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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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산자수려하고 공기 좋은 괴산(槐山)에서는 가을이면 ‘홍명희(洪命熹) 문학제’가 열린다. 마치 노란비단자락을 깔아놓은 듯 황금들판이 눈부시다. 마을 곳곳에는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정취가 더욱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괴산은 <임꺽정(林巨正)> 저자 벽초(碧初) 홍명희 작가의 고향이다. 벽초 탄생을 기념하는 문학행사는 인산리 생가마을에서 열렸다. 이백 오십년도 더된 고가는 그동안 관리소홀로 헐릴 뻔했는데 그곳 유지들이 뜻을 모아 예전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전통한옥이 한 백 칸도 넘는 생가에는 한때 수십 명의 식솔들을 거느릴 정도로 지난날의 사대부가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풍산 홍씨인 벽초는 증조부가 이조판서를 지낸 홍우길(祐吉)이고 조부는 정2품 중추원 참의를 지낸 홍승목(承穆)이었다.  벽초 그는 1888년 7월 3일 금산군수를 지낸 부친 홍범식(範植)과 모친 은진 송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신학문을 접한 뒤, 일본 도쿄에 유학하여 서양문학과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탐닉한 수재였다고 한다.  당시 절친하게 지낸 춘원, 육당과 함께 조선의 삼재(三才)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삼재들의 모습이 각각 떠오름에도, 춘원과 육당의 친일행적에 대하여 아쉬움이 크기만 했었다. 그러나 벽초 만은 분단 조국의 통일의 염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벽초는 1910년 1월에 유학해 졸업을 앞두고 귀국했다. 그해 8월 29일 부친이 경술국치에 항거 자결로 순국하자, 그 충격으로 민족문제에 눈뜨기 시작했다. “나라를 찾아라! 친일하지 말라!”는 아버지 유언을 그는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았고, 가훈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19년 3월 괴산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도 치렀다. 1924년 동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과 시대일보사장에 이어 1926년 민족의 교육기관인 오산학교 교장을 지냈다. 이어서 항일단체인 신간회를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다가 카프맹원에 연류 되어 1년 6개월 수형생활을 해야만 했다.  해방이후 조선문학가 동맹위원장으로 추대되고 1948년 백범과 평양남북연석회의에 참석 후 남쪽의 정세가 긴박해 북에 잔류했다. 이어 북한의 초대 내각부수상과 IOC위원 올림픽위원장 인민회의 부위원장과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지냈다. 1986년 3월 5일 통일조국을 보지 못하고 81세에 운명하였다. 그는 평양근교 애국열사릉에 잠들었다고 한다.  그는 식민지시대에서 일제에 타협하지 않는 애국지사였다. 만해가 독립운동가요 민족시인이듯, 벽초 또한 해방운동지도자요 남북근대문학사상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필생의 역작, 대하소설인 ‘임꺽정’도 남북 동포들이 애독하는 소설로 영원히 남아 있다. 또한 작품으로 ‘학창산화’(學窓散話)가 1926년 ‘조선도서사’에서 발행되기도 했었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양주 백정의 아들인 임꺽정이 의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60년대 말에 ‘임꺽정’이란 영화를 관람하면서 임꺽정의 정의로운 행동에 크게 감동했었다. 나도 그와 같은 의로운 사람이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임꺽정>이 세상에 나온 뒤 금서와 저작권 문제로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사계절 출판사에서 북의 소설 <황진이>를 쓴 벽초의 손자인 홍석중 작가와 저작권계약을 맺고 벽초 탄생기념으로 임꺽정 소설 전권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는 남북문학작품교류에 큰 장을 열었고 남북의 독자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임꺽정 행사는 벽초의 생가가 있는 인산리에서 선산이 있는 제월리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괴강이 유유히 흘러 산수화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제월광장에는 벽초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었고 비 앞의 통일노둣돌에다 많은 문인들의 친필이 새기어있었다. 나도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을 노둣돌 한 장에 손수 써 놓았다.  금서였던 북쪽 작가의 글이 일부 해제되면서 홍명희 문학비가 세워졌다. 그런데 지역 보수단체들이 이념과 사상을 문제 삼아 강제 철거했다가 4년 후에야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탈냉전 시대가 끝난 지 오래지만 문학에도 여전히 이데올로기 갈등이 일고 있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더구나 벽초의 부친 홍범식은 경술국치에 목숨까지 바쳐 순국을 했는데도, 조국분단의 아픔에 아랑곳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광장에는 임꺽정 소설에 등장한 인물의 모습이 담긴 걸게 만장이 펄럭이고 풍물놀이패가 신명나게 판을 벌였다. 마치 임꺽정 소설에 나오는 서민들의 큰잔치처럼, 참석한 문인들도 막걸리를 나무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벽초의 임꺽정을 그리움에서 어우러진 두레의 판이었다.  <임꺽정>은 벽초의 탁월한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남북의 역사소설에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비록 대하장편 열권이지만 봉단편, 양반편, 의형제편, 화적편 등 여섯 분류의 편들이 각각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많은 분야의 독서와 조선조실록을 탐독했기에 임꺽정 시대의 실상을 잘 묘사한 최고의 역작이었다.  소설 <임꺽정>이 미국 마가릿 미첼 작가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단 한편의 불변의 명작이라는 것 또한 대단했다. 진정 벽초의 소설 <임꺽정>은 분단조국에서 오직 통일만을 꿈꾸고 실현하려는 의지의 민족작가가 쓴 소설임을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었다. 벽초 홍명희 문학비 사진 출처 - 구글  이날 벽초의 문학을 평론한 강 교수와 자리를 함께하면서, 내 외가가 나주풍산 홍씨라 했더니 그는 홍명희 선생의 조부가 나의 외가인 전남 나주 풍산리에서 이곳 괴산으로 양자를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벽초 작가는 내 외가의 형님 되는 희(熹)자 항렬이었다. 나는 그의 문학비 앞에 더욱 다가가서 묵상을 올렸다.  이 땅에 분단만 아니었다면 벽초는 물론 남북의 문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하였다면 보다 한반도 문단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노둣돌에 새긴 글처럼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오고 마는 그날만을 더욱 기원하기로 다짐하였다.  나는 벽초 작가의 고향에서 그동안 써온 소설과 수필을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단 한편의 작품이라도 당신처럼 격조 있는 작품으로 사랑받는 글을 써야 한다고 다짐했다. ‘임꺽정’의 정의로움과 앞으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 생각하면서!!
2019-09-18 | hrights | 조회: 43 | 추천: 0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이차대전 기간 중 자행되었던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은 식민지배의 폭력성이 전쟁이라는 사건 속에서 구체화된 하나의 비극적 사례였다. 종전 후 일본, 적어도 일본정부는 한 번도 전쟁과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보상과 배상,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거부가 부딪쳤을 때, 사건의 표면에 드러난 것은 경제 분야의 교류를 둘러싼 긴장이었지만, 배후에는 오래 묵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갈등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대법원의 판결 후 양국 정부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시민사회에는 반일정서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들이 머리를 숙이고 우리와 손을 잡았지만, 아베 정권의 오만함과 일본의 극우세력이 부추긴 ‘혐한’ 분위기 또한 사소하지 않았다. 하나의 사안을 둘러싼 양국 정부의 온도차는 컸고, 시민사회의 분노는 한여름의 열기보다 뜨거웠다. 소년의 나이에 징용공으로 끌려갔던 이춘식 씨는 95세 노인이 되어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이 모든 사태에 어쩔 줄 몰랐고, 끝내 “나 때문에...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 개인의 삶이 전적으로 그 자신의 의지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저항할 수 없는 제국의 폭력에 떠밀려 징용공이 되었던 이춘식 씨의 경우는 예외적인 개인사가 아니라, 어둡고 고통스러운 한국근현대사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며 그의 고통에 마음을 보탠다. 과거와 현재는 이런 식으로 이어져 있다. 시인 김시종의 말처럼, “사람은 이어진다/ 연고와 이어지고 일과 이어지며/ 세속에 녹아들어 대중”이 (「이어지다」)되기도 하고, 불편부당에 맞서 함께 싸울 때 동지로 거듭나기도 한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와 재일 원로시인 김시종 씨(오른쪽)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국과 일본 사이에 날카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재일(在日) 한국인들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차별과 불편은 그들의 유구한 일상이었고, 특정한 사건들 속에서 그들은 자주 폭력과 혐오의 타깃이 되어왔다. 이 여름의 분위기가 또 그들에게 어떤 불안과 고통의 짐을 지우는 건 아닐까.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삶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에게 ‘재일’은 여전히 멀리 있다. 보이지 않는 그들, 한국에도 북한에도 일본에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들이 일본 땅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마음껏 일본정부를 비판하고 규탄하고 싸움을 벌이는 이 순간에도 바깥에 있는 그들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 그들은 대부분 분노를 감추고 숨을 죽인다. 이것이 어쩌면 ‘재일’의 운명이고,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재일을 산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들여다보면 ‘재일’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전쟁무기를 제조하는 공장에서 노역하는 재일도 있었고, 그들에게 차라리 굶을 것을 설득하던 재일도 있었다. 조선어와 의복을 고수하며 폭력의 타깃이 되기를 자처하고 ‘본명선언’을 통해 입신출세의 길을 스스로 봉쇄하는 ‘재일’도 있지만, 조상의 언어와 고향을 기억에서 지움으로써 스스로 일본인이 되고자 애쓰는 ‘재일’도 언제나 있어왔다.  그래서 김시종은 “저는 목소리가 없어요/ 소리를 지를 만한 의지처가/ 제겐 없어요/ 그저 중얼거릴 뿐/ 목소리는 제 귓속에서만 울리고 있어요”(「창공의 중심에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는 언제나/ 빛 속에서 검어진다”(「조어(鳥語)의 계절」)고 했을 때, “이젤에 기대어 있는 망향처럼 비상(飛翔)은 오로지 재일(在日)의 한가운데에서 시들고 있다”(「전설이문」)고 했을 때, 그는 어쩌면 ‘불길한 검은 새’와 감응하며 삶과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청년 이춘식이 일본의 한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을 때, 제주 소년 김시종은 황국신민을 꿈꾸었다. 하지만, 해방 후 소년은 4.3항쟁의 일부가 되었고,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다시 일본 땅에 스며들어 공산주의자로, 조선어 선생으로, 시인으로 ‘재일’을 살았다. “정주(定住) 외국인인 조선인” 김시종은 ‘마음의 지평’에서나 “조상의 땅과 제주도가 재일(在日)과 섞여들어”(「여행」) 감을 감각할 만큼 오래 나라 바깥에 머물렀고, “겸손하지 않으면 견딜 수도 없다/ 둔해지지 말고 썩지 말고 늘어지지 말고/ 소박하게 보듬으며 앞을 양보하자”(「여름 그후」)라고 말할 만큼 파란만장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의 눈높이에서 ‘재일’은 역사의 피해자나 제국 안의 약자가 아니며, “재일을 산다는 것은 틈새나 간극의 고통이나 불편함을 오히려 긍정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진경,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이 된다.  이 여름의 끝에서 아흔 넘은 두 노인, 청춘의 나이에 식민지를 살았던 그들의 목소리를 생각한다.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그들이 공유했던 고통과 상처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이어져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마음의 한쪽 끝자락을 붙잡아 역사의 다음 페이지에 이어 붙이고 있는 중이다.
2019-08-28 | hrights | 조회: 138 | 추천: 4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2019년 8월 6일(화)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서안 깊숙한 곳에 2천 3백 4채의 이스라엘 정착촌 주택을 건설하도록 승인하였다. 8월 10일(토), 이스라엘 군에 의해서 포위된 가자와 이스라엘 경계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 쪽에 있던 팔레스타인 4명을 사살하고, 사체를 가져갔다. 8월 11일(일) 이슬람희생제 첫 날, 점령지 동예루살렘에서 무슬림들이 알 아크사 모스크로 들어가려는 450명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저지하자, 이스라엘 경찰이 알 아크사 모스크 내에서 고무탄과 최루탄을 발사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무슬림 6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서안, 가자, 동예루살렘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22%이며, 1967년 6월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영토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서안과 가자 지역에서 팔레스타인국가 건설을 원한다.  1948년 5월 이스라엘국가 건설과 함께 발발한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마을 50% 이상을 파괴했으며, 팔레스타인 아랍인 중 약 75%(72만 6천명)를 축출하면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78% 영역을 넘어서 나머지 22%, 즉 팔레스타인 전역에 대한 주권과 지배권 확장을 획책하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침략 정책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를 건설할 권리가 있다는 시온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시온주의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현대 유대인들은 1세기에 로마에 의해서 팔레스타인 땅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의 후손들이며, 독점적인 상속인들이다. 오늘날 조상의 땅으로 귀환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천부적인 권리다.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하나의 민족으로 유대민족’은 항상 존재했다.”이다. 이를 바탕으로 시온주의자들의 목표는 예루살렘(시온)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국가 건설 사업은 1차 세계 대전 직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7년 영국이 내놓은 기획,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고향 건설’이라는 밸푸어선언은 시온주의를 비현실적인 꿈으로부터 성취될 수 있는 사업으로 변형시켰다.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총리 재직:1916-1922)는 ‘영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되어야한다고’ 결정하였고, 영국은 시온주의자들을 영제국의 이익 보호를 위한 동맹으로 만들었다. 1920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는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에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당시 영국의 기획에 반대하는 反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음은 1919년 3월 4일 미국 내 反시온주의자 유대인들 300명이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서 작성한 성명을 발췌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충돌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과 이스라엘 경찰 사진 출처 - 연합뉴스 反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의 성명, 1919년 3월 4일 ▶ 미국 시민들인 우리는 미국과 유럽에 있는 시온주의자 단체들이 제안한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에 반대하며, 어떤 나라에서든지 유대인을 민족 단위로 분리하여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 가장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 시온주의자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중 소수, 즉 전체 350만 명의 유대인들 중 단지 15만 명을 대표한다. ▶ 우리는 유대인을 민족 단위로 재조직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의 요구에 맞서 소리 높여 경고하고, 항의한다. 시온주의자들은 현재나 미래에 민족 단위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서 영토 주권 수립을 약속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민족 고향 건설’이라는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거부한다. ▶ 시온주의는 러시아와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강요된 견딜 수 없는 환경 결과 발생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6백 만 명에서 1천 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 국가 유대인들의 고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러시아와 루마니아에서의 유대인 문제는 이 국가들이 유대인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각 국가 내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 우리는 유대인을 정치 단위(민족 혹은 국민)로 구분하는 것에 반대한다. ▶ 팔레스타인은 종교, 인종, 혈통에 구별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적인 정부 형태로 통치되어야 하며, 그 정부는 어떠한 종류의 억압으로부터도 나라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나 미래의 어느 때라도 팔레스타인이 유대인 국가로서 조직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反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은 이 성명서를 윌슨 대통령에게 보내면서,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이 성명은 ‘시온주의자 국가에 맞서 윌슨에게 이의 제기: 유대인 대표들이 윌슨에게 이 성명서를 파리평화회의에 제출 요구’라는 제목으로 1919년 3월 5일자 뉴욕 타임즈에도 실렸다.  이 성명에 따르면, 당시 시온주의자들은 다수 유대인들의 대표가 아니었으며, 대다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영토 주권을 가진 민족 단위로 재편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의 기획에 찬성하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국가 건설 운동은 유럽에서 탄압받던 유대인들의 간절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전략적인 전초 기지로서 팔레스타인 땅을 확보하고자하는 영국의 기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은 反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의 제안서를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하지 않았다. 따라서 파리평화회의에서는 영국과 시온주의자들의 기획이 실행되었으며, 2019년 현재에도 이 기획은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협조로 실행 중에 있다.
2019-08-13 | hrights | 조회: 313 | 추천: 4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용산에서 화마에 쓰러져 가는 철거민들에 대해서도, 잊을 만 하면 생기는 작업현장의 사고로 희생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건이 되고나면 그나마 여기저기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도 얘기해 보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아니, 이 나라는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살기에 너무 바쁜 세상이므로.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하는 것 같다. 매일 30도를 훌쩍 넘는 혹서가 계속되는 와중에, 서울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강남역 사거리 전봇대 위에 한 사람이 단식농성 중에 있다. 그는 이미 25년째 삼성과 투쟁 중이다. 그의 나이가 이제 60이 되었다 하므로 35세 때부터 지금까지, 말하자면 오롯이 한평생을 싸워온 셈이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지난 날 자신이 부당해고를 당했으므로 삼성은 이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을 복직시켜 달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의 정년이 지났으므로 사실 복직은 불가능하다. 남은 것은 삼성의 책임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벌어진 삼성의 각종 불법행위 – 그 자신에 대한 감금과 협박, 그의 아내에 대한 성폭행 미수 및 그의 가족에 대한 협박 등 – 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처벌해 달라는 생각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런 요구까지는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벌써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절박하고 한 서린 그의 외침을 우리 모두는 듣지 못한다. 매일, 매시간 수만 명의 사람이 오가는 강남 사거리에는, 붉은 글씨 선명하게 내걸린 현수막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매달린 그의 존재를 깨닫는 사람이 별로 없다. 투신에 대비해 에어매트가 깔려있고 한편에는 경찰차량이 항시 대기 중이지만, 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저 평소대로 한쪽에서는 즐기고 한쪽에서는 일을 하며 바쁘게 오갈 뿐이다.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사람이 먼저’라는 현 정부가 가져야 할 태도인가. 청와대는 물론 노동부의 어떤 관료가 현장에 와 보았다거나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한일 갈등으로 북핵문제로 바쁘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풀기 어려운 현안들이 늘 산적해 있음을 잘 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한 사람이 목숨을 내걸고 주장하는 이 상황이 이렇게 무시 되어도 되는 것인가. 혹 어쩌면 그 이유가 이 사람이 싸우고 있는 상대가 ‘삼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인가. 서울 강남역 사거리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기둥 위 김용희씨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21  언론도 마찬가지다. 농성이 시작된 지 40일이 지나도록 주요 일간지와 방송들은 이 뉴스를 전하지 않는다. ‘민중의 소리’나 ‘매일노동뉴스’ 같은 조금은 특수한 매체에 몇 번 언급된 것이 고작이다. 그의 주장이 들을 만한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해서인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잘못 되었다고, 자신은 노조를 조직하려다가 해고당했다고, 그래서 명예회복과 복직을 원한다고 말하는 그의 절규는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만일 언론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그의 외로운 싸움은 성공할런지도 모른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다수의 비난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이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모두가 침묵한다. 못 본 척 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보지 않는다. 다시, 무엇 때문인가. 솔직히, 한국 최고의 기업이자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은 아닌가. 대한민국 주요 언론사의 최대 광고주로서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삼성의 경제력 때문 아닌가. 심지어 ‘그래, 삼성이 조금 잘못했다 한들 어떡하겠어.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삼성은 잘 돼야지. 이렇게 어려운 경제상황에’ 라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현실주의 때문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그의 생명은 타들어간다. 평소 79kg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이제 50kg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온몸의 지방과 근육은 이미 다 소실되었으며 이제 최소한의 생명유지가 쉽지 않은 상태라고 의사들은 경고한다. 이런 사람을 방치하는 사회, 정부와 언론, 나아가 우리 모두는 죽음의 (어쩌면 살인의) 방관자이다. 아니, 공모자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삼성에게 호소한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삼성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추상적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인권경영’을 운위하기 전에, 뜨거운 폭염에 숨조차 내쉬기 어려운 한 노동자의 생명을 건 외침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떤가. 백번 양보하여, 삼성의 주장대로 그가 예전에 일하던 회사가 이제는 더 이상 삼성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삼성으로서는 어떤 법적 책임도 지기 어렵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지난 날 그에게 가했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남는 것이 아닌가.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힘없는 한 노동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대강자로서 최소한의 사과와 위로를 할 생각은 없는가. 이나마 가능한 시간은 이제 얼마 되지 않는데 말이다. 도대체 이미 공룡처럼 커져 버린 이 거대기업은 누구의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제 삼성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답할 차례이다.
2019-07-24 | hrights | 조회: 284 | 추천: 9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강자의 논리에 따르면, 약자는 강자에게 지배받아 마땅하다. 이때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겉으로 보면, 무력이 더 우세하면 강자고 그렇지 못하면 약자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보면, 무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 강하면 강자고 그렇지 못하면 약자다. 또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보면, 자유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강자고 목숨을 위해 자유를 버리는 자는 약자다.  강자의 논리는 개인들보다 집단들 사이에서 더 잘 작동한다. 개인은 쉽게 눈에 띄지만, 집단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내놓고 자신이 더 강하다고 내세우는 자는 자칫 속물로 취급되기 쉽다.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집단들 간에는 강자의 논리가 집단 무의식적으로 쉽게 표현된다.  자신들이 강자라고 여기는 집단은 약자라고 여기는 집단을 덜 인간화되어 있고 그만큼 더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약자의 집단은 자유보다 생명을 더 중시한 나머지 굴욕과 예속을 수치라고 생각지 않고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우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강자의 논리는 보편적인 원칙이나 가치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목숨보다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를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자들에게까지 자유를 허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자의 논리에 따른 자유의 원칙은 보편적이지 않다. 그래서 약자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인권을 말살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했던 과거를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현재 그들보다 더 강한 자들에게만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약한 탓에 식민의 예속을 경험한 집단은 강하기에 식민의 지배를 부린 자들에게 잘못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항간의 말은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는 시대적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강자의 논리에 따르면,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자유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다.”라고 한 사르트르의 말은 강자를 지칭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근본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다.  강자에게 저항하지 않고 친밀하게 굴고, 친밀하게 구는 것을 건방지다고 여기면 일정하게 굴복하고, 굴복하는 것마저 부족하다고 여기면 아예 예속되어서라도 생명을 보존하는 것은 약자에게 할당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기는 것은 약자의 논리다. 하지만 이런 약자의 논리는 강자의 논리에 속해 있다. 그 핵심은 ‘약자는 자유로울 자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생명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 역시 아무도 없다.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헤겔은 자유를 위해 생명을 저버릴 수 있는 자는 주인이고, 생명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노예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예는 주인의 노예가 아니고 생명의 노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자기의식에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공존하면서 투쟁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강자라고 여기는 자에 의해 나에게 극단적인 위기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한 번만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서 목숨을 애원할라치면, 같은 자기의식의 다른 곳에서 ‘죽일 테면 어디 죽여봐!’ 하고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자기의식에서 이같이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일어나 충돌을 일으켜 싸우기도 하거니와 한 집단 안에서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일어나 충돌을 일으켜 싸우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한쪽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위기에 처했는데 자존심이니 자립심이니 하는 한갓 감정을 내세워 무책임하게 잘난 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우리의 생명이 과연 그렇게 허약한 것은 자립심도 자존심도 없는 맹목적인 생명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인과 노예의 대결은 쉽게 주인의 승리로 끝날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헤겔에 따르면 주인은 노예의 노동에 의존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길든다. 다른 한편 노예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생산물을 통해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주인은 노예의 노예가 되고, 노예는 주인의 주인이 된다.  타인의 생명을 겨누고 노리는 자는 기실 타인의 자유를 겨누어 탈취하고자 하는 자다. 자유는 생명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따라 생명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것과 약하다는 것의 판별은 얼마만큼 자유를 위해 생명을 활용하는가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의 전략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 보 후퇴에 스며들어 있는, 오로지 목숨 부지를 위한 기회주의적인 속내를 정확하게 제거하기가 전혀 쉽지 않다. 이 보 전진은 핑계일 뿐 일 보 후퇴가 바로 투항이기 쉽다. 특히 그동안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계속해서 싸워 온 자가 아닐 경우 더욱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생의 최선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행복은 인간 고유의 기능인 “탁월성에 따른 이성적인 영혼의 활동” 자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탁월성에 지적인 탁월성과 성격의 탁월성이 구분되어 있다고 말하고, 성격적 탁월성의 핵심을 중용이라고 했다. 죽음이 두렵다는 감정을 가지면서도 정의로운 일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중용에 의한 용기라고 말한다.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나아가면 만용이 되고, 죽음을 너무 두려워해서 물러서면 비겁함이 된다고 했다. 매사에 중용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지혜를 ‘프로네시스(phronēsis)’ 즉 ‘실천적 지혜’라고 말하면서,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여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자유를 위한 이성적 활동을 포기하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사진 출처 - 구글  삶은 습관이다. 많은 물질적 여유를 누리다가 그러지 못하는 처지가 되면 불행하다고 여기고, 조금의 물질적 여유만을 갖다가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면 행복하다고 여긴다. 모두가 가진 것을 잘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누면 풍족한데, 거머쥐고 있으면 부족하다. 집단 구성원 모두가 자유를 위한 생명을 추구한다면, 나누는 일을 더욱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두려움은 거머쥐게끔 하고, 거머쥐게 되면 그만큼 부족하다고 여기게 된다. 위기가 닥치면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되어 드러난다. 위기가 기회인 까닭이다.
2019-07-24 | hrights | 조회: 81 | 추천: 3
이 윤/ 경찰관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탱자나무 가시는 보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억세고 촘촘해서 근처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시골집에서 담장 대신 많이 사용되었다. 그 나무에도 열매가 달렸다. 다만 여름방학에 본 탱자는 매우 단단하면서도 쭈글거려서 일단 식재료의 외관이 아니었고, 냄새도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억센 가시로 인한 접근 불가능성, 단단한 과육과 떫고 시큼한 냄새는 번식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진화 사례로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만했다. 탱자는 내게 ‘너, 나 먹을 용기 있어?’라고 묻는 것 같았다. 탱자야, 미안해!! 나에겐 그 정도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동생에게 먹어보라고 했어.  뉴스를 보면서 ‘좌파/우파’라는 단어가 들리면 귤화위지의 고사가 떠오른다. 유럽에서 건너 온 좌파라는 말이 때로 종북이라는 말과 함께 패키지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탱자가 된 것 같다. 처음에 좌익/우익이 사용된 것은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 의회에서다. 의회 의장이 볼 때 왼쪽에 공화파가 앉아서 ‘좌익’,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아서 ‘우익’이라고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후 공화파들이 장악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도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왼쪽에 앉고, 보수적인 지롱드파가 오른쪽에 앉았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보수적이거나 혁명 진행에 소극적이고 온건한 세력은 우익으로, 상대적으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세력은 좌익으로 나누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좌익과 우익은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다. 1815년 이후 극우, 극좌, 중도 우파, 중도 좌파 등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지만 좌/우라는 용어가 특정한 정치적 이념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좌익은 ‘자유, 평등, 조합, 권리, 진전, 개혁, 국제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우익은 ‘권위, 위계, 질서, 의무, 전통, 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위키피디아 참조). 요즘 ‘좌파’라는 말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이런 특징을 알고 사용하시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좌우파의 기원이 된 국민공회(국회)의 자리 배치. 의장석을 기준으로 급진적인 자코뱅파는 왼쪽에 앉았고, 보수적인 지롱드파는는 오른쪽에 앉았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이렇듯 좌파/우파가 귤일 때에는 특정 이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급진적 개혁을 선호하면 좌파, 과거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조금씩 개선하는 것을 선호하면 우파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으로 건너와 탱자가 되면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직후인 1945년 말 발표된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1946년 1월 신탁통치 찬성 편에 가담한 공산주의자들과 그 주변세력을 좌익, 반대편에 가담한 이승만·한민당 세력을 우익으로 호칭하였다. 그 후로 다른 내용들은 증발하고 ‘좌익=공산주의’와 ‘우익=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등식만 남은 것으로 여겨진다. 용어의 역사적 맥락은 무시하고 당시의 시대적 특징을 대변하는 내용만을 반복하여 사용한 결과일 것이다. 낮은 문맹률이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등식이 아직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미스터리이긴 하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은 좌파일까, 우파일까? 민주주의를 주권재민으로 해석한다면 권리의 평등, 결정에의 공정한 참여가 그 핵심적인 요소인데, 여기에 자유를 합하면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향유하고, 공동체의 결정에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참여함을 의미하는 것이니, 자유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할 뿐 방향성과 속도를 내포하지 않으므로 좌파/우파로 구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의 상태로부터 혁신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려 하면 좌파일 것이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느리게 변화하고자 한다면 우파일 것이다. 굳이 억지로 구분한다면 위키피디아에 의할 때 자유, 평등이 좌파의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자유민주주의자는 좌파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 나는 경찰관으로서 권한이 집중된 국가경찰제도보다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완전한 형태의 자치경찰제를 선호한다. 경찰기관이 정책이나 의사를 결정할 때 주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사구조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 검사의 직접수사권, 수사지휘권, 기소재량권 및 독점권,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없어지기를 원한다. 아마도 권한이 한 곳에 집중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이끌려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인 듯하다. 어릴 적 군인이 되고 싶기도 했는데, 아찔하다. 따라서 경찰 권력구조와 수사구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체제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라서 급진적인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경제체제에 대해서라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자유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도 공평한 기회, 공정한 경쟁, 성과에 대한 합리적 분배, 노력과 근로에 대한 합당한 보상,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원한다. 사회 내의 불공평, 불공정, 불합리, 부당함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갑자기 뒤집어져 혼란해지는 것은 싫다. 경찰관에게 혼란과 무질서는 곧 바빠지는 업무와 위험을 의미하기에 싫기도 하지만, 그런 혼란 자체가 초래하는 불안함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 연금제도나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경제체제 문제에서 나는 우파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퉁쳐서 좌파 또는 우파라고 규정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 스스로도 내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 수 없고, 또 원래 그런 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책과 환경에 따라 좌파일 수도 있고 우파일 수도 있다. 이제는 좀 ‘좌파=진보=공산(사회)주의자’, ‘우파=보수=자유민주주의자’라는 잘못된 프레임을 그만 듣고 싶다. 들을 때마다 탱자의 떨떠름한 시큼함이 느껴진다. 나는 잘못된 말을 들으면 지적질을 하고 싶은 고약한 성격인데, 방송에서 그런 발언을 들으면 지적질 못하는 것이 매우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허리가 자주 아프다.  한 번 탱자가 된 귤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역진화가 가능할까? 도대체 이 탱자가 된 ‘좌파/우파’를 어떻게 귤로 되돌릴 수 있을지...
2019-07-16 | hrights | 조회: 136 | 추천: 3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세상에 태어나 생의 삶을 다하면 고종명(考終命)에 이른다. 이순(耳順)을 지내고 칠순(七旬)에 이어 팔순(八旬)을 바라보면서,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내 생애를 아름다운 삶으로 고종명 할 수 있을 것인 가다. 인생은 출생도 중요하지만 생의 마무리를 잘해야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였다.  내 삶이 어느 사이에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을 보냈다. 반백년 전에는 고려장 감의 나이라 했다. 칠순나이를 인생 칠십 지금시(人生七十只今時)라고들 했었다. 수명이 늘어나 팔순을 넘어서 구순, 그리고 백수까지도 살아 계신 분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의 행복이 오랜 수명을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이라고 한다. 뜻하지 않은 지병으로 자주 병원과 치료약에 의존하여 생을 유지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장수가 아닐 터이다. 나이 들어도 자신이 스스로 해내는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고들 한다.  내 살아온 세월은 그야말로 격동기였다.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보면 ‘평화롭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주변 패권주의 국가들의 징검다리처럼 여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터이다. 우리 선대들은 지난날, 치욕적인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조국의 광복과 해방을 염원하면서 모질게도 살아 왔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맞이한 광복은 바로 분단에다 이념갈등이 고조되었다. 아울러 남북분단이 계속되더니 결국은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치러 내야만 했다.   이런 세월에 그동안 나는 어찌 살아 왔는가. 돌아보면 일제 말, 태평양전쟁이 나던 해에 태어났었다. 어린 나는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어른들과도 함께했다. 이어3년의 미군정이 끝나고도 남북이 통일 된 나라가 아닌, 3.8선을 그은 분단 정부를 각각 세우고 말았다.  결국 분단과 좌우갈등은 계속되고 하나 된 민족의 통일정부는 요원하기만 했었다. 오직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정권을 세우고 말았다. 분단으로 인한 6.25 전쟁은 많은 동포들의 죽음과 민족 갈등을 가져왔다. 7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전쟁은 더욱 큰 아픔과 고통이었다. 아까운 목숨들을 잃고 참적의 세월을 살아가야 했던 남북의 동포들이었다. 또한 분단으로 인한 갈등으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상을 덧씌워 더욱 아픔을 안겨준 일들을 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전쟁과 분단이 남긴 아픔은 끝이 없었다.   또한 전쟁을 겪은 어린 나는, 6.25를 전후해서 우리 집의 장남인 22살의 맏형과 26살의 외삼촌 그리고 당숙들, 심지어는 머슴들까지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사실을 목도했었다. 인간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죽임을 당하고 또한 서로를 죽이는 참상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복무 중, 1965년 1월에 군에서 제대 3개월을 남기고,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을 지원했었다. 당시 나는 그 위험한 전쟁에 어찌하여 명분도 없는 월남전에 지원하였는가? 오직 신원조회 통과여부와 경험을 위한 모험이라지만 더구나 용병이라는 사실에 곧 후회했었다.  그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참전할 용기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목숨은 하느님에게 맡기기로 했었다. 전후방이 없는 전쟁터에서 몇 차례 교전이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참전 했었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왔지만 곧 후회를 했다. 우리 분단조국에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베트남에 통일을 방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을 이기고 통일을 이루어 냈다.  베트남 전쟁에서 귀국한 나는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의 꿈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다. 분단을 허물기 위해서는 통일운동을 솔선해서 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북은 각 각 여러 방식으로 통일을 위해 줄달음 쳤지만 강대국들의 등살에 모두가 허사였다.  우리 남북에 초기에는 북진통일론에서 멸공, 승공, 반공, 무력, 심지어는 흡수통일론까지 폈지만 무리였다. 북 또한 6.25를 해방통일의 유일한 기회로 생각했다지만 착각이었다. 이로 인해 남북은 전쟁으로 인한 천만의 이산가족을 양산하고 말았다.  그동안의 통일방안에 종지부를 찍은 6.15 선언으로, 남북의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만이 한반도 통일방안이었다. 한 세대 전, 베트남의 통일을 무력통일이라 하지만, 사실은 민족통일이었다. 우리에게도 오직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이 주변국들과 함께 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사진 출처 - 서울교육  내 살아온 생애와 남은 삶은 오직 전쟁이 아닌 평화다. 과연 한반도의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통일이 언제 이루어질까. 73년의 지구촌 최장기 분단은 부끄러운 너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8천만 동포들이 우리소원은 평화통일이라고 간절히 노래하고 있지 않는가.  지난 73년 전, 맏형이 꿈꾸었던 하나 된 조국통일에 대한 여망을 팔순을 맞이할 아우가 부단히 진력하고 있다. 허나 우리 민족사에 아니 세계사에 길이 남을 통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는 분단으로 인한 슬픈 가족사가 있다. 할머니와 부모님과 내가 함께한, 효열 집안의 전효당 가훈을 실천하는 일도 내겐 중요하다.   아름답게 마무리할 삶의 끝자락은 가족들과 그리고 내 인연들의 건강하고 평화로운 고종명(考終命)이다. 그리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분단조국이 아닌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로 하나 된 조국과 민족이리라. 우리 남북 8천만 동포는 그 어느 때 보다 한반도 평화통일 기운이 서린다며 진정으로 통일의 그날을 꿈꾼다.    앞으로 많지 않게 남은 내 생애, 지구촌 세계 평화는 물론, 분단을 허물고 삼천리금수강산에 통일의 꽃이 만발하는 그날이 오기를 진정으로 소원한다. 한결같이 우리의 소원,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이 우리 내 고종명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일 것이다.  분단조국 삼천리금수강산에 평화통일의 그날을 온 8천만 동포들이 기원한다.
2019-06-19 | hrights | 조회: 208 | 추천: 2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6월 3일, 지인이 올린 글은 5월 29일에 있었던 경찰대학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강사 당사자가 당하고 느낀 상황들, 그로인한 분노와 당혹감, 좌절 등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은 우리 모두는 역시 분노와 어처구니없음을 함께 느꼈다. 그리고 당일저녁 TV 방송인 ‘스트레이트’에서는 ‘정보경찰’의 정권에 대한 무한 아첨과 아부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점에서 경로당까지 대중동향을 파악하고, 심지어 역술인의 점괘까지 동원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대응전략이 필요한지 까지 제시하며 정권유지를 위해 복무해온 경찰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한 정권의 모습에서 경찰이 다만 검찰에 비해 약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권의 독립, 경찰의 독립,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개혁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치안정책과정>의 ‘성 평등’ 교육장에서 보여준 그들의 행태와, 시민의 인권이 아니라 정치권의 권력에 아첨하는 모습은 경찰의 독립이나 자치제로의 변화는 성급한 것을 넘어 결코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지난해 혜화역 붉은 시위에서 여성들은 여경을 90%로 하라고 주장하였다. 현재 여경은 1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90%에 대한 요구는 그동안 경찰들이 여성문제 혹은 여성인권문제와 관련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보여준 편파적인 수사결과 때문이었다. 불법촬영이 이루어져도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와 여성인 경우에 대한 수사 과정이나 결과가 판이한 것에 대해, 결국 경찰들이 대다수 남성들이기 때문에 남성카르텔이 당연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남성에 대해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는 본질을 꿰뚫은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오랜 관행을 깨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옳았다.  교육을 해본 이는 대체로 알 수 있다. 하나의 교육을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관련 자료의 수집, 분석, 현실 사례 발굴과 분석, 어느 땐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한 요구조사까지, 제대로 된 교육의 효과를 위해 많은 시간의 지적, 감정적, 신체적 노력을 기울인다. 교육생들과 어떻게 하면 같이 호흡하며 교육의 장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교육안을 만든다. 왜냐하면 인권의 관점에서 교육이란 일방적, 소위 저금식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교육의 장, 교육의 과정자체가 인권이 발현되면서 상호 인식전환, 인권의식의 상승, 인권지식의 확장, 인권 고양의 장이 되는, 즉 교육자와 피교육자 상호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교육의 내용과 결과를 구성해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5월 29일에 있은 총경(경찰서장)급 간부들이 보여준 성평등 교육과정에서의 ‘분탕질’에 대해 분노한다. 이는 기본 중에 기본인, 그리고 경찰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간/ 인권에 대한 예의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 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오만함이다. 결코 시민이나 국민의 인권이 자신들의 존재이유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식한 행위와 태도일 뿐이다. 이러한 태도, 교육자를 무시하고, 토론을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커피를 마시며, 잡담이나 하고, 통계에 대해 시비를 걸며,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주장으로 교육자를 업신여기거나 항의하는 태도들은 분명히 혐오적이다. 때문에 이러한 혐오는 이들이 권력을 가진 자이자 권력을 가졌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혐오는 피권력자는 가질 수 없는 정동이다. 피권력자는 권력자의 혐오에 대해 분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경찰집단의 권력에 대한 오만함이자, 인권과 성에 대한 편견이다. 지난해 8월 경찰청에서 열린 성평등 감수성 교육 모습 사진 출처 - 경찰청 “누군가 뒤에서 ‘피곤한데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그냥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을 무시하고 토론 방법과 시간을 설명하고 조별 토론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조별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별 토론 시작을 알리는 순간, 15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다. 조별 토론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귀찮게 이런 거 왜 하냐’는 불평이 나왔고, ‘졸리다’, ‘자, 커피나 마셔볼까’라면서 우르르 자리를 이탈했다.” “이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50대 여자 박사인 강사와 그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성 평등이라는 주제 자체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강의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되었다.”  곧 경찰 최고 간부가 될 이들에게는 자신이 교육의 대상, 그것도 성 평등이라는 주제의 피교육생이 된다는 것, 나아가 여성이 강사라는 것, 여성박사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자격지심 등은 평소 이들이 여성과 여성들의 경험에 대해 얼마나 혐오적인 태도를 가졌는가를 보여준다. 혐오는 인권과 같이 갈 수 없다. 정보경찰이 정권을 위해 한 짓들이나 성 평등 교육에서 이들이 보여준 만행들은 경찰집단의 인권의식의 천박함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민갑룡 청장은 권고를 했다고 하지만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경찰대상의 성 평등 교육의 실태조사, 내실 있는 교육을 위한 지침마련, 나아가 지난 29일 교육에 참석한 이들의 진급제외 혹은 징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및 자치경찰제 도입이라는 개혁을 경찰집단이 원한다면 그에 맞는 행태들을 해야 할 것이지만 현재 이들의 모습에서 개혁이후의 경찰이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거나, 여과 없이 드러난 이들의 행태에서 반 인권적, 반성평등적인 태도가 이들 집단의 문화, 관습, 관행이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대한 기대는 경찰집단 스스로의 이유와 원인으로 인해 점점 더 소원해질 것이다. 그 결과는 그들이 감내해야 할 것이다.
2019-06-05 | hrights | 조회: 227 | 추천: 3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정치는 이성적 행위다.  개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를 통해 생명을 얻어 현존한다. 어릴 때 부모의 보살핌이 없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어느 누구건 간에 가족의 도움과 함께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개개인의 욕망의 형성과 실현의 부단한 변화와 발달은 철저하게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욕망 실현을 둘러싸고서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충돌을 제 스스로 조정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이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자가 이성을 발휘하여 사회 전체적인 욕망과 이익의 충돌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데서 정치가 성립한다. 그래서 이성은 정치적 이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정치의 필요성은 욕망에 근거하지만,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은 이성에 근거한다. 정치의 필요성이 욕망에 근거한다는 것은 최대한의 실현을 원하는 개개인의 욕망들 간의 충돌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정치가 정치적 행위자의 개인적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정치적 행위의 원리적인 정당성은 이성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현실적인 정당성은 법에 근거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절차의 한계를 규정한다. 그 한계는 각자가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노력하되, 그 노력이 다른 사람이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하는 기회와 노력을 저해하지 않는 그 접점에서 성립한다. 말하자면, 법은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호혜적인 욕망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그 조건으로서 어떻게 하면 공존 가능한 자유를 찾아 보장할 것인가를 성찰하여 규정하는 인간의 능력이 이성이다. 그러니까 법은 철저히 이성에 입각해서 설립되어야 한다. 이에 이성은 법적인 이성으로 나타난다.  입법을 하는 정치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법이 이성이 명령하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반드시 사회적으로 혼란이 일어난다. 그런 만큼, 나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침범하고, 나의 욕망 실현을 위해 남의 욕망 실현을 가로막는 일을 합법화함으로써 서로 간의 대립과 충돌을 부추기고 정당화함으로써 힘을 통한 약육강식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사진 출처 - 구글 2. 이성을 벗어나 멍한 광기로  흔히들 개개 정치인들은 자신을 대표로 내세운 지역이나 단체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개개 정치인들은 각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 현실은 정부가 제시한 예산을 심의하는 데서 여실히 나타난다. 그리하여 각 지역이나 단체 심지어 개인마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공을 세운’ 정치인을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표로 피선된 개개 정치인은 선택된 순간부터 국가 구성원들 전체의 이익을 조화롭게 조율하는 이성적인 존재로서 중립화된다. 그래서 헌법 제7조 1항에서 모든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명기된 것처럼 국회의원은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로 정의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은 그가 사회적으로는 사인(私人)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오로지 공인(公人)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사인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적인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할 경우 일반 국민들의 범법 행위보다 더욱 엄하게 처벌되어야 마땅한 까닭이다.  정치인으로서 국회의원은 무엇보다 다른 국회의원들과, 특히 다른 정파에 속한 국회의원들과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 나는 본래 이기적이야.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하고서 강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한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국가 구성원 전체의 조화로운 이익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국회의원은 특히 그렇다.  정치인은 정치 행위의 결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개개 정치인이 과연 앞으로 어떤 정치 행위의 결과를 낳을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그동안 그가 과연 얼마나 어떻게 자신의 욕망 실현보다 다른 사람들의 욕망 실현을 위해 삶을 살아왔는가, 그리하여 그동안의 그의 삶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는가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와 무관하게 오로지 미래를 향한 선전과 선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정파적이고 심지어 이기적인 감정을 분출토록 하여 일종의 왜곡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일에 몰두한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간단히 말해 사기꾼일 뿐이다.  정치적 사기꾼들은, 히틀러의 인종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선동 정치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철저히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숨겨져 있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그리하여 맹목적인 공격과 투쟁을 향한 동물적 본능을 자극한다. 우선 이성적인 근거 제시는 전혀 필요 없다고 여긴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성적인 주장을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는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세뇌의 과정이 진척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일신의 영달을 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모두 악하다고 여긴다. 그 악의 요인들을 가상적으로 집단화한다. 그렇게 집단화된 악의 세력을 현실 어디에서건 찾아낸다. 이제 그 악의 세력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객관적으로는 풍차를 적으로 여겨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신의 뜻을 실현하는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성한 행위로 여긴다. 정치적 사기꾼은 제 자신을 그렇게 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여기고 선전 선동을 일삼는다.  그런 까닭에 정치적 사기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적대적 관계의 해소다. 그래서 정치적 사기꾼은 이성적 인간을 두려워한다. 이성적 인식 능력으로써 적대적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불행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적시하고 실천적 이성 능력으로써 그 불행한 사실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들을 두려워한다. 두려워한 탓에 공격을 가하고, 공격하기 위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암암리에 퍼뜨린다. 그 술책으로 각종 이데올로기적인 기호와 상징을 만들어내어 마치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참다운 이성의 화신인 양 선전한다. 그리하여 억압되었던 이기적 본능을 분출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들을 끌어 모은다. 이기적 본능의 집단이 형성되고, 정치적 사기꾼은 거기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적대 세력에 의해 공격받아 위기에 처해 있는 희생자들이라고 느끼게끔 한다. 모인 자들은 집단적인 광분과 광기로 제 정신을 잃는다. 대체로 이성을 잃은 멍한 눈빛으로 개인성을 상실한 하나의 덩어리 집단이 된다. ‘끌어내려라!’, ‘죽여라!’, ‘목을 따 와라!’ 등의 극단적인 망언들이 넘쳐나게 된다.
2019-05-22 | hrights | 조회: 241 | 추천: 2
이 윤/ 경찰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나만 그렇게 오해했는지 몰라도 고등학교 시절 국민윤리 시간에 이 글귀를 보았을 때 ‘인간은 생각을 해야만 의미 있게 산다는 말인가? 건방진 말을 한 사람이군’이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나중에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다스베이더가 ‘내가 네 애비다’라고 말하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오답을 정답으로 알고 산 세월에 비례한 충격이었다. 아마 아직도 잘못 이해한 상태로 살고 계신 분도 많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하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 일신상의 문제가 되면 언제까지나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그 중 하나가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수사기관의 ‘구속’이다. 구속은 법에 의해 권한이 부여된 강제수사 중 가장 강력하다. 평소에는 구속이 무슨 뜻인지 왜 하는 것인지 몰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 수 있지만, 나 자신이 구속된다면 갑자기 팔이나 다리 하나가 잘라진 것처럼 인생 일부가 무너짐을 느낄 것이다. 몇 달 전 친척분의 아들이 친구와 싸워서 상대가 다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혹시 구속이 될까봐 전전긍긍하시기에 구속까지 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어떻게든 구속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도 많이 봤다. 구속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잘못으로 구속이 되더라도 엄청난 일인데, 내가 잘못이 없는데도 또는 잘못한 것은 있지만 구속까지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구속되어 가족과 격리되고 직장도 갈 수 없게 된다면 인생 막장 느낌에다가 억울함까지 추가될 것이다. 구속의 이유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재판 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형벌권이 원활하게 집행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재판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재판 이후에 형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죄 없는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당사자의 방어권을 제한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피해가 무죄판결을 받는 것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범죄혐의가 상당한 정도로 입증된 사람만이 구속의 대상이 된다. 즉 구속의 요건 중 ‘혐의의 입증’이라고 하는 요건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고, 피의자가 도망할 우려가 있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야만 구속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필요적 고려사유로 범죄의 중대성,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 재범 위험성이 있지만 ‘고려’사유일 뿐이고 구속을 시키려면 결국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 수사를 직접 하였던 경험과 지금도 경찰서에서 영장심사관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속의 원래 취지와 실제 구속을 다루는 형사사법체계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구속이 처벌이라는 오해  가장 큰 괴리감은 본래 목적과 달리 구속 자체를 형벌권 행사의 일부로 본다는 것이다.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저런 사람을 구속하지 않고 놓아주면 피해자들이 억울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마치 피의자가 무죄판결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러나 앞에 설명했듯이 구속은 재판에 피고인을 출석시키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형벌은 아니다. 나중에 유죄판결을 받으면 형을 선고받고 죗값을 치르게 된다. 그런데도 위와 같은 오해를 한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아마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할 경우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그 결과가 징역형이나 금고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범죄자에 대해 구속을 하지 않으면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낮고, 구속이 되어야만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사람들은 구속에 형벌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하지만 2013년 매일경제 뉴스에 의하면 검찰의 구속기소 비율은 감소하는데 법원의 법정구속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앞으로는 이런 오해도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죄 지은 놈은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오해는 ‘죄 지은 놈은 구속된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죄 지은 사람들이 다 구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 명제는 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위 명제의 역인 ‘구속된 놈은 죄 지은 놈’도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죄를 지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단정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무죄추정의 원칙) 뒤의 명제가 꼭 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일로 인해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접하면 일단 그 사람의 죄가 인정되었다고 믿는다. 이후 재판에서 그 사람이 무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잘 기사화되지도 않거니와 기사가 나오더라도 사람들은 구속될 때만큼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의 구조 방기를 폭로하여 해경청장 등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던 홍가혜씨는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사를 잘 못해서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는 오해  ‘구속된 놈은 죄 지은 놈’이라는 오해로부터 다시 파생되는 오해는 수사기관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사람들은 수사기관이 수사를 잘 못해서 죄를 인정받지 못하였거나,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어서 기각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여부는 수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라든지 범인임이 인정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수사를 잘 해서 모든 증거를 확보하고 범죄입증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주거부정이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해주지 않는다. 반대로 홍가혜씨 사례처럼 구속 당시에 범죄혐의가 상당하여 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하더라도 재판에 의해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 영장발부를 위한 법원의 심사는 정식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수사를 잘 못하였다거나 수사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범죄혐의가 미처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수사기관은 최소한 그 부분만큼은 많은 검토를 거치므로 빈번한 일은 아니다. 수사를 잘 하면 구속을 잘 시킨다는 오해  앞의 오해를 뒤집어 생각하면 수사를 잘 해야 구속을 잘 시킨다는 인식도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없어졌지만 예전 경찰에서는 특진 등 형사활동실적을 평가할 때 예를 들면 구속은 10점, 불구속은 2점과 같은 기준을 적용했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구속을 시켜 점수를 잘 받으려 했었다. 이런 기준은 수사를 잘 해야 구속을 시킬 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증거수집을 잘 하고, 사건을 면밀하게 잘 검토하고, 피의자를 잘 신문해서 범죄에 대한 시인을 받으면 당연히 구속이 될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사를 잘 해도 피의자에게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 피해자 등에게 가해를 가할 우려, 재범을 할 우려가 없다면 구속을 하지 않는 것이 구속의 원래 취지에 맞다. 그것이 불구속재판의 원칙이다. 지금은 경찰에서 위와 같은 실적평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수사관들은 부서와 개인의 성과평가나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 힘들게 수사한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의자를 구속한 사건이 수사관에게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이라는 결과만으로 평가하게 된다면 수사관들이 구속영장신청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런 기준은 수사는 열심히 하였지만 구속까지는 시키지 않은 수사관들에게는 공정하지 못하다. 관리자들이 구속이라는 결과보다 수사의 과정 자체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이런 경향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누가 일을 잘 하였는지에 대한 완벽한 평가방법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의 성과에 대해 단순히 구속시킨 숫자로만 평가하는 것은 구속 많이 시킨 수사관이 일을 잘한다는 오해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20년 전 이야기지만 재산범의 경우 피해액 2천만 원 이상, 상해의 경우 전치 3주 이상이면 피의자 구속여부에 대하여 검사에게 지휘를 받으라는 기준이 있었다. 이런 기준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공식적인 것도 아니다. 위 기준 때문에 범죄로 인한 피해정도가 크면 다른 구속사유가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검사에게 사건을 보내 구속을 해야 할 것인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절차가 귀찮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보이는 피의자에 대해서 검사가 내 생각과 다르게 피해정도가 크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라는 지휘를 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데 아직도 이와 유사한 기준이 있는 것 같다. 5월 1일자 세계일보 기사에 의하면 대검찰청 검찰미래위원회가 검찰의 구형과 구속 기준을 공개하라고 권고했으며, 기준의 비공개로 인해 검찰은 폐쇄적이고 자의적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한다. 또 법조브로커 활동 및 ‘유전무죄’의 사법 불신을 키우는 데 검찰의 ‘깜깜이’ 사건처리가 원인이었다는 것이 미래위의 판단이라고 하였다. 위 비공개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예전과 같이 구체적인 피해정도가 기준에 포함되어 있다면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예비재판처럼 될 수 있고, 경찰 수사관들로 하여금 피해정도가 큰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한다는 잘못된 태도를 갖게 할 수 있음이 우려된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사례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구속이 되었고, 형사소송법상 구속의 필요적 고려사유에도 ‘범죄의 중대성’이 포함되어 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높은 처단형을 받을 것이 예상되어 도주할 가능성이 높으니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의 범죄행위가 중대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 경찰 수사관들도 잘 모르고 있다. 모든 범죄사건에 기계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기준이 있다면 공개하여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 그보다는 구속의 본래 취지에 맞게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도주하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명확하지 않으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차원에서 합당할 것이다. 구속을 수사의 도구로 여기는 오해  구속에 대한 가장 위험한 오해는 구속을 수사의 도구로 여기는 태도이다. TV나 신문에서 종종 ‘○○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이후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라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대한항공 조○○ 갑질사건, 드루킹 사건, 김학의 별장 성폭력 사건 등)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는데 왜 수사가 난항을 겪는지 의문이 생긴다. 구속을 수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의 범죄행위나 공범에 대해 잘 진술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 할 때 일단 구속시켜놓으면 술술 잘 진술할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도 구시대적이지만 수사기관에게는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구속의 이런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들이 입증하고 있지만 굳이 연구할 필요도 없이 누구라도 며칠만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한다면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까지 진술할 마음이 생기게 됨을 알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생각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수사관들은 잘 풀리지 않는 사건의 피의자를 일단 구속시켜서 원하는 답변을 듣고 싶겠지만 자칫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 수도 있으므로 가장 경계하고 피해야 할 태도다. 문제는 수사기관에 의한 구속영장 기각사건을 보도하는 언론과 그런 언론보도를 다시 수사의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수사기관에 있다. 언론이나 수사기관 모두 구속의 본래 취지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위와 같은 구속에 대한 오해들이 만연하다보니 범죄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을 경우 가해자를 봐줬다는 오해를 하기 쉽다. 수사관은 쓸데없는 오해나 그 오해에 의한 민원을 사지 않기 위해서 피해가 큰 사건이나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일단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검사가 청구하지 않아서 또는 판사가 기각하여 구속하지 못했다는 책임회피의 마음이 없지 않다. 그러다보니 수사과정에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 죄를 지었는데 왜 구속을 하지 않느냐는 비난은 수사과정에서의 구속을 처벌과 동일시하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구속이 되어야만 징역형을 받는 것도 아니다. 불구속 재판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면 법정구속이 되기도 한다.  구속을 처벌과 동일시하는 오해, 죄 지은 사람은 구속된다는 오해, 수사를 잘 하면 구속을 잘 시킨다는 오해,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해야 수사가 잘 풀린다는 오해. 일상의 평범한 생활을 하는 시민들과 수사기관들이 구속에 대한 이런 다섯 가지 오해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신도 약해질 것이다. 순수하게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재범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성에 대해서만 판단하여 피의자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한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 정도만큼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사기관 종사자들과 사건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사부터 구속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누구라도 신뢰할 수 있는 형사사법체계가 확립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사정기관을 장악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2019-05-15 | hrights | 조회: 294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