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를 뒤늦게나마 단죄하며 민주주의 발전의 큰 교훈을 얻었고, 더 이상 군인의 총칼을 앞세워 권력 찬탈 혹은 지속불가능한 권력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불가능하고 어리석은 짓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성숙하게 가치화, 제도화를 이뤄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절대 다수 시민들도 알고 있고, 조선일보도 알고, 보수정치인들도 알고, 군인과 경찰들 또한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몰랐던 이가 있었습니다. 입버릇처럼 “확 계엄해버릴까”, “내가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다” 등 발언을 내뱉곤 했다던 이였습니다. 게다가 그가 사사로운 이해관계 및 비뚤어진 가치를 앞세워 무소불위로 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우리 사회에 크나큰 비극이었습니다. 비상계엄령 선포, 곧 이은 해제 똑똑히 목도했 듯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밤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국회를 통제하고 대한민국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 4월에 그랬듯, 1980년 5월 광주, 1987년 6월 그랬듯 그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민주주의 가치를 결코 잊지 않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계엄군이 총칼로 막아선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은 맨몸으로 장갑차에 맞섰고, 계엄군의 총부리를 부여잡으며 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 정부여당 소속 의원 18명을 포함한 190명 국회의원이 위헌 위법인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킨 덕에 6시간 만에 역사의 반동을 1차적으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돌발적인, 혹은 의도적인 물리적 충돌과 끔찍한 유혈 사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을 터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섬뜩한 일입니다. 단 6시간의 일탈은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그 후과는 너무도 큽니다. 국헌 문란으로 한국 사회의 법질서 체계를 무너뜨렸고,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외국 자본의 이탈을 조장하며 주가 폭락과 '패닉 셀코리아' 확산 및 환율과 물가의 폭등을 초래했습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피해는 수치로 환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클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이를 만회하고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정부·여당 그 첫 걸음이 즉각적인 대통령 직무정지겠죠. 하지만 7일 저녁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정부여당 의원들의 외면으로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대신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질서 있는 퇴진’을 준비하며 ‘국정을 공동 운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헌법과 계엄법, 형법 각종 법을 모두 위반한 내란의 최고 책임자, 즉 수괴의 혐의를 비호하더니 또다른 내란에 준하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이 여당 대표가 국정 운영을 하겠다고 나서니 ‘제2의 내란’이라는 반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윤 대통령은 그 다음날 국정원 1차장, 행안부 장관 등 여러 권력의 요직에 대한 인사권을 버젓이 행사하고 있습니다. 국헌을 문란하게 하고 내란을 획책한 윤석열씨가 대통령직에 그대로 있는 것은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또한 대통령의 법적 지위와 역할을 여당 대표 혹 총리 등 누군가 몇몇이 임의로 배제하거나 대리하는 것 또한 헌정 질서 부정입니다. 군통수권자 윤석열, 계속되는 위협 가장 무서운 일은 총리와 여당이 질서 있는 퇴진 운운하는 동안에도 내란의 수괴가 우리의 군 통수권자라는 사실입니다. 제2의 계엄령은 그 자체도 우려스럽지만, 진짜 ‘독재 만능 치트키’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분단 상황입니다. 판단력과 이성을 상실한 대통령이 정전상태인 남북 사이 국지적으로라도 무력 충돌을 일으키거나 군사적 충돌을 조작해 어떻게든 준전시 상태로 몰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계엄령을 낼 수 있는 근거인 ‘전시,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를 맞게 되는 것이겠지요. 계엄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 되겠죠. 이것이야말로 상상조차 끔찍한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날 밤 이례적으로 전방 지역인 양구군청에 계엄군이 투입된 것은 이러한 계획이 일찌감치 서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습니다. 군통수권자 윤석열씨는 최소한의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임을 잇따라 자인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대통령은커녕 일개 시민으로서도 턱없이 모자란 민주주의 가치, 역사의식을 갖고 있음을 만천하에 확인시켜줬습니다. 종북 세력 척결을 계엄령 선포의 명분으로 삼을 정도로 극우적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니 국가와 민족의 명운에 대한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한 시간이라도 빨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 절박합니다.
2024-12-11 | hrights | 조회: 370 | 추천: 11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정치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생명체의 기본 특성이 ‘자기 생산’(autopoiesis)이라고 한다. 이는 식물에도 해당한다. 그리고 영혼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영혼을 가진 자는 자기의 존재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활동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자는 영혼이 없는 셈이다. 우리는 영혼이 없는 자를 인간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영혼을 갖더라도 제대로 갖추어야만 인간이다. 유전인자에 따라 인간의 몸을 지녔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인 것 같지만, 인간이라 일컫기에 무척 난감한 자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생명체는 반드시 외부의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온갖 형태의 생명이 나뉜다. 수준이 낮은 생명체일수록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오로지 본능으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또 그럴수록 자신이 지각하는 공간의 범위가 좁고, 시간의 길이도 짧다. 최고로 복잡하고 그래서 수준이 높다고 여겨지는 생명체인 우리 인간의 경우, 본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자극의 반응 간의 속도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느리다. 그만큼 삶의 공간의 범위와 시간의 길이가 길다. 말하자면 다양한 형태로 폭과 깊이를 갖춘 기억 능력을 갖추고서 그에 따라 본능 외에 요컨대 지성과 상상력을 발휘한다. 편의상 동물과 인간을 본능과 지성의 배분 정도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다. 본능적일수록 동물에 가깝고 지성적일수록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해 본다. 지성적일수록 행동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이 범위가 넓고 다양한 형태를 띤다. 그만큼 행동의 종류도 많고 행동에 관계하는 변수들이 많고,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변수가 많은 행동도 있고 변수가 적은 행동도 있다. 인간 역시 동물이다. 그래서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고 싸고 자고 입는 등, 이른바 생물학적인 단순한 말하자면 변수가 적은 행동을 한다. 변수가 많은 행동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수로 하지 않을 수 없는 행동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고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이 하는 행동 중 가장 변수가 많고 그만큼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많은 행동이 바로 정치다. 정치는 나의, 나에 대한,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 정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하는 행동을 통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인간 고유의 삶의 영역들이 마련된다. 이 영역들이 서로 얽혀 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호 작용 중에서도 중심에 놓여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이다. 말하자면, 다른 영역의 행동에 비해 정치적인 행동이야말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가장 강하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들의 삶과 존재를 결정한다. 그런 만큼 정치적 행동은 가장 변수가 많고 그만큼 골똘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행동이다. 인간 삶의 여러 변수를 최대한 놓치지 않고 생각하고 성찰하는 데서 이른바 덕이라고 일컫는 탁월함이 성립한다. 전통적으로는 분별, 절제, 정의, 용기 등을 덕으로서 꼽고 이를 총망라한 덕을 지혜라고 일컬어 왔다. 이는 그 누구보다도, 예를 들어 철학자나 종교가들보다 정치하는 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 동물의 정치를 당장 끝내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 누가 과연 이러한 정치의 덕을 더 많이 갖추었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가 가장 큰 문제다. 정치의 핵심은 흔히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는 바, 올바른 법의 제정이고, 올바른 법의 집행이고, 위법 여부에 대한 올바른 법의 판단이다. 이들 행위는 정적으로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동적으로는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위다. 국가는 각자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누려야 할 인간 활동의 권리를 양도함으로써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만든 공동체다. 주권이 왕이나 소수의 귀족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있는 민주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정치적인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참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 권리와 의무는 당연히 법, 특히 기본법인 헌법과 현행법인 각종 법률을 통해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투표를 통해 우리를 대표해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을 뽑고 법 집행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는다. 그런데 과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처럼 정치 대리인들을 선출할 자격과 자질을 지녔는가? 이에 대한 의심은 우리가 뽑은 정치 대리인들이 얼마나 어떻게 정치를 올바르게 해서 얼마나 바람직한 성과를 많이 내는가, 하는 그 결과에 따라 증폭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평가와 판단에 따라 정치 대리인들을 선택하여 지지하고 투표한다. 그 성향들을 결집해 정치 집단인 정당을 만들고 정당에 가입하고 지지한다. 각자 자신이야말로 제대로 된 정치 대리인들을 선출할 자격이 있고,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은 정치 대리인들을 선출할 자격이 없다고 내심 평가한다. 투표를 통해 이러한 선택적인 평가와 판단의 결과가 다수결에 따라 결정되면 어떤 이유에서건 모두 따라야 한다. 정치적인 판단에 있어서 개개인의 평가와 선택이 무조건 전체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최대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판단한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설사 그렇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그 판단이 옳다는 건 결국 자신의 판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 결과는 법에 정해진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법 집행의 행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선출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으려면 국민 대다수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선출된 자가 선출의 과정에 국민 대다수를 크게 속여 선택을 위한 평가와 판단을 근본적으로 왜곡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속이고 왜곡했다는 사실을 국민은 어떻게 알고 중시하게 되는가? 그의 통치 행위를 통해서이다. 자신에게 위임된 대통령의 국가권력을 선용하면 설사 선출 과정에 속이고 왜곡한 행위가 있더라도 국민은 굳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경제를 잘 일으켜 국민 민생과 복지의 수준을 높이고, 외교를 잘 해서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강화하고, 교육과 문화의 다양성과 폭과 깊이를 더해 국민의 정신적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크게 힘쓰는 데 진력해 곳곳에서 성과를 낸다면 그 누가 굳이 그의 과거를 문제 삼겠는가. 그러나 너무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선출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확하게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을 철저히 속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국민을 속였다는 사실을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그래서 어쩔래? 어디 할 테면 해보라.’ 하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내보인다는 점이다. 21번씩이나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을 크게 해 ‘우리가 당신에게 속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싹 차리고 잘하시오.’라는 경고를 보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국민이 자신을 배반한 양 오히려 분노에 차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결국에는 국정 지지율이 20%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는데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라는 핑계로 일관하고 제대로 된 반성의 기미는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 ‘나를 대통령으로 뽑을 때는 언제고 왜 이렇게 내팽개치려고 하느냐. 나는 내 길을 알아서 간다.’ 하는 식이다. 국민은 이러한 그의 심보를 짐작하면서 그게 영 틀린 말은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자책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욱 미칠 지경이다. 검찰권력을 통한 통치행위 대통령 윤석열 씨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죄책이 많다. 그중 가장 큰 죄책은 국민 대다수의 의식을 암암리에 동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한번 기소당하면 패가망신 하기 마련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기에 조금이라도 악용했을 경우 검찰의 행위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가져오는가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의 중립적인 독립성을 위해 검찰을 더욱 삼가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 반대다. 그 아래에 불안과 공포를 숨기고 있는 자존심과 위세를 부리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적 죽이기를 위한 통치 행위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 마음껏 검찰 권력을 휘두른다. 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알기에 더욱 삼가 존중해야 할 검찰을 통치 행위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 휘두르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놈 어디 있겠어.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하는 강압을 행사한다. 아울러 행정 관료들은 물론이고 독립성을 보장해 주어야 할 각종 감시 기구의 수장들, 그리고 여당의 지휘부를 자신의 호위 무사로 만들어 채운다. ‘지록위마’의 손가락질로 그들에게 위선과 허위와 아부를 몸에 배도록 한다. 가장 염려스러운 건 그럼으로써 인간 삶에서 지성에 따른 정의를 향한 분별과 용기, 그에 따른 절제와 겸양의 덕을 추구하는 게 오히려 위선이고 악덕인 양 호도하고 그 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 본능에 따른 행위야말로 가장 진실한 인간 됨의 길인 양 몸소 보여주면서 강압한다는 사실이다. 즉 살기 위해서는 인간이어서는 안 되고 동물이어야 한다고 암암리에 강요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어이가 없다. 워낙 중요한 대통령의 책임을 지고 있기에 국민 생활을 도탄에 빠뜨리는 무능도 결단코 용서할 수 없거니와, 거기에 더해 거짓으로 일관하는 불성실에다 그 불성실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방책인 양 무의식을 퍼뜨리고 있으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법적인 조치를 통해 끌어내려야 한다. 그나마 자진해서 하야한다면, 비록 국민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반성에 이어 참회한 것으로 평가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 보복의 정치를 마감하고 조화와 평화의 정치를 향한 길을 여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사는 길일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분노와 복수심을 잠재웠으면 애원하는 심정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이제 우리가 노벨 평화상에 이어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는가.  
2024-12-04 | hrights | 조회: 342 | 추천: 7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연말이면 지역화폐 정부 지원과 효과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전자는 새로울 것 없이 되풀이되는 논란 때문이고, 후자는 잘못된 정보가 사실처럼 확산되기 때문이다. 먼저 살펴보자. 지역화폐는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한다? ‘지역화폐 정부 지원은 재정 여력이 충분한 지자체에 더 많은 국가 재원이 투입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마침 JTBC가 팩트체크를 하였다. 결론은 ‘대체로 사실로 보기 어렵다’였다. 그대로 인용해 본다. 현행 지역사랑상품권법 제15조 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사랑상품권의 활성화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역사랑상품권의 발행·판매·환전 등 운영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의 내부지침에 따르면 현재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해선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규모에 따라 지원 규모를 3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정한다. (아래 <표1> 참조) <표1> 지자체별 차등 지원 분류 예를 들어 서울과 경기, 성남 화성 등 재정 자립도가 높은 곳엔 지원하지 않고, 일반자치단체는 2%, 그리고 인구감소 지역엔 5%를 지원한다.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건전한 곳에 대한 국비 지원 규모를 줄이고, 지역 인구가 적어 세수입이 적은 곳엔 좀 더 많은 지원을 해 온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아도 국비지원을 받아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활용할 수 있다는 형평을 갖춘 지원체계가 이미 적용되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자체 고유권한이라 정부 지원을 할 수 없다? 이 주장은 지역화폐 정부 지원 불가 논리의 핵심이었다. 역시 JTBC가 팩트체크를 했다. 결론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였다. 역시 그대로 인용해 본다. 그동안 정부는 지역화폐의 정부 지원이 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강제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추진해야 할 자치사무를 통제하는 것으로 봤다. 그 근거로 지방재정법 제20조에서 '지자체의 관할구역 자치사무에 필요한 경비는 그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부담한다'는 내용을 들고 있다. 지방자치권에 관한 헌법 조문을 살펴보자. 헌법 제117조 제1항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JTBC가 헌법을 가르치고 있는 법률가에게 문의한 결과,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고유한 권한이 아니라 헌법 영역 내에서 국가로부터 나오는 권력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학계에서도 대부분 인정된 학설이며 지역적 사무에 대해 자치입법권이 우선한다는 주장은 소수라고 덧붙였다. 즉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규정은 헌법에 의한 것이며 조직화된 국가의 한 부분으로서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자치사무의 범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이는 입법자인 국회의 권한이란 취지이다.(헌법 제40조) 정부의 설명대로면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일이 지자체의 고유한 자치사무라는 취지로 이를 법률로 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지만 헌법이 정한 자치권의 본질상 이런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예산 신청 범위에 따른 것이고 최종적으로 국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상품권 발행을 강제하는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지자체의 자치권을 침해했다는 것도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지자체가 경제 교류가 줄어들어 국가 경제에 해가 될 것이다? 실제로 강원 양양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당 지자체에서만 사용하고 다른 지자체에서 못 쓴다면 인근 지자체로 유출되는 소비가 줄어들고, 이렇게 되면 인접 지자체는 손해라는 논리이다. 심지어 지자체 간 경제 교류가 줄어들면서 국가 경제에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역시 지역화폐 무용론의 핵심 논리였다. 몇 해 전 한 국책기관에서 이 같은 내용의 리포트를 발표한 후 지역화폐 반대론의 대표적인 근거가 되어왔다. 그런데 지역화폐를 왜 도입하였는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저해 요인 중에 부의 중앙집중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00만원을 소비하면 내가 속한 지역 외로 절반 가까이 빠져나가는 역외유출을 조금이라도 줄여 지역의 소비는 지역에서, 지역의 부는 지역에 남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지역화폐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역외 유출로 빠져나간 부는 어디에 쌓이고 있었는가. 옆 지자체인가, 서울·수도권 집중인가. 이같은 현실에서 지역화폐가 지역에서만 사용되니 이를 반대한다는 것은 결국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경제 균형발전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소비의 부가 집중되는 것과 지역에서 순환되는 것, 과연 과연 어떤 것이 경제에 더 해가 될까. 영세 소상공인 지원은 지역화폐보다 온누리상품권이 더 낫다? 지역화폐는 연 매출 30억원 이상 업체는 가맹점이 될 수 없다. 경기도는 연 매출 12억원 이상 제한이다. 시흥시는 여기에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가맹점이 될 수 없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 모든 전통시장과 등록된 상점가에서 사용 가능하다. 매출이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의 업종기준이 특정 업종을 제외하고 사실상 없다. 그러다 보니 최근 국감에서 올해 급격히 늘어난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중 66.3%가 고소득 업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형 부정유통 적발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영세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두 정책이 시너지를 낼 충분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생할 궁리는 안 하고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최근의 상황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지역화폐는 특정 정치인의 작품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에서 시작되었다. 2010년대부터 시작된 온누리상품권보다도 먼저이다. 최근 특정 정치인이 만든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지역화폐 정부지원과 효과에 대한 논란에 대해 살펴봤다. 알려진 많은 부분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의 무대에서 지역화폐는 그저 정쟁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지역화폐는 민생 경제 분야에서 가장 효과 높은 재정정책임이 증명되고 있다. 정치색을 막론하고 민생 현장에 밀착된 대부분 지자체에서 지역화폐 정부 지원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근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개방 일반·휴게음식점 통계를 분석한 결과, 17개 시도 중 12개 곳에서 폐업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 비율 역시 역대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563만6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854만4000명)의 19.7%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비중 20%선이 깨진 건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소상공 자영업자의 쇠퇴가 이제 체감을 넘어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적절한 재정 정책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민생을 생각한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역화폐에 대해 제대로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
2024-11-27 | hrights | 조회: 476 | 추천: 8
이동우/변호사 2023년의 56조 원에 이어 올해인 2024년에도 정부 예측에 비해 30조 원 이상의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세금이 덜 걷히는 이유는 현 정부가 무분별한 감세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엉뚱하게도 세금이 부족하다며 지방에 줄 돈을 주지 않으려 한다. 대기업과 자산가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돈이 부족해지니 지방에 줘야 할 돈을 주지 않는 정부의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정부가 멋대로 지방교부세를 줄이는 것은 위헌이다. 정부가 지급하지 않은 지방교부세란 법에 따르면 ‘국가가 재정적 결함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는 금액’이다. 쉽게 말해 국가가 형편이 어려운 지방에 주는 돈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작년에 약 56조 원의 세금이 적게 들어오자 정부는 지방에 줘야 할 이 교부세 중에서 대략 18조 6,000억 원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도 10조 원 이상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부의 행위가 헌법과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정부가 헌법과 관련 법률을 대놓고 어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아래와 같이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정부가 정부 마음대로 지방에 줘야 할 돈을 주지 않는 행위는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예산안 심의권을 침해한 행위다(이하에서는 예산과 예산안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하기 전의 상태를, 예산은 국회를 통과해서 확정된 상태를 뜻한다고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근대국가는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 즉 얼마에 어디에 쓸지에 대한 국가의 자금계획에 근거해서 돈을 쓴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 마음대로 돈을 쓰지 못하고 국회가 어디에 얼마를 쓰라고 승인한 내용에 따라 돈을 쓰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삼권분립이 헌법에 명시된 근대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회의 동의를 받은 예산이 존재하고 2023년에도 2024년에도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에는 각 지방에 얼마를 지급해야 할지 정해져 있다. 만약 정부가 이 예산과 다르게 돈을 더 쓰고 싶거나 혹은 덜 쓰고 싶으면 국회에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해 다시금 승인받아야 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정부가 추경을 편성했다’라고 듣던 그 추경이 바로 추가경정예산의 줄임말이다. 애초 계획과 다르게 돈을 더 쓰거나 덜 쓸 일이 생겼으니 국회에 새로 만든 예산안을 승인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세금이 부족해지자 국회의 동의도 없이 지방에 줄 돈을 주지 않았다. 대놓고 근대국가의 기본인 삼권분립을 무시한 것이다. 예산안의 심의·확정은 국회의 고유 권한 정부의 변명도 궁색하다. 정부는 지방에 줘야 할 금액은 법률(지방교부세법)에 따라 기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잘못된 주장이다. 법률에 따라 지방에 줘야 할 금액이 계산되는 건 맞다. 예를 들면 ‘올해 걷힌 세금의 10%를 지방교부세로 줘야 한다’라는 식이다(물론 이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일 뿐이고 실제 법률의 내용은 좀 더 복잡하다. 하지만 들어온 세금의 몇 %를 주라는 기본구조는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만약 올해 걷힌 세금이 100조 원이라면 10조 원을 지방에 줘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정부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금액을 산출하는 방식일 뿐이다. 즉, 이렇게 계산된 금액을 ‘예산’, 국가의 자금계획에 구체적으로 적은 뒤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정부가 실제로 지방에 돈을 줄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정부는 국회의 승인을 받은 ‘예산’에 적힌 대로만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국회를 통과한 예산에 ‘지방에 10조 원을 줘라.’라고 적혀있으면 정부는 10조 원을 지방에 줘야 한다. 그런데 세금이 적게 걷혀 90조 원만 걷히면 어떻게 될까? 90조 원의 10%는 9조 원이니까 9조 원만 주면 될까? 아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10조 원을 줘야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행정부는 입법부인 국회에서 승인된 예산에 따라서 나라의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모자란 1조 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의 경우에는 국채를 발행한다. 즉, 세금이 모자라니 국가가 빚을 내서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애초의 자금계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세금이 없는데 빚을 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당초에 국가의 수입, 즉 세금을 100조 원 계산해서 만든 예산에서 국가의 수입을 90조 원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세금이 부족할 때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빚을 내서 애초 계획대로 돈을 쓰거나 아니면 애초의 계획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국회에 새로운 예산안을 제출해서 승인받아야 한다. 헌법에 그렇게 적혀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과 같이 말이다. 『제54조 ①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ㆍ확정한다』 사라진 헌법과 법률에 따른 국가 운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헌법을 위반하고 국회의 동의 없이 지방에 줘야 할 돈을 주지 않았다. 더 황당한 일은 정부가 스스로 헌법을 위반해 지방에 돈을 주지 않았다가 뒤늦게 약간의 돈을 주면서 생색을 냈다는 사실이다. 작년인 2023년에 정부는 앞서 얘기한 대로 세금이 부족하다며 지방에 줄 돈 중 약 23조 원 가까운 돈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실제로 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연말이 되자 예상보다 세금이 조금 더 걷혔다. 따라서 돈에 조금 여유가 생기자 정부는 마치 대단한 시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약 3조 원 정도를 지방에 주었다. 이 내용을 정부나 언론은 지방을 위한 대단한 지원이라고 한 것처럼 포장했다. 애초에 줘야 할 돈이라는 사실은 애써 감추면서 말이다. 현 정부 들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가 너무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잘못들이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국가 운영이 사라지면 무질서와 혼란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자꾸만 뒷걸음치는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2024-11-19 | hrights | 조회: 303 | 추천: 10
장은주 /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시민들의 인내가 바닥났다. 우리 진보 정치권은 시민들의 이런 ‘심리적 탄핵’이라는 바탕 위에서 ‘법률적 탄핵’이든 ‘임기 단축 개헌’이든 또는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이 정권의 조기 종식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우리 시민들의 윤대통령에 대한 분노는 아직 2016년 겨울 같은 거리의 열기로 모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탄핵 이후’든 ‘하야 이후’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일 터다. 시민들은 이제 그냥 대통령 한 사람 바꾼다고 나라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어서 이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_독립기념관 제공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이란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긴박한 정세 대응과 더불어, 말하자면 근본으로 돌아가서, 차분하게 이 나라의 나라다움을 어디서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고민이, 새삼스러울지라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고유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지금 이 나라의 상태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준거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더 나라답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 지침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매우 복잡한 작업일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우선 그 역사적 기원을 돌아보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해 두고자 한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어떤 서구적 이념이 우리 땅에 이식된 결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길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 선조들은 유교적 대동(大同) 세상을 위한 ‘공동선의 정치’에 대한 지향 속에서 오랫동안 나름의 공화주의 전통을 발전시켰다. ‘천하위공(天下爲公; 세상은 모두의 것이다)’이라는 유교적 공화주의 이념은 조선 시대 이래 모든 정치의 핵심 지향이었으며, 성리학적 왕조 체제 또한 왕과 사대부의 공동 통치를 뜻하는 ‘군신공치(君臣共治)’를 구현한 모종의 원형적 공화정 체제였다. 이런 배경 위에서 구한말에는, 서구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나름의 내적 기반 위에서, 일종의 입헌군주제로서의 ‘군민공치(君民共治)’라는 헌정적 이상도 발전시켰다. 이후 ‘동학혁명’을 통해 주체적 역량을 쌓고 입증해 왔던 한반도의 인민들은 순종이 국권을 포기하자 스스로 주권을 계승하여 이 땅의 주권자가 되었다는 뚜렷한 자각 위에서 ‘3.1 혁명’을 통해 민주적 시민으로 떨쳐 일어섰으며, 바로 그 바탕 위에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민주공화국의 건립을 선포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무슨 역사적 곡예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오랜 문화적, 정치적 축적의 결과물이다. 물론 ‘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은 서구의 정치적 발전 과정에 빚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러나 헌법적 문헌에서 나라의 정체성을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 것은 우리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이 세계 최초인데, 이는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우리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뚜렷한 역사적 자각 위에서 복국(復國) 이후 새롭게 건설될 나라의 근본 방향이 민주주의라는 기초 위에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공동선을 추구하는 ‘모두의 나라’로서의 공화국이어야 함을 선포했다. 나아가 이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추구했던 이들의 정치철학, 곧 ‘민주적 공화주의’도 서구의 공화주의 전통과는 다른 나름의 고유한 결을 지니고 있다. 서구의 공화주의 전통은 기본적으로 ‘비-지배(non-domination) 자유’에 대한 지향을 핵심으로 한다. 이 자유 개념은 단순한 ‘불간섭’을 의미했던 자유주의와는 다르게, 노예적 피지배 상태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 민족 전체의 집단적 자유를 부정하고 억압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독립 운동 전체는 바로 이런 의미의 자유 개념을 실천적으로 내면화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그런 자유 개념의 이론화는 나름의 고유한 색깔을 띠고 나타났다. 독립기념관의 삼균주의 비석_경기일보 임시정부 이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삼균주의(三均主義)’ 상하이 임시정부 이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건국의 철학적 기초를 닦았던 조소앙 선생은 그런 자유의 이념을 유교 전통은 물론 우리 민족의 단군 신화와도 깊이 맞닿아 있는 ‘삼균주의’를 통해 표현했다. 이것은 나라 안으로는 모든 구성원들의 정치, 경제, 교육 상의 균등을 추구했고, 나라 밖으로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추구했다. 조소앙 선생은 이 삼균주의가 바탕하고 있는 ‘균(均)’의 이념이, 부족함보다는 고르지 못함을 걱정했던 공자 이래 유교 전통의 영향일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균형(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을 지향했다는 단군 시대의 국가 이상도 잇는 것으로 이해했다. 제헌헌법 이래 현행 헌법에도 녹아 있는 이 삼균주의는 한마디로 우리 민족을 노예 상태로 만든 일본의 억압적 정치체제를 극복하고 모든 시민이 평등한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지향했던 우리 고유의 민주적 공화주의 정치철학이었다. 여기서 모든 시민은 평등한 정치적 권리와 교육 기회를 향유하고 실질적인 물질적 독립 상태를 누릴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이해된다. 이 삼균주의는 비-지배 자유의 이상에 초점을 둔 오늘날의 ‘신공화주의’를 포함하여 서구 공화주의 전통의 핵심 지향과 완전히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의 자유와 존엄의 실질적 토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나름의 고유한 초점을 가진 새로운 민주적 공화주의 정치철학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의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역사성을 왜곡하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지하고 있는 뉴라이트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느니 하면서 바로 이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 의도의 핵심은 결국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을 곡해된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로 왜소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참된 천하위공의 공동선을 실현하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오랜 노력과 투쟁의 바탕 위에서 건국되었고, 지금도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이후’를 위한 싸움도 바로 이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024-11-12 | hrights | 조회: 403 | 추천: 8
강대중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건축주가 되어 집을 지어보는 게 오래된 꿈이다. 집 책꽂이에 관련 책도 여러 권 있고, 집 짓는 동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기도 한다. 지방 소도시와 인근 농촌에 사시는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이 집 짓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본 탓인지 집 짓기는 살면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땅도 없고, 천정부지 오르는 건축비를 감당할 재력도 없어 집 짓기는 인생 희망 목록의 한참 뒷순위로 밀려나 있다. 집은 아니라도 무엇이든 짓는 일에는 자꾸 마음이 간다. 어느 도시의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동네 어르신이 손수 지은 개량 한복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서슴없이 구입해 즐겨 입는다. 서울시청에서 명동 가는 길목 여러 곳에 아직 남아 있는 양복 짓는 집 앞을 가끔 지날 때도 옷 짓는 분들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셔츠 단추가 덜렁거리면 내 손으로 직접 꿰매기도 한다. 직업이 연구인지라, 연구를 핑계로 옹기를 짓는 분도 오랫동안 만나고 있다. 손재주가 모자라 내 손으로 장독을 짓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무릎 높이 항아리와 커다란 냉면 사발을 직접 만들어도 보았다. 항아리는 집 현관 근처에 두고 매일 바라본다. 냉면 사발은 비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용한다. 설거지할 때 그릇 안쪽에서 내 집게손가락의 마디가 지나간 느낌을 마주칠 때 남모르는 행복도 누린다. ‘짓다’ 혹은 ‘짓는다’는 우리 말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우리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밥을 짓는다고 하고, 농사도 짓는다고 쓴다. 입는 옷, 먹는 밥, 사는 집, 즉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를 책임지는 말이 ‘짓는다’인 셈이다. ‘짓다’는 자기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미소를 짓고, 눈물를 짓고, 한숨을 짓고, 얼굴빛과 표정을 짓는다. 글을 짓고, 시를 짓고, 말을 짓는다. 사회적인 삶, 정치적인 삶에서도 짓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일의 매듭을 짓고, 결론을 짓는다. 함께 무리를 짓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기도 한다. 짓는 일로 점철된 게 인생이지만, 이름을 짓는 일 또한 인생의 거사이다. 사람의 이름을 지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인생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 또 있을까.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바꾼 이름처럼 인생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묘지 앞 작은 비석이나 모두가 기리는 기념물에 새겨진 이름을 볼 때, 이름 없는 용사를 기리는 전쟁 조형물 앞에서 섰을 때, 그 이름 주인의 (이름도 남기지 못했던) 인생이 마음으로 밀려 들어와 숙연해 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짓는 일은 계획하는 일과 밀접하다. 계획한 대로 다 되면 좋겠지만 제대로 계획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나중에 어려워진다. 흔한 말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백 년짜리 계획이 교육이란 말이다. 교육과 관련한 제도나 정책이 자주 바뀌면 곤란하다고 주장할 때 인용하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백 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세워야 하는 게 교육계획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은 교육의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려우니 오래 두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맞았지만 잘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는 윤석열 정부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10년짜리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백년지대계라고 말은 하면서도 10년 앞을 내다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계획도 없었던 게 그동안 국가의 교육정책이었다. 중요한 교육정책은 정권과 무관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 임기의 두 배나 되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도록 입법했다. 이 일을 맡은 국가교육위원회는 2년 전 출범을 하며 2026년부터 시행할 계획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2025년 3월 31일까지 10년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8월 31일까지는 교육부 등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지침을 통보해야 한다. 그 지침을 받은 행정기관과 지자체는 12월 31일까지 시행계획을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10년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오리무중이다. 설익은 내용이 언론에 조각조각 보도된 적이 있지만, 어떤 내용도 아직 공론에 붙여지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백 년을 살지 못한다. 백 년 전과 비교하면 수명이 많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백 년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한 사람의 인생에 교육의 영향이 매우 크다면, 그 교육의 성과도 백 년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생애에서 반드시 나타난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래서 어폐가 있다.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가장 짓기 어렵다고 한다. 자식 농사의 결과를 살면서 결국은 다 확인할 수 있으니 생겨난 말일 것이다.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하는 윤석열 정부가 교육이 가장 큰 고통인 이 나라의 미래 세대에게까지 죄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을 다시 지었다는 대통령 영부인의 현재 이름에 담긴 뜻이 적어도 10년짜리 이 계획에는 부디 실현되기를 바란다.
2024-11-05 | hrights | 조회: 522 | 추천: 9
이윤 / 경찰관 어릴 적 흑백 텔레비전으로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중 ‘수사반장’과 ‘형사 콜롬보’가 있었다.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을 포함하여 만화 ‘모돌이 탐정’ 등 수사·추리 관련 컨텐츠에 열광하던 시절이라 영상물인 두 드라마를 입에서 침 떨어지는 줄 모르고 봤다. 어른이 되고, 수사라는 것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지금은 오히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사건 발생 직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과 수사 결과를 알게 된 후 사건을 되짚어 보는 것은 긴장감과 답답함, 입수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미 발생한 사건의 결과를 놓고 그에 이르는 과정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은 몰입이 안 되어 재미가 없다. 가끔 침이 떨어지는 것은 나이 때문이다. 흐린 기억을 떠올려보면, ‘수사반장’은 1970년대 한국에 많았던 침입절도, 소매치기, 강도, 유괴, 살인 등 사건을 다루면서, 범인 잡는 과정과 함께 범인의 불우한 처지나 환경도 보여주고, 범인과 그 가족에 대한 동정심과 검거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사관의 모습도 그려냈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은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눈이 많이 쌓인 강원도 산골에서 범인을 검거하여 서울까지 돌아오며 겪는 수사관의 고초와 갈등이었다. 범인을 잡을 때까지 며칠 동안 집에도 못 가면서 잠복하고, 가족이 경찰서로 속옷을 가져다주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다. ‘형사 콜롬보’에서는 수사관 개인의 고생은 잘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인 콜롬보 형사가 항상 꾀죄죄하고 헐렁한 레인코트를 입고서 고물차를 끌고 다니기는 했으나, 소위 개고생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범인도 범행을 숨기려 알리바이 등 여러 트릭을 사용한 사람이라서 동정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콜롬보의 명석한 추리력, 그리고 추리 결과를 범인의 행동과 말로 직접 증명하게 만드는 설계 능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수사반장’은 범인 검거 과정에, ‘형사 콜롬보’는 범죄를 밝히는 과정에 더 비중이 있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수사에 대한 여러 문헌에서 수사를 ‘사실 발견(fact finding)’ 활동이라고 한 점을 고려하면 ‘형사 콜롬보’가 수사 활동의 본질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수사의 역할을 ‘사실 발견’에만 한정하면 인간미가 떨어지는 것 같지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형편을 처벌에 고려하는 것은 수사관의 역할이 아니다. 수사관은 동정이나 참작의 여지가 있는 사실까지도 성의있게 발견해서 보고서에 나타내주면 된다. 양형에서의 판단은 법원 몫이다.  수사관이 자신의 수사 결과가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지지(a.k.a. 정무적 판단) 않고 사실관계만 명확히 확인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정 넘치고 인간미도 있는 수사반장 속 형사를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위법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적 인연을 고려하지 않고 끝까지 사실을 확인하여 책임을 묻는 콜롬보 같은 형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경찰은 사실을 발견하고, 검사는 발견된 사실에 법률을 적용하고, 법원은 사실 발견과 법률적용이 법에 정해진 대로 되었는지 판단해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역할이다. 만일 한 사람에게 사실 발견과 법률적용을 모두 맡기면 적용할 법률에 맞는 사실만을 발견하거나 발견한 척하거나, 발견하지 않거나 발견 못한 척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사람(군인 포함)이 죽었다거나, 부정하게 뇌물을 주고받거나, 마약을 해외에서 몰래 들여오거나, 회사 돈을 빵집에서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 범죄로 의심되는 일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과거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수사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 수사관 마음대로 누군가를 봐주거나, 사실관계를 숨기거나, 과장하여 부풀리지 못하도록 팀장, 과장 등 관리체계를 만들어 확인 및 검토하게 하고, 또 검사와 판사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은인이 관련된 사건에도 사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 다른 수사관이 진행하는 사건 수사에 대해 경찰관이 공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어떤 내용인지 ‘문의’만 해도, 그리고 ‘사건 관련자를 친절하게 응대해 주세요’라고만 요청해도 바로 경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서 온라인으로 신고하도록 공지하는 이유도 담당수사관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실 발견’이 정치권력에 의해 영향받지 않게 하려고 수사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스템으로 예방하려 해도 작정하고 덤벼들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하물며 ‘정’과 ‘인간미’를 중시하고, 시스템마저 불완전한 한국에서는 숭숭 뚫린 구멍으로 죄지은 사람이 잘도 빠져나가거나, 갑자기 촘촘해진 그물에 억울하게 걸리는 무고한 사람도 있다. 수사관이 자신의 수사 결과가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지지(a.k.a. 정무적 판단) 않고 사실관계만 명확히 확인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정 넘치고 인간미도 있는 수사반장 속 형사를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위법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적 인연을 고려하지 않고 끝까지 사실을 확인하여 책임을 묻는 콜롬보 같은 형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4-10-15 | hrights | 조회: 746 | 추천: 8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덕수 총리는 노무현 정부, 윤석열 정부 두 정부에 걸쳐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입니다. 처세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의 무색무취한 성격이 한 몫을 했겠지요. 여야 가리지 않고 권력과 코드를 맞추는 데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물론 하바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와 더불어 경제 관료로서 오랜 시간 쌓아온 실무적 전문성이 높이 평가받은 덕분일 수도 있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해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차관급 이상 정무직을 계속 맡아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총리에 관해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부분입니다만 한 총리와 김&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의 관계 얘기입니다. 한 총리는 2002년 김대중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직을 마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김앤장 고문으로 첫 인연을 맺습니다. 이 기간 IMF 시절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먹튀 비판을 받은 론스타를 김앤장이 법률대리하며 한 총리의 법률 자문 여부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었죠. 그리고 김앤장을 잠시 떠난 뒤 노무현 정부 거의 대부분 기간에 걸쳐 국무조정실장,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 한국무역협회회장 등을 지냈고, 그러다가 2017년 다시 김앤장으로 들어가서 2022년 3월까지 꼬박 3년 4개월 동안 고문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들어와 지금까지 공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김앤장에서 고문료로 18억원을 받았습니다. 한 총리는 이미 사표를 냈으니 또다시 김앤장으로 들어갈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한 총리 사례는 약과일지 모릅니다. 외교부 공무원 출신인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지금까지 무려 세 차례에 걸쳐 김앤장을 들락날락거렸습니다. 김영삼 정부 대통령실 해외공보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 등을 마친 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김앤장에서 고문으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뉴욕대 로스쿨에 잠시 다니다가 2000년 8월 다시 김앤장으로 복귀해 2001년 5월까지 고문으로 근무합니다. 이후 이회창 총재 특보로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서 활동하며 16~18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역시 ‘친정’과도 같은 김앤장으로 복귀합니다. 2012~2016년 김앤장에서 근무하는 동안만 10억원 가까운 고문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 차례에 걸친 고문료는 15억원이라고 박 전 장관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 총리도 그렇지만, 아무튼 이쯤되면 박 전 장관 스스로 김앤장이 본 직장인지, 공직이 본 직장인지 헷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장관직도 끝났고 22대 총선에서도 낙선했으니 그가 이제 어디로 돌아갈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입니다. 지독한 회전문 인사입니다. 공직→김앤장→공직→김앤장→또 공직... 이 무한 반복의 역할 교대 속에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담보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순진하기 짝이 없을 뿐입니다. 한 총리와 박 전 장관 사례만 얘기했지만, 김앤장과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의 유착 정도는 끈끈하다 못해 본말이 헷갈릴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세청, 외교부 등 어지간한 정부 부처 출신 등을 모두 망라합니다. 변호사 아닌 공직자 출신의 고문들만 100명이 훌쩍 넘어간다고 합니다. 김앤장이 공직사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한 이들에게 기꺼이 연봉 몇 억원씩을 쥐어주는 것이 존경과 그에 걸맞는 예우를 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더욱 큰 이익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들을 로비스트처럼 활용하기 위해서일까요? 연 매출 1조 3000억원의 로펌인 김앤장이 정부 부처와 고작 몇 백 만원 짜리 법률자문 용역 계약을 맺는 것은 더욱 큰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복안일 것입니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법과 시행령, 규칙 등만으로 이들의 김앤장 등 대형 로펌행을 막기는 역부족입니다. 법이 허술하고 부실하니 법령에만 근거해서 심사하다보면 눈 뜨고 코 베이듯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몽땅 맡겨온 격입니다. 이해관계자들이 법을 만들어서 자신의 훗날을 보장받으려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권자 시민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감시하면서 김앤장 공화국 건설 의도를 지적하고 비판하며 궁극적으로 법 개정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뒷북 치듯 반복되는 제2, 제3의 한덕수, 박진을 목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24-10-07 | hrights | 조회: 565 | 추천: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