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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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도 간다. 고희(古稀)를 10년 전에 보내고 희수(喜壽)를 지난해에 보냈다. 명년이면 팔순의 나이인데, 가는 세월 어찌 붙잡을 수 있을까? 지난 세월보다 짧은 여생을, 우리소원인 ‘분단조국 평화통일’을 기필코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  지나온 삶을 어찌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최선을 다했지만 후회도 많았던 삶이었다. 내 살아온 세월이 격동의 시대였기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삶이었다. 기쁘고 즐거움 보다 질곡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기만 하다.  한때는 혼돈의 시대에 잘못 태어났다고 치부해 버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안이하게 무료한 시간으로 허송세월 보내기도 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노력도 부족했기에 한없이 자괴감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내 탓이었기에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허나 어느 때는 궤변도 더러 늘어놓았다. 시대와 조상을 잘못 만나서, 아니 운이 없어서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허나 진솔하게 생각해보면 게으름을 피우고 노력도 않으면서 남 탓이라 한다면 이는 궤변일 터이다. 어느 때 나에게도 기회가 있었고 도전하여 결실을 거두는 일도 있었기에 후회와 보람도 있었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 전후에서 철부지였던 어린 나는, 맏형의 억울한 죽음과 혼돈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때 각인되었던 아픔의 세월이 성년이 되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스물두 살에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집안기둥인 맏형이 65년 만에야, 진상이 규명되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실로 오랜 세월 인고의 아픔이었다.  반백년 전, 나 또한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그때 파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참전 13개월 동안 전선 없는 전쟁터에서 생과 사 갈림길의 순간이었다. 삶의 귀함을 인식하고 분단국의 평화와 통일을 더욱 갈망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부역자 신원 조회를 이겨냈고, 둘째형이 인민의용군에서 또한 국군으로 참전한 전투에 부상을 입고 상이제대를 했다. 그 후 형의 세 차례의 선거로 집안이 기울어져 진학의 꿈도 접어야 했었다. 그러나 “배워야 하고 아는 게 힘이다”에 주경야독으로 학업에 임하였다.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할 뻔도 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용기도 잃지 않았던 순간이, 내 인생에 기로이기도 했다.  또한 집안의 슬픔은 열일곱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양할머니가 우리 8남매 손 자녀를 조산원처럼 척척 받아내고 양육하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양할머니가 열녀로, 부모님이 효자효부로, 나는 3남이면서 30년 부모님을 모셔 효열 3대가로 이어 왔었다. 8남매 중에서 내가 기준과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가문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풍비박산 집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런 사실들이 자화자찬처럼 느껴져 송구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자성하고 자책하면서 다짐하곤 했다. 과연 남은 세월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나, 늘 생각했다. 지난 삶을 잘 이어가고 과오를 뉘우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삶이었다고 생각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부족한 글쓰기에 다가갔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에 대한 흥미가 성년에 더욱 살아나면서 만학의 꿈을 갖게 되었다. 가방끈이 짧다는 자괴감도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 배우면 따라갈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하기만 했다. 욕심이 과했는지 여러 권의 책을 냈지만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글을 쓰는데 문학에서 소설과 수필을 쓰고 칼럼도 쓰고, 또한 서예 붓글씨도 어려서부터 쓰고 있다. 여러 분야 작품을 선보이지만 역시 부족하기만 하다. 많은 퇴고와 연마를 해야 하는데 시간 부족으로 미진한 작품을 내고 만다. 퇴고를 잘해야 했는데도 미진한 작품이 나오면 후회가 뒤따를 뿐이다.  항상 내 스스로 게으름과 서두르는 잘못을 저지르는 면이 있다. 글쓰기에 있어 나에게 다가온 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조선반도 분단의 아픔을 어찌 치유하느냐? 는 무거운 주제였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말로나 노래만 하지 말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선봉에 앞장서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진 출처 - 평화방송  나는 실천을 위해 평화통일에 진력하는 여러 단체의 일원이 되고, 간부가 되고 단체에 책임을 맡아야 했다. 분단 현실에는 일제에 36년을 지배당하고 해방이 아닌 분단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외세를 막지 못하고 이루어졌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인식한다면 우리 8천만 동포들이 외면만 할 수는 없을 터이다.  나라 잃은 설움에 32세 안중근 의사와 23세 윤봉길 의사가 계신다. 처자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정신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윤봉길 의사는 내 윤문중의 형님항렬이다. 8․15 광복은 바로 분단으로 이어져 75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러만 갔다.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분단국가로 언제 평화통일의 그날이 올까? 필연코 우리가 이뤄내야 한다.  우리의 조국이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면 8천만 동포들이 분발해야 한다. 나는 지난 통일교육위원으로, 평화연대 등 재야단체 임원으로, 통준사 공동대표도 맡고 있지만 항상 부족하기만 하다. 비록 통일을 원하지 않는 동포나 그리고 주변 외세가 있어도 우리는 이를 극복해 내야만 하지 않을까.  오랜 분단에 조국의 통일을 위해 희생되신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오래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록 두 분 의사(義士)처럼 젊지 않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제 내 생애를 ‘마무리 잘하는 삶’은 정의 평화 통일의 길 일 뿐이다. 오랜 분단조국의 평화통일 보다 더 소중한 꿈이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최선을 다한 삶을 살면서, 나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한다. 또한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우리 8천만 동포의 꿈이요 소원인, 한(조선)반도에 평화통일을 필연코 이뤄내야 한다. 그래서 평화통일 세상에서 살아가는 꿈을 자주 꾸고 있다.
2019-04-17 | hrights | 조회: 25 | 추천: 2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올 해의 제주 4·3항쟁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제주도민에 대한 국가폭력으로서의 의미규정과 더불어 경찰총장의 사과가 있었다. 4·3은 다 알겠지만 신탁을 반대하는 제주도민에 대한 빨갱이 규정과 더불어 민관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해 제주도민의 다수가 처형되거나 고문 받는 등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여전히 제주도민들의 가슴에 남아있고, 누군가는 피해자로서, 또 누군가는 가해자로서 이웃을 대해야 하는 도민들은 삶 그 자체가 고통으로 남아있다.  이에 앞서 3월 27일~28일에는 ‘제주 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가 열렸고, 28일은 제주 4·3 문학세미나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가 열렸다. 기조 강연은 ‘제주 4·3사건 진행 시 제주여성사회의 수난과 극복’을 주제로 『한라산의 노을』을 집필한 한림화 작가가 맡았다. 한림화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제주의 150개 마을을 직접 돌아다니며 모은 제주 4·3사례 중 여성들의 피해를 소개했다.  “4·3사건 진행 과정에서 공비로 의심되는 이들의 은신처 혹은 행방을 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가족구성원, 특히 여성들은 무차별 성고문 당한 후 학살됐다. 그러한 학살을 두고 민관군경으로 구성된 토벌대는 ‘대리사살=대살’이라는 명칭을 서슴없이 사용하면서 당연시했음을 확인했다.”며 “대신 죽이는 방법은 성고문 후 나무에 목매달아 서서히 죽이기,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고 죽이기 등 다양했다.” 특히 “제주여성 인권말살 현장 중에 직접적인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 즉 성고문에 대한 사례는 들어도 또 들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았다. 심지어 가해자들이 제주여성을 성노예로 삼은 예도 몇 건 있었다.”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829, 제주의 소리 2019. 4. 10)  구체적인 사례들은 위의 사이트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국가가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과 정치적 자율권을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주체이다. 국가는 권력형성의 주체로서 시민을 목적으로 하는, 법의 수립 및 권리의 정립이라는 목적이면서 동시에 시민의 권리보호를 위한, 법과 권리를 유지, 보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가 목적이든 수단이든 그것은 시민의 권리라는 목적어가 존재함을 전제한다. 그러나 국가는 한편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적인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조직체’이자 스스로 판결하는 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가의 권력은 어느 때고 폭력으로 돌변하기 쉬우며 이에 대한 판결 또한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쉽다. 제주 4·3항쟁을 비롯한 부마항쟁, 광주 5·18 등의 진상이 뒤늦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제주4.3평화공원 내에 설치된 ‘변뱅생 모녀상’. 작품 제목은 ‘비설’이다. 1949년 1월 6일 토벌을 피해 거친오름을 오르다가 여성 변뱅생(당시 25세)이 두 살 배기 딸을 끌어안고 죽은 채 다음해 봄에 발견됐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출처 -  여성신문  국가폭력은 다른 종류의 모든 폭력(저항폭력)을 불법으로 규정지음으로써 불법적인 폭력에 대한 엄단과 처벌을 주장함으로써 벌어진다. 공적인 자율권으로써의 저항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하는 국가폭력은 국민들의 사적 자율성에 대한 보호를 근거로 내세우며, 여기서 국민은 권력형성의 주체가 아닌 권리보호의 대상으로 추락한다. 시민의 자율성을 주장하지만 공적인 자율성 –저항권, 공론형성권-을 무시하는 국가권력은 폭력이 된다. 국민을 공적시민권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가폭력은 국민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을 국가의 호명에 반응하는 순응적 대상으로 만들고 길들이고 양육해야 하는 대상으로 볼 때 발생한다. 제주에서, 부산 ․ 마산에서, 광주에서 저항했던 시민들은 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국가의 부름에 반항하는, 따라서 폭력적인 계도를 통해 순종하도록 해야만 하는 존재로서 국가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폭력과정에는 반드시 ‘여성화’, ‘성애화’의 과정이 진행된다.   “토벌대에 의한 제주도민의 수난은 집단적 성폭력의 양태로 나타났다. 겁탈은 말할 것도 없고 임신부와 출산중인 부녀자를 총살하고, 한 마을 사람들을 나체로 결집시켜 놓고 가족관계를 불문하고 남녀를 지목하여 강제로 성행위를 시키다가 총살하는...”(김성례. 1988)  이는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가할 때 이는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방법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피해자들이 강간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를 통해 성폭력 여성 피해자들이 피해의 탓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자책 혹은 자기분노를 통해 국가폭력의 부당성을 가리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행해진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들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광주의 피해자 및 그 가족들 역시 수치심에 꽁꽁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드러나지 못했다.  국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또 국가는 상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서의 국가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수탈에 기반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으로서의 차별-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은 여전히 여성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위축하게 한다. 여성에 대한 만연한 폭력들이 서슴없이 자행되는 데는 그러한 아버지이자 상인으로서의 국가가 나 몰라라 하는 배경이 있다. 내전이든, 전쟁이든 위기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성은 국가의 배임아래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국가폭력-시민권에서의 소외-이 여성에게는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권력이 도처에 있다면 저항도 도처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극악한 국가폭력 앞에서 두려움에 위축되었던 희생자들은 이제 말하기 시작했고 끔찍한 사건들이 드러나고 있듯이 여성들도 저항권을 행사 중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중의 저항정치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과정에 있다. 공적저항과 사적저항 두 가지의 바퀴를 굴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저항은 점차 세대를 이어가면서 확산되고 있다. 스쿨미투는 그러한 면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예다.
2019-04-10 | hrights | 조회: 77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시장과 도덕  보통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표해서 정치를 맡아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기대를 갖는다. 그 기대는 시민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곤궁함이나 억울함을 직접 해결해 주리라 믿지 않는다. 사회의 공공성에 입각한 바람직한 원칙과 법을 정치인들이 제대로 마련함으로써 그에 따라 자신의 처지가 개선되리라 믿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의 공공성에 관련된 사회의 체제와 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장과 도덕이다. 시장은 도덕과 무관하게 오로지 재화와 부의 배타적인 소유를 둘러싼 이익관계에 따라 작동한다. 그 반면, 도덕은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인격적이고 정신적인 호혜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작동한다.  사회의 공공성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합리성과 그에 따른 합의에 의해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공공성과 직결되는 사회적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인 합리성과 합의는 한편으로는 시장의 이익관계에서 성립하여 작동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도덕의 인격적인 상호관계에서 성립하여 작동할 수도 있다. 사회의 공공성 형성과 사회적 정의의 구현을 둘러싸고서 시장과 도덕은 대체로 길항작용을 한다. 그 강함과 약함에 있어서 서로 반비례하는 것이다.  사회의 공공성의 구축과 확대는 사회적인 정의를 보편적으로 실현하는 바탕이 된다. 올바른 정치는 사회의 공공성 구축과 확대를 통해 사회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정치는 시장이 요구하는 내용과 도덕이 요구하는 내용을 아울러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 여기에 정치의 딜레마가 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비인격적인 방향으로 작동함으로써 도덕을 멀리한다. 그런가 하면 도덕은 기본적으로 인격적인 방향으로 작동함으로써 시장에 대해 규범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정치는 그 사이에서 움직인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공공성과 합리성은 철저히 계산에 입각한다. 그 계산은 투입 ‧ 지출되는 자본과 그에 따라 새롭게 산출되는 자본의 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때 사회적 공공성은 자본 위주의 계산에 따른 예측이 얼마나 가능한가에 따라 그 범위와 강도가 결정된다. 말하자면 시장적 질서가 곧 시장에 의거한 사회적 공공성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합리성은 자본 위주의 계산적인 예측을 더욱 정확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만 작동한다. 그리하여 시장의 구도에서는 애초 진리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성찰적 합리성이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으로 전락한다.  진리가 선험적 ‧ 초월적으로 그 본질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고래의 관점은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없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상호 주체성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형성할 때 그 공동체를 통해 공공적으로 추구되는 의미와 가치에서 진리가 성립한다고 여긴다. 모두가 모두를 통해 자신의 삶을 최대한 긍정할 수 있을 때 그 의미와 가치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시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의 구조적인 체제 속에서 생산한 일체의 것들이 공공적인 가치를 지닌 재화로써 상품화되어 사회적 상징물인 화폐를 매개로 대대적인 연결망을 통해 교환되는 장소다. 문제는 시장이 온갖 다층적인 복잡한 연결망의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생산자인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생산물이 제대로 된 값으로 교환되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으로 시장은 불신의 구도로 작동하고, 그리하여 누구나 자신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값보다 실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라 여기면서 암암리에 박탈감을 갖는다. 말하자면 남들에게 더 많이 주고 남들로부터 덜 받게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지출하거나 기여한 몫에 비해 사회가 제공하는 편의의 정도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통해 수행하는 정치적 행위가 우선 목표로 삼아 추구할 것은 시장을 불신의 구도로부터 구출하는 일이다. 어차피 시장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시장을 통해 각자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되 사회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공정하게 자신의 정당한 몫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적 행위의 최우선 과제다. 이에 필요한 것이 보편적인 안목에 따른 성찰적 합리성이고 그에 따라 성립되는 도덕에 의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조정이다.  보통 시민들에게 시장은 너무나 복잡한 체계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시장을 통한 부의 획득과 누적 그리고 대를 이은 계승에 대해 사회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몫이 과연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고 있는 소득세나 증여세 및 상속세의 비율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납세자는 부당하게 많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수혜자는 부당하게 적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장이 지닌 근본적인 불신의 구도는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넘쳐나도록 하고 그리하여 호혜적인 사회적 공공성마저 근본적으로 훼손하여 사회적인 불화를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호혜적인 사회적 공공성을 지탱하는 것이 도덕이다. 상호 신뢰가 없이는 도덕이 성립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남이 적건 많건 나의 이익을 부당하게 가로챌 수 있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한, 서로를 통해 성립할 수밖에 없는 인격의 상호인정과 그에 따른 도덕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2. 현실 한국정치와 도덕  서로의 정당한 몫을 보장하는 가운데 나의 정당한 몫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고, 그러한 정의로운 행동의 가능성을 잣대로 실제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도덕이다. 그리고 정치는 이러한 도덕에 바탕을 두고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드러나는 한국의 정치는 도덕과 아예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든 남의 몫을 빼앗아 나의 몫을 강화하려는 행태를 보이면서 정치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도덕에 의거한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을 구축 ‧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혹시라도 상대방이 그런 노력이 보일라치면 어떻게든 이기적인 권력욕에 의한 것인 양 변조시켜 비난한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정치적인 행태가 그러하다. 대대적인 폭력으로 사람들을 죽여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다음 정권을 찬탈한 세력을 비호하는 자신들의 행동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온갖 희생을 다한 끝에 그러한 세력을 몰아내고 겨우 형성한 민주주의가 법적으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당연한 양심적인 행동인 양 내놓고 과시한다. 이는 자신들의 정치적 혈통이 얼마나 무섭고 추악한 것인가를 제 스스로 증명하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그들의 전당대회의 모습에서 이러한 왜곡된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한 자유한국당의 정치 행태는 정치에서 도덕이 실종되면 민주주의마저 어떻게 실질을 상실하고 그 형식만으로 심각한 폐해를 낳을 수 있는가를 여실히 입증해 보인다. 그런 정치적 혈통 속에서 자행한 온갖 무법적이고 파렴치한 무지와 악행을 민주적인 법과 절차에 의해 국가적인 권력으로써 처벌하는 일을 ‘폭압정치’로 몰아붙이면서 마치 자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신봉자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억울한 희생자인 양 국민을 호도한다. 그럼으로써 정치란 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 필요 충분한 목표인 양 하고, 그래서 시쳇말인 ‘내로남불’이란 말을 남발하면서 현 정권 세력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정치권력을 향한 야욕에 불타는 것으로 몰아붙여 그 왜곡된 판 위에서 무조건 현 정권의 정책들을 비난한다. 모처럼의 남북평화를 위한 노력마저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이를 위해 시장에서도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극단적인 감정적 망언들을 기염을 토하듯이 경쟁적으로 외쳐댄다.  사진 출처 - KBS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모든 국민들로부터 제거해 버리려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든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도록 함으로써 뒤죽박죽의 정치판을 만들고 그런 가운데 도덕과 아예 무관한 정치를 정착시킴으로써 그네들이 과거에 저질러온 비도덕적 ‧ 비합법적 행위들을 비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지도부의 주장들을 보면, 마치 정권을 잃어버린 탓에 현 정권에 의해 그들의 과거가 비도덕적이고 비합법적으로 부당하게 취급되고 있음을 선전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를 철저한 불신의 구도 속에 몰아넣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을 구성하는 불신의 구도가 당연한 것인 양 자리를 잡게 되고, 상호 신뢰에 근거한 도덕을 바탕으로 한 사회 공공성이 무너지고, 사회 공공성에 의거한 법마저 권위를 잃게 되면서 법치가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행위로 치부된다. 그리하여 법의 힘을 빌려 최소한으로 시장의 힘을 조정하고 나아가 도덕을 힘을 빌려 최대한 시장의 힘을 조정하고자 하는 정치 행위의 본질적인 가능성이 현저히 약화된다. 그 결과, 사회 공동체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넓고 깊은 국민 개개인의 삶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 불신은 사회적인 불신을 낳고, 사회적인 불신은 개개인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한시바삐 정치를 불신의 늪에서 구해내야 하는 까닭이다. 정치적 불신의 구도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 불신에 의한 감정으로 정치에서 요구되는 성찰적 합리성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법을 도덕 위에 세우고, 그 법으로써 정치적 혼돈과 불신을 조장하는 세력들을 준엄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칼날 위에 선 자세로 정치에 임해야 한다. 
2019-03-13 | hrights | 조회: 168 | 추천: 2
윤영전/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우리가 살고 있는 분단조국에, 진정으로 전쟁기운이 사라지고, 진정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자주 반문해 본다. 지난 6.25 전쟁에서 비참했던 그날들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에 전쟁국의 지도자들이 수시로 상호 방문을 하고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이 있기도 했다.  내 눈으로 본 5살 적 기억에도 생생한 세계 제2차 대전의 막바지에서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았던 일제 말이었다. 그들의 압제 하에서 나라 잃은 슬픔에도 만세를 불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때 기억에 무궁화 꽃이 눈병을 옮긴다며 꽃을 못 보게 하기도 했었다.  무궁화 꽃은 영원한 우리나라의 국화로 사랑받고 있지 않았던가. 그처럼 일제는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만행을 자행했었다. 지난날 북한은 적은 액수로 북일 간에 대일청구권 등을 합의 하지 않았다. 북은 미국과도 지금까지 북일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남북이 동시에 UN에 오래전에 가입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미·일과 정식 수교를 했는데도, 북한과는 미·일 양국이 수교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제연합 유엔의 세계평화에도 반할 뿐 아니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그렇게 따돌림 받던 쿠바도 몇 년 전에 미국과 수교를 맺었다. 헌데 북한과는 아직도 수교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국제질서의 규범이 어떠했는가? 지난 봄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폴에서 세계가 지켜 본 가운데 악수를 하며 함께 했다. 지금의 세계 질서에서 비 수교국과의 정상회담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아마 두 정상들은 보편타당한 지구촌 인류평화에 다가간다는 정신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북은 분단만 아니었다면 남과 함께한 8천만 단군조선의 후예로 한 핏줄로 맺어진 같은 동포가 아닌가? 제2차 세계대전의 흉물인 38선을 그어 남북으로 갈라놓은 세계 강대국들의 행패에 우리 동포들은 마냥 슬프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지구촌 세계 속에 비록 면적과 인구가 적지만 세계 12개국의 순위에 당당한 자부심이다.  강대국들의 격전지였던 한(조선)반도가 두 동강 난 38선에서 6.25전쟁의 아픔에 그어진 155마일 휴전선으로 분단 된지도 65년의 긴 세월이 흘러갔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분단국으로 살아온 남북은 과연 언제 통일된 나라가 될 것인가? 한없는 자괴감마저 드는 게 오직 필자만의 생각일까?  조국분단 73년 만에 한반도 평화통일론이 찾아왔다. 지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6.15선언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선언이었다. 그 두 선언들이 계속 이어 졌다면 아마 지금쯤 많은 남북교류와 협력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을 터이다. 필자도 당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과 통일단체 임원으로 금강산 5회와 개성공단 3회를 다녀왔다.  북의 동포들도 진정 남북통일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년이요, 퍼주기 10년이란 악의에 찬 몰염치 수구 세력들의 집권 10년이 얼마나 분단의 아픔에 상처를 안겨 주었는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조금만 더 평화통일에 다가 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수구 보수정권의 남북갈등 10년은 남북이 평화와 통일에 마치 장막을 치듯 막히고 말았다. 빈번하게 일어난 천안함 사건 등의 진실도, 서해 전에도 마치 당연한 진실처럼 몰고 간 사건들이었다. 그간 6.15와 10.4선언이 무색할 정도의 남북 갈등유발은 동포들이 할 짓이 아니었다. 얼마나 아쉬운 역사적 순간들인가를 생각하면 한없이 안타깝다.  필자는 다음해면 팔순의 나이에 접어든다. 태어난 1941년 일제 35년에서 일제는 마지막 발악을 부리던 해였다. 한없이 징용에 끌려가고 공출을 내야 했던 그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비록 어렸지만 어지간한 용어들까지 일본어 사용을 강제당하기도 했다. 1945년 8월15일 어른들과 형 누나들이 태극기를 들고 시내로 돌진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해방되었으면 당당한 독립국이 되어야 했었는데도, 남북에 미국과 소련은 소위 38선을 긋고 남은 미국이, 북은 소련이 과도기 3년을 통제했다. 남북이 정권을 수립할 때까지 그들이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해방이 곧 미국과 소련의 과도기 정권에 의존해야 했으니 참으로 슬픈 현상이었다.  북은 6개월 만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고, 남은 3년 만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다. 남북의 동포들이 하나의 정부를 세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나 약소국의 설움은 그 누구도 봐주지 않았다. 북은 정권수립 5달 후에 소련이 물러갔다. 하지만 남에는 미군이 계속 주둔했다. 한때 북과의 형평성에 반하기에 미군이 오키나와 지점으로 물러선 듯 했었다.  이에 6.25전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있다. 소련은 이미 본국으로 돌아가고 미국은 6.25 전쟁으로 인한 3년 전쟁에 소위 연합군까지 동원하여 한반도를 사수하고 1.4후퇴와 중공소련군까지 출동하는 국제전이 이어졌다.  이 또한 슬픈 한(조선)반도였다. 일제 35년에 다시 외세에 7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그들의 그늘에 마냥 기를 펴지 못했다. 남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민주당 장면정권 8개월, 심지어 박정희의 5.16이 일어나 유신까지 18년 6개월 장기집권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이명박근혜 10년 그리고 촛불혁명에 문재인 정권 3년차를 집권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정권의 집권 70년을 보면 보수 수구적 정권이 58년 민주정권이 12년의 정권이었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공화국의 근본을 망각한 군사정권의 집권은 헌정사에 부끄러움을 남기고 말았다. 이 또한 주변 강대국 패권주의가 위세를 부리던 결과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을 논할 때에 필히 참고할 일들이 존재하고 있다. 남북은 벌써 오래전에 용케도 유엔 회원국으로 당당히 가입하였다. 그런데 유엔으로부터 과연 남북은 공히 균등하게 회원국의 대우를 받고 있었는가. 남은 미국과 일본과 수교를 맺었는데 북은 아직도 일본, 미국과 수교를 하지 않고 있어 유엔회원국으로 너무도 불공평하지 않는가? 사진 출처 - 뉴시스  필자는 1965년 2월부터 1965년 5월까지1년3개월 동안 베트남에 용병으로 파견되었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비둘기부대에서 청룡, 맹호, 백마, 백구 등 년 인원 5만 3천명이 9년 동안 파견되었는데, 전사가 6천여 명 부상 2만4천명 고엽제 환자가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 미군을 비롯한 참전 연합군도 많은 전사 부상자가 속출했고, 결국10여 년 만에 호치민이 이끄는 월맹군에 연전연패했다. 그들은 진즉 외세를 물리치고 그동안 부진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당당히 북미간 회담의 장소로 제공을 하고 있다.  미국은 그간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전쟁이 베트남 전쟁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 베트남과도 국교를 수교했다. 그리고 금번 호치민시에서 북미정상 회담을 가졌다. 결국은 미국이 대 중국을 겨냥한 지역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가 아닌가?  전쟁은 인간멸살이기에 지구상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강대국의 최신무기 미사일 핵무기 등 생산과 이를 사용함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전쟁의 상흔은 우리 후손들에게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은 전사자는 물론 고엽제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군들은 자국에서 보상을 받았지만 한국군은 많은 고엽제 환자들이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고엽제 환자는 면했지만 전우인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북미 정상이 하노이에서 전쟁 아닌 평화의 선언을 기대했는데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제 전쟁 아닌 평화세상을 이루는데 모두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염원해 본다.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한국서예 전통서예 통일비림 초대작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근묵회장.
2019-03-07 | hrights | 조회: 164 | 추천: 3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지난해 한 남성의 고발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드러나게 된 ‘버닝썬 물뽕사건’은 2015년 소라넷의 실시간 강간 동영상 촬영과 유포, 양진호 사건으로 드러난 불법촬영물 유포 사이트와 피해자에게 돈을 받고 동영상을 삭제하는 기관이 같다는 것. 17년 동안 소라넷에 대한 조치는 미루고, 몇 년 안 된 워마드의 홍대촬영은 즉각 조치하는 남성 경찰과 검찰, 사법부의 관점이라는 프레임의 연장선에 있다. 그것은 여성들의 몸은 남성들의 관음과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실천의 장으로 존재하지만 남성의 몸은 여성에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이중 잣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혜화동 불법촬영 근절 시위에서 10만이 넘는 여성들이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를 외치며 불법촬영의 예방과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할 때 많은 남성들은 ‘과격하다!’ 고 했다.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모든 남성을 적으로 모는 여성운동은 옳지 않은 거라며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했었다. 경찰은 이러한 여성들의 분노에 대통령까지 나서자 강력대응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몰카 판매 금지’ 같은 가장 중요한 대응책은 나오지 않았다. 강력처벌의 수준도 기대 이하였다. 남자들은 그 피해가 자신의 아내, 누나, 여동생, 딸일 때는 피해자 여성보다 더 분노하는데 그 이유는 본인 소유물에 대한 침해라는 관점에서의 분노일 때가 많다. 그리고 대다수 남자들은 곧이어 아내, 딸 등의 행실을 따지며 피해자에게 분노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착취가 이미 거대한 구조로 정착되었고, 일상화되었으며, 자신도 타인의 여자에게는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구조이기 때문에 일상화된 사건에 개인의 저항이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자들은 구조에 분노하기보다는 피해자에 분노하고 낙인을 찍으면서 더욱 더 견고하게 남성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수록, 항상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어야 하는 여성들의 존재가 커질수록, 음침한 남성연대는 여성의 몸과 성을 훑고 착취하고 갈취하고 있는 것이다.  소라넷, 양진호의 사이트 외 수많은 불법사이트들이 존재하고 떼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남성연대,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찍는 놈, 올리는 놈, 보는 놈’ 모두가 여성폭력, 여성착취라는 카르텔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소라넷의 실시간 강간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 경찰은 ‘장난’이라고 했다. 온라인이니까. 불법촬영물 사이트도 마찬가지로 대응했다. 안이하게. 온라인이라 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말이다. 버닝썬은 어떤가? 온라인은 결론일 뿐이다. 동영상은 결론이고 서론, 본론은 오프라인에서 발생한다. 버닝썬은 그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뽕을 술에 타서 여성을 심신불가능 상태로 만들고 바로 위층의 호텔로 끌어가 성폭행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서 사이트에 올리고, 그걸 보는 남성들은 ‘학습’한 후 실습에 돌입한다. 한 좌석에 수십에서 수백씩 하는 돈을 뿌려가며 여성을 낚고 약을 먹이고 싫다면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여성은 이들에게 무엇일까? 누군가 나를 인간이하로 취급할 때, 그 누군가가 권력/힘을 가지고 있고 또 집단이라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개인적으로는 저항하다가 위압을 당할 것이고, 피해자임에도 숨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피해자이거나 될 가능성이 있는 동질의 집단이 있다면? 피억압자 정체성을 극복 했는가 아닌가에 따라 대응은 달라질 것이다.  여성들은 그동안 너무도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억압과 착취를 당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착취를 버젓이 자랑 질하고 전시함으로써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위협하면서 더욱더 침묵하고 순응하라고 강요한다. “안 그러면 너도 이렇게 될 거야.” 라고. 순응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고, 순결하면서 섹시해야 하고, 여성성을 갖춰야 하며, 남자가 부를 때는 언제든 ‘네’를 말해야 하는 존재이다. 여기에는 화장품, 옷, 구두, 가방, 여성교양 및 취미, 과학적 모성(수유방법, 영재만들기...) 및 가사노동( 인테리어, 청소, 위생, 요리, 수납...), 클럽, 호텔, 성매매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성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산업들인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이든 사무직이든 여성은 남성의 63%의 임금밖에 못 받으며 노동하고 있다. 이 역시 여성착취에 기반 한 산업이다. 여성은 집 안과 밖에서 평생을 노동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도 여성의 몫이지만, 사회와 국가는, 이데올로기와 관습은 여성의 노동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착취를 은폐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착취는 ‘구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남성들의 ‘행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둘은 상호구성하면서 여성착취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는 주범이다. 때문에 “과격하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착취의 은폐성을 각성한 여성들은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고 남자들은 구조로서의 가부장적 남성연대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착취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MBC  버닝썬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에는 아쉽다는 표현, 그립다는 표현, 꼭 부활하자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이건 과감한 자기주장이 아니다. 아주 무식한, 무사유한 결과의 표현이다.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성찰하지 못하는 자의 자의식일 뿐이다.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다. 악은 악하고자 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사고하지 않음으로써, 집단적으로는 시시비비를 논하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여성착취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사고 없이, 논의 없이 실천하는 수많은 이들, 특히 남성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고, 가부장제 산업구조는 여성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존재하고 있다.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자본의 원시적축적의 진원지인 것이다. 여자 친구를 성매매로 몰고 돈을 갈취하는 남자들은 그저 그러한 진실을 실천하고 있는 중 일 뿐이다.
2019-02-20 | hrights | 조회: 201 | 추천: 2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유엔 인권 사무소에 따르면, 2015년 3월 이후 2018년 8월 23일까지 예멘 내전으로 민간인 6,660명이 사망하고, 10,563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실제 숫자는 이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2018년 12월 6일-13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유엔 중재로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이끄는 예멘 정부와 반군을 이끄는 후티 사이의 협상으로 전략적 격전지인 예멘 서부지역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알 후데이다와 타이즈 지역 등에 대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 휴전협정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2019년 1월 말 현재 이 지역들에서 양 측 사이의 교전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예멘 내전이 종식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주요한 걸프 왕국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가 예멘 내전에 깊이 개입하면서 각각 서로 다른 파벌들을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지도1.에서 보듯이, 사우디는 하디정부, 아랍에메리트는 남부과도위원회, 카타르는 이란과 함께 후티정부를 각각 지원하고 있다. 지도1. 2019년 1월, 무장 파벌들의 통제 지역  2015년 3월, 이 내전은 하디정부의 장악력을 높이려는 사우디 주도의 아랍연합군(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수단,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과 후티 민병대를 지원하는 이란 등 양 측 적대국들의 개입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2017년 이후, 아랍에미리트가 지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는 사우디가 후원하는 하디정부뿐만 아니라 이란과 카타르가 지원하는 후티정부와도 교전하고 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가 사우디의 통제권 밖에서 적대적인 전선을 구축하였다.  2017년 5월 11일, 남부과도위원회가 창설된 이후, 전선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면서 더 복잡해진 형국이다. 전임 아덴 주지사 아이다루스 알 주바이디(아덴 주지사 재임:2015년 12월 7일-2017년 4월 27일)가 하디 대통령의 아덴 주지사 해고 결정에 항의하면서, 남부과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렇게 하디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분리해 나온 남부과도위원회의 최고지도자는 알 주바이디이며, 남부과도위원회 본부는 아덴에 있다. 남부과도위원회는 1990년 북예멘과 남예멘을 통합해 창설된 예멘 공화국(1990-내전) 이전에 존재했던 남예멘(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지역 영토 대부분에 대한 통치권을 추구한다(지도2. 참조). 이를 반영하듯, 남부과도위원회는 남예멘 영역에 속했던 7개주, 즉 아덴, 라히즈, 달레, 사부흐, 하드라마우트, 알 마흐라, 소코트라 주의 전임 주지사들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남부 살라피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인 하니 빈 브레이크를 구성원으로 포함한다. 남부과도위원회의 목표는 남부지역에서 하디정부를 대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2. 북예멘과 남예멘 영토  2017년 5월 12일, 하디 대통령은 이러한 남부 분리 독립 가능성을 거부하면서, 남부과도위원회를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하고, 불법으로 선언했다. 2018년 2월초 아덴에서 남부과도위원회와 하디정부군 사이의 교전으로 40명 이상 사망하였으며, 남부과도위원회가 아덴의 주요 정부 건물들과 기반시설들을 장악하였다. 현실적으로 남부 예멘 지역에서 하디정부 세력은 남부과도위원회에게 완전히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2019년 1월 말 현재 하디 대통령은 그의 아들들, 각료들과 함께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2015년 2월, 하디는 후티에게 밀려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수도 사나에서 가택 연금되었다. 한 달 후에, 그는 사나를 탈출하여, 자신의 고향 아덴으로 피신한 이후 사임을 철회하고, 후티를 쿠데타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2015년 3월 25일 후티세력이 아덴으로 진격하면서, 보트를 이용해 아덴을 탈출하여 리야드로 피신했다. 2015년 9월 사우디의 아덴 폭격 성공으로 하디가 일시적으로 아덴에 복귀하였으나, 그는 다시 리야드로 탈출하였다.  반면, 새로 창립된 남부과도위원회는 아덴에 본부를 두고 각주의 전임 주지사들과 협력하여 현지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아덴 주민들은 아랍에미리트가 후원하는 아덴은 두바이처럼, 번영하는 항구도시로서 물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2019년 1월 현재, 아랍에미리트가 후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는 사우디가 후원하는 하디정부를 능가하는 매우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2017년 6월 5일,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연합은 카타르가 무장단체들 및 알카에다와 ISIS를 지원한다고 비난하면서, 카타르와 모든 관계 중단을 선언하고, 카타르의 예멘내전 참가를 중단시켰다. 반면 같은 날, 후티가 이끄는 소위 혁명위원회 위원장인 무함마드 알리 알 후티는 카타르와 협력할 용의가 있으며, 카타르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남부과도위원회 대변인 살렘 알 울라끼는 “카타르가 후티에게 무기를 사도록 재정지원을 함으로써, 예멘뿐만 아니라 아랍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한 이란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일한다.”고 주장했다. 남부과도위원회 청년 분과장인 나자르 하이삼은 “카타르 정부는 후티가 더 많은 무기를 살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기여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알 자지라 뉴스 방송과 이란과 레바논의 방송망 등을 통해서 무슬림형제단과 후티를 지원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2018년 5월, 카타르 정보장교 무흐신 알 카르비가 후티와 협력한 혐의로 예멘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예멘-오만 접경지대 화물 항구를 통해 예멘을 탈출하려다가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가 충돌하는 행보는 사우디 주도의 아랍연합군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예멘 지배권을 대상으로 한 걸프 왕국들 사이의 투쟁이 예멘 현지의 서로 다른 무장 파벌들을 후원하면서 예멘 내전을 이끄는 강력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등 국제사회가 주도하는 예멘 분쟁 해결 노력은 쉽게 성취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아랍에미리트가 후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는 카타르가 후원하는 후티가 장악하고 있는 북부지역보다는, 오히려 사우디가 후원하고 하디정부가 통제하는 남부지역을 확고하게 장악하기 위해서 더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역내 강국들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연계된 예멘 내전 상황을 쉽게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사우디는 북서부에서는 카타르에게, 남부에서는 아랍에미리트에게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 상황은 하디정부를 중심으로 예멘 내전에서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사우디에게 결코 유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참고문헌> Aden's STC says Qatar is giving Houthis financial support, Ali Mahmood, July 23, 2018,   https://www.thenational.ae/world/mena/aden-s-stc-says-qatar-is-giving-houthis-financial-support-1.753172 Arab coalition suspends Qatar’s participation in Yemen,  5 June 2017   https://english.alarabiya.net/en/News/gulf/2017/06/05/Arab-coalition-suspends-Qatar-s-participation-in-Yemen.html Banished Aden governor forms independent "South Yemen" council, 11 May, 2017  https://www.alaraby.co.uk/english/News/2017/5/11/Governor-turned-president-Adens-Al-Zubaidi-announces-council-to-govern-South-Yemen GCC rejects formation of Yemen transitional council, 14 May 2017   https://www.aljazeera.com/news/2017/05/gcc-rejects-formation-yemen-transitional-council-170513141733873.html Hadi Rejects ‘South Council,’ Urges Members to Clarify their Stances, May 12, 2017,   https://eng-archive.aawsat.com/ibrahim-al-qurashi/news-middle-east/hadi-rejects-south-council-urges-members-clarify-stances Houthi militia leaders, Iran come to Qatar’s defense after severance of ties, 6 June 2017  https://english.alarabiya.net/en/News/gulf/2017/06/06/Houthis-join-Iran-come-to-Qatar-s-defense-after-severance-of-ties.html How did Qatar back the Houthis in Yemen? Aug. 3, 2017,   https://www.egypttoday.com/Article/2/15264/How-did-Qatar-back-the-Houthis-in-Yemen Manuel Almeida(2018). Federation plan should be top priority in Yemen, February 08, 2018, http://www.arabnews.com/node/1242136 Qatar Human Rights Committee condemns arrest of Qatari national, 14 May 2018  https://www.aljazeera.com/news/2018/05/qatar-human-rights-committee-condemns-arrest-qatari-national-180514094117721.html Qatari intelligence officer arrested over Houthi militia support, 2 May 2018  https://english.alarabiya.net/en/News/gulf/2018/05/02/Qatari-intelligence-officer-arrested-over-Houthi-militia-support.html Yemen on the brink: how the UAE is profiting from the chaos of civil war, Fri 21 Dec 2018,   https://www.theguardian.com/news/2018/dec/21/yemen-uae-united-arab-emirates-profiting-from-chaos-of-civil-war Yemeni government arrests a Qatari officer on suspicion of cooperation with Houthi militia, 02 May 2018, http://www.arabnews.com/node/1295421/middle-east Yemeni President Hadi 'under house arrest' in Riyadh, 7 Nov 2017   https://www.aljazeera.com/news/2017/11/yemen-president-hadi-house-arrest-riyadh-171107082638642.html Yemen Prime Minister Holed Up As Separatists Seize Most Of Key Southern City, January 30, 2018  https://www.npr.org/sections/thetwo-way/2018/01/30/581821833/yemen-prime-minister-holed-up-as-separatists-seize-most-of-key-southern-city
2019-02-08 | hrights | 조회: 275 | 추천: 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갑갑하다.  최근 들어 왠지 갑갑하다. 정국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원인이지 싶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벌려놓고 수습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촛불시민항쟁의 위력으로 수십 년 간의 징역형이 예상될 정도로 무능과 부패를 저지른 두 명의 역대 대통령을 수감시켜 놓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옛날 같으면 이들의 수하에서 이른바 호가호위한 자들은 아예 척살되거나 어딘가에 숨어 숨죽이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적반하장 격으로 정가에서는 물론이고 백주대낮에 목소리를 높일 뿐만 아니라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네들이 정의요 진리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 뒤에서 법적으로 작동하리라 여겨지는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사회의 덕목이 어른거리고, 이를 저들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는가를 느껴야 하는 심사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최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고 뭐고 아예 그 싹을 자르듯이 하면서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던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이 그들의 정치사회적인 아버지였고 뿌리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허약성의 일면을 떠올리게 되니 어찌 심사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주적인 법 절차에 따라 이른바 적폐청산을 과감하고도 순조롭게 수행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 동안,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 운운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일찍부터 나돌아 다니더니 급기야 현 여당에서 길러내어 두 번씩이나 도지사를 지낸 인물이 성폭행 혐의로 기소가 되고, 역시 여당에서 길러낸 두 명의 도지사가 범죄 혐의를 받고서 검찰을 오가는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짓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수고대하던 적폐청산, 그 깃발이 찢어진 채 허공에서 나부끼는 형국이다.  게다가 적폐청산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경제 난국’이 발목을 잡는다. 과연 경제 난국인가? 경제가 어떻게 어려운지 그 원리는 물론이고 실상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이 교체되었다. 그럼으로써 정치적으로 일단 백기를 든 셈이다. 반대 야당에서는 적폐청산에 몰두하느라 경제를 망쳐버렸고 남북 평화에만 정신이 팔려 경제를 망쳐버렸다고 주장한다. 근거도 없을뿐더러 앞뒤 논리도 맞지 않는 억지인데도 짐짓 또는 진심으로 그렇게 주장한다. 이를 통해 저들이 적폐청산은 말할 것도 없고 분단극복 · 남북평화와 같은 민족의 역사적인 숙원마저도 정치적인 술책의 재제에 불과하다고 여김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불리하게 만든다면 그 어떤 정의나 진정한 가치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북평화세력과 적폐청산을 외치는 자들이야말로 적폐청산의 대상이라고 떠든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극을 달린다. 그런데 마치 그네들이 ‘턱도 없이’ 내뱉는 이러한 말들이 적중이라도 한 것처럼 청와대 최고의 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비위’가 터져 나왔다. 수사 개입 운운하기도 하고 근무시간에 한가하게 골프를 쳤다는 소식이 전국을 강타했다. 전면교체가 결정되었다. 꿀 먹은 벙어리 신세,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민주독재’라는 팻말을 들고서 민주노총에서 일보삼배까지 해 가면서 현 정권의 노동 정책을 전격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광주형 일자리 운운하더니 현대자동차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밀실야합의 예산심사 결과 각종 복지예산액은 현저히 거부되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름과 면면이 소개되면서 마치 승전고를 울리듯이 지역개발을 위한 예산액이 증폭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여당이 거부한 탓에 두 정당 대표가 단식 중이다. 이와 더불어 물론 쉽다고 여긴 것은 결코 아니지만, 연초부터 불어 닥친 민족을 위한 큰 소식에 이어 여러모로 힘써 성과를 올려온 끝에 아직도 충분히 기대해마지 않는 분단극복 · 남북평화의 염원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한 북미간의 대 협상도 그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조차 아직은 오리무중 말만 무성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니 어찌 갑갑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필부마저 이렇듯 갑갑한데 목숨을 걸기까지 하면서 민주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워 온 많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대통령이 과연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당시 대통령 박근혜 씨가 밤이 되면 청와대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할까 하고 그저 궁금해 했다. 그런데 지금의 대통령은 해결되지 않은 채 산적한 현안들을 붙들고서 씨름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2. 분하다  그래서 분한 마음이 일어난다. 어떻게 만든 절호의 기회였던가,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떻게 또 다시 날려버리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갑갑한 마음과 겹쳐 분한 마음이 이는 것이다. 심지어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것도 몰랐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더욱 분하다. 정치란 본래 그런 것 아니겠어, 권력을 손에 쥐면 다들 그렇게 변심하기 마련임을 몰랐어, 그동안 억눌려 살아온 사람들이 이때가 기회다 하고서 잇속을 챙기려는 마음이 더 강하지 않겠어, 기회가 왔는데도 초심으로 돌아가 일신의 영달을 버리고 모두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어, ‘내로남불’이라고 하지 않던가, 등등. 누군가가 지껄일 것 같은 온갖 ‘무서운’ 말들이 뇌리 속에서 맴돌면서 갑갑하고 분한 마음에 이어 자괴감마저 이는 것이다. 각종 가짜 뉴스들이 모든 일들을 희석시켜 전후좌우를 분간치 못하게 하고 그런 와중에 부패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온갖 간사한 술책을 부리는 자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이 마음들이 뭉쳐져 원통하다는 마음마저 이는 것이다. 3. 차분한 마음으로  철학자 하이데거는 감정이 존재를 표현하고 일러준다고 했다. 갑갑하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어찌 나 한 사람에게서만 일 것인가. 추운 겨울에 수시로 나가 촛불을 들고서 수십 년 갑갑하고 분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래도 차분하게 질서정연하게 대업을 이루어낸 그 수많은 인물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갑갑하고 분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민주 세력의 집단적인 감정은 그들의 존재를 표현하고 일러줄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촛불의 위력으로 집권을 하게 된 세력들은 그야말로 현명하면서도 성실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마땅히 그래야 하고, 또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아직도 순진하게 믿고 싶고 사실은 믿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의거해 위임받은 일시적인 권한임을 명명백백하게 마음에 아로새겨야 한다. 자신이 잘나서 그 자리에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면면을 보건대, 당신들이 맡은 일을 당신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을 위해 국민들을 대신해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또 그 일은 얼마나 중차대한가. 그런 어렵고 엄중한 일을 맡은 자들은 함부로 웃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슬퍼해서도 안 된다. 마치 권력을 누리니 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하는 심사를 지닌 양 만면에 미소를 띠고서 서로 악수를 나누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그런가 하면,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모습을 보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격조 없이 비난해대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처참한가. 서로를 오로지 권력을 탐하는 자들로만 여기게 되면 상대를 무조건 내 권력을 위협하는 적으로 여겨 그처럼 후안무치한 방식으로 비난의 공격을 퍼부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후안무치한 정치꾼들을 몰아내어 발본색원할 수 있을지 차분하고도 현명하게 그리고 빈틈없이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인물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해서라도 그 뜻과 지혜를 모아 실천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처럼 민주 시민들의 힘으로 맡게 된 국민주권의 국가 권력을 한낱 정치꾼들의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2018-12-12 | hrights | 조회: 368 | 추천: 10
윤영전/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세상을 한 80여년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과의 아름다운 삶을 이어왔다고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필자다. 그러기에 지난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연이 되어, 자신의 사고를 높이고 자연스럽게 지식까지 습득하면서 공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많은 인연들과의 삶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만남의 시간을 자주 갖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인연의 끝자락에 아쉬워하며 부족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즐거움을 갖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연들을 공유하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오기도 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인연으로 한 세대를 훌쩍 넘겨버린 지 오랜 세월인데, 특별히 만남을 청해왔다. 몇 달에 한번 보는 형편이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물론 그가 어떤 문제로 나를 찾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먼저, 그를 잠깐 소개한다. 우리가 불혹의 나이 언저리에 이르렀을 때에 만학도의 향학열이 높았던 시절이었다. 대학원 경영연수과정에 동문으로 함께하여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왔었기에 상당히 절친한 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류 박사는 자신의 전공이자 전문적 연구학문인 최면심리학의 박사이며 심리학연구소장으로 거침없는 연구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보기드문 유명 학자였다.  그는, 한 5년 전의 만남에서 심리 최면연구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서로가 소통하기 쉬운 시문학에도 접근하면서 이미 유명인사와의 교류도 넓히며 벌써 시집을 상재했다고 하였다.  류 박사는 필자에게 시집 앞면에 멋들어진 축하 서예를 부탁하였고 나는 흔쾌히 붓을 들어 “好書文樂. 人生幸福” ‘祝, 류한평 박사 시집, 인생을 행복하게’  出刊記念 書藝 1점을 써 주었다. 한국최면심리학선구자, 류 박사가 서정 잠언 힐링 시집을 낸다니! 그는 감성을 자극해 마음을 즐겁게! 심신공통을 치유생활에 활력을! 주안점으로 한 내용으로, 얼마 후에 좋은 시들을 게재한 시집을 출간하였다. 사진 출처 - 대한심리연구소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바로 금년 중반에 류 박사는 나에게 깊이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서초구 반포성당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면서 약속장소에 갔다. 다름 아닌 “고뇌의 결단” 이라며 자신이 심리학 최면술의 대가라고들 하지만, 가톨릭에 영세를 받기로 했다면서 나에게 代者를 서 달라고 했다.  나는 선뜻 “안 그래도 류 박사가 신령 최면 세계에서 신의 존재에 수긍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했었는데, 아주 반가운 소식이라”고 대 환영이라 했다. 그리고 보름 후에 성당 영세 미사에서, 그의 등에 손을 얹으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제자가 되기를 간구했었다. 류 박사도 만족해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함께 느끼는 순간이었다.  올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평소 몸에 약간의 질환이 있는 것 같아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었다. 물론 옛 나이로 치면 여든을 몇 년 지났으니 건강이 젊은 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정능력에 둘째가라면 섭섭해 할 심리학 박사로 최면의 대가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걱정이었다. 얼마 후 들려온 소식은 병원에 입원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해 걱정이었다. 아들과의 어려운 통화를 하면서 병세를 물었다. 현재 의사의 소견은 면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금지시키고 있다는 엄격한 말을 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러기를 1-2개월이 되었다. 다시 병세를 물었지만 호전이 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 한번, 잠깐이라도 병문안을 가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도 제한된다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단 한번 이라도 만날 수 없다니! 야속하기만 했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는 류 박사를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는 충남 청양 출신으로 일본 최면과학원을 졸업했고 국제공인의학 최면치료사 자격증을 따고 명예 교육학 박사도 받았다. 미국, 일본 최면대학 객원교수로 활약하며 당신의 전공인 최면 심리관련에 그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류 박사는 자기최면, 타인최면, 건강최면 등 21권의 최면 정신건강에 대한 저서가 있다. 국내 다수의 대학과 정부기관, 주요 약품제약회사, 중앙공무원 등 수많은 강의와 실험을 직접 보여주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심리학의 최상지식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학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지난날 고인이 되기 전에 육 여사의 치료와 생전 윤보선 전 대통령도 직접 방문해 심리 최면술로 치료를 한 그였다. 국내외는 물론 해외에도 출강하고 국내외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 당신의 전문인 최면 심리치료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 당신은 자신이 갖고 있는 특수하고 실재적인 전문 최면을 가능한 보다 많이 시술하였다. 나는 그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연구로, 많은 심리치료가 이루어져 환자들이 즐거움을 갖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들에게서 온 연락은 결국 회생하시지 못하고 운명했다는 비보였다. 나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단 한번 이라도 만나야 했는데, 그만 그 많은 인연들과 영원히 이별이라니 너무도 아픈 마음이었다. 우리 동기회서 조화를 보내고 빈소를 찾았다.  유족의 슬픔이 얼마나 클까? 아무나 하지 못한 특수한 심령 최면술에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안을 받았는데, 당신 본인이 이런 비통을 어찌 감당하란 말인가? 통탄뿐이다. 영안실 영정에 온화하고 다정한 류 박사의 모습이 너무도 평안해 보였다. 부디 저승에서도 많은 영혼들에 평안을 돌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류 박사는 평소 나의 분단조국과 평화통일에 대한 운동을 격려해 주었었다. 나는 그 때마다 “전쟁광들 모두심리치료로 허물어 버리면 좋겠다”며 반 농담도 했었다, 류 박사의 아래 시를 상기한다.  “민족이 함께 사는 길” 남북 분단 대치 어언 70년, 왜 단군의 한 핏줄끼리 갈라져서 적대시 하고 싸워야 하나? 남북이 충돌하여 핵전쟁이 나면, 모두 몰살인데, 더러 살아남는다 해도 문명은 파괴되고, 자연은 방사능에 오염. 생존하기 힘들 텐데, 전쟁에서 이긴들 무슨 소용. 우리 민족이 함께 사는 길은 통일뿐. 통일로 어느 한쪽이 손해 본다 해도, 전쟁으로 다 처참해 지는 것 보다 백번 낫지 않을까? 통일의 기본 요건은 먼저 상대 존중 포용 교류, 친화와 신뢰를 구축 하는 일, 남북통일, 적을 동지로 만들 수 있는 지혜와 신념과 용기를 가진 통치자가 나오면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류 박사님 부디 영면하소서!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한국서예 전통서예 통일비림 초대작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근묵회장.
2018-12-05 | hrights | 조회: 174 | 추천: 1
김학성/ 전주교도소 의무관  오늘날 교정시설은 교정이념에 따라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성공적 재사회화라는 막중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대규모 시설에의 과밀수용 등 교정교화를 위한 기본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교정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혐오시설 수준에 놓여 있으며, 출소자들에 대한 인식 또한 매우 부정적이다.  국민들은 각종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죄행위의 잔인함과 흉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범인들의 빠른 검거와 강력한 처벌을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교정시설에 수용된 이후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또 소위 교정교화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들이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와 어떠한 과정을 겪으면서 재적응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이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법행위를 반복하며 소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사회적 폐해를 생각한다면, 이들의 사회 재적응 과정에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사회공동체적 노력은 필수적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수형자 교정교화와 사회적응, 교정시설을 둘러싼 우리사회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형자 교정교화는 교정시설에만 의존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 교정시설 내 대다수 수용자들은 우리사회로부터 낙인 받고 영구히 격리되어야 할 전과자가 아니라, 언젠가는 건전한 시민사회 일원으로 복귀해야 하는 우리 이웃 주민이다. 이들의 범죄 성향 여부를 떠나 이들이 정작 사회로 돌아가 지역사회에 재적응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 누구도 범죄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만성적 실업과 심화된 사회양극화의 현실 속에 일반 국민들조차 감내하기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이들이 출소 후 지역사회에 재적응하기까지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은 바로 이웃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 도움에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교정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요인에서이다.  첫째,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과거 일제시대 독립군이나 권위주의 시대의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투옥으로 인한 부정적 경험들이 교정시설에 투영되어 있다. 교정교화의 상징이 되어야 할 교정시설이 고문이나 인권탄압이 자행되는 인권침해 시설로 인식되어 있으며 심지어 합리적 여론 형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언론매체에서조차 감옥이나 간수라는 용어가 사라지지 않는 실정이다.  둘째, 교정시설은 그 특성상 사건 사고 위주의 언론보도에 매우 취약한 시설에 속한다. 교정교화를 위한 현실적 토대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보도내용의 상당수는 도주, 사망사고 내지 인권침해 사례 등 사건, 사고 위주가 주를 이루어 왔다. 이에 따른 교도관의 책임과 자질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고생하는 대다수 교도관과는 상관없이 교정시설이 마치 인권탄압이나 부정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어, 결과적으로는 교정행정이 더욱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되어 왔다.  셋째, 교정시설 개선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수형자들의 실생활에 기반 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인권정책, 관련 정책 당국자들의 책임의식 부재이다. 최근 인권의식의 향상에 따라 교정시설 내 수용자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상당히 높아져 있으면서도, 정작 인권의 근간이 되는 낙후된 시설 개선과 과밀수용의 해결 등 수형자 기본생활권 확립에는 무관심하다. 대규모 시설에의 과밀수용은 그 자체로 수형자간 불필요한 갈등을 증가시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파괴할 뿐 아니라 교정교화의 기본이 되는 분류처우를 어렵게 하는 등 인권처우와 교정교화의 존립근거를 흔드는 독소적 요소이다. 사실상 수형자 인권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수형생활의 기본권 보장의 근간이 되는 교정시설의 현대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정시설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장벽은 교정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겨 자신들의 주거지역내 시설설립을 적극 반대하는 지역사회주민들의 인식이다.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형자들의 생활상과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현장 교도관들의 합리적 의견이 교정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  국민이 교정시설을 혐오시설, 인권탄압과 부정비리의 온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가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지역사회적응으로부터 멀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직도 인권탄압의 주체를 교도관으로 잘못 인식시키고 있는 일부 인권단체나 언론매체들은 합리적인 여론 형성의 책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수형자들의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교도관들의 의견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현실에 맞는 교정정책이 실현되어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매체들의 교정시설에 대한 합리적 성찰을 위한 노력들은 시민들의 교정시설 인식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수형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회공동체적 노력은 수용자 교정교화와 사회 재적응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이다. 교정교화의 궁극적 완성은 교정시설에서가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정시설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시민의 행복한 삶을 지켜가기 위한 사회안전망으로써, 시민사회의 적극적 관심과 연계 속에 이들의 교정교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시설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2018-11-27 | hrights | 조회: 185 | 추천: 6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아홉 달 동안 제주에 살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 여행 와서 보던 제주와 살고 있는 제주는 완전 별개라는 것이다. 여행 와서 보고 싶은 모습만 보던 제주와 현재 살고 있는 제주는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 내가 이곳에서 말하는 제주는 뉴스에 나오는 제주와도, 여행지 제주와도 다르다. 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여행지에서는 부딪히지 않을 감정들. 어떤 때는 너무나 불편해서 집 안으로 숨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것들.   그것들 중 대부분은 이곳의 오래된 문화와 내가 배우고 누리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이곳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 몇 달 혹은 일 년 정도 살다 다시 육지로 나갈 거라면 무시하고 넘겨 버릴 수 있겠지만, 제주에서 나갈 때를 정하지 않은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내야 하는 것들이다. 소화하다, 이 표현이 적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지 알게 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지는 않는 상태. 현재까지는 그 상태로 제주에서 나는 살고 있다.  모다들엉 놀게마씸   제주 생활과 함께 시작한 나의 도서관 사서 자원봉사.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사업과 행사를 치러야 하는 줄 알았다면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상가리 마을 작은 축제 도서관에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사진 출처 - 필자  '모다들엉 놀게마씸'은 제주말로 "모여서 함께 놀자”라는 뜻이다. 상가리새마을작은도서관에서는 제주시마을만들기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9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유기견을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아이들과 나눈 <생명은 모두 다 소중해요>, 직접 요리하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도 했던 <요리 조리 어린이 요리 체험>, <캘리그래피로 만나는 명언>, <조물조물 아이 클레이>, <캐릭터 그리기>, 같이 마을길을 걸으며 구석구석 알게 한 <우리 동네 한바퀴>, 10주간 매주 노인정에서 그림책 읽어드린 <책 읽어주는 사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한 <어린이 게이트볼 교실>, <중국어 동극> 같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새마을문고협회의 지원으로 <중국어 그림책>과 <제주어 동요 배우기> 수업도 이루어졌다. 시골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 체험을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위 수업들 외에도 동네에서 영화 보자는 취지로 영화상영을 네 차례나 열어 아이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이 모든 수업과 행사 참가자가 400명을 넘었으니 시골 마을에서 이런 행사들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올해의 모든 프로그램을 끝내고 총정리하면서 도서관축제를 마련했다. 주민들이 기증해준 600여 권의 책을 무료나눔하고, 올해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제주어동요’ 공연, 더럭초 5학년들의 ‘오카리나’ 연주, 4학년들의 ‘중국어 동극’ 등 축하공연도 열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행사를 준비한 도서관 사서들 모두 뿌듯해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깔끔하고 아이들이 책읽기에 포근한 마을도서관. 올초 리모델링되기 전에도 도서관이긴 했으나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창고 비슷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무료봉사하는 사서들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책들도 제대로 분류가 되고 새 책들도 다수 들어오는 등 살아움직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전에 편하게 이곳을 드나들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새단장을 한 후 잘 모르는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는 도서관이 왠지 불편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 모양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몇몇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마을 예산으로 리모델링한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해 보자는 취지로 자원봉사자들이 나섰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정작 본인들은 소외시키고 마치 이주민들끼리 모이는 아지트처럼 비쳤던 것 같다. 나보다 몇 년씩 먼저 제주에 온 다른 사서들은 이미 이주민과 토박이들 사이의 거리감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자꾸 만나고 부딪혀야 서로에 대해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상가리마을도서관 사진 출처 - 필자  도서관 사서들이 2인 1조로 10주간 노인정에서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나는 첫 책으로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책을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에 나오는 곶감은 제주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땅콩도 잘 재배하지 않고, 겨울은 쉬는 시기가 아닌 귤 수확철이라는....어르신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부랴부랴 책읽기를 끝내니 진땀이 났다. 책읽기가 끝나면 다른 사서가 민요를 몇 가락 불러드렸는데, 역시 책보다는 민요!   이주민들이 늘면서 그들이 제주로 데리고 들어오는 애완견들도 늘었다. 시골에서 가장 눈에 띄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집에서 키우는 개에 대한 인식인 듯하다. 시골에서도 개를 많이들 키운다. 마당에 개집을 두고 집 안에 들이지는 않는다. 여름 한 날 도서관 뒤에서 어르신들에게 수박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큰소리가 났다. 대접하는 부부 중 부인이 애완견을 안고 수박 근처에 온 것이다. 할머니가 먹을 것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며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먹을 음식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이신 것 같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키우는 것과 같이 산다는 개념의 차이만큼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제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할머니가 밭에서 쭈그려 일하고 할아버지는 밭두렁에서 담배 피면서 쉬는 풍경이다. 할아버지는 경운기 옆에서 쉬고 할머니가 농약통을 짊어지고 농약을 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모든 할아버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니길 바라지만). 제주의 할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 년 내내 바쁘게 움직인다. 할머니들이 보기에 집에만 있는 여자들(대부분 이주민 엄마들)은 놀고먹는 팔자 좋은 인간들이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토박이 딸, 며느리 중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은 없다. 집에 있는 아들과 아버지들은 봤어도.  내가 사는 집은 주변이 다 새로 지은 집들이라 마을 한가운데 있는 농가주택처럼 옆집 할머니가 안 계신다. 그래서 생활하면서 특별히 눈치를 많이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골살이는 언제 어느 때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가리마을도서관과  리사무소는 출입문을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오후 5시 리사무소 사무장이 퇴근하면서 도서관 문도 잠근다. 가끔 그러지 않을 때 마을 주민 누군가가 도서관에 들렀다 불이라도 켜두고 가는 날이면, 어르신 누군가가 저녁 늦게라도 사무장에게 전화해 알려주신다고 한다. 도서관 운영한답시고 마을 비용을 헤프게 쓴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뭐라도 꼬투리를 잡으면 도서관에 대한 불만을 함께 얘기하신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본인들에게는 어떤 이득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다 제주 시내나 육지에 살고 있고, 막상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은 모두 이주민이다. 젊은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활기가 생기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평생 가꾸고 일구고 살아온 동네가 본인들 자식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식들에게 이 시골로 들어와 살라고 말은 못해도 심정적으로는 같이 살고 싶은 것인가. 그 감정을 이주민들에게 투사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2018-11-21 | hrights | 조회: 264 | 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