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소개 > 인권연대란?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연변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우 자랑스럽게도, 나는 시사IN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정기구독하고 있다. 시사IN을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책을 읽듯이 정독한다. 그동안 내가 읽은 시사IN이 최소 5만 쪽은 넘을 것이다. 그런 시사IN이 이번 주엔 처음으로 나를 실망시켰다. 난민 문제를 다룬 최신호 내용은 아주 훌륭했다. 인포그래픽도 정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포그래픽에 실린 세계지도가 문제였다. 사할린을 일본 영토로 표시해 놨다. 북방 4개섬도 아니고 제주도보다 무려 30배 가량 큰 섬을 통째로 일본에 넘겨줬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더 넓게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지도가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킨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는 딱 우리 인식만한 지도를 갖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지도에 집착한다. 신문이나 책에 실린 지도에서 조그만 착오라도 발견하면 무척이나 불편하다. 성의 없는 영토표기는 특히나 화가 난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드는 ‘이코노미 인사이트’라는 경제 월간지가 있다. 이 잡지를 5년 넘게 정기 구독하다가 끊었다. 이유는 단 하나. 상습적으로 엉터리 지도를 내놓는데 질렸기 때문이다. 특히 영토표기가 압권이다. 타이완 섬을 중국에 병합하는 대신 하이난 섬을 중국에서 떼어놓는 건 약과라고 할 수 있다. 하이난을 홍콩으로 둔갑시키기도 하고 사할린을 일본에 붙이기도 한다. 심지어 알레스카를 미국에서 분리독립시키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브렉시트를 몇 년 앞서 예견했는지 북아일랜드를 영국 영토로 표기하지 않는 선견지명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칠리아와 사르데냐가 주인 없는 땅이 되는 건 놀랍지도 않다.  사실 지도 문제만 아니면 ‘이코노미 인사이트’를 지금도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통해 ‘상냥하게’ 알려줬지만 달라지는게 없었다. 페이스북에 ‘준엄하게’ 비판도 해봤지만 감감 무소식. 결국 구독을 취소하는 것으로 내 소심한 지도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최근에는 지정학을 다룬 책을 읽다 기겁을 하기도 했다. 명색이 국제정치를 다룬 책이고 심지어 제목도 ‘지정학’인데 알래스카를 미국에서 분리 독립시켰다. 북극해에 있는 러시아와 캐나다 영토를 모조리 빼먹은 것까지 감안하면 저자는 국가체제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가 아닐까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사할린을 일본에 넘겨준 걸 보니 서양을 싫어하는 것일까 싶다가도 하이난 섬을 베트남 영토로 표시해놓은 걸 보면 저자의 정치성향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시시때때로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도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언론계 선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도 오따꾸’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외국 정부 홈페이지를 뒤지며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자는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도 있는 마당에 “사할린은 일본 땅이 아니라 러시아 땅입니다”라고 하는게 크게 지나쳐 보이진 않는다. 사진 출처 - MBC  일본 언론에 실린 사진이 제주도를 중국 영토로 표기했다거나, 미국 언론에서 울릉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사용했을때 우리나라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역지사지야말로 인권의 기본원칙이라는데 동의한다면,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외국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는게 흔하게 됐다는 걸 고려한다면, 멀쩡한 나라를 분단시키거나 분리 독립시키는 행태는 자중해주길 바란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06-13 | hrights | 조회: 180 | 추천: 4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체성(identity)은 일정 기간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고 여겨지는 자신만의 지속적이고 고유한 성질이다. 나를 나 되게 해준다고 여겨지는 어떤 정신적 특성이다. 정체성은 본래 타자와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형성되는 가변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규정된 이후에는 변화 보다는 유지와 강화를 위한 투자를 더 한다.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시키는 배후의 하나가 종교다. 브루스 링컨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종교에는 내적 신앙과 관련한 담론, 의례와 관련한 실천 행위, 담론과 행위에 공감하는 이들의 공동체, 공동체를 제어하는 제도의 네 영역이 있다. 이들 네 영역이 중층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각 영역을 변화 또는 강화시켜나간다.  이 때 중요한 영역은 ‘내적 신앙과 관련한 담론’이다. 종교학적으로 ‘신앙’은 현실 너머 혹은 근원을 상상하며 추구할 줄 아는 인간의 내적 능력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 내적 능력이 언어와 같은 외적 표현과 단순 동일시되면서, 내적 역동성은 사라지고 경직된 언어만 남는 경우가 많다. 언어화된 교리나 도그마들이 내적 신앙의 모든 것인 양 획일화하면서 다른 표현들에 대해서는 배타하는 흐름도 형성된다.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표현할 줄 아는 인간의 내적 능력은 쇠퇴하고, 외적 형식이 지배하는 일방적 사태가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곤 한다. 내적 신앙이 폭력적으로 외화하지 않도록 하는 종교 교육과 훈련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앙의 표현 방식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인종이나 민족차별, 계급차별, 성차별을 당연시하던 시절에 나온 혁명적인 선언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서, 인류는 본래 하나이니 민족, 성, 계급에 차별을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모두 하나’라는 근본적인 사실이 이 문장의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받는 사람을 도리어 포용하면서 사회적 죄인에게서 무죄를 선언했던 예수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본 뒤 자신의 삶과 세계관도 예수처럼 변화되었을 때, 그 때가 내적 신앙의 올바른 기독교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모두가 하나’라는 원천적 사실, 따라서 계급, 인종, 성별에 따른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근본적 실천은 외면하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예수라는 말을 모르거나 쓰지 않는 사람은 자기들과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차별한다. 자신만의 경계를 세우고, 자신과 종교적 표현 방식이 다른 사람은 자기들이 세운 경계 밖으로 몰아낸다.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정당화하면서 자신의 얄팍한 종교적 정체성도 강화시켜나간다. ‘모두 하나’라는 혁명적 선언은 사라지고,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동력으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 및 강화시켜 나가는 현실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뿐이던가. ‘하나님은 한 분’이라면서 사실상 그 하나님을 다신교적 최고신처럼 만들어놓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불교의 부처님이나 이슬람의 알라보다 우월하다는 정서에 휘둘린다. ‘하나’라는 말의 속뜻을 새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이 하나’라는 말은 사실상 ‘신이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신은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즉 무소부재하다는 뜻이다. 벽돌 건물로 만든 예배당 밖에는 신이 없다는 말인가. 불교는 신이 없는 허무한 공간이라는 말인가. 내 안에만 신이 있고, 네 안에는 없다는 말인가. 내적 신앙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합리적이고 건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미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부처님오신날 한 사찰의 봉축법요식에 초청받아 참석하고는 법회 중 수도 없이 했어야 했을 합장 한 번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결국 자유한국당 내부 방송에 출연해 “미숙하고 잘 몰라서 그랬다”며 불교계에 사과했다. “불교 등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이에 따른 행동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표’를 의식해서 그랬던 뭐든, 그저 버티던 지난 며칠간의 태도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과란 무엇이던가. 사과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빈 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거나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 정도로 변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황 대표가 정말 자신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생각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계를 정말 존중할 줄 아는 태도가 갖추어져 있는지 그동안 황 대표가 보여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황 대표의 종교관, 신앙관이 성숙해질 때 확보된다. 그의 신앙관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오늘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국인도 이슬람계 외국인 노동자도,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따로 없이, 모두가 귀하다는 사실을 마음으로부터 깨닫고, 실제로 차별 없이,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대할 줄 알 때 입증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변화가 과연 가능할지는 물론 대단히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가 야당 원외 대표에서 그 다음 단계로 나가고 싶으면, 이제부터라도 정말 자신과 다른 이, 특히 다른 종교인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존중할 줄 아는 훈련을 해야 한다. 변절한 것 아니냐며 욕먹을 각오로 자신의 경직된 종교적 정체성을 바꿔나가야 한다. 황 대표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한 채 개인의 정치적 야망만을 따른다면, 기독교계는 물론 한국 사회 모두에 불행한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오랫동안 신학과 불교학을 공부하고 이제는 평화학의 길에 들어선 이의 진심어린 조언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민중의 소리>에도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9-06-05 | hrights | 조회: 238 | 추천: 1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화꽃 좋은데 뭐 하냐고 남쪽에서 전화가 왔더랬다. 내가 사는 동네의 언덕바리에 잔설이 녹지 않았을 때였다. 꼭 한번 다녀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냥 말만 그렇게 전했었다. 벚꽃 천지라고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 벚꽃은 우리 동네에도 많으니 이만하면 여기도 봐 줄만은 하다고 답을 드렸었다. 그 뒤로는 꽃이 좋다고 연락이 온 적은 없다. 그래도 꽃은 알아서 다 피었다. 진달래 개나리가 피더니 간간히 라일락 향기가 풍기고 조팝 이팝 뿌리다가 이제는 아카시아와 장미다. 누구의 감시나 통제를 받았다거나 혹은 누구의 사주를 받은 흔적은 전혀 없다. 다 알아서 피고 알아서 진다.  대개 뿌리가 있는 것들은 다 그렇게 알아서 산다. 꽃필 철이 되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제 자랑 실컷 해놓고는 때가 되면 조용히 사라진다. 누가 더 이쁘게 봐준다고 기를 쓰고 오래 핀 적도 없고 누구의 손가락질에 실망해서 먼저 진적도 없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산다. 누구도 그런 존재를 속칭 “독꼬다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의 찬사가 계절마다 쏟아진다.  주지하다시피 노래의 생명력은 대중들의 입을 타면서 유지된다. 그 귀한 자양분을 확보하는 통로를 모르는 가수는 없다. 그러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시대적 사고를 노래로 풀어 내는데만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대중이라는 막연한 존재에 노래의 생존을 맡길 생각은 하지 않고, 대중의 기호를 고려할 용량을 확대시킬 의사도 없이 그저 아픈 일만 생기면 달려가 노래를 한다. 하찮은 위로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부르는 그들의 노래는 험한 일을 당해 생사의 귀로에 선 사람들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 가끔은 꽃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찾는 노래의 길은 일반적인 대중문화가 닦아놓은 길과는 달라서 들려오는 노래나 듣는 “아무나” 대중들이 알 길은 없다. 적어도 이들의 노래를 알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품을 들여야 한다. 아무데서나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회에 나가 서툰 구호라도 함께 외쳐야 할 때도 있지만 시민단체의 행사에 얼굴을 디밀거나 아니면 아주 작은 소규모 공연에 후원금이라도 챙겨가야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런 노래를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 할 때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히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시장(市場)을 형성하지도 못한 채 시장의 주변이나 헛도는 부류들로 치부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노래는 시장으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시장을 소외시킨 것이다. 지금은 존재조차 희미한 소위 “민중가요”에 관한 이야기다.  한때 민중가요는 부당한 정치권력과 탐욕스런 자본권력에 대항하는 몇 안 되는 문화적 수단이었다. 민중가요의 전성기는 스멀스멀 어둠의 기운이 사람들의 오감을 마비시키고 지배자의 손끝 하나에 수천수만의 밥줄이 오락가락 했던 반민주적 작태의 시기였다. 물론 시대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거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던 “아무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다. 어진 의사가 아픈 환자를 치유하며 아파하듯이. 정의로운 검찰이나 경찰이 불의한 범죄자를 잡아들이며 분노하듯이 –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는 전제로 - 민중가요 속에는 불의한 역사와 아픈 시대를 살았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국정농단에 생떼 같은 세월호의 안타까운 목숨까지, 참담했던 그 시절의 반민주적 행태가 쌓이고 쌓여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숱한 분노가 있었다. 그때의 촛불은 화려했다.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면 200만 명이 넘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 그 흔한 전깃불 하나 없어도 200만개의 촛불만 있으면 어떤 어둠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때 얻었다. 촛불혁명이라 불리는 그때의 현장에도 민중가요가 있었다. 광화문 앞에 대형무대가 세워졌고 매주 격정적인 공연이 열렸다. 다만 그 곳에서 민중가요가 울려 퍼진 적은 별로 없었다. 그 무대는 이름만 대면 “아무나” 알 수 있는 가수들과 그 “아무나” 아는 노래를 좋아했던 대중들의 특별한 교감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청계천이나 세월호 농성장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 등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민중가요가 불려 졌고 촛불과 함께 분노하고 환호하고 위로 받았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때 등잔불이 귀했던 시기가 있었다. 전기불이 들어오면서부터 등잔은 꺼졌다. 등잔의 기름 냄새와 하롱하롱 흔들리던 불빛은 이제 추억의 한 자락으로도 자리하지 못한 채 속담에서나 가끔 언급될 만큼 골동품이 되었다. 촛불이 꺼진지도 2년이 지났다. 어두운 시대 촛불이었다고 자부했던 그 노래들도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가끔 들린다. 필요할 때 찾다가 필요 없을 때 치워버리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터이다. 그러나 민중가요가 시장으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소외시킨 주체였다고 믿는 것처럼 소위 “아무나” 알 수 없는 민중가요는 삶의 고통을 안고 사는 “아무나”가 아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생산될 것이다. 흔한 대중들이 읊어대는 “독꼬다이” 인생 이라는 비아냥거림도 훈장으로 여기는 민중가수들도 여전히 노래를 부를 것이다.  동백꽃이 언제 피었었던가 기억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동백이 다시 꽃피울 날을 기약하는 것처럼, 알아서 피고 알아서 지고 또 다시 꽃피우는 뿌리 있는 생물의 일생처럼 소위 “아무나” 대중들과 무관하게 철저한 자신만의 대지 위에 뿌리 내릴 것이다. 적어도 양복 손에 들고 흔들면서 흔들면 흔들리는 존재라는 하찮은 인생의 넋두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9-05-30 | hrights | 조회: 325 | 추천: 15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모처럼 감동적인 콘서트를 관람했다. 정태춘·박은옥 데뷔 40주년을 기념한 정·박 부부의 콘서트였다. 정태춘, 박은옥 두 사람의 첫 솔로 앨범은 1978년에 처음 나왔지만 두 사람이 신인 가수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건 1979년이다. 두 사람의 4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는 이들의 음악을 아끼는 주변의 친구와 선후배들에 의해 추진되어 올 한 해 동안 전국 공연은 물론, 전시회, 학술 행사까지 다채롭게 진행된다. 두 사람이 무대에서 콘서트를 벌이는 건 거의 15년만의 일이다. 모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의 콘서트는 바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많은 팬들의 열정적인 호응을 얻었다.  70년대 말에 등장한 정태춘의 음악은 그보다 몇 년 전 유신체제의 권력에 의해 강제 퇴출되었던 당대의 청년문화를 복원하면서 이른바 한국적 포크의 세계를 새롭게 심화시킨 독보적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데뷔 이후 개성적인 음악세계를 가진 대중 가수로서 독자적인 입지를 가지며 활동하던 정태춘은 80년대 후반부터 당대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비판적으로 발언하는 노래운동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많은 곡들을 발표했고 여러 사회단체, 문화운동패들과 연대활동을 벌였다. 무엇보다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은 음반을 연이어 발표하며 검열 당국에 정면 도전했고 이를 통해 마침내 대중음악에 대한 사전 검열 철폐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의 비판적 시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에도 약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의 흐름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좀 더 실질적인 사회변화로 연결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환멸 속에 떠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그 역시 적지 않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온 몸을 던져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평택 미군기지 반대투쟁에서 좌절을 겪은 후 그는 오래 동안 칩거와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사진 출처 - 구글  그 사이 한국의 대중음악 판은 완전히 바뀌었다. K-Pop으로 통칭되는 아이돌 음악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른바 한류의 열풍을 일으키는 동안, 포크나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점점 더 주변화되어 갔다. 음악의 유통 방식도 완전히 바뀌어 이제 피지컬 음반은 일부 아이돌 음악을 제외하곤 사실상 시장가치를 상실했고, 대신 온라인을 통한 음원 유통과 스트리밍 방식이 대세가 되었다. 이 와중에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일부 젊은 세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대가 자신을 대변해 줄 음악을 갖지 못한 채 대중음악 시장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40주년 프로젝트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 호응을 얻은 것은 두 사람의 노래를 기다린 팬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목말랐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목마름은 단지 정태춘·박은옥의 열성 팬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장의 주류적 흐름에서 소외된 채 노래방에서 옛날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으로 음악적 욕구를 달래는 많은 사람, 세대들이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창구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40주년 프로젝트가 단지 1회적인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의 음악적 실천이 단지 오랜 팬들의 향수에 기대어 과거를 추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국면 속에서 새로운 음악적 발언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단지 정태춘·박은옥 만이 아니라 시장에서 소외된 채 침묵하고 있는 많은 과거의 아티스트들이 새롭게 음악적 창조의 에너지를 불태우게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지금 시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세대, 음악 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했던 세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시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문화의 주체로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창조성은 다양성에서 나오며 다양성은 시장의 주변에 내 몰린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존재를 표현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9-05-22 | hrights | 조회: 164 | 추천: 4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유시민 작가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이쁘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다는 말을 들었다. 진보적 민주 인사가 가당치도 않은 행태를 보이는 제1야당의 대표를 그렇게 표현했다는 게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브로맨스’인가 싶어서 발언의 배경을 찾아봤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11일 오후 대전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의 토크콘서트에서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은 사회자 노정렬씨가 “자유한국당 해산 청와대 국민청원에 190만 명 이상이 참여하자 한국당은 그 배후에 북한이 있다며 색깔론을 제기한다. 국민들은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고 질문하자, 유시민 이사장은 “(그 사람들은) 북한 없으면 어떻게 살아요? 북한 없으면 뭐 먹고 살아요?”라고 되물으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노 대통령이 지금 살아계셔서 요즘 제1야당 당대표와 원내대표, 특히 당대표가 하는 걸 보면 ‘어허~ 20년 전 공안박물관이 살아났네’ 하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며 “그 분(황교안 대표)은 여전히 공안검사다. 정치하시는 분이 어떤 정당을 해산시킨 것을 자신의 최고 큰 국무총리로서의 업적,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업적으로 보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리고는 “저는 그래서 그 분이 정말 이뻐 보이더라. 아우 정말 잘 해 주신다”라며 “그 분은 최소한 어떤 전직 대통령과 달리 거짓말을 하는 분은 아니다. 정직하게 자기가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무서워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할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그것을 다 해 줄 수 있는 것 인양 사기 쳐서 권력을 빼앗아 가서 나쁜 짓 하는 사람”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의 제1야당 대표는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니, 유시민 작가가 황교안 대표를 왜 “이쁘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는지 알겠다. 그것은, 황교안 대표가 아직도 공안검사 시절의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좌파타령’이나 늘어놓으며 ‘장외투쟁’을 하기 때문에, 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지난 일차원적 언행으로 외려 정부여당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발언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사랑스럽다’ 표현은 ‘우스꽝스럽다’로 바꾸고 싶다. 내가 보기에도 황교안 대표는 여전히 공안검사의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보는 게 옳다고 믿고, 그런 냉전 반공주의적 자기생각만큼은 거리낌 없이 토로한다. 황 대표가 며칠 전 부산의 한 아파트 부녀회에서 했다는 발언만 봐도 그렇다. 그는 “지금 좌파는 돈 벌어본 일 없는 사람들이다. 임종석씨(전 대통령비서실장)가 무슨 돈 벌어본 사람인가? 제가 그 주임검사였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즉자적이고도 시대착오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1980년대 공안검사로서의 자기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런 당당함에는 고시를 패스해서 검사가 된 사람이라면 뉘라도 느낄만한 일반적 자부심도 들어 있고, 공안검사로서의 성공적 경력 덕분에 박근혜정부에서 마침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다는 개인적 성취감도 담겨 있겠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러나 공안검사 경력이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일까? 5월 13일자 <경향신문>의 ‘김민아칼럼’에 따르면, “1980년대 공안검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경찰이나 안기부의 고문을 묵인하거나 은폐”했다. 또한 지난해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찰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 조작할 기회를 줬다”고 발표했다.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감추려는 의도에서 강박적으로 반공을 내걸었던-‘관제(官製) 빨갱이 사건’을 조작하기도 했던 정권에서 공안검사로서 성실하고 유능했다는 걸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야당 대표가 된 다음의 언행만 놓고 보면, 황교안 대표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권이 아니라 억압하는 정권에서 공안검사로서 출세했다는 사실의 시대적 ․ 역사적 의미를 고심했다거나 성찰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소크라테스는 성찰적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안검사로서 성공적 경력이 안겨준 공리주의적 효용에는 민감하지만 그 시절 공안검사로서 유능함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둔감할 뿐만 아니라, 그는 2019년 ‘지금 여기’의 현실도 ‘우파 아니면 좌파’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분법으로 바라본다. 좌파/우파에 대한 학술적 정의나 역사적 의미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들이 자신의 반민족적 전비(前非)를 감추기 위해 민족주의 애국세력까지도 빨갱이로 매도하듯이, 자유한국당의 정파적 이익에 어긋나는 일체의 언행을 습관적-맹목적으로 ‘좌파’ 혹은 ‘좌파독재’라고 규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의 정체성을 ‘공안 근본주의자’ 또는 ‘우파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아예 읽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시쳇말을 그냥 우스갯소리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는 좀 아깝다. 거기에는 일자무식인 사람보다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세속적 슬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실세계라는 책은 너무 크고 복잡하고 가변적이어서 그것의 구조와 의미를 선명하게 혹은 단일하게 언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세계를 좌파적이든 우파적이든 하나의 시각으로 선명하게 조감할 수 있다고 떠드는 사람은 비현실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 변한 줄 모르고, 기사도 책을 읽고 거기에 쓰인 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거기서 멀어져가는 시대착오적인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가 될 수밖에 없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9-05-15 | hrights | 조회: 246 | 추천: 9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는 남과 북의 온 겨레는 과거 일촉즉발의 북미 군사적 대결로 회귀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만 하다. 수구냉전세력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좋아라 발호하고 있고, 한국정부의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점점 사그러들고 있다. 한반도의 지속적, 항구적 평화를 지향하는 남북미 당국 간 협상이 멈춰버린 현재의 교착상태를 뚫어줄 해법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만히 구경만 할 것인가?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관전자가 아니지 않은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당사자로서 우리는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직접 찾아나서야 한다.  4.27 판문점선언, 6.12 싱가포르공동성명 및 9.19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이 난관에 놓인 이유가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한반도에서 외세의 동족대결정책이 영원히 유지되며 현재의 북미 간 교착상태가 풀리지 않기를 학수고대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4.27 판문점선언, 6.12 싱가포르공동성명 및 9.19 평양공동선언에 반대하여 그 이행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장본인들이다. 이들 수구냉전세력은 외세추종의 사대주의에 젖어있다. 동족대결의 이면에 도사리는 그들의 정체성이다.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의 젖줄이 바로 외세의존정책이다. 그들은 대북적대정책의 입안자, 집행자인 상전에게 있어 쉽게 버릴 수 없는 더할 나위 없이 구미에 맞는 소모품이다. 그들이 응원하고 환호하는 외세의 대북적대정책을 없애야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 북미간의 새로운 관계를 실현하려는 남북미 정상의 합의들이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다.  외세의 대북적대정책은 한미군사훈련, 대북제재압박, 국가보안법으로써 분단냉전체제를 유지하며 민족의 화합과 단합을 가로막고, 민족자주정신을 병들게 하며, 외세의존의 사대주의를 조장하며, 외세추종의 수구냉전세력에 의한 종북몰이로 한국 민중을 탄압하고 세뇌시켜 왔다.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패권적 영향력이 바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는 최고의 장애물이다. 그들이 우리 민족의 생존과 발전의 장애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미 간 오랜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한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이행되어야 한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인 지난 4월 27일 오후 경기 파주 임진각 민통선에서 열린 비무장지대(DMZ) 평화손잡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북쪽을 바라보며 줄지어 인간띠를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남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오늘, 수구냉전세력의 환호성에 맞서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민족자주정신으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나가는 당사자 정신을 고양시켜 나가야 한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외세와의 어떠한 군사훈련도 할 필요가 없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를 위해 외세의 승인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당사자로서 남과 북은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남북교류를 가로막는 대북제재는 해제해야 마땅하다. 외세의 대북적대정책이 유지되고 이에 한국정부가 동조하는 한 남북 간 교류와 협력, 남북관계의 개선은 요원하다.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성립 불가이므로 한국 민중은 국가보안법의 장벽을 뚫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당사자로서 외국군대의 철수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그 외침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가보안법에 갇혀 동족대결과 외세의존의 세뇌상태로 살아갈 수 없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 민중 스스로 분단냉전체제의 종식에 앞장서는 실천자세가 필요하고 그 힘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점을 마음 속 깊이 새기는 것이다.  더 이상 외세와 수구냉전세력의 영향력에 포박당한 굴종적 자세로 위축된 채 요행을 기다리는 구경꾼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외세와 수구냉전세력의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는 시대적 조건을 인식하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또한 주권자로서 국가보안법 폐지나 외국군대의 철수 등 외세와 수구냉전세력의 대북적대정책의 폐기를 적극적으로 선도해 나가는 행동이 필요하다.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북미 간 중재자를 소임해 나서는 문재인 정부에 지나친 기대보다는 우리 민중 스스로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의 이행의 주체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주체가 되어 민족화해와 단합, 평화와 번영,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에 나서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9-05-08 | hrights | 조회: 210 | 추천: 3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 지난 칼럼에서 강사법 시행과 관련된 대학의 졸렬한 수작을 지적하며 급한 대로 교수들이 급여를 조금만 깎아 부족한 예산을 메워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국외에 있어 자세한 대학 사정은 모른다. 전주대학교 교수회에는 교수의 연봉 삭감을 비롯한 대학의 포용 정책을 공론화하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전주대학교는 정말 일 년에 10억 원이 없어서 강사들을 내쳐야만 하는 대학입니까?”로 시작한 글은, “우리 민족에게는 ‘좀도리’라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습니다. 급여에서 5만원, 혹은 10만원이 덜하더라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고 여기실 수 있다면, 우리 전임교수들이 ‘좀도리’ 운동을 벌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제안하고,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어 안정된 환경에서 강의에 전심을 기울여줄 강사들과 함께 전주대학교의 교육을 우리나라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립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될 것”이라고 끝맺었다. 글의 분량과 내용은 더 깊고 많다. 1.  사람이든 세상이든 바뀌는 형식에는 배움(교육)과 혁명(또는 그 짝인 반동)이 있는 듯하다. 당연히 두 형식이 배타적이지는 않다. 교육과 혁명이라는 두 가지 형식이 구현되는 방법에는 다시 크게 네 가지 트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변하는 것이다. 거룩한 일이지만 드물게 나타난다.  둘째,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어 방향을 잡는 경우이다. 현명한 처사이다.  셋째, 의견을 달리하는 개인(집단)이 고집을 부리면서 버티다가 제3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여전히 갈등은 남는다.  넷째, 입장이 다른 상대를 제거해 버린다. 피를 본다.  대개 배움은 네 가지 트랙에서 앞쪽을, 혁명은 뒤쪽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트랙은 현실에서 뒤섞여 나타난다. 1.  나는 2017년 2월 11일을 토요일 광화문을 기억한다. 날씨가 유래 없이 추우리라는 예보에 집회 참가자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걱정에 우리라도 가야한다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이 귀를 때리던 그 추운 날씨에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심전심, 다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 날짜만 기억나는 것은 내가 중국 여행으로 얻은 동상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동상에 걸린 나에게는 추위가 남다른 공포로 다가온다. 장갑으로도 안 되어, 유자차를 사서 그 온기로 손을 녹였으나 이 역시 잠시 뿐이었다. 동상 걸린 손은 추위에 노출되면 기분 나쁘게 얼얼하고 아프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이렇게 촛불의 역사는 내 몸에 기록되었다. 1.  그 무렵 나는 빅토르 위고에 빠져있었다. 《레미제라블》(민음사, 정기수 옮김)을 읽으면서 빠리의 하수구와 워터루 전투를 근 150쪽에 걸쳐서 묘사했던 위고의 고증을 비롯한 구성, 이야기에 흥분하였다. 나는 “살아생전에 이 책을 읽은 게 다행”이라며 《레미제라블》의 전도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입이 마르게 추천하였고 친구들과 세미나를 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국장은 빅토르 위고의 《93년》(열린책들, 이경식 옮김)을 선물로 주었다. 영화 "레미제라블" 사진 출처 - 씨네21 1.  프랑스 시민들이 루이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체제의 목을 쳤다면, 이 땅의 시민들은 촛불로 박근혜-체제를 권좌에서 쫓아냈다. 그런 까닭에 세계사에 유례없는 평화혁명으로 언급된다. 프랑스혁명과 촛불혁명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후세에 촛불혁명의 성격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촛불혁명이 진행 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만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후일 남북의 평화가 정착되어 적대적 체제를 공존, 공영의 체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면 촛불대혁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프랑스혁명에 비길 수 없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뀐 말 그대로 ‘대혁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위대한 경험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나는 그 평화로움이 석연치 않았다. 나는 시민이 절대군주의 목을 친 프랑스혁명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조선이 망할 때도 백성의 힘으로 임금 목을 칠 기회를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겼고, 4·19혁명 때도 못했다. 독재 말기에 부하의 손에 죽은 박정희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전두환은 잠시 가두었다가 풀어주지 않았는가? 1.  다행히 내 석연치 않음은 두 가지 점에서 무의미하다. 첫째, 혁명의 과정이나 결과는 기획되지 않는다. 혁명은 그 사회의 구조나 조건, 숱한 인간들의 욕망, 그것이 빚어내는 우연이 맞부딪힌 결과이다. 그러므로 프랑스혁명, 4.19, 10.26, 촛불혁명을 놓고 아쉬워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무의미하다.  둘째, 혁명이 가지고 있는 격렬성과 그에 따른 희생에 대한 역사의 기억을 반추할 때 아무려면 평화로운 것이 천 번 백 번 바람직하다. 혁명은 닥터 지바고를 만들고, 반동은 아이들에게도 총을 겨누는 법이다. 유모차 위로 최루탄이 터지지 못하는 광화문이 얼마나 다행이었는가. 평화는 그 자체로 선(善)이다. 1.  “그러게요! 그래도 한 때 임금이었던 사람이잖아요!”  제주에서 있었던 ‘광해군(光海君)’을 주제로 한 토론 때 사회자가 한 말이었다. 민생과 나라재정을 파탄 내다가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은 제주도에서 20여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누군가가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어 사람들이 그가 광해군인지도 몰랐다.”라고 하자, 그에 대한 반응이었다. 사회자는 좀 생각이 있다고 알려진 배우였기에, 그의 말은 참 의외였다. 한 때 임금이었으니 어쩌라는 말인가?  내가 그 사회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다. 지난 4월 강화에 있는 소규모 극장에서 아내와 함께 ‘마리 앙뜨와네트’(1938년 작)를 보았다.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자라 프랑스로 시집와서 살던 귀하고 고운 여자. 이 여자가 혁명으로 갇히어 폭력적인 군중에게 위협당하고, 탈출하려다 잡혔을 때, 내 마음 속에 안쓰러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역시 할리우드 영화는 교활하다. 2시간 만에 나를 세뇌시키다니. 아니지, 내가 2시간 만에 넘어가다니! 1.  역사적 조건을 빼고 촛불과 단두대의 의의를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아직 혁명이 끝나지 않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내놓는 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또 나는 그걸 논할 능력도 시간도 없다. 다만 2년 전 겨울에 느꼈던 찝찝함을 명료하게 해주었던 다음 대화를 함께 상기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5백 년 전,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과 맹자(孟子)의 대화이다.  제나라 선왕 :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내쫓고, 주나라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토벌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신하가 군주를 시해해도 됩니까?”  맹자 : “사람들을 모질 게 만드는 것을 적(賊)이라 하고, 사회의 의로움을 해치는 것을 잔(殘)이라 합니다. 무자비한 도적은 임금이 아니라 무뢰배 하나일 뿐입니다. 나는 무뢰배인 주(紂) 하나를 베었다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 루이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는 1789년부터 1792년까지 감금되어 있었다. 그들은 프랑스 밖으로 탈출하려다 잡혀서 단두대로 간 것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누군가가 취해야 할 현명한 처신은, 탈출을 기도하지 않아야 단두대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받을 건 받고 가야 역사가 평온하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연변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9-05-02 | hrights | 조회: 255 | 추천: 7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김정은 대자보’라는 걸 찾아 읽었다. 김정은 위원장 명의로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패러디물인데, 남북대화를 비롯한 현 정부의 각종 정책을 조롱하고 비트는 내용이다. 북한식 어투와 서체를 이용한 형식은 참신하다 할 수 있으나 문학적 재능이 부족하고 사실 왜곡이 많아,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으로선 실패한 패러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 대자보’와 함께 쌍으로 나붙은 <남조선의 체제를 전복하자>는 ‘전대협’ 명의 대자보는 더 한심한 수준이다.(전대협 앞에 ‘구국의 강철 대오’라는 수식어까지 80년대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과장과 억지로 가득찬 조악한 선동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이 조악한 대자보에서 한국 사회 20대 남성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이 교시했다는 <3대 전술 강령>의 세 번째 항목을 보자. “20대 남성들을 모조리 탄압하고 그들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라. (…)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을 시키고, (…)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빼앗아 공무원 시험의 낭인이 되게 만들라.” 가혹한 취업 경쟁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남성 역차별을 언급하는 대목도 있다. “그들을 성범죄자로 만들고, 사회적으로 거세하라. 언론, 뉴스, 미디어, 드라마, 예능, 문학, 교육 모든 수단을 통해 이들을 추악한 성욕의 괴물로 만들고 더욱 억압하고 옥죄어 세대 자체를 말살시켜라. (…) 기성세대가 여성의 편을 들게 하여 이들을 수평, 수직 구조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라.” 문재인 정부가 여성 편을 들며 20대 남성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들을 논리적으로 제압할 역사적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 낭인이 된 이유는 재벌 위주의 압축 성장 이후 부의 재분배에 실패하면서 일부 재벌과 국가직 말고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보기 어렵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부의 재분배 시도를 줄기차게 좌절시키고 재벌의 이익을 옹호한 자들은 ‘김정은 대자보’를 지지하며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바로 그 세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세력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과, 검찰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공수처 설립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나홀로 몽니와 땡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말할 수 있다. ‘전대협’, 당신들은 이용당하고 있다고.  사진 출처 - 전대협 페이스북  젠더 문제는 또 어떤가. 이들이 군복무 가산점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면 오히려 생산적인 논의를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다. 대자보가 언급한 것처럼 성범죄를 처벌한다고 해서 20대 남성이 “추악한 성욕의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가 여성 편을 든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수백 년 이어온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정하려는 노력이 일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변화가 워낙 급격해서 성차 문제에 대해 50대 이상 기성세대와 20대가 느끼는 현실이 거의 정반대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게 함정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조차 가지 못하고 결혼 이후에도 온갖 불평등과 불이익에 시달렸던 50대 이상 여성들과, 지금 20대 여성의 현실은 다르다. 가만히 있어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50대 이상 남성들과, 웬만해서는 여성을 따라잡기 어려운 20대 남성의 현실 또한 많이 다르다. 젠더 문제에 대한 20대와 기성세대의 인식 차이는 세대 차에 따른 현실의 극적인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지 않는 한 20대 남성은 현재처럼 삐딱한 노선을 계속 강화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평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1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조선왕조 500년의 변화보다 지난 5년의 변화가 더 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년이 아니라 ‘한 달이면 강산이 변한다’로 바꿔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현재의 20대와 50대인 86세대의 차이는 30년이 아니라 300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기성세대는 300살 어린 후세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사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순의 대부분이 압축성장과 급격한 사회 변화에 기인한다.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인구 축소와 국가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유례 없는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의 원인이 압축 성장에 따른 급격한 사회 변화에 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면 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다. 각자 다른 경험과 처지를 이해하면서 서로 존중하며 대화로 풀어야 한다. 비난하는 태도로 접근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특히 20대를 대하는 기성세대의 자세는 신중하고 어른스러워야 한다. 이들의 처지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숙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86세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던 김기춘세대-독재(향수)세대-의 실수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설훈, 홍익표 등 일부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20대 비하 발언은 어른으로서 부적절할 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기본이 안 된 대응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의 20대는 지난 정권 때 10대로서 촛불을 들었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우리를 감동하게 했던 바로 그들 아닌가.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태도는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환호하고, 불리하면 비난하는 감탄고토의 전형이다. ‘오만과 편견’이 하늘을 찌르는 더불어민주당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무엇보다 ‘20대 남성’ 문제 이전에 ‘20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20대 사이에 유행했던 자조적인 표현인 ‘삼포세대’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불만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지나친 입시 및 취업 경쟁과 과도한 주거비용, 저임금 및 장시간 노동, 결혼 비용 및 육아 부담 같은 것들 말이다. 20대 여성의 현 정부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건 미투 운동 등으로 표출된 젠더 문제를 해결할 최초의 기회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지 기존 사회경제적 불만이 해소됐기 때문이 아니다. 이에 더해 남성이라면 군복무에 따른 기회비용을 사회적으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상대적 박탈감, 전세금을 비롯한 결혼 비용 마련의 어려움 등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장에서는 같은 나이대 여성들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은 가부장제의 마지막 세대였던 아버지를 통해 학습한, 결혼하면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모순적 상황이 20대 남성을 반여성 전선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 아닐까.  요컨대 20대 남성 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모순을 척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화석처럼 굳어버린 재벌 위주의 독점을 허물고,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을 줄여 좀 더 느슨하게 살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자유한국당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 말자. 민주당은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기업들의 상속세 줄여줄 방안을 마련하느라 바쁘다. 박근혜 정부 때 20대 사이에 유행했던 용어를 하나 더 인용하면, ‘금수저’들의 특권 강화에 여당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서민을 말하지만 민주당 역시 기득권 체제의 기둥임을 고백하는 행위다. 사정이 이럴진대 20대가 어떻게 현 정부와 여당을 지지할 수 있겠나.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현상을 ‘보수화’로 규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보수화가 맞다고 볼 수 있지만, 앞서 말한 사회경제적 개혁 요구를 고려한다면 20대 남성이 현 정부와 여당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의 경우 무당파가 압도적으로 많다. 정치적으로 자신들을 대변할 세력을 찾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등 낡은 도식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누가 이들의 아우성에 응답할 것인가. 한국 정치의 미래가 이곳에 있다.  PS. 뻔 한 소리라고 생각해 건너뛰려다 사족을 붙인다. ‘김정은 대자보’의 저열함보다도 나를 더 실망시킨 건 한국 사회의 저열한 반응이었다. 특히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운운하며 가택 침입까지 불사하는 구태의연한 대응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보안법 적용이 무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나중에 옥외광고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용 법률을 바꾼 것으로 보이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경찰의 유전자는 그대로라는 사실을 역설하는 장면이었다. 국회에 폭탄을 설치한 것도 아니고, 만우절에 장난처럼 벌인 퍼포먼스에 대한 경찰이 나서는 건 청와대에 대한 과잉 충성이거나 담당자들의 승진 욕심 말고는 달리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나도 대자보를 붙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전국 450개 대학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서초구 대법원 등에 일제히 붙인 걸 보면 일시에 전국적 동원이 가능한 조직인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이고, 그걸 해소하는 건 저널리즘 영역이다. 수사기관이 나설 일이 아니다.  일부 야당 의원과 우파 매체들의 반응도 예상대로 천편일률적이다. 표현의 자유 탄압에 앞장섰던 불과 몇 년 전 과거를 잊은 채 환호작약하는 일부 정치인과 매체들의 후안무치함에 화가 난다. 경찰의 과잉 대응이 표현의 자유 탄압이라는 주장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당신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미네르바’ 박대성씨와 ‘쥐그림 포스터’의 박정수씨, ‘근혜공주’의 작가 이하씨와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기자, 그리고 홍가혜씨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부터 하기 바란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04-24 | hrights | 조회: 377 | 추천: 4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갱년기가 온 것일까요?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툭하면 마음이 울컥하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걸 알고 나서 콧등이 찡해질 때마다 참아보려 애쓰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눈물이 많아지면 눈물이 점점 싱거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 일요일, 세느 강에서  “오랜만에 세느 강변에나 나가볼까?”  지난 일요일, 아내가 지금 한창인 벚꽃 구경을 하러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저희는 집 근처에 흐르는 작은 하천을 그냥 싱거운 우스갯소리로 ‘세느 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느 강’을 경계로 한쪽은 제가 살고 있는 oo구(區), 다른 한쪽은 ㅁㅁ구로 행정구역이 나뉩니다.  비록 도시 변두리의 그만그만한 하천이지만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있어 휴일이면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듭니다.   4월 중순, 세느 강에 나가 보니 벚꽃은 그야말로 만발입니다. 아내는 넋이 나간 듯 눈부신 꽃송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꽃들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다가 울컥! 갑자기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부랴부랴 아내가 알아차릴까 봐 가슴을 꾹 눌러 겨우 눈물을 참고 있는데, 아내가 불만스럽게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oo구청장 이 사람, 안 되겠네.”  꽃구경에 취해 있던 아내의 뜬금없는 소리에 눈물이 쏙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아내의 태세 전환에 깜짝 놀라 묻자, 아내는 우리가 서 있던 개천 건너편, oo구의 천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가만 보니 우리가 서 있는 ㅁㅁ구 쪽의 천변에만 꽃이 만발입니다. 겨울에는 잘 몰랐었지만 이렇게 꽃이 피고 나니 oo구에서 관리하는 천변과 ㅁㅁ구에 속한 천변의 풍경이 확연히 다릅니다. 꽃나무가 잘 관리된 ㅁㅁ구는 제가 살고 있는 oo구보다 산책로며 운동기구며 주변 환경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건너다니며 실컷 벚꽃 구경을 하던 아내는 어느새 oo구 주민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래도 간만의 꽃구경이 좋았는지 얼굴에는 오랜 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야 말로 찬란한 봄입니다, 눈부신 계절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갱년기 때문일까,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빠졌습니다. 꽃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저를 아내가 봤다면 한마디 했을 것 같습니다.  “주책바가지!” 사진 출처 - 경향신문 #2. 화요일, 파리바게뜨 근처 술집에서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약속된 술자리에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벌써 세 친구들의 얼굴이 불쾌하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술자리 분위기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술자리에서는 가급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이 친구들의 묵시적인 금기였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어떤 정치적인 뉴스가 나올 때마다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서 “다신 보지 말자”는 말로 헤어지는 일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아홉시 반 정도 지난 시간, 그런데 벌써 준한 사태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두 친구는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등을 돌린 친구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친구가 뒤늦게 자리에 앉은 저를 보고 어떻게 하냐는 듯이 쓴 웃음을 지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쟤들 세월호 때문에 한바탕했다.”  4월 16일, 예상했던 바였습니다. 등을 돌리고 있다가 한 친구가 일어섰습니다. 조그만 음식점을 하는 친구였습니다.  “미안하다, 나 먼저 간다.”  말릴 새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아마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을 친구가 일어서 나갈 때 다른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먼저 너, 다시는 안 봐!”  술자리는 금세 누가 먼저 입을 떼기가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소 긴 침묵이 이어졌다고 생각되는 때에 ‘다시는 안 보겠다’는 말을 했던 친구가 저를 보며 말을 꺼냈습니다.  “야, 저 새끼가 어쩌다 저런 놈이 되었냐? 너도 차명진이 같은 새끼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냐?”  그 말을 하고 있는 친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당황하며 말을 받았습니다.  “정치 얘기 안 하기로 했었잖아, 근데 오늘 작정하고 나온 것처럼 왜 그랬어?”  그러자 눈물을 참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너도 똑같이 답답한 놈이다. 내가 정치 얘기 했냐? 세월호 얘기 했지.”  술자리는 어찌어찌 끝나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안 보겠다던 두 친구는 또 다시 보게 되겠지요. 늘 그래왔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저였습니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친구가 말했던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서였을까요?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났던 것은 아마 며칠 전 보았던 그 눈부신 꽃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정말 ‘주책바가지’가 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9-04-19 | hrights | 조회: 169 | 추천: 3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작년에 ‘선을 넘어 생각한다’라는 책을 내고 나서 몇 차례 강연요청을 받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다가 프레젠테이션 첫머리에 집어넣은게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였다. 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이 14세기 조선 초기 별자리 지도를 우리가 흔히 아는 서양식 별자리 지도와 비교해보자. 한국 사람들은 북쪽 하늘에 있는 국자 모양을 한 별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선을 그은 뒤 ‘북두칠성’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유럽 사람이라면 큰곰자리를 구성하는 꼬리와 등뼈 부분으로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얘기하면 선 같은건 없다.  우리는 밤하늘을 보면서 북두칠성이니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하는 별자리를 생각하며 별과 별 사이에 선을 잇는다. 하지만 우리가 별자리를 기준으로 별을 인식하는 건 별자리를 잇는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북두칠성이니 큰곰자리니 하며 연결하는 선이란 그저 우리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에 따라 혹은 외우기 쉽도록 상상력을 동원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28수,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같은 별자리를 만들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일단 별자리를 그리고 나면 그 별자리가 우리 인식을 규정해 버린다.  우리는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한다. 별과 별자리 지도의 관계를 현실과 프레임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임이란 한 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이 심어놓은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길 원하신다’는 생각의 씨앗이 자라고 자라서 아버지가 물려준 거대기업을 제 손으로 해체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치다. 선과 선을 잇고 특정한 틀 안에 공간을 인식하게 만드는 ‘지도(地圖)’야말로 그런 효과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지도에 매혹 당했다. 메르카토르 지도의 크기 왜곡 문제를 없앤 피터스 도법 세계 지도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지도가 만들어내는 생각의 ‘틀’  주변에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를 대략 유럽만한 크기를 가진, 북아메리카보다는 훨씬 작은 대륙으로 인식한다. 여기에는 ‘메르카토르 도법’이라는 방식으로 만든 지도가 워낙 널리 퍼진 게 큰 영향을 미쳤다. 1569년 네덜란드 사림인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가 발명했다는 이 지도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실제보다 훨씬 더 커보이게 하는 정치적 효과까지 덤으로 거둔다.  그럼 독일사람 아르노 피터스가 만들었다는 피터스 지도는 어떤가. 세계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표시한다는 이 지도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기괴하기까지 할 정도로 낯설다. 이 지도를 통해서야 우리는 아프리카가 미국과 중국, 인도는 물론 동유럽과 영국, 프랑스, 독일을 모두 우겨넣은 것보다도 더 큰 땅덩어리라는 걸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지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틀까지 바꿔버릴 수 있다. 지도를 통해 세상을 더 지혜롭게 인식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의 틀을 깨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지도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계속해서 메르카토르 지도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할까. 짐작하건데, 메르카토르 지도가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에 훨씬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익숙한 걸 편하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불편한 진실’이란 말은 틀렸다. 진실이란 원래 불편한 게 아닐까. 점심시간마다 서울시내에 울려 퍼지는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기피 의혹 수사 촉구’ 집회와 ‘트럼프 대통령님, 피로써 지킨 대한민국을 지켜주세요’ 현수막을 보면서 틀을 깨고, 선을 넘어 생각해보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노릇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04-03 | hrights | 조회: 375 | 추천: 5