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혁용(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중(병원장),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교수), 이재승(건국대학교 법전문대학원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 글을 씁니다.

서보학/ 인권연대 운영위원   내년 10월 2일이면 검찰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소권만을 행사하는 공소청을 설립하는 정부조직법이 그때 발효되기 때문이다.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한 손에 쥐고 한국 사회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했던 초거대 권력기관 검찰이 역사의 종언을 고하는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위헌적인 내란을 시도해, 한국 사회를 70년대의 독재 시대로 되돌리고 장기집권을 획책했던 윤석열의 무모함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과감한 검찰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에는 검찰개혁 TF가 꾸려져 검찰개혁을 제도적으로 완결하기 위한 법안 마련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 1월 안으로는 수사-기소 분리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공소청법, 중수청법 및 형사절차의 일반법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필자는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 자문단에 소속되어 법안 마련을 위한 내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자문단에 참가하면서 약속한 대로 내부 토의 상황을 발설할 수는 없지만, 이 지면을 빌어 개인 의견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짐작하다시피 남은 쟁점 중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것은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길지이다. 수사권을 놓고 공소기관으로 새로 태어날 운명을 맞이할 검찰은 현재 보완수사권의 확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어떡하던지 직접수사권의 한 자락이라도 남겨두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와 명분을 갖다 붙이더라도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두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검찰에 직접수사권을 남기는 것은 수사-기소 분리라는 개혁의 대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후일 조금씩 불길이 번지고 타올라 온 산을 태워 버릴 수 있는 위험한 불씨를 남겨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취임 100일 기자회견장에서 한 발언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이날 이 대통령은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장독과 구더기의 비유를 들었다. “구더기가 싫다고 장독을 없앨 수는 없고, 장은 필요하니 장독은 두되, 구더기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다수 언론은 이 발언의 의미를 검찰의 권한남용 우려(‘구더기’) 때문에 검찰의 보완수사권 자체(‘장독’)를 완전히 없애는 방식의 개혁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이 대통령이 의문을 표시했고, 따라서 검찰의 문제점을 이유로 검찰의 보완수사 기능을 전면 폐지하는 건 곤란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독(誤讀)이라고 본다. 오랜 기간 검찰개혁을 주장해 온 한겨레 박용현 논설위원은 이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에서 구더기는 수사·기소권을 독점하며 정치적으로 사건을 만들거나 키우거나 덮어버렸던 ‘정치검찰’을 그리고 장독은 형사사법 시스템 자체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논썰 : ‘구더기 퇴치’와 보완수사권). 검찰의 문제 때문에 검찰이 참여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없앨 수는 없지만, 앞으로 수사권·기소권을 모두 가진 구더기 정치검찰은 생기지 않도록 고쳐야 한다는 것이 이 대통령 발언의 진의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필자도 당연히 이러한 해석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장독은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 구더기는 기소권 외에 수사권을 한 손에 쥐고 권한을 남용하여 장맛(형사사법 시스템)을 더럽히는 검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고 본다. 수사, 기소, 재판이 분리된 현대의 탄핵주의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기소관청인 검찰 자체를 없앨 수는 없으나, 기소권 외에 수사권을 행사하면서 장맛을 더럽혔던 구더기 검사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제도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윤석열 검찰의 사건조작과 억지기소에 의해 모진 탄압을 받았던 이 대통령과 내란을 극복하고 국민주권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 다수가 원하는 올바른 검찰개혁의 목표라 할 것이다.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길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검찰이 보완수사권을 핑계로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수사인력을 그대로 보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있다. 완전한 검찰개혁은 수사-기소 분리를 제도적으로 완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검찰에서 수사인력을 완전히 제거할 때 가능하다. 대륙법계의 법통을 대표하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법적으로는 검사가 수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실상 직접 수사를 못하는 이유는 검찰청에 수사인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검사를 ‘손·발 없는 머리’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검찰이 중요한 사건의 수사에서 여타 수사기관을 배제하고 독점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이유는 2,300명에 달하는 검사들 외에 약 7,000명에 가까운 검찰 수사관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이들 검찰 수사인력을 물리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검찰은 시대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수사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보완수사권을 핑계로 수사전력을 보존하려는 검찰의 감춰진 속셈을 무위로 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완수사권을 박탈해야 한다. 검사가 보완수사권을 행사할 경우 사건을 왜곡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대표적인 예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을 살펴보자. 스폰서로부터 별장 성접대를 받았던 김학의 사건에서 경찰은 그가 등장하는 비디오 영상 및 피해 여성들의 진술 등 충분히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그러나 담당 검사는 보완수사를 하고 난 뒤 김학의를 최종 불기소처분하였다. 핑계 중의 하나는 비디오 영상 속 등장인물의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상이 선명하여 누가 보더라도 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임을 특정할 수 있었지만 검사는 제대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핑계를 댔다. 또한 검사는 김학의를 고소했던 피해 여성들을 여러 차례 불러서 이미 경찰에서 충분히 조사가 되었던 사항들에 대해 계속 반복 심문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심문 때마다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평가하였다. 과거의 사실에 대해 질문을 조금씩 바꿔 가면서 계속 꼬치꼬치 심문하면 기억에 의존한 진술의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진술자는 검사가 계속 반복 심문을 하면 자신의 진술을 방어하기 위해 더 많은 진술을 하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진술이 덧붙여지거나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자 검사는 피해자 진술의 핵심적인 내용이 아닌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졌음에도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불기소 처분하였다. 처음부터 불기소의 이유를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복된 심문을 하였다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한 성남FC 제3자 뇌물수수 사건도 애초 경찰이 무혐의를 하였으나 검찰이 보완수사를 통해 억지 논리를 만들어 기소한 사건이었다. 검사가 마음먹으면 보완수사 단계에서 얼마든지 유죄를 무죄로, 무죄를 유죄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검사는 마음먹으면 보완수사를 통해 얼마든지 사건을 키우고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법에는 흔히 ‘사건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사가 보완수사를 하도록 규정하지만 ‘동일성’의 개념은 외연이 분명하지 않은 모호한 개념이다. 한 예로 윤석열 정권의 검찰은 경향신문, 뉴스타파 소속 언론인들의 윤석열에 대한 명예훼손사건 수사에서 – 검사는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법적인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 법이 아닌 대검예규를 통해 법에 규정된 것보다 동일성의 개념을 확장하여 무리한 수사와 억지 기소를 감행한 사례가 있다. 지난 9월 국회의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에서 김필성 변호사는 이 같은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사실 보완수사권을 주면 수사의 특성상 계속 확장될 수밖에 없거든요. (동일성을 판단하는) 직접 관련성 여부에 대해서 수사단계에서 판단할 주체는 검사라고 주장할 겁니다. 직접수사권이 인정되는 순간 검사의 수사권을 통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어집니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하는 단계에서 검사 출신 전관변호사와 현직 검사 간에 검은 거래(전관예우 비리)가 자리 잡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아마 검사 출신 전관변호사들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악착같이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소청 검사의 직접보완수사는 전면 금지하는 것이 옳다. 검사는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수사기관에게 보완수사 요구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송치사건에 대한 직접보완수사는 최초 사건을 수사한 수사기관(경찰청 국사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청)이 책임지고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에 보완수사 기한을 3개월로 못 박거나 원래의 수사관이 아닌 다른 수사관이 수사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앞으로도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권을 행사하면서 송치사건을 자신들이 원하는 사건으로 만들어 간다면 여전히 검찰은 기소권 외에 수사권을 가진 기관으로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며 계속 형사사법 시스템 전반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 구현을 위한 각종 개혁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무총리실 검찰개혁 TF에서 성안되고 있는 공소청법과 개정 형사소송법에서 공소청 검사에게는 철저하게 기소관의 역할만이 부여되어야 한다. 검사들도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선한 사람들일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개인의 인품과 관계없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쥔 검사는 결코 선할 수 없다. 검사들에게 빈틈을 보이는 순간 짧으면 수년 내, 길어도 다음 정권 내에는 다시 되치기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번 검찰개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장맛(형사사법 시스템)을 더럽히던 구더기의 탄생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서보학 위원은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12-09 | hrights | 조회: 100 | 추천: 8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출처: JTBC 영상 갈무리)   첫째, 항상 깨어 있으라. 군대는 멍때리는 시간이 아니다. 군인이라는 자리는 세상에서 명예롭고도 위험한 직업이다. 무엇이 부당한 명령인지 항상 알고자 하라. 알아야 즉각 행동할 수 있다. 법을 위반하는 명령이나 범죄, 전쟁범죄, 제노사이드,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자행하라는 명령은 명령이 아니다. 군대 바깥에서 활약하는 훌륭한 법률가와 인권활동가를 평소에 알아두어라. 의심스러운 사항을 항상 물어라. 그것은 기밀 범죄가 되지 않는다. 둘째, 안다고 바로 행동하기는 어렵다. 항상 지식을 통찰로 바꾸고, 통찰을 계율과 원칙으로 체화하라. 불법적인 명령을 받는다면 어찌해야 할지 행동수칙을 정하라. 감히 정신적 맷집을 키워라. 보통 군인들에게: 총부리를 시민에게 겨누라는 지시를 받거든 묻지 말고 탈영하라. 그대의 행동은 무단탈영이 아니라 정당한 피난이므로 그대를 박해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위법한 명령을 널리 알려라. 가급적 사전에 알려라. 지휘관에게: 스스로 불복종의 교리를 학습하고 부하들에게 불복종을 늘 교육하라. 부당한 명령 앞에서 그대도 모범이 되어라. 박정훈 대령을 보아라. 장관급 장교에게: 부당한 명령을 즉시 거부하라. 공개적으로 천명하라. 정치가와 언론에 즉시 알려라. 그대와 같은 인물이 한 명이라도 더 나오면 불법은 멈추게 된다. 트럼프의 부당한 지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던 미국의 장군들을 보아라. 부당한 명령을 받든다면 지금까지 지켜온 그대의 명예를 먹칠하는 것이다. 셋째,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면 권력자는 그대를 항명죄로 기소할 것이다. 세상이 민주적 법치국가라면 그대는 멀지 않아 지지받을 것이다. 세상이 이미 타락하여 의지처마저 사라졌다면 양심을 지킨 그대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감옥이다. 불복종이 올바르게 평가받는 날까지 오랜 고통과 외로움이 기다린다. 자신을 다독이고 감내하라. 이 기회에 옥중 철학자가 되어 세상을 구하라. 넷째,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면 처벌은 피할 수 없다. 상관이 죄를 대신 져주지 않는다. 상관은 그대에게 책임을 미룰 것이다. 베트남의 미라이 학살 사건을 보라. 학살을 명령한 중대장 메디나 대위는 빠져나가고 명령을 수행한 소대장 켈리 중위는 대가를 치렀다. 군 통수권자 윤석열이 내란 법정에서 내놓은 말을 상기하라. 범죄를 명하는 상관은 그대를 보살펴주지 않는다. 그대를 도구로 악용할 뿐이다. 절대적 복종의무란 없다. 헌법과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은 상관의 명령보다 더 높다.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면 그대는 헌정질서파괴죄(반란죄)로 혹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평생 법의 추적을 받을 것이다. 요행 법의 추적을 따돌리더라도 양심이 세운 감옥은 피할 수 없다. 헌법과 인도주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라. 다섯째, 부당한 명령 앞에 선 군인은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항상 사유하라.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행위는 복종범죄다. 부당한 명령에 대한 복종은 폭력적 지배와 제노사이드를 낳았다. 이를 거부하는 군인은 문명의 파수꾼이고, 더 높은 삶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가교이다. 불복종으로 박해받는다면 나는 항상 그대와 함께하겠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12-04 | hrights | 조회: 459 | 추천: 4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빛의 혁명과 정권 교체에도 국가보안법 폐지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국가보안법 수사와 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공안수사기관은 오늘도 사찰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몰래 부지런히 파쇼악법의 집행에 열중하는 중이다. 그에 저항하는 힘은 역부족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87년 6월 항쟁, 촛불혁명(2016년, 2017년)과 빛의 혁명(2024년, 2025년)으로 항쟁을 이어가며 한국의 시민들은 지난한 투쟁을 해왔건만, 일제 하에서 제정된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모방한 악법이 77년째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그 독성을 유감없이 풍기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독성이 약해졌다거나 소위 선진 민주 인권 국가에서 국가보안법의 악성이 다 사라졌다고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극소수의 반미, 친북세력에게 적용되는 국가보안법이 무슨 큰 문제가 되며,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보안법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2.3 윤석열의 내란 쿠데타는 국가보안법에 악성 감염된 탓이라는 사실이다. 윤석열은 정권을 잡자마자 대외적으로는 북한 악마화 대결정책에, 대내적으로는 주야장천 진보민중운동에 대해 ‘종북 반국가 세력’ 운운하는 종북몰이 공안탄압을 휘두르다가 정권의 위기를 초래하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급기야 내란 쿠데타를 일으키고 자멸하였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악성종양의 독성을 숨 쉴 틈 없이 뿜고 퍼뜨리다 망가진 자가 내란수괴이다. 그 내란수괴를 추종하는 극우반공세력이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득세하고 집권할 수 있는 것이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12.3 내란 쿠데타 1주년을 맞이하여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다 내란으로 치달은 내란수괴와 그 추종 극우반공세력을 한국 사회에서 깡그리 없앨 수 있는 내란청산의 유일무이한 길은 극우반공세력의 뒷배요, 내란세력의 절대무기가 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의 토대이자 극우반공세력의 서식지인 분단냉전체제의 혁파밖에 없다.   내란수괴에 대한 엄중한 단죄와 극우반공세력의 영원한 퇴출을 염원하는 누구나 극우반공 파시스트 세력을 탄생‧발호하는 근원인 국가보안법 문제에 귀 기울이고, 분단냉전체제의 해체를 위한 저마다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사진 출처   한국민이 이룩한 빛의 항쟁이라는 위대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의 독성은 변함없이 여전하다. 반미와 친북을 금기시하는 정치사상 탄압이 일상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과 북맹이란 칠흑 같은 어둠이 우리 사회의 정중앙에 주리를 틀고 있다. 하기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은 반북을 내세운다면 행여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몰라도 아예 설 자리가 없다. 장장 77년간 국가보안법이라는 악성종양이 극우반공세력의 핏줄을 타고 독성을 내뿜어 왔기에 진보정당은 말살당하고 국가보안법이 유지하고 보존한 비정상의 정치지형만이 남아있다.   패권국의 군대가 주둔하며 남북대결을 강요하는 분단냉전체제는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북의 위협에 더해 중국의 위협까지 더하며 이를 구실로 반북, 반중 군사동맹의 현대화로 교묘히 위장한 한국과 일본의 군비증강은 패권국의 전략과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나토화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대동아공영 실현을 위해 조선의 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탄압한 것이 어제의 치안유지법이었다면,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 및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나토화를 꾀하는 미국의 패권 야망에 맞서 이를 반대하는 진보민중 운동가들을 탄압하는 게 오늘의 국가보안법이다. 그 본질이 전혀 다르지 않다.   치안유지법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이름만 바뀐 채 세대를 이어 한민족과 한국민을 옥죄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짊어져야 할 역사적, 시대적 과제이다. 한국 민중의 끊임없는 자각과 저항과 투쟁으로 반드시 이룩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기에 국가보안법 폐지의 실현은 제2의 광복에 비견되는 일이 될 것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5-12-02 | hrights | 조회: 305 | 추천: 8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률가들이 처벌받은 사례는 매우 희귀하다. 제2차세계대전후 독일에서 펼쳐진 미군의 법률가소송, 프랑스의 나치부역자처벌, 아르헨티나 강제실종법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최근 증거조작을 통해 유죄판결을 유도하려 한 검사들의 비행이 드러남으로써 법조인의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법왜곡행위는 함무라비 법전에 판사의 재판변조범죄로 등장한다. 가까이는 독일의 법왜곡죄가 널리 주목받고 있다. 필자의 인식은 독일 형법학자 귄터 슈펜델의 독보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후 독일법원은 법왜곡죄로 나치법조인을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하였다. 실제로 하급심법원들이 유죄판결을 선고하기도 하였으나 연방대법원은 이들을 한결같이 무죄로 방면하였다. 독일법원이 장착한 무기는 ‘당시 유효한 법이 지금에 와서 불법이 될 수 없다’는 법물신주의적 면책론과 ‘자신의 확신에 따라 판단했다면 무리한 법적용도 무죄’라는 사이비 확신범 이론, 이 두 가지였다. 법물신주의는 나치법대로 일을 처리한 소극적인 나치판사에게, 사이비 확신범 이론은 나치법을 초과하는 광적인 나치판사에게 면책논거로 작동하였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군사법원판사 칼 작, 해직판사 한스 폰 도나니, 카나리스 제독 등은 군형법상 반역죄로 친위대의 즉결재판소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 패망 직전인 1945년 4월 8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 1955년 아우구스부르크 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재판장 오토 토오벡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하여 4년 징역형을 선고하였는데, 1956년 연방대법원은 당시 법대로 한 행위를 지금의 기준으로 비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한스-요아힘 레제는 정치범 도살장인 인민재판소의 소장 롤란트 프라이슬러(<쇼피 숄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심판사였던 프라이슬러는 전쟁 말기에 폭격으로 이미 죽었다)의 배석판사로 최소한 231건의 사형판결에 서명하였다. 1967년 베를린 지방법원이 레제에게 3건의 살인방조와 4건의 살인미수방조로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였으나 연방대법원은 1968년 레제가 법관의 독립 아래서 자신의 확신에 따라 서명하였다면 살인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치시대에 아리아인과 성관계를 맺은 유대인을 처벌하는 인종강상죄(人種綱常罪 Rassenschande)가 있었는데 이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6건 정도이다. 자유연애를 벌하는 인종강상죄 자체도 황당무계하지만, 이 죄의 법정형이 징역형이었으므로 사형선고는 애시당초 판사의 몫이 아니었다. 1943년 독일인 애인과 성관계를 가졌던 헝가리 국적의 유대인 엔지니어 홀랜더는 특별재판소에서 인종강상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이렇게 법을 적용한 광적인 판사가 제2차세계대전후 카셀 지방법원에 기소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카셀 지방법원은 법정형이 징역형인 범죄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오판이지만 나치적 확신에 기해 그와 같이 판결했다면 법왜곡의 고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법률가들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확신이 범죄의 고의나 책임을 조각한다는 확신범 이론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 확신은 경우에 따라 다소간 형을 감경해주는 사유가 될 뿐이라는 점. 이러한 기만적인 논리로 독일법원은 나치 법조인을 위해 또 다시 법왜곡을 자행하였다.   사진 출처   한편 독일법원은 통일 이후 1995년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구동독 판사들을 법왜곡죄로 처벌하였다. 그 사이에 1974년 범죄요건에서 논란이 많았던 ‘고의로’라는 문구가 삭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유죄판결은 삭제의 결과가 아니었다. 실제로 삭제하기 이전인 1960년 독일법원은 소련점령지역인 마그데부르크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을 간첩죄와 보이코트 선동죄로 징역형을 선고한 후 서독으로 이주한 구동독 판사를 법왜곡죄로 처벌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당시 법원은 “형법 제336조(구형법상 법왜곡죄)의 책임제한은 오로지 인적 및 물적으로 독립된 법관에게만 인정된다. ⋯ 온갖 외적 형식에 있어서만 법원판결과 공통성을 지닐 뿐, 실제로 행정적 말살처분에 지나지 않는 관헌적 조치에 협력하는 법관에게는 형법 제336조의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체제차별적인 시각을 견지하였다. 나치법관은 독립된 법관으로서 특권을 향유해야 하지만, 동독법관은 행정적 말살조치의 시행자이므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법원은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진영논리에 입각해서 법왜곡죄를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중적인 왜곡을 통해 법왜곡죄가 차별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법왜곡죄는 독일법조사의 확고한 추문이 되었다. 그후 법왜곡죄가 적용된 한두 건의 사족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법왜곡을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인식이 주된 관심사이다. 최근 국내에서 독일의 법왜곡죄를 벤치마킹하여 검사와 판사의 사법농단을 제어하자는 입장에서 법안도 발의되어 있다. 사법감시업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라면 개혁적인 정치인을 상대로 한 형사소송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계급재판, 대기업, 재벌기업 민사소송에서도 법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상징주의적 입법운동을 넘어서 사법적 권력남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남용의 본질을 투시해야 한다. 법왜곡죄를 도입해야만 법조인을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자칫 잘못하면 법률불소급 원칙 운운하면서 법조인들의 사법농단을 면책시키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우선 우려한다. 법왜곡죄가 없더라도 사법권력의 남용은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 법왜곡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도 야기한다. 어쨌든 처벌대상을 명시하는 장점이 있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나치시대부터 지금까지 독일에서는 법왜곡죄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기능부전상태였다는 사정을 직시해야 한다. 우선 법왜곡은 권력집단의 정치적 의지가 작동하는 영역이다. 서경식 선생이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 나오는 ‘캄비세스 왕의 재판’은 법왜곡으로 박피형을 당한 판사 시삼네스의 서늘한 일화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재판이 가능한 배경은 시삼네스 판사가 캄비세스 왕과 무관하게 혼자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그르쳤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왕과 판사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결탁한 정치적 재판이었다면 판사는 법왜곡죄로 처벌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왕의 정치적 의지에 부화뇌동했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최고권력자의 정치적 의지, 검사와 판사의 협잡에 의해 버무러진 정치적 재판에 대해서 관련자들을 처벌할 용자가 당대에 존재하겠는가? 검사의 권력남용을 기소할 검사가 없고, 악의적인 판결을 선고한 판사를 처벌할 판사가 없다는 사실이 권력남용의 배경이고 원인이다. 그래서 동일한 정치적·사회적 유착관계가 없는 제3자, 즉 연합국과 같은 점령군 또는 구체제를 원수 보는 듯한 새로운 유형의 법조인만이 정치적으로 부패한 법조인을 처벌할 수 있었다. 필자는 법왜곡죄의 도입이 민주당의 개혁적인 법률가들이 그냥 멋으로 해보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언이 존재한다. 자기 사건이란 자기와 이해관계가 동일한 사람들의 사건이라고 해석해야 법왜곡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공정한 제3자의 법정이 꾸려지지 않는다면 법왜곡죄는 장식품에 그친다. 법조인을 재판할 국제기구를 설치하든지, 법조인을 재판하는 특별법정 혹은 시민법정이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앞의 방식은 국제협약의 문제로서 너무나 먼 일이고, 후자의 길은 가능해 보인다. 개혁된 공수처, 검사, 판사가 이 일을 정직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기소 여부를 결정할 시민기소관 제도를 도입하고, 자동적으로 국민참여재판에 회부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차 형사재판을 배심재판으로 구조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반역죄에 대해서는 의회가 직접 재판하도록 하는 근거를 헌법에 두고 있다. 어떤 범죄들이 법조인들의 유착과 결탁으로 지속적으로 은폐·엄폐되는 현실에서 새로운 유형의 기소와 재판 방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제도는 오래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민주화 이후 공짜로 얻은 권력으로 바닥없이 추락한 영역을 시민사법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이 글은 필자가 몇 해 전에 쓴 <법조인소송(일감법학, 2019)>의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원문 https://www.dbpia.co.kr/pdf/cpViewer?nodeId=NODE09404855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12-01 | hrights | 조회: 299 | 추천: 9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떠든 아이’를 칠판에 적던 기억에 비추어보아도, 얼굴이나 이름의 ‘공개’는 실수나 나태 등 좋지 않은 습관을 줄이는 방법이다. 나아가 투명성은 내실을 다지는 데로 이어진다. 남들이 보니까 제대로 해야 한다. ‘국민주권정부’에서 공개하여 중계하는 국무회의가 떠올라서 하는 말이다.  아마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회의가 진지하더라도 그 진지함이 쉽지는 않다. 토론까지 겹치면 에너지는 더 많이 든다. 때론 한 말 또 하는 상황도 감내해야 한다. 당연히 이런 회의를 보는 건 더 고역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 중계되는 국무회의는 은근히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이를 경청(傾聽)이라고 한다. 이 말은 《소학》에 나오는데, 원래는 《예기》에 수록된 말이다. 바로 듣지 않고 삐딱하게 듣는다는 태도를 가리키며,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으니, 지금의 뜻과는 달랐다). 어떤 블로거는 이를 두고 “회의가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라는 말도 했다.   [사진1 : 국무회의 생중계를 알리는 뉴스]    지난 11월 11일, 대통령실에서는 “특별히 대통령의 모두발언과 현안 토의, 부처 보고 외에도 일반 안건과 보고 안건을 심의 의결하는 전 과정이 생중계됐다”라고 밝혔다.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 항목과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무위원들의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이날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 부처 공직자를 대상으로 12·3 비상계엄 등에 협조한 이들을 조사할 '헌법존중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설치를 제안하였다. 공직자는 물론 시민들에게도 관심이 높은 사안이었다.  사실 국무회의 공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무회의가 열리면 간사는 국무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 이 회의록은 공공기록법과 대통령기록법에 따라 관리, 이관, 보존, 공개(또는 비공개)된다. 그렇지만 국무회의록에 접근하려면 정보공개 또는 기록물 열람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나면 이미 지난 일이 된다.  예전에도 TV에서 국무회의 일부를 중계하거나 뉴스로 알려준 적이 있었다. 일부만 편집한 것이었다. 그나마 늘 대통령만 얘기하고, 나머지는 받아적기만 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엄연히 노트북이 앞에 놓여 있는데도 손으로 열심히 받아적는 건 또 뭐였는지….   [사진2 : 대통령만 말하고 국무위원들은 별 적을 필요도 없는 말을 열심히 받아쓰는 척하고 있다. 2023년 어느 날 국무회의.]    국무회의 공개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학교 선생님들은 좋겠다 싶었다. 이보다 좋은 학습 교재가 있을까? 시민으로서 나라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는 산 교육이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대부분 토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실력이 있다. 책임감 있는 당국자들이 자신이 무엇을 결정하고 있는지 안다면, 그리고 그 결정이 국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고민한다면 그 회의는 더욱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국무회의가 더 나은 학습 자료가 되기 위해 두 가지만 제언하고 싶다.  첫째, 대통령의 ‘모두 말씀’은 없앴으면 한다. 과거 월요일마다 조회를 서서 교장선생님 훈시로 일주일을 출발하던 느낌이 난다. 국무위원이 훈시를 들을 학생은 아니지 않은가? 현재 이재명 대통령의 토론 태도를 보면 매우 수평적이고 상호적이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경직된 형식이 지속되면 표현을 제약하게 마련이다. 덧붙이자면 대통령의 발언 시간은 더 짧아졌으면 좋겠다.  둘째, 대통령의 판단이나 의견을 들이받는 장면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나왔으면 좋겠다.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이 뽑은 대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비판도 가능하다. 필자가 보기에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에게 너무 공손하다. 그 이유는 대통령과 나머지 국무위원들의 지위랄까 위상이 과거 왕정 때보다 더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부러라도 진행방식과 태도를 수평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사진3 : ‘석담일기’라고도 불리는 율곡의 《경연일기》. 국무회의+경연 기록이다. 국민주권정부의 국무회의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 학습 자료로 오래 활용되길 바란다.]    국무회의에서 이런 정도의 대화는 오가야 한다는 뜻에서, 옛날얘기 하나 들려드리겠다. 때는 선조(宣祖)가 즉위한 지 8년째 되던 1575년 9월 어느 날, 감사원 격인 사헌부의 집의(종3품) 신점(申點)이 말했다. “북방이 텅 비어 오랑캐 기병이 쳐들어온다면 막아 낼 계책이 없으니 미리 장수를 선택하여 기르십시오.”  선조가 말했다. “조정에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으니 오랑캐 기병이 오거든 큰소리치는 사람을 시켜 막을 것이다.”  명종 때의 기득권 세력이 남아 있던 때, 아직 사림(士林)들이 경륜과 전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을 때, 대안이 부족한 그들의 주장에 다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젊은 선조는 잠깐 말실수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말하였다.  “주상께서 말씀하신 ‘큰소리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지목하신 것입니까? 큰소리만 치고 실속이 없는 자를 지목하시는 겁니까? 그런 사람을 쓰면 반드시 일을 그르칠 것인데, 어찌 그 사람을 시켜 적을 막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만일 고전(古典)을 좋아하고 성인(聖人)을 배우려는 사람을 큰소리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면 주상의 말씀이 극히 온당치 못합니다. 맹자가 양 혜왕과 제 선왕을 만나서도 오히려 요순 임금을 목표로 삼으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큰소리를 좋아하는 것입니까?”  율곡은 선조의 말을 두 방향에서 비판했다. 첫째, 북방 대처라는 실무에 적합하지 않은 견해라는 점. 둘째, 바람직한 이상을 추구하는 일과 큰소리를 혼동하고 있다는 점. 이렇게 정곡을 치고 들어오면 반론이 어렵다. 율곡은 거기에 우려를 더한다.  “임금의 말이 한번 나오면 사방으로 전파되어 옳지 못한 일이라면 천 리 밖에서도 왕명을 거역하는 법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학자를 큰소리나 치는 사람이라고 지목하여 북쪽 변방으로 보내려고 하시면, 훌륭한 인재들은 기운이 꺾일 것이고 못난 자는 자기에게 혹여 관직이 돌아올까 갓을 털며 기대할 것입니다. 임금의 발언이 능력 있는 인재를 좌절시키고 욕심만 채우려는 자를 기쁘게 해 준다면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조는 감히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이 뒤로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선조는 율곡의 충언과 비전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인재들이 모였다. 이항복, 유성룡, 이순신, 권율, 이원익 …. ‘선조 때의 넘치는 인물들’이란 의미의 ‘목릉성세(穆陵盛世, 목릉은 선조의 능 이름)’라는 말을 기록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추신 : 지역에 사는 시민으로서 지방정부의 회의도 국무회의처럼 중계하는 곳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지방정부나 지방의회의 예산논의 같은 의사결정은 의외로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지방분권, 지방시대를 기약하기 어렵다. ‘개발 이익 카르텔(Growth Coalition)’에게는 불편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주민이 누릴 삶의 질은 향상될 것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11-24 | hrights | 조회: 305 | 추천: 7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생로병사라는 게 사람한테만 있는 건 아니다. 국가 역시 태어나고 낡아서 병들고 없어지는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철밥통으로 생각하는 정부조직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획재정부에는 물가정책과라는 부서가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물가 관리는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국장급 부서였고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가진 실세 부서였다. 그러던 것이 경제규모가 커지고 물가관리에서 정부 역할이 축소되면서 지금은 과장급 부서로 줄어들었다. 경제개발을 주도하며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던 경제기획원은 아예 간판을 내린 뒤 재무부에 흡수통합됐다. 애초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부조직도 있겠고 축복 속에 태어나 기대를 모았지만, 속만 썩이는 조직도 없지 않다. 행정안전부 소속기관인 이북5도위원회를 보자.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이 조직은 차관급을 5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주요 업무로 남북평화시대 이북도민 역할 강화, 북한이탈주민 포용 확대, 향토문화 계승 발전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왜 평안남도 도지사나 함경북도 도지사를 임명해야 하는지 아무도 이해할 만한 설명을 하질 못한다. 만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조직에 이남5도위원회가 있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무개에게 서울시장 임명장을 수여했다’는 노동신문 기사라도 실렸다면 알뜰폰사업자 전광훈이 일요일마다 어떤 일로 하나님의 안식을 방해할까 생각만 해도… 광화문 근처에 가기 싫어진다. ‘왜 태어났니’ 소리를 듣는 조직으로는 역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국가인권위원회를 빼놓을 수 없겠다. 공수처는 그 난리를 벌인 끝에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서울교육감 조희연을 1번 타자로 기소하며 생뚱맞게 첫 단추를 끼우더니 그 뒤로는 출근은 제대로 하는지조차 궁금해지다가 지금은 퇴근하거나 말거나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조직이 돼 버렸다. 급기야 공수처장이 피의자가 되어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공수처장이라면 고위공직자 중에서도 꽤 중요한 자리인데 공수처는 그것마저 수사를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김대중 정부가 인권 증진과 민주시민교육, 더 나아가 정부의 인권정책을 감시하고 정책을 권고하라고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 위원장 안창호의 존재감만 홀로 드높다. “동성애는 자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거나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가 확산된다”고 말했고,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기 싫어 만들어낸 가설에 불과하니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남겼는데 하나같이 주옥같은 개소리라 옮기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창호 같은 사람을 위원장으로 앉힌 윤석열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권위는 출범 직후만 해도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공식논평을 내던 시절도 있었으나 더 오랜 세월 동안 그냥 관료조직이었다. 그나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홈페이지 갈무리    검찰청이 사라질 날을 받아놨다. 명색이 법무부 외청 공무원 주제에 자기가 정치인인 줄 아는 무척이나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권으로 무장한 조직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사실 검찰청 탄생 당시만 해도 기소독점주의를 갖는 게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경찰은 친일파 떨거지들 집합소 취급을 받았고 국민 대다수가 혐오하는 조직이었다. 무엇보다 법률 지식도 얕아서 검찰의 통제가 불가피했다. 최소한 그렇게 이해할 구석이 없는 게 아니다. 게다가 아주 오랫동안 검찰은 중앙정보부, 기무사령부 같은 여타 정보-수사 기관보다 힘이 약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검찰독주란 상상하기 힘들었다. 세월은 흘러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가 되고 국가정보원이 되면서 더는 국내수사에 관여하지 않게 됐다. 기무사령부 역시 수사와 관련해선 손을 뗀 지가 벌써 수십 년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검찰이 차지했다. 검찰이 독주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검찰개혁 논의가 커졌다. 노무현 정부는 수사권조정을 논의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검사들 직급만 왕창 올려줬고 ‘사법리스크’의 원조이자 DAS 주인님 이명박은 구린 게 많았는지 검찰을 오구오구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무소불위한 권력을 갖게 됐다. 검찰의 전성기는 역시 윤석열을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검찰총장까지 앉혀주고, 결국 윤석열이 대통령까지 당선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윤석열 본인이야 자신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믿는 것 같긴 하다.) 대통령에 법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인권위원장을 비롯해서 온갖 곳에 검사 출신이 포진했다. 그리고 그 오만함이 검찰 조직 자체의 몰락을 불렀다. 그렇다고 능력이 뛰어나냐 하면, 이재명을 3년 넘게 탈탈 털어가며 수사했는데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은 게 없다. 이재명 단골 세탁소까지 압수수색 하며 이재명 못 잡아넣으면 나라 망할 것처럼 법석을 떤 것 치곤 너무 허전한데, 이 정도로 무능력하면 그냥 문 닫아도 할 말 없을 것 같긴 하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서슬 퍼렇던 검사들의 목소리는 시들해졌고 저마다 살길 찾아서 떠나거나 입을 닫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미 대형 로펌에서 검사 출신들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 이것보다 더 강력한 신호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영감님들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생로병사에서 예외는 없다. 시작은 찌질하였으나 어느덧 덩치가 산처럼 커진 경찰은 검찰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5-11-12 | hrights | 조회: 183 | 추천: 13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원   해가 갈수록 가을이 짧아지면서 간절기 옷을 맞추어 입기가 쉽지 않다. 쇼핑할 때마다 가벼운 두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평소에 즐겨 입는 브랜드를 찾아 그중에서 옷을 구매하곤 한다. 시간은 없고 무엇이 최신 트렌드에 맞는 건지 도통 모를 때, 소비자들이 정보의 ‘지름길(information shortcut)’로 활용하는 것이 브랜드이다. 그 브랜드가 나의 예산과 취향에 맞기 때문이다. 최신 유행 트렌드를 점검하고, 옷의 소재 비율과 색의 채도 및 제품의 완성도 등을 비교하면서 선택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이러한 소비자의 행태는 정치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정치시장은 선거 경쟁에 뛰어든 정당 및 정당 후보자 중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선택하는 시장이다. 경쟁하는 정당 및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과 우리 사회를 위한 비전을 꼼꼼히 살펴보는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사실 굉장히 드물다. 정치시장의 소비자인 유권자는, 대체로 정치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고, 정치효능감도 그리 높지 않으며, 다양한 정책들을 비교·분석할 시간도 전문 지식도 없으므로, 정보의 지름길을 활용하여 투표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정보의 지름길로 활용하는 것이 ‘정당 브랜드(정당 상표)’이며, 그 정당 브랜드의 가치이다. 최근 마무리된 국정감사를 틈틈이 보면서, 우리나라의 두 거대정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정당 브랜드가 표상하는 것이 무엇일지, 그리고 그 정당 브랜드 가치는 어느 정도나 될지 생각하게 되었다. 국민의힘은 권위주의 계승정당 브랜드에서 급기야 내란정당 브랜드로 정체성이 굳어지는 것 같다. 우리 정당정치에 온건한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한데, 국민의힘은 지금 봐서는 그 길을 선택할 것 같지 않다. 하여 국민의힘은 여기서 논외로 하고, 민주당의 정당 브랜드에 더 초점을 두고 이야기해 보자. 나는 현재 민주당의 정당 브랜드가 표상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우리 역사와 사회에 대해 어떤 소명의식과 비전을 갖는 집단인지, 그리고 민주당이 펼치는 입법과 정책 어젠다를 아우르는 커다란 주제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민주당이 제시한 바도 없다. 코스피 5000이 국정 목표가 될 수 없듯이, 내란극복이 민주당 브랜드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민주당 정당 브랜드에 대해 민주당 의원 및 당원 중 몇 명이나 고민하고 논의하는지도 모르겠다. 국정감사 기간과 그 이전 동안 관찰된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는 실망스럽기에 그지없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정보 제기, 피감기관 윽박지르기, 듣기에도 괴로운 표현과 어조의 남발, 성실하지 않은 국감 준비 등등. 물론 이 점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도 해당한다. 내게 유독 인상적으로 남는 기억은, 피감기관 관련자들은 자료와 필기구를 앞에 두고 의원들의 질의를 기록하고, 그에 대한 답변 준비를 메모하는 모습이었던 반면에, 국회의원들은 본인 발언 순서가 돌아오면 예의 윽박지르기 한 판 하고, 다른 시간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었다. 학교에서 강의하다 보면 알게 된다. 나는 한국전쟁 시기 남한군에 의한 남한 주민 학살에 관한 내용을 비장한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수강생 100여 명 중에서 몇 명은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노트북에 설치해 놓은 카톡을 하면서 웃고 있다. 후자의 학생들은 노트북에 필기하는 척 카톡 채팅을 하는 것이지만, 그 강의 주제에 웃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의 해석이 더 마음이 편하다. 그러한 학생들은 두 유형 중의 하나이다. 내 수업에 관심이나 흥미가 없거나 내 수업을 못 따라오거나. 나 자신도 세미나에 참석해서 발표 내용이 재미없다고 느낄 때 제일 먼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 도중에, 국정감사 도중에, 본회의장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주식투자를 하거나, SNS 채팅하고 있는 의원들도 두 유형 중의 하나이다. 국회 회의에 관심이나 열정이 없거나, 국회 회의 안건을 못 따라가거나.   사진 출처   국회 제도개혁을 위한 나의 작은 제안이 있다(현재 국회의장 주도로 국회제도개혁 자문위원회가 활동중이다). 국회의원들이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할 때 핸드폰을 입구에 거치하고, 회의 후에 찾아가도록 하자. 즉, 핸드폰 없이 공식 회의 업무를 보도록 하자. 회의 안건을 미리 숙지하고, 그 내용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난 이후에 회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원들의 성실성 정도, 그리고 실력과 역량의 차이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4년을 다음 선거 당선을 위해 살고 있는 의원들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그래서 민주당 브랜드는 누가 신경 쓰나? 정당 브랜드는 정당 소속 의원과 관련자에게는 하나의 공공재이다. 정당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든 아니든 높아진 정당 브랜드 효과를 누리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비배제성). 한 명이 높아진 정당 브랜드 효과를 누렸다고 해서, 다른 한 명이 그만큼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비경합성). 따라서 민주당 의원들은 무임승차의 인센티브가 있다. 각자 다음 선거 공천 및 당선을 위해서는, 지금 정당조직 구성과 작동방식으로 봐서, 강성 지지층의 취향에 맞는 발언과 행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 브랜드?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주면 좋을 것이다. 171명의 의원이 비슷한 인센티브로 움직이면, 모두 무임승차하게 되고, 민주당 브랜드 형성은 진행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집단행동 문제이다. 이때 교과서적인 해결책은 당 지도부에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지도부도 민주당 브랜드와 관련하여 굉장히 열심히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이 사회를 위한 비전과 대안,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입법과 정책 어젠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 승리만을 위해 활동하는 선거기계가 될 때 “공허한 정당(hollow parties)”이라 지칭된다. 국민의힘은 논외로 치고, 민주당은 분명히 “공허한 정당”의 모습을 보인다. 공허한 정당일 때 외부의 이념적 설계자/기업가(ideological entrepreneurs)가 나타나서 그 공허한 정당의 이념과 비전을 제공한다. 최근 글로벌 현상인 민주주의 위기와 정당정치에 관한 논의에서 제시된 내용이다. 그런데 왠지 민주당의 현실과 놀랍도록 닮지 않았는가?     권혁용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11-03 | hrights | 조회: 213 | 추천: 8
김태중/ 인권연대 운영위원   파리의 9월, “Bloquons tout!” ― 전부 막아버리자! 9월, 휴가를 맞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파리로 향했다. 하룻밤을 보낸 프랑크푸르트는 날씨 탓인지, 아니면 경기 침체와 극우의 광풍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을씨년스러웠다.   다음날, 슬럼화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통해 파리행 기차에 오르기 전, 현지 교민에게서 들은 소식은 다소 불안했다. “9월 10일, 프랑스에 전국 파업이 예정돼 있어요. 지하철이나 기차, 버스뿐 아니라 박물관과 공공기관도 문을 닫을 수 있으니 꼭 확인하세요.”   파리의 첫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개관 한 시간 전 미리 도착했지만, 입구에서는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파업에 동참할지를 두고 논의 중이라고 했다.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결국 “파업으로 인해 오늘은 개관하지 않는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실망을 안고 숙소로 향하던 택시는 곧 거대한 시위대 속에 갇혔다. 생각보다 시위는 격렬했다. 투석전이 벌어지고, 최루탄 연기가 번지며, 경찰과 시위대가 도로를 차지했다가 밀려났다. 마레 지구로 향하던 좁은 왕복 2차선 도로는 완전히 멈춰 섰다. 한 시간 반 동안 택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구도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모두가 그저 기다렸다. 답답한 정적 속에서도 묘한 질서와 인내가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TV를 켜자, 프랑스 전역에서 터져 나온 파업 소식이 쏟아졌다. 세상은 참 많이 달라졌다. ChatGPT를 켜놓으니 완벽하진 않아도 실시간 번역과 해설이 이어졌다.   9월 10일 수요일, 파업은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번 파업의 이름은 “Bloquons tout!” ― 전부 막아버리자! 정부의 긴축 예산안, 공휴일 축소,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움직임이었다. 지하철과 기차, 버스가 멈추고 학교·병원·박물관까지 일제히 파업에 동참했다. 오르세 미술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CGT(프랑스 최대 노조)는 시민사회 중심의 이번 봉기를 공식 지지하며 거대한 행동에 힘을 실었다.   사진 출처 이 모든 배경에는 마크롱 정부의 친부자 정책이 있다. 마크롱은 부유세(ISF)를 폐지하고, 금융소득에 단일세율(flat tax)을 도입했으며, 출국세를 없앴다. 그 결과 자산가들은 세금을 피해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프랑스 상위 500명의 총자산은 2010년 2,000억 유로에서 2022년 1조 2,000억 유로로 여섯 배 증가했다. 프랑스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백만장자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GDP 대비 이들의 자산 비율은 20%에서 45%로 치솟았고, 반대로 670억 유로의 세수가 사라졌다. 공공부채는 GDP의 113%에 달했다.   정부는 빈 곳간을 메우기 위해 긴축을 택했다. 공무원 감축, 연금 인상 동결, 공휴일 축소, 교육·복지·문화 예산 삭감. 2029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줄이기 위한 413억 유로의 지출 삭감과 193억 유로의 증세가 예고됐다.   결국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7월부터 SNS에서 회자되었던 ‘전면 봉기’의 제안이 실제로 실행된 날이었다.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외쳤다.   “마크롱 퇴진! 부자에게 세금을!”   그날의 외침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불평등에 맞선 시민적 선언이었다. 프랑스가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유일한 해법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거대한 파업은 프랑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과도한 복지가 위기의 원인”이라며 프랑스 재정위기의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우리 국내 언론의 논조 속에서, 우리 2025년 대한민국 역시 같은 길목에 서 있다.   복지의 과잉이 아니라 불평등의 방치가 위기의 본질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그 사실을 거리에서,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파리의 회색 하늘 아래, 나는 멈춰 선 도시 한가운데서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았다. 김태중 위원은 현재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5-10-28 | hrights | 조회: 214 | 추천: 7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1970~80년대 경찰관이나 정보 기구 요원들은 시민이나 학생들을 고문, 가혹행위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판검사들과 함께 간첩으로 조작하였다. 최근 20여 년 사이 의문사위원회나 진실화해위원회 등 진실 규명 기구의 조사 결과에 따라 피해자와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받았다. 국가가 배상금을 지급한 후 취해야 할 다음 조치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배상법이 예정한 절차가 거의 진행되지 않거나 법원에 의해 사실상 봉쇄되는 실정이다. 나아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로부터 국가가 줄소송을 당하고 있는데 온갖 범죄와 착취를 자행하고 정부 지원금 등으로 부를 축적한 박인근 일가에 대해서도 구상권의 행사가 필요하지 않은가? 5.18 광주 학살 피해자들에게 제공된 보상금과 관련해서도 그 학살 주범들의 재산에 대해서도 구상권이 행사되어야 하지 않은가? 우선 구상권 행사에 관한 상징적인 판례를 살펴보자. 1965년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이 선임하사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에서, 당시 중대장은 사건 발설을 금지하고 사망 원인(死因)을 단순히 심장마비로 기재하도록 지시했으며 가해자는 처벌을 면하게 되었다. 2009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진실을 밝혀내자 유족들은 소송을 통해 국가로부터 2억 원 상당의 배상금을 수령하였다. 이후 국가는 가해 군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려 했으나, 법원은 소멸시효가 경과한 사건에서 가해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은폐를 주도하지 않았다면 국가가 신의칙상 그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6. 6. 10. 선고 2015다217843). 근무 중 말다툼 과정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를 군 부대원들과 지휘관들이 조작한 때도 법원은 가해 군인에게 은폐의 적극적 주도가 없다는 이유로 구상권 행사를 부정하였으며, 2025년 8월 28일 대법원은 유사한 논리로 고문기술자 고병천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좌절시켰다. 법원은 공무원의 안정적인 직무 집행을 보장하기 위해 구상권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는 정책적 사고를 견지하였다. 그러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서 이러한 사고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첫째, 공권력에 의한 학살, 고문, 살해 및 사인 조작과 같은 중대한 인권범죄나 인도에 반한 범죄는 보장받아야 할 직무가 아니라 명백한 금지사항이다. 둘째, 구체적인 실행자든 적극적인 주도자든 모두 공동 범죄자이므로 '적극적 주도'와 같은 용어로 면책지대를 설정할 수 없다. 더구나 적극적 주도자들에게 구상권을 만족시킨 경우도 아닌데, 이러한 면책 논리를 펼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 법원은 정책적 고려라는 명분으로 응보적 정의의 최소한마저 부인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집단적 은폐 행위와 조직범죄(organized crime)에 상을 줌으로써 오히려 범죄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 출처    학살,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국가배상이나 보상이 시행된 경우, 실질적 책임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보장하는 법률, 즉 '구상권행사보장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법률을 제정할 때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구상권 행사 대상의 특수성 정립 구상권 행사 대상으로서 일반 불법행위와는 차별화된 특수한 불법행위를 정립해야 한다. 예컨대, 현행 과거사법 및 진실화해법이 규정하는 학살이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은 본질적으로 인권범죄이므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당연히 추정된다. 또한 공권력의 비호나 묵인 아래 중대한 인권침해를 자행했거나 이를 배경으로 부를 축적한 박인근과 같은 사인 역시 구상권 행사 대상자가 되어야 한다. 구상권의 상대방은 공직사회의 말단 실행자뿐만 아니라 기획자, 지시자, 감독자, 비호자(무죄 방면자)까지 포괄해야 한다. 둘째, 보상금과 배상금의 동일 취급 재판에 의한 국가배상금과 보상 법률에 따른 보상금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급부의 원인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한 것이라면 명칭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게 구상권의 행사대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5.18 보상법상 보상금도 5.18내란에 관여한 자들 모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셋째, 구상 범위의 공정한 비율 요구 구상 범위에서는 공정한 비율이 요구된다. 과거 인권침해 행위가 자행되던 국면에서 전체 사회가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점에서, 국가 폭력에 대한 사회 대중의 책임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의 대리인인 국가는 소위 인권 범죄자에게 그 책임을 적절하게 한정하는 것이 정의롭다. 넷째, 소멸시효 도과 시 구상권의 자동 발생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불법행위일지라도 정의와 공익의 요청에 따라 손해배상이나 보상을 시행해야 할 때는 구상권이 자동으로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안일지라도 정의와 공익의 요청으로 인해 친일재산귀속법(2005년)이 제정된 선례가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진정소급입법이더라도 공익상 필요성이 큰 경우에는 정당화된다고 판결하였다. 친일파의 재산도 환수되었듯이, 국가범죄자들의 재산 역시 환수되어야 한다. 과거청산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재발 방지의 보장이다. 경험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재발 방지 수단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응보적 정의로서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과거청산 과정에서 공소시효를 극복하고 중대한 인권범죄자를 처벌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그런데 민사적 책임마저 추궁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국 사회에 무책임과 부인, 그리고 공직자들의 조직적 은폐를 만연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제 구상권행사보장법을 통해서라도 국가범죄자들의 남아 있는 재산과 이를 상속받은 자들에 대한 집요한 추적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5-10-21 | hrights | 조회: 251 | 추천: 11
정범구/ 장발장은행장   1980년대 독일 유학 시절, 알고 지내던 팔레스타인 친구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령군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자신들만의 독립 국가를 수립하려고 염원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국내적으로는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철권통치 아래 남북관계도 늘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대립상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친구와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가 그랬다. “우리는 나라가 한 개도 없어 그 나라를 세우려고 이 고생인데, 너희는 어쨌든 나라가 두 개씩이나 있잖아!” 당시에는 그걸 농담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요새는 다시 그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게 과연 농담만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9월 22일 자 조선 중앙통신은 20~21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했던 김정은의 연설 내용을 전하고 있다. 올해로 조선노동당 창당 80주년, 해방 80주년을 맞아 할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대남, 대미 문제에 할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북은 얼마 전부터 남쪽을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호칭으로 부르면서 한반도에서의 두 개 국가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번 김정은 연설에서는 이것을 보다 확실히 못 박고 있다. “이 기회에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우리와 대한민국은 지난 몇십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두 개 국가로 존재해 왔습니다. 조선반도에 지구상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 전쟁중인 두 교전국이 철저하게 대치해 온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유엔에 각각 독립적으로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완전히 두 개 국가로 고착되게 되었”고 남북은 “철저히 이질화되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의 통일이란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에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정은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습니까?” 흡수 통일에 대한 저들의 뿌리 깊은 불안감과 의심은 연설문 곳곳에서 나타난다. “올해에 미국과 한국에 새로 들어선 정권들이 우리와의 대화에 열려있다, 관계 개선을 추구한다는 추파를 던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힘을 약화하고, 우리 제도를 무너뜨리려는 그들의 본색은 절대로 달라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흔히 한미, 한미일이라고 호칭하는 데 반해 김정은 연설에서는 일관되게 미한, 미일한이라고 하는 것도 눈에 띈다. 어쨌든 김정은의 이 연설을 보면서 불현듯 몇십 년 전 팔레스타인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한 민족에게 나라가 두 개씩이나 있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 유례 없이 긴 연휴에 개천절도 묻혀 지나갔지만 10월 3일은 독일 국경일이기도 했다. 통일기념일인 것이다. 올해로 35주년을 맞는 독일 통일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통일 당시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는 30대 중반의 시민이 되어 과거 분단 시대는 옛날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다. 독일 통일로 동독과 서독, 두 개의 나라가 합쳐 하나로 되었지만, 이외에도 독일 민족이 사는 나라는 더 있다. 오스트리아가 있고, 스위스에서는 독일어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함께 공용어이다. 취리히와 베른 등 독일어권 스위스 지역에 가면 모든 도로 표지판이나 공용어는 독일어이다.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이 역사상 최초의 통일을 이룬 1871년, 독일제국에 통합된 나라들 수는 25개였다. 바이에른, 작센, 프로이센 등의 왕국, 바덴, 헤센 등의 대공국, 함부르크, 브레멘 등 자유시들이 합쳐져 독일제국(Deutsches Reich)을 건설한 것이다. 독일어권에서는 1990년 동서독 통일을 1871년 통일과 비교하여 재통일(Wiedervereinigung)이라고 한다. 독일 역사를 보면 국가란 것은 매우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조건 아래 생겨난 국가들이 왕국, 제후국, 자유시, 공화국 등의 형태로 병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동서독 통일 과정의 분수령이 되었던 것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이었다. 동방정책의 핵심 철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데 있다. 새로운 동서독 관계는 독일 동쪽에 동독이라는 실체적 국가가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정책 기조 아래 먼저 동독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고 동독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1972년 12월 21일 동서독 간 관계를 규정한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인 1973년 9월 양독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동서독은 서로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내정불간섭 원칙을 따랐다. 상호 간에 대표부 형식의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국제무대에서 어느 한 나라가 독일을 대표한다는 ‘단독 대표권’을 포기하였다. 다만 서독 연방법원의 판결을 통해 동서독 간 법적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임을 판시하였다. 잠정적 특수관계의 사례로는 민족 내부거래(동서독 간 물자 교류에 대한 무관세 절차)와 상주대표부(대사관이 아닌) 설치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서 남북한의 법적 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것은 동서독 간 협상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부른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남북이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1mm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 간에는 ‘7.4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 무수히 많은 선언과 합의가 있었지만, 오늘날 현실은 도로 제자리이다. 통일의 다른 상대방인 북한은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통일‘은 안 하겠다고 한다. 이제 유엔에도 각각 가입한, 독립한 별개의 국가들이니 각자 알아서 잘살자는 이야기이다. 통일에는 어떤 정답이나 정해진 방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 통일도 ‘기획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정말 행운처럼 찾아온 것이었다. 동서독 간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 공존을 이어 오다가 소련 붕괴, 동구권 해체 등의 국제 정세 변화에 힘입어,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 등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비스마르크의 표현처럼 “스쳐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았던 것이다. “정치는 바로 가능성의 예술(Die Politik ist die Kunst des Möglichen)”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그들은 동서독 접촉 과정에서 ‘통일’을 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를 향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평화공존’ 원칙과 그를 위한 교류, 협력의 확대가 그들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밤낮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놓아 부르기보다는 교류, 협력이라는 구체적 실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통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국가라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산물이고, 가변적이다. 1948년 이후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대한제국, 또는 조선왕조의 신민이었지 않은가? 더 올라가면 우리 조상들은 누구는 신라, 누구는 백제, 그리고 또 누군가는 고구려 백성이었을 것이다. 또 이와 별개로 오늘날 전 세계 180여 개 나라에는 800만 가까운 코리안 디아스포라, 재외교포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들이 가진 국적, 여권의 색깔은 무척 다양하다. 통일 문제와 별개로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오늘의 독일이 탄생하기 전 독일 땅에는 25개 ‘나라’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독일 통일을 앞두고 있던 때 브란트가 한 말이 우리에게 위안이 될까? “같은 뿌리에 속한 것은 이제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다.”
2025-10-14 | hrights | 조회: 327 | 추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