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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체가 뭐냐?  흔히 ‘정체가 뭐냐’,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등의 말을 하거나 듣곤 한다. 정체성은 상당 기간 일관되게 유지된다고 간주되는 자기만의 고유한 성질을 의미한다. 자기를 자기되게 해주는, 말하자면 자기동일성이기도 하다. 정체성은 어떤 본질적 특성을 타자와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정체성이라는 말은 독일에서 나치의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온 심리학자 에릭슨(Erik H. Erikson)이 자신의 뿌리를 고민하고 학문화하면서 학계에 알려진 용어이다. 영어 ‘아이덴티티’는 우리말로 정체성과 동일성이라는 뜻을 모두 가졌다. 문제는 정체성의 추구가 지속적 동일성으로 이해되고, 동일성은 차이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가령 미국 백인의 정체성은 흑인과는 구분되는 백인만의 지속적 동일성으로 인식되면서 흑인을 거부해왔고, 남성의 정체성은 자신을 여성과 분리시키며 여성을 차별해왔다. 흑인을 배제하며 백인의 정체성을 확인해왔고, 여성을 차별하며 남성의 정체성을 확보해온 것이다.  비슷하게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 및 아시아인을 차별하며 일본적 정체성을 확인해왔다. 타자를 배제하며 정체성의 이름으로 동일성을 추구해온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차이’를 ‘틀림’으로 규정하여 ‘차별’하며, 자신을 위해 타자를 배척하거나 주변부로 몰아내는 것이다. 혐오의 발생  왜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가. 동일성 밖에 있는 것들이 자기정체성을 오염 또는 훼손시킬 수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마사 너스바움(Martha C. Nussbaum)에 의하면,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이 ‘혐오’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 자신을 오염시키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간주되는 것들을 거부하는 감정이 혐오이다. 혐오는 타자와의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타자를 경계선 밖으로 몰아낸다. 오염물을 경계 밖으로 밀어내야 자신의 순수함이 보존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스바움에 의하면, 어떤 대상을 혐오하게 되는 근간에는 자신의 근본적 유한성이 놓여있다. 혐오의 감정은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과 같은 모습을 자신의 내면에서도 보되, 그것을 감추면서 발생한다: “혐오는 인간의 유년기에 경험하는 무기력함과 이러한 무기력함이 안겨주는 수치심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혐오와 수치심』, 205쪽) 사진 출처 - 서울신문 혐오와 분노의 차이  혐오는 ‘분노’와는 달리 자신을 도덕적으로 개선하거나 사회적 선의 잠재성을 키우는 데 공헌하지 못한다. “어떠한 나쁜 행위에 대한 분노는 범죄자를 회복시키려는 소망이나 가해자의 인권에 대한 존중과 양립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혐오는 오염에 대한 사고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사라져 버리길 원한다.”(199쪽) 분노가 그 대상의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면, 혐오는 그저 삭제시키려 들뿐이다.  가령 일본의 아시아 차별은 같은 아시아인으로서의 자기혐오의 표현이기도 하다. 스스로 아시아를 벗어나려는 행위 속에 아시아에 갇혀 있는 선천적 운명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아시아를 주변화하면서 유럽의 일원이 되려던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 속에 자신에 대한 혐오가 들어있었다는 말이다. 너스바움은 말한다: “역사 속에서 지배 집단은 자신이 지닌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집단이나 사람에게 혐오를 드러냄으로써 이들을 배제하고 주변화해 왔다.”(37쪽) 그런 식으로 자신과 타자 사이에 강한 경계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자신의 유한함, 내적 더러움에 대한 무의식적 고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여성 및 동성애 혐오  나아가 “혐오를 느끼는 사람은 그 대상에게 더 이상 자신이 속한 공동체 또는 세계의 구성원이라고 보기 어려운 속성, 즉 일종의 외래종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305쪽) 혐오의 대상을 인간과 동물의 중간 지점 즈음에 위치시키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나치’를 인류학적으로 특수한 별종으로 보고, 나치에 의한 만행을 이 별종이 저지른 특별한 행위라고 봄으로써 자신에게서는 차지와 같은 가능성을 차단시키는 것도 비슷하다. 어떤 대상을 혐오하는 것은 자신을 그들과 분리시키면서 자신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행해지는 혐오는 여성의 몸이다. 너스바움에 의하면, 똥, 오줌, 침 등 몸에서 나온 분비물을 혐오하는 경향은 남성의,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 정액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그 정액을 받아들이는 여성에 대한 혐오로 연결된다고 한다. 게다가 출산을 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동물적 삶과 더 가깝고 더 연속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남성은 여성을 혐오하면서 자신이 동물성에서 멀어지고자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남성의 혐오는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여성의 혐오에 비해 강력하다. 남성의 몸에서 나온 혐오스러운 정액이 남성의 몸 안에서 배설물과 함께 혼합된다는 생각이 혐오자의 내면에 가장 혐오스럽게 자리 잡는다. 이러한 혐오를 여성이나 게이에게 전가함으로써, 그들을 동물 차원으로 격하시키고 자신은 동물성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 차별과 희생양  나아가 이러한 혐오에 공감하는 이들, 즉 ‘공범자’가 많아지면, 공범들의 힘에 의지해 더 자신 있게 자기 밖의 타자를 혐오하고 차별한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 어떤 집단 안에서 문제가 될 즈음, 이 집단적 혐오의 대상을 해소시키기 위해 인류가 취해온 방식이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에 의하면, 희생양은 폭력의 방향을 하나의 대상으로 돌려 공동체 전체를 상호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문화적 장치다. 그는 말한다: “희생제의는 도처에 퍼져 있는 분쟁의 씨앗을 희생물에게로 집중시키고, 분쟁의 씨앗에다가 부분적인 만족감을 주어서 방향을 딴 데로 돌려버린다.”(『폭력과 성스러움』 19쪽)  이 때 희생물로는 대체로 희생제의를 찬성하는 세력에 대해 ‘복수할 수 없는’ 존재가 선택된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쟁포로, 노예, 파르마코스처럼 사회에서 배제됐거나 중심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주변 인물들이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다. 주류가 아니라서 주류만큼 행동하거나 주류에게 복수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인 것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이민족, 특히 소수민족을 배척하고, 자기 종교를 내세워 타종교를 배타하는 것도 크게 보면 그들은 복수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근거한다. 이 자신감 안에는 전술했던 개인 및 집단의 정체성 문제가 놓여있다. 경직된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이 집단, 공동체의 이름으로 타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며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한 혐오가 얼마나 횡행하느냐에 사회적 도덕의 척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혐오의 양면성  혐오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이원론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한 감정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 자체가 그다지 이원론적이지 않다. 시체 혹은 시신을 혐오하는 이유는 자신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현상으로서의 종교도 외부 사물이나 사건과 구분되는 순수한 현상이 아니다. 종교인은 종교인이자 사회인이고, 정치적 주체이자 대상이며, 자본을 비판하며 자본을 추구한다.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살생과 죽임을 불편해하면서도 살생의 결과인 고기를 먹는다. “우리가 혐오를 느끼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피부와 머리를 잘라 내고 작은 조각으로 썰어서 그것의 동물적 기원을 위장하기 때문이다.”(170쪽)  이런 식으로 인간은 누구든 복합적이다.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자 당대의 문화를 공유하는 혼합적 존재이다. 종교적 정체성은 물론 자기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자기 스스로 주장하는 것만으로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 역시 타자에게 동의를 받을 때 확립된다. 타자로부터 동의를 받으려면 자신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타자와 타협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타자가 동의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기 개방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정체성의 확립 과정이 폭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정당성을 얻는다. 자신 안에 있는 폭력성을 인정하면, 폭력성을 혐오하기보다는 폭력에 분노하며 폭력을 줄이는 길에 나서게 된다. 혐오와 폭력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데서 비롯되는 일이다. 허접하고 씁쓸한 시위  이러한 내용에 무지한 채, 성평등이 법제화되고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 학교에서 항문성교를 가르칠 것이라며 목청을 높이는 종교인(주로 개신교인)들을 보면서, 자신의 폭력적 내면을 드러내는 줄도 모르고 혐오성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이들을 보면서, 사랑을 그저 성교로만 생각하는 이들의 천박한 용감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아연실색할 정도다. 신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논리라는 게 어찌 그리 반인간적이고 폭력적일까.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읽은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은 각종 혐오의 근거와 논리 등에 대해 일부나마 찬찬히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8-10-16 | hrights | 조회: 190 | 추천: 6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때, 사촌형이 사전 찾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당시 생각났던 것은 ‘맛있는 과자’였습니다. 사촌형은 저에게 우선 맛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맛: 음식 따위를 혀에 댈 때에 느끼는 감각...  그런 다음에는 맛이라는 단어 풀이에 적혀 있는 감각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감각(感覺):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그 다음에는 감각이라는 단어 풀이에 있는 자극을, 그다음에는 자극이라는 단어 풀이에 있는 또 다른 단어를... 그렇게 사전을 찾는 일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전 찾는 게 익숙해졌습니다.  지난 10월 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그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 이유가 가관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가관(可觀): 꼴이 볼만하다는 뜻으로, 남의 언행이나 어떤 상태를 비웃는 뜻으로 이르는 말.  -어처구니없다: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 ≒어이없다.  법정에 나오지 않은 이유가 ‘전 대통령의 재판 모습을 국민과 해외에 보여주는 것이 국격의 유지나 국민의 단합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국격(國格): 나라의 품격 사진 출처 - KBS  하도 기가 차서, ‘국격’이라는 단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덮고 인터넷에 검색해보았습니다. 누군가 <나무위키>에 이렇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7~80년대 독재정권 시절 가끔 이 단어가 보통명사로써 쓰이다가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부터 사어화되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前 대통령이 연설 등에서 국격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시금 유행을 타게 하였다.  생각해 보니, 이명박 정권 동안 걸핏하면 그놈의 국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과 그럴 때마다 몸서리치게 역겨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내친 김에 더 찾아보니 2010년 11월 24일,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온라인가나다>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국격이란 단어가 ‘국가품격’의 줄임말로, 표준어가 아닌 걸로 알고 있거든요? 헌데, 요즘 언론매체에서 ‘국격’이란 단어를 자주 쓰곤 하는데 틀린 것이 아닌가요?  국격이란 단어가 표준어가 아니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에, 국립국어원에서는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변을 해놓았습니다.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이르는 ‘인격(人格)’,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이르는 ‘품격(品格)’, 글의 품격을 이르는 ‘문격(文格)’은 지금까지 쓰여 왔고 사전에도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국격’이라는 단어는 기존 사전들이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서 예전부터 쓰여 온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현재 표준어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국가의 품격을 뜻하는 말로, 국격(國格)이라는 단어가 앞으로 두루 널리 쓰이게 된다면, 언젠가 표준어 여부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2018년 10월 10일 현재, ‘국격’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전적으로 이명박 씨의 노고 덕분입니다.  4년여 동안 ‘국격’이라는 실체 없는 단어에 매진하신, 그 국격 때문에 재판정에 나오지 않은 이명박 씨. 당신 때문에 내가 쪽팔립니다. ‘새빨간 거짓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다는 게 너무 쪽팔립니다.  격생격사(格生格死)이신 이명박 씨, ‘쪽팔리다’라는 품격 없는 말을 당신에게 내뱉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쪽팔리다’라는 말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이라는 것도 아시지요?  -쪽팔리다: (속되게)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8-10-10 | hrights | 조회: 108 | 추천: 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오래도 걸렸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백만 년. 그렇게 긴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빛나는 영롱한 저 별들. 그 빛을 사모하는 이들은 짙은 어둠을 만들어 놓고 고립되어 오랜 기간 빛의 속도를 감내하며 찾아온 손님들을 가슴으로 맞이한다. 헤라(Hera)의 젖줄은 인간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머나먼 우주의 공간에 한 줄기로 흘러 은하수(Milky way)를 만들었다. 빛 하나 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에서 길 잃은 나그네는 은하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었고 달빛이 숨어들어간 저녁이면 용이 꿈틀거리다 만들어낸 파도를 보기도 했으며 일 년에 한 번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를 기다리기도 했다.  별빛은 오랜 우주가 만들어낸 과거가 지구라는 작은 행성의 소년에게 전하는 안부였다. 소원을 빌라고 부추기는 여린 촛불이었고 꿈꾸라고 재촉하는 신의 음성이었다. 별빛의 끌림에 물든 소년들은 별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몇 백만 광년의 시간을 쌓아 역사가 되었다. 인류의 역사란 늘 꿈꾸는 자들의 몫이었다. 별빛이 꿈을 이끌었다면 곧 인류의 역사는 별을 바라보는 소년들의 것이었다. 별빛을 밤하늘에서 몰아낸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이었다. 어둠을 밝혀내는 위대한 발견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사이 별빛이 이끄는 소년의 꿈은 점점 왜소해져 갔다. 별빛의 가치를 대신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먼저 지구를 살았던 선조들의 이름이었다. 소년들은 이른바 위인이라는 이름의 생애를 배웠고 그들의 업적을 배웠다. 백성들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타 종족의 백성을 정복하는 이름도 더러는 있었지만 대개는 함께 사는 이들의 안위를 위해 재능과 노력과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이름들 이었다.  전 세계에는 현존하는 65억 개의 이름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이름들이 지나온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중 꿈꾸는 별빛을 대신해 소년들에게 소원을 빌게 해주는 대표적인 이름들을 모아 특화된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이 각 나라마다 있는 국립묘지다. 과거 속에 묻힌 이름이 별빛이 되어 미래를 안내하는 나침반이라는 의미다.  장쟈크 루소, 볼테르,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부부, 앙드레 말로.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이들의 이름은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에서 빛나고 있다. 1791년 4월 4일 미라보 백작의 안장을 시작으로 18세기에 7명, 19세기에 빅토르 위고를 포함해 46명, 20세기에 19명, 21세기 현재 8명의 별들이 잠들어 있다. 가장 최근 안장자는 프랑스에서 낙태를 합법으로 이끈 정치인 시몬 베유와 남편 앙투안 베유(안장일 2018.7.1.)인데 레지스탕스의 조직원으로 나치로부터 고문 받다가 투신 사망한 피에르 부로솔레트(1903.6.25. - 1944.3.22.)가 안장된 2015년 5월 27일 이후 약 3년여 만이었다. 수학자 니콜라 드 콩도르세(1743.9.17. - 1794.3.28.)는 사후 200여년 만에 이곳에 안장되기도 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역은 러시아의 국립묘지라고 할 수 있다. 폐결핵 걸린 몸으로 러시아의 변방 사할린 까지 왔었던 대문호 안톤 체홉이 있고 극작가 니콜라이 고골과 그 유명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니키타 후루시쵸프, 보리스 옐친도 그곳에 묻혀있다. 20세기 최고 발레리나 갈리아 율라노바와 혁명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희극배우 유리 블라지미로비치 니꿀린의 묘소도 거기에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벽면묘지 132번엔 김백추란 한글이 투박한 글씨로 써져 있다. 대한 신민단 단장으로 봉오동전투의 선봉에 섰던 김규면 장군의 묘지가 있다. 공적의 내용은 “극동 소비에트 권력 투쟁에 참가”이고 그는 1967년 러시아 혁명 50주년에 적기 훈장을 받았다. 對日抗戰에 목숨을 바친 조선의 청년이 이역만리 모스크바의 별이 되어 부인 김 나제즈다 여사와 함께 잠들어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우리나라 국립묘지에는 어떤 별들이 빛나고 있을까? 우선 70279기(2018년 현재)가 안장되어  있는 서울 현충원의 경우 맨 꼭대기에는 고 박정희,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적 인물들을 발아래 깔고 1100평의 널찍한 명당에 누워 계신다. 규모로 보면 역대 어느 왕의 무덤 부럽지 않다. 2009년에 등재된 세계 문화유산 조선왕릉에 따로 편입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넓이다. 한국 근현대사에 민중들이 넘어야할 질곡, 친일과 독재의 상징이다. 아마 앞으로 그 어떤 위대한 지도자도 이 정도의 묘지를 쓸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아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는 80평으로 소박하다. 그리고 그 아래 고 이승만 대통령의 묘는 500평이다. 이미 1100평의 묘가 있으니 소박하다고 밖에 얘기할 도리가 없다.  장군묘역에는 414기의 묘가 안장되어있다. 대한민국의 별이라고 하면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안다. 일반 병 생활 중 장군을 실제로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만큼 귀하신 몸이다. 군대의 신. 그런 장군 출신들은 사망 시 전원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자격요건에 안장이 불가능한 결격 사유가 있긴 있으나 다 안장된다고 보면 된다. 일제 강점기 독립군 때려 잡기로 유명한 간도 특설대 출신. 관동군 출신의 별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도 12.12 반란의 주역도 별 탈 없이 편히 쉬고 계신다.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애국지사 352기의 묘보다 높은 위치에서 벚꽃향기 풀풀 날리는 꽃다운 봄을 만끽하고 계신다. 살아서도 별, 죽어서도 별이다.  85987기가 모셔져 있는 대전 현충원엔 만주국 대동학원 출신 대통령이 계시고 762기의 장군묘역엔 5000만 원은 뇌물 아니고 떡값이라던 12.12 사태의 주역도 계시고, 악명 높은 서북 청년단의 리더도 계시고, 일제시대 계급이 고작 오장(하사)이라 운 좋게 반민족 친일 행위자에서는 빠졌지만 백범 암살의 배후로 보안사 기무사의 원조격인 기관을 만들었던 한국현대사의 역적 분도 계시고 계시고... 그 분들의 묘지를 갈고 닦고 기름 치기위해 100만평이 넘는 부지를 고작 10명의 청소 노동자가 ‘잠들면 죽는다’는 경계병의 심정으로 근무하고 있다.   온 국민이 애정하는 노래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작곡 하셨으나 만주국 10년을 찬양하는 만주 환상곡도 작고 지휘하셨던 에키타이 안도 계시니 그 위대한 분들의 명령에 따라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병사들은 고작 1평짜리 비문에 이름을 새기고 누워 계신다. 이분들이 위와 같은 사실을 미리 아셨더라면 후손들의 꿈에라도 나타나 “내 무덤을 옮겨 다오”하고 외치지 않으셨을까. 그래도 거기 못 들어가면 손해라 여기는 분들이 많아 현재 호국원을 포함한 국립묘지엔 27만기의 묘가 있고 앞으로 안장 대기자는 43만 명이 넘는다. 국가 유공자는 유족까지 포함해서 247만 명인데 우주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지구방위 사령부가 맞서 싸운다 해도 이만큼의 숫자는 나오지 않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나는 건국훈장 애족장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1907년 척박한 동두천 연천에서 의병으로 떨쳐 일어난 열혈 청년이셨다. 할아버지는 동두천 선산에 계신다. 다행이다. 개살구, 개자두, 개복숭아는 있어도 개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별은 썩지도 않고 빛을 잃지도 않고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빛날 거라는 걸 아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묘지에는 똥별들이 많다. 그들 때문에 과거로부터 찾아와 미래의 인도자가 되는 별의 안부를 거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정으로 별의 안부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가는 곳은 따로 있다. 제주 4.3 평화 공원, 마석 모란공원, 그리고 효창원. 나는 나의 할아버지이자 긍자, 래자의 묘.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8-10-04 | hrights | 조회: 402 | 추천: 5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 자주 하셨던 강연의 주제는 ‘공부란 무엇인가’였다. 선생의 마지막 강의를 엮은 책 <담론>의 주제도 결국 그것이다. <담론>에는 ‘가장 먼 여행’이라는 문구가 여러 번 등장한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먼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인식의 완고한 틀을 깨고 인식을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영복 선생은 징역 생활 초기에 다른 재소자들을 객관적인 인식 대상으로 보는 창백한 지식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술회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그저 나와 다른 타자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년의 징역 생활을 보낸 후에야, 재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듣고 자신이 가진 지식인적 관념성을 성찰하면서, 즉 공부하면서, 차츰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궤적을 살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이렇게 타자화의 시선에서 공존과 관용의 시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다. 이것이 톨레랑스의 지점이며 근대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덕목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하는 일이며 진리와 주체의 재구성이다. 사진 출처 - 사단법인 더불어숲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또 다른 먼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공존과 관용을 뛰어넘는 소통과 변화의 길이며 탈주와 유목주의의 길이다. 공존과 관용, 톨레랑스는 자기 자신이 변화하지 않은 채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다. 여전히 존재론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근대를 지배하는 존재론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 관계론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 변화는 이루어진다. 탈주와 변화를 통해 나 자신을 개혁하고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사회를 변화시킬 때, 비로소 우리의 여행은 완수된다. 그리고 그것이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실천이며 공부란 바로 그런 실천의 과정 자체다. 이와 같은 주체의 변화는 개인의 차원에서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재적 가능성으로 존재하다 삶의 국면 국면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끝없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한 사고나 경험 틀에 갇히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생각의 틀이 과거 어느 상태에 고착된 채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아집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공부하지 않고 특정한 사고의 틀에 그대로 안주한 채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교회 세습을 고난의 세습이라 강변하며 비판자들을 마귀로 모는 목사들이나 퀴어문화축제를 온갖 폭력으로 방해하는 사람들,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유포시키고 또 그것들을 정말로 믿어버리는 사람들. 낡은 사고의 덫에 갇힌 채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증오의 언사를 쏟아내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 굳어버린 사람들이다. ‘공부는 생명의 존재 방식’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살아 있되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한 생명이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공부하고 변화해야 한다.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의 여행은 가장 먼 여행이며 결코 끝나지 않는 여행인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09-19 | hrights | 조회: 258 | 추천: 5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커피는 여선생님이 타오는 게 어때요?”라는 말과 ‘테이블 아래에서 발로 다리를 건드리는 행위’는 성희롱일까?  답은 성차별과 성희롱이다. 이는 학교 내 성 고충 상담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성희롱·성폭력 등 폭력예방교육에서 나온 문답이다. 성희롱으로 규정될 수 있는 행위가 우리의 상식을 넘어 상대방의 불쾌한 감정까지도 포함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사회와 학교에서 발생하는 미투 운동으로 인해 10년 전의 사건도(징계사유의 시효가 5년에서 10년) 처벌이 가능하도록 강화되기도 했다.  성관련 문제들은 학생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교사들은 당황하고 긴장했다. 교사들은 이성 혹은 동성의 학생들을 교육하거나 상담할 때에 알고 있어야 하는 태도 등에 대한 지속적인 연수를 받아야 하는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를 점검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50대 중반의 중학교 남성 체육교사가 1학년 체조 수업에서 여학생의 자세교정을 해주다가 손이 학생의 허리를 스쳤는데 해당 학생이 ‘성희롱’으로 담임교사에게 신고한 일이 있었다. 유치원시절부터 성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자신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 신고를 하거나 감정 표현에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수업 중 발생할 수 있는 신체 접촉에 대해 학생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등의 변화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학생과 소통하려는 교사들은 “교육적 소신이 사라지며 무기력해진다”고 표현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에 인천의 한 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가 수업 중 '구지가' 등 고전문학을 가르치면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의혹으로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었다.(‘구지가’ 성희롱 의혹교사 징계논란. 오마이뉴스. 2018.07.20.) 학생들은 고전문학과 관련해 ‘과거 여성과 현재 여성의 시대상’ 등의 설명뿐만 아니라 교사의 평소 언행에도 성희롱적인 문제가 있어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교사는 수업내용에는 성희롱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며 과거 학생부장을 하던 시기에 학생들과 소통이 어려웠던 것들이 쌓여 문제가 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학생들과 문화가 다른 교사들은 자신들의 교육방법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기에 벅차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면서 교육적 소신이 흔들리고 체념까지 하게 된다. 게다가 대학 입시를 향한 과도한 교육열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부 교사들의 일탈행위를 일반화해 교사 불신이 확산되었다. 이의제기는 물론 법으로 해결하려는 일들이 늘어가면서 스승이 사라진 학교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변해가는 교육현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내용에 대한 연수를 받는 등 학생들과 소통에 어려움이 없도록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한다. 학부모들도 교육현장에서만큼은 전문가인 교사를 믿고 자녀에 대한 과잉 관심을 줄여주었으면 좋겠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8-09-12 | hrights | 조회: 163 | 추천: 4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올여름 폭염 속에서 두 권의 역사책을 열렬히 읽었다.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의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류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조현욱 옮김, 김영사)과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김명주 옮김, 김영사). 강의 교재로 적절한가를 살펴보려고 시작한 독서였지만 이내 저자의 박학다식과 도발적 문제제기와 참신한 해석에 매료되어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허나 학식과 재주가 변변치 못해 실용적 탐색을 본격적 탐구로 매듭짓지는 못했다. 이열치열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책의 소묘라도 그리는 것은 두서없는 성긴 독후감으로 시론(時論)을 갈음하는 겸연쩍음보다 ‘저자와의 대화’에 직접 나서 보라고 전언하고 싶다는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두 책은 다루는 내용이 방대할 뿐더러 분량도 상당하다. 우리말 번역본을 기준으로 본문의 분량만 ⌈사피엔스⌋는 586쪽, ⌈호모 데우스⌋는 544쪽으로 총 1,100쪽이 넘는다. 이 방대한 분량 속에 하라리는 인류 종(호모 사피엔스)을 “우리”로 지칭하고,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라고 질문하고 문명사의 굵직한 흐름과 다양한 사례로 답을 제시한다. 인문학이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때, 하라리의 두 책은 인간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문학 3문(3 Big Questions)”(경기대 사학과 김기봉 교수의 표현)에 ‘빅히스토리’적 접근을 보여주는 역사서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빅히스토리(Big History)’란 우주와 지구와 생명과 인간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거대담론을 말한다. ‘빅히스토리’는 호주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D. Christian)이 1989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이지만, 이 말이 학계를 넘어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11년 3월 그와 빌 게이츠가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를 공동 발기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빅히스토리는 삼라만상과 인간의 통합적 이해를 추구하기 때문에, 인류 종 전체의 역사 속에서 인간을 파악하고, 시간을 빅뱅 이후부터 인류세(anthropocene: 인간이 더 이상 자연조건의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지구의 자연조차 변화시키는 지질적 힘을 지니게 됨으로써 지구의 운명이 인류 종에게 달려있는 현재의 특이성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시대개념)로 불리는 현재까지, 그리고 공간도 우주와 전 지구는 물론 가상현실로까지 확장하여 다룬다. 요컨대, 빅히스토리는 현대 과학지식에 기대어 인류사의 시간적, 공간적 축을 최대한 늘리고, 그 위에서 인간이 겪는 사건들을 통합적으로 조망하고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구축하려고 한다.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도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지식을 결합해서 빅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한꺼번에 아우르려는 빅히스토리의 대표적인, 어쩌면 가장 유명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두 책은 각각 그 판매량이 수백만 권에 이르는 세계적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하라리는 인간 역사의 시작에 앞서 135억 년 전 에너지와 물질의 생성, 그 후 30만년 쯤 지나서 원자와 분자의 형성, 그리고 35억 년 전 유기체(생명)의 출현을 명기함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물리, 화학, 생물을 모두 엮어서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천명한다. 그중에서도 사피엔스 역사 서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물이다. 하라리가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하여 설명하려는 것은 사피엔스라는 종(鍾)의 성공이다. 즉 별 볼일 없었던 인간이라는 동물이 어떻게 지구 전체를 관장하는 생물학적 종이 되었는가의 문제다.   하라리에게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이다. 역사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 영역에 속한다. 인류의 자취가 생물학에서 역사로 전이된 계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주도한 세 개의 혁명이었다. 7만 년 전에 시작된 인지혁명이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면, 약 12,000년 전에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높였고, 약 500년 전에 일어난 과학혁명은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과학혁명은 유신론적 종교를 초래한 농업혁명과 달리,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낳았다. 인본주의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권위의 원천이며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경험이 인생의 의미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을 일반화했다.   또한 과학혁명은 250년 전의 산업혁명, 50년 전의 정보혁명, 그리고 오늘날 생명공학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인간은 급기야 죽음을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간주하고 영원한 삶을 가능하게 하려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하라리는 오늘날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공학 등을 이용해서 사피엔스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를 지적설계의 공정으로 본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가 질병과 노화에 시달리지 않는 ‘생명공학적 호모 데우스(신적 존재)’로 대체된다면, 생명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공학적 호모 데우스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라리는 이에 대해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답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는 지금 우리가 고뇌해야 할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 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없으므로!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8-09-05 | hrights | 조회: 347 | 추천: 5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이 순탄치 않다. 종전선언과 북 비핵화 순서 및 대북제재 유지를 둘러싼 북미 간 입장차 때문이다. 고대하는 한반도의 봄은 왔으나 오곡백과가 무르익어야 할 다가오는 가을이 불안스럽기 그지없다.  때마침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구속자가 생겨났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도 중국을 통하여 남북 간 경제협력사업을 10여년 지속해 왔고, 판문점 선언 시대를 맞아 남북 간 획기적 경제협력사업의 청사진을 갖고 남북경제협력의 꿈을 키워온 대북사업가에 대하여 지난 시기 남북경제협력 활동을 시비질하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탄압하고 그를 구속시키기 위해 허위증거까지 날조하는 일이 벌어졌다.  4.27 판문점 선언에 역행하는 일이 이렇듯 공연히 벌어지는 것도 판문점 선언 이행의 앞길을 불안케 한다.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맞아,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의 교착상태에서 구경꾼으로 전락하지 말고,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의 앞길에 가로놓인 난관을 극복하고 이행의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종전선언을 외면한 채 북의 비핵화 선행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며 대화와 협상 중에도 대북제재를 추가하는 미국의 입장을 추종하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지난해 북미 간 핵 대결과 핵전쟁의 위기까지 겪은 상황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의 종전선언은, 한반도 분단냉전체제의 종식을 위해 남북 온 민족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일 뿐만 아니라, 분단 반세기를 넘어 지속되어온 북미 간의 오랜 적대관계를 끝장냄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후 마지막 남은 냉전의 잔재인 한반도에서 분단대결구조의 청산을 바라는 전 세계인들이 적극 지지하고 그 실현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세계평화의 중요한 과제다.  적대 쌍방 사이에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상호 이행해야 할 것이 종전선언의 채택이기에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바란다면 그 누구도 종전선언의 채택을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종전선언의 채택을 거부하며 종전선언의 채택을 다른 그 무엇을 요구하는 조건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을 방해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다음으로, 국가보안법과 극우보수세력 그리고 한미동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 적대 관계의 해소를 지향하는 4.27 판문점 선언이 채택되고,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채택된 이후에도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판문점 선언의 이행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하고 있고, 분단냉전체제에 기대어 반북 종북몰이로 기득권을 이어온 한국의 극우보수세력들은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을 반대하고 있다.  4. 27 판문점 선언의 이행에 따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은 소멸, 퇴장할 수밖에 없다.  한국 민중이 오랜 분단냉전체제의 두터운 장벽으로부터 탈주를 위한 다른 대안과 길을 만들어 나가지 못해 온 이유는, 무엇보다도 분단냉전체제에서 외국군대가 주둔한 현실과 민족 쌍방이 적대하며 대결하기를 강요하는 국가보안법 체제에 질식된 나머지 외세와 극우보수세력이 강요하는 동족대결과 외세의존의 기형적인 세뇌된 사고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보안법과 극우보수세력 그리고 한미동맹의 영향력 쇠퇴라는 조건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이행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틀 내에서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공포와 한미동맹에 대한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틀 내에서 빌미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의 속도를 더디게 하거나 지체케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과 극우보수세력 그리고 한미동맹은 4.27 판문점 선언과는 양립불가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국가보안법폐지, 종전선언 및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한국 민중 스스로 분단냉전체제의 종식에 앞장서는 실천자세가 필요하고 그 힘이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점을 자각하여야 한다.  국가보안법과 극우보수세력, 한미동맹의 영향력에 대해 공포 내지 환상을 갖고 위축된 나머지 양립불가의 문제에 대해서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 속도를 늦추며 국가보안법 폐지나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종속적 군사동맹의 폐기를 선도해 나가기보다는 저절로 외세와 극우보수세력의 영향력이 소멸되기를 기다리는 때가 도래하지 않을까 요행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연목구어)와 다를 바가 없다.  국가보안법과 극우보수세력 그리고 한미동맹이 지배하는 현실이 여전한 상황에서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의 길에는 수많은 난관과 장애물이 등장할 것이다.  한국 민중들은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의 주체로서 판문점 선언의 이행의 길에서 남북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북에 대한 무지와 적대의식을 걷어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극우보수세력을 퇴장시키며 4.27 판문점 선언이 추구하는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의 수립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8-08-30 | hrights | 조회: 559 | 추천: 1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충남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대변인을 그만두고 나서 <한겨레TV> ‘더정치인터뷰’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의욕이 넘쳐서 문 대통령께 말했다. ‘좋은 기사, 칭찬하는 기사는 관저에서 읽고 오시고 첫 대면 보고받으실 때 가장 비판적인 기사만 보고받으실 것이다’라고. 실제로 8개월 20일 동안 그렇게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단 한 번도 표정으로나 싫은 모습을 보이거나 지적하지 않았다.”  쓴소리 위주로 보고하는 대변인과 그걸 묵묵히 듣는 대인배 대통령의 흐뭇한 풍경이지만, 지금 돌아 보면 어떤 예후를 암시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각종 개혁 정책이 지지부진하거나 뒷걸음질 치는 국정의 현주소가 대통령 참모들의 보좌 태도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들도 이 나라의 국민들이며, 대통령은 반대파의 목소리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지금은 2천년 전 맹자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고, 백성은 단일하지 않다. 반대파의 반대는 그냥 반대가 아니라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본질적인 반대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더구나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법부와의 거래도 서슴지 않고, 여론 조작이나 통계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파렴치한 철면피 세력의 반대라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야 한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마저 무시하는 깡패 집단에게 상식이 통한다고 생각하거나, 인과 덕으로 통치하면 결국 감화될 것이라고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표출되는 영역은 다름 아닌 경제 및 노동 분야다. 대자본과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그를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정권만 놓쳤다 하면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비판적 경제 기사를 쏟아내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때 아닌 양극화 논란을 부추긴 것도, 세금폭탄론을 만들어 조세저항을 조장한 것도 조선일보였다. 특히, 양극화를 해소할 각종 복지정책에 훼방을 놓은 건 정작 자기들인데,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정부를 비판한 것도 괴벨스의 후예, 조선일보 다웠다.(당시 보도만 보면 마치 당장 경제가 망할 것 같았는데, 물가인상을 반영한 실질경제성장률-집권기간 평균-을 보면, 노무현 정부 4.5%, 이명박 정부 3.2%, 박근혜 정부 3.0%로 노무현 정부가 가장 높다. 70년대식 삽질로 일관하던 이명박 정부와, 말뿐인 창조경제론으로 답답함을 더해가던 박근혜 정부 때 조선일보는 정부 정책 띄우기 바빴다.) 사진 출처 - 한국은행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 신문은 ‘좌편향’ 정책 때문에 당장 경제가 망할 것처럼 꽹과리를 쳐댄다. ‘김동연 패싱론’이라는 신조어를 동원해 청와대와 경제 관료를 이간질하며 개혁파를 견제한 데 이어,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핵발전 축소 등 거의 모든 정책에 딴지를 놓고 있다. 예의 철면피 전법도 여전하다. 왜곡과 견강부회는 일상이다.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거나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트릭을 사용하기도 한다.(범주가 다른 통계를 비교해 현 정부의 경제 실적을 비판하기도 한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73013425682404 저널리즘 교과서에 실릴 만한 왜곡 보도의 사례로 다름 아닌 <조선일보> 사설이다.)  이런 식으로 매일 계속되는 공세에(일간지의 힘은 매일 나오는 데 있다) 노출되다보면 조금씩 마음이 약해진다. 지지율이 흔들릴 때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로 개혁의 동력은 약해지고, 거기 실망한 지지자들이 떨어져나가 지지율이 더 떨어진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궤적이 그렇고, 그게 조선일보가 노리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그랬듯이, 우경화는 필패의 길이다. 지지율이 어느 정도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에서 떨어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개혁 정책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철학이 불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가 대중들보다 지나치게 앞서가는 걸 경계하면서도 “반발짝만 앞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반발짝 앞서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남북관계는 예외다) 대통령 특유의 신중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참모들의 보좌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따라오지 못할 때 설득할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만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종합부동산세와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방안을 ‘권고’했는데(이마저도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하루만에 청와대가 나서 ‘권고는 권고일 뿐’,  “과세는 정부의 몫”이라며 깎아내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반대가 조금이라도 예상되면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런 식이라면 이 정부 아래서 할 수 있는 경제 개혁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연금을 그룹 승계에 동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이재용을 대통령이 서둘러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동연 부총리가 이재용을 만나고, 삼성이 별 의미 없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식으로 시나리오가 짜이는 걸 보면, 경제 정책에 관한 한 누가 대통령 귀를 잡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경제 관료들의 상상력이 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문제다. 지금 한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재벌에 구걸하기나 SOC 투자 확대 같은 구태의연한 정책이 아니라, 국가재정으로 육아도우미를 고용해 가정에 파견하는 (고용과 복지, 저출산 등 세 가지 효과가 있는) 육아바우처 제도 같은 게 아닐까.  집권 2년차 들어 관료 출신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노무현 정부 데자뷔다. 관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청와대 인사의 푸념 또한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손발이 묶인 채 포위된 느낌이 드는 건 나 뿐인가. 경제 관료들은 모든 데이터를 꿰고 있고, 역사의 디테일 또한 거의 완벽히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토론으로 제압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대안을 낼 수 있는 그룹의 발탁을 늘리고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일부 특권층의 대변지 <조선일보>류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영향력은 노무현 정부 때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촛불 이후 시대정신은 여전히 왼쪽에 있다. 좀 더 선명해져도 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8-08-16 | hrights | 조회: 472 | 추천: 13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종합부동산세를 바라보는 두 시각이 있다. 하나는 “종부세제는 담세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세부담으로 지속이 불가능한 세제”라고 비판하며 종부세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낮은 보유세 부담은 공평과세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득의 양극화, 공정한 보상체계 훼손, 비효율적 자원배분 문제 등으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종부세 강화를 주장한다.  두 시각이 모두 같은 곳에서 나온 공식문서 일부라는 걸 알면 십중팔구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하늘과 땅처럼 다른 현실진단이 한 곳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사실이다. 하나는 기획재정부가 2008년 9월 발표한 종부세 개편안, 다른 하나는 2018년 7월 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종부세 개편안 중 일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고가 및 3주택 이상 다주택자 증세를 골자로 한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10년 전 기획재정부는 “조세원칙과 일반적인 보유세제 원칙에 맞지 않는 종부세 제도를 정상화할 필요”를 언급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종부세를 지방세인 재산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개정안의 주택분 종부세 최고 세율 1%도 소득수준을 감안할 경우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강력한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종부세 개편을 공언하던 시기였다.  기획재정부가 출범한 것은 10년 전인 2008년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부조직개편을 하면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한 결과였다. 강만수 초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세제실장과 재산소비세정책관 등 관련 간부들을 교체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증언했다. “참여정부에서 종부세 업무를 담당했다는 직원에게 강 전 장관이 면전에서 ‘나쁜 사람이구만’이라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 직원을 아끼던 고위관계자가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으니까 얼른 해외근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덕분에 소나기를 피할 수 있었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9월 23일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주택 과세기준금액을 공시가격 6억 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과표기준과 세율을 인하하며, 공정시장가격으로 가격평가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별도합산토지 과세표준은 인상하고 세율은 낮췄다. 중장기적으로는 종부세를 재산세로 전환하고 단일세율 혹은 낮은 누진세율 체계로 전환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사실상 종부세 무력화라고 평가할 만한 수준이었다.  당시는 헌법재판소에서 종부세 위헌여부를 다투던 중이었다. 2007년 3월부터 4차례, 그리고 2008년 8월에도 헌법재판소에 종부세가 합헌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던 기획재정부는 2008년 10월에는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종부세가 위헌이라는 의견서를 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위헌론과 합헌론으로 맞서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헌법재판소는 그해 11월 종부세가 재산세나 양도소득세와 중복과세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은 반면 세대별 합산과세는 위헌으로 결론 내렸다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스캔들을 일으켰다. 강 전 장관은 헌재 판결이 나기도 전에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판결결과를 “부분위헌”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거기다 기획재정부 실무자가 헌법재판관과 “접촉”했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을 계기로 국회에선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어 사건을 조사했다. 헌재의 비협조로 사건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당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등이 헌법연구관 등을 네 차례 방문하여 수정 의견서를 설명하고 관련 통계자료도 제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봤던 문재인 대통령 등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기획재정부 김동연 장관은 “실거래가 대비 종부세 과세표준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면서 “자산 양극화에 따른 소득 양극화와 부동산선호현상을 해소해 부의 편중현상을 완화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흔한 유감표명도 없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8-07-11 | hrights | 조회: 365 | 추천: 2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종, 종교, 민족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1951년 UN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협약) 제1조 난민 규정)  우리말 ‘난민(難民)’은 영어 refugee의 번역어다. refugee는 ‘뒤로/반대로(re)’ ‘도망하다/쫓겨나다(fuge)’를 의미하는 라틴어 refugio에서 온 말이다. ‘반대편으로 쫓겨난 사람’이다. 그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피난민(避難民)’이다. 전쟁을 경험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언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난민(難民)’이라는 애매한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재난을 피해온 사람’이라는 말에서 ‘피한다’(避)는 동사를 쏙 빼고 나니, ‘난민’은 그 자체로는 알기 어려운 낱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한국인에게 난민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위험한 외국인’이라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피난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리는 분위기도 커져가고 있다.  난민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나 민족 단위의 재난(전쟁, 분쟁...)이 가져다준 결과이고, 정치적 폭력의 산물이다. 난민협약도 세계대전 이후 자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피난민들을 국제적으로 보호하자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물론 오늘날의 난민에는 기아로 도무지 살 수 없어서 좀 더 안전한 지대를 찾아 떠나는 경제적 이주민의 성격도 있다. 핵심은 피난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 체제 하에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국경’을 강화하면서 (피)난민이 타지역이나 국가에서 살아가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근본 원인은 국가나 사회가 제공해놓고, 그 책임은 약한 개인이 떠맡고 있다. ‘너희 때문에 우리도 힘들다’며 아예 자기 나라로 발붙이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흐름도 커지고 있다. 2015년 가을 터키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던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보며 안쓰러워하다가도, 정작 난민이 자국의 문제가 된다 싶으면 행여나 손해라도 볼세라 바로 외면해버리곤 한다. 한국은 다소 예외려나 싶었는데, 이번에 제주에 들어온 예맨 난민들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의 53.4%가 난민을 반대한다는 7월 4일자 리얼미터 여론 조사도 있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왜 그런 것일까. 부모와 헤어질까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는 멕시코 이민자 아이 사진을 보며 미국의 비인간적 이주민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제주에 들어온 예맨 난민 또는 이주민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배타한다. 한국인 전쟁 포로가 타국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이야기는 마음 아파하며 듣다가, 한국으로 오려는 난민에 대해서는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카레이스키’를 억압한 옛 소련에 대해서는 분노하다가, 예맨 난민은 그저 돈을 찾아 온 가난한 나라 사람이라는 소문을 확산시키며 인종차별주의적 분위기도 강화시킨다. 이들 가운데 IS 대원이 섞여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기도 한다.  보수 기독교인은 근거 없는 ‘이슬람 포비아’로 무슬림 난민을 잠재적 성폭행범이나 극단적 근본주의자 취급을 하면서 본국으로 송환하라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피난’의 기록인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난민 문제에는 관심이 없거나 자기감정을 기준으로 배타한다. 예수가 헤로데의 살인적 폭정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했었다는 성서의 기록은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외면한다. 그러면서 ‘난민 반대’라는 여론을 만들어간다. 종교도 개인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만 수용하는 편협한 ‘자기신앙’으로 몰려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는 난민보호법이 있다. 세계대전을 겪은 뒤 1951년 유엔에서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an Relating to he Statues of Refugees, 이하 난민협약)이 발효되었고, 이 난민협약을 토대로 1967년에는 난민의정서(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es of Refugees)가 체결되었다. 한국은 1992년 12월에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따라 국제적 난민보호국의 대열에 동참했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규정을 신설한 뒤 2012년 입법 발효했고, 2013년부터 시행 중이다. 이 마당에 난민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은 유엔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위배되며 국제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이다. 난민을 잘 가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만 남아있는 것이다. 단순히 여론으로 처리할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인 결단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는 권리의 주체를 ‘국민’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꾸고자 했던 청와대 헌법 개정안의 정신대로 난민심사위원과 잠정 수용시설을 대폭 늘려야 한다. 난민신청자 중에는 솎아내야 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이들은 잘 가려내면 된다. 그 과정에서도 인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저 돈의 논리로 처리하거나, 일종의 인종차별주의 혹은 알량한 문화적 우월주의가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삼한시대에는 일종의 제의 장소인 소도(蘇塗)가 있었다. 신성한 공간이어서 심지어는 도둑이 들어와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범죄자조차 단죄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아무리 그런 신성함 같은 것이 다 깨져버린 시대이기는 하지만, 전쟁 통에 살기 어려워 낯설디 낯선 곳으로 목숨 걸고 온 난민을 내쫓으라고 청원하는 이가 더 많다니, 슬프다. 설령 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온 이주민이라 해도 그렇다. 가능한 한 같이 살면서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궁리를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우리는 그렇게 비인간적인 지경으로 몰리게 되었을까. 우리가 피난민이었던 시절이 불과 반세기 조금 전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8-07-06 | hrights | 조회: 811 | 추천: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