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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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설경(변호사),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임아영(경향신문 기자),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당진에서 일한 지 어느덧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라면서 줄곧 대도시만 경험했던 내게 당진이라는 작은 소도시는 낯선 곳이었다. 아무 연고 없이 처음 와본 곳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지역’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어 대도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읍·면, 리’ 등의 행정구역조차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당진에서 보낸 시간 동안 적지 않게 들었던 말은 “여기서 경력 쌓고 더 큰 곳으로 가야지”라는 말이었다. ‘지역’의 가치를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역은 벗어나야 할 공간으로 여겨졌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 때문인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인천으로, 부산으로 떠났다. 7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경제성장 정책이 성장거점 개발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사람들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인구밀집 현상이 기형적일 정도로 심각하다고 얘기하면서, 정작 지역은 떠나야 할 곳으로 여기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과 대도시는 좋은 곳, 지역은 안 좋은 곳이라는 인식은 지역주민들이 서울·수도권에 대해 갖는 열등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서울이나 인천에 올라가 자리 잡은 고향 동창들은 성공한 인물로 그려지고, 고향으로 낙향한 친구들은 타지에서 실패한 뒤에 돌아온 패배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서 뜻을 펼치고자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많다.  이곳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살면서는 중앙언론(상당히 중앙집권적 표현이다. 전국언론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은 대단한 곳, 지역언론은 하찮은 곳이라는 인식들이 불편했다. 전국언론과 지역언론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인데, 지역신문은 영향력도 별로 없는 그렇고 그런 매체로 여기는 것에 대해선 지역신문 기자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사진 출처 - istockphoto  당진에 지역신문이 없었다면 1조 원에 달하는 지자체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감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립박물관과 시립극단, 특정인을 위한 문학관 추진과 같이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예산과 사업을 무산시키는 역할을 수도 없이 해왔다.  또한 시민들에게 지역의 이슈를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며 공론화의 장으로서 역할도 한다. 이렇게 형성된 지역 이슈는 주민들의 집단화된 목소리로 이어졌고, 중부권 특정폐기물 처리장 설치 문제나 당진항 지정, 가축보험 제도 개선 등 국가의 정책을 바꾸기도 했다.  전국언론에서는 지역신문을 모니터해 지역에 사는 화제의 인물 등에 대해 재취재해 보도하고 있다. 당진시대 기자들은 우리가 보도한 인물들의 연락처를 묻는 방송사 작가의 연락을 수시로 받는다. 지역공동체의 활동을 확대하고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것 또한 지역신문의 역할이다. 실제로 지역신문이 잘 자리 잡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의 주민들의 인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지역 또한 대도시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똑같은 사회다. 정부와 국회가 있듯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있고, 예산부터 조직과 인사, 그리고 각종 용역과 계약, 건설 등 곳곳에 부조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반드시 지역언론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지역이 서울·수도권의 변방이 아닌, 똑같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 사회로 여겨지길 바란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발전 수준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임아연 위원은 현재 당진시대 편집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06-03 | hrights | 조회: 154 | 추천: 6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역사가 두 번 반복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나폴레옹 1세의 비극과 나폴레옹 3세의 희극, 박정희의 비극과 박근혜의 희극처럼 일정한 시차를 두고 두 번 반복되는 역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역사는 ‘특이점’이 올 때까지 ‘무한 반복’된다고 하는 게 진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정대협)에 대한 언론의 과잉 왜곡 보도와 검찰의 수사 착수, 그리고 진보의 분열은 리버럴이 집권하면 ‘무한 반복’되는 낯익은 풍경이 됐다. 11년 전 노무현 서거 사건부터, 정연주 KBS 전 사장에 대한 억지 기소, ‘조국 사태’와 윤미향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진보 죽이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발화점이 정권의 보복이든 내부자의 폭로든 상관없이 기름을 붓는 건 언론이며, 처음에는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의혹 제기의 성격을 띠다가, 보도 경쟁이 심해질수록 사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표적이 된 사람을 악마화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검찰이 등장한다. 이것은 현대판 조리돌림이다  윤미향과 정의연대가 30년 동안 해온 일이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시민단체도 회계 처리는 제대로 해야 한다. 시민들의 기부금은 더욱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비리가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언론의 과도한 보도 행태다. 윤미향 아버지에게 안성 쉼터 관리를 맡긴 행위 자체는 부적절했지만, 한 달에 100만원 안팎의 수고비 받은 걸 마치 연봉 7천만 원이 넘는 것처럼 10년 치를 합쳐서 제목을 뽑거나, 특정한 의도를 가진 사기꾼의 말을 인용해 거짓 보도(BTS 팬클럽 협찬품, 할머니들 못 받았다)를 일삼는다. 정의연대 활동가의 연봉이 경실련보다 몇 백만 원 많다는 둥 기부금 낭비 프레임을 부각하려 애쓰기도 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연봉 3천만 원이 넘으면 안 된다는 건지, 기사를 쓴 <문화일보>에 묻고 싶다. 문화일보의 평균 연봉은 그 두 배가 넘을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따져보면, 문화일보와 정의연대 활동가의 연봉 숫자는 서로 맞바꾸는 게 정의롭다고 나는 생각한다.  홍위병들의 조리돌림처럼 모욕적으로 자행되는 언론의 양아치 행태는 손을 써볼 도리가 없다. 일단 언론의 표적이 되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도덕적인 척했던 부도덕한 인간이 되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해명해봐야 소용없다. 비틀어서 다시 공격할 재료로 삼기 때문이다. 사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이미 집은 불타버린 뒤라서 사람이 상하거나 지붕은 무너진 상태다. 언론은 정정보도나 명예훼손 소송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이한 침묵 vs 과도한 마녀사냥  탐사에디터로 일하면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딸의 KT 취업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김성태가 반박했고, 우리는 재반박했다. 김성태의 반박은 거짓말로 가득차 있어서 대응하기 쉬웠다. 우리를 힘든 게 한 건 다른 언론들의 냉담한 무관심이었다. 새로운 의혹을 추가 보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사 내부에서조차 “무리한 기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믿을만한 복수의 취재원 증언이 있었고, 여러 차례 교차 검증했으며, 딸과의 통화(처음에 멋모르고 받은 전화였는데, 우리에게 확신을 준 통화였다) 등 충분히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언론사들이 따라오지 않으니 맥이 빠졌다. 외로웠다. ‘기이한 침묵’의 시간이 석 달이나 지나고, 검찰 수사가 진전되고 나서야 ‘이달의 기자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아주 천천히 수사를 진행하며 김을 뺐고, 소환은 철저히 비공개로 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전이어서 주요 사건은 공개 소환이 원칙이던 시절이었다. 검찰이 좋아하는 구속영장도 이때는 청구하지 않았다. 언론은 딸의 사생활을 파헤치지 않았다. 김성태는 지금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으며 티브이 정치 토크쇼 패널로 출연하고, 윤미향의 재산 형성 의혹을 제기한다. 똥 묻은 개가 따로 없다. 미통당 계열 인사들의 경우 이런 예는 너무 많아서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예를 들어 이혜훈은 바른정당 대표가 된 뒤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대표를 사퇴했고, 언론은 더 이상 취재하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혜훈도 요즘 티브이에 나와 합리적 보수 행세를 한다. 누구도 그의 티브이 출연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보수의 파렴치와 진보의 염치  왜 언론은 보수인사들의 부정과 비리에 이토록 관대한가. 왜 진보인사는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털려가며 조리돌림을 당하는가. 진보는 보수의 부패를 비판해 왔으니까 스스로 부패하면 죄가 더 무거워지나?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의 비대칭은 훨씬 더 심각하다. 이 비대칭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쇳말이 바로 ‘염치’다.  언론들이 보도 경쟁을 하며 전국적인 사안이 되는 경우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가릴 것 없이 다 함께 뛰어들 때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진영논리라는 개념조차 없어서 보수인사의 부정비리에는 쉽게 눈감고, 진보인사의 부정비리에는 사력을 다해 달려든다. 진보언론은 진보인사의 부정비리를 보수인사의 그것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진보인사의 부정비리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합세해 금세 전국적 사안이 되지만, 보수인사의 그것은 묻혀 버린다. 족보를 뒤지는 연좌제 성격의 추국(推鞫)형 보도는 보수언론의 전매특허이므로 보수인사에게는 적용될 일이 없다. 보수언론의 파렴치와 진보언론의 염치가 언론 보도 불균형의 주요 원인이다. 뻔뻔한 보수보다는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진보가 때렸을 때의 타격 효능감도 더 클 것이다. 사진 출처 - MBC 진보언론 비난하는 시민의 마음  진보언론이 염치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진영논리를 경계하며 엄정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다만 진보언론을 비난하는 시민의 마음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진보언론에 이렇게 묻고 있다. ‘왜 진보를 비판할 때의 열정과 의지가 보수를 비판할 때는 보이지 않는가?’ ‘왜 윤미향의 재산 형성 의혹은 파헤치면서 윤석열 처가의 재산 형성 의혹은 파헤치지 않는가?’ 이들의 요구가 진영논리로 보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언론 보도에서 최소한의 균형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역차별을 해소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파렴치한 보수언론에는 기대할 게 없으니 욕을 해서라도 진보언론의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윤미향 관련 취재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윤석열 처가 관련 의혹도 같은 비중으로 취재하란 얘기다. 지금 최고 권력은 누구인가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정권이 바뀌면 언론들은 청와대가 ‘사정의 칼’을 휘두른다고 보도하곤 했다. 검찰을 동원해 정권 안팎의 정적을 쳐내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총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은 대통령 위의 권력이다. 그런데 그 최고 권력자가 처가의 수상한 재산 형성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이 있다. 피해자가 여럿 존재하고 아직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진보언론은 취재하지 않는가, 시민들은 묻고 있다. 권력 감시가 언론의 본령이라면 검찰 권력이야말로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묻고 있는 것이다. 검찰총장이 정의연대 회계부정 의혹 사건을 신속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오늘, 나는 해시태그를 달고 싶어졌다. #그런데 윤석열 장모와 부인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5-28 | hrights | 조회: 1646 | 추천: 67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운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20년 넘게 방송되었던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된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평소 TV를 잘 보지 않지만 그나마 코미디 프로그램만큼은 자주 챙겨 보았습니다. 혹시, 없는 주변머리가 좀 생길까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이 끝나자마자 <개콘>이 폐지된다고 하니 섭섭하고, 왠지 공교롭기까지 합니다. 수년 동안 현실 정치인들과 그 주변의 사건들이 너무 우스워서 <개콘>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KBS  제가 아직도 떠올리곤 하는 오래된 코미디의 한 장면은 부끄러운 기억과 겹쳐 있습니다. 전두환 군부정권 당시의 일입니다.  “어이!”  지하철 출구로 나오자마자 낯선 이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저를 불러 세웁니다.  “신분증!”  저는 신분증을 보여줍니다.  “가방 열어 봐!”  저는 가방을 열어 보입니다. 그는 제 가방 속을 이리저리 휘젓습니다. 저는 감히 그에게 누구냐고, 왜 그러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등등한 서슬에 잔뜩 겁을 먹어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끽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도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어느 TV 코미디의 한 장면은 저에게 코미디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얼추 이렇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바보 분장을 한 심형래 씨가 골목 한쪽에서 거들먹거리며 특유의 어투로 행인을 불러 세웁니다.  심형래: 어이!  행인 1: 네?  심형래: 주민등록증 내놔 봐!  행인 1: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여... 여기요.  심형래: (주민등록증을 거꾸로 받아 들고) 너, 왜 사진을 거꾸로 찍었나?  행인 1: (겁에 질려서) 거... 거꾸로 보고 계시잖아요.  심형래: (주민등록증을 바로 세우며) 이거 당신 거 맞어?  행인 1: 예.  심형래: 통과! (뒷사람을 가리키며) 다음 너, 주민등록증 내놔 봐!  행인 2: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여... 여기요.  심형래: (주민등록증을 뒤집어 들고) 이건 왜 사진이 없나?  행인 2: 뒤집어 보면 있는데요.  심형래: (뒤집어 보며) 그렇군, 가 봐!  행인 2: (조심스럽게) 그...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심형래: (바보처럼 웃으며) 내가 어제 여기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거들랑요.  광주항쟁 40년. 군복 차림으로 무릎이 꿇려지고 뒤로 포박당한 채, 인상을 찌푸린 전두환 조형물이 트럭에 실려 연희동으로 가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전두환 조형물을 볼수록 우습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부끄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 뜬금없이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21대 국회는 어떤 모양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개콘>은 완전 폐지되는 것인지, 다른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재탄생되는 것인지도 궁금해집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05-20 | hrights | 조회: 74 | 추천: 3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그때 세상은 고요했었다. 80년 오월 이후 참혹한 민주주의의 학살 현장을 고발했던 사람들은 등사원지 위에 철필이 닳도록 분노를 적었고 가리방 등사기에 롤러를 밀어 찌라시를 만들었으나 고요했다. 새벽이면 충무로 인쇄소 골목 어디쯤을 두리번거렸던 또 다른 사내들은 찌라시 뭉치를 허리춤에 걸고 다시 새벽 쪽으로 사라졌으나 고요했다. 이른바 거사가 있는 날엔 그랬다. 모든 것이 비밀이어야 했다. 속삭이는 대화나 데모일정을 잡기위한 공중전화기의 다이얼 소리마저 은밀해야 했다. 해가 중천으로 자리를 옮길 즈음 어느 대학가 건물 옥상위에서는 어느 청년이 구호를 외쳤고 찌라시가 뿌려졌고 몇몇의 학생들이 집회를 가졌으나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구호를 외쳤던 학생들은 상주하는 경찰들에 의해 그 순간 죽지 않을 만큼 얻어터지며 닭장차에 실려 갔고 몇 날 밤을 새워 누군가 써내려간 분노의 찌라시는 학교 직원들이 목숨을 걸 듯 수거해 갔다. 정의에 목마른 청춘이 꿈틀대던 대학에서는 간간이 벌어지는 풍경이었는데 그 시간은 10여분을 족히 넘지 못했다. 광주의 그날 이후 몇 년간 적어도 民主라는 말 앞에서 우리의 세상은 지나치게 고요했었다.  80년대 중반엔 학교 직원들이 미쳐 수거해 가지 못했던 찌라시 한 장을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갔던 신입생이 있었다. 그가 본 가장 큰 글씨는 “살인마 전두환을 처단하라”였고 그가 중얼거렸던 말은 “이 빨갱이 새끼들” 이었다. 찌라시를 만들고 옮기고 집회에서 구호를 외쳤던 청년들 중 몇몇은 감옥에 갔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찌라시를 뿌린 청년들 중 또 몇몇은 건물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그 신입생은 나중에야 알았다. 신입생이 봐왔던 언론에서 그런류의 사실들은 뉴스거리로 취급받지도 못했다. 뉴스에는 주로 전두환 대통령이 민족의 영도자로 묘사되었고 시시때때로 간첩이 출몰했다. 어쩌다 등장하는 시위장면은 폭도들의 난동만 나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간첩혐의자도 있었다. 칼라 테레비에 신기해하고 지금은 별것도 아닌 청소년 축구 4강 진출에 환호하며 애마부인 류의 영화 포스터에 심장 두근거렸던 시절이기도 했다. 세상은 냉정하게도 고요했으나 대학가 술집 중에 몇 군데에서는 그래도 간간이 분노가 터져 나왔었다. 밤낮으로 최루탄 연기가 가시지 않은 오월의 거리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썼던 청년들은 고작 막걸리 한잔에 취해 울부짖듯 노래를 불러댔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 “왜 쏘았지 총! 왜 찔렀진 칼!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그 노래를 주워듣는 소위 기성세대라는 이들은 그게 어디 청춘이 부를만한 노래냐고 비아냥댔지만 왜 청춘들이 그런 노래를 부르는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었다.  87년 유월의 외침을 그리고 91년 봄부터 스스로 사라졌던 뭇 이름들을 민주주의를 만들어간 몸뚱이라고 여겼던 청춘들 중에는 80년 오월의 아픔을 민주주의의 영혼으로 삼았던 이들이 많았다. 한때는 오월의 붉은 장미에게 조차 미안해서 골목길 나서기를 주저했던 청춘들이 많았다.  듣자하니 요즘은 광주가 시끄러운 모양이다. 이른바 보수단체라는 사람들이 금남로 차선을 막고 집회를 여는데 그 내용이 모두 광주 오월을 폄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으로 집회를 여는지 관심이 없다. 뽕짝을 크게 틀고 춤 난장을 벌이든 특정인을 개새끼 쇠새끼라고 욕하든, 공수부대나 해병대 군복을 입고 짙은 썬그라스를 쓰고 패션을 자랑하든 크게 상관은 없다. “내가 어떤 놈이 맘에 안 들면 그 새끼 개새끼라고 욕 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입니다 여러분” 외치는 연사에게도 “옳소”하고 박수치는 참가자에게도 관심은 없다. 다만 그들에게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민주주의를 누가 가져 왔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사치임은 안다. 80년 그해. 오월의 장밋빛처럼 흩뿌려진 피의 금남로에서 오월과 민주주의를 통째로 유린하는 그들의 집회엔 백골단의 곤봉도 없고 지랄탄, 페퍼포그 연기도 없고 닭장차도 없고 강제연행, 수배나 고문 같은 끔찍한 단어도 없고 오직 그들의 시끄러운 난장과 인면수심의 억지가 있다는 것도 안다. 샤먼바위 사진 출처 - pixabay  술 한 잔에 불콰해지면 노래 한 자락에 정드는 게 사람이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보는 것이, 사찰이나 성당 같은 곳에 가면 스스로 경건해 지려고 노력 하는 게 사람이다. 추모공간에 들어서면 두 손을 모으고 침묵할 줄 아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이다.  바이칼 호수의 항구 리스트뱐카 입구에는 샤먼바위가 있다. 태고 적부터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브리야트족에겐 샤먼바위에 얽힌 전설이 하나있다.  인근마을의 죄인이 있으면 샤먼바위 꼭대기위에 몸을 묶어 하룻밤을 지내게 했다고 했다. 죽을 만큼의 원한을 샀다면 누군가 한 밤중이라도 찾아와 죄인의 목숨도 빼앗았을 것이지만 아침까지 살아있으면 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풀어 줬단다. 지나치게 관대한 듯도 하지만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죽는 자든 죽이는 자든. 법전이나 정치적 이익에 갇혀 무고한 인사들을 가두거나 처형했던 우리의 현대 사법사(司法史)를 비춰볼 때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을까 - 스파시바 시베리아 중에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들의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지금은 1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도 내지도 않고 법전에도 없는 전직 대통령 예우까지 받으면서도 여전히 광주학살의 책임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자, 지금은 광주 민주화 운동 폄훼의 수장, 80년대 중반 갓 대학 신입생이 보았던 찌라시의 주인공 “살인마 전두환”을 브리야트족의 전통대로 샤먼바위 위에 하루 묶어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 본다. 5.18이후 40년, 대한민국의 법체계에서 해 내지 못했던 일을 브리야트족의 전통을 빌어 그저 상상만 해보는 것이다. 전두환의 시절에는 상상하는 것조차 죄였으나 지금은 아니지 않는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20-05-15 | hrights | 조회: 594 | 추천: 15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우여곡절 끝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됐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껏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정책이 현실화됐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논쟁이 발생했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광역자치단체장, 총선 전 미래통합당이 논쟁의 한 축이었다. 기획재정부와 총선 뒤 미래통합당이 또 한 축이었다. (청와대는 어느 쪽이었는지 모르겠다. 뭐,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벌어진 논쟁은 하나같이 국가운영의 방향에 대한 철학, 더 깊게는 세계관을 바닥에 깔고 있는 주제였다. 특히 재정건전성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듯 하다.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도 두고두고 생각할 주제다. 그에 덧붙여 하나 더, 지출구조조정이라는 마술방망이를 거론해보고 싶다.  지출구조조정은 중요하다. 현재 한국 예산운용에는 낭비 요소도 많고 불합리한 점도 많다. 구조조정이란 게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워낙 강해서 그렇지, 필요 없는 거 덜어내고 필요한 거 더하는 과정이다. 구조조정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출구조조정은 긴축과 재정건전성 담론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보다는 1997~98년 벌어졌던 구조조정에 훨씬 더 가까운 게, 정부에서 입만 열면 얘기하는 지출구조조정이다.  지출구조조정이란 사실 역대 정부마다 강조했던 오래된 유행가였다. 그 시작을 열었던 건 물론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1974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소비 절약에는 정부가 앞장을 서야 되겠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에 세출 예산서에 약 500억 원을 절감하여 유보하기로 했다”고 했다. 전두환은 “만성적으로 팽창되어 온 예산구조를 영점 기준에 의하여 재점검하겠다”(1982년 10월 4일)고 했다.  김영삼은 “모두 고통을 분담해 주십시오. 정부가 앞장서겠습니다. 청와대 예산을 먼저 줄이겠습니다. 각종 행사는 물론 청와대의 식탁까지도 낭비요소를 철저히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작고 생산적인 정부가 되겠습니다. 올해는 공무원 봉급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정원도 늘리지 않겠습니다(1993년 3월 19일 신경제 관련 특별담화문)”라고 말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김영삼은 시바스 리갈과 백담사와 외환위기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그들 임기에 정부 지출이 줄었다는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당연한 것 아닌가. 1년에 10%를 바라볼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급증하고,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는데 정부지출이 줄어든다는 발상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지출구조조정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빠질 수 없다. 이명박은 2010년 제11차 라디오연설에서 “10% 예산 절약을 목표로 정부 조직도 줄이고 씀씀이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도 취임 초기에는 증세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박근혜는 2013년 2월 27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약재원 마련을 위해) 요즘 증세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국민세금을 거둘 것부터 생각하지 말라. 먼저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등의 노력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산업화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허리띠 졸라매기’는 국민들한테도 칭찬받기 좋은 소재다. 틈만 나면 보도 자료가 쏟아지는 ‘복지 부정수급 척결’은 저비용 고효율 홍보마케팅의 교과서다. 하지만 복지 부정수급을 막겠다며 심사를 철저히 하고 사용처 하나하나 따지는 동안 시급한 복지혜택이 필요한 이들이 도움을 못 받는 기회비용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보면 ‘마른 수건 쥐어짜기’ 담론은 돈 쓸 곳은 많은데 세금 인상은 피하려는, 욕먹는 일을 피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 정신개혁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정부는 뼈를 깎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것부터가 혼란을 부른 첫 단추, 메시지 실패가 아니었나 싶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긴축을 주문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이라는 금송아지 말고 다른 신은 모르는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기재부가 지출구조조정을 위해 질병관리본부와 지방 국립병원 소속 공무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하는 걸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 그러자 기재부는 형평성을 맞춘 후속대책을 내놨다. 4월 21일 해명자료에서 “금번 추경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한 국회 심사 및 통과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고려해 연가보상비 감액 부처를 최소화하였다”던 기재부는 하루 뒤 해명자료에선 “공공부문의 고통분담 차원에서 올해 모든 부처와 헌법기관의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단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야할 건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신년연설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 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껴 쓰고, 다른 예산을 깎아서 쓰라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노릇이다.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는다.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 연설문집>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5-06 | hrights | 조회: 226 | 추천: 2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코로나19 시대의 화두는 ‘새로운 일상’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했고, 실업이 증가하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일상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간절하다. 하, 어쩌랴.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인정하든 안하든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잘 버티고 견디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기대마저 무너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단어가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일상을 규정하는 단어가 됐다. ‘넥스트 노멀’이라고 불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소비도 교육도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비대면 접촉의 시대가 될 거라 한다. 온라인 개강,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여기저기 혼란은 있지만 이런 ‘넥스트 노멀’한 삶도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넥스트 노멀한 시대에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 될 수 있는 걸까. 최근에 나온 한 책 제목은 가히 충격적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 2050년이면 겨우 30년이고 한 세대 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고? 그게 말이 돼?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구온난화는 산업혁명 이후 수 백 년에 걸쳐 배출해온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기 중 탄소의 절반은 불과 지난 30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배출된 것이다. 30년 전이면 1990년대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는 등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시작되던 시기인데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나서도 문제를 몰랐을 때만큼이나 자연을 파괴해왔다는 지적이다. 97년 교토의정서, 2016년 파리기후협약 등 기후재난을 멈추기 위한 수많은 협약이 있었지만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했고 트럼프 같은 정치인은 이를 노골적으로 폐기했다. 기업들은 공장을 계속 가동했고 우리는 신나게 자동차를 몰았고 맛있는 고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렇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동안 기온상승을 2도 안에서 멈춰야 한다는 경고는 잊혀졌다.  만약 기적이 일어나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멈추더라도 이미 배출한 양 때문에 추가적인 기온상승은 피할 수 없다. 호주산불, 미국의 허리케인, 유럽의 폭염, 베네치아의 침수 등 우리가 재난이라고 부르는 기상이변은 앞으로 닥칠 상황에 비한다면 그나마 최선의 상태다. 살인적인 폭염, 치솟는 산불, 갈증과 가뭄, 빈곤과 굶주림, 오염된 공기... 이런 재난은 ‘일상’이 될 것이고 앞으로도 탄소배출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1세기가 끝날 즈음 기온은 4도 이상 오를 것이고 지구상에 사람이 살만한 지역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사진 출처 - freepik  불과 석 달 전만해도 아무도 코로나19가 가져올 일상의 변화를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것이 초래할 일상의 위기에 대한 경고는 30년 전부터 있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위기 가능성에 대해 지금도 우린 애써 외면하고 있다. 유엔은 2050년 기후난민이 2억 명에 달하고, 싸움을 벌이거나 도망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취약한 빈민층이 1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11년 이후 시리아 난민 1백만 명이 유럽에 가져온 쇼크를 생각하면 2억 명이란 수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상 자체의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내 살아생전 그럴 일이 있겠어? 평균수명 80세, 100세 시대라고 하니 30년 뒤는 내 살아생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린 사회적 거리두기로 멈췄던 일상으로 돌아가길 오매불망 기다린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언제든 튀어나갈 기세로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떼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갈지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코로나19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 일상 자체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파괴, 대량소비와 과잉생산으로 점철된 이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한 지, 더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멈추고 공존과 생존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소비의 방식만 비대면으로 바뀔 뿐 소비나 욕망 자체는 그대로라면 ‘넥스트 노멀’한 일상이 지속가능한지 묻고 있다.  코로나19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공장을 멈추게 했고, 거미줄처럼 하늘을 누비던 비행기의 운행도 감축시켰다. 한국에선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하늘을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인도에선 대기오염에 가리어있던 에베레스트산맥의 풍광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해낸 것이다. 세계화는 전염병의 세계화를 가능케 했고 전염병의 세계화는 세계화 자체를 불능상태로 되돌리는 역설, 어쩌면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일상을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김호기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준 세 가지 교훈을 이렇게 얘기했다. “하나는 여전히 믿어야 할 것은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 또 하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줬다. 마지막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자연 파괴, 대량 소비, 기후 위기,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빠른 삶, 이제까지 현대문명이라고 칭했던 것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조금 더 다른 사람들과 협력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가 과거와는 달리 느린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결과들일 것이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20-04-29 | hrights | 조회: 239 | 추천: 7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춘천이라고. 이건 오롯이 지난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결과 덕분이다. 지난 8년 동안 나만이 아니라 춘천 출신 지인들도 고향을 밝히는 게 창피했다고 한다. 고향을 밝히면, 대개는 ‘춘천 사람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거냐’는 힐난이 섞인 질문이 ‘훅’하고 들어왔다. 그때마다 김진태 의원이 안하무인격으로 마구 막말을 내뱉는 데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눅이 들곤 했다.  내가 체험하고 기억하는 한, 춘천의 선거는 보수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행해졌다. 선하고 정의로운 의정활동으로 유명한(famous) 게 아니라 모질고 독한 언행으로 유명한(notorious) 그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 전에도 춘천에서 민주당 계열의 후보자가 당선된 적이 없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총선이후열린 8차례 선거에서 모두 보수(수구) 정당 후보가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태 씨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춘천 출신이라는 게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고 말하는 지인은 없었다. 춘천이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곳이지만, 8년 전까지도 춘천 출신의 보수계열 의원이 누군가에게 몹시 부당한 인격적 모멸감을 주거나 인간적 공분을 자아내는 행위를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남달리 빼어난 선량(選良)도 아니었지만 유별난 언행-탄핵반대와 숱한 망언-을 일삼는 ‘아스팔트 우파의 아이콘’도 아니었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되어 가지만, 새벽녘까지 내 고향 춘천(엄밀하게는 춘천․철원․화천․양구갑 선거구)의 개표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불안과 긴장, 흥분과 기쁨은 아직도 남아있다. 춘천의 개표는 전국 어느 선거구의 개표보다도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게 나를 더욱 애달게 했다. 개표 당시에는 몰랐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표 초반에는 민주당 허영 후보의 약세지역부터 개표가 되었기 때문에 새벽 1시까지도 김진태 후보가 앞선 결과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이번에도 춘천은 안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일반화하자면, 21대 국회에서도 수구세력의 정치적 파워가 유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 그러다가 개표가 45%를 넘어서면서 역전이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는 7.4%, 약 9,600표 차이로 <민주진보 계열 허영 후보의 당선, 통합당 김진태 후보의 패배>가 확정되었다.  사사로울 수 있는 고향의 선거이야기를 하는 것은, 춘천이야말로 이번 21대 총선의 결과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문자를 쓰자면 ‘구체적 보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춘천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당선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춘천의 선거결과는 집권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집권당의 승리보다는 수구적 야당의 패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국민은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미래통합당을 버렸다’는 세간의 평가는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왜 미래통합당에게 패배를 안긴 것일까? 춘천의 선거는 그 이유의 일단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춘천의 두 후보의 대결은 ‘공안검사 대 학생운동권’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김진태 후보는 공안검사 출신이고, 허영 당선인은 1991~1992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고 김근태 의원의 비서관을 지냈다. 김진태 후보의 이력은 통합당과 잘 어울린다. 통합당은 70여년 적대적 남북관계를 고수하며 분단구조를 지속시키고 분단을 정략적으로 ‘악용’하기도 한 수구기득권세력이 주축이다. 김진태 후보의 패배는 레드콤플렉스를 부추겨서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세력에게 내려진 퇴장명령인 셈이다. 춘천의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시의원, 도의원, 시장, 도지사, 대통령까지 모두 미래통합당 쪽에서 ‘빨갱이’, ‘종북좌파’라고 매도했던 정당 소속이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이분법적 냉전사고에 매몰된 정치집단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의식, 즉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세력에게 국정을 맡길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미래통합당과 그 주변의 세력들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자신들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는 정략적 셈법에 따라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맹비난했다. 그것은 마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열성기도 같았다. 그러나 정부가 시행하는 코로나 방역대책이 무너지면 우리들 생명과 생활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더욱이 외국 정부와 해외 언론을 통해 우리 정부의 방역대책이 전 세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자는 미래통합당의 외침은 ‘아스트랄(astral)한’ 비현실적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을 심판 대상이 아니라 자부심을 안겨주는 ‘우리의 정부’로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권 타도를 외쳤던 김진태 후보와 같은 부류는 표를 얻기 어려웠다. 격하게 정리하자면, 정부가 잘하면 우리 모두가 살고 정부가 잘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그저 정부가 잘못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세력에게 표를 주기보다는, 등을 돌렸다. ‘코로나 사태’ 국면에서 지 잘할 궁리는 하지 않고 그저 남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심보가 들통나는 바람에 저들은 졌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 해도 놀부 편보다 흥부 편드는 사람이 많은 게 세상인심일 것이다. 아흔이 다 된 춘천의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이번에는 사전투표를 하셨다고 했다. 자식들이 어디 가서도 내 고향은 춘천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투표하고 싶은 마음에 급하셨단다. 같은 마음이었던 춘천 시민들, 국민들 덕분에 이제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K-방역’에 이어 ‘K-투표’도 모범적으로 했다고!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20-04-22 | hrights | 조회: 519 | 추천: 16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세계적 공중 보건 및 경제 위기 상황에서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적 차원의 연대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세계적 대유행이 되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어렵다. 사회의 취약계층들은 생명과 생존에 대한 치명적 위협에 내몰리고 있다. 과거 1, 2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우리 세대로서는 처음 겪는 인류의 생명과 안전, 생존을 위협하는 대재앙이다. 현재와 미래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와 국민들의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는 대응이 필수적이다.  인류의 대재앙에 맞서 모두가 힘을 모아 분투해야 할 때 미국 주도의 제재에 직면한 개발도상국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다. 그동안 제재로 인하여 민생고를 겪는 상황에 더하여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의료품과 방역 물품조차 시기적절하게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잃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제때 충분히 제공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미국의 대쿠바 경제제재는 현재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민들에 대한 쿠바의 우수하고 헌신적인 의료진들의 의료봉사 활동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제재는, 제재를 가하는 가해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나 제재를 당하는 피해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나 똑같이 생명과 건강, 민생에 파괴적이고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국가 간 효과적인 국제연대와 협력을 저해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한 의료붕괴와 경제 위기는 모든 국가가 직면한 상황이기에 어느 한 국가도 예외 없이 차별 없이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동참할 수 있어야만 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국제적 차원의 연대와 협력을 방해하여 코로나 19의 퇴치에 장애를 조성하는 것이 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는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제재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인류의 대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천부당만부당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제재를 즉시 완전히 해제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불법적, 강압적, 일방적 경제제재는 지속되고 있고 이는, 코로나19 확산의 방지를 위한 세계적인 연대와 협력을 저해한다.  특히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가장 강력한 경제재재로써 극심한 고통을 가져단 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유지, 가중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코로나19 방역에 협력할 의사를 표시하며 북미관계를 개선하려는 듯 한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곧바로 지난 3월 25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논의하는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화상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G7 등 모든 나라가 계속 단합하여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이어가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이어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9일 북은 물론 대북거래를 돕는 제3국의 금융기관에 세컨더리 보이콧, 즉 제3자 금융제재를 추가 적용하여 북의 국제 금융망 접근을 광범위하게 차단하는 내용이 포함된 강화된 대북제재 규정 개정안을 발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 유지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적 인도주의의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은 유감없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변함없이 내보이며 북한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방역 및 의료 활동을 방해하는 제재를 유지, 강화하며 인류의 대재앙 퇴치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이 코로나19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 미국의 패권적 정책에 순종하지 않고 저항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방역에 실패하기를 바라며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경제가 붕괴되어 반미 성향의 정권이 붕괴되기를 조장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라는 공통의 적을 맞아 인류의 생명과 생존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건 투쟁을 진행 중이다. 이 순간에도 지금까지 행해온 패권적 제재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며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훼방을 놓고 있는 미국의 행태는 인류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0-04-16 | hrights | 조회: 414 | 추천: 9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1. 도시  신석기 시대를 지나며 시작된 농경의 결과 인류는 더 많은 생존노동을 해야 했고, 체력이 약화되었다는 연구는 이제 학계에서 대체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 무렵 노동, 건강과 함께 주목을 받은 것이 전염병이었다. 농업은 어떤 한 곳의 땅에 씨를 뿌리고 거둘 때 노동력 투여가 집중되므로 인류는 자연스럽게 마을을 이루고 정착해서 살았다.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것, 그것은 병원균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 몰려 사는 만큼, 전염병은 드문드문 유목하거나 사냥, 채집하는 사람들의 세계보다 농경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8~19세기 자본주의의 만연에 따라 사람들은 농지에서 뿌리가 뽑혀 도시로 나와 노동력을 팔았다. 자본-노동의 생산관계가 일반화 된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도시는 세균에게 속수무책이었다. 현미경을 통해 병원균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에 대한 위생 관념과 조치가 생길 때까지 그러하였다. 침 뱉는 행위가 무례한 행동에서 더러운 행동으로 변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1918년경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 뉴욕시에서는 유럽에서 오는 배를 검역하였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의 전차 탑승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뉴욕은 그 50년 전만해도 브룩클린을 비롯하여 전염병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살장이 많았던 시카고는 내장 등 도살 뒤에 버려진 동물들의 부속물이 떠다니며 썩어서 거품이 이는 강물 곁에 노동자의 거주지가 밀집해있었다. 그나마 식수가 없어 그 물이라도 마셔야 했다. 여전히 현대의 재해 피해는 계급, 계층과 상관이 높다.  과학의 발달은 전염병을 비롯한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를 어느 정도 통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코로나는 그 ‘어느 정도’라는 게 참 허망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재난을 만났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1. 기근  코로나가 세계를 집어삼킬 기세를 보였을 때,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경신대기근이 떠올랐다. 경술년(1670, 현종11), 신해년(1671) 두 해에 걸친 혹심한 기근이라 이렇게 부른다. 지금은 기근이 농산물 다국적기업의 이윤 논리에 따라 저질러진 인재(人災)이지만, 당시 기근은 역시 자연재해였다. 기근은 영양 상태를 악화시켰고 역병(疫病)을 불러들였다.  조선시대에 기근은 흔하지는 않았더라도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조선 사람들은 16세기말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문명의 재해를 겪었다. 그 사이 광해군대 혼정(昏政)이 채 수습되지 못한 1626년(인조4)~1627년에 병정(丙丁) 대기근을 겪었다. 후금과 ‘형제의 맹’을 맺은 정묘호란이 바로 이 기근 와중에 닥쳤던 침략이었다. 효종 때도 1653년(효종4)~1654년 계갑(癸甲) 대기근이 있었는데, 봄에 동해가 얼고 여름에는 제주에서 기르던 말 900여 필이 얼어 죽는 참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병정, 계갑, 경신 식으로 두 해에 걸쳐 기근이 진행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이듬해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1670년(현종11)에는 새해 첫날부터 기상 이변이 있었고, 1월 내내 전국 각지에서 이변 보고가 이어졌다. 전라도, 경상도 거창과 동래, 경기도 통진 등 전국 각지에서 지진도 있었다. 역병도 발생했다. 2월 충청도에서 염병이 창궐해 80여 명이 죽었고, 윤2월 평안도에서는 1,300명이 감염되었으며, 3월 7일 경상도에 1,000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이 틈에 메뚜기 떼가 경기도, 함경도에 기승을 부렸고 딱정벌레들이 물밑으로 들어가 해를 끼쳤으며, 수많은 참새 떼 때문에 곡식은 물론 도토리와 밤도 열리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냉해에 대한 보고도 빠지지 않았다. 윤2월 26일, 서울에 때늦은 눈과 우박이 내렸다. 음력 윤2월이면 일러도 3월말, 대개 4월이다. 3월에는 경상도에도 새알만한 우박이 내렸고, 평안도에 서리가 내렸는데, 4월까지 서리 우박이 내려 곡식의 싹이 죽고 목화와 삼베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은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았다.  와중에서 가뭄이 계속되었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 도저히 파종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이후 한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밀과 보리가 모두 말라 죽은 상태였다. 5월 말에 내린 비로 가뭄이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홍수가 찾아왔다. 사진 출처 - EBS 1. 대응  재상급 인물들도 십여 명씩 죽어나갔다. 국방부장관 격인 병조판서 김좌명이 대표적인데, 이 사람은 대동법 확립에 큰 공을 세운 김육(金堉)의 장남이며, 동생이 숙종의 외할아버지 김우명이다. 김좌명의 후임으로 병조판서가 된 서필원도 몇 달 후에 목숨을 잃었다. 대사헌 장선징(張善徵)은 이렇게 상소를 올렸다.  서울 안팎에 굶어 죽은 시체가 도로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모처자가 서로 베고 깔고 함께 죽은 경우도 있고, 혹은 어미는 이미 죽고 아이가 그 곁에서 엎드려 그 젖을 만지며 빨다가 금방 따라 죽기도 합니다. 이렇게 울고불고 신음하는 소리에 지나가는 자도 흐느낍니다. 더욱이 전염병은 날로 치솟아 열풍이 불꽃을 일으키는 듯 한 기세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드문데, 걸렸다 하면 죽어서 곧 성 밖으로 버려집니다. (《현종개수실록》 12년 6월 4일)  서울 안팎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족이 몰살되기도 하고, 어미가 죽은 줄 모르는 아이는 죽은 어미젖을 빨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선징은 흉년이 시작된 1671년 이전의 각종 부역 및 관청 대출미 미납 등의 항목을 일체 탕감하라고 건의하였다. 백성들이 어려울 때 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줄 일은 세금을 줄이거나 면제해주고, 군대를 포함한 신역 동원을 면제해주어 편안히 모여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그렇게 했는데, 이를 두고 어떤 학자는 재난의 규모에 비하여 조선 정부의 대응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대기근 두 번째 해인 신해년(1671)에 대제학을 맡았던 김수항(金壽恒)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는 진휼을 맡았다. 봄에 기근이 크게 들자 사방의 굶주린 백성 수십 만 명이 한양으로 모여들었다. 김수항은 김좌명(金佐明 이때 역병으로 사망), 민정중(閔鼎重 현종의 사돈), 조복양(趙復陽)과 함께 진휼하는 일을 나누어 맡고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직무를 보았다.  이 해 여름에 또 보리가 흉작이었고 여역(癘疫)이 크게 돌아 사망하는 백성이 더욱 많았는데도 끝내 도적이 되거나 유랑하여 흩어지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현종이 애를 쓴 덕도 있지만, 능력 있는 여러 신하가 좌우에서 부지런히 애쓴 공이기도 하다고 평가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안민(安民) 정책을 펴서 소농인 일반 백성들의 경제생활을 안정시킨 효과도 컸다.  이 점은 중요하다. 도적이 되고 싶은 백성, 유랑하고 싶은 백성은 아무도 없다. 편안히 가족과 모여서 살고 싶다. 이런 재해를 넘기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백성은 도적이 되지도 유랑을 하지도 않는다. 넘기는 방법은 나라 재정을 모두 털어서라도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위정자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책임감으로 구휼, 격리, 소개(疏開)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망이 없으면 백성은 달라진다. 죽던가 떠나고, 도둑이 되어 약탈한다. 살 수 있다는 전망을 주는 것, 그것이 관료, 정치가의 책임임을 적어도 현종 당시 김수항과 그의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1. 선거  며칠 전 도쿄와 뉴욕에서 사재기로 상품진열대가 텅 빈 사진을 보았다. 저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약탈이 시작될 지도 모른다. 한국 시민들은 아직 사재기 조짐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차분하기까지 하다. 수구 언론이나 정치배들의 끈질겼던 험담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정부의 대응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이 유달리 약한 대구 시장 같은 사람이나, 종교적 신념과 의학적 처치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꽃놀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조급한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선의 재난 대응과 지금의 방식이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진화론의 수준에서 변치 않은 것은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에 맞서 대응하는 방안에는 왕도가 없다는 점이다. 책임감 있는 위정자들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시민, 인민들은 불안을 극복하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말이다.  불안은 재난의 크기와 별 상관이 없으며, 또 다 같이 당하면 덜 생긴다. 불안은 나만 버려질 수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현대사회의 유난히 만성화된 불안, 공포는 19세기 산업화 이후 공동체의 도움과 보호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팔아야할 노동력 밖에 없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시 도움과 보호가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두했고, 그 유력한 방안이 노동조합이고 복지정책이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 땅의 시민들에게 하나의 지침을 주고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않을 위정자를 뽑으라고, 노동과 복지가 공약에서 핵심인 위정자를 뽑으라고. 그리고 이 지침은 자본주의가 역사적 수명을 다할 때까지 유효할 것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0-04-09 | hrights | 조회: 603 | 추천: 18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한은 ‘조선노동당’과 ‘공화국’의 창건 이후, 특히 김일성에 의한 유일 지배가 본격화된 이후, 기성 종교를 강력히 규제하고 종교 행위를 처벌했다. 1958년부터는 종교인(특히 기독교인) 색출과 탄압을 대대적으로 감행했다. 종교는 ‘지배계급이 인민을 착취하는 수단이자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도구’이며, 나아가 각자의 주체성을 말살시키는 ‘미신’이라고 간주하고서, 지속적인 반종교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미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제도로서의 종교는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거의 사라졌다. ‘종교’에 해당하는 ‘교’라는 말을 그것도 사석에서 사용하는 정도로 변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예배’와 같은 공식적인 종교 의례는 물론 ‘신앙’, ‘하느님’, ‘하나님’과 같은 말도 거의 사라졌거나 아예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설령 알더라도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언어이다 보니 그에 대한 개념도 아주 막연해졌다. ‘신부’나 ‘목사’라는 말을 모르거나, 들어봤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목사’와 ‘스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종교적 경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른바 민간신앙 영역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미신’이라고 부르는 민간신앙도 억압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형법상의 강력한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돈만 오가지 않으면 처벌까지는 받지 않았다. 종교적 표현의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은밀한 정도로는 전승되어왔다. 가령 조상 제사 분위기는 좀 더 분명하다. 북한에서도 돌아가신 분의 기일과 생일에 상차림을 한다. 조상을 잘 받들어야 복이 온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신령, 영혼, 하느님과 같은 언어들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적어도 5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용왕님, 터줏대감, 삼신할머니, 성황당과 같은 언어는 크게 의미화하지 않은 정도로 잔존하고 있다. 지옥, 천당과 같은 언어는 없지만, 황천길, 저승길 정도의 언어는 큰 의미 없이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북한에서도 오랜 민간신앙적 세계는 지속 전승 중인 것이다.  무엇보다 점보기가 성행하고 있다. 가령 1994년 김일성 사후 초유의 가뭄과 수해로 인한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미신으로 여기던 각종 오랜 풍습이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격화한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그동안 억압되어 음지에 있던 민간신앙 혹은 토속신앙이 양지로 나오고 있다. 청소년에까지 부적, 점치기, 주패(화투나 트럼프)를 통한 신수 보기 등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장사를 앞두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점부터 쳐본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한다. 탈북과 같은 ‘거사’를 앞둔 경우라면 점의 중요도와 빈도수는 훨씬 커진다. 거사를 감행할 날짜, 방향, 상황 등을 묻기도 한다. ‘직업적’ 점쟁이는 없고 ‘복채’와 같은 고유 용어도 없지만, 용하다고 소문난 이들은 동네마다 한두 명씩 있다. 전국적으로 수백 명은 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결혼, 장사 등 크고 작은 일들에 앞서서 점쟁이와 먼저 상의하고 결정하는 일이 흔하다. 손금, 관상, 사주 등을 주로 보며, 여기에는 보위부원도 예외가 아니다. 보위부도 이 사실을 알지만, 자신들도 점을 볼 뿐만 아니라, 점쟁이의 영험함으로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까 봐 점술 행위를 눈감아주곤 한다. 주술적 정서가 제도적 관례보다 더 크게 작동하면서 드러내놓고 공론화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일들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점술, 사주, 팔자, 조상 숭배 등 그동안 ‘미신’처럼 여겨지던 것이 재등장하고 있는 것은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적 위기 상황 하에서 은밀하게 전승되던 기층적 생활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당국에서 ‘미신행위 풍습 근절을 위한 비판 토론회’를 열기도 했는데, 이것은 강제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종교성 자체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이런 현상에서 우리는 북한에 헛된 ‘미신’이 발흥하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정치적 억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민중의 원천적 종교성 혹은 심층적 차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 통제 시스템이 느슨해져가고 있는 증거로 삼을 수도 있겠고, 한반도 구성원들이 견지했던 오랜 종교적 정서는 정치적 억압만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증거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소련이 해체된 이후 오랜 정교회 전통이 다시 부흥하고, 중국에서 유교를 도리어 국민 통합 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북한에서 민간신앙은 원칙적으로는 억압의 대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삶의 근원적 동력으로 작용하는 원초적 인간 현상이다. 무엇보다 민간신앙의 발흥 현상에서 북한 주민의 진정한 자발성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비판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민간신앙이 발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 주민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다. 이러한 자발적 선택은 인간에 대한 완전한 통제란 있을 수 없으며, 북한 사회가 오랜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 민중의 선택이 남한 민중의 기층적 정서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체제와 제도의 통일도 사람의 문제이며, 그 핵심은 분단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정서에 대한 깊은 교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압과 감시 하에서도 자신의 필요와 형편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주체적 행동이다. 북한에서 진짜 주체가 시작되었다.
2020-04-01 | hrights | 조회: 620 | 추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