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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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어릴 적 나의 놀이터는 골목이었다. 골목을 벗어나면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가 나왔고,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던 기억도 있다. 술래잡기하다 꼭꼭 숨는다고 친구와 골목을 벗어나 먼 시장까지 갔다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며 애태우던 엄마한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은 적도 있다. 저녁 무렵이면 집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온 골목에 퍼졌다. 우리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 가운데는 부모님이 농사짓는 분들도 많았다. 비 오는 날 부침개라도 부치면 앞집 뒷집으로 접시에 담아 돌렸고, 아주머니들은 접시를 씻어서 주면, 다음에 얻어먹지 못한다고 접시를 그냥 손에 들려 보냈다. 김장하는 날이면 집집이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한 가운데 담그곤 하였다. 어릴 적 이런저런 기억의 잔상들은 이렇게 땅에 발을 디딘 농경사회의 끝물을 보여준다. 어린것들이 미처 느끼기 전에 우리는 급격한 변화 속으로 내던져졌다.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마을은 점차 도시화하기 시작하여 논밭이 사라지고, 공장이 들어서고, 아이들이 뛰놀던 들판이 사라졌다. 친구들 가운데 공부는 잘하나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은 일찍이 진로를 정하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공고로 여자아이들은 여상으로.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어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는 아주 착한 딸의 진로였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하는 산업체에 스카우트되어 가기도 하였다. 세상은 바야흐로 자본이라는 새로운 질서로 편입되고 있었다. 이후 세상은 내가 느끼든 못 느끼든 더욱 빠르게 변했다.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컴퓨터와 인터넷이 내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중지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원고지에 볼펜으로 쓰던 기사를 처음 PC로 작성했을 때의 그 낯선 기분, 그런데 지금은 그게 일상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손안에 쥔 휴대전화로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사진 출처 한데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느끼는 건 어지럼증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모든 것을 삼킬 것만 같은 세상에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가 빙빙 돌고 있는 것만 같다. 예전의 변화가 삶의 도구를 바꾸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변화는 사고방식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두려움. 인공지능은 질문에 답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심지어 내 감정까지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장난감처럼 다루며,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흙먼지를 마시며 자란 내가,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내게 '놀이'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거나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나무에 오르는 것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놀이는 화면 속에서 펼쳐진다. 내게 '배움'은 선생님의 목소리와 칠판에 쓰인 글자였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유튜브와 인공지능이 선생님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농경문화 속에서 보냈고, 청소년기에는 산업사회의 세례를 고스란히 받으며 어른이 되었어. 그런데 지금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격변하는, 종잡을 수 없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잖아. 내가 살아온 감수성과 지금 이 시대 아이들의 감수성이 공감하는 지점을 만들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그러자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런 꼰대 같은 생각하지 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네 생각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이려고 하지 마.” 농경사회의 느림, 산업사회의 역동성, 정보사회의 연결성, 지금 현기증 나는 인공지능 시대를 관통하는 감수성은 무엇일까? 한편으론 흥미진진한 기대감과 한편으론 “어떻게?”라는 물음. 아마도 그것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서로를 잇고, 인간다운 길을 잃지 않으려는 ‘깊은 성찰이라는 감수성’이 아닐까?!    
2025-09-30 | hrights | 조회: 51 | 추천: 5
이윤/ 경찰관   1990년대 초 영국 심리학자 에릭 셰퍼드(Eric Shepherd)는 ‘수사를 위해,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며 과학적인 면담’이라는 의미로 ‘수사면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수사면담은 기존의 신문, 조사, 취조라는 말을 대체하며, 면담 목적 패러다임이 자백획득 ➜ 정보수집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보수집형 수사면담을 대표하는 기법이 영국의 PEACE 모델이다.   PEACE 모델 탄생 배경 영국 경찰은 1985년까지 수사와 기소를 모두 할 수 있었다. 큰 권한을 너무 오랫동안 가졌던 탓인지 강압수사로 허위자백 얻기, 증거위조, 법정 위증 등 위법한 수사를 자행하였다. 잘못된 경찰 수사로 인한 형사사법상 많은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영국은 국가위원회를 거쳐 ‘경찰 및 형사증거법(PACE ACT 1984)’을 제정하였다. PACE ACT에는 ‘모든 용의자 면담은 녹음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많은 수사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이 시행되자 수사관들이 조사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상대하고 질문하는지 드러났다. 영국 정부는 수사관들의 신문방법에 문제가 많다는 결론 아래 PEACE 모델이라는 수사면담 지침을 만들었고, 1992년부터 이를 이용하여 경찰관 대상 면담교육을 하였다.   PEACE의 의미 PEACE라는 이름은 일부러 ‘평화’를 연상하게끔 작명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수사면담 각 단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두문자어다. P는 계획과 준비, E는 도입과 설명, A는 진술청취, 명확화, 설명요구(추궁), C는 종료, E는 평가를 의미한다. 각 단계 이름만 봐서는 기존 신문기법과 특별히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수사관들에게 보여주면 ‘이미 우리가 다 하는 건데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맞다. 그래서 ‘모델’이다. 이미 하는 것들을 반영한 평균적이면서도 이상적인 형태다.   출처 : NCF(National Crime Faculty), A Practical Guide to investigative interviewing 2000, p.25   기존 신문기법과 조금 다른 것은 라포형성과 개방형 질문을 핵심 요소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걸 수사관들이 낯설어한다. 라포란 ‘사람 사이의 상호 신뢰와 공감이 바탕이 되는 친밀하고 편안한 관계’를 의미한다. 수사관은 면담 상대가 용의자, 피해자, 목격자 중 누가 되었건 간에 면담 중에는 라포를 형성하고 유지해야 한다. 라포를 형성하려면 잘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때리거나 소리 지르면 안 되는 건 당연하고, 사무적으로 무뚝뚝하게 대해도 안 된다. 그래서 수사면담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다. 개방형 질문이란 답변의 내용과 방식을 제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이다. 예를 들면 ‘지난주 수요일, 회사에 출근하고부터 퇴근할 때까지 당신에게 있었던 일을 기억나는 대로 꾸미지 말고 모두 말하세요’와 같이 묻는 것이다. 개방형 질문을 사용하면 수사관의 확증편향을 예방할 수 있고, 질문으로 인한 암시를 막을 수 있어 정보 왜곡을 차단할 수 있다. 그 효과가 실험으로 입증되었기에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PEACE 모델을 원형으로 하여 실무 수사관들의 요구에 맞춘 전략적 기법들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스웨덴의 ‘전략적 증거사용(SUE)’, 노르웨이의 ‘책략적 면담 모델(TIM)’, 네덜란드의 ‘일반 면담 전략(GIS)’ 등이다.   한국에 필요한 인권친화적 수사면담 교육 PEACE 모델은 영국, 북유럽, 미국,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세계 여러 나라 경찰기관에서 교육 및 활용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수사관을 포함한 모든 경찰관에게 교육시킨다. 순찰 경찰관이 사건 직후 범죄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여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진술을 바로 청취하는 것이 정확한 사건 해결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2004년부터 경찰수사연수원에서 수사관 대상으로 교육되고 있으나 최근에는 교육받는 사람 수가 일 년에 200명도 안 되고, ‘수사면담 교육과정’은 명맥만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의사결정자에게 ‘사람 조사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교육까지 시키나’라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그저 범죄자는 계좌랑 통화내역이랑 행적이랑 먼지 털 듯이 탈탈 털고, 출국금지에 압수수색까지 해서 일 못 하게 만들고, 구속시키겠다고 겁 좀 주고, 가족과 친구들까지 잡아넣겠다고 하면 술술 다 불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고한 사람까지 처벌하는 그런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수사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과연 ‘인권의 보루’라고 자처하는 검찰은 어떤 방식으로 사건 관련자와 면담하고 있는지, 매뉴얼이나 지침은 있는지, 면담에 대해 무얼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설마 심리학자들이 강압적 면담방법이라고 비난하는 ‘리드테크닉(Reid Technique)’을 교육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조만간 검찰청은 폐지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대부분의 범죄를 수사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각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인권친화적 수사면담을 채택 및 교육하게 하여, 죄 없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당당하고 편안하게 수사기관에 출석하여 진술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교육은 수사관이 보유하는 지식의 분량뿐만 아니라 태도도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의 지식보다도 그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에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2025-09-22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6
박록삼/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검찰청이 사라집니다. 지난 7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라 1년간 준비 절차를 거친 뒤 검찰청은 해체되고 법무부 산하에 기소를 담당하는 공소청과 행정안전부 산하에서 수사를 맡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운영될 것입니다. 내란·외환·부패·경제·공직자·선거·대형참사·마약 등 9개 중요 범죄에 대한 수사는 중수청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과 함께 수사를 맡는 체계를 구축합니다. 1948년 사법부에서 독립한 뒤 78년을 이어오며 온갖 영욕을 누려온 검찰 조직이 공식적으로 해체되는 역사적 장면으로 남을 것입니다. 기소권과 공소권을 가진 공소청은 검사로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 기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검찰청법 4조1항은 검사의 지위를 ‘공익의 대표자’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죠. 또한 4조 3항에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검찰청이 해체되는 마당에 새삼스럽게 검찰청법을 들먹이는 것은 이번이야말로 검사 집단이 스스로 돌아보며 새로운 출발을 위한 다짐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2년 전 윤석열 정부가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에 정순신 검사를 지명했던 당시 상황이 떠오릅니다. 검찰에 이어 경찰까지 완벽히 장악하기 위한 조치였지요. 다만 정 본부장은 아들의 심각한 학폭 문제가 불거지며 임기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짧은 사퇴의 변에서 정 본부장은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면서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이며 초동 수사 단계에서부터 공판경험이 있는 수사 인력이 긴요하다’, ‘수사와 공판을 두루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수사발전에 이바지하고자 국가수사본부장에 지원하였다’ 등으로 짧지만 구구히 설명했습니다. 기가 턱 막혔던 부분은 천연덕스럽게 내뱉었던 ‘수사의 최종 목표가 유죄 판결’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법과 정의의 수호자’, ‘공익의 대표자’라는 인식은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검찰이 마음먹고 시작한 수사라면 사건의 진실도,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실토한 발언이었습니다. 강압 수사, 별건 수사, 먼지 털이식 수십·수백 차례 압수수색, 피의사실 불법 공표, 여론 재판 유도, 심지어 조작 수사에 이르기까지 그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악행이 그냥 괜히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기도 했습니다. 검찰 조직이 철저히 이러한 기조 아래에서 움직여 왔으며 오랜 시간 동안 ‘인권의 보호’, ‘정치적 중립’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는 ‘자기 고발’이었습니다. 아직 모든 게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세부 개편안 마련을 위한 1년 유예 기간 동안 간단치 않은 힘겨루기 과정이 예상됩니다. 아무리 끈 떨어진 연 신세라고 하지만 80년 가까이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며 유지되어 온 검찰 권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청 해체 발표 직후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노 대행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검찰이 법률에 따라 개명 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는 검찰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으로 깊이 반성한다. 앞으로 검찰 개혁 방향에 대해서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성’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보다는 검찰 조직의 ‘개명’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검찰청의 이름만 바꾼 것으로 의미를 축소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의도된 발언이었죠. 어떻게든 보완수사 기능을 확보해 수사권을 여전히 유지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밝힌 셈입니다. 마지막 일전을 치러보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에 가깝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또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 중 일부가 최근 소속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검찰 조직이 해체되는 마당에 특검 수사를 열심히 해봤자 향후 승진 인사 등 기대할 만한 보상이 없을 것이라는 실망감이 컸으리라 이해도 됩니다. 아니면 검찰청 해체에 대해 정치적으로 항의하고 싶은 생각이 컸을 수도 있겠죠. 검찰 개혁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임은정 서울지검 동부지검장을 가리켜 ‘임 지공장(지방공소청장)’이라고 비아냥대며 깐죽대는 검사들도 등장했습니다. 여기에 퇴직 검사들의 모임인 검찰동우회는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개혁은 위헌적 논란을 감수하며 명칭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라면서 “개혁의 핵심은 명칭이 아닌, 검찰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식이건 앞으로 1년의 기간 동안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수사권을 획득하기 위한 검사들의 집요한 요구 내지는 저항과 반발이 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검사들의 뜻을 관철하기에는 70년 넘는 시간 동안 검찰이 저질러온 불공정과 반민주적 행태가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왔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기소권과 수사권을 양 손에 쥐고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피의자를 만들겠다고 작정한 사람은 범죄 혐의를 발견할 때까지 먼지 털이식으로 별건에 별건 수사를 계속해 대고, 제 눈에 들어찬 사람은 불기소로 덮어주는 기소편의주의를 마음껏 누려왔습니다. 지난 5일 국회 법사위 소위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검찰 고위 간부와 수사관의 모습은 검찰 해체의 당위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했습니다. 검찰은 스스로 확보한 국정 농단의 핵심 증거물을 인멸했습니다. 그러고도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4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검사건, 검찰 수사관이건 그날 국회에 출석한 증인 중 누군가가 ‘범인’일 것입니다. 여전히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건진법사로 통하며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더불어 희대의 국정 농단을 일삼았던 무속인 전성배 씨 집을 압수수색해서 증거물로 확보한 한국은행 관봉권 5,000만 원의 비닐과 띠지 등을 저연차 검찰 수사관이 감히 없앴으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누가 했건 죄를 덮고 만들기를 일삼곤 했던 검찰 집단의 행위였음은 분명한 일일 것입니다. 검찰청 조직 공식 해체 직전 그 조치의 정당성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검찰 조직의 해체는 만시지탄이자 사필귀정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진전입니다. 형사소송법 제424조는 검사는 피고인을 위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대법원은 2002년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 …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는 판례를 남기도 했습니다. 2010년 대법원 판례는 ‘검사는 공소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고 할 것이고,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기소와 공소 유지에 힘쓰는 것이 비로소 검사의 제자리가 될 것입니다. 중수청, 경찰, 공수처 등의 수사 과정에서 국민 인권 보호에 미흡하지는 않았는지, 법 적용에 미비점은 없었는지 꼼꼼히 살피는 ‘공익 대표자’, ‘법과 정의의 수호자’ 역할에 충실한 ‘대한민국 검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응원합니다.    
2025-09-18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12
황문규/ 중부대학교 인문사회학부 교수   지금은 검찰개혁의 시간이다. 오는 2025년 9월 25일이면 검찰을 해체하여 공소청을 법무부에 신설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안부에 신설하는 정부조직법이 개정될 것이다. 이번 검찰개혁의 핵심은 수사-기소의 분리에 있다. 따라서 현행 검찰의 기소 기능을 담당하는 공소청과 수사 기능을 담당하는 중수청의 소속을 동일한 법무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을 매개로 양 기관이 통합됨은 물론, 현행 검찰 인력이 양 기관으로 분산되더라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으로 인해 검찰에서의 관행을 쉽사리 탈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검찰의 연속성 단절이라는 지금의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100년 후면 모르지만, 지금은 중수청을 행안부에’ 두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검찰의 수사 인력만으로 중수청을 구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중수청은 검찰과 경찰, 군수사기관, 공수처, 그리고 변호사 등 모든 수사 가능한 인력으로 혼합 구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중수청이 ‘제2의 검찰청’ 또는 ‘공소청의 손발’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 행안부 산하의 중수청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와 같이 통제받지 않는 수사기관이 된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국수본과 중수청은 강제수사를 위해서는 검사와 판사의 영장 통제를 받고, 범죄혐의 있어 송치한 사건은 검사의 기소 여부에 의한 통제를 받게 된다. 범죄혐의 없어 불송치한 사건도 국수본과 중수청의 자체 수사심의를 받거나 피해자 등의 이의신청에 따른 검사의 통제를 받는다. 장경태 의원안에 따르면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의 통제도 받게 되어, 이중 삼중의 통제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만약 법무부 산하의 중수청이 되면, 정치검찰의 경로 의존성을 탈피하지 못한 최소 100년 동안 (공소청) 검사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검찰개혁 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법안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2025.7.9.   수사-기소를 분리하자는 이 와중에도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러한 주장은 첫째, 검사의 “보완수사권=직접수사권”임을 간과하고 있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향후 공소청에 수사인력을 두기 위한 논거이며, 결국 무늬만 수사-기소를 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보완수사권은 그 한계가 있을까? 예컨대, 사건의 동일성 범위 내에서만 보완수사를 허용하자는 등의 주장이 있으나, 그 한계를 넘어선 보완수사가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극히 소수의 사건에서 ‘위법한 수사’라는 대법원 판례를 이끌어 낼 수도 있지만, 이미 수년이 경과한 후이며 심지어 그 판례가 다른 사건에 적용된다는 보장도 없다. 왜냐하면 (공소청) 검사는 그러한 판례가 나오더라도 한계를 넘어선 보완수사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검찰이 구속일수를 ‘날(일)’이 아니라 ‘시간’으로 계산한 지귀연 판사의 결정을 오로지 윤석열의 석방에만 적용하고, 나머지 사건에는 적용하지 않은 것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둘째,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과연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만 작동할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제식구 감싸기 또는 전관예우가 작동하는 장치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수사권조정 직후 어느 일간지(2022. 4. 6.자 한국일보)에서 보도한 <부장검사가 낸 교통사고... 경찰의 중과실 판단 뒤집은 검찰>이라는 기사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게다가 검사 스스로 검찰청법 제4조1항에서 규정한 ‘공익의 대표자’임을 외면한 전례도 있다. 경찰이 강간당한 피해자의 팬티에 대한 DNA검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면서 범죄용의자를 구속한 사건(대법원 2001다23447판결)에서, 검사는 ‘구속된 범죄용의자의 유전자형과 다르다’는 DNA검사 결과를 받고서도 이를 1심과 2심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그 범죄용의자는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검사가 검찰이라는 ‘불멸의 신성가족’ 이외 정작 평범한 시민들의 진실 발견과 정의 구현에 얼마나 진심이었을까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검찰이 압수한 5000만 원짜리 관봉권 띠지 훼손·분실 사건에 대한 최근 검찰의 대응은 검사의 보완수사권과 기소권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지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일부 정치 검사들만의 문제라는 주장은 지금 이 시점에 해체 수준의 검찰개혁을 하려는 역사적 맥락을 보지 못한 채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셋째,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이 없으면 범죄자들이 판치는 세상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검사의 수사는 우월하다는 편향된 인식과 다를 바 없다. 2024년 기준 전체 160여만 건의 형사사건 중에서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은 단 1%인 1만 5천 건도 안된다. 검사의 (보완)수사 여부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시스템은 언제나처럼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임을 말해준다. 어쩌면 검사의 수사와 기소로 인한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검사의 수사가 특별하게 보였던 것은 기소권을 뒷배경 삼아 마음껏(예컨대 기소권으로 수사대상자들을 회유하거나, 수사에 불법 또는 탈법이 있더라도 기소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수사할 수 있었기 때문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점에서 보완수사권은 통제받지 않는 ‘검찰이 다시 판치는 세상’을 만들 것을 우려한다. 검찰을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은 검찰개혁의 시작이다. 이른바 공소청법, 중수청법,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률의 제·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듯이 검찰개혁의 악마는 제·개정되는 이들 법률에 있다. 검찰 관련 기득권자들에게 디테일은 목숨을 건 투쟁의 최일선이다. 안타깝게도 디테일을 결정하는 요소요소에 기득권자들이 포진해있다. 때문에 공수처의 사례처럼 중수청을 무능하게 만들거나, 검사의 수사지휘권 박탈에 대한 반발로 ‘검경간 사건핑퐁’을 양산하여 ‘수사지연’ 프레임을 씌웠던 꼼수를 경계해야 한다.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악마가 숨 쉴 틈 없는 디테일한’ 검찰개혁의 시간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이유다.  
2025-09-09 | hrights | 조회: 175 | 추천: 1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환상으로 시작한 기독교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신약성서 중에 <사도행전>이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이른바 예수의 죽음·부활·승천 이후에 예수의 열둘 사도를 통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예수 운동과 바울을 비롯한 여러 동역자가 넓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벌인 ‘예수 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예수를 그리스도 즉 세상의 구원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수가 기적 행위와 설교에 따라 순식간에 5천 명에 이르도록 늘기도 하고 수만 명에 이르기도 한다. 사실이 그러했는지 믿기 싶지 않지만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럴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이른바 환상과 기적이다. 특히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그네들의 환상을 통해 산 채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예수와 천사의 말을 예사로 듣는다고 하고, 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걷게 하기도 하고, 귀신 들렸다는 많은 정신병 환자를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고친다. 죽은 자를 살려내기도 한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소문을 내는 등 해서 그처럼 많은 사람이 예수 믿는 자들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는 사도들과 그들을 따른 무리가 모였을 때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고,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나라말)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라는 것이다. 나중에는 베드로나 바울이 누군가에게 손을 얹기만 해도 그에게 성령이 내려와 여러 나라의 방언으로 따로따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초기 기독교는 한마디로 신비한 환상과 기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때 베드로와 바울이 전도의 대상으로 삼은 주된 대상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래서 주된 장소는 유대인들이 모여 예배드리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는 회당이었다. 베드로와 바울은 예수의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서 태어나 활동한 것을 아브라함, 모세, 다윗을 중심으로 한 예언적인 이야기와 시편의 여러 예언적인 이야기에 따라 예수가 탄생해 그리스도 즉 세상을 구원할 자로서 신적 권위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과 신앙을 모독한다고 해서 격분했고, 예수 운동을 하는 자들은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로마의 식민 정부에 고발당해 체포·구금·고문을 심하게 받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감옥에 갇혀 죽기 직전에 갑자기 환상적인 일이 벌어지면서 손과 발을 묶은 쇠사슬과 쇠고랑이 저절로 풀리기도 하고 무장한 간수들이 보지 못하는 가운데 이미 감옥을 벗어나 있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2,000년 전쯤의 당시에는 어느 지역의 어느 부족이건 간에 사람들 모두가 그들 나름의 신을 믿고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오늘날처럼 제대로 된 과학적인 지성과 기술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오늘날로 치면 지어낸 신화에 불과한 것을 진실이라 믿는 미신과 광신이 횡행한 시대였다. 그럴 때 강력한 환상적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해 많은 사람을 포섭했던 인물들이 바로 초기 예수 운동을 일으켜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거기에는 물론 복음이라 전해오는 예수의 사랑에 대한 사상과 말이 큰 힘으로 작동하기도 했을 것이다. 급기야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될 정도로 정치권력과 곧바로 유착하게 되고, 서구의 역사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잔인하고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종교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결과를 연출했다. 그 바탕에 절대적인 배타성을 지닌 유일신 신앙이 작동함은 물론이다. 기독교의 역설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 특히 가난한 자와 병든 자 등 이른바 소수자 내지는 타자를 사랑하라는 계명이 그러한 사랑을 믿고 실천한다고 할지라도 그 계명의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은 자는 무조건 적으로 삼아 죽음에 이르도록 파멸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위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사랑하더라도 반드시 예수 공동체의 이름으로 즉 예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2. 예수의 재림이 문제다 이러한 기독교의 형성 기반은 비합리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반지성주의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근본은 반성을 통한 비판적인 성찰이 전혀 아니고, 예수를 비롯해 이른바 사도라고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행한 기적의 신비를 통해 이루어지는바 순간의 절대적 회심과 평생에 걸친 무조건적인 복종의 감정이다. 만약 오늘날 이러한 예수가 등장했고 이를 믿는다고 한다면, 당연히 미신이라고 할 것이다. 베드로가 신도들에게 모든 재산을 팔아 하나님에게 내놓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쓸 걸 명령했고, 자신의 땅을 팔아 그 값의 조금 일부를 숨겼다고 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를 연달아 죽게끔 했다는 잔인한 기적을 믿는데 어찌 미신이라 하지 않겠는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간 동안 그의 형 아론이 주동해서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다고 해서 레위 지파가 그들의 동족 3,000명을 죽이도록 한다거나, 그 레위 지파 중 일부가 모세에게 저항했다고 해서 아예 땅이 갈라지게 해서 수백 명의 그들을 집어삼키거나, 남은 자들이 이에 항의했다고 해서 14,700명을 역병으로 죽게 했다는 그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여호와라는 부족의 신이 예수의 아버지인 하나님이라고 믿는데 이를 어찌 미신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아 순결한 처녀의 몸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믿는 예수, 그래서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이라는 명칭보다 그전에 아무도 말하지 않은 하늘의 아버지를 수시로 외쳤던 예수였다. 오늘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미쳤다고 할 것이다. 죽음을 가장한 게 아니라 진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실제로 밥도 같이 먹고 소통하며 지내다가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산 채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예수, 게다가 하늘로 올라가기 직전에 모인 사람 중에 누군가는 죽기 전에 자신이 다시 세상에 오는 걸 보리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언한 예수였다. 오늘날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가 제아무리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거나 자기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 것이고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는 아름답고 놀랍고 멋진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런 황당한 인물인 예수를 누가 믿겠는가. 가장 큰 문제는 그 당시 당장 이른바 재림해 최후의 심판을 시행할 것 같았던 예수가 2,000년이 넘도록 당연히 아직 세상에 오지 않고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가 분명히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뭇사람을 악마적인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렇게 위대한 그가 곧 다시 오리라 예언했으니 분명히 곧 올 거라거나 심지어 이미 왔을 것이라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도대체 예수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에 로마 제국을 집어삼켜 세계 종교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행사하게 되니 그 권력을 찬탈하고자 하는 욕망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역사상 자신이 재림예수라거나 그와 비슷한 초월적인 지위를 지녔다고 주장한 인물이 수없이 많았다. 이들은 대체로 제법 큰 교세를 확보했으나 기존의 가톨릭이나 개신교에 의해 이단으로 내몰려 핍박받기 일쑤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곧 재림하리라는 예수의 말을 믿고서 재림한 예수를 당장이라도 찾고자 하는 자들은 이단으로 내몰리고, 이른바 정통 신앙을 고수한다는 자들은 예수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온 세계에 한 명뿐인 교황 유일의 지배 체제 아래 전 세계의 교회가 보편 교회로서 하나이고 그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교리를 갖춘 가톨릭에서는 이러한 이단이 좀처럼 나올 수 없다. 하지만, 목사나 교회와 아무런 상관없이 누구나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른바 ‘만인 제사장 원리’를 믿는 신교에서는 수없이 많은 신앙의 변종 즉 이단들이 생겨나 판친다. 신교가 바로 가톨릭의 이단으로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신종 이단들의 핵심은 자신이 메시아 내지는 재림예수 또는 하나님 또는 그에 버금가는 유일한 영적 지도자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인 경우가 통일교를 일으킨 문선명, 전도관을 일으킨 박태선, 구원파를 일으킨 유병언, 신천지예수교를 일으킨 이만희, 기독교복음선교회를 일으킨 정명석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다고 큰소리치는 전광훈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이 신도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라, 정통 기독교가 부패한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외부에서 보면, 종교의 다양성은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고 또 바람직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 제20조에는 국교는 인정하지 않으며, 뭇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는 점을 못 박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네 기독교 이단들, 전광훈은 말할 것도 없고 통일교와 신천지 그리고 정명석 등이 정치권 심지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통치 권력과 내통하여 뇌물을 주고받으며 정교 유착에 따른 부패한 이익 주고받기를 자행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핵심 요인은 부와 권력이다. 집단이 커질수록 그 집단을 이끄는 인물의 권력도 커진다는 사실, 그리고 특히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러한 집단을 이용하거나 그 집단에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를 위해 국가의 법을 내놓고 무시하거나 어김으로써 사회 전체를 어지럽히고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을 비판적인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심리적인 노예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3. 기독교의 절대주의 이러한 볼썽사납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 과연 이단 종교에서만 일어나는가? 그렇게만 단정할 수 없다. 기독교가 인간인 예수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고 그 위력으로써 부활하고 승천했고 이제 재림해서 최후의 심판을 하리라는 환상적인 신비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한, 그 신앙의 강요는 기필코 신도들을 여러모로 심리적인 노예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한 심리적인 노예 상태에서 이른바 영적 지도자로서 심지어 신도의 구원을 책임진다고 자임하는 자들이 내린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인 명령을 목숨 걸다시피 하면서 수행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만이 참된 국가라고 여기는 것에 무관하지 않다. 헌법이 명기한 종교와 정치의 분리와 결합한 종교의 자유에 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오로지 영적인 천국만을 참된 국가로 여길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는 믿음이 기독교 신앙에 본질적으로 포함된 셈이다. 국가 공동체의 절대성을 주장함으로써 자칫 민주주의와 반하는 파시즘으로 나아갈 원리적 가능성을 지닌 국가주의도 비판적인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인 파시즘의 원리와 역사를 지닌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의 절대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선행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무한한 사랑으로써 돌봐야 한다는 기독교의 실천적 윤리마저도 이러한 유일신 하나님의 절대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한 그 한계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더욱이 거기에 예수가 아버지가 없이 성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확실하게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믿고, 살아있는 몸 그대로 대기권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고, 반드시 다시 산 몸으로 재림하여 최후의 심판을 하리라고 믿고, 결국에는 예수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믿는 그 환상적인 믿음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한, 그와 같은 기독교의 참된 실천적 윤리의 실행은 그러한 믿음의 환상적인 미신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존재를 둘러싼 환상적인 신비를 믿는 믿음이 알고 보면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돕는 무한한 사랑의 실천을 위한 부수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신비에 대한 믿음을 무시하고 사랑을 실천한 인간 예수만을 바라보고 본받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를 믿건 안 믿건 진정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라면 오히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는 역설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기독교의 역설은 현실에서 거의 실현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2025-09-09 | hrights | 조회: 94 | 추천: 7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위축된 소비심리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공개한 소상공인 시장경기 동향조사에 따르면, 2025년 7월 소상공인 전체 체감 경기지수(BSI)는 61.5로 전월 대비 6.1%, 전통시장은 48.8로 전월 대비 8.7% 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는 지난 5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이를 보이는 수치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하락한 이유로 경기 악화를 손꼽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동기 대비 4.5% 증가하였으나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1.4%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닫힌 지갑이 열리지 않아 소비지출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따라가지 못하고, 가계부채는 증가하는데 고금리로 이자 부담까지 커지는 데다 정치적 격변 등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까지 겹치며 돈을 쓸 실질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고 분석한다. 새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전 국민들에게 지급한 것은, 이 같은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지역화폐를 지급 수단에 포함한 것은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현금으로 소비쿠폰을 지급하였다면 상당수가 다시 은행의 예금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아니면 이커머스 소비가 크게 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돈이 풀리지 않거나 한쪽으로만 크게 흘러갔을 개연성이 높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의 특정 업체, 예를 들어 연 매출 30억 원 이하 소상공인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고,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은 어렵다. 유효기간이 있어 저축도, 온라인쇼핑몰 소비도 이뤄지지 않고 온전히 해당 지역에 풀리는 역내 소비촉진 효과가 크다. 이런 지역화폐는 앞으로도 더 확산할 전망이다. 최근 지역화폐 정부 의무지원 내용이 담긴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정부는 그동안 지역화폐가 지자체 고유사무란 이유로 정부 본예산에 지원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매년 반복하여 국회에서 추경예산이 편성되는 우여곡절을 거쳐왔다. 하지만 앞으로 본예산에 의무 편성되도록 한 것이다. 지난 2020년 지역화폐법이 생겨 시민권을 획득한 지역화폐가 이제야 위상에 걸맞은 또 다른 권리를 얻어 진화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6년 지역화폐 발행 지원예산을 1조 1,500억 원으로 편성하였다. 지역화폐를 관장하는 행정안전부의 내년 증액된 사업비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지역화폐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덧붙여 정부는 국비 지원율의 차등을 줄 계획이다. 수도권은 3%, 비수도권 5%, 인구감소지역 7%로 알려졌다. 재정 상황에 따라 지자체별 지역화폐 할인율의 차이가 커 일어났던 형평성 논란에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도다.   사진 출처    앞서 말한 것처럼 지역화폐는 앞으로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더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맞춰 무리수도 벌써 활기차다. 예를 들어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을 두고 있는 주유소를 전면 개방하자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주유소를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두는 순간, 할인한도가 정해져 있는 지역화폐는 할인 금액만큼 충전해 사용하는 혜택 좋은 주유카드가 될 공산이 크다. 골목상권으로 흘러야 할 지역화폐가 특정 업종으로 쏠리는 현상은 유의 깊게 지켜보며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화폐는 기본적으로 골목상권 소상공인을 위해 만든 정책이다. 모든 곳에서 쓸 수 없는 ‘불편한 돈’이기 때문에 혈세를 들여 인센티브를 부여한 법정화폐의 보완재이다. 소비자의 편의도 중요하나 방향을 잃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참에 지역화폐를 스테이블 코인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크게 회자했다가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이나 메타버스처럼 스테이블 코인도 큰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실 지역화폐 자체가 법정화폐와 가치교환(태환)되는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이다. 여기에 보안과 범용성, 적은 거래 비용 등 스테이블 코인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도 굳이 새로운 개념을 빌리지 않아도 현재 조건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역화폐’라는 새로운 바람에 올라탄 풍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 건설적인 논의는 없을까? 법제화, 정부 지원 의무화 다음 순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에서 ‘지역사랑상품권과 기금제도 접목 가능성’이란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주최 측은 “불안정한 예산 구조에 의존해 온 지역사랑상품권을 기금 제도로 전환하자는 논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정부 지원이 처음 이뤄진 이후 윤석열 정부 때 지원이 급격히 떨어졌다가 다시 이재명 정부에 부활하는 지원 정책으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지원 정책의 변화가 이뤄진 게 사실이다. 때문에 지역화폐는 항상 존립의 불안,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서 지역화폐를 단기 정책이 아닌 장기 정책, 공공 인프라로 전환하자는 기조를 바탕으로 해당 지자체가 관리 운영하는 시민들의 지역화폐 예치금을 전국 기금화하여 이를 통한 운용수익을 지역화폐 할인예산 등으로 재사용하자는 내용이 이날 토론회의 핵심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없는 지역은 강원도 양양군밖에 없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지자체 주도 로컬 커런시(Local Currency, 법정화폐 외 보완화폐) 체계를 전국에 구축한 것이다. 한국의 지역화폐가 더 구체적인 지속가능 전략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지역화폐 전국 기금화는 매우 적실해 보인다. 언제까지 생으로 예산에만 의존할 순 없다.  
2025-09-04 | hrights | 조회: 66 | 추천: 4
이동우/ 변호사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체감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도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재명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인 검찰개혁도 추석 전 중요입법을 완료하겠다는 목표 아래 거듭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그 과정에서 개혁의 대상인 검찰을 비롯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이견을 표출하면서 개혁의 내용을 확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검찰개혁은 우리 사회를 검찰공화국에서 정상적인 민주공화국으로 되돌려놓는 가장 중요한 과제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100명이 논의하면 100가지 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로의 생각과 관점,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검찰개혁에 절대로 빠지거나 후퇴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검찰의 직접수사 폐지와 수사지휘 금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필자의 주관적인 입장이지만, 적어도 과거 검찰의 폐해를 해결하겠다면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내용이고 검찰개혁의 성공을 바라는 많은 국민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유지하거나 수사지휘권을 통해 사실상 수사에 관여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미진한 수사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보완수사유지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1차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신설예정인) 중수청에서 수사를 끝냈는데 기소하려고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경우에 검찰이 이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주된 논리다. 현재는 보완수사를 직접 하지 않고 보완수사를 요구하는데,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다시 수사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서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거나 수사의 내용에 관여하는 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수사 기간의 문제는 법이나 내부규정을 통해 수사 기간을 정하고 인력을 보강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기간이 아니라 보완수사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3의 기관을 통해 의도적인 봐주기인지 아니면 정말 보완수사가 필요 없는 사안인지를 검토해 의도적인 봐주기 수사일 경우 담당자와 지휘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즉 어떤 경우에도 검찰이 직접수사를 해야 하거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따라서 국민의 불편을 이유로 검찰이 보완수사를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사실상 검찰공화국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영상 갈무리 출처   검찰의 수사권을 유지하기 위한 두 번째 시도는 1차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를 통제하기 위해 검찰의 직접수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부실수사 통제는 앞선 보완수사와 비슷하나, 이 경우에는 의도적인 봐주기 수사나 전문성 부족에 따른 결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즉, 보완수사 주장이 수사기관의 의도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기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라면 부실수사 통제 주장은 ‘경찰을 믿을 수 없으니 검찰이 나서야 한다’라는 속내를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따라오는 명분은 국민의 권리보호다. 경찰의 부실수사로 피해를 보는 건 선량한 일반 국민인데 정치적 사건 몇 개 때문에 검찰의 직접수사나 수사지휘를 완전히 없애면 경찰의 부패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이 내용이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적지 않은 법조인들도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사실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사기에 가까운 주장이다. 검찰의 수사권이 변화된 건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즉, 검찰의 수사권이 조금이나마 변화한 건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전무죄’라는 말은 검찰이 수사권이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던 과거부터 늘 있던 말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도 10년 전부터 갑자기 생기지 않았다. 다시 말해 검찰의 수사권이 약해지거나 사라졌기 때문에 과거에 없던 부실수사가 생긴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검찰은 자신들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을 때도 관심 있는 대형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만 적극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했지, 일반 국민의 평범한 수사 사건에 대해서는 대부분 경찰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랬던 검찰이 지금 수사권을 뺏길 위기에 처하니 갑자기 국민을 위한 기관인 것처럼 국민의 보호를 위해 수사권이나 수사지휘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행위에 가깝다. 검찰이 정말 국민을 위해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고 통제했다면,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이렇게 커질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과거 행태에는 눈을 감고, 말뿐인 국민보호를 핑계로 수사권이나 수사지휘권을 유지하려는 검찰의 시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간혹 일부 법조인의 경우에는 검찰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국민을 위해서 이러한 주장을 하기도 하나, 그 의도와 무관하게 해당 주장의 결론이 결국 검찰 권력의 유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실수사 통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안은 2차 수사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수사기구를 두는 방법이다. 앞서 부실수사란 의도적인 봐주기 수사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미흡한 수사라고 했던 만큼 동일한 수사부서에 다시 수사를 맡긴다고 새로운 결론이 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관의 신설이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가까운 기간 내에 현실화하기 어렵다면 차선책은 1차 수사기관 내에 2차 수사를 담당하는 별도의 부서를 운용하는 방안이 있다. 이 경우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충분히 부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으로는 별도 부서가 담당하나 실질적으론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최초 수사부서에 다시 사건을 넘기는 편법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선 방법들 말고도 검찰이 직접 나서지 않고 부실수사를 통제해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다른 모든 방안은 뒤로하고 검찰에게 수사와 관련한 권한을 남기려는 주장은 결국 검찰공화국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결코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모든 정책에는 찬성과 반대가 있다. 특히 국가기관의 권한을 변경하는 개혁은 많은 반대에 직면한다. 그러나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내란범죄를 저지르는 초유의 상황은 결코 그냥 발생하지 않았다. 바로 검찰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이라는 조직적 권력이 존재했기에 상상할 수 있었고, 현실적인 시도까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게다. 따라서 검찰권력의 해체 없이 정상적인 대한민국을 기대할 순 없다. 직접수사 폐지와 수사지휘 금지는 이러한 검찰개혁의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이자 최소한이다.  
2025-08-25 | hrights | 조회: 109 | 추천: 8
장은주/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인수위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드디어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를 통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123대 국정과제 등을 발표했다. 검찰개혁을 포함한 많은 과제가 발표되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1번 국정과제로 제시된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개헌’이다. 비록 구체적인 개헌 방향과 시점 같은 건 아직 불투명하지만, 12.3 내란 이후 우리 헌정 체제를 다시는 내란 시도 같은 게 가능하지 않도록 정비해야 한다는 역사적 정언명령에 비추어 볼 때 개헌만큼 중요한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없지 않을까 한다. 다른 현안들에 밀려 아직은 이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 서서히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4년 연임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권) 제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을 공약했는데, 이 공약부터 검토해 보면 좋겠다. 나는 이 공약을 보면서, ‘지금 계엄을 제멋대로 선포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이 문젠데 4년 연임제로 하자는 건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8년으로 연장하는 결과를 낳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더랬다. 물론 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은 기본적으로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이제부터라도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과 성찰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사진 출처   많은 학자는 대통령제가 행정부에 너무 많은 권력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에 적합한 통치 형식일지 의문을 제기한다. 대통령제에서는 막강한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의 자의적 운용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강호프(S. Ganghof)라는 독일 정치학자는 이런 사정을 ‘행정 권력 인격주의(executive personalism)’라고 규정했는데, 쉽게 말해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통치의 양식이나 질적 수준이 전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통령은 너무도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다음 대통령이 또 다른 윤석열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대통령은, 설사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임기를 제한하더라도, 그가 어떤 역량과 성향을 지녔는가에 따라 나라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종의 ‘대체군주’일 뿐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는 독재적 대통령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는 데만 초점을 두었을 뿐, 이런 대통령제의 근본 문제를 제대로 검토해 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오랜 군부 독재 체제의 영향 때문인지, 대통령이 많은 권력을 독점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군통수권자이자 국가 원수이기까지 한 대통령은 거의 모든 국가기관에 인사권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에도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국회와 사법부의 견제가 일정하게 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 권력의 과도함과 자의성 앞에 무력하기 일쑤였다. 윤석열 정부는 입법이 필요한 많은 정책적 지향이 여소야대 국회에 막히자 이른바 ‘시행령 통치’를 통해 우회했는데, 우리 헌법은 궁극적으로 이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제왕적’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권력은 정치 과정 전반을 결정적으로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의회제(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국가들에서 정당들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한다. 대통령제 나라들에서 정당들은 ‘대통령(제)화(presidentialization)’된다. 다시 말해, 대통령 중심의 정당이 된다. 그러니까 대통령제에서 정당은 대통령이나 후보에게 선거나 통치 전략과 관련해서 너무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면서 그들에게 종속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이념과 정치적 지향에 따라 발전하고 운용되는 의회제 국가들의 정당과는 다른 모습인데,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거의 모든 정치 과정은 승자가 독식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대통령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으며, 정당들은 정책과 정치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보다는 적대적 권력투쟁에만 몰두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특정 대통령의 당선은 정당이 아닌 대통령 개인의 집권이었다. ‘민주당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였고, ‘국민의 힘 정부’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였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당보다는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프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국정 방향이 결정되는 걸 보아 왔다. 정당은 이 과정을 주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기에 종속되었다. 정당은 후보로 선출한 대통령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며, 그저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지키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 시기, 심지어 그가 탄핵당하고 구속된 지금도, 국민의 힘이라는 주류 보수 정당이 어떻게 윤석열 개인의 사당으로 전락했는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와 함께 시작된 우리 민주주의의 경험 때문에라도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제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2.3 내란을 거치며 대통령제가 자칫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분명하게 확인했다. 개헌을 위한 절호의 역사적 시기라고 평가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모두의 지혜를 모아 ‘K-민주주의’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통치구조를 고안해 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대통령제의 형태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 깊은 사회적 숙의가 필요한 때다.    
2025-08-19 | hrights | 조회: 246 | 추천: 5
강대중/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이번에도 교육부 장관이었다. 윤석열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내각도 교육부 장관 퍼즐을 한 번에 맞추지 못했다. 거점 국립대 첫 여성 총장이었던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 표절 논란과 자녀의 미국 유학이 국민 정서와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인사청문회 자리에 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후보자가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위원장’을 지낸 이력, 그리고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민주당 공약집의 국가균형발전 파트에 7번째로 제시된 점에 주목했던 사람들의 기대도 거기에서 멈췄다.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답변에 실망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결국 기본 자격 미달이라는 냉정한 평가와 함께 인사 검증이 부실하다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저출생으로 직격탄을 맞은 유아·초·중등교육 분야나, 고령화로 정책적 중요성이 커진 평생교육 분야의 전문성을 공대 교수 출신 후보자에게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가 지방 소멸 문제 해결을 지역 대학 활로 찾기로 접근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의 적임자라는 점만이라도 인사청문회에서 확인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후보자가 그 공약의 제안자라는 보도도 있었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처음 명명하고 제안한 사람은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이다. 그는 동명의 책을 2021년 12월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라는 부제를 달아 출판했다. 출판 시점을 고려하면 2022년 대선 때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화두로 떠오르기를 바랐던 듯하다. 결국 이 구상은 2025년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민주당 정책공약집 191쪽부터 192쪽에는 실린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끌겠습니다. | 지역 거점 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 추진 - 수도권 중심의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에서도 서울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집중 투자 - 10년 내 세계 100대 대학에 거점 국립대 3개교 이상 진입 목표 -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한 어학 프로그램 및 해외 유학 지원 확대 - 신입생 대상 거주형 캠퍼스(Residential Campus) 도입으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 등 공동체 활동이 융합된 통합적 교육환경 제공 | 교육 경쟁력 제고 및 강력한 취업 지원 시스템 구축 - 재학생 및 졸업생 대상 맞춤형 취업 지원 프로그램 대폭 확대 - 취업 연계형 소단위 전공(나노·마이크로디그리) 운영 의무화 - 학과전공별 기초역량 교육 프로그램 도입, 장학금 및 생활비 지원 확대 | 세계적 연구대학 도약을 위한 발전 기반 조성 -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 유치를 위한 제도 마련 - 대학 내 국가연구소 설치, 국책민간연구기관과의 협업 체계 구축 - 대학원 교육 활성화를 위한 장학제도 개선, 연구시설 및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 - 거점 국립대 간 비교 평가지표 공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과관리 체계 마련 | 지역혁신성장의 중심, 국립대-사립대 간 자원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의 RISE 체계 구축 - 정부는 국립대를 지역혁신의 허브로 구축, 지자체는 RISE 체계에 기반해 지역 사립대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지원 협력 체계 구축 - 초광역권 단위 RISE센터 설치로 대학-지자체 연계를 지역 경제· 생활권 중심으로 재편 - 서울대·인천대(법인국립대) 외 거점 국립대 및 국가중심 국립대에 대한 재정지원 분배 강화, 지역혁신형 사립대학에 대한 집중 투자 및 구조개선 유도 - 대학의 지역경제 기여도를 반영하여 지자체의 재정지원 책임 강화, 지역산업과 연계한 협력 체계 활성화 재정 투입 없이 공약 실현은 불가능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으로 예산을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가능하다. 김종영 교수는 책에서 “서울대와 나머지 9개의 지방거점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평균 3,600억 원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각 대학마다 한 해 3,6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증액하자. 그렇다면 한 해 3조 2,400억 원(9개 대학×3,600억 원) 정도의 예산 증액이 요구된다”(262쪽)고 썼다. 그러나 서울대의 예산조차 세계 최고 대학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김 교수가 모델로 삼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연구중심대학 10곳의 2020년 예산은 49조 3,000억 원이었다. 같은 해 서울대를 포함한 10개 거점 국립대학의 예산은 5조 7,031억 원이었다. 여기에 9개 대학 몫으로 3조 2,400억 원을 더해도 캘리포니아 대학들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학부생 수는 양쪽 모두 약 22만 명으로 비슷하고, 대학원생 수는 캘리포니아 쪽이 8,000명 정도 많은 5만 9,000여 명이다. 학생 수는 비슷한데 예산 격차는 매년 3조 원이 넘게 더 투자해도 5배 이상 난다. 고등교육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사진 출처   공약은 10년 내에 거점 국립대 3개교 이상을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종영 교수는 상하이교통대학의 세계대학 학문순위를 주로 참고하는데, 이 순위에서 캘리포니아 대학들은 7개가 100위 내에 포진해 있다. 나머지 3개도 151-200위권, 201-300위권, 401-500위권에 있다. 우리나라 거점 국립대 중에는 서울대가 101-150위권에 있고, 경북대가 301-400위권, 부산대가 401-500위권에 있다. 김 교수의 분석을 감안하면, 이 공약은 서울대·경북대·부산대를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 삼고 있는 셈이다. 100위 안에 들면 공약이 말하는 “세계적 연구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북대·부산대 외에도 세계적 연구대학에 근접해 있는 국내 대학이 꽤 여럿이라는 것이다. 201-300위 사이에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카이스트가, 301-400위 사이에 울산과기원이, 401-500위 사이에 경희대·포스텍이 있다. 카이스트와 울산과기원을 제외하면 모두 사립대이고 포스텍을 제외하곤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국립인 카이스트는 약 700명, 울산과기원은 약 400명 수준의 학부생을 선발하는 비수도권 대학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 대학이 아니라 거점 국립대 3곳일까? 공약은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었던 RISE를 이어받겠다고 못 박았다. 지방정부에 대학 지원 권한을 이양하는 정책인 RISE에서도 거점 국립대 및 국가중심 국립대에 대한 재정지원 분배를 강화하고, 지역혁신형 사립대학에 집중 투자하며 구조개선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이는 RISE 체계에서 사립대 몫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7월 23일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지역 사립대의 생존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새 정부의 고등교육 공약은 거점 국립대 투자 집중, 사립대 선별 지원, 사립대 퇴출 유도라는 골격에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이름을 덧씌운 것이다. 낙마한 이진숙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실현 방안을 만들 대략적인 방법이나 거친 수준의 로드맵 윤곽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끝내 새로울 것은 없었다. 후보자는 지명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거점 국립대뿐 아니라 국가중심 대학이나 지역 사립대와 동반 성장하겠다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과 지역, 지자체 등 현장과의 의견 수렴 및 소통을 하면서 신중하게 방법론을 세우고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이는 김종영 교수의 책에서도 이미 예견할 수 있던 부분이다. 그는 자신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소주의자 전략”이라고 부른다. 그는 “(매년 3,600억 원을 추가 지원받는) 정도로는 서울대 수준이 되는 데 부족하므로 거점 국립대 교수들은 산업체와 정부로부터 별도의 연구비(산학협력단 예산)를 자기 실력으로 받아 와야 한다. 이렇게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10여 년이 지나서는 적어도 연고대 수준의 대학이 된다. 지방대 9개가 서울대 수준이 되기 위해 각기 자율적으로 장기적인 발전 플랜을 작성하면 되지 여기서 구체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262쪽)라고 적고 있다. 또한 그는 “국립대 개혁, 사립대 개혁, 전문대학 개혁, 대학입시, 학제, 법률, 제도 등 모든 것을 바꾸는”(260쪽) ‘최대주의자 전략’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국가는 3조 2,400억 원을 투입하고, 대학이 각자 계획을 세우며, 교수들은 연구비 따내는 노력을 하는 단순화한 원칙에 입각한 ‘서울대 10대 만들기’ 전략에서 교육부 장관이 할 일은 많지 않다. 공약은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를 거칠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두 개의 경쟁축을 전제한다. 하나는 서·연·고 혹은 SKY대 수준의 지역 연구중심대학 육성, 다른 하나는 지역 수험생이 수도권 소재 사립대보다 더 선호할 수 있는 지역 국립대 육성이다. 전자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이 수도권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연구중심대학의 기반인 연구비를 추가 확보해야 한다. 현재 연구비 수준을 그대로 둔 채 거점 국립대에 재분배하면, 세계적 수준에 근접한 수도권 사립대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논의는 다시 국가의 재정 투자 문제로 돌아 간다. 연구중심대학의 심장은 우수한 대학원생 확보와 탁월한 연구자 배출이다. 하지만 학령 인구 급감 속에서 우수 대학원생의 추가 확보는 갈수록 어려울 것이다. 서울대조차 대학원생 확보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이 벽을 넘으려면, 재정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진 출처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또 다른 성공 조건은 수험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가이다. 결국 지역의 9개 대학이 입시에서 수도권 주요 대학보다 더 좋은 학생들을 유치해야 성공한 정책이라 평가받을 수 있다. 학벌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벌의 브랜드 가치를 두고 수도권 주요 사립대와 지역 국립대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종로학원이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고1~3 학생과 N수생, 학부모 6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5.7%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시행되면 진학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진학 후 해당 지역에 정착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47.0%가 ‘없다’고 답했다. 지역에 정착하거나 취업할 의사가 있다는 답변은 26.3%에 그쳤다. 진학 의사가 없는 이유로는 ‘지방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55.0%)가 ‘거점 국립대 경쟁력 향상이 불확실해서’(25.9%)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해 입시 경쟁이 완화될 것으로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아니다’(41.1%)가 ‘그렇다’(32.4%)보다 많았다. 이 조사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기간에 뚜렷한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정책이 과연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오를 수 있을까. 민주당의 대선 정책공약집 271쪽에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확실히 줄이겠습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장학금과 학자금 확대를 다루고 있지만, 대상은 모든 대학생이다. 학벌과 상관없는 대학, 연구중심대학이 아닌 곳을 다니는 청년에게도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김종영 교수 역시 책에서 등록금 문제를 짚었다. 마지막에 그는 짧은 분량을 할애해 대학무상교육을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함께 “대학개혁의 원투펀치”로 제안한다. 그는 “모든 입학 가능 자원이 입학을 한다면 2022년에서 2025년까지 대학 재학 학생 수는 총 156만 명이 된다... 등록금을 사립대 기준으로 잡고 조금 느슨하게 계산한다면 예산은 11조 1,900억 원(7,176,000원×1,560,000명)이 소요된다”(316쪽)고 계산했다. 거점 국립대 집중 투자 3조 2,400억 원, 대학무상교육 11조 1,900억 원, 그리고 추가적인 연구비 예산을 수천억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총 15조 원 안팎이다. 세밀하게 따지면 규모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 고등교육 예산을 국민주권정부가 추가 확보할 수 있을까. 그 예산을 운용할 기회가 새로운 교육부 장관에게 주어질까. 이재명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을 기다린다.  
2025-08-12 | hrights | 조회: 318 | 추천: 7
도재형/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정부는 산재 근절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헌법상 책무라는 점에서 일하는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산재 사망사고에 관한 정부의 이런 태도는 마땅하다. 근로자는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산업 안전은 노동 인권과 괜찮은 일자리 확보의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일부 기업은 산업 안전을 이윤과 효율성에 부수되는 요소로 취급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지난 SPC 사업장 방문에서 대통령의 일련의 질문들이 가리키는 지향점도 이것인 듯하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나마 우리나라 산업 안전의 질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2024년 임금근로자 1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를 뜻하는 ‘사고 사망 만인율’은 0.39‱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0.3명대로 진입하였다. 이 성과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2017년 이후 근로감독관의 증원 및 감독 행정 개선, 2021년 산업안전보건본부 신설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수행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경험한 건 산재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한 묘책이란 없다는 것이다. 단기간의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오로지 정부의 꾸준한 정책 추진과 근로감독 강화, 산재 예방 캠페인의 집중과 지속 등을 통해 산업 안전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경험에 기반해서 산재 사망사고 감축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살필 몇 가지 사항을 논의하고자 한다.   사진 출처   먼저, 산업 안전은 사업주의 책임이란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1970년대 경제발전 시기 이후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산업 안전에 대해선 저규제 정책을 유지하였다. 산업 안전 규제는 최소한에 머물고 사업주의 재량을 넓게 인정했으며 산업 안전 시스템의 외주화를 늘리고, 제재는 관대했다. 산재 예방에 관한 기술적 접근에 집중하며 집행이 쉬운 백화점식 지원이 예방 정책의 중심이 되곤 했다. 이에 따라 산업 안전은 기업의 경영 상황에 맞춰 조절할 수 있고, 안전 시스템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거나 외주화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산업 현장에 퍼져 있었다. 사업주가 안전을 책임져야 할 범위 역시 근로계약 관계로 한정되다 보니, 이를 벗어난 노동자들의 안전은 방치되었다. 예컨대 최근의 질식 사고와 같이 통계상으론 중소기업 근로자의 사망사고로 집계되는 것 중 일부는 원청의 사업에서 일어남에도, 원청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을 타개하고 경영주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위험 예방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소홀히 한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함과 아울러 산업안전보건 법제의 보호 범위를 노무제공자 일반으로 확대하는 입법․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산업 안전은 국가의 헌법상 책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의 예방을 위해선 정부의 각종 사업, 제도 개선 노력에 앞서 노사의 안전의식이 정착되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사업장에선 ‘안전 규정을 지키면 불편하고 손해다’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노사 교섭 과정에서도 임금․고용 문제가 주된 이슈이고 산업 안전 사항이 다뤄지는 빈도는 드물다. 산업 안전과 관련해선 정부가 노사의 요구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노동 인권과 괜찮은 일자리의 보장이라는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청년들의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 역시 임금뿐만 아니라 중소업체의 작업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지방 공단에 가보면 위험한 작업환경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그보다 안전한 곳에선 내국인 청년들이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청년들이 서비스업에만 종사하려 한다고 지적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곳에서 일하려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 산업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산업 안전의 정책 주체를 안정화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2021년 고용노동부에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신설된 것 역시 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이전까지 산업 안전 정책은 국(局) 단위에서 맡았으며 고용노동 정책 내 비중이 작고 고위직급 관료도 부족했다. 이렇게 고용노동부 조직 내에서 산업 안전 정책 주체의 입지가 열악하다 보니 정책 의제의 지속적 추진이 어려웠다. 단기적 정책이 남발되고 분산된 정책들이 추진되며, 핵심적 목표 달성에 집중하기보다 백화점식의 사업을 얼마나 많이 진행했는지가 정책 추진의 중심이 되곤 했다.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설치는 이러한 과거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그 본부의 설치 후에도 정책 수행에서 비슷한 문제점이 보인다면, 산업 안전 정책의 추진 주체를 강화할 추가적인 조직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 넷째, 근로감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 안전 정책에서 흔히 간과되는 것이 근로감독관의 역량과 전문성이다. 근로감독관은 단순한 국가공무원이 아니라 노동법과 산업 안전 법제의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조사․수사 역량을 갖춰야 하는 전문직이다. 이 점에서 ILO 역시 근로감독관의 채용과 직무 수행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노동 정책에서 근로감독관의 채용과 직무 교육, 경력 관리는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단지 국가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감독관으로 배치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들이 근로감독 행정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실천지(實踐知)가 제대로 평가받으며 유능한 감독관이 보상받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산업 안전 캠페인도 중요하다. 우리가 음주 운전을 줄여간 과정을 되돌아보면 이것이 단속과 제재만큼 중요하단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정책 주체는 오랫동안 과도할 정도의 단속을 진행하면서 제재를 강화함과 아울러 ‘음주 음전은 살인과 같다’란 인식을 사회 일반에 심기 위한 캠페인을 계속 추진했다. 지속적인 캠페인은 시민들의 음주 운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고, 그것은 다시 단속 및 처벌에 대한 수용을 유도할 수 있었다. 산업 안전도 마찬가지다. 산업 안전과 관련해선 정말 많은 이슈가 있지만, 특히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핵심 목표를 정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단속과 처벌을 병행해야 한다. 일하는 시민 1명의 목숨을 구하는 건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노동자의 안전은 경제적 이익에 종속되어선 안 된다. 이 마음으로 끈기를 갖고 경험과 증거에 기반해 산재 사망사고 감축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25-08-06 | hrights | 조회: 133 | 추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