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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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정치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생명체의 기본 특성이 ‘자기 생산’(autopoiesis)이라고 한다. 이는 식물에도 해당한다. 그리고 영혼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영혼을 가진 자는 자기의 존재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활동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자는 영혼이 없는 셈이다. 우리는 영혼이 없는 자를 인간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영혼을 갖더라도 제대로 갖추어야만 인간이다. 유전인자에 따라 인간의 몸을 지녔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인 것 같지만, 인간이라 일컫기에 무척 난감한 자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생명체는 반드시 외부의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온갖 형태의 생명이 나뉜다. 수준이 낮은 생명체일수록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오로지 본능으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또 그럴수록 자신이 지각하는 공간의 범위가 좁고, 시간의 길이도 짧다. 최고로 복잡하고 그래서 수준이 높다고 여겨지는 생명체인 우리 인간의 경우, 본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자극의 반응 간의 속도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느리다. 그만큼 삶의 공간의 범위와 시간의 길이가 길다. 말하자면 다양한 형태로 폭과 깊이를 갖춘 기억 능력을 갖추고서 그에 따라 본능 외에 요컨대 지성과 상상력을 발휘한다. 편의상 동물과 인간을 본능과 지성의 배분 정도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다. 본능적일수록 동물에 가깝고 지성적일수록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해 본다. 지성적일수록 행동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이 범위가 넓고 다양한 형태를 띤다. 그만큼 행동의 종류도 많고 행동에 관계하는 변수들이 많고,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변수가 많은 행동도 있고 변수가 적은 행동도 있다. 인간 역시 동물이다. 그래서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고 싸고 자고 입는 등, 이른바 생물학적인 단순한 말하자면 변수가 적은 행동을 한다. 변수가 많은 행동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수로 하지 않을 수 없는 행동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고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이 하는 행동 중 가장 변수가 많고 그만큼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많은 행동이 바로 정치다. 정치는 나의, 나에 대한,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 정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하는 행동을 통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인간 고유의 삶의 영역들이 마련된다. 이 영역들이 서로 얽혀 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호 작용 중에서도 중심에 놓여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이다. 말하자면, 다른 영역의 행동에 비해 정치적인 행동이야말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가장 강하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들의 삶과 존재를 결정한다. 그런 만큼 정치적 행동은 가장 변수가 많고 그만큼 골똘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행동이다. 인간 삶의 여러 변수를 최대한 놓치지 않고 생각하고 성찰하는 데서 이른바 덕이라고 일컫는 탁월함이 성립한다. 전통적으로는 분별, 절제, 정의, 용기 등을 덕으로서 꼽고 이를 총망라한 덕을 지혜라고 일컬어 왔다. 이는 그 누구보다도, 예를 들어 철학자나 종교가들보다 정치하는 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 동물의 정치를 당장 끝내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 누가 과연 이러한 정치의 덕을 더 많이 갖추었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가 가장 큰 문제다. 정치의 핵심은 흔히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는 바, 올바른 법의 제정이고, 올바른 법의 집행이고, 위법 여부에 대한 올바른 법의 판단이다. 이들 행위는 정적으로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동적으로는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위다. 국가는 각자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누려야 할 인간 활동의 권리를 양도함으로써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만든 공동체다. 주권이 왕이나 소수의 귀족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있는 민주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정치적인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참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 권리와 의무는 당연히 법, 특히 기본법인 헌법과 현행법인 각종 법률을 통해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투표를 통해 우리를 대표해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을 뽑고 법 집행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는다. 그런데 과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처럼 정치 대리인들을 선출할 자격과 자질을 지녔는가? 이에 대한 의심은 우리가 뽑은 정치 대리인들이 얼마나 어떻게 정치를 올바르게 해서 얼마나 바람직한 성과를 많이 내는가, 하는 그 결과에 따라 증폭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평가와 판단에 따라 정치 대리인들을 선택하여 지지하고 투표한다. 그 성향들을 결집해 정치 집단인 정당을 만들고 정당에 가입하고 지지한다. 각자 자신이야말로 제대로 된 정치 대리인들을 선출할 자격이 있고,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은 정치 대리인들을 선출할 자격이 없다고 내심 평가한다. 투표를 통해 이러한 선택적인 평가와 판단의 결과가 다수결에 따라 결정되면 어떤 이유에서건 모두 따라야 한다. 정치적인 판단에 있어서 개개인의 평가와 선택이 무조건 전체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최대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판단한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설사 그렇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그 판단이 옳다는 건 결국 자신의 판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 결과는 법에 정해진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법 집행의 행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선출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으려면 국민 대다수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선출된 자가 선출의 과정에 국민 대다수를 크게 속여 선택을 위한 평가와 판단을 근본적으로 왜곡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속이고 왜곡했다는 사실을 국민은 어떻게 알고 중시하게 되는가? 그의 통치 행위를 통해서이다. 자신에게 위임된 대통령의 국가권력을 선용하면 설사 선출 과정에 속이고 왜곡한 행위가 있더라도 국민은 굳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경제를 잘 일으켜 국민 민생과 복지의 수준을 높이고, 외교를 잘 해서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강화하고, 교육과 문화의 다양성과 폭과 깊이를 더해 국민의 정신적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크게 힘쓰는 데 진력해 곳곳에서 성과를 낸다면 그 누가 굳이 그의 과거를 문제 삼겠는가. 그러나 너무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선출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확하게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을 철저히 속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국민을 속였다는 사실을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그래서 어쩔래? 어디 할 테면 해보라.’ 하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내보인다는 점이다. 21번씩이나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을 크게 해 ‘우리가 당신에게 속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싹 차리고 잘하시오.’라는 경고를 보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국민이 자신을 배반한 양 오히려 분노에 차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결국에는 국정 지지율이 20%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는데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라는 핑계로 일관하고 제대로 된 반성의 기미는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 ‘나를 대통령으로 뽑을 때는 언제고 왜 이렇게 내팽개치려고 하느냐. 나는 내 길을 알아서 간다.’ 하는 식이다. 국민은 이러한 그의 심보를 짐작하면서 그게 영 틀린 말은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자책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욱 미칠 지경이다. 검찰권력을 통한 통치행위 대통령 윤석열 씨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죄책이 많다. 그중 가장 큰 죄책은 국민 대다수의 의식을 암암리에 동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한번 기소당하면 패가망신 하기 마련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기에 조금이라도 악용했을 경우 검찰의 행위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가져오는가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의 중립적인 독립성을 위해 검찰을 더욱 삼가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 반대다. 그 아래에 불안과 공포를 숨기고 있는 자존심과 위세를 부리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적 죽이기를 위한 통치 행위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 마음껏 검찰 권력을 휘두른다. 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알기에 더욱 삼가 존중해야 할 검찰을 통치 행위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 휘두르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놈 어디 있겠어.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하는 강압을 행사한다. 아울러 행정 관료들은 물론이고 독립성을 보장해 주어야 할 각종 감시 기구의 수장들, 그리고 여당의 지휘부를 자신의 호위 무사로 만들어 채운다. ‘지록위마’의 손가락질로 그들에게 위선과 허위와 아부를 몸에 배도록 한다. 가장 염려스러운 건 그럼으로써 인간 삶에서 지성에 따른 정의를 향한 분별과 용기, 그에 따른 절제와 겸양의 덕을 추구하는 게 오히려 위선이고 악덕인 양 호도하고 그 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 본능에 따른 행위야말로 가장 진실한 인간 됨의 길인 양 몸소 보여주면서 강압한다는 사실이다. 즉 살기 위해서는 인간이어서는 안 되고 동물이어야 한다고 암암리에 강요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어이가 없다. 워낙 중요한 대통령의 책임을 지고 있기에 국민 생활을 도탄에 빠뜨리는 무능도 결단코 용서할 수 없거니와, 거기에 더해 거짓으로 일관하는 불성실에다 그 불성실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방책인 양 무의식을 퍼뜨리고 있으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법적인 조치를 통해 끌어내려야 한다. 그나마 자진해서 하야한다면, 비록 국민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반성에 이어 참회한 것으로 평가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 보복의 정치를 마감하고 조화와 평화의 정치를 향한 길을 여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사는 길일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분노와 복수심을 잠재웠으면 애원하는 심정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이제 우리가 노벨 평화상에 이어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는가.  
2024-12-04 | hrights | 조회: 266 | 추천: 7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연말이면 지역화폐 정부 지원과 효과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전자는 새로울 것 없이 되풀이되는 논란 때문이고, 후자는 잘못된 정보가 사실처럼 확산되기 때문이다. 먼저 살펴보자. 지역화폐는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한다? ‘지역화폐 정부 지원은 재정 여력이 충분한 지자체에 더 많은 국가 재원이 투입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마침 JTBC가 팩트체크를 하였다. 결론은 ‘대체로 사실로 보기 어렵다’였다. 그대로 인용해 본다. 현행 지역사랑상품권법 제15조 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사랑상품권의 활성화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역사랑상품권의 발행·판매·환전 등 운영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의 내부지침에 따르면 현재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해선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규모에 따라 지원 규모를 3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정한다. (아래 <표1> 참조) <표1> 지자체별 차등 지원 분류 예를 들어 서울과 경기, 성남 화성 등 재정 자립도가 높은 곳엔 지원하지 않고, 일반자치단체는 2%, 그리고 인구감소 지역엔 5%를 지원한다.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건전한 곳에 대한 국비 지원 규모를 줄이고, 지역 인구가 적어 세수입이 적은 곳엔 좀 더 많은 지원을 해 온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아도 국비지원을 받아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활용할 수 있다는 형평을 갖춘 지원체계가 이미 적용되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자체 고유권한이라 정부 지원을 할 수 없다? 이 주장은 지역화폐 정부 지원 불가 논리의 핵심이었다. 역시 JTBC가 팩트체크를 했다. 결론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였다. 역시 그대로 인용해 본다. 그동안 정부는 지역화폐의 정부 지원이 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강제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추진해야 할 자치사무를 통제하는 것으로 봤다. 그 근거로 지방재정법 제20조에서 '지자체의 관할구역 자치사무에 필요한 경비는 그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부담한다'는 내용을 들고 있다. 지방자치권에 관한 헌법 조문을 살펴보자. 헌법 제117조 제1항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JTBC가 헌법을 가르치고 있는 법률가에게 문의한 결과,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은 고유한 권한이 아니라 헌법 영역 내에서 국가로부터 나오는 권력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학계에서도 대부분 인정된 학설이며 지역적 사무에 대해 자치입법권이 우선한다는 주장은 소수라고 덧붙였다. 즉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규정은 헌법에 의한 것이며 조직화된 국가의 한 부분으로서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자치사무의 범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이는 입법자인 국회의 권한이란 취지이다.(헌법 제40조) 정부의 설명대로면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일이 지자체의 고유한 자치사무라는 취지로 이를 법률로 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지만 헌법이 정한 자치권의 본질상 이런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예산 신청 범위에 따른 것이고 최종적으로 국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상품권 발행을 강제하는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지자체의 자치권을 침해했다는 것도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지자체가 경제 교류가 줄어들어 국가 경제에 해가 될 것이다? 실제로 강원 양양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당 지자체에서만 사용하고 다른 지자체에서 못 쓴다면 인근 지자체로 유출되는 소비가 줄어들고, 이렇게 되면 인접 지자체는 손해라는 논리이다. 심지어 지자체 간 경제 교류가 줄어들면서 국가 경제에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역시 지역화폐 무용론의 핵심 논리였다. 몇 해 전 한 국책기관에서 이 같은 내용의 리포트를 발표한 후 지역화폐 반대론의 대표적인 근거가 되어왔다. 그런데 지역화폐를 왜 도입하였는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저해 요인 중에 부의 중앙집중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00만원을 소비하면 내가 속한 지역 외로 절반 가까이 빠져나가는 역외유출을 조금이라도 줄여 지역의 소비는 지역에서, 지역의 부는 지역에 남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지역화폐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역외 유출로 빠져나간 부는 어디에 쌓이고 있었는가. 옆 지자체인가, 서울·수도권 집중인가. 이같은 현실에서 지역화폐가 지역에서만 사용되니 이를 반대한다는 것은 결국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경제 균형발전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소비의 부가 집중되는 것과 지역에서 순환되는 것, 과연 과연 어떤 것이 경제에 더 해가 될까. 영세 소상공인 지원은 지역화폐보다 온누리상품권이 더 낫다? 지역화폐는 연 매출 30억원 이상 업체는 가맹점이 될 수 없다. 경기도는 연 매출 12억원 이상 제한이다. 시흥시는 여기에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가맹점이 될 수 없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 모든 전통시장과 등록된 상점가에서 사용 가능하다. 매출이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의 업종기준이 특정 업종을 제외하고 사실상 없다. 그러다 보니 최근 국감에서 올해 급격히 늘어난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중 66.3%가 고소득 업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형 부정유통 적발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영세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두 정책이 시너지를 낼 충분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생할 궁리는 안 하고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최근의 상황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지역화폐는 특정 정치인의 작품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에서 시작되었다. 2010년대부터 시작된 온누리상품권보다도 먼저이다. 최근 특정 정치인이 만든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지역화폐 정부지원과 효과에 대한 논란에 대해 살펴봤다. 알려진 많은 부분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의 무대에서 지역화폐는 그저 정쟁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지역화폐는 민생 경제 분야에서 가장 효과 높은 재정정책임이 증명되고 있다. 정치색을 막론하고 민생 현장에 밀착된 대부분 지자체에서 지역화폐 정부 지원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근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개방 일반·휴게음식점 통계를 분석한 결과, 17개 시도 중 12개 곳에서 폐업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 비율 역시 역대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563만6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854만4000명)의 19.7%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비중 20%선이 깨진 건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소상공 자영업자의 쇠퇴가 이제 체감을 넘어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적절한 재정 정책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민생을 생각한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역화폐에 대해 제대로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
2024-11-27 | hrights | 조회: 388 | 추천: 8
이동우/변호사 2023년의 56조 원에 이어 올해인 2024년에도 정부 예측에 비해 30조 원 이상의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세금이 덜 걷히는 이유는 현 정부가 무분별한 감세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엉뚱하게도 세금이 부족하다며 지방에 줄 돈을 주지 않으려 한다. 대기업과 자산가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돈이 부족해지니 지방에 줘야 할 돈을 주지 않는 정부의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정부가 멋대로 지방교부세를 줄이는 것은 위헌이다. 정부가 지급하지 않은 지방교부세란 법에 따르면 ‘국가가 재정적 결함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는 금액’이다. 쉽게 말해 국가가 형편이 어려운 지방에 주는 돈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작년에 약 56조 원의 세금이 적게 들어오자 정부는 지방에 줘야 할 이 교부세 중에서 대략 18조 6,000억 원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도 10조 원 이상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부의 행위가 헌법과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정부가 헌법과 관련 법률을 대놓고 어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아래와 같이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정부가 정부 마음대로 지방에 줘야 할 돈을 주지 않는 행위는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예산안 심의권을 침해한 행위다(이하에서는 예산과 예산안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하기 전의 상태를, 예산은 국회를 통과해서 확정된 상태를 뜻한다고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근대국가는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 즉 얼마에 어디에 쓸지에 대한 국가의 자금계획에 근거해서 돈을 쓴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 마음대로 돈을 쓰지 못하고 국회가 어디에 얼마를 쓰라고 승인한 내용에 따라 돈을 쓰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삼권분립이 헌법에 명시된 근대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회의 동의를 받은 예산이 존재하고 2023년에도 2024년에도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에는 각 지방에 얼마를 지급해야 할지 정해져 있다. 만약 정부가 이 예산과 다르게 돈을 더 쓰고 싶거나 혹은 덜 쓰고 싶으면 국회에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해 다시금 승인받아야 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정부가 추경을 편성했다’라고 듣던 그 추경이 바로 추가경정예산의 줄임말이다. 애초 계획과 다르게 돈을 더 쓰거나 덜 쓸 일이 생겼으니 국회에 새로 만든 예산안을 승인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세금이 부족해지자 국회의 동의도 없이 지방에 줄 돈을 주지 않았다. 대놓고 근대국가의 기본인 삼권분립을 무시한 것이다. 예산안의 심의·확정은 국회의 고유 권한 정부의 변명도 궁색하다. 정부는 지방에 줘야 할 금액은 법률(지방교부세법)에 따라 기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잘못된 주장이다. 법률에 따라 지방에 줘야 할 금액이 계산되는 건 맞다. 예를 들면 ‘올해 걷힌 세금의 10%를 지방교부세로 줘야 한다’라는 식이다(물론 이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일 뿐이고 실제 법률의 내용은 좀 더 복잡하다. 하지만 들어온 세금의 몇 %를 주라는 기본구조는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만약 올해 걷힌 세금이 100조 원이라면 10조 원을 지방에 줘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정부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금액을 산출하는 방식일 뿐이다. 즉, 이렇게 계산된 금액을 ‘예산’, 국가의 자금계획에 구체적으로 적은 뒤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정부가 실제로 지방에 돈을 줄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정부는 국회의 승인을 받은 ‘예산’에 적힌 대로만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국회를 통과한 예산에 ‘지방에 10조 원을 줘라.’라고 적혀있으면 정부는 10조 원을 지방에 줘야 한다. 그런데 세금이 적게 걷혀 90조 원만 걷히면 어떻게 될까? 90조 원의 10%는 9조 원이니까 9조 원만 주면 될까? 아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10조 원을 줘야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행정부는 입법부인 국회에서 승인된 예산에 따라서 나라의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모자란 1조 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의 경우에는 국채를 발행한다. 즉, 세금이 모자라니 국가가 빚을 내서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애초의 자금계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세금이 없는데 빚을 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당초에 국가의 수입, 즉 세금을 100조 원 계산해서 만든 예산에서 국가의 수입을 90조 원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세금이 부족할 때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빚을 내서 애초 계획대로 돈을 쓰거나 아니면 애초의 계획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국회에 새로운 예산안을 제출해서 승인받아야 한다. 헌법에 그렇게 적혀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과 같이 말이다. 『제54조 ①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ㆍ확정한다』 사라진 헌법과 법률에 따른 국가 운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헌법을 위반하고 국회의 동의 없이 지방에 줘야 할 돈을 주지 않았다. 더 황당한 일은 정부가 스스로 헌법을 위반해 지방에 돈을 주지 않았다가 뒤늦게 약간의 돈을 주면서 생색을 냈다는 사실이다. 작년인 2023년에 정부는 앞서 얘기한 대로 세금이 부족하다며 지방에 줄 돈 중 약 23조 원 가까운 돈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실제로 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연말이 되자 예상보다 세금이 조금 더 걷혔다. 따라서 돈에 조금 여유가 생기자 정부는 마치 대단한 시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약 3조 원 정도를 지방에 주었다. 이 내용을 정부나 언론은 지방을 위한 대단한 지원이라고 한 것처럼 포장했다. 애초에 줘야 할 돈이라는 사실은 애써 감추면서 말이다. 현 정부 들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가 너무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잘못들이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국가 운영이 사라지면 무질서와 혼란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자꾸만 뒷걸음치는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2024-11-19 | hrights | 조회: 231 | 추천: 10
장은주 /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시민들의 인내가 바닥났다. 우리 진보 정치권은 시민들의 이런 ‘심리적 탄핵’이라는 바탕 위에서 ‘법률적 탄핵’이든 ‘임기 단축 개헌’이든 또는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이 정권의 조기 종식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우리 시민들의 윤대통령에 대한 분노는 아직 2016년 겨울 같은 거리의 열기로 모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탄핵 이후’든 ‘하야 이후’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일 터다. 시민들은 이제 그냥 대통령 한 사람 바꾼다고 나라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어서 이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_독립기념관 제공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이란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긴박한 정세 대응과 더불어, 말하자면 근본으로 돌아가서, 차분하게 이 나라의 나라다움을 어디서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고민이, 새삼스러울지라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고유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지금 이 나라의 상태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준거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더 나라답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 지침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매우 복잡한 작업일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우선 그 역사적 기원을 돌아보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해 두고자 한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어떤 서구적 이념이 우리 땅에 이식된 결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길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 선조들은 유교적 대동(大同) 세상을 위한 ‘공동선의 정치’에 대한 지향 속에서 오랫동안 나름의 공화주의 전통을 발전시켰다. ‘천하위공(天下爲公; 세상은 모두의 것이다)’이라는 유교적 공화주의 이념은 조선 시대 이래 모든 정치의 핵심 지향이었으며, 성리학적 왕조 체제 또한 왕과 사대부의 공동 통치를 뜻하는 ‘군신공치(君臣共治)’를 구현한 모종의 원형적 공화정 체제였다. 이런 배경 위에서 구한말에는, 서구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나름의 내적 기반 위에서, 일종의 입헌군주제로서의 ‘군민공치(君民共治)’라는 헌정적 이상도 발전시켰다. 이후 ‘동학혁명’을 통해 주체적 역량을 쌓고 입증해 왔던 한반도의 인민들은 순종이 국권을 포기하자 스스로 주권을 계승하여 이 땅의 주권자가 되었다는 뚜렷한 자각 위에서 ‘3.1 혁명’을 통해 민주적 시민으로 떨쳐 일어섰으며, 바로 그 바탕 위에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민주공화국의 건립을 선포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무슨 역사적 곡예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오랜 문화적, 정치적 축적의 결과물이다. 물론 ‘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은 서구의 정치적 발전 과정에 빚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러나 헌법적 문헌에서 나라의 정체성을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 것은 우리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이 세계 최초인데, 이는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우리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뚜렷한 역사적 자각 위에서 복국(復國) 이후 새롭게 건설될 나라의 근본 방향이 민주주의라는 기초 위에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공동선을 추구하는 ‘모두의 나라’로서의 공화국이어야 함을 선포했다. 나아가 이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추구했던 이들의 정치철학, 곧 ‘민주적 공화주의’도 서구의 공화주의 전통과는 다른 나름의 고유한 결을 지니고 있다. 서구의 공화주의 전통은 기본적으로 ‘비-지배(non-domination) 자유’에 대한 지향을 핵심으로 한다. 이 자유 개념은 단순한 ‘불간섭’을 의미했던 자유주의와는 다르게, 노예적 피지배 상태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 민족 전체의 집단적 자유를 부정하고 억압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독립 운동 전체는 바로 이런 의미의 자유 개념을 실천적으로 내면화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그런 자유 개념의 이론화는 나름의 고유한 색깔을 띠고 나타났다. 독립기념관의 삼균주의 비석_경기일보 임시정부 이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삼균주의(三均主義)’ 상하이 임시정부 이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건국의 철학적 기초를 닦았던 조소앙 선생은 그런 자유의 이념을 유교 전통은 물론 우리 민족의 단군 신화와도 깊이 맞닿아 있는 ‘삼균주의’를 통해 표현했다. 이것은 나라 안으로는 모든 구성원들의 정치, 경제, 교육 상의 균등을 추구했고, 나라 밖으로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추구했다. 조소앙 선생은 이 삼균주의가 바탕하고 있는 ‘균(均)’의 이념이, 부족함보다는 고르지 못함을 걱정했던 공자 이래 유교 전통의 영향일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균형(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을 지향했다는 단군 시대의 국가 이상도 잇는 것으로 이해했다. 제헌헌법 이래 현행 헌법에도 녹아 있는 이 삼균주의는 한마디로 우리 민족을 노예 상태로 만든 일본의 억압적 정치체제를 극복하고 모든 시민이 평등한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지향했던 우리 고유의 민주적 공화주의 정치철학이었다. 여기서 모든 시민은 평등한 정치적 권리와 교육 기회를 향유하고 실질적인 물질적 독립 상태를 누릴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이해된다. 이 삼균주의는 비-지배 자유의 이상에 초점을 둔 오늘날의 ‘신공화주의’를 포함하여 서구 공화주의 전통의 핵심 지향과 완전히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의 자유와 존엄의 실질적 토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나름의 고유한 초점을 가진 새로운 민주적 공화주의 정치철학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의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역사성을 왜곡하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지하고 있는 뉴라이트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느니 하면서 바로 이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 의도의 핵심은 결국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을 곡해된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로 왜소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참된 천하위공의 공동선을 실현하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오랜 노력과 투쟁의 바탕 위에서 건국되었고, 지금도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이후’를 위한 싸움도 바로 이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024-11-12 | hrights | 조회: 330 | 추천: 8
강대중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건축주가 되어 집을 지어보는 게 오래된 꿈이다. 집 책꽂이에 관련 책도 여러 권 있고, 집 짓는 동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기도 한다. 지방 소도시와 인근 농촌에 사시는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이 집 짓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본 탓인지 집 짓기는 살면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땅도 없고, 천정부지 오르는 건축비를 감당할 재력도 없어 집 짓기는 인생 희망 목록의 한참 뒷순위로 밀려나 있다. 집은 아니라도 무엇이든 짓는 일에는 자꾸 마음이 간다. 어느 도시의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동네 어르신이 손수 지은 개량 한복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서슴없이 구입해 즐겨 입는다. 서울시청에서 명동 가는 길목 여러 곳에 아직 남아 있는 양복 짓는 집 앞을 가끔 지날 때도 옷 짓는 분들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셔츠 단추가 덜렁거리면 내 손으로 직접 꿰매기도 한다. 직업이 연구인지라, 연구를 핑계로 옹기를 짓는 분도 오랫동안 만나고 있다. 손재주가 모자라 내 손으로 장독을 짓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무릎 높이 항아리와 커다란 냉면 사발을 직접 만들어도 보았다. 항아리는 집 현관 근처에 두고 매일 바라본다. 냉면 사발은 비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용한다. 설거지할 때 그릇 안쪽에서 내 집게손가락의 마디가 지나간 느낌을 마주칠 때 남모르는 행복도 누린다. ‘짓다’ 혹은 ‘짓는다’는 우리 말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우리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밥을 짓는다고 하고, 농사도 짓는다고 쓴다. 입는 옷, 먹는 밥, 사는 집, 즉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를 책임지는 말이 ‘짓는다’인 셈이다. ‘짓다’는 자기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미소를 짓고, 눈물를 짓고, 한숨을 짓고, 얼굴빛과 표정을 짓는다. 글을 짓고, 시를 짓고, 말을 짓는다. 사회적인 삶, 정치적인 삶에서도 짓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일의 매듭을 짓고, 결론을 짓는다. 함께 무리를 짓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기도 한다. 짓는 일로 점철된 게 인생이지만, 이름을 짓는 일 또한 인생의 거사이다. 사람의 이름을 지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인생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 또 있을까.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바꾼 이름처럼 인생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묘지 앞 작은 비석이나 모두가 기리는 기념물에 새겨진 이름을 볼 때, 이름 없는 용사를 기리는 전쟁 조형물 앞에서 섰을 때, 그 이름 주인의 (이름도 남기지 못했던) 인생이 마음으로 밀려 들어와 숙연해 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짓는 일은 계획하는 일과 밀접하다. 계획한 대로 다 되면 좋겠지만 제대로 계획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나중에 어려워진다. 흔한 말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백 년짜리 계획이 교육이란 말이다. 교육과 관련한 제도나 정책이 자주 바뀌면 곤란하다고 주장할 때 인용하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백 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세워야 하는 게 교육계획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은 교육의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려우니 오래 두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맞았지만 잘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는 윤석열 정부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10년짜리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백년지대계라고 말은 하면서도 10년 앞을 내다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계획도 없었던 게 그동안 국가의 교육정책이었다. 중요한 교육정책은 정권과 무관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 임기의 두 배나 되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도록 입법했다. 이 일을 맡은 국가교육위원회는 2년 전 출범을 하며 2026년부터 시행할 계획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2025년 3월 31일까지 10년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8월 31일까지는 교육부 등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지침을 통보해야 한다. 그 지침을 받은 행정기관과 지자체는 12월 31일까지 시행계획을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10년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오리무중이다. 설익은 내용이 언론에 조각조각 보도된 적이 있지만, 어떤 내용도 아직 공론에 붙여지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백 년을 살지 못한다. 백 년 전과 비교하면 수명이 많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백 년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한 사람의 인생에 교육의 영향이 매우 크다면, 그 교육의 성과도 백 년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생애에서 반드시 나타난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래서 어폐가 있다.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가장 짓기 어렵다고 한다. 자식 농사의 결과를 살면서 결국은 다 확인할 수 있으니 생겨난 말일 것이다.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하는 윤석열 정부가 교육이 가장 큰 고통인 이 나라의 미래 세대에게까지 죄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을 다시 지었다는 대통령 영부인의 현재 이름에 담긴 뜻이 적어도 10년짜리 이 계획에는 부디 실현되기를 바란다.
2024-11-05 | hrights | 조회: 435 | 추천: 9
이윤 / 경찰관 어릴 적 흑백 텔레비전으로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중 ‘수사반장’과 ‘형사 콜롬보’가 있었다.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을 포함하여 만화 ‘모돌이 탐정’ 등 수사·추리 관련 컨텐츠에 열광하던 시절이라 영상물인 두 드라마를 입에서 침 떨어지는 줄 모르고 봤다. 어른이 되고, 수사라는 것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지금은 오히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사건 발생 직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과 수사 결과를 알게 된 후 사건을 되짚어 보는 것은 긴장감과 답답함, 입수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미 발생한 사건의 결과를 놓고 그에 이르는 과정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은 몰입이 안 되어 재미가 없다. 가끔 침이 떨어지는 것은 나이 때문이다. 흐린 기억을 떠올려보면, ‘수사반장’은 1970년대 한국에 많았던 침입절도, 소매치기, 강도, 유괴, 살인 등 사건을 다루면서, 범인 잡는 과정과 함께 범인의 불우한 처지나 환경도 보여주고, 범인과 그 가족에 대한 동정심과 검거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사관의 모습도 그려냈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은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눈이 많이 쌓인 강원도 산골에서 범인을 검거하여 서울까지 돌아오며 겪는 수사관의 고초와 갈등이었다. 범인을 잡을 때까지 며칠 동안 집에도 못 가면서 잠복하고, 가족이 경찰서로 속옷을 가져다주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다. ‘형사 콜롬보’에서는 수사관 개인의 고생은 잘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인 콜롬보 형사가 항상 꾀죄죄하고 헐렁한 레인코트를 입고서 고물차를 끌고 다니기는 했으나, 소위 개고생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범인도 범행을 숨기려 알리바이 등 여러 트릭을 사용한 사람이라서 동정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콜롬보의 명석한 추리력, 그리고 추리 결과를 범인의 행동과 말로 직접 증명하게 만드는 설계 능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수사반장’은 범인 검거 과정에, ‘형사 콜롬보’는 범죄를 밝히는 과정에 더 비중이 있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수사에 대한 여러 문헌에서 수사를 ‘사실 발견(fact finding)’ 활동이라고 한 점을 고려하면 ‘형사 콜롬보’가 수사 활동의 본질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수사의 역할을 ‘사실 발견’에만 한정하면 인간미가 떨어지는 것 같지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형편을 처벌에 고려하는 것은 수사관의 역할이 아니다. 수사관은 동정이나 참작의 여지가 있는 사실까지도 성의있게 발견해서 보고서에 나타내주면 된다. 양형에서의 판단은 법원 몫이다.  수사관이 자신의 수사 결과가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지지(a.k.a. 정무적 판단) 않고 사실관계만 명확히 확인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정 넘치고 인간미도 있는 수사반장 속 형사를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위법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적 인연을 고려하지 않고 끝까지 사실을 확인하여 책임을 묻는 콜롬보 같은 형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경찰은 사실을 발견하고, 검사는 발견된 사실에 법률을 적용하고, 법원은 사실 발견과 법률적용이 법에 정해진 대로 되었는지 판단해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역할이다. 만일 한 사람에게 사실 발견과 법률적용을 모두 맡기면 적용할 법률에 맞는 사실만을 발견하거나 발견한 척하거나, 발견하지 않거나 발견 못한 척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사람(군인 포함)이 죽었다거나, 부정하게 뇌물을 주고받거나, 마약을 해외에서 몰래 들여오거나, 회사 돈을 빵집에서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 범죄로 의심되는 일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과거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수사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 수사관 마음대로 누군가를 봐주거나, 사실관계를 숨기거나, 과장하여 부풀리지 못하도록 팀장, 과장 등 관리체계를 만들어 확인 및 검토하게 하고, 또 검사와 판사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은인이 관련된 사건에도 사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 다른 수사관이 진행하는 사건 수사에 대해 경찰관이 공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어떤 내용인지 ‘문의’만 해도, 그리고 ‘사건 관련자를 친절하게 응대해 주세요’라고만 요청해도 바로 경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서 온라인으로 신고하도록 공지하는 이유도 담당수사관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실 발견’이 정치권력에 의해 영향받지 않게 하려고 수사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스템으로 예방하려 해도 작정하고 덤벼들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하물며 ‘정’과 ‘인간미’를 중시하고, 시스템마저 불완전한 한국에서는 숭숭 뚫린 구멍으로 죄지은 사람이 잘도 빠져나가거나, 갑자기 촘촘해진 그물에 억울하게 걸리는 무고한 사람도 있다. 수사관이 자신의 수사 결과가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지지(a.k.a. 정무적 판단) 않고 사실관계만 명확히 확인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정 넘치고 인간미도 있는 수사반장 속 형사를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위법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적 인연을 고려하지 않고 끝까지 사실을 확인하여 책임을 묻는 콜롬보 같은 형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4-10-15 | hrights | 조회: 662 | 추천: 8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덕수 총리는 노무현 정부, 윤석열 정부 두 정부에 걸쳐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입니다. 처세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의 무색무취한 성격이 한 몫을 했겠지요. 여야 가리지 않고 권력과 코드를 맞추는 데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물론 하바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와 더불어 경제 관료로서 오랜 시간 쌓아온 실무적 전문성이 높이 평가받은 덕분일 수도 있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해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차관급 이상 정무직을 계속 맡아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총리에 관해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부분입니다만 한 총리와 김&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의 관계 얘기입니다. 한 총리는 2002년 김대중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직을 마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김앤장 고문으로 첫 인연을 맺습니다. 이 기간 IMF 시절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먹튀 비판을 받은 론스타를 김앤장이 법률대리하며 한 총리의 법률 자문 여부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었죠. 그리고 김앤장을 잠시 떠난 뒤 노무현 정부 거의 대부분 기간에 걸쳐 국무조정실장,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 한국무역협회회장 등을 지냈고, 그러다가 2017년 다시 김앤장으로 들어가서 2022년 3월까지 꼬박 3년 4개월 동안 고문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들어와 지금까지 공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김앤장에서 고문료로 18억원을 받았습니다. 한 총리는 이미 사표를 냈으니 또다시 김앤장으로 들어갈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한 총리 사례는 약과일지 모릅니다. 외교부 공무원 출신인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지금까지 무려 세 차례에 걸쳐 김앤장을 들락날락거렸습니다. 김영삼 정부 대통령실 해외공보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 등을 마친 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김앤장에서 고문으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뉴욕대 로스쿨에 잠시 다니다가 2000년 8월 다시 김앤장으로 복귀해 2001년 5월까지 고문으로 근무합니다. 이후 이회창 총재 특보로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서 활동하며 16~18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역시 ‘친정’과도 같은 김앤장으로 복귀합니다. 2012~2016년 김앤장에서 근무하는 동안만 10억원 가까운 고문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 차례에 걸친 고문료는 15억원이라고 박 전 장관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 총리도 그렇지만, 아무튼 이쯤되면 박 전 장관 스스로 김앤장이 본 직장인지, 공직이 본 직장인지 헷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장관직도 끝났고 22대 총선에서도 낙선했으니 그가 이제 어디로 돌아갈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입니다. 지독한 회전문 인사입니다. 공직→김앤장→공직→김앤장→또 공직... 이 무한 반복의 역할 교대 속에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담보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순진하기 짝이 없을 뿐입니다. 한 총리와 박 전 장관 사례만 얘기했지만, 김앤장과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의 유착 정도는 끈끈하다 못해 본말이 헷갈릴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세청, 외교부 등 어지간한 정부 부처 출신 등을 모두 망라합니다. 변호사 아닌 공직자 출신의 고문들만 100명이 훌쩍 넘어간다고 합니다. 김앤장이 공직사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한 이들에게 기꺼이 연봉 몇 억원씩을 쥐어주는 것이 존경과 그에 걸맞는 예우를 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더욱 큰 이익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들을 로비스트처럼 활용하기 위해서일까요? 연 매출 1조 3000억원의 로펌인 김앤장이 정부 부처와 고작 몇 백 만원 짜리 법률자문 용역 계약을 맺는 것은 더욱 큰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복안일 것입니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법과 시행령, 규칙 등만으로 이들의 김앤장 등 대형 로펌행을 막기는 역부족입니다. 법이 허술하고 부실하니 법령에만 근거해서 심사하다보면 눈 뜨고 코 베이듯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몽땅 맡겨온 격입니다. 이해관계자들이 법을 만들어서 자신의 훗날을 보장받으려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권자 시민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감시하면서 김앤장 공화국 건설 의도를 지적하고 비판하며 궁극적으로 법 개정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뒷북 치듯 반복되는 제2, 제3의 한덕수, 박진을 목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24-10-07 | hrights | 조회: 489 | 추천: 14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1979년 10월 27일 아침 10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늦게 깼다. 잠에서 깨어나면 머리맡에 있는 라디오를 켰다. 93.1MH KBS FM 클래식 음악 방송에 채널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장중한 장송곡 같은 곡이 흘러나오면서 갑자기 아나운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독재자 박정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나는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다락방에 숨어있다시피 했다. 아니,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축복이냐! 마루에 나와 혼자 신나게 춤을 췄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시내에 나갔다. 당시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이듬해 3학년 복학 준비를 하면서 고향 마산에 있었다. 당시 마산 창동 네거리에는 10미터 안팎의 거리를 두고 클래식 음악다방 세 개가 있었다. ‘흑과 백’, ‘주노’, ‘가배 다방’이 그 이름들이다. 그때에는 주로 건물 2층에 있는 가배 다방에 모여 지인들과 시국을 논했다. 그중에는 ‘동포여 하는 소리에 놀라 깨어나 보니 똥퍼였다.’라는 시를 읊은 이선관 시인도 있었다. 그이 말고는 대부분 20대였다. 시내에 들어서니 길가에 아직 그날, 부마 민주화 항쟁의 불길이 마산으로 옮겨붙었을 첫날, 시위꾼들이 던진 유리병의 파편들이 남아 있었다.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계단을 딛고 올라 다방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환한 얼굴로 좋아라, 하고 있었다. “아이고, 축하합니다!”, “이게 우짠 일입니꺼”, “마, 한잔하러 가입시더”, 바라고 바라던 기적이 일어난 탓에 다들 흥분을 가누지 못했다. 10일 전쯤에 부마 민주화 항쟁으로 도시 전체가 격렬한 시위로 들끓었었다. 10월 18일 오후 5시쯤, <가배 다방>에 빈자리가 없이 젊은이들이 꽉 차 있었다. 평소 보지 못했던 몇몇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전날 17일 오후 2시쯤부터 시내에서 이른바 짱돌과 빈 병 등을 던지며 진압 전투 경찰들과 강력하게 부닥쳤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는 사람들끼리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전날의 시위에 참여했었고, 그 때문에 알지 못하는 그들이 상황을 탐지하고 여차하면 체포하려는 형사들인 걸로 추정했던 것이었다. 나 역시 밤늦게까지 마산경찰서를 향해 짱돌을 던지다가 어둠 속에서 날아와 아스팔트를 치고서 솟아오른 최루탄에 무릎을 맞기도 하는 등 하면서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던 터였다. 오늘 또다시 뭔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감하고 결정적인 시간을 기다리는 긴장도 다방에 흐르는 침묵에 한몫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밖에서 “터졌다!” 하는 고함이 들렸다. 기다렸던 신호였다. 다방 안 모든 이들이 화들짝 들고 일어나 주인에게 가방 등을 맡기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모두 창동에서 오동동 거리로 쏠려 내려갔다. 삽시간에 골목골목에서 나온 사람들로 길이 꽉 찼다. 오동동과 연결된 해안도로로 나가자, 마산수출자유지역과 창원공단 쪽에서 엄청난 시위 인파가 몰려왔다. 뒤끝이 보이지 않는 시위대로 4차선 도로가 꽉 찼었다. “독재 타도!, 독재 타도!” 구호가 끊임없이 넘쳐났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선두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제법 큰 피켓을 들고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최전방으로 나가 피켓에 무얼 적었는지를 보았다. ‘간첩 잡아 보상받자’라는 글귀가 크게 쓰여 있었다. 길가에 서 있던 반공 선전판을 뽑아낸 든 것이었다. ‘이야! 쥑인다!’ 나는 혼자 크게 웃었다. 도로 가의 모든 건물은 불이 커져 있었다. 본능적이었던 것 같다. 시위대는 어디선가 불빛이 보이기만 하면 ‘불 꺼!’ 하고 외쳤다. 그런 탓에 시위대의 물결은 어둠 속으로 크게 일렁이며 나아갔다. 그러다가 밤 8시쯤 되었을까, 시위대가 3‧15 의거탑을 마주하고 있는 마산 MBC 문화방송 앞에 이르러 더는 나가지 못하고 멈쳐 섰다. 총기로 무장한 진압군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진압군은 대각선으로 열 지어 군홧발을 아스팔트 바닥에 힘차게 내리누르는 시위 진압 보행을 하면서 다가왔다. 군홧발의 소리는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나는 시위대 맨 앞에 서 있었고, 참다못해 혼자 진압군 쪽으로 나갔다. 4, 50미터 전방쯤이었을까? 진압군이 갑자기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 총소리는 하늘마저 진동할 정도로 컸다. 시위대는 혼비백산 인도로 퍼져 나갔고 골목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총알이 시위대를 향한 건 아니었다. 맨 앞에서 서 있었기에 여실히 확인했다. 총소리와 함께 진압군 앞 아스팔트에서 강렬한 불빛들이 튀었다. 골목골목을 통해 빠져나와 북마산파출소를 향한 대로로 접어들었다. 파출소 앞에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켠 버스 두 대와 진압 군인들이 열 지어 있었다. 이쪽으로 접어든 시위대는 20명 가까운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는 길가 알루미늄판으로 만든 자그마한 주차 관리소를 엎어 아스팔트 길로 끌고 나갔다. 이를 바리케이드로 삼아 뒤에 숨어 군인들을 향해 밀고 나갔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캄캄한 도로, 엎어진 알루미늄판이 아스팔트에 쓸리며 내는 소리는 엄청나게 크게 들였다. 버스 가까이 짱돌 사정거리 정도로 좁혀졌을 때 다들 튀어나와 호주머니 속에 장만한 돌들을 버스의 헤드라이트를 향해 던졌다. 일단 우리를 향해 쏘아대는 버스 헤드라이트를 깨 우리의 모습이 노출되는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서 있던 버스가 우리를 향해 갑자기 돌진했다. 놀란 탓에 다들 인도로 재빨리 도망쳤다. 지나가는 버스를 힐긋 돌아보니 운전자 혼자뿐이었다. 저들마저도 우리의 규모를 몰라 경계했던 것이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진압 군인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우리는 ‘서원골’을 향하는 길로 2차선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좁은 도로로 도주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진압 군인들이 뒤쫓아 왔다. “부산 기동대 모여!”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산을 진압하고 마산으로 넘어온 군인들이었다. 도망쳐 올라가면서 누군가가 동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졌다. 동사무소를 독재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국가 기관으로 본 것이었다. 나는 ‘그러지 마! 동사무소가 무슨 죄가 있어!’ 하고 소리 질렀다. 어느새 진압군이 쫓아와 2, 30미터 거리였다. 그들은 M16 소총 같은 걸 어깨에 걸고 기다란 진압 곤봉과 철판으로 된 큰 방패로 무장하고서 우리를 뒤쫓아 왔다. 내 옆에는 아직 창원의 39사단에서 방위로 근무하는 친구가 함께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나는 성호동 철길 위 잘 아는 교회 집사님의 대문을 급하게 두들겼다. 곧바로 그 집 며느리인 누님뻘 되는 분이 나와 문을 열어주어 친구와 함께 들어가 숨었다. 그러고는 대문 위에 설치된 슬라브로 올라가 엎드려 아래 지척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장면을 지켜보았다. 진압 곤봉에 두들겨 맞으면서 붙들린 시위꾼에게 철판 방패로 내려찍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한 번만 살려주이소! 한 번만 살려주이소!”(한 번만 살려주세요!) 하는 애달픈 애원이 터져 나왔고, 다른 쪽에서는 “아나! 죽이라!”(어디 죽일 테면 죽여봐!) 하는 강렬한 저항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항하는 그를 향해 진압군이 철판 방패로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그런데 어느 시위대 한 명이 급한 김에 길 맞은편 집 대문을 급하게 두들기고 곧바로 주인이 나와 문을 열어주어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주인은 대문을 닫았다. 불행히도 어느 한 군인이 이를 확인했다. 군인이 그 집 대문을 총 개머리판으로 두들겼다. 그런데도 주인은 곧바로 문을 열지 않았다. 그사이 숨어든 시위꾼은 어느새 어떻게 올라갔는지 그 집 기와지붕 위에 납작 엎드렸다. 주인이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군인은 “이 새끼 죽고 싶어 환장했어!” 하면서 주인을 총 개머리판으로 돌려쳤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아비규환이었다. 몇몇은 서원골을 향해 도망쳐 올라갔고, 몇몇 사람들이 끌려가는 등 해서 그곳에서의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교회 집사님이 마련해 준 방에 친구와 함께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멀리서 ‘독재 타도! 독재 타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온 뒤 집에 칩거하다시피 했다. 한 주일쯤 지나 수요일 예배를 보기 위해 저녁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중도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키 큰 떡대 같은 몸집의 군인들이 골목마다 M16 소총을 허리에 대고 곧추세워 경계를 서고 있었다. 당시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모든 청년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위를 하지 않은 ‘놈’들이 없다는 식이었다. 도시 전체가 공포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군인들이 사라졌다. 다름 아니라, 독재자 박정희가 그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살해된 것이었다. 꿈같은 일이었다. 만약 그가 살해되지 않았다면, 부산과 마산은 색출, 체포, 구금의 살벌한 일들이 오랫동안 지속했을 것이다. 그 이후, 18년 독재로부터 해방된 정치 공간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을 중심으로 민주정치를 회복하기 위한 연설회 등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 한때 박정희의 심복 중 심복이었다가 잠시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던 김종필도 이에 가세했다. 이른바 1980년 서울의 봄, 3김 정치가 민심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급하게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박정희 살해 사건을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위시한, 이른바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이미 암약하면서 정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소문이 크게 돌았다. 3학년에 복학한 나는 내가 다니던 신학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일곱 명의 학우와 함께 정치 투쟁 서클 <비아 돌로로사>(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언덕길의 이름)를 만들었다. ‘전두환, 신현확은 물러나라!’ 하는 구호 아래 각 대학에서 베껴 온 대자보의 내용들을 수렴 ‧ 개작하여 밤새 대자보를 만들어 교내 몇 군데에 붙였다. 4월 말쯤이었다. 우리 서클 학우들이 교문을 박차고 숭실대학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을 따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하는 구호를 외치며 달려 올라갔다. 갑자기 검은 세단 네다섯 대가 겨우 8명밖에 되지 않는 우리 앞뒤를 에워쌌다. ‘제발 학교 안으로만 들어가 달라.’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그때만 해도 시위를 하더라도 함부로 체포할 수 없는 분위기였던 거다. 학교로 돌아온 우리는 교문 바로 안에서 데모했다. 길 맞은편에 초등학교 앞에 페퍼포그 차를 동원한 1개 중대 정도 되는 규모의 전투 경찰들이 열 지어 섰고, 학교 안에서는 모든 강의가 중지되어 학생과 교수 등 약 800명이 ‘구경’했다. 그렇게 미온적이었던 마침내 5월 13일 서울 시내에서 대학 연합의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을 때 300명 정도의 신학생들이 사당동에서 광화문까지 ‘전두환은 물러가라!’ 구호를 외치며 도보로 참여했다. 격렬하게 투쟁해 저희 신학생들이 3대의 경찰차를 불태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착한’ 목사 지망생들이 속에서 자유를 향한 열정을 뿜어내자 ‘무서운’ 폭력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었다. 학생들의 시위는 15일까지 간간이 이어졌고, 전두환 일당은 이를 빌미로 그들의 계획대로 5월 17일 확대 계엄령을 선포해 모든 정치 활동을 중지시켰다. 그다음 날인 5월 18일 광주에서 대대적인 비극을 몰고 온 민주항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짐을 싸서 고향인 마산으로 도주했다.
2024-10-02 | hrights | 조회: 251 | 추천: 6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얼마 전 미국의 지역화폐를 탐방하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미국에도 지역화폐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연방제 국가 미국의 지역화폐의 역사는 제법 깊고 넓다. 코로나19 국면 이전 미국 내 지역화폐의 수는 약 110여개로 알려져 있었다. 대표적인 지역화폐로 코넬대학교가 있는 뉴욕주 이타카 시의 ‘이타카 아워즈’가 있었다. 이타카 아워즈는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이며 시간에 따라 가치를 측정하고 교환되는 돈을 표방한다. 변호사의 1시간과 막노동꾼의 1시간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지난 1991년부터 발행된 이타카 아워즈는 뜨개질이나 춤, 언어 등 지역주민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며 아워즈를 벌 수 있다. 아워즈는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통용되는 아워즈의 약 10% 정도는 자선단체나 시민단체를 지원하는데 쓰이며 소액의 아워즈로 무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약 3만 달러 상당의 아워즈가 대출이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타카 아워즈는 지역 20마일 이내에서만 발행하고 사용됨에 따라 지역의 돈이 지역 내에서만 순환하여 수십만 달러의 거래 발생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받는다.   매사추세츠주 버크셔 카운티에서 2006년부터 발행하는 ‘버크셰어’는 지역 내 5개 은행 13개 지점에서 95달러를 내면 100버크셰어로 환전을 받아 400여 개 지역 가맹점에서 사용하는 지역화폐이다.  달러 대신 지역화폐인 버크셰어를 사용하면서 지역의 자금이 온라인 쇼핑이나 대형 유통점 등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내에서 돌기 때문에 지역 소상공인 매출 유지에 도움이 된다. 돈이 지역 내에서 돌고 도는 지속가능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두 지역화폐는 미 동부권의 사례이다. 이번에 찾아본 곳은 미 서부권의 지역화폐 운영 지역이었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세 곳이 있다. 먼저 캘리포니아 북부 샌프란시스코 인근 산타크루즈 카운티의 지역화폐 ‘다운타운 달러스’ 이다. 다운타운 달러스는 지역 내 중심 상권 약 150여 개의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로 지난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 상황에서 발행하기 시작했다. <다운타운 달러스 사용 가능 가맹점 지도 및 홍보 리플릿> 달러와 1대1로 가치교환이 가능하며 지류 형태로 유통된다. 다운타운 달러스 판매와 가맹점 환전업무는 상가연합회에서 담당하며 운영비는 상가들의 회비로, 지역화폐 홍보는 가맹점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재밌는 점은 코로나19 국면을 기점으로 발행량이 3~4배 이상 확대됐다는 점이다. 경제위기가 닥칠수록 불경기 지역에 돈을 돌게 하는데 지역화폐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다운타운 달러스를 운영하는 상가연합회의 핵심 관계자(Director of Operations)가 전직 산타크루즈 시장이었다. 다운타운 달러스의 지역 내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산타크루즈는 역사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한 지역으로 골목상권 활성화에 대한 상점-시민 간 역시 강력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지역적 유대 의식을 바탕으로 성장한 다운타운 크루즈는 특히 생일이나 기념일에 주민들이 서로 나누는 선물로 마케팅을 하며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세뱃돈으로 지역화폐를 주는 게 전통처럼 굳어진 격이다. 다운타운 크루즈를 운영하는 상가연합회 관계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지역 상권에 스타벅스 등 대형 체인 브랜드들이 입점을 하더라도 오래 못갔다고 크게 강조하는 점이었다. 지역 소상공 자영업 상권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다. 두 번째 지역화폐는 캘리포니아의 유명 휴양지인 산타바바라 카운티의 ‘산타바바라 미션즈’이다. 이 지역화폐는 지역 상권 활성화라는 목표보다 공동체 강화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었다. 산타바바라 미션즈 지역화폐의 실물을 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 흙으로 빚어 불에 구워 만든 도자기 동전이었다. <산타바바라 미션즈 실물 화폐>    산타바바라 미션즈는 지역 또는 상권의 경제 활성화보다 청소년, 은퇴자, 노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지역화폐 이해관계자 간 공동체 강화가 주요 목적이다 보니, 화폐 자체에도 연대의 정신을 물씬 담고 있었다. 도자기 동전의 옆면에는 거래자 간 이름을 적을 수도 있었다. 일본에서 지역화폐를 ‘주민 간에 오고가는 편지’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산타바바라 미션즈는 정말 편지 같은 돈이었다.  공동체 활성화 중심형 지역화폐이다 보니 유통량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하거나 운영의 미숙을 논하기 딱 좋은 정도였지만 산타바바라 미션즈 운영진들은 매우 진지했다. 역시 코로나19 국면 이후 화폐의 용도에 대한 의심과 고민에서 출발했고 실험적이지만 충분히 만족해 했다. 또한 앞으로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접목시킨 모바일 간편결제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세 번째 지역화폐는 산타바바라의 파마스 마켓에서 사용되는 ‘마켓코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화폐라기보다 물건 구매 시 교환용 토큰(token)에 가깝다. 파마스 마켓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5일장이다. 지역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제품을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여 판매하는 장터이다. 그런데 규모가 제법 커서 일주일 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색이 잘 갖춰진 시장이었다. <파마스 마켓에서 쓰이는 마켓코인> 이런 5일장에서 쓰는 플라스틱 동전 형태의 마켓코인의 목적은 ‘카드수수료 절감’이었다. 미국의 카드수수료율은 약 3%로 장터에 모인 농부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이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으로, 장터 운영진들이 입장하는 주민들에게 달러나 카드 결제를 받고 시장에서만 쓸 수 있는 토큰을 교환해준 것이다. 토큰을 사용해도 거스름돈은 달러로 받을 수 있다. 규모가 아닌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만의 돈’을 쓰는 간결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장터에 나온 주민들은 이 같은 방식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다. 일단 파마스 마켓이 일종의 교류의 장이자 작은 축제와도 같아 운영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있었다. 어린이, 청소년들 대상으로 화폐의 개념에 대해 공부하고 게임처럼 활용할 수 있어 부모들의 반응이 좋다고도 했다. 이들 지역화폐의 공통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역에 돈을 돌게 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확장하거나 새로 만들었다는데 있다. 또한 행정의 지원 없이 자발적인 추진 과정을 거쳤다. 무엇보다 ‘경제’보다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수단이 목적이 되버린 가장 유명한 사례가 ‘돈’이라고 했던가. 미국 서부에서 만난 지역화폐는 지역화폐라는 도구로 무엇을 이룰 것인지, 지역화폐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지역화폐는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 경제 활성화를 주요 목적으로 2010년대 중반부터 강력하게 시행되어 왔다. 지역의 부는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동기는 미 서부의 지역화폐와 닮았지만 추진 주체와 추진력은 달랐다. 경제 불황기 지역화폐의 필요성과 역할은 증대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지역화폐가 효율성과 파급력에 집중하며 지역 순환경제 활성화에 큰 성과를 거뒀다. 서울 수도권에 집중되는 소비의 부를 지역에 남기는 가장 효과적인 재정정책이었음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 더 나아가 지역의 경제 문제를 고민하는 공동체 의식 즉,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 지역의 문제 해결에 함께하려는 무형의 자산)을 강화하는 도구로 지역화폐의 존재 가치를 추가 정립시키는 것을 심도있게 고민해야할 때가 아닐까.
2024-09-25 | hrights | 조회: 257 | 추천: 10
이동우/변호사 현 정부 들어 세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작년인 2023년에 실제 세금으로 들어온 돈이 정부가 예측한 금액에 비해 무려 56조 원이나 부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비판을 모두 무시하고 올해 다시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상속세를 중심으로 세금이 너무 높다며 깎아줘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기업을 물려줄 때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게 하기 위한 계획이 포함된 점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이른바 ‘백년가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가업승계 공제제도’란 걸 만들었다. 쉽게 말해 부모에 이어 자식이 가게를 이어서 운영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맛 좋은 칼국숫집을 부모를 이어 자식이 운영할 때 세금 때문에 가게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안 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았고, 세금을 낼 때 1억 원을 빼주는 것으로 시작이 됐다.   그러나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이 제도가 점점 변질되면서 상속세를 내지 않고 가게나 기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도 도입 후 27년이 지난 지금 이른바 ‘가업’을 물려줄 때 국가가 빼주는 세금은 최대 600억 원이 되었다. 27년 동안 무려 600배나 늘어난 것이다. 27년 동안 우리나라의 명목 GDP는 1997년 542조 원에서, 2023년에 2,400조 원으로 약 4.4배가 늘었을 뿐인데 기업을 물려줄 때 빼주는 세금은 같은 기간 동안 무려 600배나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것도 부족하다며 약간의 조건을 붙여 깎아주는 세금의 최대치를 600억 원에서 1,200억 원으로 늘려야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된 지역에서 창업하거나 이전하는 기업에는 한도 자체를 없애겠다고까지 했다. 깎아주는 세금의 최대치에 제한이 없다는 얘기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실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 세금 때문에 물려주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타당해지려면 자녀는 아무 조건 없이 혹은 큰 부담 없이 부모의 기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기업에만 해당되어야 할까? 부모가 가진 것이라면 부동산인 빌딩도, 금융자산인 은행 계좌의 돈도, 장관이라는 직위도, 의사라는 직업도, 경찰이라는 업무도 아무 조건 없이 혹은 큰 부담 없이 모두 물려받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부모의 자산과 지위를 물려받는 사회를 우리는 계급사회라고 부르고 신분제 사회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우리의 헌법은 제11조 제2항에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고 분명하게 신분제를 부정하고 있다. 헌법정신을 강조하는 대통령이 운영하는 지금의 정부가 헌법의 규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신분제 부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가업승계 공제제도의 변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정부는 작년에 이미 자식이 가업을 물려받은 뒤 변경할 수 있는 업종의 범위를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중분류에서 대분류로 확대했다. 표현이 어려운데 쉽게 말해서 지금까지는 한식당이 다른 업종의 음식업으로 변경하는 것만 허용해줬는데 이제는 한식당이 숙박업으로 변경할 때도 허용해주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과연 이것이 1997년 우리가 생각했던 백년가게의 모습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칼국숫집에서 파스타 집으로 바뀌어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데 심지어 칼국숫집을 민박집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게 백년가게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걸 버젓이 허용하고 있는 제도가 바로 지금의 가업상속공제제도다. 도입 당시의 목표나 명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가업승계 공제제도의 문제점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이번 칼럼의 지면이 부족하다. 또 독자들도 지루해하실 수 있는 세법 이야기도 많다. 따라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 두 가지를 앞에서 언급했다. 글을 정리하면서 앞의 두 가지 외에 독자분들도 쉽게 공감하실만한, 그래서 꼭 바뀌어야 하는 중요한 세 가지를 간략히 얘기하고자 한다.   첫째로는 가업을 승계받는 자녀에 대한 조건이다. 지금은 자녀가 2년만 가업에 종사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맛집의 요리법이나 물건 제조의 기술을 2년 만에 배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가 세금 감면이라는 혜택을 주면서까지 유지되어야 할 기술력이 확보되려면 적어도 10년의 기간은 필요한 만큼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인 자녀가 가업에 종사하는 기간을 2년에서 10년을 늘려야 한다.   둘째는 사후관리기간이다. 가업을 승계했다는 이유로 세금 혜택을 받아놓고 기업을 팔아버리거나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면 안 되기 때문에 현재 5년 동안 관련 규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감독한다. 그러나 이 말은 5년이 지나면 기업을 팔거나 업종을 변경해도 된다는 말이 된다. 백년가게를 만들자는 애초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 기간도 원래는 15년이었는데 차츰 줄어서 5년이 된 것이다. 시대변화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애초대로 15년으로 늘려서 사후관리를 엄격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대상기업의 확대 문제다. 현재 가업승계 공제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쉽게 정리하면 중소기업과 매출 5,000억 원 이하의 중견기업이다. 정부는 이 대상을 확대하고자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매출 5,000억 원 이하의 중견기업도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 대상을 자꾸 늘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흔히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도 가업승계 공제제도를 활용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대상기업의 확대는 전체 사회의 경제 규모 성장에 따라 매우 신중하게 결정되어야지 현 정부처럼 무턱대고 확대해서는 안 된다.   여러 문제점을 보이는 가업승계 공제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일부나마 이 제도가 애초 목적대로 활용되는 때도 있으니 문제점을 보완해 제대로 기능하게 하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오늘은 근래 주로 논의되는 후자의 관점에서 변질된 가업승계 제도를 바로잡을 방법들에 대한 고민을 다루었다. 갈수록 답답해져 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골치가 아픈 독자분들에게 또 하나의 답답한 정보를 전달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이 글로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정책에 반대하는 분들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답답한 현실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독자분들의 이해를 구하고 싶다.
2024-09-19 | hrights | 조회: 266 | 추천: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